외모 집착 말고 신체·인지기능에 집중 단백질·항산화 성분 풍부한 콩류 섭취 혈당 관리하고 운동으로 근육량 늘려야 유전보다 좋은 습관이 노화 속도 좌우
요즘 건강관리 분야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저속노화’다. 말 그대로 노화 속도를 늦춰 신체 기능을 젊고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본지는 2월부터 ‘디지털농민신문’의 생활섹션 ‘N+(엔플러스) 라이프’를 통해 ‘저속노화의 비밀’ 시리즈를 연재했다.
천천히 나이 드는 식단·운동·생활습관 전반에 대해 ▲동안을 위한 슈퍼푸드 ▲젊음을 되찾아오는 지중해식 ▲체중감량 법칙 ▲근육이 당신을 젊게 만든다 ▲잘 자기만 해도 뇌까지 젊어진다 ▲젊은 두뇌를 유지하는 법 등 6회에 걸쳐 다뤘다.
연재를 마무리하며 만난 이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다. 정 교수는 저술과 강연 등을 통해 저속노화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정희원의 저속노화’는 구독자가 40만명이 넘는다. 그에게 저속노화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지면에 추려 싣는다.
-최근 사람들이 저속노화에 주목하게 된 배경은.
▶저속노화는 생물학적인 노화 속도를 늦추는 생활 철학이다. 건강수명을 최대한 늘려 젊은 사람 못지않은 인지와 신체 기능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고령화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정작 제도적 정비는 부족한 현실이라 개개인이 자기 돌봄을 통해 건강한 노년을 이뤄가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노화’ 하면 외모의 변화를 먼저 떠올리고 이 때문에 두려워하는데.
▶주름살이나 흰머리보다 중요한 것은 신체·인지·사회 기능, 즉 ‘내재 역량’이다. 저속노화의 목표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에게 크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활하는 것이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주름살이 몇개인지 세는 것보다, 내 다리로 걷고 내 손으로 밥 먹는 것이 중요하다. 노화는 병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고, 주름진 얼굴이어도 밝은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는 게 행복한 노화다.
-노화를 늦추는 데 있어 식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마디로 ‘음식이 나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달고 기름진 음식, 정제 탄수화물 식품을 먹으면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하고, 과량의 혈당이 당화산물을 만들어 세포를 손상시킨다. 또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면서 남은 당이 지방으로 전환돼 축적되기 쉽다. 당뇨병·동맥경화·고혈압·심혈관질환, 심지어는 암 발생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생활습관이 나쁘고 혈당 관리를 안하다 65세에 이르면 건강한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4.5배, 치매 위험은 3.5배까지 높아진다. 단 음료수와 과자, 밀가루 음식은 멀리하고 식사는 천천히 해야 한다. 식사할 땐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먹는 게 좋다.
-저속노화와 관련해 잡곡이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잡곡은 저속노화 식단의 숨은 보물이다. 섬유질이 풍부해 식후 혈당이 서서히 오르게 해준다. 특히 콩류는 양질의 단백질과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꾸준히 먹으면 근육을 유지하면서 세포 노화를 막아준다. 밥을 지을 때 현미·귀리·보리 등에 검은콩·병아리콩·렌틸콩·강낭콩 등을 섞으면 단백질 섭취량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포만감이 생겨 과식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잡곡과 콩이 많이 생산되니 유행하는 수입 곡물에 집착하지 말고 국산 잡곡과 콩의 가치를 재발견했으면 좋겠다.
-농민들은 아무래도 건강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은데.
▶농작물을 소중히 가꾸듯 이젠 자기 몸도 돌봐야 한다. 일단 휴식과 수면을 챙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농사는 고된 신체활동이 많기 때문이다. 과음과 흡연을 삼가고 담백한 식사와 꾸준한 운동을 생활화해야 한다. 농기계 소음을 차단하는 귀마개, 햇빛을 막는 모자, 작업용 보호안경 등도 습관처럼 착용해야 한다.
-고령층에게 추천하는 건강관리법은.
▶지금이라도 ‘근테크’를 하자. 돈을 은행에 저축하듯 근육량을 늘려 노후를 대비하자는 개념이다. 30대 중반 이후부터 매년 1%씩 근손실이 발생한다. 근육이 줄면 일상생활이 힘들고 낙상이나 골절 위험도 커진다. 근육량이 부족한 노인이 그렇지 않은 또래보다 사망률이 5배 높다는 통계도 있다. 처음에는 하루 10분이라도 매일 하자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해 내 몸에 맞게 강도를 높이자. 달리기, 수영, 실내 로잉(노 젓기) 같은 유산소운동과 웨이트 같은 근력운동을 병행하는 게 가장 좋다.
-농업은 지구 환경에 기여하는 산업이다. 저속노화 시대에 농업의 의미는.
▶흥미로운 주제다. 제철 농산물은 신선하고 영양이 풍부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우리 땅에서 난 농산물은 수송 과정이 짧아 탄소발자국이 작고, 신선도가 높아 영양 손실도 최소화된다. 건강에 좋고 온실가스도 줄여 저속노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는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지속가능한 식단’ 개념과도 통한다. 건강한 농업이 좋은 식재료를 생산하고 건강한 사람이 환경을 지키며 소비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농업의 가치가 식량 생산을 넘어 국민 건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농민들이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다.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 생활 습관은.
▶첫째, 매일 몸을 움직인다. 병원 계단을 오르거나 출퇴근길에 일부러 더 걷는다. 주말 아침에는 야외 달리기도 한다. 아침 또는 자기 전에 10분 정도 마음챙김 호흡을 하며 명상한다. 둘째, 식습관 관리다. 섬유질과 단백질 위주의 식단을 지향하고, 탄산음료나 가당음료는 일절 마시지 않는다. 셋째는 충분한 수면이다. 하루 7시간30분 이상 자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마지막으로 취미다. 호른 연주를 20년째 하고 있는데, 뇌 운동도 돕고 무엇보다 마음에 활력을 준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저속노화의 키워드는.
▶‘습관의 힘’이다. 노화 속도를 좌우하는 것은 유전이나 운명보다 자기 돌봄 습관이다. 책 제목을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이라고 지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바로 결과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수면·식생활·운동·마음가짐 등 시간이 만드는 습관의 마법을 믿었으면 한다. 오늘부터 하나의 작은 좋은 습관을 시작하면 그 하나가 나중에 당신을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