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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발사부터 고작 72분…모두의 종말

하나님아들 2025. 2. 15. 23:58

미사일 발사부터 고작 72분…모두의 종말

입력2025.02.15.
24분: 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
애니 제이콥슨 지음
강동혁 옮김
문학동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게 대략 300만~350만년 전이라고 한다. 기원전 4000년 문명을 세운 뒤 도시, 국가, 제국을 발전시켰다. 20세기에 하늘과 우주로 진출했고, 21세기 들어 인간과 맞먹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모든 성과가 인류와 함께 사라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십 분이란다.
어떻게? 핵전쟁으로.

미국의 유명 탐사 전문기자인 저자가 『24분: 핵전쟁으로 인류가 종말하기까지』에서 주장하는 바다.
마침 지난달 말 미국 핵과학자 협회보가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의 초침을 자정 89초 전으로 맞췄다는 소식을 들은 뒤 접한 이 책은 섬뜩한 묵시록으로 보였다.
자정은 지구 종말을 의미한다.
89초 전은 1947년 처음 시계가 움직인 뒤 가장 자정에 가깝다.

건물의 모습을 따서 흔히 펜타곤(오각형)이라고 불리는 미국 국방부.
2022년 공중에서 촬영한 모습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전략공군사령부가 비밀회의에서 핵전쟁 계획을 세운 건 1960년의 일이었다.
당시 세계 인구 5분의 1인 6억 명을 죽음으로 몰 수 있는데도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미국은 평균 매일 3.5기씩 핵탄두를 만들어내 1967년 3만 1255기를 보유했다. 100기가 20억 명을 사라지게 할 분량이니, 미국 혼자 세상을 수십 번 파괴할 수 있는 셈이었다.

이 책이 그린 핵전쟁 시나리오에서 멸망의 발단은
북한이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7을 미국 워싱턴 DC를 향해 발사하는 것.
 
저자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을 비롯한 당국자와 정부 기관이 핵전쟁 때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꼼꼼하게 보여준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15년 동안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 리언 패네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 수십 명을 인터뷰했고, 최근 해제된 기밀을 포함한 방대한 문서를 독파한 저자다.

미국에서 핵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대통령뿐.
핵 공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핵 반격을 결정하기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분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적에게 기습당하지 않겠다며 핵 공격 신호를 포착하면 바로 쏘는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원칙을 세웠으니
그보다 더 짧을 수 있다.

저자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갖춰 놓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망은 무용지물이다.
원래 “총알로 총알을 쏘아 맞히는 것과 비슷하다”는 게 MD. 북한 ICBM에 대한 요격이 실패하자 미국은 핵으로 반격하게 된다.

북미에서 아시아로 가는 지름길이 북극.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탐낸다.
이 책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북극 위로 날아가는 미국의 핵미사일을 불행하게도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핵 공격으로 오해한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때부터 우발적 충돌을 막고자 핫라인을 이어놨다.
하지만 2022년 11월 러시아의 미사일이 나토 동맹국인 폴란드를 타격했다는 오보가 나온 뒤 이를 확인하고자 미국이 핫라인을 가동했지만, 24시간 동안 답이 없었다.

결국 러시아도 반격한다.
핵으로. 최초의 핵 공격으로 최소 5억 명이 목숨을 잃는다.
 
책은 이들이 어떻게 사망하는지 자세히 묘사한다.
너무 참혹해 해당 구절을 건너뛰었다.
 
살아남는 사람도 결코 운이 좋은 게 아니다.
부상과 화상, 그리고 방사능으로 “생존자들이 죽은 자들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핵전쟁은 두 시간도 채 안 돼 끝나지만,
북반구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고 낙진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핵폭발 후 하늘로 떠오른 재와 연기가 태양을 가려 지구는 핵겨울에 접어든다.
저자는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 등 TV 프로그램 작가 겸 제작자이기도 하다.
모든 과정이 테크노 스릴러 못잖게 긴박하게 돌아간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외교안보 당국자의 추천 덕분.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원서를 아마존으로 주문해 읽었다는 그는 “미국의 핵전략 교재보다 더 좋다”고 평했다.

제이콥슨이 제기한 문제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 입장에선 양가적일 게다.
 
지구 멸망도 걱정해야 하지만,
북한의 위협은 당장의 생존 문제.
그리고 미국의 핵전력이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는 우리를 지키는 안전판이다.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공세적 핵 태세를 누그러뜨려다 접게 된 게 동맹국의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말 책 제목은 24분을 내세웠는데,
저자가 그린 인류 종말 시나리오는 정확히는 72분이다.
원제 Nuclear War: A Scenario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