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서신

요한계시록 강해 민 병 석 목사

하나님아들 2024. 5. 23. 14:15

은혜로 새벽을 여는 성경 강해

요한계시록 강해

민 병 석 목사 저




■ 차 례


제 1 장
1) 요한이 받은 계시 (1절∼3절) ................................................... 1
2) 요한계시록의 해석 방향 (1절∼3절) ................................................................. 3
3) 요한계시록의 주제 (1절∼3절) ................................................................. 5
4)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복 (1절∼3절) ............................................................... 7
5) 때가 가까움이라 (1절∼3절) ........................................................... 9
6) 신상으로 보여 주신 마지막 때 (1절∼3절) .......................... 11
7) '70 이레'로 보여 주신 마지막 때 (1절∼3절) ...................................... 13
8) 충성된 증인 (4절∼6절) ........................................... 15
9)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일 (4절∼6절) ................................................... 17
10) 주 재림의 선언 (7절∼8절) ............................................... 19
11) 주의 날과 참 안식 (9절∼11절) .......................................... 21
12) 요한의 참 형제 (9절∼11절) ............................................ 23
13) 주님의 영광 (12절∼20절) ................................. 25
제 2 장
14)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 (1절∼7절) ........................................ 27
15)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은 서머나교회 (8절∼11절) ........................... 29
16) 니골라당의 교훈을 좇은 버가모교회 (12절∼17절) ...................... 31
17) 이세벨을 용납한 두아디라교회 (18절∼29절) .......................... 33
제 3 장
18) 실상은 죽은 사데교회 (1절∼6절) .......................... 35
19) 인내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교회 (7절∼13절) ............................................. 37
20)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교회 (14절∼22절) ................................. 39




제 4 장
21) 하나님의 보좌 (1절∼7절) .................................. 41
22) 24장로와 네 생물 (4절∼11절) ............................................ 43
제 5 장
23)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 (1절∼5절) .......................................... 45
24) 어린양의 등장 (4절∼6절) ......................................................... 47
25) 책을 취하신 어린양 (7절∼14절) ........................................................... 49
제 6 장
26) 흰말의 등장 (1절∼2절) ................................................. 51
27) 붉은 말의 등장 (1절∼4절) ...................................................... 53
28) 검은 말의 등장 (5절∼6절) ......................... 55
29) 청황색 말의 등장 (7절∼8절) ................................ 57
30) 다섯째 인과 순교자들의 간구 (9절∼11절) ................................ 59
31) 여섯째 인과 인류의 심판 (12절∼17절) .......................................... 61
제 7 장
32) 결박당한 땅 사방의 바람 (1절∼3절) ............................................ 63
33) 144.000의 하나님의 종들 (4절∼8절) ................................. 65
34) 흰옷 큰 무리 (9절∼14절) ........................................................... 67
35) 환난 날의 교회의 피난처 (15절∼17절) ............................................... 69
제 8 장
36) 금향로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 (1절∼5절) .................................. 71
37) 첫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나팔 (6절∼9절) .............................. 73
38) 셋째 천사와 넷째 천사의 나팔 (10절∼13절) .............................................. 75
제 9 장
39)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이 떼 (1절∼3절) ............................................. 77
40) 첫째 화의 가해자 (4절∼12절) ............................................... 79
41) 첫째 화의 피해자 (1절∼6절) ................................................ 81
42) 둘째 화의 배경 (13절∼16절) ............................................ 83
43) 둘째 화의 진상 (17절∼21절) .......................................... 85



제 10 장
44) 종말 사명자의 소명 (1절∼4절) ............................. 87
45) 작은 책을 먹은 자의 사명 (5절∼11절) .......................... 89
제 11 장
46) 갈대의 척량 (1절∼2절) ................................ 91
47) 두 증인의 정체와 사명 (3절∼5절) ...................................................... 93
48) 두 증인의 예언 권세 (4절∼6절) ......................... 95
49) 두 증인의 순교 (7절∼10절) ................................ 97
50) 두 증인의 부활과 둘째 화 (11절∼19절) ................................ 99
제 12 장
51) 해 입은 여자와 해산한 아들 (1절∼2절) ................................ 101
52) 보좌 앞으로 올려간 아들 (3절∼5절) .......................................... 103
53) 하늘의 전쟁 (6절∼12절) ............................................ 105
54) 교회의 핍박과 예비처 (13절∼17절) ........................................................... 107
제 13 장
55) 바다에서 나온 짐승 (1절∼2절) ............................................... 109
56) 적 그리스도의 등장 모습 (3절∼4절) ................................................. 111
57) 적 그리스도가 받은 권세 (3절∼5절) .............................. 113
58) 성도를 이긴 짐승의 권세 (6절∼10절) .............................................. 115
59) 거짓 선자자의 등장 (11∼15절) ............................................. 117
60) 666 짐승의 표 (16절∼18절) ................................................ 119
제 14 장
61) 시온산에 선 144.000 (1절∼3절) ............................................ 121
62) 144.000의 첫 번째 자격 (4절∼5절) .......................................... 123
63) 어린양만 따르는 자 (4절∼5절) ............................. 125
64)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4절∼5절) .......................... 127
65) 첫째 부활의 시기와 마지막 부활 (4절∼5절) ............... 129
66) 공중 휴거의 시기와 모습 (4절∼5절) ...................................................... 131
67) 진실하고 흠 없는 종 (4절∼5절) ......................... 133



68)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 (6절∼10절) ......................... 135
69) 세 번째 천사의 메시지 (9절∼12절) ................................ 137
70) 주 안에서 죽는 자의 복 (12절∼13절) ................................ 139
71) 마지막 추수 (14절∼20절) ................................ 141
제 15 장
72) 공중 휴거자의 모습 (1절∼4절) .......................................... 143
73) 마지막 심판 준비 (3절∼8절) ............................................ 145
제 16 장
74) 첫째와 둘째 대접 심판 (1절∼3절) ........................................................... 147
75) 셋째, 넷째, 다섯째 대접 심판 (4절∼11절) ......................... 149
76) 여섯째 대접과 주의 재림 (12절∼18절) ...................................... 151
77) 일곱째 대접과 공중 휴거 (17절∼21절) .............................. 153
78) 일곱째 대접과 지구의 파멸 (17절∼21절) .............................................. 155
제 17 장
79) 음녀의 비밀 (1절∼7절) ............................................. 157
80) 짐승의 비밀 (73절∼13절) ............................... 159
81) 음녀의 최종 운명 (14절∼18절) ............................................ 161
제 18 장
82)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1절∼5절) .......................................... 163
83) 음녀와 큰 성 바벨론의 심판 (4절∼10절) ............................. 165
84)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애가 (9절∼20절) .......................... 167
85) 최후 심판으로 온 지구의 적막 (21절∼24절) ................................ 169
제 19 장
86) 어린양의 혼인 기약과 예비된 아내 (1절∼8절) ................................. 171
87) 어린양의 혼인 잔치 (9절∼10절) ......................... 173
88) 재림의 주님과 하늘의 군대들 (11절∼16절) .............................................. 175
89)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 (17∼21절) ............................................. 177
제 20 장
90) 천년간의 사탄의 결박 (1절∼3절) ................................................ 179



91)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 (4절∼6절) ............................................ 181
92) 천년왕국의 생활 (6절) .......................................... 183
93) 천년왕국의 종국과 사탄의 심판 (7절∼10절) ............................. 185
94) 흰 보좌 심판대 (11절∼15절) .......................... 187
제 21 장
95)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1절∼4절) ................................ 189
96) 천국을 기업으로 받지 못할 자 (5절∼8절) ....................... 191
97) 새 예루살렘의 구조 (9절∼21절) ......................... 193
98)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와 못 들어갈 자 (22절∼27절) ................ 196
제 22 장
99) 생명수의 강 (1절∼5절) ............................................ 199
10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6절∼16절) .......................................... 202
101)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7절∼21절) ............................. 205























1 \ 1:1-3

(1) 요한이 받은 계시
(요한계시록1:1-3)

우리는 오늘부터 재림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식은 그리스도인 들에게 가장 긴급하고도 긴요한 메시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종이 이 메시지를 등한히 하게 되면 '악한 종'이란 책망을 듣게 되며 주님은 이들에 대하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란 말씀으로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마24:48-51). 반면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양 무리들로 주 재림을 소망으로 예비하는 생활을 하게 하면 주님은 그런 종들에게 '그 모든 소유를 맡기리라'는 말씀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24:44-47).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두 가지로 간추려 말한다면 '인류의 구원과 심판'입니다. 이 세상에 구세주(메시야)를 보내시어 하나님의 택정 받은 백성들에 대한 구원을 이루시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불신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 두 가지 하나님의 섭리가 성경 전체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 마지막 부분인 주의 재림과 인류 심판에 관한 전반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종말적인 계시입니다. 이 계시가 빠지면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실 수 없으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은 공허에 그치고 맙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는 그의 신부들입니다. 그가 오시면 이 지상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데 이를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말하며 이 혼인 잔치는 곧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릴 천년왕국에서의 성도들의 복된 삶을 의미해 줍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들의 소망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의 재림에 우리의 삶의 표적을 맞춰 신부의 단장을 해야 합니다. 이 같은 복된 신부로서의 단장을 위하여 계시해 주신 성경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며 그래서 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요한이 받은 계시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기도하는 중에 받은 종말의 계시입니다. 계시란 말은 '아포칼룹시스'( )란 헬라어의 번역으로 베일 같이 가려진 것이 벗겨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숨겨진 어떤 비밀한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그 비밀한 내용이 공개되어 그것을 드러낸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숨겨져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한 섭리를 우리에게 모두 계시(밝혀 주셨다)해 주셨습니다. 그러므 2 \ 1:1-3

로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로부터 주의 재림으로 오는 인류의 심판과 천국에 이르는 모든 비밀이 하나님의 계시(성경)로 완전히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는 계시를 받는 사람들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계시를 공부하며 연구하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계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받은 종말의 계시를 아시아 지역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로 보내졌던 내용들입니다. 본서의 이름이 요한계시록인 것은 요한이 이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옛날 번역 성경에는 '묵시록'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으며 성경대로 표현한다면 본문 서두에 있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인 것입니다.
요한은 이 계시를 밧모섬에서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을 당시의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 9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은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의 통치 말년 주후 95년경에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로 (복음) 인하여 밧모란 섬에 유배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섬은 '팥모스'란 이름의 섬으로 밀레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65키로 미터 지점에 위치한 소아시아 해안의 작은 섬입니다. 요한이 유배될 당시에는 로마제국의 유배지(流配地)로 사용해 오다가 1947년 이후로는 지금 그리스의 소유 영토로 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이 계시를 이곳에서 주의 날에 받았다고 했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 계시록이 기록된 연대에 대하여 주후 97년이나 98년경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2. 요한계시록은 인봉된 책인가?
요한계시록은 인봉된 책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치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22:10). 주님은 '때가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의 시기는 언제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점으로 알고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요한계시록에는 종말적인 시대적 징조에 대해 자세히 계시해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인 해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분명히 밝혀 주신 하나님의 계시에 어두운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미 개봉된 요한계시록을 다시 인봉하여 성도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반열에 서서 주의 재림에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위해 준비하는 주님의 신부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 1:1-3

(2) 요한계시록의 해석 방향
(요한계시록1:1-3)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는 일에 우리가 제일 먼저 명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은 그 해석이 다양하기로 정평 있는 성경이라는 사실입니다. 해석이 다양하다는 말은 해석의 방향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주석을 찾아보거나 강해 집을 읽어볼 때 같은 계시로 나온 성경 구절을 가지고 그처럼 다양하고 제각기 특색 있는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되니 과연 어떤 주석을 취하며 어떤 강해를 참고로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1. 요한계시록 해석의 세 가지 방향
요한계시록은 신학적으로 그 해석의 방향을 세 가지로 잡고 있습니다. 하나가 '영적 해석 방법'이고 다음에 '과거적 해석 방법'이며 세 번째로 '역사적 해석 방법'이 그것입니다.
영적 해석 방법(靈的解釋方法)이란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내용을 실제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견지에서 보는 것입니다. 다음에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종말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성취된 사건으로 단정해 버리는 신학적 견해가 있는데 이런 해석 방법을 과거적 해석(過去的解釋)이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해석에서 과거란 로마의 역대 황제들에 의하여 기독교가 핍박을 가장 심하게 받았든 1세기경을 전후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역사적 해석 방법(歷史的解釋方法)이 있습니다. 역사적 해석 방법이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모든 계시를 인류의 역사적 무대 위에서 성취 될 역사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말합니다.

2. 종말론에 대두되는 천년설
그런데 실상인즉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제각기 차이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원인은 신학자들에 의하여 이미 오래 전에 정립된 천년기 설(千年期說)에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됩니다. 종말론을 강해 하려면 누구든 어느 것이건 한 가지 천년기 설만을 취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은 어떤 천년기 설을 취하느냐에 따라 종말론 해석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1) 후 천년설 ... 후 천년설(後千年說)은 천년왕국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신학적 견해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에 이 땅위에 천년왕국 4 \ 1:1-3

이 존재하게 되고 그 이후에 재림이 있다고 하는 신학적 학설입니다.
(2) 무 천년설 ... 무 천년설(無千年說)은 문자 그대로 천년왕국이 없다고 주장하는 설입니다. 근래에는 많은 신학자들이 이 견해를 선호하고 있으며 이 무 천년설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설을 취하게 될 때 풀리지 않는 문제점들이 너무나도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 천년설에 맞지 않는 성경 구절이 나오면 그것을 자신들의 무 천년설에 합치하도록 뜯어고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3) 전 천년설 ... 다음에 전 천년설(前千年說)이 있습니다. 이 전 천년설은 천년왕국 이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신학 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신 후 이 세상에 새로운 왕국이 세워지는데 그 왕국이 천년왕국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전 천년설은 성경에 계시된 모든 종말적인 사건과 일치되는 학설로 보수 진영의 교단 중 대부분 이 전 천년설을 종말론의 신학적 견해로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전 천년설도 여러 가지 상충된 견해로 갈라지는 나머지 많은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특이한 전 천년설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 소위 '세대주의 전 천년설'(世代主義 前千年說)입니다. 이 세대주의 전 천년설은 다른 전 천년설과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를 두고 있기 때문에 보통 전 천년설이라고 부르지 않고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라고 말합니다.
여하튼 이 같은 다양한 천년설로 인하여 종말론은 여러 갈래로 찢기고 갈라진 상태에서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에다 요한계시록 안에는 신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에 신학에 얽매이다 보면 그 신학의 범위 안에서 해석해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되어 문제의 올바른 성경적인 해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의 대 드라마의 연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해석할 수 없는 계시를 주시지 않습니다. 계시라고 하는 문구 자체가 비밀한 것의 그 너울을 벗겨 보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참으로 이 계시를 하나님의 뜻대로 알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까이하고 연구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시하신 그 뜻을 깨닫게 될 수 있습니다.
결론 : 예수님의 재림은 바로 가까이 왔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신랑을 기다리는 일에 우물쭈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되어 주 재림의 날에 그를 신랑으로 맞이할 수 있는 신부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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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요한계시록의 주제
(요한계시록1:1-3)

요한계시록의 주제가 무엇이냐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모든 문장에 있어서 대개의 경우, 그 문장의 주제만 밝혀지면 문장의 흐름이나 문장의 해석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주제란 그 문장을 작성하게 된 동기와 목적을 말합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살펴 볼 때 요한계시록에는 계시된 그 분명한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을 요한계시록의 주제, 요한계시록의 목적, 요한계시록의 경종 등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한계시록의 주제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무엇이냐? 주제(主題)란 요한계시록 전체 내용을 수용하는 표어(標語)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그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다양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초두에 있는 '때가 가깝다'는 말씀에서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신 이 말씀은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주의 재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계시록 1장의 내용 전체가 주의 재림과 결부되어 있으며 계시록 전체의 흐름이 그렇게 진행되어 나가고 있다는데서 알 수 있습니다. 계1:7절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요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이 주의 재림을 증거하는 계시임이 명백한 것은 계22:20절 말씀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들을 증거 했다는 '이것들'이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증거한 주의 재림에 관한 계시인 것입니다. 그것을 증거하신 이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속히 오리라 하신 메시지로 주신 계시가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찾아냈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주의 재림'입니다.

2. 요한계시록의 목적
6 \ 1:1-3

우리가 요한계시록에서 이 계시의 말씀을 주신 목적을 정확히 파악할 수만 있다면 건전한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우리들에게 요한계시록의 계시를 주신 것입니까? 이 책을 주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주 재림에 대한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며, 그 신부의 옷을 입혀 주시기 위해 주신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목적을 말한다면 성도들로 신부의 단장을 시키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신부의 단장'을 하라는 메시지가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목적인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그리스도인 들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신부로서의 단장을 시키시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신랑이 그의 신부가 될 아내를 준비시키기 위해 그의 교회들에게 주신 계시가 요한계시록인 것입니다. 그래서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3. 요한계시록의 경종
요한계시록에는 모든 그리스도인 들에게 주시는 엄중한 경종이 있습니다. 그 경종이란 무엇입니까? 인류의 종말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대적하는 무서운 '짐승'이 나타납니다. 이 짐승이 나타나면 이 자는 모든 인류의 '오른 손이나 이마'에 그의 표를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표는 '짐승의 표'라고 하며 일명 '6 6 6 표'라고도 불려집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누구든지 이 표를 받으면 멸망을 받는다는 사실을 엄중히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14:9-11절까지의 말씀을 펴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론 : 여러분, 인류의 종말에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는 일에 가장 큰 장애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짐승'으로 등장하는 적 그리스도입니다. 이 자가 종말에 나타나 큰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는 구원받지 못한 모든 인류들에게 짐승의 표를 찍어 주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교회에 많은 환난과 핍박을 주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요한계시록을 잘 배워 지혜로 진리로 성령의 권능으로 이기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 1:1-3

(4) 읽고 듣고 지키는 자의 복
(요한계시록1:1-3)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는 책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은 이 책의 내용을 잘 연구하여 이 귀한 메시지를 주님의 양 무리들에게 먹여야 합니다. 성도들이 이 예언의 말씀을 먹지 못하면 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필수적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일과 듣는 일과 지키는 일에는 시대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은 그 이후부터 '때가 가깝다'고 하신 주의 재림이 있는 그 날까지 주님이 주신 이 말씀은 유효한 것입니다. 주의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들이라면 어느 시대에 살아가든 이 예언의 말씀에 기록된 복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의 복
이 예언의 말씀에 대한 복에 대하여 세 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구분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읽는 자'라고 말씀해 준 대상은 사도 요한이 이 예언을 계시로 받아 서신으로 기록하여 보낸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가리킵니다.
원래 요한계시록은 주의 종들에게 주신 계시(책)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주의 종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의 종들은 이 계시의 말씀을 양 무리들에게 읽어 주어야 합니다. 읽어 준다는 말은 알기 쉽게 풀이해서 모든 성도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전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도 있습니다. 혹 잘못 해석하면 빠져 나올 수 없는 사탄의 함정에 걸릴 염려도 있습니다. 이 계시를 해석하는 일이나 전하는 일에 얼마나 주의 깊고 세심해야 하느냐에 대하여 계22:18-19절에서 이처럼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복
다음에 복을 받을 두 번째 대상으로 듣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 8 \ 1:1-3

씀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듣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주의 종들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양 무리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들음이 없이는 영적 소득이 없습니다. 믿음도 영생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5:24).
하나님의 말씀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게 들어야 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45-47).

3.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복
세 번째 복을 받을 대상자로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지키는 자들이란 읽는 자와 듣는 자들이 모두 포함된 말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 전하는 일만 하고 지키는 일을 못한다면 거짓 선지자가 될 것입니다. 듣는 성도들 역시 듣기만 하고 지키지 못하면 미련한 처녀로 종말에 연단의 도가니인 대 환난 가운데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듣기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스스로 속이는 자'라고 했습니다(약1:22). 예수님은 듣기만 하고 행함이 없는 자들의 결국에 대하여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마7:26-27).
그러면 여기서 복이 있다고 하신 복이란 어떤 복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복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의 복 가운데 이 복이야말로 다른 복에 비교할 바 아닙니다. 주님의 재림을 영접할 복을 가진 성도는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계3:10). 다음에 공중으로 휴거 되어 마지막 심판에서 건짐을 받습니다(습1:2-3;계16:17-21). 그리고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입니다.
결론 : 요한계시록에 수록된 종말의 계시는 우리가 반드시 읽고 듣고 지켜야 할 종말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지침입니다. 지금은 주 재림이 매우 가까운 싯점에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씀을 믿고 이 축복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9 \ 1:1-3

(5)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1:1-3)

요한계시록은 그 성취될 때가 가깝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 전문에 걸쳐서 매우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나오는 말씀에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2:6절에서는 "결코 속히 될 일"이라고 말씀하셨으며 22:10절에서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계시를 마감하는 22:20절에서는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모든 말씀으로 미루어 볼 때 '때가 가깝다'는 말씀은 주의 재림의 시기를 의미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1. '때'란 주 재림의 시기를 말한다.
예수님은 그가 이 세상에 다시 오실 일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반드시 오실 것을, 그리고 속히 오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날을 주 재림의 날이라고 말합니다.
(1) '때가 가깝다'고 하신 말씀은 주의 재림의 시기가 가깝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그 날을 알 수 없다고 하여 주의 재림의 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오실 지 그 시일에 대해서 숨겨져 있을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바로 그 날에 있을 일들에 대하여 계시해 주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역사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한 시대, 한 사건에 대한 제한적인 계시로 주신 책입니다.
(2) '때가 가깝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때가 가깝다고 하신 말씀의 진의(眞意)를 이해하지 못하면 요한계시록 해석에 혼선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가깝다'고 하신 말씀은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은 벌써 재림하셨어야 합니다. '가깝다'는 말씀은 이 계시를 받은 후로부터 재림이 실현될 시기에 이르기까지 어느 시기에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도 주의 재림의 시기는 가까운 때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기도 가까운 때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주의 재림의 시기를 전혀 알 수 없는데도 요한계시록의 계시자이신 예수님은 그 시기가 매우 가깝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에게 계속적으로 때가 임박했음을 거듭거듭 강조하면서 모든 성도들은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친히 재림하실 당사자가 되시는 예수님조차도 그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해 주신 일이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예수님은 그 날에 대하여 아들도 모른다고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10 \ 1:1-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2. 때가 가깝다고 하신 이유
그러면 왜 모든 시대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때'가 가깝다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성경은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는 주 재림 때까지의 모든 성도들의 생활이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등장하는 열 처녀들은 미련하건 슬기롭건 모두 신랑을 끝까지 기다려야 할 신부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랑이 더디 오게 되자 졸며 잤습니다. 이들이 졸며 잤다고 하는 태도는 그들이 맞이해야 할 신랑에게 소망을 두지 않고 세속적인 생활에 깊숙이 빠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그 신앙생활의 표적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까?
(1) 첫째로 주의 재림에 우리의 모든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성결한 생활과 열매 맺는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런 생활은 주의 재림에 소망을 두는 생활에서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들은 그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믿음을 가지고 그의 생애를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성도들은 항상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합니다.
(3)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들은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면서 주의 재림에는 마음을 두지 않고 세상일에 전념하며 분주합니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도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면서 양 무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는 생활을 즐겨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하여 악한 종이라고 정죄하셨습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종말,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에 있을 모든 사건들을 계시해 주신 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주의 재림을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대의 소망으로 삼는다면 마땅히 이 책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합니다.
결론 : 여러분,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계시해 주신 책입니다. 이상하게 여겨도 안 되고 읽고 듣고 지키는 일에 등한해도 안됩니다. 복이 있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왜 멀리 하는 것입니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말씀을 왜 덮어두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쉬 동심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두려움과 동요를 물리치고 정결한 처녀로써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주신 주님의 정다운 메시지임을 알고 주 재림의 소망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을 지배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1 \ 1:1-3

(6) 신상으로 보여 주신 마지막 때
(요한계시록1:1-3)

예수님은 마태복음24장에서 주의 재림에 대한 여러 가지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가운데 다니엘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15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이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인류의 종말에 관한 계시를 주신 일과 그 계시 중에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인류 종말의 징조적 시기가 반드시 찾아온다고 하는 사실을 밝혀 주신 내용입니다.

1. 다니엘서에 계시된 인류의 종말 시기
(1) 다니엘서는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의 계시로 주신 성경입니다.
(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을 바벨론의 박사, 술객, 점쟁이들에게 맞추도록 명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꿈의 내용을 알아맞힐 도리가 없었던 이들은 결국 왕의 명에 의해 다 죽게 되었을 때 기도하는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 왕이 꾼 꿈의 내용을 보여 주시고 다니엘로 왕에게 해석해 줄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느부갓네살 왕 앞에 서서 왕이 꾼 꿈의 은밀한 내용을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 내용이 단2:31-35절에 있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그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두렵고 놀라운 신상에 대한 해석을 정확히 밝혀 준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관한 계시가 다니엘서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본 신상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다니엘서는 이처럼 2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이 꿈에서 보았다는 신상의 내용을 해석해 주는 내용으로 종말적인 계시가 진행되어 나가기 때문에 이 신상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야말로 다니엘서를 이해하고 종말의 시기를 깨닫는 일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12 \ 1:1-3

2. 다섯 번째 나라의 정체
다니엘은 왕이 꿈에서 본 신상을 정확히 알려 주는 가운데 36절부터 그 꿈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나라는 금머리로 이 금머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가리킨다고 해석해 주었습니다. (36-38절 말씀) 바벨론의 흥왕시대는 주전 606년-538년간입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나라는 39절에서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나라가 일어날 것인데 그 나라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나라는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된 메데바사를 가리킵니다. (단8:3-4, 20절에서 메대와 바사라고 했습니다). 이 나라는 주전 538-330년간 기간까지 존속했습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나라는 39절에서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놋이란 나라는 메데바사 다음에 등장한 나라로 헬라를 가리킵니다.
다음 네 번째로 등장하는 나라는 '철 종아리'라고 했습니다. 이 철 종아리는 헬라 다음에 일어나 온 유럽을 지배하고 이스라엘을 다스릴 로마를 의미합니다. 이 로마는 주후 337년경에 동서로 분할된 후, 동 서 로마로 나뉘어졌으며 서 로마는 476년에 독일에 의해, 동 로마는 1453년에 터키에 의해 종말을 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다섯 번째 나라로 넘어가게 됩니다. 다니엘은 이 나라에 대하여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으로 된 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 나라에 대하여 설명할 때, 발가락과 비교해서 이 나라를 한나라로 가리킨 것이 아니라 여러 인종들이 합친 연합국가 형태를 이룬 여러 나라들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다니엘서에서 결론적으로 계시해 주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유대인들은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를 소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섯 번째 등장하는 발 시대가 언제 우리 앞에 올 것인가에 대한 그 시기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 나라들은 장차 이스라엘에게 결정적인 환난의 때를 가져다 줄 나라들로 유럽 지역을 무대로 강력한 세계적 열강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이 나라가 등장할 시대에는 세계가 '네 바람 시대'를 이루는 열강 시대를 형성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무엇보다도 1948년에 성취된 이스라엘의 회복이야말로 그 어떤 징조보다도 인류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하는 성경적 증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곧 오십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날을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적같이 맞이할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그 날을 바라보고 그 날에 소망을 두며 그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3 \ 1:1-3

(7) '70 이레'로 보여 주신 마지막 때
(요한계시록1:1-3)

다니엘서는 요한계시록과 함께 인류의 종말을 연구하는 일에 결코 등한히 하면 안 되는 성경입니다. 그 이유는 다니엘서는 인류의 종말에 유대인들에게 있을 종말의 시기와 그 때 이뤄질 메시야 왕국에 대한 예언을 계시해 주신 성경이기 때문입니다.

1. '70 이레'의 종말론적 의미
그러면 여기서 오늘 말씀의 주제가 되는 단9:24-27절까지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24절부터 27절까지로 나와 있습니다. 해석하는 일에 편의상 각 절별로 네 구분으로 나누어 해석하도록 하겠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 말씀은 이 계시가 바로 다니엘의 백성인 유대인들과 다니엘의 고향이며 유대인들의 고국인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을 위한 종말적 계시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음에 '70 이레로 기한을 정했다'고 하셨습니다. 이 기한은 유대인들이 원하는 그들의 구원과 메시야 왕국이 성취될 시기를 밝혀 주신 예언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70 이레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의 구원의 시기가 있습니다. 그 때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되므로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에 시기에 이르면 유대인들은 그들의 허물의 시기가 끝나게 됩니다. 죄도 끝납니다. 죄악이 영원히 속해 집니다. 영원한 의가 그들에게 돌아갑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하나님의 이상과 예언이 이 때 모두 이루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메시야 왕국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거룩한 자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그 분이 천년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그의 모든 백성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25절부터 27절까지는 70 이레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경로와 그 간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62 이레가 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70 이레의 출발점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니 14 \ 1:1-3

엘은 7장의 계시를 주전 537년경에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맞을 메시야 왕국이 70 이레에 이를 때에 성취된다는 계시를 보여 주시면서 그 70 이레의 역사적 출발점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기는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까? 느1:3절 말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기서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느헤미야가 왕에게 아뢰게 되는데 이 시기가 아닥사스다 왕 20년이라고 했습니다. 이 해는 주전으로 기산 하면 445년경을 가리킵니다. 다니엘이 이 계시를 받기 100년이 조금 안 된 시점인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이 같은 중건령이 날 때로부터 7 이레와 62 이레가 지나서 69 이레가 되면 그 때 기름 음 받은 자가 일어나며 또 그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69 이레는 483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예수님의 초림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주전 445년부터 시작해서 483년이 지나면 기름 부음 받는 자이신 예수님이 일어나며 곧 끊어져 없어질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끊어져 없어진다는 말은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신 사건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6절에 나오는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온다'는 예언 때문에 많은 논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이 70년대에 역사적으로 있었던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침공 당한 그 사건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장차'라고 하는 역사적 긴 기간이 지난 후, 인류의 종말에 한 왕이라고 표현한 적 그리스도에 의해 실제로 예루살렘이 점령당하고 유대인들이 종교적 핍박과 환난을 당할 일에 대한 예언인 것입니다.
2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한 왕이란 존재는 적 그리스도이며 이 적 그리스도에 의해 중동의 평화를 위한 7년간의 평화조약을 이룰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1 이레의 언약이 있은 후, 7년이 지나면 이스라엘이 고대하는 메시야가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며 메시야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는 어느 모로 보든지 인류의 최종말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러 가지 성경적 징조를 통해서 분명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눅21:28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지금 이런 일들이 우리들 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일어나 머리를 들고 주의 재림에 크나큰 소망을 두고 그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5 \ 1:4-6

(8) 충성된 증인
(요한계시록1:4-6)

요한은 이 편지의 서두에서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성삼위 이름으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축도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축도에서 요한은 성삼위를 표현함에 있어서 제각기 특색 있는 모습으로 나타냄으로 성삼위의 각기 인격의 독립성과 그 특이성을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이 계시를 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충성된 증인'이란 말로 그가 이루신 사역에 대해서 언급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내는 축도
요한은 편지 서두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축도를 보내면서 성부 하나님께 대해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했으며, 성령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고 했으며, 성자 하나님께 대해서는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① 성부 하나님께 대해서 "이제도 계시고"라고 하신 말씀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만물을 주관하시는 만물의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낸 말입니다. "전에도 계시고"란 역시, 같은 뜻으로 해석되는데 이 전에란 시한은 무한한 시간으로 인간이 계산할 수 없는 영원한 태초를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② 다음에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일곱이란 수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안식의 숫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곧 성령을 의미하며 이 성령은 성경에서 성부 하나님이나 성자 하나님과 선재성과 거룩하심에 있어서 동일하신 분이시며 또한 창조주이심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③ 다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에 대해서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충성된 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일곱 교회에 보내는 서신으로 쓰면서 예수님을 충성된 증인이라고 부른 것은 주님이 이 땅위에서 이루신 그의 사역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① 예수님이 충성된 증인이란 칭호를 듣게 되신 일은 그가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기 때문입니다. 하늘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 16 \ 1:4-6

신 것입니다. 만물의 창조주께서 그가 만드신 피조물 중에서도 하나님을 대적한 불순종의 죄인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② 예수님에게 충성된 종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그가 온전히 아버지의 뜻만을 따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살아가시는 생애 중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일을 그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의 원대로 하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는 생활을 그의 삶의 지표로 삼으셨습니다(요5:30). 증인이란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해도 안되거니와 자신의 생각에 의해 움직여도 안 되는 것입니다.

3.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생애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요20:21절에서 이 일에 대하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보내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들이기 때문에 그 분의 인정을 받으려면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① 우리는 증인의 사명을 가진 사람들로 과연 누구의 증인인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증인으로 오셨습니다. 그 증인된 사명을 잘 수행하시어 충성된 증인으로 불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을 통해서 아버지의 증인으로서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고 명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1:8).
③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일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증인들이 받을 영광의 고난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마5:11-12).
결론 : 요한이 이 계시를 받아 편지로 써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것은 오늘 이 시간 우리 교회에 보낸 편지로 지금 이 편지를 일곱 교회의 사자 격인 제가 여러분에게 읽어 드리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충성된 증인으로 그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시어 하늘의 가장 높으신 자리에 오르신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의 신실한 종, 충성된 증인이 되어 주님이 오시는 날, 그를 맞이하며 그의 그 놀라운 영광의 자리에 함께 앉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7 \ 1:4-6

(9)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일
(요한계시록1:4-6)

사도 요한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종말적인 계시를 본격적으로 보여 주기 전, 성삼위의 이름으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원하고는 곧 이어 이 계시를 주신 예수님에게 영광과 능력을 찬미하는 송영을 보내고 있습니다.

1.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신 예수님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사역은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인간이 죄를 범하여 죄의 굴레에서 종노릇하기 시작한 시초부터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창3:15절에서 하나님은 뱀에게 선언하신 말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신 것은 인류에게 사탄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메시야에 대한 최초의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죄로 멸망을 선언 받은 모든 인류들에게 그 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게 하시므로 그 피로 속죄의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를 믿음으로 그 혜택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예정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시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시켜 주신 일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5절 끝에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되지 않으면 풀릴 수 없는 오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나의 죄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당신의 생명을 버리셨다면 그 사랑이야말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사랑인 것입니까? 예수님은 요15:13절에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3) 우리를 해방하신 우리의 죄란 무엇입니까? 요일3:8절에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귀에 속했다는 말은 마귀와 동류로써 그 운명이 마귀와 함께 된다는 뜻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죄인들은 마귀를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 18 \ 1:4-6

자를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선언을 내리신 것입니다(마25:41).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들을 마귀가 들어갈 그 무서운 영영한 불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그것도 값진 대가를 치르시고 그 일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니셨다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는 송영을 힘있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써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2.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예수님
예수님이 그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하신 후, 그것으로 끝마친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 이루신 일은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1)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셔서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이 백성들을 그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우리들 속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왕권을 가지고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그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2)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직분을 말합니다. 누구든 제사장의 직분 자가 아니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말씀하시는 제사장이란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뤘다'는 말씀과 함께 성소의 휘장이 찢겨졌습니다. 지성소에는 아무라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의 죄를 위해 송아지의 피로 제물을 삼고 백성들의 죄를 위해 염소의 피로 제물을 삼아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아니면 그 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소의 휘장이 찢겨지므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이 열린 것입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새로운 길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직분을 가진 사람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결론 : 그리스도의 피는 권세 있고 능력 있는 피입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피를 우리를 위해 흘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피로 인하여 우리의 죄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 앞에 나라와 제사장의 직분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증거입니다.

19 \ 1:7-8

(10) 주 재림의 선언
(요한계시록1:7-8)

오늘 본문 7절에 나오는 말씀은 주 재림을 선언하는 첫 번째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의 제목은 '주의 재림'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주의 재림을 다룬 성경입니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70이레 사건' 중, 마지막 '한 이레의 사건'을 계시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해석 범위를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한 이레 기간에 국한해야 합니다. 만약 그 범위를 넘으면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적 해석이 되지 않고 상징적 해석이 되어 버립니다.

1.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이 계시를 받은 요한은 주님이 오시는 모습과 그가 오셨을 때 그를 맞이하는 인류들의 모습을 심각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볼지어다'란 말은 '그때 볼 수 있을 것이다'란 뜻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인류들은 주의 재림에 관심이 있건 없건 그가 오시는 그 날,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예수님은 이 구름에 대하여 직접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26:64절에서 그의 재림 시 타고 오실 구름에 대하여 ' . . .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주의 엄위하신 모습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심으로 그가 곧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살후1:7절 말씀에서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마24:27절에서는 '번개가 번쩍임 같이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모두 주님의 재림 시에 있을 그의 영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2) 다음에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각인의 눈이라고 말한 표현은 모든 인류가 당할 환난과 고통을 의미해 주는 말로 실제로 모든 사람의 눈이 주의 재림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의 눈으로 직접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육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구약 슥12:10절 말씀을 보면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란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20 \ 1:7-8

예수님이 재림하실 장소도 이미 비밀이 아닙니다. 성경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슥14:4절에서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태어나실 곳에 대하여 '베들레헴'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2. 애곡할 무리
예수님의 재림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재림으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이 애곡하는 무리 중에 들어갈 것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무리는 누구를 말합니까? 한 마디로 모든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6장에는 이 모든 족속에 대한 해석이 더욱 명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라고 밝혀 주고 있습니다(계6:15).
이들은 모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심판의 대상자들에게 적 그리스도를 통해서 짐승의 표, 666 표를 받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종말에 적 그리스도를 등장시켜 그와 그의 우상에게 경배케 하여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성경에서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굉장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살전 4장에서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 지구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초토화되기 직전 최종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힘입어 하늘로 끌러 올려 그 곳에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결론 : 요한은 7절에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자요 전능한 자라'고 말씀하시므로 주의 재림의 확실성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는 종말에 관한 예언의 징조가 거의 모두 성취되어 가고 있는 그런 시점입니다. 이 시점에서 지금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요 깨어 있어 기도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에 우리의 온 정성을 다 기우려 신앙생활에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1 \ 1:9-11

(11) 주의 날과 참 안식
(요한계시록1:9-11)

'주의 날'이란 말이 본문에 나옵니다. 이 주의 날이 어떤 날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주의 이레 중, 한 날을 가리키는 '주의 날'이란 말은 성경 전체 중, 본문 한 곳에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주의 날이라고만 했을 뿐, 이 날에 관하여 더 구체적인 내용이나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이 날이 율법에 명시된 안식일이 아니라 안식 후 다음 날에 해당하는 날이란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날은 주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부활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가리켜 '주의 날'이라고 말했으며 그 날에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주의 날
요한이 10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였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주의 날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를 드렸던가 아니면 특별한 기도를 드렸던가 여하튼 다른 날과는 어떤 구별 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주의 날에 관한 성경적 증거를 찾아보면 행20:7절에서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날은 바로 안식 후 첫 번째 날로 일요일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떡을 뗐다는 말은 주의 성만찬을 가리키는 것으로 곧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함께 교회의 행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고전16:2절에 나와 있는 말씀에도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율법에 관하여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셨는가에 대하여 그가 하신 말씀을 통해서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고 하셨습니다(마5:17). 예수님은 땅위의 지성소를 하늘로 옮기시므로 율법을 완전케 하셨습니다(히9:23).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들이시므로 양을 잡아 희생을 드리는 구약적 제사를 완전히 이루시어 제사 제도를 폐하셨습니다.

2. 율법과 안식일
안식일은 순전히 율법에 속한 날입니다. 안식에 대한 첫 언급은 창세기 2장에 나옵니다. 이곳에 나오는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 나오는 안식은 22 \ 1:9-11

결코 인간들이 지켜야 할 안식일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날에 대하여 모세가 받은 율법 이전의 시대에서는 이 하나님의 안식을 사람이 지킨 사실이 전혀 없었다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에게도 이 안식일에 대한 아무런 약속도 주신 일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유월절의 경우에도 안식일이 전혀 개입된 일이 없습니다.

3. 안식일은 왜 없어져야 하는 것인가?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십계명과 연결시켜 이 안식일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십계명 중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넷째부터 열 번째까지는 사람들에 관한 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도덕적 계명으로 영원히 불변하는 하나님의 계명으로 보지만 제 4계명인 안식일의 계명은 도덕적인 계명인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율법적 계명으로 성도들의 참 안식에 관한 그림자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안식일을 지키는 일에 관하여는 성경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을 분명히 교훈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는 말씀을 우리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골2:14-17). 예수님은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제 안식일을 지키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복음을 거역하는 일이며 그림자로 돌아가려는 비 신앙적인 행위로 바울에 의하여 '다른 복음'으로 정죄받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과 함께 장래 일의 그림자로 이미 폐해졌습니다. 그 그림자의 실체가 드러나서 안식일의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이처럼 주의 날에 하나님께 경배 드리며 기도하는 중에 이 놀라운 계시를 받았습니다. 요한이 주의 날에 이 계시를 받았다는데 큰 의미가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계시를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다 이 그리스도의 참 안식에 참여할 수 있다는 언약이 되기 때문입니다.


23 \ 1:9-11

(12) 요한의 참 형제
(요한계시록1:9-11)

요한은 9절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형제라고 지칭한 대상은 요한의 편지를 읽고 듣고 지킬 모든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왜 요한은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 형제'란 말로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원래가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머리에 붙은 지체들입니다. 그리고 이 머리와 지체가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체들은 어떤 위치에 있건 어떤 직분을 가졌건 동일합니다. 그 하나 하나가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 형제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1. 교회의 지체가 되는 모든 성도들
교회란 말은 사람의 손으로 건축한 어떤 건물을 가리키는 낱말이 아닙니다. 예배하는 장소로 만들어진 건물은 예배 처소로 사용될 때에만 성전이라고 불려집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이처럼 한 몸을 이루는 몸의 지체는 한결같이 소중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존귀하다면 그 몸을 이루고 있는 각 지체 역시 존귀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체라고 표현한 말은 사람의 몸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하나의 비유입니다.
우리의 팔이나 발이 사고로 인해 혹 잘린다 해도 목숨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져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뇌의 지극히 작은 혈관이 파열된다면 반신불수가 되거나 뇌출혈로 목숨을 잃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지체보다 더 존귀하고 소중히 여기시어 그것을 보호하시고 그 지체의 직능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귀중하게 다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지체가 존재하고 있는 목적은 오직 한 가지 사실에 있습니다. 그것은 그 몸을 이루고 있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지체는 그 몸의 원활한 활동을 이루기 위해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지체가 죽으면 그 지체는 그 몸에 이로운 존재가 아니라 해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체는 그 지체대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에 지체의 사명은 빛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16절에서 밝혀 주신 말씀대로 그리스도 24 \ 1:9-11

인의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지체의 사명을 이룬다는 말은 의의 병기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롬6:13절에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체의 사명을 이룬다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의 기준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에 두는 생활을 뜻합니다. 고전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요한의 형제들
종말의 계시를 받고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그 내용을 편지로 보내면서 사도 요한은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야 요한의 참 형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은 여기서 참 형제의 자격을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 자격이 '예수의 환난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 축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땅위에서의 영화보다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누릴 그 축복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참는다는 말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히10: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인내가 없는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패배적인 생활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결론 : 종말에는 요한의 형제 된 그리스도인 들만이 세마포로 단장하여 신부의 자격을 가지고 신랑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그럭저럭 믿는 믿음의 생활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이 되어 요한의 참 형제가 되어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5 \ 1:12-20

(13) 주님의 영광
(요한계시록1:12-20)

사도 요한은 이 계시를 받으면서 계시자이신 어린양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위해 유배된 밧모섬에서 어느 주의 날에 깊은 기도 중, 성령에 감동하는 가운데 그의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 요한은 몸을 돌이켜 자기에게 말하는 음성을 알아보려고 할 때, 일곱 금촛대를 보게 되었는데 촛대 사이에 계시는 인자 같은 이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며 요한계시록에 어린 양으로 등장하시는 심판 주이십니다.

1.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인자
요한이 바라본 예수님은 바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셨습니다. 일곱 금 촛대란 20절에서 일곱 교회라고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1) 일곱 금촛대라고 하여 촛대를 교회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구약의 성전에서부터 유래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라고 명하셨을 때, 여러 가지 법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민8:1-4절 말씀을 보면 그 성막 안에 금으로 된 금 등잔을 만들어 그 곳에 항상 불을 켜 놓도록 명하셨습니다. 이 등불은 하나님의 성령을 상징하며 또 빛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해 줍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 시대에 와서 세상의 빛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해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왜 등불로 상징되느냐 하면 성령이 하나님의 교회에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성령이 임재하지 아니한 교회는 등불이 꺼진 교회로 어둠에 속한 교회, 음녀 교회로 전락한 교회인 것입니다. 이들 교회는 종말에 세상에 생명을 주지 못하고 영적 흑암 중에 버림받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2) 종말 교회는 촛대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환난 날의 교회를 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음녀 교회입니다. 배도 세력을 형성하여 적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입니다. 다른 하나는 촛대 교회입니다. 이 교회가 계12장에서 '해 입은 여자'로 등장하는 교회입니다.

2. 요한이 바라본 주님의 영광
이처럼 요한이 일곱 금 촛대를 보았을 때, 그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다니시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말한 '인자 같은 이'라고 한 대상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1) 요한이 바라본 주님의 영광은 먼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26 \ 1:12-20

띠셨다'고 했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이나 금띠는 모두 왕의 권위의 표현으로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입으신 왕복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2)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다'고 했습니다. 눈이나 양털은 성경에서 죄가 없는 순결을 의미해 줍니다. 이 같은 표현은 예수님의 지극히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주님과 같은 이 같은 흰옷을 입어야 합니다.
(3) '그의 눈은 불꽃같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불꽃같은 눈으로 온 세상을 살피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의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십니다. 시15:3절에서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4) '그의 발은 주석 같다'고 하셨습니다. 주석이란 그 어떤 것이라도 밟아서 짓눌러 버릴 수 있는 단단한 금속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발이 주석 같다고 하신 말씀은 그가 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나타내실 권세와 권능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5)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주님의 음성은 옛날 갈릴리 바다나 베다니 동리에 다니시면서 죄인들을 부르신 그런 다정한 음성이 아닙니다. 죄인을 심판하시는 심판주의 엄위에 찬 우렁찬 음성입니다.
(6) 그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이란 그의 말씀의 검으로,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권능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그의 입의 말씀이 심판의 검이 되어 인류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7) 그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이 힘있게 비취는 햇빛 같다고 하신 말씀은 주님의 영광을 말씀하시는 표현입니다. 그 날에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는 이 같은 주님의 얼굴을 바로 쳐다 볼 자가 없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시를 받는 중에 이런 주님의 영광을 친히 바라보고 혼절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17절에서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 영광을 보고 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주님은 죽은 자 같이 된 요한에게 다가가 그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주의 재림은 심판 받을 세상에는 엄위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시지만 그의 백성들에게는 자비하신 구주의 모습으로 보이시며 우리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27 \ 1:12-20

(14)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요한계시록2:1-7)

계시록 2장과 3장은 '이제 있는 일'에 속한 일곱 교회의 형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관한 계시를 본격적으로 보여 주시기에 앞서 일곱 교회 사자들에게 각기 자기가 속한 교회의 영적인 형편을 보여 주시므로 닥쳐 올 종말의 환난의 날에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한 책망과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1. 에베소 교회가 받은 칭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중 제일 먼저 등장한 교회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1)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신앙적인 결실이 많았습니다. 행위도 있었는데 주님은 그들의 행위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생활에는 수고도 있었습니다. 수고가 있었다는 말은 교회를 위한 헌신과 봉사를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네 인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인내가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내란 소망을 기다리는 일에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2) 다음에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치 아니한 일'에 대하여 칭찬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악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 용납하여 그대로 놔 둘 것이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악한 자라고 말하는 대상이란 범죄하고도 회개 할 줄 모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3) 그리고 에베소 교회는 '거짓 사도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밝혀 주는 거짓 사도들이란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나 거짓된 선생들을 의미합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거짓 선생들이 언제나 숨어 있습니다.
(4) 다음에 에베소 교회는 '주의 이름을 위해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듣고 있는 이런 칭찬은 지금 그들에게 있는 신앙의 열매인 것이 아니라 지난날 그들이 소유했던 열매였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5절에서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편지를 받고 있는 에베소 교회는 이런 좋은 신앙 생활과는 먼 거리에서 이런 은혜 생활을 다 잊어버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2.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
그러면 에베소 교회는 이처럼 놀랍게 칭찬을 들었던 그 열매를 어떻게 했기에 다만 '왕년'의 신앙으로 흔적만 남기고 지금은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신 28 \ 1:12-20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까?
(1) 그 이유는 '네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지난날 이 같은 좋은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뿌리가 있었습니다. 그 뿌리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처음 사랑'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지난날에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은 여러 가지 열매가 맺혀 있어서 그들에게 소망이 있었고 살아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그 처음 사랑을 버린 후, 이 같은 열매마저 다 사라져 버리고 끝내는 주님의 준엄한 견책을 듣기에 이른 것입니다.
(2) 그러면 에베소 교회가 버렸다고 하는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사랑입니까? 이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인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으로, 에베소 교회가 주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 주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었던 그 뜨거운 사랑, 자신의 생애를 희생하고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은 그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결실은 우리가 지켜야 할 이웃에 대한 사랑까지라도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주님이 나를 위해 희생하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으로 깨달아 그 사랑이 내 생애를 지배할 때 이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4)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은 주님이 누구이신가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지게 될 때 그리스도를 아는 그 지식 가운데서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게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명하셨습니다.
첫째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떨어진 원인이 반드시 있는 것입니다. 그 원인을 발견하는 일이 회개의 첫째 조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죄의 길에서 돌이켜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가졌을 그 때의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주님께 대한 사랑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허사이며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떠나자 그들에게서 모든 것이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회개하여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기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과실을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회개치 않는다면 교회의 촛대를 옮길 것이라고 경종하셨습니다.

29 \ 2:8-12

(15) 생명의 면류관을 약속 받은 서머나 교회
(요한계시록2:8-11)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로 등장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입니까? 그것은 서머나 교회는 종말에 있을 환난 날에 죽도록 충성하므로 이기는 교회가 될 것이기 때문에 심판을 이기고 부활을 보장받는 영광의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실상은 부요한 서머나 교회
서머나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은 일이 없습니다. 일곱 교회 중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만이 책망 받음이 없이 칭찬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교회는 모두 충성된 믿음으로 환난 날에 승리하는 보장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 사자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는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서머나 교회는 환난 중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교회입니다. 그들이 당하고 있는 환난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사도 요한은 이들의 환난을 종말에 있을 환난과 결부시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들의 당하는 환난은 믿음을 지키기 위한 영적인 시련에서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처럼 환난과 궁핍 가운데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부요한 자라고 하는 칭찬을 주신 것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부요를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하여 부요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의 경우, 하나님께 대하여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다음에 다른 또 하나의 부요는 하나님께 대한 부요입니다. 이 경우, 자신에 대해서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대하여는 풍성하게 기쁨과 감사함으로 바칩니다.
서머나 교회가 가졌던 부요는 물질적 부요가 아니라 영적 믿음의 부요였습니다. 그들이 비록 악조건 아래서 육신적으로는 어려운 환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환난과 궁핍이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부요를 가지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그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할수록 이러한 부요를 더 많이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부요를 가진 교회만이 종말에 서머나 교회에 닥쳐 올 그 무서운 십 일간의 환난을 승리할 수 있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30 \ 2:8-11

2. 장차 받을 십 일간의 환난

10절에서 말씀해 준 서머나 교회가 받을 십 일간의 환난은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환난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계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는 사탄의 회로부터 환난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 자칭 유대인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유대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칭이란 말은 자기 스스로 그렇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이들은 '사단의 회'고 했습니다. 사탄의 회란 사탄에 속한 모임이란 뜻입니다. 유대인이란 말은 이스라엘인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 선민(選民)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등장하는 자칭 유대인은 스스로 신의 선민이라고 자처하는 무리로 구약적인 유대인들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신은 사탄이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회'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종말에 등장할 '음녀 교회'를 상징합니다. 서머나 교회는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무리라고 자처하지만 실상인즉 사탄에 속한 무리에 의해 장차 신앙적인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피해를 입을 기간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정 기간뿐입니다. 그 기간을 십 일간이라고 밝혀 주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 기간 동안 잘 인내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십 일 동안 받을 환난은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무리인 황충이들로부터 받을 '첫째 화'를 가리킵니다. 10절에서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이 장차의 기간이란 장차 이 땅위에 임할 사건의 기간인 것입니다.
이 환난에 대하여 계7:14절에서는 '큰 환난'이란 말로 나와 있습니다. 이 시험은 사탄의 영이 들어간 거짓 형제들로부터 받게 됩니다. 이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악한 영이 들어간 거짓 형제들의 핍박과 유혹을 받게 되며 그리스도를 배신하도록 갖가지 시련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시련들은 또한 우리들 부모나 형제들로부터도 올 것입니다(눅21:17-19;마24:10-12).
결론 : 하나님의 교회는 장차 임할 이 같은 십 일간의 환난에 대처할 임전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5 개월 동안의 시험기간을 믿음으로 이기려면 서머나 교회처럼 죽도록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13). 이처럼 이기는 자는 결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 받아 영원한 천국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31 \ 2:12-17

(16) 니골라당의 교훈을 좇은 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2:12-17)

오늘 등장하는 버가모란 도시는 소아시아 지역에서도 로마 황제를 신으로 섬기고 예배하는 중심지였습니다. 산상에 신전을 세우고 그 곳에 '하나님의 아들, 세베스토스신'이라 조각했습니다. 또한 버가모는 마술의 본고장이요 '클레피우스'라는 뱀의 전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버가모는 마귀의 본거지처럼 우상 숭배가 극성맞은 곳이었으므로 주님으로부터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란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1. 버가모 교회가 받은 칭찬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나타나셨습니다. 왜 이 같은 모습으로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것입니까? 그들 중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나타났고 버가모 교회에서 이 같은 자들을 용납했기 때문입니다.
버가모 교회가 받은 칭찬은 대단했습니다. 순교의 자리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사실에 대하여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증거하신 대로 버가모에는 '안디바'라고 하는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이 있었습니다. '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안디바를 기름이 끊는 가마에 집어넣고 죽이는 과정에서 버가모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도록 강요했지만 바가모 교회 성도들은 안디바와 함께 죽을지언정 그리스도의 이름을 결코 배반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들이 이 같은 핍박 중에서 끝까지 승리한 비결은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아야 합니다. 시험의 때에도 그 이름을 굳게 잡아야 승리합니다. 환난의 날에도, 재앙의 날에도, 승리의 비결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는 일입니다.

2. 버가모 교회가 책망 받은 일
그러나 이 같은 버가모 교회가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받은 책망이란 그들 가운데 니골라 당과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동일시한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발람의 교훈은 구약적인 면에서, 니골라 당의 교훈은 신약적인 면에서 나타내신 말씀인데 결과적으로는 동일한 뜻을 가지고 있는 악한 누룩입니다.
(1) 발람의 교훈이란 발람이 우리에게 남겨 준 교훈을 말합니다. 발람이란 자는 명예와 탐심 때문에 참 신앙을 저버린 인물로 오늘날 교회에서 발람처럼 명예와 탐 32 \ 2:12-17

심으로 비 신앙적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발람은 하나님 앞에 거짓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분명히 알면서도 그 기도의 응답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발람의 기도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의도를 용납하지 않자 결국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음란한 방법을 발락에게 가르쳐 주었고 이스라엘은 그 함정에 빠져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었으며 이스라엘로 음행하는 죄를 범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의 간교한 미끼로 하나님의 백성을 타락시킨 발람의 경우를 '발람의 교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러면 니골라 당의 교훈은 어떤 것입니까? 이 니골라 당의 교훈은 초대 교회의 니골라 집사에 의해 창시된 이단으로, 인간의 구원에 있어 영적인 면만 중요시하고 육적인 면을 무시 한데서 나온 무 율법주의, 탈 율법주의적인 구원관을 말해 줍니다. 니골라는 인간의 구원은 영적이기 때문에 육체의 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해도 그것이 자신들의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것으로 교육을 받게 되어 발람처럼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켰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들어온 이 같은 발람의 교훈은 결과적으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의 생활을 세속화시켰습니다.

3.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경종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버가모 교회를 종말의 순교적인 교회로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1)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른 데서 얻어진 악의 열매에 대하여 철저히 회개해야 했습니다.
(2) '회개치 않으면 내 입의 검으로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내 입의 검이란 재림하시는 주님의 심판의 검을 말합니다.
결론 :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에 대하여 두 가지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고 또 하나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흰 돌은 다니엘서에 기록된 '온 세계에 가득한 돌'을 의미합니다. 이 돌은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에서의 생활을 말합니다. 곧 천년왕국에 대한 언약입니다(단2:34). 그런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은 받는 자만이 알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바로 천년왕국에서 불려질 우리의 새로운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이름을 그 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여러분들은 그 날에 버가모 교회에 약속하신 언약을 받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3 \ 2:18-29

(17) 이세벨을 용납한 두아디라 교회
(요한계시록2:18-29)

두아디라 교회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중 네 번째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모든 일에 칭찬을 들었지만 한 가지 일 때문에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로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종말에 등장하는 음녀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이 이 교회에 내리신 책망과 권고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1. 두아디라 교회가 받은 칭찬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에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눈이 불꽃같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심판주의 눈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이런 눈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에 아무라도 그 앞에서 감출 것이 없습니다. 이 같은 주님께는 위선이나 거짓이나 외식이나 변명 따위는 전혀 통할 수 없습니다.
또 '발이 주석 같다'고 했습니다. 이 발은 원수들을 짓밟는 심판주의 발을 말해 줍니다. 두아디라 교회에는 사람들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불꽃같은 주님의 눈에 찾으신 바 된 사탄의 깊은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도 에베소 교회처럼 많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19절에 나오는 이들의 칭찬을 열거하면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많은 사업을 경영했습니다. 물론 이 사업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아름다운 사업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사랑도 있었습니다.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섬김의 생활에도 능동적으로 잘 적응했습니다. 교회를 위한 봉사, 성도들을 위한 사랑의 헌신 등, 그들은 이런 섬김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몸을 바쳤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는 인내도 있었습니다. 인내는 모든 축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인내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본 받을 만한 일은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다'고 한 것입니다.

2. 두아디라 교회가 들은 책망
두아디라 교회는 많은 칭찬을 들었지만 반면에 호된 주님의 꾸중을 들었습니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사실에 대해 그 같은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종말 교회가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주님의 칭찬 들을 만한 열매를 많이 맺어도 만약 이세벨을 용납한다면 이 34 \ 2:18-29

런 열매는 한낱 물거품이 되며 오리려 책망을 듣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거짓 선지자 이세벨이 나타나 진리의 말씀을 흐리게 하며 하나님의 종들로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처한 교회는 이 이세벨의 등장에 관심을 가지고 이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해 주었습니다. 용납했다는 말은 그들이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을 용인해 주고 방조해 주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세벨를 따르는 무리를 한 형제로 받아 드렸다는 것입니다. 종말에 처한 교회는 자칭 선지자로 등장하여 성도들에게 쑥물을 먹이는 이세벨을 용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세벨이 교회에서 하는 몇 가지 요소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가 '내 종들을 꾀어 행음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꾄다는 말은 일종의 유혹인데 종말에는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진리의 복음을 버리고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다른 복음 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그 결과 꾐에 넘어간 하나님의 종들이 적그리스도와 행음하게 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음이란 영적 간음으로 신앙의 지조를 버리는 일을 말하며 우상의 제물이란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일로 얻을 수 있는 물건 매매의 혜택을 의미합니다(계13:17).

3. 회개치 않을 때 받을 형벌
주님은 이들 이세벨의 무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들은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 대한 심판을 세 가지로 구분해 경종해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라고 지적한 대상은 이세벨을 말합니다. 바로 음녀 교회의 지도층을 말합니다. 그들을 던진다고 하신 침상이란 죽음의 침상으로 그들이 당할 둘째 사망을 말합니다(사57:2;겔32:25;계17:16).
다음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에 대한 경종으로 만일 그들이 회개치 아니할 때는 그들을 큰 환난 가운데 던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큰 환난이란 후 3년 반의 대환난 기간을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망으로 그 자녀를 죽이신다'고 하신 그 자녀들이란 완전히 음녀환 된 교회를 말합니다.
결론 : 주님은 두아디라 교회에서 끝까지 진리를 지키는 성도들에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네게 있는 것이란 그들이 칭찬 받은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말합니다. 그들이 이처럼 끝까지 이기는 자의 자리를 지키면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35 \ 3:1-6

(18)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
(요한계시록3:1-6)

사데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하는 책망을 들은 교회입니다. 그들이 이 같은 책망을 듣게 된 이유는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 데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데 교회가 듣게 된 이 같은 책망은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씀한 야고보 사도의 경고와 한 맥이 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약2:26).

1. 사데 교회가 받은 책망
사데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함께 책망만 들었을 뿐 칭찬을 듣지 못한 교회 중에 하나입니다. 이미 주님으로부터 '죽은 자'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는 사데 교회에 칭찬 받을 조건이 있을 리 없습니다.
(1)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하여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다윗은 시69:5절에서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의 용서는 자신의 은밀한 죄를 하나님 앞에 숨기지 않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26).
(2) 사데 교회는 스스로 살았다는 이름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자기 자신들까지도 속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스스로 살았다고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 사데 교회가 회개해야 할 일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반드시 회개해야 했습니다. 사데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함께 종말 교회의 모형입니다. 교회는 많지만, 그리고 교인들의 수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영적으로 죽은 자리에 있는 것이 종말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행위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1) 사데 교회가 회개해야 할 방법에 대하여 주님은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일깨우란 말씀은 깨닫고 그 행위를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 36 \ 3:1-6

는 영적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적 생명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그루터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데 교회가 비록 죽은 자와 같은 자리에서 주님의 심한 견책을 받았지만 아직 절망적이 아닌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그에게는 새 생명으로 소생할 수 있는 '남은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지면 안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판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제 일깨운바 되었으면 그 남은 그루터기를 딛고 다시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데 교회가 회개해야 할 몇 가지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첫째로 회개하는 일에는 먼저 '어떻게 받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네가 받았다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벧후3:18절에서 이르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은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3) 다음에 회개하려면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들었다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참된 영적 생명의 양식입니다. 사데 교회가 '실상은 죽은 자'가 된 원인은 영적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간직하고 지키는 일에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4) 다음에 '지키어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과 회개한다는 말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지킨다는 말은 회개의 결과를 말하기 때문에 결과가 지키는 일로 나타나지 않는 회개는 실상인즉 회개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일깨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모처럼 주어진 회개의 기회를 상실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교회에 주님은 '도적같이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고 없는 주의 재림으로 이 때 이들은 회개할 기회도 없이 재림하시는 주님에 의해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한 보응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은 결국 영적 소경으로 계시된 시대적 징조를 전혀 깨닫지 못하게 되고 예언의 성취나 계시록의 내용에 대하여 아직 닫혀진 묵시가 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멸망의 날이 속히 올 것이란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사29:10-12;겔7:26).
결론 : 그러나 이런 사데 교회에도 순결한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얼마간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남겨 두셨기 때문입니다(롬11:4). 이들은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닐 것입니다. 이들은 주 재림의 날에 흰옷을 입은 무리 가운데 합류할 것입니다. 이들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닌다고 하신 말씀은 후 3년 반에서의 보호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축복을 의미합니다.
37 \ 3:7-13

(19) 인내의 말씀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
(요한계시록3:7-13)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함께 칭찬만 듣고 책망은 듣지 아니한 교회로 유명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종말 교회 중 이기는 교회의 표본으로 보여 주신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대단한 칭찬을 들었는데 특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는 칭찬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놀라운 약속을 받았습니다. 종말에 이런 주님의 약속을 받는 교회는 복이 있는 교회입니다. 그 약속이란 10절에 나오는 말씀인데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1.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칭찬
빌라델비아 교회는 두 가지 면에서 칭찬을 들었습니다. 하나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1)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고 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받은 능력을 적은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적은 능력이란 말은 특별히 부여하신 은사적인 능력인 것이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보편적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능력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동일하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와 순종의 생활에서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 적은 능력을 최대한으로 생활에 적용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결실을 가져온 것입니까? '내 말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은 귀신을 좇거나 병든 자를 일으키는 권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마7:22-13).
(2) 그들이 적은 능력을 가지고 행한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의 이름을 배반할 때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10:32).
(3) 다음에 그들이 받은 다른 하나의 칭찬은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히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적하고 있는 인내의 말씀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종말에 교회에 주시는 예언의 말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 38 \ 3:7-13

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인내를 말합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2.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축복
빌라델비아 교회는 종말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를 받을 대표적인 교회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이 교회에 대하여 몇 가지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1) 먼저 빌라델비아 교회를 핍박한 무리 중에서 얼마간 회개시켜 그들로 '네 발앞에 절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고난의 날에 음녀 교회에 속하여 그들을 핍박했던 자들입니다. 여기서 사탄의 회, 자칭 유대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무리는 이세벨의 교훈을 따른 음녀에 속한 무리를 말합니다.
(2)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종말에는 시험의 때가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했습니다.
(3) 여기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면케 해 주시겠다'고 하신 시험의 때란 후 3년 반 동안의 대 환난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은 바벨론 환 된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기간입니다. 그 초기에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는 재앙이 따릅니다.
(4) 이 기간에는 주님이 재림하시는 아마겟돈 전쟁이 있게 되고 그 후에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을 때, 큰 바벨론으로 변모된 이 세상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심판에서 그의 백성들을 지상에서 건지시기 위해 그의 천사들을 보내시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그의 택한 백성들을 모으시는데 이것이 그리스도인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시는 공중 휴거인 것입니다(마24:31).
그러므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언약하신 시험의 때를 면케 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은 곧 이 같은 모든 재앙이 쏟아지는 후 3년 반의 대 환난 기간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12장에서는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 :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속히 임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종말을 당한 교회들은 주님이 속히 임하신다고 하는 말씀을 명심하여 끝까지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39 \ 3:14-22

(20)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
(요한계시록3:14-22)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에 등장하는 세속환 된 교회의 모형입니다. 주님은 종말 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에 대하여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신 일이 있습니다(마18:8). 종말 교회 성도들의 믿음은 자기 자신에게는 부요한 믿음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주님은 곤고하고 가련한 믿음이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아멘'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참으로'란 뜻입니다. 진실과 충성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은 그의 참된 모습을 보여 주실 필요가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그 사명을 다 이루신 분입니다.

1. 라오디게아 교회가 책망 받은 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데 교회와 함께 칭찬을 받은 일은 한 가지도 없고 모두 책망뿐입니다. 그러나 그 책망 속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깃들여 있고 회개했을 때 그들이 받을 축복이 굉장히 크다는 사실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 주님은 그들에게 '네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웁다는 말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워진 심령을 말합니다. 마음과 정성과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입니다. 이 신앙은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에서 나옵니다. 반면에 차다는 말은 신앙적으로 냉담하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영적인 뜨거운 감각이 무뎌졌습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면서 옛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가장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는 교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주님은 이들에게 '더웁든지 차든지'하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비위를 건드렸습니다. 왜냐 하면 미지근하다는 말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한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분명한 선택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이런 결단이 희미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그들에게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선언하셨습니다.
(3) 주님은 이들에게 미지근한 생활을 계속하면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는 경종을 내리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함이 없이 그들의 신앙생활이 계속 미지근하여 열매 40 \ 3:14-22

를 맺지 못할 바엔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신 말씀은 어떤 징계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장차 무서운 환난 가운데 던져 넣어서 불같은 시련을 받게 하시어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하실 것이라는 경종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회개치 않고 그대로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한 일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4)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상태는 주님 보시기에 외식과 거짓과 교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고백하고 있었던 것처럼 부요했습니다. 성도들은 물질적인 축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사하고 집을 짓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너무나도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니 교회도 물량적으로 굉장한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야말로 종말 교회의 모습 그대로인 것입니다.

2.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
그런데 문제는 주님은 그렇게 인정해 주지 아니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1) 첫째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우리 주님 보시기에 너무나도 가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 부요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 부요는 그들의 재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자가 되는 부요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부요는 환난과 궁핍을 통해서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환난과 궁핍 중에서 신앙적인 연단을 받으므로 성장한 아름다운 믿음을 가리킵니다.
(2) 다음에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흰옷이란 의의 세마포 옷을 말합니다. 이 흰옷은 진실한 회개에서 얻을 수 있는 의의 옷입니다. (3) 다음에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밝았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것을 바라보는 눈은 어두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안약은 세상 재물에 소경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신령한 약인 것입니다(요9:39-41).
결론 : 라오디게아 교회는 종말에 세상에 범람할 교회의 모습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이 이런 교회를 선망하고 부러워할 것입니다. 종말 교회는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고 물량적인 외모에 만족하는 세속환 된 교회를 이룰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 같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많은 교회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신앙의 미몽 속에서 빨리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간곡한 부탁처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그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1 \ 4:1-3

(21) 하나님의 보좌
(요한계시록4:1-3)

요한계시록 4장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입니다. 이곳은 장차 될 일에 대하여 계획하고 집행하는 총 사령부가 되는 곳입니다. 앞으로 인류의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큰 환난이 옵니다. 이 세상이 심판을 받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어떤 특정한 국가나 통치자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록 4장에 등장하는 하늘의 총 사령부에서 계획하고 성취된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하늘에 열린 문
지금 사도 요한은 주님이 보내신 천사로부터 이 계시를 받으면서 장차 될 일에 대한 여러 가지 사건의 계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4장 초두에 '이 일 후에'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 같은 계시가 지나간 후에 요한이 새로운 다른 계시를 받게 된 상태를 보여 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일 후에'란 말을 교회 시대가 지나간 후로 주장하고 4장 이후에는 교회가 지상에 존재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장과 3장에 계시된 일곱 교회는 교회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요한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편지로 써서 보낸 아시아 지역의 교회를 말하며 종말론적 의미로서는 종말에 존재하는 모든 하나님의 교회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1)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하늘 문이 열려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 하늘 문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 눈을 열어 주신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새로운 계시를 받기 위해 이 열린 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문은 언제나 열려져 있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이 문에 대하여 몇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요10:1절 말씀을 보면 구원의 문이 있습니다. 말3:10절 말씀에는 '하늘 문'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문은 우리의 창고에 하늘에서 재물을 채워 주시는 문입니다.
다음에 예수님을 모시는 '마음의 문'이 있습니다. 이 문이 닫혀져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여는 비결은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일입니다.
(2) 요한에게 열린 문은 앞으로 이 땅위에 임할 심판 날의 이상을 보여 주신 '계시의 문'입니다. 요한은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은 주님이 요 한에게 들려주신 음성으로 주님은 요한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42 \ 4:1-3

그러면 왜 주님은 요한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입니까? 주님은 요한에게 이후에 새롭게 전개될 새로운 계시를 보여 주시기 위한 장소로 옮기시기 위해 '이리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보좌의 광경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보고 그 곳으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요한은 이 음성을 듣고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라 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에게 나타난 일은 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요한이 '곧 성령에 감동하였다'는 말은 요한이 곧 말씀 안에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1) 성령에 감동한 요한은 새롭게 옮겨진 계시의 장소에서 하늘에 베풀어진 보좌의 놀라운 광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보좌만 본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분명히 하늘에 보좌와 그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실체를 본 것이 아니라 보석으로 표현한 하나님의 영광만 그것도 계시로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2) 요한이 바라 본 하나님은 먼저 벽옥 같은 분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벽옥이란 푸른 빛이 나는 빛나는 옥으로 귀한 보석 중에 하나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표현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그의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말합니다.
(3) 다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홍보석 같다고 했습니다. 홍보석은 붉은 빛 색깔의 보석으로 이 보석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4) 다음에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고 했습니다. 무지개는 창 9장에서 홍수 심판 후에 노아에게 주셨던 언약의 증거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언약은 계시록 4장에 와서 그 뜻이 분명해졌는데 이 언약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신 하나님의 새 언약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언약에 대하여 마26:27절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주신 무지개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 세우실 새 언약에 대한 그림자로서 이 그림자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피로써 성취된 것입니다.
결론 : 예수님은 그의 피로써 우리에게 벽옥 같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움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이 하나님의 무지개 언약에 들어가게 되므로 하나님의 보좌에 둘린 녹보석의 무지개 언약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둘려진 무지개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한한 위로와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 녹보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소망을 두는 사람만이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43 \ 4:4-11

(22) 24장로와 네 생물
(요한계시록4:4-11)

하늘 보좌에는 하나님만이 홀로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영광스러운 보좌를 보았고 그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바라본 하나님의 영광을 인간 사회에서 사용하는 보석에 비유해서 나타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성을 벽옥으로 비유했고,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을 홍보석으로, 하나님의 생명의 언약을 녹보석으로 비유하므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성도들에 대한 자비를 나타내 보였습니다.

1. 24 장로의 역할
4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에 둘려 24 장로들이 제각기 자신의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24 장로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누구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분명한 해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의 맥을 따라 해석해 본다면 다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이들 24 장로들은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4란 수효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12사도들의 수효를 합산한 숫자로 이 수는 결과적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이들은 또한 장자들의 총회에서 선발된 천국 교회의 장로들로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12:23절을 보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장자들의 총회가 존재합니다. 이 총회는 하늘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천국 교회의 총본부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그러면서도 이들은 지금 하나님 보좌 주위에 그들의 보좌에 앉아 있는 실질적인 영물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은 하늘 보좌에 앉아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짐작하기 어렵지만 구원받은 성도들에 관한 모든 상급 관계를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24 장로들 중 하나가 요한에게 응답하고 있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계7:13-17). 말3:16절에는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2. 일곱 등불
요한은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을 보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44 \ 4:4-11

했습니다. 일곱 영이란 곧 성령을 말합니다. 성령이 등불로 나오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이란 수는 하나님의 안식을 의미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완전한 수를 의미합니다.

3. 네 생물
요한은 다음에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네 생물의 모양이 첫째는 사자 같고 둘째는 송아지 같고 셋째는 사람 같고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네 생물에는 각기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네 생물은 그들의 특징대로 표현한 사자나 송아지나 독수리나 사람처럼 생긴 생물들이 아닙니다. 이 같은 표현은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일하는 사역에 따른 표현으로 상징적 의미로 부쳐진 것입니다. 이 생물들은 에스겔서에 그 모양과 그 활동의 모습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겔1:5절과 겔10:20절에서는 이들에 대하여 '그룹'이란 이름을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이들 24 장로들과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네 생물에 대하여 8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찬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영적 피조물들이 하는 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영광을 돌리는 일 중에 가장 합당한 방법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입니다. 찬양이야말로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해 드리며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제물입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서 기도와 말씀을 듣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나 순종에는 대단히 게으를 때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이 받은 종말의 계시를 통해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기쁨과 두려움으로 바라보며 그를 영접할 수 있는 신부의 단장을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큰 유익을 주시는 말씀이며 우리는 마땅히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주 재림과 이 땅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굳게 가지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오늘 계시록 4장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땅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이상 더 자세한 하늘 보좌의 모습을 보거나 기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도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영광을 보았지만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는 말로 더 이상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고후12:4). 여러분들은 이 같은 하늘의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바라보면서 소망과 더 큰 기쁨을 가지시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45 \ 5:1-5

(23)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
(요한계시록5:1-5)

하늘 올라간 요한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이의 오른손에서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안팎으로 쓰여진 책이었는데 이 책을 뗄 수 없도록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때 한 천사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누가 이 책을 떼기에 합당하냐'는 음성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크게 울었습니다. 요한이 이처럼 울고 있을 때 장로 중에 하나가 나타나서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해 주면서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 사이에 서 계시는 어린양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1. 하늘 보좌에 있는 여러 책들
5장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입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잠깐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여러 책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는 먼저 생명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이 책이 비치된 일은 창세 전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들을 예정하셨을 때 이미 완성된 책이 바로 이 생명책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역사와 창조의 섭리는 바로 이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백성들에 대한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성경에서는 여러모로 밝혀 주고 있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보좌에는 행위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대하여 계20:12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게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책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부인할 수 없으며 거짓말이나 거짓된 증거도 통과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이 책에 기록된 그대로 그에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보좌에는 다른 또 하나의 책이 있는데 그 책이름이 기념책이라고 했습니다. 말3:16절에서 이 책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책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상급의 책입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어도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 46 \ 5:1-5

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행위가 이 책에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일곱 인으로 봉한 책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더 보여 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입니다. 이 책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책으로 예수님이 그 책을 인계 받으셨습니다..
(1) 이 책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다는 말은 하나님 외 이 책을 가질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굉장히 중요한 책이란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2) 이 책은 안팎으로 썼다고 했습니다. 안팎으로 쓴 책이란 일종의 두루말이 형식의 문서란 의미가 됩니다. 두루말이란 기름을 뺀 양가죽에 붓으로 쓰는 문서를 말합니다. 이 두루말이는 종이가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사용했던 종이 대용으로 중요한 문서를 이 같은 방법으로 기록하여 문서화시킨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처럼 길게 내려 쓴 두루말이에 안팎으로 써 있었다고 했습니다. 안팎으로 썼다는 말은 부족한 것이나 빠진 것이 없다는 뜻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또한 이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졌다고 했습니다. 일곱 인이란 하나님의 완전한 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의 권세로 완전하게 봉하셨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존재나 땅 위에 있는 존재나 아무도 이 인을 떼어 그 기록한 내용을 볼 수도 없고 변경시킬 수도 없고 그 내용대로 사건을 집행할 수도 없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심판의 책입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심판의 모든 비밀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인봉한 것을 뗄 시기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의 인봉을 뗄 자격자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책을 떼지 않으시고 그 책을 떼실 분을 이미 창세 전에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 분에 의해서 열려질 것입니다.
결론 : 이제 이 책을 떼실 분으로 어린 양이 하나님의 보좌 중심부에 등장하시게 됩니다. 바로 이 분에 의해 그 인이 떼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의 막이 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을 때, 그 때 일곱 인으로 봉함된 이 책의 일곱 인이 실제로 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요한을 통해서 장차 있을 이 같은 사건에 대한 계시를 우리에게 미리 보여 주신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언제인가 곧 그 인이 떼어질 날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비밀을 깨닫고 어린 양의 신부로서의 단장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신부의 준비에 게을리 하지 말고 그 날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7 \ 5:4-6

(24) 어린양의 등장
(요한계시록5:4-6)

하나님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진 중요한 책입니다. 이 책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종말적 심판에 관한 비밀이 기록되었을 뿐 아니라 이 책을 펼 수 있는 자격자에게 그 기록대로 낱낱이 심판을 내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을 두렵고 경이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요한의 귀에 한 천사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 왔습니다. 그 천사의 음성은 이러했습니다.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는 것입니다.

1. 요한의 울음
사도 요한은 힘있는 천사의 이 같은 큰 음성을 듣고 사면을 둘러보았습니다. 과연 이 인은 누가 떼며 이 책은 누가 펼 것인가? 아마도 요한의 눈은 이 봉해진 책을 뗄 수 있는 자격자가 누구일 것인가, 그를 찾으려고 순간적으로 온 천지를 살펴보았을 것입니다.
(1) 그런데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은 아무라도 펼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책을 누가 취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일곱 인으로 봉하신 책의 인을 누가 뗄 것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친히 한 분을 지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눈에는 바로 그 분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사실 그 분이 누구이신 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 이 책에는 사탄의 최종적인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의 최종적인 구원의 비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봉함된 채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 편에서 이긴 자가 나타나 그 봉함된 인봉을 떼어야 그 안에 기록된 내용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는데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고 한 것입니다.
이 증서를 떼어 그 증서를 펼 수 있는 자격자는 둘 뿐입니다. 하나는 죄인인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죄 값을 모두 갚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이었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내려오실 이유가 없으셨습니다.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인간의 친족이 나타나 우리 대신 우리의 죄 값을 갚아 주는 일입니다.
이 일도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죄가 없는 다른 친족(親族)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48 \ 5:4-6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을 뗄 이긴 자의 자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친족으로 오신 둘째 사람만이 합당합니다(고전15:47).
인간의 죄값을 갚은 사람만이 합당합니다(요일3:5).
율법의 의를 이루어 그를 믿는 자에게 그 의를 줄 수 있는 사람만이 합당합니다(롬3:24). 이 같은 자격을 가진 자라야 그 책을 펴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한 것인데 요한의 눈에는 그런 자격자가 보이지 않기로 크게 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이 때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하면서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장로는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뿌리란 다윗의 위를 이은 영원한 왕이란 뜻입니다. 이기는 자는 다윗의 뿌리라야 합니다. 왜냐 하면 다윗의 뿌리로 오시는 분만이 이미 메시야로 약속되어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사11:1-4). 여기서 이긴 자가 나타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할렐루야 !

2. 어린양의 등장
6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드디어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보좌 무대의 정면에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서 계시는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의 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요한은 어린양의 모습에 대하여 그 분이 어떻게 이긴 자이신 가를 증명하기 위하여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 같더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대속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으로 인간의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 이기신 자가 되셨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 눈에 대해서는 설명이 따르고 있습니다.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했습니다. 어린양의 일곱 눈은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결론 : 이제 하나님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을 떼실 자격자가 하나님의 보좌 무대 위에 등장하셨습니다. 요한의 큰 울음은 금새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탄의 최종적인 심판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원한 승리를 얻는 온전한 구원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일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할 수 없습니다.

49 \ 5:7-14

(25) 책을 취하신 어린양
(요한계시록5:7-14)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함된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계시를 바라보고 있는 사도 요한은 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요한의 이 큰 울음이야말로 온 인류의 울음이요 만물의 울음이라고 보겠습니다. 이제 어린양이 등장하시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는 모습이 나오며 이에 대한 모든 피조 세계의 만물들의 찬양이 우렁차게 들려 오는 것입니다.

1. 책을 취하시는 어린양
보좌에 그 모습을 나타내신 어린양은 드디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취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1) 이 책은 이기신 자만이 취하실 수 있습니다. 하늘에는 천천 만만의 천사들과 그들보다 더 권위 있는 네 생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이 책을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취할 수 있는 '이긴 자'가 없습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다'고 했습니다.
(2)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자가 되셨습니다. 이기신 자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셔야 할 신분을 가지시기 때문에 피조물이어서는 안됩니다. 피조물은 영광과 존귀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피조물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며 거룩하거나 의로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린양의 신분에 미달할 뿐 아니라 범죄 할 수 있는 신분임으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어린양이 이기셨다는 것은 그가 그의 백성들을 율법의 정죄에서 온전이 구원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우리의 죄 값을 갚으셨습니다. 죄값 은 사망인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사람 중 율법을 이룬 사람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가 이처럼 율법을 지키어 율법의 의를 온전히 이루신 일은 우리로 그 율법의 성취자가 될 수 있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에 있습니다. .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50 \ 5:7-14

2. 하늘의 찬송
이제 드디어 하늘의 찬송이 울려 나옵니다. 이런 영광의 찬송은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래 모든 만물의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분입니다.
어린양의 등장은 하늘 위에와 땅위에와 땅 아래의 모든 만물들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어린양이 등장하시고 곧 이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인봉된 책을 취하시매 순식간에 온 천하가 큰 기쁨으로 들떴습니다. 이제 사탄은 곧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망으로 기다려 온 온전한 구원이 이뤄질 것입니다. 이 땅위에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먼저 네 생물과 24 장로들의 새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이들은 어린 양 앞에 엎드렸는데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향은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양 앞에 엎드린 이들의 자세는 참된 경배의 겸손한 자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주로 시인하는 자세입니다.
이들의 손에는 또한 거문고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거문고란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하늘의 신비스러운 악기 중에 하나입니다. 이 금 대접은 성도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생활에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성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없으므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향이 가득했다는 말은 기도에 힘쓰는 생활을 말합니다.
네 생물과 장로들의 새 노래가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노래한 새 노래의 내용이 9절 이하에 나오는데 그 내용을 보면 어린양이야말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인봉한 책을 떼기에 합당하다고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천천 만만의 천사들이 부르는 찬송이 나옵니다. 이 천사들은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위치에 있습니다. 이들의 수효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한 것은 능히 헤아릴 수 없는 수다한 무리를 가리킨 표현입니다. 그들의 찬송의 요지는
다음에 하나님이 그의 영광을 위해 창조하신 우주 만물의 찬송이 나옵니다. 이들의 찬송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결론 : 이 같은 하늘의 광경은 참으로 경이롭고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이런 장면을 계시로 바라보는 우리는 우리도 그 곳에 올라가 이들의 이 같은 찬송에 함께 화답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다.



51 \ 6:1-2

(26) 흰말의 등장
(요한계시록6:1-2)

요한계시록은 6장부터 장차 될 일에 대한 계시로 들어갑니다. 6장은 5장에 등장하신 어린양이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취하신 일곱 인으로 봉함된 책을 한 인씩 개봉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는 네 말의 등장과 그 활동의 계시입니다. 다섯째 인은 순교자들의 호소이며 여섯째 인을 떼시는 것으로 주의 재림으로 인한 마지막 심판이 계시됩니다.

1. 흰말에 대한 여러 가지 주장
첫째부터 넷째 인까지의 진행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인류의 종말에 이 네 말이 등장하여 제각기 특징 어린 일을 전개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말론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이 네 말처럼 다양한 해석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이 첫째 인에 등장하는 흰말은 종말 계시의 첫 번째 계시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1) 많은 사람들은 이 흰말을 그리스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희다는 것은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흰말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일은 한편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계6:2절에 나오는 흰 말 탄 자의 면류관은 왕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 면류관을 받아쓰신 이가 예수님이 아니란 견해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왕관을 쓰신 분으로 계시되어야 합니다. 계19:12절을 보면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는 재림 예수가 쓰신 면류관에 대하여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면류관이 원어를 보면 '디아데마타'입니다. 이 '디아데마타'란 면류관은 성경에서 '왕관'을 의미합니다.
면류관이란 말이 헬라어에는 두 가지 낱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왕관으로서의 '디아데마타'이고 다른 하나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에게 상급으로 주시는 '스테파노스'란 이름의 면류관입니다.
(2) 그런데 이와는 전혀 상반된 해석을 내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흰말 탄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흰 색깔은 사탄의 위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 흰 말 탄 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이 '스테파노스'인 것은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란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라면 '디아데마타'를 쓰셔야 하는데 그 자가 '스테파노스'를 썼으니 예수님이 아니라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해석은, 요한계시록을 편파적으로 해석하는 세대주의 신학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사탄이나 52 \ 6:1-2

적그리스도가 쓰고 나오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똑같은 '디아데마타'임을 알아야 합니다.

2. 흰말의 정체
흰말의 정체를 알려면 요한계시록 전체의 세밀한 관찰이 필수적입니다. 계19장에서 흰말은 두 가지로 구분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의 경우는 계19:11절에서 '백마와 탄 자'로 그리스도의 경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은 이 하늘의 백마를 타고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백마가 이 경우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곳에 또 있습니다. 계19:14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를 따르는 하늘의 군대들이 있는데 그들이 하늘의 백마를 타고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군대들이 있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계6장의 흰말은 백마를 타고 예수님을 따른 하늘의 군대들과 연결되는 계시입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은 천사들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지상의 적그리스도의 군사들과 싸우는 하늘의 군대들이 될 수 없습니다.
다음에 흰말 탄 자는 면류관을 썼습니다. 이 면류관은 '스테파노스'라는 이름의 면류관입니다. 이 면류관은 옛날 올림픽 경기 때 우승자에게 씌운 월계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성경에서는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에게 약속된 하늘의 상급입니다. 이 같은 '스테파노스'의 상급은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적그리스도와 전쟁을 하다가(복음으로 싸우다가) 순교하는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받을 상급에 대하여 첫째 부활자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흰말은 바로 이들의 등장과 활동을 의미해 주는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첫째 인을 떼시는 일에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받아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하나님의 종들을 등장시키신 것입니까? 그것은 곧 나타날 무서운 대환난의 도래(到來)와 적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한 경종을 세상에 알리고 하나님의 교회로 회개케 하여 신부의 단장을 시키시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결론 : 이 흰말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들의 활동 기간이 1260일간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활동 개시는 7년 환난의 환산점(換算點)이 된다는 점에서, 지혜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들의 등장을 통해서 7년 환난에 이르렀다고 하는 시대의 징조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흰말이 언제인가 반드시 등장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53 \ 6:1-4

(27) 붉은 말의 등장
(요한계시록6:1-4)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함된 책의 인을 떼시면서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사건이 전개됩니다.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사건이 바로 네 말의 등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네 말 중 그 첫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흰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이 흰말의 모습이 지나가자 어린양은 두 번째 인을 떼시게 됩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인을 떼시자 이번에는 붉은 말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이 말은 흰말의 변신인 것이 아니라 '다른 붉은 말'이라고 했습니다.

1. 붉은 다른 말이 받은 사명
우리는 네 말의 정체에 대해서 언제나 그 말을 탄 자의 모습과 그들이 받은 사명을 통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1)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제하여 버릴 화평이란 인류의 평화를 말하며 이들에 의하여 이 화평이 제하여 버린다는 말은 이 땅에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을 의미하는데 그 주 세력이 이 붉은 말이 될 것임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2) 그러면 이 붉은 말의 종말적인 사명은 무엇입니까? 7년 환난 중에는 무섭고 놀랄만한 전쟁이 일어납니다. 온 세계가 핵무기의 피해로 폐허화되는 전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전쟁의 자세한 양상이 요한계시록 9장에 둘째 화의 이름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이름을 '유브라데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이 같은 이름은 유브라데 지역,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과 아랍권과의 지역적인 다툼, 심상치 않은 걸프만에서의 전쟁 위기의 여러 모습 등은 이 전쟁의 하나의 작은 모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 동원될 인원이 '2 만만' 곧 2억이라고 했으니 그 참가국의 규모와 전쟁의 양상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한 세계 인구의 피해에 대해서 '사람의 삼분의 일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전쟁이 반드시 있다고 성경에는 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전쟁의 발생 시기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그 년 월 일 시'에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벌써 그 년도는 말할 것도 없고 월일과 일어날 시간까지 작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류의 종말에 가서 바로 이 전쟁을 일으킬 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붉은 말'입니다.
(3) 이들은 '허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탄의 세력은 부단히 이 세상에서 화평
54 \ 6:1-4

을 제하며 재앙을 내리며 살상을 자행하며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지만 그러나 이런 일은 사탄이 자기 임의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붉은 말의 세력은 누구인가?
이 붉은 말은 인류의 종말에 가서 인류의 역사의 무대 위에 반드시 등장할 실질적인 존재입니다. 이처럼 적어도 세계의 화평을 깨뜨리고 세계 인구의 ⅓ 정도를 죽이는 전쟁을 일으킬 세력이라면 하루 이틀 사이에 등장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떤 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하실 때 그 나라를 멸망시킬 나라를 먼저 오래 전에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실 나라로 세우신 애굽이나 바벨론이다 앗수르 등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경우도 그러했습니다.
계7:1절 말씀을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고 계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전쟁의 모습과 이 전쟁을 일으킬 이들 네 바람의 전쟁 세력이 단11:40절에 나와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리니 북방 왕이 병거와 마병과 많은 배로 회리바람처럼 그에게 마주 와서 그 여러 나라에 들어가며 물이 넘침같이 지나갈 것이요'란 말씀이 있습니다. 이곳에 등장하여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은 네 나라로 나와 있습니다. 남방 왕과 북방 왕과 '그를 찌른다'고 한 '그'라는 존재로 이 자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열 뿔'인 열 개국의 연합국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라고 한 적그리스도를 찌른 '남방 왕'은 연맹체를 이룬 아랍 국가들을 가리키고 '북방 왕'은 겔38장에서 예언해 주는 대로 이스라엘로부터 극한 북방 땅에서 일어나는 '곡과 마곡'이란 나라로 지역적으로 '러시아' 권의 세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최종적인 승리자는 적그리스도가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 전쟁을 계기로 온 세계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그의 후 3년 반기간인 42 달간의 통치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어떤 환난이 와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종말에 일어날 여러 가지 징조들이 지금 우리들 눈앞에서 진행되면서 성취되어 가는 그런 긴박한 시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같은 시대적 징조를 분명히 바라보고 늘 깨어 있어 그 날을 준비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5 \ 6:5-6

(28) 검은 말의 등장
(요한계시록6:5-6)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둘째 인까지의 계시를 배웠습니다. 그의 백성들을 후 3년 반의 종말의 대환난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흰말을 등장시켜 회개의 복음을 증거케 하시는 첫째 인의 역사는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이 예언의 사명이 끝난 직후에 둘째 인을 떼실 때 붉은 다른 말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늘 셋째 인을 떼실 때 등장하는 말이 '검은 말'입니다. 그러면 이 검은 말은 무엇이며 이 검은 말은 종말에 등장하여 어떤 사역을 하는 존재인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검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검은 말은 그의 색깔이 말해 주는 바와 같이 온 인류에게 기근을 가져다주는 흉년과 굶주림을 의미합니다.
(1) 검은 말은 탄 자의 손에 저울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저울이란 우리 인간의 경제생활에 필요 불가결한 생활 기구입니다. 저울에 관하여 잠언에는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저울은 우리의 경제생활에 좋은 점도 있지만 반면에 속이는 저울로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어지럽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잠11:1).
(2) 이 말이 검은 말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계시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검은 말은 결국 인류들에게 흉년과 굶주림을 선사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사실을 그 색깔로부터 볼 수 있는 것입니다.
(3) 이 같은 사실은 6절에서 네 생물들 사이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통해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는 음성이 그것입니다. 이 음성은 장차 검은 말이 등장하였을 때 이 세상에 임할 기근의 재앙을 경종하는 하늘의 음성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들의 하루의 품삯입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식량은 밀로는 한 되요, 보리로는 석 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 같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게 된 것입니까? 왜 식량이 부족하여 세계적인 기근에 들어갔으며 경제가 혼란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까? 그것은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두 가지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는 두 증인의 예언으로 말미암은 재앙 때문입니다. 두 증인이 1260일간 예언할 동안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후 3년 반에 들어가자 발발하는 유브라데 전쟁의 재해로 인한 식량의 부족과 계속적인 가뭄으로 인한 극심한 기근에서 오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이 때 적그리스도는 이 같은 식량난의 위기를 구실로 삼아 '통제경제정책' 56 \ 6:5-6

을 강행할 것입니다. 온 세계 인류에게 적그리스도에 의해 식량뿐 아니라 일반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모두 엄격한 배급제가 실시 될 것이며 이런 적그리스도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체의 물건의 매매를 금지시킬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그런데 우리는 6절 하반 절에서 이상한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음성은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는 음성을 보낸 하늘의 음성과 함께 들려주고 있습니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1)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하셨는데 이 같은 계시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실제적인 감람유와 포도주의 수확에 피해를 내리지 말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밀이나 보리 같은 식량은 가뭄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데 양식도 아닌 감람유와 포도주의 생산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이론은 상식을 벗어난 해석입니다.
(2) 그러면 감람유의 경우, 무엇을 상징해 주는 표현입니까? 감람유는 감람나무에서 짜낸 기름을 말합니다. 이 기름은 성전 안에, 저녁부터 아침까지 항상 켜 놓는 등불의 기름으로 사용됩니다(출27:20-21). 그리고 이 기름은 곧 성령을 상징해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으러 나온 흰옷 입은 무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3) 다음에 포도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음행의 포도주는 변질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해 주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성령과 말씀으로 무장하여 신부의 단장을 마친 흰옷 입은 성도들을 의미하는 표현인 것입니다.
(4) 그런데 하나님은 이들에게 '해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종말에 이처럼 무서운 기근의 재앙의 날이 와서 모든 인류가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고 짐승의 표를 받아야 식량을 매매할 수 있는 그 어려움 속에서 이들을 건져내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재앙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 같은 피해를 유월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후 3년 반의 대환난에서 건져내셔서 예비처로 인도하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결론 : 장차 이 땅에는 검은 말이 등장합니다. 이 말이 등장하는 날, 모든 인류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기근과 핵전쟁의 여파로 찾아온 흉년 등으로 말할 수 없는 식량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여러분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고 하신 그 대상이 되시어 특별하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7 \ 6:7-8

(29) 청황색 말의 등장
(요한계시록6:7-8)

첫째 인부터 넷째 인까지는 네 말이 등장하여 제각기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네 말의 활동이 인류의 종말에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계시로 보아야 합니다. 이제 넷째 인을 떼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인으로 네 말의 활동은 모두 끝나게 되고 피 값의 신원을 호소하는 다섯째 인과 이 호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으로서의 주의 재림의 모습이 여섯째 인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1. 청황색 말의 정체
계6장에 나오는 네 말과 스가랴서에 나오는 네 말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네 말을 그런 식으로 해석한다면 종말 계시 해석에 큰 혼란이 오게 됩니다. 슥1장에 나오는 네 말, 슥6장에 나오는 네 말, 그리고 계6장에 나오는 네 말은 제각기 다른 사건을 나타내는 계시로써 서로 맥을 같이하는 계시가 아닙니다.
슥6장의 네 바람은 하늘의 천사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이룰 천사들인 것이 아니라 스가랴가 계시를 받았을 당시의 하나님에 의하여 쓰임 받은 영적 존재들임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등장하는 말은 청황색 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탄 자의 이름이 나왔는데 그 이름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따르는 것이 있는데 그가 음부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이 자는 놀라운 권세를 가졌는데 땅 ¼ 권세를 가지고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습니다. 이 괴이하고 두려운 청황색 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1) 그 색깔이 청황색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는 땅 ¼의 권세를 가지고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 죽이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2) 그런데 이 말을 탄 자의 이름이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이름에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 자는 인류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란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계13장에는 짐승의 표라고 하는 사망의 표가 나옵니다. 이 표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주는 표식'입니다(계13:15-17). 여기서 우리는 이 청황색 말 탄 자가 바로 온 인류에게 짐승의 표를 주어 사망으로 이끌어 갈 적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고 했습니다. 음부란 지옥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음부가 이 자의 뒤를 따르더라고 한 말은 이 자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음부 58 \ 6:7-8

의 신세를 진다는 뜻입니다.

2. 청황색 말의 권세
사망이란 이름을 가지고 온 인류를 음부로 안내하는 이 청황색 말의 권세는 대단합니다.
(1) 저희가 땅 ¼ 의 권세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저희'라고 부르는 복수형입니다. 저희란 표현은 이 자는 홀로 활동하는 존재가 아니란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땅 ¼ 중 하나의 존재는 청황색 말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로 더불어 권세를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며 사망의 활동을 할 '열 뿔'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2) ¼ 의 권세란 네 바람으로 상징된 4대 열강 중의 하나로 등장하는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종말에 이 자가 마흔 두 달 간 세계를 제패하지만 이 자의 권세는 ¼ 에 해당하는 네 바람 중에 하나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배경으로 계시된 말씀이 계17:1-13절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와 열 뿔과의 관계인 것입니다.
(3) 이 자가 '검과 흉년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습니다. 청황색 말인 적그리스도는 그가 가진 권세로 '검과 흉년과 땅의 짐승'을 통하여 자신을 따르는 자의 생명을 죽이고 음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권세로 내리는 재앙이 바로 '검'입니다. 검은 붉은 말과 한 맥으로 이 자가 땅에서 화평을 제하고 사람을 죽이는 전쟁과 살상을 의미합니다. 다음에 '흉년'이라고 했습니다. 흉년은 검은 말의 활동을 말합니다. 다음에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망'은 '엔 다나토' ( )로 70인 역에는 '온역'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4) 다음에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땅의 짐승이란 계13:11절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의 '파트너'를 말합니다. 이 짐승은 적그리스도와 손을 잡고 종말적인 사탄의 사역을 이루는데 주로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인류들로 적그리스도를 살아 있는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며 미혹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자에 대하여 '거짓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자는 사탄의 능력을 가지고 인류들로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게 합니다.
결론 : 청황색 말은 이처럼 심히 두려운 존재입니다. 이 자가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자의 사명은 모든 인류들로 짐승의 표를 받게 하여 음부로 안내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에는 이 자에 대한 경종의 계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경종에 귀를 기우려 그의 나타남과 그의 활동의 비밀을 알고 사탄의 미혹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59 \ 6:9-11

(30) 다섯째 인과 순교자들의 간구
(요한계시록6:9-11)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넷째 인까지의 사건을 통해서 종말에 등장할 네 말의 계시에 대한 말씀을 배웠습니다. 붉은 말은 전쟁을, 검은 말은 기근을, 청황색 말은 세상에 무서운 재앙을 가져오는 짐승임을 알았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하나님의 보좌 제단 아래서 하나님께 큰 소리로 간구하는 순교자들의 기도가 나옵니다.

1. 순교 성도의 등장
이제 네 말의 활동이 지나자 주님이 다섯째 인을 떼시면서, 종말 계시는 하늘 보좌로 옮겨지면서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늘에 있는 제단 아래 엎드려 피맺힌 간구를 드리는 순교자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순교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성경적 고찰이 필요합니다. 7년 환난 중에 나오는 순교자가 있습니다. 이들에 대하여 계11:7절에서 두 증인의 순교로 나옵니다. 이들 두 증인은 적그리스도와의 전쟁으로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주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나오는 순교자들은 두 증인의 순교자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순교한 성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절에서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에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처럼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하나님께 아뢰는 모습의 계시를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순교자들은 제단 아래서 간절하고 긴급한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기도의 제목은 자신들이 흘린 피에 대한 신원을 호소한 것입니다.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하는 간구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2. 동무 종들의 순교
제단 아래서 간구하는 순교자들의 기도에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졌습니다. 그 응답은 이러했습니다.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아직 잠깐 동안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로는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잠깐 쉬라'고 하신 말씀은 천국에 있는 성도들의 생활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쉰다는 말은 영적인 수면(睡眠)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이들 순교자들은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60 \ 6:9-11

하나님은 이들에게 주신 응답의 말씀 중에서 또 다른 순교자의 수효가 채워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순교자의 무리를 두 종류로 구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단 아래서 간구하고 있는 순교자의 무리는 7년 환난 전에 순교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은 이들과는 달리 7년 환난 중에 순교할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의 수효가 채워져야 순교자들의 피 값에 대한 하나님이 최종적인 심판이 이 땅위에 내려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누구인 것입니까? 요한계시록에는 환난 중에 순교할 성도들로 두 증인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증인이 계11:10절에서 '두 선지자'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별된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영적 이스라엘 중에서 뽑아 낸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과 같은 무리입니다(계7:3-4). 이들이 바로 그 수효를 채워져야 할 남은 순교자들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계11장에서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 당한 하나님의 종들로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를 채우는 자들'입니다. 7년 환난 중에 순교할 이들은 이처럼 두 증인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들은 첫째부활의 영광의 상급을 받고 중의 재림 때 하늘 군대로 아마겟돈에 내려와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섬멸할 것이며 곧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단 아래서 호소하는 순교자들의 간구에 이들 순교자들의 수효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계11장에서 이들의 순교자의 수효가 채워지면서 곧 후 3년 반에 이르게 되고 붉은 말의 활동으로 들어가면서 순교 성도들의 피 값을 신원하시는 심판이 둘째 화의 재앙으로부터 내려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론 : 과연 이들 두 증인들이 순교하게 되면서부터 이 땅위에는 둘째 화가 임하게 되고 후 3년 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순교자들의 피 값을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신원의 역사가 최후 심판으로 내려집니다. 이처럼 종말에 주의 재림을 전후한 순교자들의 등장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전 3년 반 동안 회개의 복음을 외치다가 그들의 사역이 끝나는 1260일 후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하게 됩니다. 이들의 순교와 함께 이 땅위에는 무서운 대환난이 쏟아져 내릴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대비하는 생활로 흰옷을 입고 신랑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61 \ 6:12-17

(31) 여섯째 인과 인류의 심판
(요한계시록6:12-17)

요한계시록은 '일곱 인의 계시', '일곱 나팔의 계시', '일곱 대접의 계시', '세 화의 계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의 계시'는 요한계시록 6장에만 나오는 종말 계시의 총론이 됩니다. '나팔의 계시'는 8장 이후부터 나오는데 이 나팔은 첫째 인부터 여섯째 인까지의 총론적인 계시를 환난의 모습으로 다시 보여 주시는 계시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섯째 인의 개봉으로 '피값의 신원'에 대한 순교자들의 호소를 들었습니다. 이 순교 성도들의 호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 까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후, 그들의 동무 종들이 11장에 등장하여 짐승에 의해 순교를 당하므로 피 값을 신원하실 수 있는 순교자의 수효가 모두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순교자의 피 값에 대한 신원의 응답을 내리실 차례가 된 것입니다.

1. 여섯째 인을 떼시다
이제 드디어 여섯째 인을 떼실 순서가 되었습니다. 여섯째 인은 '일곱째 대접 심판'을 가리키며 여섯 번째 대접 심판은 주님의 재림 사건입니다. 이 주님의 재림 직후에 다시 말하면 주님이 재림하시어 아마겟돈에서 짐승과 그의 군대를 섬멸하신 후, 공중으로 휴거된 지상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모임을 가질 때, 이 지상에 내려지는 불의 심판이 일곱째 대접 심판입니다. 일곱째 대접 심판이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2. 인류의 마지막 심판
두 증인들이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마치고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더불어 싸우는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므로 순교자의 수효가 채워졌습니다.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께 자신들의 피 값의 대한 신원을 호소한 순교자들에게 약속하시기를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에서 환난 중에 순교할 성도들의 수효가 채워져야 순교자들의 피 값을 신원하시는 마지막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신 그 심판을 내리실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양의 신부들이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이들 산부들은 지상에서 함께 공중으로 이끌어 올리심을 받는 휴거된 장소에서 만나게 되며 그 곳에서 모든 성도들이 재림하신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하늘로 끌어올리시는 목적은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리실 일곱째 대접 심판에서 이들을 건져내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62 \ 6:12-17

3. 인류의 마지막 심판
이제 여섯째 인을 떼실 차례가 되었습니다. 곧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실 시기가 된 것입니다. 이 심판으로 이 지상에 살아 남아 있던 모든 인류들이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므로 오른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은 모든 인류들이 이 여섯째 인으로 펼쳐지는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멸망을 받게 되며 이 후에는 공중 휴거로 하늘로 올리우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세워진 새로운 나라,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이 땅위에 전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첫째 큰 지진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이 지진에 대하여 계16:17절 이하에서 자세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총담이란 산양이나 약대 털로 짠 검은 천을 말합니다. 이 말은 큰 지진의 여파로 지구가 폭발할 때 생기는 화산진(火山塵)이 대기권으로 확산되면서 온 세상이 혼탁해진 현상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음에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늘의 별들이 땅에 떨어진다는 말은 그처럼 보였다는 표현입니다. 다음에 '하늘이 종이 축이 말리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운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말린다는 말은 이 같은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현상을 말합니다.
다음 본문 15절 이하에서는 이 같은 지구의 최종적인 심판의 날에 있을 인류의 애통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모습은 지구 최후의 날을 맞은 모든 인류들의 애통하는 모습으로 계시록18장을 축소시킨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각 종과 자주자 등의 계층은 전 인류를 포함시킨 것으로 이들이 이 같은 심판 날에 피신할 곳이 없어 심판의 두려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론 : 여러분, 이 세상에는 이 같은 인류 최후의 날이 머지않아 반드시 옵니다. 이 날에 주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한 모든 인류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응분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날에 과연 어느 곳에서 여러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까? 여러분의 모습이 불붙는 지상에서가 아니라 공중으로 휴거되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그 영광스러운 무리 중에 포함되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63 \ 7:1-3

(32) 결박 당한 땅 사방의 바람
(요한계시록7:1-3)

우리는 요한계시록6장에서 축소된 종말 계시의 전체적인 내용을 총론적으로 보았습니다. 여섯째 인의 개봉으로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인 일곱째 대접 심판의 두려운 계시도 보았습니다. 7장으로 넘어오면서 사도 요한은 새로운 계시를 보게 됩니다.

1. 땅의 사방의 바람
요한계시록7장은 종말론 해석에 있어서 난해 장(難解章) 중에 난해 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땅의 사방의 바람', '인 맞은 144,000명',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흰옷 입은 무리' 등등, 좀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계시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장이 7장입니다.
우리는 1절에서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네 천사'라는 존재와 '땅의 사방의 바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땅의 사방의 바람은 인류의 종말에 이 땅에서 전쟁을 일으킬 4대 열강의 세력을 가리키고 있으며 네 천사는 그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이 네 바람과 네 천사들의 실제적인 활동이 계9:14-15절에 등장합니다.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7:1절에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불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은 이들을 결박하여 활동할 수 없게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들은 장차 유브라데 전쟁을 일으킬 존재들인데 그 때가 이르기까지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유브라데에 결박해 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그들에 의해 전개되는 1260일간의 사역이 마쳐졌을 때, 계시록9장에서 계시해 주는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2. 인 침을 받을 '우리 하나님의 종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상징적 표현의 낱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같은 상징적 표현을 해석할 때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이 구분을 제대로 못하면 상징적이 아닌 계시가 상징적 계시가 되어 올바른 해석이 불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시기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네 천사가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 64 \ 7:1-3

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는 시기'에 이런 인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이마에 하나님의 인 침을 받는 대상자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3절에서 그 대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 대해서는 그 수효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 중에서 뽑은 인 맞은 자'의 수효에 대해서만 각 지파별로 12,000명이요 12 지파에서 인 침 받은 자에 대해 144,000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의 신분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 속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중에서 뽑아 낸 사람들로 이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와는 별개의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7장의 구별은 명확하고 분명합니다. 1절로 8절까지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침 받는 144,000명의 무리에 관한 계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른 모든 표현은 이들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드러내는 일에 필요로 하는 계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부터는 이들 144,000명의 무리의 계시는 이미 따 끝나고 다른 무리, 144,000명을 선발한 터전이 되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 속한 사람들에 관한 계시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8절까지는 하나님의 교회 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 계10:8절에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갖다 먹어 버린 종말적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계시가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9절부터는 계11장에서 두 증인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 환난 가운데서 나오는 흰옷 입은 무리의 계시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계시를 보여 주시는 것은 장차 이 땅에 무서운 대환난의 날이 올 때 준비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코 그 대환난 가운데 버림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호하신다는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계1: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계시록 7장을 올바로 해석해야 요한계시록 전체의 내용이 제대로 해석된다고 하는 사실을 명심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7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육적 이스라엘로 규정해 버리면 요한계시록은 육적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종말 계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 방법이 소위 세대주의 해석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성도들이나 주의 종이나 7장에 계시된 놀라운 축복의 반열에 설 수 있는 해 입은 여인의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65 \ 7:4-8

(33) 144.000의 하나님의 종들
(요한계시록7:4-8)

요한계시록 7장의 해석은 그 해석의 방향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총 수효'라는 것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해석 방법은 이들은 문맥 그대로 이스라엘의 12지파에 관한 것으로 육적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계시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해석 방법은 종말에 세계 모든 교회 중에서 종말적인 예언의 사명자로 뽑아 낸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해석의 차이는 해석하는 일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해석하는 각도에 따라 종말적인 사건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간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 문제에 크나큰 관심을 가지고 깊은 연구가 필요한 것입니다.

1. 144,000명에 대한 세 가지 견해
(1) 먼저 이들을 육적 유대인으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이 같은 신학적 해석은 소위 세대주의 신학에 의해 절대적 해석으로 주장하는 해석입니다. 이들은 교회 시대와 천년왕국 시대 중간에 '7년 대환난'이라고 하는 한 시대를 개입시켜 '교회 시대'와 '대환난 시대'를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또한 7년 대환난 기간은 유대인들의 회복기간으로, 유대인들의 회개를 위해 필요한 기간이며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7년 환난 전 공중 휴거설을 주장하는데 7년 환난 시대는 이미 교회 시대가 아니므로 교회는 마땅히 그 이전에 휴거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7장의 해석으로 144,000명에 대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 수효'라고 하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해석은 요한계시록을 상징적 해석으로 유도하는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144.000명은 실제적인 수효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수효로 구원받은 성도들의 수효라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오늘날 많은 보수주의적 신학자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는 주장입니다. 상징적 해석은 요한계시록을 종말론적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7년 환난 기간을 전 교회 시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해석은 결국 요한계시록 안에 등장하는 사건을 종말 시대에 일어날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교회사적(敎會史的) 견해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 계시된 144,000명의 정체
144,000명에 관한 계시를 올바르게 해석하는 일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해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우리는 세심한 성경적 관찰이 필요한 66 \ 7:4-8

것입니다. 144,000명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서 나오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들 144,000명에 대해서 이들의 자격 요건이 계14:4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자격을 볼 때 이들이 결코 육적 이스라엘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에는 12 지파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전부 혈통이 혼혈되어 사마리아 사람들이 된지 오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이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존재할 수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종말에 열 두 지파 중에서 동일하게 각 지파에서 1만 2천명씩 인을 받는다는 일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성경적 낱말의 의미가 새로워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스라엘의 개념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 시까지의 혈통적인 민족으로 필요했지만 이제 그의 태어나심과 그의 사역의 완성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의 성경적인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정립하게 된 것입니다.
①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롬2:28-29).
②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입니다(롬4:16).
③ 약속의 자녀라야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했습니다(롬9:8).
④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속하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갈3:26-29).
⑤ 우리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갈6:6).
⑥ 우리가 참 할례당이라고 했습니다(빌3:3).
이들이야말로 종말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인 것입니다. 그들의 이마에 인친 것은 그들에게 예언의 사명을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이 사명을 받아 권능을 받고 계11장에서 두 증인의 예언의 종으로 쓰임을 받을 것이며 계6장의 흰 말 탄 자가 되어 이기고 이기려는 싸움을 전개할 것입니다.
결론 : 요한계시록에서 144,000명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게 예언의 권능을 주시어 그의 백성들을 대환난에서 건져내시는 순교적인 사역자로 쓰시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들은 전 3년 반 기간 동안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적그리스도와 싸우다가 결국 순교하게 되며 첫째 부활자로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롯하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67 \ 7:9-14

(34) 흰옷 입은 큰 무리
(요한계시록7:9-14)

요한계시록을 종말론적 사건으로 보는 견해는 7장을 종말에 있을 환난날의 교회의 모습으로 봅니다. 종말론적 해석으로는 1절로 8절까지는 하나님의 교회 중에서 종말적 사명을 받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등장으로 보여 주며, 9절로 17절까지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처로 인도하심을 받는 교회의 모습, 곧 흰옷 입은 무리로 보는 것입니다.

1. 흰옷 입은 큰 무리
9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이 일 후에 내가 보니'란 말씀은 8절까지의 계시를 본 후에란 뜻입니다. 8절까지는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12.000 명씩 뽑아 낸 144,000 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계시가 전개되었고 9절부터는 전혀 새롭게 전개되는 계시를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1) 요한은 새롭게 전개되는 계시를 통해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나왔지만 흰옷 입은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2) 이들에 대하여 요한은 그가 본 계시에서 이들이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로 흰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전 3년 반 동안에 그 이마에 인 맞은 하나님의 종들의 예언의 사역으로 인해, 신부의 단장을 하게 되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 계시에 가장 적절한 성경적인 연결은 아마 마25장에서 열 처녀의 비유로 들려주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뽑아 낸 144,000 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 다시 예언하는 예언의 사역에 대하여 마25:6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이 음성은 주님의 재림 직전, 두 증인에 의해 외치는 예언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내용입니다. 주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회개하고 신부의 단장을 서두르라는 경종입니다. 이 경종을 듣고 슬기 있는 처녀들은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졸며 잠자던 자리에서 다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등을 준비한 것입니다. 이 등은 곧 회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등을 준비한 증거로 그들은 흰옷을 입었습니다. 등을 준비한다는 말은 꺼져가는 등불을 밝게 환히 비춘다는 뜻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밤중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등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등 68 \ 7:9-14

불이 꺼져가는 처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등불의 상태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3) 이들은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섰다'는 표현은 이들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이들의 신분에 대하여 14절에서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손에 들린 종려가지는 승리의 상징입니다.

2. 흰옷 입은 자들은 누구인가?
사도 요한은 이 같은 계시를 바라보았을 때에, 궁금한 것을 장로 중 하나에게 물었습니다. 이 물음은 먼저 장로로부터 나왔습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고 물어 왔습니다. 이에 요한은 심히 당황하면서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그 장로가 요한에게 이 계시의 뜻을 요한에게 자세히 풀이해 주었습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말해 준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신분으로 그 이마에 인 맞은 144,000명과 이들 흰옷 입은 무리와의 구별이 쉽게 풀려지는 것입니다. 이들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것이 아니라 큰 환난이라고 하는 첫째 화 중에서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환난이란 낱말을 두 가지 면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들에게 내려지는 환난이 있습니다. 이 환난에 대하여 계2:10절에서 10일 동안 받을 환난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환난은 마귀가 주는 교회의 시험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환난이 7년 환난 중 대환난 기간이라고 불리는 후 3년 반의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섯 달 동안의 황충이 화로 등장하는 교회의 큰 환난이 끝남과 동시에 이 세상은 대 재앙을 준비하여 이 땅위에 사정없이 쏟으시는 심판 기간이 시작되는데 이 기간이 후 3년 반인 것입니다.
결론 : 계7장은 장차 될 일의 서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의 백성들을 대환난 가운데서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역사를 통해서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주시고 이 예언의 사역을 통해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큰 무리를 이끌어 내어 대환난의 재앙의 날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마치신 후에 이 땅위에 재앙을 내리는 후 3년 반의 대환난 기간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의 백성들에 대한 모든 보호조치를 완전히 끝내시고 그의 백성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신 후,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참으로 감사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69 \ 7:15-17

(35) 환난 날의 교회와 피난처
(요한계시록7:15-17)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종말에 이루어질 사건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종말에 있을 주의 재림의 시기는 종말적인 무서운 환난이 동반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는 이 환난의 시기를 7년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단9:27;7:25;12:7;계11:25;12:6,13,14). 그러나 이 7년이라는 수치는 정확한 의미에서 7년을 의미해 주는 표현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기간의 신축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 개념은 '쯤'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400년간의 애굽에서의 종살이 연한도 실재로는 430년이었습니다(창15:13). 예레미야에게 예언하셨던 바벨론에서의 70년간의 포로 생활도 실제로는 더 오래되었습니다(단9:2). 공생애에 들어가신 예수님의 나이도 '30세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눅3:23).
이처럼 인류의 종말에 있을 대환난 시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는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특히 후 3년 반에서의 대환난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예비하신 피난처로 옮겨져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사실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와 소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1. 그들 위해 치실 하나님의 장막
지난 시간까지의 7장에 나타난 계시를 간단히 추린다면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역사가 끝난 후,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장로 중 하나가 요한에게 이르기를 이들에 대하여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일러주었습니다.
15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라고 말씀해 주심으로 흰옷 입은 무리가 세계 각국에서 나온 후, 그들의 그 이후의 동정(動靜)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에 들어간 것입니다.
계7:9절 이하에는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내려지는 큰 환난 기간에 그 가운데서 나오는 천문학적 수효의 흰옷 입은 무리의 계시가 계속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두 증인의 예언 사역에 의하여 지팡이 같은 갈대(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에 의하여 합격된 슬기 있는 신부들인 것입니다(마25:1-11;계11:1-3). 그러면 이들이, 그들이 당하는 큰 환난에서 이처럼 나오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계12:13,1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라고 했습니다. 이 양육 받는 곳이 교회를 위한 후 3년 반의 하나님의 양육처인 것입니다. 이 양육처에 대하여 혹은 보호처로, 혹은 예비처로, 혹은 장막으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15절 끝 부분에서 이르시기를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들 위란 환난 날에 하나님의 성전에 모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흰옷 입은 무리를 가리킵니다. 이들 위에 하나님께서 장막을 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장막은 흰옷 입은 무리가 후 3년 반에서의 환난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거처로써 하나님이 쳐주십니다. 계12: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하셨습니다.

2. 예비처에서의 하나님의 보호
교회가 인류의 종말에 있을 환난의 기간을 통과하느냐 아니면 통과하지 않느냐는 문제는 성도들의 큰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교회가 '큰 환난'이라고 부르는 환난의 시기를 통과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기간은 전 3년 반 끝 부분에 다섯 달 동안 있는 기간으로 적그리스도에 의해 흰옷 입은 하나님의 교회가 받을 핍박 기간입니다. 그러나 이 환난은 세상에 임하는 종말적인 대환난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환난입니다. 이 '큰 환난'은 흰옷 입은 무리만이 당하는 환난으로 영적인 환난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환난이 아닌 '대환난'이라는 환난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은 전 3년 반 기간이 지난 후, 이 땅에 임하는 환난으로 이 대환난은 후 3년 반 동안 내내 계속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대환난에서 건짐을 받는 것입니다. 이 환난을 '시험의 때'라고 하며 성경에서 종말적인 환난이라고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무서운 종말적인 대환난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해 장막을 치신다고 하셨는데 그 장막에서 어떤 보호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16절과 17절에서 몇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쳐주신 이 장막 안의 생활은 첫째로 '다시 주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주리지 않는다는 말은 굶주림을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목마름이란 물이 모자라 기갈로 목이 타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에 세 번째로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결론 :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 목자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대환난 중에 보호하심을 받을 하나님의 장막은 어린양이 목자가 되사 이 모든 재앙에서 친히 그의 백성들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장막은 대환난 날에 우리에게 이런 혜택을 줄 것입니다.

71 \ 8:1-5

(36) 금향로에 담긴 성도들의 기도
(요한계시록8:1-5)

8장에는 일곱 나팔 가운데 네 나팔의 계시가 나옵니다. 첫째 나팔부터 넷째 나팔까지의 계시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 네 나팔은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모든 사건의 역할을 담당할 두 세력의 등장과 그들의 활동으로 인한 세계적인 피해 상황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피해는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일곱 나팔의 전개를 보면 8장에서 첫째부터 넷째 나팔까지, 9장에서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 16장에서 일곱째 나팔, 이런 순으로 전개되어 나갑니다.

1. 일곱 째 인을 떼실 때
요한계시록 8장의 해석은 그 방향 잡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8장에 나와 있는 네 나팔은 7년 환난 이전에 있을 사건인지 환난 중에 있을 사건인지 구별하기가 애매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할 일은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사건은 세 가지 화로 전개되는데 그 세 가지 화 중 첫째와 둘째는 계시록 9장에 나오고 있으며 나머지 한 가지 화는 계시록 16장에 나오기 때문에 계시록 8장에 나오는 네 나팔은 화와 연결된 사건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화를 의미해 주는 사건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 시 동안쯤 고요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반 시 동안'이란 말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간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 심각한 계시를 받는 요한에게는 이 반 시 동안의 시간이 그에게 긴장감을 더하게 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2. 성도들의 기도와 일곱 나팔
일곱 나팔 사건과 성도들의 기도와는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담긴 향로에,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을 때,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는데 이 같은 일들은 종말의 심판을 의미해 주는 표현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올라가는가에 대한 기도의 전달 과정을 영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제단 곁에는 성도들의 기도를 담는 금향로가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요한의 계시는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드리는 기도가 헛된 곳으로 메아리쳐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금향로'에 담겨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면 금향로에는 두 가지 종류의 기도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72 \ 8:1-5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금향로에 많은 향을 받은 그 향이요 다른 하나는 금향로에 들어 있는 많은 향과 함께 그 금향로에 담겨지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있습니다. 금향로에 먼저 담겨진 기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견들이 많지만 어떤 유력한 신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하늘의 지성소에서 우리의 대언자로 기도해 주시는 주님의 중보 기도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올리는 기도는 주님의 중보 기도에 의해 하나님께 전달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나오는 향에 대하여 '많은 향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기도가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기도는 7년 환난이 있기 이전까지 성도들이 주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간구한 기도로 향연으로 그 금향로에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기도는 성도들의 기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는 계7:15절에서 첫째 화의 '큰 환난'을 만난 흰옷 입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기도하는 생활로 금향로에 주 재림과 심판의 응답의 양을 채운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들이란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가리킵니다. 4절 말씀을 보면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기도가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지자 금향로에 담겨진 성도들의 기도가 향연과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요한에게 금향로에 있는 성도들의 기도를 향연과 함께 하나님 앞에 있는 금단에 올려 보낸 후, 단 위에 있는 불을 그 금향로 안에 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이 금향로는 계15:6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긴 금 대접 일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금향로에 주의 재림을 대망하는 성도들의 기도가 어느 정도 채워졌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하루 속히 기도의 분량이 채워져 금향로의 향연이 그 기도와 함께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지금 우리는 주의 재림에 대한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됩니다. 주 재림을 대망하는 기도회라도 열고 집회를 선언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과 이 세상에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제단 곁에 있는 금향로에 채워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부지런히 기도하여 여러분의 기도가 금향로에 담길 기도의 양을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73 \ 8:6-9

(37) 둘째 천사와 둘째 천사의 나팔
(요한계시록8:6-9)

요한은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반 시 동안쯤 고요한 중에 제단 곁에 서서 성도들의 기도를 향으로 받는 천사의 모습을 보면서 그 금향로에 성도들의 기도의 분량이 다 채워지자 그 금향로가 보좌 앞 금단에 드려지면서 단위의 불을 담아다가 금향로를 땅에 쏟는 것으로 인류의 종말적인 환난이 내려지는 모습을 계시로 바라보았습니다.

1. 첫째 천사의 나팔
8장에 계시되는 네 나팔은 둘씩 둘로 구분되어 서로 다른 사건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 나팔은 이 세상에 대혁명 세력으로 등장하는 짐승에 의한 피해의 모습을 보여 주시며 셋째와 넷째 나팔은 음녀 세력으로 인한 영적 피해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마흔 두 달 동안 세상을 지배하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다른 하나는 이 세계를 큰 성 바벨론을 이루는 음녀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랬더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더라'고 했습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일어난 사건은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졌다'는 것입니다.
우박과 불은 세상에 화를 가져 올 거대한 혁명 세력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애굽에 재앙을 내릴 때, '우박의 내림과 불덩어리가 우박에 섞여 내림이 심히 맹렬했다'고 했습니다. 겔38:22절에서는 '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 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 한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 하리라'는 경종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떨어졌다'는 말은 장차 이 세상에 이 같은 무서운 재앙을 가져 올 한 인물이 등장 할 것이란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이런 심판을 내릴 존재로 짐승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계6:8절에서 청황색 말로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는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고 했는데 첫째 천사의 나팔은 이 같은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그로 인한 대환난의 역사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땅이나 수목이나 푸른 풀의 삼분의 일이란 지역은 적그리스도로 피해를 입는 전 세계적인 재앙을 가리킨 것입니다.
7년 환난의 주역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7년 동안에 일어날 환난을 나팔로 계시하는 일에 있어서 첫째 나팔을 불 때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74 \ 8:6-9

2. 둘째 천사의 나팔
본문 8절과 9절에는 둘째 천사의 나팔에서 오는 재앙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 지우매'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에는 큰 재앙이 내려졌는데 그 재앙에 대하여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고 했습니다.
첫째 나팔에 등장하는 세력은 '피 섞인 우박과 피'로 세상에 재앙을 내리는 혁명적 인물이라고 했는데 둘째 나팔은 '큰 산'이라고 했습니다. 산은 성경에서 나라를 상징합니다. 큰산이란 강력한 나라, 열국(列國)들이 모인 연맹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큰산에 대하여 '불붙는 큰 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큰산은 장차 이 세계를 불로 멸망시키는 세력을 의미합니다. 장차 이 땅에는 적그리스도를 도와 줄 큰 세력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열 뿔이라고도 하는 '열 나라'들입니다. 이 열 뿔은 과연 보통 산인 것이 아니라 '큰 산'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붙는 큰산으로 비유된 열 뿔은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더불어 세상에 그 뚜렷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 큰산은 단2장의 신상에 나오는 다섯 나라 중 다섯 번째 나라로 이 나라 끝에 가서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을 내려 칠 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 분에 의해 망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불붙는 큰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었다고 했습니다. 바다란 혼란한 세상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가장 혼란한 시기에 사탄의 능력과 권세와 보좌를 가지고 등장하여 이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이 큰산과 같은 괴물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온 세계가 살육과 살상으로 인해 피바다처럼 된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는다고 했습니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다는 것은 결과를 말한 것이고 바다 가운데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는다고 한 말은 그 원인이 되는 것으로 같은 재앙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진다고 했습니다. 배는 바다의 교통 수단입니다. 이 같은 피해는 온 세상의 교통 수단이 마비되어 발이 묶인 상태를 말합니다.
결론 :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적그리스도가 가시적(可視的)으로 세상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7년 환난 날에 이른 것은 아직 아닙니다. 적그리스도는 7년 환난 전에 일어나 중동 평화를 위한 한 이레의 언약을 이룰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곧 열 나라를 통합, 열 뿔을 형성하여 그들의 왕이 되므로 열 뿔을 거느리고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이 열 뿔의 등장이 둘째 천사의 나팔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셋째 나팔, 넷째 나팔을 불며 일곱째 나팔까지 진행될 것입니다.

75 \ 8:10-13

(38) 셋째 천사와 넷째 천사의 나팔
(요한계시록8:10-13)

일곱째 인을 개봉하는 사건이 일곱 나팔로 전개되면서 우리는 8장에서 지난 시간 첫째 나팔과 둘째 나팔의 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계시록에 등장하는 나팔 사건은 인류의 종말에 전개될 환난의 사건을 계시하신 것인데 그 첫째 나팔부터 둘째 나팔까지가 대적자인 적그리스도와 그를 도와 줄 열 뿔의 등장을 보여 준 것이며 오늘 배울 셋째 나팔과 넷째 나팔은 배도 세력인 음녀 교회의 등장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1. 셋째 천사의 나팔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1) 본문 11절에는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해답해 주고 있습니다. '이 별 이름은 쑥이라'고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별이란 낱말은 대개 교회의 사자의 경우(계1:20)와 사탄의 경우에 해당됩니다(계9:1). 그러므로 이곳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별에 대하여 자칫하면 사탄의 경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별 이름을 쑥이라고 명시해 주시므로 그 별이 사탄인 것이 아니라 사탄이 보낸 악한 사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이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키는 일입니다. 그 방법이 또한 악랄한데 그가 가지고 있는 악한 사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쑥물이 떨어지는 곳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됩니다. 사탄이 이처럼 교회를 타락시킬 때에는 반드시 타락한 하나님의 종들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변질된 복음으로 우리에게 쑥물을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변질된 복음은 어떤 모양으로 포장했건 사탄의 쑥물입니다. 안식교도 변질된 복음입니다. 몰몬교도 변질된 복음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도 변질된 복음입니다. 사탄의 증거는 인간의 지혜로 생각할 때는 그럴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비춰 볼 때 우리의 생명을 죽이는 쑥물인 것입니다.
(3) 지금 우리들 주변에는 이 같은 쑥물이 두 개의 큰 조류를 이루어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주교회'라고 하는 기독교 우상 종교 단체입니다. 이 교회는 중세기부터 음녀 교회의 총 본산으로 활동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의 존재는 세계의 모든 교회를 하나의 기구로 통합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교회 통합 운동 기구입니다. 이들 종교 기구들이 어떻게 하나의 음녀 교회 76 \ 8:10-13

의 통일된 모습을 보이면서 나타나느냐는 문제는 아직은 비밀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셋째 나팔이 불 때, 하늘에서 횃불같이 타는 큰 별로 상징된 쑥물인 적그리스도 사상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 샘에 떨어질 때 급속도로 하나의 거대한 통합체를 이루어 그들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온갖 종교 단체를 하나의 거대한 음녀 기구로 형성할 하나의 특출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계13:11절에서는 '새끼양'처럼 생겼지만 실인즉 '용'의 말을 하는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자에 대하여 성경은, 먼저 나온 짐승인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그를 메시야로 경배케 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사탄의 일꾼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자에 대하여 계19:20절에서 '거짓 선지자'란 이름을 부쳐주고 있습니다.

2. 넷째 천사의 나팔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넷째 천사의 나팔은 셋째 천사의 나팔과 연결된 계속적인 사건의 계시입니다. 그리고 이 넷째 나팔은 셋째 천사의 나팔로 인해 일어난 결과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1) 이 사건으로 '해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해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셋째 천사의 나팔이 부는 날, 이 쑥물이 강들의 삼분의 일과 물 샘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그 때,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급속도로 타락하여 쑥물로 더럽혀 질 것입니다.
(2) 이 나팔로 '달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달은 교회의 성도들을 비유적으로 상징한 말입니다. 이 같은 일로 인하여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고 했습니다. 낮은 교회를 말하고 밤은 세상을 말합니다. 사탄의 쑥물로 인한 교회의 세속화는 하나님의 교회의 삼분의 일이 이 쑥물로 오염되어 복음의 빛이 비췸이 없을 것입니다. 한편 세상도 어두움에 잠기게 되는데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존재하다가 이 빛이 어두워지니 밤도 함께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결론 : 13절에는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이 독수리는 공중에 날아가면서 큰 소리로 이르기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 소리를 인함이로다'고 했습니다. 8장에서는 넷째 나팔까지 불었지만 이 나팔로 인하여 앞으로 세 나팔이 더 불게 되는데 이 세 나팔은 '화'로 임할 것입니다. 다섯째 나팔이 첫째 화, 여섯째 나팔이 둘째 화, 일곱째 나팔이 셋째 화로 세상에 재앙을 내릴 것입니다. 이처럼 앞으로 세상에 내릴 세 화에 대한 독수리의 경종은 바로 두 증인이 계11장에서 1260일간 교회의 회개를 위해 외치는 예언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77 \ 9:1-3

(39)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이 떼
(요한계시록9:1-3)

우리는 7년 환난 중에 세 가지 화가 임한다는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화는 세 천사가 불 세 나팔로 인한 것이라고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외쳐대는 소리를 8장 말미에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계9장에서는 두 가지 화가 임하는데 그 하나가 황충이 화란 이름의 화인 것입니다. '황충이 화'란 무저갱에서 올라온 악령들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화로 이 화를 '첫째 화'라고 부릅니다.

1. 첫째 화의 동기
첫째 화는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일로 시작되는 종말적인 사건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무저갱을 여는 일로 이 땅에 임하는 화가 첫째 화가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 하나'는 무저갱의 열쇠를 가지고 무저갱을 열어 그 안에 갇혀 있는 악령의 무리를 이끌어낸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악령의 우두머리가 되는 사탄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별은 언제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것입니까? 우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계12:7절 이하에서 조심스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인류의 종말 어느 시기에 가면 하늘에서 영적 전쟁이 전개됩니다. 이 전쟁은 하늘의 공중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해 온 사탄의 세력과 하나님의 사자, 미가엘 천사장과의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사탄은 패하여 결국 그의 사자들과 더불어 지상으로 내어 쫓기게 됩니다. 이 자가 하늘에서 내어쫓기는 시점에서부터 지상에는 각가지 환난이 일어나며 재앙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어 쫓기자 그가 땅에서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란 계12:1절에 나오는 '해를 입은 한 여자'로 하나님의 교회를 말합니다. 이 핍박이 교회에 '큰 환난'을 주는 사탄의 모습입니다. 교회에 대한 이 같은 사탄의 최종적인 핍박이 첫째 화로 나오는 다섯째 나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받았다'는 말은 소유를 뜻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 열쇠를 가지신 분으로부터 잠깐동안 인수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무저갱이란 말은 헬라어로 '아뷔소스'입니다. 이 낱말의 뜻은 '깊이를 알 78 \ 9:1-3

수 없는 심연'이란 의미가 됩니다. 심연(深淵)이란 깊은 연못을 말하는데 이것은 헤아릴 길이 없이 넓은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이 장소는 벧후2:4절에서는 범죄한 천사들을 가두어 하나님의 심판의 날까지 지키게 하신 곳으로 나와 있으며 유1:6절에서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환난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가두신 흑암' 세계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무저갱 속에 갇혀 있었던 타락한 천사들이 첫째 화를 전후하여 전부 지상으로 올라와서 사탄의 지휘를 받아 교회를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핍박이 첫째 화로 불려집니다.

2. 무저갱을 연 결과
그런데 사탄이 이 무저갱을 열었을 때, 2절에서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큰 풀무의 연기란 많은 악령들의 수효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무저갱 속에 갇혀 있었던 악령들이란 사탄과 함께 하늘의 반역에 참여했다가 내어쫓긴 타락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3절 말씀을 보니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황충이란 메뚜기 떼들을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존재는 분명 악령일터인데 왜 황충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메뚜기 떼들이 무저갱에 존재할 리도 없고 메뚜기 떼들의 발생지가 무저갱일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황충이 떼들이 4절에 와서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명령을 받게 되는데 이런 황충이들의 활동 상으로 보아 이들은 분명 사람들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저갱 속에서 올라온 악령들이 땅위에 올라오매 그들이 곧 황충이가 되는 것입니까? 이 같은 표현은 악령들이 무저갱에서 지상에 올라와 곧바로 불신자들에게 들어가 그들로 인간 황충이 떼를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의 수하에 있었던 악령들과 무저갱에서 인류의 종말에 세상에 올라온 악령들이 한 무리가 되어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와 음녀 교회의 성도들에게 들어가 황충이 떼를 이루어게 교회를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이들이 받은 권세에 대하여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권세는 짐승을 따르지 않을 모든 사람들을 괴롭힐 사탄의 권세입니다. 진리에 서서 끝까지 적그리스도를 대적할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이들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우리는 종말에 진리에 어두워 미혹을 받아 이들 황충이 떼들 중에 하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이들 황충이 떼들과 싸울 수 있는 영적 무장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79 \ 9:4-12

(40) 첫째 화의 가해자
(요한계시록9:4-12)

요한계시록에는 세 가지 화가 있고 이 화는 7년 환난 중에 있을 종말적인 환난을 가리킵니다. 그 첫째 화가 다섯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일어나는 환난으로 이 환난을 '5개월 황충이 환난'이라고도 부릅니다. 황충이 떼들이 다섯 달 동안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환난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첫째 화는 누구에게 주는 피해이며 누가 받는 환난인가에 대한 해석이 매우 구구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내야 합니다.

1. 첫째 화의 가해자
첫째 화를 일으키는 가해자와 이들로부터 화를 당하는 피해자에 대해서는 본문에 계시된 말씀의 문맥을 통해서 쉽게 찾아 낼 수 있습니다.
(1) 가해자는 '황충이 떼들'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9장에 나오는 황충이들의 출처는 무저갱입니다. 이 황충이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악령 그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이 아닙니다. 악령은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매개체로 등장하는 존재가 바로 사탄의 미혹을 받은 인간들입니다. 이들은 무저갱의 사자로부터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첫째 화로 나오는 다섯째 나팔 사건입니다.
(2) 본문에는 이 황충이 떼들의 모양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을 위하여 예비된 말들 같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비유는 황충이 떼들의 조직력과 신속성을 의미합니다. 그 머리에 '금 면류관 같은 면류관을 썼다'고 했습니다. 금 면류관은 영광스러운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고 했습니다. 황충이 떼들의 모양이 사람의 얼굴 같이 나타나 있는 것은 그들이 악령의 모습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둔갑한 것을 의미합니다. 또 그들에게는 '사람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 황충이 떼들에게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사상을 보여 줍니다. 그들에게 이(齒)가 있는데 '그 이가 사자의 이 같다'고 했습니다. 사자의 이는 모든 동물들을 물어뜯고 씹어 먹는 날카롭고 무자비한 치아(齒牙)입니다.
또 그들에게는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날개가 있는데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들어가는 소리 같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 달 동안 사람들을 해치는 권세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 황충이 떼들의 사명은 '이마에 인 맞 80 \ 9:4-12

지 아니한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진리에서 떠나게 하고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게 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3) 이들 황충이 떼들에게 임금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11절에서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불루온이더라'고 했습니다. 아바돈이란 히브리말은 파괴란 뜻이며 아불루온이란 헬라 말은 파괴자란 뜻입니다. 이 말은 같은 뜻으로 이 자는 인류의 종말에 세상에 등장하여 인류의 생명과 인류의 역사를 파괴할 장본인이 될 인물임을 상징합니다. 이 자의 등장 모습이 계13:1절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한 짐승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황충이 환난의 시기
이 첫째 화 다음에 일어나는 사건이 13절부터 전개되는 여섯째 천사의 나팔로 이 나팔 사건이 곧 '둘째 화'로 불려지는 유브라데 전쟁으로 전개됩니다. 그런데 계시록 9장에는 첫째 화나 둘째 화에 대한 시기에 대해서는 계시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화로 불려지는 유브라데 전쟁은 계11:13절에서 '큰 지진'으로 나옵니다. 그것은 14절에서 이 큰 지진 사건을 둘째 화가 지나갔다는 말로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이 1260일간 종말적인 예언의 사역을 마치고 순교 당한 후, 하늘로 부활 승천하게 되며 그 때에 그 사건과 거의 동시에 '큰 지진'이 일어나는데 이 지진이 둘째 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 화는 전 3년 반인 1260일간의 예언사역이 마쳐지고 두 증인이 부활 승천하는 그 시점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전 3년 반이 끝나고 후 3년 반에 들어가는 바로 그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황충이 화의 기간은 5개월 동안입니다. 이 기간은 황충이들이 교회에 핍박을 가하는 전 3년 반의 종반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에 대하여 계12:13절에서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기간으로 계시해 주고 있으며 그 시기에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으로 날아가 후 3년 반의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황충이 환난의 기간은 다섯 달 동안입니다. 더도 계속할 수 없고 덜도 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의 지배와 음녀 교회의 쑥물과 싸울 수 있는 영적 투쟁기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기간을 통해서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실 것입니다. 이 기간이 서머나 교회에게 일깨운 환난 기간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가 장차 받을 환난을 두려워 말라'고 하시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약속의 말씀의 토대 위에 굳게 서서 이 싸움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81 \ 9:1-6

(41) 첫째 화의 피해자
(요한계시록9:1-6)

종말적인 계시로 볼 때 '첫째 화'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사탄이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에 최종적으로 도전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첫째 화의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악령들의 영적 지배를 받는 황충이 떼들로 명시되어 있으나 그 피해자에 대해서는 대상자에 대한 계시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1. 황충이에게 내려진 명령
이들 황충이 떼에게 내려진 첫 번째 명령은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들 황충이 떼들은 메뚜기 떼들이 아니기 때문에 땅에 있는 풀 종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악령의 지배아래서 그 사상적 노예가 되어 있는 세상 사람들을 피해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아닙니다. 황충이 떼들이 등장한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에게 환난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 황충이들은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을 괴롭힐 자들입니다. 이 황충이 떼들은 사탄에 의해 무저갱 속에서 풀려 나온 악령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모두 불신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은 쑥물로 더럽혀진 음녀 교회와 모든 불신자들로 더불어 손을 잡고 맹렬하게 활동할 것입니다. 이들은 적그리스도가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왕이기 때문에 그로부터 많은 권세를 제공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투쟁 대상은 결코 불신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이미 등장한 적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고 있으며 그의 등장을 이상히 여겨 그를 따를 것이라고 계13:3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황충이 떼들이 자기들 편에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다섯 달 동안이나 죽음에 버금가는 괴로운 고통을 줄 것입니까?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를 환호하며 그를 메시야로 높이는 일에 동조하지 않고 진리를 따르며 가짜 메시야를 배격하고 진짜 메시야를 기다리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키며 그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는 무리'들입니다. 황충이 떼들은 바로 이들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핍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해 입은 여자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7년 환난 중, 전 3년 반기간 이들의 공격을 받게 되며 그 환난의 최 절정에 이르는 시기가 전 3년 반이 마쳐지는 시점에서 거꾸로 다섯 달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황충이 떼 82 \ 9:1-6

들에 의해 박해를 받는 환난이 첫째 화로 불려지는 5개월 황충이 환난입니다.

2.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누군가?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나무는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 황충이 떼들에게 내리신 명령은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계시록 7장으로 되돌아가야 이 문제의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 곳에 '이마에 인 맞은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과연 '이마에 인 맞은 사람들'로 나타난 144,000명이 누구인가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란 바로 이 사람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이라고 밝혀 주는 피해자란 누구인 것입니까? 첫째 화란 곧 적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진리를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이 7년 환난 중에 당하는 시련과 연단의 기간으로 이들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이 떼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는 사건입니다. 이 박해에 대해 계2:10절에서 '10일 동안의 환난'이라고 말씀해 주며 계7:14절에서 '큰 환난'이라고 했으며, 계12:13절에서는 '용이 땅으로 내어쫓긴 후,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 한다고 했습니다.
(2)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때 이들 황충이 떼들로부터 박해를 받기는 하지만 결코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기간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연단으로 시련을 받을 뿐, 죽음을 주는 재앙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황충이 떼들의 핍박은 차라리 죽고 싶으리 만큼 괴로운 시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로 죽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 환난을 잘 극복하고 승리하여 면류관을 주시려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장차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황충이들로 인하여 이 같은 첫째 화를 만날 것입니다. 이 황충이 화는 교회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황충이 떼들의 핍박으로 가라지들이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첫째 화의 기간을 다섯 달 동안으로 제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박해가 가장 혹심할 때 독수리의 큰 날개에 얹혀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 장막으로 우리를 옮기실 것입니다.
83 \ 9:13-16

(42) 둘째 화의 배경
(요한계시록9:13-16)

13절부터는 인류의 종말에 일어날 종말적인 무서운 세계 대전의 계시가 나옵니다. 이 전쟁을 '유브라데 전쟁'이라고 부르며 이 전쟁으로 인하여 세계 인류의 삼분의 일이 죽게 됩니다. 이 전쟁이 여섯째 천사의 나팔로 임하는 '둘째 화'인 것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으로 둘째 화가 일어나는 그 배경에 대한 계시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 여섯째 천사의 나팔과 둘째 화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종말에 일어날 전쟁의 계시에서 '유브라데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을 한 전쟁으로 잘못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실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일곱째 나팔'을 불 때 일어나는 '일곱 대접 심판' 중, '여섯째 대접' 심판으로 임하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7년 환난 중, 후 3년 반 끝에 가서 하늘에서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아마겟돈에 모여 있는 지상의 적그리스도군과의 최종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나 유브라데 전쟁은 7년 환난 중, 후 3년 반 초반에 세계 4대 열강들의 군사적 충돌로 야기되는 세계대전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인류의 종말에 네 바람이 충돌하여 이스라엘을 중심한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는 핵전쟁이며 이 전쟁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단11:40-41절에는 마지막 때에 남방 왕이 그를 찌르는 사건으로 북방 왕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게 되며 이 전쟁으로 세계대전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이 유브라데 전쟁으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단11장이나 겔38장 등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종말적인 계시입니다. 이런 계시를 한 마디로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고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를 찌르는 남방 왕은 아랍권을 중심한 아랍의 연맹체입니다. 지금은 아랍권이 동서로 나뉘어 있는 양상을 보이지만 인류의 종말에 이를수록 아랍권은 하나의 형태로 뭉치게 될 것입니다. 아랍 국가들은 작은 나라들로 형성되었지만 이들은 지금도 세계대전의 화약고인 중동 지역에서 유브라데 전쟁의 불씨를 당길 수 있는 위험 세력임에 틀림없습니다.

2. 유브라데 전쟁의 동기
온 세계를 핵전쟁으로 휘몰 수 있는 위험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중동에서의 전쟁을 막고 세계적 평화를 갈망하는 인류의 소망은 결국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더불어 그 자에 의해 '한 이레의 언약'을 체결하게 되므로 모든 인류의 탄성과 환호를 받게 84 \ 9:13-16

됩니다. 이 조약으로 적그리스도는 일시에 세계적인 평화의 사도로 추앙을 받게 되며 세계 인류들은 평화의 왕으로 새롭게 등장한 이 자에게 세계 평화를 기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약은 아랍권에게는 굴욕적인 조약인 반면에 이스라엘에게는 구국적인 조약이기 때문에 아랍권으로부터는 배격을 받게 되고 이스라엘은 환영하게 됩니다. 이 한 이레의 언약은 군사적으로 열세에 몰려 있었고 모든 면에 대단히 어려운 궁지에 몰려 있었던 이스라엘에게 한동안 숨통을 트게 한 것입니다.
이로써 7년간의 중동 평화는 보장되었으며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에서 세계 평화도 유지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시기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한 후, 열 뿔을 주도하여 열 왕의 연맹체를 이룬 직후이며 사탄의 권능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후의 일이라 이 평화조약으로 이 자의 위상이 가히 세계의 구세주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은 이 자를 그들의 메시야로 착각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 자는 유대인의 혈통을 가진 자일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자가 등장할 때 유대인들이 그를 영접할 일에 대하여 요5:43절에서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치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자를 메시야로 영접하는 시기는 한 이레의 언약을 이룬 직후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이레의 언약의 절반쯤 되었을 시기에 적그리스도가 메시야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인 줄 알고 예루살렘에서 적그리스도의 배척 운동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기회로 삼아 아랍권에서는 예루살렘을 공격하므로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는 적그리스도(그)의 군대를 찌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며 이 사건이 유브라데 전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유브라데에 결박 당하고 있었던 네 바람이 그 결박을 풀고 이 전쟁에 개입하게 되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 '그 년, 월, 일, 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군사적 우위를 가지고 지리적으로도 좋은 요건을 갖추고 있는 유럽의 열 왕의 군대가 전쟁의 승세를 잡게 되며 이 전쟁의 결과 적그리스도가 황폐화 된 세계의 새로운 군주로 세계의 통치자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세계 인류가 그를 자기들의 메시야로, 살아 있는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그를 따를 것입니다.
결론 : 둘째 화로 등장하는 여섯째 나팔은 이처럼 무서운 대환난의 첫 재앙으로 세상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 환난 후부터 끊임없는 재앙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며 이 재앙이 얼마 안 가 셋째 화로 불리는 일곱째 나팔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류역사의 막다른 고비에 서 있습니다. 종말에 되어질 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대비하여 신랑 되신 주님 앞에 서도록 항상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85 \ 9:17-21

(43) 둘째 화의 진상
(요한계시록9:17-21)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인류의 종말적인 전쟁의 모습으로 유브라데 전쟁의 양상에 대하여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15절에서 그 전쟁의 시기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두려운 심정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유브라데 전쟁과 그 년, 월, 일, 시
유브라데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일어납니다. 그러면 유브라데에 결박된 네 천사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계7:1절에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땅의 사방의 바람이란 인류의 종말에 인류 파멸의 전쟁을 일으킬 전쟁 세력입니다.
네 바람이란 표현에서 이들은 종말에 세계 대전을 일으킬 4대 세력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네 천사의 결박과 연계된 것으로 단7:2절 이하에 나오는 하늘의 네 바람과 동일한 세력입니다. 그리고 이 네 바람 중, 열 뿔 중에 작은 뿔로 나오는 적그리스도는 '네 번째 바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불지 못하게 하더라는 말은 불지 못하게 하는 강제성을 띤 것으로 적그리스도가 주도적으로 성취케 한 '한 이레의 언약'과도 연관된 일입니다. 세계 정세로 보아 세계 대전이 곧 일어날 것 같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지금도 기적적으로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날 그 년, 월, 일, 시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네 바람을 주관하는 네 천사의 결박이 풀어지는 날, 곧 '후 3년 반'에 들어갈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게 되어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날, 조금도 지체됨이 없이 이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처럼 계7:1절에서 말씀해 주는 '땅의 사방의 바람'이란 인류의 종말에 둘째 화를 가져 올 전쟁 세력으로 4대 열강(四大列强)을 가리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14절에 나오는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와 연계된 계시로 때가 이르기까지 그 바람으로 불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네 바람이 네 천사에 의해 이처럼 강제적으로 억제되었다가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는 명령과 함께 그 년, 월, 일, 시에 터지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종말에는 매우 불안한 평화가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놓일 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 네 천사의 결박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까? 이 일에 대하여 계7:3절에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86 \ 9:17-21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역사는 한 이레의 언약이 이루어질 무렵, 즉 7년 환난 직전이 될 것입니다. 이들이 인 침을 받은 후, 이들은 전 3년 반기간인 1260일간 예언의 사역을 이루게 되며 이 사역을 마칠 때, 두 증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예언을 했던 하나님의 종들은 적그리스도로 더불어 전쟁하다가 순교하여 부활 승천하게 되고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양육처로 독수리의 두 날개로 옮기심으로 전 3년 반의 막이 내려지게 되며 이와 동시에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는 일로 네 바람이 불게 되어 유브라데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유브라데 전쟁의 양상
16절 이하에서 이 전쟁의 양상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1) 이 전쟁에 동원되는 '마병대의 수는 2만만'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이 마병대라고 표현한 것은 그 당시에는 가장 강력하고 기동력 있는 병력에 대하여 마병대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2천년 후에나 일어날 유브라데 전쟁에 동원될 병력이나 그들의 병기에 대하여 상상하지도 못할 기이한 형태의 계시를 보았을 것이기 때문에 현대적 군용 차량이나 탱크나 장갑차 같은 모습을 보고 마병대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2만만이란 수효는 2억을 가리키는 고대의 수학적 숫자입니다. 이 2만만의 병력은 엄청난 수효입니다. 오늘날 세계 최 강대국인 미국이나 러시아, 영국 등의 군사력의 총 수효를 합계해도 1천만 명 내외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2억이란 병력은 대단한 수효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에 속한 10 뿔의 모든 군사력, 곡에 속한 북방의 그 수많은 군사력, 아랍권의 모든 군사력, 여기에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결과적으로 이 전쟁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유브라데 전쟁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재앙을 내리는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이 전쟁에 동원되는 군사들의 모양에 대하여 '불빛과 자주 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병대들이 탄 말들의 모양에 대하여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결론 :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무서운 재앙 중에서 회개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 남은 자들' 또는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란 말로 표현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1260일간 두 증인의 예언 사역 기간 중 회개치 못하고 후 3년 반의 대 환난에 떨어진 성도들입니다. 이들 외에 모든 인류들은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더욱 패역한 가운데 하나님을 대적하며 우상을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마시고 부지런히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신부의 준비를 갖추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87 \ 10:1-4

(44) 종말 사명자의 소명
(요한계시록10:1-4)

요한계시록 10장은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 시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사명자들의 소명 장(召命章)입니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활동할 사명자는 선지자적 예언의 사명을 가지고 1260일간 '영원한 복음'을 힘있게 외칠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여기서 사명을 직접 전달받고 있는 사명자는 이 계시를 받고 있는 사도 요한입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실질적으로 11장에서 두 증인에 의해 전달됩니다. 10장에서 예언의 사명을 받은 요한은 11장에서 두 증인의 예언자로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10장의 사도 요한과 11장의 두 증인과는 이 종말의 계시를 받은 사도 요한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종말에 이 예언을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할 두 증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 하늘에서 내려온 힘센 다른 천사
요한계시록에는 몇 가지 삽경(揷景)이 있습니다. 삽경이란 말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건을 다루는 직접적인 계시 외에 그 계시에 관계된 여러 가지 배경을 보여 주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7장, 10장, 14장, 17장, 18장 등은 삽경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삽경은 사건의 순서에 의해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삽경의 내용이 앞으로 전개될 사건과 관계된 시점에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에 그 삽경의 배열과 나타나는 계시와의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한 것입니다. 10장의 사명자는 7장에 등장하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과 연결된 계시지만 이들이 활동할 무대가 11장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10장에서 삽경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1) 1절에서 요한은 하늘에서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요한이 보았다고 하는 이 힘센 천사는 누구인 것입니까? 이 천사에 대하여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힘센 천사의 표현은 그의 존재가 바로 이 계시의 주관자이신 예수 시란 사실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2) 이 힘센 천사는 그의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계시 중에 이 작은 책을 받아먹고 온 세계에 이 예언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이 작은 책이 요한이 받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요한계시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펴 놓였다는 말은 열려졌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은 봉인된 예언인 것이 아니라 88 \ 10:1-4

개봉된 예언입니다.
(3)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았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힘센 천사가 선 모습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방불하게 합니다. 왜냐 하면 그가 전 세계에 선 모습을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천사는 다른 한편으로는 7장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온 천사를 상기시킵니다. 그 천사가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친 것처럼 온 세계를 향하여 그의 사명자들을 부르시려고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명자를 부르시는 외침
사도 요한이 계시를 받는 중 바라보고 있는 이 힘센 천사는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 발은 땅을 밟고 사자의 부르짖는 것같이 외쳐 댔습니다.
(1) 힘센 이 천사가 이처럼 외쳐 대는 모습은 그가 그의 손에 들고 있는 펴 놓인 작은 책을 먹을 사명자들을 찾으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언의 전달자로서의 사명자를 부르는 이 힘센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사로부터 펴 놓인 작은 책을 달라고 하여 넘겨받았습니다. 요한이 그 책을 먹은 후에 종말에 예언을 전달하는 사명자로서의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요한처럼 종말의 사명자를 큰 소리로 부르는 힘센 천사의 외침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종말의 사명자로 소명을 받고 두 증인의 사명자로 계11장의 예언의 사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도 요한은 이 천사의 외침과 함께 일곱 우뢰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기가 들은 우뢰소리를 기록하려고 하다가 힘센 천사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일곱 우뢰소리는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킬 교회에 유익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인봉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결론 : 요한계시록 10장은 종말에 주님으로부터 그의 양 무리를 양육할 책임을 지고 있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계시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여기서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이것을 당신의 양 무리에게 먹이실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마25:6절에서 밤중에 깊은 잠에 빠진 당신의 신부들에게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외쳐 그들을 그 잠에서 깨어나게 하여 신랑을 맞이하게 할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양 무리를 맡아 하나님의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주의 종들은 요한계시록 10장에 나오는 이 힘센 천사의 음성을 듣고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 먹고 예언의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89 \ 10:5-11

(45) 작은 책을 받아 먹은 자의 사명
(요한계시록10:5-11)

요한이 주님으로부터 종말에 관한 계시를 받을 때, 여러 가지 모습과 형태로 보았습니다. 10:1절에서 '내가 또 보니'란 표현에서 요한은 계속적으로 종말에 대한 계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0장에서 계시되는 사건은 계7장에 등장하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이 어떻게 그 이마에 인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계시와 연계되며 그뿐 아니라 계11장에서 예언하는 두 증인의 예언 사역자의 선발 과정으로 보여 주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1. 천사의 맹세
바다와 땅을 밟고 서 있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는 말이 6절과 7절에 걸쳐 나옵니다.
(1) 이이 천사의 맹세는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될 때 이루어질 사건으로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는 내용입니다.
(2)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환난의 최종적인 나팔입니다. 이 나팔은 7년 환난 중 후 3년 반 마지막에 이 땅에 내리시는 재앙의 나팔입니다. 그러면 이 나팔을 불게 될 때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인류의 마지막 심판과 새로운 왕국의 도래를 의미하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모든 군사들을 아마겟돈에서 완전히 소탕하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이 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중 휴거가 있게 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일어나는 마지막 심판은 이 지상에 남아 있는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들이 땅속에 숨겨 두셨던 불로 말미암아 완전히 태워 버리는 심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이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공중 휴거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어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시는데 이 나라를 '천년왕국'이라고 부릅니다.
이 같은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비밀인데 하나님은 이 비밀을 그의 종들, 선지자를 통하여 옛적부터 예언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2. 펴 놓인 작은 책을 가지라
사도 요한은 힘센 천사의 이런 맹세를 듣고 있던 중,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1) 요한은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90 \ 10:5-11

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 책을 '작은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인봉된 책이 아니라 '펴 놓인 책'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펴 놓인 책의 비밀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책은 펴 놓였지만 비밀이 요한에게 전달되어 깨닫게 된 것은 아닙니다. (2) 요한은 가지라는 하늘의 명령에 따라 그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달라는 요한의 요구는 하늘로부터 펴 놓인 책을 가지라는 명령을 듣고 이 책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기를 원하는 요한의 결단을 말합니다. 요한이 펴 놓인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린 것으로 사명을 받은 것처럼 작은 책을 받아먹은 자만이 두 증인의 사명을 가지고 계11장의 예언의 역사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3) 천사가 요한에게 '갖다 먹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먹어 버리라는 말씀은 이 작은 책에 기록된 내용을 깨닫는 일을 말합니다. 이 책은 주의 재림에 관심이 없는 종들에게는 비밀의 말씀이지만 주의 재림을 갈망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펴 놓인 책이므로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주님께서 인봉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사명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께 구하면 요한처럼 갖다 먹을 수 있습니다.
(4) 요한이 그 책을 갖다 먹으니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배에서는 쓰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작은 책의 내용은 그것을 깨닫고 사명을 받기까지는 꿀 같이 답니다. 그러나 먹은 후에는 쓰게 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명을 이룬 후에 받을 그들의 순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들의 마지막에는 이 예언을 전하는 일로 말미암아 쓰라린 죽음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계11:7절에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이 책을 갖다 먹은 자는 순교의 사명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5) 천사는 요한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습니다.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명령을 받고 11장에서 이 예언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11장의 예언의 사명자는 사도 요한인 것이 아니라 요한처럼 작은 책을 받아먹고 예언의 사명을 명령받은 두 증인인 것입니다.
결론 : 10장에서 계시해 주는 이 사건은 전 3년 반에 들어가기 직전에 일어날 일이지만 이들 사명자들은 이 같은 소명이 있기 오래 전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예언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세상은 7년 환난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11절에서 '저가 내게 말하였다'는 말은 이 예언의 사명을 전달받은 두 증인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들은 사도 요한처럼 펴 놓인 작은 책을 먹고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증인의 사명자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91 \ 11:1-2

(46) 갈대의 척량
(요한계시록11:1-2)

전 신약 시대를 '말세'라고 말한다면 이스라엘이 회복된 1948년부터의 세상은 '종말 시대'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세상이 7년 환난 기간에 들어서면 '재림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은혜 시대에 속해 있으면서도 실인즉 '종말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주 재림을 전후한 시기에 무서운 환난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가 7년 환난 시대란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 지팡이 같은 갈대
우리가 여기서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서 이 종말의 계시를 받은 후, 얼마 안 가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인류의 종말에 전 세계적으로 예언해야 할 예언의 사명자로 명령을 받았느냐는 문제에 부닥치게 됩니다.
(1) 이 사명은 사도 요한이 받은 것이 아니라 장차 인류의 종말에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요한의 형제로 예언의 사명을 이룰 종말의 하나님의 종들이 받은 것입니다.
(2) 1절에서 요한은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성도들을 말씀으로 척량하는 잣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잣대는 '펴 놓인 작은 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갈대로 척량하는 대상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앞두고 언제나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회개를 외치게 했습니다. 돌아오면 널리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겠다는 메시지가 주된 외침의 내용이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시기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지막 선지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서 펴 놓인 작은 책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십니다. 이들이 두 증인이며 이들을 계11:10절에서는 '두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이들이 전할 메시지의 내용입니다.
(3) 그러면 왜 두 증인으로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인류의 종말에 살아갈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매우 안타까이 여기시며 탄식하셨습니다. 노아 홍수 당시 노아의 여덟 식구를 제외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노아의 경종을 듣지 않고 세상에 소망을 둔 기복적인 생활을 하다가 홍수심판의 대환난 가운데 떨어져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은 영적 어두움이 온 세상에 깊숙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잠 속에서 교회가 깨어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교회의 추수꾼을 보내시어 92 \ 11:1-2

모든 교회들로 회개케 하시면서 지팡이 같은 갈대로 척량케 하시는 것입니다.

2. 척량의 범위
요한에게 척량을 명령한 천사는 그 척량의 범위를 지정해 주었습니다.
(1)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먼저 척량 받을 대상자가 지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곧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 있었던 성전에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성전이 있었습니다. 다음에 레위족이 하나님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고 대제사장이 매년 한 차례씩 들어가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의 척량은 바로 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척량은 1260일간 계속될 것인데 이 척량에 합격된 자들은 계7:14절에 있는 말씀처럼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희게 씻은 자들'로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을 신부의 자격을 얻게 됩니다.
(2) 2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했습니다. 척량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별도의 조치가 있을 것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이방인은 적그리스도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성은 지역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이 계시를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다니엘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단9:27절 말씀에서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인류의 종말에 예루살렘 성이 적그리스도에 의해 후 3년 반 동안 통치를 받으며 종교적 핍박을 받을 것이란 예언입니다. 세상을 마흔 두 달 간 지배할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도 같은 기간 동안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이방인에게 준 성전 밖 마당은 마흔 두 달 동안 적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두 증인에 의해서 1260일간의 전 3년 반의 예언의 사역이 끝난 후에 있을 기간입니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큰 권능을 받고 펴 놓인 작은 책의 말씀을 증거하는 두 증인의 등장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이 척량에 합격하는 성도가 되어야 신랑을 맞이할 신부의 단장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93 \ 11:3-5

(47) 두 증인의 정체와 사명
(요한계시록11:3-5)

7년 환난 기간을 재림 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 종말 시대에서 재림 기간으로 옮겨져 가는 과도기적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종말 시대에 들어선 역사적 분기점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주 재림의 시기를 이스라엘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인류의 종말의 시기와 두 증인의 등장 시기
예수님은 마23:38-39절에서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황폐하게 될 사실에 대하여 예언하셨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흩어지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며 그 후,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다시 모여들어 그들이 참으로 메시야를 대망하는 그 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말씀으로 들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마24장에서는 그런 시기가 이르렀을 때 있을 주의 재림에 관한 자세한 계시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이 회복한 시기임을 마24:15절 이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은 70년대의 로마의 예루살렘 침공을 의미해 주시는 예언이 아닙니다. 문맥을 좇아 계속해 읽어보시면 주의 재림의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사건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2. 두 증인의 등장
이 시기에 두 증인이 등장하여 지팡이 같은 갈대를 가지고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이룰 것입니다.
(1) 성전 밖 마당은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전 밖 마당에 속한 사람들은 측량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3절 말씀에서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1절에서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은 사람은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은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척량의 시기나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시기는 사도 요한의 생존 시대가 아니라 주의 재림의 때인 인류의 종말에 속한 시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3절에서 말씀해 주는 두 증인이란 94 \ 11:3-5

사도 요한인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과 같은 종말적인 계시를 받아먹고 다시 예언하라는 명령을 받은 종말적 예언을 외칠 사명자들인 것입니다.
(3) 이들의 정체가 4절에 나옵니다.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두 증인의 정체에 대하여 일차적인 해석으로 이 말씀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두 증인에 대해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는데 먼저 두 촛대부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계1:20절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촛대란 성전에 불을 켜 놓는 등 받침대로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면 '두 감람나무'란 무엇을 의미하는 표현입니까? 이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이 슥4장에 나옵니다. '두 감람나무'란 '감람나무 두 가지'란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궁금해하는 스가랴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중 한 가지에 대하여 스룹바벨임을 나타내셨는데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스룹바벨의 권능이 하나님의 신의 권능으로 될 것임을 말씀하시고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란 종말에 하나님에 의하여 스룹바벨처럼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신의 권능을 받아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뜻으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나온 하나님의 종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각 지파 중에서 그 이마에 인 맞은 자들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쳤다는 하나님의 종들이 바로 이들 두 증인인 것입니다.
(4) 3절에서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큰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한다고 했습니다. 베옷이란 회개의 옷을 의미합니다. 더욱이 굵은 베옷이란 그들의 예언의 사명이 오직 성도들의 회개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종말에 이 세상은 마치 멸망 직전에서 요나의 예언을 기다렸던 니느웨 성처럼 이들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아니면 누구든지 어린양의 진노에서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교회의 마지막 추수를 위해 성령의 권능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이룰 것이란 사실을 성경대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졸며 잠을 자는 영적 흑암 중에 살아가고 있지만 미련한 처녀들처럼 기름이 모자란 상태에서 예언의 등불마저 꺼져가면 안됩니다. 기름이 모자란 미련한 성도들에게는 두 증인의 예언의 날이 와도 준비하지 못하므로 문이 닫혀져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 기름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95 \ 11:4-6

(48) 두 증인의 예언 권세
(요한계시록11:4-6)

요한계시록에서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은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두 증인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성도들을 깨우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아니면 성도들은 신부의 단장을 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적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두 증인은 그의 예언의 사역을 통해서 거짓 진리로 교회를 유혹하는 배도적 세력과 싸워 교회를 진리로 수호하게 됩니다. 이들이 음녀의 세력과 아울러 적그리스도의 권세와 싸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교회는 쉽게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1. 두 증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두 증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신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는 두 증인에 대한 그릇된 견해를 소개하면서 더 자세한 이들의 모습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1) 어떤 신학자는 두 증인을 신약의 교회로, 1260일간의 예언 기간을 신약 시대로, 예언의 사명을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 전파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견해를 소위 '상징적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요한계시록을 실제적이 아닌 상징적 사건 혹은 상징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요한은 이 요한계시록 초두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이 상징적인 사건이나 내용을 보고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 또 다른 신학자들은 두 증인을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두 증인이 예언하는 날 동안 나타나는 권세가 마치 모세나 엘리야의 경우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가당치도 않은 해석입니다. 모세는 역사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엘리야의 경우는 살아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지금도 지상에서 살았을 때의 육신을 가지고 하늘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변화산에 모세와 함께 영화로운 몸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변화 받은 몸은 부활체와 동일한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이 몸은 죽을 수 없는 몸이기 때문에 순교해야 하는 두 증인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3) 이들 두 증인은 하나님께서 종말적인 예언의 사명을 위해 사용하시기 위해 뽑으신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두 촛대'만이 아니라 '두 감람나무'라고 밝힌 그들의 신 96 \ 11:4-6

분에서 교회 가운데서 뽑으신 하나님의 종들임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표현한 말에서 교회에서 뽑아 낸 하나님의 종들임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2. 두 증인의 권능
두 중인은 그 예언하는 날 동안 큰 권능을 받게 됩니다.
(1) 두 증인이 예언할 1260일간은 이미 7년 환난 중, 전 3년 반에 들어선 기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벌써 등장하여 한 이레의 언약을 체결하여 세상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인기의 열기로 가득차 있는 그런 시기입니다. 교회를 비롯한 모든 종교 기관은 이미 음녀의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여 적그리스도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으며 메시야로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하나 입을 열어 적그리스도를 비난하거나 대적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세계적 평화의 왕으로 숭상하며 신적인 존재로 경배하며 인류의 메시야로 확신하는 내 가족 앞에서 적그리스도를 비난하며 거역하는 그런 사람은 다른 가족들부터 배척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먼저 이들은 예언하는 날 동안인 1260일간은 불사신의 몸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입에서 불이 나온다는 말은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이 같은 사건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증인은 또한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를 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가뭄이 7년 환난 기간 중에 찾아 올 것입니다. 또 '물을 변하여 피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입니다. 물을 피되게 한 일은 모세가 애굽에서 나타낸 하나님의 이적이라 두 증인은 이런 이적을 행할 수 있는 권세를 받을 것입니다. 이런 기적과 권능은 그들이 적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의 무리와 싸우면서 예언의 사역을 이루는 일에 필수적으로 따라야 할 일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이런 권세를 사용하면서 예언의 사역을 이룰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이들 두 증인들은 반드시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등장을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이기고 또 이기려는 싸움'에서 피나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는 우리는 주의 재림을 대망 하면서 이 모든 계시의 비밀을 깨달아 그 날에 올바른 선택을 통해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97 \ 11:7-10

(49) 두 증인의 순교
(요한계시록11:7-10)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은 7년 환난 기간 중 7년 전 기간에 걸쳐 실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두 증인이라고 어떤 특별한 계층의 몇몇 한정된 사명자들이 아니란 사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의해 평소에 주의 양 무리를 맡아 양육해 온 목회자들이란 사실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돼도 되는 그런 사명인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양 무리를 맡아 양육하는 목회자라면 누구라도 작은 책을 받아먹고 이 반열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1. 두 증인의 예언 사역
두 증인들이 예언할 기간은 1260일간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신 그 놀라운 권능도 이 기간 동안만 예언을 할 수 있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1) 두 증인이 전할 예언이 계14장에서 '영원한 복음'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예언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으라는 메시지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시니 일어나 깨어 맞으라는 내용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복음 전파의 최초의 주자(走者)였다면 이들 두 증인들은 복음의 마지막 주자들입니다. 이들 두 증인들에게는 지난날 사도들에게조차 주시지 않은 권능을 주심으로 이 추수의 완벽한 사역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 같은 예언의 사역을 하는 1260일간은 모든 성도들에게는 다시없는 은혜의 기간이요 성전 밖 마당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심판의 경종의 기간이 될 것입니다.
(2) 이들이 1260일간의 예언을 마치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더불어 전쟁을 하게 됩니다.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죽일 터이라'고 했습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이 전쟁에서 두 증인은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에게 순교를 당합니다.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이 끝나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권능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예언을 할 수 있도록 주신 권능이기 때문에 예언이 끝나면 자연히 회수되는 것입니다.
(3) 이들이 순교로써 예언을 마치는 일은 두 증인들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계6:11절에서 순교자의 수효를 채우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제단 아래에서 '우리 피를 신원 하여 달라'고 외친 순교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는데 두 증인의 순교가 그 동무 종들의 순교자의 수효를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98 \ 11:7-10

이들의 순교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시기로 예정하신 그 시기가 이르렀음을 알리시는 예언의 성취요 신호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순교로써 그들의 생명을 거두시는 것입니까? 주님을 위한 순교는 이 땅에서 다시없는 영광의 죽음이기 때문에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순교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들 순교자들은 첫째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천년왕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되며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영원히 왕 노릇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두 증인의 순교는 1260일간의 예언 사역의 끝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 3년 반의 마지막 시기가 되는 것입니다. 두 증인의 순교로 이 땅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들 두 증인은 순교 후, 부활 승천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이들의 승천과 함께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예비처로 옮겨지는 일도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 증인은 부활 승천하게 되고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예비처로 옮겨진 후, 이 세상에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후 3년 반 전반에 걸쳐 계속 내려질 것입니다.

2. 두 증인의 순교
두 증인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 '두 증인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한 큰 성이란 큰 성 바벨론으로 곧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두 증인이 예언 사역을 했던 장소를 가리킵니다.
(2) 세상 사람들은 두 증인이 죽게 되자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두 증인들을 살해했으며 가증한 방법으로 이들의 시체를 유기 했습니다.
(3) 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한 이유에 대하여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결론 : 인류의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두 증인을 등장시켜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을 이루실 것입니다. 두 증인은 전 세계적으로 다시 예언하는 사명을 받아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이 두 증인의 예언으로 모두 회개하여 신부의 자격을 갖추는 것은 아닙니다. 기름을 준비치 못했던 미련한 처녀들은 회개치 못하고 혼인 잔치로 비유된 예비처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 재림의 소망을 가지시고 그 날에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99 \ 11:11-19

(50) 두 증인의 부활과 둘째 화
(요한계시록11:11-19)

두 증인을 10절에서 '두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에게 선지자적인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계10:7절에서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고 하셨는데 이처럼 두 증인은 그 하나님의 비밀을 마지막으로 전하는 선지자적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예언의 사역을 1260일간 마친 후, 적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이들의 죽음은 이 세상에 놀라운 몇 가지 사건을 수반하기 때문에 이에 자세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1. 두 증인들의 부활 승천
두 증인의 죽음은 세상에 기쁨을 가져왔습니다.
(1) 이들 두 증인의 시체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삼일 반 후에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발로 일어섰다'고 했습니다. 두 증인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것입니다. 이 생기는 부활의 생기입니다.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는 천년왕국이 지난 후, 백보좌 심판을 베푸시는 그 시에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두 증인의 부활은 이런 부활보다 한발 앞서서 일어났습니다. 이 부활을 '첫째 부활'이라고 부르며 이 부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 부활인 것입니다.
(2) 두 증인들은 하늘로부터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부활 승천하는 모습은 전 세계 인류들이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여러 매스컴을 통해서 두 증인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사건이 방영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생생하게 바라보면서 그 경이로움에 놀라고 또 크게 두려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 연이은 둘째 화
두 증인이 부활 승천한 후 곧 이어 이상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의 모습에 대하여 13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줍니다.
(1)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고 했습니다. '그 시'란 말은 두 증인이 부활 승천한 바로 그 시기란 뜻입니다.
(2) 그러면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이 지진으로 칠 천이 죽었다 100 \ 11:11-19

는 이 사건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우리는 14절에서 간단히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해석에서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둘째 화의 발생 시기가 오늘 본문 13절에서 밝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서 일어나는 큰 지진의 피해는 성 십분의 일, 죽은 사람이 칠 천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 같은 사실로 보아 이 사건이 둘째 화를 가리킨 계시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14절에서 이 사건을 '둘째 화'라고 언급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 십분의 일은 큰 성 바벨론의 파괴로 핵전쟁으로 인한 전 세계적인 피해 상황이며 죽은 칠 천명은 7이란 완전 수로 '사람 삼분의 일'이 죽는 인명 피해를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9장에서 이미 요한에게 둘째 화에 대한 자세한 계시를 보였기 때문에 여기서 이처럼 간략하게 '둘째 화'를 언급해 주신 것입니다. 비록 사건의 내용이 계9장의 유브라데 전쟁의 모습과 다르게 나오지만 '둘째 화'란 말씀에서 이 사건이 무슨 사건을 의미해 준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같은 중복된 둘째 화의 계시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는 둘째 화의 발생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유브라데 전쟁으로 일어나는 둘째 화는 두 증인의 1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이 그들의 순교로 끝나고 그들이 부활 승천하는 바로 그 시에 둘째 화가 발발(勃發)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음에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는 말씀에 나오는 '그 남은 자들'이란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으로 옮겨지지 못하고 후 3년 반에 남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미련한 처녀들입니다. 이들에 관하여 계12:17절에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여자란 '해 입은 여자'로 표현한 진리의 교회를 말하며 이 교회에서 떨어진 무리가 남은 자로 그들은 바로 이 둘째 화의 과정에서 회개한 결과 계12:17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3) 14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둘째 화가 지난 후 셋째 화가 속히 이른다'고 했습니다. 셋째 화란 일곱 번째 나팔 사건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일곱 번째 나팔로 끝나기 때문에 이 나팔을 분 후에는 15절에 있는 대로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
결론 : 19절에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언약궤가 보이고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약속을 의미하고 번개, 뇌성, 지진, 우박 등은 일곱 번째 대접 심판 시에 내리실 하나님의 재앙의 도기들입니다. 이 셋째 화가 지난 후에 예수님이 친히 왕 노릇하시는 새로운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이 날을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주 재림의 날을 기다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01 \ 12:1-2

(51) 해 입은 여자와 해산한 아들
(요한계시록12:1-2)

우리는 아직까지의 전개된 계시의 흐름으로 볼 때, 7년 환난 중, 전 3년 반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가 통과하게 됩니다. 물론 교회도 이 기간을 통과하는 일에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 3년 반의 고비인 1260일에 이르렀을 때에 두 증인의 부활 승천과 함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처로 옮겨지는 일로 세상에서 사라집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이 같은 시기에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예비처로 옮겨지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는가를 보여 주시는 계시인 것입니다.

1. 해 입은 여자에 대한 올바른 해석
계시록 12장의 해석은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전반에 걸쳐 잘못된 해석이 12장에 나오는 몇 가지 문제로 인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1절에 나오는 '해를 입은 한 여자'의 경우, 이 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12장 전체의 해석의 방향이 설정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에서는 이 여자를 '유대인'이라고 해석합니다. 세대주의적 해석으로는 교회는 이미 7년 환난 전에 공중으로 휴거되었으며 그 휴거는 계4:1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12장에 나오는 해 입은 여자를 유대인으로 보는 것입니다.
(2) 이런 세대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개혁주의를 따르는 신학적 입장은 해를 입은 여자를 구약적 교회로 해석하고 그가 해산한 아이를 그리스도로 해석합니다. 다른 또 한 가지의 해석은 해 입은 여자를 마리아로, 그가 해산한 아이를 그리스도로 해석하는데 그 아이가 아들이며 철장권세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점에서 그리스도와 연결시킵니다.

2. 해를 입은 여자와 아이
요한계시록에는 여자의 모습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는 본문에 등장하는 '해를 입은 여자'요 다른 하나는 '음녀'로 나오는 여자입니다.
1절에 이 여자의 영적 모습이 나옵니다. 해로 옷을 입었습니다. 그 발 아래는 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습니다. 해는 빛 되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그 발아래 있는 달은 이런 교회의 신부 준비를 갖춘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머리에 쓴 열 두 별의 면류관은 승리를 말합니다. 이 교회는 열 두 별로 상징된 진리의 신앙으로 승리했습니다. 이들은 환난 날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로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여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 구성된 교회입니다. 102 \ 12:1-2

이들은 두 증인과 함께 적그리스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두 증인들이 하늘로 부활 승천할 때,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옮겨진 슬기로운 그리스도의 신부들로 모여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해로 옷 입은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 아이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종말에 이루어질 계시에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는 예수님의 잉태와 해산의 모습이 이곳에 등장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인류의 종말에 해 입은 여자로 비유된 촛대 교회에서 해산할 사명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계11장에서 전 세계적으로 예언의 사역을 감당할 두 증인들입니다.
남자아이는 '해 입은 여자'가 해산했습니다. 성령이 임재하시는 촛대 교회, 진리에 굳게 서서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피나는 영적 투쟁을 하는 교회에서 이 종말의 사명자들이 나옵니다. 물론 이 교회는 이들 종말적인 사명자들에 의해 운영되어 왔습니다. 물량적인 교회에서는 이런 사명자가 나올 수 없습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해산하게 되매'란 표현은 해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해산이란 두 증인의 사역과 그들의 순교를 말합니다. 이 때 교회는 아파서 애써 부르짖는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기에 교회가 받을 큰 고통을 말합니다. 이 고통이 13절에서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교회가 받는 이런 고통은 적그리스도의 무리로부터 받는 첫째 화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들에 대하여 5절에서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실 상급을 약속하실 때,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보좌 앞으로 올려 갔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들을 죽이는 일에 일시적으로 승리했지만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나 부활 승천함으로 삼키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결론 : 여러분 ! 얼마 안 가 지상의 교회는 '음녀'와 '해를 입은 여자'로 갈라질 것입니다. 음녀 교회는 적그리스도를 따르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촛대 교회만이 마25:10절에서 말씀한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속한 교회를 음녀 교회로서가 아니라 촛대 교회의 모습으로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종들이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이 예언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읽고 듣고 지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103 \ 12:3-5

(52) 보좌 앞으로 올려간 아들
(요한계시록12:3-5)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건들은 하나 하나 모두 단순한 사건들입니다. 엉뚱한 사건이 생겨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맥으로 연결되어야 할 사건들이 적당한 곳에 다른 형태로 다시 등장하는 가운데 종말에 일어날 환난의 드라마로 통일된 내용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1. 붉은 용의 공격
3절 말씀에 '붉은 용'이 등장합니다. 이 붉은 용은 사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붉은 용은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자신의 화신(化身)과도 같은 적그리스도를 세상에 내 보냅니다. 그래서 이 짐승에 대하여 계17:3절에서 '붉은 빛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이 자에게 마흔 두 달간 일할 권세를 주면서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넘겨줍니다. 이처럼 붉은 용인 사탄은 그가 가진 모든 계책과 모략과 권세와 능력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투쟁을 전개하는데 특히 하늘의 전쟁에서 미가엘에게 쫓겨난 후, 지상에 내려와서는 '해를 옷 입은 여자'와 그 여자가 낳은 아들과의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1) 이 붉은 용에 대하여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일곱 머리는 적그리스도 때까지의 역대의 하나님의 대적자들로 사탄이 부려먹던 인물들을 말합니다. 계17:10절에는 이 자들의 비밀을 밝혀 주고 있는데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망했다는 다섯 나라는 '애굽.앗수르.바벨론.메데바사.헬라'를 가리키고 지금 있다는 나라는 '로마'를 말하며 장차 나타나 잠깐 동안 계속될 나라는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2) 그런데 사도 요한을 놀라게 한 일은 이 자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땅에 던진 일입니다. 4절에서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붉은 용의 꼬리는 사탄의 거짓된 간교, 교활, 속임수를 말합니다. 붉은 용의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진 것은 별로 상징된 하나님의 종들을 타락시켜 샘물로 상징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흐리게 하여 영적 생명을 죽이는 일을 말합니다. 이 때 살후2:3절에서 예언해 주시는 배도 세력인 음녀가 등장합니다.

2. 여자가 낳은 아들
붉은 용은 여자가 낳은 아들과 싸우고 여자는 용을 피하여 광야로 도망가고 용은 광야에 도망간 여자를 공격하고 쫓기고 쫓는 일련의 긴박한 게임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104 \ 12:3-5

(1) 4절에서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와 두 증인과의 전쟁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계11:7절에서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인다'고 했습니다. 종말에 예언의 사명을 받아 진리를 따르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뽑혀 활동하는 두 증인들은 이처럼 용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로 계시된 두 증인들은 삼키고자 하는 용의 공격으로 잠정적으로 죽임을 당하지만 삼킴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두 증인은 곧 하나님께로부터 생기를 받아 부활하게 되며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면 왜 여기서 이미 계11장에서 이야기가 끝난 두 증인의 순교와 부활에 관한 사건을 다시 계시해 주는 것입니까? 두 증인은 7년 환난 초반인 전3년 반 초기에서 시작하여 1260일간 다시 예언하는 복음 사역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들 두 증인들의 예언의 사역이 마쳐지는 일은 후 3년 반에 들어서자 곧 일어나는 둘째 화는 물론, 해를 옷 입은 여자로 상징된 교회와도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계11:13절에서는 둘째 화가 일어나는 유브라데 전쟁의 시기를 말씀해 주고 계12:6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예비처로 피난 갈 그 시기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여자가 낳은 아들로 표현된 두 증인이 붉은 용에 의해 삼킴을 당할 뻔했지만 하나님의 권능으로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 우리는 6절에 나오는 말씀을 잘 음미해야 합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고 말씀해 줍니다. 아들이 하늘로 승천한 것과 때를 같이 하여 이 아들을 낳은 여자는 광야로 도망가는데 이 도망은 후 3년 반기간인 1260일 동안 이 여자를 양육하기 위한 예비처로 옮겨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1260일간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의 끝나는 일과 그들의 순교는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는 징조가 되는데 하나는 이 후에 곧 둘째 화인 유브라데 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과 이런 일이 있기 직전에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보호처로 옮겨진다는 사실입니다.
결론 : 요한계시록 12장은 종말에 살아가면서 주의 재림을 갈망하는 성도들에게 굉장한 소망을 줍니다. 대환난 중에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앞으로 어떤 환난이 올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전3년 반의 과정은 심판의 시기인 것이 아니라 재림하시는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는 회개의 기간으로 은혜의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하나님의 아름다운 섭리를 깨달을 때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쁨으로 힘껏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105 \ 12:6-12

(53) 하늘의 전쟁
(요한계시록12:6-12)

인류의 종말에 이 지상에서는 참으로 두렵고 처참한 몇 차례의 전쟁이 치러집니다. 한 번은 인류의 삼분의 일의 생명을 앗아가는 핵전쟁이 일어납니다. 성경에서는 이 전쟁을 '유브라데 전쟁'이라고 부릅니다. 다음에 '아마겟돈 전쟁'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그의 군대와 더불어 지상에 있는 적그리스도의 군대와 싸우는 최후 결전이 될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아마겟돈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전쟁이 일어날 진원지가 아마겟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전쟁이 있는데 이 전쟁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늘의 전쟁'입니다.

1. 하나님이 예비하신 여자의 양육처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해로 옷 입은 여자'가 그가 해산한 아들을 하늘 보좌로 올려 보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계12장에 나오는 이 같은 표현은 '해로 옷 입은 여자'로 상징된 하나님의 교회가 교회에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두 증인들을 하늘 보좌로 올려 보내는 모습으로 보여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시기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이 여자는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에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이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일에 소망을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 사건을 이해하는 일은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장차 올 두려운 대환난의 재앙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일은 어떤 기발한 착상이나 색다른 방법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 시 진실한 회개로 어린양의 피로 희게한 신부의 세마포로 단장하는 일로 준비는 끝나는 것입니다.

2. 하늘의 전쟁
본문 7절부터 하늘의 전쟁 모습이 나옵니다. 이 전쟁은 물론 영적 전쟁이지만 종말에 있을 지상의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사건입니다. 이 전쟁 시기는 7년 환난 시기의 전 후가 될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붉은 용이 패하여 하늘에서 내어 쫓기게 됩니다. 하늘의 전쟁에서 하나님 편에서 싸우는 영적인 군사는 미가엘 천사장과 그의 사자들로 나타난 천사들입니다. 그리고 한편 이들과 싸우는 상대편은 하늘에 보좌를 펴고 공중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어두움의 세계를 지배해 온 붉은 용, 마귀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영적 전쟁을 통해서 이 자를 하늘에서 내어쫓는 것입니까? 이 자는 공중에서 두 가지 일을 해 왔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대한 참소 입니다. 그리 106 \ 12:6-12

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대한 지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사탄에게 이런 권세를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에 그 보좌에서 내어쫓는 것입니다. 이 자는 지상으로 내어쫓긴 후, 지상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함께 지상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통치체계가 6. 6. 6. 통치이며 이 통치 아래서 짐승의 표를 주는 대환난 기간인 후 3년 반이 진행 될 것입니다.
이 자가 이처럼 미가엘 천사와 그의 사자들에 의해 내어 쫓기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10절에서 12절까지의 말씀이 그 음성입니다. 이 하늘의 음성은 세 가지로 구분된 내용으로 사도 요한에게 들려 왔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뤘다'는 것입니다. 이 하늘의 음성은 사탄의 추방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본격적으로 이뤄져 곧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천년왕국이 세워질 것임을 기뻐하여 외치는 하늘의 음성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음성에 대해서 11절에서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이런 하늘의 함성은 환난 날에 이 자로 인하여 핍박과 고난을 당해야 했던 순교자들의 승리의 함성입니다. 사단과의 투쟁에는 어린양의 피를 제외하고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터무니없는 참소를 해도 어린양의 피로 용서 받은 우리의 죄는 정죄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하늘의 음성은 1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 자의 축출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자로 인하여 이 땅에는 심판과 재앙이 임하므로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로 인하여 일어나는 화 중에 교회가 입을 화는 첫째 화로 곧 황충이 환난이 됩니다. 그리고 이 자가 주도하는 통치로 인하여 지상에는 재앙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결론 : '해로 옷 입은 여자'는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두 증인이 나오고 또 후 3년 반기간 동안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에서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는 영광스럽고 소망스러운 교회입니다. 종말에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촛대를 밝혀 해로 옷 입은 여자로 그 면모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이 교회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이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이기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기다리며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며 소망 중에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것입니다.



107 \ 12:13-17

(54) 교회의 핍박과 예비처
(요한계시록12:13-17)

오늘 나오는 계12:13-17절에 나오는 계시만 보아도 '용'이 나오고 '여자'가 나오며 '남자를 낳은 여자'가 나오고 '여자의 남은 자손'이 나옵니다. 이 몇 줄 되지 않는 짧은 계시에서 우리는 대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예비처에 대한 놀라운 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1. 핍박을 받는 여자
우리는 지난 시간 계12:7절에서 미가엘의 군사와 붉은 용의 군사와의 하늘에서의 전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전쟁에서 용이 패하여 용과 그의 사자들이 하늘에 있을 곳을 잃어 땅으로 내어 쫓기게 됩니다.
(1) 12절에서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용은 이 전쟁에서 공중과 지상의 어두움을 지배했던 모든 권세를 잃었습니다. 하늘 전쟁에서 패자가 된 용은 하나님께 대한 증오가 더욱 불일 듯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하나님의 교회로 향하게 된 것입니다.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첫째 화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이 용의 공격 시기입니다. 4절에서 여자가 해산하는 고통이 나오는데 이 고통은 교회가 적그리스도로부터 당하는 영적 핍박을 의미합니다. 그 후에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고자 하는데 이 아이는 두 증인들로 이들에 대한 공격의 시기는 1260일간의 예언 사역이 끝나고 순교할 당시를 말합니다.

2. 광야로 피하는 하나님의 교회
13절에 나오는 말씀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어쫓긴 용에 의해 하나님의 교회가 핍박을 받는 모습을 짧은 계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런데 14절에는 이 같은 사탄의 핍박에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조치가 내려집니다. '그 여자가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달아나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1) '그 여자가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받았다는 '큰 독수리'란 하나님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날개에 그의 백성들을 얹혀 광야 자기 곳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 옮기실 그의 백성들의 수효가 계7:9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그의 날개를 '큰 날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08 \ 12:6-12

이 일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24:40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2) 교회의 피난을 6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도망이란 말은 위험 지역에서의 긴급 탈출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곧 이어 있을 유브라데 전쟁의 재앙에서 긴급히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간다고 했습니다. 날아간다는 말은 예비처로 옮겨지는 일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순간적으로 이뤄질 것을 의미합니다.
(3) 하나님은 그 곳에서 교회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와 있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6절에 나와 있는 1260일간을 의미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후 3년 반을 가리킵니다.
(4) 15절에서 용은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을 강 같이 토한다는 말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예비처가 공격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땅이 여자를 도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적그리스도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는 모습으로 결국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예비처의 공격을 포기하기에 이릅니다.
(5) 용은 분노했습니다. 17절에서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을 핍박하는 새로운 싸움을 시도할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용은 여자를 공격하는 일에 실패하여 분노하여 돌이켰지만 그는 다른 공격 대상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입니다. 이들은 예비처의 무리 중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입니다. 이들은 후 3년 반에 남게 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결국 대환난 중에 떨어져 '둘째 화' 중에서 회개하게 되어 올바른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여자'에 대한 공격에 실패한 분풀이를 여자의 남은 자손에게 하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다고 했습니다. 바다 모래 위란 전 세계에 걸쳐 널려 있는 그의 공격 대상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론 : 성도들을 위해 종말적인 환난 날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예비처가 있을 것이란 약속은 종말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단히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이곳에 가는 일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25:13절에서 예수님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회개하는 일을 통해서 그리고 일곱 교회에 주시는 권면의 말씀에서 '이기는 자'의 생활을 통해서 이 같은 환난의 날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광야 자기 곳으로 옮겨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09 \ 13:1-2

(55) 바다에서 나온 짐승
(요한계시록13:1-2)

요한계시록에는 적그리스도란 말이나 표현이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이름이 '짐승'이란 이름으로 계시되어 나옵니다. 이 자의 이름이 계17:3절에서는 '붉은 빛 짐승'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짐승이란 말은 원래 다니엘서에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단7:2절 말씀에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다니엘서에는 이 자의 등장이 7장과 9장에 나오고 요한계시록에는 13장과 17장에 나옵니다.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이나 이 자는 같은 시대에 활동할 동일 인물로 다니엘서에 나타난 것은 종말에 유대인들이 이 자에 의해 종교적 핍박을 받게 될 것을 계시하신 것이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것은 인류의 역사에 등장하여 교회 뿐 아니라 인류의 지배자로 등장할 것을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13장에서 이 자에 대한 자세한 모습을 찾아보면서 이 자가 세상 종말에 등장하여 과연 어떻게 활동하며 어떤 방법으로 짐승의 표를 주는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문제를 살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1.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
1절에서 이 짐승의 등장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1) 짐승이 나왔다는 바다란 단7:2절에서 네 짐승이 나온 '큰 바다'를 말해 줍니다. 그러면 이 바다란 무엇을 상징해 주는 표현입니까? 두 가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중동과 유럽 지역을 포용하고 있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다른 또 하나의 의미는 바다란 혼란한 세상을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이 큰 바다로부터 나온다고 단7: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네 바람은 종말에 전쟁을 일으킬 4대 세력을 의미합니다.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이들 네 바람을 잠시 동안 불지 못하게 하신 후, '우리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시게 됩니다.
1절에서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왔다'는 말은 단7:2절에서 말하는 네 짐승 중에 하나인 마지막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등장만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이 적그리스도는 비록 역사적으로 맨 뒤에 나온 짐승이기는 하지만 다른 모든 짐승과 달라서 세상의 모든 군왕들을 자신에게 굴복시키고 열국(列國)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 짐승의 권세에 대하여 2절에서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는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자는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멸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110 \ 13:1-2

(2) 적그리스도인 이 짐승의 머리엔 뿔이 열이 있다고 했습니다. 뿔은 권세를 말합니다. 열 개의 뿔은 열 명의 권세자를 의미하며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고 수족처럼 활동하는 열 명의 왕을 가리킵니다. 한 짐승의 등장으로 보여 주는 적그리스도의 등장 이 지중해 지역인 유럽이라면 이들 열 뿔 역시 적그리스도와 동일 지역인 유럽 지역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이건 유럽 지역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경제적 유익을 추구하려는 유럽 지역 안의 국가간의 연합은 그 의미가 대단히 큰 것입니다.
이들 회원국들은 모두 지난날 로마의 판도 아래서 대 로마를 형성했던 나라들이며 이 기구를 지배하는 자야말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란 추론은 가능성이 있는 일입니다.
(3) 이 자의 머리가 일곱이라고 했습니다. 이 계시는 적그리스도가 소속한 네 번째 나라가 인류의 역사상 일곱 번째 제국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이에 대하여 계17:9-10절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으로 나왔으며 그 일곱 머리에 대한 해석을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4) 그리고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언급해 주는 열 면류관은 적그리스도를 도와줄 열 왕들이 쓸 면류관을 의미합니다.

2. 짐승의 모습
이처럼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는 짐승은 아무라도 그를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자의 모습이 표범과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이 같은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그의 막강한 권세와 무자비한 정책과 그를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존재임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런데 이 자에게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용이란 사탄인데 이 자가 하늘 전쟁에서 패하고 지상으로 내어쫓긴 후, 적그리스도에게 막강한 자기 권세를 넘겨주므로 자신의 계획을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 이처럼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은 무서운 존재입니다. 이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이 짐승은 반드시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할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가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런 성경적인 예언의 말씀을 잘 연구하고 살펴서 이런 짐승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11 \ 13:3-4

(56)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
(요한계시록13:3-4)

성경에는 적그리스도의 인물이나 그의 영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일어나 온 인류를 미혹하고 멸망의 표식인 '짐승의 표'를 받게 하며 사망으로 인도할 적그리스도는 오직 인격적인 한 명의 실존 인물이란 사실을 알고 그 자의 정체와 등장 모습에 대하여 성경적인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 적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적 고찰
우리는 적그리스도를 하나의 상징적 인물이나 역사상에 이미 등장했던 여러 명의 중복적인 인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1)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실제적인 적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서에는 이 적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이 자주 나오는데 그 언급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내용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적그리스도란 명칭의 개념(槪念)으로 보여 주는 적그리스도란 이름이 있습니다. 요일2:22절에서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지칭한 것이 아니라 개념상의 적그리스도의 존재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상에는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와 같은 종류의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일곱 머리로 나오는 역사상 일곱 제국의 왕들도 이런 존재들이었습니다. 일본의 도조도 독일의 히틀러도 이태리의 뭇소리니도 이런 류의 인물들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적그리스도란 적그리스도를 닮은 유형의 많은 하나님 대적자를 의미합니다.
(2) 그런데 같은 바울의 서신이면서도 종말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뚜렷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살후2:3절 말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라고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바울은 인류의 종말에 주님의 재림이 있기 직전에 일어날 징조에 대하여 '먼저 배도 하는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배도는 음녀교회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이 자가 적그리스도의 실존 인물인 것입니다. 이 자는 요일2:22절에 나오는 많은 적그리스도와는 전혀 다른 독 112 \ 13:3-4

립적인 단일 인물인 것입니다.

2.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
우리가 만약 적그리스도가 어떤 모양으로 등장하느냐에 대한 계시를 모른다면 적그리스도가 등장해도 그 자에 대하여 아무런 경계심도 갖지 아니 할 것입니다.
(1) 먼저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등장 시기가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주의 재림의 날에 대하여 먼저 배도 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는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살후2:1-2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주의 재림 직전에 있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2) 적그리스도의 결정적인 징조로 보여 주시는 말씀이 계13:3절에 나옵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말씀처럼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라고 하는 예언적인 징조에서 이 자의 정체를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그 머리에 상처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이 상처에 대하여 계13:14절에서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머리에 입은 상처는 칼로 피격(被擊)을 당한 상처를 말합니다. 이 사건으로 온 세계는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자가 피격을 받아 죽은 일은 당장에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겠지만 그보다는 죽었던 이 자가 다시 살아나는 사건으로 더욱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3절 끝에서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자는 전 세계 인류로부터 이상히 여김을 받으며 그를 따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이 자에게 눈을 돌려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는 인류의 메시야도 아니며 인류를 전쟁과 기근의 재앙에서 건져낼 지도자도 아닙니다.
이 자가 등장하면서 기독교 안에서 배도하는 일이 급격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 자가 유럽 지역의 열 나라를 규합하여 열 뿔을 형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 자가 열 뿔을 이끌고 세계 정치의 중앙 무대에 우뚝 서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우게 될 것입니다. 이 자가 예루살렘에 들어가 거룩한 곳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여 자존(自尊)할 것입니다.
결론 : 여러분, 지금 인류의 역사는 주의 재림의 날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려는 사탄의 음모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처럼 예언해 주는 적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하여 살펴볼 수 있는 예언의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어느 날 이런 자가 계시의 말씀대로 우리의 눈앞에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는 주의 재림이 더 이상 지체되지 않을 것입니다.

113 \ 13:3-5

(57) 적그리스도가 받은 권세
(요한계시록13:3-5)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그의 활동은 종말론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적그리스도를 제쳐놓고는 인류의 종말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이 자의 등장으로 종말의 모든 계시가 실제로 전개되며 이 자의 출현을 전제하지 않고는 주님의 재림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는 이 자에 대한 등장으로부터 활동상과 그의 최종적인 운명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짐승의 등장과 인류의 환호
적그리스도는 역사적 사건으로 정해진 시기에 뚜렷한 모습으로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는 일로 적그리스도로서의 그의 활동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1) 우리가 가장 주목할 바로는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란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존재나 그의 등장에 관한 일에 있어서 완전히 비밀에 부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을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는 말씀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 온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중에 공개적으로 죽었다가 공개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활동하는 일은 유사이래 이 적그리스도의 경우가 초유의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증거 이상, 더 명확하고 분명한 증거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에서 이 자에게 대하는 태도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일을 '이상히 여기면서 이 자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용이 이 자에게 자신의 권세까지 주므로 용과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런 경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계를 영적으로 정복하고 자신에게 굴복시키는 일에 무력을 사용치 않아도 됩니다.
적그리스도의 권세는 이처럼 사탄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이며 온 인류의 신망을 두텁게 받고 있기 때문에 이에 능히 그에게 반항하거나 도전할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인류는 이 짐승에 대하여 4절에서 말씀해 주는 대로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찬양하면서 이 짐승에 대하여 열광적인 갈채를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114 \ 13:3-5

적그리스도는 사탄으로부터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마흔 두 달이란 기간은 혹은 1260일,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등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런데 이 기간이 실제적 기간이냐 아니면 상징적 기간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하게 다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기간이 실제적으로 계산되는 날 수인 것이 분명한 것은 '마흔 두달'이나 '1260일'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기간 중 어느 한 가지만을 택한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기간으로 중복되어 계시하셨다는 사실에서 이 기간이 실제적인 기간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구약에서는 적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가하는 종교적 핍박에 대해 말씀해 주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에 와서도 이런 기간이 여러 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계11:2절에 나오는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한 사건과 동일 사건입니다. 특히 이 기간에 대해서 계12장에는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는 기간으로 '1260일간'이 나옵니다. 이 기간은 적그리스도가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는 마흔 두 달간과 동일한 기간입니다. 12:14절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역시 후 3년 반 동안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를 받는 기간으로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받은 마흔 두 달과 같은 기간인 것입니다.
이 시기는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끝난 후부터 계산되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는 하나님의 교회가 예비처로 옮겨진 후부터 계산되는 기간입니다. 이 시기는 7년 환난 중, 절반이 지난 후부터 계산됩니다.
결론 : 5절에서 짐승이 '큰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용으로부터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받은 후, 자신을 하나님으로 지칭하여 자존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이처럼 인류의 종말에 개선 장군 모양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여 전 인류들로부터 경이로움과 숭배함을 받으며 신적 권세로 세상을 지배할 것입니다. 얼마 안 가 세상 사람들이 미칠 듯이 환호하고 영접하는 위대한 인물이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할 것입니다. 이 인물의 특징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움직일 수 없는 징조로 적그리스도의 등장 모습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실 것입니다. 이 자를 주목하시고 경계하십시오. 이 자에게 결코 신적 경배를 드리지 말며 온 세상이 이 자를 향하여 '호산나 호산나'를 외쳐 대도 우리는 이 자에게 동조하거나 추종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115 \ 13:6-10

(58) 성도들 이긴 짐승의 권세
(요한계시록13:6-10)

적그리스도의 모습은 7년 환난의 시발점인 한 이레의 언약의 체결에서 그의 정체가 분명하게 나타나지만 그의 등장은 그 훨씬 이전에 역사의 무대 위에 나타나 한 이레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한 기반을 다져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인가 어느 유력한 유럽의 한 나라의 수상이 흉기에 의한 저격으로 죽임을 당하는 놀라운 사건의 소식을 매스컴을 통하여 긴급 뉴스로 접하게 될 것입니다. 온 세계가 경악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충격적인 일은 죽었던 그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속보인 것입니다. 이 때 온 세상은 너 이런 일을 이상히 여기면서 이 자를 따르고 이 자에게 신적 경배를 드리게 되며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환호할 것입니다.
이 자는 이런 권세를 가지고 첫째 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게 되며 두 증인들과의 싸움에서 예언의 사명자를 죽이게 되고 후 3년 반 동안의 통치 아래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의 싸움을 벌려 성도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시련을 줄 것입니다.

1.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적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왜 인류의 종말에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시키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이유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탄이 내보내고 사탄이 권세를 주므로 활동하지만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의 허락하신 일로 실인즉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진행되는 일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고 그 재림을 통해서 온 인류를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에서 건져내야 할 그의 백성들과 심판 받아야 할 심판의 대상자들을 구별시켜야 하시는 것입니다. 이 구별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짐승의 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만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자로 삼아 심판의 불을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표는 아무에게나 주는 표가 아닙니다. 하나의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짐승이 적그리스도를 등장시켜 이 자에게 큰 권세와 능력과 보좌를 허락하시고 온 인류들로 이 자를 그의 메시야로 영접하여 신적 경배를 받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인 짐승에게 이런 경배를 하는 자들의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찍어 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1) 6절에서 이 자는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이 자는 사탄의 대리자로 인류들에게 군림하여 사탄의 권세로 활동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 입을 벌려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이 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놀라운 능력과 이적과 온 세상의 이단자들과 거짓 선지자들과 음녀 교회에 속한 거짓된 주의 종들과 많은 신학자들과 학계의 유명 인사들과 세상의 정치가들을 총동원하여 이러한 일을 감행할 116 \ 13:6-10

것이기 때문에 온 인류는 '호산나'를 외치며 적그리스도를 환호하고 짐승의 표를 즐거이 받으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조할 것입니다.
이 자가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하는지 계13:8절에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더라'고 한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그의 심판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하시는 뜻을 따른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이 같은 비밀을 잘 깨닫고 이 자에게 경배하는 일이나 짐승의 표를 받는 일에 동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 이 자는 '하나님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장막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자들이란 천국에 있는 모든 존재를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적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도 자신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3)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이긴다고 한 말은 최종적인 승리를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세로 교회를 핍박하고 두 증인을 죽이며 또 후 3년 반에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시험과 핍박을 주는 것을 이긴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이 자는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권세는 5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권세로 '마흔 두 달 동안'의 제한된 기간의 권세입니다. 그리고 이 기간이 만료되면 자신의 최종적인 운명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다스릴 권세는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 짐승에게 경배할 자는 누군가?
짐승에게 경배하므로 받는 '짐승의 표'는 멸망의 표입니다. 8절에서는 짐승에게 경배하여 '짐승의 표'를 받을 대상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0절 말씀에서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다고 하신 말씀은 성도들은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경종을 명심하고 짐승을 따르거나 짐승에게 경배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결론 :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이 짐승이라고 하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짐승의 표'를 준다는 이 두려운 사실을 깊이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큰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과 싸우려고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와의 투쟁을 각오하고 신부의 단장을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117 \ 13:11-15

(59) 거짓 선지자의 등장
(요한계시록13:11-15)

짐승인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등장할 때에 이르게 되면 적그리스도를 보좌해 주고 그에게 경배를 시키기 위해 사탄의 권세를 받은 다른 또 하나의 동반자인 파트너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에 대하여 본문 11절에서 '또 다른 짐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짐승과 구별시키기 위해 또 다른 짐승이라고 구분 짓고 있습니다. 짐승은 1절에서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왔다'고 한대로 바다에서 나왔지만 이 또 다른 짐승은 바다가 아니라 땅에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이 자의 이름이 철저하게 숨겨져 있지만 계19:20절에서 이 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다'는 말로 이 자의 정체가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 자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 거짓 선지자가 하는 일
종말에 적그리스도와 함께 활동할 거짓 선지자는 어떤 존재인가? 이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 자의 등장에 대하여 11절에서 '또 다른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 역시 짐승이기는 하지만 적그리스도와는 명백하게 구분된 짐승입니다. 적그리스도는 바다에서 나왔지만 이 자는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우리는 적그리스도의 위치가 거짓 선지자보다 얼마나 높은가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도와주는 보좌 역만을 담당하며 적그리스도를 높이고 그에게 신적 경배를 시키는 일을 사명으로 삼고 활동하는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에게는 거짓 선지자의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다고 했습니다. '두 뿔'은 이 자에게 주어진 사탄의 권세와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말하지만 '새끼 양'은 거짓 선지자임을 숨기고 자신을 선한 목자로 위장한 모습입니다. 다음에 이 자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에 대해서 '용처럼 말하더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그의 입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용의 말을 뱉는 것입니다. 용이란 사탄을 일컫는 마귀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의 종과 사탄의 종과의 구별은 학식이나 인물이나 사랑으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로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권세와 능력으로 갖가지 이적을 행하여 자신을 진짜 선지자로 보일 것이며 음녀 교회를 통할(統轄)하고 세상의 모든 종교 세력을 단일화시켜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영접하게 하는 일을 주도 할 것입니다. 이 시기는 적그 118 \ 13:11-15

리스도가 죽었다가 살아난 후가 되고 한 이레의 언약까지 맺는 놀라운 업적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거짓 선지자의 활동은 세상에서 큰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3) 이 자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한다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는 그들의 자리만 다를 뿐 실상인즉 한 뿌리에서 나온 한 동류들입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이 거짓 선지자에게 자신의 권세를 주므로 그 자로 그 권세를 가지고 활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짐승의 우상을 만들라
우리가 깊이 명심해야 할 말씀이 14절에 있습니다.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고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주(使嗾)와 강권으로 7년 환난 중에 세워지는 것이 바로 '짐승의 동상'입니다. 이 자는 '적그리스도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명합니다.
이 자는 놀라운 이적을 행합니다. 13절 말씀에서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란 말은 많은 이적 중에 더욱 놀라운 이적이란 뜻입니다. 이 거짓 선지자가 명하는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는 명령은 즉각적으로 시행될 것입니다. 우상(偶像)이란 동상(銅像)으로, 이 때 적그리스도의 신상(神像)을 거대하게 세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세우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 적그리스도의 우상에 사탄의 생기가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두 증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적그리스도의 우상에게 생기를 넣으니 그 우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된 것처럼 사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래도 아직 적그리스도에게 신적인 경배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핍박이 가해지는 것입니다.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고 했습니다.
결론 : 얼마 안 가 이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명심하고 그런 일이 세상에 일어나기 전부터 경계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이 같은 일로 인하여 온 세상이 떠들썩하고 그 자를 따른다 해도 여러분은 오늘의 이 말씀을 명심하여 진리를 견고히 붙들고 신앙의 지조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9 \ 13:16-18

(60) 666 짐승의 표
(요한계시록13:16-18)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사탄의 사자로 쓰임 받을 자로 이 세상에 머리를 쳐들고 올라오는 두 짐승의 모습을 계13장에서 보았습니다. 한 명은 1절에서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으로 이 자를 붉은 짐승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보통 적그리스도로 불려집니다. 다른 또 한 명은 11절에서 땅에서 올라오는 다른 짐승인데 이 짐승을 '다른 짐승'이라고 한 것은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과 구별되었다 것을 의미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짐승은 새끼 양처럼 생긴 짐승인데 이 자가 계19:20절에서 '거짓 선지자'라고 불려지는 인물입니다.

1.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방법
세상은 거짓 선지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적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집니다. 왜냐 하면 이 거짓 선지자는 실로 엄청난 이적과 기적을 행하면서 온 인류로 적그리스도를 인류의 메시야로 섬기게 하며 그 앞에 경배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사탄이 거짓 선지자를 등장시키는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신적 경배를 시킴으로 모든 인류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 일을 거짓 선지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적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권세로 이루는 것입니다.
(2) 거짓 선지자는 이 일을 사탄의 방법을 따라 그가 받은 능력과 권세로 이룹니다. 이 일을 위해 거짓 선지자는 사탄으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게 됩니다. 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했다'고 했습니다.
우상이 말하는 일은 아마 인류의 역사상 초유의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적그리스도의 등장에 대해 깨어 있는 성도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말씀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 때는 이미 적그리스도의 명성과 위세가 전 세계에 미치고 있을 그런 시기일 것이기 때문에 이 같은 우상의 여파는 굉장할 것입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이곳 에 찾아와 그 우상 앞에 신적인 경배를 드릴 것입니다. 아마 이 같은 적그리스도의 우상이 세워질 시기는 전 3년 반 마지막 시기가 될 것입니다.

2. '6 6 6' 에 나타난 짐승의 표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로 모두 이 표를 받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종말에는 인류들을 '알곡'과 '쭉정이'로 가르십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심판을 받게 되어 있지만 주님이 오실 때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심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120 \ 13:16-18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 간에는 어떤 구별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별이 '짐승의 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는 일에 적그리스도는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 하나의 방법이 '물건 매매의 금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에 모든 물건의 매매가 금지된 상태에서의 생존이란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가뭄이 극심할 때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명심할 일은 이 짐승의 표는 물건 매매에 있어서 하나의 특권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표는 원하는 누구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는데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에게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신적인 경배를 드리고 적그리스도의 우상 앞에 경배하므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적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로 받아 드리는 확실한 사탄에 대한 신앙 고백이 따라야 이 표를 주기 때문에 후 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은 이런 경제 체제 아래서 살아갈 길이 막연할 것입니다.
(2) 그런데 이 짐승의 표에 대하여 '오른손에나 이마'에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시기에는 세계 주민들의 신상 기록이 담겨진 증명서나 현금카드를 반드시 지참하게 할 것인데 분실이나 위조나 허위 기재를 못하도록 오른손이나 이마에 전자 인식으로 표시하는 방법을 채택할 것입니다.
(3) 그런데 이 짐승의 표에 대하여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 6 6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6 6 6'이란 수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6이란 하나님의 창조의 수효입니다. 6은 7과 대조되는 수입니다. 7은 하나님의 수요 안식의 수입니다. 6은 멸망의 수로 믿음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로 7에 미칠 수 없는 수입니다. 그러나 7은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안식 세계의 숫자입니다. 6은 하나님의 심판의 수요 7은 하나님의 구원의 수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말씀은 6에서 7의 자리로 옮겨졌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6이란 수는 결론적으로 사탄의 삼위를 가리킵니다. 처음 6은 사탄인 붉은 용을 상징하고 두 번째 6은 붉은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세 번째 6은 새끼 양으로 등장하는 거짓 선지자를 상징합니다. 7년 환난 기간은 이들 삼위(三位)에 의해 이 세상이 지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인류의 종말에 반드시 있습니다. 이 짐승의 표를 받게 하기 위해 이 표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물건의 매매를 금지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 엄격하게 시행될 것입니다. 이 법에 의해 이 때까지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까지도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적그리스도에 대한 신적 신앙고백과 함께 그에게 신적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121 \ 14:1-3

(61) 시온산에 선 144.000
(요한계시록14:1-3)

요한계시록에서 144,000에 관한 문제만큼 그 해석이 구구하며 해석하기가 난해한 구절도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석이 잘못되면 종말 계시의 전체의 방향이 잘못되기 때문에 이 문제의 해석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가 이미 7장에서 언급되었었는데 14장에 왜 다시 나타났느냐는 문제를 알아보고 그들의 자격이 자세히 나와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144,000명이 보여주는 더 깊은 계시의 뜻을 배워 올바른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시온산에 나타난 144,000명
계시록 7장과 14장은 144,000의 계시적인 맥을 이어주는 장입니다. 7장에서는 이스라엘 각 지파라고 하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을 뽑아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는 계시가 나오고 14장에서는 이마에 인 침을 받은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자격이 나오는 것입니다.
(1) 먼저 이들은 일반적인 성도들과는 구별된 자들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7장에 나오는 144,000명을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의 총 수효라고 해석할 때, 14장에 나오는 144,000명도 같은 해석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4절 이하에 나오는 이들의 자격은 일반 성도들과는 거리가 먼 요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자격요건이 다섯 가지로 나오는데 그 다섯 가지가 모두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희게 씻은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아니라 그들의 신앙 생활의 행위로 말미암은 자격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7장에서 그 이마에 인 맞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 왜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후 3년 반의 대환난에 떨어지지 않도록 회개시켜야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두 증인을 통해서 1260일간의 기간 동안 예언의 사역으로 이루게 하십니다. 이들이 그 예언을 마칠 때,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하게 되며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반만에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첫째 부활자로 살아나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을 듣고 올라간 곳이 바로 계14:1절에 나오는 하늘의 시온산입니다.

2.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명
122 \ 14:1-3

요한은 하늘에서 두 가지 소리가 들려 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요한이 이 시온산에서 들은 음성은 이들 144,000의 하나님의 종들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부르는 새 노래였습니다. 요한은 이런 노래를 들어본 일이 없었으며 3절에서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을 왜 '땅에서 구속함을 얻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까?
(1) 구속(救贖)이란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영적인 의미에서의 구속이 있습니다. 이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죄사함과 구원에 연결되는 말입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때의 구속(救贖)은 죄악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에 관해 다른 또 하나의 의미를 주는 구속이란 말이 있습니다. 롬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구속은 분명 영적 구속, 우리의 죄 사함으로 오는 구원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소망으로 기다리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엡4:30절에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 구속 역시 영적 구원을 의미해 주는 구속인 것이 아니라 몸의 구속을 의미하는 부활을 가리킨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이들 144,000명에게 적용시킨 구속은 이 땅에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144,000은 이미 부활한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이들 부활한 성도들 외에는 새 노래를 배울 자가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첫째 부활자들입니다. 이들 첫째 부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순교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바로 두 증인이 이에 해당합니다. 두 증인들은 계11:7절에서 1260일간의 예언을 마친 후,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했으며 3일 반 후 에 하나님의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부활 승천하게 됩니다. 이들이 승천한 후 올라간 곳이 바로 하늘의 시온산입니다.
결론 : 이들은 하늘에 올려 간 후, 하늘 보좌가 있는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양도 그 곳에 서 계십니다. 이제 얼마 후에 주의 재림을 알리는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들려 올 때, 그리고 하나님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여섯째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을 때, 이들은 주님과 함께 하늘의 흰 말을 타고 이 땅에 내려 올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이 오실 때 휴거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복된 성도의 반열에 서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3 \ 14:4-5

(62) 144.000의 첫 번째 자격
(요한계시록14:4-5)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144,000명이 누구인가? 그들은 인류의 종말에 어떤 사역을 하는 자들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들 144,000명의 정체를 알려면 먼저 그들의 자격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문제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계시록 7장에서 나온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에 관한 난제가 여기서 다시 한 번 제기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들로 144,000명이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配慮)에서 나온 것입니다.

1. 144,000명의 다섯 가지 자격
4절과 5절에 나오는 자격 조건은 144,000명에 관한 것입니다. 4절에서 '이 사람들은'이란 말에서 144,000명이 가지고 있는 자격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들의 자격을 분류하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
②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
③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
④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
⑤ 흠이 없는 자.
이처럼 나타난 이들 144,000명의 자격 조건을 볼 때, 이들이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계시록 7장에서 인 친 이들 144,000명이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선발된 사람들이지만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12지파를 가리킨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이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의 선발 자격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이 같은 자격을 볼 때, 이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 수효가 아니란 사실임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과도 다른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섯 가지 요건은 종말의 사명자로서 가져야 할 실천적인 의로운 생활의 요건들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이 높을수록 그들의 믿음의 차원이 높아야 하고 이런 믿음의 사람은 그들의 신앙 생활에 나타나는 행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종말에 하나님에 의해 예언의 사명자로 쓰임을 받을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자격의 기준이 없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이곳에 나와 있는 144,000명의 자격 조건은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영적 자격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활에 나타난 신앙적인 결실에서 얻은 자격인 것입니다.
124 \ 14:4-5

2.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
144,000명의 자격 중에 그 첫째 번 자격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여자'란 영적 의미의 여자로 '음녀'를 말합니다. 음녀란 진리에서 떠나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로 '음녀교회'라고 부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교회를 여자로 비유해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음녀라고 하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다른 또 하나의 여자가 있습니다. 이 여자에 대해서 계12:1절에서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해를 입은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것을 의미합니다. 이 교회가 종말에 진리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며 적그리스도의 무리와 싸우는 진실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의 반열에 들어가려면 이들 음녀의 무리와 타협하거나 교회에서 그들을 용인해서는 안됩니다.
신앙의 정절이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되려면 이세벨의 교훈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모든 면에서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한 것으로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여자 이세벨이 종말에 세상에 등장하여 음행의 포도주로 세상을 미혹할 음녀인 것입니다.
신앙의 정절이 있는 하나님의 종들은 현실에 안주(安住)하지 않기 위해 힘씁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고 힘씁니다. 주의 재림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참습니다. 그의 목회의 표어는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리고 교인들로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항상 진리의 말씀만을 먹이며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예언의 복된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놀라운 상급을 바라봅니다. 종말의 종들이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순교가 첫째 부활의 영광에 속한 부활이며 주님과 함께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할 축복임을 믿고 이 상급에 큰 기대를 가지고 그의 남은 목회에 자신의 생애를 바칩니다.
결론 : 144,000명의 자격은 그 첫째 조건이 신앙의 정절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이 신앙의 정절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진리에 선 우리의 신앙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가 반드시 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배도세력이 교권(敎權)을 장악하고 강단(講壇)을 점령하며 하나님의 교회로 음행의 포도주를 먹여 취하게 할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들은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 먹고 예언의 사명자로서의 소명을 받고 음녀와 동조하거나 그들의 유혹에 마음의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의 목회자들이 이런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25 \ 14:4-5

(63) 어린양만 따르는 자
(요한계시록14:4-5)

우리는 144,000명의 존재가 종말론 해석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들의 자격에 대하여 신중하게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 144,000명이 가지고 있는 자격을 통해서 이들의 정체가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예언의 사역자로 선출된 두 증인들임을 알 수 있으며 이처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진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배려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어린양이 인도하는 길
하나님께서 종말에 예언의 사명자로 쓰시는 종의 첫째 자격은 신앙의 정절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의 자격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그의 음성으로 그의 양 무리를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요10:4-5절에서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 대해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을 이끌어 나갈 하나님의 종들은 특히 우리의 목자장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음녀는 이 음성을 외면하고 타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음녀란 진리를 저버린 목자를 말하고 다른 음성이란 적그리스도의 사상을 말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요5:43절에서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다른 사람이란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를 말하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영광의 메시야의 가면을 쓴 적그리스도가 그들 앞에 나타날 때는 그를 영접할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2) 어린양의 인도하심을 따르려면 그의 말씀인 진리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말은 곧 그의 말씀을 따르는 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가 가는 길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비록 어린양을 따라간다고 해도 사실인즉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많은 이단자들이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입니다.

2. 어린양만 따라가는 자
126 \ 14:4-5

계17:14절에는 144,000명의 자격에 대하여 다른 형태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주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아마겟돈에 내려오는 하늘 군대를 말하는데 이 하늘 군대는 바로 예언의 사역을 마치고 순교하여 첫째 부활자로 하늘로 승천한 순교 성도들로 144,000명을 의미합니다.
(1) 이들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은 하늘로 승천한 후, 하늘의 시온산에 서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입고 그 중에서 종말의 종으로 빼내심을 얻은 자들로 이들을 '진실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그 부르심에 순복한 종들입니다.
순교자의 사명을 가진 하나님의 종들은 주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절대로 거역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 순교의 길임을 알고 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그 길에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걸어가는 것입니다.
(2) 이 같은 주의 부르심을 듣고도 핑계를 대는 자는 어린양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 얽매이기 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고 단연 끊어야 하는 것입니다.
(3) 어린양만 따라가려면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제자될 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가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가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눅14:26-27).
종말의 예언의 사명자로 활약할 주의 종들에게는 수도 없이 많은 환난과 핍박과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다. 펴 놓인 작은 책을 먹으니 입에는 달지만 먹은 후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고 한 말씀처럼 쓴잔을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쓴잔이 바로 이들이 걸어갈 순교의 전과정인 것입니다.
결론 : 언제나 하나님의 종들은 어린양만을 따라야 하겠지만 종말에 살아가는 종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펴 놓인 작은 책을 받아먹고 주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양 무리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는 종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이 같은 하나님의 종들만이 144,000명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들 144,000명은 찾기 힘들 것 같지만 하나님에 의해 예비하신 이 같은 사명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127 \ 14:4-5

(64)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요한계시록14:4-5)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특별한 자격의 기준이 있습니다. 그 자격의 기준을 본문 4절과 5절에서 다섯 가지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세 번째 자격 기준이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3절에서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이란 말씀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구속을 받았다'는 말씀과 '처음 익은 열매'란 말씀의 의미를 잘 파악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다.
이 사람들 즉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1) 구속이란 말은 성경에서 두 가지로 구분해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지난번 이 144,000명에 대하여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인'이란 구절에서도 잠깐 언급한 일이 있었지만 구속(救贖)이란 말의 한 가지 뜻은 구원에 적용시키는 말입니다. 골1:14절을 보면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구속이란 말은 이처럼 우리의 영적 구원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놀랍게도 성경에서 이 구속이란 낱말이 구원에만 국한하여 사용된 것이 아니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23). 이곳에 나오는 구속은 영적 구속, 우리의 죄 사함에서 오는 구원을 의미해 주는 말이 아닙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란 말씀이 이 사실을 증거해 줍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영적 구속인 구원을 의미하지만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는 구속은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으로 기다리는 다른 또 하나의 구속으로 '부활'을 의미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구속'이라 말은 그리스도인들의 육적 구속을 의미하는 부활을 말합니다.
부활이 우리들의 구속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전15:16절 이하에서 부활의 의미에 대해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우리의 영적 구속인 구원은 우리의 육적 구속인 부활과 이처럼 직결되기 때문에 부활 역시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 처음 익은 열매
이들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자격으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라고 말씀해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구속(부활)을 받은 이들 144,000명과 '처음 익은 열매' 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처음 익은 열매'란 말은 첫째 부활로 살아난 이들 144,000인들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고전15:22-27절까지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의 순서가 나옵니다. 이 순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로 꼽았고 다음에 '그에게 붙은 자'로 두 번째의 부활을 말씀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 '그 후에는 나중이니'란 말씀에서 세 번째의 부활의 순서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연구할 때 조심해야 할 일은 여기 나오는 부활의 순서 중에는 불신자의 부활이 들어가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22절에서 이 부활에 대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부활)을 얻으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있을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계20:4-6절까지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부활자'가 있고 이들 첫째 부활자가 아닌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의' 부활이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불신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첫째 부활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부활자들은 순교자들입니다. 교회에는 순교자들 뿐 아니라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아니한 성도들도 있는 것입니다. 괄호 안의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이란 바로 이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까지 잘못된 신학적 편견(偏見)으로 알고 믿고 있었던 첫째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전체적 부활이 아닙니다. 특수한 성도들의 부활인데 이들에 대하여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명시된 것처럼 첫째 부활자는 순교자들의 부활을 말합니다. 순교자들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보다 시기적으로 천년간 앞서 있습니다. 순교자들은 그들의 위대한 죽음에 대한 상급으로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하는 축복을 받기 위해 일반 성도들보다 천년간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영화로운 몸으로 왕권을 가지고 천년왕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왕국에는 지상에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 있었던 모든 성도들이 '살아 있는 몸'(변화 받은 몸은 아니지만 죄에서 벗어난 몸)으로 들어가 회복된 에덴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들은 결코 부활체나 변화체로 이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에 백보좌 심판대를 거칠 때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게 되고 천년왕국에서 살아 있는 성도들의 홀연한 변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계20:5절에서 순교자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성도들에 대하여 '그 128 \ 14:4-5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순교자를 둘로 구분하고 있는데 한 종류의 순교자에 대해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순교자들입니다. 순교자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에 있습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두 번째 등장하는 사람들이 왜 부활한 성도들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누구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계6:9-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제단 이래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사람들은 순교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피 값을 신원해 달라는 간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계20:4절에서 첫 번째 등장하는 순교 성도들과 같은 순교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기를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는 말씀에서 다른 또 한 종류의 순교자의 무리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환난 중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순교를 당할 성도들인데 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로 이들이 두 증인의 사역을 마치고 적그리스도에 의해 피를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란 이 순교의 대상자가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서 '살아서'란 말은 '에제산'으로 죽었다가 살아난 대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헬라어나 영어 성경이나 일본어 성경으로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순된 부활의 지식을 새롭게 정리해서 성경에 계시된 대로 바로 잡아야 합니다.
결론 : 144,000명의 우리 하나님의 종들은 이처럼 순교적인 사명을 이루어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시온산에 올라가 새노래를 부르고 있는 이들 144,000명은 이처럼 첫째 부활자로 이미 순교의 사명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종말에 하나님께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은 이들처럼 순교의 사명자여야 하는 것입니다.


129 \ 14:4-5

(65) 첫째 부활의 시기와 마지막 부활
(요한계시록14:4-5)

부활에 관한 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기 때문에 이 소망에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소망을 견고히 붙잡고 승리적인 믿음의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활 문제 중에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바로 '첫째 부활'에 관한 것입니다.

1. 첫째 부활과 마지막 부활
'첫째 부활'이 순교자들의 부활이라면 또 있을 성도들의 '마지막 부활'에 관한 성경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1) 첫째 부활에 관한 언급은 전 성경에서 유독 요한계시록 20장에만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의 일차적인 해석은 계20장에서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언급된 첫째 부활자가 순교자들이란 사실을 다음 세 가지 사실로 증거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는 첫째 부활이라'는 말씀이 보여 주고 있는 뜻입니다.
다음에 '살아서'란 말은 '에제산'으로 '살아나서'란 의미가 됩니다. '순교자의 영혼들과'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상태는 아직 부활한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들에 대한 부활이 '살아서'란 말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살아서'란 말은 순교자들의 영혼들과 아울러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함께 포함되어 '살아났다'는 의미로, 두 경우 모두 순교자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20:5절에 나오는 괄호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말씀에서 순교자들 외에 다른 성도들의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점으로 보아 첫째 부활자가 누군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2) 부활에는 '마지막 부활'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활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둘째 부활'이 아닙니다. 첫째 부활을 전체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비 그리스도인의 부활을 둘째 부활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지만 둘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3) 우리는 부활의 순서에 대한 성경적인 증거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고전15:22-26절까지의 말씀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①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②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③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④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⑤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요 ⑥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130 \ 14:4-5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우리는 위의 말씀에서 부활의 확실한 시기와 그 순서를 알 수 있습니다.
①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 온 인류가 아담 안에서 죄인이 되어 죄 값인 사망을 선고받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것같이'란 말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던 것처럼'이란 뜻입니다. ②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사망은 아담으로 왔지만 모든 사람의 삶(부활)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① 의 경우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처럼, ② 의 경우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③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 '그러나' 라고 표현한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부활이 있지만 그러나 그 부활에 순서가 있어서 순서대로 부활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④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 부활의 순서는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⑤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 '다음에는' 이란 말은 '먼저' 첫 열매로 이뤄진 그리스도의 부활 다음에 이뤄질 부활의 순서란 뜻입니다. ⑥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 '그 후에는 나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후에란 말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의 부활이 지난 후에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서로 말하면 '세 번째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이 그 후의 부활이 계20:5절에 나오는 부활에 해당됩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는 말씀이 그 후에 이뤄질 마지막 부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천년왕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부활이어야 한다.
부활에 관한 논의는 천년왕국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부활의 양상에 대하여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무 천년설의 경우, 부활 문제는 주의 재림으로 끝나기 때문에 둘째 부활이니 마지막 부활이니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도 없고 필요도 없지만 전 천년설의 경우는 주의 재림이 있은 후에도 인류의 역사가 천년간 계속되기 때문에 그 후에 있을 부활 문제와 변화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것입니다.
결론 :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부활은 두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순교자의 상급 부활로 나타나는 첫째 부활입니다. 이들은 모든 시대의 순교자들로 천년왕국 이전에 부활하여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 후의 부활은 마지막 부활로 천년왕국이 지난 후, 주님께서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 그 때에 모든 성도들의 '생명의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때 불신자들의 '심판의 부활'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131 \ 14:4-5

(66) 공중 휴거의 시기와 모습
(요한계시록14:4-5)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첫째 부활에 관한 성경적인 많은 증거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재림 시, 이 땅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떤 과정으로 천년왕국에 참여하게 되는 것인가? 이 문제는 자연히 성도들의 공중 휴거 문제와 연결됩니다.

1. 공중 휴거란 무엇인가?
'공중 휴거'란 낱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살전4:17절에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신다'는 말씀에서 공중 휴거란 말이 나온 것입니다. 공중 휴거의 시기에 대해서 많은 이견이 있습니다. 세대주의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7년 환난 전 휴거'를 주장합니다. '환난 중간 휴거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환난 후 휴거설'이 있습니다.

2. 공중 휴거의 전모
그러면 여기서 공중 휴거의 전모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공중 휴거에 대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그를 영접하는 장소가 공중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의 주님을 왜 지상에서 영접하지 않고 공중에서 영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이 심판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이 지구상에 내리시는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입니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은 지구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지구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구의 대 폭발이 일어납니다. 온 지구가 활화산(活火山)이 되어 지구 자체가 불덩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 그의 택한 백성들을 이 같은 최종적인 심판 가운데서 건져내시는데 그 방법이 공중 휴거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상에는 살아 남아 있을 공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중으로 끌어 올려 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공중 휴거는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피하게 하시려고 그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특별하신 은혜의 역사입니다.
132 \ 14:4-5

(2) 공중 휴거 시 성도들은 어떤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 될 때 '홀연히 변화'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살전4장에 나오는 공중 휴거는 분명히 주의 재림 시의 사건입니다. 16절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강림하시리니'란 말씀으로 주의 재림의 시기에 있을 사건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전15장에 나오는 홀연한 변화와 부활 사건은 주의 재림의 시기가 아닙니다. 50절에서 그 시기를 명시해 주고 있는데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혈과 육'이란 살아 있는 생존 성도들의 육체를 가리킨 것이요, '썩은 것'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처럼 혈과 육을 가진 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으며 또 죽어서 썩은 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여기 나와 있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씀해 주는 '유업으로 얻을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형태의 나라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두 가지로 추려집니다. 하나는 '천년왕국'의 경우요, 다른 하나는 '천국'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인들이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년왕국은 이 나라에 가기까지 잠깐(천년 동안) 거쳐가는 이 땅위의 회복된 에덴에서의 생활을 이루는 나라입니다.
천년왕국은 영으로 살아갈 곳도 아니며 부활한 신령한 몸으로 살아가는 곳도 아닙니다. 지상이 새롭게 변화되어 죄와 저주가 없는 나라가 이뤄져 새로운 동산을 이루게 되는 나라가 천년왕국입니다. 이 나라는 회복된 에덴 동산에 불과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변화 받지 않은 몸으로 공중으로 휴거 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이 같은 의문은 하나님의 말씀도 권능도 모르는데서 나온 오해입니다. 미국의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우주인 암스트롱을 태우고 달세계를 왕복했습니다. 인간의 과학의 능력으로도 벌써 30년 전에 달나라를 왕복했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 몸 그대로를 가지고 공중으로 휴거 시키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 것입니까? 행8:39-40절 말씀을 보면 빌립 집사는 에치오피아 내시에게 세례를 준 후, 성령이 빌립을 이끌어 '아소도'로 옮겼지만 빌립은 변화 받지 않았습니다.
결론 : 만약 성도들의 공중 휴거가 변화 받은 몸으로 이뤄진다면 성경에 있는 천년왕국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부활한 몸, 변화 받은 몸이 살아갈 곳은 우리가 유업으로 받을 천국이지 천년왕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은 땅을 개간하고 씨앗을 뿌리며 살아가는 곳이요 가정을 가지고 자손이 번창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곳은 또 한차례의 죽음의 과정과 심판의 과정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는 천년왕국에서 죄로 오염 받기 이전의 새로운 몸(죄와 저주에서 벗어난 회복된 몸)을 가지고 새로운 땅, 천년왕국에서 천년간 살아갈 것입니다.
133 \ 14:4-5

(67) 진실하고 흠이 없는 종
(요한계시록14:4-5)

원래가 144,000명은 7장에서 대두된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14장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격을 통해서 그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계14장은 바로 이 같은 맥을 이루는 144,000명의 해결장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4,5절에서는 144,000명의 다섯 가지 자격을 보여 주는데 이 자격으로 볼 때 이들이 유대인도 아니요 구원받은 성도들의 총 수효도 아니며 종말에 순교의 사명을 가지고 펴 놓인 작은 책의 예언을 전달하는 예언의 사명자로 일할 '우리 하나님의 종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종
종말에 하나님께서 예언의 사명자로 쓰실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자들'을 사용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 하나님은 진실한 사람을 그의 사역자로 쓰십니다. 환난 날에 증거될 하나님의 말씀은 '펴 놓인 작은 책'으로 주의 재림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짐승의 우상과 그의 표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이 펴 놓인 작은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에 근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입에 거짓말이 없는 진실한 종을 종말의 사역자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종이 거짓말하는 일은 하나님께 용납 받을 수 없습니다.
(2) 진실한 종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거짓말을 첨가하지 않습니다. 복음에는 거짓말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진실에 그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의 기반이 약해지거나 진실성이 결여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3) 누가 거짓말하는 종이냐는 분별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기적으로 구분되어 나타납니다. 인류의 종말에 이를수록 사탄은 기적과 이적을 통해서 미혹의 손길을 뻗칩니다. 거짓 것을 믿게 하는 일에 기적은 최상의 방법입니다. 살전2:9절과 10절에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했을 때,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의 사역에 대해서 이처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예수님은 마25:45절 이하에서 진실한 종들과 거짓된 종들의 구분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과 '악한 종들'과의 구분에서 이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지혜 있고 충성된 종들은 그의 입에 거짓말이 없습니다. '지혜 있고 충성된 종'이란 말 자체가 거짓 134 \ 14:4-5

과는 거리가 먼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악한 종들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들의 메시지에는 주의 재림의 소망이나 경종이 없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이나 활동에 관한 메시지도 없습니다. 주의 재림과 함께 이 땅위에 세워질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지도 못합니다.

2. 흠이 없는 종들
마지막으로 144,000명의 예언의 사역자들에 대한 자격으로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종말에 예언의 사역자로 쓰임 받을 하나님의 종들인 144,000명은 '흠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흠(欠)이란 하자(瑕疵)란 말로 인격적인 결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의 도덕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적어도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흠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먼저 마음의 정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과 계명을 지키는 생활에 철저하고 늘 회개하므로 죄나 죄의 유혹의 요소가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마음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2) 흠이 없으려면 열매를 맺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 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며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벧전5:1-4절에서 주의 사역자들에게 이처럼 권면했습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우리 주님은 양무리의 본이 되는 목자를 기뻐하십니다.
결론 : 이들 144,000명은 하나님의 교회 중에서 목자장 되신 주님에 의해 종말의 예언의 사역자로 선발된 '우리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주의 재림을 소망으로 삼고 신부의 단장을 하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하겠지만 또한 이 같은 순교자의 반열에서 종말적인 사명을 이룰 하나님의 종들을 해산하기 위한 기도도 끊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양 무리는 이 같은 종들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 주님의 신부로서의 단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135 \ 14:6-10

(68) 천사가 전하는 영원한 복음
(요한계시록14:6-10)

요한계시록 14장은 영원한 복음과 연결된 내용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1절에서 5절까지는 종말에 계11장에 나타난 두 증인의 종말적 예언을 감당할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의 자격을 다섯 가지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6절부터 11절까지는 그들이 계11장에서 1260일간 예언했던 복음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을 이곳에서 '영원한 복음'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영원한 복음
(1) 우리는 먼저 공중에 날아가며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가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천사들에 대해 문자 그대로 천사로 오인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옛날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을 하시게 했습니다. 노아 당시, 전 세계 인류를 심판하시는 홍수 심판 시에도 노아를 통해서 심판의 경종을 주셨지 천사들에게 그 사역을 맡기지 아니하셨습니다. 롯의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류의 종말에도 이스라엘이 패역했을 때 그 선지자들을 통해서 경종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의 사역을 하게 하십니다.
이 천사들이 복음을 전한 대상은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전 세계 인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런 표현은 계10:11절에서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고 하신 말씀처럼 두 증인이 1260일간 예언한 그 예언 사역의 대상이나 구역과 일치된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천사로 표현된 영원한 복음의 전달자는 천사들이 아니라 두 증인으로 등장하여 초인적인 권능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있는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 때 이들 하나님의 종들은 불사신의 몸으로 펴 놓인 작은 책의 예언의 말씀을 세계적으로 전파할 것입니다. 이들의 사역의 활동이 마치 천사와 방불할 것입니다.
(2) 그런데 1260일간 두 증인들이 전할 예언을 왜 '영원한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까? 이 같은 표현은 전파하는 복음의 내용에 따라 그 머리에 부쳐진 이름에 불과합니다. 복음은 하나입니다. 그것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어떤 때는 '하나님의 복음'이라고도 했습니다(막1:14). 구원의 복음(엡1:13), 평안의 복음(엡6:15), 화평의 복음(행10:3), 영광의 복음(딤전1:11) 등 다양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부른 것은 그 내용을 주의 재림에 그 초점 136 \ 14:6-10

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2. 천사가 전한 영원한 복음의 내용
영원한 복음의 내용을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종입니다. 두 번째는 음녀의 심판에 관한 경종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짐승의 표를 받은 자에 대한 심판의 경종입니다.
(1) 이들이 전한 첫 번째 메시지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는 내용입니다.
이 메시지는 7년 환난 초기에 전할 두 증인의 예언 사역의 메시지의 내용 중 하나로 '인류의 역사가 이미 종말에 이르렀고 이제 곧 하나님의 심판하실 때가 매우 가까이 왔다'고 하는 경종입니다.
이들의 메시지는 세상에 깊이 졸며 잠자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깨우는 '밤중의 소리'로 교회에 메아리칠 것입니다. 이 같은 경종의 소리는 주의 재림 직전에 하나님의 교회에 들려주어 잠자는 성도들로 잠에서 깨우는 경종의 나팔로 들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들이 전한 두 번째의 메시지는 큰 성 바벨론으로 비유된 음녀의 심판에 대한 경종입니다. 8절에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인 자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이란 낱말은 두 가지 의미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불로 소멸될 이 세상을 '바벨론' 혹은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바벨론은 음녀의 세력을 가리킵니다. 바벨론이란 말은 원래가 하나님에 의해 무너져 멸망 받을 도성을 의미하는데 인류의 종말에 이 세계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 바벨론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음녀의 무리들입니다. 이들이 음행의 포도주로 세상을 취하게 하여 세상으로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하고 그의 표를 받게 만든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종말에 순교적인 사명을 가진 신실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전 세계를 향하여 펴 놓인 작은 책의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복음은 교회에 주시는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노아의 외침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지만 회개한 무리가 노아까지 포함해서 고작 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시에는 하나님께서 이 두 증인을 등장시켜 영원한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3년 반기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미리 바라보고 슬기 있는 처녀들처럼 그 날을 대비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7 \ 14:9-12

(69) 세 번째 천사의 메시지
(요한계시록14:9-12)

공중에 나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들이 사실인즉 성령의 큰 권세를 가지고 1260일간 예언의 사역을 하는 두 증인의 모습인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천사로 비유해서 그 메시지의 내용을 영원한 복음으로 이곳에 계시된 것은 두 증인들이 가진 큰 권세와 능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이처럼 표현한 것입니다. 이들이 전하는 예언의 메시지를 세 가지로 구분해서 계시해 주셨는데 세 번째 메시지가 오늘 전하려고 하는 내용으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므로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엄중히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짐승과 그의 우상
두 증인이 전하는 예언의 사역 중 세 번째 메시지의 내용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경종입니다. 이 경종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시는데 이 포도주를 마시는 날이면 거룩한 천사들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들려주고 있습니다.
(1) 짐승이란 종말에 등장할 실제적 인물인 대적하는 자, 바로 그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보내신 분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이 자가 사탄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로 등장하지만 이런 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허락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모든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이런 자들로 짐승과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게 하고 그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신 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과 최종적인 구분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온 세상은 짐승을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게 되며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에게 신적 경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로 그렇게 하도록 유혹하는 일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이미 진리의 사랑을 스스로 거역한 자들이며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들과 구별하기 위해 그들에게 짐승의 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의 마지막 예언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짐승에게 미혹 받지 않도록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 대한 경종을 피나게 외치는 것입니다. 이 외침을 들은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 138 \ 14:9-12

은 마음을 찢는 진실한 회개를 이루게 되고 이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흰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7:9절에서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만약 이 같은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유혹에 미혹되어 그를 따르다가 후 3년 반의 무서운 재앙 속에 빠지게 될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2.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일
짐승인 적그리스도가 인류의 종말에 세상에 머리를 쳐들고 등장한 이유는 그가 사탄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가지고 모든 인류들의 이마와 오른손에 짐승의 표를 주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1) 종말에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적그리스도는 신적 존재로 위장하여 엄위한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냅니다. 이 자는 하나님을 대적했던 나라의 일곱 번째 왕으로 등장합니다. 유럽 지역의 국력과 무역이 왕성한 어느 한 나라의 지배자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계17:10).
이 자의 혈통은 전통적인 유럽계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혈통을 가진 이방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는데 이 자에 의해 중동 평화를 이루는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어 일촉즉발의 위기에 있었든 이 세상에 잠정적인 세계 평화가 이루어집니다(요5:43;단9:27). 이 자는 이 일로 인하여 평화의 왕, 세계 인류의 메시야로 환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적그리스도를 신적 존재로 경배케 하는 일입니다(살후2:4).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신상을 만들게 하여 그 신상 앞에 경배케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음녀에게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계13:14). 그리고 모든 자들, 곧 작은 자(일반 시민)나 큰 자(고위층)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결론 : 두 증인은 죽음을 초월한 불사신의 몸으로 1260일간 이 같은 내용의 영원한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이 같은 두 증인의 경종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고 음녀의 세력에서 돌이키지 않고 짐승을 따르며 짐승과 그 짐승의 우상 앞에 경배하여 짐승의 표를 받으면 그 자는 누구이든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된다'고 하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139 \ 14:12-13

(70) 주 안에서 죽은 자의 복
(요한계시록14:12-13)

우리는 지난 시간, 7절로 11절에 이르기까지 천사로 비유된 두 증인들이 1260일간 증거하는 예언의 말씀의 대요(大要)를 들었습니다. 영원한 복음으로 불리는 이 메시지는 이 세상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사랑의 권고요 심판의 경종이 될 것입니다. 이 같은 경종을 들려주신 후, 역사상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한 축복을 말씀해 주심으로 어느 시대이건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1.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11절로 영원한 복음의 전파는 끝났습니다. 12절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나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인내는 두 증인들의 예언 기간 중에 있을 성도들의 환난에 대한 승리의 비결을 의미해 주는 말입니다.
(1) 교회는 모든 종말적인 환난을 다 통과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교회의 연단과 이 연단으로 맺어야 할 회개를 위해 통과해야 할 환난이 있습니다. 이 환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리는 재앙이나 고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시련'으로 주시는 값진 환난입니다. 교회는 이 환난을 통해서 지난날의 세속적인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모습으로 변화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회개하여 기름을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2) 환난을 만난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가 없는 사람은 환난을 만났을 때에 이길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이겨야 할 환난이란 7년 환난 중, 전 3년 반 마지막 시기에 있을 '첫째 화'를 말합니다. 이 첫째 화를 요한계시록에서는 '황충이 화'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화가 성도들을 괴롭힐 기간은 다섯 달 동안입니다.
(3) 그런데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는 시련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시지만 12절에 나오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만이 인내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
13절에 나오는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이 하늘의 음성은 모든 성도들이 들어야할 복된 소식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시련과 환난과 질고 가운데서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를 주었으며 육신이 후패하고 나이가 들어 세상에 속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천국 생활에 대한 소망을 주었는지 모르는 것 140 \ 14:12-13

입니다.
(1) 자금 이후란 말은 '지금부터'란 뜻으로 전 신약시대 기간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한 축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요한이 이곳에서 특별히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비록 이 글을 읽고 듣는 성도들이 혹 종말적인 환난 가운데서 살아가지 않고 있다고 해도 그들의 생애 중에 찾아오는 시련이나 환난을 인내로 이긴다면 이 같은 축복을 받을 것임을 격려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주 재림의 시기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소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상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들이 '주 안에서 죽는 자'가 된다면 그 이상 복된 죽음이 없는 것이며 복 있는 생애를 마치는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히9:27).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은 언제 죽든 결코 헛된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시대, 어느 환경 속에 살아가거나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지키는 생애를 살아가야 하며 인내로 결실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의 복에 대하여 성령이 증거하시는 증거는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고를 그치고 이제부터 쉬는 축복을 얻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수고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모든 인생의 무거운 짐들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이 짐을 우리에게 넘겨주었고 우리들 스스로 이 짐을 더 무겁게 하여 짊어져 왔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경영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처음 것들입니다. 우리의 죽음이란 이 무거운 인생의 짐을 영원히 풀어놓고 쉬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쉰다는 말은 우리가 누릴 새로운 영적 생활을 의미합니다. 쉰다는 말은 우리의 육신이 죽어 땅에 묻혀 있는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하는 표현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같은 죽음은 전혀 소망이 없는 죽음이며 삶의 종식이기 때문에 복이란 말이 따를 수 없는 허망한 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2) 이런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저희의 하는 일이 따름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의 하는 일이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가운데 주 안에서 살아온 우리들 생애의 모든 열매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땅에서 행한 신앙 생활의 열매의 상급이 반드시 따릅니다. 이 상급이 어떤 경우에는 이 세상에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상급은 하늘에서 받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성령이 사도 요한에게 들려주신 이 하늘의 음성을 이 말씀 안에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우리의 생애 중에 주의 오심을 보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주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생활에는 큰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주의 재림을 준비하시는 가운데 그 나라에 가서 행한 일에 많은 상급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1 \ 14:14-20

(71) 마지막 추수
(요한계시록14:14-20)

본문에는 인류의 종말에 있을 두 가지 추수의 계시가 나옵니다. 하나는 익은 곡식의 추수요 다른 하나는 들포도의 추수입니다. 이 두 추수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있을 심판으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성도들의 공중 휴거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이 지구가 폭발하여 소멸할 때 그 가운데서 멸절을 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동시에 보이신 것입니다. 곡식 추수는 성도들의 마지막 구원의 역사로 성취되는 공중 휴거이며 들포도 추수는 짐승의 표를 받은 온 인류의 마지막 심판입니다.

1. 익은 곡식의 추수
두 가지 추수를 집행하는 집행자가 제각기 다른 존재로 나타나 있습니다. 알곡 추수는 인자 같은 이가 친히 낫을 휘둘러 거두시고 들포도 추수는 낫을 가진 천사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1) 본문 16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알곡 추수를 하는 분은 '구름 위에 앉으신 분'으로 나와 있습니다. 요한이 바라본 추수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흰 구름 위에 앉은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 신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으며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이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2)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고 했습니다. 이 곡식은 알곡입니다. 왜냐 하면 17절 이하에 나오는 다른 또 하나의 추수가 심판의 추수이기 때문입니다. 알곡과 쭉정이 추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이들 곡식은 세 종류로 구분됩니다.
하나는 이미 하나님의 예비처에 들어가 후 3년 반의 보호를 받아 온 흰옷 입은 무리입니다. 다른 또 하나의 무리는 비록 예비처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후 3년 반의 대환난 중에 회개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계11:1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계12:17).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의 대상은 주의 재림 시에 최종적으로 회개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슥12:10;13:8-9;롬11:25-27). 이들은 모두 창세 이후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하나님의 백성들 입니다.
(3) 이처럼 익은 곡식의 추수는 곧 성도들의 공중 휴거를 가리킵니다. 성도들의 공중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있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마24:30절과 31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 142 \ 14:14-20

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 들포도 추수
다음 17절 이하에 이 들포도 추수에 대한 계시가 나옵니다. 곡식 추수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사랑에서 주님이 친히 하시지만 심판의 대상이 되는 이들 들포도들에 대한 추수는 다른 천사의 손에 의해 집행하게 하십니다. 이 심판의 두려움과 철저함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다'고 했습니다.
(1) 이 들 포도 추수는 바로 '일곱 번째 대접 심판'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심판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들 포도란 짐승과 그 우상 앞에 경배하여 그 표를 받은 모든 인류들을 가리킵니다. 18절에서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말씀은 계16:16절에서 일곱째 천사를 향하여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라'는 명령과 같은 뜻입니다. 이 명령과 함께 이 땅에는 큰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 지진은 사상 미증유의 대지진이라고 했습니다. 계16:18절에서 이 지진에 대하여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이 지진은 바로 이 지구의 폭발을 의미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2) 큰 포도주 틀에서 나온 피가 '1천 6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했습니다. 그 날에는 이 지구 자체가 하나님의 심판의 큰 포도주 틀이 되는 것입니다. 이 1천 6백 스다디온이란 숫자에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땅의 수인 4를 제곱하여 (4 × 4) 다시 100으로 곱한 수로 이 수는 온 세상의 심판을 의미해 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을 준비하시기 위해 이 땅위에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시고 그로 온 인류의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서 천년왕국 백성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에 들어가려면 심판 받을 자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구별의 역사로 '짐승의 표'가 등장하여 이 표를 받는 자들을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몰살시키는 것입니다. 그
결론 : 여러분, 이 두 가지 추수는 이 세상에 반드시 임합니다. 곡식 추수로 그의 백성들을 공중 안전한 곳으로 옮기신 후, 이 땅에 들포도를 추수하는 최종적인 마지막 심판이 내려질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같은 마지막 심판의 날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이처럼 소망의 말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도다." 할렐루야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143 \ 15:1-4

(72) 공중 휴거자의 모습
(요한계시록15:1-4)

공중 휴거는 우리에게 큰 흥미를 주면서도 많은 의문점을 던져 주는 종말론적 사건입니다. 공중으로 휴거한다는 말 자체가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나 과학적 이론으로는 비합리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공중 휴거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공중 휴거가 없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짐승의 표를 받은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인 일곱째 대접 심판과 함께 멸망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이 사건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1.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공중 휴거자들
2절 말씀을 보면 사도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유리 바다란 티없이 맑은 바다를 말합니다. 이 유리 바다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와는 다릅니다(계4:6). 보좌 앞에 있는 유리 바다란 바다와 같이 넓은 실제적 바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좌 앞에 그런 바다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바라본 이 장소를 하나님의 보좌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이 장면은 요한이 하늘에 있는 이적으로 본 계시입니다. 이곳은 하늘에 있는 어떤 장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서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통치에서 벗어나 이곳에 올라와 있는 살아 있는 성도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장소는 하늘에 있는 어느 장소를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천사들에 의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불러모아 휴거로 하늘 공중으로 올리우심을 받은 공중 휴거자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휴거 장소에 대해서 그 곳이 공중이라고만 계시되어 있다는 사실밖에는 전혀 모릅니다. 공중이란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의 공간(空間)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늘의 궁창에는 수많은 별의 군상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광경은 이들이 공중에 있는 어떤 장소(별 중의 하나)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해 줍니다. 그들은 이곳에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서 있는 곳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라고 했습니다. 그 바다에 불이 섞였다는 말은 지구가 마지막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활화산이 되어 지구 전체가 불에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유리처럼 맑은 그 바다에 반사된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144 \ 15:1-4

2. 무 천년설과 세대주의 종말론의 공중 휴거설
공중 휴거의 성경적 근거는 살전4:16절과 17절에 있습니다. 공중 휴거는 이처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이유로도 상징적으로나 비유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내용입니다. 그런 방식의 해석을 허락할 수 없는 말씀으로 명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 휴거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천년왕국이 없다는 무 천년주의자(無千年主義者)들입니다. 천년왕국을 부인하게 되면 공중 휴거가 필요치 않게 됩니다. 또한 공중 휴거의 시기를 잘못 해석하므로 공중 휴거를 오도하고 있는 무리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세대주의 종말론자들입니다. 세대주의에서는 7년 환난 시대를 교회 시대와 구분하고 있습니다. 7년 환난 시대는 교회 시대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회복기간이라고 말합니다.
7년 환난 전 휴거설에는 무서운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해서는 안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종말의 징조와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7년 환난 중에 일어날 모든 사건의 내용을 알 수 있도록 계시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7년 환난 전에 휴거 된다면 이 같은 계시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계시를 왜 보여 주셨으며 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까?
그뿐 아니라 만약 그들의 주장을 추종한다면 우리는 계시록에 계시된 내용과 같은 사건이 우리 앞에 전개되어도 그 사건을 종말적인 사건으로 인정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 휴거를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무 천년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의 7년 환난 전 휴거 설에 결코 동조해서는 안됩니다. 이들 두 종류의 주장을 따르면 종말의 계시 자체가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공중 휴거의 대상자들은 그 때까지 지상에 살아 남아 있는 모든 성도들,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모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 공중 휴거가 주님이 재림하실 그 때에 있으며, 그 대상이 택하신 모든 성도들임을 주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중 휴거의 장소로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란 말씀에서 이 지상에서의 도피를 의미해 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 : 우리는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이 모든 신비스러운 사건들이 하나하나 우리들 눈앞에서 전개될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여러분의 생애의 소망을 두시고 그 날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45 \ 15:3-8

(73) 마지막 심판 준비
(요한계시록15:3-8)

우리는 요한계시록 14장 끝에서 두 가지 추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알곡 추수로서 이 추수는 주 재림과 함께 있을 성도들의 공중 휴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추수는 들포도송이의 추수인데 이 들포도송이를 하나님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는 심판인데 이 심판으로 하나님의 모든 심판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15장에 와서 알곡 추수로 수확된 성도들이 공중으로 휴거되어 불이 섞인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모래
우리는 지난 시간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계시에서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곳에서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유리 바닷가란 유리 바다의 해변을 말하는데 그 곳에 서서 지구가 불타는 모습이 그 바다 면에 비취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의 감격은 어떠했으며 그들의 감사는 또 어떠했을 것입니까? 그 곳에 여러분이 서서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합창한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노래를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노래란 홍해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노래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이 땅에서 모두 공중으로 옮기신 후,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모든 자들에게 멸망의 불로 멸절시키는 광경을 하늘에 있는 휴거처에서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노래하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이처럼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엔 모세가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어 홍해를 건넜기 때문에 모세의 노래라고 불렀지만 그 날에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모든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린양의 노래라고 한 것입니다.
이 같은 말씀으로 볼 때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넜던 일은 인류의 종말에 이 세상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그의 백성들을 공중으로 휴거 시키는 일의 하나의 예표였던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고전10:1-10).
(1)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십니다. 그 규모가 감히 우주적이며 인간의 힘으로 능히 미칠 수 없는 크신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또한 기이하십니다.
(2) '주의 일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의롭다는 말씀은 불의가 전혀 없으시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그의 최종적인 심판도 의롭게 행하시고 그의 백 146 \ 15:3-8

성들을 그 곳에서 빼내시어 공중으로 이끌어 올리신 일도 의로우신 일인 것입니다.
(3)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까'라고 했습니다. 주의 이름이 두렵다는 말은 그의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낸 말입니다.
(4)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는 가사로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가 끝나고 있습니다.

2. 마지막 심판 준비
사도 요한은 5절에서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라고 말씀해 줍니다. 2절에서 4절까지의 계시를 본 후 요한은 또 다른 계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계시에서 요한은 하늘의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1) '증거 장막의 성전'이란 하나님 보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증거 장막이란 말은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하늘의 지성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지성소가 두 번 열리는 것으로 보여 주십니다. 한 번은 예수님이 지상에서 그의 사명을 다 이루시고 '다 이뤘다'는 말씀과 함께 지상의 지성소의 장막인 성소 휘장이 찢어지므로 하늘로 옮겨진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곳으로 들어가는 새롭고 산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려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두 번째로 계15장에서 열려지는데 이제는 그 길이 닫혀지고 일곱 대접 심판을 내리는 진원지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왔다고 했습니다. 일곱 재앙이란 일곱 대접을 쏟을 때에 이 땅에 내려지는 최종적인 심판의 재앙입니다. 이 재앙이 담긴 대접을 차례로 쏟는 것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세상에 임하게 되는데 그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후에 성도들이 모두 하늘로 휴거된 즉시 이 땅위에 내려질 것입니다.
(3) 이들 천사들이 네 생물 중 하나로부터 금 대접 일곱을 전달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생물은 네 생물 중 하나인데 이들 네 생물은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자리하고 있는 권세 있는 영적 피조물들입니다.
이 생물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이 같은 계시를 두려움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 진노의 금 대접으로 인해 이제 인류의 심판이 개시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고 취소할 수도 없습니다. 막다른 최종적인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전에 가득 찬 이 연기는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해 주는 하나님의 분노 그것입니다. 이 때 대속자의 기도도 끊어지며 그 누구도 새롭고 산길로 열려져 있었던 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147 \ 16:1-3

(74) 첫째와 둘째 대접 심판
(요한계시록16:1-3)

1절 말씀을 보면 하늘의 성전에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이 내려집니다. 계15:5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이 성전으로부터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띤 네 생물 중 하나가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들 일곱 천사들에게 건네주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16:1절에 와서 성전으로부터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곧 시작되는 것입니다.

1. 첫째 대접 심판
하나님의 진노의 금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인 첫째 천사가 이 명령을 따라 그 대접을 땅에 쏟았습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셋째 화로 인류 역사의 맨 마지막에 이 세상에 최종적으로 쏟아 붓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의 시기는 후 3년 반 마지막 시점이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고 이 자에 의해 마흔 두 달 동안의 후 3년 반 통치를 통해서 인류의 분류가 거의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자에 의해 짐승의 표가 전 세계 인류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표는 알곡과 가라지의 분류를 위한 표식으로 이 표를 받은 대상자는 가라지들에게 국한됩니다. 후 3년 반기간이 마감 될 때가 되면 짐승의 표를 받을 사람이 더는 없게 됩니다.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시기에 셋째 화인 일곱 대접 심판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1) 첫째 대접을 가진 천사가 '그 대접을 땅에 쏟으라'는 명령을 받고 땅에 쏟았습니다. 여기서 땅이란 이 지구의 지면을 말합니다. 그러면 첫째 천사가 땅에 쏟아 부은 첫째 대접으로 인하여 이 땅에는 어떤 재앙이 임한 것입니까?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고 했습니다. 악한 헌데란 사람들이 견뎌 내기 힘든 악창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대적한 무리에게 일곱 대접 중 첫 번째로 내리시는 심판의 재앙이 이처럼 악하고 독한 헌데입니다.
(2) 이 재앙을 받을 대상이 명시되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 그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온 문체를 보면 두 부문의 사람들로 나뉘어진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는 대상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이 받은 짐승의 표의 자 148 \ 16:1-3

리로부터 이 악창이 돋아나 온 몸에 번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악창은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만 난다고 했습니다.

2. 둘째 대접 심판
둘째 천사가 둘째 대접을 바다에 쏟았다고 했습니다. 이제 일곱째 대접 중에 두 번째 대접을 바다에 쏟은 것입니다. 이 지구가 멸망의 심판을 당할 때, 바다도 예외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 천사가 그 두 번째 대접을 바다에 쏟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고 했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면 국가간의 무역이나 수출입 업도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바다를 이용해서 움직였던 모든 일이 일시에 올스톱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 가운데는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으로 그 같은 생명체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말씀은 이미 스바냐에 의해 예언된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습1:2-3). '바다의 고기'를 인간들과 함께 진멸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결론 : 인류의 종말에는 이처럼 끔찍스러운 재앙들이 연속 일어납니다. 일곱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아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멸망하고 소멸될 때까지 하나님의 손길은 결코 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심판의 표적이 되어 이런 재앙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로 후 3년 반에 있을 무서운 심판의 재앙에서 벗어나 안전한 보호를 받게 하시려고 1260일간의 회개 기간을 주십니다. 그리고 충성되고 진실한 종들로 예언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어 그 말씀을 듣고 지키는 생활을 통해서 신부의 단장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후 3년 반에 떨어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어떻게 나타나 그들을 보호하실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처럼 계시된 종말의 심판의 두려움을 바라보고 이 재앙에서 유월 되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49 \ 16:4-11

(75) 셋째 넷째 다섯째 대접 심판
(요한계시록16:4-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 대접 심판 중, 첫째와 둘째 대접 심판에 관한 계시를 바라보았습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일곱째 나팔 사건의 진행이며 이것들은 셋째 화로 이 땅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중에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나팔 사건이 8장에 계시되었고 다섯째, 여섯째 나팔 사건이 9장에, 그리고 일곱째 나팔 사건이 16장에 계시되었는데 이 '일곱 째 나팔 사건'을 '일곱 대접 심판' 또는 '셋째 화'로도 불려지는 것입니다.

1. 물이 피가 되는 셋째 대접 심판
셋째 천사가 명령을 받고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았습니다. 그랬더니 이 세상의 모든 물이 갑자기 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1) 강과 물 근원이란 바닷물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물과 담수(淡水)를 말합니다. 강은 담수가 바다로 흐르는 마지막 물줄기입니다.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물, 바닷물이나 강물이나 산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모두 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2) 아파트 옥상에 설치해 놓은 물탱크에서도 피가 흘러나오게 되고 정수기를 사용하는 꼭지에서도 피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집에서 설거지를 하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던 아내가 기겁을 하며 놀랄 것입니다.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기 우유를 끓이려고 물을 받으려던 엄마가 이게 웬일이냐고 소스라치게 놀라게 될 것입니다. 피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3) 이 같은 물의 심판에 대하여 물을 차지한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심이 합당하시도다"고 외쳤습니다.

2. 해의 뜨거움으로 태우는 넷째 대접 심판
(1) 명령을 받은 네 번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해가 뜨거운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는 태양에서 평균 1억4.960만Km 떨어진 궤도를 돌고 있습니다. 태양의 크기는 그 직경이 139만Km이며 지구의 부피에 비해 130만 배 가량 되는 거대한 물체입니다. 그 태양의 표면 온도가 섭씨 6.000도쯤 된다고 하니 이 거대한 물체의 위력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그 거대한 물체 전체에서 섭씨 6.000도의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150 \ 16:4-11

데 이 열기가 아니면 지구 안에 있는 생명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한 여름철이 되면 인도 같은 무더운 지방에서는 한 해에도 수 백 명, 수천 명의 인명이 무더위로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넷째 대접을 해에 쏟자 지구를 감싸고 있는 오존층이 전부 파괴되어 태양의 직사광선이 그대로 지구로 쏟아질 것입니다. 이 때 생기는 피해도 엄청나게 큰 것이란 사실입니다.
(2) 그 누구도 이 같은 태양의 뜨거움 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지상의 모든 물은 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피를 가지고는 수력이건 화력이건 원자력이건 발전소의 기계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거리에는 뜨거운 열기로 사람이 다닐 수 없을 것입니다. 콘크리트 담으로 두텁게 쌓여진 건물 안은 모든 전기 시설이 완전히 가동이 중단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뜨거운 공기와 열기가 사람들을 견딜 수 없게 할 것입니다. 밤에는 온 세상이 캄캄합니다. 전력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불이 없는 것입니다.

3. 세상에 어두움을 가져 온 다섯째 대접 심판
다섯째 천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다섯째 대접을 가진 천사가 명령에 따라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았습니다.
(1) 짐승의 보좌는 곧 적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세계적인 본부를 말합니다. 우리는 짐승의 보좌가 어느 나라에 펼쳐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단11:45절 말씀을 보면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보좌에 대해 '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라'고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곳이라면 아마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지중해 어느 지역이 될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 짐승의 보좌가 있는 그 곳에 다섯째 대접이 쏟아집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 나라가 어두워진다'고 했습니다.
(2) 이 같은 재앙은 세상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 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며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
결론 :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은 대단히 두렵습니다. 인정 사정없이 쏟아 퍼부으십니다. 오직 죄인에 대한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무리, 그리스도를 떠난 무리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미련한 처녀들로 비유된 성도들도 제때에 회개치 못하면 다섯째 대접 심판까지의 무서운 환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시의 말씀은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이런 재앙들을 피하고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축복의 메시지로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51 \ 16:12-18

(76) 여섯째 대접과 주의 재림
(요한계시록16:12-18)

오늘은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여섯째 대접 심판에 대한 계시를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이제 여섯 번째 대접 심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의 장도 얼마 남지 아니했습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의 여섯째 대접 심판이 끝나면 이어 곧 일곱째 대접 심판이 오며 그것으로 모든 심판이 끝나고 곧 이 땅이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유브라데에 쏟는 여섯째 대접
여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았습니다. 그러자 그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었습니다.
(1) 인류의 역사의 기원도 유브라데강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인류의 종말의 역사에도 유브라데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브라데강은 인류의 최종 시대의 결전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것입니다. 유브라데강은 서부 아시아에 있는 가장 긴 강입니다. 그 길이가 무려 2,800Km나 되며 그 발원지는 지금 터키에 있는 알메니아 산맥을 근원지로 하여 도중에 다그라스강과 합류하여 페르샤만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곳이 요한계시록에서 왜 두 번의 대 결전장으로 등장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습니다. 계시록 9장에서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는 명령과 함께 세계 대전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이 둘째 화로 불려지는 세계의 마지막 핵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게 된다고 했습니다.
(2) 우리는 '유브라데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을 동일한 사건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왜냐 하면 이 전쟁의 발생지가 같은 유브라데 지역으로 계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전쟁은 전혀 별개의 전쟁입니다. 전쟁의 발발 시기가 다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전 3년 반기간이 지나고 후 3년 반에 들어선 시점에서 일어나지만 아마겟돈 전쟁은 후 3년 반 마지막 시점에서 예수님의 재림 시기에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두 전쟁은 계시의 진행이 다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여섯째 나팔에 속한 사건이요 '아마겟돈 전쟁'은 일곱째 나팔에 속한 사건입니다. 일곱째 나팔은 일곱 대접을 의미하며 '아마겟돈 전쟁'은 이 일곱 대접 가운데 여섯 번째 대접으로 전개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화(禍)의 순서에서도 '유브라데 전쟁'은 둘째 화로 나타난 사건이요 '아마겟돈 전쟁'은 셋째 화에 속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두 전쟁은 싸우는 상대가 제각기 틀립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주라는 명령과 함께 터지는 세계대전입니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수님과 그의 군대들과 동방에서 모여든 적그리스 152 \ 16:12-18

도의 군사들과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 결과가 다릅니다. '유브라데 전쟁'은 그 전쟁의 결과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죽습니다. 그러나 '아마겟돈 전쟁'은 그 결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전쟁 현장에서 생포되어 산채로 둘째 사망에 던져지고 남은 군사들은 모두 죽임을 받아 '하나님의 큰 잔치'에 참여하는 새들의 밥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유브라데 전쟁'은 전쟁 후에도 인류의 역사가 얼마간 계속되어 세상은 적그리스도의 수중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아마겟돈 전쟁'은 곧 이어 일곱째 대접이 공기 가운데 쏟아지게 되며 이 대접 심판으로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것입니다.
(3) 이 대접을 '유브라데 강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고 했습니다. 동방의 왕들이란 동양에서 이 전쟁에 참여하는 왕들이 아닙니다. 아마 그 때 유브라데강 유역은 이들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이 아마겟돈으로 집결하는 일에 중요한 군사 요충 지역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유브라데 강물이 장애가 되어 건너가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이 계시에서 보여 주는 의미는 아마겟돈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을 것입니다.
(4) 13절에는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에 관한 계시가 나옵니다. 이 영은 악령이 부리는 영을 말합니다. 이 영은 이적을 행하는 사탄의 영입니다. 이런 영은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2. 주의 재림
이제 모든 요건들이 갖추어졌습니다. 14절에 있는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해 주님의 재림하실 때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 때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그의 하늘 군대들로 더불어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라'고 했습니다(슥14:4).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후, 곧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주동이 되어 열 왕의 군사들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아마겟돈에 나타나시어 그들 군대들과 일전을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생포되어 산채로 둘째 사망에 던져지고 남은 군사들의 시체는 '하나님의 큰 잔치'에 초대받은 새들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결론 : 예수님은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때 도적 같이 오십니다. 오늘 저녁에 도적 같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성도들은 이 때까지 깨어 있어 신부의 단장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153 \ 16:17-21

(77) 일곱째 대접과 공중 휴거
(요한계시록16:17-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섯 번째 대접 심판으로 아마겟돈에 집결한 적그리스도의 군사들과 재림하시는 주님과의 전쟁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은 다시 19장으로 옮겨져 상세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이곳에는 적그리스도가 '큰 날의 전쟁'을 위해 자신의 군사들을 아마겟돈으로 모으는 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일곱째 대접 심판이 내려질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긴급조치가 취해지는 놀라운 사건의 모습을 먼저 보고 지나가야 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교회의 공중 휴거입니다.

1. 교회의 휴거는 이 때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교회의 휴거가 언제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휴거에 대해 잘못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공중 휴거가 7년 환난 전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세대주의 종말론에서 나온 잘못된 신학적 견해입니다.
교회는 전 3년 반기간은 통과하지만 후 3년 반의 대환난 기간은 거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가 후 3년 반의 무서운 재앙에서 어떻게 건지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계12:13-14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또는 '1260일 동안'은 같은 3년 반기간으로 후 3년 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기간은 하나님의 교회가 공중에서가 아니라 지상 어느 곳에선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광야 자기 곳'에서 양육(보호)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이 아마겟돈에서 적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진멸하시고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생포하여 둘째 사망에 던져 넣는 심판이 있게 되며 곧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이 지상이 불의 심판으로 초토화(焦土化)되기 직전, 온 세상에 생존해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한 명의 누락자도 없이 일제히 공중으로 휴거되는 것입니다.
이 공중 휴거는 일종의 지상에서의 최종적인 탈출 사건입니다. 만약 이 같은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 날에 예수님은 이 같은 교회의 공중 휴거를 위해 그의 천사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는 말씀이 154 \ 16:17-21

그것입니다(마24:31).

2. 공중 휴거 되는 몸은 어떤 몸인가?
우리는 흔히들 공중 휴거는 믿지만 그 휴거될 성도들의 몸의 형체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대로의 몸이 아니라 '변환 된 몸'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주장은 살전4:17절의 공중 휴거와 고전15:51절의 '홀연한 변화'를 서로 같은 사건으로 연결시킨 데서 나온 착각입니다.
만약 우리의 신체가 변화 받은 후, 공중으로 휴거 된다면 공중 휴거의 의미가 전혀 없어집니다. 변화란 말은 일종의 부활의 형태인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이 죽지 아니할 몸으로 바뀌는 것이 변화입니다. 이 같은 일은 최종적인 부활의 날에 동시에 있게 됩니다. 부활체나 변화체는 이미 구원이 완성된 몸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지상 생활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영주할 곳은 천년왕국인 것이 아니라 천국인 것입니다.
(1) 살전4:17절에 나오는 공중 휴거에는 '성도들의 변화'란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2) 그러면 고전15:51-52절에 나타난 성도들의 변화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은 전혀 별도의 사건입니다. 살전 4장에 나오는 휴거는 주의 재림 시에 있을 성도들의 들림 사건이고 고전 15장에 나오는 '홀연한 변화'는 천년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진 후, 우리가 백보좌 심판대로 옮겨질 때, 성도들의 전체적인 부활 사건을 언급해 주는 말씀입니다.
결론 : 우리의 육체가 변화 받지 않고서도 하나님은 능히 우리의 이 몸을 이대로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암스트롱이란 사람은 벌써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타고 달을 왕복했습니다. 그 우주인들이 변화 받은 후 갔다 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주선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도 변화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의 과학의 힘으로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우주를 왕복하고 공중 궤도를 빙빙 돌고 있거늘 하물며 인류의 최후의 심판의 날, 이 지구가 폭발하여 파멸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실 수 없다고 여긴다면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어디 있다고 할 것입니까?

155 \ 16:17-21

(78) 일곱째 대접과 지구의 파멸
(요한계시록16:17-21)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일곱째 대접이 공기 가운데 쏟아지는 최종적인 인류의 심판이 임하기 바로 직전에 여섯째 대접 심판으로 표현된 아마겟돈 전쟁과 주의 재림의 계시를 보았으며 거의 이와 동시에 교회의 휴거가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온전히 안전한 장소로 모두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잔을 쏟으실 차례가 되셨습니다. 천사들을 향하여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계14:18).

1. 큰 지진으로 나타난 일곱째 대접
본문에 나오는 '큰 지진'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대 지진을 의미합니다. 지구가 존속해 온 이래 아직까지 없었던 지진입니다.
(1) 이 지진은 '이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는 지진이라'고 했습니다. 큰 성이란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 거대한 지구가 이 지진으로 세 갈래로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일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벧후3:10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벧후3:6-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에 대한 두 가지 심판을 위해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위해서는 물을 예비하시고 인류의 종말에 있을 마지막 심판을 위해서는 불을 준비하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창조 역사의 둘째 날에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물을 나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홍수 심판 시에 모두 비로 땅에 쏟으셨습니다.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고 했습니다(창7:11-12). 그런데 벧후3:7절 말씀에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물로 심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 것은 이미 불로 심판하실 것을 예비하셨기 때문입니다.
(2)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진 결과 '만국의 성들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만국의 성이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도성(都城)을 의미합니다. 러시아의 모스크바도, 미국의 워싱턴도, 영국의 런던도, 일본의 도쿄도, 한국의 서울도 모두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세계 도처에 자리 잡고 있는 크고 작은 도시들,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든 도읍들이 그 날에 불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3) '각 섬도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고 있는 섬이란 세계 지도상 156 \ 16:17-21

에 표기된 섬들을 가리킨 것이 아닙니다. 이 바다 위에 돌출된 대륙들을 가리킨 말입니다. 이 지구 표면의 78%가 바다입니다. 대륙이라고 하는 지면(地面)은 모두 합해 봐야 22%에 불과한 도서(島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각 섬이 없어진다고 한 말씀은 큰 지진으로 이 지구상의 모든 지면이 땅속으로 들어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창세기에 나오는 지구의 모습처럼 이 땅은 바다 물로 덮여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천년왕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사65:17).
(4) '산악도 간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산악이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산들을 의미합니다. 이치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산이란 땅위에 높이 솟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땅이 땅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면 그 산 역시 지구 표면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2. 하늘에서 내리는 박재
이처럼 땅에서는 사상 초유의 큰 지진으로 지구 자체가 폭발하면서 지구 위의 모든 존재들을 불태우므로 소멸시키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역사상 최대의 우박이 내려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중수가 한달란트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린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같은 현상은 거의 동시적인 사건으로 진핼 될 것입니다. 한 달란트의 무게는 대략 100근 정도로 잡고 있습니다. 우박 한 개의 무게가 백근 정도라면 그 우박은 하나의 폭탄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2) 그러나 이 같은 두려운 최종적인 심판 중에도 이 땅위에서 이 심판을 당하며 죽어 가는 인류들은 조금도 회개치 아니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죄악으로 강퍅해진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이 심하면 심할수록 회개는 고사하고 오히려 원망과 대적과 훼방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죄로 연단 된 악한 마음 때문에 회개할 줄 모르고 재앙의 날에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될까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 이 심판이 이 세상에서 회개하지 못한 죄인들이 겪는 마지막 재앙입니다. 이제 짐승과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은 모든 인류들은 완전히 파멸되었습니다.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진멸되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지면에서 멸절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사람들이 멸절되었습니다. 하늘로 휴거된 성도들 외에는 이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생존자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날에 우리 주님의 특별하신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도록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그 날을 사모하며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57 \ 17:1-7

(79) 음녀의 비밀
(요한계시록17:1-7)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에 하나님의 교회가 두 가지 모습을 세상에 나타낸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해 입은 여자'요, 다른 하나는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음녀의 비밀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세상을 취하게 하는 음녀
요한계시록에는 음녀에 대하여 '땅의 음녀들' '큰 음녀'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땅의 음녀들이란 음녀화 된 땅의 모든 교회를, 큰 음녀란 그 음녀의 거대한 세계적인 기구(총본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1) 인류의 종말에는 '음녀'가 반드시 등장합니다. 음녀란 교회 안에서 파생된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거대한 배도 세력을 말합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2) 음녀의 등장에 대하여 계8장과 계12장에서 그 모습을 잠깐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계12:4절 말씀에서 '그 꼬리가 하늘 별 3분의 1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고 했습니다. 붉은 용의 꼬리는 사탄의 교활과 그의 속임수를 상징합니다(사9:15-16). 그가 하늘 별 3분의 1을 땅에 던지는 일은 사탄이 타락한 주의 종들을 통하여 이 땅에 형성하는 배도 세력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3) 이 음녀의 규모에 대하여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라고 했습니다. 많은 물위란 전 세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계17:15). 그리고 큰 음녀란 그 조직의 큰 규모를 말합니다. 그들의 막강한 조직력은 사탄에 의해 유지됨으로 어떤 정권이나 권세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말에는 각 나라의 왕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이들과 타협하거나 손을 잡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천주교의 경우를 보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있어서도 천주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입니까? 대통령으로 출마하려면 반드시 명동성당에 찾아가 '추기경'을 만나 정중한 인사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이 음녀는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땅의 음녀들이란 이미 진리를 저버리고 세속환 된 교회들을 말하고 가증한 것들이란 세상에서 우상을 섬기는 모든 종교 단체들을 말합니다.
(5) 음녀의 손에는 금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금잔 안에는 세상을 혼미와 매혹 158 \ 17:1-7

과 강한 유혹으로 취하게 할 새로운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이 금잔에는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고 했습니다.

2. 음녀가 세상에 미친 영향
(1) 이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고 했습니다. '붉은 빛 짐승'은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짐승을 붉은 빛 짐승이라고 한 것은 짐승의 기원이 사탄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밝혀 준 것입니다. 짐승은 음녀를 이용하여 종교적 세력을 손에 넣을 뿐 아니라 예수를 메시야의 자리에서 내리고 자신을 메시야로 섬기게 하는 일에 절대적인 존재로 등장합니다.
(2) 그런데 이 여자가 입은 옷을 보시기 바랍니다.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옷이란 그 몸의 색깔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표현입니다. 음녀의 색깔은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진리도 아닙니다.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짐승과 같은 옷 빛깔입니다.
(3) 음녀의 이마에 기록된 이름이 있습니다. 5절에서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비밀이란 말은 숨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정체는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하게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참 진리에 눈이 떠 있지 않으면 이 숨겨진 비밀을 깨달아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음녀가 이 땅의 모든 거짓된 교회들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종교 세력의 모체가 된다는 뜻입니다.
(4)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도 이들 음녀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음녀의 세력을 무시하고는 권력의 보좌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이 음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 있기 때문에 음녀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支柱)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다'고 했습니다. 이 여자가 할 일은 진리를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에 예수의 증인들을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사도 요한은 이처럼 참으로 놀랍고 괴이한 음녀의 등장과 활동을 보면서 '기이히 여기고 심히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요한은 너무나도 기이한 나머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이 여자의 세력, 장차 음녀를 이룰 그 뿌리들이 지금 이 세대에도 독버섯처럼 솟아나고 있습니다. 종말에 처한 성도들은 참으로 지혜롭고 충성된 성도들이 되어 주 재림의 소망 가운데 굳게 서서 진리를 파수해야 할 것입니다.
159 \ 17:7-13

(80) 짐승의 비밀
(요한계시록17:7-13)

오늘 본문에는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음녀와 짐승은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녀나 짐승이란 그 표현부터가 다분히 비유적이며 상징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녀나 짐승에 대하여 그 실제성을 비밀에 두시고 그 존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셨지만 우리는 이 비밀을 추적해서 음녀와 짐승의 정체를 파헤쳐 마지막 때에 이들의 정체를 들추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1. 짐승의 비밀
천사는 요한에게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여기서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이란 요한이 이상 중에 본 짐승으로 이 짐승이 종말 계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적그리스도란 사실을 우리는 아직까지의 계시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1) 이 짐승에 대하여 천사는 요한에게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했습니다. '전에 있었다'는 말은 역사상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을 말합니다. '시방 없다'는 말은 이미 그 인물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쉽게 표현해서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 때의 '시방'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대에도 없습니다. 지금 이 때의 '시방'에도 이 자는 없습니다.
그런데 '전에 있었지만' '시방은 없는' 이 자가 장차에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이 자가 무저갱으로부터 올라 올 때 그가 바로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짐승, 곧 적그리스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는 말은 '전에 있었다'는 짐승이 살아서 다시 세상에 나타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종말에 등장할 짐승이 무저갱에 속한 자란 뜻입니다.
(2) 그러면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다'고 하는 이 짐승은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요한이 이 계시를 받고 있을 때 그는 그의 마음속에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역사적인 적그리스도의 모형 인물이 생생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 자는 바로 지난날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을 모욕하며 대적했던 시리아 왕 '안티우쿠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킵니다.
이 자는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으로 더럽히고 제사를 금지하며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인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자를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표본 인물로 이미 예정하시고 이 자의 등장과 적그리스도로서의 이 자의 활동상을 이미 다니엘을 통하여 계시해 주셨습니다.
160 \ 17:7-13

세상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는 '전에 있었던 자' 예루살렘에 '작은 뿔'로 나타났던 '안티우쿠스 에피파네스'처럼 예루살렘 성전을 우상으로 더럽힐 자이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제사를 금지시키며 종교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핍박할 자입니다.
이 자가 장차 다시 인류의 역사의 무대 위에 나타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안티우쿠스 4세'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 아니라 과거에 '작은 뿔'로 등장했던 '안티우쿠스 4세'가 무저갱의 사자였던 것처럼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 역시 무저갱의 사자로 등장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2. 일곱 머리와 열 뿔의 비밀
천사는 9절 이하에서 요한에게 종말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하여 역사적인 배경을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짐승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으로 등장시키고 있는데 이 같은 짐승의 모습은 특별한 의미가 주어져 있습니다.
(1)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산에 대하여 일곱 산은 일곱 왕이라고 했습니다.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고 했습니다. 망한 다섯 나라에 대해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데바사, 헬라 등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는 있고'라고 한 나라는 요한 당시 존재했던 '로마'를 가리킵니다.
(2)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이'란 일곱째 나라로 등장하는 일곱 번째 산을 말합니다. 이 자가 등장하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계속되리란 말씀은 이 자가 누릴 왕으로서의 권세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잠깐 동안입니다. 계13:5절에서 이르기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3) '다른 이'라고 표현된 이 짐승은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인물입니다. 여섯째 왕과 일곱째 왕과의 역사적 거리는 이처럼 굉장히 오랜 기간이 흐를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언의 구심점이 되는 이스라엘이 2천여 년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지 않은 종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론 : 우리는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역사적 해석을 취하는 사람들입니다. 종말 계시가 반드시 인류의 종말에 역사적 사건으로 성취될 것이란 해석을 역사적 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역사의 무대 위에 유럽의 어느 한 나라의 왕이 어떤 정변이나 돌변적인 사태로 저격을 받아 죽는 자리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는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통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며 이 자에 의해 열 뿔이 정비되어 그들의 왕이 되므로 강력한 세계적 지도자로 부각될 것입니다. 이 자는 사탄으로부터 받은 권세와 능력과 보좌로 세계 지배의 권좌에 앉아 온 인류들에게 신적 경배를 받으며 짐승의 표를 줄 것입니다.
161 \ 17:14-18

(81) 음녀의 최종 운명
(요한계시록17:14-18)

짐승은 적그리스도요 음녀는 배도 세력으로 이 둘은 종말의 잠정적인 동반자로 서로 협력하며 활동합니다. 그러나 끝내는 음녀가 적그리스도에게 배신을 당하여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로 이 일에 대하여 17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1. 열 뿔과 어린양과의 전쟁
사도 요한은 17장에서 음녀와 짐승의 비밀을 계시 받으면서 마지막 인류의 종말에 등장할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열 뿔과의 관계에 대하여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고 했습니다.
(1) 짐승과 이 열 뿔이 어린양으로 더불어 싸운다고 했습니다. 이 싸움은 인류의 최종적 전쟁으로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짐승과 열 뿔이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이미 세계가 거의 황폐화 된 시점에서 일어납니다. 다섯째 대접까지의 심판 과정에서 자신들의 최후가 얼마 남지 아니한 줄을 알게 된 적그리스도에 의해 도발되는 전쟁이 이 전쟁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을 최종적으로 공격하여 이스라엘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리겠다는 도전적인 의도를 가지고 열 뿔의 군사력을 동원시켜 아마겟돈으로 모이게 합니다(계16:13-16).
(2) 이 아마겟돈에서 하늘의 군대와 지상의 군대와의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세기적인 대 결전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소집한 병력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대단한 병력은 아닐 것입니다. 이들이 아마겟돈에서 어린양과 더불어 싸우는 전쟁 모습이 계19장에 이처럼 계시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다'고 했습니다.

2. 음녀의 최후
15절부터 다시 음녀의 운명이 계시됩니다. 계시의 순서가 아마겟돈 전쟁 후에 나왔다고 음녀의 심판이 아마겟돈 전쟁 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시의 순서 상 배정을 그렇게 했을 뿐입니다.
162 \ 17:14-18

(1) 음녀는 세계적인 거대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음녀는 이미 자신들의 조직이 세계적인 조직체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력에 저항할 만한 자는 짐승 외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짐승과 음녀는 은연중에 갈등이 빈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같은 갈등으로 음녀는 결국 짐승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짐승이 음녀를 미워했다고 하는 사실은 음녀가 짐승의 눈에 가시처럼 여겨지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2) 16절 말씀을 보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음녀란 그 이름에 나타난 대로 그 행실로 보아 원래가 아무에게도 환영받을 만한 존재는 못됩니다. 음녀는 이미 진리를 저버리고 짐승에게 자신의 정조를 바쳤기 때문에 어린양으로부터 버림을 당했습니다(계2:21-23). 짐승 역시 이 음녀를 미워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음녀는 그 성품이 음란하기 때문에 누구에게서나 만족을 모릅니다. 그의 음행의 버릇은 어디 가나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짐승에게는 이제 더 이상 음녀의 도움이나 협력이 필요치 않습니다. 오히려 귀찮은 존재가 되었을 뿐입니다. 짐승은 드디어 음녀의 처치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음녀를 숙청하는 대대적인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음녀를 숙청하는 방법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가혹한지 이 일에 대해 16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3) 이 같은 모든 일은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셔서 이루신 결과라고 17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종말에 성취될 예언의 성취는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뜻은 인류의 역사의 무대 위에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역사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명쾌하게 그 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롬9:17).
결론 : 지금 온 세계 교회를 선교란 미명으로 하나의 공동 운명체로 만들려는 사탄의 음모가 진즉 진행되어 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주교와 개신교를 모체로 한 거대한 세계적인 음녀 기구가 등장할 것입니다. 이 세력은 짐승이 등장할 즈음에 그와 손잡고 적극적인 배도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음녀의 등장 목적과 그들의 시대적 사명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음녀는 자신이 진리를 배신하고 하나님을 대적한 대가를 톡톡히 받게 되는데 이 심판은 자신의 신랑으로 섬겨 온 짐승으로부터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살육을 당하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163 \ 18:1-5

(82)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요한계시록18:1-5)

요한계시록 18장에는 큰 바벨론 사회의 멸망에 대한 애가(哀歌)가 나옵니다. 이 애가는 일곱째 대접 심판 때에 이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심판을 받는 그들의 애절한 후회와 두려움과 아쉬움을 시가(詩歌) 형태로 나타낸 글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대접을 전후한 여러 가지 사건도 삽경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애가는 계6:12절에서 17절까지의 주 재림 시 여섯째 인(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끝나는 심판 시에 두려워하며 방황하는 바벨론 사회의 각계 각층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 주는 계시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18장에서 이 세상이 음녀와 더불어 멸망당하는 모습을, 이 재앙 속에서 화를 당하는 자들의 애가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무너진 바벨론
사도 요한은 17장의 계시를 받은 후에 새로운 계시를 받으면서 큰 권세를 가진 다른 천사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온 땅이 환하여지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1) 이 천사는 바벨론이 무너진 사실을 외쳤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쳐 대고 있습니다. 여기서 큰 성이란 느부갓네살에 의해 지배를 받은 그 바벨론 성을 상징하며 종말에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되는 성으로 이 지구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지구로 자기의 통치 제국을 만들어 거대한 바벨론 성을 구축한 것입니다. 이 큰 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진 것입니다.
(2) 이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진 원인에 대하여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음녀의 음행의 포도주란 뜻입니다. 이 음행의 포도주는 음녀가 세상에 먹인 가증한 거짓 복음을 말합니다. 음녀는 곧 기독교의 배도 세력을 중심으로한 거대한 세계적 종교 기구입니다. 이 음녀는 진리를 저버립니다. 복음의 진리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죽으심이나 부활 따위는 믿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도 부인합니다.
이들이 곧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벧후3:3-4절에서 밝혀 주고 있는 대로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심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3) 이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한 것입니다. 이 같은 음녀의 가짜 포도주로 온 세상을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땅의 왕들도 이 음녀로 더불어 음행 164 \ 18:1-5

하므로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온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와 음란과 세속화된 생활로 하나님의 법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4절에 나오는 말씀을 보니 사도 요한은 하늘로서 나는 다른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1) 그 음성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이 음성은 음행의 포도주로 더러워지는 세상에서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는 두 증인의 예언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면 안됩니다. 그들과 함께 공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 풍조나 세상의 사치나 세상의 탐욕을 따라 갈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소망 가운데 살아가야 할 사람들입니다.
(2) 다음에 하늘에서 들려온 메시지는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께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음녀의 포도주에 취하여 적그리스도를 따르면 그 죄는 씻을 길이 없습니다.
(3) 다음에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죄에 참여한 자들이 받을 재앙이 두 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음녀가 받을 심판입니다. 이들은 주의 재림 직전에 짐승과 열 뿔이 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종류는 일곱째 대접 심판 시, 이 세상과 더불어 멸망을 받게될 자들로 음녀를 따른 자들인데 결국 이들은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세세토록 고난'을 받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엄중한 심판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이르기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 하사 반드시 보응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심판은 그의 행위대로 갑절이나 갚아 주는 심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로서 들려 오는 이 음성을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이 음성을 듣고 이 세상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 받지 아니하고 오히려 천년왕국의 백성이 되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65 \ 18:4-10

(83) 음녀와 큰 바벨론의 심판
(요한계시록18:4-10)

본문에는 음녀와 음녀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큰 성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그런데 계시록 17장이나 18장에서 음녀와 바벨론과의 구별이 어렵게 나와 있어서 누가 음녀이며, 어떤 것이 바벨론인지 서로간의 구별에 혼돈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계시된 문장의 흐름으로 보아 음녀와 바벨론을 거의 동일시하고 있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세상을 상징하는 큰 성 바벨론은 음녀가 먹인 금잔의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취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세상이 자신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실 참 구세주를 저버리고 적그리스도인 짐승을 메시야로 영접했기 때문에 음녀를 심판하실 때, 자연히 음녀화 된 이 세상과 함께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양자간에 구별을 짓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1. 음녀의 죄
음녀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에 대하여 5절에서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다'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은 음녀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음녀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시는 것은 그에 상응한 심판을 내리시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저지른 불의한 일은 그 어떤 제물이나 기도로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이 음녀의 죄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사망에 이르는 죄 중에 하나입니다. 이 음녀의 무리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이세벨의 너울을 쓰고 나타나 하나님의 종들을 꾀어 그의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행음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많은 종들은 이들에 의해 음녀의 세력권에 흡수되어 진리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이들 음녀의 세력들은 온갖 더러운 이방 종교들을 그들의 산하에 결집시켜 거대한 음녀 세력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 음녀의 등장 목적은 사탄을 도와 이 세상을 잠정적으로 지배할 적그리스도를 인류의 메시야로 등장시키는 시녀(侍女)의 역할을 이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음녀는 사탄에 의해 등장하고 사탄에 의해 활동하게 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진리를 거슬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입니다. 음녀의 등장으로 인하여 이 세상은 급속도로 영적 흑암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2) 이 음녀의 죄와 자만과 교만이 7절에 나옵니다. 음녀는 자기를 영화롭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이미 짐승과 짝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정치적 권세를 아울러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것으로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 있었습니다. 음녀는 또한 사치에 깊숙이 젖어 있었습니다. 음녀는 자신의 영화로움에 대하여 스스로 도취된 나머지 166 \ 18:4-10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라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여황이란 말은 '황후'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 음녀는 이제 자신은 결코 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신변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그 같은 영화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자만하고 있습니다. 이 음녀는 주의 재림이나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도 믿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2. 음녀의 최종적 심판
그러나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음녀에게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그에게 주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1) 8절에서 이르시기를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음녀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의 뛰어나신 지략에 의해 교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녀의 심판을 그가 의뢰했던 짐승 곧 적그리스도의 손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17:16절 말씀에서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아주 사르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심판이 이 때 음녀에게 내려지는 모습을 여기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짐승은 음녀를 미워하여 열 뿔과 더불어 음녀를 하루 동안에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살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고 했습니다. 하루 동안이란 말은 그들을 심판하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씀해 주는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란 짐승이 음녀를 죽인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같은 심판의 모습은 음녀와 그로 말미암아 음녀환 된 큰 성 바벨론의 심판을 함께 포함시킨 이중적 계시인 것입니다. 음녀는 이미 짐승에 의해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불로 아주 살랐습니다. 그리고 그 음녀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사망과 애통과 흉년'으로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결론 : 큰 성 바벨론으로 비유된 이 세상은 장차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내려지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불의 심판에 의해 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폭발해 버릴 것입니다. 음녀의 자취도 없어지고 짐승의 자취도 없어질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성도들만이 새롭게 전개되는 새로운 땅위에 굳게 서서 우상을 무너뜨린 '뜨인 돌'이 온 세계에 가득했던 것처럼 새로운 세계,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천년왕국에서의 새로운 축복을 맞게 될 것입니다.

167 \ 18:9-20

(84)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애가
(요한계시록18:9-20)

베드로 사도는 벧후3장에서 예언하기를 인류의 종말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관하여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언한 그 불의 심판이 하나님께서 이 지구에 쏟아 부으시는 일곱 번째 대접 심판으로 오는데 이 심판의 모습이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오며 본문에서는 이 두려운 모습을 바라보며 애통하는 애가가 실감나게 계시되고 있는 것입니다.

1. 지구와 함께 멸망하는 자들의 애통
음녀의 심판과 큰 성 바벨론의 심판은 거의 동시적입니다. 음녀는 짐승과 열 뿔에 의하여 심판을 받도록 하셨지만 이 큰 성 바벨론은 하나님에 의하여 일곱째 나팔을 불면서 일어나는 일곱 대접 심판 시, 마지막 대접인 일곱 번째 대접 심판으로 인해 불로 소멸해 버립니다.
(1) 9절에는 땅의 왕들의 애통함이 나옵니다. 땅의 왕들이란 땅의 지배층을 말합니다. 이 왕들 가운데 열 뿔도 예외는 아니며 세계 도처에서 진리를 대적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던 자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이들에 대해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2) 다음에 땅의 상고들의 애통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상고(商賈)란 장사꾼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울며 애통하는 이유로 이들이 만든 물건을 '사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12절 이하에는 이들이 장사해서 많은 돈을 벌어 온 여러 가지 상품의 이름이 하나하나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 언급한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 들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상품들은 의류에 관한 것들로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등장한 상품이 집안에 장식으로 혹은 살림의 도구로 사용하는 가구들입니다.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명이란 말은 그릇을 의미합니다.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향료와 술과 기름 류와 곡식에 관한 상품들입니다. '계피와 향료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다음에 마지막으로 나오는 상품이 짐승과 사람들을 상품으로 한 것들입니다.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고 했습니다. 양이나 말이나 수레 등은 168 \ 18:9-20

옛날부터 상품으로 취급해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고한 상품이 우리의 눈길을 끌게 됩니다. 종들이란 노예의 신분으로 몇 세기 전 만해도 이들의 매매가 성행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영혼들'이라고 나온 상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영혼이란 말은 영적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적 생명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육체의 매매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을 '종들'과 구별시킨 이유는 종들의 매매와는 좀 다른 면이 있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인신 매매로 말미암은 치부를 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4절에서 이런 상품들을 가리켜 '네 영혼이 탐하던 과실'이라고 했습니다. 인류들은 종말에 이를수록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에 빠른 속도가 붙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지나갈 것들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허탄한 것으로 자랑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파멸에서 구원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하고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그 분께만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3) 다음에 바다에서 일하는 선장이나 선객들의 애통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날 각종 상품의 수출은 바다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바다가 없다면 세계의 기업은 당장에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수출입이 안 된다면 기업은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둘째 대접 심판 시에 바다가 죽은 자의 피같이 되어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들이 죽게 됩니다. 바다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고 죽은 바다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심판을 바라보는 그들은 '티끝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에 망하였도다'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하늘에 있는 자들이여 즐거워하라
이런 종말적인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 하늘에서는 즐거워하는 함성이 힘있게 울려 나올 것입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이 음성은 하늘의 음성인데 이 같은 심판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천천 만만의 천사들의 환희에 찬 함성일 수도 있습니다.
결론 : 이 같은 심판에 대하여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들에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계6장에서 낯익은 말씀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 제단 아래 있는 순교자들이 그들의 '피값을 신원'해 주기를 원하는 간구를 듣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흘린 피의 신원하시는 때가 되어 큰 성 바벨론을 불태우는 심판으로 온전히 갚으시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심판의 날이 이제 곧 우리 앞에 찾아 올 것입니다. 그 같은 날을 대비하는 신부의 단장을 서둘러야 할 그런 시기에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169 \ 18:21-24

(85) 최후 심판으로 온 지구의 적막
(요한계시록18:21-24)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는 결코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못됩니다. 지구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 세계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역사(歷史)의 공간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마치면 다시 창세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는 하나님에 의하여 두 번 결판이 납니다. 한 번은 일곱 대접 심판으로 인류의 종말에 있을 불의 심판으로 새로운 세계로 재창조되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계인 천년왕국 후에 있을 지구의 완전 소멸로 인한 공중분해입니다. 계시록 18장은 지구가 불의 심판으로 소멸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그 가운데서 살아가는 인류들이 애가를 부르는 모습으로 보여 주었으며 21절에서 24절까지는 이 같은 지구의 파멸에 대한 결론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록20:11절에서 기존의 피조물들인 눈에 보이는 모든 세계가 사라져 버리는 최종적인 심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1. 바다에 던져진 맷돌 같은 돌
요한은 한 천사의 이상한 거동을 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요한 앞에서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는 말이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고 한 것입니다.
(1) 큰 맷돌 같은 돌이 바다 속에 빠진 것은 이 지구가 바다 속에 잠긴 것을 의미합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저주 가운데서 탄식하며 고통을 당하는 피조물들은 천국왕국을 계승받을 수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인간의 죄 값으로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과 함께 불로 완전히 소멸을 받는 것입니다.
지상에 내리는 이 심판에서 건짐을 받을 생명체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지구 안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는 말할 것도 없고 지면(地面)에 서식하는 풀이나 모든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다 사라져 버립니다. 벧후3:10절에서 말씀하기를 이 지구가 폭발하여 지구 안에 있는 불덩어리가 터져 나오면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이 심판에서의 유월이 그리스도인의 공중 휴거입니다.
(2) 다시 보이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의 모습이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죄로 더럽혀지고 저주받은 이 세상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완전히 소멸해 버리고 다시는 계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라가 형성될 것입니다.
170 \ 18:21-24

사도 요한은 이 계시를 받으면서 계12:15절에서 이 나라에 대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는 공중으로 휴거 되었던 모든 성도들이 그 나라의 시민이 되어 그 곳에서 천년 동안 살아갈 것입니다.

2. 바벨론의 심판으로 적막해 진 지구
22절부터는 큰 성 바벨론으로 비유된 이 지구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완전히 바닷속(실인즉 멘틀 속)으로 침전(沈澱)된 상태에 들아간 후, 모든 것이 적막해진 상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 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문고 타는 자들이란 즐거운 노래로 인간의 생활을 기쁘게 해 준 자들입니다. 거문고 타는 자나 풍류 하는 자나 퉁소 부는 자들은 모두 동일한 종류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악기를 가지고 사람을 찬양하고 사람의 향락을 찬양하며 사람들로 방탕과 음란을 부추기는 일에 열을 올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방송국이나 일반 음악계에서 사용되는 모든 악기는 대단히 고가 품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이 사회를 바벨론화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골목마다 꽉 메우고 있는 술집, 카페 등 이곳들은 악기 잡은 자들에 의해 밤새도록 흥겹게 춤추며 노래하며 이들로 이 사회의 병폐는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어떤 세공업자든지 결코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다시 들리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세공업자들은 세상에 사치품을 경쟁적으로 개발하여 유행시켜온 기술자들입니다. 그들이 사라졌으니 세상에 유행했던 값진 사치품들도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3) '등불 빛도 다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도 결코 다시 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음성은 은밀한 사랑의 대화를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은밀한 남녀간의 대화가 신랑과 신부의 음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음성도 일체 자취를 감춰 버렸습니다. 아무 집에도 등불 빛이 없습니다. 오직 캄캄할 뿐입니다.
결론 : 이 같은 결과에 대해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네 복술이란 음녀가 세상에 먹인 음행의 포도주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녀가 먹인 음행의 포도주로 이 세상이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죽은 자와 같은 적막 가운데 들어갔다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그의 백성들에게 이처럼 외치십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18:4).
171 \ 19:1-8

(86) 어린양의 혼인 기약과 예비된 아내
(요한계시록19:1-8)

일곱째 대접으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끝나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합니다. 그 세계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하시는 세계, 천년왕국입니다. 이 대접은 일곱째 천사의 나팔로 진행되는 데 그 일곱 번째 대접으로 지구의 최종적인 심판이 끝나게 됩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계11:15). 바로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때에 이루어지는 천년왕국입니다.

1. 하늘의 찬양
사도 요한은 18장의 계시를 본 후,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1) 1절에서 큰 음성 같은 찬양으로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무리는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 모든 성도들의 무리'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성도들은 셋으로 구분됩니다. 한 무리는 첫째 부활자로 하늘의 군대로 예수님과 함께 지상에 내려 와서 예수님의 심판을 도와 짐승의 무리와 싸우는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순교 성도들입니다. 다른 하나의 무리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은 계20:5절에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하신 말씀대로 천년왕국이 지나기까지 천국에서 안식을 계속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한 무리가 있는데 이들이 주의 재림 시까지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하늘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 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고 살전4:17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의롭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심판이기 때문에 참되고 의롭습니다. 계시록 18장에서 큰 성 바벨론에 대하여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 지라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큰 음녀란 음녀화 된 이 세상을 말합니다. 음녀란 배도 세력을 의미합니다.
(3) 24장로와 네 생물의 경배와 함께 보좌에서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 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는 음성 172 \ 19:1-8

이 그것입니다.

2. 어린양의 혼인 기약과 예비된 아내
이 같은 하늘의 음성과 찬양을 들은 사도 요한은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이 대 합창의 하늘의 찬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1) 이 노래는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에 대한 찬송으로 나옵니다. 이제 죄로 더럽혀진 이 세상은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소멸되어 버리지만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새로운 세계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언된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그 문맥으로 보아 천국을 의미하지 않음이 명백한 것이 이곳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실이 새로워진 피조 세계에서의 육신적인 생활임을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날에 큰 즐거움과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이 같은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바라보고 그 날을 기다리면서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어린양에게 영광을 돌리는 소망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일곱 번째 대접 심판인 큰 음녀의 최종적인 심판이 끝나면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는 것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말은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 새로운 나라, 천년왕국에서의 축복된 생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4) '그 아내가 예비하였다'고 했습니다. 예비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의미로 준비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그 아내들을 예비하지 아니하시고서는 일곱째 대접으로 이 땅을 심판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7장에서 흰옷 입은 무리로 전 세계에서 뽑아 내신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바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인데 이 무리에 대하여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계7:9,14).
결론 : 그 예비된 아내에게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는데 그 세마포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세마포는 어린양의 아내가 입을 옷입니다. 이 옷을 입지 않고서는 결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마포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린양의 아내가 될 자격자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로 단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옳은 행실은 회개의 열매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같은 자격을 주시기 위해 두 증인으로 1260일간 회개의 복음을 다시 예언케 하시며 첫째 화의 연단으로 올바른 신앙의 결실을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173 \ 19:9-10

(87) 어린양의 혼인 잔치
(요한계시록19:9-10)

1절 말씀에 나온 계시를 보니 '요한은 하늘의 허다한 무리의 음성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다'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준비를 마치시고 이제 곧 지상에 내려오실 것입니다. 성도들의 피 값에 대한 응분의 심판을 이루기 위해서도 그러하고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인 새로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도 죄로 오염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큰 바벨론 사회를 이룬 이 세상에 최종적인 심판을 내리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될 성도들을 이런 심판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그들을 공중으로 이끌어 올리시기 위해서 주의 재림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1. 어린양의 혼인 잔치
지난 시간에 우리들이 살펴 본 7절의 어린양의 혼인 기약은 9절에 있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 같은 사건입니다.
(1) 여기서 천년왕국의 생활을 왜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계시록11:15절에는 일곱째 천사의 나팔이 불 때 이루어질 새로운 나라의 등장을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일곱째 천사의 나팔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의 나팔입니다. 이 같은 심판 후에 다시 세워질 나라는 이 땅위에 새롭게 등장할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로 태어나기 때문에 천국은 아닙니다. 천국은 흰 보좌 심판을 거친 후, 부활하고 변화 받은 몸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 이전에 이 땅위에 건설될 나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하여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성경 구절은 어느 곳에도 없습니다. 이 나라는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로 우리가 대망하는 천년왕국인 것입니다.
(2) 이 나라의 생활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라고 비유한 것은 이 나라의 지극히 아름다움과 그 나라에서 누릴 축복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주의 재림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대망하는 것입니까? 그의 만남에 큰 의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성취되어 그 나라에서 주와 함께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같은 소망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에 크도록 큰 기대를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3) 천년간의 제한된 기간은 왜 필요한 것입니까? 천년왕국은 영원한 우리들의 본 174 \ 19:9-10

향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언제인가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천년왕국도 종국에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 곳에서 천년 동안 살아가는 이유는 이 땅위에서 종말적인 환난을 거치며 살아 온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위로이며 언약의 성취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태어날 많은 백성들이 있는데 그들 중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도 있을 것입니다.
(4) '이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누가 이 잔치에 청함을 입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그의 아내 될 자들인데 이들에 대하여 8절에서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2. 혼인 잔치의 생활
혼인 잔치란 말은 인생의 최대의 행복한 상태의 생활을 의미해 주는 표현입니다. 천년왕국의 생활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비유될 만큼 모든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1) 이 나라에서의 생활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첫째로 그 나라에는 죄악과 저주와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몸이 그 나라에 들어가면 우리가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그대로 있고 우리의 몸도 그대로의 몸이건만 우리의 신체는 젊음과 건강에 찬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이며 죄의 저주로 인하여 고장났던 우리의 모든 신체의 부분들이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와 같은 온전한 자리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이 나라에서의 수한(壽限)은 나무의 수한과 같고, 가옥도 새롭게 건축되어 영화로운 저택에서 살게 되고 그들의 소생은 복된 자의 자손이 될 것입니다(사65:20-25).
(3) 이런 세상에서 새로운 천년간의 생애를 누린다는 일은 분명히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 이 같은 천사의 명령을 들은 요한은 그 천사의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고 했습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자기는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섭리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이 말은 자신은 성령이 주시는 예언의 전달자로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는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에 불과한 것임을 나타낸 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도 주의 종을 통해서 이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청하는 성령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신부의 단장을 서둘러 이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어린양의 아내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75 \ 19:11-16

(88) 재림의 주님과 하늘의 군대들
(요한계시록19:11-16)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한 사건, 한 사건을 이루고 있는 문장을 철저하게 연구하므로 잘 이해하고 그 사건들을 제각기 방치해 두지 말고 문장의 맥을 따라 잘 연결시키면서 해석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의 완벽하고 완전한 문학 작품으로서의 올바른 해석을 시도해야 종말에 이루어질 계시의 뜻을 깨달을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재림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주제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사람들이 만약 이 주제를 이탈하면 요한계시록은 계시된 본궤도를 이탈하여 바른 해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1) 예수님은 그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밝히셨습니다(마24:36). 예수님은 분명,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삼위일체 되신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그가 이 세상에 인자의 몸으로 계셨을 때에는 스스로 그 같은 하나님의 권능을 제한하셨기 때문에 그의 재림 일자에 대하여 모르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 일자에 대하여 모르고 계시다는 견해는 대단히 잘못된 견해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속죄 사역을 마치신 후, 부활 승천하심으로 온전히 회복되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 땅에 계셨을 때의 모든 제한에서 놓임을 받고 더욱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으로 복귀하셨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의 시기를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2)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일 시(日時)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그 재림에 징조에 대해서는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 어느 때나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재림은 반드시 인류의 최 종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종말은 어제오늘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재림에 대한 성경적인 예언과 계시의 증거가 무르익어야 하고 종말에 나타나기로 예언된 여러 가지 사건이 역사의 무대 위에 실제로 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류의 종말에 등장하여 온 인류의 오른손과 이마에 짐승의 표를 줄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필수적입니다.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없이는 인류의 종말도 예수님의 재림도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주도하는 '한 이레의 언약'이 성사되어야 합니다. '한 이레의 언약'은 곧 7년 환난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역사의 무대 위에 실질적으로 등장하고 성취되는 인류의 종말을 거쳐야 그 마지막에 가서 예수님의 재림이 있게 될 것입니다.
176 \ 19:11-16

(3) 그러나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일은 이 같은 종말적인 시대적 징조가 언제 우리들 앞에 불쑥 나타날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고 경종해 주고 있습니다.

2. 백마 탄 자와 하늘의 군대
사도 요한이 계시로 바라본 주의 재림의 광경은 두 가지 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이요, 다른 하나는 백마 탄 하늘 군대의 모습입니다.
(1) 요한은 하늘이 열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열린 하늘에서 재림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에 있어서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그에 대하여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2) 그런데 하늘에서 내려온 분은 예수님 한 분만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하늘의 군대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결코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천사들도 동원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할 일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에 이르기까지 모아 그의 백성들로 공중으로 휴거 시키는 일을 담당할 것입니다(마24:31). 그리고 불신자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는 일을 하게 됩니다(마13:41).
이들 하늘의 군대들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로(고전15:23) 주님과 함께 철장 권세를 가지고 만국을 치게 될 것입니다(계2:26-27). 이들이 입은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은 순교자들에게 주신 '흰 두루마기'를 의미합니다(계6:9-11). 그들이 타고 내려온 백마는 계시록 6장에서 두 증인의 사역에서 보여 주는 흰 말 탄 자들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이들이 1260일간 예언의 사역을 이루다가 짐승에게 순교 당한 두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결론 : 아직 하늘 군대로 내려 올 두 증인들의 순교가 이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 중에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는 역사로 이들이 선발되면서 이 땅위에는 한 이레 동안의 정해진 재림의 기간이 시작 될 것입니다. 이들이 환난 중에 순교 당한 후, 이 세상은 급격히 무서운 종말적인 대환난 속에 빠져 들어갈 것이며 그 환난의 종반에 가서 곧 아마겟돈에 어린 양과 함께 열려진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흰 말 탄 하늘의 군대로 내려 올 것입니다.
177 \ 19:17-21

(89)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
(요한계시록19:17-21)

'아마겟돈 전쟁'이란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백마 탄 만주의 주요 만 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과 그가 거느리신 하늘의 군대들이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싸우는 아마겟돈에서의 최후의 결전을 말합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불문가지(不問可知)입니다. 육신을 가진 인간의 군사들이 하늘의 신령한 군사들을 이기지 못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이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그리스도에 의해 생포됩니다. 그리고 그가 거느렸던 모든 지상 군대는 전멸되어 공중의 새들을 초대하는 '하나님의 큰 잔치'의 만찬이 됩니다.

1,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난 동기
아마겟돈 전쟁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모으는 일'로 일어납니다(계16:12-16). 우리는 왜 아마겟돈에서 적그리스도의 지상 군대와 그리스도의 하늘 군대가 전쟁을 하게 되는지 그 이유와 원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성경에 예언되고 계시된 사건을 추리해 보면 다음 몇 가지 상황을 들 수 있습니다.
(1) 종말에 적그리스도는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스가랴는 이처럼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 그 날에 네 재물이 약탈되어 너의 중에서 나누이리라 내가 열국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 성읍이 함락되며 가옥이 약탈되며 부녀가 욕을 보며 성읍 백성이 절반이나 사로잡혀 가려니와 남은 백성은 성읍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슥14:1-2).
이 말씀은 결코 70년대에 로마의 디도에 의해 성취된 예루살렘 함락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이 예언의 초두에 '여호와의 날이 이르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디도가 예루살렘을 침공한 날은 '여호와의 날'이 아닙니다. 그리고 4절에서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란 말씀에서 주의 재림의 날임을 더 명백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열 뿔이 아마겟돈에서 주님과 싸울 일에 대해 계17:14절에서 '저희가(열 뿔)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 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첫째 부활자로 살아난 순교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 때에 이루어지는데 예수님의 재림 시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구원의 역사가 이 시기에 성취됩니다. 이 때에 남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178 \ 19:17-21

자기들의 메시야로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침공한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들이 144,000의 하늘 군대와 더불어 예수님이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에 재림하시는 이변을 보게 될 때, 그들은 곧 퇴각하게 되는데 예루살렘에서 큰 군대의 퇴각로는 아마겟돈 평원이 될 것입니다. 동방의 왕들이 아마겟돈으로 모이는 일은 이런 경로를 통해서 모이게 되며 그들은 그 곳에서 재림하시는 주님과 그가 거느린 하늘의 군대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과 싸우기 위해 하늘에서 하늘 군대를 거느리고 내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2) 이 때 아마겟돈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큰 잔치'를 치르는 광야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아마겟돈에서의 잔치는 이 잔치에 초대받은 손들이 공중에 나는 새들로 독수리 떼들과 까마귀 떼들이며 그들에게 대접할 만찬은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이는 잔치가 될 것입니다.

2.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
이 아마겟돈 전쟁으로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랐던 모든 왕들과 그 휘하에 있는 모든 군대들이 아마겟돈에서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1) 이 때에 적그리스도를 따랐던 왕들과 그의 군사들은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검의 권능에 의해 모두 죽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예수님의 재림이 그의 입의 검으로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여 죽이는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인류는 주의 재림 직후에 내리는 일곱째 대접으로 인한 지구의 폭발로 불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이 자가 아마겟돈에서 예수님에 의해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자는 거짓 선지자와 함께 특별한 주님의 조치를 받게 되는데 이 두 명의 존재는 육신의 죽음을 거치지 않고 산채로 곧장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마겟돈에서 사로잡힌 거짓 선지자에 대한 운명도 적그리스도와 동일하게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
결론 : 주의 재림으로 인한 여섯째 대접의 심판 결과 이제 지상의 모든 활동이 끝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인류의 왕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적그리스도와 이 자를 신적 존재로 부각시켜 온 인류들로 짐승의 표를 받게 한 거짓 선지자의 최후의 심판이 아마겟돈에서 집행되어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사건이 다 끝난 후, 곧 공중으로 올라가시어 공중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든 성도들을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성도들은 주의 재림 시에 이미 공중 휴거로 공중으로 끌어올린 생존 성도들이며 공중에서 이 때 주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179 \ 20:1-3

(90) 천년간의 사단의 결박
(요한계시록20:1-3)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첫째 부활' '천년왕국' '흰 보좌 심판'에 대한 말씀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짧게 전개되지만 이 모든 계시는 종말론 해석에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가지는 문제들입니다. 다만 여기서 천년왕국이란 분명한 언급이 없고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는 말씀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천년왕국을 해석하는 일에 여러 가지 견해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전 천년설', '무 천년 설', '후 천년설' 등이 그것입니다. 이 문제를 천년기 설(千年期說)이라고 합니다.

1. 천년기 설에 대한 신학적 견해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떤 천년기 설을 취해야 하느냐는 문제는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성경 해석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이 천년기 설에 대한 성경적인 올바른 견해를 갖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1) 먼저 후 천년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의 경우, 이 후 천년설을 취하고 있는 신학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별로 문제시 될 것이 없습니다. 후 천년설이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이전에 이 땅위에 천년왕국이 먼저 도래한다고 하는 신학적 견해인 것입니다.
(2) 다음에 무 천년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무 천년설이란 문자 그대로 천년왕국을 인정하지 않는 신학적 견해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전후하여 그 이전에나 이후에나 천년왕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무 천년설에는 많은 모순과 성경 해석에 불합리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결국 오래지 않아 사장(死藏)될 것입니다.
그 첫째의 모순은 마귀의 일 천년간의 무저갱에의 결박을 신약시대의 마귀의 활동 제약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무 천년설을 주장하다 보면 첫째 부활에 대한 해석이 난관에 부닥치게 됩니다. 그리스도 재림 시에 첫째 부활이 있으면 언제인가 다른 부활이 또 있어야 하는데 무 천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그런 부활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 첫째 부활을 죽은 자의 살아나는 사건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는 중생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3) 다음에 성경에 가장 가까운 해석이라고 볼 수 있는 '전 천년설'의 경우를 보면 이 경우에도 일치된 견해를 보이지 못하고 굉장히 다양한 해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전천 설에 대하여 '역사적 전 천년설'이란 말로 표현하기를 좋아하는데 여기서 역사적이란 말은 요한계시록을 역사적 사건의 계시로 보는데서 부쳐진 이름입니 180 \ 20:1-3

다. 그러나 그 해석의 범위가 넓은데 요한계시록의 문장을 상징적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상징적 해석을 취하기 때문에 사실상 역사적 해석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세대주의 신학에 입각하여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때문에 그들의 해석 역시 역사적이기는 하지만 '세대주의적 전 천년설'이 되는 것입니다.

2. 붉은 용의 결박과 무저갱
우리는 요한계시록 20장이 어느 시점에서 성취될 계시인가에 대한 그 시기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1)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계시록 19장에서 주님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잡아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존재는 땅으로 내어쫓긴 붉은 용뿐입니다(계12:7-9). 용은 영적 존재이므로 또 다른 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마겟돈 전쟁 후에 천사로 하여금 결박케 하여 무저갱에 일 천년간 던져 넣게 되는 것입니다.
(2) 무저갱이란 아부쏘스( )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이란 뜻입니다. 이곳은 원래가 악령들이 갇혀 있는 악령들의 감옥입니다. 요한계시록 9장에서 이 무저갱 속에 갇혀 있었던 악령들이 세상으로 올라오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눅8:31절에서 무저갱으로 들어가기를 싫어하는 군대 귀신의 간구가 나옵니다. 이 악령들이 첫째 화 시기에 지상으로 올라와 그 이마에 인 맞지 아니한 자들에 대한 핍박이 있게 되는데 이 핍박을 첫째 화라고 부릅니다.
(3) 사탄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이유는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을 무저갱 속에 결박한 채 가두어 두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을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위해 사용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천년왕국이 끝날 즈음, 만국을 미혹하게 하는 일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에서 태어난 2세들을 미혹하게 하므로 택자와 불택자를 갈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하나의 완전한 문장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경 각 곳에 널려 있는 종말적인 사건들은 다른 사건과 연계된 단편적인 사건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의 종말적 사건을 가지고 종말론 전반적인 면을 해석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이런 단편적 사건들을 한곳에 모아 조직적으로 말씀해 주신 계시가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얼마나 세밀하고 완벽한지 감해도 안 되고 더해도 안 된다는 경종을 주고 있습니다. 천년왕국은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공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신기루처럼 가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얼마 후에 우리들 앞에 성큼 다가올 이런 사실들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181 \ 20:4-6

(91)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
(요한계시록20:4-6)

본문에는 첫째 부활자들에 대한 범위와 그들이 받을 축복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종말론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부활에 관한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종말론의 결론이 이 부활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첫째 부활에 관한 문제는 부활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대한 설교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1. 신학의 오류에서 나온 두 가지 모순
신학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일은 어떤 성경적 문제에 대한 일방적 결론입니다. 가령 무 천년설을 주장하는 신학은 그들의 부활관이 무 천년설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해석하면 당장에 무 천년설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에 나오는 첫째 부활자들에 대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드리면 무 천년설이 설립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 천년 주의자들은 부득불 첫째 부활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첫째 부활은 중생을 의미하는 사건이라고 주장합니다.
'역사적 전 천년설'에서는 부활을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첫째 부활이란 성도들의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불신자들의 부활이라고 정립해 놓고 있습니다. 이들의 신학적인 부활관을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죽은 모든 성도들이 부활한 몸으로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홀연히 변화 받아 공중에서 이들과 합세합니다.
그러면 천상이건 지상이건 부활되지 못한 성도들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해결할 수 없는 큰 신학적 문제가 생깁니다. 천년왕국에서는 누가 살아가며 천년왕국은 왜 존재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2. 성경적인 첫째 부활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첫째 부활에 대한 올바른 성경적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1) 그러면 본문에서 누구를 가리켜 첫째 부활자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까? 4절과 5절에서 첫째 부활자의 범위가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우리는 위에서 첫째 부활자를 두 구분으로 나누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182 \ 20:4-6

사람들은 첫 번째 대상인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에 대해서는 순교자들이라고 말하면서도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해답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둘을 잇는 '또'라고 하는 접족사는 둘 다 같은 첫째 부활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임을 의미해 줍니다. 그리고 '이는 첫째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는'이라고 한 말은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과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을 함께 지칭한 말입니다. 우리는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어떻게 순교자로 볼 수 있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살아서'란 말에서 순교자들임이 분명한 것입니다.
이 '살아서'란 말은 원어로 에제산( )으로 '살아나서'란 뜻입니다.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과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라고 한 두 종류의 첫째 부활자들을 한데 묶어서 '살아서'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이 곧 첫째 부활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란 누구며 왜 '목 베임을 받은 자들의 영혼들'로 나오는 순교자들과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 문제는 계6:11절에서 쉽게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제단 아래에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무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들이 첫 번째 언급해 주신 순교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께 외치기를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하는 간구에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나님께 간구한 순교자 외에 다른 또 한 종류의 순교자가 있어야 한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들 순교자가 11장에서 순교하는 두 증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계20:4절에서 두 종류의 순교자를 보았으며 그들이 첫째 부활자로 살아나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20:5절에 나오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하신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불신자들인 것이 아니라 순교자들의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없었던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시기를 가리킨 것입니다.
결론 :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고 했습니다. 천년왕국에는 많은 백성들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성도들이 그 곳에서 천년 동안 살아갑니다. 또 그들이 천년간 생산할 후손들도 엄청나게 많을 것입니다. 그 곳에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특별한 성도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들이 첫째 부활자인 순교자들인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영광이 이처럼 크다는 사실을 알고 주를 위해 가장 영광스러운 순교의 자리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183 \ 20:6

(92) 천년왕국의 생활
(요한계시록20:6)

천년왕국은 천국과 구별된 다른 또 하나의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수 있는 소망의 나라인 것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만 약속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상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이 나라를 대망해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대망하고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린 연유도 알고 보면 이 같은 천년왕국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천년왕국은 어떻게 세워지는가?
천년왕국으로 언급된 성경 구절은 없지만 천년왕국에 대한 확실한 약속은 성경에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단2:44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 . . ."
단7: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 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슥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고전15: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 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계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계20:6 " . . .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
(1) 천년왕국은 분명히 새로운 세계입니다. 기존의 세계, 곧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천년왕국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지상의 모든 것들은 마지막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일곱 번째 대접 심판으로 불로 사름이 되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이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2) 천년왕국은 하나님에 의하여 새롭게 이 지상에 창조되는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이 지구는 마지막 일곱째 대접 심판으로 창세기에 나오는 셋째 날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입니다. 다시 '뭍이 드러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 땅은 새로운 형질이 이뤄질 것입니다. 그 때 지구의 중심부에 있는 맨틀에 소장된 많은 보석과 금은 보화와 아름다운 진귀한 보석들이 땅의 돌처럼 솟아나 온 세상 184 \ 20:6

에 가득 찰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이처럼 예비하신 후, 하늘 공중으로 이끌어 올리운 그의 백성들을 데리고 이 나라에 내려와 그의 왕국을 이루실 것입니다.
(4) 이 나라의 백성은 셋으로 구분될 것입니다. 하나는 이 나라를 실질적으로 통치하실 이 나라의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음에 왕이신 예수님을 도와 그와 함께 왕 노릇할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첫째 부활자로 순교자들입니다. 이 일에 대하여 계20:6절에서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천년왕국에서 살아갈 백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의 재림 시 공중으로 이끌려 올려 간 지상의 생존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부활하거나 변화되는 몸으로 이 나라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천년왕국에서의 생활
천년왕국의 생활은 매우 궁금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년왕국이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다르다면 그 안에서의 생활도 다를 것입니다.
(1) 이 세계에는 사망이나 저주나 질병이나 죄악이 없습니다. 적어도 천년간이란 기간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마귀가 천년 동안 무저갱에 결박된 채 갇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죄가 없으면 사망도 없습니다.
(2) 이 세계에서는 신체적 장애나 결함이 없는 온전한 육신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질병이나 노쇠나 고통은 모두 죄의 저주로 말미암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는 이미 용서받았고 사탄이 사라지고 죄가 없어진 이 세계에는 이런 모든 저주들이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3)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은 천년 동안 죽음이 없게 되며 자손의 자손을 보게 되며 공해가 전혀 없는 세상에서 인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과 행복을 최대한도로 누릴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지금 참으로 이 같은 복을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역사적 시점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대의 그 수많은 성도들이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이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순교적인 삶을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년왕국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약속된 소망을 바라보시고 주님의 신부가 될 신부의 단장을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85 \ 20:7-10

(93) 천년왕국의 종국과 사단의 심판
(요한계시록20:7-10)

천년왕국에도 인류의 마지막이 있습니다. '천년 동안 왕 노릇하리라'는 말이 천년 후에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의미해 줍니다. 천년왕국의 세계는 미혹이 없고 죄악이 없고 질병도 없고 사망도 없으며 저주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 다시 마귀가 등장합니다. 천년간 무저갱에 갇혔던 마귀가 잠깐 동안 풀려나는 것입니다. 마귀가 침투하자 다시 이 세상에 미혹이 들어오고 죄악이 들어오고 그리스도에 대한 반역이 일어납니다. 이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되며 천년왕국의 종국이 오게 됩니다.

1. 천년왕국의 끝에 일어나는 일
7절에서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의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1절에서 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사탄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에 의해 큰 쇠사슬에 결박당하여 일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사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천년이 차매 하나님께서 마귀를 무저갱에서 잠시 동안 석방시켜 땅의 사방의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도록 하락하셨다고 했습니다.
(2) 우리는 여기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한다'는 말에서 곡과 마곡이란 어느 특정한 지리적인 지역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땅의 사방 백성들 중 사탄에게 미혹 받은 자들을 곡과 마곡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곡과 마곡은 천년왕국의 사방의 백성들 중 사탄에게 미혹 받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곡과 마곡은 겔38장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북방 지역으로 언급되어 있는데 곡과 마곡이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사주를 받은 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3) 붉은 용이 무저갱에서 놓임 받게 되자 이 자는 즉시 천년왕국으로 내려와 미혹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의 미혹에 사방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넘어가게 되는데 이들이 곡과 마곡을 이루어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에덴 동산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덴에서 사탄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죄악이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만을 사랑했으며 하나님과 사랑의 교통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타락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산에 마귀가 등장했습니다. 그토록 무죄한 사회에서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시험하는 자, 이 마귀의 등장으로 그만 미혹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천년왕국도 이처럼 회복된 에덴 동산으로 모든 것이 완전했습니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왕이신 그리스도를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등장으로 미혹 186 \ 20:7-10

을 받은 무리가 생겨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은 미혹 받을 무리는 천년왕국에서 태어난 2세에 국한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공중 휴거로 천년왕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이미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중생한 사람으로 멸망 받을 수 없는 신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
천년왕국에 살아가는 백성들도 죄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천년간 살아온 그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에 올라가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1) 천년왕국에서 태어난 2세들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서 태어나 살아온 축복된 자녀들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중생한 것은 아닙니다. 아담이 에덴에서 죄 없이 살아갈 동안에는 그에게 죄가 없었고 타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영생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간 것은 아닙니다. 그가 불순종하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살아간 것입니다. 천년왕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2) 그뿐 아니라 천년왕국은 거대하고 인류의 번성이 왕성했던 사회입니다. 인류가 살아가는 곳에는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을 풀어놓아 천년왕국 백성들을 미혹케 하심으로 택자와 불택자를 구분하시는 것입니다.
무저갱에서 석방된 붉은 용은 이제 이들 불택자들을 미혹하여 일단의 곡과 마곡의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여 지면에 널리 퍼져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진 뿐 아니라 사랑하시는 성까지 포위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랑하시는 성'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는 첫째 부활자들이 거처하는 성입니다. .
(3) 그러나 이 싸움은 곧 끝장이 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곡과 마곡에 속한 무리는 한 번도 싸워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폭우처럼 쏟아 부으시는 불로 인하여 당장에 그 자리에서 소멸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론 : 이로써 천년왕국은 그 막을 모두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살아서 그 곳에 들어간 성도들은 한 명의 누락자도 없이 모두 그 때 홀연히 변화를 받아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하늘의 흰 보좌 심판대 앞을 거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지상에서 천년왕국으로 옮겨진 성도들은 이미 중생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탄의 미혹을 받지 않고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187 \ 20:11-15

(94) 흰 보좌 심판대
(요한계시록20:11-15)

천년왕국 시대가 끝나면 눈에 보이는 우주의 모든 만상은 사라지고 곧 하늘에 크고 흰 보좌가 펼쳐지는 데 이곳에서 산 자와 죽은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시작됩니다. 흰 보좌 심판은 인류의 마지막 심판을 의미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이 이곳에서 이 때 실시됩니다. 산 자란 천년왕국 마지막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은 성도들을 의미하며 죽은 자란 무덤에서 일제히 부활할 부활자들을 가리킵니다.

1. 흰 보좌 심판대
흰 보좌 심판대란 인류의 마지막 심판의 장소를 말하는데 그 장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1) 사도 요한은 이 흰 보좌에 대하여 다만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장소는 하나님이 인류의 심판을 위해 펼쳐 놓으신 특별한 장소로 하나님이 심판 주로 앉아 계시기 때문에 흰 보좌란 이름이 부쳐졌을 것입니다.
(2)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간 데 없더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과 그리고 우리들 머리 위에 넓고 높게 펼쳐진 저 하늘은 실인즉 그 운명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3) 이 때에 인류의 마지막 대 부활이 일어납니다. 부활에 관한 문제는 교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무 천년설과 전 천년설의 신학적 견해가 다릅니다. 여기서 부활 교리에 관한 큰 혼선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활에 관한 심각한 문제점은 무 천년설이 아니라 전 천년설에 있습니다. 이 설에서는 신자와 불신자의 부활의 시기가 천년간의 간격이 있는데 이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부활관은 전 천년설의 교리를 성경적인 부활관에 맞춘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부활에 관한 문제를 전 천년설에 억지로 맞추었다는 데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첫째 부활자들은 문장 그대로 순교자들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변화 사건은 천년왕국이 끝나 흰 보좌 심판대로 옮길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신자들은 천국에서,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적으로 머물러 있다가 천년왕국이 끝나 흰 보좌 심판 시에 일시에 부활하게 되는 데 신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간단히 설명했지만 이 부활관이 성경적인 부활관입니다.
(4) 12절에서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 188 \ 20:11-15

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했습니다. 사망은 인간의 죽음을 말하며 음부란 시체가 묻히는 무덤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표현은 인간들이 어떤 모양과 어떤 형태로 죽었건, 지구의 체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건 간에 죽은 자들의 부활은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2. 자기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흰 보좌'는 광대한 인류 심판의 광장입니다. 이 흰 보좌에는 두 종류의 책들이 펴져 있습니다.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고 했습니다. '펴 있는 책들'은 심판 받을 자들의 명단과 그들의 심판 받을 행위가 기록된 책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책에 기록된 대로 각기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은 이 때 생명의 부활로 살아나 흰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냉수 한 그릇의 상'도 이곳에서 갚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하셨는데 이 때 이 상이 공평하게 베풀어질 것입니다.
한편 왼편에 있는 자들이 설 곳은 흰 보좌 중에 왼편쪽입니다. 이곳은 지옥에 보내질 악인들의 심판의 장소입니다. 이곳에 선 자들은 자기들이 행한 대로 기록된 행위책에 따라 엄격하고 준엄하게 신문(訊問)을 받을 것이며 그것에 상응한 심판의 선고를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심판의 부활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들에게도 그들의 행한 죄과에 따라 받을 심판의 종류가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옥은 형벌의 장소지만 그 곳에 들어 가는 모든 사람이 모두 똑같은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심판이 끝나면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고 했습니다. 천국에는 사망과 음부가 필요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들을 둘째 사망 속에 던져 넣으십니다.
결론 : 인류의 모든 역사는 완전히 끝났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사는 죄와 사망과 눈물과 질병과 고통 속에서 얼룩져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그의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를 그 저주 가운데서 건져내셨습니다. 흰 보좌 심판은 바로 그 마지막 결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대적자 사탄을 쫓는 무리에게 대한 심판은 불가피했습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흰 보좌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의 상급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보람있는 남은 생애를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89 \ 21:1-4

(95)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21:1-4)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천년왕국까지의 모든 계시를 배웠습니다. 천년왕국까지는 이 땅에서의 세계였습니다. 이 땅에서의 세계는 육신으로 살아갑니다. 비록 천년왕국일지라도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여 왕 노릇하실 예수님과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권을 가지고 왕 노릇할 순교자들인 첫째 부활자 외에는 육을 가진 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소멸과 함께 이런 지상의 세계는 영원히 막을 내리고 이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우리가 경주하는 경주장의 최종 도착지이며 이곳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인간 역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를 보면서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우리의 영원한 본향입니다. 천년왕국까지의 나그네 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들어가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1.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제 천년왕국도 지나갔습니다. 보이는 세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1)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한이 천국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사야65:17절에서 말씀해 주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오해한 나머지 21장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2) 이 새로운 세계의 모습에 대하여 요한은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들 선생이 어디론가 떠나시는 일에 불안을 느끼며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이처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위로해 주신 것입니다(요14:2-3). 이처럼 예수님이 먼저 가셔서 예비하신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그 나라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간 곳
이 새로운 세계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여기서 요한이 밝힌 '처음 것들'이란 인간들이 육신으로 살아 온 보이는 세계 190 \ 21:1-4

와 육신적인 모든 생활을 포함한 말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신비에 쌓인 우주의 모든 존재도, 인간의 생활에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 죽은 자들은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은 변화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보이는 이 처음 것들이 필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보좌에서 큰 음성이 들려 오기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장막이란 사람이 거처하는 집을 의미한 말인데 하나님의 장막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하나님의 보좌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하신 말씀은 우리의 거처가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이란 사실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의 성도들의 삶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친히 뵙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친히 뵈오며 그 하나님을 영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아버지라고 부르는 새로운 가족 관계로서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4) 이 때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신다'고 했습니다. 눈물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동안 흘리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만약 천국에서조차 눈물을 흘린다면 천국은 완벽한 축복의 동산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 모든 눈물을 씻기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위로이시며 이런 것들이 또한 주님을 사랑한 증거가 되어 하늘에서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5) 이 나라에 대해서 4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우리에게 다시는 사망이 없습니다. 천년왕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사망이란 이미 지나간 일들입니다. 사망은 죄에서 나왔습니다. 이제 죄는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죄의 원인자이며 제공자인 사탄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결론 : 우리들에게는 이 같은 천국의 약속이 분명히 주어져 있습니다. 이 나라를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을 소망 가운데 승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나라는 환상의 나라도 아니며 신기루 같은 꿈의 나라도 아닙니다. 우리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공상의 나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한 약속으로 보장하신 우리의 본향이며 이 나라의 상속을 위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그의 피로 구속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


191 \ 21:5-8

(96) 천국을 기업으로 받지 못할 자
(요한계시록21:5-8)

천국의 유업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누릴 최대의 영광입니다. 만약에 이 유업이 약속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유업에 확신을 가지고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금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한 것입니다(고전15:19).

1. 이기는 자가 유업으로 얻을 기업
(1) 5절 말씀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기존의 세계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 지구 안에 있었던 모든 피조물들도 없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지나갔다는 말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으로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고 한 말씀은 만물에 대한 새로운 창조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롭게 전개되는 천국의 새로운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또 요한에게 이르시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말'이라고 하신 말씀은 1절에서 4절까지의 천국의 약속에 대한 확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켜 '신실하고 참되다'고 하신 것은 언약에 대한 맹세의 형식으로 다짐하시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이것을 기록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3) 6절에서 하나님은 '이루었도다'고 말씀하시고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루었도다'고 하신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계시적 성취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될 일에 대한 계시를 사도 요한에게 전부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은 마지막으로 최종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유업의 땅인 하늘의 천국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이 계시는 이미 계시 상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또 하나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요한에게 보여 주신 계시처럼 하나의 가감도 없이 모두 그대로 성취될 것임을 말합니다.
(4) '이기는 자가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세상을 이기는 자를 말합니다. 그러면 누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요일5:5).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신분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곳에서 '이긴 자'라고 하는 말의 정확한 뜻 192 \ 21:5-8

은 일곱 교회에서의 이기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2. 둘째 사망에 들어갈 자들
이기는 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못하여 천국의 유업에서 탈락할 자들은 둘째 사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 '두려워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는 형벌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을 두려워 할 자들은 둘째 사망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들은 주의 재림 시, 두려움으로 주님을 맞이할 자들인 것입니다.
(2)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한 자들입니다. 모든 인류가 둘째 사망에 들어갈 죄는 바로 이 항목의 죄악인 것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3:18).
(3) '흉악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살아 계심을 분명히 보여 주시고 감화와 감동을 주셨지만 이를 고의적으로 거역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자들입니다(히6:4-6).
(4) '살인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린 자들입니다.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거짓 선지자들도 영적 살인자들이기 때문에 이 무리 중에 들어갈 것입니다.
(5) '행음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영적 행음자들입니다. 음녀 교회는 행음자들의 총 본산입니다. 그에 속하여 활동하는 모든 자들도 행음자요 또한 이들과 손을 잡고 음행의 포도주를 마신 자들도 이들 행음자의 무리 중에 포함 될 것입니다.
(6) '술객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거짓 이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많은 사람들을 진리에서 떠나게 한 자들입니다.
(7)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적그리스도와 그의 우상 앞에 경배하므로 짐승의 표를 받은 무리입니다.
(8)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진리의 복음을 거짓되게 전한 자들입니다. 이단의 무리가 이 중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 천국은 우리의 영원한 기업의 땅입니다. 그 무엇을 주고도 살 수 없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곳이 천국입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영원하며 그 아름다운 모습과 축복된 그 곳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입술이나 글로 족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을 바라보시면서 이 세상의 고난을 견디며 이 날을 소망으로 삼으며 이 땅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헛된 영화나 영달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에서 우리 주님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그 손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193 \ 21:9-21

(97) 새 예루살렘의 구조
(요한계시록21:9-2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을 향하여 '이리 오라'고 불렀습니다. 이 때 요한은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높은 성으로 올려 갔습니다.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보기 위해 새로운 계시의 장소로 옮겨진 것입니다. 요한이 이곳에서 계시로 천국의 모습을 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요한에게 천국을 보여 주시기 위해 하늘에 있는 천국이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요한의 이런 모든 광경은 계시로 보았을 뿐입니다.

1.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영광
본문 10절과 11절에는 거룩한 성의 영광이 나옵니다. 그 성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성임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1) 9절에서 천사는 요한에게 이 새 예루살렘 성을 어린양의 아내라고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고 한 것입니다. 왜 이 성을 '어린양의 아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성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천국은 가장 위대한 걸작품입니다. 이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계21:2).
(2) 21절에서 요한은 예루살렘 성에 대해 그 성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온 성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충만하게 비취는 그런 성입니다. 요한은 이 같은 빛을 인간 언어의 최상의 표현으로 '지극히 귀한 보석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했습니다.

2.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의 구조
12절부터 계속해서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의 구조가 여러 가지 비유와 상징적 표현으로 계시되고 있습니다.
(1) '크고 높은 성곽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곽이란 성 둘레를 말하는데 이것은 새 예루살렘을 둘러서 있는 천국의 성벽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이 성곽을 척량했는데 144 규빗이라고 했습니다.
(2) 이 성곽엔 '열두 문'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문들 위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쓰여 있으며 문에 열두 천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194 \ 21:9-21

여기서 열두 문, 열두 천사, 열두 지파의 이름 등, 열둘이란 수효가 들어간 이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육적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모든 성도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3) 14절에서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12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성곽은 열두 기초석으로 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곽 위에는 12 사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12 지파나 12 사도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구별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약교회나 신약교회의 구별도 아닙니다. 원래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없으며 육적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구별이 없습니다. 다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그의 백성들을 선택하셨을 뿐입니다.
그 기초석에 대하여 각색 보석으로 꾸민 기초석으로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 등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유의 보석들이 어떤 형태의 보석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보석상들이 이름 부친 보석과는 천양지차가 있는 보석일 것입니다.
(4) 그런데 천사가 그 성곽을 척량했다고 했습니다. 16절에서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1만 2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고 했습니다. 1 스다디온은 약 180m 로 1만 2천 스다디온이란 약 2천Km의 정방형이 됩니다. 이것을 지구에 있는 한 도시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런던의 약 530만 배로 추정되는 면적이 된다고 어떤 신학자의 주석 서에 쓰여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계산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측량 기구와 동일한지 그 여부에 대해서 알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계산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5) 21절에서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서 있는 열두 문은 모두 진주로 다듬어진 문인데 문마다 한 진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길은 정금이라고 했습니다. 정금이라도 보통 정금인 것이 아니라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고 한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아직까지 천국의 기이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구조를 요한에게 보여 주신 계시를 통해서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으로 요한이 좀더 자세하고 비디오로 찍어 놓은 필름처럼 표현해 주지 못했는지, 못내 서운해하면서 그 나라를 더욱 큰 소망 가운데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다녀왔다는 간증을 하지만 그들이 본 천국은 꿈에서 본 모습이며 하나의 환상에 지니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에 기만당하거나 그런 천국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요한이 계시로 보고 우리에게 알려 주는 천국이야말로 정말로 우리가 소망하는 천국의 참 모습임을 알고 그 나라에 대한 소망에 결코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195 \ 21:22-27

(98)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와 못 들어갈 자
(요한계시록21:22-2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우리가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에 대하여 살펴본바 있습니다. 천국의 계시를 받은 요한은 그 영광스러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세상에서 가장 존귀히 여기는 여러 가지 보석의 경우를 예로 들어 너무나도 황홀하게 그려 놓았습니다. 요한은 이처럼 인간의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는 영광스러움에 황홀해 하면서 본문 21절 이하에서 그 거룩한 성 안에서 왕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자들에 대하여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새 예루살렘 성안의 성전
사도 요한은 22절에서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1) 요한이 새 예루살렘 성안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보지 못한 이유는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없다는 말이 하나님께 대한 경배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국에서의 생활은 그의 전 생애가 하나님께 대한 경배의 계속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그의 보좌가 구심점이 되어 성도들의 찬양과 경배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2) 그 성안에서는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다고 했습니다. 해와 달이 없어도 그 곳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등이란 표현은 빛 그 자체, 곧 빛의 발원지를 말하는 것이지 어떤 빛의 조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린양이 등이 되신다는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이 비췬다는 말은 같은 뜻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도 그 같은 영광의 빛이 비췬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 거룩한 성을 왕래할 자들
24절에서 26절까지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거리를 활보할 자들에 대한 모습과 신분이 나옵니다.
(1)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임금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했습니다. 이 성의 길은 그 길을 걷기에 합당한 자만이 걸을 수 있으며 이 성에는 그 곳에 거주하기에 알맞은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땅의 임금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말입니까? 이들은 만국이라고 표현한 하나님의 백성들과 구분된 신 196 \ 21:22-27

분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이들이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 순교 성도들인 것입니다. '이는 첫째 부활이라 . . . .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계20:4-6).
첫째 부활자로 부활하여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순교자들은 그들의 순교의 그 영광을 그대로 가진 채 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성에서도 왕 노릇 하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계22:5). 26절에서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라고 했습니다. 만국의 영광과 존귀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영광과 존귀를 말하며 이런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것입니다.
(2)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곳에 다시 한 번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지 못할 자들의 신분이 나와 있습니다. 속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속되다는 말은 거룩하게 구별되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신약에 와서 속된 존재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성별 되지 못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와 연합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속된 자들인 것입니다.
가증한 일을 행한 자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모든 자들을 말합니다. 다음에 거짓말하는 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증거하지 못한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는 다른 모든 종교의 경전을 전하는 자도 그것이 아무리 철학적이고 교육적이고 주옥같은 금언이라 해도 그 날에 거짓말하는 자들로 낙인이 찍혀 결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 : 우리는 앞으로 반드시 이 같은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들의 참 삶의 소망은 바로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가리켜 나그네, 혹은 외국인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곳에 들어가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리스도를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지 못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결코 이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로 구원해 주셨으며 오직 그 나라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고 요한의 계시를 통해서 격려해 주시고 여러 가지 말씀으로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에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197 \ 22:1-5

(99) 생명수의 강
(요한계시록22:1-5)

우리는 오늘 드디어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인 22장에 이르렀습니다. 22장은 21장의 계속이자 요한계시록과 성경 전체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규모 있고 거룩하게 예비된 성인지 이 성을 바라본 요한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1. 생명수의 강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의 계시에서 생명수의 강을 바라보고 놀랐습니다.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였다'고 했습니다. 21장과 22장에서 계시되는 천국의 계시에서 바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에 대하여 수정 같이 맑다고 했습니다. 이 강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강입니다. 이 강을 생명수의 강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 속한 모든 것들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려지는 것입니다.
(2) 이 생명수의 물이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수 강의 근원을 밝혀 주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수 강물은 새 예루살렘 길 가운데로 흐른다고 했습니다.
(3) 그런데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말씀해 주는 생명나무 역시 여러 가지 실과를 맺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과일 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명수 강이란 뜻과 같은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실과가 달마다 맺힌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표현은 달마다 추수하고 달마다 새롭게 맺힌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실을 따먹어도 곧 다시 새로운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에 그 신비적인 모습을 이처럼 표현했을 것입니다.
(4) 그리고 그 생명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생명나무에는 잎사귀도 달려 있습니다. 하기야 나무에 잎사귀가 없다면 보기가 별로 좋지 않을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푸른 것이 사라지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아갈 수 없는 것처럼 천국의 잎사귀는 천국의 분위기와 환경을 더욱 아름답고 신선하게 한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2. 어린양의 종들과 천국의 왕권자
198 \ 22:1-5

우리는 3절 이하에서 아주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됩니다.
(1)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21장에서 이미 계시된 새 예루살렘의 새로운 면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해 주는 표현이라고 보겠습니다.
다시는 밤이 없을 것입니다. 사단이 주관해 온 영적 흑암도 영원히 사라져버렸습니다. 해가 지므로 찾아 온 밤도 이제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다고 했습니다. 낮의 햇빛이나 밤의 등불이 필요할 리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그 성을 비췰 것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밝혀 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같은 표현은 하나님과 어린 양 되신 예수님과의 동등 성을 충분히 입증해 주는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곳에서 불려지는 그의 종들이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는 정확하게 그 대상자를 찾아내기란 어렵지만 이들은 분명히 '만국'이라고 불려진 하나님의 백성들과는 차별을 두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는 말씀에서 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오는 144,000명의 하나님의 종들과 관계된 자들로 연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 하나님의 종들은 순교자들로 첫째 부활자 들이며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할 하나님의 종들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고 했습니다. 천국에도 왕권자의 권세를 가진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왕 노릇할 존재란 언제나 소수의 무리입니다. 천국의 모든 성도들이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왕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 성도들이 이런 왕권을 가지고 천국에서 영광을 누릴 것이란 사실은 아무 것도 이상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결론 :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 보고 온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내려 왔던 사람들은 모세와 엘리야 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변화산에 나타나 영광의 모습으로 예수님과 대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천국의 모습을 듣지 못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천국의 모습을 천사에 의해 간접적으로 계시로 본 것입니다. 사도 바울조차도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가 오기는 했지만 그는 천국의 간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장차 이곳에 올라가 살아갈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으로 약속 받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날에 우리가 받을 영광스러운 그 상급을 생각하면서 주를 위해 보람있는 삶을 살도록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99 \ 22:6-16

(10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22:6-16)

7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란 말씀이나 10절에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 그리고 12절에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는 말씀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 날에 우리가 한 일에 따라 주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이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결론에서 요한계시록이 과연 어느 시대에 적용되는 예언의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요한이 본 계시는 주 재림의 시기에 관한 인류의 종말적인 계시이지 결코 1세기 경, 로마 시대 당시의 교회의 핍박 상황이 아닌 것입니다.

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만도 '내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주님의 재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확고한 주님의 다짐으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격려인 것입니다.
(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6절에서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란 말씀은 '약속에 관한 예언을 선지자들에게 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관한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옛적부터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 재림의 대하여 약속하신 그 하나님이시라고 밝혀 주시므로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말씀'이심을 거듭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말씀의 다른 또 한 가지 이유는 우리의 신앙적인 자세에 대한 경종으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 재림의 시일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언제나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명심하여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대는 이 종말적인 계시들이 실질적으로 성취되어 가는 역사적 시점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조차 그러했거늘 하물며 종말에 이른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 종말의 계시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야 하며 그것을 자신의 생활에 적용시켜 세마포로 단장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200 \ 22:6-16

예수님은 요한에게 보여 주신 이 계시의 말씀을 마감할 즈음에 이르러 엄히 말씀하시기를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치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1) 종말에 관한 예언은 그것을 인봉할 때가 있고 그것을 개봉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종말적인 계시와 환상을 보여 주신 후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고 명하셨습니다(단12:4). 구약 성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집하는 유대인들이 아직까지 다니엘의 계시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봉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은 시기가 인류의 종말에 이르러서가 아닙니다. 초림의 메시야가 오셔서 인간의 구원에 관한 모든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제는 재림의 메시야가 오셔서 오메가의 역사를 이루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항상 주 재림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종말에 올 모든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성취되며 이 같은 일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인 것입니다.
(2)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루마기란 의의 옷을 말합니다. 자기 행위의 의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이 옷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옷은 혼인자리에 반드시 입고 들어가야 할 예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옷을 더럽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입고 있는 이 흰 의의 두루마기는 이 세상에서 더럽혀 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빤다는 말은 죄를 회개함으로 더러워진 의의 옷을 깨끗케 한다는 뜻입니다.
(3) 그러나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개들이란 말은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소경이요 무지한 파수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사56:10-12). 술객들이란 거짓 기적으로 거짓된 복음을 전해온 이단자들을 말합니다. 행음자란 영적 간음자로 음녀와 그와 동조하는 무리를 말합니다. 살인자란 성도들의 피를 흘린 황충이 떼들을 말합니다.
결론 : 16절에서 예수님은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요한에게 보이신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는 그 무엇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분명히 듣고 그 날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신부들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1 \ 22:17-21

(101)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22:17-21)

어느덧 오늘 말씀은 요한계시록의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창세기 1장이 인류의 알파라면 성경의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오메가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형성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류가 영원한 천국에서 새로운 역사를 영원히 창조해 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역사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는 변경됨이나 심판이나 종말이 없이 무한정으로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제한된 이 지구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1. 성령과 신부의 초청
17절에 나오는 성령과 신부의 초청은 참으로 감격적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1) 이 천국에의 초청자는 성령과 신부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는 진리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합니다. 신약 시대가 성령 시대로 불려지는 이유는 성령이 초청자가 되시어 듣는 자들과 목마른 자들과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다른 또 하나의 초청자가 나오는데 그 이름이 '신부'로 나와 있습니다. 신부란 그리스도의 신부를 의미하는데 여기서 밝혀 주고 있는 신부는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성도들의 모임이며 이 교회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그의 소유된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2) 초청자는 다양합니다. 먼저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초청의 말씀은 복음으로 전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은 먼저 듣는 자들에게 초청의 우선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목마른 자도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목마른 자란 의에 목마른 자를 의미합니다. 이 의는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며 이 의의 소유자는 그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습니다.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위대한 선물을 원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원치 않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예언의 말씀에 대한 가감죄
18절과 19절에 나오는 말씀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 202 \ 22:17-21

의 경종으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1) 요한은 '내가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증거란 말은 틀림없는 확증을 의미합니다.
(2) 요한이 증거한 경종은 두 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터이요'라고 밝혀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것들이란 요한이 이 계시를 받아 일곱 교회로 보내는 편지로 쓴 이 계시의 내용을 가리킨 것입니다. 이것들 외에 더한다는 말은 요한이 계시 받지 아니한 다른 모든 종말에 관한 계시를 의미합니다.
요한이 다 증거한 계시는 종말에 되어질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후로는 절대로 다른 종에게 종말에 관한 새로운 계시를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다 증거한 '요한계시록'이면 족한 것입니다.
(2) 두 번째의 경종이 19절에 나옵니다.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제하여 버리면'이란 말씀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분명히 계시해 주신 말씀을 임의로 변경시키는 일입니다. 다른 또 한가지는 예언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계시를 엉뚱한 논리로 주님이 주신 계시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을 말합니다. 이런 일은 주로 순리대로 해석하기를 거부하고 신학적 견지에서 연구한다는 신학자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분명한 종말적인 계시를 상징적이라고 하여 계시의 진실을 감추는 일입니다. 상징이 아니라 '요한이 다 증거'한 계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하나님의 말씀을 다 증거'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결론 : 요한이 이처럼 계시록의 끝마무리 시점에 와서 이 같은 경종을 준 일에 대하여 우리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의 해석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계시를 전부 보이신 예수님은 이제 결론적으로 자신이 속히 오실 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우리의 신앙적인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보여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아가건 언제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하는 간구의 생활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절실한 현실이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랜 시간, 성의 있게 들으신 여러분들에게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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