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개요
<요한계시록 개관 1부>
저자와 연대, 목적과 배경, 역사주의, 과거주의, 미래주의 등 여러 학파들
저자와 제목, 저작 연대
계 1:1은 이 책의 제목(이 책은 하나의 '계시'다).
그 신적 저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준다. 이 책은 역사의 무대 뒤에서 활동하며 역사의 사건들과 결과를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력들에 대한 '베일벗기기'다. 이러한 폭로는 구약의 예언들 특히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가 받은 예언들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일련의 상징적인 환상들을 통해 수행된다. 이 책은 또한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신적인 예언으로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에 대한 신적 진단으로서도 '예언'이다(계 1:3, 22:7).
첫 구절에서 확인되는 신적 저자인 메시아 예수께는
다가올 사건들을 교회에 전하도록 자신의 종 요한(1:4, 9, 22:8)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권세가 있다.
요한은 이 책을 집필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을 요한계시록 메시지의 저자라기보다는 환상의 수신자이자 기록자로 표현한다.
요한은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지 않고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간주하지만(22:9)
초기 교부들 특히(주후 135~150년경에 저작을 남긴) 순교자 유스티누스, 사르디스의 멜리토(2세기 중엽), 리옹의 이레나이우스(185년경 저작)-은 일관되게 그를 세배대의 아들 요한, 네 번째 복음서와 세 편의 신약서신서를 저술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그 제자로 인정한다.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문체는
다른 요한 문헌과 눈에 띄게 다르고 그 신학적 강조점도 독특하기 때문에 많은 현대 학자들은 이 책을 달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유한이서와 요한삼서도 쓴) "장로 요한"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요한이 썼다고 생각한다. 이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을 "장로 요한"의 저작으로 간주하는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디오니시우스에게서 시작된) 또 다른 초기 전승을 비중 있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적 관련성(예컨대 어린 양이자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요 1:1, 14, 29; 계 5:6, 19:13])과
가장 이른 교회 전승은
모두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핵심 제자 그룹에 속했던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요 21:20, 24) 요한으로 간주하는 전통적 견해를 뒷받침한다.
저작 연대
이레나이우스는 보다 이른 출전에 근거해서 "요한은 우리 시대에 거의 도미티아누스의 통치가 끝나갈 무렵 계시를 받았다"고 전한다. 도미티아누스의 통치는 주후 96년에 끝났으므로 대다수 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연대를 90년대 중반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한편으로 계 11:1~2는 로마의 포위와 유대 전쟁 기간에 있었던 지상의 예루살렘 멸망을 예견하는 예언이라는 자신들의 결론에 근거하여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이전 네로가 다스리던 시대(주후 54~68년)를 저작 연대로 주장했다.
그러나 2~3장에 나오는 교회들과 도시들의 상황은 주후 95~96년경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는 추정을 뒷받침하며 요한계시록에서 "거룩한 성"은 지상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11:1~2). 이러한 후대 저작설을 전제로 하면 (둘 다 이제는 과거의 일이 되었을) 네로의 통치와 예루살렘의 멸망과 관련된 사건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세상의 공격에 있어서 현재의 억압과 다가올 충격적인 일들의 전조이자 원형으로 요한의 환상 속에 엮여 있다.
장르
요한계시록은 그 자신의 정체를 '묵시'(또는 "계시", 1:1)이자 예언(1:3, 22:7, 10, 18, 19)이라고 밝힌다. '묵시'(apocalypse)라는 말은 '계시, 공개, 드러내기'-즉, 보이지 않는 천상의 실재 내지 미래의 실재에 대한 공개를 뜻하는 헬라어 명사 '아포칼립시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대 묵시 문학은 구약 정경이 완성된 후 몇 세기 동안 번성했는데 이는 아마도 부분적으로는, 압제당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고난 속에서 목적을 발견하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진정한 예언의 말씀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도록 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묵시 문학은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같은 구약의 책들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물려 받아 확대했다. 이런 특징들에는 선지자가 하나님의 천상 회의에 참여하는 것을 극화하고, 상징적 표현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면서 현재의 불의를 되돌리기 위한 말세에 있을 하나님의 개입을 약속하는 환상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 묵시 문학은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구약의 예언과 다르다. 묵시록의 저자들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자신들의 저작을 먼 과거의 눈에 띄는 인물들(예컨대 에녹, 아브라함, 모세, 바룩, 에스라 등)의 저작으로 위장하면서 자신들의 메시지에 고대성의 무게를 덧붙이고 그런 고대인들이 독자들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예언했음을 암시하기 위해 이런 문학적 장치 ('가명 사용')를 이용했다.
구약의 예언은 일차적으로 구두로 선포되었고 이차적으로만 글로 보존된 반면 묵시 문학 작품들은 처음부터 문학적인 글로 창작되었다. 구약의 예언은 의로운 남은 자들을 위로했을 뿐만 아니라 믿음 없는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은혜로운 이방인들의 수학을 예기하기도 했다. 반면 묵시 문학은 인류를 (1)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거룩한 소수와 (2) 진노에 처해지도록 예정되어 있고 구속의 범위 밖에 있는 그들의 박해자들이라는 불변하는 두 진영으로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주님의 미래적 도래를 미리 지시했지만 동족의 죄와 시련에 대한 현재적 관여도 강조했다. 그러나 묵시 문학은 현재를 타락이 너무 만연해서 말세에 있을 천지개벽적인 하나님의 개입 이전에는 하나님의 어떤 구원 사역도 기대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유대 묵시 문학이나 구약의 일부 예언과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은 상징적 환상으로 전해지며 구두 선포가 아닌 문학적 형태로 전달된다. 그러나 성경 이외의 묵시 문학 저자들과는 달리 요한은 고대의 어떤 성인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며 위로, 경고, 책망의 균형 잡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미 악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성취했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비록 현시대가 일시적이고 죄로 오염되어 있기는 하지만) 현시대에 대한 유대 묵시 문학의 비판주의에 공감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은 신자들을 지금도 고난 속에서의 인내와 예수님의 증거에 대한 충절을 통해 이긴 자들로 보며, 예수님의 증거를 통해 심지어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도 회개와 믿음을 통한 구원으로 부르심받는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은 예수님의 감람 산 강화(막 13장)나 불법의 사람에 대한 바울의 논의(데살로니가후서) 같은 신약 본문들과 더불어 (환상적 체험, 상징적 표현, 문학적 기교를 강조하는) 권위 있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예언의 묵시적 '진영'에 서 있다.
주제
요한계시록은 교회가 관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 즉 한편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다른 한편으로 사탄과 사탄의 악한 (귀신과 인간으로 이루어진) 동맹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우주적 싸움의 진상을 밝힌다. 어린양 예수는 이미 자신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셨지만 그리스도의 교회는 박해, 거짓 가르침, 물질적 풍요와 문화적 인정의 유혹을 통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용에게 계속 공격받고 있다.
요한에게 허락된 환상들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에 교회가 당하는 시련과 유혹의 배경에 깔려 있는 영적인 실재를 드러냄으로써,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그리스도의 승리의 확실성을 극적으로 단언함으로써 교회에 경고함과 동시에 고난을 견뎌 내고 현재 세상 질서의 더러운 유혹에서 순전함을 유지하도록 교회를 강건케 한다.
목적, 계기, 배경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아시아 속주(현재의 터키 서부)에 속한 일곱 도시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1세기의 교회들에게 보내졌다("모든 교회", 2:7의 "교회들에게" 등). 이 교회들은 (니골라 당의 가르침 같은) 거짓 가르침(2:6, 15), 박해(2:10, 13), 우상 숭배와 음행을 통한 주변에 이교적 신앙과의 타협(2:14, 20~21), 영적인 자기만족(3:1~3, 15~17) 등으로 위협받고 있었다.
예수님은 교회들을 강건케 하여 위협적인 폭력(짐승)이든 기만적인 이단(거짓 선지자)이든 매력적인 부요함(음녀)이든 어떤 형태의 마귀의 궤계와도 맞서 싸우게 하기 위해 요한에게 계시를 주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탄과 죄와의 영적인 싸움의 와중에서 그리스도께 충성하도록 부르심 받았다.
핵심 주제
1. 예수 그리스도는 회생적 죽음을 통해 고발하는 자인 사탄을 이기셨고 사람들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속량하셔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쁘게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셨다(1:5, 18, 5:5~10, 12:1~11).
2.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자신의 교회들 가운데 계시며 교회들의 시련과 승리와 실패를 아신다(1:12~3:22).
3. 세계 역사는, 그 화와 재앙을 포함하여, 확고하게 승리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 안에 있다(5:1~8:1).
4.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님에 대해 선포하는 증언을 통해 구속받은 백성을 모으시면서 현재 하나님 자신의 진노와 교회를 파괴하려는 하나님의 원수들의 시도를 억제하고 계신다(6:5~11, 7:1~3, 8:6~12, 9:4~6, 18, 11:3~7, 12:6, 13~17).
5. 현재의 재난(전쟁, 가뭄, 기근, 역병은 하나님의 억제하심으로 인해 그 범위가 제한적이지만 점점 확대되는 다가올 심판의 전조이자 그에 대한 경고다(6:3~17, 8:6~13, 11:13, 16:1~21, 20:11~15).
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죽기까지 신실한 증언을 계속함으로써 용과 짐승을 둘 다 이길 것이다. 순교자들의 승리는 지금은 감추어져 있지만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그들을 변호하실 때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2:10~11, 26~29, 3:11~13, 6:9~11, 7:9~17, 11:7~12, 17~18, 12:10~11, 14:1~5, 15:2~4, 20:4~6).
7. 사탄은 폭력적인 박해, 기만적인 가르침, 부와 관능적 쾌락을 통해 교회의 인내와 순전함을 공격한다(2:1~3:22, 13:1~18, 17:1~18:24).
8. 말세에 교회의 대적들은 박해를 강화하겠지만 승리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멸하실 것이다. 죄와 고난으로 더럽혀진 옛 하늘과 옛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체될 것이다. 교회는 눈부시게 순결한 신부로 신랑이신 어린양 앞에 서게 될 것이다(16:12~16, 19:11~21, 20:7~22:5).
문예적 특징
성경에서 가장 복잡한 책 중에 하나인 요한계시록에는 많은 문학적 장르들이 집약되어 있다. 전반적인 장르는 예언이다(22:19). 일반적인 성경의 예언과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매체는 환상 문학이다. 이 책은 오늘날의 영화적 효과와 매우 비슷하게 변화무쌍한 환상들을 펼쳐 보인다. 더 나아가 실제 인물들과 사건들이 실제로 묘사되는 방식은 실질 같지 않은 내용을 지닌 상상의 방식이다.
책의 제목은 이 책이 묵시 문학 장르에 속해있음을 추가로 드러낸다. 더구나 저자는 도처에서 이미지, 은유, 직유, 암시 등 시의 방편들의 사용한다. 이 책은 신약 서신서의 표준적인 특징들로 시작하고 끝난다. 그리스도가 교회에 보내는 서론적 편지들에 뒤이은 책의 전반적인 외양은 배경, 등장인물, (구성상의 갈등, 전개, 해결을 포함한) 구성이라는 일반적인 요소를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요한계시록의 문학 양식에 대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요한계시록이 처음부터 끝까지 상징주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대부분의 경우 등장인물과 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상징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예컨대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묘사되고 교회는 촛대 위의 등불로 묘사되며 사탄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용으로 묘사된다.
상징들은 때로는 친숙하며 때로는 독창적이고 기이하다. 문학 작품이 사실적인 내용 대신 상징이 더 많은 모습을 보이면 독자들은 상상 속에서 그 작품 속에 들어갈 때 정보가 주로 상징을 통해 제시됨을 뜻하는 상징적 실재의 기법을 인식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새로운 실존하는 상징적 실재의 가장 일관된 예 중의 하나다.
주된 해석상의 질문은 상징들이 무엇을 가리키느냐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역사적 배경 연구는 상징들이 요한의 동시대인들에게 이해될 수 있었던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어느 경우에도 단지 기이한 상징적 내용을 단순히 (예수님의 감람 산 강화를 좋은 해석의 틀로 삼아) 말세에 대한 신약의 친숙한 이미지와 관련 짓는 것이 잘못된 것일 리는 없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된다. 도덕적 타락, 엄청난 자연재해 및 군사적 재난, (신자들에 대한 박해를 포함한) 환난, 주의 오심(그리스도의 '도래' 혹은 재림), 천년왕국, 중간 및 마지막 심판, 땅의 최종적 소멸, 하늘에서의 신자들의 영화, 이런 종말론적인 실재에 대한 인식이 있으면 보통은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이 이런 것들 중에 어느 하나를 가리키고 있음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요한계시록 해석의 여러 학파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기 위한 네 가지 접근 방식은 환상들 각각의 관계 및 환상들과 역사적 사건들과의 관계에 대한 각 접근 방식의 이해를 통해 구별되어 왔다.
1. 역사주의는 특히 4:1~20:6에서 환상들의 문예적 순서가 사도적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까지의 전 시대에 걸친 연속적인 역사적 사건들의 연대기적 순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역사주의 학파
요한계시록 환상
1~3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1세기 교회
4~19장: 인, 나팔, 증인들, 여자와 용, 짐승들, 대접, 창녀, 아마겟돈, 20:1~6: 천년왕국=> 교부, 중세, 종교 개혁, 현대 교회 시대
20:7~22:5: 용의 멸망,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의 부활, 흰 보좌 심판, 만물의 갱신=> 재림, 일반적 부활,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적 지시 내용 및 사건).
2. 미래주의는 마찬가지로 환상들의 순서를 (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의 순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다룬다. 그러나 미래주의자들은 전형적으로 4~22 장의 환상들을 21세기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미래이며 요한과 소아시아의 교회들의 관점에서는 먼 미래에 있을 사건들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많은 미래주의자들이 보기에는 7년간의 뚜렷한 대환난 기간(6~19장)이 이런 다가오는 사건들 속에 포함되며 그 후에는 일반적인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 이전에 그리스도가 땅을 다스리실 천년왕국이 뒤따른다(20:7~22:5).
미래주의 (역사적 전천년설) 요한계시록의 환상
1~3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1세기 교회
4~19장: 인, 나팔, 증인들, 여자와 용, 짐승들, 대접, 창녀, 아마겟돈=> 교부, 중세, 종교 개혁, 현대 교회 시대, 환난, 재림, 신자들의 부활, 아마겟돈
20:1~6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천년 지상 통치
20:7~22:5: 용의 멸망,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의 부활, 흰 보좌 심판, 만물의 갱신=> 일반적 부활,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적 지시 내용 및 사건).
미래주의(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요한계시록의 환상
1~3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1세기 교회, 교부, 중세, 종교 개혁, 현대 교회 시대
4~19장: 인, 나팔, 증인들, 여자와 용, 짐승들, 대접, 창녀, 아마겟돈=> 휴거, 신자들의 부활, 환난, 재림, 신자들의 부활, 아마겟돈
20:1~6 천년왕국=> 그리스도의 천년 지상 통치
20:7~22:5: 용의 멸망,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의 부활, 흰 보좌 심판, 만물의 갱신=> 일반적 부활,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적 지시 내용 및 사건). 일부 세대주의적 해석자들은 1~3장에 나오는 교회들이 교회사의 서로 다른 시기들을 예언한다고 생각한다.
3. 과거주의(preterism, '과거의 일들'을 뜻하는 라틴어 '프라이테리툼'에서 유래한 단어)에서는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환상들에 대한 성취가 기독교회의 초창기인 먼 과거에 이미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과거주의자들은 이런 사건들-예루살렘의 파괴나 로마 제국의 쇠퇴와 몰락 또는 둘 다-이 요한과 아시아의 교회들의 관점에서만 곧 '일어날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과거주의자들은 환상들의 순서를 그 환상들이 의미하는 사건들의 연대기적 차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지만 어떤 이들은 반복이 존재함을 인정한다(즉, 그런 뚜렷하고 연속적인 환상들은 때때로 보완적인 관점에서 본 똑같은 역사적 사건들 내지 세력들을 상징한다).
신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은 주후 70년까지 다 성취되었다고 주장하는 완전 과거주의는 미래에 있을 예수님의 육체적 재림을 부정하고 역사의 끝에 있을 신자들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며 현재의 하늘과 땅에 물리적 갱신/재창조(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의한 대체)를 부정하므로 정당한 복음주의적 대안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여전히 미래의 일이라고 주장하는 과거주의자들은 "부분적 과거주의"라고 불린다.
부분적 과거주의 학파
요한계시록의 환상.
1~3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1세기 교회
4~11장: 인, 나팔, 증인들=> 예루살렘의 멸망:주후 70년
12-19장: 여자/용, 짐승들, 대접, 창녀, 아마겟돈=> 로마의 몰락: 4세기
20:1~6 천년왕국=> 나머지 교부, 중세, 종교 개혁, 현대 교회 시대
20:7~22:5: 용의 멸망,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의 부활, 흰 보좌 심판, 만물의 갱신=> 재림, 일반적 부활,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적 지시 내용 및 사건). 부분적 과거 주의자들은 (원래의 수신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이 천년왕국을 촉진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서로 갈린다.
4. 이상주의는 요한계시록의 환상들이 사도 시대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와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과 사탄의 악한 공모자들 사이의 싸움을 상징한다는 역사주의의 관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상주의 해석자들은 재현의 존재는 환상들의 문예적 순서가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의 시간적 순서를 반영할 필요는 없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요한계시록의 환상 주기에서 상징화된 세력들과 싸움들은(과거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1세기 교회의 관점에서는 '곧' 일어날 사건들로 나타나지만 현재에는 믿음으로 인내하는 교회의 지속적인 싸움에서도 발견되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이어지는 아직도 미래인 박해의 강화와 신적 진노를 예언하기도 한다.
이상주의 학파
요한계시록의 환상
1~3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 1세기 교회
4~19장: 인, 나팔, 증인들, 여자와 용, 짐승들, 대접, 창녀, 아마겟돈, 20:1~6: 천년왕국 => 교부, 중세, 종교 개혁, 현대 교회 시대
20:7~22:5: 용의 멸망,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의 부활, 흰 보좌 심판, 만물의 갱신=> 재림, 일반적 부활,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역사적 지시 내용 및 사건).
요한계시록은 서언(1:1~8), 중심 내용(1:9~22:5), 맺음말(22:6~21)로 구성되어 있다.
서언과 맺음말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을 보이기 위해 보냄 받은 천사(1:1, 22:6, 16),
예언을 지키는 자들에게 임하는 복(1:3, 22:7, 9)
요한의 자기 인식(1:1, 4, 22:8),
알파와 오메가라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1:8, 22:13) 등의 반복되는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중심 내용은 교회들에 보내는 편지(2~3장),
두루마리의 인(4:1~8:1), 나팔(8:2~11~19),
진노의 대접(15~16장) 등 네 가지의 열거된 일곱 개의 연속적인 메시지 내지 환상을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지금 있는 일"-1세기 교회들의 현재 상황(2~3장)-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의 원수들의 멸망과 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어린 양의 신부가 되는 것에서 절정에 이르는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의 방향으로 전개된다(1:19, 4:1).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시간적 전개 안에서 환상들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우주적 투쟁에 있어서 같은 사건이나 국면에 대한 현재의 서로 다른 보완적인 관점들로 되돌아간다. 예컨대 12:1~6은 천상의 여자(1~5절)의 아이를 죽이려 하는 용의 패배를 묘사하며 여자가 안전을 위해 광야로 피신하는 내용이 그 뒤를 잇는다(6절).
다음으로 12:7~17은 또다시 이제는 신자들을 고발하려 하는 용의 패배를 묘사하며 천상의 여자가 안전을 위해 광야로 피신하는 내용이 이어진다(13~17절). 이전의 환상들은 때때로 나중의 사건들을 묘사하며 나중의 환상들은 이전의 상황을 묘사한다. 예컨대 6:12~17은 땅과 하늘이 흔들려서 별들이 큰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듯이 땅으로 던져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7:1~8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인을 칠 때까지 천사들이 재앙의 바람을 막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그보다 더 뒤에 요한은 해와 달과 별들이 여전히 하늘에 있고 부분적으로만 어두워지는 모습을 본다(8:12).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하고 그 목적의 확실성을 확증하기 위한 이러한 반복 내지 재현의 원리는 앞선 성경에서도 보인다(창 1:1~2:25, 37:5~11, 41:1~32; 단 2:1~45, 단 7:1~28; 행 10:10~16). 요한계시록에서 재현은 요한이 환상을 받은 순서가 반드시 그 환상이 상징하는 사건들의 순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님을 뜻한다. 요한계시록의 고유한 구조에 대한 이런 관찰은 다음 개요에 반영되어 있다.
1) 서언(1:1~8)
A. 제목, 전달, 복의 약속(1:1~3)
B. 편지 머리말(1:4~6)
C. 왕의 오심에 대한 선포(1:7~8)
2) 중심 내용(1:9~22:5)
A. "지금 있는 일": 그리스도가 교회들과 함께하시고 교회들의 사정을 아심(1:9~3:22)
1. 교회들 사이에 계신 인자(1:9~28)
2. 일곱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칙서(2:1~3:22)
a.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2:1~7)
b.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편지(2:8~11)
c.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2:12~17)
d.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2:18~29)
e.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3:1~6)
f.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3:7~13)
g.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3:14~22)
B.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 그리스도의 교회 수호와 교회의 원수들의 멸망(4:1~22:5)
1. 어린 양과 두루마리: 현재와 미래의 재앙, 종말의 전조들(4:1~8:1)
a. 하늘이 열림: 어린 양이 두루마리를 받으심(4:1~5:14)
b. 어린 양이 두루마리의 일곱 인을 떼심(6:1~8:1)
(막간: 하나님의 국제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인침(7:1~17)
2. 천사들과 나팔들: 다가오는 진노에 대한 경고(8:2~11:18)
a. 하늘의 향 제단: 성도들의 기도와 땅에 쏟아진 불(8:2~5)
b. 일곱 나팔을 부는 천사들(8:6~11:18)
(막간: 하나님의 성-성소, 하나님의 증언하는 교회의 안전과 고난(10:1~11:14)
3. 여자, 여자의 아들, 용, 짐승: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우주적 싸움(11:19~14:20)
a. 하늘의 성전이 열림(11:19)
b. 여자의 아들이 용을 물리침(12:1~6)
c. 미가엘가 하늘의 군대가 용을 물리침(12:7~17)
d.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13:1~18)
e. 땅에서 올라온 거짓 선지자(13:11~18)
f. 어린 양과 인침 받은 승리자들(14:1~5)
g. 천사의 심판 선언(14:6~13)
h. 땅과 포도나무의 수확(14:14~20)
4. 하나님의 마지막 진노의 대접(15:1~16:21)
a. 영광으로 가득한 하늘의 성소(15:1~8)
b. 천사들이 일곱 대접을 쏟음(16:1~21)
5. 음녀 바벨론(17:1~19:10)
a. 바벨론의 권력과 사치(17:1~15)
b.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애통과 축하(17:16~19:10)
6. 짐승들과 용과 땅의 패배와 멸망(19:11~28:15)
a. 그리스도가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들이 모은 군대를 물리치시고 멸하심(19:11~21)
(막간: 천 년 동안의 용의 결박과 순교자들의 통치, 20:1~6)
b. 하나님이 용과 용이 모은 군대를 물리치시고 멸하심(28:7~10)
c. 마지막 심판과 마지막 원수인 사망의 멸망(20:11~15)
7. "만물을 새롭게"(21:1~22:5)
a. 새 하늘과 새 땅, 어린 양의 신부의 집(21:1~8)
b. 새 예루살렘, 어린 양의 순결한 신부(21:9~22:5)
3) 맺음말(22:6~21)
A. 요한계시록의 전달과 신뢰성,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약속, 복의 약속(22:6~9)
B. 책을 인봉 하지 말라는 명령,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약속, 복의 약속(22:10~15)
C. 요한계시록의 전달(22:16~17)
D. 책의 내용을 변경하지 말라는 명령, 예수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약속, 마지막 축복 선포(22:18~21)
기고자/데니스 존슨(Dennis E. Johnson)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캘리포니아) 교수
풀러 신학교 철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