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계시록 개요
1. 개요
20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Amen. Veni, Domine Jesu!)
요한계시록 22:20 (공동번역 성서)
일반적으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요한 묵시록'으로, 일부 교파[1]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요한 계시록'으로 부르고 표기한다.
원어인 코이네 그리스어 '아포칼륍시스(ἀποκάλυψις)'는 '드러냄, 계시, 벗김.'의 뜻을 가진 명사로, '드러내다, 나타내다, 폭로하다.'는 뜻인 동사 '아포칼륍토(ἀποκαλύπτω)'에서 유래했다. 만약 이를 한자로 옮긴다고 한다면 '천기누설(天機漏洩)'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의 거의 99%가 비유로 이루어져 있어서 관련 배경 및 성경 전체(구약-신약 모두)에 대한 폭넓은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2] 유대의 묵시 문학의 정수로,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 등 예언서와 더불어 풀이와 해설에 이론이 많은 책이다. 단일한 해석을 고수하는 것이 우려되는 이유이기도 하다.[3]
때문에 과거부터 자기 임의대로 해석하여 그릇된 종말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나왔고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다.[4] 예를 들자면, 조만간 종말이 닥치니 전 재산을 다 교주에게 갖다 바치라거나, 아래처럼 예수의 재림을 얘기하는가 싶다가 뜬금없이 "내가 그 예수다" 한다거나. 그러다가 사이비 혹은 이단이 되는 테크를 타는 거다. 재밌는 점은, 자의적인 해석을 내건 사람치고 계시록 후반부의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구절을 가르치는 사람은 없다라는 것이다(묵시 22:18-19).[5][6]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초림)을 약속한 책이라면,[7] 신약, 그중에서도 특히 요한묵시록은 세상 마지막 때에 있을 예수의 재림을 약속한 책이다. 묵시록 22장 전장의 내용은 이 예수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일 이후에, 어디에 임하여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의 골자는, 세계 말일에 사탄과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부패한 세계를 심판하여 끝나고, 그리스도가 세상의 주권자로 통치하는 새로운 천년왕국 시대를 열게 되며, 그리고 천년 왕국 시대 이후, 최후의 심판인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이 있게 되고, 그 이후 오게 될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내용이다. 창세기 1장이 천지창조라면 요한의 묵시록 22장은 새 하늘 새 땅의 지상 임재로 장엄하게 마무리되는데, 성경의 완결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한 완전히 끝을 맺는 문장으로는 예수가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며 기독교 인들에게 전하는 최종적 메세지를 담고 있다. 거기에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라는 요한의 마지막 말과 세계에 퍼진 기독교도들에게 남기는 축복의 말까지 성경을 마무리 짓기에 손색없는 문장들이다.
또한 상당히 많은 작가들의 영감의 중심이 된 글이기도 하다.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도 또한 예수의 재림과 그 징조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기도 하다. 이 "재림"이란 단어 덕분에 세상에는 수많은 자칭 재림예수가 등장한다.
2. 해석론
나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말해 둡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벌하실 때에 이 책에 기록된 재난도 덧붙여서 주실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무엇을 떼어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의 나무와 그 거룩한 도성에 대한 그의 몫을 하느님께서 떼어버리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계시를 보증해 주시는 분이 "그렇다. 내가 곧 가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오소서, 주 예수여!
주 예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공동번역성서, 요한의 묵시록 22장 18~20절. [8]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서 하시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무리 찾아도 그것을 알 사람은 없다. 이런 일을 안다고 장담할 현자가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성경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기반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것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식이 없다면 묵시록, 나아가서는 성경의 전체 내용을 하나 하나 보고 자신의 생각을 더하거나 몇몇 구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빼서 단정해 버리게 되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이며 하느님이 아니면 확실한 해석은 없다고 본다.
앨런 F. 존슨이 편집한 묵시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본다. 해설자들의 성경 주석에 의하면 크게 4가지 해석방법이 있는데, 사도 요한을 기점으로 하여 미래주의적 해석, 과거주의적 해석, 역사주의적 해석, 상징주의적 해석이다. 상징주의 → 역사주의 → 미래주의, 과거주의로 해석방법이 바뀌어 왔기 때문에 주석도 많고 이해하기 어려워졌다.
미래주의적 해석
1장부터 4장까지는 사도 요한 당대의 일이고 그 이후는 미래에 올 일이라고 본다. 성 유스티노, 리옹의 성 이레네오 등의 성서초기주석가들이 시초를 이뤘으며, 개신교에서의 주류적 해석이다.
과거주의적 해석
전체내용을 기원후 1세기 경에 벌어진 과거의 사건을 유대의 묵시문학의 방법으로 기록한 것으로 본다. 시조는 많이 늦어서 17세기 알카사르가 시초로 보이며, 가톨릭의 주류적인 해석이다.
역사주의적 해석
요한 당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적 사건에 기록을 대입한다. 13세기 플로리스의 요아킴이 시조를 이뤘고 초기 개신교에서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지금은 소수의견으로 남아 있다.
상징주의적 해석
구약의 시편, 잠언 등과 같은 것으로 보며 빛의 왕국과 어둠의 왕국의 영원한 투쟁이 주제라고 한다. 상징주의적 해석의 시조는 3세기 오리게네스 또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로 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통하여 역사주의적 해석이 나올 때까지 주류적 해석이었다.
이 외에도 온갖 소수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 예로 라그나로크 같은 다른 신화에서의 몰락과 비교하여, 난세의 재래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다룬다는 해석도 있고,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언젠가는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역사를 뭉뚱그려 썼다는 해석도 있다. 또한 각 해석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이 부분은 특히 미래주의적 해석에서 부각되는 편이다. 묵시록이 쓰일 당시에는 핵무기 같은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요한 묵시록을 읽을 때에는 누가 화자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화자가 갑자기 바뀌어 있는 경우도 허다하고, 집중해서 제대로 읽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는 누가 말하는 건지를 찾다가 숫자에 집착하는 등의 오류를 범하고, 정말로 중요한 뉘앙스를 누락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한 묵시록에 대한 수많은 오해, 그리고 이런 오해를 곧대로 믿는 사이비를 양산한 중대한 원인이기도 하니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3. 내용
책 제목 자체가 요한묵시록이기 때문에 보통 저자는 사도 요한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요한이 실제 '사도 요한'이라고 명시된 내용은 없으나 전승들과 묵시록의 내용들로 미루어 저자가 사도 요한일 것이라고 여긴다. 전승에 따르면 이 책은 사도 요한이 서기 90년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문에 파트모스(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그가 미래, 즉 예수 재림 때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이상과 환상(비전)으로 본 것을 기록한 예언서라고 한다.
사도 요한이 파트모스에 유배생활을 했다고 알려졌고, 본 책에서도 저자 스스로가 파트모스에 있다고 썼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요한묵시록 본서에 '유배'라는 표현이 있다고 알지만 사실 본문에서 '유배'되었다는 표현은 없다. 그저 '하느님 말씀과 예수의 증거' 때문에 파트모스에 왔다고 썼을 뿐이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저 구절을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유배 왔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계시를 받을 줄 알고 일부러 한적한 곳을 찾아 파트모스 섬에 짱박혔다는 의미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설대로라면, '하느님 말씀과 예수의 증거'라는 말은 요한 묵시록 그 자체를 가리킨다.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기에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며,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서기 96년(도미티아누스가 죽고 네르바가 황제가 된 해)에 파트모스에서 풀려나 이후 에페수스로 가서 요한서신(요한1~3서)을 쓰고 트라야누스 황제 제위 초에 사망했다고 한다.
다만 '예언서니까, 앞으로 일어날 일들만을 다루었다'고 멋대로 단정해버린다거나, '당시의 예언서니까 초대 교회의 일(로마시대의 기독교 박해)만 다루었겠지'[9]라는 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저자'의 입장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이 '로마 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와 심판'을 다루었다고 해석하는 쪽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에서도 이렇게 가르친다.[10] 하지만 이러한 로마제국의 박해와 연관지어 해석하려는 쪽에서는, 요한 사후~테오도시우스 시대때의 국교화 이전 사이의 시기가 아니라 주로 1세기 시기의 박해로만 한정해서 해석하려는 경향이 크다. '학술적-사료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려는 쪽에서 이러한 식의 해석을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도 이 책을 '로마의 신자 박해'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아직도 성취되지 못한 예언[11]도 있고, 이미 성취된 것으로 해석되는 일부 예언마저도 '특정 시대를 초월하여 일어날 일을 지나치게 과거의 벌어진 일로 제한시킨다'는 수많은 신학자들의 반박[12], 갑론을박과 해석이 존재한다. 저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박해는 과거에도 당시에도 일어나던 일이였으며 또한 미래에도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묵시록의 내용을 과거의 일만으로 볼 것인가, 미래에 대한 메시지로 볼 것인가 하는 두 관점에서 어느 것에 무게를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게 갈린다.[13][14] 확실이 알아두어야할 것은 이런 식의 해석 논쟁들이 비단 묵시록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쳐있다는 것이다. 묵시록이 성경 목록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마술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한 묵시록과 다른 요한 문서들의 문체나 종말론에 대한 입장 등이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저자 역시 사도 요한이 아니라 후대의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으며, 성서비평학에서는 이쪽이 다수설이다. 이는 고대에도 알려져 있었던 쟁점으로 초기 교회의 교부들 중 상당수가 사도 요한이 저자라는 데 부정적이었을 정도이며, 요한묵시록이 정경에 포함되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학술적으로는 묵시록의 저자 요한을 '파트모스의 요한'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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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REVELATION ]
본 서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발생할 인류 미래의 사건들을 보여 주는 신약성경 유일의 예언서이다. 또한 본서신은 구원받은 성도의 영화롭고 복된 내세를 보여주는 은혜와 소망의 책인 동시에 끝까지 복음을 거부하고 대적하던 사탄과 그 추종 세력들이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 처해지는 멸망과 심판의 책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서신이야말로 현세와 내세를 연결하는 신령한 가교(架橋) 역할을 한다 할 수 있다.
제목
헬라어 성경에서 본서신은 ‘아포칼립시스 이오안누’로 불리는데, ‘요한의 계시’란 뜻이다. 영어성경 흠정역(KJV)에서는 본서신을 일컬어 ‘The Revelation of St. John The Divine’(신령한 사도 요한의 계시)으로 명명한다. 이 제목은 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1:1의 말씀에서 유래되었다.
저자
본 서신에는 여러 차례 서신의 기록자가 요한임을 밝히고 있다(1:1, 3, 9; 22:8). 물론 이 요한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도 있으나(Eusebius, Dionysius) 초대 교부로부터 오늘날까지 대다수 학자들은 사도 요한을 본서신의 기록자로 인정한다(Irenaeus, Tertullian, Origen, Justin Martyr).
기록 장소와 시기
본서신의 기록시기에 대해서는 글라우디오 황제(A.D. 41-54년경) 당시, 네로 박해 당시(A.D. 64년 경), 네로 박해 직후 등의 견해가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본서신은 기독교 박해가 로마를 넘어 제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던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A.D. 81-96년경) 황제 때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A.D. 95-96년경). 그는 네로 황제 못지 않게 기독교에 대해 혹독하게 박해를 가하였으며,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호칭하게 했다. 이때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사도 요한 역시 당시 정치범 수용소로 악명 높던 밧모(Patmos) 섬으로 유배가서 광산(혹은 채석장)에서 약 18개월 동안 강제 노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Eusebius). 본서신은 밧모 섬에서 기록되었든지(계 1:9-11) 아니면 유배가 끝나고 다시 에베소로 돌아와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
수많은 상징적 숫자, 흰 색, 붉은 색, 검은 색, 청황 색, 푸른 색 등 상징성을 지닌 색깔, 양, 사자, 송아지, 독수리, 말, 황충, 용, 뱀 등 상징성을 띤 동물 등 본 서신만큼 수많은 상징과 비유, 화려한 환상으로 가득 찬 책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환상과 비유(상징)를 통해 하나님께서 요한과 오늘날 우리 성도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당시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로마 박해의 대명사 네로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한 인물이다. 네로 박해가 로마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도미티아누스의 박해는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고 가혹하게 이루어졌다. 이제는 제국 내에 있는 교회들이 가공할 만한 박해로 인해 고통하고 배교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되었다. 심지어 사도 요한도 유배지로 끌려갈 정도였다. 이런 위기 상황에 놓인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은 계시를 통해 악인의 영원한 파멸과 종말을 보여 주신다. 뿐만 아니라 시험을 참고 견딘 신앙의 선배들이 거하는 영화롭고 존귀한 새 예루살렘의 모습도 보여 주신다.
비록 당장은 고통스럽고 참기 어렵지만 그러나 불 같은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참여하게 될 영원한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세상의 주권자는 로마 황제가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더욱이 그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친히 택하신 백성들을 도우고 보살펴 주신다는 것이다. 이런 위로와 격려, 넘치는 은혜와 소망이 본서신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배경과 무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환상을 보고 기록한 계시의 말씀을 적어 보낸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지역이 본 서신의 주요 무대이다(계1:11).
요한계시록의 내용 구성
구분
|
과거
|
현재
|
미래
|
||||||||||
내용
|
인사
|
인자
|
일곱
교회
|
하늘
보좌
|
일곱
인
|
일곱
나팔
|
붉은
용
|
바다
짐승
|
십사만
사천
|
일곱
대접
|
어린 양
혼인잔치
|
천년
왕국
|
신천
신지
|
구절
|
1:1-8
|
1:9-20
|
2-3장
|
4-5장
|
6-7장
|
8-11장
|
12장
|
13장
|
14장
|
15-18장
|
19장
|
20장
|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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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요한계시록 [REVELATION]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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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한계시록[ REVELATION ]|작성자 B2B 영업마케팅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