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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철학이 신학에 미친 영향

하나님아들 2023. 11. 10. 14:17

칸트 철학이 신학에 미친 영향               

 

  [ 칸트 철학의 개요 ]

-계몽주의 철학을 데카르트에게서 시작되는 합리주의와 로크에게서 시작되는 경험주의’ 두 사조로 나누기 시작한 것은 칸트 이후의 일이다.

-합리론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륙권에서 시작되었는데우리의 인식 능력을 이성과 감각으로 나누었을 때이성만이 우리를 진리로 이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험론은 영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는데우리의 인식은 오로지 감각적 경험에서부터만 생긴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칸트에 의하면, ‘합리론은 인간의 인식 자체를 깊이 통찰함 없이 이성의 만능을 믿어 독단적인 형이상학을 구축하였으며, ‘경험론은 경험할 수 있는 것만이 인식 가능하다는 신념 아래에서 인식 자체의 타당성을 의심하여 회의론에 빠져 형이상학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하였다.

-형이상학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반대하여학문도 관습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을 보고 칸트는 이성의 능력과 한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형이상학의 가능성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그리하여 그는 영혼불멸도덕적 자유과 같은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이것이 순수이성비판을 쓰게 된 이유이다.

-지식이 외부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잡다한 감각적 자극들로 구성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덧붙여 인식의 과정에서 마음’ 혹은 정신이 외부의 감각적 자극들을 일정한 형식에 따라 능동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즉 외부 세계를 경험했다고 해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면 인식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칸트는 인간의 이성 능력을 감성과 오성으로 나누고이 두 기능이 결합하여 인식이 성립된다고 보았다.

-내용 없는 사고(경험론 비판)는 공허하고개념 없는 직관(합리론)은 맹목적이다고 주장하면서 진리란 감성에 의해 수용된 내용이 오성에 의해 범주화될 때 성립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먼저 직관에 의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인지한 사물들을 오성의 형식(12가지 범주)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재배치함으로써 인식한다고 주장하였다.
 
-칸트는 감성적 직관이 주어지지 않는 것즉 물자체와 같은 초감성계에 대해서는 범주를 적용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인식은 현상계즉 경험계에 한해서만 성립한다그러므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은 우리 경험에서 제외되며지식의 내용도 대상도 될 수 없다따라서 우리가 경험적으로 직관하는 것은 물자체(物自體, thing-in-itself)가 아니라시간과 공간이라는 주관적인 매개를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칸트에 따르면, ‘영혼불멸이나 도덕적 자유’ 따위는 이론적 인식으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不可知論)고 하였다그러나 그는 영혼이나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고 실천이성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하였다또한 실천이성은 영혼이나 신 등을 도덕의 성립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요청하여신에 의해 도덕을 정초하지 않았고도덕에서 출발하여 신의 필요성을 요청하였다.
 
-즉 칸트는 하나님을 도덕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였다인간은 도덕적이기 까닭에 도덕법의 정초를 위해 의지의 자유와 영혼 불멸 그리고 신의 존재를 요청하였다신의 존재는 결국 이론적 가설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종교를 도덕적 가치와 관련하여 신의 존재를 인식하려고 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다이러한 칸트의 도덕주의가 자유주의 신학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은 더 높은 가치가 있고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이상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칸트 철학이 신학에 미친 영향 ]
 

1. 부정적 영향
 
칸트는 독단론을 내세운 합리주의와 회의론에 빠진 경험주의를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계몽주의를 완성하였다.
 
불가지론으로 인한 회의주의(칸트는 경험 세계를 넘어서는 알 수 없다고 주장)
신학의 도덕화
신학의 학문성에의 회의성
이원론의 불해결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신다인간은 영과 육이 하나였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잠시 분리되었다가 부활과 함께 다시 영과 육이 하나되는 역사를 하신다(살전 4:14).
 
2. 긍정적 영향
 
◎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갖게 한 것은 긍정적인 영향이다.
→ 그렇다면 회의주의에 빠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 신앙의 역사(구속사)는 실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그것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성경이다.
→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판단할 수 없으므로계시를 통해서만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음을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오직 계시를 통해서만 초월하신 하나님을 알 수가 있다.
→ 그 계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구원부활 등에 대해서 모두 직접 이루시고성취하시고나타내 보이셨다.
→ 칸트의 철학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 신학의 확실한 토대를 세워야 함을 알게 해 주었다. 

[ 참고자료 ]

계몽주의란 17,18세기 이성을 진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불합리를 제거하고 세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여 인간의 무지와 몽매를 계몽하려던 사상운동이다. 유럽을 휩쓸었던 이 운동은 르네상스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사회적, 사상적 변화에 기초하는데, 영국에서의 자연과학적 경험주의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인식론적 합리주의가 이 운동의 사상적 토대를 이룬다. 이후 18세기 초 독일에 유입되어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에 의해 계몽주의 사상이 완성된다.
 
이 계몽주의와 계시종교 사이에는 처음부터 긴장관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영국의 계몽주의는 이신론(理神論)적 성향을 지녔고(하나님의 창조는 인정하되 하나님의 현재적 섭리는 불인정함), 또 로크의 이론을 좇아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자유권(인권)을 강조했다(이것은 미국은 물론 현대의 모든 헌법 특히 기본법의 뿌리가 된다). 이에 비해 프랑스 계몽주의는 급진적인 성향을 지녔는데(무신론과 유물론 사상) '이성과 자유와 진보를 위해서'라는 기치 아래 기독교를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제거와 타파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 사상은 18세기 프랑스 사상의 자유를 이루어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의 원리를 제공하였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