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과 영성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들어가는 말
기독교인이 이 세상을 살아갈때 무엇으로 살아가며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 삶인지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여 성경은 이것을 비밀이라고 표현하면서 창세전에 감추어진 그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영생이라고 말씀한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그 기준은 성경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도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이런 저런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일차적으로는 성경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아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삶과 직결되여 있다는 말씀이다. 세월을 아끼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참된 뜻은 이 세상이 악할 뿐이니 우리에게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기에 살아 있는 동안 세월을 아겨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을 열심히 얻어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400년동안 애굽을 셈겨면서 하나님을 선포하라고 사명을 받아듯이 그런 그들이 애굽을 떠나 나올때 애굽사람들에게서 많은 재물을 얻어가지고 나와 광야에서 성막을 건축하여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심의 성막을 만들어 갈수 있었듯이 우리의 세상삶을 통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요?
이 땅위의 삶을 깨닫는 데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비밀을 정확히 알아가는데 있습니다.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까막눈이 된다면 곳 거울을 보고 돌아서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미련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하여 세상을 떠날때에야 ....껄 ..껄 껄하지 말고 지혜를 얻게 됨이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의 말씀에서 오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사람과 피조 세계에 무슨 일을 해 오셨는가를 알려주는 책이 성경이라고 할 때, 성경에서 곧바로 우리가 이 세상속에 살아갈때 직업을 주셨는데 그에 대한 가르침을 이끌어내기가 쉽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성경스토리를 알려면 당연히 각 부분을 통해 하나의 성경스토리로 구성되여 가듯이 그 본문이 생겨나고 적힐 당시의 특수한 역사적인 상황에 비추어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삶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러한 역사적인 상황과 오늘 우리의 상황 사이에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삶의 본질에 있어서는 역시나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각 본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본문의 내용을 그저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바로 오늘에 적용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사전에서 말하는 '직업'의 뜻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직업'을 '생계를 세우기 위하여 일정한 동안 계속 종사하는 일'이라 하고, 이와 비슷한 말인 '생업'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업'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1). 영어로는 직업을 뜻하는 낱말이 여럿 있는데, 동아 프라임 영한사전2)의 occupation 항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 뜻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occupation은 규칙적으로 종사하는데, 그것을 위해 훈련을 받은 직업. profession은 변호사, 의사, 교사 등과 같이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직업. business는 실업, 상업 관계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직업. job 직업을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말.
구약 성경중 창세기에서 주로 우리는 인간이 창조될때 무엇을 위한 창조였는지를 살펴야 할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에덴동산에 이끌어 들어간 삶이였는데 그곳에서의 청지기로서 자신의 생명과 역할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로 에덴에서 쫓기우고 만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적 이유를 물어야 할것이다. 이 삶에 실패하여 쫓겨난 인생이 자신의 출처인 땅을 기경했었다는 것은 에덴에서의 참된 생명의 가치실현을 하지 못한 인생이 어히려 땅을 기경하여 먹을 것을 구하는 생계유지를 해야 하였던것을 알수 있다. 1차적인 삶이 목적을 잃어버리고 2차적인 목적을 위해 그 삶을 투자했어야 햇다. 하여 성경은 주위의 가난한 형제들이나 과부들이 있다면 다같이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처지에서 가진것을 함깨 나누어 하나님의 은혜에 못미치는 형제가 없는지를 보살펴야 할 도리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이게도 하기에 그 안에는 많이 가진자도 있고 가지지 못한 자도 많은 것이다. 하여 그 재물을 균등히 나뉘여 함께 서로 사랑해 재물을 나뉘여 자신의 짐을 질뿐만 아니라 서로의 짐을 같이 질것을 가르치고 있고 그러할때 사랑의 공동체를 구성할수 잇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게되고 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라는 울타리안에서 보호받고 도움받고 하면서 결국 함께 하나님나라의 영광된 삶에로 들어가게 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이 교회에 있덨던 것이다.
성도들사이에도 직업 또는 그와 비슷한 낱말이 있는가, 있다면 그런 세상적인 용어로서의 말이 어떤 의미로 쓰이는가,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성도의 관점에서 볼 때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직업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해 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할것이다. 구약 성경 안에 어떤 가르팀이 있는지를 찾아 보는 것 역시 신학이라 하겠고 신앙의 진리인 것이다. 그런 다음에 그러한 내용을 다루는 본문에서 직업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3. '직업'을 뜻하는 구약 성경 히브리 낱말 - <마아새>3)와 <마믈라카>
놀랍게도 '직업'이란 낱말이 개역한글판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그와 비슷한 낱말인 '생업', '업'이 몇 번 나옵니다.
창세기 47장3절에서 애굽으로 이주해 온 요셉의 형들에게 바로가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4)라고 묻습니다. 이 때 '생업'이라고 옮긴 히브리 낱말 <마아새>는 '일하다', '무엇을 하다'라는 뜻의 동사 <아사>에서 온 명사이어서, '일하는 바', '하고 있는 일'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는 자신이 총애하는 신하 요셉의 형들이 고향에서 본디 하던 일이 무엇이었는가, 무슨 일을 하고 살아 왔는가를 물은 것이고, 이런 점에서 <믈라아카>를 '생업'이라 한 것은 괜찮은 번역입니다.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에서는 이를 한결같이 '생업'이라 옮겼고, 영어 성경에서는 보통 'occupation'(RSV, NRSV, NIV, NJPST5), REB6) TEB, NKJV, NASB)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런 것에서도 구약의 야곱의 가족들이 생업을 가르키는 것외에는 다른 목적이 더 제시되지 않앗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속에서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감당하고 선교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여야 할것인지에 대해 계시하는 바가 클것이다. 한 지역에서 성도공동체를 이룬 교회가 건축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어떤 용도로 그 재물축적을 해서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할것이고 선교지에서도 예배를 우한 건물이 필요한지 아니면 광야가운데를 통과해야 하는 이스라엘 민족적인 대 이동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성막과도 같은 이동식 텐트를 가지고 신앙생활에 훈련장으로 제공할것인지 아니면 한 자리에 고정적으로 정하여 그리로 모여오게 할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현실속에 적라라하게 녹아나게 할것인지말이다.
요나서 1장8절에서는 바다에 폭풍이 일게 된 까닭이 요나에게 있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요나에게 '네 생업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생업'으로 옮긴 히브리 낱말 <믈라아카>는 구약 성경에서 한 번도 쓰이지 않는 동사 <라아크>에서 비롯된 명사인데, 이 동사는 본디 '보내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에서는 이 의문문을 각각 '너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와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식으로 풀어서 옮겼습니다. 이와는 달리, 한국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펴낸 구약성서 새 번역 제16권 『열두 소 예언서』7)에서는 <믈라아카>를 '직업'으로 옮겼습니다. <믈라아카>가 영어 성경에서는 'business'(REB, NJPST) 또는 'occupation'(RSV, NKJV, NRSV, NASB)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앞서 창세기 47장3절의 한글 개역판에서 '생업'으로 옮긴 히브리 낱말 <마아새>가 46장33절에서는 그냥 '업'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직업'으로 고쳤고,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생업'으로 옮겼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직업'에 해당하는 구약 히브리어 낱말을 <마아새>나 <마믈라카>라고 할 때, 이 두 낱말에는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서 규칙적으로나 전문적으로 하는 무슨 일거리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아새>나 <마믈라카>가 언제나 직업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아새>의 경우, 이 낱말은 우선 <아사>의 결과물, 그러니까 무슨 활동을 한 결과로 생겨난 것, 인간활동의 생산품, 때때로 손재주 같은 전문 기술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그러한 활동 자체, 곧 일을 뜻하게 되고, 마침내는 직업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8).
<마믈라카>의 경우에 그 뿌리가 되는 동사가 <라아크>('보내다')는 우선 '손을 보내다', 곧 '무엇에 손대다', '손으로 일하다', '손재주를 부리다'라는 실제적이고 특수한 뜻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9). 이리하여, <마믈라카>는 우선 특별한 손재주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을 뜻하다가, 계획을 세우는 정신 활동에서 시작하여 이를 손재주와 육체 노동으로 이루어내는 데까지 미치는 일의 전 영역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뜻으로 쓰이고, 때로는 그런 일의 결과로 생긴 결과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사 '보내다'를 정신적이고 일반적인 뜻으로 이해하는 것을 근거로 하여, <마믈라카>가 '임무 수행', '심부름하기', 이에서 더 나아가서 '업무', '직업'의 뜻을 지니게 됩니다10).
결국 이 두 낱말이 '직업'을 뜻할 수 있다고 할 때,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육체적이고도 정신적인 노동이나 활동을 전제합니다.
4.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직업
4.1. 목축업과 농업
(1) 구약 성경을 처음부터 읽으면서 아담과 하와에 대해 보자. 아담이 생령으로 창조되여 에덴동산에 인도받는다. 그곳에서 자신이 교제해야 상대를 못만나고 오직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만 강조받게 되고 다시 하와를 만나 둘이 서로 도와 하나님이 세운 사역을 자 감당하게 하고자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주심을 받는다. 이 가족공동체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을 통해 태여나는 자녀들의 양육의 자리와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게될 보금자리였다.
그 후 사람의 직업을 가리키거나 직업과 관련되는 표현을 죽 찾아보면, 맨먼저 우리 눈에 띄는 것은 창세기 4장2절에서 아벨과 가인에 대해 말하면서, 그 두 사람에 대해 각각 '양치는 자'(<로에 초온>, 46장34절에도 이 표현이 나옵니다)와 '농사하는 자'(<오베드 아다마>)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경우입니다11). 그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하면, 각각 '양떼를 먹이는 사람'과 '땅을 가는 사람'이 됩니다. 이 둘을 우리는 흔히 목자와 농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첫머리에서 토착화된 농업과 이동성이 강한 목축업이라는 두 가지 직종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 이 둘은 사실 구약 시대 직업의 근본을 이룹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선조때로부터 한편으로는 목축업을,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을 주업으로 삼아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축과 농사의 두 가지 일을 같이 하면서 살아온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아모스입니다. 이는 아모스 7장14-15절에서 아모스가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양떼를 따를 때에'라고 말한 데서 잘 드러납니다.
(2) 그렇지만, 구약 성경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직업은 역시 목축업입니다. 이러한 점은 이미 '목자'를 뜻하는 히브리 낱말 <로에>가 구약 성경에 83번이나 나온다12)는 사실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3) '목자'에 견주어 볼 때, '농부'를 뜻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그리 자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역한글판에서 '농부'로 옮긴 히브리어 표현은 여러 가지인데, <익카르>가 6번, <요게브>, <오세 믈래케트 핫사데>('들 일하는 사람', 대상27:26), <이쉬 오베드 아다마>('땅을 가는 사람', 슥13:5)가 각각 한 번씩 나올 따름입니다. 창세기 9장20절에서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라고 할 때, 이를 직역하면, "노아는 '땅의 사람'(<이쉬 하아다마>)으로서 포도나무 심기를 시작했더니"가 됩니다13).
4.2. 수공업, 기술자
앞서 '직업'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을 살펴볼 때 이미 암시했듯이, 구약 성경에서는 손으로 일하는 업종도 자주 언급됩니다.
우선 개역한글판에서 '공장(工匠)'(대상29:5 등), '대장장이'(왕하24:14등), '장인(匠人)'(사40:19 등), '장색(匠色)'(신27:15 등), '금장색(金匠色)'(느3:8 등), '은장색(銀匠色)'(삿17:4 등)14), '석수'(왕하12:12 등), '목수'(대하24:12 등), '미장이'(왕하22:6 등), '토기장이'(사29:16 등)으로 번역한 여러 가지 히브리어 표현이 그런 경우입니다. 이들은 특별한 재주나 기술을 가지고 금속이나 돌이나 나무 등을 재료로 삼아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세마포를 만드는 자'(사19:9), '세마포 짜는 자'(대상4:21), '백목을 짜는 자'(사19:9), '세탁자'(왕하18:17; 사7:3; 36:2), 또 성막과 성소에 딸린 여러 가지 기구와 제사장의 옷을 만드는 기술을 지닌 사람들(출31:1-10; 35:30-35)도 수공업자에 속합니다.
4.3. 상업
벌써 창세기 23장16절에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밭을 살 때 '상고(商賈)(개역개정판에서는 '상인'으로 고쳤습니다)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주었다고 합니다. 곧, 당시 상거래에서 일반적으로 통하는 기준을 따라서 값을 치렀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옛 가나안 땅에서 통용되었던 상업의 존재를 암시합니다. 느헤미야 3장8절에 특별히 '향품 장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미 느헤미야당시에 품목별로 전문 상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37장28절에는 미디안 '상고'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사막길을 통해 여러 나라와 민족 사이를 드나들면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상인들이 국제 무역을 했다는 것은 구약 여러 곳에서 언급합니다(겔38:13 등).
잠언 31장24절에서는 부지런한 주부가 부업으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고에게 맡기'는 일이 있다는 점을 말합니다.
4.4. 공무원, 공직자, 관리15)
'공무원'을 '나라 또는 지방 공공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와 비슷한 말로 '공직'자를 '국가기관이나 공공단체의 직무'를 맡아보는 사람으로 이해할 때16), 구약 성경에서도 여러 종류의 공무원 또는 공직자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공무원 제도는 왕정 수립과 더불어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파 중심으로 살아가던 왕정 이전 시대에 백성의 삶을 이끌어 가던 중요 공직자는 장로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마을이나 지파의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고 결정하여 집행하였으며, 때때로 성문에 모여 앉아 일반 백성 사이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다윗과 솔로몬이 왕으로 다스리던 땡에 이르러 아마도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본을 따라서 왕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 공무원 체제를 정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무원들은 일단 글에 밝은 사람들 가운데서 뽑았습니다. 이 당시 고급 공무원들의 명칭은 사무엘하 8장15-18절, 20장23-26절, 열왕기상 4장1-6절, 역대상 18장14-17절에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중요 공직자를 알려 주는 셋째 본문을 뺀 나머지 세 본문은 다윗 시대의 중요 관리를 직명과 함께 소개합니다. 이 네 본문에서 직명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고 개별적인 기능을 늘 분명히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아래 대조표 참고), 대강 다음 몇 가지를 중요한 공무원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먼저 이들에 대해 알아본 다음에, 그 밖의 공직에 대해 살펴 보십시다.
삼하8:15-18 삼하20:23-26 왕상4:1-6 대상18:14-17
'제사장'(<코헨>) (삼하8:15-18
'서기관'(<소페르>) 과 거의 비슷함)
'사관'(<마즈키르>)
'군대장관' '온 군대의 장관' '군대장관'
(<알 핫차바>) (<엘 콜 핫차바>) (<알 핫차바>)
'감역관'(<알 함마스>)
'사관(史官)' '사관'
(<마즈키르>) (<마즈키르>)
'제사장'(<코헨>)
'서기관'(<소페르>) '서기관'(<소페르>)
'제사장'(<코헨>)
'관리장'(<닛차브>)
'왕의 벗' (<래애 함멜레크>)
'궁내대신' (<알 합바이트>)
'감역관' (<알함마스>)
(1) '사관'(<마즈키르>)
이 이름 자체는 '상기시키는 사람',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란 뜻을 띰으로써, 전령관(傳令官)이나 심복 측근을 가리킵니다. 이 직명의 뿌리는 왕에게 중요한 사실을 보고하는 관직을 가리키는 애굽 말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사관'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분명히 일러주는 곳은 없고 '사관'의 직명을 지닌 사람들이 한 구체적인 행동이 한 군데 언급되어 있습니다.
곧 열왕기하 18장18,26,37절(=사36:3,11,22)에 따르면,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와서 항복을 권유할 때, 히스기야의 '사관' 요아는 '궁내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더불어 앗수르의 랍사게를 상대로 협상에 나섰던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 밖에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사관'으로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삼하8:16; 20:24; 대상18:15; 왕상4:3. 이 네 구절에 나오는 <마즈키르>를 표준새번역에서는 '역사 기록관'으로, 공동번역에서는 '공보대신'으로 옮겼습니다)과 요시야 시대의 '사관'(이 경우 <마즈키르>를 한글 개역판과 표준 새번역에서는 '서기관'으로, 공동번역에서는 '의전대신'으로 번역했습니다)으로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대하34:8)가 나옵니다.
이처럼 몇 군데 안 되는 본문을 근거로 확실히 말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마즈키르>는 정보 관련 업무를 맡아 본 왕궁 고위 관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2) 서기관(<소페르>)
<소페르>라는 히브리 낱말 자체로는 '쓰는 사람'이란 뜻을 지니는데, 이 말이 실제로는 '왕의 서기'(왕하12:10[11]17), <소페르 함멜레크>)로서 중요한 나랏일을 맡아보는 고위 관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서기관'은 일종의 성서학자를 뜻하는 신약 성경의 '서기관'과 구별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12장10절에서는 요시야왕의 서기관이 성전 보수용으로 궤에 모아 둔 은을 '계수하여 봉하고 그 달아본 은을 일하는 자 곧 여호와의 전을 맡은 자'에게 넘겨주는 일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서기관'에게는 군사적인 능력도 있어서 공적인 일들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 성경에 그 이름이 나오는 서기관으로는 다윗 시대의 스라야(삼하8:17)과 스와(20:25), 솔로몬 시대의 엘리호렙과 아히야(왕상4:3), 히스기야 시대의 셉나(왕하18:18 등), 요시야 시대의 사반(왕하22:3 등), 여호야김 시대의 그마랴와 엘리사마와 바룩(렘36:10,20,26), 시드기야 시대의 요나단(37:15), 페르샤의 아닥사스다 왕궁의 심새(스4:8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사반은 요시야 개혁의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이 사반의 아들이 바로 여호야김 시대의 서기관 그마랴였습니다.
(3) 궁내대신(<알 합바이트>)
<알 합바이트>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위에'라는 뜻의 히브리어 전치사 <알>과 '그 집'을 뜻하는 <합바이트>가 합한 것이어서 문자적으로는 '그 집 위에'를 뜻할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집'은 왕궁을 가리키고, '...위에'는 ...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암시하기 때문에, 이를 '궁내대신'이라고 옮긴 것입니다. 이사야 22장15절에서 히스기야 시대의 셉나를 가리켜 개역한글판에서 '궁을 차지한 셉나'라고 번역한 것을 직역하면 '그 집 위에 있는 셉나'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본디 이 직책은 관리 명단의 뒷쪽에 올 정도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으마 이사야 22장21-22절을 보면, 나중에는 이 직책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으리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곧, 궁내대신은 관복을 입고 아주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이리저리 다니면서 백성의 '아비' 노릇을 했고, 그가 어깨에 메고 다니는 다윗 왕가의 열쇠가 권위의 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41장41-43절에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누리는 권세를 표현한 바와 비슷합니다.
구약 성경에 그 이름이 나오는 궁내대신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셉나 말고도 솔로몬 시대의 아히살(왕상4:6), 엘라 시대의 아르사(왕상16:9), 히스기야 시대의 엘리아김(왕하19:2; 사22:15; 36:3)이 있습니다.
(4) 감역관(<알 함마스>)
구약 성경에는 감역관으로는 다윗과 솔로몬와 르호보암 시대의 아도니람이 나올 뿐인데(삼하20:24; 왕상4:6; 5:14[28]; 12:18), 그 히브리어 표현 <알 함마스>는 '궁내 대신'의 경우와 비슷하게 '...의 위에'를 뜻하는 히브리어 전치사 <알>과 '강제 노동, 부역'을 뜻하는 히브리 낱말 <마스>에 정관사가 붙은 꼴이 한데 어우러져 된 것입니다. 같은 표현을 개역한글판에서는 또한 '감독'(왕상5:14), '역군의 감독'(왕상12:18)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아도니람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 공사를 할 때 부역 감독관으로 삼았던 사람인데, 나중에 르호보암 즉위 초년에 다윗 왕가에 반기를 든 북 쪽 지파 사람들에게 살해됩니다.
이 감역관은 출애굽기 1장11절에 나오는 애굽의 '감독'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왕의 벗'(<래애 함멜레크>)
이는 왕의 자문에 응하던 관리, 고문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직명이 붙어 있는 사람으로는 솔로몬 시대의 사붓(왕상4:5)이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데, 사무엘하 16장16절에서 '다윗의 친구'라고 불리는 후새도 같은 경우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하 15장12절에서 아히도벨을 가리켜 다윗의 '모사'(<요애츠>)라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1장26절에서 말하는 '모사'도 이런 사람을 가리킬 것입니다.
예레미야18장18절에서 '지혜로운 자에게서 모략이'라고 할 때, '지혜로운 자'(<하캄>)도 아마도 이러한 왕실 고문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바벨론 술사들도 이러한 기능을 맡았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6) 군대장관(<알 핫차바>)
히브리어 표현 <알 핫차바>는 앞에서 알아 본 <알 합바이트>('궁내대신')이나 <알 함마스>('감역관')와 비슷하게 '...의 위에'를 뜻하는 히브리어 전치사 <알>과 '군대'를 뜻하는 히브리어 낱말 <차바>와 정관사 <하>가 한데 어우러져 된 것으로서, '군대 위에 있는'이란 뜻을 띱니다. 실제로는 군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권한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므로, 개역한글판에서 '군대장관'이라 번역했을 것입니다.
'군대장관'은 전쟁 시에 최고 야전사령관인 동시에 평소에 임금 다음으로 군대에 대한 통수권을 행사했던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이름난 군대 장관은 다윗 시대의 요압인데(삼하8:15; 20:23; 대상18:15), 요압은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통치자가 되고 영토를 넓히는데 크게 이바지한 장수였으나, 다윗의 말년에 아도니야의 반역에 가담했다가 솔로몬이 보낸 브나야의 손에 죽임을 당합니다(왕상1:7,41; 2:25). 이리하여 브나야는 솔로몬의 군대장관이 됩니다(왕상4:4).
(7) 관리장(<알 한닛차빔>)
솔로몬의 중앙 관직 가운데 하나인 <알 한닛차빔>이라는 히브리어 표현은 <닛차브>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닛차브>가 열왕기상 4장7-19절에서는 매년 차례로 한 달씩 솔로몬 왕궁에 식량을 대던 지방 관리들을 가리킵니다. 개역한글판에서는 이 <닛차브>를 '관장', 개역개정판에서는 '지방관장', 공동번역에서는 '지방장관'이라고 옮겼습니다.
(8) 제사장
다윗과 솔로몬의 관리 명단에 제사장이 들어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는 다윗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던 예언자 나단과 갓이 이 명단에 빠져 있는 것과 대조가 됩니다. 나단과 갓이 비교적 독립적인 위치에서 필요할 때에만 다윗에게 충고하고 다윗의 상담에 응했던 바와는 달리,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 아히멜렉 부자(삼하8:17;20:25; 대상19:16)는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 건설과 확충에 군인 요압 못지 않게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이로 보건대 이스라엘의 왕정기에는 제사장이 예언자보다는 훨씬 더 깊이 세속 정치에 관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와 드고아 출신의 예언자 아모스의 대결(암7:10-17)에서 또한 똑똑히 드러납니다.
(9) 기타 공직자
다윗과 솔로몬의 관리 명단에 들어 있지 않는 공직도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공직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직명과 기능이 달라집니다.
이방 왕국의 관리로는 요셉이 활동했던 애굽에는 '바로의 시위대장'(창39:1)과 '애굽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창40:2)이 있었으며, 느헤미야는 페르샤 '왕의 술관원'이었습니다(느1:11). 또 유다가 멸망할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시위대장'은 느부사라단이었고, '환관장'은 느부사스반이었습니다(렘39:3,13).
'환관' 또는 '내시'로 번역하기도 하는 히브리 낱말 <사리스>가 때때로 반드시 거세되지 않더라도 왕의 신임을 누리는 궁중의 고위 공직자를 가리키는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37장36절과 39장1절에서는 보디발을 가리켜 바로의 <사리스>(개역한글판에서는 그냥 '신하'라고만 옮겼습니다) 시위대장이라고 한 경우가 그런 보기입니다. <사리스>를 개역한글판 열왕기하 8장6절에서는 '관리'로, 23장11절에서는 '시종'으로, 24장12,15절과 25장19절에서는 '내시'라고 옮겼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방 관리로는 역대하 34장8절에 따르면 요시야 시대에 '부윤'(<사르 하이르>)이 있었습니다. 이는 직역하면 '성읍의 우두머리'가 되는데,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에서는 '성주'로, 개역개정판에서는 '시장'으로 옮겼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9절),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16절),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18절),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19절)는 그 당시 페르샤 지방 영토의 행정 체제를 따른 지방 관장을 가리킵니다.
전문 법관 제도는 이스라엘의 왕정기 중간 무렵부터, 그것도 주로 남왕국 유다에서 확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본디 '판단하는 자'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 낱말 <쇼페트>가 이사야 1장26절(개역한글판에서는 이를 '사사'로 옮긴 것을 개역개정판에서는 '재판관'으로 고쳤습니다), 3장2절('재판관'), 호세아7장7절('재판장') 같은 곳에서는 법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18).
다니엘3장2절에서 말하는 '재무관'은 바벨론 왕궁의 재무대신을 가리킵니다.
4.5. 종교인
전문 종교인으로서는 앞서 공직자를 말할 때 살펴 본 제사장과 예언자 외에도 민간 신앙 습속의 전문가로서는 '신접한 사람'(삼상28:7), '복술자'(<코셈>)(사3:2 등), '요술자'(사3:3 등) 등이 있었습니다. 제사장과는 달리 성전 업무 가운데서 다소 낮아보이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던 레위인들도 어떤 점에서는 종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4.6. 기타
(1) 창세기 4장21절에서 라멕의 아들 유발을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의 조상이라 하는데, 이 경우 '수금과 퉁소를 잡는 자'는 전문 음악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창세기 10장9절과 25장27절에서는 각각 니므롯과 에서를 가리켜 사냥군이라 하는 것은 사냥도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창세기 21장20절에서 이스마엘이 '활 쏘는 자'가 되었다 함도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창세기 39장4절에서 애굽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이 히브리 사람 요셉을 그 '가정 총무'로 삼았다는 것과, 또 44장1절에서 요셉의 청지기라 함은, 고위 관리의 집 살림을 맡아보는 직업이 있었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이 두 경우에는 한결같이 <알 합바이트>라는 히브리어 표현이 들어 있습니다(위 4.4.3. '궁내대신' 참고).
(4) 예레미야 9장17절(히브리어 성경에서는 16절)에서 말하는 '곡하는 부녀'는 초상 집에 가서 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여인을 가리킵니다.
(5) 출애굽기 1장에는 애굽의 히브리 산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예레미야 8장22절 같은 곳에는 옛 이스라엘에도 의사가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6) 일정한 일터가 없이 그저 하루 하루 몸으로 일하여 벌어먹고 사는 '품군'에 대한 내용이 오경(출12:45; 레19:13; 22:10 등)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 다른 곳에도 더러 나옵니다(욥7:1; 사16:14; 말3:5 등). 이리하여 날품팔이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7) 앞에서 수공업으로 분류한 목수와 미장이 일을 포함한 '건축업'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건축자'(왕상5:18; 왕하22:6; 스3:10; 시118:22) 또는 '건축하는 자'(왕하12:11[12]; 대하34:11; 느4:5,16,18[3:37; 4:11,12])라 하는 구절도 적지 않습니다. 히브리 말로는 마찬가지로 <보내>입니다.
5. 직업 활동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
5.1. 농업의 중요성, 노동의 영성
창세기 2장5절과 15절의 내용에 따르면, 농업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람 창조 이전의 상황을 묘사하는 5절에 나오는 표현 '경작할 사람'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는 목적이 땅을 경작하게, 곧 갈게 하려 하시는 데 있다는 점을 깨우쳐 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15절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에 두신 목적이 그 에덴을 '갈고(개역한글판에서는 '다스리며'로 옮겼지만, 실제로 그 히브리 동사 <아바드>는 '갈다', '경작하다'는 뜻을 지닙니다) 지키게'하려 하신 데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땅을 가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부터 뜻하신 바라는 것입니다. 이 히브리 동사 <아바드>가 출애굽기 20장9절 같은 곳에서는 그냥 '일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땅을 가는 일을 농업 노동이라 할 때, 농업 및 농업 노동, - 이에서 더 나아가서 이를 일반화시켜 말한다면 - 노동은 사람에게 일차적으로 해당되는 창조 질서의 한 내용입니다. 영성을 소유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과 피조 세계에 대해 열린 관계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우리는 (농업) 노동의 영성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19).
이리하여 우리는 이른바 이삼차 산업, 특히 서비스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서도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인들만큼은 농업 노동이 사람의 본질에 속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이를 소중히 여기면서,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과 일터에서 정신 뿐만 아니라 몸도 쓰면서 일하는, 균형잡힌 생활을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5.2. 직업과 신분 또는 경제력의 문제
직업 자체가 귀천을 결정한다기 보다는, 직업과 관련하여 생기는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의 차이 때문에 어떤 사람을 귀하게 보거나 천하게 보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이스라엘의 참 왕이신 야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야훼 하나님의 백성을 공과 의로 잘 돌볼 책임을 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대부분은 왕의 지위를 이용하여 힘없는 백성을 내리누르고 천하게 다루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에 따라 고위 관리들과 상류층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사욕을 채우면서 특별히 힘없는 농민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아모스의 예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력이 든든하면 인정받고 그렇지 못하면 무시당하는 것이 옛 이스라엘에서도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생산의 터전이 되는 토지가 없는 레위인은 이방 나그네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사회의 천덕꾸러기가 되기 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 멸망 직전후에 바벨론 군대가 유다 사람들에게 취한 조치를 말하는 본문에서 바벨론 사람들이 왕과 왕족과 고급 관리들과 권력자들과 전사들과 기술자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지만(왕하24:15-16), '빈천한' 국민은 유다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했다(왕하24:14; 25:12; 렘52:16)는 기록을 보면, 아무래도 농민들은 공직자들이나 성읍 사람들이나 기술자들에 견주어 볼 때 천히 여김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옛 이스라엘 사회의 이같은 상황은 오늘 우리에게도 교훈이 됩니다. 특히 사회적인 지위 및 신분이나 경제가 하나님이 되다시피한 현대에서, 그런 것들이 모든 직업의 귀천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기 쉽습니다. 이것이 앞서 살펴 본 창조 질서에 맞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리하여 옛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치와 경제 권력에 따라 어떤 직업은 귀하게 보고 어떤 직업은 천하게 보았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는 반면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5.3. 직업 활동과 하나님의 영
사람의 직업 활동을 분명하게 하나님의 영과 관련시켜 말하는 구약 본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20). 다음 몇 가지 경우를 살펴 보십시다.
(1) 요셉의 경우
애굽의 술객과 박사들이 풀어내지 못한 바로의 꿈을 히브리 소년 요셉이 풀이하자, 바로는 창세기 41장38절에서 자기 신하들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직역하면,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38-39절에서 요셉에게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여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이 보좌 뿐이니라'라고,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 온 땅을 다스리게 합니다. 본문의 흐름으로 보면, 결국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 고위 공직에 이르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이 요셉 안에 계셨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셉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 때문에 요셉은 총리의 직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명철과 지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주제에 맞추어 표현한다면, 요셉이 새 직업을 얻어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요셉 안에 계셔서 그의 직업 생활에 필요한 슬기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은 곧 바로 하나님 섬기는 사람의 종교 활동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직업 활동과 직결됩니다.
여기서 하나 더 기억할 것은, 요셉이 직업 생활에서 성공하게 된 결과, 요셉의 형들과 그 가족 뿐만 아니라, 애굽과 그 둘레 여러 나라 백성까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창45:5,7; 50:20). 곧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계셔서 고위 공직자의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 둘레의 숱한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요셉의 안에 계셔서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영은 요셉을 통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시는 생명의 영,생명 구원, 생명 보존의 영이십니다. 이 경우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기 전에, 우선 양식을 먹어야 유지 보존되는 목숨을 뜻합니다.
창세기 전체의 흐름을 따라 본다면,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실 때 하신 약속의 말씀이 요셉의 성공적인 직장 생활을 통해서 상당한 정도로 실현되는 단계에 이르른 것입니다.
이리하여 오늘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도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복과 구원을 이 세상으로 흘러 보내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교회 안에서만 활동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일터에서도 일하십니다! 성령 충만은 교회 안에서 예배드릴 때 영적으로만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직장 활동 가운데서도 남을 살리는 실질적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브살렐의 경우(출31:1-11; 35:30-35. 28:3 참고)
출애굽기 31장 첫머리에서 야훼께서는 모세에게 성막과 각종 부속 기구들과 제사장 옷을 만들 사람으로 유다 지파에서 브살렐을 지명하셨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면서, 3-5절에서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가지 재주로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금과 은과 놋으로 만들게 하며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겨서 여러가지 일을 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 가운데서 첫 부분 3절을 직역해 보면, "내가 그를 지혜와 총명과 지식에 있어서, 곧 이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차게 했노라"가 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은 그 다음 4-5절에서 밝히듯이, 야훼께서 만들라고 하신 것들을 금과 은과 놋으로, 또 돌을 다듬고 나무를 다듬어 만들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만들 수 있는 지혜와 총명과 지식을 가리킵니다. 나중에 35장31-33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31장3-5절과 거의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이리하여, 브살렐의 경우에 하나님의 영은 성막과 성막 관련 여러 물건과 제사장 옷을 하나님의 지시대로 잘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보장하는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이 출애굽기 28장3절에서는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제사장의 옷을 만들라는 지시를 하시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내가 지혜의 영으로 가득 채운, 마음이 지혜로운 자 모두에게 말하여 그들이 아론의 옷을 짓게 하라...'(사역)고 말씀하십니다. 아래 5.4에서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만, 이 경우 마음의 지혜는 제사장 옷을 그 누구보다도 잘 지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데, 그 지혜는 결국 하나님이 가득 채워주신 지혜의 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주신 전문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성막 및 성막과 관련된 것들을 만드는 엄청난 일을 브살렐 혼자 다 하는 것은 아닙니다. 31장6절에 보면, 야훼께서는 오홀리압을 브살렐의 동료로 세워주셨고, 더 나아가서 "마음이 지혜로운 자 모두의 마음에 내가 지혜를 주었으니 그들이 내가 명령한 것을 모두 만들리라"(후반절의 직역)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35장34절에서는 오홀리압만 언급하고 뒤이어 35절에서는 성막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할 계획을 잘 세우고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곧, 문맥으로 보면 브살렐과 오홀리압 두 사람)에게 가득채워 주셨다'(사역)고 함으로써 마치 브살렐과 오홀리압 둘이서 모든 일을 다 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36장1절에서 보면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줄 알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결국 브살렐은 성막과 성막 관련 여러 물건과 제사장 옷을 만드는 큰 일의 최고 감독자의 책임을 맡은 사람이고,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을 가득차게 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브살렐과 그의 동료들은 이전부터 이런 일에 종사하고 있다가, 성막 제조의 특별한 임무를 맡게 된 사람들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 하나님의 영은 이미 어떤 기술을 지니고 일하고 있는 사람에게 그 기술을 살려서 하나님을 위한 어떤 특별한 일을 할 때,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 전체를 잘 해낼 능력을 주는 영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직업상의 전문 기술과 능력을 더 향상시키는 동시에 직업상의 동료들과 잘 협력하면서 전체를 아름답게 일구어낼 수 있게 하는 협력과 관리의 영입니다.
오늘 현대 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가 되어서 남보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나아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강박감이 지배하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기독교 신앙조차도 남보다 앞서 나가는 지혜와 실력을 닦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할 때, 출애굽기 31장, 35-36장에서 볼 수 있는 브살렐의 모범은, 기독교인들의 직장 생활이 전혀 다른 면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지나치게 확대 적용하는 것이 될지 몰라도, 나의 전문 능력을 더욱 더 키우고 살리되, 동료들과 협력하고 동료들을 잘 엮어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성막처럼, 그러니까 하나님이 현실적으로 함께 계실 수 있는 곳으로 세워가는 식으로 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예언자들의 경우
하나님의 영의 이끄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예언자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초기 예언자들과 포로기 예언자 에스겔의 경우에는 예언 활동과 하나님의 영의 관계가 비교적 자주 언급되지만, 그 밖의 경우에는 이러한 점이 약화되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예언과 하나님의 영이 무관해진 것은 아닙니다21).
5.4. 직업 활동과 지혜
구약 성경에서 지혜에 대해 말하는 여러 본문은 본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나날의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과 세계와 어떤 관계를 이루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알려 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지혜를 뜻하거나 지혜와 관련되는 히브리 낱말들은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뜻을 지닙니다. 그 가운데서 지혜가 사람의 직업 활동과 관련될 때는 무슨 일을 남달리 잘 할 수 있는 능력, 전문 능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22). 이는 앞서 살펴 본 왕실 고문관을 가리키는 '지혜자'들의 경우에는 두말할 것도 없고, 요셉과 브살렐 및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의 경우에서도 이미 똑똑히 드러났습니다. 또, 예레미야 9장17절에서 '곡하는 부녀'를 '지혜로운 부녀'라 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5장25-26절에서는 성막에 쓸 실을 만드는 여인들을 가리켜 '마음이 슬기로운 여인' 또는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여인'(직역하면 '그들의 마음이 자신들을 슬기로써 움직이는 여인들')이라고 합니다(이 두 표현을 공동번역에서는 각각 '재주 있는 여자'와 '재간이 뛰어난 여자'로 옮겼습니다). 이 경우에는 이 여인들에게 실을 낳는 데 뛰어난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레미야 10장9절 후반절에서는 금은으로 만든 우상에 옷 입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지헤로운 자들'(개역 한글판: '공교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기술자라는 뜻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 40장20절에서도 우상 만드는 사람을 가리켜 '지혜로운 대장장이'(개역 한글판: '공교한 장인')라 합니다.
역대상 22장15절에서는 다윗이 자기가 하지 못하게 된 성전 건축 사업에 대해 솔로몬에게 유언하면서 성전 건축 기술자들을 가리켜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하면 '온갖 일에 지혜로운 모든 사람'(공동번역: '재간 있는 각종 장인들', 표준새번역: '모든 것을 능숙히 다룰 줄 아는 만능 기능공들')이 됩니다. 한 마디로 건축 기술자들을 통틀어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역대하 2장7절(히브리어 성경에서는 6절)에서는 솔로몬이 두로 왕 후람에게 '금,은,동,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아로새길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한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이 요청을 받아들인 후람은 13[12]-14[13]절에서 '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하나 보낼 터이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복수!)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히브리어 본문에서는 복수!)'과 함께 일하게 하라고 답해 옵니다. 여기 여러 번 '공교한 공장'으로 옮긴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에 따르면, 두로의 기술자와 다윗 및 솔로몬의 기술자들이 협력하여 성전 건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히브리어 표현을 개역개정판에서는 '재주 있는 사람', 표준새번역에서는 '기능공'으로 옮겼습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 히브리어에서는 직업 활동에 필요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을 가리켜 지혜라 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 그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점을 언제나 두드러지게 말하지도 않고, 그 지혜가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된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또, 직업의 종류에 따라서 그 지혜의 귀천을 구별하지도 않습니다. 이로 보면,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적어도 언어상으로는 본디 어떤 영역이든 사람이 남보다 뛰어나게 잘 일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면, 이를 귀하게 보고 인정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기독교인들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은 - 그가 아직 하나님을 모른다 하더라도 -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남달리 특별한 능력이 각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이를 존중하며, 그 능력을 발휘하여 하나님이 주신 세상을 함께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도록 하는 데 앞장설 수 있을 것입니다.
5.5. 직업 활동의 사회적 영성(겔22:23-31)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는 이스라엘 사회를 이루는 각 계층 사람들의 타락상을 지적하는 본문이 더러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에스겔 22장23-31절인데, 이 말씀에서 오늘 기독교인들의 직업 생활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22장23-31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유다가 망하게 된 것은 정치 종교 민간 지도자들이 죄다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이행하기는커녕,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악용하여 사리 사욕을 채우고 약자를 괴롭혔기 때문이라는 점을 말한 다음에, 그렇게 사회 전 계층이 타락했을 때에는 사회 각 구성원이 그 무너져내리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려 기도드리면서, 사회 곳곳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줍니다23).
여기서 우리는 직업 활동이 생계 유지나 자기 실현의 수단만이 아니라 한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직무에 맞게 일하면서 살지 않으면, 그 때문에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무너지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 우리 나라 사회 각 계층에 널리 흩어져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매우 귀중한 교훈이 됩니다. 우리 나라의 흥망은 기독교인들이 각자의 직장에서 얼마나 성실히 바르게 일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사회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잘 모르면서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가 속한 이 공동체의 삶이 옳은지 그른지를 잘 살펴 보고, 잘못 되었을 때는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일이 쉽지 않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 각 계층의 부패가 더 이상 어찌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심판 밖에 없다고 해야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기독교인들은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나라를 살려 주십사고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드리는 동시에, 각자가 할 수 있는 대로 잘못을 고쳐 나가도록 서로 격려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직장에서 성실히 자기 직분을 다하는 동시에, 내 직종을 넘어서서 사회 전체의 구원을 위해서 함께 힘을 모아 일할 줄 아는 마음 가짐을 뜻합니다. 이를 요즈음 유행하는 '영성'이라는 낱말과 관련시켜 표현한다면,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사회적 영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라 하는 남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교회가 이 사회적 영성을 배양하는 데 그리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구약 성경의 총체적인 인간관에 따른다면, 본디 개인적 영성과 사회적 영성을 구별한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올바른 개인적 영성은 반드시 사회적 영성을 포함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이 시간 사회적 영성에 대해 강조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회가 성경의 본 정신을 거슬러 무리하게 개인과 사회를 구별하고 기독교 신앙을 개인이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인정받고 출세하는 데에 머물러 버리도록 했기 때문이 아닌가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덧붙여 기억할 것은, 구약 성경의 곳곳에서 경제 통치 사법 사회 생활의 정의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테면, 앞서 다룬 바 있는 다윗의 관리 명단의 첫머리인 사무엘하 8장15절(=대상18:14)에서는 다윗이 '자기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했다고 함으로써, 그 뒤에 나오는 공직자들도 바로 이런 정신을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기독교 정치인들과 공직자들도 '공의 의'를 행하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권력이, 자기가 속한 정당의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있는 현실이 아닙니까? 기독교 국회의원, 관료 가운데서 하나님 때문에 동료 의원들이나 관료들이나 상급자들과 갈등을 빚고 자리를 잃고 심지어는 옥에 가는 등 박해를 받는 사람이 몇 사람이 됩니까? 고위 관료들이 출석하는 교회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무엇을 외치고 있습니까? 이 지위 높은 교인들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또한 오늘 우리 기독교회와 교역자들은, 약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정의로운 경제 질서24)와 사법 질서를 세우라는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습니까? 기독교 기업가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경제 윤리를, 기독교 법조인들에게 올바른 기독교 사법관을 실천하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결국 교회는 그만두고서라도 이 나라 이 사회를 망치고 있는 장본인들은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이요, 그런 기독교인들은 배출하고 있는 우리 교역자들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뜻에 맞게 정의롭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영성을 가르치지도 배양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린다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까요?
6. 나오는 말
아직 농경 목축업 같은 일차 산업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구약 시대와 상공업 및 서비스 사업, 곧 이삼차 산업이 찬란한 꽃을 피우고 있는 이 시대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만큼, 직업에 대해 구약 본문이 다루는 내용을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곧바로 적용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때와 곳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곳이면 사람들이 일하면서 사는 모습과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와 그에 대한 교훈이 비슷한 점도 적지 않고, 온누리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습니다.
이제 앞에서 살펴 본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서 오늘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에 대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간추려 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인간의 문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농업 노동이 창조 질서에서 우리 사람의 본질에 속한다는 사실은 외면할 수 없다고 할 때, 기독교인들은 무슨 직업에 종사하든 몸으로 일하는 것, 특히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업을 귀히 여길 줄 알고, 스스로 몸을 써서 일하기를 힘쓸 뿐만 아니라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땅을 갈아 먹을 것을 내는 농민들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곧 온전한 영성의 사람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는 데 노동의 영성이 빠져서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 사회적 지위나 신분, 또는 경제력을 직장 활동에서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합니다.
(3) 성령님은 일상의 직장 활동 가운데서도 기독교인들을 이끌어 가시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더 나은 전문 능력으로써 이웃을 살리고 마침내는 온누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되도록 동료 기독교 직장인들과 협력하며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지혜는 직장 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전문 능력의 발휘로도 나타납니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각자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이 무엇인지 잘 분별할 뿐만 아니라, 나와는 다른 능력을 받은 다른 사람들도 인정할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합니다.
(5) 기독교인들이 각 자의 직장에서 맡은 바 일을 올바르게 해 나가지 않으면 공동체를 망치는 무서운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성실히 직무를 수행해 나갈 뿐만 아니라, 깨닫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가 어그러지고 무너져 갈 때, 그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여 힘자라는 대로 바루어 나가고, 공동체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영성이 기독교인들의 직장 활동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론!! 영!! 혼!! 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복이 오는 방법 ♡ (0) | 2012.11.26 |
---|---|
[스크랩] 소중한 우정과 사랑을 위해 (0) | 2012.11.26 |
[스크랩] 인체에 관한 흥미 있는 지식(상식) (0) | 2012.11.20 |
[스크랩]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2) (0) | 2012.10.31 |
[스크랩]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1) (0) | 2012.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