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주 예수의 자리에 거짓으로 올라타 미혹하고 있다
● 시작하는 글
오명현 목사(전주함께하는교회·총회이단대책위 총무)
미국의 대중 음악가 밥 딜런(Bob Dylan)은 2016년에 대중가요 가수로서 받기 힘든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79년에 발표한 그의 노래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Gotta Serve Somebody)의 가사는 매우 심오함을 엿볼 수 있다. 그 노랫말 중에, “마귀든(It may the devil)/ 또는 주님이든(or It may be the Lord)/ 아무튼 그대는 누군가를 섬겨야 할 거라네(but you’re gonna have to serve somebody”를 보면, 밥 딜런은 그냥 가수가 아니라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는 세계관의 핵심이며 세계관을 이해하는 기본이다. 마땅히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인간은, 하나님께 반역을 한 이후에 섬김의 대상을 바꾸어버렸다.(롬 1:21~23) 돈(Mammonism)과 사물(all things)을 숭배하고, 각종 우상(idols)을 만들어 거기에 절을 하며, 심지어 인간을 재림주로 믿고 그에게 경배와 찬양을 한다. 언제인가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백마 탄 자들(이만희, 안상홍, 박명호, 양도천)의 사진들을 보고서 적지 않게 놀랐다. 혹시 이들이 계시록에 나오는 백마 탄 예수님을 흉내 내면서 재림주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간다. 따라서 흰말과 흰말 탄 자에 대한 이만희 씨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해 본다.
1. 이만희의 흰 말 탄 자에 대한 주장
요한계시록 6장 1~2절을 보면,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고 했다. 이 구절에서 이만희는 흰 말과 그 말을 탄 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고 있다.
첫째로 이만희는 그의 저서에서 “본문의 백마는 하나가 아닌 조직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글을 직접 보면, “본문의 백마는 네 그룹(네 생물) 중 한 조직으로서 스가랴 6장과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본문과 달리 백마라 하지 아니하고 백마들이라고 하였으니 하나가 아닌 조직체임을 알게 된다”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啓示>)
둘째로 이만희는 그의 저서에서 “백마는 네 생물 중 한 조직의 사명자(사31:3, 육체)요 탄 자는 어린 양이라(계 19:11~16)”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啓示>)
셋째로 이만희는 “말을 탄 자들은 영이요, 말들은 육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다. 그의 글을 직접 보면, “영계의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말로 삼아 부리시듯이, 육계에서 영들은 육체를 말로 삼아 역사한다(사 31:3) 그러므로 본문의 탄 자는 영들을, 말들은 육체를 가리킨다”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실상>)
넷째로 이만희는 그의 저서에서 “백마는 지상의 사명자인 육신의 인간을 말한다. 또한 그 탄 자는 성령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니 성령이 지상의 한 사명자를 세워서 그에게 역사한다”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계시록의 진상>)
다섯째로 이만희는 “영계의 하나님은 영들(천사들)을 말로 삼아 강림하시며, 영들은 또 육체를 말로 삼아 타고 일하신다”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啓示>)
2. 신천지의 흰 말과 흰 말 탄 자에 대한 반론
첫째로 이만희는 본문 요한계시록 6장 2절의 ‘흰 말’을 스가랴 6장 3절과 요한계시록 19장 11절의 구절을 인용하여 단수가 아닌 여러 말들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주장이다. 물론 스가랴 6장 3절은 ‘흰 말들’이라고 복수로 언급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9장 11절의 ‘백마’(white horse)는 단수(段數)이며, 14절의 ‘백마’(white horses)는 복수(複數)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6장 2절의 ‘흰 말’(white horse)이 단수이기에 요한계시록 9장 11절을 대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6장 2절의 ‘흰 말(단수)’을 요한계시록 19장 14절의 ‘흰 말들(복수)’을 대입하고, 조직체를 언급했다. 이는 신천지 집단 내지 자신과 연계시키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둘째로 이만희는 요한계시록 6장 2절의 ‘흰 말’을 자신이라고 주장한 것은 예수님과 자신이 하나임을 억지로 엮으려고 비약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즉 말을 탄 자와 말과의 관계를 자신과 예수님의 관계로 풀이하고 있다. 말을 탄 자는 영(예수)이요, 말은 육(이만희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영은 육을 들어 역사한다”는 교리를 짜맞추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주장의 결론은 ‘예수의 영’이 ‘이만희 육’에 임하였기에 자신이 보혜사라는 것이다.
셋째로 이만희의 주장은 성경이 말하는 삼위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이비(似而非)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만희는 “백마 탄 자는 성령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니”라고 주장했다. 분명하게 성경은 성령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존재가 각각 구별되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성령님은 오순절 때에 지상의 예루살렘교회에 강림하셨다.(행 2:1~4) 또한 주님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고(요 14:16), 더 나아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26) 계시록 5장을 보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어린 양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에 계심이 분명하다.(계 5:6) 따라서 성령님과 예수님을 한 존재로 주장하는 이만희는 정통 기독교가 중시하는 성경의 가르침을 배도(背道)한 것이다.
3. 본문(계 6:2)에 대한 바른 해석
어린 양(그리스도)이 인봉된 두루마리를 열기 시작했다. 각 인을 뗄 때마다 고통과 환난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첫째 인에 대한 환상은 “흰 말과 흰 말 탄 자”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본문(계 6:2)의 ‘흰 말 탄 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첫째로 본문(계 6:2)의 ‘흰 말’은 성결함과 승리를 상징한다. 핸드릭슨은 “첫 번째 네 인(印)들은 스가랴 1장 8절과 6장 1절 이하에서의 상징을 연상하게 한다. 성경에서 말(馬)은 대체로 힘과 두려움과 전쟁과 정복 등의 의미로 표현되어지고 있다.(사 30:16, 31:1; 욥 39:22~28) 계시록에서도 이와 같은 의미로 언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계 9:7, 14:20, 19:11)”라고 했다. 변종길 교수는 “계시록에서의 희다는 색깔은 항상 성결 또는 승리를 상징하며, 한 번도 승리를 가장한다는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변종길 저, <요한계시록주석>) 필자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
둘째로 본문(계 6:2)의 ‘흰 말 탄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흰 말’은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을 나타낸다. 그것뿐만 아니라 끝없는 승리를 말한다. 교회는 패하지 않는다. 악한 자가 그리스도의 나라를 대적하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지만 결국은 그리스도가 승리하게 한다.(김홍전 저, <요한계시록>) 주님께서 지상교회를 세우실 것을 밝히시면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8) 더 나아가 주님께서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환난을 당하지만 담대하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 주님의 격려는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다.(요 16:33) 주님은 이미 세상을 정복하신 분이시다. 요한계시록 6장 2절의 ‘흰 말’을 타신 분은 세상 끝 날에 당당하게 승리하시는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서문강 목사는 해석하기를 ‘흰 말’, ‘면류관’, ‘이기고 또 이기려’는 모습은 “그리스도의 영광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전 교회 시대에 걸쳐 승리자로서 계속 영적 전투에서 이기고 또 이기려 하며 궁극적 승리자로 서실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서문강 저, <요한계시록>)
셋째로 본문(계 6:1~2)의 ‘면류관’을 쓴 자는 계시록 14:14의 ‘머리에 면류관을 쓴 인자’와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요한계시록 14장 14절을 다시 보면,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고 했다. 재림하실 주님은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지시고, 또한 활을 가지셨다.(계 6:2) 낫과 활은 고대전쟁의 도구들이다. 본문의 전쟁은 복음이 던져졌을 때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저항할 수 없는 승리를 예고하는 전쟁이다. 박윤선 박사의 주석에서 인용된 크레다너스(Greijdanus)의 해석을 보면, “이 흰말 탄 자는 세계의 종말기를 당하여 멀리서 땅을 향하여 싸우시는 그리스도이시다”라고 했다.(박윤선, <계시록>)
● 맺는 글
이만희는 ‘흰 말’을 지상의 사명자인 육신의 인간을 말한다고 했다. ‘흰 말’이 누구일까? 신천지는 ‘흰 말’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혔다. 신천지 찬송가 44장(예수께서 약속하신) 3절을 보면, “예수 타신 백마 되어 사단 권세 이긴 자라”고 했다. 백마에는 재림주 예수님만 타야 한다. 그런데 왜 이만희는 백마를 탔을까? 그들이 부르는 찬송가에 그 답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곧 신천지는 이만희를 재림주로 찬송하고 있다.<신천지 찬송가> 신천지는 그(이만희)를 재림주로 경배하고 있다. 따라서 이만희가 계시록의 구도를 예언과 성취로, 환상과 실상으로 정한 것은 자신을 재림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찬송가가 증명하고 있다. 이만희의 주장은 그의 사견일 뿐 계시록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구절(계 6:2)은 당시 고난에 처한 교회에 큰 위로를 주는 환상(계시)이다. 황제 숭배를 거절하고 순전한 신앙을 지키는 교회에 최후 승리를 안겨주실 것이라는 위로의 계시이다. 사이비 집단들은 거짓의 아비(마귀)에게서 배운 거짓 교리로 계속해서 교인들을 미혹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재림주가 되심을 확신하고, 미혹의 영들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 연합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사이비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사단의 밥이 될 수 있다. 이단에 대하여 단호하게 선언했던 바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갈 1:8)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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