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이단성! 사이비성!

예수 이름을 훔치는 자의 과대망상에 미혹 당하지 말라

하나님아들 2022. 3. 22. 16:38

예수 이름을 훔치는 자의 과대망상에 미혹 당하지 말라


오명현 목사(전주함께하는교회·총회이단대책위 총무)
시작하는 글

2013년에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애니메이션)>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사이비 문화에 대해 고발의 성격이 짙었다. 그 영화에서 댐 건설로 수몰 예정인 마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서 인간의 악함을 엿볼 수 있다. 인간성이 글러먹을 대로 글러먹은 주인공 김민철, 사기꾼 장로 최경석과 그가 세운 교회, 최경석에게 어용되어 참을 참이라 말하지 못하는 목사 성철우와 맹신적인 교인들이 빚어내는 악한 면들을 보면서 사이비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사이비의 반사회적 행태는 시대를 초월하여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가 정통이며 사이비인가? 루터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윌리엄 호던(William E. Hordern)은 정통은 신약성경에서 시작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구원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인정하는 신앙,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오직 예수” 등이 정통이며 이에서 벗어나는 것이 사이비라고 했다.(<윌리엄 호던, 프로테스탄트 신학 개요>)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과 관련하여 이만희 씨의 주장을 살펴보고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해 본다.  

1. “새 이름”에 대한 이만희 씨의 주장 

정통과 사이비에 대한 시비(是非)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있게 마련이다. 사이비 집단의 특징은 교주(敎主)가 있다는 것이며, 교주는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가짜 장로, 가짜 목사, 맹신적인 신자, 사이비 교주, 사이비 기자 등의 출현은 정통(성경, 진리, 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이만희 씨는 그의 책에서 요한계시록 3장 12절을 들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첫째로 이만희 씨는 그의 저서에서 이사야 62장 2절을 근거로 “이기는 자(이긴 자) 위에 기록해 주시는 예수님의 새 이름"에 대해 언급하면서 구약의 여호와의 새 이름이 예수라고 주장하고 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실상>)  

둘째로 이만희 씨는 “여호와라는 이름의 하나님께서 새 이름을 가졌듯이 예수님도 새 이름을 가지게 되셨으니 예수님께서 장가드시는 이기는 자의 이름이다.(계 2:17, 28)”라고 주장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실상>)

셋째로 이만희 씨는 새 이름을 다른 보혜사로 말하고 있다. 그는 “요한복음 6장 56절과 14장 20절의 기사에 따르면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알리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나의 새 이름이라고 하신 것은 요한복음 14장 16절, 25절, 26절의 기사에 나타난 다른 보혜사를 말한다”라고 했다.(이만희 저, <요한계시록의 실상>) 결국 자신을 다른 보혜사로 둔갑시켜서 신격화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넷째로 신천지는 다른 곳에서 “2000년 전의 나사렛 예수, 그는 승천한 후 재림하실 때 다른 이름을 가진 보혜사로서 오시게 된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온 보혜사라는 말이다. 보혜사는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게 될 때의 이름이다”라고 주장했다.(<金建南, 金炳禧 共著. <神誕>. 도서출판신천지)  

다섯째로 신천지는 “예수께서 이기는 자에게 하신 말씀을 보라. 이기는 그와 예수와, 하나님, 이 셋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는다. 즉 성령과 예수의 혼과 땅의 육체 이 셋이 연합하여 하나가 되니 이것이 하나님의 보좌이다. 따라서 이 삼위가 일체되는 날, 그 날이 여호와의 한 날이요 변화 성신하신 신인(神人)이 탄생하는 날이다”라고 주장했다.(金建南, 金炳禧 共著. <神>.도서출판신천지) 

즉 이만희 씨가 전개하는 논리를 보면,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여호와의 새 이름은 예수, 예수의 새 이름은 이긴 자(이만희), 고로 이만희에게서 삼위가 일체되고 일체되는 날은 신인이 탄생하는 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망발(妄發)이 어디 있는가? 어찌 한 인간에 불과한 자가 감히 삼위일체를 운운하는가.  

2. 이만희 씨의 “새 이름”에 대한 반론 

첫째로 이사야 62장 2절의 여호와의 새 이름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만희 씨가 본문으로 삼은 요한계시록 3장 12절의 새 이름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되는 이름이 아니다. 이사야 62장 2절은 메시야의 초림으로 시온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이는 결국 최후의 종말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부활한 성도들이 받게 될 새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계 2:17; 3:12; 21:1-3)<그랜드종합주석 제 9권>) 변종길, 오광만, 핸드릭슨 등은 “‘하나님의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 하나님의 확실한 소유라는 것을 나타낸다”라고 해석했다. 특히 이필찬 교수는 요한계시록 3장 12절 안에서 이기는 자에게 주어질 네 종류의 이름을 정리했다. 즉 “나의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하나님의 도시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다. 이 일련의 이름들은 동일한 의미로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그런 이름이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라고 했다.  

따라서 이만희 씨의 주장은 일방적인 자기 주장이며, 과대망상(誇大妄想)적인 주장이다. 그의 논리를 요약하면,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였다. 예수는 하나님의 새 이름이다. 예수의 새 이름이 이기는 자에게 주어졌다. 이기는 자가 이만희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이만희에게 나와야 한다. 이긴 자를 알아야 삼위일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방적이고 비약적이고 허무맹랑한 주장에 미혹되지 않아야 한다.(요 8:44)

둘째로 본문의 새 이름들이 ‘이기는 자’에게 기록된다고 했다. 이기는 자란 그리스도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계 3:8) 이기는 자는 성전의 기둥이 된다고 했다. 이는 구약 솔로몬 성전에 세워졌던 두 기둥을 배경으로 말하고 있다. 두 기둥 중에 오른쪽 기둥에는 ‘야긴’의 이름이 새겨졌고, 왼쪽 기둥에는 ‘보아스’의 이름이 새겨졌다.(대하 3:17) “야긴”은 ‘그가 세운다’라는 뜻이 있고, “보아스”는 ‘그의 능력으로’라는 뜻이다. 따라서 성전의 두 놋기둥에 이름을 새긴 것은 여호와께서 메시야의 왕조(다윗왕조)를 세우시고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뜻이다. 서문강 목사는 “두 기둥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드러내는 신앙 고백적인 상징을 담고 있다”라고 했다.  

셋째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긴 자에게 새겨진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뜻하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요한계시록 7장 3절을 보면, 이마에 하나님의 인(印)을 받는 14만4000이 나온다. 곧 하나님께 속한 신자들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 곧 언약 백성을 “나의 소유”라고 하셨다.(출 19:5) 신약교회 역시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했다.(벧전 2:9) 이긴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에 그 어떤 환난에서도 건짐을 받는다는 위로의 메시지이다.  

넷째로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 진다”는 것은 이긴 자는 하나님의 왕국의 시민이라는 사실을 공식화 한다는 것을 상징한다.<그랜드 주석, 제 16권> 본문의 새 예루살렘은 완성된 천상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땅의 예루살렘은 무너졌다. 땅의 예루살렘에 새겨진 이름은 사라졌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땅의 예루살렘과 대조가 되는 완성된 새로운 처소를 의미한다. 한 번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진 성도는 다시 무너져서 누추한 곳에 거하지 않는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누리는 자가 이기는 자이다.(계 21:1-2, 10-27)  

다섯째로 “그리스도의 새 이름이 새겨진다”는 것은 이기는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의 왕권을 드러내며 산다는 상징적 표현이다.<그랜드 주석, 제 16권,> 승리한 신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한다고 했다.(계 20:4,6)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이다. 더구나 그리스도의 새 이름은 온 세상을 심판할 권세자로서의 이름이다. 악한 것을 심판하시는 승리자의 이름이다. 그 이름의 권세로 많은 영혼을 미혹했던 마귀도 불 못에 던져지고, 거짓 선지자도 유황불에 던져진다.(계 20:10, 21:8)  

맺는 글

구약과 신약을 다 뒤져보아도 이만희 씨에게 예수님의 새 이름을 부여해 준다는 곳이 없다. 언제인가 책 한 권이 우편으로 배달되어 왔다. 다름 아닌 재림예수교 천국복음 전도회에서 보낸 온 책이었다. 책 내용 중에 몇 주제를 보았다. 놀랍게도 “구름(육체)”, “보혜사(사람, 대한민국)”,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등의 내용들은 이만희 씨가 주장하는 것과 일치했다. 같은 주제에 같은 내용이라면 앞의 것이 원본이고 뒤에 것이 사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재림예수교 천국복음 전도회에서 보낸 온 책은 “1971년 음력 1월 17일 새벽에 신구약 66권을 비유와 비사와 상징과 거울과 그림자로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짝을 찾아 풀이하셨다”라고 했다. 그런데 신천지 이만희 씨는 “1984년 2월 21일 충남 천태산 앞 국사봉에 입산하여 말씀을 받아 책 두 권을 썼다”고 했다.<신천지 발간사 연혁> 1971년은 신천지의 개국보다 10여 년이 앞선다. 물론 두 집단은 도긴개긴이다. 그러나 순서로 보면 이만희 씨가 받아먹었다는 내용은 이미 앞의 “재림주”라는 자의 글보다 뒤에 나온 것이다. 이 두 예를 보면, 시대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칭하는 자(재림예수)들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고 예고하셨다.(마 24:5) 예수님의 이름을 도용하는 자의 목적은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다. 미혹당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