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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사는 우상숭배인가?

하나님아들 2012. 10. 16. 14:26

한국 교회는 그 역사의 초기에서부터 제사 문제로 인하여 많은 핍박을 받아 왔다. 바울을 비롯한 성경의 가르침은 제사가 무익할 뿐 아니라, 귀신에게 드려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이에 제사를 거부했고 그로 인하여 많은 박해를 받았으며 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굳건한 신앙을 견지한 선배들 덕분에 오늘의 기독교는 그 순수함을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꽤 오래전부터 제사가 우상 숭배가 아니라, 하나의 미풍양속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카톨릭은 이미 오래전에 제사가 종교 행위가 아니라는 교황의 교서를 내렸다. 과연 제사는 우상 숭배인가, 미풍양속인가? 그것이 우상 숭배라면 우리는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고, 미풍양속이라면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1. 제사

1) 제사의 역사
제사는 오랜 옛날부터 여러 민족들에 의해 시행되어 온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그것은 특히 원시 아프리카에서 극성 하였으며, 인도네시아와 고대 중국에서도 성행하였다. 특히 고대 중국은 우리나라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중국의 제사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고대 중국의 기록의 의하면 이미 하(夏)와 상(商)나라 때부터 정식적인 제사가 드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나 조상에게 드려진 것이 아니고 뛰어난 황제에게 드려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뛰어난 존재이기에 드려졌던 제사는 역설적으로 자기 조상이 훌륭한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왕실에서 황제들에 의해서만 드려지던 제사가 점차 제후와 재상들 그리고 평민에게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있어서 제사가 이론적인 근거를 가지고 가조되기 시작한 것은 송(宋)나라의 주희(주자1130-1200)가 신유교(NeoConfucianism)라 불리는 '성리학'을 주장하면서부터이다. 그는 특별한 철학을 가지고서 제도적이고 의무적인 제사를 강조했다.

2) 우리 나라의 제사
우리나라에도 제사 의식은 일찍부터 발전했다.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추수를 감사하면서 하늘에 제사를 드린 것이었다. 신라와 고구려 시대에도 특별한 몇몇 왕들에게만 제사 드려졌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하여 제사드리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원래 불교에는 제사 의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말 13세기에 성리학이 유입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제사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정몽주나 이색 등은 사당을 짓고 제사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그는 불교를 억제하고 유교, 특히 성리학을 국가의 종교로 선포하였다. 그는 제사를 장려하였고, 세종 때에 이르러서는 전국민들에게까지 보편화되었다. 제사는 장려하였고, 세종때에 이르러서는 전국민들에게까지 보편화되었다. 제사는 특히 덕을 기른다는 교육적 목적을 가지고 장려되었으며 「주자가례」(朱子家禮)가 그 원칙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결국 당쟁과 사화를 불러일으켰다

2. 천주교와 개신교의 입장

1) 천주교의 입장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M.Ricci)는 1601년경 북경에 들어가 선교를 시작했다. 그의 선교방법 및 특징은 서양 학문을 가르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제사 등을 인정해 주는 적응식 선교였다. 그것은 그가 지은「천주실의」(天主實義)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선교방법에 반발한 도미니칸과 프란시스칸 선교사들은 교황에게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리하여 1715년과 1742년에 유교적인 조상 숭배는 성경의 교훈과 어긋난다는 교황의 교서가 발표되었다. 이러한 때에 이승훈이 천주교를 유입해 왔고, 1790년에 북경의 주교인 알렉산더 고베아의 자문을 받아 신주를 불태우고 조상 숭배를 금지 시켰다. 이에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 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다. 그러나 카톨릭 1939년에 새로운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피우스 12세(Pius ⅩⅡ)는 신사참배와 조상 숭배 의식은 종교적 의미가 없는 시민적 행사라고 발표했다. 결국 한국 천주교도 1940년에 신사참배가 시민 의식이라고 발표하였다.

2) 개신교의 입장
개신교 역시 초기부터 제사 문제로 많은 박해를 받았다. 선교사들과 교인들은 만장일치로 조상 숭배가 성경에 어긋나며, 어리석은 일이라고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1891년부터 1897년까지 세례시에 서약한 일곱조항 중에 제사금지에 대한 항목을 삽입하였다. 일제 시대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많은 이들이 순교하기도 하였으나, 홍택기 목사는 1938년 9월에 신사참배를 수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1977년에는 순복음교회의 조다윗 목사가 제사는 좋은 것이며 죽은 부모에게 절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발표함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한편 W.C.C.나 변선환 교수 등도 제사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성경의 입장

우리는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제사를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유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세계관은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이 나뉘어져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고 한다. 그런데 혼이 거처할 곳을 찾지 못하여 떠돌아다니다가 후손들의 제사로 백과 연합하여 안정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토속 신앙적 요소가 강하며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가르침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마6:25; 고전5:3, 5) 하나님께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특히 기독교인의 영혼은 즉시 하나님께로 가고(전2:7; 눅23:43; 행3:21; 히12:23) 불신자의 영혼은 지옥으로 간다(눅16:23,24; 행1:25; 벧전4:10). 지옥으로 간 영혼들에게는 다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특별히 제사와 관련하여 분명히 해두어야 할 점은 죽은 자와 산 자간의 대화나 교통은 전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눅16:19-31).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은 제사 제도의 배후에 작용하는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제사는 사실 부모를 공경하는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유교의 도덕률과 기복사상이 혼합되어 형성된 체계인 것이며 과거지향적이고 자연주의와 계급주의의 산물이다. 죽은 자의 영혼은 결코 세상에 떠돌아 다니거나 다시 나올 수 없다. 결국 조상의 영혼이라고 믿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사도 바울의 지적대로 귀신에 불과한 것이다(고전10:20). 또한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 미풍양속도 아니며, 중국에서 전래되어 13세기부터 강조되어 온 이질적인 체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가족안에서 제사 문제로 갈등하는 이들은 지혜롭게 행동하되 타협하지 않고 지킬 것은 지켜가면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출처 : 사랑과 영혼의 편안한 쉼터
글쓴이 : 푸른초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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