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학 자유주의 신학!

현대신학의 위기와 그 근황

하나님아들 2021. 9. 13. 22:27

현대신학의 위기와  근황

   

I . 현대신학의 집안싸움

1. 서론 .............................................. 3

2. 본론 .............................................. 4

1) 불트만 ........................................... 4

2) 판넨베르그와 몰트만 .............................. 6

3) 집안싸움 .........................................10

3. 결론 ..............................................12

II. 성경을 해부하는 현대신학

1. 집도하는 불트만 ...................................13

2. 차원 신학자들 .....................................14

1) 바르트 ...........................................14

2) 부른너 ...........................................15

3) 틸리히 ...........................................15

3. 성경과 두개의 차원개념 ............................15

II. 정통신학을 위협하는 삼대 신신학과 총신인의 결의 ...17

IV. 미국신학의 근황

1. 서론 ..............................................21

2. 구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과 자유주의의 팽배 .........21

3. 거물신학자시대 -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시대 ........23

4. 사신신학시대 - 미국신학의 소아병적 발작 ...........24

5. 미국신학의 새로운 문제아들 ........................24

6. 결론 ..............................................24

V . 유럽신학의 근황

1. 자유주의 삼총사의 몰락과 칼바르트의 등장 ..........27

2. 칼발트의 실각 .....................................28

3. 불트만의 붕괴 .....................................28

4. 어지러운 신학의 판도 ..............................28

5. 유럽신학의 새 주역들 ..............................29

6. 신학적 축의 변동 ..................................30

7. 유럽신학은 산간벽지 신학인가? .....................33

* 총결론 - 종말이 가까운 현대신학 ....................37

--------------------------------------------

 

I . 현대신학의 집안싸움

 

1. 서론

 

지난 10년간 개신교의 신학을 주름잡던 바의 불트만(Rodolf Bultmann)의 이론은 이제 급

속도로 쇠퇴되어 가고 있다. 금일 그의 추종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들도 그의 생각과 완

전히는 일치하지 않으며, 이런 저런 면들을 들어 그의 신학에 반항을 일으키고 있다.

불트만 신학의 쇠퇴와 몰락을 역사적 사실로서 받아 들일 때,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신학의 미래는 예수 그리스도 및 그의 계시의 역사성에 관한 특별한 강조와 더불어 불트만

사상의 나머지에 대한 신신학의 건설을 위해 경쟁하는 젊은 신학자들의 무리의 손아귀 속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당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젊은 신학자 가

운데서도 마인즈(Mainz)대학교의 판넨 베르그 교수와 튀빙겐 대학교의 몰트만(Jurgen

Moltmann)교수는 가장 흥미를 돋군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트만(R,Bultmann)에 있어서와 같

은 주관적이며 자의적 신학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리탈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미래와, 미래와 결부된 기독교인의 소망이라는 말로서 기독교 메시지에 대하여 매혹적인 재

해석을 함으로써 그들은 불트만과 결별하는 듯이 보인다. 오늘날 그들의 신학은 {소망의 신

학}(theology of hope)혹은 {역사로서의 신학}(theology as history)혹은 [그리스도 부활의

신학]이라 불리우며 신학 연구가들에 있어서 토론의 초점이 된 것이다.

 

2. 본론

1) 불트만

불트만(Rudolf Bultmann)에 의할 것 같으면 신약에 기록된 바의 기독교의 소망은 유대적

이며 헬라적인 양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소망에는 먼저 유대적인 근원이 있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바의 심판자이며구세주로서의

인자의 오심에 대한 구약적인 기대에로 소급하여 생각할 수 있다. 하늘로서 구름을 타고 재

림하실 그리스도를 말하는 바의 신약은 유대인 사상에 있어서의 [인자의 오심](Coming of

the Son of Man)과 비길 만한 것이다. 불트만에 의하면 기독교의 소망은 역시 헬라적인 사

상의 근원을 갖는다. 헬라인들은 경건한 자의 영혼은 죽은 후에 하늘로 올리워 간다고 하는

기대에 머리가 저려 있다. 이 헬라인적이며 그노시스주의적 소망의 개념은 이 현세의 완전

한 파괴와 아울러 인생들의 영혼의 편력(방황)을 광명의 세계로 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상

상하도록 한다. 이와같은 헬라적인 소망의 개념은 신약의 종말론적 메시지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불트만은 소망의 양 개념-유대적이며 헬라적인 개념-은 본질상 신화론

적이라고 지적함에 이른다.

 

불트만(R.Bultmann)에 의하면 이제 신약에 있어서의 소망의 말씀은 본질상 신화론적인 것

이다. 여기에서 현대인에게 그것(신화론적인 것)의 재해석이 가미되지 않고서는 수납될 리

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신화론적 사유(thinking) 방식은 현대인에게는 점차로 폐물화되어

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은 결정지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현대인이

수납할 수 있도록 신약의 소망의 메시지를 재해석할 수 있겠는가? 여기 불트만은 비신화

화(demythologyzierung)로서 답변한다. 그에 의할 것 같으면 신약의 신화론적 언어로서 잠

재적으로 남아 있는 바의 기독교 메시지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비신화화는 초대 기독교

인들 사이에서는 낯선 개념이 아니었다고 한다.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은 약간씩 예수의 종

말론적 말씀을 비신화화하였었다.

 

특히 그것을 영적인(speirtualize)것으로 만든 것은 요한이며 현재란 것은 예수 그리스도

에 의하여 선언되는 바의 구원의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초대교회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의 오심(Parousia)이 더디므로 그것을 령해(spiritualize)함으로써 자체 내의 비신

화화를 꾀했던 것이다. 이렇게 전제한 다음에 불트만(R.Bultmann)은 신약의 종말론을 비신

화화 함으로써 현저하게 얻은 바의 그의 자신의 기독교의 소망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

다.

 

그에 의하면, 기독교의 소망은, 기독교에 있어서 사후에서가 아니라 여기(here), 지금

(now)에 있어서 소망 중에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한다. 기독교인은 미래를 위하여 기약된 존

재이며, 동시에 현재에 결단을 내리며 책임을 수행함으로써 스스로 미래를 위한 책임을 지

는 자이다. 그는 사후의 삶에 대한 환상을 더 갖지 않으며, 미래에 진정한 실존-그것은 하

나님의 미래에 속하는-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삶을 사는 것이

다. 그러나 불트만이 말하는 미래란 것은 역사적인 미래를 말함이 아니다. 그것은 실존적으

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는 생각하기를 어떤 심오한 방식에 의해서든 미래를 현재로부터 떼

어 놓는다는 것은 언제나 오류라고 하는 것이다. 역사의 의미는 현재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사람이 현재의 책임 있는 존재란 것을 더 많이 알수록 그는 더 명백하게 역사의 의미를 알

게 된다. 사람은 현재 외에 과거와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불트만적인 감각으로 이해된 기독교의 소망은 [영원한 현재]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또한 그 소망은 인간의 과거와 미래 양자에 걸쳐 개인적인 사고방식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뜻한다.

 

이제 만약에 불트만이 말한 모든 것이 옳다고 한다면 인간의 종말론적 미래와 관련하여

우리 기독교인에게 믿고 소망할만한 무엇이 남겠느냐고 질문해도 좋을 것이다. 거의 남을

만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그 대답이다. 불트만의 기독교 소망의 실존주의적 해석은 역사

적 이해의 완전한 결핍으로 인하여 그것은 인간의 주관주의적 밀실의 독백으로 둔갑을 한

다. 불트만에 있어서 기독교의 소망은 하나님의 지상통치의 역사적 실현을 가리킴도 아니

며, 하나님께서 역사적 미래에 있어서 사람에게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심을 가리킴도 아니

다. 그것은 단순히 다음과 같은 일을 알고 있음을 뜻하는 데 불과하다. 즉, 성도는 여기,

지금(here and now) 하나님 앞에 결단을 내림으로써 그 자신의 존재안에서 죽음을 이기고

생명의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과 사람의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은혜에 스스로를 대비하는

것이다.

 

2) 판넨베르그와 몰트만

앞서 불트만(R. Bultmann)은 우리를 실망시켰다. 그가 역사의 참뜻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에 불구하고 그가 실제로 제시하는 바는 기독교 소망의 실존주의적 변형물이며, 그것은

정히 신약성서의 종말론적 메시지의 개악으로 고려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판넨베르그와 몰트만은 오늘날의 후불트만(post Bultmanian) 신학자들 중에 손꼽히며, 그

토록 장기간 거부되어 온 [역사적 예수]의 연구를 부활시킴으로써 현대신학을 위한 역사의

인식을 소생시킨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신학은 [소망의 신학](theology of hope)이라

불리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기독교신학을 신약성서의 종

말론적 입장에 서서 전폭적으로 재고하기를 제창하기 때문이다.

 

판텐베르그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소망은 원래 역사적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존재하는 것

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소망이 기대하는 바의 역사적 미래는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 안

에서 사람에게 주신 바의 약속의 성취의 결과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기독

교에 의하여 이와 같이 기대된 바의 역사적 미래는 성질상 종말론적인 것이다. 또 그의 역

사적인 신실성과 불변성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이 미래를 [실현]으로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역사적 신실성 불변성의 입증으로 종말론적

미래가 도래하는 것을 기독교인이 기대하는 것을 뜻한다.

 

판넨베르그(W. Pannenberg)가 하나님을 말할 때 미래의 능력(die Macht der Zukunft)으로

서 말하고 하나님의 진수를 미래양식(future mode)과 동등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주목

할 만한 일이다.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존재는 미래발원체(future oriented

being)이며, 만약 하나님을 배우고자 할진대 신학은 미래발원신학(future oriented

theology)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의 능력으로서의 하나님은 사람이 갖는 모든 신개념에 앞서 계시며 우월하시다. 하나

님은 이와같이 그의 미래성에 비추어서 인간의 개념구성(선험적)과 도식화(schematization)

로 부터 벗어난다. 사람은 자유이기 때문에 인격체이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미래를

소유하기 때 문에만 자유이다.

 

그의 미래관이 본질상 역사적인 것인 만큼 변증법적이라는 것이 즉시 밝혀진다. 판넨베르

그는 역사를 불가분리적 전체로 생각하여 신성한 역사와 세속적 역사로 구별하는 것을 거부

한다. 그는 역시 바르트적인 역사의 2형(two-types)적인 견해를 거부한다. 판넨베르그에 의

하면 현실 자체가 '종말로 향하여 재촉하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래는 그

끝이 신약성서가 말하는 바의 종말론적 메시지로서 나타날 역사적 미래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실망스럽게도 판넨베르그의 미래와 역사에 대한 사상은 변증법적 사상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사상에 의하면 미래는 이곳에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고, 그럼

에도 불구하고 더욱 그것은 현재 위에 그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예수님이 그 임박성을 선포한 것과 같이 아직 오지를 아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메시지 속에 이미 나타났다고 말한다.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소망은 엄격히 역사적 미래를 뚱하지 않고, 현재를 포함

한 모든 제각기의 시대에 살며 소망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그 도래가 느꺼지는 바 미래 안에

성취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우리는 결론을 내린다.

 

몰트만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소망은 신도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확신 속에서 수난 당하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미래를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소망이란 것은 신앙이 하나님에

의하여 참으로 약속된 바를 믿는 그러한 것들을 기대하는 것(expectation)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부활 신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독교인의 소망은 보편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와 관련하여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본다. 볼트만이 소망과 약속이란 말로써 강조하는 바의 수난하고 승천

하신 그리스도의 미래는 역사적 미래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자, 볼트만(J.Moltmann)에

의하면 바르트(K.Barth)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는 종말(eschaton)은 모든 시대에게 초절

적 의미를 부여하며, 또 그것은 [모든 시대를 통하여 동등하게 가깝고 동등하게 먼] 초절적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몰트만(R.Bultmann)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종말론적 계기(eschatological moment)를 논하

며 여기 지금(here and now)에 있어서의 인간의 결정과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두 사람은 초대 기독교의 종말론적 공헌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그것을 모호한 것으로 만든 초

절적 종말론의 희생자들이다.

 

성경에서 입증된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적 계시이다. 그것을 [영원한 현재의 나타나심]

(epiphany)으로서 간주한다는 것은 헬라적 사상과 탐구의 방법의 영향을 받은 결과인 것이

다. 그러나 다시금 판넨베르그(Pannenberg)의 경우와 같이 위장 역사관(pseudohistorical

viewpoint)의 존재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실망한다. 몰트만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미

래를 의미하는 바는 역사상 미래(historical future)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역사적 미

래](historic future)이다. 그것은 즉 하나님의 약속을 통하여 마주칠 수 있는 미래를 뜻하

고, 그 미래에 대한 지식은 거기에 닿을 수 없는 일시적인 것이며, 단편적인 것이며, 공개

적인 것이며, 곡해된 때문에 [소망의 지식]인 것이다.

 

몰트만(J.Moltmann)이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에서 역사의 개념은 [역사주의]와

실존주의를 능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력사주의와 실존주의를 거부한 후에 몰트만은

그의 콧김으로 날려보낸 두 선택물의 어느 틈에 자신의 자리를 정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몰

트만의 역사개념은 판넨베르그가 파악하고 있는것과 매우 흡사한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몰트만(J.Moltmann)에 의하여 기독교의 소망은 파루시아(Parousia)혹은 [그리스도의 재

림]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가버린 누군가가 실제로 돌아옴을 의

미하지 아니한다. 그것은 오히려 임박한 도래(eine bevorstehende Ankunft)나, 혹은 더 정

확히는 도래하고 있는 미래(eine ankunftige Zukunft)이다. 판넨베르그(W,Pannenberg)처럼

몰트만(Moltmann)은 그리스도의 [Parousia]를 변증법적 방식으로 파악하려고 하고 있음은

너무나 명백한 일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재림(Die Parusi Christi)은 평범한 뜻

의 역사상의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순히 미래의 역사속에 위치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고 있는 미래](anarriving future)이며 현재에 사는 인생살이를 강력

히 규제하는 것이다. 더욱이 비록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분리시킬 수는 없지만 , 그것은 현

실에 있어서 우리의 나날의 생활에서 경험하는 바와 아주 상이한 무엇이다.

 

3) 집안 싸움

판넨베르그와 몰트만(W.Pannenberg, and J.Moltmann)을 세운 [소망의 신학]은 [세속적인

신학이 죽였고 혹은 회피한 하나님에 관하여 논의를 재개시킨 그 능력]은 칭찬 받을만 하

다. 소위 신학자들이 하나님 없는 신학 혹은 적어도 하나님을 망각한 신학을 창조하기에 바

쁜 즈음에 그것이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그 후로부터 [소망의 신학]은 하나님의 죽음과 같

은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나서 [미래의 하나님]이란 용어로서 신학을 구상하는 일에 관심

을 모으게 함으로써 다소간 현대신학을 구제하는 데 성공하였다. 더욱이 실존주의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적 성격을 과소 평가한 불트만(R.Bultmann)과 그의 제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소망의 신학자들은 우리들에게 기독교의 신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 신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장사한 지 삼일 만에 무덤에서 살아나셨기 때문에 세상의 소망이라고 하는

막중한 사실을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었다.

 

이와같은 신학이 세속신학의 물결을 막도록 현대신학의 단상에 나타나지 아니 하였던들

거의 모든 현대 신학자들이 그자체로는 불가능한 바의 신이 없는 신학적 사고의 과제 앞에

무릎을 꿇고 지냈을 것이다. 이리하여 [소망의 신학]은 현대 신학자들을 시지프스와 같은

운명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아마 이런 이유로서 우리들은 판넨베르그와 몰트만

(W.Pannenberg, and J.Moltmann) 양인에게 감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뜻하는

미래의 하나님은 역사상의 하나님이 아니며, 변증법적이며, 하나님의 계시와 특히 기독교종

말론에 관해서 비성서적 처리방법을 취함으로서 불트만에 못지 않게 잘못되었다.

 

판넨베르그와 몰트만(W.Pannenberg and J.Moltmann)이 아는 것과 같은 기독교인의 소망은

성서가 가리키고 있는 역사의 마지막 날에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이라는 소망을 뜻하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의 미래에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열망하는 성도를 가

리키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도래는 변증법상으로 밖에는 달리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가리킨

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인의 소망은 부활 사건이란 과거를 가리키는 것(이것은 2천년

전에 예루살렘 성문 밖의 십자가에서 죽은[나사렛 예수]라 불리우는 분이 다시 생명으로 환

원함을 뜻한다)도 아니며, 역사의 미래에 무덤에서 일어났으며 지금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 나사렛 예수가 이 세상에 재림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기

독교인의 소망은 그들에 의하면 기독교인이 미래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지는 유망한

기대를 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미래는 시간적으로 국한시킬 수 없고, 그것은 역사를 초

월하여 존재하며 더욱이 그것은 여태까지 미지인 바의 새로운 가능성 안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뜻한다.

 

바르트(K.Barth)가 객관화의 요소를 자신의 신학에 도입한 것과 병행하여 불트만 학도들

과 그 선배들은 초대교회가 고백한 그리스도와 역사의 예수를 여러가지로 더 의미심장하게

결합하는 일에 노력하였었다. 볼트만과 소망의 신학자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바는 한갓

아늑하고 작은 집안 싸움에 불과한 것이다.

 

3. 결론

오늘날 역사가와 사회학자들이 우리들에게 지적해 주듯이, 현대인은 [실존주의 후 시대]

에 살며 또 그들은 그와 같이 오랫동안 그들의 사상을 지배하였던 실존주의적 죄의식과 불

안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들은 [내일]에 속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붙잡기 위

하여 소망중에 그들의 팔을 벌린다. 그러므로 [소망의 신학]이 어디서나 모든 사람의 상상

의 날개를 사로잡는 것은 오직 자연스러울 따름인 것이다.

 

[소망의 신학]은 제 때를 만나서 소망의 메시지를 대망하는 자들을 위하여 제 구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것은 제구실을 십분 발휘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

다. 솔직히 말해서 [소망의 신학]은 주어진 여건 위에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

세대에게 성서적 계시에 입각한 단순하며 똑바른 소망의 메시지를 제공해주는 대신에 [소망

의 신학]은 인간자율주의의 산물인 순수합리주의와 순수불합리주의와의 혼합물인 소망의 변

증법적 사상을 제공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유행과 최신식의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요즈음은 샤르땅, 블로흐, 그리

고 콜링우드(Teilhard de Chardin, Ernst Bloch and R.G.Callingwood)등 제씨의 글을 읽는

것이 신학적으로 유행이며 또 최신식이랄 수가 있다. 그러나 각 시대의 신학자들이 하나님

으로부터 받은 소명은 그들의 신학을 최신식 유행물로 만들어 사람들의 눈을 휘황하게 현혹

시키는 일이 아닌것은 명백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일하신 창조주요, 통치자요, 심

판자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진리로써 새로워지도록 하는 것이 신학자의 임무인 것이다.

우리는 소망의 신학자들이 신학자의 참다운 임무가 무엇인가를 깨닫고 용감하게 신성경해

석학 써클로 부터 탈출하며 세상의 소망으로서의 역사상의 그리스도를(성경의 사상과 부합

하지 않는 역사철학을 계속해서 가르치지 말고)사람들에게 선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판넨베르그와 몰트만(W. Pannenberg and J. Moltmann) 양인은 마침내 신약성경의 종말론을

특징짓는 역사적 사고방식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그들이 진정한 [소망의 신학]을 하는 신학

자들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다.

 

II. 성경을 해부하는 현대신학

1. 집도하는 불트만

 

불트만은 [성경을 비신화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서 오늘날 그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불트만에 의하면 성경은 비과학적 언어를 사용할 뿐 아니라 과학 이전시대의 세계

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위에는 하늘이 있는 데 하늘에는 하나님과 천

사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간들이 사는 세상 아래에는 지옥이 있는 데 사탄과 마귀들로 만

원이 되어 있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성경이 갖고 있는 삼층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

은 삼층 세계관은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수락될 수 없다고 한다.

신약성경에서 과학 이전시대의 세계관을 내버리고 비과학적 말들을 가려낸 후에 그리스도

의 복음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이 우리의 급선무라고 불트만은 말한다.

 

2. 차원 신학자들

1) 칼 바르트

 

칼.바르트(Karl Barth)가 불트만(R.Bultmann)의 신학을 하나의 철학적 이론이라고 비평했

다 불트만은 성경의 [비신화화]를 주장하지만 불트만의 신학에는 하나의 신화가 있는데 그

것은 [과학에 의하여 증명되는 사실만이 사실이라는 주장인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 불트

만의 [비신화화] 시도를 비평하는 바르트는 보수 기독교인들과 같이 성경의 무오성을 믿는

다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바르트는 [역사과학에 의하여 증명되는 사실들만이 사실

인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때 [두개의 차원]을 분리시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참역사(Geschichte)이며 역사(Historie)가 아니라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의 직접적 성격을 부인한다. 하나님의 계시는 역사의 차원속에 있는 어

떤 것과도 동일시 될수 없다. 역사의 차원 속에 있는 것들은 모두가 잘못과 모순을 지니고

있다. 기독교 성경도 역시 역사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함으로 성경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완

전한 계시를 찾아 볼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여러가지 잘못과 모순을 내포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성경의 책들 속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

으셨다.

성경을 해부대 위에 놓고 과학의 칼로 성경을 해부하고 있는 불트만을 바르트는 그의 차

원신학을 통해서 후원하고 있는 것이된다.

 

2) 부른너

 

바르트와 함께 신정통주의 신학의 지주로 알려진 부른너는 근본주의자들은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은 성경의 문자들을 신격화한다고 주장한다.

 

3) 틸리히

 

틸리히는 또 한편 역사과학에 의한 성경비평이 기독교인의 믿음에 영향을 줄 수는 없다는

말을 함으로써 바르트와 부른너와 같이 성경의 역사적 비평을 환영했다. 그는 [인간 예수]

와 [새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분리시켜 전자를 역사적 조사의 대상으로 삼고 후자를 기독

교인의 믿음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바르트와 부룬너와 같이 차원 신학을 말하는 신학

자라고 볼 수 있으며, 바르트와 부른너(K.Barth and E.Brunner)와 같이 그의 차원신학을 통

하여 불트만(R.Bultmann)의 [비신화화]시도를 후원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3. 성경과 두개의 차원개념

성경의 유오성과 불완전성을 지지하는 이론적 근거로서 그들의 [두 개의 차원]의 개념을

제시한다.

 

바르트(K.Barth)가 그의 [교회 교의학]에서 말하는 참역사(Geschichte)와 역사(Historie)

의 구별이나, 부른너(E.Brunner)가 말하는 [나와 그것]의 차원 [나와 너]의 차원 구별은 그

들의 성경관 뿐 아니라 신학 전체를 지배하는 [두 개의 차원]의 개념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연합장로교회의 1967년도 신앙고백문을 작성하기 위한 특별위원회의

일원인 헨드리(G.S.Hendry)박사는 그의 저서 {오늘을 위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for Today)에서 그의 성경관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

식은 지리학적 지식이나 수학적 지식과 다르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계속 해서 말하기를 [성경의 영감은 하나의 이론이나 학설이 아니다. 이는 신앙인 것이다.

신앙은 학설을 그 기초로 삼을 수 없다. 신앙은 어디까지나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

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바르트와 부른너의 차원신학을 따르는 헨드리 박사는 물질의 세계,

자연과학의 세계를 [나와 그것]의 차원 속에 두고 인간이 자유하는 세계, 인격적 세계를

[나와 너]의 차원 속에 둔다. 그런데 헨드리 박사에 의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그리스

도 안에서의 인격적인 만남인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학리적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

고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만 발생하는 실천적 지식을 가르쳐 준다.

 

반틸(C.Van Til)은 헨드리의 성경관은 역사적인 기독교 성경관과 상치되는 칸트(I.Kant)

의 이원론적 철학에 입각한 주관적이며 실존 주의적인 성경관이라고 평하고 있다. 반틸의

이와 같은 비평은 헨드리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결국 현대 차원신학 전반에 해당하는 비평이

기도 하다.

 

우리는 [두개의 차원]의 개념이 성경에서 오지 않고 칸트의 철학에서 왔기 때문에 잘못이

라고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칸트의 철학에서 온 [두개의 차원]의 개념을 토대로 하고 그

위에 성경관을 세움은 더 큰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진리

에 관한 마지막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만물을 판단할때 우리의 판단의 유

일한 표준이 되어야 한다.

II. 정통신학을 위협하는 삼대 신신학과 총신인의 결의

 

20세기에 전개된 현대신학의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도전을 우리는 3신주의(3Ns)의 도전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신주의라 함은 신프로테스탄트주의(Neo Protestantism)와 신

정통주의(Neo Orthodoxy),그리고 신복음주의(Neo Evangelicalism)를 두고 하는 말이다.

20세기가 시작할 무렵 슐라이어막허와 릿출의 신학의 잔광을 받아 헤르만과 하르낙 그리

고 미국의 워터 라우센부쉬와 같은 신학자들이 소위 [신프로테스탄트주의]라는 새 신학을

형성하고서 복음주의 기독교의 성경적으로 바른 교리와 신앙에 도전 했었다. 그후 1919년

스위스 산골의 한 청년 목사 칼 바르트가 [로마서 강해]를 집필함으로써 점화된 소위 [신정

통주의]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전세계로 번져가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의 교리와 신앙을 송

두리채흔들어 놓는 위력을 과시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기에 접어 들면서부터 신정통주의 신학운동의 여력을 빌려 복음주의

적 교리와 신앙에 투철치 못한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 중에서 신복음주의(Neo

Evangelicalism)라는 새로운 신학운동이 일어나게 됐으니,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있는 풀러

신학교가 이 운동의 진원지 였었다. 이 신복음주의 운동은 복음주의를 과장하면서 역사적

기독교의 성경적 신앙을 타협하는 대가로서 범세계적인 선교와 교회연합을 성취코자 하는

동기를 가진 운동이다.

 

20세기 초에 형성된 소위 [신프로테스탄트주의]신학을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신앙을 포

기하고 에라스므스의 인본주의적 신앙으로서의 환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기독교로부터 모

든 초자연성을 제거하고 윤리의 차원으로 기독교를 격하시키는 신학운동이었다.

 

칼 바르트가 일으킨 신정통주의 신학 운동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Back to God), "성경

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신프로테스탄트주의 신학]의 자

연주의적 집착을 통박했다는 점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미련을 다분히 지닌 신학운동

이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을 회의하고 기독교 교리와 신앙의 역사

적 진리성을 부인하는 등의 사실을 보아 그것은 복음주의 기독교가 진리로 믿고 아는 바에

대한 매우 심각한 도전이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신정통주의 신학이 꽤 오랜 세월동안 그토록 기독교 지성을 매혹시키고 현대신학계를

석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유주의 신학의 질주에 제동을 거는 한편 복음주의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성격을 고발함으로써 신학적 우파와 좌파에게 아울러 호감을 샀다는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신정통주의는 초자연적 기독교도 만족시키고 현대지성의 과학주의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적 신학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20세기인의 신학]으로서 참으로 나무랄데가

없는 만점에 가까운 신학으로 오랜 동안 크게 각광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신정통주의의 정체를 알고 보면 우리는 그것이 결코 초자연적 기독교가 아니며 오

히려 현대지성의 무신론적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초자연적 기독교의 타협을 의미하는 "위장

보수주의 신학"이라는 사실에 동의치 아니하지 못할 것이다.

 

20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신정통주의 신학의 쇠퇴와 때를 같이 해서 복음주의 기독교

에 대한 막강한 도전으로서 등장한 [신복음주의]란 어떤 것인가? 이 [신복음주의]라는 새로

운 신학운동은 복음주의 기독교 자체 내에서 일어난 운동이라는 사실을 그 특징으로 하고있

다. 즉 신복음주의는 복음주의 기독교내의 [반란적 사건]인 것이다.

 

이 신학운동은 하롤드 아켕가, 에드워드 카넬, 버나드 램, 칼 헨리, 빌리 그래함 등 소위

[풀러그룹]이라고 일컫는, 복음주의사상에 투철성이 결여된 일련의 복음주의 신학자들과 교

회지도자들이 일으킨 운동으로서 범세계적인 선교사업과 교회연합운동의 전개를 위해서 복

음주의 기독교의 문호를 에큐메니칼 자유주의 기독교에 대해서 개방하자는 운동, 그러니까

에큐메니칼 기독교에 대한 [문호개방 운동]인 것이다. 오늘날 신복음주의자들은 성경 영감

교리에 대한 양보와 창세기 1장의 기독교 진화론적 해석 그리고 알미니안주의와 과학주의,

세속주의등의 포용을 일삼으면서 세계선교와 교회연합을 지상의 과제로 부르짖고 있다.

 

그레샴 메이천(J.Gresham Machen)박사는 일찌기 말하기를 자유주의 기독교는 불신 지성과

대화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포기했기 때문에 기독교가 아니라고 했다. 즉, 신복음주의는 에

큐메니칼 기독교와 대화하기 위해서 복음주의를 포기하자는 운동인 것이다. 신프로테스탄트

주의 운동 신정통주의에 비해서 신복음주의는 그 성격이 보수적이고 온건하기 때문에 복음

주의 기독교에 대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복음주의 기독교내에 존재하는 방법론적 견해 차이

를 의미할 뿐이라고 하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우리 한국 교회는 100년이 채 안되는 그 짧은 성장사의 과정 속에서 현대신학의 3신주의

적 도전을 자체로 받아 왔다.

 

한국 교회사의 초기에는 감리교회가 설립한 협성신학교가 신프로테스탄주의신학의 아지트

가 되어 한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해 도전했고, 그후 일제 말기에 서울 승동교회당 하층

에서 시작한 조선신학교는 재빨리 해외에 가서 바르트신학을 배우고 돌아온 김재준 교수의

신학적 리더쉽 하에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에 대한 신정통주의적 도전의 기수가 되었다. 그

러나 1902년에 평양에서 조선 예수교장로회가 설립한 장로회신학교는 초대 미국선교사 교수

들의 복음주의적 신앙입장과 특히 박형룡 목사의 강한 메이천주의적 리더쉽의 덕분으로 협

성신학교의 신프로테스탄트 주의를 누르고 조선신학교와 김재준 목사의 신정통주의적 도전

을 일단 물리치는 일에 성공했던 것이다.

 

그러나 해방후 한국에서 신프로테스탄트주의 신학은 그 기세가 크게 꺾인감이 있었지만,

서울에서의 조선신학교의 재개강과 그후 동교의 한국신학대학으로의 발전 그리고 김재준 교

수의 좌절모르는 신정통주의를 위한 선전책략 등은 한국에 신정통주의 신학을 널리 보급하

는 일에 성공했고, 기어코 1951년의 기독교장로회 교단의 창설과 1959년의 예수교장로회 통

합측 교단의 발족을 촉발하고야 말았다.

 

현금 우리 교회와 우리 모교의 [신복음주의화]를 미연에 방지하고 신복음주의 거부운동에

힘을 모아야 할 또 하나의 역사적 순간에 다달았음을 의식해야 할 것이다.

에큐매니칼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용공 기독교이며, 신복음주의는 그와 같은 에큐메니칼

기독교와의 대화와 접근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크다고 인식하고 에큐메니

칼 기독교와 그것을 두둔하는 신복음주의를 강력히 거부하는 메이천주의적 노선을 구축함으

로써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특히 대한민국에 있어서 우리 총신인들이 진정한 반공신학의 확

립을 통한 승공적 전열에 참여가 가능한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하는 바이다.

IV. 미국신학의 근황

1. 서론 - 원래 미국신학은 [한국선교의 신학]이었다.

 

오늘날에 와서 미국 개신교신학은 한국 선교 당시에 가졌던 보수주의적 사상성과 신앙자

세를 완전히 팽개쳐 버리고 [사신신학], [세속화신학], [정치신학], [해방의 신학]등 일련

의 급진적 신학 사상으로 대표되는 신학적 전위성을 추구하면서 불교와 같은 동양종교와 사

상적 귀납점을 모색하는가 하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서는 화해와 일치를 부르짓는 등

무신론적이며 탈 기독교적이고 범종교적이며 초이데올로기적 에큐메니칼주의를 부르짖고 있

으니 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렵고 한마디로 어처구니 없는 사실로 우리 모두가 개탄해 마지

않을 일이겠는가

 

2. 구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과 자유주의의 팽배

[구 프린스톤 신학]은 우리가 아는대로 미국 북장로교회의 직영 신학교였던 프린스톤 신

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가 19세기 초에 창설될 때로부터 시작하여 1929년 자

유주의 신학사상의 침투로 말미암아 동 신학교의 교수진이 완전히 자유주의 화하던 운영의

해인 1929년까지 동 신학교 교수들이 주축이 되어 연구하고 이끌어 온 바 [청교도적 개혁주

의 정통신학]또는 일명 [북장로교 신학]을 의미한다.

 

[구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의 시기는 그레샴메이천 박사가 프린스톤 신학교를 사임하고

나오던 해, 즉 1929년으로 메이천 박사와 그의 동지들이 인근도시 필라델피아에 모여서 [구

프린스톤 신학]의 계속을 목적으로 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를 세웠고 거기서 메이천 박사의 제자들과 후배들이 현금에 이르기까지 보수주의

신학을 가르치며 발전시켜 나오고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메이천 박사가 프린스톤 신학교로부터 나온 후 [구 프린스톤 신학]은 미국 교회내

에서 100여년간 장악했던 신학적 리더쉽을 놓쳐 버리게 됐을뿐 아니라 1937년에 메이천 박

사가 사망하므로 그 마지막 대변인을 잃어버리게 된 결과 미국교회에 대해서 노도와 같이

밀려 닥치는 자유주의 신학사상 앞에서 완전 고립되었으며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지금에

와서는 미국신학계에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구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구 프린스톤 신학]의 역사적 계속으로 자처하고 있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

교와 훼이스 신학교 및 카버난트 신학교(Covenant Theological Seminary)등에서 교수되고

있는 보수주의 신학은 너무나도 현 미국 개신교 신학계로부터 소외된 "다수의 횡포에 눈물

을 삼키며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낙후적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몰락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19세기말에 독일 신학계를 대표

했다고 볼수 있는 릿출(Albert Ritschl), 하르낙(A Harnack), 헤르만(J.W.Hermann)과 같은

신학자들의 윤리주의적 신학사상이 미국 내에서 다수의 유력한 추종자들을 얻어

[구 프린스톤 신학]에 의해서 대표되어 오던 [미국 보수주의 신학]에 대해서 일제히 총 공격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미국 교회 내에서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을 가져오게 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단일 요인으로서 사회복음신학자 워터 라운센부쉬(Walter Rauschenbusch, 1861-1918)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 을 수가 없다.

 

라우센부쉬의 신학은 하나님의 나라와 인간사회를 거의 동일시하는 사회지향적 신학이었

으며 성경의 권위보다 인간의 [사회적 진화]의 능력을 믿는 인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신학이

었기 때문에 라우센부쉬가 그 당시 확고한 보수주의적 노선을 걷던 프린스톤 신학에 대해서

크나큰 도전이 아닐 수 없었으며 라우센 부쉬와 그의 사회복음신학의 미국내에서 급속한 세

력확장은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박사가 그래도 그레샴 메이천

박사를 계승해서 [미국보수주의 신학]의 기수격이 되어서 현대 미국 자유신학에 대하여, 특

히 미국교회내에서 팽창일로에 있었던 [신정통주의 신학](Neo-Orthodox Theology)이라고 불

리우는 칼 바르트의 신학에 대하여 맹렬한 투쟁을 벌인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는 없다.

 

1919년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 출판된 후로 10년도 되기전에 소위[신정통주의 신학]

이 미국에 상륙했고 미국교회 안에서와 신학자들 사이에서 요원의 불처럼 번져가기 시작하

여 1940년대와 1950년대 초반기까지 현대 미국신학계를 완전히 석권했던 것이다. 195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을 맹종했던 미국 개신교 신학자들

이 또 다른 독일의 실존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사상에 매혹되어 사족을 못 쓰는

가하면, 그 중에서 일부 신학자들은 폴 틸리히(PaulTillich)의 [철학적 신학]에 심취, 그

의 제자들이 되므로 [불트만, 틸리히 시대]가 왔었다고 볼 수 있겠다. 1960년 경부터 미국

신학계에는 구주 신학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소위 [후기 불트만 시대]가 도래 했으며 폴 틸리

히의 [철학적 신학]은 1960년 중반기까지 그 인기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어떤 급진적으로

새로운 신학의 출현을 위한 서막"과 같다는 인상을 짙게 풍겼던 것이다.

 

3. 거물신학자시대 - 바르트, 불트만 틸리히시대

1920년대로부터 1940년대가 끝나기까지의 약 30년동안을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이

현대 신학계를 지배했고, 특히 미국에서는 칼 바르트가 신학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인기높

은 신학자로 군림했던 것이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칼 바르트는 독일의 또 다른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의 소위 [실존주의 신학](existentialist theoiogy)이라는

새로운 신학사상 앞에서 고전하다가 완전히 궁지에 몰려 그 패색이 짙어가기만 했다.

 

4. 사신신학시대 - 미국신학의 소아병적 발작

사신신학시대는 1963년부터 시작해서 5,6년간의 전성기를 누리고 1970년대에 들어가지 못

한 채 갑작스럽게 그 막이 내렸다고 할 수 있겠다.

 

5. 미국신학의 새로운 문제아들

[사신신학자 시대]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막을 내린 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대 미국신

학계에는 [정치신학],[디오니소스 신학],[흑인신학]등 새로운 신학적 문제아들이 속속 등장

하게 되었다.

6. 결론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선교의 신학]이었던 [미국신학]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급진적

으로 좌경해서 오늘날에 이르는 과정을 살펴봤다. 우리는 현대 미국신학의 변천을 4기로 나

누어서 살펴봤다. 제일 먼저는 그레샴 메이천 박사(Dr.J.Gresham Machen)가 이끌던 [프린스

톤 신학]이 1920년대에 몰락하고 자유주의가 팽배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는 라우센부쉬등의

[사회복음신학]이 기승을 부려[미국 정통신학]이 수난당하는 울분과 후퇴의 시대였다.

 

다음으로 현대 미국신학의 제2기를 살펴봤다. 이 시기는 미국에서 정통신학을 고립시켜

놓고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와 불트만의 실존주의 및 폴 틸리히의 철학적 신학이 판을 치

던 {거물신학자 시대}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시기는 "자유주의가 거보를 내딛는 시

대"이기도 했다.

 

셋째로, 우리는 1960년대 초에 돌연 그 막을 올렸다가 10년도 못가서 막을 내려버린 [사

신신학자 시대]를 살펴봤다. 이 시기는 로빈슨, 올타이저, 반 뷰렌등이 나타나서 "누가 더

사신적이냐?"를 겨루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현대 미국신학이 "사신병"을 앓는 처참한 시기

였다. 그러나 이 "사신병"을 앓는 시기는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사신병"이라는 것은 [신학

의 사망]을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끝으로, 우리는 1960년대 말로부터 사신신학 쇠퇴로 인한 신학적 공백을 메우기나 하려는

듯이 [정치신학], [디오니소스 신학], [흑인 신학]등 새로운 신학적 문제아들이 등장하는

이른바[신학적 문제아시대](An Age of having forgotten of God in the midst of American

cultural creativity)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세 신학 즉 [정치신학], [디

오니소스 신학], [흑인신학]을 각기 [칼 마르크스와 손잡자 신학]("Let's hold hands with

Karl Marx" Theology)과 [히피와 도시 게릴라의 신학](Theology of hippies and city

guerillas)과 [흑인이 제일이다](The "Black people are the chosen people" Theology)로

알기 쉽게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결론을 말하면

금세기 초에 미국에서 "프린스톤 신학의 몰락"을 계기로 팽창하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

은 [거물신학자 시대]에서 거보를 내딛어 그 "좌경성"을 확고히 했고, [사신신학자 시대]에

와서는 그 급진성이 폭로되었고, [새로운 신학적 문제아 시대]에 와서는 그 [동화] 또는

[수필문화]과 같은 허구성이 증명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대 미국신학사상의

흐름과 변천을 살펴보면서 현대 미국신학이 막다른 골목에 와 있다는 절망감을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다. 앞서 말한바 있거니와 [현대 미국신학]은 헤어날 수 없는 미로에 빠져 들어

가는 듯하며 "캄캄한 심연을 내려다 보는 벼랑을 서 있는듯"하다.

 

이와같은 절망감과 이와 같은 위기의식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 미국신학의 전망"은 어둡

고 비판적인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지금까지 위기에서 위기로 치달려 왔고 앞으로의 전망

이 어둡기만한 [현대 미국신학]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미국신학]은 한국교회를 선교해서 설립한[한국선교의 신학]이었건만 지금은 오

히려 한국선교 당시에 가졌던 "순수한 보수주의 정통신학"을 상실하고 오늘의 신학적 위기

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의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로다"(고전 9:27)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 한국교회도 교훈으로 받아야할 것

이다.

 

둘째로, 미국 신학이 금세기 초에 윌필드와 메이천을 마다하고 [신정통주의]와 타협했던

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은 [급진적 좌경]을 낳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것

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떠나서 인간의 사고와

이론이 만들어 내는 모든 [신신학]과 [철학적 신학]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고 추호의 양

보나 타협도 허용해서는 안될 줄로 확신한다(마5:37, 약2:10).

 

셋째로, [현대 미국 신학]이 미국교회의 평신도들의 신앙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상아탑

속에서의 [이론신학]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사신의 비극"과 "탈기독교와 친

마르크스주의의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신앙과

신학 사이에 어떤 갭(gap)을 두어서는 안되겠다. 우리 한국교회는 "신앙하는 신학"과 "신학

하는 신앙"을 아울러 강조하면서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속에서 신학

자와 평신도들이 혼연 일체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요3:18, 엡4:13).

 

그렇게 할때 우리 한국교회는 "미국 신학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의 제방으로서 든든히 설 수가 있을 것이고, 한걸음 나아가서는 [한국선교의 교회]였던 미

국교회에 대해서 [복음주의 정통신학]을 역수출하는 새로운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V . 유럽신학의 근황

1. 자유주의 삼총사의 몰락과 칼바르트의 등장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유럽신학은 리츨과 하르낙 헤르만 등 자유주의 신학의 삼총사의 지

배하에 놓여 있었다. 이들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는 쉴라이에르 마허였다. 이들의 신학은 한

마디로 륜리주의 신학(ethical theology)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윤리주의 신학의 특

징은 예수 그리스도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인류의 도덕적 선생으로 생각

했으며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만 인류를 위한 [위대한 도덕 교과서]

로 여기면서 진리의 척도로서의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경험을 내세우는 데 있었다.

 

칼 바르트는 1919년 그의 저서 {로마서 강해}를 통해 고전적 자유주의를 공격하고 이 저

서를 통해 유럽의 신학계는 새로운 물결이 밀려 왔던 것이다.

 

2. 칼바르트의 실각

1920년대로부터 50년대까지 유럽 신학계에서 바르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럽의 대표

적 신학자로 인정받고 알려지게 되었고 영미 신학계와 심지어 피 선교지 신학에 까지 깊이

파고 들어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신학은 신정통주의라는 이름의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와 입장을 같이 하는 신학자 에밀 부룬너와 신학적 동반자로서 노고를 나누기도 하였다.

칼 바르트의 신학은 금세기 중엽에 이르러서 루돌프 불트만의 {말씀과 신화}가 1948년 출

간됨으로 실각하게 되었다.

 

3. 불트만의 붕괴

불트만은 그의 저서 말씀과 신화의 출판을 계기로 갑작스러운 신학적 인기의 상승을 누리

면서 바르트의 과학적 세계관과 실존주의 철학을 무시하는 듯한 시대와 뒤떨어진 {교회 교

의학}을 그의 [양식비평학]과 [실존주의 신학]으로 제압해 버렸다. 그러나 그도 역시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비판을 받게 되었다.

 

4. 어지러운 신학의 판도

불트만의 신학이 붕괴함으로써 유럽신학계는 큰 혼란이 일어났다. 불트만 후의 신학자들

은 [후기 불트만 신학자]들과 반 불트만 신학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보수파 신학자들]과

[구원사학파 신학자들]과 [판넨베르그 몰트만파 신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후기 불트만파 중에는 괴팅겐의 한스 콘젤만과 하이델베르그의 에리히 딩켈, 훅스, 에벨

링, 케제만, 큠멜 등이 있다.

반 불트만파에 속하는 학자들은 보수파로 괴팅겐 대학의 예레미야스, 마인즈의 스타린,

함베르크, 고펠트, 엘랑겐의 프리드리히 등 이고, 구원사학파 신학자들은 바젤의 오스카 쿨

만, 말베르그의 큠멜, 베르린의 로제 등이 있다.

또한 판넨베르그 몰트만파가 있는데 이들은 마인즈의 판넨베르그, 튀빙겐의 몰트만이 그

대표적 신학자들이다.

이 세 부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신학자는 함버르그의 틸리케가 있다.

 

5. 유럽신학의 새 주역들

몰트만과 판넨베르그, 에벨링, 옷트는 새롭게 유럽신학계에 등장한 새로운 주역들이다.

몰트만과 판넨베르그는 앞서 살펴 보았다.

게르하르트 에벨링은 불트만으로 부터 실존주의 해석을 배워가지고 그것을 새 해석학이라

고 일컷는 국면으로 이끌어간 신학자이다.

 

하인리히 옷토는 칼 바르트의 제자이면서도 칼 바르트와 루돌프 불트만의 중간에 위치하

여 두 신학자들 사이의 신학적 조화를 모색하는 중재적 신학자이다. 옷트는 후기 하이덱거

사상에서 바르트와 불트만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발견한다.

 

6. 신학적 축의 변동

칼 바르트가 실각하고 루돌프 불트만이 무너져버린 뒤의 유럽신학계는 후기 불트만파와

구원사학파와 중간 보수파로 불리우는 신진 신학자들의 난립으로 신학적인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하는 [혼란기]를 맞이하였으나 1970년이 지나자 서서히 혼란기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

작하면서 유럽신학을 이끌어나갈 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환언하여, 그동안 거성신학자들의 사망에 뒤따르는 많은 소장급의 신학자들의 신학적인 불협화음으로

빚어진 유럽신학의 어지러운 파도가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로 돌입하면서 몇몇 사상적인

독창성과 추진력을 가진 신학자들로 말미암아 질서와 안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즉 이 몇몇 신학자란 앞에서 지적하고 거론한 바있는 판넨베르그, 몰트만, 에벨링, 옷트와

같은 신학자들이다.

 

그리고 한가지 부기해야 할 것은 이들 신학자외에 1980년대에 그 신학

적 리더쉽과 영향력을 크게 기대해볼 만한 신학자로서 헬무트 골비쳐(Helmut

Gollwiter;1908-)와 에벨하르트 용겔(Eberhard Jungel)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골비쳐는

성경과 기독교를 한 두가지 진리로 축소시키려고 하는 [축소주의 신학자들](실존주의 해석

학파와 구원학파 등)을 비판하면서 성경적인 하나님 사사잉 보존되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

다. 또 용겔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존재로서의 삶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더욱 동

력적이며 활동주의적 사고를 하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골비쳐와 용겔은 둘 다 칼 바르트의 감화를 받았다고 봄이 타당하다. 다만 용겔은 칼 바

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은 인간들이 가지는 진정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들 속에 남 몰래 존재

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일종의 [자연신학]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의 신학적으로 특이한 점

이다. 그리고 특히 용겔은 현재 튜빙겐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많은 신학도들의 인기를 독차

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판넨베르그와 몰트만과 같은 선배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유럽신학을

리드할 수 있는 유망주로 평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유럽신학은 지금 어디까지 와있는가? 20세기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바르트와 부

룬너, 불트만과 같은 거성 신학자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부터 유럽신학계에서는 사

상적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켜서 저자는 맥퀘리

교수(Dr.John Macquarrie)와 함께 [사상적인 축의 변동]이라고 부르고 싶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어서 유럽의 사상계를 지배한 것은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었다.

 

그러 나 이와같은 신의 사망을 전제로 하는 인간의 정신적인 고뇌와 자아와 세계를 초극하고자하

는, 실존성의 추구를 강조하는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이 1970년대로부터 서서히 헤겔

-마르크스-불로흐 노선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르스트 불로

흐(Ernst Bloch, 1885-1977)의 대작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1954-1977)이 유

럽사상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특히 1970년에는 헤겔의 탄

생 이백 주년을 맞이하여 대대적인 학계의 행사와 더불어 헤겔주의의 회춘이 있었기 때문이

라고 볼 수도 있다.

 

전시대의 유럽사상계를 지배하던 [키엘케골-니체-하이덱거 노선]의 신학자들이 세계 제 2

차 대전 이후의 유럽의 평화와 경제적 번영에 힘입어 내면적인 사색의 세계로 몰입하여 [주

관의 우물]을 너무 깊이 파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말부터 유럽의 인민들은 서구 민주주

의에 대하여 비록 그것이 그 둘에게 미증유의 {경제적 번영]와 [사회발전]을 가져 왔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일변도적인 변증을 수정하고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호기심

에찬 접근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유럽사람들의 사고의 보편적인 변화에 자극되어 유럽의 학계는 [주관의 우물]

을 너무 깊이 파면서 20세기 후반기의 급변하는 유럽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

실에 대한 감각을 상실해 버리고 [구 사상 노선]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유럽학계의 [사상적 진자]는 실존주의에서

신마르크스주의(neo-Marxism)로 하이덱거의 사색으로 부터 불로흐의 행동성으로, 주관적 사

색의 우물을 파는 일로부터 정치참여를 통한 사상의 가두 시위로 크게 흔들리며 이동해가고

있다.

 

따라서 유럽의 신학계 역시 이러한 유럽학계와 문화계의 동향에 민감한 영향을 받아서 소

위 [사상적 축의 변동]을 자체 내에 초래케 되었으니 [바르트-불트만-본훼퍼 축]이 [판넨베

르그-몰트만-에벨랑-옷트 축]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다. 특히,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소위 [신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는 사상적 비중이

다. [신마르크스주의]는 칼 마르크스로부터의 영향은 시인하나 정치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와는 간격을 유지하면서 미래학적인 인생관과 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자본주의 사회든지 공

산주의 사회를 불문하고)과 인간의 사회적 본성과 능력, 그리고 혁명적 사회개조의 필요성

등을 강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삼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유럽신학계에서 일기

시작한 기독교와 공산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의 "대화와 일치의 운동"은 현금 1980년에 와

서도 꾸준히 계속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럽신학의 축의 변동에 기인한 것이며, 1980년대를

걸머지고 나아가는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에게 신마르크스주의가 사상적으로크게 작용하

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기도 한 것이다.

 

앞으로 유럽신학의 새로운 주역들이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과다한 [미래학적 의식구조]와

[종말론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혁명적 행동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과하는 [기독교 신학]의

"마르크스주의화"를 어떻게 미연에 방지하면서 그들이 말하는대로 [무신론이 그 인생관이

되어버린 오늘의 서구사회]속에서 그나마 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큰 문제거리

가 아닐 수 없다.

 

7. 유럽신학은 산간벽지 신학인가?

[유럽신학은 어디까지 왔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하이덱거와 불트만으로부터 떠나서 지

금은 신마르크스주의에 와 있다. 또는 접근하고 있다]고 우리는 대답을 해야겠다는 것이 지

금까지 본 논문에서 진술한 바 내용의 결론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급진주의적으로 흐르고 있는 현금의 유럽신학계에는 성경 66권을 하나님

의 영감으로 기록된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는 보수신앙과 그것에 입각한 보수주의 신학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지 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지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에

게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절망에 가까운 것]이라

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유럽에서 복음주의적이며, 보수주의적이라고 하는 신학자

들의 모두가 성경에 대한 비평학적 연구를 찬동하고 있으며 특히 어떤 인사의 말과 같이 그

들의 혈관 속에 칼 바르트(Karl Bart)가 주사바늘로 주입한 변증법적 사상 요소들이 계속

순환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구원사학파에 속한 신학자들이 가장 보수적인

것으로 생각되나 그들도 [역사적 비평학]을 수용하고 있으며 마르틴 카렐(Martin Kahler)과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ke)등 서독 신학자들 중에서 경건주의 경향을 보이는 신학자들

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유럽에 아직도 [보수신앙]이 존재하고 보수주의 신학의 잔재가 있다면 그것은 [성서

학교](Bible missions school)운동을 통하여 유럽에 생겨난 성경학교와 선교학원들 가운데

서 미약하나마 보존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학교들이 세워질 때 미국 교회의

세대주의 영향을 적지않게 받는 경우도 있고, 또 부흥사 빌리 그레함(Billy Geaham)의 대부

흥집회의 결과로서 전도와 선교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이 유럽의 Biebelmissionsschule 운동의 결과로서 존재하는 성경학교와 선교학원

들이 유럽교회를 위하여 열심있는 목회자를 양성하고 헌신적인 기독교 교육자와 해외로 갈

선교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것은 치하하여 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들 학교에서 교수들이

가르치는 신학의 수준은 높은 편이 못되며, 따라서 현금의 유럽신학계에서 진행중인 신학적

토론과 논쟁 그리고 연구모임에서 전혀 소외당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유럽신학, 특히 현금의 [서독신학]은 폐쇄된 [저명 인사들의 회합] 같아서 매우

국제성을 상실한 "산골신학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는 것도 아울러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사

실이다. 이것은 사실은 오늘날의 [서독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그들의 발언에 대하여

별로 흥미없는 일로 묵살해 버린다는 것과 똑 같은 자유주의적이며 진보주의적인 사상을 가

진 신학자들이라고 할지라도 독일인이 아닌 외국인일 경우에 신학적으로 [무미하다]고 하여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는 것 등에서 나타나며 증명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외국신학자들이

지만 라인흘드 니버나 폴 틸리히와 같은 독일 이름을 가진 신학자들에 대하여서는 관심을

보인다고 하는 "재미있는 면"도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신학이 언제까지나 그와 같은 [신학적 폐쇄성]을 즐기며 저명인사들의 모임으

로 유지되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크나큰 의문을 가져야 할 줄로 안다. 첫째로 유

럽신학이 보수주의 신학자들을 경시한다는 것은 곧[기독교 신학]의 역사적 전통을 소홀히

여긴다는 뜻이 되므로,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이 없는, 인기와 여론에 편승하여 조석으로 변

하는 [유럽신학]으로 화해가고 있다는 데 대한 좋은 원인 설명이 된다고 본다. 둘째로 유럽

신학이 유럽인과 독일인 외의 신학자들에게 그들의 [신학적 회합]에 참여할 수 있는 회원으

로서의 자격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공간적으로 너무 협소한 신학, 그러니까 정말로 국제

성이 없는 "산골신학"을 운영하고 있다는 비평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오늘날 세계는 일찌기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이 [신약성경의 비신화화]와 관련하여 말한 바

대로 과학의 발달과 교통방편의 혁신으로 말미암아 [일일 생활권]에 살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신학자들은 신학을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적 공간]에서 펼쳐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지상에서 서독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유럽이 세계의 전부도 아닐 것이

다.

 

유럽의 신학자들은 오늘날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적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는 타국

과 타대륙의 신학과 신학자들과 사귐을 가지면서 빈번한 정보교환과 신학적 토론 및 공동적

학문 연구의 기회들을 마련하는 일을 힘씀으로써만 과거와 같이 [유럽신학]의 우위성을 계

속 세계적으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를 도외시함으로 기독교신학

의 역사적 전통을 상실하여 유럽신학이 [뿌리없는 나무]와 같이 되었다고 한다면 유럽 외의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자들을 업신여김으로써 유럽신학은 [공간적 연속성]을 상실하여 협소

한 지역사회의 신학, "산골 신학"으로 떨어져 버릴 날도 멀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미국에서는 제임스 로버츠(James D.Roberts;1927-)와 제임콘(James H.Cone;1938-)

과 같은 흑인신학자들이 나타나, [흑인 신학]이라는 것을 만들고 있고, 남아메리카 대륙에

서는 [해방신학](Theology of Liberation)이 한창이다. {인간적 희망의 신학}을 써낸 브라

질의 신학자 루벰 알베스(Rubem Alves; 1933-)는 "세계를 해석하는 일로 끊나는 신학"은 더

이상 필요가 없고 "세계의 혁명사적 과정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는 신학"을 하자고 절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시선을 아시아로 돌릴 경우에, 일본의 신학자 기다모리 가즈오가

우리가 {하나님의 고통의 신학}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영어로 번역되어(1951년) 널리 국제

적으로 읽히기까지 하였고, 또한 몇년전에 선교 백주년을 경축하게 된 피선교국교회인 한국

교회에서도 신학적 성숙도를 보여 윤성범 교수의 {한국적 신학}(1972년)이 한국 사상의 특

징을 담고서 나왔으며 보수주의측에서는 한국교회의 경건한 신앙을 소재로하는 저자의 {새

벽기도의 신학}(1974년)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와같은 타국, 타대륙의 신학자들과 신학의 동향에 대하여 현금의 유럽신학자들이 얼마

나 알고 있는가가 의심스럽다. 결론은 이것이다. 만일 [유럽신학]이 1980년대에도 1960년대

와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학]의 전통성을 무시하고 시간과 역사의 연속성이 없

는 신학을 한다면, 그리고 타국과 타대륙의 신학과 신학자들을 세계라고 하는 [일일 생활권

적 공간]속에서 공존하는 신학의 동료들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교육과 계몽적 지도의 대

상인양 착각하는 공간적 연속성이 없는 [산간벽지 신학]을 계속하여 한다면 그것은[유럽신

학] 자체를 위하여 매우 불행스러운 일일 것이라는 것이다.

 

[유럽신학]은 협소한 공간에 존

재하는 [역사와 시간의 뿌리]가 없는 나무 같아서 곧 고갈하며 몰락할 위험성이 커지기 때

문이다. 그리고 우리로서는 칼 헨리 박사의 말과 같이 차라리 성경을 읽으면서 본국에 머물

러 있는 편이 수년동안 여비와 학비를 들여가면서 서독에 신학을 배우려고 유학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는 보편적으로 말해서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으로 믿

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를 힘쓰는 [경건주의 신앙]을 그 체질로 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서독 유학을 하고 돌아오는 신학인들이 "발 붙일 곳"이 그리많지 않다는 것도 한번쯤 고려

할만하다.

* 총결론 - 종말이 가까운 현대신학

 

우리는 현대신학이 칼 바르트로부터 시작하여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 역

사적 기독교신학 즉 [정통신학]으로부터 너무나 먼 거리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현대신학을 대표하고 있는 [구미신학]은 본훼퍼(Dietrich Bonhoffer)의 "신의 세속속에서

의 존재"의 상념에 크게 영향을 받아 [기독교 무신론](Von Gott ohne Gott)을 부르짖는데

거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하비콕스(Harvy Cox)는 [사신신학]을 가리켜서 현대신학의 "하설작용"이라고 비꼬았으나

그 자신도 신에 대한 "침묵"을 주장하기에 이르렀음으로 "무신론적 복통"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줄 안다.

 

이렇게 무신론의 "음침한 골짜기"(시23:4)를 헤메고 있는 구미신학은 이미 [신학]

(Theology)이 아니라 "신학"의 지경에 도달했다. 오늘날 구미신학은 그 "무신론적 전락"의

결과로서 신학의 잔해를 여기저기 남기고 있다. 그것은 에스겔이 본 [마른뼈의 골짜기]

(겔37:1,2)의 광경과 흡사하다.

 

오늘날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구미신학]은 무신론의 지경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탈기독

교]의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일찌기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말하기를 "기독교의 위대함"은 "기독교가 유일

종교가 아님을 과감하게 시인"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아놀드 토인비(Anold Toynbee)도 합세

하여 부르짖기를 기독교는 절대적 진리성을 포기하고 "세계적 종교화합의 시대"의 장을열어

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현대신학의 영향을 받은 [현대기독교]는 기독교의 옷을 벗기에 바쁘다. 예수 그

리스도의 옷을 벗어 버리기에 바쁘다. [그리스도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이름 아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 대신에 교회의 "사회적 혁명적 행동성"

을 강조한다.

 

오늘날 [구미신학]으로 대표되는 현대신학은 분명히 "탈기독교의 활주로"에 와 있다. 이

제 남은 것은 역사적 기독교신학 또는 [정통 신학]의 [유일종교 사상]을 그 잔재도 남지 않

도록 완전히 불태워 버리고 (요14:6, 롬1:16,행4:12) "무신론적 인본주의" 또는 "에큐메니

칼 종교혼합주의"의 "허무한 공간"으로 영구히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 뿐이다.

 

끝으로 오늘날 [현대신학]을 대표하는 [구미신학]은 그 "사회주의적 급진성"의 발휘로 인

하여[공산주의]또는 [미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통한 일치 내지는 화합"을 모색하기에 이

르렀다. 특히 정치와 혁명을 통한 [정의사회구현]에 신학이 앞장 설 것을 부르짖고 있는 위

르겐 몰트만(Jugen Moltmann)과 하비 콕스(Harvy Cox)와 같은 신학자들은 [공산주의]또는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를 강조하면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공존보다는 한걸음 나아가서

"상부상조적인 협력관계의 수립"을 제의한다.

 

공산주의 측에서도 기독교에 대하여 대화를 통한 "일치"를 모색하자고 추파를 던져보내고

있다. 다년간 공산국 체코의 푸라하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다가 스위스에 있는 바젤대학으로

옮겨와서 신학을 가르치면서 WCC 중앙위원이 되었던 쟉 록흐만(Jan M.Lochmann)은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와의 대화가 양자의 사상적 혼합과 절충보다는 [세계사회의 인간화]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협력적 관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나 [해방신학]의 출현은 이와같은 록흐만의 "예언"을 "휴지화"하고 말았다.

위르겐 몰트만과 요하네스 멧즈의 [희망의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최근 유럽신학계

를 휩쓸고 있는 [신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자들은 칼

마르크스의 [정치혁명 사상]과 [경제이론]을 신학적 해석학의 내용으로 삼아 세계의 가난하

고 억눌림을 받는 인민들의 해방을 쟁취하는 신학을 구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티에레즈(Gustavo Gutiemez)와 같은 해방신학자는 공공연하게 성경을 가난한 자의 편에

서서 칼, 마르크스의 시각을 갖고서 읽고 해석할 것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와 마르

크스즈의의 대화나 [인간화]의 목적을 위한 협력관계 운운이 아니라 "기독교의 마르크스주

의화"요 "유물론적 사회주의 혁명의 신학"(Materialistis Socialist Theology of

Revolution)의 출범을 의미한다.

 

역사적 기독교신학 즉 [개혁주의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볼때에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한심스러운 [현대신학]의 "추태"또는 "탈선행각"인가(눅12:16-21,롬1:25,시1:1,2,고후

6:14-16).

 

1960년대에 헤르만 도이빌드교수(Herman Dooyeweerd)의 저술 {서구 사상의 황혼}(In the

Twilight of Western Thought)이 출간되어 서구사상의 반기독교적 급진성을 지적하고 경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죤 몽고메리(John Warwick Montgomery)교수가 {기독교신학의 자살}이

라는 제목의 저술을 펴냈는데 [현대신학]은 그"급진적 사상성" 때문에 자살적인 총격을 여

러번에 걸쳐서 받은 결과로서 지금은 그 운명의 순간이 시시 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

는 풍자적이면서 매우 심각한 표현을 하였다.

 

저자는 두 학자의 서구사상과 현대신학 전반에 걸친 비관적인 평가와 "종말적인 표현"에

대하여 아낌없는 찬동과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앞서 묘사하고 설명한 바와 같은 [현대신학]의 급진주의 일변도의 진행 때문에 [현대신

학]은 현재 "종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니, "종말의 시기"라는 표현보다

도 "종말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는지 모른다.

 

이와 같이 [기독교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로 뒤범벅이 된 현대신학의 [종말적인 모습]

을 지켜보면서 우리 한국의 [개혁주의 정통신학]은 "기독교신앙과 신학의 보존"이라는 지상

명령적인 목적론을 재확인하고 그것을 수행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려 할 것이다.

 

[현대신학]의 "불신앙의 결론들"때문에 기독교의 존속이 "일대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오

늘날 우리에게는 오직 기독교를 보존해야 한다는 [절대명제]가 있을 뿐이다. 한국과 세계에

서 기독교를 보존하고 보존한 기독교를 전파하는 이 큰 목적을 위하여 우리 교회는 분발하

여 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현대신학의 급진적 사조에 대항하여 '일사각오의 믿음'을 갖고서

용감하게 싸워야 할 것이다(사40:8, 딤전6:12, 딤후3:14-17, 사6:13).

출처 : 박아론 (총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