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신학 자유주의 신학!

목창균의 「현대신학논쟁」요약

하나님아들 2021. 9. 13. 22:28

   목창균의 「현대신학논쟁」요약

 

1부 자유주의 신학


 

     1장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

 

서론

19세기 초반에 등장하여 19세기 전반적으로 나타난 신학으로서, 구라파 특히 독일 신학계를 주도한 신학 사조를 흔히 자유주의 신학, 신개신교신학 혹은 현대주의 신학이라 한다. 이것은 1920년대까지 유럽신학계를, 그리고 1930년까지 미국신학계를 지배함.

현대에서 기독교의 본질(19세기 개신교의 관심사)이 어떻게 적용될수 있는지에 신학적 응답이자 현대시대의 산물임.

 

         Ⅰ.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배경

자본주의+산업혁명+사회계급+과학과 기술의 발전

계몽주의(17~18세기)+경건주의+19세기 초의 낭만주의+기계론적 우주관

 

                 1. 계몽주의

이성을 중시, 특히 칸트의 철학을 바탕-자유주의에 영향

 

                 2. 경건주의

18~19세기, 17세기 정통주의의 죽은정통(형식화, 교리화)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다. 경건주의는 사상의 체계라기 보다는 감정의 체계이며 신학적 분위기와 종교적 부흥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필립 야콥 스페너가 독일 경건주의의 창시자로 불림. 그의 사후에 프랑케, 진젠도르프로 계승. 19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신경건주의가 등장했으며, 멘켄이 대표

첫째, 종교적 감정과 경험 강조 둘째, 윤리적인 면(선행)을 강조 셋째, 개인의 영혼구원강조 넷째, 전적인 헌신과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친교의 원리)강조. 따라서 수도주의적인 경향을 띠게됨

공헌

형식화된 기독교에 생명력을 회복시킴. 메마른 지성주의에 신앙의 뜨거운 감정과 체험을 불어넣음. 자유주의신학에 영향을 줄뿐 아니라 철학에도 영향을 줌.

 

                3. 낭만주의

19세기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 1790년 루쏘와 레씽에 의해 시작되어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전개됨. 내적, 상상력, 개체성, 감정의 직접성, 역사에 대해 강조

 

        Ⅱ. 자유주의 신학의 태동

르네상스로부터 현대 정신이 19세기 유럽의 지성계 대부분을 지배함. 과학적, 낙관주의 세계관을 형성. 과학적 경험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가 특징

 

        Ⅲ. 자유주의 신학의 조류와 특징

               1. 신학조류

 

슐막허+리츨+트뢸취+하르낙의 자유주의신학

1) 슐막허의 감정의 신학

2) 헤겔학파의 신학(역사비평적 신학)

칸트-헤겔

헤겔좌파-스트라우스, 바우르, 바이세, 비더만

그리스도론이 관심의 대상-이상적 그리스도+역사적 예수의 관계 문제

벨 하우젠은 구약성서연구에 역사비평적 방법을 사용.

3) 칸트철학에 기반을 둔 리츨학파의 신학과 트뢸취의 종교사학파의 신학이다.

리츨학파-헤르만, 하르낙, 고트쉬크, 카텐부쉬,숄츠

종교사학파 - 궁퀠, 부세트, 브레데, 바이스

4) 미국의 자유주의 신학

유니태리아니즘 +사회복음적인 신학

유니태리아니즘 - 합리주의적인 해석에 의해 삼위일체론을 거부, 유일한 신격을 주장하고 인격을 무시함. 채닝, 스튜아르트, 깁스

사회복음적인 신학 - 낙관적 도덕주의에 기초. 사회윤리와 사회 구원을 주장, 그래든, 라우웬부쉬, 버스넬 등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유럽에는 신정통주의신학과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신학임. 유럽은 제1차대전을 기점으로, 미국은 1929년 경제 대공황이후로 자유주의 신학은 쇠퇴함.

 

               2. 신학적 특징

첫째, 인간의 경험중시로 주관주의적인 경향을 띔 둘째, 예수의 인간성강조(역사적 예수)-예수를 인간의 원형이나 모본, 교사로 봄 셋째,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 내재신학으로서 종교다섯째, 기독교의 윤리적, 사회적 의미를 강조-특히 칸트의 영향과 리츨학파, 종교사학파, 사회 복음주의 신학파 여섯째,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전통적인 교훈을 중재-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탐구 방법을 수용. 특히 성서 비평은 기독교와 과학적 방법의 조율로 봄.

 

결론

자유주의신학은 현대정신을 신학에 반영하여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독교를 재해석한 것임.

자유주의신학은 복음의 핵심을 상실하고, 기독교를 계시에 윤리로, 말씀에서 합리로 전환시킴.

※ 전통신학의 네가지 근원은 성경, 전통, 이성, 경험임.

 

 

      2장 슐라이에르마허 1: 감정의 신학

 

서론

현대신학의 아버지. 19세기 교부, 19세기의 대이단자로 평가

현대의 정황과 현대과학과 사상(현대세계관)의 도전에서 신학이 어떻게 가능하고, 존립될 수 있는가를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신학적 과제로 삼음. 그는 기독교에 대한 현대세계의 도전에 신학적으로 응답한 최초의 신학자임.

그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종교적인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함. 신학을 계시에서 인간의 종교의식으로, 하나님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전환시킴.

 

           Ⅰ. 생애와 저작

먼저, 1799년 11월 21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출생. 그의 친가와 외가 모두 목사 집안이었음.

그는 기독교의 근본교리 특히 인자의 교리와 대속의 교리에 대해서 회의하는 신앙의 위기가 옴. 할레대학교 재학시절 그는 신학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등의 철학에 몰두하여 그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받음. 1799년 31세에 되던 해에 “종교론”발간. 이 책은 현대자유주의신학의 선언서로 평가.

그는 종교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 “사유와 행위가 아닌 직관과 감정이다.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는 것이다.”로 정의함.

※ 직관의 개념은 플라톤과 신비주의 부정신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가?

 

           Ⅱ. 신학적 배경

                  

                   1. 종교적 배경

모라비안 경건주의의 영향(경험과 선행중시), 철학적-칸트+플라톤

 

                   2. 사상적 배경

낭만주의의 영향 - 낭만파 모임의 정회원이었음.

 

           Ⅲ. 감정의 신학

1

                   1. 신학방법론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시작된 현대사상은 18세기 유럽 지성계를 지배했음. 이것은 세속적, 과학적, 낙관주의 세계관을 형성. 과학적 경험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가 특징.

“종교론”에서 종교를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정의, “신앙론”에서 종교를 느낌과 직접적인 자기의식의 수식으로, 종교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이라고 정의. 그는 교의신학이 주어진 시대의 기독교회에서 널리 유행하는 교리를 체계화하는 학문으로 정의.

 

                   2. 그리스도론

첫째, 역사적인 계시보다는 기독교인의 경험 내지 의식에 기초 둘째, 그리스도를 원형적인 인간으로 이해. 그리스도가 완전한 하나님 의식을 소유 즉 하나님 의식의 완전한 원형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역사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예수가 신의식(감정)이 충만하였기에 그가 신의존 감정의 완전한 모형으로 제시된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가 죄에서 구원할 자가 아니라 구원에 영향력을 주신 분으로 제시되어진다. 셋째, 그리스도의 양성의 교리거부-신성을 그리스도의 신의식으로 말함.

 

                   3. 속죄론

루터와 칼빈의 전통적인 징벌 대속설과 만족설을 거부, 그의 속죄론은 그리스도가 신자에게 자신의 하나님 의식(신의식)을 나눠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나눠준다는 개념은 플라톤과 신플라톤철학의 분유적 개념에 기인

첫째, 십자가의 구속이 그의 인격, 하나님 의식 속에 있다고 봄. 둘째, 주관주의적, 인간중심적 속죄론 주장, 그는 속죄를 하나님 의식에 뒤따르는 축복의 감각 또는 종교 의식의 변화로 간주. 그의 속죄론은 성경보다 인간 의식에 근거함.

 

                   4. 죄론

죄를 인간의 하나님 의식에서 나타나는 반대물이나 장애물,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 아니고, 인간의 영육 간의 갈등과 대립, 하나님 의식의 무질서와 무력, 자유로부터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 곧 하나님과의 관계의 혼란을 의미한다고 주장. 즉 죄 의식을 무력한 신 의식과 동일시함. 그에게 있어 죄의 본질은 구속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것임.

 

결론

그의 세 가지 오류 - 범신론, 주관주의, 불가지론

 

 범신론혐의

하나님의 인격성을 거부

*주관주의 (심리적 주관주의)

객관적인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시하고, 주관주의적인 경험을 중시.

 불가지론

인간은 하나님의 본성이나 본질에 대해 알수 없다고 함.

※ 이러한 입장은 신비주의적 부정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는 인간의 종교적인 경험+현실 상황을 신학의 토대와 방법론으로 삼음. 그럼으로써 신학을 인간의 종교 의식에 대한 연구로 전락시킴.

 

 

      3장 슐라이에르마허 2: 범신론 논쟁

 

서론

          Ⅰ. 하나님의 내재성과 초월성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질 또는 특성을 의미. ※ 전통적인 신학의 명확한 구분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여짐

내재성 세계안에 계신 하나님, 초월성 세계 밖의 계신 하나님. 그는 스스로 계신 독립적이고 지존하신 하나님.

 

           Ⅱ. 범신론논쟁

마허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범신론 혐의 받음. 특히 “종교론”에서 발견. 그는 종교의 본질을 “절대 의존적인 존재의식”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존재의식으로 정의.

 

 

결론

그는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personal God)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살아있는 하나님(living God)을 강조하였다. 즉 하나님의 초월성보다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한 나머지 범신론 혐의를 받음.

 

 

      4장 데이빗 스트라우스

 

서론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기독론이 신학적 관심의 초점이 됨. 1835년 스트라우스의 “예수전”이 분기점.

튀빙겐 학파의 창시자 바우르와 그의 제자 스트라우스와 스위스의 조직신학자 비더만 등이 헤겔학파의 신학으로 헤겔학파의 신학 또는 합리주의 신학이라고도 불림. 또한 이들의 신학은 역사비평적 신학이라고도 불림. 역사적 비평은 루터의 성서주석으로부터 시작되어 역사 비평적 신학의 시조로 간주되는 제믈러를 거쳐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하나의 신학적 흐름을 형성. 이에 대표격이 바우라와 스트라우스로서 스트라우스의 "예수전“은 역사 비평적 성서 연구의 전형임.

 

          Ⅰ. 생애와 저작

1808년. 독일 스루트가르트 근처 루트비그스부르그에서 상인가정에서 출생함.

 

                 1. 신화적 성서해석

그가 역사적 비평의 과제로 삼았던 것은 두 가지 였음. 첫째, 복음서 이야기에서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신화적이라고 판단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둘째, 이 신화적인 이야기들이 어떻게 성립되어 예수와 결부되었는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의 공헌은 그의 역사 비평적 방법의 독창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복음서 기록 전체에 철저하게 적용한 것에 있었음.

 

                  2. 예수전 논쟁

그는 예수의 탄생, 성장, 수난, 부활, 승천, 기적 등을 비역사적인 신화로 해석함. 예수는 신격화된 것으로 이해하여 예수의 신성을 무시함.

 

결론

그의 견해는 불신자가된 신학자의 관점“을 나태낸 것임. 그가 교회뿐만 아니라 하나님과도 인연을 끊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줌.

 

 

     5장 죄렌 키에르케고르

 

서론

키에르케고르는 “역설의 신학”이다. 그의 사상은 20세기 들어 실존주의 철학과 변증법적 신학의 토대가 됨.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자 핵심은 실존과 역설의 개임.

 

           Ⅰ. 생애와 저작

 

           Ⅱ. 실존과 역설

                   1. 실존의 개념

인간의 존재 양식을 실존으로 봄. 실존은 “하나님 앞에 홀로서는 단독자”임. “단독자”가 그의 사상의 중심 개념이었음. 그리고 단독자가 되는 3단계로 미적실존, 윤리적실존, 종교적실존을 말함. 특히 종교적 실존의 초점은 고난이다.

그에게 있어 영원한 진리는 객관적으로 결코 파악할 수 없으며, 실존적 또는 주관적인 방법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함. 진리는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실존의 문제라고 함. 여기서 진리는 주관이라는 사상이 나옴.

 

                   2. 역설의 개념

키에르케고르는 역설의 개념을 종교와 신학에 도입함. 역설적이란 말은“진리가 인간에게 하나의 통일체로서 이해되지 아니하고 반대물의 긴장에서 항상 변증법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영원한 진리는 역설의 형식을 통해서만 시간 속에 있는 실존적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함.

그는 기독교를 역설의 종교로 간주. 그것은 이중의 역설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임. 첫째, 영원한 하나님은 그 본성과는 정반대의 존재 즉 시간적인 존재로서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인간의 형태로 존재함. 둘째, 시간적인 인간은 첫 번째 역설에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그 본성과는 정반대의 존재 즉 영원한 존재가 됨.

 

           Ⅲ. 기독교 비판 논쟁

그의 기독교관은 “기독교에서의 훈련”에서 분명히 제시. 첫째, 기독교인의 생활은 세상의 것과 그 의미가 다름. 그것은 고난이며 세상과의 싸움. 둘째, 기독교는 고난의 생활임. 왜냐하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원형이 되는 제자직의 생활이기 때문.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는 것이며, 따라서 일생 동안 예수의 싸움과 수난에 동참하는 제자가 되는것이다. 셋째, 기독교인은 동시대성을 지닌 것. 동시대성은 역사적이며 시간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시대라는 의미가 아니라 실존적으로 신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체적인 인격과 실제적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함.

 

결론

그는 실존철학의 아버지라 불림. 그의 사상적 특징 중 첫째는 그느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을 철저히 비판, 거부함. 둘째는 그는 인식론적 관점으로부터 실존적인 관점으로 신학의 고관점을 전환시킴. 종래의 기독교 신학은 주로 기독교의 본질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에, 그는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인 과제를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해명하는 것으로 간주. 셋째는 그의 신학은 역설의 신학으로 정의됨.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인 역설로 이해하여, 영원한 진리는 역설을 통해서만 파악된다고 주장.

그는 성육신을 역설로 취급함을 신학의 신뢰성을 손상시켰다고 비판받고 있음.

 

 

      6장 알브레히트 리츨

 

서론

19세기 후반의 자유주의 신학 전통의 가장 탁월한 대표자요, 자유주의 신학의 왕자로 불림

기독교와 현대문화와의 조화를 시도. 계몽주의의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철학을 수용. 칸트의 사상에 근거하여 기독교를 삶의 실천적인 이상으로 해석.

그는 칸트와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 기반을 둠.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

 

           Ⅰ. 생애와 저작

1822년 독일 베를린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 “칭의와 화해의 그리스도적 교리”와 “경건주의의 역사”로 명성알려짐.

 

           Ⅱ. 사상적 배경

칸트와 슐라이어마허가 그의 신학형성에 큰 영향을 줌.

   

                   1. 칸트와 리츨

그는 계몽주의의 이론적, 실천적인 철학을 철저히 수용함. 신에 대한 불가지론적 입장취함. 칸트의 영향으로인해 그는 형이상학과 이론적 사변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거부하고 종교적 사상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며 도덕적이라는 신념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재해석함. 고로 그는 기독교를 하나님의 나라를 창건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위에 세워진 영적 윤리적 종교로 정의. 그는 또한 하나님 나라를 지고의 윤리적 이상으로 간주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실현되는 인간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라고 말함. 이 공동체를 창건한 예수는 윤리적으로 위대한 교사요 인류의 원형임.

 

                   2. 슐라이어마허와 리츨

첫째, 마허의 이상으로 형이상학을 반대. 둘째, 리츨은 기독교를 가장 순수하고 가장 발전된 종교 형태로 간주한 마허의 입장을 수용함.

그는 종교의 신비적 성격보다 윤리적 성격을 강조하고 역사적 계시를 강조.

 

                    3. 신학적 과제

리츨은 사변적 합리주의, 주관주의, 신비주의, 경건주의, 정통주의 등을 거부

리츨은 사변적 합리주의를 거부. 사변적 합리주의는 신학의 진정한 기반을 이론적 형이상학에사 찾아야 한다는 주장.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태도가 믿음보다 사랑이라고 하여 사랑을 강조. 리츨에게 하나님은 절대자라기 보다 사랑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봄.

 

           Ⅲ. 기독교의 본질과 하나님의 나라

그의 관심은 신앙, 역사, 윤리에 있었음. 그래서 이들을 결합하려고 시도.

 

                    1. 기독교의 본질

그는 기독교를 하나님의 나라를 창건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위에 세워진 윤리적 종교로 정의. 그는 “기독교는 유일신론적이며 완전히 영적인 동시에 윤리적인 종교이다.”라고 함.

 

                     2. 하나님 나라

그에게 있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된 행위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실현되는 윤리적인 인간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말함.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적 예수의 인격에 토대한다고 강조. 하나님 나라는 인간의 최고선이며 하나님과 화해된 인간

 

                     3. 칭의와 화해의 논쟁

리츨의 주저 “칭의와 화해론”을 통해 칭의와 화해를 해석.

칭의를 인간 삶의 이상으로 규정하고 죄의 세력의 제거로 이해하지 않음. 그것은 인간 자신의 의지로 죄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함. ※ 이런 측면에서 그의 신학은 펠라기우스적이고 알미니안적임.

그는 칭의를 죄의 제거보다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는 것을 칭의로 정의. 인간은 칭의에 의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며 죄나 죄책감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그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함. 그는 칭의를 법정적인 측면보다 윤리적인 면으로 이해. 그는 화해를 칭의의 결과로 봄. 그는 특히 화해를 하나님의 행위하기보다 인간의 경험으로 규정. 화해가 필요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을 포기하고 그리스도편에 서는 것이 화해임. 리츨은 화해된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함. 그리고 화해의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 나라로 규정.

그는 개인적인 구원을 칭의로 본 반면, 인간의 도덕적 노력을 화해로 봄. 칭의와 화해는 구별될 수 있지만, 분리될 수 없다고 봄. 리츨은 칭의가 먼저이고 화해가 그 결과라고 설명. 칭의와 화해를 통합하는 것을 자신의 신학의 목적으로 삼음.

 

결론

그의 특징과 공헌은 기독교의 윤리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강조한 것. 한편으로 그는 기독교를 계시에서 윤리의 종교로, 하나님 말씀의 종교로부터 인간 중심의 합리적인 종교로 만든 것임. 특히 화해를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하지 않고 인간의 경험으로 간주한 것이 대표적임. 이것은 신약 성서와 종교개혁자들의 교훈으로부터 완전히 이탈된 것. 그의 신학은 종교개혁전통으로부터 단절된 신학이었음.

 

 

       7장 에른스트 트뢸취

 

서론

19세기와 20세기 신학사상의 중요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트뢸취의 신학임. 16세기 말 독일 신학계를 지배했던 자유주의적 기독교의 대표신학자만이 아니라 20세기 초 독일 신학계의 중심인물임. 마허와 리츨의 영향을 받음. 신학의 재구성문제를 제시하고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

19세기 마지막 10년 간 독일에서 발전했던 종교사학파의 대표적인 신학자였음. 이것은 역사적 연구에 의해 종교를 이해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한 것. 그가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신학과 역사 및 철학이었음. 그의 신학방법론은 역사적 방법이었고, 그의 신학은 종교사의 신학이었음.

 

           Ⅰ. 생애와 저작

에른스트 트뢸취는 1865년 2월 17일 독일 아우그스부르그 근처 하운스테덴에서 의사의 아들로 출생. 그는 1883년 에어랑겐 대학에 입학하여 신학교육과 함께 칸트, 피히테, 슐라이어 마허를 공부함.

괴팅겐 대학에서 그는 아이호른, 궁켈, 브레데, 부세트에게 종교사학의 연구를 배움, 이들은 종교를 역사의 발전과정으로 이해, 기독교의 기원역시 고대 종교들, 특히 후기 유대교의 관점에서부터 연구함. 그들은 비교의학적이며 사회학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 전통적인 성서 연구로부터 탈피하여 우대교롸 초기 기독교의 종교사로 전환시키려 함. 이들이 바이스, 하이트 뮬러 등과 함께 형성한 종교사학파임.

 

           Ⅱ. 역사적 방법과 종교사의 신학

                   1. 역사적 방법

그는 종교는 역사적 연구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봄. 역사적 방법의 기본원리들은 비평, 유비 및 상관관계이다.

비평은 모든 자료를 비판적으로 검초하고 모든 결론을 새로운 증거의 조명에 의해 검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함.

유비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는 원리를 전제로 함.

상관의 원리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이전의 다른 사건들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함. 이 상관의 원리에서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키려는 역사적 상대주의가 발생되어짐.

역사적 방법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를 구별하기보다 오히려 모든 종교를 동질적인 현상으로 취급함.

 

                  2. 종교사의 신학

트뢸취의 신학은 한마디로 종교사의 신학이다. 종교사학파는 성서적 종교가 다른 종교들과의 접촉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것을 입증하려 했으며 종교사의 보편적 발전내에서 기독교의 타당성을 확립하려 함. 따라서 종교의 절대성을 부정. 한편 종교 다원론적 입장에서 역사적이며 비교 종교학적 방법으로 종교들을 탐구하려함.

그가 마허로부터 배운 것은 “의식의 신학” 또는 “역사 신학”으로서, 그의 신학의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바로 마허라고 말할 수 있음. 그의 신학은 종교철학 혹은 종교학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임. 이것이 바로 마허의 영향을 받은 것임.

 

                   3. 기독교의 절대성 논쟁

그의 신학의 중심점은 바로 기독교의 절대성의 문제였음. 그는 기독교의 우월성과 규범성은 인정하였으나,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종교적 상대주의를 주장함. 트뢸취의 예수는 단지 역사적 예수였고, 더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주장함.

 

결론

그는 마허로부터 리츨로 이어지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전통의 마지막 주자였음. 종교사학파의 대표적인 조직신학자로서 그의 신학은 철저히 역사적 연구 방법에 기초한 종교사의 신학이었음.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함으로써 종교 다원주의의 토대를 마련하였음.

그의 신학의 문제 세 가지

첫째,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 둘째, 그의 신학은 성경, 신조보다 종교철학과 종교학에 기초함. 셋째, 그는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주장함. 그는 예수의 인격을 무시하고, 예수의 자기 의식만을 말함. 따라서 그는 완전한 기독교 이단신학자임.

 

 

   10장 루돌프 불트만

 

서론

루돌프 불트만은 당대 제일의 신약 성서 학자. 그의 평생의 신학적 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현대인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전달되어야 하는가 였음. 그는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분석을 통해 이 과제를 수행하고 함. 그에게 있어 비신화화는 신약성경에 신화적 요소가 많다고 보고 성경에 나와 있는 1C의 신화를 복음에서 벗겨내는 것을 목표로 함. 실존론적 분석은 1C의 복음을 현대의 인간 실존의 현실 상황을 토대로 하여 재해석(변용)하는 것임.

 

             1. 생애와 저작

불트만은 1884년 8월 20일 독일 올덴부르그의 비펠드스테드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 1921년에 출판된 공관복음 전승사를 통해 궁퀠의 양식 비평적 분석과 역사 비평적 방법을 도입하여 공관복음서 안의 모든 자료의 성립과 역사를 비판 연구했음. 그는 공관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전기가 아니라 교회의 신앙과 예배를 위해 만들어진 예배서라고 주장함. 복음서는 교회의 케리그마이며, 설교된 그리스도는 역사의 예수가 아닌 신앙과 예배의 그리스도라는 것. 그는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를 엄격히 구별함. 그에게 있어 예수는 “역사적 예수”인데, 이것은 사실상 예수의 역사성(사실적 예수)을 부정하고 의미로서의 예수를 말한것으로서, history가 아닌 gescite의 예수를 말한 것임. 또한 그에게 있어 신학의 출발점은 실존으로서, 성육신을 신학의 출발을 삼는 정통주의와 틀림.

 

              2.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해석

그의 신학적 관심사는 1C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20C 현대인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 하는 문제였는데, 그는 1C의 복음이 결국 현대에는 맞지 않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그는 양식 비평과 종교사적 방법을 수용. 양식 비평은 구전 전승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문학 해석의 방법임. 디벨리우스, 슈미트 등과 함께 양식사 비판을 신약성서에 도입, 발전시킴. 양식사 비판에 따르면, 복음서가 기록되기 전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구전 wmr 원래의 복음인 케리그마가 있었으며, 초대교회가 그것을 팔요에 따라 가감하여 보존한 것을 편집한 것이 복음서였다고 주장. 양식사 비평은 복음서 기록 배후에 있는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구전 문학 양식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방법임. 그 목적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구전의 원형태 즉 예수의 원형을 찾아보려는 것. 그는 복음서가 단지 고대문서 중의 하나로서 복음이 아니고, 교회가 원 복음에 가감한 것으로 말함. 한편 그는 신약 성서 연구에 종교사적 연구 방법을 사용하여, 기독교는 주변정황에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오하려 환경에 영향을 받은 역사적 산물이라고 결론지음.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다신교에서 유일신교로 발전,진화된 종교로서 1C의 교회가 수용한 것으로 말함.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초월적 인 것을 이 세상의 것르로, 성서의 진리에 대한 당시의 해석을 현대의 해석으로 고치는 것. 즉 케리그마를 그 신화적 요소로부터 벗겨 내는 것.

불트만이 신화를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실존적 해석임. 신약성서의 사명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것, 즉 인간의 실존적 자기 이해에 있다고 함. 그에게 있어 인간은 실존임. 실존은 인간의 존재양식으로서 인간의 본질이나 자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실존임. 그래서 그에게 인간은 정통주의 입장에서 주장하는 전적인 부패와 무능력을 부정하고 인간을 고난의 존재로 정의함. 이러한 견지에서 정통주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에게 역사하여 구원을 가져다주는 반면, 불트만은 실존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기독교의 복음으로 이해.

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과거의 사건이나 신화론적 사건이 아닌, 영원한 현재적 사건으로 해석, 그는 세상에 대한 심판과 인간에 대한 심판과 구원을 십자가의 영원한 의미로 간주함. 실존론적 해석은 사실보다 의미, 과거의 역사보다 실존적 역사를 중시함.

 

                3. 비신화화 논쟁

첫째, 신약성서의 초자연적인 요소를 신화로 취급. 둘째, 과거의 역사보다 실존적 역사, 사실 보다는 의미를 강조. 셋째, 그는 신화를 세상적인 것을 이 세상적인 것으로,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에 의해 표현하기 위해 비유를 사용한 것이라고 정의.

 

결론

그의 평생의 신학적 주제는 신앙과 이해문제였고 그에 대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이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해석임.

그의 문제를 세가지로 정리하자면 첫째로 성서의 초자연주의를 부정. 둘째로, 성경의 신적인 권위를 무시함. 셋째, 하이데거의 철학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는 인간 실존에 관계된다고 주장. 기독교 신앙은 내적, 주관적, 실존적임. 그는 기독교 신학의 역사성과 객관성을 거부함으로 기독교 신학을 인간중심적인 신학으로 전환시킴.

 

 

    11장 폴 틸리히

 

서론

폴 틸리히는 독일 태생의 미국 신학자요 철학자로 위대한 현대 기독교 사상가 중 한 명임. 그는 라인홀드 니버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자로 평가받고 있음.

틸리히의 신학은 경계선상의 신학, 철학적 신학, 문화의 신학으로 특징지어짐. 그는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질문과 대답의 관계로 이해함. 철학은 질문을 하고 신학은 대답을 하는 것으로 이해. 특히 그는 역사적 기독교와 현대 문화와의 상관관계를 제시함으로써 양자를 중재함. 그는 종교의 형식이 문화요, 문화의 내용이 종교라고 말함. 그의 입장은 변증법적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의 중간임. 틸리히는 양자의 충돌을 극복하는 중재와 화해 그리고 종합이라는 제3의 길을 선택함. 그것이 철학적 신학

그의 신학의 주요한 세 가지 방법론이자 주요개념은 상관의 방법, 궁극적 관심, 새로운 존재의 개념임.

 

         Ⅰ. 생애와 저작

폴 틸리히는 1886년 8월 20일 독일 브란덴베르그 지방에 있는 작은 공업 도시 슈타르체델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함. 특히 그는 쉘링의 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음.

         Ⅱ. 상관의 방법

틸리히의 신학 방법론의 핵심은 상관 방법임. 이것은 결국 기독교 신앙과 현대 문화 사이를 중재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기초함. 그의 신학은 신학의 과제를 상황에 대해 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상황 신학”이라고 부름. 이것은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 상황에 결합시킨 것임.

 

         Ⅲ. 궁극적 관심과 새로운 존재

                 1. 궁극적 관심

그에게 있어 종교의 본질은 “궁극적인 관심” 혹은 “궁극적인 관심으로 붙잡힌 상태”로 정의되는데, 궁극적 관심은 현재 나에게 가장 충만하고 관심있는 무엇임. 즉 어떤 것에 대해 궁극적으로 심각하게 다루는 것, 만사를 제쳐놓고 심각하게 취급하는 것을 말함. 그는 종교적인 관심을 궁극적인 것으로 봄. 그는 “종교적인 관심은 궁극적이며 무조건적이며 절대적이며 무한하다”라고 말함.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궁극적이 관심이며 이 하나님은 상징일뿐임. 그리고 그는 하나님은 존재(being)이 아니고 존재자체(Being Itself)이다라고 말함. 그는 하나님을 존재자체이자 존재의 근거로 정의. 그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기에 고로 하나님은 상징일 뿐이라고 말함으로 성경의 “비문자화”를 주장했는데, 성경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함으로 성경의 문자적인 해석을 금한것임.

 

                 2. 새로운 존재

그는 인간의 실존해명이 죄론이며, 새로운 존재의 개념이 그의 기독론임. 틸리히는 인간의 실존 상황을 소외의 상태로 규정하고,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존재의 지참자가 그리스도라고 주장. 그에게 있어서 죄는 인간의 실존적 소외이고, 이런 인간의 소외를 해결해주는 새로운 존재의 지참자가 그리스도이며, 인간의 소외를 치유하는 것이 구원으로 정의. @이것은 작금의 치유중심의 교회관의 중요한 개념을 제공함.

틸리히는 불신앙, 교만, 육욕을 소외의 세 가지 특징으로 주장. 그는 새로운 존재에로의 참여가 중생이며, 새로운 존재의 수용이 의인이며, 새로운 존재에 의한 변화가 곧 성화임.

 

                 3. 신학 논쟁

상관의 방법, 신학과 철학의 관계, 신론이 주된 논쟁이 됨.

 

결론

그는 한마디로 문화의 신학자임. 그의 관심사는 한마디로 한다면 종교(기독교)와 문화의 조정과 중재문제였음. 그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고 신학의 상황을 출발점으로 정통주의 신학을 완전 파괴함. 그는 성경의 역사성과 기독교 신앙을 상징으로 간주하여 정통주의에 정면도전한 기독교 이단임. 따라서 그의 신학은 변증법의 변형으로서 “신변증법적 신학”또는 “신자유주의 신학” 또는 “인간 중심적인 신학에로의 복귀”로 간주되어짐. 또한 그의 경계선의 신학은 타종교와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상을 만들어내어 종교 다원주의 사상적 기초가 됨.

 

 

       12장 라인홀드 니버

 

서론

라이홀드 니버는 현대 인간이해에 크나큰 공헌을 남긴 개신교 신학자. 윤리학자 및 정치 사상가임. 그의 신학적 관심과 공헌은 인간에 대한 해명에 있었음. 그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자, 죄인이라는 양면성을 강조.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는 인간의 양면성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는 시도였음.

 

        Ⅰ. 생애와 저작

니버는 1892년 1월 21일 미국 미조리 주 라이트시에서 출생함.

 

         . 기독교 현실주의

그는 기독교 현실주의를 주장했는데, 이것은 현실상황과 문제들을 중요시 하는 것이었음. 그는 인간의 현실을 통찰하고 기독교적 사랑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모색함. 즉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완전한 사랑의 윤리를 제시. 이 사랑은 타인을 위한 예수의 사랑이며 이 사랑의 윤리를 “불가능한 가능성”이라 불림. 그의 관심은 바로 이 윤리의 문제였음.

 

       Ⅲ. 인간론 논쟁

그는 진보주의, 마르크스주의, 평화주의, 공산주의를 비판. 이러한 이념들은 인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초하였다고 봄. 그는 낙관주의적 인간관을 거부하고 현실주의적인 인간관을 제시함.

그의 인간이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초했는데, 그것은 고전적 인간관과 성서적 인간관이다. 고전적 인간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간 이해로 이성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의미하며, 후자는 유대교와 기독교적인 인간 이해로 계시에 의한 신앙적 접근을 의미함.

그는 현대적 인간관의 모순을 지적하고, 기독교 인간관이 현대 인간관의 혼란에 바른 길을 제시할 거라 믿음. 그의 인간관의 특징은 인간의 위대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어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면서 죄인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있으면서 그것을 초월할 수 있으므로 자유와 유한성을 함께 소유한 피조물임. 그가 생각한 하나님의 형상은 이성적 기능 이상의 것을 포함한 것으로, 그것은 자기를 초월하여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인식까지 도달하는 능력, 곧 정신의 자유를 의미한다고 주장.

그는 인간의 유한성에서 오는 나약함 때문에 발생되는 불안을 죄의 근원으로 간주. 죄는 내적 전제 조건으로서, 자신의 유한성을 수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말함. 인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 불안을 극복하려고 시도하는데, 교만과 육욕임. 교만이 인간을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는 것이라면, 육욕은 인간을 과하게 과소평가하는 것임. 니버는 이 교만과 육욕을 죄의 기본형태로 생각하고 교만을 육욕보다 더 근본적인 죄로 취급함. 그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근본적인 죄로 간주하고, 그 결과가 육욕이라고 주장함.

 

결론

니버의 사상은 옛것과 새것이 대립하여 변형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짐. 그의 인간관은 인간의 두 측면, 즉 하나님의 형상과 죄인, 또는 자유와 유한성을 동시에 강조하는 것이 특징. 이것은 정통적 기독교와 자유주의적 기독교의 인간관을 둘 다 융합한 것임. 그의 죄관은 키에르 케고르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초월적이면서도 유한한 존재이 까닭에 자신의 유한성으로 인해 항상 불안해 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죄를 정의한 것이 특징. 그는 인간본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기초하여 인간의 사회적 현실을 새롭게 이해하려는 기도교 현실주의를 전개함.

 

 

 

3부 세대주의 신학

 

   

         13장 세대주의 신학

 

서론

19세기 자유주의신학과 입장을 달리하면서 성서적 기독교를 수호하려는 신학적 흐름으로써 영국과 미국에서 태동함. 세대주의는 하나님의 세계 통치에는 구분될 수 있는 서로 다른 세대들이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렬한 기대를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일어남.

세대주의는 근본주의운동에 영향을 끼침. 세대주의의 전천년설, 성경의 문자주의, 축자 영감설 등이 근본주의의 주요 교리가 됨. 세대주의는 현대종말론 발전에 크게 공헌함으로써 19세기 말 미국의 천년왕국 운동을 주도함.

세대주의는 하나의 신학체계이다. 그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고 종말론은 세대주의 신학 체계 가운데 단지 한 부분일 따름이다. 세대주의는 한편에서는 세대주의를 보수주의적 복음주의로 이해했던 반면, 다른 편에서는 세대주의를 이단으로 취급함. 세대주의가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무오성과 그리스도의 인격적 재림 등을 강조한 것을 높이 평가함.

 

         Ⅰ. 세대주의 역사

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는데 현저하게 다른 세대들이 있다는 신념임.

세대주의자 라일리에 따르면 세대주의의 본질은 세 가지로 정리되는데, 첫째, 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구분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성경해석에 문자적인 해석을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목적을 구원보다는 오히려 그 자신의 영광으로 보는 것이다. 세대주의는 19세기 후반 다비와 그가 지도자로 있었던 프리머드 운동에 의해 시작되었음.

다비는 뉴턴과의 논쟁을 통해 성경해석의 새로운 원리와 신학개념을 제시함. 문자적 예언 해석원리와 그것에 근거한 이스라엘과 교회의 철저한 구분, 환난 전 교회 휴거, 성경을 유대인의 본문과 교회의 본문으로 나누는 성경의 구획화, 천국왕국의 유대화등임. 이러한 다비의 신학체계를 세대주의라고 부름. 이것은 다비가 인류의 역사를 여러세대로 나누고 하나님의 활동양태가 각 세대마다 다르다고 보았던 데에 기인함.

스코필드는 문자적 성경해석법을 실천했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의 두 백성으로 구분함. 이스라엘에 관한 성경본문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지만, 교회에 관한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임. 스코필드는 세계역사를 일곱세대로 구분하였는데, 그는 대환난전에 교회가 휴거된다고 믿는 전천년설과 환난 전 휴거설을 주장. 이러한 스코필드의 해석은 근본주의 신학계에 널리 수용. 세대주의적 신학교로는 달라스, 그레이스, 탈보트 신학교등이 있음. 저명한 세대주의자로는 메킨토쉬, 트로터, 켈리, 그랜트, 블랙스톤, 모르간, 아이언사이드, 개벨인 등이 있음.

 

           Ⅱ. 세대주의 교리

세대주의의 핵심 신조와 신학개념은 문자적인 성경해석,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분, 환난 전 휴거로 요약될 수 있음. 세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문자적 해석원리를 성경에 일관되게 적용하는 것임. 스코필드에 따르면, 구약 성서의 역사는 비문자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예언은 반드시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함.

또한 세대주의는 독특한 교회론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 세대주의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엄격히 구분함. 둘째, 세대주의는 교회가 구약시대에는 존재하지도 예시되지도 않았으며 오순절부터 존재하였다고 주장함. 셋째, 세대주의는 교회의 제한적인 역할만을 강조. 즉 교회를 하나님의 원래의 구원계획의 일부로 간주하지 않고 그 중간의 막간극과 같은 것으로 취급함.

또한 종말론에도 특징을 나타내는데, 첫째, 교회의 환난 절 휴거를 주장. 둘째, 유대적인 천년왕국을 주장. 셋째,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별함. 천국은 하나님의 지상적인 통치를 말함고,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한 유대 왕국인데 반해, 하나님의 나라는 보편적인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통치를 말한다고 함.

 

           Ⅲ. 세대주의 논쟁

세대주의가 언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원 논쟁이 되고있음.

 

결론

세대주의의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이것이 성경 연구, 경건한 생활, 복음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과 열망을 촉진하고 증진시킴. 특히 20세기 근본주의 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15장 세속화 신학 : 디트리히 본회퍼

 

 

서론

20세기 후반 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신학의 관심과 강조점이 바뀐데 있음.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정통교리(신앙의 바른 진술)로부터 정통실천으로 신학의 관심이 전환되었음. 개인보다 타인이, 말씀전파보다 인간의 인간화가 강조됨. 한마디로 세상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 1960년 이후 기독교는 전반적으로 세속화되고 신학은 급진화되는 경향이 있음. 이러한 신학적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본회퍼였음. 그의 핵심사상은 성인된 세계와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해석임.

        

        Ⅰ. 생애와 저작

본회퍼는 1906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명문가 집안에서 출생.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존재에서 인간의 독특성을 발견함. 그는 기독론에서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해서 세 가지로 말함. 즉 현재적 그리스도, 살아있는 그리스도, 영원한 그리스도로 구성함.

그는 성서적 개념과 신학적 개념에 대한 종교적인 견해를 폐기하고 비종교적 해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함

 

         Ⅱ. 성인된 세계와 성서적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그는 무종교적 시대와 무종교적 기독교의 충격적인 두 가지 혁명적인 개념을 제시함.

 

                1. 성인된 세계

성인된 세계는 한마디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종교가 필요없는 세계임. 이것은 우리 자신의 자원들, 즉 환경과 사회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에만 의존한다는 것임. 성서의 복음으로부터 종교의 옷을 벗기는 것이 성서 개념의 세속적 해석임.

 

                2. 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

그는 첫째, 종교는 개인주의를 의미한다고 봄. 죄는 자기를 위해 존재하려는 욕망이며, 모든 관계성을 파괴한다고 주장. 둘째, 형이상학적인 것을 의미함. 우리의 관심사는 다음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며, 세상 위에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도록 의도된 것으로 주장함. 셋째, 종교는 부분적인 것임. 종교적 행위는 교회의 예배와 종교적 행사에 국한되어 있음. 예수는 인간을 종교로 부른 것이 아니라 삶에로 부름.

비종교적 해석은 정리하면, 첫째,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의미.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의 집중을 말함. 둘째, 이것은 세상적인 해석을 의미. 세상적 해석은 이 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 세상을 긍정하는 신앙, 세상 속에 사는 신앙을 의미. 그러나 본회퍼가 세상에 대한 긍정을 주장한 것은 세상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세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임. 셋째, 비종교적 해석은 구약 성서적 해석을 의미. 구약적 해석은 세상 가운데,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것임. 넷째, 이것은 고난에 참여하는 삶을 의미. 그것은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난받는 종으로 살아 있다는 해명임. 기독교인으로 부름받은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임.

 

         Ⅲ. 본회퍼의 신학적 영향

그의 비종교적 해석은 20세기 후반의 개신교 신학, 카톨릭 신학과 에큐메니칼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침. 특히 세속화 신학과 신의 죽음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로빈슨이나 하비 콕스, 반 뷰렌은 본회퍼의 영향을 많이 받음.

 

결론

본회퍼의 신학의 중심주제는 그리스도와 교회와 세계였음.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타인을 위한 존재이고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가 곧 교회임. 그의 전체신학은 그리스도안에 계시된 하나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성을 동반하는 것이 특징. 그의 신학은 다양하고 혁명적이어서 오늘날 세속화 신학, 해방 신학, 정치 신학자 등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

 

 

    제16장 세속화 신학: 존 로빈슨과 하비콕스

 

서론

20세기 후반에 세속적인 관심과 사고에 기초하여 형성된 신학이 세속화 신학이다. 본회퍼로부터 시작된 세속화신학은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와 콕스의 세속 도시를 통해 대중화되었으며, 신의 죽음의 신학을 통해 급진화되고 과격화되었음.

 

            Ⅰ. 세속화란 무엇인가

세속이란 말은 라틴어 세쿨룸에서 유래됨. 하비 콕스에 따르면 세쿨룸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이 세대 혹은 시대를 의미함. 세속적이란 것은 영원한 것에 반대되는 시간적인 것을 말함. 즉 이 세상에 속한 것을 가리킴. 둘째, 이 세상을 의미함. 영원하고 불변하는 종교적인 세계에 대비되는 것으로 세속 세계는 일시적이며, 가변적인 것임. 따라서 세속이란 말은 어떤 열등한 것을 암시함.

 

쿤의 정의

1) 일반적의미

영적인 것 또는 신성한 것을 거부하고 현세계에 속한 일이나 사건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함.

2) 특별한 의미

하나님이나, 인간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전혀 관계 없는 삶에 대한 전망을 말함. 즉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

종합적으로 볼때, 세속은 시간적인 것, 이 세상적인 것, 인간적인 것을 의미함. 그것은 영원하며 저 세상적이며 신적인 것에 반대되는 개념임.

 

세속화란?

이것은 일이나 사람, 또는 제도가 종교적인 사용이나 영향으로부터 분리되는 과정을 가리킴. 즉 이것은 종교성으로부터의 분리라고 볼 수 있음.

콕스는 세속화를 종교와 형이상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것, 저 세상으로부터 이 세상으로 인간의 관심을 돌리는 것이라고 정의함. 세속화는 종교적 세계관으로부터 세계를 해방하는 것이며 모든 폐쇄적 세계관을 개방하는 것이며 초자연적 신화와 거룩한 상징들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세속화를 “성인된 인간”을 말함. 이것은 인간의 자율화이다. 그러나 세속화는 세속주의와는 구별됨. 세속주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임. 이것은 새로운 종교 역할을 하는 폐쇄적 세계관을 나타냄. 어떤 과학적 이론이나 정치적 제도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할 때, 세계는 세속주의가 됨.

세속화 신학은 하나님과 복음을 세속적으로 말하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 세속화 신학은 초월적인 영역이나 초자연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세상적인 관점과 세속적인 용어에 의해 신학을 재진술한 것임.

 

               Ⅱ. 세속화 신학의 신학적 배경

현대 과학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과 전통 기독교에 대한 신뢰심 약화가 세속화 신학이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요인이 됨.

젊은 신학자들은 현대인이 직면한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세속화된 기독교를 제시하고자 함.

본회퍼, 불트만, 틸리히의 신학 사상이 큰 영향을 끼침. 특히 본회퍼의 신학이 세속 신학자들에게 주요한 슬로건이 됨. 로빈슨의 신에게 솔직히, 콕스의 세속 도시, 반 뷰렌의 복음의 세속적 의미 등은 본회퍼의 사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저술된 문제작들이었음. 본회퍼의 영향으로 1960년 이후의 신학은 전반적으로 세속화 신학이 주도하게 됨.

세속화 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유신론적 신관을 거부하고, 새로운 신관을 형성하기 위해 틸리히의 사상에 힘입고 있음. 틸리히는 높이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깊이의 차원에서 하나님을 파악. 하나님은 “저 밖에(out there)" 있거나 ”저 위에(up there)“계셔서 인간의 문제에 초월한 존재자가 아니라, 인간의 고난과 슬픔에 관여하는 분이심. 그에게 있어 하나님은 깊이로 정의됨. 이 말은 하나님은 어떤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무한한 깊이와 근거임을 말하는 것임. 하나님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임.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위나 밖이 아닌 ”한 가운데서 초월해 있는 것“으로 이해한 것. 이러한 틸리히의 신관은 로빈슨이나 콕스의 신관형성에 지대항 영향을 줌.

 

               Ⅲ. 로빈슨과 콕스의 세속화 신학

 

                       1. 로빈슨

그는 본회퍼의 영향으로 인해 “작업 가설”로서의 하나님, “임기응변책”으로서의 하나님, 종교의 하나님을 부정함. 그는 틸리히의 견해를 수용하여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무한한 깊이와 근거 또는 우리의 궁극적 관심으로 이해함. 하나님은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초월해 있는 것임. 이러한 그의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유신론의 종말에 대한 선언임.

그는 로빈슨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직접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표한다고 주장함. 그는 케노시스 기독론에 근거하여 예수의 신성을 부정함. 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단지 인간 사랑의 실천자이고 기독교의 구원은 이웃사랑과 동일한 것임.

그의 비종교적해석은 이 세상에 대한 강한 긍정에 기초하고 있음. 그는 세상이 거룩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성과 속, 세상과 교회, 종교와 일상 생활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았음. 로빈슨의 비종교적 해석의 특징은 초자연주의를 부정하는 동시에 자연주의를 극복하려고 한 것임.

 

                      2. 콕스

세속 도시의 저자돌 알려진 하비 콕스는 하바드 대학 교수로 미국 세속화 신학의 대표자로 간주되는 저명한 신학자임.

1965년 출판된 세속도시에서 그는 기독교의 철저한 세속화를 주장함. 그에게있어 세속화는 인간의 자율화를 말한다.

그는 크게 세 가지 주장을 함. 첫째, 그는 창조사건을 비신화화로 이해함. 둘째, 이스라엘민족의 출애굽 사건을 정치의 비신성화로 이해함. 셋째, 우상숭배 금지를 명한 시내산 언약을 가치의 상대화로 이해함.

콕스는 교회의 기능와 과제를 세 가지를 말하는데, 선포, 봉사, 친교이다.

그는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에 대한 새 이름이 나올 때까지, 당분간 하나님이란 말의 사용을 중단해야 한다고 함.

 

           Ⅳ. 세속화 신학 논쟁

첫째, 로빈슨은 자신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일반 대중의 시선에서 “기독교 급진주의의 대제사장”으로 보임. 둘째, 그는 전통적인 신관이 낡은 세계관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현대인에게 적합한 신관으로 바꾸려 하여 심층심리학에 근거한 새로운 신관으로 바꾸려함. 로빈슨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궁극적인 실재임. 매킨타이어는 로빈슨을 무신론자로 규정하고 그의 신관을 흄과 포이엘바하의 입장과 같은 것으로 간주함. 셋째, 그리스도의 초자연성과 초월성을 거부함.

그에 대한 신랄한 논쟁의 요점은 이것이다. 첫째, 그가 “신의 죽음의 신학자”인가 하는 문제. 둘째, 지나친 낙관주의가 문제. 셋째,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의 이해와 상당한 차이를 보임. 그는 전통적인 성육신의 입장을 거부, 현대도시를 하나님의 나라로 간주,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영적 차원을 완전히 배제.

 

결론

세속화신학은 전통적인 하나님의 이해를 현대인에게는 부적합하다고 보고 기독교의 복음을 현대인의 언어로 재해석함.

1960년대 이후 서구 신학은 전반적으로 세속화되고 있음. 이 세속화신학은 신 죽음의 신학,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 신학으로 발전되어 나감.

 

 

    제18장 희망의 신학: 위르겐 몰트만

 

1960년대의 반신학은 희망의 신학, 정치 신학, 해방 신학 등의 급진신학을 통해 사상의 맥을 존속함.

특히 1970년대 중반 반신학의 잿더미로부터 불사조 같이 일어난 것이 ‘희망의 신학’이었음.

희망의 신학의 주제는 미래와 희망으로 요약됨. 현재를 강조하는 실존주의 신학과 달리, 희망의 신학은 미래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임. 대표적인 학자로는 몰트만을 비롯하여 판넨버그, 메츠 등이 있음.

 

           Ⅰ. 생애와 저작

포로생활을 통해 신정론의 문제와 희망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신학을 공부 시작. 그리고 1948년 독일로 돌아와 괴팅겐 대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함.

괴팅겐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특히 오토 베버, 한스 이반트, 에른스트 볼프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음.

몰트만은 베버로부터 칼빈주의 개혁 교회 전통에 대한 비판적 통찰과 종말론을 배움. 그는 이러한 종말론적 개념을 토대로 자신의 희망의 신학을 발전시킴. 한편 그는 이반트에게서 헤겔의 신학적 철학과 하나님의 죽음의 개념,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을 배움. 또한 볼프로부터 종말론 사회윤리학과 접맥시키는 법을 배움.

주요 저서로는 삼부작으로 꼽히는 「희망의 신학」,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가 있음. 희망의 신학은 종말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함. 종말론을 중심으로 모든 신학을 전개함.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기독교 신학의 기준으로 간주하려는 시도였음. 그는 이 기준에 의해 희망, 십자가, 하나님의 나라 등을 예리하게 분석함.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는 새로운 교회관, 즉 메시아적 교회론을 제시함. 그는 교회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사명과 성령의 창조적 사명에 참여하는 것으로 봄.

 

            Ⅱ. 희망의 신학

                    1. 희망의 약속

 

희망의 신학의 중심을 이루는 두 개념은 희망 약속임. 그는 블로흐의 희망의 철학을 도입하여 개념화한 것이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임. 그에게 약속은 현재 존재하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선포하는 것임.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이 이루어지리라 기대되는 미래로 지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약속임. 또한 그는 계시들을 새롭고 역사적이며 종말론적 미래의 지평을 드러내는 약속들로 이해함. 한편 그에게 따르면, 약속은 어떤 사건 속에서 성취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미래를 가르쳐 주는 잔여물이 있음. 구약 성서를 통해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는 역사안에 일어난 일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음. 미래를 향한 인류 역사와 움직임과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그것임.

 

                   2. 종말론적 해석

 

그에게 있어서 성서의 하나님은 세계 안에 갇혀 있는 내재적 존재나 세계 밖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앞에 있는 존재, 즉 희망의 하나님으로 이해함. 하나님은 인간과 세계과 희망하고 기다려야 할 미래의 존재임. 여호와는 그의 본성으로 미래를 가지고 있음. “존재의 본질로서 미래를 가진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현재로서 미래로 떠나는 하나님”이심. 그는 항상 미래에 대한 약속에서 인간을 만나는 하나님이심.

희망의 신학은 부활의 신학임.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의 첫 열매로 간주하고, 그 의미를 미래적인 관점에서 해석함. 즉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종말론적으로 해석함. 그는 전통 신학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성도의 부활의 역사적 신학적 토대로 간주하는 데 비해, 몰트만은 성도의 부활 그리스도 부활의 토대로 간주함.

 희망의 신학 = 부활의 신학

그는 신앙과 죄도 종말론적 관점으로 이해함. 신앙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약속의 기대, 즉 희망을 의미함. “신앙은 희망이 세워져 있는 기초이고, 희망은 신앙을 육성하고 유지시킨다.” 따라서 신앙이 없으면 희망은 “허공에 떠 있는 유토피아”가 되고, 희망이 없으면 신앙은 무너짐.

한편 그는 죄를 절망으로 정의함. 흔히 죄의 기원으로 이해되는 교만은 죄의 일면에 불과하며 희망 없는 것, 체념, 게으름, 비애가 죄의 다른 면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 용기를 잃는 것,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 죄임. 불신앙의 죄는 절망에 토대를 둔 것임.  죄 = 근심, 절망 = 용기를 잃는 것, 희망을 저버리는 것

그는 또한 세계에 대해서도 종말론적으로 이해함. 세계를 고정된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고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시간적 과정으로 생각함.

 

                  3. 교회의 사명

 

그는 하나님의 약속은 또 다른 세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함. 따라서 기독교 종말론은 세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임. 교회의 주요한 과제는 개인을 회심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사회 구조의 개혁임. 신학의 과제는 인간답게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봄.

그의 정치 신학은 이러한 교회관 신학관으로부터 유래함. 기독교인은 희망의 실현에 목표를 두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임. 희망의 성취는 많은 부분 인간의 노력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론 신학이 아니라 행동 신학임.

 

             Ⅲ. 희망의 신학 논쟁

 

1) 그의 일방성적인 신학이 문제. 그는 하나님을 미래의 존재로 정의함.

2) 교회의 사명을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사회 구조를 변혁시키는 것으로 봄. 이러한 정치 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침.

3) 미래적 종말론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함. 그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적임.

4) 그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계시를 약속으로 이해함. 그는 중도적 “말씀 - 역사 (Word - history)”로서의 개념을 발전시킴. 한편 몰트만의 미래 지향적 계시관은 정통주의의 계시관과 충 돌을 일으킴.

5) 그는 몰트만이 개인 영혼의 구원보다 사회 개혁에 우위를 둔 것이 비판을 받음. 그는 개인구원만 을 강조해온 전통적인 신학을 비판하는 한편,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강조함. 그래서 개인의 회심과 구원을 강조하기 보다 오히려 사회개혁을 교회의 주요한 과제로 간주함. 그래서 그의 신학에는 개 인의 영혼 문제가 약화됨.

 

결론

장점

희망의 신학은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성서와 신학의 주제들을 해석하려는 시도였음. 그는 종말론을 신학의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데에 큰 역할을 함.

단점

희망의 신학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지나친 일방성 편향성임.

1)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의 중심이나 전체가 아님.

2) 종말론의 미래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현재적인 측면을 축소시킴.

3) 하나님의 계시의 미래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과거와 현재적인 측면을 간과함. 따라서 그의 희망의 신학은 과거에 주어진 역사적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줌.

 

부록

※ 1) 그는 성령을 창조의 영으로 이해하는데 이것이 전통 신학과 대치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필 요.

2) 또한 그는 사회구조가 변화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다고 주장함(정치 신학)

3) 그의 신학은 내재적 신학 혹은 내재의 신학으로 평가됨

4) 그는 희망이 ‘자기 의식’으로부터 온다고 봄

 

 

    19장 해방 신학

 

서론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최대의 신학 논쟁은 해방 신학 논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특히 1984년 바티칸 교황청에서 열렸던 브라질의 해방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에 대한 세기적인 종교 재판은 해방 신학에 대한 로/카의 공식적이며 결정적인 태도 표명이었던 동시에 이 논쟁을 극적으로 표현해 준 사건이었음. 이것은 신교와 구교, 제1세계와 제3세계에서 널리 전개되었던 범세계적인 신학 논쟁이었으며, 아직도 계속되는 문제임.

해방 신학은 오랜 식민 통치와 군사 독재로 인구의 절대 다수가 빈곤과 억압 속에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로부터 가난한 자와 눌린 자를 해방시키려는 역사적 과제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였음. 즉 현재의 비참한 현실을 변혁하려는 것이 해방신학의 목적이었음. 이 신학은 1960년~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된 종교사상이 됨. 이 신학은 급진 신학뿐 아니라 북미의 여성, 생태학적 신학을 포함하는 현대의 큰 신학적 흐름을 형성함.

 

            Ⅰ. 해방 신학의 태동

 

해방 신학은 신앙의 특별한 실천에 토대를 둔 새로운 유형의 신학임. 이 신학은 가난한 자를 위한 신앙의 실천임. 또한 가난한 자를 만드는 구조와 제도에 대한 비판임. 그러나 해방 신학은 이것뿐 아니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라틴 아메리카 제국의 경제 및 정치적인 종속으로부터의 해방도 의미함.

이 신학이 발생된 세 가지 요인

1) 라틴 아메리카의 특별한 역사적 정황에 영향을 받음.

2) 정치 신학의 영향을 받음. 요한네스 메츠와 위르겐 몰트만의 정치 신학이 영향을 끼침.

3)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음.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분석의 이론적 도구와 역사 철학으로서 해방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침. 이 주의는 사회분석의 도구로써 변증법적 분석을 제시함.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부르조아와 프로레타리아, 억압자와 피억압자, 자본가와 노동자로 분석함. 역사 철학으로서는 인간의 문제를 사회적 또는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그리고 역사를 변화와 변혁에 개방된 것으로 간주됨. 해방 신학은 현실 분석을 통해 가난의 구조적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으로부터 도입함.

결국 해방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적 정황이 만들어 낸 신학임. 라틴 아메리카의 상황과 결부하여 가난한 자의 관점에서 복음과 신학의 주제들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기 때문에 상황 신학임. 전통 신학에 정통 교리를 추구하고 강조하는 반면, 해방 신학은 정통 실천을 실행하는 것을 신학의 출발점과 목표로 삼고있음. ※ 해방 신학 = 상황 신학

해방 신학은 성서적 근거를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에서 찾고 있으며, 가난한 자를 편드는 선택, 해방자로서의 하나님, 신학의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

이 신학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도입한 개념들과 합리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성서 해석학적 개념들을 새로운 해석의 토대로 삼음. 따라서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의 관계에서 정의함. 죄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삶의 터전으로 허락한 역사적, 정치적 세계의 왜곡을 의미함. 구원 역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나 죄로부터의 구원뿐 아니라, 현재의 역사적 현실로부터의 해방으로 해석함.

 

            Ⅱ. 해방 신학 논쟁

                          1) 해방 신학의 방법론

 

해방 신학은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과 이데올로기의 절대화는 거부함. 마르크스주의적 사회 분석, 계급투쟁, 폭력적 혁명의 개념을 신학에 도입함.

2) 해방 신학의 구원관 문제.

해방 신학이 구원과 해방을 동일시하거나 분명하게 구별하지 않은 것이 논란의 대상이 됨. 이것은 이 신학이 가난으로부터의 해방만을 강조하고 죄로부터의 구원을 소홀히 한데서 비롯됨. ※ 구원 = 해방

구원과 해방을 동일시하는 이해는 현세적인 메시야주의, 즉 정치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선포를 의미하며 전체주의 운동을 연상시키기 때문임. ※ 이것은 일종의 유대교의 메시야주의로의 귀환임. 이 문제는 영적 해방과 정치적 해방, 개인 영혼의 구원과 사회의 구원, 이 양자 중 어느 것에 우선권을 두느냐의 문제였음. 해방 신학은 정치적 해방과 사회 구원을 일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해방의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했고, 로마 교황청과 해방 신학 비판자들은 영적 해방과 개인 구원에 우위성을 부여함.

3) 신학과 정치의 관계성 문제.

이 학자들은 기독교의 복음과 신학이 정치적인 것이라고 생각함. 복음은 인간 삶의 성취에 대한 약속과 요구라는 반면에서 정치적이며, 신학은 삶에 대한 특정 견해를 변호하고 인간 번영의 비전을 제시함. ※ 해방신학(정치신학적 특징) ⇛ 번영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음.

 

결론

해방 신학은 성서 본문이 아닌 인간의 경험과 역사적 정황을 신학의 출발점 삼음. 이것은 이 신학이 마허의 방법론을 그대로 수용했음을 말해줌. 이러한 방법론상의 오류가 신학 내용자체에서 오류를 초래함. ※ 결국 신학 방법론의 문제는 신학함에 있어서 접근법에 대한 문제이기에 필연적으로 내용에 오류를 범함. 특히 죄와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영적인 측면을 약화시키고 정치적이고 번영적인 해방을 강조함으로 인하여 크나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

 

 

     20장 여성 신학

 

여성 신학 역시 전통 신학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됨. 전통 신학이 지닌 성 차별적이며 여성 억압적인 요소를 지적하고, 이를 여성적 관점에 근거하여 교정하려고 하는 신학임. 신학적 흐름으로 보면, 여성 신학은 해방 신학의 한 유형에 속함. 따라서 여성 신학은 해방 신학과 동일한 성격을 지님. 독특한 것은 여성의 인간화, 즉 여성 해방을 목표로 한다는 점임.

 

        Ⅰ. 여성 신학의 태동

 

여성 신학은 세계와 교회에서 여성의 억압과 불평등 구조를 자각하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에 의해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신학 운동임.

이 신학은 여성의 신학을 의미한다기보다 오히려 ‘페미니스트’ 의 관점을 지닌 신학을 의미함. 페미니즘은 “남성들이 누리는 권리와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획득하려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투쟁”으로 정의됨.

1960년대 여성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형성되어 여권 신장 운동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시작됨. 이러한 여성운동과 여성학에 대한 신학적 대응으로 일어난 것이 여성 신학임. 또한 남미의 해방 신학도 여성 신학의 태동에 큰 영향을 미침.

 여성 신학의 분석에 따르면, 성서와 전통 신학이 남성 중심적이며 여성 혐오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남성을 우월시하는 가부장 제도와 이원론적 세계관의 영향 때문이라고 함. 따라서 그들은 성서를 성 차별이 심한 가부장 문화와 관점의 산물로 간주함. 대표적인 예가 딤전 2:12임.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 아니하오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Ⅱ. 여성 신학의 발전

           Ⅲ. 여성 신학 논쟁

 

1) 성서 해석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문제.

2) 페미니즘과 기독교 전통의 관계 문제.

3) 그리스도론 역시 여성 신학자들 사이에 논란 거리 중 하나임.

여성 신학과 전통 신학자들의 논쟁점

1) 여성 신학의 타당성 문제.

2) 여성의 목사 안수 문제.

1970년대 초부터 일어난 여성 안수 운동은 아직도 논란의 대상임.

3) 성경 번역의 문제.

 

결론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잘못된 성경관은 성경의 초자연성을 거부하는 것임.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것은 삼위 일체 하나님에다 제4위를 첨부하는 것으로 이해함.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여성 신학은 전반적으로 왜곡된 신학인데다가 성경관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에 인간의 이성으로 신학한 거 밖에 안됨.

 

      21장 과정 신학 1: 알프레드 화이트헤드

 

서론
현대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두 가지 요인은 전쟁과 과학임. 1차 세계 대전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사상적 토대였던 낙관주의적 세계관을 무너뜨린 반면, 환멸과 염세, 절망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비관주의적 세계관이 널리 확산됨. 현대인은 전쟁과 죽음에 직면하여 인간적 노력의 무익함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임. 이런 분위기로부터 실존주의 철학에 기반을 둔 신정통주의 신학이 일어남.
한편 다윈의 진화론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 이론으로 과학적 세계관에 일대 혁명이 일어남. 화이트 헤드의 형이상학에 토대를 둔 과정 신학과 샤르댕의 진화론에 기초한 신학임. 과정신학은 미국에서 일어난 독특한 신학운동임.
전통 신학이 존재의 철학에 기초했음. 과정신학은 화이트 헤드의 과정 혹은 생성의 사상을 모델로 하여 현대 정황에 맞는 신학을 형성한 것임.
서구 사상의 대부분은 생성, 과정, 진화 등의 역동적인 개념보다는 존재, 실체, 본질 등의 정적인 개념에서 유래했음. 19세기 이후 생성, 과정 및 관계의 문제가 헤겔, 마르크스 등에 의해 철학적 논의의 주요한 주제가 되었음. 과정 사상은 미국에서는 제임스, 듀이, 화이트 헤드 등에 의해, 프랑스에서는 베르그송에 의해, 그리고 영국에서는 알렉산더와 모르간에 의해 발전되었음. 화이트 헤드는 철학자일 뿐 신학자는 아니었음.
과정 신학은 화이트 헤드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출발점으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 그의 철학 개념을 활용하여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임. 과정 신학이 신의 본성과 신과 관계를 중심 문제로 삼은 것이나 신의 내재성을 강조한 것은 화이트헤드의 영향이었음. 따라서 과정 신학의 토대는 화이트 헤드의 과정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과정 신학의 사상적 토대가 되는 것은 화이트 헤드의 유기체 철학의 핵심 내용과 그의 양극적인 신 개념임이므로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선행됨.

Ⅰ. 생애와 저작
화이트 헤드는 1861년 2월 15일 영국 성공회 사제의 아들로 태어남. 1880년 그는 수학 분야의 장학금을 받고 캠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음. 1884년 그는 "펠로우“로 뽑혀 이곳에서 수학을 가르쳤거, 버트란트 럿셀이 그의 제자였음.
그는 유기체의 철학, 즉 실재를 존재가 아닌 생성으로 보는 새로운 형이상학을 발전시켰고, 이는 과정 신학 발전의 토대가 되었음.

Ⅱ. 유기체의 철학
화이트 헤드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기초한 현대 물리학에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음.
그는 자신의 형이상학을 유기체의 철학 또는 과정 철학이라 불렀음. 이것은 실체를 과정 또는 생성의 범주로 이해한 데 근거한 것임. 예를 들어, 그는 과학과 현대 세계에서 자연의 성격을 분석하면서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라고 주장함. 존재와 절대성에 우위를 두는 전통적인 철학과는 달리 생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의 사상의 특징이었음. 이러한 그의 형이상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그의 실체 개념, 즉 현실적 존재, 영원한 대상 및 신에 대한 이론임.

     1. 현실적 존재

화이트 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이 우주가 무수한 사건 또는 계기로 구성된 유기체라고 주장함. 그리고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그런 기본적인 요소를 “현실적 존재” 또는 “현실적 계기”로 불렀음.

모든 현실적 존재는 계기와 사건으로서의 성격을 지님. 그는 과학과 현대 세계에서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의 입장을 대비함으로써 이것을 설명함. 고전 역학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물질의 이동으로 설명하는 반면, 양자 역학은 그것을 진동으로 설명함. 전자는 ㅂ빛의 방사를 물질적 에테르의 이동으로 설명했고, 후자는 어떤 주기를 지닌 진동으로 설명함. 그는 자연 현상을 이동으로 설명하고 실체를 지속으로 보는 고전적인 물질 개념을 거부하고 자연 현상을 진동으로, 실체를 지속으로 보는 물질 개념을 제시함. 그에게는 모든 사건이 과정이며 생성이었음. 진동과 진동 사이에 존재하는 도약과 단절은 곧 새로운 창조와 신기성의 출현을 의미함.

현실적 존재들은 양극성을 지니고 있음. 물극과 심극이 그것임. 어떤 현실적 존재도 이 중 하나를 결여하고는 존재할 수 없음. 데카르트가 물질과 정신을 두 종류의 독립된 실체로 간주한데 비해, 화이트 헤드는 그들을 한 실체의 두 속성으로 취급함.

 

     2. 영원한 대상

그는 현실 세계륽 현실적 존재를 합생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한편, 이와 대비되는 궁극적 실재로서 영원한 대상들과 신을 제시함.

영원한 대상은 추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 영원한 대상은 그 자체 속에 있으므로 그 본질은 어떤 특수한 경험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해됨. 특히 영원한 대상은 플라톤의 형상 개념과 유사함.

영원한 대상은 두 가지 본질을 지니는데, 개체성과 관계적 본질이 그것임.

그는 궁극적안 한정으로서의 신 개념을 제시함. 이 작인이 신임. 신은 맹목적인 현실태와 단순한 가능태의 무시간적 영역 사이의 매개자로 나타남.

 

Ⅲ. 양극적인 신

 

     1. 신개념

현실적 존재와 영원한 대상은 우주의 근본 요소이기는 하나, 그들만으로 체계적인 우주가 구성되는 것은 아님. 화이트 헤드의 형이상학 체계에는 이 양자와 함께 제3의 근본적인 개념이 있음. 현실적인 존재와 영원한 대상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신 개념이 그것임. 현실적 존재들은 영원한 대상들에 참여함으로써 일어나며, 이 양자를 중재하는 궁극적인 존재자가 신임. 신은 시간적인 것의 현실성과 가능적인 것의 무시간성을 결합함. 신은 양자의 요소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함.

그는 신을 한정의 원리 또는 구체화의 원리로서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봄. 그는 한정의 원리 또는 구체화의 원리로 정의하고, 이것이 모든 종교에서 예배의 대상이라고 선언했음.

※ 이로써 종교 다원주의의 큰 영향을 줌.

과정과 실재에서 그는 기독교 전통 신학을 지배해온 신관 가운데 세 가지 잘못된 신 개념들, 즉 부동의 동자, 절대군주, 냉혹한 도덕주의자의 개념을 비판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신 개념인 신의 양극성 이론을 제시함.

그는 근원적이며 실재적인, 초월적 창조자로서의 기독교 전통적인 신관의 두 근원을 가졌다고 봄. 아리스터텔레스의 철학 사상으로부터 유래한 부동의 동자로서의 신 개념과 기독교 신학이 선호한 “탁월하게 실재적인” 존재로서의 신 개념이 그것임.

그는 전술한 세 가지 신 개념과 구별되는 또 다른 신 개념을 기독교의 갈릴리적 기원에서 발견했음.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세계 내의 부드러운 요소를 강조함. 즉 부드럽게 사랑으로 역사하는 신의 개념임. 사랑은 지배하는 것도 부동적인 것도 아니며 도덕에 별로 관심을 갖지도 않음. 그것은 직접적인 현재에서 목적을 찾음.

 

     2. 신의 본성

그에 따르면, 신은 양극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음. 그는 신의 개념적인 본성을 원초적 본성이라 부르고 신의 물리적인 본성을 결과적 본성이라 불렀음. 이 두 본성의 구별은 신이 다른 현실적 존재들에 관계되는 방법과 관련되어 있음.

           (1) 원초적 본성

원초적 본성은 순수한 정신적 본성이라는 의미로 신의 절대성을 나타냄. 그는 신을 느낌을 위한 유혹이며 욕구의 영원한 충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음. 원초적인 본성으로서의 신은 초월적인 존재임.

         (2) 결과적 본성
결과적 본성은 신의 물극이며, 이것은 현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현실적 존재에 대한 신의 물리적 파악으로부터 생겨남. 또한 신의 결과적 본성의 또 다른 특징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임. 원초적 본성이 개념적인 감정에 존재하는 까닭에 의식을 소유하지 않는데 반해, 결과적 본성은 의식적임. 결과적 본성으로서의 신은 유한하고 제한적임. 또한 결과적 본성과 관련된 신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그의 무한한 인내심임. 이것은 세계를 구원하려는 신의 사랑을 의미함. 한편 결과적 본성은 현실적인 신을 의미함. 또한 신의 결과적인 본성은 영속적임.
요약하면, 결과적 본성은 파생적인 본성으로 유한하며 불완전하고 결과적이며 영속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면서 의식적인 것이 그 주요한 특성들임.
        (3) 양성의 관계
그에게 있어서 신은 일종의 현실적 존재임. 그는 실재가 나오는 구조인 동시에 실재의 전체임. 전자는 신의 원초적 본성이며, 후자는 결과적 본성임. 신은 이 두 본성으로 가능성의 전체와 현실성의 전체를 완전히 파악함. 이 두 본성은 또한 화이트헤드가 이해한 신이 추상적인 동시에 구체적이며, 영원한 동시에 시간적이며, 초월적인 동시에 내내적인 존재임을 말해줌.

결론
그의 그의 역사적 공헌점은 두 가지로 요약됨.
       1) 그는 현대 과학에 철학적 토대를 제시함.
       2) 현대 신학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인 과정 신학에 사상적 기초릂 제공함. 실체를 과정으로 해석하는 화이트헤드 형이상학은 현대인의 경험과 현대 과학적 세계관에 어울리는 유신론을 재구성하려는 신학적 시도에 사상적 단서를 제공함.

      22장 과정 신학 2: 과정 신학 논쟁

서론

좁은 의미로, 과정 신학은 화이트 헤드의 과정 사상에 근거하여 미국에서 일어난 신학 전통을 말함. 보다 넓은 의미로는 샤르뎅 또는 화이트헤드와 샤르댕 사상 모두로부터 유래하는 신학 전통을 가리킴. 화이트헤드가 과정 형이상학파를 대변한다면, 샤르댕은 과정 사상의 진화론파를 대변함.
샤르댕의 핵심 사상은 진화의 개념이었으며 신학의 중심개념은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이었음. 그는 진화의 오메가의 계시의 그리스도를 동일시함.

Ⅰ. 과정 신학의 태동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신 개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기초한 전통적인 신관과 같지 않았음. 따라서 신의 주권적 의지와 존재 자체로서의 신 개념을 강조하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입장을 변호하는 학자들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을 기독교에 수용하는 것을 반대함.

과정 신학은 1930년 이후 시카고 대학교의 신학부를 중심으로 일어남. 이로 인해 과정 신학파는 흔히 시카고 학파라고 불리기도 함. 특히 하트숀은 화이트헤드의 사상에 기초하여 고전적 유신론을 비판하는 한편, “신 고전적” 유신론을 제시. 고전적 유신론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완전하여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으며 셰계에 필요한 존재이나 그 자신은 세계를 필요로 하지 않음. 반면 신고전적 유신론에서는 하나님과 세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동적인 관계에 있음. 하나님은 세계 안에 있고, 세계는 하나님 안에 있음. 하나님과 세계는 상관적이나 동일한 것은 아님. 하트숀은 이것을 만유재신론이라고 불렀음.

이와 같이 미국의 과정 신학은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철학사상을 기독교 신앙에 도입하여 그것을 현대 세계의 정황에 맞게 재해석한 것임. 시카고 대학 교수로 과정 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제1세대 과정 신학자들은 위이맨, 윌리암즈, 루우머, 멜란드 등임.

제2세대 과정 신학자들은 오그덴과 캅, 피텐저임. 과정신학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그리핀, 하밀톤, 쿠씽 등이 있음.

과정 신학은 세 가지 흐름으로 전개됨. 첫 번째 흐름은 과정 신학의 합리적인 전통임. 하트숀이 이를 대변하며, 주로 신고전적 유신론을 주장함. 두 번째 흐름은 과정 신학의 경험주의적 전통임. 세 번째 흐름은 화이트헤드 사상 체계를 보다 명백하게 기독교 신학적인 방향에서 취급하려는 경향으로 캅이 이를 대변함.

 

Ⅱ. 과정 신학설

과정 철학은 존재를 실재로 보는 실체론적 존재론을 거부하고 생성과 과정을 실재로 보는 사상이며, 이것에 근거하여 기독교 신앙을 재해석한 것이 과정신학임. 따라서 과정신학자들은 신약 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적인 연구방법을 수용하여 성경의 기록을 문자적으로 참된 것으로 간주함.

      1. 양극적 본성
어거스틴, 안셀름, 아퀴나스 등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유신론은 하나님을 정적인 존재로 이해하여 완전한 선과 동일시함. 하나님을 인간의 희노애락에 참여하는 동적인 인격적 행위자로 이해하지 않고 불변적이며 고정적인 존재로 설명함. 과정 신학자들은 전통 신학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화이트헤드의 양극적인 신 개념에서 찾았음. 화이트헤드에 따르면, 신은 지고의 존재, 천지의 창조자가 아님. 위로하고 사랑하며 이해하는 신이요 세계 안에 구체적으로 살아 활동하는 신임.
과정 신학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는 양극적인 본성을 주장하는 것이 특징임. 과정신학은 하나님을 단순히 절대자로만 보는 전통 신학의 단일극적인 신론은 상대성과 생성이 결여된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화이트헤드의 양극적인 신 개념, 즉 신의 원초적인 본성과 결과적인 본성의 개념을 수용함. 하나님은 지극히 절대적인 동시에 지극히 상대적임. 하나님은 영원하고 불변적인 동시에 시간적이며 변화함.
하트숀에 따르면, 하나님은 추상적인 극과 구체적인 극, 또는 절대적인 측면과 상대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음. 추상적인 극에는 영원성, 절대성, 독립성, 불변성과 같은 필연적인 속성이 포함되며, 구체적인 두 극은 상호 보충적이며 한 하나님의 이중적인 면을 나타냄.
과정 신학은 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의 교리를 거부하거나 재해석함. 과정 유신론은 실체를 과정으로 이해하고 하나님 역시 과정과 변화 속에 있다고 보았음. 따라서 하나님의 불변성에 대한 고전적 교리를 거부하고 변화하는 하나님의 개념을 주장함. 또한 쿠씽은 “과정 신학의 하나님이 헬라 철학의 영원한 절대자보다 기독교인의 경험과 성서의 증거에 가깝다.”고 했음. 같은 이유로 과정 신학은 하나님의 무감각성(impassibility)의 개념을 부정함.
하나님의 인격성에 대해서는 과정사상가들의 의견이 분분함.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지만, 캅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인격자로 인정함. 한편 피텐저는 중간 입장을 택해 하나님을 인격적인 것의 근거이자 인격적 범주를 초월하는 분으로 묘사함.
과정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무시간성 혹은 영원성의 교리를 부정함. 또한 하나님의 완전성에 대해서도 전통 신학과 입장을 달리함. 양자 모두 완전성을 주장하지만, 완전에 대한 의미가 서로 다름. 전통 신학은 완전성을 더 이상 아무것도 첨부될 수 없는 또는 결코 능가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함. 그것은 완성된 또는 성취된 완전임. 반면 과정 신학은 하나님의 완전을 계속적으로 획득되는 것으로 취급함. 

      2. 만유재신론
과정 신학은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형이상학적 일원론에 근거하여 만유재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특징임. 그들은 범신론과 고전적 유신론을 수용할 수 없는 양 극단으로 취급함. 그리고 양자로부터 구별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만유재신론 또는 신고전적 유신론이라고 부름. 범신론은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시하는 데 비해, 과정 신학은 하나님과 세계를 동일시하지 않음. 만유재신론에 따르면, 하나님과 세계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내적 의존 관계에 있으며 하나님과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음.
요약하면, 과정 신학의 만유재신론은 범신론과 전통적인 유신론의 중심적인 관심사를 종합한 것임.

     3. 무로부터의 창조
화이트헤드는 하나님을 세계의 창조자나 지배자가 아닌, 진선미의 환상과 매력에 의해 영향을 미치는 “세계의 시인” 또는 세계의 “위대한 동료”로 간주함. 그는 하나님 자신이 변한다고 생각함. 이것은 전통적인 창조론에 대치됨. 과정 신학에 의하면 세계와 하나님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지만,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은 아님.

      4. 과정 기독론
과정 신학은 기독론을 신론처럼 철저히 탐구하지 않았음. 그리고 기독론은 거의 이단에 가까움.

 

Ⅲ. 과정 신학 논쟁

과정 신학의 여러 논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감각”의 원리임. 전통신학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떤 외적인 사건이나 원인에 의해 전혀 영향을 받을 수 없음. 하나님이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이다면, 그는 전적으로 자족적인 존재나 불변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임. 따라서 하나님은 고통이나 슬픔의 감정을 가질 수 없음. 이것이 무감각성 혹은 무고통성의 교리임.

 

결론

과정 신학은 기독교 신앙과 현대 과학 사상을 중재하고 종합하려고 한 시대적 산물임. 진화, 상대성, 유기체, 창조성 등 자연 개념들을 신학에 도입하여 기독교 신앙을 현대 지성인이 수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임.

전통 신학은 존재와 절대성을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음.

     1) 과정 신학은 전통 신학이 헬라 철학에 사상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비판함. 그러나 고대 헬라사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과정 신학도 전통 신학과 다를바 없음. 단지 존재의 형이상학이 아닌 생성과 과정의 형이상학에 의존하는 것이 다를 뿐임.

     2) 과정 신학은 하나님이 영원 불변하고 무감각하다는 것을 강조하는데 반해, 성경은 하나님이 신자의 기도에 따라 행동하실 뿐 아니라 후회도 하시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임. 따라서 전통 신학의 정적인 신관을 동적인 신관으로 수정함. 창조의 하나님을 진화와 변화의 하나님으로 만들었음.

     3) 과정 신학은 성서적 근거가 희박함. 따라서 과정 신학은 기독교 핵심 교리의 본질적 의미를 왜곡함.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 세계 창조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신성, 구속적 죽음, 부활 승천, 삼위일체와 육체적 부활의 교리를 거부함.

 

 

      23장 과정 신학 3: 슈베르트 오그덴

 서론

미국의 과정 신학은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철학에 근원을 둔 신학임.

시카고 학파는 과정 신학을 주도하였는데, 이러한 시카고학파의 제2세대에 속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이 오그덴과 콥임.

1928년 출생한 오그덴은 미국 오하이오 주 웨슬리레안 대학교와 존즈 홉킨즈 대학교를 졸업함.

오그덴의 신학에는 두 가지 주요 원천이 있음. 하나는 불트만 및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이요, 다른 하나는 하트숀은 및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임. 오그덴은 불트만을 자신의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음. 그는 하이데거나 불트만의 인간론을 화이트헤드와 하트숀의 신론과 결합시킴으로써 불트만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했음. 불트만의 실존주의적인 배경으로부터 출발하여 하트숀의 과정으로서의 신개념에 접근했음.

 

Ⅰ. 창조적 생성으로서의 하나

미국 과정 신학의 중심 주재는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임. 오그덴도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의 본성에 두었음. 그는 하나님의 본성과 하나님의 세계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해 인간의 경험, 관계성과 시간성 속에서의 인간 주체를 검토함. 그 결과 자아로서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몸과 다른 존재들을 둘러싸인 사회와 관계하는 것임을 발견함. 따라서 자아는 관계적 또는 사회적인 동시에 변화의 과정이나 시간적인 것을 해석함. 자아의 기본 범주는 존재나 실체(sbstance)가 아니라 과정 또는 “창조적 생성”임.

그는 이 존재의 유비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실체가 아닌 창조적 생성의 완전한 예, 사회적이고 시간적인 실재로서 규정함. 오히려 그는 계속적으로 자기 창조의 과정 속에 있는 살아 있는 하나님이요 성장하는 하나님임. 오그덴은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신고전적 유신론으로 불렀음.

 

Ⅱ. 신고전적 유신론

오그덴은 고전적인 유신론을 거부함. 그것은 해결할 수 없는 세 가지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임. 창조, 봉사, 그리고 관계성의 모순이 그것임.

그의 신고전적 유신론의 신 개념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음. 1)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에 참으로 관계하는 실재임. 하나님은 이 세계에 상관적일 뿐 아니라 또한 의존적임. 2) 하나님은 양극적임. 하나님은 단순히 절대자만은 아님.

그의 새로운 유신론은 아퀴나스의 초월적인 하나님과 스피노자의 내재적인 하나님 사이의 모순을 극복함.

 

Ⅲ. 신 중심적 기독론

오그덴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그의 계시관임. 그는 자연 계시를 원계시, 즉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원초적 시현으로 보고 이것을 시현 계시로 불렀음. 한편 이 시현 계시를 다시 표현한 것을 특수 계시 또는 재현 계시라고 부름.

그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여러 재현적인 계시 가운데 표준적이며 결정적인 한 예로 취급함. 따라서 인간의 구원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음.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항상 가능했던 것이 그리스도안에서 결정적으로 재표명되었다고 보았음. 인간 구원의 유일한 근원은 하나님의 원초적인 사랑임.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명백히 계시되고 있으나 그와 동일시되지는 않음. 다시 말하면 구원의 가능성은 그리스도의 케리그마와 같은 재표현된 계시에 근거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인 원계시에 근거한다는 것임.

 

      24장 종교신학

 

1: 종교 다원주의란 무엇인가

서론

Ⅰ. 종교 다원주의의 태동

비교 종교학이 발전함에 따라 비교 종교학자와 종교사 연구가들을 통해 다른 종교가 기독교와 동일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일어나게 되었음. 19세기 종교사학파의 대표자, 트뢸취가 좋은 예임. 그는 기독교 절대주의를 거부하고 종교의 상대주의를 주장함.

 

Ⅱ. 종교신학의 유형

1980년대 들어와 종교 신학의 학자들로는 존 힉, 레이스, 린드백, 카워드, 니터, 디 코스타 등이 있음. 폴 틸리히와 윌프레드 스미쓰는 기독교는 절대주의보다는 종교적 다원주의에 가까운 인물로 분류되고 있음. 한편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 양극 사이에 위치하는 입장이 있음. 로/카의 신학자들은 라너의 “익명의 크리스천”이나 파니카의 “미지의 그리스도” 개념이 이를 대변함.

영국 교회 신학자인 알란 레이스는 종교 신학을 세 가지 유형, 즉 배타주의, 포괄주의 및 다원주의로 분류함. 배타주의는 행 4:12과 요 14:6에 근거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만이 유일하고 참된 진리이며, 구원은 교회에만 있다는 주장임.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 바르트, 브룬너, 크래머가 이를 대변함. 포괄주의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신학에 근거한 것으로 다른 종교에도 진리가 있을 수 있지만 구원에 이를 정도로 충분하지 못함으로 구원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함. 교부 시대의 순교자 저스틴, 제 2 바티칸 공의회 문서, 라너 등이 이 입장에 속함. 다원주의는 틸리히, 스미쓰, 힉, 트뢸취, 트인비 등이 여기에 속함.

1974년 7월 16-25일 스위스 로잔에서 모인 세계 복음화 국제 대회는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강조점인 성서의 절대적 권위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을 재확인함.

 

Ⅲ. 종교 다원주의의 근거

       1) 모든 종교는 상대적이라는 신념임.

       2) 모든 종교는 동일하다는 신념임.

       3) 모든 종교는 공동의 심리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 스위스의 칼 융이 대표적임.

로/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5) 선언문을 통해 포괄주의적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함.

 

결론

 

다른 종교에 대한 기독교의 태도는 성서적이어야 함. 그런데 종교 다원주의는 비성서적인 것이 문제임. 그것인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이성적 방법으로 문제해결을 시도한 끝에 그리스도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비성서적 결론에 도달함.

종교 다원주의 문제점
      1) 모든 종교의 동일성 주장. - 종교의 상대주의 주장
      2) 성경대신에 인간의 이성과 인도주의에 근거함.
      3) 영생에 이르는 유일한 길과 좁은 문을 넓히려는 인간적인 시도임.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적 다원주의를 절충하여 그 중간을 가려는 것이 포괄주의임. 그러나 포괄주의는 양심대로 산 사람은 영생을 얻을 수 있다든지, 익명의 그리스도인, 미지의 그리스도 개념, 그리스도 개념, 그리스도와 예수의 분리 등의 개념을 수용함으로써 원칙으로부터 반쯤 벗어난 것으로 이해됨. 양심도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 하는 문제가 생기므로 양심심판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 역시 경계해야 함.
비기독교권의 구원 문제는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것이 성서적이고 복음적임.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판단하실 것임.

 

     25장 종교신학 2: 종교 다원주의와 가톨릭 교회

서론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5)를 분수령으로 하여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전통적인 교회중심주의와 배타주의에서 타종교와의 포괄주의로 전향함. 가톨릭 교회의 관점은 교회 중심주의로부터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그리고 다신 신 중심주의로 이동하고 있음.

 

Ⅰ. 전통적인 입장

2세기의 키프리안은 교회를 노아의 방주로 해석함. 그러므로 교회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

4세기의 어거스틴 역시 교회를 그리스도의 영역과 신비스런 몸으로 해석함으로 기독교 절대주의 주장.

한편 동방교회에 속하는 저스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안디옥의 테오필루스, 아테나고라스 등은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종국성을 고수하는 동시에 참된 계시와 구원의 가능성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다는 입장을 취함.

그러나 이러한 고대 교회의 입장은 중세에 이르면서 철저한 배타주의로 입장이 정리됨. 1215년 라테란 공의회는 키프리안의 신조를 강화하여 “교회 밖에는 전혀 구원이 없다”고 선언함. 1302년 교황 보니파스 8세는 교회 밖에는 구원도 죄의 용서도 없다는 것과 교회에 복종하는 것이 구원에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천명함.

 

Ⅱ. 현대적인 입장 - p 426~430.

 

결론 - p 430~431.

 

<부록>

 

1장 현대 구미 신학의 특징과 21세기 신학

  서론

하나는 구미신학의 총체적 특징이요, 다른 하나는 21세기 신학임.

이 중에서도 논의의 초점은 후자, 즉 21세기 신학에 있음. 21세기 신학을 논하기 위해서라면, 현대 구미신학의 특징을 정리하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 생각함. 따라서 이 문제 역시 논의의 범위를 포스트모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 두 가지로 제한하려고함.

포스트 모던 신학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며 지금 형성과정에 있는 신학임.

 

Ⅰ. 창조적 생성으로서의 하나님

서구 지성사는 현대는 르네상스에서 잉태되고, 계몽시대에 출산되었음. 계몽주의는 인간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이성을 진리의 척도로 간주하는 현대 정신의 길을 열었음. 계몽사상의 특징, 곧 현대성의 기본 이념은 대략 세 가지,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기계적, 이원론적 세계관, 그리고 진보에 대한 신앙으로 요약됨.

현대 정신은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도전이 되었음. 왜냐하면 비판적 합리주의와 과학적 실증주의는 성서의 역사적 확실성에과 신학의 모든 전제들을 문제시하고 비판했기 때문임.

현대 세계와 사상의 도전에 직면하여 19세기 초 신학적 응답으로 일어난 것이 현대 신학임. 특히 마허는 신학방법론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음. 신학을 계시에 대한 연구로부터 인간의 종교 경험에 대한 연구로, 신학의 중심을 하나님에서 인간으로 전환시킨 것임. 이로 인해 그를 현대 신학의 아버지로 부름.

 

      1. 현대성에 대한 적응

현대 구미신학의 중심 과제는 현대성에 대한 적응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20세기의 신정통주의 신학, 최근의 세속화 신학, 해방 신학, 과정 신학 등은 외형적으로 볼 때, 매우 다른 형태의 신학들임.

기독교의 현대화는 두 가지 방법임. 번역자와 변혁자로서의 접근임. 전자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형태로 새롭게 표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기독교의 메시지의 기본 내용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보수주의 신학자들의 관점임. 후자는 기독교의 메시지를 현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내용상의 심각한 변화도 감수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관점임. 그들은 기독교 진리를 재 표현하거나 진술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필요한 경우 그것을 새로운 메시지로 대체하려고 함. 특히 1960년 이후 출현한 대부분의 급진신학자들은 변혁자에 속함.

 

      2. 종교적 경험

현대 구미 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종교적 경험을 중시하고, 그것을 신학작업의 주요한 자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임.

마허는 인간의 종교 의식을, 그리고 리츨은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의 경험을 신학의 근본 자료로 간주함. 따라서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중심적이요 주관주의적 성격을 띄게 됨. 반면 20세기 일어난 신정통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하게 된 것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작용함.

 

      3. 시대적 상황

신학은 그 기초가 두 개의 극(pole)을 가지고 있음. 성서의 메시지(text)와 시대적 상황(context)임. 서구의 정통신학은 메시지만 강조하고, 상황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음. 성서 본문이 신학세계의 전부였음. 텍스트만 있고, 컨택스트는 없었음. 반면 현대신학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정황에서 신학의 발전을 추구하고 있음. 신학이란 그 시대 교회에서 널리 유행하는 교리를 체계화하는 학문임.

현대신학은 상황 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님. 특정 상황이 특정 신학을 만들어 냄.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이성의 능력을 신뢰하고 역사적 진보를 확신하는 낙관주의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일어남. 그렇지만 20세기 초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이라는 비극적 사건에 직면하자 사상적 기반을 잃고 붕괴되었음. 신정통주의 신학은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 사상을 신학에 반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음.

 

      4. 신학적 관심의 전환

현대 구미 신학은 현실에 대한 적응의 하나로 신학 방법론의 전환, 즉 인간의 경험과 시대적 상황을 중시하는 방법론을 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학의 주제와 관심의 대상을 바꾸고 있음.

 

Ⅱ. 21세기 신학

 

학자들은 현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기대, 즉 현대 후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지적함. 20세기 초 오스왈드 스펜글러는 서구의 몰락을 경고하고 새로운 기대의 도래를 예고했으며, 앨런은 현대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네 개의 기둥, 즉 자족성, 이성, 진보 및 낙관주의가 붕괴되고 있다고 보았음. 토마스 오든은 현대성은 죽었으며, 그것은 어디에서나 분명하다고 주장함.

     1. 포스트모던 신학
포스트모던이란 용어는 현대로부터 현대 후기로의 역사적 전환을 나타내기 위해 1930년대부터 사용된 것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정신의 이념, 원리 및 가치를 문제시하는 20세기 후반의 지성적 분위기를 표현하는 말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단절과 계승, 두 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으로부터 단절한 것은 개인주의, 인간 중심주의, 관념론 등이라면, 계승한 것은 비판적 사고, 개인에 대한 관심, 자유에 대한 헌신, 탐구의 자유 등임.
          1) 현대의 이성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요 반작용임.
          2) 새로운 세계관임. 현대 세계관이 기계적이요 결정론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은 관계적이요 비결정론적임.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를 완성된 기계장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되고 계속적으로 창조되는 내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역동적 연계체라고 간주함.
          3) 통전주의(wholism)임. 인간과 객관적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가 현대 정신을 지배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정신이 분리한 것을 다시 결합하며, 인간과 세계 사이의 존재론적 연속성을 주장함. 전체에 대한 관심이 포스트모던적 의식에 중심을 이루고 있음.
          4) 염세주의와 상대주의적 경향임.
          5) 다원주의임.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심성의 상실과 표준의 해체임. 그것은 유일성을 부정하고 다원성을 강조함.
포스트모더니즘은 하나의 현상이 아닌, 다양한 현상을 의미하며, 그것에 대한 통일된 정의도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에 두 형태가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음. 해체주의와 건설주의임. 해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의 본질에 대한 현대의 가정들을 해체하고 파괴하려고 함. 그들은 해체를 허무주의적 파괴 아닌 잘못된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치료로 이해함. 해체주의는 서구 정신의 자기 파괴의 표현이며 파괴가 곧 구원의 도래를 촉진한다는 역설임. 한편, 건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정신을 거부하기보다 개정하려는 것임. 현대 과학의 통찰력과 지혜를 수용하는 한편, 현대인 관점에서 과거의 전통을 재평가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 가다머와 과정사상가들이 이를 대변함. 이 두 형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의 지성적 낙관주의를 거부하고 현대 세계관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해체하는 방법을 택하는 반면, 건설주의는 현대의 전제들을 개정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음.

머어피와 맥클렌돈은 현대 사상의 세 가지 축, 즉 인식론적 축으로 기초주의적 인식론, 언어학적 축으로 표상 효현주의적 언어론 그리고 형이상학적 축으로 개인주의 또는 환원주의를 설정하고, 이것으로부터 벗어난 사상을 포스트모던으로 정의함. 그리고 린드벡, 티이만, 콕스, 알타이저, 테일러의 최근 저서들에 대한 검토와 분석에 근거하여 많은 신학자들이 포스트모던으로 분류되지만 현대성으로부터의 이탈 정도는 각각 다르다고 주장함.

그리핀은 포스트모던 신학을 네 가지 기본 형태로 분류함. 해체신학, 해방신학, 건설신학 및 보수주의적 포스트모던 신학임. 한편 존 캅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해체주의와 과정사상, 두 형태로 구별하고 있음.

어떤 것이 포스트모던 신학인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흔히 포스트모던 신학의 대표적 형태로 지적되는 것은 해체신학, 과정신학, 해방신학, 보수주의신학 또는 근본주의신학임.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과 과학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이성의 자율성, 과학의 효능, 역사의 진보를 맹목적으로 신뢰한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그 환상을 깨뜨린 것이 그 주요한 공헌으로 여겨짐.

 

     2. 복음주의 신학

현대 들어 복음주의란 말은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 두 가지로 사용되고 있음. 넓은 의미의 복음주의는 18세기 부흥운동을 계승한 신앙전통을 말한다면, 좁은 의미는 그 하부 그룹인 신복음주의를 말함. 최근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 복음주의 학자들은 대부분 신복음주의자에 속함. 따라서 신복음주의의 최근 동향은 21세기 복음주의 신학을 전망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

근본주의는 현대주의와 자유주의에 맞서 초자연주의를 옹호하며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를 성실히 보존하는데 공헌함. 반면, 지성적인 면에서는 여러 문제를 일으켰는데, 학문을 불신하고, 합리적 추론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했음. 신앙을 이성에 반대적인 것, 또는 합리적 분석이나 비판적 평가에 의해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함. 이것이 신앙에 대한 추론을 거부하는 비교화주의(obscurantism)를 일어나게 함.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 영향권에서 성장한 온건한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의 운동이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중간에 위치하기를 선호하는 북미 개신교 내의 제3세력임. 신복음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오켄가, 칼 헨리, 카넬 등 근본주의 영향권에서 성장한 젊은 학자들이 근본주의 모순을 자각하고 그것을 개혁하려 하는 것에서 태동됨. 그들은 정통교리를 유지하면서도, 학문적 연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회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표명함.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문화를 변혁시키는 복음에 대한 비전을 회복함.

신복음주의는 1950년대 미국에서 중요한 대중운동으로 성장했고, 1970년대 초에 이르러서 그 중요성이 널리 인정됨. 신복음주의는 1970년대에 성경 무오성 문제로 보수적 복음주의와 진보적 복음주의, 두 그룹으로 분열되는 진통을 겪기도 함. 전자는 근본주의 입장을 계승하여 무오를 신앙에 대한 테스트로 강조한 반면, 후자는 무오가 성서의 권위를 정의하는 방법으로는 너무 편협하다고 생각하고 대부분 성경의 제한적 무오를 주장함. 보수적 복음주의자로 분류되는 인물은 오켄가, 칼 헨리, 빌리 그래함 칸저, 린드셀, 칼슨, 웰스, 놀 등임. 진보적 복음주의에 속하는 인물은 넬, 토마스 오든, 래드, 램, 블로쉬, 핀녹, 그렌츠 등이며, 학교는 풀러 신학교, 위튼대학, 골든 콘웰신학교 등임.

복음주의는 전통적으로 체험과 정서를 강조한 반면, 지성과 교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음. 이것은 복음주의의 스캔들로 지적되기도 하고, 심지어 복음주의에는 신학이 없다는 평을 듣기도 했음. 신복음주의의 출현은 현대 미국교회에 복음주의의 부흥을 일어나게 했으며, 보수주의 학계에 반지성적 경향이 개선되는 새로운 지성적 활력을 불어넣었음. 복음주의 지성의 르네상스를 이룩하고, 복음주의 서적 출판 등이 활성화 되었음. 신복음주의의 중요한 업적은 현대 후기의 급진 신학에 굴복하지 않고 근본주의적 극단성의 늪으로부터 복음주의 교회와 신학을 구출하는 데 크게 공헌한 것임.

1990년대 이후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음. 따라서 이들은 21세기 복음주의 신학계를 주도할 것이라고 봄.

놀은 프랜팅가, 웰즈와 공동 집필한 “복음주의 신학의 오늘날”에서 복음주의의 스캔들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으로 복음주의 신학의 갱신을 제의하고 있음.

그렌츠의 복음주의 신학의 수정: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의제에 따르면 그는 복음주의 신학의 중요한 요소들을 성서적이며 복음주의적 조명 아래 재고하며 신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제의함.

그렌츠의 수정 복음주의는 20세기 후기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와 특히 신학 방법론에서 구별됨.

          1) 성서와 신학적 상황을 강조함. 신학은 항상 문화적, 역사적 조건이 주어지는 상황적 학문이며, 항상 변하는 것임. 신학자들은 “그 시대의 아이요 그 시대에 전달자”임. 따라서 그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서의 영원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그들의 문화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함.

          2) 신학의 3규범 또는 기둥을 주장함. 근본주의적 복음주의는 성서를 신학의 유일한 규범으로 간주함. 반면, 최근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점증적 지지를 얻고 있는 신학 방법론이 “웨슬리의 4변형”임. 웨슬리는 신학적 권위의 근거를 성경, 전통, 이성, 경험에 두고 이 네가지 근원이 언제나 균형을 유지하는 상호의존적인 4변형의 신학을 전개함. 그랜츠는 웨슬리의 4변형을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 신학의 3규범을 제시하고 있음. 그것은 성서의 메시지, 교회의 신학적 유산 그리고 현대의 역사 문화적 상황임. 이것은 그렌츠가 웨슬리의 4변형 가운데 경험을 삭제한 것으로 이해함. 그는 경험을 신학적 과제의 초점으로 간주하고 있음.

핀녹은 보다 구체적으로 교리적인 면에서 수정을 가하고 있음. 그의 개방적 신론, 포괄주의적 구원론, 조건적 불멸설 등이 그것임.

개방적 신론(the open view of God)은 기독교 전통적 신론이 하나님의 정적이며 초월적 면을 강조하는데 반해 하나님의 내재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견해임. 전통적 신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법적인 이미지로 이해하는데 비해, 개방적 신론은 가족적 이미지로 이해함. 하나님은 발전적일 뿐 아니라 개방적임. 스스로 사랑 가운데 세상에 의해 한정받으며 그의 명령과 체험도 세상의 사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음. 개방적 신론은 기독교 고전적 유신론과 과정신학과 신고전적 유신론의 중간 길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며, 이를 지지하는 복음주의 학자로는 핀녹 이외에도, 보이드, 프랭클린, 라이스 등이 있음.

포괄주의적 구원론은 기독교 절대주의와 종교 다원주의를 절충하는 입장으로, 다른 종교나 문화권에 있는 경건한 사람은 사실상 기독교인이므로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임. 대부분의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기독교 절대주의를 주장한다고 말할 수 없음. 그래서 그들은 구원의 범위를 보다 넓게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음. 그 중 하나가 핀녹의 온건한 포괄주의임. 그는 기독교 신학은 구원의 보편성과 포괄성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함. 따라서 핀녹은 다른 종교들도 인류 구원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봄. 완전한 구원을 제시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은 복음을 준비하는 것임.

조건적 불멸설은 인간은 원래 유한한 존재이며, 불멸성은 하나님이 신앙을 조건으로 인간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주장임. 신자는 불멸, 곧 영생을 누리게 되는 반면, 불신자는 존재의 소멸에 이르게 된다고 주장. 그것은 악인의 최종적 파멸을 지옥의 본질로 이해함. 이 견해는 전통적 견해가 사랑과 은총의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임. 현대 복음주의자 가운데, 조건적 불멸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이 있음. 존 스토트, 필립 휴그스, 존 웬헴, 핀녹 등임.

요약하면, 현대 복음주의는 대중 운동으로서는 성공했으나, 신학 및 지성적인 면에서는 실패함. 그것은 근본주의의 반지성적 경향 때문이었음. 이러한 복음주의의 지성적 스캔들은 신복음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어느 정도 극복되기 시작했음. 그러나 신복음주의는 보수적 복음주의와 진보적 복음주의로 분열되었음. 21세기 복음주의 신학은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리라 예상됨.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의 실패를 지적하며, 성서적 기독교의 재발견과 정통 기독교 신앙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이며,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은 현대 사상과 상황에 개방적 태도를 취하며, 그것에 근거하여 기독교 전통신학을 개정하려고 할 것임.

 

2장 포스트모너니즘과 포스트모던 신학

 서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는 문학, 예술, 건축, 철학, 사회이론, 매스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하나의 현상이 아닌 여러 현상을 의미함. 이 사상은 그 실체가 완전히 드러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형성 과정에 있음.

 

Ⅰ. 현대의 종말과 포스트모던 시대의 출현

포스트모더니즘은 서구 사회의 지성적 관점임. 그것은 현대 세계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현대성의 모순과 부작용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되었음.

서구 정신 문화의 역사는 흔히 세 단계로 구분됨. 전근대, 근대, 후기근대임. 전근대는 고대, 중세, 종교개혁시대를 포함하며, 우주론과 형이상학이 사상적 중심임. 특히 그리스의 사변적 우주론과 기독교의 신학적 우주론이 결합됨. 세계를 하나의 유기체로 간주한 것이 이 세계관의 특징임.

근대는 르네상스에서 준비되고 계몽시대에서 시작되었음. 계몽시대의 특징, 곧 현대성의 기본이념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됨.

          1)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임. 현대는 이성의 시대며, 현대성의 이념적핵은 이성 중심주의, 즉 합리주의임.

          2) 기계적, 이원론적 세계관임. 근대는 17세기 과학혁명과 더불어 시작됨.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 뉴톤 등이 사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킴. 중세의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그리고 자연을 거대한 유기체로 간주하는 중세의 자연관은 뉴톤의 기계적 자연관으로 대체됨. 현대인은 자연을 물체들의 단순한 운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질서 있는 기계로 이해하게 됨. 한편 데카르트는 우주를 물질과 정신의 영역으로, 그리고 칸트는 현상과 실재의 영역으로 나눔. 이런 이원론이 현대 세계관의 또 다른 특징이 됨.

          3) 진보에 대한 신앙임. 역사의 진행을 반복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순환론이 고대의 지배적 견해였다면, 그것을 발전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진보론이 현대적 사고의 특징임. 계몽시대는 진보에 대한 신앙의 시대임. 현대 정신은 지식을 확실하고 객관적이며 좋은 것이라고 가정함. 또한 현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삶의 질을 향상시켰으며 진보가 불가피하다는 낙관주의적 전망을 확산시킴. 낙관주의는 평화적 분위기, 급속한 산업화, 민주적 정치구조, 역사의 진행에 대한 진화론적 해석, 과학에 대한 신뢰 등으로부터 유래함.

현대성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분리주의였음. 현대 정신은 자아와 세계의 통일 의식을 파괴함. 인간의 정신을 객관적 세계로부터 분리시킴. 데카르트는 사유하는 인간의 주체(주관)와 자연적 대상(객체)을 예리하게 구별함. “현대 세계는 분리된 세계요, 깨어진 세계다.” 전체를 부분들로 나누는 환원주의가 현대주의자의 방법론임.

현대에 대한 비판은 19세기 니체로부터 시작됨. 니체의 비판은 계몽시대의 개념 거부에 토대를 둠.

엘렌에 따르면, 현대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네 기둥이 붕괴되고 있음. 자족성, 이성, 진보, 그리고 낙관주의임.

1차 세계 대전은 근대로부터 근대 후기로의 대 전환 시기였음. 포스트모던니즘이란 용어는 이 역사적 전환을 나타내기 위해 1930년대에 처음 사용됨. 1939년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현대는 제1차 세계대전과 함께 종료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확신하고 포스트 모던이란 용어로 그것을 표현함.

많은 학자들, 특히 미국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으로부터의 이탈과 단절 또는 그것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으로 이해함. 이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은 탈모더니즘으로 번역됨. 한편, 다른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계승과 발전으로 생각함. 포스트라는 접두어는 단순히 모더니즘에 다음에 오는 후 시성을 가리킬뿐 단절이나 이탈을 의미하지는 않음. 또한 중도적인 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과 모더니즘의 관계를 단절 또는 계승의 양자 택일적 관점이 아닌, 양자 모두를 포용하는 관점에서 이해함. 존 캅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성에 속한 것 중에 거부한 것은 개인주의, 유물론적 원자주의, 인간중심주의, 관념론 등인 반면, 계승한 것은 자기 비판주의, 개인에 대한 관심, 인간 자유에 대한 헌신, 탐구의 자유 등임.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주의의 논리적 발전이며 계승인 동시에, 현대주의에 대한 비판적 반작용이며 의식적 단절로 정의될 수 있음.

 

Ⅱ. 포스트모더니즘의 본질과 특징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정신 사조의 핵심이며, 원리 및 가치를 문제시하는 지성적 분위기와 문화적 표현”을 의미함.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적 정서는 대개 부정적 성향을 지니고 있음.

     1)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의 이성 중심주의와 보편주의 형이상학 전통에 대한 반성이며 반작용임.

     2) 포스트모더니즘은 세계를 보는 새로운 관점임. 그것은 현대의 세계관, 즉 객관적 세계관의 종말 을 의미함.

     3) 포스트모더니즘은 통전주의적임. 현대의 세계관은 이원론적임.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정신이 분리한 것을 재결합하며, 인식하는 인간 주체와 인식되는 객관적 세계 사이의 존재론적 연속성을 재확인함.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은 전체에 대한 관심, 인격적, 우주적 통합에 대한 관심임.

     4) 포스트모더니즘은 염세주의와 상대주의적 경향을 지니고 있음.

     5) 포스트모더니즘은 중심성의 상실, 표준의 해체임.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은 다원주의임.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의 유일성이나 전체성을 철거하거나 교정하는 반면, 다원성을 강조함. 포스트모더니즘의 대표적인 것은 해체주의와 건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임.

해체주의는 언어와 개념에 선행하여 존재하는 실재에 결코 이를 수 없다고 주장함. 또한 세계관의 필수 요소인 하나님, 자아, 목적, 의미의 제거를 통해 현대 세계관을 파괴하고, 신과 도덕성의 죽음 및 진리의 소멸을 가정함. 자아는 순전히 관계적 감각 현상을 말하며, 자유란 존재하지 않음. 그러나 해체주의에 따르면, 해체는 허무주의적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치료적 역할을 의미함. 즉 잘못된 개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임.

해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가는 푸코, 데리다, 로티 등임.

반면, 건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정신에 대한 항거로 일어났음. 그것을 거부하는 대신, 개정하려는 것임.

건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사상을 철학적 토대로, 그의 창조성의 개념을 변화의 모델로 수용함. 건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 과학의 통찰력과 지혜를 수용하는 한편, 현대인의 관점에서 과거의 전통을 재평가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

 

Ⅲ. 포스트모던 신학

 

     1. 포스트모던 신학의 태동
포스트모던 신학은 현대 후기 세계관과 문화 및 의식의 전환에 대한 신학적 응답으로 이해될 수 있음. 포스트모던 정황의 조명 아래 기독교 메시지를 해석하려는 것이 포스트모던 신학임. 그렇다면, 포스트모던 신학운동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토인비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점이 그 결정적 전환점임. 칼 발트가 포스트모던 신학의 출발점으로 지목될 수 있음.

      2. 포스트모던 신학의 조류
포스트모던 신학은 여러 흐름과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데, 죤 캅은 해체주의와 과정사상으로, 그리고 칼 헨리는 해체적 접근과 건설적 접근으로 구별했음.

          1) 해체주의적 신학

해체주의적 신학은 푸코와 데리다로 대변되는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한 신학임. 그것은 전통적 가치 체계에 근거해 전개된 부정적 성격의 신학임. 그것은 하나님, 자아, 목적, 의미, 실제적 세계의 존재를 부정하고, 일체의 세계관을 파괴함.
이 신학의 대표로 간주되는 사람은 막크 테일러임. 이 사람의 해체주의적 신학은 상대주의와 허무주의로 귀결됨. 초월적 하나님뿐 아니라 참 세계를 거부하는 극단적 허무주의 신학을 구성함.

          2) 건설주의적 신학
건설주의적 신학은 건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한 긍정적, 적극적 성격의 신학임. 대표자는 존 캅과 데이비드 그리핀임.
그리핀은 해체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을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닌, 초현대주의 또는 최고의 현대주의로 취급함. 왜냐하면 그것은 현대성의 일부 전제들의 논리적 결론으로부터 유래한 것이기 때문임.
건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성의 빗물활론을 개정하여, 신물활론, 즉 자연적 유신론을 주장함. 그것은 모든 현실적 개체들의 자발성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다는 견해임. 그 개체들에서 구현되고 있는 궁극적 실재가 창조성임. 자연적 유신론은 감각 배후에 있는 실재를 세계와 상호 작용하는 유기체로 이해함. 그것은 화이트헤드의 만유 재신론과 같은 것임.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있고, 모든 것은 하나님 안에 있음.
그리핀은 자연적 유신론에 근거하여 생태학적 포스트모던 신학을 주장함.

           3) 해방주의적 신학
하비 콕스는 세속도시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음. 그는 기독교의 철저한 세속화를 주장함. 세속화는 종교를 무시하며 종교적 세계관을 상대화시키는 것임.

결론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의 시대정신이요, 새로운 세계관임. 그것은 하나의 운동이나 경향이 아닌, 여러 현상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명칭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계승과 단절, 양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합리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 관계적 세계관, 통전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으로 요약됨.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헌은 현대 이성과 과학의 한계를 지적한 것임.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의 자율성, 과학의 효능, 역사의 진보를 맹목적으로 신뢰한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그 환상을 깨뜨림.

단점

          1) 상대주의적 입장은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함.

          2) 포스트모더니즘의 무중심주의는 통일된 중심이 있으며, 그 중심이 기독교 신앙과 충돌함.

          3)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교리, 즉 거대 담론의 거부는 기독교 신앙과 충돌함.

          4) 다원주의 또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함.

 

[출처] 목창균의 「현대신학논쟁」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