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루케이도 필립 얀시 유진 피터슨 릭 워렌 조엘 오스틴 문제점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엇보다 분별력 (Discernment) 이 필요합니다.
“우는 사자가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 선교회에는 하루에도 전 세계에서 수 많은 성도들이 <목사의 신학> 이나 <서적의 내용> 을 고발하기도 하도 <신학>을 문의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신학의 기초도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Belgic Confession, Heidelberg Catechism, Canons of Dort,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같은 역사적 신앙고백서에 정통하면 곧 바로 지적해 낼 교리상의 오류들인데도 자신이 무식하기 때문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다른 예수”를 가르치는 사람 (고린도후서 11장) 들은 머리에 뿌리가 있고, 험상궂게 생기고 빨간 만토를 입고 꼬리가 달린 별나게 생긴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잘 생긴 미남자 “부흥강사,” “유명신학교 교수” “유명 대형교회 목사” 미국의 큰 신학교 졸업생들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동부 Pennsylvania 주에서 이곳 미국 서부로 이사와서 목사들에게 너무 많이 사기를 당하여 이제는 “목사” 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은 일단 의심스러운 눈으로 대합니다.
몇 년 지나면서 대화해 보고 나서야 마음을 줍니다.
너무도 사이비 신학교가 많고 너무 사이비 “목사” 가 범남하기 때문입니다. 이떤 분은 심지어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면서 비행기 안에서 “목사로 안수” 받은 분도 있을 지경입니다.
그러면, 질문 내용을 하나씩 보도록 합시다.
질문하신 여러 목사들 중에 Andrew Murray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개혁주의 성도로서 권할 분이 없습니다. Andrew Murray 는 화란 사람으로 Scotland에서 목회하던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복음주의 신학으로 부흥을 외친 사람이니 일단 안심하고 그의 책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Eugene Peterson (유진 피터슨)은 (더 메시지) 라고 불리는 성경을 만든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번역했다는 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첫째, 장 (chapter, 章) 의 구별은 있지만 절 (verse 節) 의 구별은 없이 성경을 소설 쓰듯 써나갑니다.
절수가 없으면 성경공부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물론 성경의 장과 절을 구별한 것이 원래 성경기록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저작연대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16세기 1550년에 프랑스의 인쇄업자이며 신학자였던 Robert Estienne (일명 Stephanus) 에 의하여 처음 출현한 것이지만 지금까지 장과 절을 구별하여 성경연구에 도움을 주었는데 절을 무시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원래 문학을 좋아하는 Peterson 은 TBN (Trinity Broadcasting Network)에서 interview 에서도 말했듯, 책 읽기를 좋아하고 특히 소설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라는 성경은 Paraphrase (설명조로 쓰기) 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세계 여러나라 말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한글 성경도 “관주성경‘ 같은 것은 오래된 것으로 19세기 말에 서상윤 (徐相崙) 이란 학자가 한문성경에서 우리 말로 번역한 것이며 그 후에 나온 한글 성경은 지금 열 가지가 넘으리만큼 종류가 많아 졌습니다. 영어로 된 성경은 무려 100가지가 넘습니다.
Latin 어로 된 Vulgate 판 (Jerome 이 5세기에 LXX (칠십인역)에서 Latin 어로 번역) 만 사용하던 천주교도 The Second Vatican Council (제2 바티칸 공회) 이후로 Douay 판을 사용하며 성경을 Latin 어에서 각자 자기 나라말로 (vernacular)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 번역철학에는 Formal Equivalency (직역) 과 Dynamic Equivalency (의역) 이 있습니다.
전자는 성경을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후자는 원문에 무리가 있다 해도 읽기 편하도록 의역 (意譯) 하는 방법입니다.
아마 전자의 대표는 KJV 나 NASV 일 것이고 후자의 대표는 Living Bible(LV), Today's English Bible (TEV) 같은 성경일 것입니다.
어느 편인가하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성경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나타내 주신 생명의 말씀이므로 원어에 가장 충실해야 하는데 헬라어와 영어는 문법상 일치 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직역을 기피하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문법을 살리며 단어는 성경기록자들이 아무렇게나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고 또 미국의 어느 신학교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의미가 모호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이 아니고 가장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사실일진데 원어의 단어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Peterson 의 경우는 비단 “절”만 없이한 것이 아니라 그 뜻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다른 영문 성경과 비교해 보시면 성경의 뜻이 어떻게 모호해
졌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John 3:5-6
King James Version
5. 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6. That which is born of the flesh is flesh; and that which is born of the Spirit is spirit.
New International Version
5. Jesus answered, "I tell you the truth, no one can enter the kingdom of God unless he is born of water and the Spirit.6. Flesh gives birth to flesh, but the Spirit gives birth to spirit.
The Message
5-6. Jesus said, "You're not listening. Let me say it again. Unless a person submits to this original creation?the 'wind-hovering-over-the-water' creation, the invisible moving the visible, a baptism into a new life?it's not possible to enter God's kingdom. When you look at a baby, it's just that: a body you can look at and touch. But the person who takes shape within is formed by something you can't see and touch?the Spirit?and becomes a living spirit
마태 6장의 주기도문을 Peterson 이 번역한 라는 성경과 다른 영문 성경과 비교 해 보십시오. 원문과는 거리가 먼 번역입니다. 다음은 Peterson이 번역한 <주기도문> 입니다.
“Our Father in heaven,
Reveal who you are.
Set the world right,
Do what's best.
As above, so below
Keep us alive with three square meals .
Keep us forgiven with you
and forgiving others
keep us safe
from ourselves and the Devil
You are in charge.“
요한복음 3:16을 The Message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This is how much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Son, his one and only Son. And this is why: so that no one need be destroyed; by believing in him, anyone can have a whole and lasting life."
이런 사람은 그의 신학을 우선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책이 잘 팔린다고 그 사람이 정통신학자는 아닙니다.
Rick Warren(릭 워렌), Joel Osteen(조엘 오스틴), Bruce Wilkinson(브루스 윌킨슨) 의 책이 얼마나 잘 팔립니까?
그러나 이들이 정통신학자는 아닙니다.
대형교회를 목회한다고 정통도 아닙니다.
오히려 대형교회 목사들이 더욱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Peterson 의 책은 교리를 조심하여 읽으십시오. 안 읽어도 그만입니다.
그가 2007년 2월 23일 Point Loma Nazarene University 강당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들어보면 그의 신앙이 결코 개혁주의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Max Lucado (맥스 루케이도)는 방언을 중시하는 오순절계통의 목사로 Texas 주 San Antonio에서
Oak Hills Church of Christ 교회를 목회하는 분입니다.
이분은 Promise Keepers 라는 단체를 적극 지원하는 사람인데 Promise Keeper 란 1990년대에 만들어진 단체로서 구성 멤버는 주로 천주교 신자와 오순절 파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Lucado 의 특징은 “오직 예수 운동”을 외치며 오직 예수“를 외치고 예수에게 의지하면 구원이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정통적인 개혁주의의 구원론은 Sola Fide (오직 믿음)을 통해서, Sola Gratia (오직 은혜) 로, Solus Christus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전제주권으로 이루어 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엡 2:8).
구원을 무엇을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100 퍼센트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하시는 은혜입니다.
Lucado 는 책은 많이 쓰지만 개혁주의 신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므로 이런 사람의 책보다는 Scotland 나 Holland 의 종교개혁가들의 책을 읽는 편이 좋습니다.
Tommy Tenney 는 비교적 젊은 사람입니다. 그는 Louisiana 주 Pineville 이라는 도시에서
www.GodChase.net 을 운영하는 사람으로 그의 대표적 책이 "Chasing God" 라는 책인데
IVP에서 나왔습니다 IVP (대학생 선교회 출판사) 는 대부분의 미국과 영국의 출판사가 그러하듯 한 때는 개혁주의 적이고 보수적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New Age 사상과 Postmodernism 사상에 물들어 순진한 개혁주의 성도들은 이런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안심하고 구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Thomas Nelson 출판사도 전에는 개혁주의 서적만 출판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신비주의 책들을 더 많이 취급하고, Bantam 출판사는 거의 100 퍼센트 뉴에이지 와 밀교 (密敎 occult) 책들을 출판합니다. 현재 믿을 수 있는 출판사는 미국에서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Still Waters, SOLI DEO GLORIA, Trinity Foundation 등이며 영국에서는 Banner of Truth Trust, Evangelical Press, Day One Press 등이 믿을 만합니다. 점점 뉴에이지 운동이 침식하여 좋은 책을 보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글을 읽는 독자들은 너무 늦기 전에 좋은 책을 돈 아끼지 말고 많이 사서 정신 무장을
하시기 바랍니다.
Tommy Tenney 는 한마디로 <양태론>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님들이나 신학생들은 초대교회 이단자 Sabelius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많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Tenney 와 T.D. Jakes를 한 통속으로 봅니다. Tonney 는 Chasing God 외에도 Road Home, Finding Your Way 같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은 그냥 소설이 아니고 성경을 소재 (素材) 로 한 소설 책들입니다. 그는 자주 Paul Crouch 가 경영하는 TBN 이라는 방송에 출연하여 인터뷰합니다만 그의 신앙은 개혁주의 신앙가로서는 받아 드릴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은 “양태론 樣態論, modalism" 이 무엇인지 모를 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분이고 한위 (삼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가 계시는데 그 한 위를 가진 하나님이 어느 때는 성부로, 어느 때는 성자로, 어느 때는 성령으로 나타난다고 가르치는 교리입니다.
예를 들면, H2O 는 수소 두분자와 산소 한분자로 구성되어 물을 나타내는 화학기호입니다. 그런데 “양태론” 으로 설명한다면, 물은 어떤 때는 고체로 (어름으로), 어떤 때는 기체로 (수증기), 어떤 때는 액체 (물) 로 변한다는 논리입니다. 삼위 일체 교리는 성경적이지만 누구도 비유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위에서 물의 비유로 설명한 것 같은 오류에 빠집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알게 됩니다. 비성경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죄악된 인간의 지혜가 제한되어 있어서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Incomprehensibility of God" 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양태론은 지금 기독교 특히 “복음주의”를 믿는 기독교 안에서도 널리 만연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구실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4년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스위스 Lausanne 에 모여서 “Lausanne Covenant" 라고 하는 전도대회를 연 적이 있는데 거기서 채택된 신앙고백중 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We affirm our belief in the one eternal God, Creator and Lord of the world, Father, Son and Holy Spirit who governs all things according to the purpose of His will."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삼위 라는 말의 ”person" 이 빠져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많은 복음주의를 신봉한다는 목사들 중에도 하나님의 “삼위” 되심을 외면하고
한 분 하나님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감독기관
에서는 이런 이단적 교리를 권징 하여 시정하려하지 않고 "은혜스럽게 처리하자“ 는 슬로건을 내걸고 모두 용납합니다. 이것을 요즘 말로 RAPPROCHEMENT (라프로쉬망) 이라고 합니다. 우리말로 구태여 번역하자면 “相互互惠主義” 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들의 논리를 따르자면, “진리” 란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므로 누가 무엇을 해도 모두 진리이므로 누구도 탓하지 말고 모두 사이좋게 “화평”을 누리며 살자“ 는 철학입니다. 사탄의 ”실용주의 Pragmatism"입니다. <여호와의 증인> 도 <모르몬교>도, <이슬람교>도, <힌두교>도 모두 같은 형제라는 것이며 모두 나름대로 <진리> 이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것을 법으로 제정한 나라가 Canada 이고 곧 미국도 따라 갑니다. 지금 미국 상원에 올라가 심의중인 Hate Crime Prevention Act 가 통과되어 대통령재가로 발효되면 미국에 있는 성도들도 이런 법의 제재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순교의 피”가 흐를 것이 불을 보듯
환합니다.
Tenney 목사도 이런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고 그의 저서들은 분별력 있게 읽어야 합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신학이 약한 목회자나 신학생, 전도사 , 주일학교 반사, 찬양대 대장, 대원, 집사 같은 분들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성경에
저촉되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개혁주의 목사 밑에서 성경공부를 하든지 아니면 혼자서 역사적 신앙고백서 이를테면, Heidelberg Catechism Belgic Confession,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Larger Catechism, Shorter Catechism,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French Confession, Scots Confession, Cambridge Declaration 등을 잘
공부하고 외워 두면 책을 읽다가 비성경적인 대목을 즉각 발견하고 지적할 수 있게 됩니다.
교리공부가 절실하게 필요한데도 Emergent Church Movement를 주장하는 Rob Bell 목사나
Brian McLaren 목사, Tony Jones 목사 같은 사람은 교리공부는 중지하고 실천생활에
중점을 두자고 주장합니다. 즉 Orthodoxy 보다 Orthopraxy를 주장합니다.
Andrew Murray 는 아버지도 화란계 목사로 Scotland 에 파송되어 목회하던 분이고 그 아들 역시 회개를 가르치고 성경적인 가르침을 준 분으로 훌륭한 목사입니다.
Philip Yancey (필립 얀시)는 한때 미국의 기독교 시사 잡지인 Christianity Today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라는 간행물의 주필로 일한 적도 있지만 그의 책들도 Schuller 나 Wilkinson처럼 현세에서의 성공을 강조하고 십자가를 전하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Rick Warren (릭 워렌)이나 Joel Osteen(조엘 오스틴), Foster(리처드 포스터) 듣을 비판하는 이유는 저들의 신학에는 <십자가가 없다> 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언급이 없고 모두 이 세상에서 십자가 없이 환난도 없이 성공하자는 취지의 글들입니다. 이 분의 책을 읽을 때 값싼 번영신학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Charles Swindoll 은 온건한 복음주의 학자로서 지금 Dallas, Texas 에 있는 Dallas
Theological Seminary (달라스 신학교) 교장으로 있는 분입니다. 이분의 성경관은 철저하지만 구원관과 교회관, 종말관을 조심하십시오. 이분은 세대주의를 가르치는 신학교의 교장입니다.
19세기 중엽, 영국에는 John Nelson Darby 라는 사람이 새로운 생각을 가지고 역사에 등장하여 후에 정통적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데 그는 말하기를 “ 16세기 종교개혁가 Martin Luther 는 Priesthood of all believers 만인제사장”을 주장했으니 목사만
설교하고 성례를 집전할 필요 없이 모두 돌아가면서 설교하고 성례집전하자고 했습니다.
이런 운동은 우리가 잘 아는 영국 Manchester 대학의 John Rylands 도서관의 F.F.Bruce 박사에게도 전염되어 한 때 그도 Plymouth Brethren 이라는 John Nelson Darby 의 이단적 운동에 가담한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Bruce 의 라는 자서전 참고).
이 운동은 미국으로 건너와서 C.I.Scofield 에 전해졌고 그래서 1906년 소위
Reference Bible> 이라는 세대주의 성경이 나왔고 이것이 미국을 휩쓸면서 모든 미국 내 신학교의 성경으로 각광을 받았고 한국에 나와서 평양신학교를 만든 미국 북장로교 목사들도 Allen Clark (곽안련) 목사는 물론 모두 이 성경으로 공부한 목사들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다시 Louis Sperry Chafer 목사에게 전수되어 미국 Texas주 Dallas 에 달라스 신학교를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왜 위에서 말한 목사들의 저서에 대한 경고하는 글들이 신문이나 책방에 나오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제가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질문이 아닙니다. 이분들의 신학을 보급하려는 무리가 한국에 있든지, 아니면 요즘 한창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이니 신학을 묻지 않고 매상고를 올려보자는 상업정신에서 인지, 아니면 한국의 학자들이 이들의 신학을 몰라서 일수도
있겠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진보성향”을 가진 이런 책들을 고전적 개혁주의 신학 서적보다 우대하는 이유가 교계가 세상 문화를 따라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Schaeffer 박사에 관해서는 어느 성도님이 오래전 질문을 보내온 적이 있고 답을 해드린 적이 있는데 본 선교회 사이트에서 “신학상담” 난을 click 하시면 아마 Schaeffer 에 대한 글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발견되지 않으면 다시 연락 주세요.
그분은 1984년에 <임파선 암> 으로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Philadelphia 에 당시 존재하던 Faith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구라파에 건너가서 공부를 마치고는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방대한 분량의 저서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산을 정리하여 Switzerland Alps 산에 들어가 L'Abri 라는 (The Shelter 안식처) 란 전도기관을 만들어 전 세계에서 신앙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바른 개혁주의 신앙을 터득하기 원하는 남녀 청년들에게 인격교육과 함께 바른 신학교육을 시켜서 내 보냈고 고국에 돌아간 학생들은 자기 나라에 L'ABRI를 만들어 운영하며 신학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공부하는 동안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일 년이고 한 주간이고 Schaeffer 박사와 합숙하면서, 아침엔 성경공부, 예배, 신학토론을 했고 오후엔 밖에 나가 정원을 가꾸고 농사일을 도우며 시간을 보내고 저녁엔 다시 성경공부, 신학강좌를 듣거나, 쉐이퍼 박사의 녹음테입을 들으며 신학에 대한 질문 등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질문에 상담역을 담당한 필자도 미국 동부 Pennsylvania 주 아름다운 역사적 유적지인
Philadelphia에서 공부를 마치고 처녀목회를 하면서 당시 <필라델피아 한인 성경연구원>
(Korean Institute for Theology and Evangelism, KITE)을 운영할 때, 이런 L'ABRI를
만들어 보려고 무척 오래 기도하며 희망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필자가 동부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3,000 마일 대륙을 횡단하여 이곳 Los Angeles 에 있는 새로운 사역지로 떠나기 직전에 필자의 성경연구원의 학생으로 상업에 종사하는 어느 여집사님의 호응으로 L'ABRI 로 사용할 건물을 구입하기위해서 현장 답사를 갔으나 이미 Laos 계 medical doctor 와 매매계약이 끝난 다음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까지 기도중입니다.
Schaeffer 박사는 철저한 근본주의 기독교 철학자로, 그의 대표작은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란 책이 있는데 이는 서구 기독교 문화의 타락상을 논한 책이고 그가 1984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복음주의의 일대 재난) 이란 책은 서구의 기독교 문화가 몰락하는데 공헌 사람들은 복음주의 목사들이라고 힐난합니다. 서구의 기독교 문명이 무너져도 소위 “복음주의” 목사들은 관심이 없이 개 교회 확장에만 주력했다는 것이지요. 비난 받을 만 합니다.
그의 말은 백번 지당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형교회는 교세 확장에만 관심이 있고 기독교 교리가 땅바닥에 타락해가며 사탄이 기독교를 공격해 와도 이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으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닐까요?
이렇게 답신 드립니다. 개혁주의 신앙으로 무장하셔서 칼빈의 구호처럼 “마음을 주님에게 드리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주셔서 감사 합니다.
상담역: 김명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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