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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요가', 괜찮나?

하나님아들 2020. 2. 28. 17:16

'크리스천 요가', 괜찮나?

 

요즘 미국 교계엔 '크리스천 요가'라는 게 대 유행이라지요. 
요원의 불길처럼 전역에 타 들어가고 있다는군요.

우선..'크리스천 요가'는 놔 두고 그냥 맨 요가를 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일간지 '워싱턴포스트'(2004년 8월 29일자)에 따르면 1998년 570만명 정도였다가 2004년엔 1500만명이었다네요. 그러니 지금은 보나마나 2천만에 육박하거나 거뜬히(?) 웃돌겠지요. 
덩달아서 '크리스천 요기(yogi)'들 수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또..월마트/타깉 사 등 굴지의 백화점 체인들이 팔아 먹는 요가 관련 상품-비디오/도서/장비 등이 엄청난데요.

2004년 당시 월마트사 웹사이트에 오른 품목이 990종, 타깉은 4,235종이었답니다.

또 관련 잡지인 '요가저널(YJ)' 발행부수는 1998년 9만부에서 2004년 31만부로 3배 이상 늘었고요.

YJ의 수록 주요 광고업체도 요즘은 타깉/켈록/포드/잔슨&잔슨/파이저/제네럴밀즈 등 굵직굵직한 대 기업들이 줄을 잇는다니 요가 업자들은 참 "째지는" 기분이겠습니다.

뉴욕시 맨해튼 중심가의 하나인 매디슨 애브뉴엔 요가와 관련된 방향(芳香)/향연(香煙) 스튜디오 및 쥠(gym/체육관)이 2004년에 약 2000여 곳이었답니다.

물론 지금은 더 많겠지요. 한 마디로 요가 장사의 수지타산이 '짱'이라는 얘깁니다.

연평균 300억불 규모라니 굉장하지 않습니까!  [혹시 이 글에서 장사 아이디어나 챙기시려는 분..저주스럽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가 없네요.]

한 번은 복잡한 맨해튼에 나갔다가 아무 데나 화장실 있는 곳을 찾아 들어 갔더니 요가 헬스클럽이더군요.

기분이 하도 찜찜해 볼 일을 마치자마자 얼른 나왔습니다만 요가의 대중성을 실감할 수 있었지요.

하기야 한국 웹을 뒤져 보니 그쪽 동네도 요가 붐이 굉장하더군요. 지구촌 동네 치고 요가를 안 하는 데가 없을 정도입니다.

예..그렇다면 '크리스천 요가'의 상업성/상혼도 예외일 수 없겠지요. '크리스천 요가' 강사들이 아마 날이 갈수록 돈들을 벌어 댈 겁니다.

영문 '구글' 탐색을 해 보면 "크리스천들을 위한 요가"에 관한 등록건수가 약58만6천 건, "기독교회와 요가"에 대한 언급이 51만2천건 뜹니다.

그중 다수가 요가는 "성경적"이라거나 심지어 예수님이 "요가 수행자였다"고 얼토당토 않은 신성모독적 주장들을 해 댑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2006년 2월22일) 기사에 따르면, '기독교대학'이라는 페퍼딘대학교에서 캐트린 라인핸 강사가 창안해 가르치는 클래스는 등을 바짝 구부려 두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댄 고양이 포즈 등으로 "하나님이 팔로 여러분의 허리를 두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면서 시편 23:1 등 성구를 음송하는 운동인데 '폼'(FORM)이라고 부른답니다.

요가와 성구를 '결합'시킨 사례지요. 성경 진리보다는 상상이 개재된 대목입니다.

라인핸 강사는 그러한 요가동작의 고요한 정적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서 "이게 진리가 아니라면 강사를 관둘 것이다" 했다니 어이가 없네요! 어리석은 만용일까요, 기세 좋은 장담인가요.

기독교병원에서 요가를 가르친다는 러베카 래니 여인은 요가 교습실에다 '예수 성화', 마리아상에다 붇다상, 힌두교 신상까지도 장식해 놓고 요가가 "개인의 영성이 무엇이든 그것을 증진시켜 준다"고 주장한답니다. 
이런 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지요. 성경은 신체 단련을 통해 영적인 발전이 온다는 식의 교훈을 전혀 해 주질 않습니다!
크리스천 요가 수행자들은 또 요가를 기독교음악, 묵상 등을 짬뽕한 '요가 디보션(경건자료)'을 요란하게 선전합니다. 사실 '크리스천 요가'라는 말 자체가 신성모독적임을 왜 깨닫지들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이게 과연 건전하고 바람직한 현상일까요, 아니면 싸탄이 세상을 쥐고 있는 하나의 표징일까요?

요가는 강조점과 정신, 포즈와 모양에 따라 종류가 퍽 다양하지만 대표적인 요가로는 에너지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쿤달리니 요가, 몸과 맘의 '정화'에 무게를 둔 하타 요가, 명상을 강조하는 라자 요가, 탐구에 힘을 주는 자나 요가, 행동을 중시하는 카르마 요가, 내적 헌신을 강조하는 밬티 요가, 경문의 읊조림을 되뇌는 만트라 요가, 리듬을 타는 라야 요가 등이 있다고 합니다. 또 서로 적당히 '짬뽕'한 형태도 있지요.  

'쿤달리니 요가'라는 걸 1969년 처음 서구에 소개한 사람이 힌두교의 일파인 시크 교의 구루 '요기 바잔'입니다. 하타 요가(일명 크리야 요가)를 끌어 들인 사람은 요가난다이고요. 
미국 연방의회는 지난 2005년 4월 5,6일 요기 바잔의 시크교와 요가를 찬양하는 공동 발의안을 통과시킨 뒤 5월11일 인도 정부 대표, 시크 교도등을 초청, 특별 리셉션을 가졌지요. 전엔 목회자들이 도맡았던 주의회나 연방의회 개회기도에 이제는 힌두교 구루까지 등단하게 됐으니 시대가 참 많이 바뀌고 어지럽습니다. 

과거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으면서도 힌두교 교리를 따라 소고기도 못 먹던 나라인 인도의 요가를 서구에 가져 와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도가 컴퓨터 기술 강국이 된 배경엔 아마도 요(this) 요가의 힘도 적지 않을 테지요.

자, 그런데.. '크리스천 요가'라는 게 과연 있을 수나 있습니까? 존재가 가능합니까?

아니 '크리스천'이란 형용사를 그냥 아무 데나 막 갖다 붙여도 되는 겁니까! 두 용어의 기원이 각각 기독교와 이교로부터 왔으니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전혀(!) 절대로(!) 서로 다른데..이건 완전히 모순어법 낱말(oxymoron)입니다! 생각할수록 요상하고 "희한빠끔" 합니다.

아무리 '스포츠'라고 해도 그렇지 요가가 본래 힌두교에서 왔다는 걸 시방 모르고 하는 얘깁니까? 단순한 용어라고 해도 뿌리가 있지 않습니까?

'크리스천 요가'란 게 가능하다면, '크리스천 기운동', '크리스천 쿵푸', '크리스천 타이치(太極)', '크리스천 차력술', '크리스천 펑슈이(風水)', '크리스천 최면술'(진짜로 있나?), '크리스천 점성술', '크리스천 초월명상(TM)', 심지어 '크리스천 레이키(靈氣)', '크리스천 염불', '크리스천 강신술' - 뭐 이런 것도 앞으로 있을 수 있단 얘긴데..안 그런가요?  

크리스천 요가란 용어는 [크리스토+벨리알]이란 공식과도 같습니다. 어떻게..크리스토님과 벨리알이 조화가 되나요(코린토B 6:15)? 
벨리알이란, '파괴의 영', '사악한 영'이란 뜻으로 곧 싸탄을 암시합니다.

흥미롭게도 최초의 요가 수행자로 떠받들리는 힌두교의 '쉬바'(Shiva) 신은 '파괴자'입니다.

이 파괴자의 이름 하나가 '요게쉬와라'(=요가샤라) 즉 요가의 대가이지요. [힌두교엔 약 3억3천만이나 되는 '신'들이 있습니다. 다 잡신들이지요.] 그런가 하면 크리쉬나는 최초의 '요가 스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한사코 '크리스천 요가'라는 겁니다.

크리스토와 벨리알이 조화가 결코 안되는데-안.된.다.는데도 한사코 "된.다."로 우기는 겁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요. 

'요가'란 용어의 뜻 하나가 '멍에 메우기'(to yoke)입니다.

Yoga is a yoke! 크리스천 요가는 크리스천들에게 모종의 멍에를 씌웁니다.

무슨 멍에일까요? 탐문해 본 요가의 성격상 어느 모로 보든 '크리스천 요가'라는 것은 본격 요가와 힌두교로 이끄는 낚시바늘 같다는 인상을 숨길 수가 없군요.

지금 이 '크리스천 요가'라는 걸 주로 Y에서 가르칩니다.

YMCA, YWCA..뭐 이런 단체 말입니다.

YMCA/YWCA의 가운데 '-C-'가 뭔지는 아시지요? "Christian'입니다. 이 사람들이 무슨 기독교 정신으로 시작했다곤 하는데..갈수록 정체가 모호해집니다.

소위 기독교 단체가 본디 힌두교에서 비롯된 요가를 신자가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할 수나 있냐는 거죠! 과연, 그게 하나님 뜻이겠습니까-[힌두교 요소+기독교 요소]가?

'크리스천 요가'를 한다는 사람들은 소위 기독교음악을 틀어 놓고 요가교습을 하고 요가 댄스를 하는가 하면, 요가명상을 할 때는 성경구절도 암송한다는 군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본래 요가는 힌두교 사람들이 악령 안에서 명상을 하고 만트라(짧은 경문)를 외지요.

지금 이 '크리스천 요가'를 내노라는 명사들도 애호합니다. 별 거리낌이나 꺼림도 없이. 맄 워런도 추천하고, 브라이언 매클러렌도 권장하고..다들 좋아합니다. 예, 즐깁니다! 
요 얼마 전엔..뉴즈윜-워싱턴포스트 공동종교란에서 미국 최대급 교회의 하나인 '토기장이집'(약3만명)의 담임목회자 티디(TD) 제잌스 감독이 나타나 "크리스천 요가도 괜찮다"고 추천했더군요. '무엇을 왜 시도할지 까닭을 알라'란 제목으로 말입니다.

[아프리칸계 목회자인 제잌스는 2006년도의 '가장 영향력있는 크리스천'으로 선정됐지요. 뭐..무슨 타이틀은 못 달겠습니까. 무슨 '10대 지도자'라느니 '25대 선두 리더'라느니..뭔 00 대가 그리 많은지..내노라는 굵직굵직/큼직큼직한 명사들 이름 내걸고 걸핏하면, 수시로 타이틀 나눠먹기/갈라먹기를 하더군요.]

이 요가라는 게 말입니다..웹스터 사전의 정의를 보면, "몸과 맘, 뜻의 모든 활동을 억제함으로써 자아가 그것들로부터 구분됨을 깨달아 자유를 얻게 하는 힌두교 철학"이랍니다.

모든 활동을 억제한다-그게 자유입니까?!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 힌두교 철학을 기용해, 몸과 마음의 통제술과 웰빙을 달성하는 운동 체계로 바꿔 정의합니다. 요즘 미국 복음주의권에서도 힌두교와 그리 무관하지 않은 동양신비주의, 동양명상, 뉴에이지 철학을 적극 수용/흡입하는데, 그 대표적인 인사들로 브라이언 매클러렌('떠오름'영성 선구자), 리처드 포스터(관상가), 토니 캠폴로(진보주의 교수), 유진 피터슨(관상가, '목적 있는..'에 활용된 진보적 성경-'더 메시지' 역자), 맄 워런 등이 있지요. 보수주의자라는 제임즈 답슨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대로 워런은 그의 '목적에 이끌린 삶'에서 사람들에게 만트라 스타일의 문구를 되뇌는 소위 '호흡기도'라는 걸 권장하는데, 힌두교 요가/명상, 선불교와 통하는 바 없지 않습니다.

워런의 목회자 컨퍼런스에서는 크리스천 요가의 기회를 가지며 이 컨퍼런스 유관 청소년단체인 '윹스페셜티'는 청소년들에게까지 적극 권장합니다. 젊은 교회들이 모여 이룬 '떠오름' 영성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제잌스는 "많은 경우, 요가는 사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명상하는 조용한 자리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시편 1편을 하나님의 말씀 묵상의 본보기로, 필리포서 4:8을 긍정적 생각들의 본보기로 생각하지요-이 말 자체는 옳은데..이게 요가랑 무슨 상관입니까, 글쎄?!   

그러면서 제잌스는 비록 시편, 필리포서 기자들이 요가를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신체 개발 관점에서 이 보편적 컨템프러리 스타일의 요가를 수행하는 다수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신조와 타협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럴싸 해 보인다"고 말합니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요가/명상 수행시 과연 의도가 어디에 있냐라면서, 현재 자신이 보유한 종교신앙의 대안을 찾느라고 '뉴에이지', 동양영성을 포용/수행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신의 종교 관행과 법칙을 떠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또 신체적 컨디션 향상을 위해 요가를 하거나 정신 순화를 돕는 명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바꾸거나 제거, 약화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개인이 신자로서의 성숙도에 따라 조절하고 한계를 짓는 능력에 (이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연 제잌스의 말처럼 요가를 하면서도 뉴에이저 동양 영성을 포용/수행만 하지 않는다면 절대 오케이일까요? 그의 말마따나 자기 믿음을 잘 간수하고 신앙을 유지하는 한, "컨디션 향상용" 요가나 "정신순화용" 명상을 아무리, 아무렇게나 많이 해도 괜.찮.을.까.요.? 그의 말은 성경적일까요? 신앙만 유지한다면 요가를 암만 해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요? 
글쎄올시다. I doubt it, positively. 

[한 가지 참조할 사실은..티디 제잌스 목사는 전통교회에서 문제시 하는 단신론적 오순절파라는 것입니다.

즉 그는 성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꼭 교리가 성경적으로 건전해야만 대형교회로 부흥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의 교회가 입증한다는 것이지요.

다시 바꿔 말한다면 대형교회로 성장한다고 해서 다 성경적이진 않다는 거죠.

그런데도 한국교계가 전반적으로 미국의 대형교회 목회자는 다 모범적인 신자들로 보는 경향이 매우 강합니다.

여기엔 한국 교인들이 읽기 좋게 만든 번역(번안?) 서적들의 영향도 크지요.]

그건 그렇고..
그럼 과연 '크리스천 요가'란 게 있을 법이나 한, 가능이나 한 얘길까요? '크리스천 요기'들은 순전히 몸의 건강을 위한 '순수 스포츠'로 요가 수행을 한다고들 합니다.

그들이 모르는 사실: 요가의 진짜 권위자들인 힌두교 도사들은 그런 발상을 전혀 부정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어떤 요가이든 종교적 목적을 배제한 순수 목적의 수행일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힌두교 도사 겸 요가 권위자인 스와미(=도사/스승) 비슈누데바난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요가 수행의 목표는 개인 영혼 속에서 신의 지고의 영혼과 더불어 함께 하는 자아를 확인하는 진리를 성취함에 있느니라." 
   ('그림을 곁들인 완벽 요가 책'에서)

그러나 사도 파울은 믿음의 아들 티모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불경건한 신화들과 헛된 우화 따위는 상관도 말게! 그 대신, 경건을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게나. 몸의 단련이 약간은 유익하네만 경건은 모든 면에서 유익하다네. 현재와 내세의 생명을 위한 약속을 지니게 해 주지." (팀A=딤전 4:7,8. 사역)

약간의 유익을 얻는다고 몸의 단련을 하면서 몇 배나 더 중요한 경건훈련을 구겨 버리거나 손상시킬 일, 있습니까?

크리스천의 모든 삶이 성령님께 인도받는 삶이라야 한다면 육체라고 내 맘대로, 내 멋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맘대로 하고 싶겠습니까?

거듭나 성령님을 모시고 나서도 "대책 없이" 담배나 술을 마구 들이키고 퍼부어 대면 성령님이 기뻐하실까요?

몸은 성령님의 전이 아니던가요?

그렇다면 몸을 위한다는 구실로 하필 힌두교에서 유래된 그런 걸 굳이 하겠다면, 속에 계신 성령님이 불편해 하실까요, 아니면 전혀 부담 없어 하실까요? 그렇다면 요가는 어떻습니까?

몸에 좋다고 해서 힌두교 배경 '스포츠'를 마구 즐긴다면 과연 경건의 유익에도 도움이 될까요? I don't..think so.

일본에 요가를 소개한 선구자들 중 한 명이 켄 하라쿠마입니다.

그는 지금 많은 타인들이 일본 국내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내심 분개합니다.

까닭은 자신이 본래 의도했던 요가 수행의 목표는 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령학적 파워를 분여 받기 위한 의식 상태를 갖고 하나의 '힘'을 계발하기 위한 의도였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태권도가 그렇듯 일본은 아이키도(합기도)나 유도로 유명합니다만, 이들의 공통점 하나는 고단자로 올라갈수록 고도의 정신집중과 함께 기(氣/chi/kee)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이 기를 습득한 사람은 (성령님의 초자연성과 다른) 초자연적 힘을 발휘합니다.

장기간의 단식, 타는 불 위로 걷기, 엄청난 괴력으로 대상 물체 부수기(예: 고도의 격파술) 등입니다.

영적 분별력을 갖춘 사람들은 그런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대번에 알지요. 그런 '기'가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겠습니까? 천만예요! 성경은 성령님이 아닌 대상으로부터 오는 모든 초자연적 힘과 현상은 싸탄의 것이라고 명언합니다. 미안하지만, 그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가는 맛을 보면 볼수록, 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더 깊은 경지를 원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요가를 하다가 힌두교도가 되거나 본격적인 요기, 도사, 스와미/구루들이 돼 버립니다.

크리스천 요가를 하면 할수록 본격 요가를 하고 싶어지고 결국 일반 요가를 하게 되고..제대로 요기가 되는 겁니다. 
[ 마찬가지 이치로, 관상을 하면 할수록 종교다원적 명상을 하고 싶어집니다.

교계의 많은 유명 관상가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 도교/불교/힌두교 등에 관심을 갖고 타 종교 인사와 대화/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토머스 머튼, 라벝 조나스(헨리 나웬의 제자)를 답습하게 되는 것이죠.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이게 뭐냐..영적 작용입니다. 영들의 작용입니다.

그렇다면 선하고 깨끗한 영일까요, 아니면 악한 영들일까요?

뿌리가 깨끗하지 않은 게 줄기나 열매가 깨끗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몸과 맘, 속사람(영)을 주님 오시기까지 늘 순결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요기의 영들과 맘껏 교류를 해도 그 크리스천의 영이 늘 순결하고 깨끗하도록 천사가 곁에서 지켜 줄까요?

크리스천 요가를 맘껏 해도? 요가에 '크리스천'이란 말만 붙으면 다 기독교적이 되고 경건하게 되나요?

우리, 상상은 자유지만 착각은 말아야죠.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날 온 세상에 뉴에이지 물결이 범람해 있습니다.

과거 기독교 교권이 지배하던 서구에선 지하에 숨어 있다시피 했던 온갖 종류의 심령술, 역술, 점술, 마녀(witches), 위카(Wicca) 등 이교적이고 초자연적인 활동이 판 치는 세상이 됐습니다.

사회 모든 분야 곳곳에 뉴에이지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교계도 이젠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 요가는 뭡니까? 이런 뉴에이지 활동과 무관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관상(향심기도)/동양신비주의(mysticism)명상/미로명상 등이 자연스럽게 뉴에이지와 연계되듯, 크리스천 요가도 이런 뉴에이지 현상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크리스천 요가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뉴에이저 풍조에 휘말려 들어간다고 믿으면 거의 틀리지 않습니다.

뉴에이지 총아의 하나인 소위 '초월명상'(TM)이라는 게 있지요. 요가의 일종입니다.

TM 수행자들은 본래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의 초종자들이었는데 마하리쉬 자신이 '요가 데브'(브라마난다 사라스와티)의 추종자였지요.

마헤쉬는 바로 올해 2월 5일 91세로 네덜란드 블로트롶의 TM 본부에서 사망했지요. 
TM의 원명은 '영적 재생'이었습니다.

힌두교식 '거듭남'이란 뜻이죠. 그 명칭 그대로 공립학교에 침투하려다 교육 관계자들 측 거부감 탓에 포기하고 명칭을 바꿨습니다.

TM 수행자들은 결국 모두 힌두교인들이 됩니다.

자체 주장에 따르면, TM 수행자들 수가 각국에 소개되기 시작한 195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600만명 정도 된답니다. 

TM 수행자들은 짧은 낱말이나 문구로 된 만트라를 읊습니다.

TM을 종교와 무관한 것으로 들은 어느 전 수행자는 마하리쉬로부터 '이엥'이라는 낱말을 만트라로 받았는데 나중 힌두교 사전을 뒤져 보니 힌두교의 한 신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멍에'라는 뜻도 가진 요가라는 명칭 자체가 소름 끼칠 노릇입니다. 
한 TM 수행자는 갑자기 자기 자신이 천정에 들러 붙어 자기 몸을 내려다 보는 '경지'에 들어가 너무 놀랐답니다. 사전에 그런 지식을 전혀 주지 않았으니까요. 일부 TM 수행자들은 정신질환자가 되거나 난폭해져 가구를 마구 내던진 기록도 있고요.

요가의 궁극 목표는 힌두교의 궁극 목표와 같습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쿤달리니에 관해 전술했습니다만..'쿤달리니'는 사력 즉 뱀심을 뜻하지요.

힌두교인들은 사람의 꼬리뼈에 뱀이 한 마리 똬리를 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구루에게서 쿤달리니 요가와 명상을 배우노라면 뱀이 꼬리뼈에서 등뼈를 타고 머리 꼭대기로 치솟는 소위 '쿤달리니 각성'을 체험하게 된답니다.

성경에서 뱀은 으레 싸탄을 상징하지요(창 3:1, 이사야 27:1, 계 12:9).

쿤달리니 요가 수행자들은 흔히 의기소침/중증 정신장애 등을 겪으며, 악령의 억압, 악령지핌 현상 등의 문제도 발생합니다. 2006년 윌로크맄 교회(빌 하이블즈 목사)에서 실시된 '리더쉽 서밑' 강사들중 한 명이었던 짐 콜린즈는 '크리스천 뉴에이저'(또 하나의 옥시머론이지요)이며 쿤달리니 각성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에 쿤달리니 요가를 들여 온 요기 바잔은 '사타나마' 만트라를 가르쳤는데 그는 이 테크닠을 익힘으로써 '무'의 세계를 알 수 있고 '미지'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요가는 일종의 거짓 구원의 길입니다. 힌두교는 또 죄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불교가 약속하는 낙원 '니르바나'(열반), 힌두교의 '모크샤'는 기독교의 천국과는 다릅니다.

모크샤는 본래 몸으로부터의 이탈, 즉 죽는 기술이었습니다. 요가는 결국 모크샤를 위한 것입니다.

요가는 본래 결코 신체단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개인의 영혼 '브라마'와 '우주의 신'이라는 브라만과의 '합일'(함께 멍에를 메면 하나된다는 뜻에서..)을 위한 것입니다.

또 자신이 곧 '신'임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주장합니다.

뉴에이지의 공통된 이상이지요. 바로 싸탄의 속삭임이기도 합니다(창3:5).  

되뇌지만..어느 모로 보든 '크리스천 요가'는 본격 요가와 힌두교 입문을 위한 '컴온' 손짓 내지 낚시바늘 같아 보이는 건 필자만인가요?

'크리스천 요가'는 진정 신자들의 건강을 아껴서라기보다 요가를 크리스천들에게 팔아 먹기 위해 그럴 듯하게 기독교식 포장을 해 놓은 얄팍한 상혼과 술책으로 보입니다.

크리스마스가 크리스천들에게 온갖 상품을 팔아 먹는 시즌이 된 것처럼. 
예수님의 채찍으로 성전 마당에서 내쫓기던 장사아치 같은 대상은 아닐런지요.
 
크리스천들이 요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