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새 유튜브에서 강병국, 손계문, 앤드류 강 목사의 동영상을 통해 안식교의 교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식교의 교리는 사도 바울의 복음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도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성경 구절을 끊임없이 인용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구절을 문맥과 무관하게 사용함으로써 그 구절이 문맥 안에서 지니는 본래의 의도와 반대의 의미를 갖게 만든다. 안식교가 구체적으로 어떤 성경 구절을 어떻게 오용하는지, 안식교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기회가 되는대로 조금씩 다룰 계획이다.
여기서는 안식교의 핵심 교리인 안식일 교리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안식교는 토요일이 안식일이며,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안식교에서 말하는 안식일 준수 계명은 그들의 여 선지자 엘렌 G. 화이트(Ellen G. White)가 본 환상에 의해서 확립되었다. (안식일 교리가 확립되는 과정에 관해서는 그녀의 자서전 제12 장을 참고. http://www.megw.kr/view.html?book=엘렌%20지%20화잇의%20자서전&chapter=12&page=95&idx=81&lang=kor&keyword=&highlight=)
안식교 교리의 상당 부분이 화이트가 받은 수많은 특별한 환상과 계시에 근거하고 있다. (다음의 한 안식교 홈페이지에서는 화이트가 본 특별한 환상과 계시의 일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http://www.diggingfortruth.org/article/74/prophecy/spirit-of-prophecy-section/visions-of-ellen-g-white) 하지만 신약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는, 진리는 오직 성경을 상고함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 부가적인 특별한 계시나 환상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일은 토요일이다. 오늘날 천주교와 일부 개신교에서 일요일이 안식일이며 따라서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성경에서 일요일은 한 주의 첫째 날이고, 토요일은 마지막 날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날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그런데 사람은 언제부터 안식일을 지켰던 것일까? 안식교는 사람이 창조된 때부터 줄곧 안식일을 지켰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성경에서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다.
안식일이 처음 언급된 것은 창세기 2장 1-3절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처음 명령하신 것은 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아브라함과 최초의 언약을 맺으신 이후에도 430년이나 지난 이후의 일이다(갈3:17, 출16:1, 19:1 참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을 때까지도 주어지지 않았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서 종노릇 하다가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야곱의 모든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를 하게 되고, 거기서 야곱과 그의 모든 아들들과 그 시대 사람이 모두 죽을 때까지도(창50:22-26, 출1:6), 하나님은 사람에게 단 한 번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오랜 종살이를 마치고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이다. 이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십계명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과 언약을 세우신 이후 430년 이후의 일이다. (엄밀히 말하면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만나를 거두는 일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에 대한 계명을 주신 것이지만,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십계명을 주셨기 때문에, 이 역시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다.)
창세기 2장은 분명히 안식일이라는 날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식일은 사람이 지키도록 주어진 날이 아니라,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일을 마치시고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었다. 물론 사람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이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안식하셨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것을 볼 때에야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안식은 아담이 범죄함으로 깨져 버렸고, 하나님은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시기 위해 다시 일하기 시작하셨다. 안식이 깨진 이후에 하나님이 하신 최초의 일은 사단을 저주하시고, 아담과 하와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 후에,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혀주신 일이었다(창3:9-21).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이전까지,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일도,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킨 예도 기록하고 있지도 않다. 안식교는 창세기 2장부터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을 지키듯이) 안식일을 지켜온 것처럼 주장하지만, 성경에는 이를 뒷받침할만한 어떤 근거도 없다.
3.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 . . "(히8:5)
성경은 율법은 모형과 그림자라고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라고 부른다. 불빛 아래 실체를 두었을 때 그 아래 그림자가 생기는데, 여기서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 아래 생기는 그림자가 율법인 것이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 (매달, 매년)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의 율법을 주셨는데,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의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영원한 속죄의 모형과 그림자였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율법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시는 것을 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또한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10:11-12)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은 율법이 말하는 안식일은 모형과 그림자로 주신 것이며, 실체는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안식교에게 이 구절은 많은 어려움을 준다. 왜냐하면 이 구절은 그들이 매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안식일이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진 것에 불과하며, 실체는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되었고, 따라서 이제 모형과 그림자인 율법의 안식일은 무의미하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4.
하지만 안식교에서는 골로새서 2장 16절을 그들의 목적에 맞추어 억지스럽게 해석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성경 절의 "문맥이 의식(儀式)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에 언급된 안식일(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것의 '그림자'나 모형이 되는 유대인의 연례 절기들에 해당되는 의식(儀式) 안식일들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 28> http://www.adventistkr.org/si_bible_pages/c_20.html) 다시 말해서 이 구절의 안식일은 매주 있는 일곱째 날이 아니라, 구약의 다섯 가지 절기 내에 있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날이라는 것이다(레23:7-8, 21, 25, 28, 30-32, 35-36, 39).
하지만 이 구절에 대한 안식교의 해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이들이 "문맥"을 거론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들의 해석은 문맥에 전혀 맞지 않다. 골로새서의 이 구절의 "문맥이 의식(儀式) 문제를 다룬다"고 했는데, 애초부터 이와 같은 접근 자체에 문제가 있다. 그 문제란 무엇인가?
안식교는 율법이 도덕법(십계명)과 의식법(제사 및 정결 의식 등에 관한 법)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십자가로 폐하여진 것은 의식법이지 도덕법(십계명)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이들의 많은 논리는 넷째 계명인 안식일 준수의 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으로 수렴된다.
물론 율법을 설명할 때 도덕법과 의식법 (그리고 시민법)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것은 안식교의 특징이 아니라 사실은 기독교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그것은 율법의 구성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이 편의상 도입한 일종의 설명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약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율법을 도덕법과 의식법으로 구분하지 않고 있다. 사도 바울이 율법에 관해서 설명할 때, 율법은 도덕법과 의식법 모두를 항상 포괄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소 긴 설명이 필요하므로 조만간 지면을 달리하여 다루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말하는 "안식일"이 "유대인들의 연례 절기들에 해당하는 의식(儀式) 안식일들이다"라는 안식교의 주장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살펴보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레위기 23:7-8, 21, 25, 28, 30-32, 35-36, 39은 모두 노동을 금지하고 있는 날, 즉 안식교에서 말하는 "연례 절기들에 해당하는 의식 안식일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레위기 23장을 천천히 읽어보면 이 구절들이 언급하고 있는 '의식 안식일'이 "유대인들의 연례 절기들"의 기간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다.
만일 절기들 안에 의식 안식일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절기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의식 안식일을 따로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의식 안식일이 함께 언급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교의 주장대로 만일 골로새서 2장 16절에서 안식일이 절기에 포함되는 의식 안식일이라면, 성경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 . ."라고 기록할 리가 없다. 안식일을 따로 언급하지 않고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을 인하여 . . ."라고 기록하는 데서 그쳤을 것이다. 절기를 언급했는데, 절기안에 포함되어 있는 안식일을 따로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 . . "라고 말할 때, 여기서 안식일은 절기 내에 포함되는 '(의식) 안식일'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안식교의 억지스러운 해석과 달리, 골로새서 2장 16절의 표현은 여기서 안식일이 절기 내에 있는 안식일이 아니라, 매주의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말하는 것임을 오히려 분명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5.
안식교는 유대인의 절기의 모든 날들이 모형과 그림자로 주어졌지만, 매주 마지막 날인 안식일은 예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히브리서 3:7-4:11을 살펴보면 이런 주장은 히브리서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안식'은 "내 안식", "그의 안식", "저 안식"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히3:11, 3:18, 4:1, 4:3, 4:8-11)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본문이 믿는 자가 들어가는 하나님의 안식을 단순히 '마음의 안식'이 아닌, 제 칠일의 안식으로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 . .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 . .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히4:3-10)
다시 말해서, 안식교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제 칠일 안식일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들어가는 영원한 안식의 핵심적인 모형과 그림자인 것이다. 믿음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온 우리에게 매주의 제 칠일 뿐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안식일이 된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통해 실체로서 영원한 안식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림자와 모형으로서 주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6.
안식교는 기독교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관행이 로마 카톨릭의 거짓된 교리에 근거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또한 종교개혁자들이 수많은 카톨릭의 오류에서 벗어났지만 일요일에 관한 거짓 교리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일요일 예배를 드리는 자들은 결국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기본교리28> http://www.adventistkr.org/si_bible_pages/c_20.html;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성경의 핵심진리> http://www.adventistkr.org/si_bible_pages/b_51.html) 하지만 이와 같은 안식교의 교리는 성경에서도, 기독교 역사에서도,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가 없다.
안식교는 신약 성경이 일요일을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을 왜곡해서 해석하는데, (위에 설명한) 그들의 골로새서 2장 16절의 "안식일"의 해석과 마찬가지로 억지스럽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기서 이 모든 구절에 대한 안식교의 해석에 대해 소모적으로 일일이 반박하지 않겠다. 여기서는 다만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안식교의 일요일에 관한 견해는 http://www.adventistkr.org/si_bible_pages/b_46.html 참고.)
신약 성경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일요일은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이 아니다.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 준수의 계명이 신약시대에 주일 성수의 계명으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또한 성경에는 일요일이라는 용어가 없다. 성경은 '일요일'이 아닌, '매주의 첫날' 또는 '안식 후 첫날'이라는 표현을 쓴다. 일요일, 월요일, . . ., 토요일 등의 용어는 모두 고대 이교도의 우상 숭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수요일은 수성, 헤르메스, 머큐리, 오딘 등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https://www.etymonline.com/word/Wednesday?target=etymonline_v_4884 참고. 여기서는 일반적인 관례를 따라 '일요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제 신약 성경에 나타난 일요일을 살펴보자. 무엇보다도 신약 성경에서 일요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날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사 복음서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록하고 있는 장들을 살펴보자.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마28:1)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2)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24:1)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요20:1)
안식일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안식 후 첫날"은 일요일을 가리킨다. 영어 성경은 "그 주의 첫날(the first day of the week, KJV)"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우리가 흔히 토요일과 일요일을 주말이라고 부르는 관행과는 달리, 성경에서 일요일은 매주의 첫날이고, 토요일이 매주의 마지막 날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달력도 매주의 첫날은 일요일로, 마지막 날은 토요일로 표시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주말에 오도록 표기한 달력도 있으나 극소수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사 복음서 모두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을 "안식 후 첫날"이라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 복음서가 모두 예외 없이 이 날을 "안식 후 첫날"로 밝히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안식 후 첫날"이 사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그리고 초대 교회에게 얼마나 중요한 날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안식 후 첫날"에 일어난 일의 전부는 아니었다. "안식 후 첫날"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사람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처음으로 예배(worship)를 드린 날이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9)
뿐만 아니라, "그 날"(눅24:13), 즉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성경을 열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관해서 설명하셨다(25-27절). 또한 바로 "그 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저희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심으로(30-31절) 자신을 제자들에게 알리셨다.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35절)
뿐만 아니라, 또한 바로 "그 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친히 오셔서 평안을 전하셨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36절) 그리고 바로 "그 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성경을 설명하시면서, 성경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이를 통해 주시는 죄 사함과 성령의 약속에 기록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44-49절).
"안식 후 첫날" 일어난 일 가운데,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은 매우 흥미로운 한 가지 일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처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요20:24). 후에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말할 때,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25절)라고 말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관해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26절)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고, 바로 그날 제자들이 모인 곳에 처음 나타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음 번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신 날은 그날로부터 "여드레를 지나서"이다. "안식 후 첫날"에서 여드레를 지나면 또다시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이다. (성경의 날짜를 세는 관행은 헤아리는 날수에 시작하는 날과 끝나는 날을 포함시킨다.) 예수님은 여드레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으시고, 다음 일요일이 오기까지 기다리셨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21장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요21:14) 나타나신 일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여드레를 지나서" 도마가 있을 때 나타나신 것이 두 번째 나타나신 것이다. 즉 "안식 후 첫날"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시고, 도마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두 번째 나타나신 일의 중간에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지 않은 것이다.)
사도행전도 초대교회에게 일요일이 중요한 날이었음을 보여준다.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을 때,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다(행2:46). 그러나 신약 성경은 전반적으로 초대 교회가 "안식 후 첫날"을 특별히 중요한 날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사도행전 20장은 교회가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성찬 예식을 행했음을 보여준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20:7).
고린도전서 16장에 있는 말씀도 "매주일 첫날", 즉 일요일이 성도들이 모이는 특별한 날이었음을 보여준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 . . 매주일 첫날에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1-2)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연보를 하며(성도를 섬김),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며, 떡과 잔을 나누는(성찬) 모든 관습은, 안식교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로마 카톨릭의 태양신 숭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위에 설명한 "안식 후 첫날"에 관한 구절들에 대해서도 안식교는 억지스러운 해석을 시도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각자 읽어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란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안식교가 "안식 후 첫날"을 언급하는 성경 구절을 어떻게 잘못 해석하는지 다루도록 하겠다.)
7.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안식 후 첫날"에 대한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기록은 사도행전 2장에 있다. 사도행전 2장은 보혜사 성령이 오시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에 출현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오순절에 백이십 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다락방에 모여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보혜사 성령이 오신 것이다(행1:4-5, 12-15 참고).
오순절에 오신 보혜사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일이었다(요16:14). 성령께서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었다. 성령을 통해 제자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보게 되었다(딤후1:10, 마28:18, 엡1:20-22, 빌2:9-11, 골1:15-18, 히1:3 등).
보다 중요한 사실은 보혜사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비단 그리스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엡1:17-2:7, 골1:27, 살후1:12, 살후2:14, 요17:24, 22, 마28:18-20 등).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의 모든 소유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소유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하나가 된 것이다(롬6:3-11, 고전12:12-13, 갈2:20, 갈3:26-27, 엡1:19-23, 엡2:5-6, 골2:9-13, 골3:1-4 등)
이 모든 영광스러운 일이 일어난 날이 오순절이었다. 그런데 오순절은 다름 아닌 "안식 후 첫날", 곧 일요일에 떨어진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레23:15-16) 오순절은 초실절("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50일째 온다. 그런데 초실절은 "안식일 이튿날," 즉 일요일이고, 초실절인 일요일부터 (그러니까 일요일을 포함하여) 50일째 되는 날은 또다시 일요일이다.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신 오순절 역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과 같은 날인 "안식 후 첫날"이었다.
8.
위에 살펴본 바를 요약하면,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신 날이었다.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처음으로 예배가 드려진 날이며,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성경을 열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죄 사함과 성령에 관한 진리를 처음으로 강론하신 날이며,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처음으로 떡과 잔을 나누신 날이었으며(성찬 예식),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교회가 떡과 잔을 나누기 위해 모인 날이었으며,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교회가 서로 섬기기 위해 연보를 하는 날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신약성경에서 일요일은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시며, 세상에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드러내신 날이었다.
"안식 후 첫날"은 신약성경에서 모든 성도들에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 깊은 날이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 이 성령에 감동하여 마지막 심판의 이상을 보게 된 "주의 날"은 무슨 날을 뜻할까?
"주의 날(Lord's Day)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10)
여기서 "주의 날(Lord's Day, τῇ κυριακῇ ἡμέρᾳ)"은 성경에서 오직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표현이다. 예를 들어, 이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2절의 "주의 날(the Day of Christ, ἡ ἡμέρα τοῦ Χριστοῦ)과 다른 날이다. (우리말에서는 둘 다 "주의 날"로 번역하고 있지만, 영어는 둘을 다르게 번역하고 있으며, 실제로 헬라어도 이 두 날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안식교의 주장과 달리, 여기서 "주의 날"은 토요일이 아니라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이다.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 사도 시대 이후로 초대교회가 남긴 여러 문헌에서도 "주의 날"이라는 용어는 일요일을 뜻하고 있다. 그리스어는 사도 시대와 초대교회의 이와 같은 관행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리스어는 일요일을 '태양의 날(Sunday)'가 아닌, "주의 날(Κυριακή, 큐리아케)"이라고 표현한다. '큐리아케(κυριακή)'는 문자적으로는 '주님의 소유'라는 뜻으로 '큐리오스(κύριος)', 즉 '주님'이라는 말에서 나온 단어이다.
"주의 날"은 주님께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바로 그날이며, 보혜사 성령이 오신 바로 그날이다. "안식 후 첫날"만큼이나 "주의 날"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날은 없다.
"주의 날"에 사도요한이 처음으로 본 것은 요한계시록이 다루고 있는 칠 년 환란도 아니고, 음녀 바벨론도 아니고, 적그리스도도 아니다. "주의 날"에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 처음 본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다. (여기서도 성령이 나타내신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이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계1:13-16)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영광과 위엄을 보았을 때, 사도 요한은 그 발아래 엎드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계1:17) 사도 요한은 여기서 "주의 날"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경배하고 있는 것이다. 경배란, 다른 어떤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크신 영광을 감당하지 못하여 그 앞에 엎드러지는 것이다(출40:3, 왕상8:10-11, 대하5:13-14, 겔44:4, 계4:10 참고).
앞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와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28:9)
9.
"주의 날"에 주님은 사도 요한에게 자신에 관해 다음과 같이 계시하셨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1:17-18)
사도 요한에게 "주의 날"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는, "안식 후 첫날"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주님이시다. "나는 . . .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 ." 그리스도는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 앞에서 사망의 권세는 완전히 힘을 잃었다. 이제 사망과 음부는 그 발 앞에 복종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이 보여주는 그리스도는 심판자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심판자가 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었다가 부활하셔야만 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도 죽었다가 부활하셔야 하지만, 심판자가 되시기 위해서도 죽었다가 부활하셔야 한다. 이 영적인 원리는 요5:21-29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5:27, 22)
누가복음 24장에서 "안식 후 첫날"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님으로 말씀하고 계시고, 요한계시록에서 "주의 날"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심판의 주님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구원자가 되시며 또한 심판자가 되시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다. 누가복음 24장에서 "안식 후 첫날"과 요한계시록에서 "주의 날" 나타나신 그리스도는 둘 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안식 후 첫날"과 "주의 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내는 같은 날이다.
10.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날"이다(초실절, 레23:9-14). 보혜사 성령께서 오신 날은 "오순절"이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순절도 "안식 후 첫날"이다. "안식 후 첫날"은 그리스도께서 사망을 폐하시고 부활하신 날이다. "오순절"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 되게 하신 날이다. "안식 후 첫날"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처럼, "오순절"에 성령이 오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2:1, 5 참고)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다.
사도행전 2장은 성령이 오셨을 때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로마서 6장은 사도행전 2장이 기록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면, 로마서 6장의 사건은 믿는 자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로마서 6장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먼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야 하며, 다음으로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날은 "안식 후 첫날"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날은 성령이 우리 안에 오신 "오순절"이다.
에베소서 1:19-2:6 또한 같은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에베소서 1:19-22(23)까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사건을 설명한다(초실절). 그러나 에베소서2:1-6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사건을 설명한다(오순절).
결국 "안식 후 첫날"과 "오순절"은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내는 날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오순절"도 "안식 후 첫날"과 같은 날, 즉 일요일에 오도록 안배하신 것이다. 누가복음 24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은 "안식 후 첫날"(일요일)이고, 사도행전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날은 "오순절"(일요일)이고, 요한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에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날은 "주의 날"(일요일)이다. 이 모든 날은 주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이다.
11.
지금까지 일요일에 관해 성경이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초대교회가 일요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에 앞서 오늘날 안식교와 마찬가지로 초대교회에서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도 바울의 여러 서신서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사도 바울과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이들에 대해서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안식교는 19세기에 나타난 새로운 이단이 아니라, 초대교회부터 항상 있었던 이단인 셈이다.
(아래 소개하는 초대 교회의 문헌은 Dr. John H. Gerstner, "The Teachings of Seventh-Day Adventism" https://rpcnacovenanter.wordpress.com/2012/09/20/the-teachings-of-seventh-day-adventism-by-dr-john-h-gerstner/ 에 인용되어 있다. 대부분 직역하였고 불가피하게 의역한 곳에는 영어 원문을 남겨두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 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킨다. 그날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날이다." (바나바, 100년) --제 칠일은 토요일이므로 제 팔일은 일요일이다.--
"안식일을 지킨 후에 그리스도의 모든 친구들이여 주의 날을 축제의 날, 부활의 날, 모든 날 중에 가장 중요한 날로 지키자(the queen and chief of all days)" (이그나티우스 107년)
하지만 이그나티우스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래된 것들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확신 가운데 있다. 그들은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며, 주의 날에 따라 살아간다. 그날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한 우리의 생명이 나타났다(the Lord's day, on which our life as risen again through Him depends)."
여기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도 "주의 날"은 안식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을 가리키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일요일은 우리가 성찬 모임을 갖는 날이다. 왜냐하면 이 날은 한 주의 첫날이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져스틴, 145년)
"만약에 어떤 사람들이 연약함으로 인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지키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인들과 신실한 자들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그리고 전에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자신들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할례를 받게 하거나, 안식일을 지키게 하거나, 그와 같은 다른 의식들을 지키도록 유도하지 않는다면, 나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해야 하며 형제와 친척처럼 그들과 함께 교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져스틴)
그러나 우리는 져스틴의 생각을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 져스틴의 생각은 로마서 14장의 가르침과 일맥 상통한다. 그러나 로마서 14장은 다른 서신서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가르침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2-4, 갈4:8-11, 골3:8-23 참고)
"옛 일곱째 날[안식일]은 그냥 일하는 날이 되었다(The old seventh day has become nothing more than a working day)"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174년)
"우리가 태양 숭배와는 매우 다른 이유로 일요일을 기뻐하는 날로 정한 것은 당신들 "유대인들"이 [로마의 신] 사투르누스의 날(토요일)을 편안함과 호사스러움의 날로 정한 것과 어느 정도 닮아있다." "안식일을 준수와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은 아담과 아벨과 고대의 의인들이 이것들을 지켰음을 증명해야 한다. . . . 우리는 세상 일을 접어두고 주께서 부활하신 날을 지킨다."(터툴리안 200년)
"주의 날에 우리는 감사를 드리며 떡을 떼러 간다. 우리는 유대인들과 함께 어떤 안식일도 지키는 것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란다. 안식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몸으로 폐지하셨다." (빅토리아누스, 300년)
"그러나 우리는 주의 날을 기념한다. 왜냐하면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베드로, 306년)
[출처] 안식일과 일요일 (손계문, 강병국, 앤드류 강과 안식교)|작성자 bkyang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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