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호 와 의 증 인 비 판
Ⅰ. 序 論
여호와의 증인의 폐혜가 어느 정도인가? 혹자들은 이를 미미하게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연감을 보면 그 정확한 숫자는 우리들을 경악하게 한다. 212개국의 1989년의 상황을 살펴보자. 전도인은 3,787,188명이며, 평균 전도인 수는3,624,773명이며, 회중수는 60,192명이며, 총시간은 835,426,538시간이며, 1988년에 비한 증가율은 5.6%이다.1)여호와의 증인의 확장은 파죽지세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위협을 받는 목회의 현장은 여호와의 증인을 깊이 연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먼저 여호와의 증인의 출현에 영향을 끼친 두 가지 요소를 살펴 보고자 한다. 첫째,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 대각성 운동의 퇴조로 인하여 그 운동의 부정적인 요소로 출현했다. 대각성 운동의 선봉자인 요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의 주권, 구원의 확신, 지옥의 형벌’을 외쳤다.2) 이 운동이 수 많은 기독교인들의 각성을 불러 일으키고 대부흥을 이루었으나 점차 이 운동이 퇴색되어 감으로 사회에 부정적인 요소가 여러가지 산출되었다. 그 중에 하나가 ‘지옥에 대한 공포’였다. 지옥 형벌에 대한 공포가 여호와 증인의 창시자인 ‘럿셀’에게 찾아 왔던 것이다.3) 이 지옥에 대한 불안과 회의가 ‘지옥이 없다’라는 결론에 치닫게 되고 기독교의 철옹성과 같은 기본적인 교리들이 럿셀의 마음 속에서 하나 둘씩 회의되어졌다. 이를테면 천국과 지옥, 영혼 불멸, 삼위일체 등이 부정되었다. 삼위일체에 대한 부정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부정을 의미한다. 둘때,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 대각성 운동의 부정적 요소에 영향을 받았을 뿐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에 영향을 입는다. 여호와의 증인의 토대는 믿음보다 ‘이성에 의한 검증’이 된다. 인간의 사고 범주를 초월하는 신적인 면에서도 이성에 의한 판단을 받아서 만약 그것이 비논리적일 경우에는 그 교리를 배척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부정’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신성 모독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대각성 운동의 퇴조와 실증주의적인 철학 배경이 예수의 신성에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는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연구가 초대 교회 이후부터 근자에까지 계속 되어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 필연성과 당위성에 있어서 그 증거가 충분하다. 그 확실성과 명확성에 대해서 이론을 제기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도전을 가한다. 그것도 예수의 신성을 뒷받침하는 구절들을 열거하면서 반박을 시도하고 있다. 이 반박은 아리스도틀의 원인과 결과의 철학적 논리에 근거할 뿐 신학적인 요소는 찾아 볼 수 없다.
이 소논문에서는 먼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을 살펴보고 여기에 맞설 수 있는 세 가지 개념으로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고자 한다.
Ⅱ. 예수의 신성을 반박하는 여호와의 증인의 핵심적인 논거
첫째, 성부 곧 아버지는 예수의 하나님이시다. 요 20:17; 벧전 1:3 등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 예수께서 자기가 포함되지 않은 자기 아버지를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다. 요 17:3 영생은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셋째,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4) 마 16:17 이를 알게 하신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요 3:16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넷째, 예수는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복종하신다. 요 14:28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요 13:16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
다섯째, 예수는 하나님의 수석 피조물이며 우리들의 맏형이다. 요 1:14 우리가...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골 1:15 그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Ⅲ. 예수의 신성 부정에 사용된 세 가지 증거 구절과 그에 대한 반박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의 신성의 근거가 되는 구절을 도리어 자신들의 주장에 맞게 각색하여 신성 부정의 근거로 사용한다.
1. 골 1:15-19
A.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의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교리관대로 성경을 번역하여 자신들의 논리의 근거를 삼는다. 그 성경이 ‘신세계 역’(New World Translation of the Christian Greeek Scripture)이다. 신세계 역에서 이 구절을 왜곡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성격은 삭제하고 피조성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신세계 역은 다음과 같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 중에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이로 말미암아 모든 다른 것들을 땅과 하늘 아래 창조하게 하려 하심이며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과 또는 보좌나 정사나 주권이나 권세를 막론하고 창조되게 하심이라. 모든 다른 것들도 그를 통해서 그를 위해서 창조되었으며 그는 또한 다른 모든 것보다 먼저 존재하셔서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셨나니5)
여기서 어떻게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며, 그의 피조성을 드러 내는가? 첫째, 개역 성경과 달리 ‘다른’(other)이라는 단어를 4번씩이나 삽입하여서 예수님과 다른 피조물과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둘째, 이 본문 중에서 ‘먼저 나신’이라고 하는 단어를 이용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피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소책자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를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하신 것은 그가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처음 난 분이시며 가장 사랑과 은총을 많이 받은 자리에 놓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의 본인은 아니나 하나님께서 그를 처음 창조하시고 기타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 하실 때는 그를 도구로 사용하였다.6)
B. 이에 대한 반박
첫째, 개역 성경과 달리 ‘다른’(other)이라는 단어를 4번씩이나 삽입한 것은 헬라어 원문이나 다른 여러 역본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오역이며, 이는 예수와 다른 피조물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엄연한 왜곡임을 알수 있다.
둘째, ορ τξτξκξω의 의미는 먼저 창조되었다(firsr created)는 것을 의미하는가? 먼저 난 자(first born)와 먼저 피조된 자(first created)는 헬라어에 있어서 엄연히 다른 어휘이다. ‘먼저 피조된 자’는 헬라어로 ορ τθκθω7)이며, 먼저 난 자는 ορ τξκξω이다.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다른 피조물과 비교할 때, 먼저 창조된 것은 ορξζθνξμαθ가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ορ τξτξκξω는 전혀 시간적 순서에 있어서 먼저 ‘창조된’이라는 의미를 찾아 볼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의도적으로 ‘먼저 피조된 자’라는 말을 피하여 ‘먼저 나신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처음 난 자’는 그 지위와 계급을 표시하는 표현으로 쓰여졌다.8)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후사이시다. 그는 하나님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을 그의 것으로 소유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뛰어나신 분이심을 여기서 시사해 주고 있으며, 모든 피조물에 대한 주권적인 지위를 말하고 있다. 예수는 피조물로서 한낱 인간에 불과한 분이 아니라 그의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거하신(골 2:9) 분이시다.
2. 빌 2:5-8
A.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묘사하는 빌 2:5-8을 여호와의 증인은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가? 신세계 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 안에 이 정신적 태도를 가지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태도니 그는 그 본 하나님의 형상으로 계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를 ‘탈취하려는 생각’을 두지 않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내려 오기 전에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또한 자기가 권세나 영광에 있어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등된다고 여기지 않았다.9) 그는 악마가 밟는 길을 밟지 않았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동등될 것을 탐내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다.
B. 이에 대한 비판
첫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것을 얻기 위해 야심적인 마음을 가졌다거나 혹은 야심이 있었다는 등의 언급은 없다. 헬라어 본문에는 야심이라는 단어가 전혀 없다.
둘째,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리를 약탈하거나 쟁취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영원한 발송으로 존재해 계셨으며10), 하나님의 권위와 속성, 영광을 공유하셨기 때문이다.
셋째, 바울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선언한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 하나님과 같은 본질이시다(ξω εν μξρ η ιεξυ υοαρχ ν ). 예수 그리스도는 차등이 있어서 하나님의 자리를 탈취하려고 시도하실 가능성이 있던 분이 아니다.
넷째,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이 기사를 쓴 의도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자리를 탈취할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겸손하시어 종의 형체를 입으신 비하를 말하고자 했다.
3. 요 1:1
A.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첫째,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 역에서 요 1:1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처음부터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의 신(a god)’이시니라.11) 여기서 ιεξω를 a god로 번역함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2위인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여호와의 증인은 정통적인 번역들이 부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과감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들은 그리스바하가 편집한 헬라어 사본의 행간에 써놓은 목판본 Emphatic Diaglott에 의거하여 설명한다. 즉 말씀은 곧 하나의 신(a god)이다. 이렇게 해석 할 수 있는 타당성은 ιεξω앞에 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요 1장에서 그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는 곧 하나님의 代辯者이다. λξζξω는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높은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시며 다른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창조된 代能者이며 신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은 전능하신 신은 아니다.12)
셋째, 구약에서는 천군과 천사를 지칭해서 ‘신’이라고 했으며, 예수님도 우리들을 가리켜서 ‘신’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용되어진 ‘신’의 의미도 이와 같다. 그러므로 예수는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니다.13)
B. 이에 대한 반박
첫째, 신약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모든 이름 중에 ‘ιεξω’나 ‘κυρθξω’ 등은 하나님 명칭 이외의 다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요 1:1의 경우도 같은 원칙에 속한다.
둘째, 코웰의 법칙에서 정관사에 대한 것을 살펴 보자. 정관사를 가진 서술 명사가 주동사를 따를 때는 정관사를 취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관사는 생략된다. 고유명사는 보통 정관사를 취하지 않는다. 이러한 코웰의 법칙에 의하면 ιεξω에 정관사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볼 수 있다.14)
셋째, 천사와 성도를 지칭해서 ‘신’이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도 하나의 ‘신’에 불과하다는 것은 억측이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라고 했으며,15)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욱 강조하여서 ‘그는 참 하나님’이라고 했다(요일 5:21).
Ⅳ.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논증의 기본적 토대
1. 영원의 개념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들이 영원 전의 존재인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영원’의 개념을 시간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영원은 시간의 영원한 연속인가? 여호와의 증인들의 사고와 같이 영원 속에 시간적인 순서가 있는가? 이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나셨다’는 것을 시간의 순서로 본다. 즉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계셔서 예수를 영원 전에 만드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 먼저 계신 것이다.’ 과연 이것이 타당한 것인가? 영원의 개념을 살펴 보자.
A. 히브리적 시간 이해
히브리인들은 시간을 사건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헬라인들이 시간을 객관적인 계기와 같은 것으로 파악한 반면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건의 흐름을 가지고 말하고 있다.16) 그 예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역사 기술에 있어서 주제별로 연관시켜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순서를 엄격하게 짓지 않고 ‘통시적(通時的)’으로 시간을 이해하고 있다. Boman은 히브리어의 언어학적 구조를 통해 이 사실을 증명한다. 히브리어의 동사의 완료형과 미완료형의 특성에서 그들의 사고가 무시간적이며 통시적임을 할 수 있다.17)
B. 어거스틴의 영원의 개념
서기 5세기까지는 영원의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으나 어거스틴에 이르러서는 영원에 대하여 하나의 체계적인 이론이 세워진다.18) 어거스틴이 말하기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은 모든 피조물의 시작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시간은 창조된 세계에 앞서 존재 할 수 없다. 시간이 창조시에 시작되었다고 볼 때는 하나님 자신이 불변적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영원하시다. 하나님에 관한 한 영원 전도 없으시고 영원 후도 없으시다.19)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지식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영원에 대한 불완전한 개념을 갖게 된다. 인간의 추측은 자신의 변화하는 존재와 시간에 제한 되어있는 것이다.
C. 여호와의 증인의 ‘영원’의 개념에 대한 비판
영원의 개념이 여호와의 증인의 이해와 같이 매우 긴긴 시간을 의미하는 정도의 모호한 시간이 아니라 영원을 무시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영원에 있어서 시간의 순서를 논하는 것은 논리의 모순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 전에 하나님의 독생자로 태어 나셨다는 것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피조성을 의미한다라고 하는 주장은 저차원적인 단순한 발상에 불과하다. 영원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발송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 2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다. 이 진리를 어찌 인간의 미련하고 우둔한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2.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히브리적 개념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신성이 없는 인간에 불과한 분이며 단지 신격을 부여 받은 자에 불과한 분으로 생각한다.20) 고대 근동과 성경에서 아들이라는 개념이 ‘유교적 개념이나 여호와 증인의 개념’과 같이 아버지와 현격한 차이가 있는 아들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어떤 의미가 있는가?
A. 고대 근동의 아들에 대한 개념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우가릿에서 아들의 개념은 상속자로 이해되어졌다. 고대 근동에서의 아들의 개념은 직위의 서열에 있어서 열등을 의미하지 않고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있는 권위가 있는 상속자를 의미한다.21)
B. 구약에서 아들에 대한 개념
구약에서 잠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야가 연결된 곳은 다니엘 7장 밖에 없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단지 메시야를 지칭하기보다는 이스라엘, 천사, 왕 등을 지칭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칭호를 살펴보면 그 의미는 유교식의 상위(相位) 개념으로 나타나지 않고, 목자나 남편, 구속자로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언급할 때 쓰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약에서는 분명히 그 의미가 드러나지는 않으나 단순한 부자 관계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암시해 준다.
C. 요 10:29
신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의미를 요 10장에서 찾는 것은 여기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아들의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행각에서의 예수와 유대인간의 논쟁을 살펴보자.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29절)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과 이름으로 일하고 있으며(25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한다(36절). 이러한 선언들을 단지 우리들의 사고로만 판단한다면 그는 단지 하나님의 사자로서 하나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열등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심각했다. 한낱 인간이 자신을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유대인의 사고로는 신성 모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33절).22)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던 이유는 단지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아들의 개념은 아버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에 있어서 아버지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것을 종합해 볼 때,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유대적인 개념과는 전혀 다른 ‘인간’으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이는 예수님 당시의 히브리적인 사고로 하나님의 아들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예수의 신성으로서 행하신 자아 근원적 선포와 능력
여호와의 증인들의 주장과 같이 인간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정을 받으셨는가?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의 신성으로서 행하신 宣布와 능력이 自我 根源的인가를 살펴 보자.
A. 宣布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는 예언자나 모세의 권위를 훨씬 초월하는 직접적인 권위를 가지고 자신을 선포하셨다.
첫째, ‘나는...이다’(εζ εθμθ)라는 정식이 요한 복음에서는 16회나 사용된다.23) 이것은 출 3:14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 라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선포와 동일한 선포이다. 여기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이기는 하지만 그의 능력과 선포는 自我 根源的임을 알게 된다.
둘째, 요 10:30에서 예수는 자신의 신성에 대하여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εζ καθ ξ οατηρ εν εσμεν).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격의 상이성과 본질의 통일성을 표현하면서 서로가 두 인격이기는 하나(εσμεν) 한 본질 또는 한 본체이시다(εν)라고 예수님은 스스로 밝히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서 가장 분명하게 자아 근원적인 분임을 알 수 있다.
B. 奇蹟 행함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능력으로 이적을 행하신다.
첫째,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자를 고치시며 죽은 자를 살리기까지 하셨다. 이것이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아님을 중풍병자를 고치신 기사를 통하여 알 수 있다. 하나님만 선포하실 수 있는 죄사함의 선포를 예수님께서 행하셨다(막 2:1-11; 마 9:1-3; 눅 5:20이하).
둘째, 자연을 다스리시는 이적을 일으키심으로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임을 계시하신다. 자연을 통치하실 수 있는 분은 자연을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 외에는 없다(마 8:23-27; 막 4:37-41; 눅 8:22-25).
Ⅴ. 結 論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9).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을 인간의 이성 속에 가두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한낱 인간에 불과한 피조물로 만드는 커다란 과오를 범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듯이 여호와의 증인도 이단으로 정죄됨이 마땅하다. 우리들은 이들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미가엘 천사가 인간의 몸을 입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 받게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부여 받은 맏형, 수석 피조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시며 영원 전에 존재하신 분이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의 택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어 지금도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 가운데 계신 분이시다.
1)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1990 여호와는 나를 돕는 분이시다 (서울:워치타워 성서 책자 협회,1990) pp.42-43
2) 김명혁. 근세교회사, (수원 : 합동신학교,1989) p.47
3) 원세호,여호와 증인의 정체 (서울:요단 출판사,1985) p.9
4) 하나님이 거짓말 하실수 없는 사실,(서울:왙치타워,1976) p.143
5) New World Translation of the Christian Greek Scripture 2ed (Pennsylxania:Whatchtower,1951)
6)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서울:왙치 타워,1955) pp.34-35
7) 호머 던컨. 여호와의 증인과의 마음의 대화 (서울:생명의 말씀사,1975) p.46
10) 제임스 그린. 웨스터민스터 신앙 고백서 대조 해설 (서울:성광문화사,1973) p.23
15) 마16:16,신5:26,시40:2,히3:12,행14:15,고후3:3
16) 정광일.기독론 중심으로 본 시간 이해 (서울:장신대원,1985) pp.16-17
17) Thorleif Boman, Hebrew thouht Compared with Greek (New York:The Norton Library,1970) pp139-142
18) 기독교 대 백과 사전 (서울:기독교문사.1988) p.706
19)어거스틴 참회록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1988) p.320
20)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서울:왙치타워,1985) pp.120-121
22) 헨드릭슨,문창수 역,요한복음(중) (서울:아가페 출판사,1985) p.174
23) 요6:15, 41, 14, 51, 8: 12, 9:9 10:7, 9, 11:14 36, 11:25 14:6 15: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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