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교의 유래와 오류들
킹스타운 침례교회 김영배 목사
지금까지 안식일예배 광고 오류에 대하여 성경과 검증된 글들을 인용하여 실었다. 필자는 본지와 더불어 신문광고를 통한 과격한 표현수준의 인신공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글은 누구를 인신 공격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기독교 신앙을 오류의 잣대로 판단함에 대한 바이블 빌리버로서의 신앙 양심에서 나온 반응이다. 안식일 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성경을 존중하고 천주교의 오류에 대한 분별과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가고자 애쓰는 사람들이지만 성경 해석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고 있으므로 안타까운 마음에서 그 잘못된 오류들을 안식교의 유래와 교리의 발전을 살펴보고 지적하고자 함이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안식일 예배로 구원을 받고 일요일 예배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므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왜곡된 주장은 성경 말씀을 대상(고전10:32)과 시대 (엡1:10,3:2, 골1:25-26, 경륜- 하나님의 경영체계)로 나누지 않는데서 오는 오류이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rightly dividing) 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하라.” (딤후 2:15)는 명령에 따라 성경을 바르게 나누어 계속 공부해 보자. 성경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또한 성경은 일요일을 기독교 안식일이라든가 다른 어떤 종류의 안식일로 부르지 않는다.
안식교의 유래와 오류들
안식교(Seventh Day Adventist Church,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유래와 오류의 발달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네 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Handbook of Denominations in the United States, Frank Mead & Samuel Hill & Craig Atwood, Abingdon Press; Defense of the Faith, Albert Garner, Bogard Press 참조).
윌리암 밀러 (William Miller)
안식교는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에 의해 출현하였다. 그는 1782년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에서 출생하였다. 처음에 회의론자였으나 1816년 개종하여 목사가 되었다. 그는 2년 동안 열심히 성경을 연구한 뒤 “1818년에서 25년이 지난 1843년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시한부 종말론적 결론을 내렸다. 그뒤 4년 정도 더 공부한 뒤 공식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자 많은 추종자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다.
밀러는 다니엘서 9장 24-27절을 인용하여 주님의 재림의 날짜를 잘못 계산하였다. 25절의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받은 날(BC 457년)로부터 성소가 정결하게 되기 전에 2,300일이 지나야 한다는 말씀(단8:14)에 근거하여 성소가 정결케 됨을 예수님의 재림으로 이해, 하루를 1년으로 계산, 2,300년으로 해석하여 BC 457부터 2300년이 지난 1843년을 예수님의 재림의 해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주님이 재림하시지 않자 밀러파 추종자들의 실망 속에 1843년이 지나갔다. 그들은 이 사건을 ‘대실망’이라 부른다. 그 이후 많은 이들이 밀러파를 떠났지만 여전히 다수는 재림을 기다리며 밀러를 추종하게 된다. [주: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우리나라에서 1992년 10월 28일 재림을 주장한 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와 미국의 경우 1994년, 2011년 재림을 주장한 헤롤드 캠핑 목사 등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음].
히람 에드슨(Hiram Edson)
히람 에디슨은 밀러 추종자 중의 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에 대한 이상을 보게 되었다. 그는 “주님이 천상의 성소에서 나와서 2300년이 되는 해인 1843년에 오시는 대신 천상의 성소 안에 있는 두 번째 방(지성소)에 들어가서 그분이 재림 전에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이 매일 매일의 사역이 있고 일 년에 단 한차례 대 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성소를 정결케 하였기 때문에 수세기의 기독교 시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매일 사역을 해 오셨는데 그 결과 죄는 용서받았으나 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연중 사역은 1884년 10월부터 죄를 없애 주는 사역이 시작되고 이 일이 끝나야 예수님께서 지상에 재림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안식교의 또다른 오류인 ‘조사심판 교리’라는 것이 나오게 되었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후 곧바로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영원하고 완전한 단번속죄를 종결하심을 믿는 것이 일반 기독교 신앙이다 (히브리서 6:20; 9:12)].
조셉 베이츠(Joseph Bates)
조셉 베이츠는 크리스천이 지켜야 할 날이 안식일이라는 교리를 확립하였다. 안식일 준수를 구원의 조건로 내세우게 되었다.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바로 계시록의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계시록 7장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봉인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봉인이 바로 안식일이라고 주장하고 봉인 받은 자의 수효가 144,000명이며 바로 이들이 안식교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주: 모든 이단들의 특징은 모두 자신들을 14만 4천명이라고 주장한다. 짐승의 수는 적그리스도, 즉 어떤 사람의 수이다 (계13:18). 유대인들이 아니면서 자칭 유대인라 하는 자들을 주님은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이라고 책망한다(계2:9)].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엘렌 화이트는 예수 재림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로 1827년 감리교 가정에서 탄생하였다. 그녀는 평생토록 병으로 고생했고 어려서는 마비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1840년, 1842년 윌리엄 밀러의 강연을 들은 뒤 그녀의 가족은 모두 밀러주의자가 되었다. ‘대실망’ 사건 이후 여러 차례 환상을 보게 되었고 23년간의 사역 기간에 100-200번의 ‘펼쳐진 계시’를 보았다고 한다. 안식교인들의 신앙과 활동이 그녀의 환상이나 가르침 등에 의해서 고무되게 되었다. 1845년 2월에는 예수님께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이 환상을 통해 조사 심판 교리가 안식교 교리로 자리잡게 되었고 1847년 4월에는 지성소의 언약궤와 그 안의 십계명을 보았는데 제4계명 즉 안식일 계명에 승리의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 환상을 통해 안식일 성수 교리가 확증되게 된다. [주: 성경의 객관적 환상과 계시는 주후 96년 요한계시록으로 종결됨(계22:18-19)]
현황
전 세계적으로 약 300만 정도로 추산한다. 미국에 1999년 멤버쉽 861,860명, 4,421개 안식일 교회가 있다 (Handbook of Denominations in the United States, By Frank S. Mead & Samuel S. Hill & Crag D. Atwood)
안식교는 우리나라의 경우 삼육 재단, SDA학원, 살아남은 이들, 생애의 빛 등과 관련이 있다. 필자는 안식교 책자들과 유투브 SOS TV 강병국, 손계문 목사 등 안식교 관련 목사들의 강해를 많이 들었다. 화려한 영상과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하는 달변의 강해에도 불구하고 성경 해석상,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안식교 교리의 오류들.
안식교가 주장하는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혼멸절설(영혼불멸, 부활신앙, 지옥실재 부인), 믿음 더하기 행위에 의한 구원(조사심판), 안식일 준수(율법주의), 기타, 십일조에 의한 구원, 고기, 커피 등을 금하는 것 등.
오류들의 성경적 반박
1) 영혼 멸절 (부활 신앙의 오류).
안식교 교리의 영혼 수면 및 영혼 멸절은 여호와의 증인 교리와 비슷하다. 그들은 “죽었을 때의 인간 상태는 무의식 상태이다. 선인이든 악인이든 모든 사람이 죽은 뒤 부활할 때까지는 무의식 속에서 즉 혼이 자는 가운데 무덤 속에서 머문다.둘째 부활 시에 부활하는 악인들은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소멸된다”고 주장한다.
이 교리는 지옥의 불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진짜 불 즉 이 세상에서 우리가 뜨겁게 느끼는 그런 불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불 곧 상징적인 불이며 또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자신의 창조물을 진짜 불 속에 영원토록 던져 넣는 잔인한 분이 아니기에 불신자의 혼은 죽어서 소멸된다고 그릇되게 가르친다.
[주: 이런 주장을 펴기 위해 안식교인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는 eternal이다. 이 말은 원래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을 나타낼 때 혹은 천상의 것의 우수함이나 고매함 등을 지상의 것과 비교할 때 즉 질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이다(마19:16). 반면에 영어에서 양을 강조하면서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을 나타낼 때는 ‘영존하는’이란 뜻의 everlasting(KJV)을 사용하며 마18:8은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존하는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낫다.”고 말해 지옥의 불이 영원토록 지속됨을 보여 준다. 이렇게 하나님은 치밀하게 everlast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영혼멸절설’ 같은 이단 교리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셨다. 사악한 자들은 영원토록 계속해서 지옥 불 속에서 고통을 받으므로 영혼은 멸절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생명은 질적으로 우수한 ‘영원한 생명’인 동시에 양적으로도 영원토록 계속되는 ‘영존하는 생명’이고 불신자에게 주시는 생명도 질적으로 양적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이다.-에스라 성경사전 참조]
사람이 죽으면 육은 무덤에 있고 그것을 성경은 잠잔다고 말한다(고전11:25; 살전4:16). 무엇이 잠자는가? 영과 혼이 아니라 육체가 무덤에서 잠자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가 부활한다. 신자의 영과 혼은 죽으면 바로 셋째 하늘로 올라간다(전12:7; 빌1:21-24; 고후5:8(…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러므로 ‘소천’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경의 반론: 눅16:22-32, 계6:9-11, 마25:46, 계14:9-11, 계20:10 참조].
2) ‘믿음 더하기 행위’에 의한 구원 (조사심판 교리 오류)
예수님의 속죄는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진행 중인가?
엘렌 지 화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속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위대한 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하시는 동안 우리는 완전해지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회개하는 죄인을 율법의 저주로부터 풀려나게 하는 것이기는 해도 죄를 말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현재 조사 심판을 하고 있으며 그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속죄하고 계신다.”
안식교는 죄의 소멸 작업 혹은 진정한 속죄가 1844년 10월 22일 예수님께서 하늘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셨을 때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속죄를 마련하는 희생을 드렸으며 승천 후에는 이 헌신을 적용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현재 예수님께서는 창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을 ‘조사 심판’하여 믿는 자 중에서도 ‘합격’, ‘불합격’을 가리고 있는 중이라고 그릇된 주장을 한다. 그들은 ‘죄들의 사면 혹은 용서’와 ‘죄의 말소’ 사이에 구분을 둔다. 즉 사람이 회개하면 죄는 용서받지만 죄가 말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적인 죄의 말소는 구원받은 뒤의 행위와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조사 심판이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1844년 10월 22일까지는 하늘 성소에 계시다가 그날 드디어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가셨고, 그때부터 그곳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조사하고 계신다는 것인데 신구약 성경을 망라하여도, 1844년에 예수께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이나 조사심판이라는 말은 한 군데도 없다. 다만 에드슨, 화이트(White) 등이 만들어낸 거짓 교리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하얀 거짓말(white lie)이란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승천 즉시 지성소에 들어가셨다 (요1:29,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KJV)…, 히6:20; 9:12, 완전하고 영원한 단번 속죄). [믿음 더하기 행위에 의한 구원 반박 성경 구절: 엡2:8,9; 딛3:5; 히9:12; 28; 10:18 3].
3) 안식일 준수(율법주의 오류)
안식일은 유대인들의 표적(느9:14; 겔20:12, 20)으로 주전 1500년경에 안식일 명령이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신약시대 주님의 교회에서 그것을 명령으로 지키지 않는다. 아담, 아벨,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같은 창세기 인물들도 안식은 하였으나 안식일은 지키지 않있다. 아담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창1:15-17)은 안식일을 포함하지 않았다. 아담은 창3:19-20 전에는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율법을 전부 지킬 수 없다. 율법의 하나라도 어기면 죽어야 한다(약2:10). 구약의 율법 명령들은 이제 폐기되었다(고후3).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율법 하에 있지 않다(롬6:14).
실제로 유대인들 외에는 시공의 차이로 안식일을 바르게 지킬 수 없다 (거리 문제). 그리스도인들은 일요일 주일에 모였다. 일요일 예배는 주후 150년경에 크리스천들 사이에서 거의 확정되었다. 그들이 일요일 예배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천주교가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을 지키라고 한 것은 AD 4세기가 지나서 된 일이다. 그런 논리라면 토요일도 금송아지 토성신을 숭배한 날이므로 지키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도 안식일을 어겼다(요5:18). 신약에서는 날이나 절기나 안식일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게 명령한다(골2:16-17, 그러므로 아무도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으로 인하여 또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에 관하여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그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
[주: 안식과 안식일 구분- 창세기 1장은 인간에게 주시는 창조의 안식이다. 출애굽기 20장에서 비로소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제정함. 안식일은 예배가 아니라 안식하는 날이다. 히브리서의 안식은 수신 대상이 유대인 크리스천이므로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이집트 탈출과 가나안 입성에 관한 안식을 다루고 있다. 히3:18, 4:1, 4:10의 ‘하나님 자신의 안식’은 구원을 상징하는 이집트 탈출(출애굽) 이후의 가나안 입성과 관련된 안식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누릴 천년왕국의 안식을 가리킨다. 이 안식은 구원받은 자가 누릴 안식으로 특별히 환난기에 들어간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경우 힘써서 들어가야 하는 안식이고(마24:13; 히4:11) 성도들의 경우 선한 행위와 수고를 통해 얻는 안식이다. 반면에 히4:2-6의 안식은 창조의 안식이며 동시에 구원받아 영혼의 자유를 얻는 안식이고 이것은 복음이 믿음과 결합될 때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얻는 안식이다(히4:2)- 에스라 성경사전 참조].
4) 육식, 커피 등 금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기호식품을 절제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Legalism 혹은 율법화하여 이를 금지하는 것은 불필요.
5) 날짜 계산 오류
안식교는 다니엘 8장 14절을 잘못 해석하여 출현하였다. 안식교의 서고 무너짐이 이 구절에 있다. 성경의 예언들은 많은 경우 이중적으로 성취된다. 이 구절에서 밀러는 앞으로 7년 대환란 기간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예표인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선민 유대인들을 괴롭힌 기간인 2,300일을 2,300년으로 잘못 해석하여 시한부 종말론 사상이 생겨났다.
여기서 2,300일 기간은 6년 4개월 (유대력 1년 360일 기준, 주전 170년 8월5일- 주전 164년 12월25일)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예루살렘 성전에 주피터 제우스 형상을 세우고 우상숭배를 유대인들에게 강요하여 하나님 앞에 가증되게 행한 악행(단11:31; 대환란 때 적그리스도, 마24:15; 살후2:4)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던 기간을 말한다. 그후 마카비의 승리로 유대인들은 독립을 쟁취하였고 여기서 하누카(성전 봉헌일, 12월25일)가 유래되었다.
밀러는 계산의 기점을 BC 457년으로 잡고 2300년으로 환산하여 예수님이 1844년에 재림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뒤 다시 1844년 10월 22일로 재림 날짜를 연기하였다. [주: 여기서 계산의 기점 BC 457년도 틀린다. 느헤미야 당시 BC 445년의 아닥사스다의 칙령으로 계산해야 한다. 이렇게 계산해야 다니엘의 70이레 중 69이레 메시야가 끊어지는 시점, 즉 AD 30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이 정확히 483년 (태양력으로는 476년)이후에 예수님의 처형과 맞아 떨어진다. 이것이 기독교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니엘서 8장 13-14절의 2300일은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할 수 없는 구절이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당시에 그가 2300일 동안 유대인들을 괴롭힌 기간으로 해석한다.
결론: 이처럼 안식교는 구약시대, 신약시대, 환란시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여 성경 해석상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 땅의 성소를 하늘의 성소로 잘못 해석하고, 2300일을 2300년으로 잘못 계산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시한부 종말론, 이에 따른 재림 불발로 인한 대실망, 조사심판 교리, 일요일 예배를 짐승의 표로 연결하여 믿음에 행위를 더하는 다른 복음. 영혼 불멸, 지옥의 실재 부정 등 그릇된 교리들을 주장하므로 그들의 건전한 삶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모든 이단들은 성경의 시대와 대상을 잘못 구분하여 생겨났다. 천주교 대체신학 영향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구약시대, 신약시대, 대환란 시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면 성경의 예언이 제대로 풀어지지 않고 다양한 영해가 나오게 된다. 이스라엘을 교회로 대체하고, 교회를 자신들(14만 4천)로 대체하여 이단들이 생겨났다.
14만 4천은 성경대로 대환란중의 유대인 성도들을 말한다. 무슨 지파, 무슨 지파 하는 한국의 이단 재림주들, 신천지(이만희), 통일교(문선명), 전도관(박태선),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증인회), 정명석 등도 한결같이 ‘동방’을 ‘한국’으로, 이스라엘을 교회로, 그리고 교회를 자신들로 대체하여 일어 났다. 성경에서 동방은 이스라엘의 동쪽인 바빌론 지역을 말하며 한국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성경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 보면 성경의 수많은 예언이 제대로 연결되어 보인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성경의 수많은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해 1900년 동안 나라없이 유리방랑하던 선민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회복시키시어 마지막 시대의 예언들을 이스라엘을 통해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다(롬11:25-26; 겔37:11; 마24:32).
신약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어도 괜찮은 것 처럼 안식일 준수는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이므로 신약시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과는 관련이 없다. 안식교인들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자신들의 교리의 틀 속에서 성경을 믿어버리기 때문에 그 오류의 베일을 벗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간단히 성경의 두 구절 만이라도 유념한다면 거짓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온다”(요4:22).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계2:9)”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같은 거짓 이단교리나 오류에 속지 않을 것이다.
* 안식일은 오직 모세의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고, 주일은 은혜 아래 있는 신약의 크리스천들을 위한 것이다.
* 안식일은 죽음의 형벌로 인해 강제로 시행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율법'이었지만,(민 15:32∼36) 주(週)의 첫날인 주일은 명령이나 형벌 없이 크리스천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켜지는 '은혜'에 속한 것이다.
* 안식일은 신체적 휴식의 날이었으나,(출 20:10) 주일은 예배의 날이다.(행 20:7; 계 1:10)
* 안식일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구원을 예표하나, 주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을 예표한다.
안식일 예배 vs 일요일 예배,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킹스타운 침례교회 김영배 목사
요즘 안식일 예배 주장을 하는 광고를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성도들이 문의를 합니다. 그 광고에는 “일요일 예배 성경에 있는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묻고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좋은 구호를 외칩니다. 그러나 성경의 바른 적용의 중요한 원리를 놓치고 있습니다. 성경을 적용하는데 오류를 범하면 성도들을 그릇되게 인도하게 됩니다. 저마다 성경에 있다고 성경을 인용하지만 왜 서로 다른 주장을 합니까? 하나님의 보존된 말씀으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성경해석 명령에 따라 해석과 적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분은 안식교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안식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요일 예배를 지키는 사람은 지옥간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신약에서 율법의 끝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폐해진 의식법과 그리고 인간관계 사이의 도덕법을 구분하지 못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역을 헛되게 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이단 교리입니다. 그리고 계시록의 "인"을 잘못 연계시켜 해석하여 행위 구원을 가르치는 오류를 범합니다.
일요일 예배는 4-5세기에 종교회의에서 제정된 천주교의 전통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논리라면 토요일 예배 역시 우상 숭배의 날입니다. 부활절, 성탄절 역시 천주교가 나중에 우상숭배의 날에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도 모두 다 비판해야 합니다. 성경은 일요일 예배는 다른 동기로 시작됨을 기록합니다. 이미 초대교회 성도들이 (유대교와 분리하기 위해) 지키고 있었습니다. 안식후 첫날 초대교회가 주님의 부활의 날에 이미 천주교가 제정한 법의 몇 백년전에 일요일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안식교는 그들이 건전한 생활과 투철한 성경의 믿음을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이단으로 부르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 해석의 오류를 범하여 결국 영혼 멸절, 지옥의 실재 부인 등 성경교리를 왜곡시키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잘못 적용한 사람들의 교리와 전통을 버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바른 믿음을 갖아야 합니다.
[1] 시대와 대상을 나누어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주시는 성경공부에 대한 명령이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라’는 명령은 성경에 딱 한번 나옵니다. 카톨릭에 의해 변개되지 않은 종교개혁 사본(기독교사본)에서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 (KJV)에만 보존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누라고 하셨으면 나누어야 하고 이 명령에 따라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연구 혹은 공부해야 합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나누어(rightlydividing)네 자신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나타내도록 연구(study)하라.”(KJV, 딤후 2:15),
자, 함께 성경의 명령대로 연구해 보겠습니다. 무엇을 나누어야 합니까? 대상을 나누고 구약과 신약 등 시대를 나누어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경륜(dispensation, 엡1:10, 하나님의 우주와 인간을 다루는 경영방침)이 시대마다 다르기 때문이며 성경은 유대인과 교회에게 주신 약속이 다르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수신자의 대상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하나님의교회에나어떤실족거리도주지말되” (고전 10:32). 이처럼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로 나누고 있습니다. 만일 유대인에게 해당되는 것을 신약교회에나 이방인들에게 적용하게 되면 교리적 혼란을 초래합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성경 해석에 오류가 발생하여 엉망이 되며 특히 마태복음, 히브리서, 요한계시록 등에 여러 해석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 원칙을 무시하고 신약교회의 관점에서 구약의 십계명을 보게되면 오류를 진실로 오해하게 됩니다. 이는 안식교의 출현과 정확히 일치하며 안식교는 이러한 원칙을 무시해서 생겨난 율법주의 이단입니다.
다음은 안식일에 대한 구절입니다. 국어를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누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는 또 이스라엘자손에게말하여이르기를너희는진실로내안식일을지킬지니라. 그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너희사이에있을표적이니이것은내가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 인줄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니라.”(출 31:13).
“또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사이에표적이되게하였나니이것은내가그들을거룩히구별하는주인줄그들이알게하려함이었노라”(겔 20:12).
“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니라. 안식일이 나와너희사이에표적이되리니이것은내가주너희하나님인줄을너희가알게하려함이니라하였노라” (겔 20:20).
이처럼 안식일은 선민 이스라엘에게 주신 명령입니다.
[2] 성경은 유대인, 이방인, 하나님의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십계명은 주전 1490년경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출애굽한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출 20:1-17).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택하신 것은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죄의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하늘의 왕국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을 표명하는 십계명을 유대인들에게 주셨으며, 하나님의 신정정치 하의 그들의 종교와 사회생활을 규제하는 명령들(출 21:1-36)과 율법들도 주셨습니다 (출 24:12-18).
그러나 신약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거듭난 성도들의 무리 (불러 낸 무리, called out assembly of baptized believers)이며 하나님의 집을 말합니다. “이 반석(예수님) 위에 내(예수님)가 내(예수님)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딤전 3:15). 구약 성경에는 한번도 교회라는 말이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구약의 어떤 대언자나 왕이나 어떤 사람에게 미리 보여지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구약 시대에 감추어진 신비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같이 다른시대들에서는사람들의아들들에게이신비를알리지아니하셨는데이신비는곧복음을통하여이방인들이그리스도안에서동료상속자가되고같은몸에속하게되며그분의약속에참여하는자가된다는것이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엡3:5-10).
주님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신약에서 계시하셨습니다. 이방인에 관련된 다음 구절들을 보면 그들이 반드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란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을 때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었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성경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다른 이방인들이 헛된 생각 속에서 걷는 것같이 걷지 말라. 그들은 지각이 어두워졌으며 그들 속에 있는 무지함과 그들 마음의 눈먼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떨어져 있도다.” (엡4:17-18).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벧전 2:10).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아 할례자라 불리는 자에 의해 무할례자들이라 불리던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엡2:11-12). 이방인은 유대인들과 상관이 없고, 교회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3] 신약 성경에서는 십계명을 어떻게 인용하고 있을까요?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너는 탐내지 말라 한 것과 어떤 다른 명령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너는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 말씀안에 간략하게 들어 있느니라” (롬13:9, 참조. 마 19:18, 막 10:19, 눅 18:20절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구절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넷째 계명인 의식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도덕법은 사랑안에서 행하라고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 교회에 십계명, 율법, 규례 등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그런즉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 선생이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게 하려 함이라”(갈 3:24),
“이는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으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요 1:17). “그러나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어떤 것도 자랑할 수 없나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며 정사들과 권능들을 벗기사 십자가 안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공공연히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아무도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으로 인하여 또 거룩한날이나월삭이나안식일에관하여너희를판단하지못하게하라.그것들은 다가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느니라』(골 2:14-17).
[4] 그렇다면 신약 교회는 구약 성경을 무시해도 될까요?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기록들이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롬 15:4). 구약은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주셨으며 구약의 어떤 성경 구절도 역사적 으로나,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으나, 교리로 적용해서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님은 지상생애 동안 안식일에 병자들을 치료하시거나 다른 일을 행하실 때마다 공격을 받으셨으나 자신이 안식일의 주님이시고 안식일을 만드신 분이셨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나니 이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니라 하시니라』(막 2:27,28).
[5] 왜 신약성도가 일요일을 지키며 영과 진리 (in spirit and in truth) 로 경배드려야 할까요?
주의 첫날(안식 후 첫날)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교 (율법)와 분리하시려는 섭리입니다. 안식후 첫날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증인들이기에 어디에서나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 즉 그분의 메시야되심, 성경대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성경대로 부활하심의 복음을 전하여 구령했습니다(고전 15:1-6). 이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가 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습니다.(딤후 4:1-4). 초대교회부터 신약교회는 주의 첫날에 모였고, 설교했으며 (요 20:19, 행 20:7), 모일 때면 미리 준비한 헌금을 자원함으로 드렸습니다 (고후 9장). 일요일 예배는 이미 신약성경에 근거하여 초대교회부터 지켜 왔습니다.
“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경배할지니라”(요 4:24).
[6] 신약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계명 대신 새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계명 대신 새 명령을 주셨습니다 (막 12:29-31). 신약 교회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 부활하심으로 생겨난 복음을 믿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까지는 율법시대입니다 (마 27장). 십계명이 구약의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규례였다면, 사랑의 명령은 신약의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명령이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요 끝마침입니다 (롬 13:10).
오늘날 교회의 많은 혼란과 문제는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적용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주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했다는 천주교의 대체신학에서 나온 잘못된 교리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것을 이스라엘은 이스라엘로 이해하면 해석이 무리없이 잘 됩니다. 14만 4천명도 문맥대로 대환란 중의 유대인들로 보면 요한계시록 이해가 잘 되고 다니엘9:25-27절, 마24-25장, 히6장 난해 구절들이 풀어집니다.
우리는 아무쪼록 주님이 말씀하신 명령대로 올바르게 나누어 성경을 공부하여, 열매맺고, 자라나 성숙한 믿음의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지 못하여 생겨나는 오류들로 이단들이 생겨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 원리로 성경해석을 하면, 교회가 대환란을 통과하는가, 안하는가? 구원이 보장되는가, 취소되는가? 이런 질문들이 쉽게 해결됩니다.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지 말라. 너 도 그와 같을까 염려하노라.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것을 따라서 그에게 대답하라.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염려하노라” (잠 26:4,5).
일요일과 안식일, 안식교인들에게 권하는 성경적 답변
John R. Rice
“안식일과 일요일에 대한 두 가지 왜곡된 주장이 있다. 안식교는 안식일이 한 주간의 일곱 번째 날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휴식과 예배의 날로 제 칠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구원이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의하여 결정되며, 계시록에 언급된 '짐승의 표'는 휴식과 예배의 날로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을 한다. 이와는 다른 견해를 가진 부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 안식일은 제 칠일에서 첫 번째 날로 바뀌었으며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휴식과 예배의 날로 일요일을 지켜야 한다고 논박한다. 그들은 주일을 '기독교 안식일'로, 주일학교 를 '안식일학교'로 부르며, 안식일, 즉 주간의 제 칠일인 토요일에 대해 구약에 있는 모든 명령을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에 적용시켜야만 한다고 믿는다.
이제 이러한 양쪽의 견해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하고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때 성경은 이러한 안식일 문제에 관하여 우리에게 아주 명확한 가르침을 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와 함께 다른 중요한 성경의 교리들과 그리스도인의 실행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짐승의 표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또한 성경은 일요일을 '기독교 안식일' 이라든가 다른 어떤 종류의 안식일로 부르지 않는다.
1. 구약의 안식일은 제 칠일이다.
출애굽기 20:10은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것에 관하여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없다. 어떤 언어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단어가 일곱 번째를 의미한다. 휴식의 안식일은 노동을 위한 육 일 뒤에 왔으며, 주간의 마지막 날로 간주되었다. 즉, 토요일이 구약의 안식일인 것이다.
2. 안식일은 구약의 명령이지 신약의 명령은 아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대부분의 성경연구가들이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 왔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혼란과 문제는 이스라엘과 교회,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을 교회가 대체했다는 사상은 천주교의 대체 신학에서 나온 잘못된 교리이다. 안식일은 모세율법의 한 부분이며, 율법 아래 있는 유대인 이외의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결코 주어지지 않았다. 크리스천 성도들에게 할례에 관한 계명을 지키도록 권고하거나 혹은 돼지고기나 메기 등을 금할 것을 권고하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많은 설교자들이 진지하게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그러한 설교가 의미하는 것은 "주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거룩히 지키라"는 것이며, 주일을 안식일이라 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돼지고기나 메기를 삼가고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제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성경적 증거들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먼저, 신약 어디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십계명은 안식일에 관한 조항만을 제외하고는 신약에서 반복적으로 (어떤 것은 매우 자주) 되풀이된다. 신약에 언급된 많은 죄들 중에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결코 한 번도 죄로 언급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시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한 번도 대중들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요한복음 5:18에서 엄격한 안식일 신봉자들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이로 인하여 더욱더 그분을 죽이고자 하니 이는 그분께서 안식일을 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하심이더라." 유대인들은 예수님 자신이 유대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을 증오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낱알을 먹기 위하여 이삭을 모았을 때(마 12:1∼8) 유대인들의 비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꾸짖으며 그들에게 성경을 주목하도록 하였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을 원치 아니하노니…"(호 6:6). 그리고 만약 그들이 그 성경을 이해했었다면 무죄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제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던 의식적 율법의 한 부분임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이러한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사도들 역시 신약시대 교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예루살렘 교회 회의에서 이방 개종자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쓴 편지에서 안식일은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흩어진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도 역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들에 보내는 서신들에서 안식일을 크리스천들이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단 한 번도 암시하지 않았다! 안식일은 구약의 것이지 신약의 것이 아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다음의 사실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3. 안식일은 모세율법이며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다.
신약성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이 없을 뿐 아니라 구약에도 시내 산 이전에는 그러한 명령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창세기 2:1∼3에 보면 하나님께서 창조를 끝마치시고 제 칠일에 쉬셨으며 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나 그 이후 시내 산에 이르기까지 그 날에 관한 명령은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담이나 에녹, 노아나 아브라함 그 어느 누구에게도 안식일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는 기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 누구도 시내 산 이전에 안식일을 지켰다든지 그것에 대하여 들었다는 기록이 없다. 창세기 2:1∼3은 모세가 시내 산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으로 이들 다섯 권의 성경을 쓸 때까지는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성경에서 안식일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 사용된 시기는 출애굽기 16:23에서였고. 그 때 이후에 비로소 사람들은 그 단어를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이 이미 시간의 단위로 한 주간을 가졌었다는 것을 기억할 때 더욱더 확실해진다.(창8:10∼12: 29:27) 출애굽기 16:23∼36에 나타난 사건을 보면 안식일의 개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상하고도 새로운 가르침이었다는 것과, 그들이 이전에는 안식일을 결코 지키지 않았었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느헤미야 9:13∼14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바른 법도와 참된 율법과 선한 법규와 명령들을 그들에게 주시고 또 주의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려 주시며 주의 종 모세의 손으로 훈계와 법규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애굽에서의 핍박과 흥해를 건넜던 사건을 다시 언급한 후에, 성경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내려오셔서 그의 거룩한 안식을 백성에게 "알려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안식일은 모세율법의 한 부분이었다. 그것은 결혼, 십일조 그리고 할례처럼 모세 율법에 속한 명령이었다. 그것은 시내 산에서 '알려진' 것이었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그 이전에는 안식일의 개념을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안식일이 시내 산에서 처음으로 주어졌고 알려졌다는 이와 같은 가르침은 에스겔 20:10∼12에 다시 나타난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하여 광야로 데리고 가서 사람이 행하면 그 가운데서 살게 될 내 법규를 그들에게 주며 내 법도를 보여주었고 또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내가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었노라." 주님께서 친히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것을 주의 깊게 보기 바란다.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 출애굽기 16:23∼36에서 안식일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지기 전까지는 어떤 사람도 안식일에 대하여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4. 안식일은 특별한 표적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문제를 명확하게 이해했다. 시내 산에서 주님께서는 이 명령이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맺어진 하나의 특별한 언약으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임을 모세에게 계시하셨다. 출애굽기 31:12∼13, 16∼17에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킬지니 대대로 안식일을 지켜 영속하는 언약으로 삼을 것이니라.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음이니라, 하라."
에스겔 20:12은 안식일의 의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었다는 설명을 되풀이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분명하고 반복적인 가르침을 볼 때 안식일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특별한 표적, 즉 언약으로서 모세의 율법 아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명령이었으며, 어떤 율법시대에서도 이방인들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안식일을 이야기할 때에 그것은 유대인에게 주어진 구약의 의식적 율법으로 제 칠일 즉 토요일을 말하는 것이다.
5.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경고했다.
이제 다시 신약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 대신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골로새서 2:14을 보면 손으로 쓴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그 규례들이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6∼17절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존재하는 그림자였으며, 이제 그가 오셨고 그림자는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제 칠일 안식일 재림주의자나 유대인이나 누구도 안식일로 인하여 어떠한 크리스천에 대해 판결을 내릴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안식일에 대한 명령은 부정한 고기들에 대한 명령 및 다른 의식적 율법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하나님은 크리스천들이 유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갈라디아서 4:8∼11에서 바울은 명확하게 그와 같은 사실을 언급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유대주의에 빠져 있었다. 바울이 이 편지에서 그들에게 유대주의의 옛 속박인 '약하고 천한 초등원리' 즉 구약의 의식율법에 '종노릇하는 것'을 깨뜨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4:10∼11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가 날과 달과 때와 해를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염려하노라." 여기에서 언급된 '날들'은 유대인들을 위한 구약의 의식율법의 한 부분인 안식일이었다. 바울은 신약의 크리스천들이 구약의 안식일이나 의식적 율법의 또 다른 날과 달과 절기와 해에 구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6. 주일은 '기독교 안식일'이 아니다.
당신은 이제 "주일이 기독교 안식일이며, 안식일이 주간의 첫 번째 날로 바뀌어졌다"고 말하는 설교자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주마다 특정한 하나의 날로서 규칙적인 안식일을 말하는 'Sabbath'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항상 주간의 제 칠일인 토요일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뀌었다는 기록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왜 토요일을 지키지 않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러한 주장을 사용하는 설교자들은 성경에 의하여 그 주장을 증명하지 못할 때 매우 큰 혼란에 빠진 자신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은 제 칠일 안식일 재림주의자의 모세율법에 대한 가르침에 의해 자주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7. 카톨릭은 첫째 날 예배를 시작하지 않았다.
안식교는 카톨릭이 안식일을 제 칠일에서 주간의 첫날로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한다. 우스운 점은 어떤 카톨릭 저술가들은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인정하는 점이다! 그러나 안식교 교사들이 알아야 할 것은, 카톨릭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베드로가 첫 교황이었고 신약시대 사도들에 의해 안식일이 바뀌었으므로 카톨릭 교회에 의해 안식일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카톨릭 교회가 주일을 휴식의 날로 시행하는 시민법을 지지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카톨릭 교황들과 주권자들은 주일의 의식을 마치 구약의 안식일처럼 형식적이고 의식적으로 만듦으로써 시민법에 의해서 그것을 시행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예배의 날로 첫날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사도행전 20:7은 신약시대에 이러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그 주(週)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나누려고 함께 나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 신약의 제자들이 그 주의 첫날에 만났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이들은 아마도 주의 만찬을 위해서 이 날에 정기적으로 모였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을 보면 주간의 첫 날이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으며 주일이 종교적인 날로서 로마 카톨릭의 창안품이나 안식교의 주장처럼 '짐승의 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간의 첫 날이 성경에서 '안식일'이라고 불린 적이 결코 없다는 점과, 따라서 우리 역시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점이다.
8. 신약의 예배일로서의 주(週)의 첫 날
신약에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유대인들을 만났으며 또한 그들에게 설교를 했다는 많은 기록들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설교자들이 군중들을 모을 수 있는 시간에,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똑같은 예이다. 설교자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설교해야 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제자들이 예배를 위해 모였을 때 안식일을 그 날로 사용했다는 기사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에 사도행전 20:7에 보면 제자들이 주간의 첫 날에 만났다는 것과, 문맥상 이 모임이 주의 만찬을 위해 규칙적인 시간에 행해졌던 규칙적인 예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6장 2절은 '주(週)의 첫날'이 신약의 크리스천들에게 종교적 중요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고린도 교인들은 주님의 일을 위하여 그들의 선물을 그 주의 첫 날에 모으도록 명령받았다. 어느 곳에서도 성경은 '주님의 날'을 안식일 즉 제 칠일이라고 가르치는 곳은 없다. 심지어 성경은 첫 날 이외의 다른 날을 예배의 날로 사용하였다는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휴식을 위한 특별한 한 날을 명령받은 적이 없다. 다만 그들은 안식일이 아닌 주(週)의 첫날을 예배의 날로 사용했다.
9. 유대의 안식일은 예배의 날이 아니다.
구약의 안식일 즉 토요일은 오로지 신체적 휴식을 위한 날일 뿐 예배의 날은 아니었다. 우리가 다시 안식일에 대한 구약의 명령들을 읽어보면 안식일이 결코 예배의 날로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나그네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20:10) 히브리어에서 'Sabbath'라는 단어는 '중지' 즉'휴식' 을 의미한다. 우리는 구약에서 신약으로 넘어오는 기간 동안에 안식일에 회당에서 종교적 모임의 관습이 생겨났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회당이나 회당 예배 관한 명령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모세율법의 안식일은 전적으로 휴식의 날이었지 예배를 위한 날이나 혹은 교회 가는 날이 아니었다.
우리는 인간과 짐승을 위해서 칠일 중에 하루를 쉬게 하는 원리는 좋은 원리라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근거로 크리스천들은 일주일의 하루를 휴식의 날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시민법을 여러 번에 걸쳐서 주창했었다. 그럴 때 선택된 날은 주로 일요일이었고, 크리스천들은 그 날을 예배를 위하여 사용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어느 특정한 날에 노동을 삼가라는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적이 없으며, 주간의 어떤 정해진 날에 예배를 위해서 모이라는 명령도 받지 않았다. 그것은 크리스천을 위한 은혜의 문제이며 자발적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10. 그러면 크리스천들은 주일(일요일)을 지켜야만 하는가?
크리스천들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되어있는 구약의 계명에 의해 속박되지 않으므로 토요일 대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우리는 주일(일요일)을 형식적 안식일, 즉 의식적 율법의 한 부분으로 지켜서는 안 된다. 다만 예배의 날로 자발적으로 그 날에 모일 수 있다.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 10:25). 우리는 예배를 위해 모일 것을 명령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만약 여러분이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면 당신은 태양에게 바쳐진 날을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요일은 태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토요일이 로마신화에서 농업의 신인 Satur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날들이며 그 날들이 어떻게 이름지어졌든지 간에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한 날을 일요일이라 부르든 주(週)의 첫날이라 부르든, 또는 다른 한 날을 토요일이라 부르든 주(週)의 제 칠일이라 부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주(週)의 첫 날이 일요일이라고 불리기 전에 그 날 만났었고 유대인들은 토요일이라는 명칭이 생기기도 전에 휴식의 날로서 토요일을 지켰었다.
크리스천들은 가능한 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주일(일요일)에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주일에 회사를 쉬게 하는 고용주들은 직공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유대주의 율법을 근거로 해서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우리의 동료들을 대접하는 크리스천들로서, 은혜를 근거로 하여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갈 5:13)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날에 관한 그들의 자유를 그릇된 것을 행할 수 있는 허가증으로 오용해서는 안 된다.분명히 크리스천들은 이날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날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헌신하는 날로 사용해야만 한다.
11. 주(週) 첫날의 영적 의미
성경에서 6은 인간의 숫자이며 7은 신적이며 완전의 숫자이다. 휴식의 안식일 다음에 이어지는 노동의 6일간은 율법 아래서 완전한 삶을 영위하려고 애쓰면서 제 칠일이 상징하는 휴식과 완전함과 구원을 획득하려는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율법 아래서 실패했고 누구도 지금까지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행 15:10: 롬 3:20; 길3:11) 그러나 주(週)의 첫 날 하나님께 예배하는 신약의 크리스천은 이미 그가 어떠한 수고도 하기 전에 값없는 선물로서 구원을 소유하게 된 것이며 구원받은 크리스천은 그의 남은 생애를 그가 사랑하는 구세주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히브리서 4:9∼10을 읽어 보라!
마가복음 16:2, 9로부터 예수님께서 주(週)의 첫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명백히 나타난다. 요한복음 20장에서는 마리아와 다른 몇몇 사람들이 주(週)의 첫날 아직도 어두웠던 매우 이른 시간에 예수님의 무덤에 왔을 때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그것은 주(週)의 첫 날에 해당하는 그 날 밤 어느 시각에 구세주께서 무덤으로부터 나오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위대한 은혜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롬 4:25) 우리의 어떠한 수고와 율법의 행위도 없이 우리가 의롭게 여김을 받았으며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4:1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는 그분의 안식에 이미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그치신 것같이 이미 자기 일들을 그쳤음이라."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 안에서 십자가를 의지하는 크리스천은 은혜를 입은 것이다!
히브리서 4:9∼11을 보면 두 종류의 휴식 즉 '안식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히브리서 4:9에 있는 휴식이란 단어는 헬라어에서의 안식(Sabbath)이란 단어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유대인에게 잘 알려진 가르침이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즉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가장 큰 축제일 중 하나인 유월절은 두 가지 측면에서 휴식의 개념을 나타내는데, 하나는 구원 당시에 이루어지는 휴식이며, 다른 하나는 부활 이후에 이루어지는 휴식이다. 유월절 만찬에 이어지는 무교절은 출애굽기 12:15∼16에서 주어진 대로 7일 동안 계속된다. 이 일주일은 구원받은 이후의 크리스천의 삶의 완벽한 순환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 회심은 그 축제 초기의 유월절 양에 의해 묘사된다.
고런도전서 5:6∼8을 보라.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친교를 나누는 것을 나타낸다. 그 친교 즉 평화는 이스라엘이 유월절 양과 함께 누룩 없는 빵을 먹을 때 하나님께 회심하는 것과 동시에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의 삶의 평화와 기쁨은 그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때 즉각적으로 시작된다. 무교절 첫 날은 일을 해서는 안 되는 휴식의 날이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게 되었을 때 그 자신의 일로부터 쉬게 되는 것을 묘사한다. 그리고 주말에 또 하나의 휴식의 날이 있었다. 인생 여정의 끝에 크리스천들은 완전한 휴식으로 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 있나니"(히4:9)라고 성경이 말씀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스라엘이 율법 아래서 유월절 만찬과 무교절을 지켰던 것처럼 안식일을 지켜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유월절 만찬이나 무교절이나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그림자들과 예표와 의식율법의 완성인 바로 그 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유대 안식일(토요일)은 행위에 따라 얻어지는 휴식의 상이다. 율법 아래서 만약 누군가가 그의 모든 삶이 완벽하고 율법의 모든 명령들을 이행했다면 그는 천국을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 못했고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은 율법에 의해 구원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선한 일에 의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묘사하는 유대 안식일이 은혜의 시대에는 전혀 적합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율법의 행위 없이 의롭다 함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 없이 얻은 평화와 휴식을 상징하는 주(週)의 첫날에 예배를 드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유대 안식일, 즉 토요일은 의식에 따른 율법이며 은혜의 시대에는 부적합한 것이다. 주(週)의 첫날이 모든 크리스천에게 적합한 것이다.
12. 안식일과 주일(일요일)의 중대한 차이점들
13. 크리스천들은 율법 아래 있지 않다.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우리의 안식교 형제들은 우리를 모세의 율법의 속박으로 끌어가려고 애써왔다. 안식교인들의 대부분은 구원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에 달려있다고 가르치고 또한 그렇게 믿는다. 그들은 구약의 안식일을 가르치는데서 그치지 않고, 종종 어떤 종류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는 구약의 율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들은 또한 십일조를 구원받는 방법으로, 또는 구원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가르친다. 사실 그들은 유대의 의식에 관한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그 의식율법은 분명히 완성되었고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골로새서2:14∼17과 디모데전서 4:3∼5을 통하여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고기를 먹지 말라는 어떤 명령은 크리스천들에게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그것이 거룩히 구별됨이니라." (딤전 4:4)
할례에 관해서도 신약의 크리스천들은 분명하게 명령받았다. "무할례 상태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으냐? 할례를 받지 말라."(고전 7:18) 또한 안식일에 대해서도 그에 따른 명령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다른 의식 율법과 함께 말살되었다. 골로새서 2:16∼17에서 주님은 특별히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
만약 크리스천이 안식일에 관한 율법 아래 있다면 그는 민수기 15:32∼36에 있는 하나님의 명령처럼 토요일에 나무를 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심지어 출애굽기 35:3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명령대로 토요일에 집에서 불을 피우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한 의식율법의 무거운 짐이 우리에게 놓여 있지 않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라!
거짓말과 도둑질과 간음과 살인 등의 도덕율법은 신약에 와서도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이러한 율법은 본래 나쁜 것이며 모세의 율법이 생기기 이전이나 이후, 혹은 가인이 아벨을 살해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릇된 것이었다. 크리스천들은 도덕율법을 지켜야 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그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은 결코 그렇게 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의식율법이나 도덕율법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며 오로지 그것을 근거로 영생을 소유하는 것이다.
다음의 성경구절을 다시 한번 읽고 여러분이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음을 당신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간직하기 바란다. "너희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엡 2:8∼9). 디도서 3:5은 또한 인간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거나 그 구원을 유지할 수 없다고 분명히 가르친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새로 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그밖에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살펴보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그 안에 굳게 서고 다시는 속박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대속(代贖)하셨으니"(갈 3:13)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골 2: 16∼17)
14. 안식일이 오직 유대인을 위한 의식율법이었으며 결코 신약의 크리스천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었음을 말해주는 보다 확실한 증거들
"또 너희의 죄들과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시고 손으로 쓴 규례들 곧 우리를 대적하고 반대하는 규례들을 지우시고 그것들을 길에서 취하여 그분의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들과 권능들을 노략하사 십자가에서 그들을 이기시고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앞으로 올 것들의 그림자이거니와 그 몸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노라."
위의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었을 때 완성되었고 폐지되었던 유대의 의식율법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이방인들은 '무할례' 상태에 있었고 유대인들의 '손으로 슨 규례들'은 그들을 대적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할례 받지 못한 사람들을 대적했던 이 '손으로 쓴 규례들'을 하나님께서 지워버리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분명히 그것은 모세의 의식율법을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도덕율법도 폐지되었는가? 인간은 이제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와 같은 명령에 대한 의무로부터 자유로운가? 여러분은 우리가 그러한 문제에 관하여 올바르게 행해야 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도덕율법은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삭제되거나 폐지되지 않았다. 도덕율법은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지워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능력을 상실한 것은 의식율법이었고, 그것이 그 능력을 상실한 이유는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을 이러한 의식율법에 대하여 누구도 판단 받을 수 없다고 16절에서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나 거룩한 날이나 월삭(月朔)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
레위기 11장은 의식율법에 관해서 말하면서 돼지고기나 혹은 양쪽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와 같이 유대인들이 먹을 수 없는 많은 동물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의식율법에 의하면 만일 부정한 도마뱀, 달팽이, 두더지 또는 다른 동물들이 토기에 떨어졌을 때는 그릇 안에 담겨 있는 물은 마찬가지로 부정한 것이 되고 그 토기를 깨뜨려야만 한다. 그리고 레위기 11:3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먹는 모든 음식 중에서 그런 물이 스며든 것은 부정할 것이요, 그런 그릇으로 마시는 모든 음료도 부정할 것이며"
그러나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그 의식율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따라서 우리는 먹고 마시는 음식의 규례로 인하여 판단 받지 않는다고 골로새서 2:16이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천들은 "거룩한 날이나 월삭이나 안식일로 인하여 "판단 받지" 않는다. 이러한 의식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제거되어졌다! 크리스천은 이들 의식율법에 의해 자신을 판단하도륵 허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그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완성하셨기 때문이다. 게다가 17절에서 이러한 모든 의식은 '앞으로 이루어질 것들의 그림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의식율법들이 하나의 그림자나 상징이나 모양이나 본보기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그것들의 실체가 왔던 것이며 이전 것들은 그것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계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의식율법 모두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완성시키셨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유대인의 의식인 안식일에 의해서 판단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이 분명히 그렇게 명령하고 있다.
출애굽기 31:12∼13에서 이것은 명백한 진술이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고 계신지를 다시 한 번 잘 살펴보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이것은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거룩하게 하다'라는 단어는 '구별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다. 이방인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표적 이 안식일이다.
이제 16절과 17절에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킬지니 ‥‥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에스겔 20:12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또 그들에게 내 안식일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내가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었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특별한 표적이라는 것과, 안식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들로부터 구별된다는 표적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따라서 모든 의식율법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것이 아닌 바로 이스라엘을 향한 특별한 명령이었다. 할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한 표적이었다. 그래서 유대의 음식물에 대한 규정과 제사와 레위족의 제사장직이 있었다. 의식율법은 오로지 유대인들을 위한 율법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식율법은 도덕율법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은 전 세계에 대한 명령이다.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 역시 전 세계에 대한 것이고,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 또한 모든 인류에 대한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말과 도적질과 살인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백성이다. 그것은 우리 국가와 하나님 사이에 맺은 특별한 표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민족이나 국가는 결코 없다. 아무도 도덕율법이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범위에 있어서 세계 보편적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의식율법에 대하여는 유대인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임을 나타내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한 표적인 할례를 준수한다. 또한 우리는 제사와 절기와 유대의 음식물 금기법을 지키며 이러한 것들은 선택받은 백성인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표적들이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똑같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우리는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령받았다. 그것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표적이다. 그 표적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이며 상징인 의식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민족으로 구별하셨던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대 안식일인 토요일은 분명히 의식율법의 일부였다.
도덕율법은 세계 보편적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마음에 새겨 놓으셨다. 로마서 2:14∼16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율법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행할 때에 이런 사람들은 율법을 소유하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양심이 증거하며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 보이느니라. 이렇게 심판 받는 일은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이루어지리라."
당신은 이방인들이 비록 율법이나 성경이나 복음전파를 전혀 듣지 못했을지라도 그들 안에서 증거하는 양심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아프리카의 흑인도 살인, 거짓말, 도둑질 그리고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이 잘못임을 안다. 그는 선과 악에 대한 선천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그것이 어느 곳에 있는 이방인이라도 그들이 죄인임을 알게 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도덕율법을 새겨 놓으셨고, 그들이 이 율법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심판의 날에 그들을 불리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흑인이나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복음을 전혀 듣지 못했던 어떤 야만인이 살인이나 도둑질이 나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러한 이방의 야만인이 보편적으로 인류의 마음에 새겨진 어떤 것에 의해 자기 부족의 남자아이들이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성경을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율법에 관한 문제도 들어보지 못한 그 사람의 양심이 쇠고기나 양고기를 먹는 것은 옳은 것이며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그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의식율법은 오로지 유대인에 대한 것이지 도덕율법의 경우처럼 사람들 마음에 보편적으로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안식일이 의식율법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의 양심은 7일 가운데 한 날을 안식일로 지켜야만 하고 이 휴식의 날은 토요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전혀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누군가 이방인에게 안식일에 관하여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그는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거나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죄를 지었다거나 하는 인식을 결코 느낄 수 없다. 양심은 분명히 그에게 그러한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대 안식일인 토요일은 인류의 마음에 새겨진 도덕율법이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율법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 의도된 의식율법이다.
출애굽기 35:3에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분명한 명령이 있다.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을 피우지 말지니라."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집에 불을 전혀 피울 수 없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들에게는 불을 피우지 않는 것이 곤란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미국의 북부지역이나 캐나다 그리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다른 지역에서 그것은 엄청난 시련이 될 것이다. 안식교인들 뿐 아니라 유대의 안식일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사람들은 매주 이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민수기 15:32∼36은 안식일에 나무를 했던 한 남자가 의식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죄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어떻게 돌에 맞아 죽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구약과 똑같은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령받았다면 토요일날 삽으로 화덕에 석탄을 퍼 넣는 안식교인들은 틀림없이 유죄이다. 사실상 토요일에 어떤 종류의 불이든 켜는 사람은 이 의식율법을 어기는 것이다. 난로에 불을 붙이는 것과 모닥불에 점화하는 것에는 어떤 도덕적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하거나, 흑은 손잡이를 돌려서 가스 레인지에 불을 점화하는 것과 다른 방법으로 불을 점화하는 것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어떤 차이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성경은 안식일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명령하고 있다. "안식일에는 너희의 모든 처소에서 불을 피우지 말지니라." 분명히 그것은 의식율법이며 구세주께서 죽으시기 전에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의도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유대인들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팔레스타인이 아닌 어떤 나라에도 결코 명령하지 않으셨다.
날짜는 지구의 자전에 의해 결정된다. 지구 표면 위의 어떤 지점이 자전하여 똑같은 태양 빛을 받는 매 순간은 또 다른 날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하루를 자정에 시작하든 일몰 때에 시작하든 그 하루는 지구의 원주 위에 있는 모든 점에서 각각 다른 시각에 시작된다. 예를 들면 뉴욕에서는 자정일 때 시카고에서는 오후 11시, 덴버에서는 오후 10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오후 9시가 된다. 그리고 지구의 반대편은 12시간이 늦거나 빠르게 된다.
어떤 사람이 서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일주하면, 일주하는 날들 동안의 그 사람의 하루는 보통의 하루보다 길어지지만, 일주가 끝났을 때 그는 완전한 하루를 잃어버린다. 즉 그는 집에 머물러 있던 사람보다 하루를 적게 갖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동쪽으로 지구를 한바퀴 일주하면, 일주하는 날들 동안의 그 사람이 경험하는 하루의 길이는 보통의 하루보다 더 짧아지지만, 일주가 끝났을 때 그는 한 번 더 태양을 지나치게 된다.
그리고 집에 머물렀던 사람보다는 하루를, 서쪽으로 세계일주를 한 사람보다는 이틀을 더 갖게 된다. 집에 머물렀던 사람은 일정한 횟수만큼 태양을 지나쳤고, 서쪽을 향해 태양과 함께 일주했던 사람은 태양을 지나쳐 가는 한 번의 기회를 놓쳤으며, 태양을 향하여 동쪽으로 갔던 사람은 태양을 한 번 더 지나쳤다.
이제 문제는 이것이다. 만약 세 사람이 모두 안식일로서 제 칠일을 지키려고 애쓴다면 집에 머물렀던 사람이 토요일을 지키게 될 때 서쪽으로 간 사람은 일요일을, 동쪽으로 간 사람은 금요일을 지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항상 제 칠일을 엄수하기 위해 동일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의상, 국제 날짜변경선은 태평양 지도상에 고정되어 있다. 어떤 배가 서쪽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을 때 금요일 저녁 자정 무렵에 그들이 국제 날짜변경선에 접근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때는 안식일을 지키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아니 여러분이 만일 원한다면 유대인들이 그들의 안식일을 일몰 때에 시작했던 것처럼 금요일 일몰시로 그 시기를 정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배가 국제 날짜변경선에 다가와서 그 선을 건넜을 때 시간은 갑자기 금요일에서 일요일로 변해버린다. 토요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에 당신은 어떻게 안식일을 지킬 것인가?
그 동일한 배가 다음 주에 금요일이 막 끝나갈 무렵에 국제 날짜변경선 쪽으로 유대의 안식일을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 반대방향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이 동쪽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다가 날짜변경선을 건너는 순간 시간은 갑자기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변하게 된다. 토요일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금요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 날짜 변경선을 동쪽 방향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은 동일한 날을 두 번 가지며, 서쪽 방향으로 지나치는 사람들은 완전히 하루를 잃어버리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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