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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피에 대한 기본적인 말씀 (2)

하나님아들 2019. 5. 1. 14:44

예수님의 피에 대한 기본적인 말씀 (2)



<제목 차례>

1. 치명적인 죄를 씻음1

2. 치유3

3. 영분별 :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하라. 6

4. 마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7

5. 피와 말씀은 같이 있다.8

(1)에 이어서

1. 예수님의 피로 치명적인 죄를 씻음

이는 곧 우리가 우리의 죄를 씻음이요 성령을 받음이다. 치명적인 란 말은 사실 모든 죄가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다 치명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서 9장이다.

우리의 씻음을 좀 더 깊이 말하자면 우리의 영과 마음과 육신의 모든 죄와 더러움을 씻어야 한다.

마음의 죄, 그 중 사상의 죄를 씻음.

이것은 굉장한 영적 전쟁이다. 사상의 죄를 씻는다. / 즉 생각 속에 죄된 사상을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 하루 아침에 안되므로 성경을 아주 열심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이 들어옴에 따라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되고 회개하게 되는게 이 작업이 물로 씻는 작업인데 아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견고한 진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통계에 의하면 선교사로 나가는 하나님의 자녀의 90%가 10대에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부터 성경을 중심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사상을 형성하고 가치관과 기준이 되었으므로 그들은 생명을 바쳐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역자의 모습이다.

고린도전서 6장

히브리서 10장이다.

성령 안에서의 씻음이 있다.

치명적인 죄가 씻겨진다. 물 곧 말씀으로 씻겨지지 않는 것이 강력한 세탁제인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다.  사실 물로 씻겨지지 않을 것이 없지만 사람들이 말씀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우 죄는 남는다.

온 세상을 맑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피이다. 성령님은 이 작업을 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와 성령님과 내적치유와 견고한 진을 파괴하는 작업이다. 새 부대로 만드는 것이다. 사물과 다르게 사람 그리고 그 마음은 죄를 깨닫고 회개할 때에 죄용서를 받고 정결하게 된다.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회개를 하는 것이 첫 단계에서 할 일이다. 예수님의 피를 뿌리자마자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담대할 떄까지 예수님의 피를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죄사함을 받는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도록  “성령으로 기름부으소서” 혹은 “성령기름부으소서.”라고 기도한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시고 우리에게 은사가 나타난다. 은사란 이때에 성령의 행하심인 것이다. 

이렇게 하고서 성령을 받는 것은 올바르다. 그러므로 바로 예수님의 피로 씻을 때에 분명하게 성령을 받는다.

방언은 성령의 역사의 처음에 보통 나타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서 정결하여 졌기 때문에 그들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피를 뿌리더라도 이러한 회개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 성령의 임하심을 막고 방해하기 때문이다.

<간증> 종종 어떤 사람들은 생각에서 악한 영의 역사함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그 악한 영의 역사를 제재하거나 거부하지 못한다. 그 사람의 사상이 어느 정도 그 악한 영의 역사가 가능한 비성경적인 사상이나 부정적인 사상이나 죄된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악한 영은 사상을 넣어줌으로서 역사하는데 그 사람이 죄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죄가 된다. 그러므로 그 사람은 악한 영의 역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2. 치유

2.1. 세 가지 치유방법

세 가지 치유의 방법이 있다. 즉

1. 믿음으로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2. 기름부으심이 있는 사람에게 안수받음으로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3. 예수님의 피를 뿌림으로 성령이 임하심으로써이다.

자세한 것은 2.4에서 설명한다.

이 모든 치유는 궁극적으로 성령이 임하시고 생명의 능력이 나타나고 죽음이 생명에 삼키워지는 것이다. 무질서가 질서있게 정리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몸이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으로 최대한 가까이 되는 것이다. 오직 성령만이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의 임하심의 결과는 다양하지만 모든 능력은 바로 그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것이다. 성령이 바로 능력의 나타남이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아시는 경우 하나님은 치유하신다.

2.2. 잘못된 치유

잘못된 치유는 다음이다.

1) 치유가 아닌데 치유라고 착각하는 것/

즉 거짓된 치유이다. 이것은 거짓 영, 사단에게 속는 것이다. 무당이나 이러한 계통의 거짓된 치유는 병을 주는 [혹은 발생하는] 악한 영보다 센 악한 영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일시적으로 병이 나은 것같지만 조만간 그 병이 또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김기동 계통에서 나타난다. 주 1)  알려진 바는 이초석 (땅끝예수전도단 이단으로 정죄됨.), 한만영, 허태수 등이다. 보통 질병의 악한 영보다 더 세게 역사하는 것이 종교의 영과 교만의 영들이다. 종교의 영들은 가톨릭이나 불교, 이단들에서 횡행하고 있고 교만의 영들은 이 밑에서 역사한다. 대부분의 이러한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자들은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서 자신이 가진 사상과 체계를 높이고 자기를 높이는 교만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누구의 말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가벼이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올바른 치유자가 아니다. 그는 더 센 악한 영을 집어넣는 자이다. 그런 사람에게 치유받았다 하면 일주일 후나 잠시 후에 다른 치유사역자에게 간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여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그가 후에 죽었을지라도 온전한 치유이고 올바른 치유이다.

본인은 기도원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방황하는 한 사람을 보았는데 신학교 1학년 때에 이초석에게 안수를 받은 후 꿈에 악한 영이 나타나서 하나님으로 위장하고 "나를 따르라“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 이후로 12년 동안 정신적으로 정상이 되지 못했다. 이 사건 하나만 보아도 한 사역자가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한다는 것 자체는 그의 전체 사역이 정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한 영을 넣는 사역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할 수 없는 것이 영의 역사이다.

2.3. 치유에 대한 잘못된 개념

이와 관련된 잘못된 개념은

1) 치유하는 자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사역자의 내적인 능력으로 치유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 치유자는 하나님이시다.

그 사람이 성령으로 사역하는 것은 분명한데 성령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올바로 정리한다.

사도행전 
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 사역자는 겸손히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낮출 필요도 없이 낮은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 그리고 자신도 치유받은 사람도 다 같이 함께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사역 후에 드러내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이며 그 사역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은 그를 거짓으로 생각하시고 그는 사역자로서 더 이상 사역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개념이 상실되어서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다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죄가 있으므로서 사단에게 공격할 빌미(틈)을 준 것이다. 그가 날마다 주 예수님의 피로 씻고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지 않은 결과이다.(에스겔 46장 13절 매일 드리는 제사를 참고할 것)

2.4. 올바른 치유는 어떠한 경위로든지 간에 성령의 임하심의 결과이다.

성경에 치유가 나타난 여러 가지 경우들이 많은데

말씀으로 하심(열 명의 문둥병자)

안수로 하심

도구를 사용하심

예수님과 접촉함

그런데 모두 성령의 능력이 고친 것이다.

지금까지 올바른 치유가 일어난 것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믿음으로 성령받기

2. 기름부으심이 있는 사람에게 안수받음으로 성령받기

3. 예수님의 피를 뿌림으로 성령받기이다.

2.5.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서 치유사역을 한다.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동일시하게 본다.(맥스웰 화이트) 사실 두 가지는 다르고 시간차가 있지만 하나님은 100% 언약에 충실하시므로 예수님의 피에 반응하신다. 그리고 그 정결하게 하심은 분명하기 때문에 성령을 부으실 조건으로 인정하신다.

예수님의 피를 뿌림은 이미 언약대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것이므로 우리의 정결하게 됨은 두 가지인데 1. 회개를 통하여 2. 대상으로서 정결케 되는 면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정결하게 되면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성령을 부으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성령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조건이다.

3. 영분별 :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시험하라.

이들을 분별하는 것은 바로 요한일서 4장 1절이다.

예수님의 피는 분별하는 피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다 성령의 역사인가? 아니다. 특히나 말씀이 없다면 속을 수 있다.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성령이 역사하시되 먼저 회개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자신에게 뿌리는 경우 “자신이 정한 시간”안에는 계속 회개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먼저 회개를 완료하지 않고 회개의 중간에 사역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스스로도 혼란에 빠지고 다른 이에게도 악한 영을 전이하여 줄 수 있다.

그렇다면 회개의 완료는 어찌 아는가?

내 안에서 분명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은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은사이외에 하나님의 성령의 주권적인 행하심으로서 내가 이끌려간다는 것이 확실해야 한다. 이것은 자증도 있어야 하지만 외부의 증거함도 있어야 한다. 즉 성령이 역사함을 증거받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있고 사람들의 칭찬이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 성령이 분명히 역사하시기 까지 회개를 집중해야 한다. 만일자기안의 사단의 세력을 정리하지 않으면 그 세력은 남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영들의 역사 (영 혼 육에서 역사하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접하고 생각하는 모든 사상, 모든 종교, 교회 안에서의 모든 역사, 치유, 설교, 가르침 등의 모든 역사에서)를 다 믿지 말라고 한다. 다 믿어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들의 삶은 종교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항상 영적인 역사가 있다.

불교인과 불교에 대한 말이 아니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그 사람에게서 악한 영의 흐름이 나타난다. 사람이 불안하면 그 불안함이 그의 모든 말에도 나온다.

그런데 그러한 사상을 보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악한 영이 역사하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이 모르는데 말과 사상으로 인하여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도 죄가 되어서 귀신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죄는 귀신이 들어오는 발판이 되고 죄를 지으면 귀신은 들어온다. 불법이지만 힘으로 치고 들어온다.주2) 이러한 죄를 짓는 사람에게 악한 영이 들어가는 것을 합법이라고 말하는 자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모르는 소리이다. 그런 말을 함으로서 악한 영을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죄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마귀를 절대로 합법적이라고 인정하신 적이 없다. 마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도 잘못된 사상이다.

허무적인 소설을 읽으면 그 사상을 통하여 허무의 영이 들어온다.

예를 들면 노인과 바다를 지은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있다. 그는 노인과바다 이외에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등을 지었다. 그가 100번을 고쳐쓴 소설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가 있다. 그런데 그는 기차역에서 권총 자살했다. 그 노인과 바다의 내용은 매우 허무적이다. 별 성공없이 노인이 된 때에 어부는 손에 피가 날 정도로 고통을 당하면서 고기를 잡지만 결국 상어가 다 먹고 집에 가니 먹을 것이 없다 라는 것이 결론이다.

이러한 소설을 읽고 허무한 생각이 파고든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른 일에서도 허한 느낌을 갖게 된다. 음란한 영화를 보면 음란의 영, 폭력적인 영화를 보면 폭력의 영이 온다.

소설은 말로 된 것인데 그 말을 속으로 읽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를 짓는 것이고 악한 영에게 문을 열어놓는 것이다. 생각은 사단이 사람을 잡는 방법이고 사람이라는 밭에 자기의 원하는 악한 열매를 얻기 위하여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삶의 질이 바뀌게 된다. 더러운 책과 영화와 문화의 소산들을 우리의 삶의 환경에서 다 제거해버려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모든 곳에 예수님의 피를 뿌리는 것이다.

<사례> 1988년도에 서울 올림픽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88올림픽을 기점으로 그전에는 착하던 사람들의 심성이 좀 더 착하지 않고 악하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그것에 대한 이유를 본인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올림픽을 하는 공식적인 행사 중 하나로 개최지와 그 나라에서 한 달 전쯤에 성화라고 하는 그리이스(Greece)의 제우스 신전에서 채화(採火)된 불을 가지고 와서 전국을 돌면서 우리 나라의 전통종교나 문화들을 불러내어 한 번 시연해보라고 하였다. 문화교류같지만 그것은 악한 영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여서 그 결과 전국에 일시에 악이 증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 이후에 88년도 이전에는 착했는데 갑자기 이후로 사람들이 강퍅해졌다.

이 분석은 국민일보 기자도 이와 같은 분석을 하고 책에 기록한 적이 있다.

<간증> 어떤 목회자가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졸고 있었다. 그런데 본인은 뒤에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피를 뿌리자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갑자기 등을 맞은 듯 깨어났다. 이러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그의 졸음에 영적인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예수님의 피를 뿌릴 때에 성령께서 그를 깨우시거나 혹은 악한 영이 즉각적으로 제거되고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그가 깨어난 것으로 본인은 생각한다.

목회자 중에서도 그 사람이 지위나 학력을 의존하여 사람을 끄는 경우는 옳지 않은 것이다. 그 목회자가 사람을 인도하는 방식은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과 역사하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설교와 상담과 사역과 기도 속에서 나타나야 한다고 믿는다.

4. 사람에 대한 사역의 단계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역은 사람을 온전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골로새서 1:29이 바로 사도 바울의 사역의 목표인데 사도 바울은 성령안에서 많은 것을 깨달은 자이다. 한 두 번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사도 바울은 그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성령의 능력으로 깨달아서 정확하게 언급을 해놓았다. 우리는 그 말씀으로 인하여 성령안에서의 삶에 대하여 많은 도움을 얻고 기준을 얻게 된다. 성령의 사역이나 성령안의 삶을 살려고 하는 이들이 자주 실패하는 이유중 하나는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사역

사람에 대한 복음의 사역 결국 설교 (말씀) - 회개 - 상담 - 내적치유--제자훈련 - 예수님의 피를 만나고 이해함 그리고 적용함 - 성령사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1. 말씀: 복음을 담은 말씀이 중요하다. 이것이 설교라는 수단으로 전달된다.

2. 회개 : 주로 이 과정을 건너뛰는 것이 그 이후에 나타나야 하는 (must come) 모든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즉 회개하지 않으면 복음만 계속 들린다. 그 적용이나 복음 안에서의 풍성한 삶이나 성령 안에서의 풍성한 삶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회개가 필요하다. 철저한 회개와 회개의 훈련과 회개의 일상화가 필요한 것이다. 단번에 모든 죄를 씻으시는 구속의 제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이고 우리의 죄는 나타날 때마다 처리되어야 한다. 날마다 씻어야 한다. 이 개념을 갖게 하고 회개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이것이 필수 조건이고 도구이다.

3. 상담과 내적치유와 제자훈련은 같이 있기도 하고 순서대로 되기도 하고 순서없이 되기도 한다. 필요한 때에 주어지면 된다.

4.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는 것은 이하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즉 설교와 회개와 제자훈련과 상담과 내적 치유가 반복된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의 기초를 새롭게 하는 것이며 예수님과 나 사이의 어떤 죄나 먼지나 작은 죄라도 더 처리하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피는 매일 적용해야 한다. 에스겔 46장에 보면 매일 드리는 제사가 있다. 그 매일 죄를 씻는 작업을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살아갈 때에 비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가능한 것이다.

5. 성령사역으로 나아감 : 결국 주님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사역자라고 해서 말씀이나 제자훈련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넌센스다. 말씀없이 훈련없이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은 아니다. 많은 성령의 은사를 따르고 행하는 자들이 이 부분이 약하기 때문에 넘어진다.

이것은 방법론의 변화라기보다는 사람의 속으로 깊이있게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즉 성령사역은 그 사람의 깊은 내면에서 성령의 생명수가 솟아나기 때문인 것이다. 깊은 속을 씻지 않는다면 생명수가 솟아날 수 없다. 피상적인 회개나 진실하지 않은 회개나 타의에 의한 회개로는 이러한 것을 체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삶이 어려운 것이다.

먹는 것도 영성이 달라진다고 어떤 이는 주장한다.

몸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5. 마음의 눈이 열려야 한다.

  에베소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마음의 눈이란 두 가지이다.

1) 말씀을 생각하는 것이다. 곧 믿음이다.  

2) 성령이 보게 하시는 것이다. 다 동일하게 성령의 역사하심이지만 도구로 성경을 사용하심과 직접 말씀하심이 있다. 이것도 비성경적으로 의심하고 살아간다면 그는 전혀 기독교인답지 않은 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은 오늘날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성령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역사하신다.

고린도전서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은 우리의 눈이 뜨여져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 어떤 것인지 보게 하신다. 즉 성령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다.

우리가 육신에 많이 뿌릴수록 우리의 육신은 더욱 성령께 굴복하게 되고 우리가 정결해지기 때문에 성령의 역사하심에 방해되지 않는다.

그때에 육신의 영역에도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다. 즉 그것은 바로 뇌, 마음, 사상의 영역을 점령하고 이제 육신을 점령하시는 것이다.

그때에 치유사역이 일어난다. 몸이 치유된다.

사람들이 성령이 마음의 영역에서 육신의 영역까지 점령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반드시 된다. 그 시간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이다. 예수님의 피가 뿌려진 곳에는 성령이 임하시고 다스리셔서 점령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여 주신다.

그 실현속에서 모든 복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다.

6. 피와 말씀은 같이 있다.

예수님의 피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나님의 말씀도 있어야 합니다.

마헤쉬 차브다의 말

우리가 근본적인 진리를 떠나 있다면 마치 문제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피의 언약에 따라 신실하게 살지 않는다면 피의 언약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보호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렇게 살지도 않았으면서 언약의 축복과 보호를 기대했지만 결국은 재앙은 당하고 말았다. 정로를 유지해야 한다. 믿음을 지켜야 한다. 당신이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높여서 축복하시고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이 다 성공하도록 역사해주실 것이다. 피의 경계선은 절대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구약을 체결할 때에 두 가지 인간 편에서 해야할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는 피를 의지하여 죄를 씻고 정결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두 가지를 합니까? 신약에도 이 두 가지 요구조건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이것이 바로 또한 새 언약의 요구조건이십니다. 새 언약의 수혜를 받으려면 말씀으로 정결해짐, 순종함이 첫째 조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피로 씻고 성령을 받으면 드디어 “내 안에 거하라”가 되는 것입니다.



출처: https://raptureinjesusblood.tistory.com/entry/예수님의-피에-대한-기본적인-말씀2?category=259236 [말씀과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역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