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보혈(피)에 대한 기본적인 말씀 (1)
<제목 차례>
1. 성령받기를 원하십니까?2
2. 예수님은 곧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4
3. 은사의 정의6
4.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7
5. 두 가지 회개9
6. 언약의 피인 예수님의 피이다.10
7. 예수님의 피를 뿌린다.13
8. 예수님의 피를 뿌릴 때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13
9. 예수님의 피는 바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것이다.20
설교
빨간 펜을 들고 중요한 구절은 성경에 표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중에도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수학시간에 공식을 배우면 적용하면 문제가 풀린다. 안 그러면 한달이 되어도
안된다. 공식이 형성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수학공식이 마술이 아니고 가짜가 아니다.
예수님의 피도 마술도 가짜도 아닌 하나님의 일하시는 공식이다.
한 가지 간증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1. 기도원에서 어떤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를 가르쳐주고 회개를 하자 방언을 하던 이 분이 새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마음이 더욱 정결해졌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좀 더 깊은 부분이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 것입니다.
다음 주에 이 사람이 다른 같은 교회 집사님을 데려왔습니다. 그 사람은 방언을 한 번도 못한 분이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도 머리에 안수하고 예수님의 피를 뿌리고 마음에 생각나는 죄를 다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여러 가지를 회개하였는데 한 번은 헌금주머니에서 돈을 꺼낸 적이 있음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데려온 사람이 “아니 그런 적도 있었어?”하고 놀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 사람도 회개를 하고서 생전 처음으로 방언을 받았습니다.
2. 24년 동안 심장병으로 고생한 사람.
1. 성령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내 마음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을 받는 일들에 대하여 성경의 기록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절대기준이며 모범이며 하나님이 오늘날 그렇게 일하신다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주시거나 성령의 역사를 하는 것을 장로교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합니다만 이것이 ’하나님이 마음대로만‘이라고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을 피하거나 놀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진리는 원리이며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우리가 붙잡으면 역사합니다. 예를 들면 누구든지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그는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이 어떠한 것을 따지지 않고 그가 예수님을 믿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구원을 주시고 안 주시고를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지만 주님이 일하시는 원리와 진리를 따르는 자에게 주십니다. 구원의 원리 진리는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속해 주시려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돈으로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받는 것도 그렇습니다.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여기 저기에서 찾아봅시다.
먼저 고넬료가 성령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0:1을 보면 고넬료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경건한 자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불러 예수님의 복음을 듣게 하셨는데 듣는중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10:44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가 보고 성경저자가 보는 성령받은 증거는 무엇입니까?
눈에 안 보이는 성령께서 일하심으로 증거로 드러난 것입니다. 마구 뛴 것도 아니고 입에 거품을 문 것도 아니고 소리를 질러댄 것도 없습니다.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두 가지입니다.
이 사도행전 10:46에서 증거로서 말하고 있는 바가 바로 하나님 찬양과 방언입니다. 하나님 찬양은 우리가 성령이 특히 임하신다는 어떤 변화가 없어도 찬양을 합니다.
이 베드로는 이것을 보고 우리가 처음 성령받을 때와 같다. 라고 보고하고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주시고 성령을 받게 하셨다는 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합니다. 이 교회 사람들은 유대인들인데 좀 속이 좁습니다. “그들도 성령을 받았구나. 할렐루야”해야 하는데 “회개를 주셨구나”로 말이 끝납니다. 그다지 좋은 자세는 아닙니다.
그러나 방언은 내가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오류가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방언은 중들도 합니다. 어제 방언을 ‘쏼라 쏼라’ 라고 받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단어를 되풀이하는 것이 방언인가요? 단적으로 말해서 아닙니다.
이 사건으로 볼 때에 성령받는 것은 의로움 곧 정결함, 그리고 예수님을 믿음 두 가지입니다. 이 사건은 이미 베드로가 정리하여 설교한 대로입니다.
사도행전 2:38-41을 보면 나타납니다.
단적으로 말하여 몇 가지 조건을 맞추면 예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십니다.
사도행전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는 몇 가지를 말합니다. 회개함입니다. 그러면 정결하게 됩니다. 그러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므로 회개를 철저히 할 때에 성령을 받습니다. 문제는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런데 이 약속 곧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약속은 이 사람들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얼마든지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됩니다. 먼 데 사람 곧 이스라엘나라 바깥의 이방인들도 포함하고 모든 세상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이 베드로의 설교는 처음부터 온 세상에 성령을 부어주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에 해당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므로 회개하면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곧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려는 의도를 가지신 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28-31을 읽어봅시다.
세례 요한이 가르쳐주고 소개한 두 가지 역할을 봅시다.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이 말하고 사도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에 대한 진리입니다.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1: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1: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첫째 증거는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어린양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 모든 죄를 지고 간다는 뜻은 그 십자가 사건으로 죄의 댓가를 치르셨으나 적용은 믿는 자에게 곧 회개하는 자에게 되는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세상 죄를 다 씻어버렸다면 세상이 새로워져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죄가운데서 살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죄의 댓가를 치르다”와 “죄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다”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비슷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정결하게 된다는 것임을 압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을 안 믿는다면 여전히 죄 가운데에서 죽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그냥 자기의 모든 죄가 다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구체적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라는 자기의 죄를 처리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그때에 성령을 체험하게 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둘째, 세례요한이 한 가지를 더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1: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예수님이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또한 놀라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대속하시는 어린양이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세례 요한이 성령을 임하게 하는 사도 바울과 같은 사역을 한 적은 없지만 세례 요한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성령을 사람들에게 부어주셔서 그 사람이 거룩하게 되도록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러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1) 예수님께서 죄를 씻어주시고 그 죄를 씻은 결과로 주시는 성령이시다. 이 사실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므로 우리가 간구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하시는 것입니다.
3. 은사의 정의
우리는 성령론을 올바로 배우지 못하면 성령의 역사속에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먼저 성령의 은사란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행하심이라 라는 정의를 고수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을 봅시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우리는 요즘 존재하는 중대한 오류를 보아야 합니다.
1. 은사라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성령이 나타나실 때에 은사라고 부르는 것이지 그 사람이 은사를 소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2. 은사라고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이 행하심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밀어서 해야 하는가요? 줄로 끌어서 합니까? 네 사람이 들어서 합니까? 이 모든 것은 망가졌을 경우입니다. 정상적인 자동차라면 열쇠를 돌리고 기름이 흘러서 폭발하는 힘이 나타나서 차를 굴립니다. 이것이 우리와 꼭 같습니다. 열쇠는 바로 약속입니다.
“손님, 이 열쇠를 잊어버리지 마세요. 잃어버리면 차가 시동이 안 걸립니다.”라고 판매사원이 말합니다. 당연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은 기름이 부어지는 것이며
성령이 역사하심은 폭발하는 힘이며 권능이 나타나고 대적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다 좋은데 정작 그 출발은 열쇠를 돌려야 합니다.
수출하는 자동차 적하장의 1,000대의 자동차가 있다. 그걸 억지로 들어서 배에 싣는다는 것은 고통이다. 고역이다. 으싸 으싸 해도 힘빠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열쇠가 있으면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가기 싫고 기도하기 싫고 성경읽기 싫은 것은 고장난 차와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즐거운 일이 된다. 성령은 우리안의 능력입니다. 성령을 많이 받는 것이 우리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사역의 원동력입니다. 자기 힘으로 세상과 마귀와 육신을 이길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할 때에 마귀는 쫓겨가고 세상의 공격을 파악하고 육신을 다스리며 주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과 세상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4.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성경적인 진리에서 두 가지 적용이 나타납니다.
1. 첫째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뵐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마음, 참된 마음을 가지되 예수님의 피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피만이 우리에게 정결을 완성하여 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성령이시기에 죄를 회개하여 정결한 상태가 되는 것이 성령받을 조건입니다.
2.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시기에 성령 하나님이 임하면 바로 그때에 성령이 주권적으로 행하시는데 그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은사를 주십니다. 그때에 우리가 성령을 말할 수 있고 성령의 능력과 은사로 행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을 때에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어제 성령이 역사한다 해도 오늘 성령이 역사하지 않는다면 성령의 역사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4: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자주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왜 방언을 말하고 감사합니까? 왜 그렇습니까?
방언을 자기가 말하고 하나님께 감사함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신 결과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나타내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부족한 자에게 성령을 나타내시고 곧 부어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령론에 대하여 좋은 글을 쓴 영국의 목사님 로이드 죤즈는 이것을 성령임함의 증거로 봅니다. 즉 이 ‘더’라는 말이 형용사가 아니라 헬라어 원어에서 부사임을 발견했습니다.
원어로 볼 때에 더 라는 말은 ‘말론’(ma'llon)이라는 이 단어는 비교급입니다. more라 할 수 있는데 원급은 ‘말리스타’( ma'lista )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더욱 자주(more frequently) 방언을 말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피를 뿌릴 때마다 5-10초가 지나면 방언을 주십니다. 방언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방언을 내가 스스로 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자기의 영으로 할 수도 있고 악한 영이 역사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방언이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하나님께 직접 전달되는 기도인데 오직 성령만이 그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목사님에게 예수님의 피를 뿌리라고 말하니까 10분 만에 방언이 나왔다고 합니다. 방법은 이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참고로 방언이 마귀방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쿠르트 코흐는 독일의 목사님으로서 30여 년간 영적 사역을 한 분인데 많은 자료를 모아놓았습니다. 그중 한 가지를 보면 한 아프리카 사람을 데리고 자기교회로 갔는데 자기 교회의 집사가 혼자 방언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이 “왜 저 사람이 우리 동네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라고 했다. 그 독일인은 나름 방언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용이 하나님을 저주하는 내용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방언을 할수록 그 사람은 악한 영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경우를 보았습니다. 방언을 하는데 10가지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뿌리고 나서 악한 영을 내어 쫓으려고 이름을 물어보니 “방언을 말하는”까지만 말을 했다.
쿠르트 코흐는 방언에 대한 소책자를 따로 내었는데 그 책은 방언을 부정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사단의 전술전략이라는 책에서 쿠르트 코흐 박사의 방언에 대한 말을 들어본다.
“휘튼 대학의 전 학장 V. 레이먼드 애드먼 박사는 방언을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하나님의 은사, 암시 혹은 자동암시에 의한 방언, 그리고 악령적 방언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극단적 신학자들과 달리 우리는 성령의 모든 은사를 1세기에 국한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 1세기에 역사를 모두 마치시고 훌쩍 떠나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적 혹은 악령적 모조품이 더욱 판을 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사단의 사업이다
성령을 억제하지 말라. 성령을 슬프게 말라. 성령을 흉내내지 말라. 성령께 떼쓰지 말라.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
5. 두 가지 회개
회개의 수준 혹은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사야 1:16-18
1. 스스로 회개함.
2. 하나님과 변론하여 회개함.
내가 모르는 죄, 내 양심의 악을 깨닫게 하신다. 40일 예수님의 피를 뿌리는데 휴지버린 사건이 생각남.
인격이기 때문에 죄를 깨닫는 것을 회개하고 버린다.
물질은 그냥 피를 뿌리면 정결해진다.
그러나 인격은 지성으로 죄가 무엇인지 알고 의지로 버려야한다.
6. 언약의 피인 예수님의 피이다.
말씀 :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의 피라는 사실은 언약을 맺을 때에 피가 사용되었다 라는 사실 하나와 또 다른 사실은 주님이 이 피를 적용할 때에 언약을 적용해주신다는 것이다. 이 언약 속에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신다는 것이며 성령을 부어주신다는 것이며 음성을 들려주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를 뿌려서 사역함으로서 환상을 보고 방언을 주시고 은사를 받고
심장병이 있는 분이 두 분 고침받고 폐막이 쪼그라 드는 사람이 치유받았습니다. 저의 발바닥의 무좀도 ‘한 때’ 다 나았습니다.
언약이란 개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1. 약속어음이다.
2. 돈과 같다.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3. 예수님의 피는 합당한 지불이요 댓가이기에 하나님은 기뻐하시면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는 합당한 댓가는 바로 예수님의 피이다. 그 이외의 어떤 것도 합당하지 않다. 우리의 간구와 노력과 회개는 그 직전에 필요한 것들이다.
마헤쉬 차브다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패배한 삶을 사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치유와 온전함을 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황에 맞게 적용시키는 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 마헤쉬 차브다, 가장 위대한 능력 보혈(The Hidden Power of the Blood of Jesus) p.24.(서울, 규장,2007)
자, 이 예수님의 말씀에서 먼저 언약과 죄사함의 관계는 무엇인가?
‘언약’(言約, Covenant) 곧 예수님이 맺어주시는 새 언약의 적용, 곧 그 안으로 들어가려면 필수적으로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즉 죄사함을 받아 정결하면 성령을 받고 이 성령받음은 이미 새 언약의 적용을 받은 것이다. 두 가지 기본 상태(state)는 1) 죄사함을 받고 2) 성령을 받는 것이다.
이 언약과 적용에 대하여 히브리서는 두 번이나 반복 설명한다.(히브리서 9장과 10장에서) 우리는 언약의 피라는 사실을 위의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읽지만 그 구체적인 적용방법과 그 언약의 내용은 히브리서 9, 10장을 읽어야 한다. 여기에 구체적인 것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는 곧 히브리서 전체를 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9장 10장은 전체 맥락과 전체 진리와 조화를 이루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에 성령을 받으려면 사도행전 2:38-41대로 해야 한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곧 부르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이 목적이고 그렇게 하여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따라가게 하시고 진리안으로 인도하셔서 진리를 행하게 하신다. 그 부르시는 자에게 죄사함을 얻기를 강조하신다.
성령은 우리 인간의 생명이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하늘나라를 열어주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보여주며 하나님 안에 거하게 하시며 진리를 행할 능력을 우리에게 부으신다. 그 이외의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절대적인 요소이시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목적으로, 이 땅에서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여 주시려고 흘려주셨다.
흘리신 이란 말은 예수님은 고통이 있으셨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피흘리신 예수님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온 몸을 많이 상하셨다. 마음도 상하시고 그러나 영은 상하시지 않았다. 영은 죄로 인하여만 약하여 진다. (고전 8:7)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므로 영이 약하여지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마음이 상하셨다. 그래서 외치신 것이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러나 그것은 그분의 영혼의 수고이다. 마음의 상처가 남은 것은 아니다. 그분은 영혼의 수고로 많은 이를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다. 만족하게 여기셨다.
그분의 육체는 상하셨다. 그래서 갈기갈기 찢기웠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마음이 회복되시고, 몸은 온전히 새롭게 되셨다. 예수님의 몸은 특이하게 하나님의 성령께서 만드신 것이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피는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이 담긴 것이다.
7. 예수님의 피를 뿌린다.
이사야 52장은 열방에 피를 뿌린다는 주 예수님의 사역하심이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0장 21절
8. 예수님의 피를 뿌릴 때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
그 피를 우리에게 적용할 때에 수많은 다중적인 역사가 일어난다. 간단히 몇 가지로 설명할 수없이 많다. 우리에게, 악한 영들에게, 우리 주변의 일들에 일어나는데 아주 많은 일중 먼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몇 가지만 살펴보자면
1) 우리가 회개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난다.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우리에게 죄가 보인다. 죄를 짓던 사건이 보인다. 마음에 이러한 죄와 관련된 사건들이 깨달아지는 것이다. 사람은 회개로서만 정결하게 된다. 물론 회개없이도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그 영과 마음과 육신이 정결해진다. 내가 정결해진다. 그러나 회개하여야할 죄는 회개해야만 죄사함을 받고 정결해진다.(사도행전 2:38-41)
2)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죽음의 세력이 쫓겨나간다. 마귀의 일이 멸하여진다.
어떤선생님
사례들
맥스웰 화이트 보혈의 능력
3) 언약의 피이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하게 보신다. 인정하신다.
사람이 정결하게 되고자 노력하는 그 어떠한 수고와 노력도 허무하게 된다. 모든 종교의 거짓된 구원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오직 예수님의 피가 있는 복음만이 인간을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정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므로 더러운 것은 바위를 녹여버리듯이 하시고 회개하는 자는 그 사랑으로 녹이신다. 그리고 예수님과 연합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죄를 가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혀주며 우리를 성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게 해준다. 우리는 그 곳 곧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은혜와 평안과 원수를 이길 능력을 얻는다.”
4) 정결한 자를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완벽하게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악한 자(악한 사단과 졸개와 그를 따라는 모든 존재)가 만지지 못하고 성령이 보호하신다. 악한 영이 만지지 못한다 함은 악한 영 곧 사단의 세력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한일서 5:18)
5) 정결하게 되므로 언약대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가장 간단한 방법, 그동안 인간의 여러 가지 추구는 쉽지 않게 추구하였으나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인하여 보다 더 쉽게 적용되고 성령을 부어주신다. (히 10:21)
6) 예수님이 그 피로 씻은 자를 정결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문화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나의 피는 나의 생명이 담긴 것이다. 그 피를 흘린다는 것은 생명을 바친다”는 뜻이다. 땀과 피라는 것은 노력을 하고 또 노력을 하되 생명까지도 바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분이다. 믿어도 된다. 믿어야 한다. 안 믿으면 손해이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마헤쉬 차브다의 말을 인용해본다.
“사단이 우리를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죄이다. (사단의 정죄는 사실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괴로울 뿐이다.) 그러므로 일단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 죄를 다 제거해버리시면 마귀는 우리 인생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끈을 잃는다. 마귀가 믿는 사람들인 우리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한은 우리가 그에게 허용하는 권한뿐이다.
즉 죄를 지음으로서 우리의 성벽에 우리가 스스로 마귀가 들어올 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의 회개가 강력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법이다. 회개가 승리의 발판이고 적과의 싸움의 기초이다. 회개하지 않고 적과 싸운다는 것은 지려는 노력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를 뿌림으로서 올바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계속 보면
우리 죄와 불순종, 거역 그리고 불신앙이 바로 마귀가 우리 마음과 생각에 발을 들이미는 틈이 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마귀를 이길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우리에게 있어서 승리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이기기 때문에 얻게 되는 결과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을 뿌리며 그때 비로소 마귀가 벌벌 떨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우리 인생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하려고 우리를 유혹하거나 위협하는 간음, 동성애, 영적인 어둠, 질병, 이혼, 마약중독, 알코올 중독과 같은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예수님의 보혈 한 방울이면 사단의 왕국을 다 궤멸시킬 수 있다.
이 말은 과장이 아닌 것이 예수님의 보혈은 언약의 피이므로 한 방울이든 많은 분량이든지 간에 하나님이 일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인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하고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을 대적하는 마귀와 그 추종세력들을 그 죄가 드러난 십자가 이후로는 항상 심판을 실행하신다. 즉 처벌하신다.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를 실현하여 하나님의 처벌하시는 능력을 나타내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라는 말도 예수님의 피를 뿌림으로서 마귀가 쫓겨나고 죄가 드러나고 성령이 역사하시고 모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더러운 것과 악한 것들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성령이 임하셔서 약한 것과 무능한 것과 병들과 상처들을 치유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락한 육신을 가진 자이지만 온전함에 이르게 된다. 성령이 온전하게 우리에게 임하여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죄를 처리하시는 이유이시다. 죄를 처리하셔야 정결하게 되고 거룩한 영 곧 성령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승리의 삶, 복된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이유이다. 우리의 어떤 행위나 노력이나 순종도 중요하지만 그 노력과 순종 이전에 있어야할 상태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결한 상태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자는 정결한 것이다.
그 상태에서 성령을 받으면 성령은 우리에게 말씀을 알려주실 뿐 아니라 행하게 하신다.
1) 말씀을 알려주심
요한복음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일 2:2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 말씀을 행하게 하심
에스겔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요한일서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이럴 때에 더욱 말씀과 피로 된 언약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풍성해지고 강건해진다.
요한일서는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하나님을 아는 자들을 말한다. 이것이 기본인데 정결한 자는 악한 자를 이긴다고 요한은 말한다.
요한일서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이다.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우리 인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가장 가까이 오신 것이다. 이제 죄를 처리하시고 우리의 존재에 함께 하시는 성령님으로 오신다. 성령님은 곧 예수님의 영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공급받고 평안과 기쁨과 열매맺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삶이다.
9. 예수님의 피는 바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요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피요 그 피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것이며
그 피를 뿌릴 때에 그 뿌려지는 모든 곳. 우리의 존재 깊숙이에 예수님의 생명 곧 영생, 살리는 생명이 들어와서 적용됨으로서 우리를 살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 곧 예수님의 모습이 회복된다. 우리 인격과 삶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갈라디아서 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하여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해산의 수고란 죽음의 고통과 같다. 남을 위하여 그러한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런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의 영과 마음과 육신, 모든 일, 모든 주변의 일들, 사람들, 장소, 공간, 복음전도 대상자, 죄에 빠져있는 사람들, 사건들에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성령이 역사하신다.
각 예배 전에 예수님의 피를 회중에게 뿌리면 그 회중 각각의 마음이 어느 정도 정결해져서(회개하면 더욱 정결하지만) 성령의 역사가 마음에 체험되고 은혜를 체험한다. 이것은 본인이 체험하는 일이다.
<간증 1> 본인은 2003년도에 예수님의 피를 배운지 얼마 안되어 나는 한 시간씩 40일을 기도했다. 집 근처 교회에 가서 아침 9시 정각부터 10시 정각까지 예수님의 피를 나에게 한 시간씩 뿌렸다. 배와 머리에 손을 대면서 기도했다. 그리고 방언이 나오는데 한 시간 동안 방언기도를 했다. 그 방언기도의 내용은 100%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였다. 그리고 나의 기도를 해서 하루에 2시간 반에서 3시간 기도를 했다.
<간증 2> 그리고 4년 전에 기도원에서 오후 예배를 드리기 전에 한번 성령의 파도처럼 밀려옴을 경험했다. 나는 맨 뒤 자리에 앉아서 손으로 예수님의 피를 뿌리노라 라고 말했다. 그러자 맨 왼쪽에서 성령의 임재하셔서 그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앉은 자리를 휩쓸고 갈 때에 나의 마음은 기쁨의 감격으로 터질 듯 하였다. 성령은 그렇게 예수님의 피를 뿌리면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간증 3> 그리고 그때쯤에 발에 무좀이 있었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잘 낫지 않았는데 밤에 자기 전에 예수님의 피를 손으로 바르는 모양으로 한 번 발에 슥 바르면서 ‘예수님의 피를 뿌리노라’ 하고 잤다. 그랬더니 다음 날 아침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발에 무좀이 하나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는 누가 전달하시는가? 예수님이 전달하시고 성령님이 전달하신다.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성령이 우리위에 우리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생명이 내려오는 통로가 되신다. 한 마디로 내 머리위로 하늘이 열리는 것이다. 스데반은 그러한 경험을 한 것이다.
성령은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전달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이시고 예수님이 바로 이러하신 분이다.
고린도전서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을 보게 되고 마음에 은혜가 느껴지므로 예수님의 피를 뿌리는 사람은 은혜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살게 되고 은혜충만하게 된다. 또한 은혜로 주신 것을 보고 받게 하신다. 그러므로 은혜로 복받는 자가 되게 하신다.
이 피를 흘리심이 십자가의 목적이고 예수님의 고난의 목적이시다.예수님의 피는 새 언약의 피이고 언약 체결의 도구이고 열쇠이다. 보물상자를 만들고 그 열쇠를 만들었는데 그 열쇠가 있으면 보물상자를 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피는 천국의 보화를 열어주는 열쇠이며 이를 뿌릴 때에 적용할 때에 언약 속으로 들어간다. 그 언약 안에 좋은 것이 가득하다. 넘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집에서 좋은 것을 누린다.
마헤쉬 차브다의 말을 들어본다.
"우리가 보혈에 의지하여 호소하면 하나님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차원에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는 축복의 문을 열어주신다. 시편 105편 37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은과 금’을 가지고 어떤 질병이나 병약함도 없이 애굽을 떠나던 장면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그들을 다 치료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우리 모두가 아주 값비싼 진주이기 때문에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써 우리를 사는데 필요한 엄청난 값을 자신의 보혈로 다 지불하셨다. 이제 예수님은 모든 진주와 밭에 숨겨진 보화 전체를 찾아 집으로 가져가셔서 깨끗이 닦아놓으실 때까지는 만족하시지 못할 것이다.”
이 마헤쉬 차브다의 말은 매우 영감이 있는 말이다. 우리가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은 우리가 귀한 존재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보화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기 자녀를 내 보물이라고 말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랴!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를 빛나게 하시고 축복받은 자가 되게 하시고 정결하고 거룩하게 유지하신다.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하신다. 그 집에 거하시면서 관리를 하시는데 바로 예수님의 피로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kai; iereva mevgan ejpi; to;n oitou' qeou',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서 다스리는 큰 제사장은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다스리는’은 어떤 동사가 아니라 단지 전치사 ‘에피’(ejpi;)이다. 이 단어는 on, at, over의 의미인데 그 예수님이 우리 위에 공동체 위에 우리 교회의 머리로서 거하심 자체가 우리를 다스려주시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시다. 그 거룩한 존재 자체가 우리를 정결하게 관리하시는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아주 아름다운 파란 보석과 같다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에 그보다 더 영광스러운 자녀로 빛나게 하시는 일을 하실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견인(the perseverance of the saints)의 사실적 내용이다. 거룩함을 유지하게 하심이 견고하게 하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우리를 거룩하게 유지하여 주셔야 우리가 휴거되고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거룩과 화평을 둘 다 동시에 좇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직장 동료와 화평을 도모하기 위하여 같이 술을 먹거나 악행을 참아주기도 한다. 거룩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룩을 추구하면 죄를 지적하고 선지자역할을 해야 하는데 왕따당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란 여기서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르다. 결국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거룩과 화평을 좇으려면 이것은 절대로 인간의 힘이나 마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오직 성령이 해주시는 일이다. 성령께 나를 맡기고 나의 삶을 성령께서 주관하실 때에 그렇게 해주신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주님을 뵙게 된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사람들과 화평하지 않을 때에 큰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참아야 한다. 주님의 능력을 우리는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성령받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주님의 주심으로, 긍휼히 여기심으로 주시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베드로후서 3:9,10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구절에서는 주님의 약속 곧 주님의 재림과 회개의 관계를 보여준다. 즉 회개하고 정결하고 거룩함을 유지하는 삶이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적합한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지금 말세지말에 다시 강조되고 나타남은 모두 다 주님의 은혜요 우리를 준비하심이고 우리를 관리하여 주시려 하는 것이다. 거룩하고 정결한 주 예수님의 신부운동은 단지 성령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정결하게 씻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가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과 피와 성령의 역사가 같이 나타나는 것이다.
요한일서
5: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5:8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나님의 역사로서 합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사상과 신학과 주관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분리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즉 우리는 물 곧 말씀과 피와 성령의 사역을 고루 받아야 한다. 예수님이 주관하시고 주도하시는 사역인 이것을 우리가 나누지 말아야 한다. 주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야 한다. 주님은 물로만 아니라 피로도 임하시는 것이다. 임하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접촉하시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만으로 주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도 우리와 만나시는 예수님을 봐야 한다.
이것이 올바를 뿐 아니라 정결한 신앙이다. 올바름은 말씀대로 이고 정결함은 말씀과 피로 되는 것이다. 올바르기는 하나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이유는 바로 피의 적용이 부족한 탓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씀을 알고 믿고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안으로 들어간다. 성령을 체험할 뿐 아니라 성령의 주권에 굴복하게 되고 성령을 따라 열매맺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은 축복받은 삶이고 열매맺는 삶이고 놀라운 능력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그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인 것이다.
특히 우리가 받는 것중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성령이신데 성령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을 보게 하신다. 보물찾기를 하는데 바로 보물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정결한 자에게 주시는 복이다.
출처: https://raptureinjesusblood.tistory.com/entry/예수님의-피에-대한-기본적인-말씀-1?category=259236 [말씀과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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