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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 - 시므온

하나님아들 2018. 8. 25. 00:29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 - 시므온

* 누가복음 2:25-35(신약 89쪽) *

 

Ⅰ. 시므온의 인적사항

① 시므온의 뜻 : (하나님께서)‘들으셨다’ ② 예루살렘에 거주 함

③ 성령의 특별한 지시를 받은 사람

Ⅱ. 시대적 배경

오랜 로마의 압제하에서 민족의 정체성이 희미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제국의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져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로마에서는 식민지 백성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에 있는 모든 백성들은 다 호적 하라고 한 시기이다.

Ⅲ. 시므온의 특징

1. 의롭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

시대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가 메시야를 예언한지 400년이 지났음에도 이제는 더 이상 어떤 선지자도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들려준 많은 조상들이 죽어갔습니다.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이슬처럼 사라져 갔습니다. 그 분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한 징조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로마제국의 다양한 지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헬라와 로마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법들을 터득했습니다. 민족성도 많이 희미해져 버렸습니다. 조상들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신화처럼 들려지는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시기적으로 암울한 시기인데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과 경건함을 유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시므온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항상 의로움과 경건함을 유지한 사람입니다. 지난 주에 고넬료를 살펴 보았지만 의롭다는 말은 공정하다. 정의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시므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공정하게 행동한 사람입니다. 정의롭게 생활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므온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책망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있든지 없든지 시므온은 언제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살았습니다.

눅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이 경건하게 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며 백성을 참으로 사랑하고 구제하는 일을 했음을 의미합니다.l 시므온은 경건의 모양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경건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고 백성을 향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의롭고 경건한 사람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함을 유지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시므온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잠 5:21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 ”

시 33:13-14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

예) 어느 가을 달밤에 어떤 사람이 어린 아들과 같이 바람 쏘이려 들판에 나갔더니 무우 밭에 무우가 먹음직하게 보여서 아들보고 망을 보라 하여 아버지는 밭에 들어가서 무우를 잡고 뽑으려고 하는데 아들이 "아버지 누가 봅니다"하니 아버지는 누가 보는 것 같습니다" 아이는 주일하교에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아이는 무릇 두 번이나 번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에이! 아무도 없지 않니! 하면서 세 번째 밭에 들어가 무우를 뽑으려고 하는데 "아버지 봅니다"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또 나와서 "야! 보기는 누가 보느냐?" "아버지! 하나님이 보십니다“하였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산다면 사람들은 몰라서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하신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적용

우리는 항상 사람들 앞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면 완벽한 비밀이 보장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줄 알고 겸비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시므온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이 나이 많아 늙은 종이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탐욕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인기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시므온에 대한 증언은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네 시므온은 성령에 취해서 살아간 사람입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산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을 이용해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므온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영에 이끌리는 사람은 두려움, 근심, 걱정 염려가 다 사라지게 됩니다. 세상이 주지 않는 참된 만족감을 누리게 됩니다.

(25절하)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절하) 성령의 지시함을 받았더니

(27절상)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예) 1871년 10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인 시카고 대화재로 대도시 하나가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또한 그것은 D. L. 무디가 힘들여 쌓아 놓은 모든 사역이 한순간에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화재는 파웰 홀(Farwell Hall), 무디가 담임하고 있던 일리노이 스트리트 교회(Illinois Street Church), 그의 집과 재산을 송두리째 앗아 갔다. 그러나 필생의 사역이 완전히 허물어진 거기서부터, 하나님은 더욱더 훌륭한 일꾼을 일으킬 작정이셨다. 평소에 무디의 기도 제목은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는 것이었는데, 화재 후에도 이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회심 후 중생의 체험이 있은 지 꼭 16년만의 일이었다. 그때 나는 성령의 강력한 능력에 휩싸였다. 나는 하나님께 당신의 손을 멈추어 달라고 간청해야 할 정도로 강력한 그분의 사랑을 경험했다." 그 후 무디는 똑같은 설교, 똑같은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정도였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왔다. 섬기는 자는 바뀐 게 없었다. 이것에 대해 무디는 "나에게 온 세상을 다 준다 할지라도 이제는 축복을 경험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세상 부귀영화는 저울에 달린 조그만 먼지와 같다"라고 고백했다. 섬김에 필요한 성령을 구하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엡5:18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적용,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주님께 간절히 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충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입니다. 성령충만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시다.

3.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린 사람입니다.

시므온은 예루살렘의 머물면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를 받게 됩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시므온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므온 자신은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입니다.

시므온의 기다림이 단지 막연한 기다림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기다렸다는 말은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시므온은 이 암울한 시대에 참된 이스라엘의 위로자를 기다린 것입니다. 모두가 방황하고, 삶의 목적을 상실해 가고, 모든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로를 밟지 않고는 올라설 수 없는 오직 한 자리 뿐 인 그 자리를 향해 달려가는 안타까움을 본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만이 올라 설 수 있는 줄타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민족의 재앙이요, 인류의 재앙과도 같은 치열한 경쟁과, 탐욕 앞에 병들어 가는 인생들을 본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므온은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진리를 못 보는 소경이 되어 어디로 향해야 될 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구원자, 하나님의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시므온이 성령의 지시와 감동으로 인해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마침 태어 난 지 8일이 되어 정결예식을 하기 위해 온 부목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는 태어 난 지 8일이 되면 남자 아이는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때 아기 예수님도 정결예식을 위해 성전에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입니까? 시므온이 아기를 보자 성령의 감동을 입고 이 아이가 그리스도(메시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시므온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눅2:29-32 주제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거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보자 참 메시야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기를 안고 크게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그 찬양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이제야 내가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의 빛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인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므온이 간절히 기다린 메시야는 자신의 안녕을 위한 기다림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류를 위한 기다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바로 서고, 진리가 바로 선포되어지고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에게 참된 이정표가 되는 생명이 되시는 메시야, 사망의 그늘에 매여 있는 영혼들에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시는 분, 이방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울러 참 자유를 누리게 하시는 참된 구원자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평생에 이 놀라운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너무 기뻐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시므온은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한 사람입니다.

적용,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대강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왜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나 합니까? 어떤 부자는 아직 오실 때가 안 되었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 막 승진을 한 사람이나, 로또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된 사람들, 어떤 분야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은 주님의 강림을 달가워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므온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강림을 참으로 간절히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진리가 나의 삶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를 사로잡도록, 그리고 낙오자와 패배자가 있는 경쟁의 삶속에 던져진 인생이 아니라 모두가 승리하고, 모두가 자유함을 누리고, 모두가 기뻐할 진리 안에서의 자유를 맛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오심은 인류에 가장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의 소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주님을 갈망하기를 바랍니다 .

4. 끝까지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찬양한 시므온은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미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눅2:34-35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은 메시야로 오신 예수그리스의 생애에 관해서 예언을 했습니다. 이는 시므온이 얼마나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인물인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결국 그는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기를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흥하게도 하고 패하게도 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모든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입니다. 예수님이 기준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흥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으면 패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 세움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많은 비방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방 때문에 마리아의 마음은 칼을 찌르듯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본질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모든 것의 실체를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증언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므온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지시를 받고 참 메시야인 예수님에 대해서도 예언할 정도로 영성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화려함은 없었습니다. 많은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이 많았던 것도 아닙니다.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영적으로 참으로 부유했습니다. 그러기에 말년에 평안히 안식할 수 있었습니다. 평안히 주님의 품으로 안기게 된 것입니다.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고 안식한 사람입니다. 그의 마지막 사명을 이루고 안식한 것입니다.

적용

우리 모두는 죽을 때 까지 사명자입니다. 나름대로 자기의 위치에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시므온은 노년에도 끝까지 사명을 붙들고 경건하게, 의롭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끌림대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최대의 사명 메시야를 보고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룬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명자입니다. 예배의 사명자, 기도의 사명자, 섬김의 사명자, 사랑의 사명자입니다.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위로의 사명자 격력의 사명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의 사명자로 사는 것이 우리 모두의 행복이고 삶의 이유이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제 성탄이 코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 겨울에 따듯한 사랑을 나누는 사명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따듯한 차 한잔과, 호빵하나를 나누어도 거기에 사랑의 온기와 마음을 담아 나누면 당신은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겨울에 작은 것 하나라도 내가 먼저 나누려는 노력을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예) 사랑의 온정을 나누기 위한 1만원의 행복(이 겨울에 고독하고 쓸쓸한 사람을 위해 온정을 나눕시다. 이 겨울에 어린 아이들을 위한 사랑을 나눕시다. 이 겨울에 독거노인, 홀로사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해 봅시다. 그렇다면 당신의 노년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노년이 되며 끝까지 아름다운 사명을 감당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Ⅳ. 결론

오늘 우리는 메시야를 기다린 사람 시므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단지 개인적인 메시야를 맹목적으로 기다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참 구원자, 참 메시야, 참 그리스도인을 기다리되 경건함으로 의로움으로 기다렸습니다. 항상 성령에 이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야만이 모든 인류를 잘못된 행로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임을 알았던 인물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므온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1. 의로움과 경건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메시야를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4.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출처 : 하늘꿈교회 <예피>
글쓴이 : 푸르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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