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본을 보인 사람 - 스데바나
* 고린도전서 16:15-18(신약 284쪽) *
{힌 눈 처럼 깨끗하고 맑고 하얀 삶을 사세요. 당신의 미소와 안부가 큰 힘이 됩니다. 말씀에 은혜받으시기 바랍니다.}
Ⅰ. 스데바나의 인적사항
① 스데바나의 뜻 : “면류관”② 아가야 지방의 고린도 사람
③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와 한 집안 사람④ 아가야의 첫 열매
Ⅱ. 시대적 배경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때에는 구브로와 소아시아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도 소아시아 지역을 전도하려고 하는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다. 당시에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마게도냐 지방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을 중심으로 전도하다가 박해자들 때문에 배타고 아가야 지방의 아덴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다. 아마도 이때 아덴 지역에서 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 스데바나가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후에 바울의 선교여행에 많은 후원자의 역할을 한 인물이다.
Ⅲ. 스데바나의 특징
스데바나는 바울이 전도여행 중에 만난 사람입니다. 이 스데바나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1. 믿음의 집안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아주 모범적인 믿음의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은 성령에 이끌리어 유럽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겪게 되고 박해자들을 피해서 배타고 아가야 지방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아가야 지방에 대표적인 도시는 아덴과 고린도입니다. 바울이 아덴으로 들어와서 복음을 증거했는데 아덴이라는 지역은 굉장히 종교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듣기를 좋아하고, 알지 못하는 신에게 섬기는 것을 좋아하며 당시에 큰 아데미신상을 섬겼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범람하는 도시였다. 이곳에서 바울이 철학자들과 논쟁을 했는데 실제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사도행전 17장에 의하면 겨우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는 사람과 몇 명 많이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스데바나집 사람들을 소개하는데 스데바나 집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아가야의 첫 열매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바나는 아덴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그 복음을 듣고 가족에게 복음을 전해서 모든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스데바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스데바나 집 사람들을 묶어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울이 세례를 준 사람들은 얼마 안되는데 세례를 준 사람들 중에 스데바나집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온 집안이 세례를 받고 믿음의 가정이 된 것입니다. '집'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키안'은 라틴어의 '파밀리아'(familia)와 마찬가지로 '가족들'뿐만 아니라 '노예들'까지도 포함하였다). 따라서 스데바나가 아덴에서 회심한 이후에 아가야에 돌아와 그의 가족들을 모두 회심시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입니까? 온 집안이 다 믿음의 집안이 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이렇게 온 집안이 믿음의 집안이 된다는 것은 스데바나의 지도력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스데바나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권위를 휘드르는 것이 아니라 스데바나가 가족에게 인정받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스데바나 집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인 것을 보면 스데바나의 사람됨됨이는 아주 훌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마치 고넬료 가정이 연상이 됩니다. 집안에 훌륭한 가장이 있다면 그 집안은 참으로 복 있는 가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적용,
우리가 가정 복음화가 되지 않아서 마음 아파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리스도인이 신앙과 행실이 일치하고 가정에서 인정받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다면 복음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자체가 보증수표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집안이 믿음의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집안에서 아주 잘해야 합니다. 인정받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섬김의 본을 보인 사람
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스데바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지 않습니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안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마음을 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집안 사람들이 성도 섬기기로 작정을 했다고 합니다.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성경에서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섬겼는지 소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있게 말합니다. 너희가 알지 않느냐! 그들이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것을...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섬김은 이미 고린도 교인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병든 자나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을 솔선수범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들 집안을 집회 장소로 내어 놓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처음 복음이 들어갈 때는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개인 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일에 기꺼이 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섬기기로 작정했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그 일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섬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섬김은 진정한 섬김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섬김은 노동입니다. 괴로운 일입니다. 자기가 하지 않아도 될 상황이면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발적인 섬김은 너무나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의무사항이 아님에도 섬기는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그렇게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 테레사 수녀가 어느 날 한 어린이의 상처를 지극한 정성으로 치료해 주고 있을 때, 인근에 살던 이웃 주민이 물었습니다.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 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테레사 수녀는 대답했습니다. “허리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콜롬비아 신학교 스티븐 올포드 박사에게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저희들에게 크리스천 리더십의 비결이 무엇인지 좀 말씀해 주십시오! ” 올포드 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이요? 무릎을 꿇으십시오.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심장이 깨어져도 참으십시오! ”
예수님의 섬김이 어떤 섬김이었습니까?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낮은 이 땅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병든 자를 찾아다니셨고, 가난한 무리들과 함께 하셨고, 소외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함 섬김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믿음 생활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행복을 이 기쁨을 가지고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불신과 염려과 근심의 벽을 뚫고 섬김의 주사를 놓아봅시다. 그러면 경직된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집니다. 굳은 얼굴이 행복으로 바뀝니다. 막연해 보이던 것들이 뻥 뚫리게 됩니다. 희망의 햇살이 비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쁨으로 섬깁시다. 나는 행복자라고 노래합시다. 무엇이든지 즐거움으로 해봅시다. 행복이 전염됩니다.
섬김은 하늘나라의 면류관이고 나와 후손의 축복의 도구이며 수지맞은 투자입니다. 우리 모두 이 아름다운 일에 기꺼이 동참합시다.
적용
우리도 섬기는 일에 열심을 품읍시다. 억지로 인색함으로 하지 말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섬길 것을 찾아봅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성도의 부족함을 채움
스데바나집 사람들은 성도의 부족함을 채웠다고 합니다.
16:17 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지금 바울은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찾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입니다. 이들을 보고 바울은 매우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바울에게 연보를 가지고 갔는지도 모를일입니다. 무언가 일이 있어서 바울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칭찬하면서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쓰면서 스데바나 집 사람들을 잘 생각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부유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의 부족한 것을 채운 것입니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도 기꺼이 부족한 것을 채웠던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물론 물질로만 부족한 것을 채운 것이 아니다. 사랑이 부족한 곳이 있으면 사랑을 채우는 일을 했고, 정이 그리운 사람에게는 정을 채웠고, 관심이 부족한 곳에는 관심을 채워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사람들의 형편을 잘 살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지 않으면 그들의 부족함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밀한 관심을 가지고 본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십시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이 모든 것이 만족할 만 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이라고 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스데바나 집 사람들은 이타적인 사랑을 아주 잘 하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가능합니까? 이들에게는 이러한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이들은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고아원에 찾아왔다.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아이가 있습니까?” 그 물음에 원장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네. 있어요. 열 살짜리 여자 아이인 매우 흉한 꼽추예요.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Mercy Goodfaith:훌륭한 믿음의 은혜라는 뜻)이지요.” “바로 그런 아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하고서 그 아이와 함께 떠났다. 35년이 지난 후, 아이오와 주 고아원 감사실의 실장은 한 고아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곳은 매우 특별한 곳인데 깨끗하고, 음식도 훌륭하며 특히 원장은 사랑이 넘쳐흐르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는 모두 잘 보살펴지고 있으며, 원장은 풍부한 사랑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저녁식사 후에 피아노 앞에 모여 섰을 때 나는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분위기를 느꼈다. 나는 결코 그 원장의 눈과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내가 그 원장의 얼굴이 보기 흉한 꼽추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데에 놀라워했다. 그 원장의 이름은 머시 굿페이스이다.” 어떤 한 사람이 추하고 보기 흉한 고아를 보살펴줄 용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머시 굿페이스는 사랑의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사랑을 백배로 증식시킬 수 있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돌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하자.
적용,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항상 나의 부족함을 보면서 살아갈 것입니까? 이미 있는 행복과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살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형편을 비교하지 맙시다. 감사합시다. 그리고 행복을 누립시다. 같이 기뻐하며 즐거워합시다. 함께 행복해 합시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들에게 좋은 위로자가 되고, 격려자가 되고, 동지가 되고. 아름다운 협력자가 됩니다. 우리 이렇게 행복을 누리며 삽시다.
4. 지도자와 성도의 마음을 시원케 함
스데바나 집 사람들의 또 하나의 장점은 성도들과 지도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일입니다.
16:18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이들이 성도들과 지도자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시원하게 해 주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같은 교우들의 마음과 지도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니 정말 말만 들어도 시원한 느낌이 드는 사람들입니다.
긍정적인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시원시원했을 것입니다. 무언가 안건이 나와서 같이 해보자고 하면 안된다고 말하지 않고, 해 봅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됩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발을 걷어 붙이고 돕는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들하고 같이 일하면 속이 시원한 것입니다. 안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방법을 찾아 내서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이들이 일을 맡으면 그 일을 잘 처리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일을 맡기면 걱정이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훌륭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시원하겠습니까! 그렇게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들입니다. 뒤로 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지금 바울에게 일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들도 이들 집안사람들이 찾아 온 것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기분 좋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있는 곳은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의욕이 생깁니다. 그렇게 멋진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적용,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답답한 사람입니까?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된다고 말하는 사람입니까? 저 자신조차도 스데바나 집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더욱 신나게,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생기를 불어 넣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당당하게 담대하게, 강하게 멋지게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열매가 아주 달콤할 것입니다. 그 사람 주변은 항상 활기가 넘치고, 역동하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Ⅳ. 결론
1. 견고한 믿음의 가정이 되기 위해 인정받고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됩시다.
2. 섬기기를 작정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3. 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우는 역할들을 합시다.
4.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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