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하나님의 명칭들

하나님아들 2018. 6. 17. 20:56
하나님의 명칭들

 

 

 낱말들과 명칭 두 히브리어 낱말이 "하나님"으로 번역된다.

엘(EL)

"신"신적권능과 신 본질의 특성을 가지신 하나님.

엘로힘(ELOHIM)

형태상 복수이나 "신들"을 뜻하지 않고 신의 모든 속성을 완전히 갖추신 분을 뜻한다.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되는 세번째 낱말이 있다.

아돈(ADON)

하나님을 "절대주권자"혹은 "주님"으로 묘사하여 그의 신적 권위와 실제적인 통치를 지적하는 낱말. 이 명사들과는 별도로 또한 하나님의 고유명칭 여호와(야웨)가 있다. 그 고유명칭을 직접 사용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추측컨대 경외심의 발로에서)공석에서 읽을 때에는 "주님"을 뜻하는 낱말로 대신하였다. 영어 성경들은 공교롭게도 그 관습을 이어받아 여호와를 "주"로 그리고 그 고유명칭이 아도나이(아돈의 한 형태)와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주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있다.우리가 만일 그 대치된 낱말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 자신의 침닐한 고유명칭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성경을 읽을 때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자기 백성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성품을 알리고자 하셨다. 하나의 낱말로서 여호와는 히브리어 동사 "있다"(존재)와 관계되어 있다. 이 동사는 "존재하다"의 뜻을 넘어선다. 그것은 "능동적으로 임재하다"를 의미한다. 여호와 (출3:13-16출3:5출12장출애굽기 34:6

계시의 진보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경의 초기에서부터 (창4:1) 나타나는데 그 구절들은 사람들이 그 명칭을 알았고 또 실제로 불렀음을 암시하고 있다(예,창 4:2614:22출6:2-3삼상 2:12,그리고 3:7,출33:12-13출애굽기 6:2-3출애굽기 6:2-3

 엘 쉬다이(EL SHADDY) 쉬다이는  필시"산"을 뜻하는   말로서 인간의  무력함과 대조를   
     이루는 산의  불변성과 항구적인   힘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것이다.그   예로서 창세기 17:1이하 28:3  이하 
     창35:1143:1448:349:25창세기 14:18창세기16:13
 엘 올람(EL OLAM) "영생하시는 하나님,"창세기 21:13창세기 31:13창세기 33:20

그러므로 출애굽기 3장


그림 : 하나님의 손 : 타울의 악화가 작품. 다섯길 원한(후광)으로 둘러져 있는 하얀 공간의 중앙으로부터 소매를 늘어뜨린 하나님의 손이 나타나 축복하고 있다.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상은 로마네스크의 성당의 내외에 그 전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만. 그리스도 출현이전의 시대. 곧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출33:20-23출 20:4-5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이니까?"

하나님 자신

하나님 속성 중 더러는 그의 신성의 핵심을 드러내므로 명칭들로 사용되고 있다.

거룩하신 자

모든 명칭 중에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명칭이다. 여호수아 24:19,이사야 5:1610:17,하박국1:12을 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특히 이사야가 사용한 한 변형, 그 예로 이사야 1:4

"질투라 이름하는" 하나님

이 명칭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출애굽기 34:14

만군의 여호와

이것은 자주 반복되어 나오는 명칭으로서 신성의 잠재력과 권능을 가진 "만군"을 지적하며 특히 하나님의 "전능성"과 위엄을 뜻할 가능성이 있다. 그 예로 예레미야 32:18하-23을 보라. 더 나아가서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니님이시요(렘10:10) 높으신 하나님이시며((막6:6) 보복의 하나님이시다(렘51:56

온 세계의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은 한 백성에게만 매이실 수가 없다. 그는:
 창조주이시다.    이사야 40:28창세기 18:25
 왕이시다         예레미야 10:7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시다 민 16:22,렘32:27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는 특별히 자기를 한 백성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사자 그의 신성을 낮추지 않고 자신을 적응시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창세기 16:7 이하,사사기 13:16여호수아 24:2 그는 또한 그 안에 함축된 은혜와 겸손에 강조점을 둔 바 거룩함(사1:4)과 권능(시132:2)에 있어서 야곱의 하나님(시81:4

개인의 하나님

자기의 택하신 백성 안에서 그는 개인의 하나니이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사5:1

 반석         출애굽기 17:1-7신명기 32장을 보라
 목자         시편 23:1
 방패,산성    시편 18:2시편 27:1시편 28:7
 피난처(산성) 시편 37:39,시142:5시편 84:11
 아버지       시편 89:26,이사야 63:16
 어미새       시편 91:4,이사야 63:16
 도움         시편 115:9
 그늘         시편 121:5
 분깃         시편 142:5
 노래         이사야 12:2
 구속자       이사야 41:14
 전사         이사야 42:13
 토기장이     이사야 45:9
 남편         이사야 54:5
 생수의근원   예레미야2:13
 이슬         호세아 14:5
 사자,표범,곰 호세아  13:7-8


하나님의 명칭(신약)




계11:18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온전히 계시된 하나님의 명칭은 세 가지입니다.


즉 '하나님(qeo")', '주님(curio")'그 다음 바로 '아버지(pathr)'입니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명칭들은 복합적인 의미로 이 세 가지 명칭에 응집되어 있습니다.


그 중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기독교 신관의 핵을 이루는 은혜로운 명칭입니다.


이제 그와 같은 신약의 명칭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데오스(qeo")


(qeo") 라는 명칭은 우리나라 말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하나님께 대한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구약에서 '엘', '엘로힘',


'엘리욘'이라는 명칭을 그리이스(헬라)어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에 계시되었던 '하나님'보다는 인생들과 더욱 친근하신 분이라는 의미로


신약성경은 데오스(qeo")를 하나님의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1) 구약의 '하나님'은 민족적인 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약의 명칭을 공부할 때 하나님을 한결같이


'지존자', '전능자', '만군의 하나님'등으로 부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엘리욘'이라는 명칭만 해도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지극히 높으신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구약에서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은


우리 죄인 된 인생들이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룩'하신 분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뵈온 자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사6:5)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오직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즉 율법과 성전을 통하여 뵐 수 있는 분이시기에 오직 이스라엘의 신실한 신앙인들에게만


친근한 명칭이요, 온 인류에게는 아직 구체적으로 계시되지 않은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2) 신약의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 사역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구약과는 달리


민족적인 색채나 인간과 거리감을 지니신 분이 아닙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명칭에다가 '나의' 혹은 '너희의'라는 '소유격'을 많이 붙여 불렀습니다


                                                                                        (참조; 마5:48;마6:4,9).


즉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신실하신 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모든 인생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나의 구원주라는 의미로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들 중에 오직 우리 성도들만이 하나님의 성호를 즐겁게 부를 수 있습니다.



2. 퀴리오스(curio)


즉 '주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에 공부했던 바대로 히브리 사람들은


감히 '야훼'라는 하나님의 성호를 함부로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칭 대신 '주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아도나이'라는 히브리 명칭을 그리이스(헬라)어로 '퀴리오스'라는 했는데


신약성경은 이 명칭을 계속 사용하였습니다.


구약의 '여호와'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 '주님'으로 계시된 신약의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신앙 고백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예배의 유일한 대상임을 고백함


히브리 민족뿐만 아니라 그리이스 세계의 사람들도


그 '예배의 대상'을 '퀴리오스' 즉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고전12:3)고 고백하는 이 명칭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시며 예배와 신앙의 대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혈육 관계를 지닌 '야고보'사도가 그리스도를 '주님'(약1:1)이라고 부른 사실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신약에서 '주'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리이스 세계의 종교적 관행을 따른 것이 아니라,


그분의 십자가의 대속 사역과 부활에서 '하나님'으로서의 권세를 나타내셨기 때문에


유일하시고 경배하실 분으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참조; 롬1:4).



2) 성도들의 왕이심을 고백함


또 '주님'이라는 명칭은 신약 시대에는 왕이나 황제에게 붙였던 명칭이기도 합니다.


로마인들은 황제를 '퀴리오스'라고 호칭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만을 '주님'이라고 불렀던 기독교인들은 자연히 당히


로마 판도의 세계 속에서 반체제적 불순 분자들로 낙인 찍히고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데에는 생명을 건 결단이 필요했습니다(참조; 롬10:9).


오늘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우리 성도들도 이와 같은 결심을 지니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나와 나의 교회와 가정과 세계의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또 그분의 권세만을 의뢰하고 삽니까? 그분의 말씀을 '왕'의 말씀으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다음과 같은 주님의 경고를 기억합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3. 파테르(pathr)


이는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가장 잘 나타낸 명칭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그리이스 신관에도 '제우스'를 신 중에 '아버지 신'이라고 했고,


또 구약 시대 이스라엘 민족도 때때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참조; 신32:6; 시103:13).


그러나 신약의 '아버지'라는 하나님의 명칭은 '만물의 조성자'라는 철학적인 신관이나


또 이스라엘 민족의 조성자라는 히브리적 민족주의적인 신관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신약의 '아버지'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은총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생명적인 아버지'라는 개념을 지녔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요(참조; 요15:9;요16:32;요17:1),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돌아온 성도들의 '아버지'도 되어 주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성도들과의 관계는


그 옛날 상실했던 '에덴 동산의 창조 관계'로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안에서 결합될 관계라는 것을 '아버지'라는 명칭은 강조하는 것입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