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스크랩] 민수기 개론

하나님아들 2015. 9. 15. 23:41
 

민수기


제1부 민수기의 역사적 배경


   민수기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안식의 땅 가나안으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를 통해 인도하시는 내용이다. 그러나 단순한 여정의 기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어려운 행로를 통해서 그의 백성을 시험하시고 연단하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약속된 기업을 받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됨과 그를 믿고 순종하는 자들의 축복된 미래를 대조적으로 보여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본 서론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동안의 여정중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현대적 교훈과 그 사건들이 가지는 역사성에 대해서 연구해 봄으로써 오경 중의 민수기가 가지는 독특성에 대해서 조명해 보고자 한다.


   I. 명칭


   유대교 공회당에서는 민수기를 <rB,d'y]w" ; 와예다뻬르>, 혹은 <rb'd]m]B] ; 뻬미데바르>라고 부르는데 <rB,d'y]w" ; 와예다뻬르>는 민수기의 첫 단어로서 '그리고 그가 말씀하셨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이 레위기서의 책명인 <r'q]Yw" ; 와이크라> (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와 혼동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후에 민수기의 첫 구절 중에 나오는 <rb'd]miB] ; 뻬미드바르> (광야에서)를 책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책의 첫 글자를 따서 책명으로 부르는 것은 모세 오경의 특징적인 것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 등의 히브리어 명칭이 모두 이렇게 명명되었다. 그러나 민수기는 책의 첫 구절을 딴 위의 두 이름 외에도 다른 오래 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ydiWqPih' v!,jo> 즉 '계수의 오경(The fifth of mustering)'이란 것인데 민수기의 내용에서 따온 것으로 미쉬나 문서나 탈무드에서 사용해 온 것이다. 또한 민수기는 '백성들의 불평(The grumbling of a notion)'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민수기가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40여년을 방랑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헬라어 번역 성경인 70인역에서는 민수기의 이름을 <Ariqmoi : 아리드모이>라 명명하고 있는데 이 말은 '숫자'라는 뜻으로 민수기의 내용이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조사에 관해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후에 라틴어역인 <Vulgata ; 불가타>가 70인역의 뜻을 그대로 따라서 라틴어로 '숫자'를 의미하는 'Numeri'라고 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영어 성경의 민수기 이름인 'Number'와 한글 개역 성경의 민수기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II. 저자


   현대의 고등 비평은 모세 오경 전체에 대해서나 민수기에 대해서 모세가 그 저자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으나 민수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증거들은 그 저자가 모세임을 증명하고 있다. 민수기 본문의 내용 중에 발람과 발락에 대한 기록에서는 모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나 다른 전체의 내용 속에서는 '여호와가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또는 '모세가 그들이 진행한 것을 기록하였으니'라는 기록이 80회 이상이나 발견되고 있다. 모세가 민수기의 저자라는 것을 몇 가지 성경의 증거로 나열해 보면

   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본문 자체가 모세에 의해 쓰여졌음을 말하고 있다(참조, 민 1:1, 33:2).

   ② 본문의 인구 조사의 숫자들은 아주 세밀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세와 같이 친히 그 사건을 주관하고 목격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③ 신약에서의 민수기 인용구들은 모두 모세와 연관시켜서 사용하고 있다(행 7:44; 고전 10:1-11; 히 3:5-11).

   ④ 주님께서도 민수기의 모든 내용을 모세가 쓴 것으로 간주하시고 인용하셨다. 광야의 불뱀 사건을 말씀하실 때 뱀을 든 것은 모세인 것으로 확증하셨다. 즉 민수기의 모든 내용을 하나의 실제적 사건으로서 인용하신 것이다(참조, 요 3:14; 비교, 민 2:9).

   결국 내적, 외적으로 민수기를 포함한 오경의 작가는 모세임을 증명하고 있다. 모세는 민수기를 쓰도록 하나님으로부터 필연적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은 모세가 그 모든 사건의 산증인이기 때문이었다.


  III. 기록 목적과 연대


   1. 기록 목적


  민수기의 기록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곧 역사적인 목적, 교훈적 목적, 기독론적 목적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역사적 목적(The historical purpose)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시내 산에서 느보산까지의 유랑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이 여정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이후 제2년 2월 1일부터(참조, 민 1:1) 제40년(참조, 신 1:3) 11월 1일까지의 약 39년간의 광야 생활의 기록이다. 이 기간 동안에 발생했던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설명해 주는 반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성을 보여 준다. 민수기의 내용 속에서 두 무리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한 무리들은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되었던 장년층으로서 이들은 그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 중에서 다 죽게 된다. 민수기의 첫 번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무리들은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장년 남자로만 육십만 삼천오백오십여 명이었다.

   두 번째 무리들은 첫 번 인구 조사시에 20세 미만 되었던 자들로서 광야의 어려운 생활 중에 성장하여 후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다. 이들의 숫자는 두 번째 인구 조사시 20세 이상 장년 남자만 육십만 일천칠백삼십 명이었다. 애굽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었던 이미 성숙한 장년 무리들은 결국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다 멸망을 당하고 오직 광야의 유랑 속에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만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불신앙과 불순종은 약속의 기업을 받을 수 없음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2) 교훈적 목적(Doctrinal purpose)

   민수기에는 몇 가지의 중요한 교훈적 가르침이 있는데 그것은 첫 번째로 광야의 모든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적인 인도하심에 대해 말해 준다. 청년, 장년들만 60만이 되는 엄청난 인원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게 되는데 그들이 가는 광야의 앞길에 대해서 그들은 아무런 사전 정보나 지식이 없이 나왔고, 광야의 생활에 대비한 준비도 없었다. 이들은 애굽에서의 유월절 사건 이후로 속히 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그들은 광야에서 떼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서 그들을 따가운 햇빛에서 보호하시며 앞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서 그들의 앞을 밝히시며 광야의 추위로부터 보호하셨다. 이것은 모든 택한 백성들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를 보여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서도 계속 불평과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을 보여 주며 그들의 그러한 민족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들에게 간섭하시고 지배하시며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야 마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구원의 섭리를 가르쳐 준다. 비록 하나님께 대해 범죄 한 백성일지라도 끝까지 그의 약속을 이루시는 구원의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에 나아가는 길에는 지름길이 없음을 보여 준다.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이방의 풍속과 생각, 습관 등은 광야의 어려움과 연단을 통해서 다 사라지게 하시고 그러한 이방의 생활에 젖어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무리들은 광야에서 모두 처벌하시고 오직 광야에서 새롭게 성장한 새로운 세대들만이 그 모든 연단을 거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된 약속을 받기 전에 필연적으로 시련과 연단이 따름을 나타내고 있다. 오직 신앙과 순종만이 그 길로 들어가는 유일한 조건임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3) 기독론적 목적(Christological purpose)

   다른 오경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수기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 다섯 가지를 들어 본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목이 갈해서 불평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반석을 지팡이로 쳐서 물을 내게 해서 온 백성으로 마시게 했는데 사도 바울은 이 반석이 곧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말했다(참조, 고전 10:4). 성경에서 반석은 태양 빛으로부터 그늘을 제공해 주는 피난처로 묘사되기도 하며(참조, 사 32:2) 신앙의 튼튼한 기초로서 비유하기도 했고(참조, 마 7:24, 25) 거치는 돌로서 표현되기도 하는데(참조, 사 8:14)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특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표현들이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석의 물을 마시었 듯이 성도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시고 신약의 교회에 신앙의 기초가 되시며(참조, 엡 2:20) 성도들의 모든 환난에서의 견고한 피난처가 되시고 안 믿는 자들에게는 거치는 돌이 되심을 나타내는 것이다(참조, 롬 9:33). 두 번째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으로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보내어서 백성들을 물어 죽게 하셨는데 이때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들어서 누구든지 불뱀에 물린 자는 그 놋뱀을 쳐다보면 살게 하셨다. 이 사건을 주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높이 들리어 죽는 것에 비유하셨다(참조, 요 3:14). 즉 하나님을 불평하고 그 죄악으로 불뱀에 물려 죽을 수밖에 없던 백성들과 같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놋뱀이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으로 높이 들렸듯이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모든 사람들이 그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하시리라는 상징적인 말씀이셨다. 세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진행하는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는데 이 만나는 곧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주님께서 친히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양식으로 말씀하셨다(참조, 요6:32). 광야에서의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적인 배고픔을 해결하여 그들로 하여금 그 모든 여정의 길을 갈 수 있는 힘을 주었듯이 참된 영의 양식이 되시는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으로 그 영혼을 먹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네 번째는 발락이 예언자 발람을 불러서 이스라엘을 저주케 할 때 그의 예언 속에 야곱에게서 '한 별'과 '한 홀'이 나올 것을 예언했는데 이것은 이 땅에 구원의 별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의 영원한 통치에 관한 예언이었다. '별'이나 '홀'은 왕권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이었느냐 인데 장래의 실제적인 사건으로서는 다윗을 시사하며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참조, 마 2:2; 히 1:8; 계 2:27; 12:5; 19:5) (Walter Riggans)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였듯이 모든 성도의 목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예표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에서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곧 장막을 걷고 진행하고, 구름이 멈추면 그 밑에 성막을 치고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치고 머물렀듯이 주님께서는 친히 모든 성도들의 앞길을 인도하는 목자로서 자신을 비유하셨다(참조, 요 10:11).


   2. 기록 연대


  다른 오경의 각 전들과 마찬가지로 민수기가 언제 쓰여졌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다. 그러나 오경이 모세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민수기가 기록된 연대를 추정할 수는 있다. 왜냐하면 민수기가 모세에 의한 것이라면 적어도 그의 생존시에 이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수기의 사건이 출애굽 이후 13개월이 되던 때부터 40년의 방랑 생활이 끝나는 기간 동안 일어난 것들이므로 이 기간이 다 지나기까지는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명기 31:24의 기록으로 보아서 모세가 죽기 전 어느 때에 다른 오경과 아울러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적어도 모세가 죽기 전인 B.C. 1405년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이다(Geisler).


   3. 기록 대상


  민수기의 모든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랑하는 동안에 생겼던 역사적인 것들로서 결코 반복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제 광야의 어려운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세대들에게는 지나간 날의 모든 사건들이 한낱 과거의 것으로서 잊혀지기 쉬웠다. 또한 가나안 땅에 정착해서도 그들은 과거에 그들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불순종에 빠지며 이웃에 근접하고 있는 이방의 우상 숭배와 풍습에 빠지기 쉬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울러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체험치 못하고 태어나게 되는 후세들에게 그들 선조의 광야 40년의 기간을 통한 역사를 거울삼게 하기 위해 기록케 하신 것이다. 즉 순종과 불신앙의 과거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는가를 가나안이란 새로운 무대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의 백성들과 그 새 무대에서 출생하는 새 세대를 대상으로 하여 기록된 것이다.


   제2부 민수기의 내용 구조


  I. 민수기의 구조


   민수기의 사건별 내용이 그 배경에 따라서 셋으로 나누어지는데 처음 인구의 계수를 시작한 시내 산에서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는 1-9장까지 첫 무대와, 모압으로 향해 하는 동안의 사건을 그리고 있는 10:11절에서 21:4절까지의 두 번째 무대, 또한 그 이후 모압에서의 세 번째 무대로 나누어진다. 민수기의 전체 구조를 이 세 배경을 근거로 하여 장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 도표와 같다(참조, 민수기 도표1)


  II. 민수기의 주제별 내용


   1. 인구 조사(민 1장-4장, 26장)


  민수기의 인구 조사는 두 차례에 걸쳐서 실시되었는데 그것은 전체적인 인구 조사가 아니고 군사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즉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가 싸울 수 있는 전투 능력을 가진 자들로서 계수되어졌다. 이 계수를 위해서 각 지파의 두령이 모세와 함께 해당 지파의 인원을 가족과 종족을 따라 조사하게 되었다. 첫 번 인구 조사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1년 2개월째 접어드는 때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성막을 만든 지 일 년째 되는 해였다. 두 번째 인구 계수는 모압 평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때도 역시 20세 이상의 남자로서 전투 능력이 있는 자들로 계수되었다. 이때의 인구 계수에 들었던 자들은 후에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로서 40여 년 동안의 광야 생활 중에서 성장한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첫 번 인구 계수와 두 번째 계수와의 비교는 어느 지파의 인구가 증감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각 지파별 인구의 변동 사항은 다음 도표와 같다(참조, 민수기 도표2)


   2. 여행을 위한 최종적 교훈(민 5:1-10:10).


  민수기 1장에서 4장까지는 행군을 위한 기본적이며 조직적인 성격의 준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1장에서는 가나안 정복과 여행시의 전투에 대비한 군대 편성을 위해서 인구 계수가 이루어지고 2장에서는 각 지파들이 행군시 지켜야 할 진의 위치가 지정되었다. 3장에서는 하나님의 성막을 돌봐야 할 레위인들에 대한 계수가 이루어지고 4장은 레위 지파의 세 종족이 진행시 담당해야 할 성막의 부분을 규정한다. 이러한 것들은 거의 250만에 이르는 엄청난 인구가 움직이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들이었으나 이런 조직적인 것만으로 여행의 준비가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여행 경로 중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에 대한 개인적이며 종교적인 지침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말씀과 준비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은 이미 이전에 주어진 율법 규정들이었으나 다시 한 번 간략하게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그 내용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이 여덟 가지로 나누어진다.

   ① 행군 중에 전염병이나 피부 질환 등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오염되지 않도록 모든 부정한 것들을 다 진 밖으로 추방시켜야 한다(참조, 민 5:1-4).

   ② 행진할 동안에 생기는 이웃과의 문제에 대해서 그 해결 기준을 제시한다. 즉 이웃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는 그 오분의 일을 더해서 보상해야 하며 아내의 부정에 대한 의심으로 가정의 불화가 생겼을 때는 '의심의 소제'를 드려 판단해야 한다(참조, 민 5:5-31).

   ③ 자신을 성결케 하는 '나실인의 서원'을 했을 때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셔서는 안 되며 자신의 머리를 잘라서도 안 되고 시체에 의해 부정을 타서도 안 되며 그 기간이 끝나면 지정된 재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한다(참조, 민 6:1-27).

   ④ 성막과 모든 기구가 하나님께 성별된 후 백성들은 그것들을 운반할 수 있도록 운반차를 드리고 제단 봉헌의 예물을 드렸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막에 대한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참조, 민 7:1-88).

   ⑤ 성막에 대한 실제적인 준비와 아울러 그곳에서 일할 레위인들에 대한 준비도 필요했다. 앞에서는 단지 그들에 대한 인원 계수와 직무만이 주어졌으나 이제는 그들이 실질적으로 성막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성결 예식이 실행되었다. 즉, 레위인의 정화 예식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은 이미 지정되었던 그들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참조, 민 7:89, 8:26).

   ⑥ 유월절을 이미 주어진 규정에 따라 지킴으로써 앞으로도 계속 이 절기가 규정대로 준수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참조, 민 9:14).

   ⑦ 시내광야까지 오는 동안에 그들을 인도하였던 불기둥과 구름기둥에 대한 것을 다시 반복하여 서술함으로써 이제 시작되는 그들의 행진이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야 함을 알게 한다. 즉 성막의 구름이 떠오르면 그들은 각자의 장막을 거두고 그 구름을 따라 진행하다가 구름이 멈추면 그 아래 성막을 치고 그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 진을 이루어야 했다(참조, 민 9:15-23).

   ⑧ 행진시의 신속한 명령 하달을 위해서 나팔 신호를 사용하는데 나팔 소리의 차이에 따라서 회중이 성막에 모이기도 하고 진행시의 진의 이동과 전투시 비상에 대비케 했다(참조, 민 10:1-10).


   3. 밀정의 보고와 백성들의 불신(참조, 민 12:16-13:33)


  이스라엘 온 회중이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에 의하여 이제 그들이 들어가야 할 가나안 땅에 대한 정탐을 실시하기 위해 각 지파별로 밀정을 뽑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마지막 시험으로서 이 상황을 사용하신 것이었다. 비록 이때까지의 여러 가지 불만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최종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은 약속의 땅을 상속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 정탐꾼들의 보고는 실로 두려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광야의 생활에 지치고 제대로 전투 능력도 갖추지 못한 이스라엘에게 견고한 성읍을 가지고 윤택한 생활을 해 온 가나안 사람들은, 더구나 체격적으로도 거구인 그들은 도저히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가능한 현상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하신 자신의 약속에 대한 궁극적 신앙을 그들이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시기 원하신 것이다. 12명의 밀정 중에 단지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신앙에 의지한 긍정적인 보고를 했다. 그러나 다른 10명의 밀정들은 절망적이며 부정적인 보고를 했고, 모든 백성들은 그들의 보고를 믿게 되었다. 그들은 과거의 하나님의 약속보다도 현재의 10명의 밀정의 보고에 더 큰 신뢰를 둠으로써 하나님과 그의 구원의 약속을 불신했다. 뿐만 아니라 차라리 다른 지도자를 선출하여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결국 그런 불신앙을 가진,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상 되었던 모든 백성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유랑하다가 죽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선고를 받게 되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40년의 방랑이 끝나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4. 사막에서의 방황(민 15:1-19:22)


  가나안 정탐 이후의 38년에 걸친 기간은 이스라엘 민족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광야 여행은 출애굽 때부터 총 40년에 걸친 기간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방랑의 기간은 약 38년 동안이었다. 민수기의 기록에는 이 전환점이 되는 기간 동안의 역사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단지 율법적 규정만이 재삼 강조되고 있을 뿐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이 슬픈 기간은 회피의 기간이었다. 가나안에 대한 소망을 잊어버린 구세대들은 결국 그들의 불신앙과 하나님께 대한 대적으로 인해 광야의 시련과 연단 속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약속의 땅을 상속받을 새 세대가 광야 40년의 기간 동안 서서히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광야의 유랑은 이스라엘의 옛 세대가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는 전환기가 되는 기간이었다.


   1) 지리적 위치

   이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크게 후퇴도 전진도 하지 않았다. 단지 가데스와 홍해 사이의 사막 주변을 목적도 없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허송하며 방황하였다(참조, 민14:25). 그들이 이 기간 동안에 방랑하며 진을 쳤던 장소들은 민 33:19-36 사이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의 기간이 거의 끝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다시 가데스로 돌아왔으며(참조, 20:1) 이때부터 서서히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2) 인구의 변동

   이 기간 동안에 중요한 인구의 변동이 일어났다. 처음 애굽을 나와서 실시한 첫 번 인구 계수 때 20세 이상 되었던 장년 남자들 60만 명이 이 기간 동안에 다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어떤 이는 염병으로, 어떤 이들은 칼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죽어서 광야에 묻히게 되었다(민 16:49; 신 2:14, 15). 반면에 20살 이하의 어린이와 소년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하여 광야의 유랑 종국에는 아브라함의 '씨'인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가 출현하게 되었다.


   3) 영적인 상황

   영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 시대는 소망의 새로운 씨앗이 뿌려진 때였다. 이들의 성장과 함께 처음의 하나님의 약속이 재확인되었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의 입성을 위한 준비가 새로이 진행되었다. 모세와 아론에 대한 그들의 지도적 위치에 대한 확인이 다시금 이루어졌고 레위인에 대한 직무가 재차 강조되었다.


   5. 약속의 땅 관문에서(민 22:2-36:1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약속의 땅 관문에 이르게 되었다. 지리적으로 그 관문은 민 22:1에서 "모압 평지,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입성의 시기가 찰 때까지 그들의 진행은 저지되었다. 그것은 가나안 입성이란 중요한 사건이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에 의해 되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그들을 저지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 문제들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깨닫게 되었다(참조, 민 22:2-25:18).

   이제 이 모든 관문을 통과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점령을 위한 구체적 준비 작업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가나안 진입을 위한 군사의 재편성을 위한 제2차 인구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인구 조사에는 제1차 때 계수되었던 구세대들은 하나도 포함되지 못하였고 새로운 세대들로 구성된 새로운 군대 조직이었다. 군대의 편성과 아울러 요단강을 건너가기 위한 전략과 그 땅을 정복한 후의 땅의 분포도가 정해졌다. 또한 하나님의 율법이 다시 되풀이되어서 가나안 점령 이후에도 준수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모세의 뒤를 이어 그들을 인도할 새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의 후계자로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지정해 주심으로써 가나안 정복의 모든 준비는 일단락되어졌다. 이 모든 준비가 끝나자 모세는 그의 최후 전에 이미 시내산에서 주어졌던 여러 가지 율법의 제 규정을 다시 반복한다. 이것은 곧바로 신명기의 내용과 연결되는 것들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성실한 지도자며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모세는 신 광야 가데스에서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는 일에 그만 혈기를 부림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의 모든 책임을 완수하고 새로운 세대의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인계하고 그의 생을 마치게 되었다. 완악하고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그는 신명기의 기록과 같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순종의 사람으로서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때의 이스라엘의 위치는 여리고 근처 요단 강가 모압 평지였었다(참조, 민 36:13).


  III. 민수기의 중심 내용 요약


   민수기의 내용은 크게 두 세대의 비교로써 구성된다. 한 세대는 시내산에서 새로운 행진을 위해 실시되었던 인구 계수시에 20세 이상 되었던 자들로서 광야의 시련과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불신앙으로 광야를 유리하다가 멸망하고 마는 '구세대'들이며, 또한 세대는 첫 번 인구 계수시에 20세 이하였던 자들로서 광야의 시련 속에서 성장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새로운 세대'들이다. 이 두 세대의 비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된 땅은 오직 순종과 믿음을 통해서만이 주어짐을 민수기의 전체 내용은 보여 주고 있다(참조, 민수기 도표3)


  IV. 이스라엘의 정지시와 행진시의 진 배치


   1. 정지시의 진 배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행을 멈추어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정하신 배치에 따라서 진을 쳐야 했다. 가운데 성막을 중심으로 하여서 성막 사면에 레위 지파와 모세와 아론의 자손들이 먼저 진을 쳐서 성막을 보호하고 외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리고 열두 지파가 그 주변을 둘러서 진을 치는데 특별히 유다 지파가 동방 해 돋는 편에 진을 침으로써 다른 모든 지파보다 위치적인 수위권을 차지했다. 이는 야곱의 유언적 예언에 있어서의 그 비중과 메시아의 선조로서의 위치 때문이었다(참조, 창 49:10). 남쪽에는 르우벤 지파가 그 선두에 진을 가지고 배치되고 서쪽은 에브라임 지파가, 북쪽에는 단지파가 각각 선두에 진을 치게 된다(참조, 민수기 도표4)


   2. 행진시의 진 배치도


  성막에서 구름이 떠오르는 신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거두고 전진하게 되는데 이때의 배열 순서는 제일 앞에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 중에서 나온 자들이 법궤를 메고 진행하고, 그 뒤로 우편에 기를 든 유다 지파와 잇사갈, 스불론 지파가 선두에 진행한다. 바로 그 뒤를 성막의 휘장과 덮개 등의 부품을 레위 지파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들이 운반하고 그 뒤에 르우벤과 시므온, 갓 지파가 따르게 된다. 그 뒤로 레위 지파 고핫 자손들이 성막의 기구들인 제단, 물두멍, 향단, 진설상, 촛대 등을 운반하고 나머지 여섯 지파가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참조 민수기 도표5).


   V. 오경과 민수기의 내용 비교


   모세 오경은 따로따로 별개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내용을 순차적으로 다루고 있다. 비록 여러 곳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들을 동시에 다르고 있긴 하지만 그 주된 줄거리는 완벽한 통일성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오경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전체적인 내용의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다음의 도표는 오경의 전체적 흐름과 서로의 상관성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준다(참조, 민수기 도표6).


   제3부 민수기의 제(諸) 문제


   I. 계수(計數)의 숫자에 대한 문제


   이성적 방법만을 신학의 연구에 사용하는 비평학자들은 민수기에 나타난 통계 수자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산정된 통계'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수기의 인원 계수에서 나타난 그러한 통계들은 후대의 제사장들에 의해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보통 상식의 것'아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불가능한 것들을 달리 해석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한낱 믿을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또 하나의 믿을 수 없는 억측을 만들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이러한 몇 가지의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천을 나타내는 <#l,a, ; 엘레프>는 단순히 '씨족이나 가족'을 나타낼 뿐이다.


이들 자유주의 학자들은 민수기에 나타난 수자<#l,a, ; 엘레프>를 '천'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가족이나 씨족이란 단어로 해석하려고 한다. 즉, 민 1:21의 르우벤 지파의 경우를 46,500명으로 보지 않고 46가족으로 보려는 것이다. 물론 구약에서 '엘레프'가 가족이나 씨족을 의미하는 경우가 있음은 사실이다. 삿 6:15을 보면 기드온이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라는 말을 하는데 이때의 '집'이란 말이 '엘레프'로서 가족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민수기에서 인구 계수에 사용된 '엘레프'는 수가 1,000을 의미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 이유는 1,000보다 적은 숫자의 단위인 <t/ame ; 메오트> (100을 나타내는 숫자)가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과 같이 '엘리프'를 가족 단위를 나타낸다고 할 때 한 가족에서 군 복무가 가능한 수자를 넷이나 다섯으로 본다고 하면 100을 나타내는 숫자 '메오트'는 그보다 훨씬 작은 수자를 나타낸다고 보아야 되는데 이러한 생각은 본문의 문맥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억측에 불과하게 된다. 즉 민 1:46의 이스라엘 군대의 총계를 603,550명이 아닌 603가족이라면 한 가족을 5명씩 계산해서 3,015명에 불과한데 이런 작은 인원에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숫자가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고 우려를 표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참조, 출 1:9). 다른 고대의 기록을 보면 애굽 18대 왕조 때의 하 이집트(Lower Egypt)의 인구가 7백만이었다고 하는데 이런 엄청난 인구가 삼천여 명의 인구에 근심을 품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발상이다.


   2. 250만여 명 대인구가 광야에서 생존해 나갈 수가 없다.


   민수기에 기록된 통계에 의하면 군에 복역할 수 있는 연령의 사람들만 약 60만이었다. 그렇다면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함해서 약 250만여 명의 인구가 출애굽해서 나온 셈이다. 이렇게 많은 인구가 광야에서 생활해 나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비평적인 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므로 민수기의 인구 통계는 처음부터 그릇된 기록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출애굽 사건에 기록된 전체 이스라엘의 이동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불가능한 것임을 솔직히 시인해야 한다. 그러나 모세의 역사를 기록한 오경이나 후기의 히브리 문헌들이 증거하듯이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과 광야 여행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한 것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의 음식은 하나님께서 보낸 만나였으며, 그들이 마신 물은 반석에서 나온 신기한 것들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성경의 다른 기적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것일 뿐 다른 어떤 이성적 설명도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적적인 사건을 인간의 이성에 맞지 않는다고 수정을 가하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II. 문서 비평에 대한 문제


   한때 다른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민수기는 모세에 의해 저작된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으나 문서 비평이 대두하게 되면서부터 모세 저작설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문서 비평의 극단적인 형태에 있어서는 민수기의 모든 역사상까지도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자유주의 학자들은 민수기가 문학적 통일성을 가진 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잡다한 자료들이 어설프게 설정된 연대기적 구조 속에 끼어서 작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민수기를 포함한 오경의 현재의 모습은 모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구약 역사의 마지막 시기인 에스라 때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 중에 네 가지의 독립된 문서들이 있었는데 이 문서들은 여호와(Jehovah), 혹은 유다(Judah)를 나타내는 B.C. 850년경의 J문서와 엘로힘(Elohim), 혹은 에브라임(Ephraim)을 나타내는 B.C. 750년경의 E문서, 신명기를 나타내는 B.C. 621년경의 D문서, 그리고 제사 직을 나타내는 B.C. 444년경의 문서들로서 후대에 와서 J와 E문서가 결합되고 그 다음으로 D문서가 덧붙여지고 마지막으로 P문서가 JED문서 안에 편집되어 들어가서 전체적으로 모세 오경을 율법적이고 제의적인 성격을 띠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수기서도 이러한 문서들의 혼합에 의한 여러 가지 자료가 섞여서 구성되어 내려오다가 후대의 개정과 가필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로서 민수기의 율법적인 규례를 출애굽기나 레위기의 그것과 상이한 것을 지적하는데 예를 들면 레 4:2-12의 내용과 민 15:22-31은 같은 율법 규례를 다루고 있으나 민수기에는 레위기에 없는 소제가 첨가되어 있는데 이것은 후대의 변형된 제사법이 반영된 것이며 민 21:14의 '여호와의 전쟁기'에 대한 기록은 후대의 편집자가 그 정확한 전투 장소를 전달하기 위해서 후기의 자료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민 32:34-42의 내용은 시간적으로 가나안 정착 시대의 것임으로 후에 가필된 것이라 한다. 특별히 박람의 예언시는 B.C. 13, 12세기의 히브리 문체로 되어 있으므로 민수기가 모세 시대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신앙 자세에 입각한 것이 아니며, 또한 모세 오경이 모세에 의해 쓰여졌다고 하는 정통적 주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에서 지적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한 비평적인 학자들의 주장은 어느 정도 논리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서 민수기의 역사성과 모세 저작설을 부인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욱 불합리한 주장이 될 뿐이다. 민수기의 모든 내용이 모세에 의해 저술되었으며 역사성을 가진 사실적 기록이란 정통적인 주장은 유명한 구약 학자 에드워드 J 영의 '오경이 모세의 저자이란 말의 정의'에서 충분히 설명되어질 수 있다.

   "모세가 오경의 저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가 필연적으로 한마디도 빠짐없이 스스로 썼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주장은 불합리한 것일 뿐이다. 하무라비(Hammurabi)는 그의 유명한 법전의 저자였으나 그 자신의 손으로 그 돌비를 새긴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산상 수훈의 저자시지만 친히 주님께서 그 기록을 남긴 것은 아니다. 밀턴 역시도 '실낙원'의 저자지만 그것을 그가 다 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거룩한 성경의 증거는 우리로 하여금 오경의 근본적, 실제적인 저자가 모세임을 믿게 해준다. 오경에 있어서도 아스트뤽(Astruc)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미 기존에 있던 문서의 어떤 부분을 사용한 것만은 사실이며, 또한 후대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다소의 가필과 개정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경은 본질적으로 모세의 창작인 것이다." 보수주의 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윌슨(Willson)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오경은 지금 그대로 역사적인 것이며 모세 시대의 것이다. 후세의 편집자들에 의하여 개정되고 평정되었다 해도 그 가필 역시 영감된 것으로 다른 부분과 같이 참된 것이다.'


출처 : 기독교통신신학교
글쓴이 : 신학출판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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