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치유" 요약
「무의식의 치유」 요약
제 1 장 머리말
1. 신앙치료란 무엇인가? - 신앙도움과 삶의 도움의 개념 설명
신앙치료의 핵심은 “복음의 생동적 내면화”이다. 즉, 듣고 받아들인 말씀이 영의 내적 공간인 마음속에 내면화되고, 다시 외적변화를 생활 속에서 일으키는 것이다. 즉, 치료의 과정에서 “내면화 사건”이 이루어지면, 실질적 결과로 외적인 진행 단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치료의 과정에는 내적저항(방어)의 어려움들이 따른다. 복음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내적저항도 일으키는 것이다. 욥도 오랜 “믿음저항” 후에 마음 깊은 곳에서 복음의 심층작용이 일어난 것이다.(욥 42:1-6)
2. 신앙의 실제, 선포의 실제, 교회생활, 신앙치료는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다!
잘못된 신앙생활은 잘못된 선포생활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음을 듣는 것만으로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고, 들은 것이 신앙생활에서 변화된 실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성경 속의 인간상 - 신앙치료에는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이것은 성경적 인간학이 제시하는 것인데,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왔고, 다시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인간의 결정적인 근원과 목표를 성경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2) 회개의 개념 - 회개는 믿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더 강하게 묶어 놓는 신앙경험이다. 이 과정이 신앙내용의 “내면화”인데, 객관적 신앙내용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관계의 실제로서 신뢰를 가능하게 한다. 신뢰관계는 성장과정과 성숙과정을 필요로 하고, 이 과정에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위기의 개념 - 신앙치료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질문 후에 위기에 대한 영적 원인들을 찾게 된다. 동시에 인간이 가진 무의식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오랜 세월에 걸친 삶의 위기는 자주 실질적인 치유에 방해가 되는 잘못된 태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인간 속에 있는 내적인 저항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4) 삶의 간증 - 사람들은 삶의 사적인 것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적치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이런 공개적 고백 후에 거절기도와 자신을 드리는 기도를 함으로, 점차적으로 자유함이 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이란 병이 생기게 하는 기억들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나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5) 신앙치료- 저항들! 정신치료 - 저항들! - 신앙치료에서 생기는 저항이란 죄의 발견, 잘못된 생활태도의 발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저항을 말한다. 즉, 변화를 위해서 필수적이고 고통스러운 진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부를 뜻한다. 또한 정신치료에 대한 내면의 거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저항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가진 관통하는 능력을 거부하는 내적 저항들을 인식하고 이것과 직면하고자 이것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 2 장 주제로의 입문
1. 무의식의 치유 - 무슨 뜻인가?
무의식의 개념은 심층인격이라는 관점을 포함하는데, 정신생활의 극히 작은 부분이 수면 위에 떠있어 보이는 것이 의식이며, 수면 밑의 본체로서 도달할 수 없고 자유처분이 불가능한 부분을 심층인격이라 한다.(프로이드의 빙산 그림) 이것은 “마음이 가진 것들”, “숨겨져 있는 영혼”, “숨겨진 마음” 등으로 성경에서도 언급된다.
2. 무의식의 과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경험, 체험, 인식, 감정들이 실질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언젠가 의식적이었던 것이 어떤 특정한 이유로 무의식화 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성격적 특질의 뿌리를 신앙치료나 정신치료를 통해서 발견해 내지 못한다면 이런 성격을 결정짓는 특징들은 변화되지 않는다.
3. 예수의 십자가 - 신성과 인성이 하나가 되는 표적과 상징
깊은 치유경험을 하기 원한다면, 무의식에서 찾아내는 모든 종류의 상처와 상심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맞닥뜨려야만 한다. 이것은 단 한번의 사건으로 감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사건이 인간의 주관적 경험영역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 치유경험을 “기억의 치유”라고 말한다.
4. 경험과 계시의 동반성
신앙치료자의 경험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그에게 전달하는 말씀의 계시능력이 파고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다. 신앙치료자는 이 계시능력을 환자의 상황에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의 상황이 하나님의 계시와 만나게 되면 이것은 기억의 치유로 진행하게 된다.
5. 정신치료와 신앙치료의 각기 다른 진행에 대한 보충 설명
정신치료와 신앙치료는 수평적이며 수직적 관계차원에 있다. 수평적인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영역과 수직적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영역인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 안에서 수평적(대인관계적), 수직적(인간-하나님)인 관계영역으로 표현된다. 이런 한계경험을 뛰어 넘는 것은 계시가 올 때 이루어진다. 계시는 신적인 것이 인간의 경험세계 안으로 침투하는 사건이다. 이런 수평적인 두 영역의 만남에서 정신치료와 신앙치료가 만나고, 삶의 도움과 신앙적 도움이 만나게 된다.
6. 선택 결정인 구세주에 대한 믿음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하지 않은 것을 내면화하는 것이고, 현재화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계시에 근거한 자유의 행위로 그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믿음은 새 창조이다! 믿음은 결코 발전만이 아니다. 믿음이 가지는 자리는 경험과 계시 사이에 있다. 믿음은 인간 발달의 수평적 면에서 이루어지는 경험과 계시를 십자가의 교차지점 안에서 연결하고 연합시키는 각각의 자유로운 행동인 것이다. 이로써 계시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리고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어가는 그런 존재와 근원적 신뢰관계를 얻음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
제 3 장 신앙치료 : 전환을 위한 격려
1. 성경의 창조 기사와 타락 이야기 - 신앙치료 조치의 기초에 대한 인류학적 관점 몇 가지
1) 우주와 인간의 창조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과 비슷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부름 받고 직접적으로 지속적인 교제를 갖도록 부름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동반자로 원하셨다. 이런 인간의 존재는 원래 자유 안에 있는 존재이며, 이 자유로운 존재는 하나님과의 의존관계 안에 있다. 사람의 이름이자 얼굴이 바로 이 자유의 표시였다.
2) 타락 사건 -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인식해야 했지만, 죄악으로 타락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 관계 안에 있어야 하는 자유제안을 무시한 것 때문이다. 자유제안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양자택일 제안은 버려졌다.
3) 인류타락의 결과 - 몇몇 인류학적 관점 - 사람이 자유제안을 저버린 것은 근원적 불신의 씨앗을 뿌린 결과였고, 동시에 불순종이라는 의지의 결정을 가져왔고, 이것의 최종 결과는 부끄러움과 책임 그리고 두려움이 된다. 그러므로 원죄란 얻어진 “인식”으로, 이 인식은 원래 하나님 한 분에게만 고유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에게 주어지게 된 것이다.
4) 인류타락의 다른 결과 등 -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죄의식에 대한 방어
타락에서 나타나는 책임 전가의 기본 법칙은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결국에는 하나님에게 미루는 것으로, 이 방식은 성경의 뒤따르는 장들에서 새롭게 변형되어 계속해서 다시 나타난다. 책임은 방어되고 거부되어야만 한다. 방어해야만 하는 이유는 인간이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새로운 언약 속에 있다.
2. 신앙치료의 시작 - 생명나무를 다시 얻음 :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특질!
1) 돌아온 탕자 - 낙원 밖의 아담
탕자의 두려움은 파국의 신호로 깊은 구원의 필요성을 알려준다. 수치는 모순의 신호로 신적인 아버지의 의지에 대응한다. 탕자의 모습 속에 보이는 낙원 밖의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잘못이 있음을 드러내 보이며 인정하고 후회한다. 즉 하나님에 대한 깊고 본질적이며 무의식적 “분리느낌”인 부끄러움과 잘못 그리고 두려움은 정확하든 않든 간에 인간의 깊은 내면 속에 인식되고 인정되어야 된다.
2) 신학적 보론(補論) 1 - 율법과 복음(롬 3-5)
절대적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의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심을 내용으로 하는 옛 언약의 율법은 롬 3:20에 따르면 죄에 대한 깊고 광범위한 인식을 일깨우는 의미를 갖는다. 탕자의 상황은 무의식과 대면하는 상황이고 인간이 자신의 황폐함과 대면함이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3) 야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큰 죄인” - 낙원 밖의 하와
예수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했을 때, 여인은 놀랐지만 삶의 상황에 대한 직면으로서 호기심이 일어난다. 여기에서도 실질적인 자기인식과 올바른 죄의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 수치심과 죄의식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이 깨우쳐져야 한다. 그녀의 삶의 비참함에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내리며, 끝없이 많이 용서하고자 함이 드러난다. 이렇게 성경 속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의식적 실제의 비밀스러운 심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인 “두 세계 사이의 방랑자”이다.
4) 낙원의 생명나무 -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구약과 신야그이 전체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자라는 사실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증거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죄의 소멸 능력이다. 그래서 모든 신앙치료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함이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죄와 비참함과 수많은 이름으로 된 가장 깊은 곳의 허약함이 죽게 된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짊어졌다. 예수는 죄 범한 세상을 짊어진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나타난다.
5) 신학적 보론 2 - 그리스도 대속적 희생과 이것의 신앙치료적 의미
신앙치료를 시작할 때 주의할 것은 자신의 걱정과 부담, 문제점들과 기쁨, 그리고 질문을 들고 신앙치료에서 해결하려고 오는 자연인이 구속의 차원에 그 마음이 폭넓게 열려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를 찾게 되면 현재뿐만이 아니라 지난날의 삶도 새롭게 변하게 된다. 자유롭게 된 삶이라는 기본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치료하는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기본갈등이라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향하게 하는 기도이다. 이 갈등은 대화 중에 정확하게 인식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 후에 기도를 통해서 예수 안에 있는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구원의 기본 능력들이 작용하는데, 이때는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이 능력들의 활동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6) 신학적 보론 3 - 거절, 양도, 연결 그리고 여는 기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제공하시는 화해를 구체적으로 받는 것은 기도 중에 일어난다. 이는 거절기도(단절기도)와 양도기도(헌신기도)인데, 죄의 종살이에서 은혜의 자녀로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거절기도는 과거로부터 인식되고 이제 다시 체험되는 기억들, 현재의 실질적인 얽매임들, 인간 앞에서의 책임감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현재의 얽매임, 문제들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야 한다.
양도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며 그에게 짐이 되는 기억들과 죄의 모든 것을 자백한 사람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삶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채워진 새로운 충만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기도를 통해서 사람은 실제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 된다.
7) 기도는 구원사건의 현재화와 확인 그리고 내면화이다
현재화 작업이란 과거로부터 유래하는 고통스러운 상처, 괴로움, 실망, 이것들로 인해 받게 된 모든 “자기중심적 상처(나르시스적 상처)”들을 긴장이 해소되고 경련이 완화되는 신체적-정신적 공간 안에서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을 말한다. 방법적으로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나 또는 혼자서 조용한 가운데에 할 수 있다.
또한 내면화 작업은 현재화 작업이 반복됨으로 이루어지는데, 진실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인격이 또 다른 진실인 인격인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작업들의 표출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두 인격 사이의 자유행동이고 , 이로써 두 인격 사이의 실제관계가 표현된다.
그리고 이 확인이 반복됨으로 해서-그의 존재와 그의 희생-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힘을 믿게 되고 그리고 이 권능을 내면화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통의 사상인데, 이것은 바로 여기와 지금 이 자리에서 두 인격간의 삶의 교환이 일어나는 것, 즉 몸 그리고 영과 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연결된 전존재 사이에 삶의 교환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8) 기도를 위한 들음의 의미
현재화 작업과 확인작업이 성경말씀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중요하고도 가능하다. 묵상기도를 통해서 성경 문단을 읽고 듣는 것을 통해서 현재화 작업과 내면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9) 자신의 기도문을 발견해보라
현재화 작업과 내면화 작업으로서의 묵상기도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지고 비슷하게 시도할 수 있고, 각기 다르게 묵상 방법으로 할 수도 있다. 각 사람마다 주님에 대한 자기만의 언어와 자기만의 인식 그리고 또한 자기만의 비밀이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관계를 가능하게 하려면 이런 언어는 연습되고 노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더불어 내 삶 속에서 자라나고 느껴지는 예수와의 현재적 동시성의 이루어짐이다.
10) 신학적 보론 4 - 인간의 죽음과 하나님의 죽음에 대하여
이것은 창조로 비롯되었으나 그 목적은 인간의 죽음인 죽음의 저주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이 죽음의 저주는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죽음을 통하여 해결된다. 죄에 대한 저주의 표현인 타락한 창조물이 속한 죽음의 이런 세력 안으로 그리스도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으로, 하나님의 죽음의 사건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무덤 속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무덤이 될 수 없고, 다만 우리의 무덤, 곧 인간의 무덤일 뿐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과 연합하셨다. 이로써 아담의 죽음, 그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존재의 죽음이었던 아담이 죽은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무덤인 것이다.(롬 5:12-21)
1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의 죽음이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며, 자연적 인간의 죽음이고, 인류 타락 이후에 모든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죽음에 대한 죽음이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이 마지막 죽음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다.
3. 신앙치료의 심화 - 방어에 대한 극복
신앙치료가 심연 깊이 파고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늘 새롭게 다시 드러나게 됨을 보여 준다. 이런 단계적인 진행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넘기는” 단계적 발전과 관계경험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런 과정에 반대하는 저항들, 방어의 특유한 종류로 보편적으로 치료의 진행에 거스르는 저항들이 극복되어야 한다.
믿음과 자유 - 믿은 이들의 긴장관계
의식적인 믿음의 헌신적 초기 단계는 그 다음 심화단계들로 가게 된다. 여기서는 내적인 매임을 불러일으키고, 구원을 거부하는 인간의 책략인 신적인 것을 거부하는 저항이 단계들마다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으로 헌신의 깊은 단계를 격려한다. “너희는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 8:32-33)
4. “하늘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 신약의 공동체 이해에 대한 신앙치료적 결론들
하나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가 세상의 것과 타락한 피조물들보다 더 오래 존속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존재의 심연에서 일어나는 치료과정을 위해서, 즉 무의식의 치료를 위해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신앙의 도움”인 구체적 신앙치료의 관계는 오로지 개인적이어서 결코 대중적일 수 없고, 모임에서 가능하다면 아마 전체 파악이 어렵지 않은 작은 모임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신앙치료의 도움은 원래 “나누고”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하고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 깊어지는 신앙치료의 비유
모세와 파라오의 두 형상은 인간 속에 있는 선과 악의 “주관적 단계”로 구체화될 수 있다. 파라오는 죄의 권력이 주권을 가진 영역을 의미하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의 땅에서 이끌어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믿음의 추종자로 부름 받고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역할이다. 또한 유월절 양의 피와 바닷물의 이 두 모습은 결정적인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죽음의 예언적 앞당김이다.
이처럼 구약의 하나님 말씀의 중심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리스도 사건의 예언적 선취이다.
또한 예수의 비유의 말씀은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의 무의식과 만나는, 즉 인간 영혼의 심층과의 만남을 특징으로 하는 것 같다. 이 비유의 말씀은 무의식적 저항에 의문을 제기하고 내적인 동의를 얻어 가장 깊은 곳의 막힘을 열도록 하는 내적인 예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대한 처음 경험은 쉽게 퇴색하므로 늘 새롭게 입증되어야 하고 그리고 심화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뒤따르는 광야생활의 의미이다.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의 목표는 강화과정과 정화과정인데, 이 광야생활은 백성들의 좌절 속에서 그리고 굶주림과 목마름에서 놀랍게 구원하는 하나님의 개입을 보여 준다. 그리고 광야에서 가난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부유하게 된 믿음의 사람은 점차로 새로이 요단강을 건너는 돌파를 할 만한 준비가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배움의 과정에서 실패한다.
믿음의 초기 경험을 이렇게 관통하여 믿음의 심화 경험으로 감으로써, 깨닫지 못해서 몰랐던 개인의 인성의 심층, 그만의 마음 깊은 곳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불신의 근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이것이 새롭게 얻게 된 신뢰의 근본과의 구원 경험 안으로 연결되어 들어감으로 인해, 믿음의 위기를 통해서 심화된 믿음의 경험들이 거듭해서 새롭게 터져 나올 때만이 가능하게 된다.
6. 성경에서 보는 삶의 증언
족장이자 아들인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영적 성숙의 여러 단계가 아주 잘 나타난다. 야곱은 광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고 그의 믿음을 정화시킨다. 광야에서 야곱은 자신의 심층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결정적 만남 속으로 몰아넣어진다. 하나님은 그가 늘 새로운 두려움들과 헤어짐의 체험들, 그리고 그의 보호받지 못하는 삶에서 빠져나와 자신에게로 그가 주시는 거대하고 막강한 축복으로 향하도록 강요한다. 브니엘은 사기꾼인 야곱을 변화시켜 이스라엘로 하나님과 싸우는 자가 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전환 부르심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 이야기와 인간상호 간의 가족 병리학의 혼란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거기ㅣ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제안이자 구원의 제안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 그리하여 인간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 4 장 산상수훈에 나타난 무의식 치유
회개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리스도인은 무의식의 죄와 맞서 싸우면서 희망의 지평 안에 있는 하늘 왕국의 다스림을 갈망하고 차지하며 그리고 여기 지금 이미 시작되어 있는 그 안에 산다. 그분의 나라인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 영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 안으로 들어와 있다. 산상설교들의 명제들은 어떤 다른 삶의 철학이나 정신치료법보다도 더 깊고 철저하게 “무의식의 치유”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해주고 있는데,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치료과정을 단지 인식하도록 하는 것으로 만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까지로 연결시키는 방식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1. 무의식의 치유는 마음의 돌이킴이다.
깊은 참회와 돌이킴 그리고 회심을 통해서 신적인 것이 인간의 심층인 무의식 안으로 돌입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마음을 여는 사람은 신적인 구원을 깊은 내적인 치유로 경험한다. 이런 치유는 내면 깊이 뚫고 들어가는 치유로, 인자인 하나님 아들의 대리적인 구원행위만을 신뢰하게 한다. 이 치유는 치유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구원희생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신약성서는 인간 존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의롭게 되어서 죄의 소멸이 이루어진 신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어지는 의로움은 동의되어야 한다. 이 동의의 내용은 자력구원과 자기변명의 포기이다.
2. 산상수훈(마 5장 - 7장)의 여덟 가지 명제들
산상설교의 명제들은 인간존재의 새로운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이런 상태를 복이 있다고 표현한다. 이 명제들 속에 각기 다른 형태의, 그러나 공동주제가 이야기되고 있으며, 동시에 거대한 목표를 향하는데, 이것은 물론 이 명제들의 제공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 주는 자”로 파악되고 받아들여질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산상설교는 선동적이다. 산상설교는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며, 한편으로는 평화와 평온을 주고, 다른 면으로는 구원에 대한 깊은 동경을 일깨움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산상설교의 이런 깊은 작용은 감동이나 흥분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명제들은 하나님 주권에 관한 것이고, 하늘나라의 왕권과 인간의 행복에 관한 설명일 뿐 아니라, 인간의 깊은 무의식적 생명에의 동경에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상설교의 희망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새로 얻은 미래관점에서 자라난다. 그러므로 현재의 존재가 치유 받은 존재이면 행복한 존재이다. 존재에 대한 치유는 자신의 무의식을 열어서 치유 받은 사람의 일생에서 나타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팔복의 축복은 이런 나라에서 살기를 결심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소명은 그들의 왕들이 받은 소명과 같은 것이다. 즉 그들은 왕과 제사장이 됨으로 그들의 주님처럼 그렇게 봉사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가 됨으로 이런 왕권의 참여자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동거함으로 부활의 약속이 그들 속에서 성취되고 그 약속의 소유자가 된다.
3. 산상수훈은 모든 가치를 재평가 하도록 한다
산상설교의 말씀선포와 증거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현재에서,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의 미래에서 오는 삶을 새롭게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증표이다. 이런 의미에서 산상설교는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만들어 낸다. 재평가는 “성격의 변화”를 가져오며,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이 명제들의 “내면화”가 기초적으로 이루어짐을 뜻한다. 이런 내면화 과정은 내면화를 가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산상설교를 체험함은 예수를 체험함이다.
4.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속함 - 무의식 치유의 영향
1) 산상수훈의 예수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존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아버지이자 창조자 하나님인 바로 하나님께서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창조와 우리 사이에 살아계시고 다스리신다. 이것은 새로운 삶의 계명으로 우리 사이의 하나님, 우리를 위한 하나님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다.
2) 성령의 능력
① 기도하고 싶은 욕구 - 내재하는 영의 영향중에 제일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싶은 욕구이다. 기도의 능력은 내재하는 영의 영향이다.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내재하는 영의 능력으로부터 배우고 발견해야만 한다.
② 새로운 행동을 위한 능력 - 내재하는 성령이 새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성령의 치유능력과 변화능력은 이런 새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무의식 즉 새로운 마음을 준다.
③ 영의 은사와 열매 - 이는 활동으로 오시는 새로운 은사들과 능력들이다. 이런 은사는 성령의 표현 능력들이며, 모든 자연적인 은사는 이런 영의 영향으로 신적인 은사로 변할 수 있다. 이렇게 기도와 새로운 행동 그리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기본 원소들로 나타난다.
④ 영의 법칙 - 내재하는 성령의 창조능력은 바울이 말한 법칙인(롬 8: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활력을 주는 새로운 존재충동과 삶의 충동에 영향을 준다. 이는 죄와 죽음의 법칙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이런 새로운 거대한 삶의 법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 속에 일어나는 새 창조인 변화된 마음의 표현이다.
⑤ 영과 육 - 바울은 롬 8:6-14에서 “육신적”을 말한다. 이 본문은 계속 새롭게 극복되어야만 하는 영의 작용으로 된 분리를 말한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우리에게 속하는 옛 피조물과, 다른 면으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거하는 동안 우리에게 속하는 새로운 창조물 사이의 특유한 분열 또는 분리를 말한다. 이중적 소속의 이런 사실은 이 형상들의 거대한 중압감 속에서 새 것에 속하는 것이 늘 다시 일어나고 영이 드러남이 있음을 보여준다.
⑥ 영과 말씀 - 성령의 변화능력은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발전되어 간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서 작용하려면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들으며 내면화해야 된다. 영은 말씀을 섬기고, 말씀은 영을 통해서 살아있는 말씀이 된다. 그러나 “영의 신학”과 “말씀신학”이 서로 연결을 짓고 서로 견주는 규율적인 개방성이 있어야만, 신적인 진리가 능력과 생명에 역사하는 “위에서 오는”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한다.
5. 산상수훈의 언어 속에서 “무의식” - 제자들에게 한 구체적인 행동의 가르침들
팔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찾은 사람만이 이런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와서 말을 걸고, 새로운 존재가 될 것과 새로운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한다. 내면의 무의식 깊은 곳에 예수 자신이 새로운 사랑의 법칙으로 내려와 위로가 되고 긍휼히 여김으로 이 새로운 의가 실제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팔복의 적극적인 요구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사실을 믿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이 영이 작용하는 치유의 비밀이다. 즉, 성령을 통하여 내재하는 그리스도가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마음속과 무의식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재는 온전함에 대한 대답이다.
1) 새로운 나라의 부자관계 -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아버지라는 인식은 세상적인 행동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에 매인 이런 의존성으로부터 해방되게 한다. 이것은 구원의 능력이 무의식의 심층에 편입되었을 때만이 영향력이 있는 특유한 법칙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 또는 다시 기억함인데, 이것은 예수가 그룹 옆을 지나서 생명나무로 돌아가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준 것이다. 이런 아버지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인 것을 예수가 새롭게 증거한다.
2) 용서의 준비와 화해준비의 절대성 - 새로운 나라와 그 외의 특성
화해작업과 구분작업의 중요한 관계는 마 6장에서 용서의 준비와 화해의 준비의 절대성으로서 가정과 공동체의 관계영역과 관련된다. 공동체와 공동생활 또는 가정 속에서 이런 화해의 기본 원칙은 동일하다. 특히 복음적 특징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와 은사적 특징을 가긴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모든 구별하는 차이점들과 모든 화해하는 연합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분열에 관한 영적 신앙치료적 견해 아래서 신앙인들의 무의식에다 이런 분열을 못 박고 영속화 시키고자 하는 어둠의 세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질문해야 한다.
3) 금전 관계 - 부유함에 속함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
어디에 너의 보물이 있느냐?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재물이냐 하나님 나라냐? 몸과 생활에 대한 그리고 소유와 재물에 대한 걱정은 아주 뿌리 깊은 이방인적 태도이다.
6.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 - 무의식 치유의 형태
1) 예수는 인격으로서 믿음을 통하여 현재화와 내면화를 원한다 - 그가 없이 산상설교의 진술들은 해석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고 적용이 불가능하다.
신앙치료라는 공식은 짧게 표현하면 예수를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치유가 나를 만나고자 하며, 나를 기다리며 그리고 현재화되어 내면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예수는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라고 말하며, 이것은 그가 성령을 통해서 현재화 되고 내면화 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와 내면화는 사건이요 과정이다
그리스도는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다음 단계로서 가난하고 불행하며 외롭고 굴욕적인 사람들을 향하여 갈 것을 촉구한다. 이렇게 은혜에 사로잡힌 변화를 전달하는 것이 신앙치료자인 것이다. 신앙치료자 역시도 이런 성장과정과 되어짐의 과정 속에 있다. 그는 이렇게 제자로 가는 길의 동반자이며, 안내자이고 그리고 지도자이다.
3) 예수를 관계 속에 끌어들임 - 어둠이 빛으로 변한다
치유경험은 대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치유는 환자의 것이며, 빛은 어둠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그리고 신뢰의 능력은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늘나라의 비밀은 주님을 위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을 위해서,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은 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불쌍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4) 예수를 관계 속에 끌어들임 - 선과 악 속에 있는 분열에 대한 소멸을 의미한다.
창 3:5의 뱀의 약속은 인간 속의 깊은 불화와 내적 자기 분열을 가져왔다. 이것은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악을 행하는 억압이다. 이것은 타락 이후에 성경의 인간상과 대응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하나님과의 분리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의 깊은 의미가 새롭게 된다. 그리스도는 이런 뱀의 머리를 밟았다. 이런 비유 말씀은 인격체인 악의 무력화와 극복을 확인해 주고 있다.
7. 타락한 창조물과의 화해 -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화해 단계
화해와 용서는 차례로 완성된다. 나의 과거와의 화해, 나 자신과의 화해, 그리고 이웃과의 화해는 창조자 하나님과 하는 마지막 화해의 전 단계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새롭게 성령을 통하여 선물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실제 속으로 녹아들어가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타락한 피조물과의 화해가 가진 원래의 목표이다. 즉 그리스도가 분열의 소유자인 타락한 인간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이다.
1) 피조물의 무질서와의 화해
타락한 피조물과의 화해는 또한 피조물의 무질서와의 화해이다. 이런 마지막 화해단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화해은혜의 행위는 다른 창조물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정치-경제-관계의 영역으로, 가장 깊은 곳에서 서로 다투고 있는 다른 삶과 존재로 분열되는 영역들이다.
2) “피조물의 악령적 관점”의 극복
이런 관점은 최종 목표를 위한 화해의 총체적 요구를 보이고 있다. 즉, 이 세상의 주권자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화해의 이런 포괄적인 마지막 차원은 원수를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피조물의 무질서도 긍정하는 심연화해 속에서 상세히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모든 것과의 화해라는 사고는 오로지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미리 택하는 데서 가능하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로서 잠정적 최종목표가 된다. 즉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며, 고통과 비탄이 더 이상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됨으로써 이루어진다.
3) 최종화해 - 하나님은 모든 것 속의 모든 것이 되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이다
계시록에서 마지막 화해관점의 결정적인 진술들이 나온다. 이 세상의 시간 안에 있는 화해하지 못함의 총체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화해자인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그의 전능한 말씀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계 22장)
제 5 장 - 요약과 맺는 말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과정들은 성경적 인류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의식적 과정들을 인식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성경의 명확한 설명이 없는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차원을 반대하는 현저한 저항들이 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요관심사는 무의식을 거부하는 각 개인의 저항 태도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런 저항들을 종종 인용하는데,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눈 있는 사람은 보아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런 요구는 여기에 대해서 귀가 열려서 올바르고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성령만이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 속에서 작용하고 그리고 지배하는 저항들이 극복되어야만 할 때에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 주제와 관련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개념은 “내면화”, “현재화”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실제관계를 거론한다. 이는 예수의 인격의 특성을 “동일화”하는 과정으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존재를 인격으로서 자신의 자화상 속에 받아들이는 즉 내면화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내면화가 된 것의 세력 확장과 믿음의 폭발력 그리고 외면화 능력이 성장하게 된다. 이런 연결은 영의 실제를 통해서 내면화가 된 구원실제가 다시 구원 받지 못한 창조실제로 환원되는 것으로 명확해진다. 즉 내면화의 이런 변화능력을 통해서 늘 다시 새롭게 변화된 이런 사람의 증언을 가지고 구원 받지 못한 피조물을 구원의 영역 속으로 끌어들여야만 된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산상설교의 명제들과 연결하면 팔복의 사람들은 내면이 구원되고 이런 새로운 창조적 인간존재에 대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는 이런 연결로 제자들에게 “해방하는 직무”를 위임하며(막 16:15-18), 이 직무와 연결하여 치유와 구원의 개념은 아주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치유한다”는 동사는 두 개의 명사 “치유”와 “구원”이 물론 관련되며 신체와 영과 혼이 포함되는 총체적인 과정을 뜻한다.
- 이 상 -
제 1 장 머리말
1. 신앙치료란 무엇인가? - 신앙도움과 삶의 도움의 개념 설명
신앙치료의 핵심은 “복음의 생동적 내면화”이다. 즉, 듣고 받아들인 말씀이 영의 내적 공간인 마음속에 내면화되고, 다시 외적변화를 생활 속에서 일으키는 것이다. 즉, 치료의 과정에서 “내면화 사건”이 이루어지면, 실질적 결과로 외적인 진행 단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치료의 과정에는 내적저항(방어)의 어려움들이 따른다. 복음에 동의하기도 하지만 내적저항도 일으키는 것이다. 욥도 오랜 “믿음저항” 후에 마음 깊은 곳에서 복음의 심층작용이 일어난 것이다.(욥 42:1-6)
2. 신앙의 실제, 선포의 실제, 교회생활, 신앙치료는 모두가 하나로 연결된다!
잘못된 신앙생활은 잘못된 선포생활에서 온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음을 듣는 것만으로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고, 들은 것이 신앙생활에서 변화된 실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 성경 속의 인간상 - 신앙치료에는 방향제시가 필요하다. 이것은 성경적 인간학이 제시하는 것인데,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왔고, 다시 그분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인간의 결정적인 근원과 목표를 성경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2) 회개의 개념 - 회개는 믿는 자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더 강하게 묶어 놓는 신앙경험이다. 이 과정이 신앙내용의 “내면화”인데, 객관적 신앙내용을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관계의 실제로서 신뢰를 가능하게 한다. 신뢰관계는 성장과정과 성숙과정을 필요로 하고, 이 과정에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 위기의 개념 - 신앙치료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질문 후에 위기에 대한 영적 원인들을 찾게 된다. 동시에 인간이 가진 무의식에도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오랜 세월에 걸친 삶의 위기는 자주 실질적인 치유에 방해가 되는 잘못된 태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인간 속에 있는 내적인 저항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4) 삶의 간증 - 사람들은 삶의 사적인 것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에 대해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적치유”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이런 공개적 고백 후에 거절기도와 자신을 드리는 기도를 함으로, 점차적으로 자유함이 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구원이란 병이 생기게 하는 기억들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한다.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나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5) 신앙치료- 저항들! 정신치료 - 저항들! - 신앙치료에서 생기는 저항이란 죄의 발견, 잘못된 생활태도의 발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저항을 말한다. 즉, 변화를 위해서 필수적이고 고통스러운 진보를 받아들이지 않는 거부를 뜻한다. 또한 정신치료에 대한 내면의 거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저항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가진 관통하는 능력을 거부하는 내적 저항들을 인식하고 이것과 직면하고자 이것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제 2 장 주제로의 입문
1. 무의식의 치유 - 무슨 뜻인가?
무의식의 개념은 심층인격이라는 관점을 포함하는데, 정신생활의 극히 작은 부분이 수면 위에 떠있어 보이는 것이 의식이며, 수면 밑의 본체로서 도달할 수 없고 자유처분이 불가능한 부분을 심층인격이라 한다.(프로이드의 빙산 그림) 이것은 “마음이 가진 것들”, “숨겨져 있는 영혼”, “숨겨진 마음” 등으로 성경에서도 언급된다.
2. 무의식의 과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경험, 체험, 인식, 감정들이 실질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언젠가 의식적이었던 것이 어떤 특정한 이유로 무의식화 되는 것을 말한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성격적 특질의 뿌리를 신앙치료나 정신치료를 통해서 발견해 내지 못한다면 이런 성격을 결정짓는 특징들은 변화되지 않는다.
3. 예수의 십자가 - 신성과 인성이 하나가 되는 표적과 상징
깊은 치유경험을 하기 원한다면, 무의식에서 찾아내는 모든 종류의 상처와 상심함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맞닥뜨려야만 한다. 이것은 단 한번의 사건으로 감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사건이 인간의 주관적 경험영역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이 치유경험을 “기억의 치유”라고 말한다.
4. 경험과 계시의 동반성
신앙치료자의 경험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 그에게 전달하는 말씀의 계시능력이 파고 들어와야만 하는 것이다. 신앙치료자는 이 계시능력을 환자의 상황에 전달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이로 인해 어린 시절의 상황이 하나님의 계시와 만나게 되면 이것은 기억의 치유로 진행하게 된다.
5. 정신치료와 신앙치료의 각기 다른 진행에 대한 보충 설명
정신치료와 신앙치료는 수평적이며 수직적 관계차원에 있다. 수평적인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영역과 수직적인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영역인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 안에서 수평적(대인관계적), 수직적(인간-하나님)인 관계영역으로 표현된다. 이런 한계경험을 뛰어 넘는 것은 계시가 올 때 이루어진다. 계시는 신적인 것이 인간의 경험세계 안으로 침투하는 사건이다. 이런 수평적인 두 영역의 만남에서 정신치료와 신앙치료가 만나고, 삶의 도움과 신앙적 도움이 만나게 된다.
6. 선택 결정인 구세주에 대한 믿음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속하지 않은 것을 내면화하는 것이고, 현재화하는 것이며, 또한 이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계시에 근거한 자유의 행위로 그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믿음은 새 창조이다! 믿음은 결코 발전만이 아니다. 믿음이 가지는 자리는 경험과 계시 사이에 있다. 믿음은 인간 발달의 수평적 면에서 이루어지는 경험과 계시를 십자가의 교차지점 안에서 연결하고 연합시키는 각각의 자유로운 행동인 것이다. 이로써 계시의 비밀이 밝혀진다. 그리고 믿음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넘어가는 그런 존재와 근원적 신뢰관계를 얻음으로써만 가능하게 된다.
제 3 장 신앙치료 : 전환을 위한 격려
1. 성경의 창조 기사와 타락 이야기 - 신앙치료 조치의 기초에 대한 인류학적 관점 몇 가지
1) 우주와 인간의 창조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과 비슷하며,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부름 받고 직접적으로 지속적인 교제를 갖도록 부름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동반자로 원하셨다. 이런 인간의 존재는 원래 자유 안에 있는 존재이며, 이 자유로운 존재는 하나님과의 의존관계 안에 있다. 사람의 이름이자 얼굴이 바로 이 자유의 표시였다.
2) 타락 사건 - 사람은 자기의 책임을 인식해야 했지만, 죄악으로 타락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존 관계 안에 있어야 하는 자유제안을 무시한 것 때문이다. 자유제안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양자택일 제안은 버려졌다.
3) 인류타락의 결과 - 몇몇 인류학적 관점 - 사람이 자유제안을 저버린 것은 근원적 불신의 씨앗을 뿌린 결과였고, 동시에 불순종이라는 의지의 결정을 가져왔고, 이것의 최종 결과는 부끄러움과 책임 그리고 두려움이 된다. 그러므로 원죄란 얻어진 “인식”으로, 이 인식은 원래 하나님 한 분에게만 고유한 것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에게 주어지게 된 것이다.
4) 인류타락의 다른 결과 등 - 수치심과 두려움 그리고 죄의식에 대한 방어
타락에서 나타나는 책임 전가의 기본 법칙은 자신의 책임을 남에게, 결국에는 하나님에게 미루는 것으로, 이 방식은 성경의 뒤따르는 장들에서 새롭게 변형되어 계속해서 다시 나타난다. 책임은 방어되고 거부되어야만 한다. 방어해야만 하는 이유는 인간이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새로운 언약 속에 있다.
2. 신앙치료의 시작 - 생명나무를 다시 얻음 : 그리스도와 새로운 관계특질!
1) 돌아온 탕자 - 낙원 밖의 아담
탕자의 두려움은 파국의 신호로 깊은 구원의 필요성을 알려준다. 수치는 모순의 신호로 신적인 아버지의 의지에 대응한다. 탕자의 모습 속에 보이는 낙원 밖의 아담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고, 잘못이 있음을 드러내 보이며 인정하고 후회한다. 즉 하나님에 대한 깊고 본질적이며 무의식적 “분리느낌”인 부끄러움과 잘못 그리고 두려움은 정확하든 않든 간에 인간의 깊은 내면 속에 인식되고 인정되어야 된다.
2) 신학적 보론(補論) 1 - 율법과 복음(롬 3-5)
절대적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의지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심을 내용으로 하는 옛 언약의 율법은 롬 3:20에 따르면 죄에 대한 깊고 광범위한 인식을 일깨우는 의미를 갖는다. 탕자의 상황은 무의식과 대면하는 상황이고 인간이 자신의 황폐함과 대면함이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3) 야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 “큰 죄인” - 낙원 밖의 하와
예수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했을 때, 여인은 놀랐지만 삶의 상황에 대한 직면으로서 호기심이 일어난다. 여기에서도 실질적인 자기인식과 올바른 죄의 인식에 이르기 위해서 수치심과 죄의식 그리고 두려움의 감정이 깨우쳐져야 한다. 그녀의 삶의 비참함에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내리며, 끝없이 많이 용서하고자 함이 드러난다. 이렇게 성경 속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무의식적 실제의 비밀스러운 심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세상인 “두 세계 사이의 방랑자”이다.
4) 낙원의 생명나무 -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구약과 신야그이 전체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속자라는 사실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증거 된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죄의 소멸 능력이다. 그래서 모든 신앙치료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함이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여기에서 죄와 비참함과 수많은 이름으로 된 가장 깊은 곳의 허약함이 죽게 된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짊어졌다. 예수는 죄 범한 세상을 짊어진다. 그리고 예수 안에서 새로운 창조물이 나타난다.
5) 신학적 보론 2 - 그리스도 대속적 희생과 이것의 신앙치료적 의미
신앙치료를 시작할 때 주의할 것은 자신의 걱정과 부담, 문제점들과 기쁨, 그리고 질문을 들고 신앙치료에서 해결하려고 오는 자연인이 구속의 차원에 그 마음이 폭넓게 열려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새로운 관계를 찾게 되면 현재뿐만이 아니라 지난날의 삶도 새롭게 변하게 된다. 자유롭게 된 삶이라는 기본 체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치료하는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기본갈등이라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향하게 하는 기도이다. 이 갈등은 대화 중에 정확하게 인식되고 구체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 후에 기도를 통해서 예수 안에 있는 고난과 죽음과 부활이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구원의 기본 능력들이 작용하는데, 이때는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이 능력들의 활동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6) 신학적 보론 3 - 거절, 양도, 연결 그리고 여는 기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제공하시는 화해를 구체적으로 받는 것은 기도 중에 일어난다. 이는 거절기도(단절기도)와 양도기도(헌신기도)인데, 죄의 종살이에서 은혜의 자녀로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거절기도는 과거로부터 인식되고 이제 다시 체험되는 기억들, 현재의 실질적인 얽매임들, 인간 앞에서의 책임감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죄로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현재의 얽매임, 문제들이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며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야 한다.
양도기도는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며 그에게 짐이 되는 기억들과 죄의 모든 것을 자백한 사람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삶으로, 그리고 성령으로 채워진 새로운 충만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기도를 통해서 사람은 실제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 된다.
7) 기도는 구원사건의 현재화와 확인 그리고 내면화이다
현재화 작업이란 과거로부터 유래하는 고통스러운 상처, 괴로움, 실망, 이것들로 인해 받게 된 모든 “자기중심적 상처(나르시스적 상처)”들을 긴장이 해소되고 경련이 완화되는 신체적-정신적 공간 안에서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을 말한다. 방법적으로는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나 또는 혼자서 조용한 가운데에 할 수 있다.
또한 내면화 작업은 현재화 작업이 반복됨으로 이루어지는데, 진실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인격이 또 다른 진실인 인격인 자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작업들의 표출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존재를 포함하는 두 인격 사이의 자유행동이고 , 이로써 두 인격 사이의 실제관계가 표현된다.
그리고 이 확인이 반복됨으로 해서-그의 존재와 그의 희생-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구속의 힘을 믿게 되고 그리고 이 권능을 내면화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통의 사상인데, 이것은 바로 여기와 지금 이 자리에서 두 인격간의 삶의 교환이 일어나는 것, 즉 몸 그리고 영과 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연결된 전존재 사이에 삶의 교환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8) 기도를 위한 들음의 의미
현재화 작업과 확인작업이 성경말씀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중요하고도 가능하다. 묵상기도를 통해서 성경 문단을 읽고 듣는 것을 통해서 현재화 작업과 내면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9) 자신의 기도문을 발견해보라
현재화 작업과 내면화 작업으로서의 묵상기도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가지고 비슷하게 시도할 수 있고, 각기 다르게 묵상 방법으로 할 수도 있다. 각 사람마다 주님에 대한 자기만의 언어와 자기만의 인식 그리고 또한 자기만의 비밀이 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관계를 가능하게 하려면 이런 언어는 연습되고 노력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더불어 내 삶 속에서 자라나고 느껴지는 예수와의 현재적 동시성의 이루어짐이다.
10) 신학적 보론 4 - 인간의 죽음과 하나님의 죽음에 대하여
이것은 창조로 비롯되었으나 그 목적은 인간의 죽음인 죽음의 저주를 극복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이 죽음의 저주는 십자가상에서 하나님의 죽음을 통하여 해결된다. 죄에 대한 저주의 표현인 타락한 창조물이 속한 죽음의 이런 세력 안으로 그리스도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으로, 하나님의 죽음의 사건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무덤 속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무덤이 될 수 없고, 다만 우리의 무덤, 곧 인간의 무덤일 뿐이다. 즉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과 연합하셨다. 이로써 아담의 죽음, 그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존재의 죽음이었던 아담이 죽은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이며, 그리스도의 무덤인 것이다.(롬 5:12-21)
11)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의 죽음이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에 대한 죽음이며, 자연적 인간의 죽음이고, 인류 타락 이후에 모든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죽음에 대한 죽음이다.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 이 마지막 죽음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다.
3. 신앙치료의 심화 - 방어에 대한 극복
신앙치료가 심연 깊이 파고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늘 새롭게 다시 드러나게 됨을 보여 준다. 이런 단계적인 진행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을 넘기는” 단계적 발전과 관계경험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런 과정에 반대하는 저항들, 방어의 특유한 종류로 보편적으로 치료의 진행에 거스르는 저항들이 극복되어야 한다.
믿음과 자유 - 믿은 이들의 긴장관계
의식적인 믿음의 헌신적 초기 단계는 그 다음 심화단계들로 가게 된다. 여기서는 내적인 매임을 불러일으키고, 구원을 거부하는 인간의 책략인 신적인 것을 거부하는 저항이 단계들마다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으로 헌신의 깊은 단계를 격려한다. “너희는 자유롭게 될 것이다”(요 8:32-33)
4. “하늘나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 신약의 공동체 이해에 대한 신앙치료적 결론들
하나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 하나님 나라가 세상의 것과 타락한 피조물들보다 더 오래 존속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존재의 심연에서 일어나는 치료과정을 위해서, 즉 무의식의 치료를 위해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신앙의 도움”인 구체적 신앙치료의 관계는 오로지 개인적이어서 결코 대중적일 수 없고, 모임에서 가능하다면 아마 전체 파악이 어렵지 않은 작은 모임에서 가능할 것이다. 이런 신앙치료의 도움은 원래 “나누고”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하고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5.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 - 깊어지는 신앙치료의 비유
모세와 파라오의 두 형상은 인간 속에 있는 선과 악의 “주관적 단계”로 구체화될 수 있다. 파라오는 죄의 권력이 주권을 가진 영역을 의미하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의 땅에서 이끌어내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믿음의 추종자로 부름 받고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역할이다. 또한 유월절 양의 피와 바닷물의 이 두 모습은 결정적인 신학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죽음의 예언적 앞당김이다.
이처럼 구약의 하나님 말씀의 중심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그리스도 사건의 예언적 선취이다.
또한 예수의 비유의 말씀은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의 무의식과 만나는, 즉 인간 영혼의 심층과의 만남을 특징으로 하는 것 같다. 이 비유의 말씀은 무의식적 저항에 의문을 제기하고 내적인 동의를 얻어 가장 깊은 곳의 막힘을 열도록 하는 내적인 예감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에 대한 처음 경험은 쉽게 퇴색하므로 늘 새롭게 입증되어야 하고 그리고 심화되어야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뒤따르는 광야생활의 의미이다.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의 목표는 강화과정과 정화과정인데, 이 광야생활은 백성들의 좌절 속에서 그리고 굶주림과 목마름에서 놀랍게 구원하는 하나님의 개입을 보여 준다. 그리고 광야에서 가난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부유하게 된 믿음의 사람은 점차로 새로이 요단강을 건너는 돌파를 할 만한 준비가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배움의 과정에서 실패한다.
믿음의 초기 경험을 이렇게 관통하여 믿음의 심화 경험으로 감으로써, 깨닫지 못해서 몰랐던 개인의 인성의 심층, 그만의 마음 깊은 곳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불신의 근본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또 이것이 새롭게 얻게 된 신뢰의 근본과의 구원 경험 안으로 연결되어 들어감으로 인해, 믿음의 위기를 통해서 심화된 믿음의 경험들이 거듭해서 새롭게 터져 나올 때만이 가능하게 된다.
6. 성경에서 보는 삶의 증언
족장이자 아들인 야곱의 일생을 살펴보면 영적 성숙의 여러 단계가 아주 잘 나타난다. 야곱은 광야에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은 그를 시험하고 그의 믿음을 정화시킨다. 광야에서 야곱은 자신의 심층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결정적 만남 속으로 몰아넣어진다. 하나님은 그가 늘 새로운 두려움들과 헤어짐의 체험들, 그리고 그의 보호받지 못하는 삶에서 빠져나와 자신에게로 그가 주시는 거대하고 막강한 축복으로 향하도록 강요한다. 브니엘은 사기꾼인 야곱을 변화시켜 이스라엘로 하나님과 싸우는 자가 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삶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전환 부르심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 이야기와 인간상호 간의 가족 병리학의 혼란 안으로 파고 들어가서 거기ㅣ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제안이자 구원의 제안을 인식할 수 있게 하고, 그리하여 인간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 4 장 산상수훈에 나타난 무의식 치유
회개할 준비가 되어있는 그리스도인은 무의식의 죄와 맞서 싸우면서 희망의 지평 안에 있는 하늘 왕국의 다스림을 갈망하고 차지하며 그리고 여기 지금 이미 시작되어 있는 그 안에 산다. 그분의 나라인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긴장 영역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 안으로 들어와 있다. 산상설교들의 명제들은 어떤 다른 삶의 철학이나 정신치료법보다도 더 깊고 철저하게 “무의식의 치유”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해주고 있는데,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포괄하는 치료과정을 단지 인식하도록 하는 것으로 만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까지로 연결시키는 방식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1. 무의식의 치유는 마음의 돌이킴이다.
깊은 참회와 돌이킴 그리고 회심을 통해서 신적인 것이 인간의 심층인 무의식 안으로 돌입하게 된다. 여기에 대해서 마음을 여는 사람은 신적인 구원을 깊은 내적인 치유로 경험한다. 이런 치유는 내면 깊이 뚫고 들어가는 치유로, 인자인 하나님 아들의 대리적인 구원행위만을 신뢰하게 한다. 이 치유는 치유를 일으키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구원희생을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신약성서는 인간 존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의롭게 되어서 죄의 소멸이 이루어진 신분임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어지는 의로움은 동의되어야 한다. 이 동의의 내용은 자력구원과 자기변명의 포기이다.
2. 산상수훈(마 5장 - 7장)의 여덟 가지 명제들
산상설교의 명제들은 인간존재의 새로운 상태에 대해서 말하고, 이런 상태를 복이 있다고 표현한다. 이 명제들 속에 각기 다른 형태의, 그러나 공동주제가 이야기되고 있으며, 동시에 거대한 목표를 향하는데, 이것은 물론 이 명제들의 제공자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복 주는 자”로 파악되고 받아들여질 때에만 이해가 가능하다. 또한 산상설교는 선동적이다. 산상설교는 사고의 전환을 촉구하며, 한편으로는 평화와 평온을 주고, 다른 면으로는 구원에 대한 깊은 동경을 일깨움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산상설교의 이런 깊은 작용은 감동이나 흥분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명제들은 하나님 주권에 관한 것이고, 하늘나라의 왕권과 인간의 행복에 관한 설명일 뿐 아니라, 인간의 깊은 무의식적 생명에의 동경에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상설교의 희망은 현재를 변화시키는 새로 얻은 미래관점에서 자라난다. 그러므로 현재의 존재가 치유 받은 존재이면 행복한 존재이다. 존재에 대한 치유는 자신의 무의식을 열어서 치유 받은 사람의 일생에서 나타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팔복의 축복은 이런 나라에서 살기를 결심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의 소명은 그들의 왕들이 받은 소명과 같은 것이다. 즉 그들은 왕과 제사장이 됨으로 그들의 주님처럼 그렇게 봉사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가 됨으로 이런 왕권의 참여자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동거함으로 부활의 약속이 그들 속에서 성취되고 그 약속의 소유자가 된다.
3. 산상수훈은 모든 가치를 재평가 하도록 한다
산상설교의 말씀선포와 증거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현재에서,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의 미래에서 오는 삶을 새롭게 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창조적 증표이다. 이런 의미에서 산상설교는 “모든 가치의 재평가”를 만들어 낸다. 재평가는 “성격의 변화”를 가져오며, 믿는 자의 삶 속에서 이 명제들의 “내면화”가 기초적으로 이루어짐을 뜻한다. 이런 내면화 과정은 내면화를 가능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산상설교를 체험함은 예수를 체험함이다.
4.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속함 - 무의식 치유의 영향
1) 산상수훈의 예수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존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믿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아버지이자 창조자 하나님인 바로 하나님께서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창조와 우리 사이에 살아계시고 다스리신다. 이것은 새로운 삶의 계명으로 우리 사이의 하나님, 우리를 위한 하나님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다.
2) 성령의 능력
① 기도하고 싶은 욕구 - 내재하는 영의 영향중에 제일 우선적이고 중요한 것은 기도하고 싶은 욕구이다. 기도의 능력은 내재하는 영의 영향이다.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내재하는 영의 능력으로부터 배우고 발견해야만 한다.
② 새로운 행동을 위한 능력 - 내재하는 성령이 새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성령의 치유능력과 변화능력은 이런 새로운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무의식 즉 새로운 마음을 준다.
③ 영의 은사와 열매 - 이는 활동으로 오시는 새로운 은사들과 능력들이다. 이런 은사는 성령의 표현 능력들이며, 모든 자연적인 은사는 이런 영의 영향으로 신적인 은사로 변할 수 있다. 이렇게 기도와 새로운 행동 그리고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기본 원소들로 나타난다.
④ 영의 법칙 - 내재하는 성령의 창조능력은 바울이 말한 법칙인(롬 8: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활력을 주는 새로운 존재충동과 삶의 충동에 영향을 준다. 이는 죄와 죽음의 법칙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이런 새로운 거대한 삶의 법칙은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 속에 일어나는 새 창조인 변화된 마음의 표현이다.
⑤ 영과 육 - 바울은 롬 8:6-14에서 “육신적”을 말한다. 이 본문은 계속 새롭게 극복되어야만 하는 영의 작용으로 된 분리를 말한다. 우리가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우리에게 속하는 옛 피조물과, 다른 면으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거하는 동안 우리에게 속하는 새로운 창조물 사이의 특유한 분열 또는 분리를 말한다. 이중적 소속의 이런 사실은 이 형상들의 거대한 중압감 속에서 새 것에 속하는 것이 늘 다시 일어나고 영이 드러남이 있음을 보여준다.
⑥ 영과 말씀 - 성령의 변화능력은 말씀을 듣고 읽음으로 발전되어 간다.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서 작용하려면 말씀을 반복해서 읽고 들으며 내면화해야 된다. 영은 말씀을 섬기고, 말씀은 영을 통해서 살아있는 말씀이 된다. 그러나 “영의 신학”과 “말씀신학”이 서로 연결을 짓고 서로 견주는 규율적인 개방성이 있어야만, 신적인 진리가 능력과 생명에 역사하는 “위에서 오는” 공동의 삶을 가능하게 하고 변화시킬 수 있게 한다.
5. 산상수훈의 언어 속에서 “무의식” - 제자들에게 한 구체적인 행동의 가르침들
팔복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찾은 사람만이 이런 복음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그렇게 살 수 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무의식의 깊은 곳에 와서 말을 걸고, 새로운 존재가 될 것과 새로운 행동을 할 것을 촉구한다. 내면의 무의식 깊은 곳에 예수 자신이 새로운 사랑의 법칙으로 내려와 위로가 되고 긍휼히 여김으로 이 새로운 의가 실제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팔복의 적극적인 요구는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고, 사실을 믿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이 영이 작용하는 치유의 비밀이다. 즉, 성령을 통하여 내재하는 그리스도가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마음속과 무의식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내재는 온전함에 대한 대답이다.
1) 새로운 나라의 부자관계 -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아버지라는 인식은 세상적인 행동으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에 매인 이런 의존성으로부터 해방되게 한다. 이것은 구원의 능력이 무의식의 심층에 편입되었을 때만이 영향력이 있는 특유한 법칙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 또는 다시 기억함인데, 이것은 예수가 그룹 옆을 지나서 생명나무로 돌아가는 길을 우리에게 열어준 것이다. 이런 아버지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인 것을 예수가 새롭게 증거한다.
2) 용서의 준비와 화해준비의 절대성 - 새로운 나라와 그 외의 특성
화해작업과 구분작업의 중요한 관계는 마 6장에서 용서의 준비와 화해의 준비의 절대성으로서 가정과 공동체의 관계영역과 관련된다. 공동체와 공동생활 또는 가정 속에서 이런 화해의 기본 원칙은 동일하다. 특히 복음적 특징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와 은사적 특징을 가긴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모든 구별하는 차이점들과 모든 화해하는 연합으로 통합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분열에 관한 영적 신앙치료적 견해 아래서 신앙인들의 무의식에다 이런 분열을 못 박고 영속화 시키고자 하는 어둠의 세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질문해야 한다.
3) 금전 관계 - 부유함에 속함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
어디에 너의 보물이 있느냐?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느냐? 재물이냐 하나님 나라냐? 몸과 생활에 대한 그리고 소유와 재물에 대한 걱정은 아주 뿌리 깊은 이방인적 태도이다.
6. “예수 그리스도의 내주” - 무의식 치유의 형태
1) 예수는 인격으로서 믿음을 통하여 현재화와 내면화를 원한다 - 그가 없이 산상설교의 진술들은 해석할 수 없고, 인식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 없고 적용이 불가능하다.
신앙치료라는 공식은 짧게 표현하면 예수를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의 치유가 나를 만나고자 하며, 나를 기다리며 그리고 현재화되어 내면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예수는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라고 말하며, 이것은 그가 성령을 통해서 현재화 되고 내면화 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화와 내면화는 사건이요 과정이다
그리스도는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다음 단계로서 가난하고 불행하며 외롭고 굴욕적인 사람들을 향하여 갈 것을 촉구한다. 이렇게 은혜에 사로잡힌 변화를 전달하는 것이 신앙치료자인 것이다. 신앙치료자 역시도 이런 성장과정과 되어짐의 과정 속에 있다. 그는 이렇게 제자로 가는 길의 동반자이며, 안내자이고 그리고 지도자이다.
3) 예수를 관계 속에 끌어들임 - 어둠이 빛으로 변한다
치유경험은 대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치유는 환자의 것이며, 빛은 어둠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그리고 신뢰의 능력은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하늘나라의 비밀은 주님을 위하여 가난하게 된 사람을 위해서,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은 이들을 위하여 그리고 불쌍하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4) 예수를 관계 속에 끌어들임 - 선과 악 속에 있는 분열에 대한 소멸을 의미한다.
창 3:5의 뱀의 약속은 인간 속의 깊은 불화와 내적 자기 분열을 가져왔다. 이것은 선을 행하려고 하지만 악을 행하는 억압이다. 이것은 타락 이후에 성경의 인간상과 대응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하나님과의 분리와 하나님을 떠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의 깊은 의미가 새롭게 된다. 그리스도는 이런 뱀의 머리를 밟았다. 이런 비유 말씀은 인격체인 악의 무력화와 극복을 확인해 주고 있다.
7. 타락한 창조물과의 화해 -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화해 단계
화해와 용서는 차례로 완성된다. 나의 과거와의 화해, 나 자신과의 화해, 그리고 이웃과의 화해는 창조자 하나님과 하는 마지막 화해의 전 단계이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새롭게 성령을 통하여 선물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실제 속으로 녹아들어가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타락한 피조물과의 화해가 가진 원래의 목표이다. 즉 그리스도가 분열의 소유자인 타락한 인간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이다.
1) 피조물의 무질서와의 화해
타락한 피조물과의 화해는 또한 피조물의 무질서와의 화해이다. 이런 마지막 화해단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화해은혜의 행위는 다른 창조물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것은 정치-경제-관계의 영역으로, 가장 깊은 곳에서 서로 다투고 있는 다른 삶과 존재로 분열되는 영역들이다.
2) “피조물의 악령적 관점”의 극복
이런 관점은 최종 목표를 위한 화해의 총체적 요구를 보이고 있다. 즉, 이 세상의 주권자가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화해의 이런 포괄적인 마지막 차원은 원수를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피조물의 무질서도 긍정하는 심연화해 속에서 상세히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모든 것과의 화해라는 사고는 오로지 신적인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미리 택하는 데서 가능하다. 이는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로서 잠정적 최종목표가 된다. 즉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며, 고통과 비탄이 더 이상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됨으로써 이루어진다.
3) 최종화해 - 하나님은 모든 것 속의 모든 것이 되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이다
계시록에서 마지막 화해관점의 결정적인 진술들이 나온다. 이 세상의 시간 안에 있는 화해하지 못함의 총체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화해자인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그의 전능한 말씀으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계 22장)
제 5 장 - 요약과 맺는 말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무의식적 과정들은 성경적 인류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충분히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의식적 과정들을 인식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성경의 명확한 설명이 없는 때문만이 아니라, 이러한 차원을 반대하는 현저한 저항들이 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요관심사는 무의식을 거부하는 각 개인의 저항 태도들을 발견하는 것이다. 예수는 이런 저항들을 종종 인용하는데,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눈 있는 사람은 보아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이런 요구는 여기에 대해서 귀가 열려서 올바르고 확실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성령만이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살아있는 말씀은 우리 속에서 작용하고 그리고 지배하는 저항들이 극복되어야만 할 때에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전체적 주제와 관련해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 개념은 “내면화”, “현재화”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실제관계를 거론한다. 이는 예수의 인격의 특성을 “동일화”하는 과정으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존재를 인격으로서 자신의 자화상 속에 받아들이는 즉 내면화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됨으로써 내면화가 된 것의 세력 확장과 믿음의 폭발력 그리고 외면화 능력이 성장하게 된다. 이런 연결은 영의 실제를 통해서 내면화가 된 구원실제가 다시 구원 받지 못한 창조실제로 환원되는 것으로 명확해진다. 즉 내면화의 이런 변화능력을 통해서 늘 다시 새롭게 변화된 이런 사람의 증언을 가지고 구원 받지 못한 피조물을 구원의 영역 속으로 끌어들여야만 된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산상설교의 명제들과 연결하면 팔복의 사람들은 내면이 구원되고 이런 새로운 창조적 인간존재에 대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예수는 이런 연결로 제자들에게 “해방하는 직무”를 위임하며(막 16:15-18), 이 직무와 연결하여 치유와 구원의 개념은 아주 가까워진다. 그러므로 “치유한다”는 동사는 두 개의 명사 “치유”와 “구원”이 물론 관련되며 신체와 영과 혼이 포함되는 총체적인 과정을 뜻한다.
- 이 상 -
출처 :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
글쓴이 : 오직 성경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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