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전

[스크랩] 과천교회 구역장 훈련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아들 2014. 1. 25. 11:04

과천교회

구역장 훈련 이렇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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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찬 종 목사

 

 

 

 

 

 

어떤 학생이 대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80명 모집에 81등을 했단다. 그래서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느냐 물었더니 그 중에 한사람이 등록을 안해서 들어갔다고 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열등감에 빠져서 다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할텐데, 이 친구는 그렇게 해서 들어갔지만, 경상도 말로 악음을 먹고, 입을 악 다물고, 세가지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들어갈 때는 꼴찌지만 졸업할 때는 일등해 보겠다. 그래서 그 학생은 첫째는 뒷자리에 앉지 않고 앞자리에 앉겠다고 자기 자신과 약속한 것이다. 둘째는 노는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겠다. 그 다음에는 흔한 미팅같은 것은 절대하지 않겠다. 그랬더니 첫학기 마치고 나니 당연히 1등이 되었다. 그래서 1등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필자의 소명은 어떻게 하든지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적이라 생각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라고 생각해서 좋다는데는 다 쫓아다녔다. 교회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모두 필자가 시무하는 과천교회에 접목을 시켜보았다. 이것은 필자의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

 

특별히 필자는 구역에 대하여서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구역은 교회 시스템 가운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가 성장하면 장로님과 권사님과 그리고 집사님과 목회하는 것이 아니고, 구역장하고 목회하는 것이다.

구역장이 해 주지 아니하면 절대로 목회를 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작은 범위 200-300명 모이는 교회는 한눈에 다 들어오게 된다. 500명 정도만 되어도 그렇다.

그러나 1,000명이 넘어갔을 때 구역운영을 잘 못하면 교회는 한쪽 구석에서 무엇을 하는가 잘 모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외된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것을 커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구역장이다.

이 구역장이 교회 성장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다. 필자는 이것을 케취하고, 여기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였다

 

어떻게 구역을 했느냐? 교회성장적인 측면에서 구역을 생각해야 한다.

 

 

 

구역의 필요성

 

구역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같은 거주지 안에서 성도의 묶음이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시16: 3,6). 이 말씀은 구역과 구역장에게 힘을 주는 시편이다. 하나님은 땅에있는 성도들을 존귀히 여기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조성하

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구속하고 지명하여 불러서 소유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도들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또 그 어떤 것을 희생시킬지라도 바꾸지 않는 특별한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신다(사43:1,4).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을 줄로 재어 구역장에게 맡기셨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자기 양을 맡기듯이(요21:15-21) 바울이 밀레도 섬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에베소 성도들을 그들에게 맡기듯이(행20:17-32) 주께서 맡기셨다.

"그(주)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11) 초대교회에 직분을 주시던 주님이 오늘날도 교회를 통하여 직분을 주신다. 주님이 친히 주시기에 이 직분은 고귀한 것이다.

 

구역은 하나님이 구역장에게 줄로 지어준 기업이다.

이 기업은 영생의 나라에 상이 보장되어 있기에 영적인 기업인 동시에,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기업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운 기업이다.

그러므로 구역장의 기쁨과 보람은 자기에게 맡겨준 성도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돌보고 그들을 섬기고 헌신하는데 있다.

이와같은 사명의식을 구역장에게 불러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내게 허락해주신 구역이 내게 가장 아름다운, 최선의 구역이라는 뜻이다. 간혹 인간적인 측면에서 구역의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하는 구역장도 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우리 인간은 오늘만 보지만 하나님은 내일 뿐 아니라 먼 영원까지 꿰뚫어 보신다. 주어진 것만 보고 섣불리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들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생각하여 깨닫게 될 때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이 아름다운 곳에 있다면 감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역장은 불평과 원망이 아니, 감사와 큰 즐거움으로 맡겨주신 구역을 가꾸며 돌보아야 한다. 줄로 재어준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큰 교회 안의 한 작은 교회이다

"믿는 사람들이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성령 감림후 초대교회는 3,000명․5,000명 등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므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더하여져서 큰 교회가 되었다.

이들은 사도들의 지도를 받아 정기적으로 성전에서 모였고, 또한 집에서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한 사랑의 교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좋은 인상을 받았으므로 칭송과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구원받는 숫자가 날마다 더하게 되었다. 이것은 집에서 모이는 모임에 의해서 더 가속화 되었다.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여야 한다. 날이 가면 갈수록 구원받는 숫자가 더해져야 한다. 작은 교회의 아름다움을 고집하므로 교회 성장의 꿈을 포기하는 자들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불리움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교회성장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성장에 대한 핑계와 변명을 많이 하게 된다. 질이 중요하지 양이 중요하냐고 한다. 그런 목회자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예수님에게 채찍을 맞을 것이다.

개신교의 통계가 계속 보도되는 것을 보면 개신교가 90년에 들어와서 인 크리스트가 아니고 디 크리스트이다. 성장을 안하고 있다. 500년 모이는 교회가 5년내 500명이다. 그러면 목회자들이 목회의 위기를 느껴야 한다. 그러나 그 목회의 위기를 타계할 방법을 찾기 못하고 있다. 어느정도 50세가 넘어가게 되면 내가 어디가서 뭘 배워냐면서 배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도전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성장에 대하여 절대로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한다. 우리 지역이

나쁘다, 가난한 자들이 많다, 우리 지역은 도시에서 떨어져 있다, 우리 지역은 농촌이다 등 이것이 목사가 자꾸 자기의 합리화만 찾는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절대 성장하지 못한다.

 

구역 운영에 관한 것도 교회성장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라. 성장에 대한 확실한 소신을 가지고 있으면 교회는 절대로 성장하게 되어 있다.

 

통합측 교단이 재작년 한해동안 2.4% 성장했다. 100명 모이는 교회가 2명 정도 늘어난 것이다. 102명 된 것이다. 이것은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후퇴했다고 할 수 있다.

성장되지 않는 첫째의 이유는 잘 살기 때문이다. "가난한 교회는 전도가 더 잘 된다. 헌금이 적게 나온다." 그런 말은 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성경은 축복의 책입니다. 가난한데 축복을 불러넣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잘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게 되어 있다.

두번째는 목사님들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세지 자체가 예수만을 전해야 하는데 한 교회에 5년, 10년이 되어가니까 예수 전하지 않고 다른 것을 전한다.

창세기에서도 예수를 만나야 하고 출애굽기에서도 예수를 만나야 하는데 예수를 전하지 않는다. 다른 것을 전한다.

 

바이블 스터디를 하게 되면 천편일률적으로 교재 1권 마치는 것으로 끝내버린다.

과천교회는 구역이 850개 되는데, 필자는 교단에서 나오는 구역공과를 사용하지 않고 필자가 직접 제작을 한다. 그래서 주보 6페이지에서 한 페이지는 구역보고서만 나가고, 한 페이지는 구역공과가 매주 나가고 있다.

교단은 천편일률적으로 바이블 스터디만 한다. 생명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생명을 주는 것이 없다. 생명을 주는 예수는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설교하지 않고 다른 것을 설교하면 교회는 성장되지 않는다.

 

작은 조직의 활성화가 없는 교회성장이나, 업무 분할이 없는 방대한 조직의 지도란 마치 정상적인 성장 이상으로 비대해진 몸과도 같은 것이다. "그대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리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할 수 없음이라"(출18: 17-18). 혼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던 모세에게 그의 장인 이드로가 한 말이다. 이 이후 광야의 이스라엘에게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제도가 생기게 되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가기까지 존속하였다. 여기에 구역이 성경의 기본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 있다.

구역이 큰 교회 안의 작은 교회라 할 때는 큰 교회의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여러 무거운 일을 분담한다는 뜻이고, 또 구역장이 작은 목회자가 되어 목회적인 일을 맡아 한다는 뜻이다.

작은 교회에서 하는 일이 큰 교회에서 하는 일과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작은 교회인 구역도 예배, 기도, 친교, 전도, 양육, 봉사 등의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여러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구역장은 구역이 우리 주님의 몸된 교회임과 자신이 작은 목회자임을 깨달아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는 교회의 신경이요 혈관이요 세포이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5-16).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면 구역은 교회라는 신경이요, 혈관이요, 세포다. 구역은 교회의 신경이다. 신경은 몸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머리에서 내리는 의사를 몸의 각 지체에게 신속히 전달하여야 한다. 만약 이 기능이 마비되면 반신불수나 전신불구가 되어 몸이 병신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구역이 신경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교회가 정상적인 사역을 감당하지 못한다. 구역장은 구역을 통하여 머리되신 주님의 뜻과 목회자의 목회 방침을 신속히 구역원들에게 전달하여야 한다.

 

구역은 교회의 혈관이다. 건강한 사람은 혈관 작용을 통해서 낡은 피를 걸러내고 새 피를 공급받는다. 피는 생명이다.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혈관이다. 혈관이 튼튼하지 못하면 고혈압이나 저혈압으로 고생하게 될 뿐 아니라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구역의 힘찬 활동을 통하여 교회의 신앙은 날로 새롭고 뜨거워져야 한다. 피가 뜨겁듯이 구역을 통하여 흐르는 신앙의 피는 성도들 가슴가슴으로 뜨겁게 흘러가야 한다.

혈관인 구역이 튼튼하면 교회의 건강은 염려할 것이 없다.

 

구역은 교회의 세포이다. 세포는 분열되어야 한다. 반드시 세포는 분열을 해서 새로운 것을 생산해 낸다. 분열되는 세포를 통하여 생물은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가정에서 구역으로 모이기 시작한 초대교회는 구역의 활성화를 통하여 급성장하여 수 만명으로 발전했다. 한 세대가 못되어 예루살렘 시민의 절반인 10만명이 구원되었다.

감리교 창설자 요한 웨슬레는 근대에 있어서 구역조직을 제일 잘 활성화한 사람이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는 말씀을 믿고 네 사람의 옥스포드 대학생과 함께 신성그룹운동을 전개하였다. 작은 구역(속) 조직이 폭발적인 분열을 통하여 오늘날의 감리교단이 되었다.

웨슬레의 속 조직을 중심으로 한 감리교단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날때 그 운동과 조직을 깊이 주시하고 배운 혁명가가 칼 마르크스였다. 그는 공산주의의 이념과 원리는 정립했지만 그의 사상을 실천할 핵심 조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웨슬레의 속제도를 보게 되었고 그대로 본받았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조직은 웨슬레의 속 조직을 배워서 철저화 한 것이다.

 

1903년 레닌은 마르크스의 이념과 조직을 그대로 실천하여 17명의 당원들을 모아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했다. 1917년 공산당 세포조직은 4만 명으로 분열했고 이 조직을 통해서 제정 러시아를 뒤엎고 소련의 공산화에 성공하였다.

 

하나가 중요하다. 거듭나고 성령충만한 한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구역장 하나가 사명을 바르게 감당하면 교회는 성장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로워라"(마10:16)고 하셨다. 구역 세포의 분열의 힘을 알고 교회 성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구역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지 그 조직의 성격에 맞는 목적이 반드시 있는 법이다. 구역 모임에는 넓게는 3가지 좁게는 6가지 분명한 목적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첫째, 구역은 하나님을 위하여 모이고, 둘째, 구역안의 소속된 성도들 자체를 위하여 모이고, 셋째,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위하여 모인다. 이것을 좁게 구체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아래와 같이 6가지 뚜렷한 목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다

이것은 필자의 구역운영의 핵심이다. 신앙생활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예배드리는 일이다. 그러나 말세가 되어 갈수록 모이는 일이 적어진다. 구역 모임은 이를 보충해 준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9:25). 주의 이름으로 모이기를 힘써야 한다.

일주일에 한번의 교회 예배로서는 너무 부족하다.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배드리기를 즐겨야 한다. 그래서 구역모임을 구역예배라 한다.

 

필자의 목회경험상 교인수가 500-1,000명 이상 넘어가게 되면 양육이 안 된다는 것이 큰 문제점이다.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이는데 구역 세대수가 많으면 절대 안 된다. 필자는 구역에 4-5세대 이상은 배정하지 않는다.

 

둘째, 기도하기 위하여 모인다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마18:19). 구역원의어려운 일, 시험당하는 일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들다.

 

구역장을 비롯하여 여러 구역원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여 줄 때 넉넉히 이기고 해결할 수 있다. 기도는 우리만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기도가 이루어지므로 하나님이 영광을 얻기 위함이다(요14:13).

 

그러므로 구역이 모일 때마다 자신을 위하여, 타인을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합심하여 힘써 기도하여야 한다.

5세대가 되면 중보기도 하기가 쉽다. 과천교회는 기도할 때 5세대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기도할 수 있게 한다. 바로 중보기도의 장소가 구역인 것이다.

 

셋째, 친교(코이노니아)를 위하여 모인다

초대교회는 모이기를 힘씀과 함께 주 안에서 믿음의 사람끼리 교제와 친교가 많았다.

 

우스운 얘기를 하나 하겠다. 필자가 과천교회에 처음 부임해 구역을 확장시켜서 어떤 사람을 구역장을 시켰더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낮에 구역원들을 데리고 고스돕을 했다. 주일날 교회를 안나와서 왜 나오지 않았냐고 했더니 구역장이 화토치다가 돈을 안 주고 일어섰다고, `가리'했다고 안 나온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서 영육간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 이 교제는 말씀의 교제이다. 이러한 교제를 통하여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혜를 얻게 된다.

믿는 사람이 믿는다 하면서 죄와 교제하고(롬13:12-13), 어두움과 교제하고 (엡5:8,11), 세상과 교제하고(요일2:15-16), 이단과 교제하면(요이1:10-11) 마귀의 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교제는 신앙생활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유익하다.

 

넷째, 바른 신앙인으로 성장하기 위하여 모인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적인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 가는데 있다(엡4:11,13). 이 일을 위하여 교회에 목회자도 있고 구역장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역장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그들로 하여금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아가는 양육과 훈련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에서 시작하여 주보 보는 법, 예배드리는 법, 성경보는 법, 찬송가 찾는 법, 주일 지키는 법 등 성도의 기본적인 일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알며 그의 사역을 감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제자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지도해야한다.

 

다섯째, 전도하기 위하여 모인다

구역은 복음전도를 하는데 매우 좋은 장소가 된다. 구역원들은 대개 가까운 지역에 사는 성도끼리 편성된다.

예배는 구역원 가정을 돌아가면서 드리게 되는데 특히 가정이 복음화 안된 가정은 구역원 전체가 연합하여 집중적으로 기도와 봉사를 통하여 전도할 수 있다. 구역 예배시에 부담스럽지 않게 이웃을 초청할 수도 있다(이사오신 분들이나 믿다가 낙심한 사람 등), 교회출석보다 구역예배 출석을 먼저 권면하면 전도에 아주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또 이웃에 어려운 가정, 초상난 가정, 가난한 가정을 알고 있는 분들을 구역원이 같이 찾아 위로하고 작은 정성이라도 사랑으로 도와주면 구역이 크게 발전할 수 있고 구역발전이 교회 발전과 부흥에 크게 이바지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같은 구역원이 힘을 합하여 전도할 수 있는 장소가 구역 모임이다.

 

여섯째, 봉사하기 위하여 모인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하나의 몸이고, 성도들 하나하나는 그 몸의 지체이다(엡4:15-16). 몸의 지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떨어져서는 안되며, 서로는 각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구역은 지체인 성도들을 연결해 주는 살과 뼈와 근육이다. 성도들은 구역을 통하여 교회의 몸에 붙어 도움을 입고 또 도와주는 봉사의 역할 곧 생명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간의 봉사와 교회의 봉사 또 사회를 위한 봉사를 위하여 구역은 모이는 것이다.

 

과천교회는 초상집에 잘 가지 않는다. 여전도회가 연령별로 38개가 있었는데, 작년 11월에 다시 50개로 확장 조직했다. 교구별로 여전도회를 만들어서 봉사하게 하는데, 그 교구에서 초상이 났을 때는 그 교구에서 무조건 갈 수 있도록 한다.

 

 

구역장과 사명감

 

내가 왜 여기 존재하는지 그 존재 의미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분명히 아는 것이 사명감이다. 불타는 사명장, 권찰이 있는 구역은 반드시 부흥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목숨을 귀중히 여긴다. 그러나 자기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길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사람은 그 일에 대하여 사명감이 불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사도 바울(행20:24), 에바브로디도(빌2:30), 브리스길라

와 아굴라 부부(롬16:4)들은 자기 목숨보다 더욱 사명을 귀하게 여겼다.

"네가 이 모든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어린양을 치라! 먹이라!" 이것은 사랑을 확인하는 주님의 말씀이다. 사랑이 확인된 자에게는 사명을 맡기는 것이다.

사도 바울에게서처럼(딤전1:12) 주님은 우리를 충성스럽게 여겨 구역을 맡아 성장시킬 사명을 부여하였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하는 "충성"이다.

 

우리가 맡은 일은 우리들의 목숨보다도 더 귀중하고 거룩한 일이다. 그러므로 불타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래와 같이 구역 부흥을 위해 힘쓸 때 우리 구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은혜와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첫째, 사명감은 구체적인 목표와 함께 더 불타게 된다

이루어야 할 뚜렷한 목표가 없는 사명은 어떤 일에나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달성해야 할 분명한 목표가 뚜렷이 보일 때 사명감은 더욱 불타게 된다.

목표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기를 원하시는 일, 바로 그것이며, 우리들에게 되기를 원하시는 그 사람이 되는 그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구역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뚜렷하게 목표 삼고 그것을 향해 질주하게 될 때 그 사명감은 부흥을 가져오는 것이다.

 

둘쩨, 사명감은 희생적인 충성을 각오할 때 더 불타게 된다

사명을 받은 사람은 사명 때문에 살게 된다. 어떤 나라에 대사로 간다면 자기 뜻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라 왕의 뜻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러므로 왕의 뜻을 잊어버릴 수는 결코 없다.

이것이 구역장과 권찰이 받은 사명이다. 이 사명을 위하여 내 목이라도 내어 좋겠다 하는 자세가 되면 사명감은 더욱 불타게 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하면 목숨 뿐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것까지 얻게 된다는 말씀이 주님의 약속이다.

 

셋째, 사명감은 기도와 함께 더욱 불타게 된다

장작개비가 한 곳에 모일 때 더욱 맹렬하게 불타듯이 구역의 사명감은 구역 식구들이 모일 때 더욱 타고, 구역장, 권찰 개인의 사명감은 사명감을 가진 자들과 만나 말씀을 나눌 때 더욱 뜨겁게 타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권찰 모임, 구역장 모임에 빠지지 않고 개근하여 공부해야 될 이유가 여기 있다.

 

과천교회는 구역장 모임을 두번 갖는다. 수요예배후, 금요일에 모인다. 그 구역장 금년부터 준비공부하는데 4주를 빠지면 해임을 하게 된다. 모임에 반드시 참석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연말에 가서 구역장 모임에 개근하게 되면 상을 주고 있다.

 

출처 : 산마을
글쓴이 : 시온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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