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론!! 집사! 권사! 장로! 교역자!

[스크랩] 교회 직분자의 자질

하나님아들 2013. 8. 23. 15:27

교회 직분자의 자질

 

본문: 디모데전서 3:1~ 16

 

최근 큰 도시에 있는 교인수 300명 이상의 교회 담임목사가 되려면 그 자격요건이 박사학위 소지자로서, 외국어 실력을 갖추고, 경력과 외모가 화려하고, 나이는 40- 50세 등의 까다로운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자가 쇄도한다고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지원한다고 하면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고려말 승려에게 병역과 세금면제 등의 혜택으로 승려 지원자가 많아지고, 불교가 타락하므로 조선 초기에는 숭유억불 정책을 썼는데, 오늘날 한국교회 성장의 장애요인을 저는 무엇보다 교회지도자의 자질 부족이라고 봅니다. 세상적인 자격요건으로 선택된 지금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삯꾼 목자와 소경된 지도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가 훌륭한 교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또는 훌륭한 교회 지도자를 선택하기 위해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조건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지도자는 일상생활에서 평상인 보다 모범적이고 흠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심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하였습니다. 즉 감독은 거룩하고 존경할 만한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할 뿐 아니라, 자기 가정을 믿음으로 잘 다스려야 하고, 믿지 않는 불신 사회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고,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올바로 교육시킬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 성경에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딛1:7-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도자는 정직하고 잘못을 즉시 회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같은 분은 그의 사생활에서까지 그 정직함으로 유명하고 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말씀을 드리면 그가 어느 때 서점으로부터 책을 빌려다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보는 중에 물을 엎질러서 한 쪽에 물이 좀 젖었어요. 물론 말렸지요. 그 다음에 이 책을 돌려줄 때 가서 그 책을 펴주고 "여기에 물이 젖었었는데 지금 말랐습니다만은 제가 이렇게 실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스스로 치뤘다는 거 아닙니까? 그 뭐 책에 물 좀 묻었다가 마르면 그만이지 뭐. 아, 접어놓으면 그만이지. 이걸 가지고 가서 여기에 물이 묻어 젖었었습니다, 라고 고백해야만 하는 그의 정직한 마음, 이것이 그의 지도력과 지혜와 용기에 근본이 됐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받은 목회학 박사 학위의 70% 이상이 엉터리 가짜라고 합니다. 외국의 박사 학위 장사꾼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가짜 박사 학위의 최고의 단골 고객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일부 대학교에서 가짜 박사학위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나는 대학에서 가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을 쫓아내듯이 교회에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목사' 보다 '박사' 칭호를 좋아하는 목회자들은 강단을 떠나야 합니다. 그런 목회자들로부터 목회자의 양심이나 목회의 정신을 찾는 다는 것은 한낮에 별을 찾는 것보다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 사무엘서에서 하나님이 인정한 위대한 지도자를 만납니다.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가리켜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고치고 역사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까? 다윗은 무엇보다 자신의 죄에 대해 정직했고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데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도 그렇게 깨끗한 지도자는 아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는 부하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을 하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그의 남편을 격전지에 보내 간접 살인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깨닫고 잘못을 시인하고 철저히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구차한 변명으로 자기 죄를 정당화시키지 않았습니다. 거짓으로 죄를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권력으로 죄를 무마하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새로워졌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목사나 교회 지도자에게 퍽 경고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천당문에 서서 천당으로 들어오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구원받은 무리를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얼마 후에 저 멀리 세상에서 목사였던 한 사람이 구원받은 무리에 끼어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이 너무너무 기뻐서 팔을 벌리고 쫓아 나가서 반가와 하시면서 목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성도들이 예수님께 불평을 하였습니다. "주님, 너무하십니다. 세상에서 목사와 평신도를 구별하시더니 아니 천당에 와서도 그렇게 구별하십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퍽 미안해하시면서 "얘들아, 참 미안하다. 그런데 내 마음을 좀 이해하여 다오. 사실 내가 지금까지 천당에 오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목사는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가 지금 이 사람이 처음이야. 그러니 내가 얼마나 반갑겠니?" 세상에서는 목사가 되어 일하고 교회의 지도자 일을 보지마는 예수님 앞에 서게 될 때는 어떨까? 하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 지도자들이 회복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덕목은 바로 정직과 회개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기의 부족함과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고 회개하려는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직시해야 합니다. 지난날의 잘못들을 함께 인정하고 함께 고쳐나가야 합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다 너희들 때문이다"라는 고집으로는 새로워질 수 없고 병든 사회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정직하고 겸손히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철저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가 될 때, 우리 사회와 교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셋째, 지도자는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한 단체의 성장은 지도자의 지도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 기독인들은 헌금과 십일조는 잘 바치는데 똑똑한 자녀를 하나님의 일꾼으로 바치는 데는 인색합니다. 우수한 자녀는 죄수나 환자를 다루는 법관이나 의사 시키려 하고, 열등한 자녀는 영적, 정신적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 보내고 있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을 성전의 모퉁이 돌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섭리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한국 기독교 발전에 암적 요소라고 봅니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성령충만과 함께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체험담입니다. 그 목사님은 학식이 풍부하기로 소문난 분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두 학교에서 마쳤고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자였습니다. 공부를 마친 그 분이 한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에 걸쳐 그 교회는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고 힘이 넘쳤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힘이 있고 다른 설교자에게서 들을 수 없는 새로운 것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교인들은 설교란 바로 저런 것이라고 감격하며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넘기 시작하면서 교회는 차츰 생명력을 잃어 가게 되었습니다. 강단의 설교는 아직도 해박한 지성과 학식을 담은 고상한 내용이 계속되고 있었으나, 교인들은 이제 더이상 감동을 받지 않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교인들도 거의 없었습니다. 2년이 지나고부터는 처음보다도 더 힘이 없는 교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 부흥의 장애 요소를 찾아 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목사님은 성경 말씀을 읽다가 어두워졌던 눈이 밝아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즉 말씀이 없는 학문과 지식의 전달과 윤리적인 교훈은 인간 지식의 지평은 넓혀 줄 수 있으나 결코 하나님의 생명을 줄 수는 없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넷째, 지도자는 겸손하고, 섬기는 자야 합니다.(눅22:23-27)

사사기9장 8절에서 15절에 나무들이 사는 나라에서 왕을 뽑는 얘기가 나옵니다.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그리고 포도나무에게 나무들이 왕으로 삼고자 차례로 찾아갔으나 모두 정중히 사양했으나 가시나무는 우쭐대며 폭언까지 해가면서 응했습니다. 군림하는 가시나무 같은 인물을 지도자로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낮아지고 섬기신 마음을 본받아 진정 모두를 섬기는 자세를 갖춘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해야 합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가치관을 생활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지도자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이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만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도자들은 남을 위하여 봉사하는 경험도 많이 축적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생활은 종교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육자도, 정치인도, 기업인도 누구를 막론하고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꼭 갖추어야 할 생활의식입니다. 권력을 얻고, 재물을 얻고, 명예를 얻기 위하여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섬기는 삶을 가져 보람있는 삶을 느끼기 위하여 공부도 하고, 정치도 하고, 연구도 하고, 행정도 하고 사업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7- 18)

 

다섯째, 지도자는 이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믿음의 형제를 위하여 밤낮 기도하며, 축복하고, 말씀을 통하여 믿음과 지혜를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봉사할 수 있도록 갖출 수 있게 해주고, 영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엡4:11-12) 참된 지도자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종이 되고 성도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요10:11-17)

 

여섯째, 지도자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중보자가 되어야 합니다.(출32:11) 신랑되시는 예수님께 신부 되는 정결한 처녀를 중매하는 중매자가 되어야 합니다.(고후11:2) 그리고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여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고 세상은 험해도 하나님만 믿는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일곱째, 교회 지도자는 말로써 설교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몇년 전에 나는 연극배우 친구를 가진 어느 목사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배우는 연극이 상연될 때마다 많은 관객을 끌었으며 목사님은 대조적으로 교회에서 몇 사람 되지 않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습니다. 목사님은 배우인 그의 친구에게 "자네는 관객을 많이 끌어들이지만 내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네. 그 이유가 뭘까? 자네 말은 꾸며낸 이야기이고 내 말은 불변하는 진리이기 때문일거야"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배우 친구는 "나는 꾸며낸 이야기를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네는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다네 " 하고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생활태도나 방식을 통하여 또는 주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행부족으로 진리를 꾸며낸 이야기로 알리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 18)

 

여덟째, 지도자는 앞을 내다보고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뱀이 있었습니다. 뱀의 꼬리는 언제나 머리에 맞붙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꼬리는 드디어 불만을 터트려 머리에게 대들었습니다. "어째서 나는 언제나 네 뒤에 맹목적으로 맞붙어 다니고 네가 언제나 나를 대신해서 의견을 말하고 방향을 정하느냐? 이건 아주 불공평하다. 나도 말이지 뱀의 일부인데 언제나 노예처럼 붙어다닌다는 것은 이야기가 좀 이상하다." 머리는 응수했습니다. "아니 멍청이 같은 소리 작작해라. 네게는 앞을 살펴 분간할 눈도 없고 위험을 탐지할 귀도 없고 행동을 결정할 두뇌도 없다. 나는 결코 나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너의 일을 생각하기에 언제나 너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꼬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그런 소리는 실컷 들었다. 어떠한 독재자도 어떠한 압재자도 모두 따르는 자를 위하여 하고 있다고 하는 핑계아래 제멋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머리는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네가 내 역할을 해보렴"했습니다. 꼬리는 기뻐서 이번에는 앞장서서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이내 수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머리가 갖은 수고를 다한 나머지 간신히 수채에서 기어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드디어 조금 나가니 꼬리는 가시투성이인 덤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꼬리는 애쓰면 애쓸수록 가시 속에 찡겨서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머리에게 구조되어 상처를 입으며 가시 수풀에서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꼬리가 또 앞장서서 나가니까 이번에는 불이 타고 있는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점점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머리가 필사적으로 구출하려 했으나 때는 늦었습니다. 몸은 태워지고 머리도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는 언제나 머리를 선택하고 이 꼬리와 같은 자를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지도자는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는 오늘의 변화를 수용하고 준비하는 자만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아홉째, 교회 지도자는 자기의 재능을 주를 위해 힘껏 사용하여 교인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이스라엘에 가보면 유다 광야에서 목자와 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에서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목자는 양보다 앞서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일단의 양떼를 만났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양 앞에는 아무도 없고 뒤에 한 사람이 따라올 뿐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저 사람이 목자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은 목자가 아니고 장사꾼입니다. 시장에서 양을 사다 도살해서 파는 장사꾼이죠” 자세히 보니 장사꾼은 막대기를 든 채 양들의 뒤를 좇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목회 현장에서 자주 묻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나는 지금 양 앞에 가는 목자인가, 뒤에 따라가는 장사꾼인가?” 요한복음 10장 4절 말씀은 목회자들의 리더십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목자는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 음성을 아는고로 따라 오되” 말씀대로 목자는 양보다 앞서가며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목회자의 목양적 사명과 리더십은 분명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말대로 목회자는 하늘로부터 목회 지도력을 받고 평신도는 그 사역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특권은 언제나 책임을 동반합니다. 목자가 양 앞에 간다는 것은 특권이지만 양들에게 무엇인가 보여주면서 앞서가야 한다는 점에서 커다란 책임입니다. 가끔 교회안에서 제자 훈련이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자 훈련을 보고 배우게 하지 않고 듣고 배우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성도들이 잘못하는 것은 대개 목회자들이 잘못하는 것임을 목회자들은 고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도들이 헌금을 안 하면 대개 목회자가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자기노출을 안 하면 대개 목회자가 숨기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예배를 잘못 드리면 대개 목회자가 예배를 잘못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라”고 말하지 않고 “나를 따르라”고만 소리치는 리더십은 예수님이 가르친 리더십이 아닙니다. 존 맥스웰이 말한 것처럼 “리더는 자기가 가는 길을 알고 그 길을 가고 또한 그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양들은 오늘도 보고 배울 수 있는 목자를 따릅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5:3)

 

목회자도 설교자이기 전에 예배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설교자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하며 예배하면 그 모습은 성도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어 더욱 큰 감동을 주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설교자의 삶과 예배의 모습 자체를 메시지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마가 다락방에서 120여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임재를 맛본 후 복음을 역동적으로 전하여 삼 천명을 구원시켰습니다. 설교자이기 전에 성도들과 함께 성령의 임재를 기다린 예배자였던 베드로에게 성령께서 임하시자마자 복음이 놀랍게 선포되고 폭발적인 영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펜사콜라 브라운스 빌 교회의 담임 킬 페트릭 목사는 예배시간에 성도들과 한데 어우러져서 다윗과 같이 역동적으로 춤을 추며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다윗은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법궤가 돌아올 때 심지어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야웨 앞에 뛰놀며 찬양했습니다.(삼하 6장). 다윗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는 항상 그 어느 누구보다 앞섰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 하는데에 있어서는 항상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여호와 앞에서 뛰놀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나아가는 자기의 예배를 빈정대는 아내 미갈에게 그 보다 더 천한 여김을 당할 지라도 내가 야웨 앞에서 뛰놀겠다는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늘 참된 예배자로 있었던 다윗의 때에 이스라엘이 가장 강한 나라를 이루었다는 것을 지도자들은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자신이 설교할 때 성도들에게 찬송도 뜨겁게 하고 아멘도 크게 하라고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이 그다지 역동적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계집종들과 신하들 앞에서 천히 여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찬양하리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순수한 예배자로 나아간다면 부흥은 더욱 앞당겨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찬양뿐 아니라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에게 전도하라고 강조하기 전에 자신의 재능을 다 사용하면서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열 번째, 지도자는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단순히 설교나 잘하고, 교인 숫자나 늘리고, 교회건물을 아름답고 크게 짓는 외형적인 성장만 꿈꾸고 있다면 그는 소경된 지도자입니다. 참 교회 지도자는 모든 성도에게 주님이 주신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충만히 줄 수 있는 비전을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하며, 지도자는 목표를 정하고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지도자는 찾아보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저마다 자신이야말로 참된 지도자라고 소리를 내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속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참된 지도자는 오직 주님에게 속한 자여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에게만 충성스러운 자가 참된 지도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주님의 의해 인정받는 지도자들이 되시고, 참된 지도자를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게 어느 날 후배가 찾아와 “어떤 목회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경건한 사도가 되어야지.” “영성을 제외한 실제 목회 생활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마르틴 루터는 수첩을 꺼내 거기에 적혀 있는 ‘자기 신조 10가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1) 목회자는 쉬운 말로 설교하고 질서있게 가르쳐야 한다.

2) 훌륭한 머리가 있어야 한다.(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한 종합적인 사고가 있어야 한다)

3) 분명한 발음 등 언어사용에 능숙해야 한다.

4) 좋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진실한 목소리, 설득력있는 목소리를 갖춰야 한다)

5)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6) 그만 둘 때를 알아야 한다.

7) 자기가 하려고 하는 말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

8) 진실을 위해 몸, 영혼, 재물, 명예를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9) 부지런히 공부해야 한다.

10) 고난과 비난을 참고 견뎌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자질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모세를 도와서 사역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출18:21, 25) 여기서 규정하고 있는 자격 요건은

첫째, 재덕이 겸전한 자

둘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

셋째, 진실한 자

넷째,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청렴결백한 자이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실례를 보면 초대교회에서 최초로 일곱 집사를 뽑을 때 구비요건은

첫째, 믿음이 충만한 사람

둘째, 성령이 충만한 사람

셋째, 지혜가 충만한 사람‘넷째, 칭찬 듣는 사람이다.

본문 딤전3: 1- 13과 디도서 1장 6- 9절에 나오는 직분자의 자격요건은

1.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한다.

2,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3.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4. 근신할 줄 알아야 한다.

5. 아담해야 한다.

6.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알아야 한다.

7.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

8. 술을 즐기지 않아야 한다.

9. 제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

10. 급히 분내지 말아야 한다.

11. 구타하지 말아야 한다.

12. 다투지 않아야 한다.

13. 관용할 줄 알아야 한다.

14.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15. 자기 집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16.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한다.

17. 선을 좋아해야 한다.

18. 의로워야 한다.

19. 거룩해야 한다.

20. 새로 입교한 자가 아니어야 한다.

21. 모든 일에 충성해야 한다.

22.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한다.

 

얼마 전, 한 목회자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교회가 평소에는 참 은혜로운데, 새로운 장로를 뽑고 임직식을 거치면 교회가 한동안 어려움을 겪습니다.” 교회의 일을 위해 누군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교인들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특정교회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도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자 하는 일꾼들을 세우는 일에 더 많이 기도하고, 축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간혹 교회는 오늘 성경에서 말하는 자격기준에서 벗어난 세속적인 사람을 세우거나, 세상적인 지위나 학벌, 개인의 이해관계를 따라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선택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교회공동체를 파괴하고 맙니다. 교회의 직분을 맡는다는 것은 개인의 명예도 아니요, 신분상승은 더더욱 아닙니다. 건강한 교회는 올바로 세워진 직분자들의 기도와 봉사로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세우는 일에 더 많이 기도합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직분자들을 세웁시다. 그럴 때 그 일이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제가 될 줄로 믿습니다.

 

* 기도: 준비되어진 지도자를 쓰시는 하나님, 주님을 본받아 참 목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을 향한 저의 봉사가 참된 섬김이 되게 하시고 늘 자신을 감추는 법을 훈련하게 하소서. 주님 안에서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언제나 겸비한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주께서 쓰시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에 주의 도우심을 얻게 하소서. 선한 목자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리더십에 예수님과 같은 선한 목자의 리더십이 있게 도와 주시옵소서.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당신께서 합당히 여기는 자들을 직분자로 세울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주소서. 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교회에는 축제가 되게 하소서 이 땅에서 겸손하게 섬기는 삶을 사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한태완 목사

 

덧글 쓰기 엮인글

선교자료모음(어머니) 부모, 어머니

2013/05/26 05:46

복사 http://blog.naver.com/allcome/130168905306

전용뷰어 보기

선교자료모음(어머니)

 

어머니의 닭볶음탕

 

오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어머니가 닭볶음탕을 끓여주셨다며 자기는 안먹는다고 질색하더군요. 전화를 끊고 나서 영문 모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안 계십니다. 병환으로 저와 누나를 남겨두고 5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실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학교와 직장으로 따로 집을 얻어 살았고 바쁜 생활 때문에 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꾸만 떠오르네요. 부엌 한쪽에서 압력밥솥이 칙칙 달아오르는 소리를 내면 어머니께서 도마 가득 음식재료를 놓고 써는 소리가 들렸어요. 제 방에서 그 소리를 들으면, 어딘가 포근하고 즐거워졌습니다. 어머니께서 항상 저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가장 잘 하시는 요리는 닭볶음탕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맛을 다시 맛볼 수는 없겠지요.

- 김상혁 (새벽편지 가족) -

 

생각만해도 가슴 저미는 이름... 어머니는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당신은 어머니가 만들어준 그리운 음식이 있나요

 

기침

 

몸살감기가 심했던 어느 날, 아내는 아이들과 친정에 가 있었고, 혼자 감기와 싸워야 했습니다. 겨우 일어나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려고 주방으로 갔습니다. 컵을 찾다가 난장판이 되어 있는 주방을 보고는 하는 수 없이 천근만근 무거운 팔을 움직여 설거지를 했습니다. 주방을 정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식탁에 앉고 나니 비로소 참을 수 없는 두통과 기침이 온 몸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순간, 이렇게 힘든데 혼자 있는 게 서글퍼 아내에게 문자를 보내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누워 떠오른 생각은 어릴 적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상이었습니다. 당시에도 어머니는 아마 저와 비슷한 감기였을 겁니다. 그리고 상을 차리시는 내내 기침을 심하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반찬을 식탁에 내려놓으실 때 어머니는 기침을 참지 못하고 음식 위로 몇 번의 기침을 하셨습니다. 그때 제 기억으로 못난 아들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 참, 손으로 가리던가 하지.”

어머니가 음식을 내려놓느라 손으로 가릴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미안해…….”

그리고 텅 빈 방에 누워 감기 때문인지 모를 아픔으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움직인다면 그 힘의 90%는 우리 어머니들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류 완 / 사랑의 편지 집필위원

 

하늘은 죽고 땅은 살고

 

지리산 반달곰의 야생 방목은 국민들의 지대한 관심이었다. 그런데 겨울잠을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반달곰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반달곰이 탈진해 죽은 것이다. 30% 정도의 체중 감소와 탈진이 주 원인이었다. 그런데 반달곰 곁에는 4마리의 새끼 곰이 살아있었다. 지난해 도토리의 작황이 좋지 않았다. 모든 야생동물의 겨울나기가 힘겨운 절대빈곤의 겨울이었다. 이 반달곰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던 듯했다. 적은 양의 양식으로 어머니 반달곰은 새끼들을 위해 아예 금식을 했던 것 같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 이 숭고한 모성애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것이다. 인간사에도 농경사회에서 흔히 나누는 속설이 있다. “흉년이 되면 어미는 굶어죽고 자식은 배 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사랑의 자기 권익 포기 근성이 가장 강하고 승고한 분은 어머니다. 그래서 흉년이면 어머니는 밥을 드시지 아니하시고, 자녀들과 남편과 집안의 어른들을 드렸던 것이다. 흉년의 보릿고개를 지나게 되는 생명줄은 어머니의 희생이었다.

밥을 푸는 주걱을 쥔 자는 자기 밥을 먼저 챙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절망하는 이유는 주걱 잡은 자가 먼저 퍼 가는 밥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이 어찌 절대 진리가 아니겠는가. 죄인인 나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이를 역설적으로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라고 되뇌고 있다. 하늘이 죽고 땅이 사는 이 초차원은 사랑의 부활을 이루신 것이다.

/윤대영 목사(부천 처음교회)

 

어머니 같은 하나님

 

한 아이가 깊은 우물에 빠졌다. 아이는 작은 나무토막을 붙잡고 견뎠다.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그때 아이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엄마를 불러줘요. 엄마는 언제 오나요.”

어린이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다. 우물 속 흑암의 공포 속에서도 오직 엄마에 대한 희망과 믿음의 끈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다. 아이는 엄마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느 마을의 놀이터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해가 저물자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데리러 나왔다. 어떤 어머니는 창문을 열고 자녀의 이름을 부르며 귀가를 독촉했다. 한 소녀는 밤이 늦을 때까지 놀이터에 남아 있었다. 그를 불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외로움과 두려움에 몸을 떨며 어둠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머니의 정다운 음성…. 그 음성보다 더 안도감과 신뢰감을 주는 것은 없다. 언제나 손닿는 곳, 음성이 들리는 곳에 엄마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아이에겐 두려움이 없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신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외침에 속히 응답하신다. 마치 자상한 어머니처럼….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 주는 신뢰감이다.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어머니와 자석

 

어머니는 모두 위대하다. 하나님은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과 가장 닮은 존재인 어머니를 어린이 곁에 머물게 했다. 이 세상에 추한 어머니는 없다. 어머니는 모두 아름답다. 링컨은 어머니 낸시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성장했다. 나중에 링컨은 말했다. “통나무집 구석구석에 온통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깔려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은 ‘아들아, 항상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라’였다.”

성 어거스틴은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에 무릎 꿇고 방탕한 삶을 청산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18명의 자녀 하나하나를 마치 무남독녀처럼 귀하게 교육시켰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의 최고 스승은 어머니였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의 위대한 능력을 배웠다.”

미국의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과학시간에 문제를 냈다.

“이것은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졌다. M으로 시작하는 여섯 글자의 단어다. 모두 종이에 그것을 적어 내라.”

정답은 ‘자석(Magnet)’이었다. 그런데 단 한 명도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아이들이 모두 적어낸 것은 ‘어머니(Mother)’였다.

어머니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어머니의 사랑은 반딧불처럼 작은 희망의 불빛만 있어도 참고 기다린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이야 오죽하랴.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아흔여섯살 어머니가...

 

아흔여섯의 어머니가 "엄마, 나 어떡해! 너무 아파!" 하시며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찾으시던 밤, 일흔두 살의 딸은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란 이름은 아흔여섯의 할머니도 애타게 찾는 영원한 그리움이다.

- 어머니 홍영녀, 딸 황안나의 <엄마, 나 또 올게>중에서 -

 

*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에 산다고 합니다. 마음이 안 좋을 때나 몸이 건강하지 않을 때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서 찾는 것은 자식된 사람으로서 누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따라 이 글을 읽으면서 왜 이리도 눈물이 앞을 가릴까요? 살아계신 부모님께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안부의 전화를 좀 더 해야겠습니다.

/류인수(고도원의 아침편지)

 

* 출처 및 자료제공: 한승진 선교사(http://blog.naver.com/jfocus)

덧글 1 엮인글

주제별 추가 자료편(성도, 그리스도인) 제자, 군사, 성도

2013/05/25 09:14

복사 http://blog.naver.com/allcome/130168851083

전용뷰어 보기

주제별 추가 자료편(성도, 그리스도인)

 

▣ 칼리마 신자

 

죽은 잎사귀’로 불리는 칼리마(Kallima)라는 나비가 있다. 왜 죽은 잎사귀로 부르는가. 이 나비가 날개를 펴고 있을 때는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인다. 날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왕관을 쓴 여왕의 자태처럼 우아하다. 그러나 날개를 접으면 누런 색깔의 흉물스러운 곤충에 불과하다. 그 모습이 마치 썩은 나무 잎사귀와 흡사하다. 날개를 펴고 접는 것에 따라 그 인상이 완전히 바뀐다.

오늘 칼리마와 같은 교인이 많다. 주일날 교회에서는 온유하고 친절한 크리스천으로 불린다. 기도도 잘 한다. 언행도 공손하고 부드럽다. 화려한 총천연색 신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가면 죽은 잎사귀 신자로 돌변한다. 가정에서는 무뚝뚝하고 권위적이다. 회사에서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다. 날개를 접은 칼리마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람들이 교회에 처음 나오는 것은 기독교 교리 때문이 아니다. 교인들의 진실한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성경 말씀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교인들의 이중성과 누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시작과 끝이 일치해야 한다. 이중적인 인생을 사는 교인은 스스로도 불행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교회에서 떠나가게 만든다. 전도의 방해꾼이 된다. 그대는 혹시 칼리마처럼 이중성을 가진 ‘나뭇잎 크리스천’은 아닌가.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그리스도인의 권위

 

그리스도인들은 D-day와 V-day 즉 '이미(already)'와 '아직(not-yet)' 사이라는 영적 현실 가운데서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현실을 다음과 같이 예화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점점 세력이 팽창하던 악한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가 그 왕국 본부에 거대한 폭탄이 떨어졌습니다(d-day). 그 본부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 왕국의 잔당들은 산으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잔당들은 게릴라를 조직하여 산속에 살면서 배가 고프거나 물자가 떨어지면 평화롭게 사는 도시에 내려와 선량한 시민들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한 왕국의 왕자가 다시 나타나 이 잔당들을 완전히 소탕하여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깊은 옥에 감금시켜 버렸습니다(v-day)."

사탄은 산 속에 숨어 사는 게릴라와 같이 기회만 있으면 도시와 같은 복잡한 인간의 마음에 침략하여 쑥밭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엡 6:10,11)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빛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신분을 올바로 정비함으로써 사탄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는 권위를 소유하게 됩니다.

예배와 삶 / 김진호

 

세 가지 유형의 크리스천

 

본문 :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크리스천들은 대부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① 베드로형입니다. -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지만 정작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는 예수님을 3번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열정적이지만 나약한 인물입니다.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고, 얻은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심이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② 룻의 아내형입니다. -멸망해가는 성을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교회에 몸을 담고 있지만, 또한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형입니다. 이런 유형은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과 궁합같은 미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러 다닙니다. 새로운 직분을 받거나, 교회를 얼마 다니지 않은 신자의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런 과정을 겪지만 또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정이기도 합니다.

③ 바울 형입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적대적인 사람들이 회심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유형은 ‘사람이 완전히 변했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으며, 아무런 미련 없이 지난 삶을 청산하고 주님께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유형들은 인물의 한 특징만 강조했기에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 위치와 신앙의 문제점을 파악함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형에 있든지 약점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과정으로 삼으십시오.

* 기도: 주님! 하나님과 더 가까이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게 하소서!

* 묵상: 신앙생활의 단점을 발판 삼아 더 성장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너 믿음의 사람아!

 

본문: 디모데전서 6:6~ 21, 찬송 350장 (통 393장)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 6:12)

 

오늘 본문은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선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달리 말하면 소박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영심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사회적 성공·많은 재물·멋진 승용차·명품가방 같은 것들을 확보하고자 애를 씁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는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한 줄 알라고 말입니다. 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므로 그것을 탐하면 결국 올무에 걸려 넘어진다고도 경고합니다(10절).

그런데, 하나님을 따르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의 허영심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돈 많은 부자를 부러워하고, 세상적 출세를 목표로 살고 있다면 이제 그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에게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후하게 주시며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만 두어야 합니다(17절). 그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15절).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하며 그분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은 또 이렇게도 말합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11∼12절).”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 한다면, 믿음의 선한 싸움에 항상 참여하고 있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워야 하고, 이겨야 합니다. 마귀의 궤계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11절)”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14절)”는 말씀을 매순간 기억하며 삽시다.

 

* 기도: 하나님, 우리가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울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하소서. 아멘.

/가정예배

 

* 갈릴리 공동체 (http://blog.naver.com/allcome)

http://cafe.naver.com/newgalilee

 

덧글 1 엮인글

선교자료모음(손, 팔) 지체, 몸, 손발

2013/05/24 15:23

복사 http://blog.naver.com/allcome/130168807111

전용뷰어 보기

선교자료모음(손, 팔)

 

도움의 손길

 

이웃사촌이란 말이 무색해진 요즘시대에 한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곳곳에서 온정의 손길이 나타났습니다.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녀가 유산까지 삼촌 부부에게 모두 빼앗기고 학대까지 받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리자, 그 사연을 보고 각지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서울의 한 변호사는 아버지의 보험금과 유산을 찾을 수 있게 소송을 걸고 삼촌의 친권을 상실하는 법적 절차까지 무료로 대행하겠다고 나섰고, 아버지의 군대 동기라는 한 중령은 친딸처럼 키우고 싶다며 입양을 제의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을 통한 지원 방법을 경찰청을 통해 문의하자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안타까운 소녀를 돕겠다는 사람들을 보니 세상이 각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번 일로 상처를 많이 받았을 소녀가 시련을 꿋꿋이 이겨내도록 좋은 후견인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세상엔 안 좋은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이미 일어난 불행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 불행들을 보듬고 치료하는 일들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강도만난 사람을 도운 선한 사마리아인이 됩시다. 이미 일어나 어쩔 수 없는 일에 분노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그 불행이 일으킨 상처를 싸매고 치료하는 것에 신경 쓰고 노력하십시오. 주님, 아픈 자를 보고 치료해 준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주소서. 어쩔 수 없는 일에 분노하지 말고 그것을 회복시키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빈 손의 의미


정호승 님의 산문집에 있는 글의 일부입니다.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 동안 나의 빈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당신의 손을 보십시오. 당신은 어떤 손을 하고 있습니까? 다른 손을 잡을 수 있도록 당신의 손은 언제나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고 따뜻하게 데워져 있길 소망합니다.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생명의 소망을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십시오.

* 기도: 주님, 꼭 쥐고 있는 손을 펴서 빈손으로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게 하옵소서.

* 묵상: 당신은 손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쥐고 있습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주님이 찾는 손

 

주일마다 양팔이 없는 성도를 만난다. 악수를 하려고 해도 내가 내미는 손을 잡을 수 없다. 그는 머리를 감고 빗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화장실에서도 청결행위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깨끗한 옷과 단정한 머리를 하고 명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성도 뒤에는 말없이 동행하는 아내의 헌신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아내의 사랑의 수고는 다정한 부부애를 누리게 하는 또 하나의 누림이며 행복이다. 이처럼 손은 마음과 힘이 환경과 사람에게 전달되는 아주 소중한 부분이다. 섬김과 나눔의 손으로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어 사랑을 느끼게 해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지금도 주님은 고아와 과부와 병자를 돌아 볼 거룩한 손을 찾고 있다. 주님의 선한 손이 되면 필경 세상의 빛과 소금 된 헌신으로 지상과 천상의 예비된 큰 상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9)

/권태진 목사(군포제일교회) <국민일보/겨자씨>

 

손을 내미는 사람

 

지난해 여름, 부다페스트 서부역으로 사역을 나갔을 때 일이다. 예배를 드린 후 서부역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때 역전 계단 한편에 노숙인 아주머니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곳이라 덥고 뜨거울 텐데 미동도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는 분이었다. 1년 전 급성 간경변증으로 얼굴뿐 아니라 안구까지 짙은 황달이 와서 생명까지 위태로웠던 아주머니였다. 흔들어 깨우니 눈을 뜨고는 바짝 마른 입술로 겨우 말을 했다. "물 좀 주세요!" 구급대에 전화해 도움을 청하고, 병원으로 후송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부역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노숙인 아주머니보다 건강하고 부요하게 사는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지나다닌다. 그 중에는 그리스도인도 있었을 것이다. 한눈에 보아도 깊은 병이 든 사람임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관심을 갖는 이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 중에 소외된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예수의 사람은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마땅히 베풀어야 할 사람을 베풀지 않는 손이라면 그 손은 이미 말라 버린 손이다.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사는 우리 모두가 배고프고 서러운 사람들에게 영의 양식과 더불어 육의 양식을 나누기 위해 기꺼이 손을 내미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신성학 - 한 뭉치 무화과 -

* 금언: 기도 생활만큼 그리스도인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은 없다. - 마틴 로이드 존스 -

 

▣ 손의 유형

 

손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큰손이 있다(고후 8:2; 눅 6:38). 큰손이란 봉사를 잘하는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로써 이러한 사람은 남을 대접할 때나 봉사할 때 힘껏 한다. 그렇기 때문에 큰손을 가진 사람은 이웃이 많고 존경을 받게 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게 된다.

둘째, 작은 손이 있다(고후 9:7). 작은 손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인색한 사람을 말하는데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을 때도 적게 받는다.

셋째, 검은 손이 있다(요 12:6). 검은 손은 강도, 절도범, 사기꾼, 날치기, 쓰리꾼 등 의 손을 말한다.

넷째, 피묻은 손이 있다(사 59:3). 피묻은 손이란 다른 사람들을 살상한 사람의 손을 말한다.

다섯째, 주먹을 쓰는 손이 있다. 주먹을 쓰는 손이란 폭행하는 사람의 손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 내 손을 잡아주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스마트 박사가 경함한 이야기다. 하루는 사고로 눈꺼풀이 크게 찢어진 어린 딸을 아버지가 안고 황급히 응급실로 들어왔다. 스마트 박사는 소 소녀의 상태를 살핀후 그녀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찢어진 곳을 몇 바늘 꿰매야 하는데 따님은 마취를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스마트 박사는 소녀에게 "내가 바늘로 상처를 꿰맬 때 참고 뛰쳐나가지 않을 수 있겠니?" 하고 물었다. 이때 소녀는 "아빠가 내 손을 분들어주면 뛰쳐 나가지 않을래요."

하고 대답했다. 이 소녀는 아빠가 잡아주는 손에 매달려 상처를 꿰매는 동안 아픔을 참으며 한번도 몸부림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이 그 딸에게 어떤 힘을 준 것일까. 아버지가 손을 잡음으로 상처를 꿰매는 횟수가 줄어들거나 아픔이 줄어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손을 잡음으로 용기를 얻게 되고 참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 원치 않는 환난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또한 역경으로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낙심하지 않는 것은 우리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다.

 

▣ 저는 손이 없습니다

 

어떤 신사가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다. 마침 앞좌석과 옆 좌석에 앉은 일행이 포커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한참 재미있게 놀던 이들이 여행 중에 있는 신사에게 같이 포커 놀이를 하자고 제의했다. 신사는 "죄송합니다. 저는 손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어리둥절하게 생각한 이들은 멀정하게 움직이며 말하는 신사의 손을 보며 의수(義手)냐고 물었다. 신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건강한 손입니다."라고 하고는 "그러나 이 손은 내 손이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다. 더욱 궁금해진 그들은 사연을 물었다. 신사는 그때 이 손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 빈손

 

이 세상에 나누지 못할 만큼의 가난은 없다. 양 손에 더 많은 것을 움켜쥐는 것도 좋지만, 한 손 쯤은 남을 위해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 나누고 난 빈손엔 더 큰 행복이 채워진다. 움켜진 손은 누군가에게 빼앗길 수도 있지만 빈손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손은 빈손이다.

- 여훈의《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최고의 선물》중에서 -

 

* 많은 사람들이 '빈손'을 두려워 합니다. 그래서 채우기에 급급하고 채워도 늘 모자라 합니다. 그러나 한 번 쯤은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채우는 것부터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부터 시작하는 생각의 전환...

그로부터 사람이 바뀌고 삶이 바뀝니다. '가장 크고 따뜻한 손'을 갖게 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손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에는 이와는 반대로 두 손을 펴고 죽는다. 왜 그럴까? 이것은 태어날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움켜잡아 가지고 싶기 때문이고, 죽을 때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내주어 빈 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탈무드

 

▣ 할머니의 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할머니 품에 남겨졌습니다. 공사판을 떠돌며 생활비를 버느라 허덕이는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할머니는 산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뒤 밤이 하얗게 새도록 할머니는 그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나는 할머니 없는 빈 집이 싫었고, 할머니가 캐오는 산나물이 너무 싫었습니다. 숙제를 다하고 나면 으레 손톱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밑의 까만 물을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선생님께서 " 토요일까지 부모님을 다 모시고 와야 한다, 다들 알겠지?" 모시고 갈 사람은 할머니 뿐인데.....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허름한 옷, 구부정한 허리, 손톱밑의 까만 땟국...... 무엇보다 선생님이 할머니 손톱밑의 까만 때를 보는게 싫었습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오시래요"

하는 수 없이 내뱉긴 했지만, 너무 속상해서 저녁도 굶은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하..할머니!!"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지영아,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울음이 터져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아드린 할머니의 손은 퉁퉁 불어 새빨간 상처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초라한 할머니를, 특히 할머니의 손을 부끄러워 한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에서 피가 나도록 말입니다.

 

▣ 주님의 손길로 치유

 

성경: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 진지라"(마8:3)

 

중국 외교부 관리를 역임한 90대 노인이 뼈의 질환으로 심한 고통을 겪다 못해 중국 지도부 앞으로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너무 아파서 앉지도 눕지도 못합니다. 잇몸질환으로 이가 모두 빠졌습니다. 청력도 없었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발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안락사를 시켜 주십시오." 그러나 중국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이기 때문에 지도부는 그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낙심한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살하기 위해 침대에서 여러 번 떨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안락사를 요구한지 14개월만에 심한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영혼들이 상한 육체를 부둥켜 않은 채 울부짖고 있습니다. 아무리 발달한 것 같은 의학도 무용지물일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그 곳에 예수님의 손길이 임했습니다. 그 손길은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했습니다. 오늘도 상한 영혼과 육체를 안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친히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능력 있는 주의 손길을 꼭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주님을 통해 육과 영의 치료를 받게 하소서

 

▣ 선생님의 손

 

추수감사절 날, 초등학교 여교사가 1학년 학생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대상을 그려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여교사는 미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에 사는 그 아이들이 과연 감사하게 여길 대상이 있을까 의문을 가졌다. 아마도 식탁에 차려진 칠면조나 맛있는 음식들을 그릴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런데 더글라스가 내미는 그림을 보고 여교사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엔 어린 아이의 필체로 단순한 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의 손일까? 더글라스의 그림을 보고 아이들은 나름대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그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준 하나님의 손이 틀림없어요."

다른 아이가 말했다.

"그건 농부의 손이에요. 칠면조를 기르니까요."

마침내 여교사는 더글라스의 책상으로 다가가 그것이 누구의 손을 그린 것인가를 물었다. 더글라스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이건 선생님의 손이에요."

그러고 보니 여교사는 쉬는 시간마다 가난하고 버림받은 더글라스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곤 한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종종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더글라스에게는 그것이 매우 큰 의미를 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추수감사절의 의미이리라. 우리에게 주어진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아무리 작은 방식이라도 누군가에게 베풂을 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참다운 감사인 것이다.

 

▣ 구제의 손

 

성경: 잠11:25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손을 가진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습니다. 고위관들은 제각기 부원군이 되려고, 딸의 손이 곱게 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 손으로 해야 할 일은 도무지 시키지 않았고 예쁘게 가꾸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 아름다운 소녀가 무엇 때문인지 아파서 어쩔 줄 모르고 애쓰는 불쌍한 말을 보았습니다. 말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듯 그 소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소녀는 보드랍고 흠없는 자기의 고운 손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운 마음씨는 고운 손을 생각치 않고 발버둥치는 말을 조사한 다음, 다리에서 큰 가시를 빼어 주었습니다. 그러느라고 소녀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여기저기 긁혀서 가질 수 없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왕자는 짝을 고르는데, 이 소녀의 손을 보고 사연을 듣고는 그 소녀를 택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을 치장하고 화장하는 고운 손에 비한다면, 남을 도와주느라고 더러워진 거친 손이 얼마나 더 귀하고 아름다운가! 선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오늘도 날을 도와주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태승 목사

 

▣ 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

 

크리스마스를 맞아 멀리 살던 아들딸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밤이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던 끝에 누구 손이 제일 예쁘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며느리와 딸들은 저마다 이 손이 예쁘다, 저 손이 예쁘다고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결국 투표로 결정하자고 했습니다. 누구의 손이 제일 예뻤을까요? 결과는 압도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주름지고 손마디가 굵어진 어머니의 거친 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사랑의 수고를 많이 한 손이야말로 제일 예쁜 손이 아닐는지요.

/ 여운학(지하철 사랑의 편지)

 

▣ 세 가지 손(가위, 바위, 보)

 

사람은 평생 동안 세 가지 손을 가지고 산다. 세 가지 손의 모습은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징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바위손(주먹을 쥔 상태)을 가지고 온다. 무엇인가를 손안에 꼭 쥐려고 하는 모습이다. 세상 것을 자기 것으로 삼고자 하는 자기 본위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소유욕이 강하다. 그러나 조금 자라게 되면 두 손가락을 펴는 작업(가위손)을 한다. 조금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내 것을 나누어주는 태도의 표시이다. 그러나 아직도 세 손가락은 자기를 향해 쥐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 높다는 표시이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사람은 손을 활짝 펴는 것이다(보의 손). 이는 내 것은 하나도 없다는 표현이 되겠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일 뿐이다. 삶의 지표를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만을 향하여 손을 내어 미는 상징이다. 그래서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는 것이다.

 

▣ 예수님의 손

 

미다스(Midas)는 그리이스 신화의 인물로 소아시아 프리기아국의 왕입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가 그에게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자기가 만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그러나 그는 곧 후회하게 됩니다. 먹을 음식과 물까지도 금으로 변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이 마법에서 풀려나려면 팍톨루스강에서 목욕해야 한다고 가르쳐줍니다. 그가 목욕을 하고 나자 그 강의 모래가 모두 금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금이 아무리 좋아도 너무 흔하면 쓸모없게 됩니다.

세상에는 흔하고 보잘 것 없지만 금보다 귀한 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이 그렇고 공기가 그렇고 음식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손은 미다스의 손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만지시면 가장 좋은 상태로 돌아갑니다. 병들지 않고 불편하지 않던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치시는 것은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주님의 손길

 

본문: 시139: 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가이드포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내가 여섯 살 때 우리는 오클라호마 시에 살았는데 동네에서는 언제나 밤이면 문을 잠그고 빗장을 질렀습니다. 뒷문으로 나가기 위해서 아버지는 안에서 질러진 빚장을 열기 위한 특별한 열쇠를 가지고 다녔다. 어느 날밤 나는 천둥과 번개 소리와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갑자기 잠이 깨었다. 복도를 지나 부모님이 계시는 방으로 달려가는데 거실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와 불길 때문에 갈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이 벼락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 불길 때문에 앞문으로 갈 수 없었고 뒷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습니다. 공포가 엄습해오려 할 때에 난 어둠 속에서 따스한 아빠의 손이 복도 아래로 날 이끌어 뒷문을 통해 뒷마당으로 인도해주어 저으기 안심이 되었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 서 있는데 그분은 손을 놓고 사라져 갔습니다. 겁이 난 나는 집을 향해 되돌아섰습니다. 그때 엄마가 "메이시! 메이시!"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엄마! 여기 밖에 나와 있어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내게 달려왔고 우린 함께 집 앞으로 갔는데 거기에는 아빠가 아기 동생 켄트와 세 살짜리 여동생 에이미를 데리고 서 있었습니다. "메이시, 무사했구나"하고 인도의 한숨을 쉬며 아빠는 말씀하셨습니다.

"널 데리러 가려 했는데 불길 때문에 건너갈 수가 없었어."

아빠는 나를 복도로 이끌어 주지 않았고 뒷문에 질러진 빗장을 열어주지도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가 벌써 12년 전의 일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지내오는 동안 그때 나를 인도해주었던 그 손의 따스한 감촉을 잊지 못합니다. 그 손은 오늘도 어둠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십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주님의 손

 

밀림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는 철학, 신학, 음악, 의학의 네 개 부문에서 박사이다. 참 훌륭한 분이다. 그 분이 아프리카 원시림에 가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위해 봉사하는데, 여기를 방문했던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같이 훌륭한 사람이 이렇게 고생스럽게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지 않은가? 얼마든지 명예스럽게 화려하게 살 수 있는데 하필이면 왜 그런 데 가서 그 고생을 하고 사느냐 - 이상할 수 밖에. 그는 대답하다. "나를 그렇게 안쓰럽게 보지 마십시오. 주님의 손이 되어 일한다는 것이 알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 그렇다. 주님의 손이 되어 일한다는 것, 그 얼마나 귀한가?

/곽선희 목사 설교예화

 

▣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손은 우리를 구원하고, 용서하고, 돌보고 지켜주시기에 넉넉하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질 찰나에 경고하신다. 비록 죄에 빠지더라도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워 깨끗하게 하시고, 전보다 더욱 축복하신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확신하고 그 분의 손길 안에서 안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손길 안에 안식하라. 그곳은 궁극적인 만족과 축복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맥 브룬슨의 ‘당신이 찾던 하나님’ 중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서도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는 우리에겐 두려움이 없습니다. 주님의 손이 이끄시는 그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하여도 생명의 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붙들린바 된 그 순간부터 주님 앞에 설 그 날 까지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일

 

이른 아침에 교인을 치료하는 의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그녀의 임종을 지켜 주기로 약속했었다. 나는 요양원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조그만 몸집의 그 여인이 교인들에게 베풀었던 봉사를 낱낱이 되새겨보았다. 개인적으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찾아다닐 수 없게 된 이후에도 그녀는 카드와 편지를 계속해서 보냈다. 그녀는 임종을 맞기 전까지 문자 그대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바쳤다. 그런데, 그토록 희생적인 나의 친구가 지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사를 찾았다. 나는 그녀의 침상 곁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서 그녀의 깡마르고, 거친 손을 잡았다. 그녀는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아들이 도착할 때까지 내가 손을 잡아주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몇 시간 후에 그녀의 아들이 도착했다. 아들은 맞은편 침상 곁에 앉아서 그녀의 다른 손을 붙잡았다. 정오가 지나자마자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나의 사랑스런 친구를 집으로 데려가셨다. 나는 요양원을 나와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

주님이 오실 때까지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일로 아침을 보내도 아까울 것이 없다. 그래, 이게 바로 인생을 사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지!”

모범된 삶과 돌봄을 통해서 신앙을 지키자.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날, 우리는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 손이 없잖아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며칠 전 저녁 때 일입니다. 노원역 근처에서 김세열 목사님과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고 천국 갑시다."

한 아주머니에게 전도지를 내밀었습니다. 그 분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합니다. "손이 없잖아요!"

그 분은 양손에 그리 크지 않은 비닐 팩을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물건을 들 손은 있지만 전도지를 받을 손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래, 맞다! 어쩌면 이게 인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건을 들 손은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을 손은 없는 인생....

구원받는 것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얼마쯤 될까요? 몇 천만 원, 몇 억 원, 몇 조원..... 인간 세상에 있는 숫자로는 이것을 표현할 단위가 없습니다.

손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을 빈손을 찾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당신의 빈손에 영생의 선물이 들려질 것입니다.

 

▣ 사랑의 손길

 

일본에 유명한 암전문의 구로과와 토스오라는 의학박사가 있었습니다. 토시오 박사는 강의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또한 환자를 회진할 때도 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습니다. 심지어 겨울에는 주머니에 따뜻한 물주머니를 넣고 손으로 만지작 거리기까지 했습니다.

한번은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왜 박사님은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십니까?"

"나의 환자는 거의 암환자이지요. 의사는 손이 따뜻해야 정확한 진단을 합니다. 물론 손이 차다고 진단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손은 환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동시에 병을 이겨내겠다는 희망을 불태우게도 하지요."

/낮은 울타리 중에서

 

▣ 사랑의 손길

 

산문집 ‘연탄 길’ 중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 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아저씨, 자장면 두 개 주세요?” “그런데, 인혜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식 먹은 게 체했나봐” “우리도 엄마아빠가 계셨으면 좋겠다.” 바로 그때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왔습니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네가 어릴 때 한 동네 살았는데.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그나저나 엄마아빠 없이 어떻게들 사니?” 그제 서야 아이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아줌마가 맛있는 것 해줄게.” 잠시 후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어 왔습니다. 음식을 먹는 동안 그녀는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거라.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힘겨워 보였습니다. 아저씨는 물었습니다. “누구네 집 아이들이지?”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엄마아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공짜로 음식을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까봐…. 엄마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굶주린 이웃을 돌아봅시다. 우리의 받은바 소유로 나누어 줍시다.

* 기도: 주님! 주님이 주신 지혜로 베푸는 삶을 살게 하소서.

* 묵상: 자장면 한 그릇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보은의 손길

 

2차 세계대전 중 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가난한 홀어머니 품에서 성장했다. 모녀는 전쟁의 와중에서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상태에 이르렀다. 그때 한 구호단체 직원이 모녀를 찾아내 음식을 제공했다. 모녀는 구호품을 받아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구호품을 얻어 먹던 소녀는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유엔아동기금(UNICEF)의 홍보대사가 돼 전 세계를 누볐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 내가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다. 나를 구해준 단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정말 기쁘다.”

이 영화배우의 이름은 오드리 헵번. 사랑의 손길이 없었다면 그녀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자선이 없었다면 우리는 명배우의 화려한 연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베푸는 손길은 아름답다. 그리고 보은(報恩)의 손길은 더 아름답고 숭고하다.

 

▣ 보호의 손길

 

'주간 월드 뉴스'잡지가 최근 천사연구가인 윌리엄 버트씨의 글을 실어 화제가 되고 있다.

버트씨는 "사람을 보호하는 천사의 손길을 체험한 사람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한 병사는 보초를 서고 있을 때 신비스러운 손이 귀를 만져 뒤돌아보는 순간, 총알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는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의 한 간호사는 이상한 물체가 길을 막고 있어 발길을 멈추었을 때 고장난 자동차가 그 곳을 질주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신(神)의 섭리와 보호 속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된 존재다. 이것을 믿지 않는데서 불행은 시작된다.

 

▣ 사람의 손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이 많지만 또한가지의 중요한 특징은 손이 있다는 것입니다. 손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만 주신 축복의 선물입니다. 손의 임무는 무엇인가? 손은 우리의 신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만약 손이 없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고,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손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이 될 수도 있고 더럽고 추악한 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은 열심히 일하는 손, 남에게 나누어 주는 손, 상대방과 화해하고 용서하는 손, 겸손히 섬기는 손입니다. 반대로 추악하고 더러운 손은 도둑질하는 손, 살인하는 손, 도박하는 손, 폭력을 휘두르는 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30절에서 이런 더러운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손을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우리의 손을 아름답고 귀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 손이 한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

 

챨스 케터링(C. F. Kettering)은 제너럴 모터스의 공장장으로 그 당시 미국의 기계 분야에서는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여겨졌다. 어느 날 그가 한 연회 석상에 참석하게 되어 어떤 사람으로부터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케터링 씨, 당신이 지금까지 이 팔을 가지고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겸손하게 '제가 이 팔을 가지고 했던 가장 중요한 일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한 일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 기도의 손

 

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뒤러는 소묘 900점, 목판화 350점을 비롯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대표작은 현재 뉴른베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져 있는 <기도하는 손>이다. 이 그림에는 위대한 사랑과 믿음을 내용한 자신들의 이야기가 담겨진 그림이었다. 즉 그림공부에 뜻은 두었으나 가난했던 뒤러는 친구 하나와 약속을 했다. 한 쪽이 그림공부를 하는 동안 한 쪽은 노동을 해서 학비를 돕기로 했는데 뒤러가 먼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이름을 얻게 되자 친구를 공부시키기 위해 찾아갔다. 친구는 마침 기도 중이었는데 그 기도의 내용이 뒤러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져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오나 내 친구 뒤러만은 화가로서 성공하게 해주옵소서." 뒤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다.

/마음의 문(한태완 목사 지음)

 

▣ 제발 손만 놓지 마라

 

어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시장 구경에 나섰습니다. 처음 보는 것과 신기한 것이 하도 많아서 어머니의 치마꼬리를 붙들고 자꾸 물어봅니다.

“이게 뭐예요?”

“저게 뭐예요?”

“이건 어떻게 만든 거예요?”

처음에는 교육적인 차원에서 친절하게 대답 해줍니다.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는 알 필요조차 없는 것까지 질문을 해대니 나중에는 그만 지치고 맙니다.

“이 녀석아, 너는 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제발 손만 놓지 마라.”

우리의 인생사는 것이 그렇습니다. 주님의 손만 꼭 붙들고 있으면 되었지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주님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의 굳센 손이 우리를 잡고 있습니다. 주님의 손을 꽉 잡고 사십시오.

* 기도: 주님, 한 평생 주님의 손을 굳게 잡게 하소서.

* 묵상: 주님의 도우심을 느끼며 사십니까?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 말씀의 손을 놓치면

 

바다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향해 담대한 믿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베드로는 몇 걸음 물위를 걸을 수 있었다. 기적이었다. 그러나 파도를 바라보면서 두려움이 생기자 믿음을 상실한 베드로는 그만 물속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음을 볼 수 있다. 믿음은 바다 위와 같은 불안한 세상을 이기고 활기찬 믿음의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그러나 신앙을 약화시키는 의심은 세상의 불안과 절망과 고통 속에 그 심령을 빠지게 만들어놓고야 만다. 갈릴리 바다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구원의 손을 내미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손을 잡고 다시 배로 올라갈 수 있었다. 믿음이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손을 꼭 잡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갈 수 있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의 손을 놓치면 순식간에 세상의 바다 속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다.

/김학규

 

▣ 황금의 손

 

고대 리디아라는 국가에 마이더스라는 왕이 살고 있었다. 마이더스는 얼마나 황금을 갖고 싶어했던지 ‘디오니소스 신’에게 “무엇이든지 손대기만 하면 황금이 되는 마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그가 만지는 것은 모두 황금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다못해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만지기만 해도 즉시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음식을 먹으려고 해도 몽땅 황금으로 변해 버렸고, 사랑하는 딸과 포옹하자마자 딸도 황금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궁전은 온통 황금 덩어리로 변해 버렸으나, 그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었다. 뒤늦게 자기의 탐욕을 뉘우친 그는 마법을 풀어 달라고 울며 애원하였고, 신의 지시를 따라 ‘파크토로스’라는 강에서 목욕을 하고, 황금 더미에서 해방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탐득자(貪得者), 분금한부득옥(分金恨不得玉)”이라는 말이 있다. 탐욕이 많은 사람은 황금을 나누어주어도 오히려 옥(玉)을 얻지 못함을 한탄한다.

 

▣ 차가운 손

 

손이 차다는 말보다는 그 손을 끌어다 옆에 두는 편이 더 낫다. 보았다는 말보다는 느꼈다는 말이 더 낫다. 이상하다는 말보다는 특이하다는 말이 더 낫다. "네 말을 이해 못하겠어"라고 말하기보다는 "다시 한번 말해줄래"라고 말하는 게 더 낫다.

- 김동영의《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거야》중에서 -

 

* 차가운 손도 맞잡아 주면 신기하게도 두 사람의 손이 함께 따뜻해집니다. 서로 한 걸음만 더 나가면 거리가 두 배로 가까워집니다.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해도 따뜻한 가슴으로

한번만 더 들어주면 마음의 빙하도 녹입니다. 작은 배려의 힘이 그토록 큽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 왼손의 피아니스트

 

6.25 직후 한 소년이 불발수류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지는 바람에 두 눈과 오른 팔을 잃었습니다. 맹아학교에서 안마사와 점쟁이 중 하나를 선택해서 교육을 받아야 했지만 그에게는 두 가지가 다 어려웠습니다. 안마사는 팔이 하나밖에 없어서 불가능했고, 점쟁이는 기독교 신자로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드디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서는 모두 비웃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혼자서 밤마다 음악실에 들어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고교 시절 3년 동안 피아노와 싸웠는데 마침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왼쪽 손가락에서 완전한 멜로디와 화음이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으로 음악 교사가 된 이 사람은 대구 광명학교 황재환 교감 선생님입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가능성과 잠재력이 숨어있습니다. 그중 몇 가지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절망이란 없습니다.

*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땅의 과부와 고아들을 사랑하시며 약자를 보호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긍휼에 감사 드립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장애우와 함께 하지 못한 잘못을 회개합니다. 지난날 교회가 장애우를 배려하지 않은 채 건축하여 형제 자매의 출입을 원천적으로 가로막은 무지한 죄를 용서하소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이 땅에는 장애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은 장애의 불편함을 모릅니다. 이제 건강한 사람들이 장애우의 불편함을 기억하고 저들의 아픔과 불편함을 적극 도울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주소서. 앞으로 교회당을 건축할 때 장애우들을 배려하게 하소서. 교회가 장애우와 함께 하는 예배 교육 재활 복지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손에 관한 성경 말씀

 

0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욥5: 18)

0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19:1)

0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73:23)

0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시102:25)

0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시138:7)

0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잠3:16)

0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6:16- 19)

0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0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잠11: 21)

0 사람은 입의 열매로 말미암아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이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잠12: 14)

0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 24)

0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이사야 59:1)

0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마6:3)

0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8)

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히1:10)

 

▣ 손에 관한 금언

 

0 많은 손이 협력하면 일이 쉬워진다.(라이트)

0 별로 사용하지 않는 손이 더 까다롭다.(세익스피어)

0 우리를 창조한 그 손은 신성하다(애디슨)

0 정의의 손은 칼을 잡아서는 안 된다.(유베날리스)

0 너무 많이 손에 쥐면 이무것도 못 쥔다.(서양속담)

0 손은 차고 심장은 뜨거워야 한다(서양속담)

0 손이 다른 손을 씻어준다.(그리스 속담)

0 손이 발이 되도록 빈다.(한국속담)

0 손안에 놓인 듯(한국속담)

0 제 손으로 제 눈 찌르다.(한국속담)

0 요람을 흔들어주는 손이 세상을 지배한다.(서양속담)

0 못 박힌 예수님의 손은 사랑이 가득한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준다.

 

* 출처 및 자료제공: 한승진 선교사(http://blog.naver.com/jfocus)

덧글 쓰기 엮인글

선교자료모음(실패, 실수) 성공, 승리, 형통

2013/05/22 07:10

복사 http://blog.naver.com/allcome/130168641174

전용뷰어 보기

선교자료모음(실패, 실수)

 

삼할 타자

 

야구에서 삼할 타자라면 타율이 엄청 높은 선수를 말합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들은 열 번 중 약 일곱 번을 실수하는 겁니다.

- 이종훈의《인생은 야구처럼 공부는 프로처럼》중에서 -

 

* 너무 완벽하려고 하지 마세요. 날아오는 공 열 개를 모두 다 칠 순 없는 거예요. 오늘은 사람 냄새 날 수 있도록 멋지게 헛스윙도 날리고, 아웃도 당하고, 실수도 실패도 해보는 하루가 되세요. 그 실수와 실패가 삼할 타자로, 홈런 타자로 가는 밑거름이 될테니까요.

/신준모(고도원의 아침편지)

 

▣ 탁월한 낙제생들

 

본문: 롬 11:12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

한 신문 칼럼에 나왔던 ‘위인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나폴레옹은 학창 시절 42명의 아이들 중 42등을 했다. 그러나 그는 기본과목이 아닌 군사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 세계 3대 수학자인 뉴턴은 학창시절 수학 성적이 꼴찌 바로 다음이었다. 뉴턴은 교과서에 나온 방법대로 풀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하학 과목을 낙제했다.

-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글을 매우 늦은 나이까지 읽지 못했고, 젊은 시절에도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는 말이 어눌하고 공부를 못해서 학창시절에 왕따를 당했다.

대중의 방법이 항상 최선의 방법인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위인들은 모두 세상의 방법과 다른 방법을 실천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의 방법을 따르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행하십시오.

* 기도: 주님! 세상의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을 따라 살게 하소서!

* 묵상: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하루를 사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실패 때의 반대 반응

 

예수 믿으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기도만 하면 없던 돈이 생기고, 순종만 하면 막힌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 힘들다. 너무 힘들어서 밥이 넘어가지 않을 때가 있다. 스스로 무가치하다고 생각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아내의 오랜 투병으로 고난 당한 분이 있다. 두 아이는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다. 고난 이후 2가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첫째는 인생은 힘들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점이다. 고통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한 위로도 있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이 만났던 것이다. 실패는 누구나 경험한다. 그 실패 체험 중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과 함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인가?

실패 체험 중에 뻔한 반응, 예상이 가능한 반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승리한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에 “금산 교회”가 있다. 옛날 남녀가 따로 예배 드렸던 기억자 교회로 유명하다. 건물도 유명하지만, 건물 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경상도는 산이 많아서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래서 전라도에 가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말이 흘러다녔다. 경상도의 이자익이 김제에 와서 조덕삼의 집에 들어가 머슴생활을 했다. 선교사 테이트의 전도를 받아 조덕삼과 이자익 모두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던 중 금산 교회에서 장로 투표를 했는데, 머슴인 이자익은 장로가 되고, 주인인 조덕삼은 떨어졌다. 이 무슨 낭패인가? 장로에서 떨어진 것은 일종의 실패 체험이다. 이때 대개 뻔한 반응을 보인다. 교회를 떠나거나 머슴을 쫓아내거나, 그 옆에 새로운 교회를 세운다. 그런데 조덕삼은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린다. 머슴 이자익을 장로로 잘 섬기고, 이후에 신학공부를 후원해서 금산 교회 담임목사로 모신다. 마지막 죽으면서 남긴 유언이 온 가족이 교회와 목사님을 잘 섬기라는 것이었다.

주인이 장로되고, 머슴이 떨어졌다고 하면 아무 메시지도 없는 이야기이다. 장로에서 떨어진 주인이 교회를 떠나 다른 곳을 섬겼다고 하면 뻔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데 실패 중에 사람들의 상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때, 후대에까지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된 것이다. 금산교회 이야기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교회, 실패의 한계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교회, 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실패는 아름다움을 보일 기회이다. 실패 체험 중에 다르게 행동하라. 실패 체험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의 크기를 보여준다.

/전병욱 목사, 출처/ 삼일교회

 

▣ 실패하는 청춘

 

본문: 시 145: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도다’

 

전구를 발견하기 위해 2만 번이나 실험을 했던 에디슨은 2만여 번의 실패가 아니라 2만여 번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에디슨은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문제를 환영하라. 문제 속에 성공의 해답이 들어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반대로 그 약점을 통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시인 몰트케는 다음과 같은 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의 성공의 척도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 절망했는가? 후퇴했는가? 아니면 용기를 얻고 다시 일어서 전진을 했는가? 실패 뒤의 선택으로 그의 인생이 결정된다.」

실패는 누구나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실패를 두려워하고, 도전을 피하려 하지만 실패는 인생에서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것, 말을 하는 것, 밥을 먹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일들도 모두 수많은 실패의 결과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게다가 우리에겐 늘 나를 위해 기도하고 또 힘을 주시는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낙심하지 않는 선한 마음으로 오늘도 용감히 도전하십시오.

* 기도: 주님! 역경을 통해 더욱 신앙을 성장시켜 주소서!

* 묵상: 주님과 함께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일에 도전하십시오.

/김장환 목사, 제공 : 나침반출판사

 

* 출처 및 자료제공: 한승진 선교사(http://blog.naver.com/jfocus)

출처 : 양로원 갑천뉴스타트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