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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안중근 의사

하나님아들 2013. 1. 11. 20:19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안중근 의사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安重根 義士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이것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쓴 글로, 그 어떤 말보다도 안중근 의사의 인품을 한번에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다.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19세기 말, 황해도 해주에서 부유한 선비의 맏아들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어려서부터 자질구레한 일을 대범하게 생각하여 친구들과 어른들로부터 무엇인가 큰 일을 할 사람으로 주목받았다.

1905년 이후, 세상은 어수선해지고 나라의 운명은 시시각각으로 위태로워져 가는 것을 보고, 안 의사는 자신의 일신 영달보다는 나라를 구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더 급하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경영하던 석탄 상회를 정리하고 삼흥 학교를 세웠다. 또한, 남포의 학교를 인수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산업을 장려하는 한편, 국채 보상 운동(국민들의 돈을 모아 나라의 빚을 갚자는 운동) 관서 지부장이 되어 반일 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힘으로는 도저히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북간도로 망명하였는데, 그는 그 곳에서 의병들과 함께 무력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고 특파 독립 대장이 되어, 함경 북도 곳곳에서 일본군 부대를 습격하여 많은 전투를 벌여 큰 전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우리 민족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 와서 러시아 정부의 재무 대신과 회견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고, 몇몇 동지들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 하얼빈 역에서 그를 사살하였다. 나는 늘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단지 일제 침략의 우두머리를 암살했다. 라고만 듣고 그런 일이 일어난 이유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이번에 위인전을 알고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이야기할 때, 일제 침략의 우두머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는 것 한 가지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였다.

그 까닭은 안중근 의사가 단지 개인적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이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가 대한 독립 주권을 침탈할 원흉이며 동양 평화를 파괴하는 자이므로, 대한 의용군 사령의 자격으로 그를 사살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곧 안중근 의사가 자기의 뜻대로 그를 암살한 것이 아니라, 그가 국가적인 원수였고 평화를 파괴하는 자였기 때문에 암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은 안중근 의사가 단순한 암살범이 아니라 대한 독립군의 전쟁의 일환으로 적국의 우두머리를 죽인 것이라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는 그들의 부하에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였지만 나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항한 것이다. 나는 이런 그의 정신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애국 애족의 모범이 되는 모습... 학교에서 배운 수많은 위인 중 안중근 의사가 있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일이 있은후, 그가 일제에 의하여 재판을 받고 옥에 갇혀 있을 때, 안중근 의사의 의연하고 비범한 행동에 감복한 일본인 재판장은 물론, 일본이 간수들마저도 그를 존경하였다.

1910년, 2월 26일, 홍 신부와 함께 면회온 그의 두 아우에게 “내가 죽거든 시체는 우리 나라가 독립하기 전에는 반장(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그가 살던 곳이나 고향으로 옮겨다 장사지내는 일)하지 말라.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 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 라는 유언을 하고 순국했다.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진 31년의 짧은 그의 생애는 오늘날 민족이나 국가보다 자기와 자기 가족.친지.동향들의 영화와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출처 : 곰돌이의 블로그
글쓴이 : 곰돌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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