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인물

[스크랩] 믿음의 선진들(18)-입다

하나님아들 2013. 1. 10. 16:35

믿음의 선진들(18)-입다

히11:32 삿11:1-12:7

오늘은 이 입다에 대한 말씀을 증거면서 은혜 받으려고 합니다.

1. 불우한 환경의 고통을 견뎌 낸 입다(삿11:1-3)

입다를 신앙의 선진 반열에 올린 것은 불우한 고통스러운 환경에서도 견뎌내고 신앙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가운데 언급된 사사는 모두 4명입니다. 그 가운데 오늘 살펴 볼 입다는 4명 가운데, 아니 모든 사사가운데 가장 어려운 환경에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가에 대하여 11장 초반부에 몇 가지로 알려줍니다.

삿11:1-3 길르앗 사람 큰 용사 입다는 기생이 길르앗에게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아들들을 낳았더라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 집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 형제를 피하여 돕 땅에 거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사람이 세상사는 동안에는 환경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정환경이 중요합니다. 학교환경이 중요합니다. 종교환경이 중요합니다. 입다는 가정 환경이 좋지 않았습니다.

우선, 그는 서자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었으나 다른 여자를 좋아하였고, 그래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입다였습니다. 게다가 그의 어머니는 그냥 평범한 여인이 아니라 기생이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생이라는 단어는 굉장히 점잖은 해석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창녀입니다. 입다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불우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제의 사랑을 받을 수 없는 버린 자식이었고, 그의 어머니의 신분으로 늘 좋지 않은 시선 속에서 자라나야만 했습니다.

입다의 어려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배다른 형제들로부터 내쫓김을 당합니다. 그의 형제들이 입다를 좋게 볼 리가 없었습니다. 날마다 눈치를 주고, 구박하고, 상처를 준 것입니다. 당시 기생의 자녀는 상속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상속만이 아니라 집에서 쫓아내도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려서부터 입다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머문 곳은 돕이라는 땅이었는데, 거기에서 그는 잡류들 소위 깡패와 함께 생활합니다. 모두가 가족과 사회의 불만을 품고 집을 나온 사람들입니다. 거기에서 입다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보내며 밑바닥의 인생을 삽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입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입다가 어느 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에게 신앙이 들어가자 그의 어둡고 추악한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삐뚤어서 도저히 회복되기가 힘든 꼬인 인생, 버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운명을 탓하고, 팔자를 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의 처지와 형편을 마치 이미 정해진 운명처럼 생각하며 체념하고 불평하고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움이 많은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눈물과 한숨과 염려가 사라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들고, 어려워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힘들어도 믿음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 고통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작금의 현상 : 안재환, 최진실의 자살이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배우는 입다가 이런 사람들에게 무어라 할까요? 나 같은 사람도 견디고 살아 민족을 건져냈다고 일갈을 토할 것입니다.

▶파인이라는 분이 보배드림이란 곳에 올린 글입니다.

“ 혹여 타살이라면 모르겠으나 자살이라면 동정할 필요가 없다.

어찌보면 매우 화가 나는 일이다. 나는 결혼도 못했다. 차도 국산차 중에 싸구려중 꼴지를 다투는 차조차도 감당이 안 되서 죽을 지경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삶의 다른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인간들과 똑같이 고민을 하고 살고, 인터넷 악플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 나는 골백번 죽어 마땅한가? 자살한 연예인들과 조목조목 비교해도 뭐하나 나은 것은 커녕 거의 발톱의 때 만큼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래도 꿋꿋하게 산다. 이리 밟히고 저리 밟히고 그래도 자살은 안한다.

온실 속의 화초가 그냥 나온 얘기는 아닌듯.. 탄탄대로를 걸어오는 연예인들에게 최소 6개월동안 마티즈2 타고 다니면서 마티즈2 중고할부금 걱정하며 오늘 하루 당장 일 안하면 내일 굶어야 하는 밑 바닦 코스를 겪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적어도 자신의 삶이 죽을 만큼 비참한 삶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될거 같다.”

이제 입다와 같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팔자도 고치고, 운명도 바뀌고,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2. 관용과 기도와 말씀에 선 입다(삿11:4-28)

입다가 불우한 고통스러운 가운데서 잘 못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아름다운 신앙으로 나가는 것을 봅니다.

1) 관용하는 입다 :

자기를 박대하여 추방한 고국 고향 친척들에 대하여 관용한 것을 봅니다. 복수하지 않고 관용하였습니다.

 

삿11:4-11 얼마 후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하니라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을 치려 할 때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를 데려오려고 돕 땅에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대답하되 이제 우리가 당신을 찾아온 것은 우리와 함께 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하려 함이니 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데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서 암몬 자손과 싸우게 할 때에 만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내가 과연 너희 머리가 되겠느냐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에게 이르되 여호와는 우리 사이의 증인이시니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반드시 행하리이다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 요셉이 이방인들에게 팔아버린 그 형들은 마침내 그에게 찾아와서 그에게 은혜를 구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었을 때(창 37:27-28, 42:6) 관용하여 구원해 준 것처럼 입다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관용하는 것을 봅니다.

 

2) 기도하는 입다 :

입다는 "큰 용사"였으나 자기 힘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붙이시면" 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9절 하반). 이 말은, 그가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믿은 증거입니다. (삼상 17:47)

그러면서 그는 암몬 족속과 전쟁 할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그의 사정을 고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구원이 하나님께만 있음을 믿고 그렇게 기도한 것입니다.

삿11:11 이에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과 함께 가니 백성이 그로 자기들의 머리와 장관을 삼은지라 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삿11:29-31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들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는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위대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모는 문제는 우리로 기도하라는 통고장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말씀으로 무장한 입다 : (삿11:12-28)

암몬 왕은 "아르논에서 부터 얍복과 요단까지"의 영토를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고 하면서 그 땅을 반환하라고 주장하였습니다(13절). 그 때에 입다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차지한 것은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셨기 때문이라고 길게 말씀에 의지하여 변론하였습니다.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12).

입다가 머리가 되자 바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자를 보내서,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하고 외교적으로 화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다의 새로운 면모를 대하게 됩니다. 그가 형제들에게 쫓겨나서,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왔다” 하였을 때는 불량배의 두목쯤으로 여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암몬 왕에게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의 여호와의 행사에 능통한 것을 보게 됩니다. 말씀에 능통했음을 보여줍니다.

암몬 왕의 주장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취한 연고니 이제 그것을 화평히 다시 돌리라”(13)는 것입니다. 암몬 왕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지역은 본래 모압 왕 발락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모압과 암몬”은 형제, 즉 롯의 자손들입니다. 이를 근거로 하여 암몬 왕이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한 모양인데, 모압 왕은 그 땅을 아모리 왕 시혼에게 빼앗겼지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시혼은 그 지역을 통과하려는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해왔다가 하나님께서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것입니다.

입다는 그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다시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니라”(14-15) 합니다. 모압과 암몬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16상), 어느 민족도 선수적으로 침략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 가데스에 이르러서는 사자를 에돔 왕에게 보내어 통과하기를 용납해달라고 청하였으나 이를 거절당했고(16하-17상), ㉡ 모압 왕에게 보냈으나 그도 허락지 아니하므로, 그 후에 광야를 지나 에돔 땅과 모압 땅을 둘러 행하여, 그 경내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다(17하-18)고 말합니다.

 

또 “아모리 왕 시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용납하여 당신의 땅을 지나 우리 곳에 이르게 하라 하였으나 시혼이 이스라엘을 믿지 아니하여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 모든 백성을 모아 야하스에 진치고 이스라엘을 치므로”(19-20), 즉 선제(先制) 공격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시혼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시매 이스라엘이 쳐서 그 땅”(21-22)을 취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입다의 논증을 요약하면 문제의 땅의 소유권이, 모압 왕 발락→아모리 왕 시혼→이스라엘로 옮겨지게 된 경위를 설명해줌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읍에 거한지 삼백 년이어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26), 즉 이스라엘이 300년 동안이나 살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소유를 주장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입니다. 입다의 말은 논리가 정연합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아모리 사람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셨거늘 네가 그 땅을 얻고자 하는 것이 가하냐”(23)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 땅을 우리가 얻으리라”(24)고 말해줍니다.

입다의 이 말은, “암몬 왕 당신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손에 붙여주실 것”이라는 최후 통첩과 같은 위협적인 말이었던 것입니다.

입다는 최후진술을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원컨대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오늘날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의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27). 외교적으로 해결해보려 하였으나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보내어 말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다”(28)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입다가 얼마나 말씀에 확고히 서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입다는 이렇게 관용과 기도와 말씀의 확신에 서 있었습니다.

 

3.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입다(삿11:29-40)

입다의 믿음이 선진 반열에 끼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은 불리하더라도 지켰기 때문입니다.

삿11:30-31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삿11:34-35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하여금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삿11:39-40 두 달 만에 그 아비에게로 돌아온지라 아비가 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고 죽으니라 이로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규례가 되어 이스라엘 여자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입다는 분명 성급한 서원을 했더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돌이키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국 입다는 사랑하는 딸을 희생시킵니다.

약속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믿음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특별한 모습입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받아드리기 힘든 일입니다. 그는 이처럼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두 가지의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약속을 지켜야 할 두 번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히 지키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한마디로 약속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끊임없이 약속을 하셨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셨습니다. 어쩌면 성경이 두껍고 긴 이유는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으로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약속의 책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약속할 때와 그것을 이행해야 할 때의 마음이 달라져 지키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혹은 마음은 있어도 그것을 이행할 능력이 없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말도 잊지 않으시고,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며, 확고한 의지를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기에 모든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약속을 지키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약속을 소홀히 생각하고, 지키지 않으면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급히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입다와 같이 약속을 지키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입다의 믿음은

1) 불우한 환경과 고통을 견뎌내고 민족을 구해낸 사람이 됐다는 것과

2) 원망과 불평의 자리에서 헤매지 않고 관용과 기도와 말씀으로 나아갔으며,

3) 하나님께 기도하며 약속한 것은 아무리 힘들어도 지켰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을 위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시대에 이런 신앙위에 서기를 축복합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요안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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