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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믿음의 선진들(16)-바락

하나님아들 2013. 1. 10. 16:34

믿음의 선진들(16)-바락

히11:32 삿4:6-16 5:1-31

가나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의 전쟁에서 드보라도 물론 귀합니다. 적장 시스라를 죽인 야엘도 물론 귀합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바락의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바락의 믿음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사람들은 몰라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바락의 믿음을 잊지 아니하시고 아름다운 상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승리케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바락의 이름을 오늘 본문에 기록 되게 하심으로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영구히 기념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락은 사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구약의 대표적인 믿음의 거인들 중에 한 사람으로 기억됩니다(히브리서11:32). 문제는 바락에 대한 흔적인 사사기를 읽어가노라면 과연 바락이 구약의 대표적인 그리스도인들의 반열에 끼일 자격을 갖추었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그러기에 본문에 대한 주의 깊은 이해와 해석이 요구됩니다.

과연 평가해야 할 바락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Ⅰ. 소심을 하나님 의지로 채운 바락(삿6-10절)

우리가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능력 때문이 아니라 소심때문일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소심을 고쳐 보려고 남모르게 노력들 합니다.

▶ 소심한 성격을 고치는 10가지 방법

1, 남이 나에게 관심을 주길 기다리지 말고 관심을 먼저 준다.

2.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먼저 알아주고 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해준다. 남에게 들은 칭찬은 작은것이라도 쉽게잊지않는다.

3. 작은 일로 그 사람의 좋고 싫고를 평가하지 않는다

4.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너무 의식하지 않는다. 의외로 사람들은 나 아닌 남에게 관심이 없다.

5. 나만 못난게 아니고 모든 사람은 다 단점을 작고 있다 .

6. 내가 잘 하는 것, 나의 좋은 점만을 생각하고 찿아본다. 분명 열 가지 이상을 찿을수 있을 것이다.

7. 과거는 지나갔다 지금 나에게 허락된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한다. 그러면 내을은 저절로 행복해 진다.

8. 남을 과장되게 판단하지 않는다. 겁 먹지 말라. 남도 나와 똑같다.

9. 나에게 맞는 사람이나 일을 기다리지 말고 찿아 나서본다.

10. 밝고 적극적인 사람과 책을 가까이 한다.

 

사사 드보라의 부름을 받고 무대 전면에 등장한 바락은 대범하기보다는 아주 소심한 인물로 첫인상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 드보라로부터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나서 바락이 취한 태도는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삿4:8절). 분명히 바락에게 싸움터로 가라 명하신 이는 주 하나님이십니다. 남은 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바락은 단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됩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자기가 가고 안가는 문제를 '드보라의 동행'에 걸고넘어집니다.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본질적이며 결정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그에게 가라 명하신 하나님의 입장을 아주 난처하게 만듭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보다는 사사 드보라의 동행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주어 한편으로 불순한 불신앙을 가진 바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사나이 대장부가 한 여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듯이 보여 소심하기 짝이 없는 용렬한 인물로 부각됩니다. 이같은 바락을 믿음의 용장으로 증거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진술(히11:32)에 우리는 일순 혼란스럽고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 본문을 이해해야 혼란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바락은 히브리서 13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 중 4명의 사사(기드온, 바락, 입다, 삼손)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에 특별히 주목된다. 그는 드보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드보라에게 같이 갈 것을 강청한다. 바락은 소심하였는가? 히브리서가 지적하는 바락의 믿음은 무엇인가? 바락은 소심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소심함이 그가 비난받을 이유는 아니다. 누가 철병거 구백승과 담대히 맞설 용기를 쉽게 가질 수 있겠는가? 그는 사사인 드보라의 동행을 원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바락의 요청은 그의 소심함보다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음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비록 시스라를 죽이는 영광을 바락이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그 영광이 정말 중요한 것인가? 하나님은 바락 앞에서 시스라의 군대를 패하게 하셨다. 사사기 5장의 내용과 연결지어 살펴보면 아마 기손 강에서 급류와 폭풍 등이 있었던 것 같다. 시스라와 그의 군대의 패배는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자신만만함이나 영광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일이 아니다. 바락은 하나님께 의뢰했고 그가 얻을 영광에 구애받지 않고 전쟁에 나섰다. 이런 의미에서 마이클 윌코크는 바락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까지 말했다.

 

초기 부족한 믿음을 극복하고 성숙한 사사로 변화되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처음부터 잘한 사람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처음부터 잘하기 보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첫 등장하여 실수함이 없이 쭉 잘한 인생을 보인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꿈쟁이 요셉도 이집트 총리기 되기 전에 감옥에 갇히는 육체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직면합니다. 순탄한 인생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깨달음에 대한 관점에선 그런 인생은 저주에 가까운 인생일 수도 있습니다.

바락은 약한 자였습니다. 가나안왕 야빈은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함께 철병거 900승으로 20년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신 것을 알고서도 비겁하게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선지인 드로라를 사용해서 시스라의 군대를 물리치게 하셨습니다.

믿음 장에서 왜 드보라의 이야기는 없이 바락 만을 언급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믿음의 분량만큼만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 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믿음의 분량만큼 교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것입니다.

바락은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바락의 믿음 때문에 바락이 이 믿음 장에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의 위치를 깨닫고 내가 교회에 어떤 유익을 끼칠 수 있는지를 찾으면서 봉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드보라는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군대를 무찌르기 위해 바락이라는 사람을 불러 하나님 명령을 전합니다.

삿4:6-7절,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바락이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삿4:8절,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 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가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내가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락의 믿음을 이 한 말로 엿볼 수 있는데, 바락은 히 11장에 보면,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히11:23,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언급되어 있을 정도로, 바락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2. 공명심보다 함께 승리하는 것을 택한 바락(삿4:9)

바락은 주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추호도 거부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전적인 순종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바락은 이 시점에서 동역(同役)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마땅히 사사 드보라가 함께 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강권함으로 사사 드보라의 동행을 요구 한 것입니다.

그는 공명심에 불타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이름이야 높아지든지 낮아지든지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바락은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의 여선지요, 사사였던 드보라를 일만 명의 군대보다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주님 나라는 함께 이루어 가는 나라입니다. 주님의 일은 서로 나누어지고 감당할 때 효과적입니다. 한 사람 독불장군에 의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너(드보라) 아니면 일이 안 된다" 가 아닌 "너(드보라)와 내(바락)가 힘을 합쳐 주님의 뜻을 받들어 민족을 구원해야 한다"가 바락의 심정입니다. 이같은 심정을 본문 8절에 담아 사사 드보라에게 표현한 것입니다. 드보라도 바락의 순수한 동역 의지를 알고 기꺼이 동행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바락을 따르는 이스라엘 군사들은 단지 두 지파(납달리, 스불론)에서 소집된 일만명에 불과합니다. 철병거 하나 없습니다. 반면에 적군은 구백승의 철병거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무모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바락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이미 여호와께서 적군을 자기의 손에 붙이셨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사사 드보라의 입술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거침없이 적진을 향해 돌격합니다. 자신 보다 앞서나가 적을 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느끼며 오직 믿음으로 전진합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바락은 믿었습니다. 결국 철병거를 믿고 싸우는 적군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싸우는 바락에게 여지없이 참패하고 맙니다.

 

바락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숫적 열세와 훨씬 뒤지는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고통받는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 오직 믿음 하나 가지고 싸움터로 나간 용장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의 사람 바락을 들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바락은 자기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하겠다고 욕심부리지도 않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동역(同役)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잘 알고 있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드보라> 사사는 바락 장군에게 나가 싸우라고 했으나, 바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겠으나 만약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내도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군대 장군>으로서 승리에 대한 공이 다른 사람의 손에, 그것도 일개 가냘픈 <여인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으나 그는 전연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든지 낮아지든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드보라>를 더욱더 소중히 여기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기만 하면, 아무리 적장 시스라가 철병거 900승을 보유하고 있다할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굳센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락의 믿음>이었습니다!!

▶ 귀족 기사들의 공명심이 전투를 영불의 아쟁쿠르 전투 :

14세기 중엽부터 약 116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 두 나라는 프랑스의 왕위 계승문제로 전쟁을 벌입니다. 1415년 10월 25일 벌어진 ‘아쟁쿠르’ 전투도 이 100년 전쟁의 와중에 있었던 가장 극적인 싸움 중의 하나입니다.

1415년 8월 14일, 패기만만한 스물여덟 살의 젊은 국왕 ‘헨리 5세’ (Henry V)는 내정의 불만을 나라밖으로 돌리고자 1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여러 해 동안 휴전상태에 있던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합니다. 그는 400여 년 전, 존 왕이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하겠다며 세느강 동쪽 프랑스 북부지방의 칼레(Calais)와 그 일대를 공략하려 했습니다. 프랑스 땅에 상륙한 후 5주간의 전투 끝에 세느강 하구 아드폴레르에 전초 기지를 마련하는데 성공한 헨리는 칼레를 향해 군대를 움직입니다. 칼레를 향하는 경로 상에 위치한 솜 강을 건넌 것은 10월 19일의 일입니다. 하지만 계속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를 맞으며 500여 Km를 행군한 헨리왕의 군대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먹는 것 까지 부실해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칼레로 향하는 영국군을 저지하기 위해 부르군디, 오를레앙, 부르봉 등지에서 정예 프랑스 기사들이 속속 집결합니다. 10월 24일, 맹렬한 기세로 추격해온 프랑스군이 바짝 따라붙자 헨리 5세는 막다른 길에 몰립니다. 칼레까지는 이제 단 하루면 닿을 거리인데, 그에게는 ‘항복 아니면 전멸’이라는 선택 밖에는 없을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를 추적해온 프랑스군의 병력은 2만 명으로 6천명 남짓한 영국군의 세 배가 넘었고, 또 프랑스군의 주력이 8천의 중무장 기사단이었던데 비해 헨리군의 기병은 1천 미만이었고, 대부분은 근접전에 취약한 궁수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나마도 프랑스에 상륙한지 70여 일 동안 전투와 연이은 행군으로 굶주림과 피곤에 지친 상태였습니다.

분노에 휩싸인 기사들이 명령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영국군 진영으로 돌격하기 시작합니다. 무분별하게 달려 나가는 기사들의 뒤를 보병들이 따라 나갑니다. 원래대로라면 영국 궁수들을 제압해야 할 프랑스 석궁병들은 갑자기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아군 기병들과 보병들 때문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가장 큰 패인은 전공에 눈이 먼 귀족 기사들의 엉성한 군기 때문이었습니다.

공명심에 휩싸인 프랑스 기사단은 통제된 지휘에 따르지 않고, 개별적인 돌격을 감행하여 불리한 전장에 스스로 갇혀 버린 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만약 애초에 프랑스군이 세워 놓았던 작전 계획처럼, 석궁 병이 영국군의 궁수들을 제압하는 사이 기사단과 보병대가 서로 엄호하며 협동작전을 벌였더라면 수적으로 불리한 영국군이 이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아쟁쿠르 전투는 아무리 적에 비해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하는 군대라 할지라도 병력의 일사분란한 통제, 단결심과 복종심이 없는 한 한낱 군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공명심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우선을 두어야 하고, 공명심 보다는 민족이나 국가를 위하는 일이 더 우선해야 할임을 바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전력보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한 바락(삿4:13-16)

<바락>은 이스라엘의 사사는 아니었습니다.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을 때에 이스라엘 군사 일만 명을 이끌고 가나안 적군들과 싸웠던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멀리하며 세상 <향락>에 빠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가나안 왕 <야빈>이 철병거 900승을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무력, 전력으로는 도저히 께임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락은 전력보다 어떤 무력보다 하나님의 힘이 더 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바락은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하나님만이 전능하신 분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가지고 시스라 군대와 전투를 벌입니다.

삿4:14절을 보겠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바락은 드보라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손 강에 집결해 있는 시스라의 모든 병거와 군대를 향해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 다볼산에서 내려갔습니다.

사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대단히 무모한 공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시스라 군대는 철 병거가 구백승이나 됩니다. 이 철 병거는 오늘날로 말하면 탱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철병거는 커녕 아직 변변한 칼조차 없었습니다. 철병거로 중무장한 시스라 군대를 향해, 겨우 1만 명의 보병부대를 이끌고 바락은 대범하게 공격을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 한가지입니다. 믿음입니다.

 

그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삿4: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앞서서 역사하시므로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시스리 군대는 철병거를 다 놓아두고 도보로 도망하였습니다. 바락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락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락 장군보다 앞서 가셔서 시스라와 그의 군대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큰 <폭풍우>를 내리사 모두 다 쓸어버리셨고, 부랴부랴 도망치던 <적장 시스라>를 야엘이라는 한 여인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케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드보라 사사나 야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바락의 이름만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만큼 <바락의 믿음>이 소중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의 힘>이나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굳게 믿고 의지>한 바락 장군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막강한 아람군을 보고 게하시는 떨었으나 하나님의 군대는 더 막강했음

* 그럴 때에 믿음의 사람 바락과 같은 <큰 승리의 축복>은 물론, 성경에 기록된 바락의 이름처럼 여러분들의 이름도 <영원히 빛나는(기념이 되는) 이름>으로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 바락은 소심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극복했고,

바락은 공명심보다 함께하는 공동심, 합심이 더 중요함을 깨달았으며,

바락은 전력보다 신력, 하나님의 능력을 더 믿고 행동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신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출처 : 목회자의 요람 한서노회
글쓴이 : 요안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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