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선진들(17)-삼손
김 영익 목사
히11:32 삿14:-16:
▶ 유명한 종교 작가인 스코트 팩이란 사람의 "랍비의 선물"이란 글의 내용입니다
진리를 갈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산 속에 수도원을 짓고 공동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찾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과 불신이 쌓여지고 원망과 시비가 끊이지 않습니다. 처음 이상과는 전혀 다르게 그들의 삶은 지옥같이 느껴지고 이를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이 하나 둘 수도원을 떠나가고 다섯 사람만 남게 됩니다.
그들은 이제 수도원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좀더 기다려 볼 것인가를 결정짓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고민하다 그들은 평소에 존경하는 랍비를 찾아가서 그에게 묻기로 했습니다.
묵묵히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 들은 랍비가 대답합니다. "이제 다섯 사람 남았지요? 이들 다섯 사람 중에 메시아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나올 것을 분명하게 예언하는 바입니다."
랍비의 예언을 들은 후부터 그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전에는 동료들의 모습 속에서 단점밖에 보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동료들에게서 가능성과 장점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우리 중에 한 사람이 메시아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그가 누구일까?"하고 서로의 가능성을 따져 봅니다.
"토마스일까? 그는 의심이 많긴 하지만 정직한 사람이지. 그러니까 혹시 그가 메시아가 될지 모르지" "제임스일까? 그는 반항심이 많지만 그 친구의 마음 바탕은 정의를 사모하니까 아마 그 일지도 몰라" "아니, 필립일지도 몰라. 우리가 보기에는 무능하고 약해지만 사랑은 많은 사람이니까 그가 메시아가 될지 모르지". "혹, 요한일까? 감정이 격한 편이지만 기도의 사람의 사람이니 그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실지 모르지". "아니면 아론일꺼야? 욕심은 많지만, 그의 의용과 열정을 따를 사람이 없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모두가 메시아 같은 훌륭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수도원의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존경과 사랑이 넘칩니다. 그러자 그 소문은 사방으로 퍼지고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로 수도원은 가득 차게 되고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도 삼손을 믿음의 선진으로 여기려면 먼저 장점을 보는 눈을 가져야합니다.
그리고 이 설교를 들어야 이해가 되고 은혜를 받습니다.
1. 실패와 실수를 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함
삼손은 인간미가 풍부한 사람입니다.
울기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고, 그리고 어느 때는 정이 헤프기도 하고 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하나님만 붙들고 나갔습니다.
죽어도 하나님을 붙들고 나가겠다는 이것이 신자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소치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딤나에 내려가 장가들고 또 소렉 골짜기의 기생 들릴라를 연연불망해서 그리고 내려가 한눈을 팔고 돌아다니기는 했을지언정, 그것은 그의 개인 품성상 문제이지 그것 때문에 생애의 방향을 돌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삼손에게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윤리적인 실수가 있었지만 히브리서 저자는 그를 신앙의 용사로 앉혀 놓았습니다.
왜 신앙의 용사냐? 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그 일을 넘어지며 자빠지면서까지라도 실행해 나갔습니다.
▶ 미국의 존경받는 16대 대통령 링컨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당신의 성공과 존경받는 삶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링컨은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실패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실패와 또 실패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성공으로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이 일을 하러 나온 사람이니까 목숨을 내놓고 하겠다'고 하면서 수천 명의 블레셋 사람들 앞에 묶여서까지라도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에담 골짜기에 숨어 있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우 나와서 "우리가 죽게 생겼으니 너를 묶어서 내놓기만 할 터이니 좀 나와 달라"고 해서 묶여서 나왔습니다.
자기의 동족을 구원하려고 나온 사람인 까닭에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묶여서라도 블레셋 사람들 앞에 나선 것입니다.
나설 때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실수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하려고 할 때 성령이 위대한 능력으로 그를 감동해서 쓰시어 위대한 하나님의 일을 이룬 것입니다. 그럴 때 위대한 신앙의 족적(足迹)이 생깁니다.
신앙이란 것은 내가 종교 열을 가지고 각고면려(刻苦勉勵)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수를 했어도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며 하나님을 찾고, 나를 쓰실 때 그의 그릇으로서 사용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실패를 기록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수없이 많은 실패, 야곱의 실패, 베드로의 실패…, 이처럼 성경은 실패한 인간에게 새로운 기회와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 아브라함의 신앙의 실패 뒤에 더더욱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 모세도 자기 힘으로 조국 이스라엘을 독립시켜보리라는 야무진 꿈도, 그가 사람을 죽임으로 살인자가 되어 광야로 쫓김을 받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모세는 이 또한 광야 40년의 훈련이 그를 위대한 이스라엘 민족 지도자로 탈바꿈하는 그런 계기가 된 것입니다.
▶다윗 역시 약점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사랑하는 종' 이라고 하셨습니다.
실패가 새로운 성공의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삼손도 하나님을 잃어버렸다가 실패자가 된 뒤 다시 하나님을 찾아 능력을 얻어 신앙의 성공자가 되는 모습을 봅니다.
▶영화에서는 삼손을 로맨틱한 한 주인공으로 잘 그려 냈지만 위대한 신자의 상(像) 은 하나도 그려 놓지 않았습니다.
물론 불신자들이 만들어 낸 영화이니까. 그러나 로맨틱한 삼손의 인간성은 마치 다윗 왕을 그리듯 잘 그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것은 로맨틱한 히어로 삼손보다는 위대한 신앙의 용사 삼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보증하신 까닭은 그가 자기의 사명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또 자기의 나아가는 데 대해서는 무서워하지 않고 용기 있게 전진하면서, 문제가 있을 때는 그것을 하나님께 전부 의지해 버리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이었기에 여기에 위대한 신자의 전례로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인물들, 가령 기드온, 바락, 입다, 다윗 등은 모두다 인간적인 약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약점을 가지고 있었을지라도 위대한 신자인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인간적인 약점이 있는 것을 저어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대한 신앙이 없는 것을 더 통분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인 약점을 뚜드려 고치려고 해서 백번을 고쳐 봐도 인간은 기왕에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 때문에 때때로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목적을 향하여 행진하고 또 용기 있게 하나님을 이지하고 그 힘을 받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적 앞에 과시하고 증시하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영웅 삼손, 위대한 신앙의 용사 삼손의 행적입니다.
2. 생활은 엉망이었으면서도 사명은 감당함
어떤 사람을 위대한 신앙의 용사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위대성 때문이겠지만, 삼손을 위대한 신앙의 용사라 하게 한 그의 신앙의 첫째 기초는 분명히 그가 지기 자신을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여서 하나님 앞에 드린 나실인의 위치를 스스로 변경하거나 포기한 일이 없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즉 그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과 목적 안에서 살려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바른 신앙의 자세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상당히 관대하고 훌륭한 품성을 나타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기의 일생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거룩한 계획과 경륜의 내포 안에서 분명한 목적을 향해서 진행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종교의 자세는 될지언정 신앙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란 먼저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거룩한 목적과 거룩한 경영의 테두리 안에 있는 동안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것을 벗어난 사람을 도저히 훌륭한 신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예배당에 잘 다니고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아무리 선행과 자선을 행할지라도 그가 하나님 당신께서 그를 세우신 본래의 목적을 향해 생활해 나가는 일에 관해서 일호도 각성하지 못하고 있을 동안에는 신앙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히브리서 저자는 그런 사람을 신앙인으로 거용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에서 구원의 신앙의 용사로서는 오히려 삼손과 같은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것을 늘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삼손의 신앙에서 한 가지 주의할 사실은 그는 자기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려고 나갔다는 점입니다.
그가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여자를 취한 것도 사실은 어떻게든지 물의와 흔단을 일으켜서 정당한 이론과 정당한 구실 하에서 싸우려 한 까닭입니다.
삼손은 태평하게 뒤에 늘어뜨리고 앉아 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왜 만들어진 사람이냐? 블레셋 사람과 싸워 이겨야 할 사람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군대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군대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이스라엘에 아무도 나를 원조할 사람이 없어도 나 혼자 블레셋사람과 싸워야겠다. 기왕 그럴 바에는 내가 블레셋 사람들 속에 들어가 블레셋 사람의 사위가 되고 그들의 동무가 되어 적정(敵情) 을 탐지하고 그 허실을 안 다음에 내가 그놈들을 도륙해야겠다' 고한 것입니다.
이러기 위해서 그 사사 시대에 있었던 소위 혼인의 연환 정책(連環政策) 을 썼습니다. 삼손이 자기의 지혜껏 이렇게 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가 거룩한 사명을 수행하는데 이것을 가장 유효 적절한 방법으로 그의 마음에 주신 까닭에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삼손의 아버지도 그것을 몰랐습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이때에 블레셋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삿14:1-4).
그러므로 삼손이 자기 지혜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지혜롭고 또 지금 할 일인가를 면밀하게 생각할 때 여호와께로부터 이런 지혜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특별히 계시를 받아서 했다는 말보다는 자기 자신이 생각하고 '이것이 가장 타당하고 가장 무난한 방법일 것이다. 이 일부터 시작해서 적정의 허실을 탐지하고 이것을 계기로 내가 흔단을 일으켜야겠다. 나는 이렇게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명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신앙이 아니면 못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일생의 목적에 대해서 분명한 각성을 가지고 불요불굴히 그 목적을 향해서 주신 바 그 사명의 분야에서 전진하는 사람을 성자라고 하지 않고, 어떤 이상한 종교적 분위기 가운데 기묘한 행동을 하거나 또는 남에게 자기를 전부 주는 듯 한 일을 하는 사람을 성자라고 생각합니다.
슈바이처 같은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20세기의 성자로 모시고 있으며, 기독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많은 자선을 행하려고 자기 몸을 내어주어 불사른다면, "아, 그 사람 성자다"라고 합니다. 그 사람에게 사랑이 있든지 없든지 자기의 인간적인 동기와 종교적 정열에 따라 움직여 자선을 행하겠다고 하면 그것을 값있는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은 가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고전13:3).
신앙이라고 할 때에도 그런 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라고 할 때는 항상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보내심을 입었는가에 대한 각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삼손이 무슨 신자냐?"고 하겠지만, 그는 자기가 왜 이 세상에 나왔고 무엇을 위해 있는가를 오늘날의 수많은 기독교인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위대한 신자가 되는 데 가장 기초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일생 거기서 떠나거나 배반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혼자 열심히 예배당 다니고 종교생활 하는 것을 위대한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자기의 종교 전당에 나가는 것이 기독교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힌두나 브라만들은 훨씬 더 고행도 많이 하고 참회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합니다. 아주 일생을 들여서 기도만 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존재케 하시는 사명을 알고 생명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인정받는 길입니다.
▶ 어느 날, 한 동물농장에서 동물들이 강한 동물농장을 만들자고 결단했습니다. 그래서 새는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인 수영실력 배양을 위해 열심히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물고기는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인 비행실력 배양을 위해 열심히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동물농장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새와 물고기는“왜 우리의 좋은 결단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하고 낙심해서 현인을 찾아가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현인이 충고했습니다. “강한 것보다 건강한 것이 더 중요하단다! 건강한 동물농장을 만들려면 새는 물고기를 부러워하지 말고 열심히 날고, 물고기는 새를 부러워하지 말고 열심히 헤엄치면 된단다.”
자기가 받은 대로 살아야 합니다. 남 하는 일 탐내면 안됩니다. 내가 받은 사명만 잘 하면 됩니다. 도덕군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좋은 신앙 채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받은 사명에 매달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 받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 할 본분이 있습니다.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놓여 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깨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그 직분을 맡겨준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엉뚱한 일에 정신이 팔려서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자는,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당나귀와도 같이, 칭찬은커녕 도리어 화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 따라 사는 길이 하나님께 평가 받는 믿음입니다.
3.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도함
삼손은 실패했다가 마지막에 다시 한번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이 있을 때 적을 무서워하지 않고 적 앞에서 감연히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또 자기가 사명을 수행해 나갈 때 즉 블레셋 사람을 도륙하고 목이 말라서 애쓸 때에도 자기 스스로 샘을 찾아 돌아다니지 않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엔학고레',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의 샘이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나를 할례받지 못한 자의 손에 빠지게 하셔서 '아하, 할례를 받고 하나님이 특별히 빼낸 사람도 별수 없구나' 하고 이렇게 하나님께 욕 돌리지 않게 합소서"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우묵한 곳을 터쳐서 물이 나게 하셔서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이요 위대한 신자가 하는 일입니다.
삼손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여호와께 부르짖자 다시 능력을 주셔서 승리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28-30).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은 것으로 자신들의 신인 다곤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큰 잔치를 벌였습니다.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 신전에 모여 먹고 마시며 삼손을 불러다 놓고 놀리고 재주를 부리게 하였습니다.
삼손은 자신을 조롱하는 시간이 지난 후에,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을 인도하는 소년에게 신전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년은 삼손이 원하는 대로 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었습니다.
삼손은 기둥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간절히 최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그러자 그 신전이 무너져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을 덮었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3천명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가 살아 있을 때에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능력을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블레셋 족속들을 쳐부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과 위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삼손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능력과 힘을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요나 2장 말씀을 보면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니느웨 성으로 가라는 말씀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도망을 치다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버려도 되지 않자 제비를 뽑게 되었고, 결국 요나가 뽑혀 물에 던져지고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하면 죽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삼손이 간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셔서 그로 하여금 마지막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삼손은 두 눈이 빠져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카락을 잘렸기 때문에 힘도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절망에 부딪친 삼손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이제라도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삼손은 목숨을 걸고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듣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로써 삼손은 삶의 마지막 순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믿음으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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