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대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계1장9절에 보면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외부로부터 큰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내부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또 두아디라교회는 하나님 앞에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사데교회는 역사적인 전통만 있고 현재에는 영적으로 죽어 있었습니다. 또 라오디게아 교회는 육신적인 배부름 때문에 영적으로 완전히 메말라 있었습니다.
/이런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오늘 한국교회가 떠올려집니다. 외부적으로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로 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내부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또 교회의 순수성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만 자랑하는 교회가 되고 있습니다. 또 물질의 부요함 때문에 영적인 열정이 점점 식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사면초가와 상태에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또 인생 그 어디에도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사면초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겠습니까? 또 인간적으로 사면초가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과연 희망이 있겠습니까?
예 분명이 있습니다. 이 땅에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초대교회가 외부적으로 환난이 있고, 또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고, 또 사도요한도 개인적으로 밧모라는 섬에 갇혀 있는 절망의 상황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사면초가와 같은 절망적 상황일지라도 하늘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이 일후에”라는 말은 시간적인 순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일곱 교회의 시대가 지난 다음에 우리에게 하늘의 세계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이 일 후에”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계시를 보여주는 순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상의 일곱 교회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시고 난 다음에 일곱교회가 고난을 받고 있는 그때에 하늘의 세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세계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이 존재하는 하늘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저는 하늘의 영적세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하늘의 영적 세계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요한은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라고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늘은 어디에 있는 하늘을 말하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하늘을 저 우주건너편에 있는 하늘로 생각합니다. 만일 여기에 나오는 하늘이 저 우주건너편에 있는 하늘이라면 어떻게 사도요한이 자신의 눈으로 “내가 보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요한이 눈이 얼마나 좋기에 저 우주건너편에 있는 하늘을 볼 수 있겠습니까?
/주기도문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만일 거기서 하늘이 저 우주 건너편에 있는 하늘이라면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할 때도 저 우주건너편하늘에 있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도록 더 큰 소리로 기도해할 것입니다
/또 여기서 하늘이 저 우주 건너편에 있는 하늘이라면 우리가 여기서 기도하는 것보다 높은 산에 기도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본 하늘은 저 멀리 있는 하늘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 있는 영적세계를 말합니다. 또 하나님이 계신 하늘도 멀리 있는 하늘이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하늘의 영적세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느2장 4절을 보면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라고 합니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했을 때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 잠깐 묵도로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하늘은 저 멀리 있는 하늘이 아니라 느헤미야 옆에 있는 하늘의 영적계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굳이 크게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속으로 기도해도 우리 옆에 있는 하늘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가 크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간절함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바로 옆에 있는 하늘의 영적세계 계시기에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으시고, 우리가 저 지하 깊은 곳에서 부르짖어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왕과 대화를 나누다가 마음속으로 잠깐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어떤 기도의 응답이 주어집니까?
느2:8. “-- 내 (하늘의)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여기서도 하늘은 우리 옆에 있는 하늘의 영적세계를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 옆에 있는 하늘의 세계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을 눈에 보이는 세계에 나타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선한 손으로 도우사” 왕이 예루살렘성벽건설 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매일 이렇게 기도합니다. “내 옆에 하늘의 세계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밀어 암을 고쳐주시고, 육신의 질병과 연약함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서 밖으로 보거나 또 나 자신을 볼 때 그 어디에도 돌파구가 없어 보입니까? 그 어디에도 희망이 없어 보입니까?
/이럴 때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이 세계만 아니라 하늘의 영적세계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늘의 세계 속에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고, 우리의 기도소리와 신음소리를 듣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일곱 교회가 환난가운데 있고, 또 내부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런 상황가운데서 사도요한은 하늘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요한이 바라본 하늘의 세계는 어떠합니까?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일곱교회가 환난가운에 있을 때 사도요한이 하늘을 보니까 그 하늘에 보좌가 있습니다. 그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일곱 교회가 외부적으로 큰 환난가운데 있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하늘의 보좌에서 온 세계를 주관하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 우리가 가지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어떤 사람들이 내 삶을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를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 상황이 내 삶을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나를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는 이 세상이 내 삶을 주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성도들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초대교회가 로마정부로부터 압박과 핍박이 있을 때 로마정부가 온 세상을 주관하고 있고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세계를 보니까 이 세상을 주관하고, 우리의 모든 삶을 다스리시는 분은 g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전히 하늘의 보좌에 앉으셔서 이 모든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삶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금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십니까?
3.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 깨끗한 벽옥 같고, 붉은 홍보석 같고, 또 그 보좌 뒤에 무지개가 있는 녹 보석 같습니다.
여기서 하늘의 보좌에서 하나님께서 깨끗한 벽옥과 같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정직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깨끗하지 못합니다. 불의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을 공의와 정직과 깨끗함으로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좌에서 공의와 정직과 깨끗함으로 다스리고 계시는데, 지금 이 세상은 어떠합니까?
공의롭지 못합니다. 정직하지 못합니다. 불의합니다. 깨끗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바르고 깨끗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불의한 자 앞에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로마정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이 붉은 홍보석 같더라는 것은 하나님이 이 땅의 불의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붉게 진노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절에서도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늘의 보좌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보좌라고 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진노의 보좌, 또는 심판의 보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5장 1절에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하는데, 여기서 이 두루마리는 불의한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계시를 담은 두루마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 세상을 공의와 정직으로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하나님은 지금 진노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당장 이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면 되는데, 왜 당장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 뒤에 무지개가 있습니다.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우신 언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이 불의하지만 당장은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보통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깔인데, 여기서는 보좌 뒤에 무지개가 녹 보석 같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교회 강단 뒤에 무슨 색깔입니까? 녹색입니다. 조금 연한 녹색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진하게 나왔습니다. 제가 왜 강단 뒤에 색깔을 녹색으로 하려는가 하면 이 요한계시록 때문입니다. 녹색은 분을 잠재우는 색입니다. 여러분도 자주 녹색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 안에 분이 잠재워집니다.
하나님의 보좌 뒤에 왜 녹 보석 같은 무지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세상을 보시면서 진노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노아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분을 오래 참고 계십니다.
또 4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4절을 보시면 보좌 주위에 24장로들의 보좌가 있고, 그 24보좌 위에 24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는 승리의 금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24장로는 오늘의 장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24장로란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12지파, 신약에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12사도라고 해서 24입니다. 그러니까 24장로란 신구약에 나오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하늘에 있는 영적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주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24장로들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더 가까이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6-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여기서 보면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네 생물의 여섯 날개가 있고, 날개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합니다.
/성경에서 4라는 숫자는 동서남북, 또는 사방이라고 해서 이 세상을 나타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네 생물은 이 세상을 대표하는 하늘에 있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네 생물이 두 날개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고, 두 날개로는 자신의 발을 가리 우는데, 날개의 안팎에 눈이 가득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네 생물의 눈들을 통해 온 세상을 지금도 살펴보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네 생물을 통해서 온 세상을 살펴보고 계십니다. 또한 지금도 살아계셔서 저와 여러분들의 은밀한 모든 것도 다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우리 옆에 있는 이 하늘의 세계를 어떻게 보고, 체험할 수 있습니까?
1)먼저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하늘의 세계를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사도요한과 같이 이 하늘의 세계를 보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하늘의 영적세계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 사도요한이 하늘에 영적세계를 보고, 또 하늘의 그 영적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특별히 사도이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기 위해서 하늘의 영적세계를 보여주시고,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도 이 하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고, 또 들어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사도의 계승자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신사도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도는 사도요한으로 끝이 났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에 많은 찬양집회와 집회들을 통해서 이 신사도운동이 한국교회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사도요한처럼 하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요한계시록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사도요한이 우리에게 전해준 이 요한계시록을 통해서만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하늘의 세계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말씀을 통해서만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2)또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하늘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예배란 우리가 이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서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날마다 우리는 하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하늘은 저 우주 건너편의 하늘이 아니라 지금 우리 옆에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영적세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의 보좌에서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세계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 불의한 세상에 대해서 진노하고 계시고, 또 오래 참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24장로들이 금 면류관을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경배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또 이 세상을 대표하는 네 생물들이 밤낮을 쉬지 않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늘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고, 하나님도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계시며, 또한 24장로들과 네 생물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네 생물과 같이 24장로와 같이 우리가 있는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한다면, 예배를 통해서 하늘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곁에 있는 네 생물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찬양하고 예배하고 있습니까?
8.--그들이(네 생물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여기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는 말은 “다르다 다르다 다르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내가 부족하면 하나님도 부족하며, 내가 힘이 없으면 하나님도 힘이 없으며, 내가 할 수 없으면 하나님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은 나와 다르시고, 세상의 모든 인간과 다르시고 이 세상과 완전히 다르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비록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부족하거나 연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달리 언제나 전능하시고 강하십니다. 나는 비록 이 세상에서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실패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은 절대 이 세상가운데 싸이지 않습니다. 나는 천만번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병들어 죽어서 없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세세토록 살아계셔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날마다 나와 다르시고, 세상과 다르시고, 모든 사람들과는 다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입술로 날마다 고백하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와 다르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하늘의 세계를 경험하고 체험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절망가운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가운데 비로소 기적으로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24장로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찬양하며 예배하고 있습니까?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금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여기서 24장로들은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합당하다는 말은 영어로 worth 즉 “가치있다”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worth” 즉 “가치 있다”는 말에서 “worship” 즉 예배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무엇 입니까?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어떤 콘서트에 가면 10만원을 줄때도 있고, 그 이상을 줄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공연이 그 돈을 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24장로들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몸을 완전히 엎드려 경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 전체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또 금 면류관을 던집니다. 이것은 내 삶 가운데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24장로는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삶의 전체와 자신의 삶 가운데 제일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24장로들이 자신의 삶 전체와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완전히 드릴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몸이 좋지 않아서 예배에 설교하지 못하고, 대신 그 동생이 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유명한 형님 목사님이 오시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때 동생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에서 유명한 목사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 것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 가운데서 형님 목사님에게 예배를 드리러 오신 분들이 있다면 모두 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지금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왔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단순히 설교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보고 누구에게 보이기위해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전부를 드려도 아깝지 않는 하나님, 내 삶 가운데 제일 귀한 것을 드릴만한 가치가 있으신 하나님께 진심을 다해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 제일 가치는 분으로 여기며 찬양할 때 바로 이곳이 바로 우리 가까이 있는 하늘의 세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약!! 요한 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요한계시록강해1-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는가?(요계1:9-20) (0) | 2012.12.12 |
---|---|
[스크랩] 요한계시록강해2-교회 내부의 적(계2:1-5) (0) | 2012.12.12 |
[스크랩] 빌라델비아교회(계3:7-13) (0) | 2012.12.12 |
[스크랩] 문밖에 서 계신 예수님(요계3:14-20) (0) | 2012.12.12 |
[스크랩] 요한계시록강해4-하늘의 예배(계5:1-14) (0) | 2012.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