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예배를 본다는 말이 맞습니까? 예배를 드린다는 말이 맞습니까? 성경 어디에도 예배를 본다는 말은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귀중한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귀중한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가지고 예언할 수 있습니다. 예언이라는 것이 앞으로 몇 년 뒤에 누구와 어떻게 결혼할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삼상2:30. (예배를 드릴 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예언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여러분의 삶의 미래를 결정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렵고 힘이 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정말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운데 정말 삶이 어렵고 힘든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절대 그 청년들의 앞길을 외면하지 아니하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그 청년들에게 베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올해부터 대학 1년차 모임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공부를 많이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 가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하나는 예배이고, 또 하나는 봉사입니다. 그 중에서도 예배입니다. 다른 것은 못해도 예배만큼은 철저히 훈련하려고 합니다. 예배를 드릴 때 평생 설교노트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또 예배시간에 늦으면 제가 지금도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내년에 예배위원회를 더 강화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이 일을 최우선으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 교회에서 좋은 신랑감 신부감을 찾으십니까? 그렇다면 예배시간에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래전에 병원선교회 예배를 인도하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때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잠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그런데 한 자매가 있었는데, 정말 예배에 집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자매가 어떤 청년과 결혼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저는 적극적으로 추천을 했습니다. 지금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무엇보다 하나님께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첫째.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먼저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누구이신가를 분명히 알아야합니다.
둘째는,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합니다.
셋째는, 우리가 이 예배를 드릴 때 하늘의 영적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잘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1)먼저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누구인가를 잘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 계4장에서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보좌에 앉으신 성부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부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계4:11).
그런데 오늘 본문 계5장에서는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성자 예수님입니다.
지난주 79세 된 할아버지에게 전도를 하는데 그분은 자신은 하나님을 분명히 인정하고 믿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인정한다고 해서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를 인정하고 믿어야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게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하늘에 있는 24장로들과 네 생물과 천군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경배하고 예배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13—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성부하나님)와 어린 양(성자예수님)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예배)하더라”
그러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먼저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여기서 보면 하늘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 손에 두리마리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어떤 책입니까?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단7:9.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벽옥-공의)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홍보석-심판)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려 하십니까?
이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금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심판하는 내용이 담긴 그 두루마리 책이 일곱인으로 봉하여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심판하는 두루마리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여기 일곱 개의 두루마리가 있습니다(보여줄 것). 그런데 일곱 개의 두루마리가 일곱 개의 끈으로 묶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끈에 일곱 개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이렇게 도장이 찍힌 것은 아무나 이 두루마리를 열어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졌다는 말입니다.
2절과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하늘의 천사가 “누가 이 두루마리를 펴기 위해서 이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위에서 땅위에서 땅 아래 그 어느 누구도 그 심판의 두루마리를 펴거나 볼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3.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하늘과 땅에 그 어느 누구도 이 심판의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기에 합당한 자가 없어서 요한은 크게 울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요한이 왜 이렇게 크게 울고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큰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계6장에 보면 이 세상은 경제적 가난으로, 육체적인 질병으로, 또 죽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또 지금도 이 세상의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 . 이런 가운데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내용이 담긴 그 책이 열어져야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심판의 책을 열자가 없어서 사도요한은 크게 울고 있습니다.
이때 5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 세상을)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24장로중의 한 사람이 요한에게 “울지 말라”고 합니다. 유다지파의 사자, 그리고 다윗의 뿌리가 이 세상을 이겼으니 그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유다지파의 사자(라이온)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12지파가운데 유다 지파에서 나오셨습니다.
창49: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예수님이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사자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다윗의 뿌리도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다윗 왕의 자손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왕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지파의 사자로, 다윗 왕의 자손으로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일곱 인을 떼신다는 말은 먼저 이 세상을 심판한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여신다는 말도 되고, 또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말도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이 심판의 책이 열릴 때,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왕이십니다.
/지난주에 예수님에게 아내가 있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고 언론에서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 문서는 이단콥트종교의 문서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문서입니다. 만일 문선명이 메시야라는 오늘날의 이단문서를 몇 백 년 뒤에 사람이 본다면 그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아내가 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습니다. 단순한 인간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주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제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실 왕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6절과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그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이 말씀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심판의 두루마리 책을 취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도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에 대해서 앞에서는 사자라고 하고, 또 여기서는 어린양이라고 합니까? 사실 사자와 어린양은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자는 정복자 심판자를 뜻하고, 어린 양은 희생을 뜻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에 대해서 앞에서는 사자라고 하고, 뒤에서는 어린양이라고 합니까? 초림 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재림 때 예수님은 사자같이 이 세상을 완전히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예배시간에 예수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과거에 예수님은 희생당하신 어린양이셨지만, 이제는 승리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또 5장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계5:9,“---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라고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사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비전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각 나라와 족속 백성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드리네~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어떤 큰 사업을 벌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비전은 우리 모두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여 함께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예수님에게 경배 드리고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배시간에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에게 경배하며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또 오늘 본문 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과거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예수님)은 (이제)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고 합니다.
여기서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의 여섯 가지는 예수님께서 지금 가지고 계신 것들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이 모든 것을 가지신 예수님께 대한 찬송입니다. 예수님은 과거에는 십자가를 지셨지만 승리하셔서 이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보좌우편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위임받아 실행하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위임받아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을 가지고 계신 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지극히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지만 이제는 살아계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찬양할 때 네 생물이 “아멘”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예수님에게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라고 할 때 오늘 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예배처럼 함께 “아멘”이라고 화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에게 세상과 사탄의 모든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멘
예수님에게 영육간의 모든 부요함과 풍성함이 있습니다. 아멘
예수님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모든 지혜가 있습니다. 아멘
또 예수님에게 악한 자를 심판하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아멘
또 이제 예수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존귀와 영광이 있습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아멘
또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분이십니다. 아멘
--2)또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합니다. 오늘 10절을 보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예배자)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왕과 같은 제사장, 즉 우리는 왕 같은 예배자라고 합니다.
그러면 왕 같은 제사장은 어떤 자입니까? 히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왕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복의 통로)
여기서 보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만 아니라 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왕 같은 제사장이란 하나님께 예배하고 섬기는 자로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복을 비는 자, 즉 축복의 통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면 제일 먼저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말은 우리가 예배를 잘 드림으로 우리만 복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예배란 이 시간에 드리는 예배만 아닙니다. 우리가 삶으로 드리는 예배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바르게 살아갈 때 우리가 먼저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삶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바르게 살아갈 때 우리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지난 화요일에 산상설교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청와대라고 했습니다.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이 잘 하면 이 땅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청와대 사람들이 잘못하면 그들 때문에 이 땅에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요 등경위의 등불이고, 산위에 있는 동네, 즉 왕궁, 영적인 청와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는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또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우리만 하나님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때문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여러분 요즘 왜 이 세상에 이렇게 흉악한 성범죄가 많은 줄 아십니까? 왜 지금 이 세상이 분열과 다툼이 많은 줄 아십니까? 우리 중랑구가 전국에서 성범죄자 비율이 다른 구에 비해서 많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이 세상에 흉악한 성범죄가 많은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성적으로 더 깨끗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분열과 다툼이 많은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더 사랑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 세상이 아무리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르게 살면 우리 때문에 이 세상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하나님께 더 온전하게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도 복을 받고, 우리 때문에 이 세상이 복을 받게 되는 참된 예배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하늘의 영적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잘 알아야합니다.
계5:8.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예수님)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찬송)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우리가 이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또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영적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특별히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기게 됩니다.
계8장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금대접)으로부터 하나님(보좌)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천사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답 깁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갑니다. 그때 계8장 5절에 보면 그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 땅에 기도 응답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이 기도가 절대 허공만을 울리는 메아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드리는 이 기도가 하늘의 영적인 세계에서 볼 때 천사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겨져서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여기서 드리는 이 기도에 대해서 래드라고 하는 신학자는 우리가 한번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교회가 오랫동안 함께 해온 기도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기도들”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거저 몇 번 기도했다고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오랫동안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는 기도가 하나씩 천사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금 대접에 담겨져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영안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이고, 그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이 땅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약!! 요한 계시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빌라델비아교회(계3:7-13) (0) | 2012.12.12 |
---|---|
[스크랩] 문밖에 서 계신 예수님(요계3:14-20) (0) | 2012.12.12 |
[스크랩] 요한계시록 설교 22편 모음(송영목교수) (0) | 2012.12.12 |
[스크랩] 요한계시록 전체개관(김광석) (0) | 2012.12.12 |
[스크랩] 요한계시록의 간략한 담론분석 (0) | 2012.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