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의 끝에 있었던 일을 고백하자면, 사실 그 꽃은 개망초가 아니었다. 제대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꽃을 잘 아는 척하려고 생각나는 대로 뱉은 것이 화근이었다. 몰래 사진을 촬영해 놓고 나중에 찾아보니 그건 쑥부쟁이였다.
그 이후 겨울이 찾아왔고, 산과 들에 생기가 넘치는 계절 봄이 온다. 이번엔 얼굴 화끈거릴 실수를 다시 하지 않기 위해 국립수목원에 의뢰를 했다. '시험 족보'처럼 4월에 쉽게 볼 수 있는 야생화들을 말이다.
그렇게 4월 10대 야생화를 선정했다. 4월에 이 꽃 10개만 외워두고 산행하면 웬만하면 꽃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화도 있고, 야생화인 줄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귀중한 몸인 것도 있다. 국립수목원 정수영 연구사가 해설과 한 줄 평을 맡았다.
01 생강나무
갑자기 생강 냄새? 생긴 건 산수유? "저는 생강나무입니다"
가지를 꺾거나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이 생강나무다. 강원도에서는 남쪽에서 자라는
동백나무 열매의 기름처럼, 옛 여인들이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발랐다고 해 '동백나무'라 부르기도 했단다. 그래서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나무는 사실 생강나무다.
전국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관목이며, 이른 봄 잎보다 먼저 노란 꽃을 피운다. 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암수딴그루다. 얼핏 보면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산수유와 닮은 듯하나 꽃자루가 짧고 털이 있어서 눈여겨보면 차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산을 오르다 마주치는 노란 꽃 뭉치를 달고 있는 생강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산행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 준다.
02 복수초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봄꽃계 1등 주자
복과 장수를 축원한다는 뜻의 복수초는 이른 봄에 피는 야생화 중 하나다. 거의 모든 식물이 추위에 잠들어 있을 때 홀로 먼저 눈을 녹이면서 피어나서 소빙화消氷花, 얼음새출, 얼음꽃, 얼음새기꽃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높은 산지에 분포하고 있어서 찾아가려면 꽤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른 봄, 꽃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만큼 탐스러운 꽃을 피우기에 수고를 들일 만하다. 꽃은 밝은 황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 1개씩 달린다.
키가 작은 풀이기에 산을 오르다 등산로 주변 발아래를 살펴보면 간혹 만날 수 있다. 산 저지대에서도 복수초와 비슷하게 생긴 꽃을 만나볼 수 있는데 줄기에 가지가 갈라지고, 꽃잎이 꽃받침조각보다 길면 개복수초, 잎 열편이 뾰족하면 세복수초다.
03 연복초
"밟지만 말아 주세요. 이렇게 보여도 꽃이랍니다."
연복초라는 이름은 바큇살이 이어져 있는 풀이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줄기에 5개의 꽃이 바큇살처럼 이어져 핀다. 전국 산지 습한 환경에 자라며, 꽃은 초록에 가까운 황록색으로 작게 피어 꽃이 피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잎이 낮게 바닥에 깔리듯이 자라며 그 틈새로 작은 꽃줄기가 올라와 4~6개의 꽃이 머리 모양으로 모여 달린다. 굉장히 흔한 꽃이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아내기 어려운 야생화이기도 하다. 카메라나 휴대폰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사진으로 꼭 소장해 보길 권한다.
04 산괴불주머니
어미 새 향해 입 벌린 노란 병아리들의 모임
산괴불주머니는 전국의 산과 들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야생화이지만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작게는 1개체, 많게는 여러 개체가 큰 덤불을 이루고 자라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꽃은 황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 20개 내외의 꽃들이 긴 꽃차례로 모여 달린다. 1개체라도 보였다면 주변에 다른 개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2년생 식물이지만 많은 꽃이 피는 동시에 열매에 10개 정도 씨가 들어 있는, 번식에 진심인 식물이기도 하다.
05 꿩의바람꽃
나무에 목련 필 때 땅에서 같이 피는 목련
꿩의바람꽃이라는 이름은 땅속줄기에서 나온 잎이나 꽃받침 등의 모양이 꿩의 발을 닮아서, 또는 꿩이 서식하는 산 숲속에서 자라는 바람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전국의 산지에서 자라고 대개 무더기를 이뤄 자라 새의 둥지 마냥 모여 있다. 꽃은 백색으로 탐스럽게 피어 봄철에 눈을 즐겁게 하는 야생화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들바람꽃 등 바람꽃 종류들이 대개 봄에 피어 있는 기간이 길지 않기에 꽃을 보려면 아주 재빨라야 한다. 온라인이나 동호회 등지에서 꽃 소식이 들린다 싶으면 서둘러 산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이다.
06 얼레지
고개 숙인 부끄럼쟁이…'얼레지꼴레리'
얼레지라는 이름은 잎의 표면에 있는 자주색 무늬가 얼룩덜룩하게 보이는 것에서 유래했다. 일부 잎에서는 얼룩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두꺼운 자주색 얼룩무늬가 나타난다. 일부 지역에서는 얼레지를 나물로 식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독성이 있는 부분이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제주도를 제외한 내륙 산지에 자라고 있으며 꽃은 적자색으로 아래를 향해 핀다. 4월 전후로 꽃이 피는데 이 시기를 맞추지 못해도 잎은 볼 수 있다. 높은 산지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가까운 광릉숲에서도 볼 수 있다.
07 보춘화
고혹한 매력 지닌 고귀한 '사군자'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 의미의 보춘화는 이른 봄에 피는 상록의 난초다. 같은 집안의 난초류로는 한란, 죽백란, 소란 등이 있는데 대부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보춘화는 아직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난초 중 하나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집단을 이루기보다는 듬성듬성 산발적으로 자란다. 꽃은 황록색이 기반이지만 개체마다 조금씩 다르며 한 개씩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난초는 신비롭고 보면 볼수록 가까이 두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식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획되는 난초가 적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점점 멸종해 가는 난초를 애정과 관심이 있다면 조금 더 뒤에서 봐주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08 진달래
진정한 봄의 전령… 산이 새해 처음 바르는 발그레한 기초화장품
봄을 알리는 나무 중에서도 누구나 이름은 알고 있는 진달래다. 꼭 산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개나리와 함께 봄을 대표한다.
진달래라는 이름은 진한 분홍색의 꽃이 피고 식용할 수 있는 들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전엔 진달래를 이용해 꽃전, 화채 등을 만들어 먹기도 했듯이 우리 일상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나무다.
그리고 철쭉과 비슷하게 생겨 구분에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진달래는 산철쭉, 철쭉보다 먼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는 특징이 있다. 진달래가 질 때쯤 산철쭉과 철쭉이 잎과 함께 꽃이 피기 시작하니 이 점만 유의하면 쉽게 구분이 가능할 거라 생각된다.
09 한계령풀
산에 나는 감자… 보호종이라 캐면 큰일
한계령풀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제한적으로 분포하며 개체수도 많지 않아 현재 희귀식물로 등록돼 있다. 주로 강원도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땅속에 덩이줄기를 가지고 있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덩이줄기는 줄기에서 땅속으로 이어지는 콩나물처럼 생긴 긴 새 뿌리 끝에 둥근 감자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 '산에 나는 감자'로도 여겨진다. 하지만 땅속 깊이 있어서 그 감자 모양을 실제로 확인하긴 쉽지 않다.
캐는 것은 불법이므로 절대 하면 안 되니 세밀화나 도감을 통해 그 모양을 찾아봐야 한다. 꽃은 밝은 황색으로 피며 줄기 끝에 5~30개씩 모여서 달린다. 희귀식물인 만큼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강원도 지역 산행을 계획한다면 한계령풀과 만남을 고대해 보면 좋을 것 같다.
10 산자고
한국의 튤립을 아시나요?
산자고는 산지 저지대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꽃은 백합을 닮았고 잎은 무릇을 닮았다. 잎은 흔히 2개씩 나며 줄기 끝 부분에 백색 꽃이 1개씩 달리고 바깥쪽에 적자색 줄무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잎과 줄기가 땅에 눕거나 비스듬히 바닥에 깔려 있는 형태로 자란다. 지역에 따라 어린 잎을 삶아서 나물로 먹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