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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곳 찾아 '원정 접종' 하는 사람들, 천차만별 백신가격 괜찮나

하나님아들 2025. 3. 24. 20:29

싼 곳 찾아 '원정 접종' 하는 사람들, 천차만별 백신가격 괜찮나

입력2025.03.24.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HPV·독감·대상포진·장티푸스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백신 찾아서
'원정 접종' 나서는 사람들 생겨
가격 차이 발생하는 이유는
백신이 비급여 항목이어서
병원 측이 자율로 가격 정해
예방접종 접근성 높이려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
HPV 백신을 포함한 다양한 예방 접종의 가격은 병원마다 다르다. 백신이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돼서다. 그래서인지 저렴한 비용을 찾아 헤매는 '원정 접종' 같은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는 예방접종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백신 접종 비용이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사진|뉴시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우예슬(22)씨는 최근 인체유두종바이러스(HPVㆍ자궁경부암 등의 원인) 백신 '가다실9'를 접종하기 위해 집 근처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예슬씨는 친구가 60만원을 내고 백신을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곳에서는 "75만원을 내야 한다"는 안내만 거듭했다.

예슬씨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5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방문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냈다. 그는 "일정 기간에 3차례 접종을 해야 하는데 병원이 집과 멀어서 번거롭다"며 "그래도 똑같은 백신을 더 비싼 돈을 주고 맞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HPV 감염으로 인한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서영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HPV 대표 질환인 자궁경부암 환자는 2020년 6만1892명에서 2023년 7만109명으로 13.3% 증가했다. 지난해 1~8월엔 6만186명으로 집계됐으니, 연간으로 보면 2023년보다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HPV의 또다른 질환인 두경부암과 구인두암 환자도 2020~2023년 각각 7.0%(41만7020명→44만6322명), 14.4%(5814명→6651명) 증가했다. 지난해 1~8월엔 두경부암 환자 38만3921명, 구인두암 환자는 6002명이었다. [※참고: HPV는 인체유두종바이러스로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된다. 대표적으로 자궁경부암, 두경부암, 구인두암, 외음부암, 질암, 항문암 등의 질환을 유발한다.]

이처럼 HPV 관련 환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백신(가다실9)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서울 은평구에 있는 A병원은 가다실9 1회 접종 비용이 18만원이었다.

반면 마포구에 있는 B병원은 1회 접종 비용이 27만원으로 10만원 가까이 비쌌다. 가다실9는 총 3차례 접종해야 하기 때문에 A병원을 이용할 경우 54만원, B병원을 이용할 경우 81만원의 비용이 든다. 똑같은 백신을 맞는데, 가격 차이가 27만원에 이른다는 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에선 '가다실9 저렴하게 맞는 곳 추천해주세요' '동네에서 가다실9 가장 저렴한 병원 어디인가요' 등의 질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진|뉴시스]


비단 HPV 백신만이 아니다. 독감ㆍ대상포진ㆍ장티푸스 등 다른 백신 역시 병원별로 가격차가 컸다. 독감 인플루엔자의 사례를 살펴보자. 독감은 2016년 이후 최대 규모로 확산 중이다.

질병관리청은 의원급 300곳의 독감 의사환자擬似患者(독감 증상을 보이는 의심환자)를 표본감시한 결과, 외래환자 1000명당 73.9명을 기록했다고 밝혔다(2024년 52주차ㆍ12월 22~28일 기준). 2016년 외래환자 1000명당 86.2명을 기록한 이래 8년 만의 최대치다.

그만큼 독감 환자가 늘어났다는 건데, 공교롭게도 독감 백신 가격은 2만~4만원대로 일률적이지 않았다. 4인 가족이 모두 독감 예방 접종을 할 경우 가격 차이는 8만원대에서 16만원대로 벌어진다. 어느 병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비용 부담이 달라지는 셈이다.

그렇다면 병원마다 백신 접종 가격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백신 접종은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어서다. 비급여 항목은 가격 기준과 규제가 없어 의료행위 비용을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산정한다.

문제는 비급여 항목의 예방 접종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숱하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백신가격이 저렴한 병원을 찾아 1시간 이상 이동하는 일명 '원정 접종'까지 일어나고 있다.

해결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는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National Immunization Programㆍ이하 NIP)의 방향성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부터 감염병을 예방ㆍ관리하기 위해 국가예방접종지원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데, 소아를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 성인 대상 접종은 제한적이다. 고령층이 무료로 접종할 수 있는 백신도 독감과 폐렴 두 종류뿐이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감염내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NIP를 확대하면 더 많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접근성을 높여야 접종률이 올라가 질병 관리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 NIP의 핵심은 사람 사이에 질병 전파를 예방하고, 공동체의 집단면역을 기르는 거다. 그만큼 성인 백신 접종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이로움의 평가와 이해가 부족하다." 금전적 부담이 백신 접근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NIP 대상과 백신 종류를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걸림돌은 당연히 예산이다. NIP를 확대하려면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질병관리청 전체 예산은 2024년 1조6303억원에서 2025년 1조2698억원으로 되레 줄어들었다. 그중 NIP 예산은 3717억원에서 3776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엄 교수는 "NIP를 확대하는 덴 예산이란 복잡한 문제가 깔려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국회와 기획재정부 모두 NIP의 의미를 잘 모른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이 NIP 확대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언급했듯 자궁경부암 등 HPV 질환에 시달리는 환자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비용 때문에 '백신 접종'을 미루는 이들도 증가했을 공산이 크다. HPV 백신 가격 문제는 과연 일부 사람만의 이야기일까.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김하나 더스쿠프 기자
nayaa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