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재림의 징조와 준비”(마 24:1-14, 벧후 3:8-14)

하나님아들 2024. 4. 25. 19:47

“재림의 징조와 준비”

(마 24:1-14, 벧후 3:8-14)

 

2000년 전 주님의 초림이 역사적인 사건인 것과 같이 주님의 재림이 역사적인 사실로 나타날 때가 심히 가까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1/5이 예언으로 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1/3이 재림에 대한 예언입니다. 신구약을 통틀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333군데 나타나 있는데, 그 중에 109개가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예언이며, 나머지 224개가 예수님의 재림 때 성취될 예언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역사적 탄생과 그의 사역에 대한 예언보다 두 배나 더 많이 재림에 대해 예언하고 있어서 재림의 역사적 확실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재림을 앞두고 처처에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지진과 해일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재난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잘못된 종말론들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진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닥쳐 올 대지진에 대하여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재림의 징조와 우리들의 준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고 준비할 때, 첫째, 재림의 징조를 분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3 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크게 네 가지 현상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첫째, 종교적으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되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여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셋째,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고 재난과 환란이 닥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넷째로, 주님의 재림 전에 우주적 재앙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에 예언한 재림의 징조가 이미 세계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온난화 현상으로 지구 곳곳에 가뭄과 홍수피해로 기후난민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북극의 빙하가 빠르면 20년 후, 느리면 2100년에 다 녹을 것이라고 걱정하였는데, 얼마 전에 카나다의 한 연구단체가 발표하기로는 2년 후인 2013년이면 빙하가 다 녹을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수단, 나이지리아, 차드 등 사하라 남부 국가들은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기아로 1,000만 명 이상이 먹을 것을 찾아 집을 떠났으며, 해수면 상승으로 방글라데사 최대 섬 볼라는 2005년 섬 전체의 절반이 침수되어 50만 명이 섬을 떠났습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와 인도양의 몰디브는 언제 섬이 잠길지 몰라 각각 10만 명과 40만 명의 인구 전체가 땅을 사서 이주할 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유엔 기후변화위원회는 2007년 보고서에서 2100년까지 해수면이 25-58센티, 또 일부 과학자들은 최악의 경우 2미터까지 상승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어 1억 5천에서 2억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에서도 종말의 징조들이 점점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도 100년 전 시베리아에 떨어져 삼림 2,000여 Km를 잿더미로 만든 21-47미터 크기의 소행성과 같은 운석이 지구와 달거리의 1/5 상공으로 스쳐 지나갔다고 Nasa에서 발표하였습니다.

 

다음 번 지구 가까이에 다가 올 행성은 지름이 270미터의 크기로2029년에 3만 2천 킬로미터까지 근접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는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정말 가까운 거리랍니다.

 

마 24:29에서 주님은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재림에 대한 징조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4:33 에서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30절에는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은 가까운 미래에 역사적인 사건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한번은 한 여 전도사님으로부터 “보내 주시는 잇사갈의 메시지 잘 읽고 있는데, 재림 후에 일어 날 일들의 순서를 알려 주세요”라고 메일이 왔습니다. 그 때 보낸 답장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휴거, 그리고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전에 일어난다고 하는 전천년설과 천년왕국 후에 있다고 하는 후천년설, 그리고 천년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무천년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천년설에도 세대적 전천년설과 역사적 전천년설이 다릅니다. 세대적 전천년설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공중에 재림하시고, 믿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성도들과 함께 휴거되어 공중에서 7년간 혼인잔치를 하며, 그동안 지상에 남아 있는 구원받지 못한 신자들과 유대인들과 불신자 들은7년 대환란을 통해 회개할 자들이 나오게 될 것이고, 이 7년이 끝나면 주님이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건설하고, 그 후에 불신자들의 부활과 최후의 백보좌 심판 후에 새하늘과 새땅이 온다는 견해입니다.

 

반면에 역사적 전천년설은 교회도 함께 7년 대환란을 통과하며, 환란 후 천년왕국 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고 교회가 휴거하여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주님과 함께 지상에 내려와 천년왕국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 동시에 일어날 것으로 보는 것으로서 이 설을 택하고 있는 그룹들은 교회가 환란 통과를 준비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후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신약교회 시대의 끝에 복음이 확장되어 기독교 정신이 온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시대로 해석하고, 이 시대 끝에 주님이 재림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천년설은 문자적 천년왕국과 7년 대환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장로교는 후천년설과 무천년설을 채택하고 있지만, 가장 잘 보편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설은 아마 전천년설 중에서도 세대적 전천년설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공중재림시 생명의 부활과 성도의 휴거가 일어나고, 공중 혼인잔치와 지상의 7년 환란, 그 후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건설, 다음에 사망의 부활과 최후의 백보좌심판, 그리고 영원한 나라, 곧 불못과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택하던 주님의 재림은 가까운 장래에 역사적으로 일어날 사건이기에 우리는 이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 이처럼 우리가 다가 올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재림을 생각할 때, 둘째로, 우리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을 신부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청년 남녀들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자기 짝이 누구가 될 것인가?일 것입니다. 결혼 전에 관심을 가지고 알고 지내고 사귀는 대상은 여럿일 수 있고 선을 보는 경험도 여러 번 될 수도 있겠지만, 결혼은 결국 한 사람과 하기에 그만큼 누가 내 짝이 될 것인가?가 최고로 궁금하고 최대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청년들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랍니다. 저도 총각 전도사 때는 믿음 좋고 조금이라도 예쁜 처녀 선생이 있으면, 저 사람이 내 짝이 아닌가? 생각해 본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본격적으로 대쉬해 본 적은 없었던 것은 평생 같이, 그리고 사역을 같이 할 짝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처럼 자기의 짝을 만나는 일이 갈수록 쉽지 않고 또 만나고 나서도 헤어지기 쉬운 세상이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신랑은 한 분이신 예수님이기에 우리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이후로부터 우리는 주님을 신랑으로 맞아 들인 것입니다. 이제 곧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께서 신부인 교회를 맞이하려 재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신랑이신 주님을 사모하고 그를 맞이할 준비하는 신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대 전통 혼인식은 세 단계를 거칩니다. 정혼, 약혼, 혼인잔치입니다.

 

먼저 신랑의 부모가 신부를 정하고 신부의 부모와 함께 결혼을 정하는 것이 정혼이요, 그다음에 가까운 친척들 앞에서 약혼식을 하고 증서를 주고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1년 후에 신랑이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서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여 혼인잔치를 하는데, 대체적으로 일주일 동안 잔치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들을 주님의 신부로 먼저 택정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1:6에 보면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주님을 영접하여 그와 약혼을 한 신부의 상태입니다. 이제 주님이 세상 끝날에 그의 신부인 성도들을 맞으러 재림하시면, 우리가 공중혼인잔치에 들어 가게 되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허니문 장소는 이 땅에 건설될 천년왕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신랑되신 주님과 살 집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결혼 준비할 때, 한국식으로는 신랑이 살 집을 마련하는데, 주님은 요한복음 14:2-3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 결혼식장과 허니문 장소와 살 집을 준비하는 것이 큰 일인데, 주님과의 혼인잔치에는 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혼식장은 구름 위가 될 것이며, 허니문 장소는 천년왕국이며, 살 집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맨션이 될 것입니다. 식장비와 식대와 식장으로 가는 버스 대절비를 양가에서 얼마씩 낼 것인지, 예단과 허니문 비용도, 들어가 살 집의 가구들도 걱정할 필요없습니다.

 

부잣집에서 신부를 데려 갈 때 하는 말처럼 오직 몸만 가면 됩니다. 오직 신부의 순결과 정결한 행위를 상징하는 세마포 단장 만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계시록 19:7-8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랑이 데리고 가려고 약혼을 한 신부라도 신랑이 올 때까지 순결을 지키지 못하면, 언제라도 파혼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혼인약속을 해 놓은 약혼상태에서 세상 남편과 짝하고 산다면, 이는 신부의 자격을 이미 상실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고 기다릴 뿐 아니라, 주님의 신부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오직 요구되는 것은 세마포와 몸단장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해도 신부가 준비되지 않으면, 그 결혼식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신부의 단장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예식장을 꽃과 촛불로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 놓았어도 신부가 자신을 꾸미지 않고 머리를 쑤세미 방망이처럼, 얼굴은 눈꼽만 떼고, 잠옷 차림으로 결혼식장에 나타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몇 달 전부터 얼굴 마사지, 피부관리 받고 드레스와 면사포를 준비해 놓고, 결혼식 당일 날은 일찍 일어나 목욕, 머리손질, 얼굴화장 등 최대한 예쁘게 단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신부로 준비된 그의 성도들을 맞으러 오실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의 재림을 맞는 신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베드로후서 3:10-18은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주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할까요?

 

첫째,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11-12절). 여기에서 거룩함은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거룩함은 우리의 죄가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후에, 날마다의 성결과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주님의 성품을 본받는 것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거룩함을 좇는 방법입니다.

 

이를 고린도후서 7:1은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거룩함의 출발이요, 우리의 믿음의 깨끗한 행위가 거룩함의 목적지에 우리를 인도합니다.

 

죄와 세상과 마귀를 대적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힘쓸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의 품성인 거룩함이 임하고 지속적인 경건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의 거룩한 행실과 경건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경건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를 따르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본문 12-13절은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경건은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매일 매일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루 아침에 경건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꾸준히 경건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디모데전서 4:7-8에서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피스 팍 산에 올라가 보니 70 넘은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들도 잘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평소 오랫동안 꾸준히 연습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도 연습하지 않으면 헉헉 댑니다. 그것을 건강 나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육체의 연습도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27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거룩해지고, 지속적으로 죄와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구별시켜 그것에 물들지 않을 뿐아니라, 경건한 삶을 연습하는 주님의 신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14절). 오래 전에 안과에 가본 적이 았습니다. 의사가 렌즈로 정밀히 들여다 보고 진단하였습니다. 10분도 채 안 걸렸습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주님의 빛 앞에서는 선과 악이, 조그만 점도 흠도 순식간에 다 드러납니다. 자기 스스로는, 사람들이 볼 때는 깨끗한 것 같지만, 빛이신 주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1:6-7에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면, 주님과의 사귐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매일 주 앞에 서 있고 주님과 사귀면, 점차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골로새서 3:15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하나님과 화평하여 참된 평강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진리에 굳게 서고 미혹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16-17절). 17절에 보니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24에서 예수님은 말세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1986년 통계에 미국인 86%가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런데 20년 뒤인 2006년 통계는 76%랍니다. 20여 년 만에 10%가 줄었습니다. 그러다가 2014년을 기점으로는 드디어 처음으로 50% 밑으로 내려 간 46%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더 이상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아닌 것입니다. 점점 뉴에이지와 사교와 무신론 사상이 만연해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굳게 설 진리는 영적 진리입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들과 마귀는 영적 진리에 굳게 서 있지 못한 자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할 뿐 아니라(딤후 2:15), 어린아이와 같이 젖만 먹지 말고 단단한 영적 진리의 음식도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마지막 때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그냥 구원의 기초적인 진리만을 알고 하나님과 영적 진리를 깊이 체험하지 못한 자들에게 미혹의 손길을 뻗쳐 넘어뜨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적체험은 많이 하였으나, 말씀의 기초가 없는 자들도 이단과 사이비 종교에 미혹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영적체험의 진리 가운데 굳게 서야 합니다.

 

말씀은 알고 영적체험이 없는 자와 영적 신비한 체험은 많으나 말씀이 없는 자, 양쪽 모두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대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소아시아 교회들 중에 버가모 교회는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에 넘어간 자들이 있다 하였고,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여자 이세벨을 용납하였다고 책망 받았습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나 니골라 당, 그리고 이세벨의 추종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우상숭배와 부도덕한 음행에 빠진 자들을 말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나오나 여전히 우상 섬기듯이 세상을 섬기고 부도덕한 삶에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이미 미혹되었거나, 앞으로 미혹 될 확률이 많을 수 있음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불법이 만연하고 거짓된 가르침들과 거짓된 교사들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를 맞아서 주님의 재림을 맞는 신부로서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넷째, 그럴수록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야 합니다(18절). 그리스도의 은혜가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보편적인 구원의 은혜와 특별히 사모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특별한 은사라면, 그를 아는 지식은 마지막 때의 계시의 지식과 그의 성품을 알고 그의 성품 안으로 들어가는 주님과 하나되는 연합의 비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자들에게 이 마지막 때의 교회에게 주시는 사단의 깊은 것과 음녀의 비밀을 아는 계시적 지식을 주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2:17-19은 이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우리에게 주셔서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지식에서 자라가는 자들이 이기는 자, 곧 마지막 때에 승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승리하는 교회로서 하나님 보좌로부터의 전략들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 갈 때, 비로소 우리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열쇠를 가졌고, 주님과 함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주어졌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신부로 준비된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함께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서신을 마치면서 오늘 18절에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말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라고 축복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직접 그의 거룩한 신부의 교회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들은 계시록 19:8에 나타난대로 거룩하고 옳은 행실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은 신부의 교회입니다. 마지막 때의 이 회복된 교회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단장될 것입니다. 

 

14절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빌립보서 4:8은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이 마지막 때에 주님이 일으키시는 사도적 교회는 순결하고 거룩하며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5:27절 말씀입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2:12에는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거룩한 교회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함께하여 마지막 때의 세계적 추수를 감당하게 할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팡파르”라는 단어가 머리에 울려 왔습니다. 이는 축하의 의미로 시상식 전 서곡일 수도 있고, 개선하는 군대를 맞는 전주곡일 수가 있고, 한편으로 신랑이 입장하여 신부를 맞는 결혼 축하 서곡일 수가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재림하실 팡파르가 곧 울려 퍼질 것입니다. 지구의 종말은 결국 신부된 성도들에게는 주님의 혼인잔치에 들어가는 축하의 팡파르가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러한 재림을 준비하는 신부의 교회가 되어 마지막 때, 열방의 영혼들을 추수하고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LA 글로리 교회 / 전두승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