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신학 개론
- 종교의 정의
인류역사에 있어 유사이래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종교적이라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간을 가리켜 “인간은 숙명적으로 종교적이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어원적으로 종교(religion)란 말이 라틴어 religare에서 유래되었지만 이 용어는 이교에서 나온 것이고 이교에서는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의 죄 및 구속의 필요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종교의 정의를 이런 어원에서 찾을 수는 없다.
성경적으로 정의를 찾아보면 넓은 뜻으로 종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이다. 하지(A.A. Hadge)에 의하면 “종교란 하나님과 맺고있는 관계이다.” 이 관계는 진리와 경험과 행위와 제도가 포함된다고 한다.
좁은 뜻으로 종교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교를 이루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지도하에 살아가는 생활이다. 스트롱(A. Strong)은 “종교는 그 본질적 개념상 하나님 안에 있는 생활이며, 내주하시는 성령의 지도를 받는 생활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종교는 곧 기독교이고 기독교만이 참 종교이다.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잠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마9:21) ...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종교의 기독교적 바른 견해
기독교(종교)는 그 기원이 “확실하신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출발한다. 칼빈은 종교는 곧 기독교라고 못 박는다.
기독교 즉 “계시종교”는 무지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찾아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이 어떤 분임을 알게 하시고 당신을 섬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심”으로 시작되는 종교라는 것이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관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하셨고,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게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하셨기 때문에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라는 명백한 근거에 기원을 둔다.
우리의 시조 아담은 하나님의 계시로 하나님을 알았고 섬기면서(예배) 교통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이 먼저 아담을 찾아오시고 말씀(계시)하신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객관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다. 이것은 구약에서는 율법, 계명, 교훈, 판단, 규례라는 명사들에 의하여 표시 되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자기의 계시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사역을 사도들을 통하여 말씀으로 주셨다.
주관적인 면에서는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선민관계에서 “경외”라는 말로 신앙의 참 뜻을 말한다. 이 경외는 경건한 선민만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지는 내면적 신앙이다. 반면 이방종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에게 무조건적인 신의 진노와 재앙에 e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공포적 두려움으로 그들의 신들을 따른다.
신약성경에서는 “신앙”이라는 말이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되고 있다. 신앙이란 어원은 증언하는 자를 신뢰한다는 말로 “믿는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첫 천국복음을 전파하실 때 “죄의식”을 터치하시면서 죄의식을 “심령의 가난”이란 말로 표현하시면서 죄의 해결과 천국 시민권을 중점으로 놓고 구원자로서 사역하셨다. 항상 복음 전파난 병든 자 치료시에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신학자들의 기독교 본질에 대한 견해로 바울사도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만삭되지 옷하여 난자 같다(고전15:8), 죄인중에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하면서 멸망받을 절망적인 존재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속함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첫 머리에 “신지식” 설명 가운데 죄의식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알지 못하면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며 비참한 존재인가를 깨닫지 못하고, 반대로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가를 알지 못하는 말이라고 말한다.
벨콥교수는 기독교의 본질을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엄과 부활하신 권능을 인식하는 동시에, 인간 자신의 전적 비천과 절망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 기독교와 이방종교의 차이점
기독교는 이방종교의 주,객관적 양면에서의 불충족성을 보완하여 완전한 구원 종교로서의 요소를 갖추는 것이다.
기독교가 유일한 참 종교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방종교는 인간의 어두운 심령에서 만들어진 종교라면,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교 즉, 하늘로부터 나온 종교이다.
- 신학의 정의
직언적인 정의를 말한다면 “하나님에 관한 학문”을 의미한다. 하지 교수는 “신학이란 가장 보편적 의미에서 종교학이다”라고 하면서 성경진리를 확증하고 변호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다이슨 교수는 좁은의미로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교훈이며, 넓은 의미로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 관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신학의 정의는 “기독교 신학이란 성경의 진리를 따라 하나님에 관한, 그리고 하나님과 피조물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교훈들을 확증하는 학문이다”라고 할 수 있다. 신학의 원천을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종교 경험에서 찾는 “종교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학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는 기독교 본연이며 신학의 정의는 하나님에 관한 이론 또는 학문이라고 규정짓는 것이다.
- 기독교 신학의 분야
신학연구를 위한 보조학문
- 세계사, 고고학, 인종학, 비교언어학, 비교종교학, 철학, 심리학, 심미학
성경신학
- 구약학 : 히브리어, 모세오경, 구약사, 구약서론, 시서총론, 대선지서, 소선지서, 구약신학, 성서고고학
- 신약학 : 성경해석학, 신약해석, 신약서론, 헬라어, 신약신학, 복음사, 사도사
- 교의신학 : 변증학, 험중학, 조직신학, 현대신학, 기독교윤리
- 역사신학 : 초대교회사, 중세 종교개역사, 근대 / 현대 교회사, 교리사
- 실천신학 : 목회론, 설교학, 기독교 교육학, 설교연습, 교회정치, 예배학, 전도학, 교회성장학, 선교학, 주교 교육학, 목회성장학, 종교심리학
- 조직신학(교의신학)의 어원적 의미
“교의”라는 말은 헬라어 “도그마” 즉 “도케인”과 “마이”의 합성어로 철학에서는 “확립된 진리”, 법률가에서는 “공포된 법령”, 나라에서는 “왕의 훈령”, 종교에서는 “신적증언”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교의는 교회의 공적회의에서 진리를 선언한 교리이다.
- 조직신학의 역사(교의의 역사)
1. 고대시대 : 기독교 교리의 역사는 속사도 시대로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를 복음의 혼돈시대, 정리정돈 초기라고도 한다.
2. 중세시대 : 기독교의 암흑기로 표현되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교의 개념이 로마카톨릭에 의해 발전되었다.
3. 종교개혁시대 : 교리사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16세기 종교개혁에 의해서 일어났다. 마틴루터, 존 칼빈의 결사항쟁의 종교개혁으로 “오직믿음으로!,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의 우월성” 주장으로 종교 암흑기에서 서광의 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때, 교의가 하나님 말씀에 맞지 않으면 배제하고 성경적 관점에서 전승으로 교회제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도구적 교의를 회복하고, 엄폐되고 변질된 교의의 보완적 개혁을 이루어 나갔다.
4. 신조주의 시대 : 종교개혁이후 신앙고백시대가 전개되면서 신조들이 많이 보급되었다. 이 시대의 신학은 지나치게 논쟁적일 뿐 아니라, 논리적이고 사변적이며, 영적으로 고갈된 영향도 있었기 때문에 개신교 스콜라 주의라고도 부른다.
5. 근대 신학시대 : 근대 신학의 특징 중 하나는 신조시대의 반동으로 나타난 경건주의 적인 모습이다. 교의학은 스콜라 주의적 형식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으며, 성경적 단순함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조주의에 대한 반발과 경건주의의 등장으로 인한 여파는 다른 한편으로 교리를 무시하는 자유주의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는 빌미가 되고 말았다.
6. 현대 신학시대 : 현대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알아야 한다. 현대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의 다른 변신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은 “젬러”가 기존의 전통적인 교의학에서 해방하여 자유롭게 역사비평적인 입장에서 성경연구를 시도하기 때문에 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확대하는 사상과 운동이다. 정치적 종교적 자유를 표방하고 구속 없는 상태를 말한다.
7. 자유주의 신학 : 전통적인 신학방법을 버리고 인간의 이성, 직관, 감정, 기타 체험을 이용하여 성경과 신학을 자유롭게 역사비평에 근거하여 재해석하는 신학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권위를 처음부터 버렸기 때문에 자신들이 신학의 최종권위를 인간의 이성에 두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함으로서 기독교의 역사성을 흔들어 놓았다. 자유주의 신학의 개인주의적인 특성은 기독교의 신학 동체를 약화시켰다.
8. 개혁주의 신학 : 개혁주의는 칼빈주의 또는 장로교라고 불리워진다. 쯔빙글리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칼빈이 완전한 신학 체계를 세웠다. 그 시작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반대하여 성경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루터가 시작했다. 신학적인 자원으로 멜랑톤의 “신학통론”, 쯔빙글리의 “참 종교와 거짓종교의 주석”, 루터의 “이신득의”등이 있다.
개혁주의의 신학은 성경중심의 신학이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하며, 성령의 내적조명을 통해서 해석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정확무오하며, 가감이 없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 삼위일체 신관, 예정론, 하나님의 섭리하에 만사가 이루어 진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의 5대 교리는 전적타락,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무조건적인 선택, 성도의 견인이다.
-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일반계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일반적인 관계에 뿌리박고 있는 계시로,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 형상의 소유자로서의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계시이다. 이 계시는 인간창조의 목적을 실현시키는데 그 목표를 삼고 있다. 또한 이 계시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곳에서만 얻어질 수 있는 계시이기도 하다.
일반계시는 언어의 형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현상을 통해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지식을 전하나 언어가 없고 들리는....
(사 6: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한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온 우주 만물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과 전능하심과 그 오묘막측하심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일반계시를 통해 스스로를 계시 하셨고, 그 속에서 날마다 자신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눈을 뜨기만 하면 하나님의 작품들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그의 영광의 광채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아무리 단순하고 우둔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몰랐다고 변명할 여지가 없다.
일반계시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만물을 통해 그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존재함을 나타내며, 하나님 자신의 창조와 통치와 섭리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기 위해 존재한다.
일반게시는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드러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것은 하나님 계시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이므로 일반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반계시는 우리에게 인간이 어떤 죄인이며,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알려주지 못한다. 영적이고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할 만한 지식과 아울러 구원과 더불어 우리에게 약속되어진 영원한 나라에 관한 지식도 전달해주지 못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세계는 영의 세계요, 인간의 이성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유한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계시는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이 엄청난 사실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지 못하는 불충분성을 가지고 있다.
(고후4:4)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특별계시는 인간의 죄로 인한 비참 때문에 필요하게 되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하나님의 자연계시는 흐려지고, 사람의 이해력은 어두워져서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물에 친히 쓰신 글을 읽고 해석하기가 불가능해졌다.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볼 수 없는 자시니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일반계시를 통하여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영원한 영생의 길을 배우기 원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므로 특별계시를 나타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으로 사람을 조명하셔서(요16:7~14)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하시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심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요1:18) 본래 하나님을 본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5:25)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니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특별계시란 “초자연계시”라고도 하고 “구원계시”라 하기도 한다. 특별계시의 내용은 성경(신,구약)이며 성경의 내용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 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특별계시의 목적은 죄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주어졌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특별계시의 방법에는 하나님의 현현, 이적, 예언의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 계시는 점진적으로 변화되었다. 하나님의 현현은 하나님이 직접 당시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계시였다. 이적은 주로 족장시대 이후 출애국 시대에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특별계시의 방법으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이적이라는 매체 (꿈, 이상, 우림과 둠빔등)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계시 방법이다. 예언은 주로 왕정시대 이후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특별계시의 방법으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달하신 방법이다.
계시의 내용을 보면 죄인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속사역인 구원의 계시가 있고, 말씀과 교리로만 계시 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승천의 사실과 성도의 변화되는 사실도 계시적 기류이다. 또한 계시의 내용은 여러 세기를 거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성격이 있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현현과 예언과 이적을 통해서 인간에게 오시는 것이다. 이 강림을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서 또는 교회에 있어서의 성령의 내주에서 그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
먼저 외면적 논증 중에 연역적 논증으로 보면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므로 정죄 아래 놓여 있는 인간들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주시지 않을 수 없고 알려 주신다면 그 계시를 문서로 기록하여 놓으실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유추적 논증 안에서 보면 다소의 지성이라도 소유한 개개인 사이라면 의사소통이 절실히 요청되는 법인데 우리가 이런 의사소통의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계시”를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 및 추가의 생활 안에서 우리는 통치라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안에는 관용의 증거가 있음을 바라보게 되는 바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는 한 그 가운데는 역시 죄인 구원을 위한 어떤 방도를 알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증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성경 기록으로 구체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책의 수명이 일세기 이상 보존되는 책이 희소한데 성경은 독특한 책인 것을 즉시 알 수 있다. 또한 성경은 인생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최고의 결과를 초래시켰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경의 이적과 예언의 논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성경 역사상 모세와 여러 선지자와 예수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시대는 계시기였음과 동시에 이적기였다. 이적은 계시를 전하는 사람들이 그 계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을 수 있게 하는 신임장과 같다. 그러므로 성경의 이적들은 성경이 신적 기원을 갖는 것임을 증거해 준다.
또한 구약성경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차 있다. 이 예언들은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이사야는 800년 전에 동정녀 탄생사를 미가 선지자는 메시야 출생지를 예언하였다. 이러한 예언 성취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다음으로 내면적인 논증을 안에서 통일성을 볼 수 있다. Unity를 통해 성경은 1600여년간 40여명의 사람들이 국가, 민족, 언어, 직업, 시대가 다른 사람들이 인간의 기획과 지도 편달로 진행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감동으로 역사하시어 한 주제 한뜻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인간 구원을 주제로 처음 상태로 시작하여 인간의 창조, 타락, 죄악의 관영, 구원, 부활, 재림까지 이러한 논리의 질서 정연한 체계적 진전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 없이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의 영혼을 잘 알고 그 절실한 요구와 그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길을 정확하게 제시해 준다. 이것은 성경을 만드신 분이 곧 인간을 만드신 분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성경은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시기 앞서 인간이 오늘날 왜 이러한 불신의 상태에 떨어졌는가를 정확히 밝혀 주고 있다. 인간 불행의 궁극적 원인은 죄임을 밝혀 주고, 죄는 인간의 영적 생명을 상실하게 만들어 육체가 되게 하셨고, 영적 생명을 잃은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을 밝혀주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순응하며 적응 하도록 하셨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도덕적 교훈은 다른 어떤 종교나 철학의 그것보다 우월하다. 이 우월성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 성경 영감의 성질
성경 영감의 성질을 구분하면 여러 가지로 나눠진다. 그러나 기계적 영감설이나 동력적 영감설은 잘못된 견해이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바른 견해는 유기적 영감설과 축자 영감설이다.
먼저 유기적 영감설이란 하나님께서 성경의 각 저자를 기계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내적 존재의 법칙과 잘 조화시켜서 유기적인 방법으로 성경 기록자들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록자들의 개개인의 성품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교양, 용어와 문체, 어법 등, 이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자들의 마음을 조명하셨으며, 기록자들을 격려하며 필서케 하였고, 그들의 언어를 선택하게 하고 그들의 사상을 표현하게 하셨다.
이 학설은 성경의 저자를 단순한 도구로가 아니고, 가끔 하나님의 직접적인 전달을 기록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역사적 탐구의 결과를 써 내려갔고 그들의 죄와 사죄, 희열과 비애, 위험과 은혜로우신 구원 등의 체험을 기록하였다. 또한 기록자 자신의 문체에 따라 썼고, 개인적 특징과 시대적 특징을 나타냈지 때문에 성경 각권에는 개체성이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다.
다음으로 축자영감설이 있는데 축자적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사상들을 성경기록자들이 문자를 표현 할 때 그들의 사상뿐 아니라, 그들이 표현하는 언어와 문자까지도 성령의 감화(영감)를 미치게 하여 전혀 오류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였다고 보는 이론으로 아래 성경구절로 증명되고 있다.
(렘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경 모든 구절 글자 하나 하나에 완전히 영감되어 쓰여졌다. 신, 구약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특별계시로 영적 감화에 의하여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 성경의 특성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고유의 권위를 가진다.
성경은 그 자체의 신적권위 때문에 믿어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적권위로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역사적 권위를 두고 있으며, 성경은 참되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에 성경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신상생활과 구원 행위의 법칙으로서 규범적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하여는 절대적 순종을 요구한다.
성경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성도의 의무에 관한 영적 지식의 궁극적인 원천이다.
특별계시가 인간의 입을 통하여 전하여질 때 부패한 인간들은 그것을 가감 또는 변질시켜 와전시킬 수밖에 없기에 오고가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정확한 계시 전달을 위해 기록만이 유일한 최상의 방법이었다.
가경은 영감되지 아니한 기록이며, 유전은 와전될 수 있으며,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구원계시로 필요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경을 성경에서 제외하도록 섭리하셨다.
오늘날 모든 신자의 신앙과 행위의 유일하고도 정확무오한 법칙은 기록된 성경 66권밖에 없다. 따라서 성경은 인류 역사의 종말까지 존속하면서 신자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안내와 지도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되 말씀으로서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있고 인간에게 다가온다.
성경의 권위는 계시 진리의 정확무오한 표준을 근거로한 절대적 권위이다.
성경은 성경 자체가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뢰나 교회의 유전이나 이성에 호소하지 않으며 상고를 받을 고등법원이 성경외에는 없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5:18)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성경원본에 대한 사본의 권위를 믿는다.
(벧후1:20) 먼저 알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성경이 신적권위를 갖는 이유는 하나님말씀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에서 찾았다.
성경이 성경을 해석해 주므로 진지하게 구원을 찾는 사람은 누구든지 지식인이나 지식이 없어도 성령의 인도아래 성경을 읽고 연구함으로써, 구원에 필요한 도리를 교회나 사람의 해석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기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성경의 원 저작자인 성령이 성경을 읽는 성도의 마음을 조명하셔서 성경이 깨달아지게 하시므로 구원의 시식을 명료하게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은 성경만으로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사를 이루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충족하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요, 구원사역에 있어 완전하고 충족하다.
성경은 이세상의 어떤 것들의 인정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경 스스로의 증거에 의해 독자적 신임성을 갖는다.
개혁주의 올바른 정통신학에서는 신,구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인 정경이며 성경이외의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고 정경은 신, 구약 66권으로 종료된 것으로 믿는다.
- 성경 염감교리에 대한 성경적 증명
구약성경에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구약 전체를 통해서 꿈, 음성, 표적, 혹은 선지자들의 메시지들은 모두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며 말씀인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기를”,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등의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구약성경을 수백번 언급하면서 직접계시였던 부분과 단순히 역사적 기록들이었던 부분을 결코 구별하지 않았다. 모든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성경은 영감되었고 따라서 모든 부분이 성경인 것으로 믿고 따른 것이다.
(롬9:17) 성경이 서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일을 위하여 너를 세웟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딤전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등에 성경이라는 말은 여호와의 말씀과 동일한 말씀이다. 이것은 성경이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한다. 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신약성경은 직접적으로 단언한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구약성경을 기록하는 기관이었던 것같이 그리스도의 사도들도 신약성경을 기록하는 기관들이 될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막13: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요15:26) 내가 아버지게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있어서도 마가는 베드로의 감시아래, 누가는 바울의 감시아래 기록되었다는 내적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신약 성경의 기록자들은 자신들의 기록이 완전 영감 되었음을 주장하면서 구약 성경과 같은 수준의 권위를 인정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기록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였다.
(고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계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벧후3:15,16)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도리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바울은 자기의 말을 성령이 가르쳐 준 말씀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서 말씀하고 계신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쓴 편지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14:37)에 “주의 명령인 줄 알라”고 하였다.
또한 요한은 계시록이 기록된 말씀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계시록이 성경 마지막에 온 것과 계시록이 끝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더하거나 제하든지 하는 자에게서 저주를 언명하신 것”은 신약성경의 모두가 영감 되고, 계시록 다음에는 더 이상 영감 된 성경의 기록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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