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생애, 서신들과 신학
시작하는 장 (Prologue) 제1부 바울의 생애 (A Life of Paul) 제2장 다메섹 사건 이전 (Before the Damascus Event) 제3장 다메섹 사건 (The Damascus Event) 제4장 다메섹 사건 이후 (After the Damascus Event) 제2부 바울의 서신들 (Pauline Epistles) 제5장 바울의 서신들 (Pauline Epistles) 제6장 바울 서신의 정경화 작업 (The Canonization of Pauline Epistles) 제7장 2세기 바울 논쟁 (The Second Century Debates on Paul and His Epistles) 제3부 바울의 신학 (Pauline Theology) 제8장 바울 신학의 배경 (Background of Pauline Theology) 제9장 바울 신학의 중심주제 논의 (Coherent Center in Pauline Theology) 제10장 바울 신학(1): 하나님 (Pauline Theology 1: God) 제11장 바울 신학(2): 인간 (Pauline Theology 2: Humankind) 제12장 바울 신학(3): 계시 (Pauline Theology 3: Apocalypse) 제13장 바울 신학(4): 그리스도 (Pauline Theology 4: Christ) 제14장 바울 신학(5): 구원 (Pauline Theology 5: Salvation) 제15장 바울 신학(6): 성령 (Pauline Theology 6: Holy Spirit) 제16장 바울 신학(7): 교회 (Pauline Theology 7: Church) 제17장 바울 신학(8): 종말 (Pauline Theology 8: Eschaton) 제18장 바울의 윤리관 (Paul's View on Ethics) 제19장 바울의 경제관 (Paul's View on Economy) 제20장 마치는 장 (Epilogue) 제 1 장 시작하는 장 (Prologue) 바울의 생애와 그의 사역을 모르고서는 그의 서신들에 나타난 그의 신학의 주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울의 생애와 사역에 관한 기록들은 그의 주요 서신들 이곳저곳과 사도행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울의 주요 서신들에 나타나 있는 기록들과 사도행전에 나타나 있는 기록들이 일치하는 부분도 많지만, 불일치하는 부분도 적지 않다. 브루스(F. F. Bruce)는 이 차이점에 대해서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친히 기록한 초상과 사도행전에 묘사된 바울의 초상의 차이점이라면, 사람이 자신이 그린 자화상과 다른 사람이 그가 알아차리든지, 못 알아차리든지 그의 모습을 그려준 초상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라고 언급했는데, 객관적 사실에 관한 기록의 차이는 ‘초상화 정도의 차이’ 이상이라고 할 것이다. 바울의 서신들이 그의 생애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차적 자료(primary source)라고 한다면,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생애는 이차적 자료(secondary source)의 역할을 한다고 할 것이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두 기록이 차이가 있을 때에는 바울의 서신들의 기록이 보다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사도행전이 이차적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생애를 더듬기 위해서는 종종 그 기록들을 사용하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바울의 서신들에는 그의 생의 단편적인 기록들만을 볼뿐이어서 그 서신들만 갖고는 전체적인 윤곽을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서신들--특히 고린도후서와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은 논쟁의 중심에 있으며 때로는 변론에 능숙한 인물로 비춰지나, 사도행전에서는 이러한 바울의 직선적이고 모가 난 듯한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로 묘사되고 있다(물론 한 곳 바나바와 심히 다툰 장면이 기록되어 있지만. 행전 15:36-39 참조). 초대 교부들에 의하여 바울의 서신들로 간주되었던 것은 십 삼 개 혹은 히브리서까지 포함하여 십 사 개 서신이었다. 2세기 중엽의 마르시온(Marcion)은 그의 초기 크리스천 정경(canon)을 편찬할 때, “복음서”(Gospel)로는 누가복음만을 택하고,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흔히 목회서신이라고 칭함)를 제외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에베소서(마르시온의 정경에는 라오디게아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빌립보서(이러한 순서로)를 “사도서” (Apostolikon)에 포함시켰다. 19세기 독일의 신학자 바우어(F. C. Baur, 1792-1860)는 바울 서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에 관한 연구를 거듭하여, 그의 서신들 중에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와 갈라디아서의 네 서신만을 바울의 진정한 작품이고 나머지는 후대에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발표에 대한 반발이 심해지자, 처음의 주장을 양보하여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빌레몬서도 바울의 진정한 서신(authentic epistles)에 포함시켰다. 그의 진정성에 관한 연구는 단어, 용례, 스타일, 사상의 통일성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바우어(F. C. Baur)에 자극되어 역사-비평학자들이 바울 서신의 진정성에 관한 연구를 거듭해왔다. 보수주의에 속한 신학자들은 여전히 십 삼 개 (드물지만 어떤 학자들은 히브리서를 포함한 십 사 개) 서신을 바울 자신의 저작으로 간주하고 있고, 소수가 목회서신의 바울 저작설에 의심을 갖고 있다. 반면에, 비평주의 신학자들은 70-80%가 바울의 일곱 개 서신--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만 논란이 없는 바울 서신(Paul's undisputed letters)으로 받아들이고, 목회서신에 관하여는 90% 이상이 바울의 저작설을 부인하고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만 바울의 진정한 저작이라고 주장하는 급진적(radical) 신학자들도 있다. 그 위에, 바울 서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을 전반적으로 부인(否認)한 독일의 부르노 바우어(B. Bauer, 1809-1882)의 영향으로, 반 마넨(Van Manen)을 위시한 화란의 초(超) 급진파 신학자들(Dutch Radicals)은 바울이 저작한 서신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였으나,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고 지지 기반을 얻지 못하였다. 필자는 아직까지 목회서신을 제외한,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후서의 세 개의 바울 서신에 대한 진정성을 배제할 만한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한다. 목회서신에 관하여는 전통(traditions)과 규정(rules and principles)을 중시하는 사상이 어느 정도 담겨져 있는 면에서 비(非) 바울적인 요소가 있음을 본다. 그 위에 교회 제도도 바울 생전의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이러한 면에서, 목회서신의 진정성에 관하여는 의심을 갖고 있다. 본서에서 바울의 신학을 논함에 있어서는 바울 서신들 중에 진정성에 논란이 없는 일곱 개 서신(7 undisputed letters)에 가장 우선을 두고, 두 번째는 논란이 있는 여섯 서신들(6 disputed letters), 그 중에서도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후서는 앞의 일곱 서신에 버금가게 가치를 두고 있다. 바울의 일곱 개 서신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그러나, 언급한 대로, 에베소, 골로새서, 그리고 데살로니가후서는 이 서신들과 거의 동등하게 취급함--그렇게 함으로써 보수주의 신학자들과 비평주의 신학자들 간의 이견(異見)을 최소화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필자 자신의 생각도, 목회 서신의 신학은 나머지 바울 서신의 신학과 차이가 크기에, 목회서신에서 발견되는 바울의 신학과 사상은 제한적으로 참조 정도로 다루고자 한다. 사도행전이 바울의 생애를 살펴봄에는 바울 서신들에서의 자료의 빈곤으로 어쩔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바울의 신학’을 논하는 데는 누가의 증언이요 그의 신학인 사도행전의 기록을 배제함이 타당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제1부 바울의 생애 (A Life of Paul) 제 2 장 다메섹 사건 이전 (Before the Damascus Event) 1. 다소(Tarsus)에서 출생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 (성경: 갈 1:13-14; 사도행전 21:39, 22:3) 바울이 언제 출생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출생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도 이르게는 주전 5년 전후에서 늦게는 주후 5년 전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바울의 서신에는 그의 출생지와 성장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2차 자료(secondary source)인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사도행전 22장 3절에서 바울은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Cilicia) 다소(Tarsus)에서 났다”고 했다. 그는 다소에서 출생하였을 뿐 아니라, 21장 39절에 “나는 유대인으로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라고 말한 대로 그 곳 시민권도 가지고 있음을 본다. 바울의 부모가 어떤 사정으로 셀류시드 왕조가 지배하는 길리기아의 다소로 이주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바울의 부모이든 혹은 그 이상의 선조이든 상당 기간 다소에서 정착한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이었다. 전형적인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바울은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빌 3:5). 다소(Tarsus)는 지중해 북동쪽, 타우르스 산맥 기슭에 위치하며, 시리아(Syria)에서 소아시아(Asia Minor)로 들어가는 유일한 관문으로 번화한 헬레니즘(Hellenism)의 교육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람세이(Ramsay)에 의하면, 다소는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아데노도루스(Athenodorus: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주전 29년 - 주후 14년]의 친구이자 고문)가 활동한 헬라대학이 있었던 ‘제2의 아테네’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아데노도루스와 그의 동료 철학자들은 제자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이 도시를 직접 다스리기도 했다. 다소 성은 내전이 있을 때마다 항상 우파의 편을 들 정도로 친 로마적인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자유시(civitas libera)의 지위를 얻어 자치와 독립의 권리를 누려 왔다고 한다. 사도행전 22장 3절(또한 26:4 참고)에서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 성에서 자랐다고 언급하는데,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교육에 대한 언급(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받기 위한)일 것이라고 본다. 그가 후에 다메섹(Damascus) 사건이후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한동안 머물던 곳이 다소인 것을 감안하면(갈 1:21; 또한 행전 9:30), 이러한 견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예루살렘으로 가서 살았다고 하는 주장보다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사도행전의 기록대로(행전 22:3) , 그가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사실이라면(행전 22:3), 바울은 당시 아마도 15살 전후쯤으로 본격적인 랍비(rabbi) 교육을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다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헬라 문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고 유대인의 엄격한 가정교육 가운데도 헬라 문학이나 사상 등이 은연중에 바울의 교양에 스며들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헬라 문학의 영향이 바울 서신들 중 디도서 1장 12절에 그레데(Crete) 시인 아라투스(Aratus)의 글로서, 또한 바울의 아레오바고 연설을 기록한 사도행전 17장 28절에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러나, 디도서는 진정성(authenticity)에 의심이 있고,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연설을 근거로 그가 헬라 문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적(斷定的)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유대인들을 향하여 연설할 기회를 얻었을 때 바울은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밝히고 있다. 유대인은 어디를 가나 유대인이며 어디에서 태어나든 “유대교인”(갈 1:13-14 참고)이어야만 한다는 투철한 민족 의식과 ‘종교적 우월 의식’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기실,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 같다. 자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한 답변으로 고린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 혈통을 타고났다는 점을 주장했다. 2. 히브리인 (성경: 고후 11:22; 빌 3:5) 바울은 자신을 또한 히브리인이라고 했는데(고후 11:22; 빌 3:5) 이로 보아 그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지만 히브리어를 계속 유지해온 것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바울은 헬라어에도 능통하여 그의 구약 인용은 주로 칠십인역(Septuagint)을 사용한 것이다. 3. 이스라엘인 (성경: 롬 11:1; 고후 11:22; 빌 3:5) 이스라엘인이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인임을 자랑으로 여겼듯이 이스라엘인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이 현재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 같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종국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 가운데 들어올 것임을 강조했다. 로마서 11장 25-26a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예견하고 있다. 4. 베냐민 지파 (성경: 롬 11:1; 빌 3:5) 바울은 자신을 베냐민 지파에 속한다고 소개한다. 베냐민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 가운데 막내로 유다 지파와 함께 남방왕국 유다를 구성했던 지파이다. 그의 히브리식 이름이 사울(לוּא■)이었던 것은 아마도 베냐민 지파의 가장 두드러진 인물들 중에 한 사람인 사울 왕의 이름을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5. 아브라함의 씨 (성경: 롬 11:1; 고후 11:22) 바클레이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씨’(롬 11:1; 고후 11:22)란 종족 면에서 아주 철저하게 순수한 혈통을 지녔다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언약의 성취 곧 메시아로 인한 하나님의 영원한 자녀가 됨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의 씨’란 그리스도의 모형(Type)으로서 이삭(갈 3:16 참조)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의미하는 귀한 명칭이다. 창세기 22장 15-18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 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바울의 서신들--특히 로마서 4장과 갈라디아서 3-4장--에서 가장 중요한 구약의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바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창 15:6). 바울은 아브라함을 좇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갈 3:7)고 했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으리라.”(갈 3:9)고 선포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의 복음’을 증거하게 된 바울에게 ‘아브라함의 씨’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용어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6. 바리새파 가말리엘의 문하생 (성경: 빌 3:5; 또한 행전 22:3, 23:6)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사도행전 기록에는 아버지도 바리새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행전 23:6 참조). 바리새파에는 두 학파가 있었다. 하나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샴마이(Shammai)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힐렐(Hillel, 약 주전 60년-주후 20년) 학파이었다. 예를 들어, 이혼에 관하여 힐렐은 아내가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때 이혼을 당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샴마이는 어떤 심각한 도덕적 죄를 범했을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하였다. 샴마이는 하나님의 목적 속에 이방인들의 자리가 전무하였으나, 힐렐은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전도하였다. 이 두 학파는 유대교의 기본 율법인 토라(Torah)는 물론 조상의 유전인 미쉬나(Mishna) 등 구전 율법(oral law)과 탈무드(Talmud: 유대인들의 저작물 모음집)에 이르는 방대한 율법을 생산하며 가르치며 지키게 하였다. 바리새인 바울은 이 두 바리새파 중에서 힐렐 계통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힐렐의 손자라는 설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음)의 문하에서 유대인의 엄한 교육을 받았다. 그의 철저한 유대주의 배경(갈 1:13-14)과 엄한 교육을 받았다는 언급(행전 22:3) 등으로 바울이 ‘샴마이 학파에 속한 가말리엘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가말리엘은 힐렐 계통의 랍비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면, 그는 힐렐 학파를 계속 이끌어 가는 유명한 랍비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7. 로마 시민권자 (성경: 행전 16:37-38, 22:25-29, 23:27) 바울서신에는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라는 주장이 없다. 이차 자료(secondary source)인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이되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다(행전 22:28). 예루살렘의 천부장이 돈을 많이 들여 시민권을 얻었다고(행전 22:28) 한 것으로 미루어, 바울의 조상(부모, 조부 혹은 그 이상)도 많은 돈을 내고 시민권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의 집안은 피혁공장을 운영할 정도로 부유했던 것 같다. 바울은 “소읍이 아닌 큰 도시” 다소의 시민이므로 자기를 심판하려는 저 유대인들에게 변명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서 로마시민과 비로마시민 간에는 신분적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방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는 바울에게 로마 시민권자라는 자격보다 더 좋은 것도 드물다. 로마 시민이면 함부로 체포를 하거나 체벌을 가하거나 할 수 없었다. 바울이 로마제국의 영역 안에서 효율적으로 선교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로마 시민권이란 신분상의 덕을 많이 본 것이다. 바울 시대에 있어서 로마 시민권은 영예스러운 표지이자 땅끝까지 갈 수 있는 통행권이었다. 8. 예루살렘에서 성장·교육 (성경: 행전 22:3, 26:4)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이 그의 서신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사도행전(22:3, 26:4)과 정황적 증거(circumstantial evidence)를 토대로 하여,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났지만 15살을 전후하여 예루살렘으로 건너와 공부를 한 것으로 추정한다. 반 우닉(W. C. Van Unnik)은 사도행전 22장 3절을 근거하여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나 비록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였지만 실제로는 예루살렘에서 외롭게 성장하였을 가능성을 말한다. 부셋(W. Bousset)과 같은 종교사학파 신학자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다소에서 성장하였으며 바울의 신학은 헬라적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주장한다. 반 우닉의 주장과 사도행전의 기록이 맞다면, 바울은 아마 부모의 형제 또는 다른 친척의 집에 머물렀을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의 생질이 그를 위험에서 도와주었다는 사실(행전 23:16)에서 이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의존하는 기록이 이차 자료인 사도행전에만 나온다는 것이며,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주요 사건들과 사실들에 있어서 사도행전 기록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학문을 잘 쌓은 바울은 곧 권위 있는 자리에 올랐다. 그는 크리스천들의 신앙문제에 도전하여 그들을 심문할 만큼 당당한 위치에 있었다. 바울이 후에 예루살렘에서 크리스천들을 핍박하는 일을 주도하였다는 것은 그의 서신, 갈라디아서 1장 13절에서도 증거된다(갈라디아서에는 지명이 나오지 않음). 그는 공회나 산헤드린이라는 유대인 최고 공의회에서 크리스천들에게 부표(否票)를 던질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행전 26:10). 9. 결혼(結婚) 그의 서신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은 혼자 지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부터 독신으로 혼자 지낸 것인지, 결혼을 했는데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아내와 자식들을 버린 것인지(별거), 아니면 결혼을 하고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사별을 하여 혼자 된 것인지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다. 바울이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바리새인 집안의 사람이라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터라(창 2:18) 정식으로 결혼한 자로 보는 학자도 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말하듯이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을 위하여 여전히 바리새파 집안이기를 원하는 부인과 아이들을 버렸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 만일 그러하다면, 결혼에 관한 장인 고린도전서 7장 7절에서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고, 또 8절에서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젊어서 사랑한 여자가 있어 청혼하였지만 거절당하여서 평생을 혼자 살기로 작정한 것이고, 그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여자들에게 엄격해 보이는 태도를 취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0. 바울의 예수 이해 (1) 예수와 바울 바울이 사도행전의 증언대로(행전 22:3) 예루살렘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고 있었다면, 예수를 상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바리새인들 사이에 모세의 율법에 도전하며 파괴하려는 자로 알려진 그를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의 죽음”(신 21:23; 갈 3:13)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바울 서신들에서 볼 수 있는 바대로, 바울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기술은 드물고, 기록이 있는 것도 대부분은 상식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가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이나 제자들을 통하여서 예수의 공생애와 사역과 기사들에 관하여 들었을 것이지만, 바울은 그보다는 자신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나타나신 ‘부활하시고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resurrected and exalted Christ)에 관하여 증거하기를 원하였다. (2) 스데반과 바울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이미 죽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유대인들이 고대해온 ‘메시아’라고 고백하며 설교하는 스데반 등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율법적 사명감에 불탔을 것이며 더욱이 십자가에 이미 죽은 예수가 부활하고 승천하였다는 스데반의 설교에 격분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만약 스데반이 옳다면, 바울 자신이 배워왔고 흠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빌 3:6) 지켜온 율법으로서의 “완전한 의”는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더욱 과격해졌던 것이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바울의 시각에서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다고 기록한다(행전 8:1). 율법정신에 투철한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장면과 그의 부르짖음과 기도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스데반의 죽음 이후에 바울에게는 예루살렘과 그 주위에 흩어져 있던 교회들을 핍박할 명분이 더욱 분명하여졌다. 사도행전 8장 3절에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라고 했고, 9장 1-2절에는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영악한 사람으로 영향력이 컸던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크리스천들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려고 하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유대인들이 스데반을 위시한 다른 교인들을 핍박함으로써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타지역으로 전파케 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같은 광신도들이 집결해 있던 곳 중에 다메섹이 있었는데 바울은 여기에 몰려 있던 크리스천들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으로부터 허락 공문을 받아낸다(행전 9:1-2). 제 3 장 다메섹 사건 (The Damascus Event) 1. 도시 다메섹(Damascus) 사도행전의 증언에 의하면(행전 8:1-3), 스데반의 죽임 당함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게 되고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그냥 흩어져서 숨어 지낸 것이 아니라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했다(행전 8:4). 그리고 그들 중에 일부가 다메섹까지 오고 그곳에서 신앙생활하며 복음을 증거하기도 했다. 다메섹(Damascus)은 나바티아 왕국(Nabatean Kingdom) 내의 독립도시였다. 아레다 4세(Aretas IV, 주전 9년-주후 42년)는 명목상 나바티아 왕국의 통치자였지만 다메섹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권은 없었다. 그래서 다메섹이 유대서 온 종교 난민들의 피난처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독의 단편」(Zadokite Fragments, 사해사본을 쓴 사람들과 관련된 한 유대종파에서 나온 문서)에 따르면, 주전 130년 직전에 유대인들이 대거 다메섹으로 도주한 기록이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었는데, 초대 크리스천들도 같은 편법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다메섹으로 피난해간 유대인 크리스천들을 압송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전에 로마정부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에게 로마제국의 타지방에 있는 유대인들을 송환시켜올 권리를 부여했던 전례를 기억하였다(마카비1서 15:15-24). 사도행전의 증언에 따르면, 바울은 대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이 다메섹의 크리스천들을 추적하여 예루살렘으로 송치시킨 후 심문하여 형벌을 받게 할 터이니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 공문을 받아낸다(행전 9:1-2). 2. 다메섹(Damascus) 도상에서 생긴 일 (성경: 갈 1:15-17; 또한 행전 9:3-19, 22:6-16, 26:9-23) 바울의 서신, 갈라디아서에는 다메섹 사건이,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갈 1:14-15)라는 말로서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이 사건을 통하여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있었던 것을 짐작케 한다(갈 1:11-12). 바울 자신의 증언이 추상적인 것에 비하여 사도행전의 세 증언들은 모두 구체적이나 서로간에 약간은 상이한 문제를 갖고 있다. 바울의 이 다메섹 체험이야말로 그의 간증의 핵심이요 그리스도에 대한 산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도행전 9장 3-19절에는 누가가 전하는 사건의 대강이 기록되어 있고, 22장 6-16절에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 무리의 위협을 받고 자신을 변호할 때 진술한 내용이 있고, 26장 9-23절에는 바울이 아그립바(Herod Agrippa II)와 버니게(Bernice), 그리고 베스도(Festus) 앞에서 증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동일한 사건을 진술함에 서로 차이가 나는 것은 목적에 따라 경우마다 다른 각도에서 화법을 바꾸어 이야기할 수 있다고도 하겠으나, 별도로 존재하던 세 가지 다른 전승을 누가(Luke)가 수정하지 않고 삽입한 것일 수도 있다. 주요한 차이점을 살펴보면, 첫째로 사도행전 9장 7절에는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라고 했는데, 22장 9절에는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고 했다. 둘째로, 9장 6절과 22장 10절에는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행할 것을 일러 줄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나, 26장 16-1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신다. 그러나 9장에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이 다메섹에 있던 아나니아(Ananias)에게 임하고 바울에게 전달된다. 9장 15절에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22장에서는 바울이 예수의 이방인에게로 보내심의 음성을 들은 것이 예루살렘에 돌아온 다음인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수가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부르셨다는 26장 16-18절의 진술과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즉, 22장 17절에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라고 했는데, 이는 다메섹에서 아나니아를 통하여 주님의 이르시는 뜻을 전해들은 사건(22:12-16) 다음에 나온다. 갈라디아서의 바울의 다른 진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여기의 “후에”를 “그후 삼 년 만에”(갈 1:18)라고 하면 될 것이나, 갈라디아서 1장 16-17절에서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고 진술하는 바울의 의도와는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사도행전 22장에서 그리스도의 부르심(calling)은 바울이 아직 예루살렘에 있을 때(이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메섹 사건이후 바로 있은 것인지, 아니면 갈라디아 1장 18절대로 그후 삼 년 만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인지) 그에게 임하셨다. 18절에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이는 사도행전 9장 26-29절의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충돌을 지칭하는 듯함)고 말씀하시고, 21절에는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고 소명을 주는 말씀을 하신다. 그러므로, 위 사도행전에 나타난 세 증언의 결정적인 차이는, 9장은 바울의 부르심이 다메섹에서, 22장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에, 26장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되어진 것같이 기록되어 있다. 갈라디아서에 있는 바울 자신의 진술은 어느 것에 가까운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26장의 진술이 바로 바울 자신이 원하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바울은 그가 받은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 나타나신)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 후에 다메섹에 들어가서 아나니아로부터 그에게 이르신 주님의 말씀(행전 9:15-16, 또한 22:14-15 참조)을 들었을 수 있고, 또한 삼 년 뒤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나 예수에 관한 말씀을 듣고 헬라파 유대인들과의 충돌로 예루살렘을 떠나기 전에 다시 그에게 나타나신 예수께로부터 그의 ‘이방인 사도로 부르심’의 말씀(recommission)을 다시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아나니아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도 다 부차적인 것이요, 그가 이방인의 사도된 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의 증언을 다시 한 번 들어보자.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다메섹 도상에서)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갈 1:16-17). 바울은 의도적으로(?) 다메섹 도상 사건이후 다메섹으로 들어가 아나니아를 만난 것을 그의 진술에서 생략하고 있고(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그 후 삼 년이 경과한 뒤 예루살렘에 올라가 베드로를 만난 일이 그의 그리스도께로 직접 받은 ‘계시의 복음’과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주지하고 있다(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제 4 장 다메섹 사건 이후 (After the Damascus Event) 1. 아라비아와 다메섹에서의 삼 년(32-35년) (성경: 갈 1:17; 고후 11:32-33; 또한 행전 9:19b-25) 바울은 그의 회심 이후의 일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서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Arabia)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고 기술하고 있다. 아라비아는 다메섹의 남서로부터 수에즈(Suez)까지 펼쳐진 사막지대로서 바울이 이 곳에 간 이유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다메섹 사건을 계기로 바울이 자신을 조용히 돌아보고 묵상하기 위하여 아라비아로 갔다고 하며, 어떤 이는 호렙산까지 내려가 모세 시대를 회상하기까지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1장 32절에서 보는 대로, 나바티아 왕국의 아레다 4세(주전 9년 - 주후 42년)의 방백이 바울을 잡으려고 다메섹을 지킬 정도라면 그는 아라비아에서 그저 조용히 묵상만 한 것 같지는 않고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열심히 전도한 것 같다. 갈라디아서는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온 바울이 그곳에 머물 동안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았지만, 고린도후서 11장 32절의 기록과 사도행전 9장 20-25절의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열정적으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그리스도 되심을 증거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행전 9장은 바울이 아라비아로 갔던 일을 기록하지 않고, 회심 이후 다메섹으로 가서 아나니아를 만나고 그 후 다메섹에서 “예수의 하나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되심”(행전 9:20, 22)을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고자 하매 피한 것으로 되어 있다. 22장에는 다메섹에서의 전도도 빠져 있고,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주의 계시로 되어진 일로 기록하고 있다(행전 22:17-21). 그런가 하면, 26장에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임하신 그리스도가 바울을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시고, 그 후 바울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서의 전도를 감당한 것으로 기록하여(행전 26:20) 아라비아의 사건은 어느 곳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2. 예루살렘 일차 방문(35년) (성경: 갈 1:18-20, 2:1; 또한 행전 9:26-29, 22:17-21) 바울서신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을 두 번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는 다메섹 사건 삼 년 후에(갈 1:18), 두 번째는 십사 년 후에 이루어졌다. 또한 로마서 15장 25절에서 바울은 로마와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또 한 번의 방문--세 번째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물질적으로 돕기 위한 것이었다(또한 고전 16:1-4; 고후 8-9장 참고). 반면에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한 후 적어도 다섯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 첫 번째는, 9장 26-29절에서 보는 대로, 바울이 다메섹에서 탈출한 후이며, 두 번째는, 11장 29-30절에 있는 대로 유대에 있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전해 준 방문이다. 12장 25절에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고 번역하여 11장 29-30절의 방문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돌아온 것으로 취급하였으나, 사본에 따라서 전치사 εἰς가 예루살렘(Ίερουσαλήμ) 앞에 위치해 있으므로 “예루살렘에 돌아가니라”(returned to Jerusalem)로 번역한 영어번역도 있다(NRSV, NAB). (이러할 경우는 이것[12:25]이 세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15장 1-30절에 기록된 대로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의 총회에 참석하고자 방문했다. 네 번째는, 18장 22절에 제2차 전도여행 후에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갔다. 다섯 번째는, 21장 15절 이하의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한 방문이었다. 이 방문에서 바울은 체포된다. 피츠마이어(J. Fitzmyer)는 회심한 후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들에 관한 바울서신의 내용과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기록을 연결시키는 것이 바울의 생애를 재구성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측면임을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누가는 방문에 관한 언급들을 역사화시켜 여러 번의 방문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따라서, 피츠마이어는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을 조화시키는 해결책으로서, 사도행전의 첫 번째 방문(9:26-29)을 갈라디아서 1장 18절과 일치시키고, 두 번째(11:29-30, 또한 12장 25절이 예루살렘 방문이라면 이것도 포함)와 세 번째(15:1-2) 방문을 갈라디아서 2장 1-10절과 동일한 사건(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언급들로 간주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바울서신과 사도행전 간의) 어긋난 것을 꿰어 맞추는 듯한 연결이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부정확할지도 모르는 사도행전의 역사적 기록들을 억지로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라고 판단한다. 갈라디아서 1장 18-20절에서 바울은 다메섹 회심 사건 이후 그가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된 것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 후 삼 년 만에”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의 예루살렘 일 차 방문시기는 35년을 전후한 때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게바를 심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바울이 왜 게바를 만나기를 원했을까? 바울은 그의 계시와 복음의 내용이 과연 게바가 받은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갈 2:2 참고). 또한 예수님의 삼 년 공생애 기간동안 내내 같이 지낸 게바를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관한 더 많은 것을 알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게바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며, 예루살렘에서 전도를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였다는 언급은 없다. 사도행전 9장 26-30절에서는 바울이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도들에게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언급이 없음, 행전 9:27) 소개되고, 예수를 증거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의 예루살렘의 방문의 목적이 사도들과 교제하는 일이라기보다는 예수를 증거하는 일처럼 적고 있다. 그러다가, 헬라파 유대인들과 충돌하게 되고 그들이 바울을 죽이고자 하매, 바나바의 도움으로 사귄 예루살렘의 몇몇 크리스천 형제들이 그를 가이사랴로, 그리고 다소로 보낸다. 사도행전 22장 17-21절에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다만, 예루살렘 성전에 머물 때에 비몽사몽간에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시는 주님의 계시를 받고, 그 계시를 따라 이방으로 떠난 것처럼 언급하고 있다(행전 22:21 참고). 사도행전 26장 20절에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한 장소로 예루살렘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행전 26:20). 3. 수리아와 길리기아 체류(滯留)(35-43년) (성경: 갈 1:21-24/행전 9:30, 11:25-26) 갈라디아서 1장 21-24절에서는 바울이 무슨 이유로 예루살렘을 속히(15일을 머문 후)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는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다닐 때에 전도에 열심을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유대에 있는 교회들과 성도들이 바울의 전도의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다. 사도행전 9장 30절은,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증거할 때 헬라파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게 되고 그들이 죽이고자 하매 형제들이 가이사랴(수리아)와 다소(길리기아)로 보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 22장 21절에 의하면, 주님이 그에게 이방으로 떠나가라 명하시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예루살렘을 떠난 바울은 먼저 수리아로 그리고 후에 길리기아로 가서 복음을 증거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유로 예루살렘을 떠났든지 그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닐 때 복음을 증거한 것이 사실인 것은 바울이 바나바와 결별하고 실라를 데리고 육로로 소아시아로 행할 때에, 사도행전 15장 41절에 보는 바대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1장 25-26절을 보면, 바울이 아직 그의 고향 다소에 머물고 있을 때 바나바가 바울을 찾으러 오고 그를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교회에서 무리들을 일 년간 가르쳤다고 했다. 4. 안디옥교회 사역(43-45년) (성경: 행전 11:25-26, 13:1) 다소에 머물고 있었던 바울을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두 사람이 공동 사역을 감당하였다.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만나매 (바나바가 바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의 안디옥 사역은 그로 하여금 다메섹 경험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앞으로의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 전도의 기본틀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안디옥에는 바울과 바나바 이외에도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 등이 있었다(행전 13:1). 5. 예루살렘 교회 부조 방문(44-45년) (성경: 행전 11:27-30, 12:25) 바울이 안디옥에 머물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바나바와 함께 부조(扶助)를 갖고 예루살렘을 방문한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1절이하에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을 사도행전 11장 27-30절의 부조 방문이라고 주장하는 데 이는 부정확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그들의 부조 방문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더라도(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이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음), 주의 형제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방문한 기간 중에, 사도행전 12장 1절 이하에 보면, 헤롯 왕(헤롯 아그립바 1세)이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긴 했지만 예루살렘 형제들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는데(행전 12:17)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고 하더라도(행전 11:27-30, 12:25) 베드로와 요한과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아직은 주의 형제 야고보가 기둥같이 여김을 받는 존재는 아니었다(갈 2:9 참고). 6. 제일차 전도여행(45-47년) (성경: 행전 13:1-14:28) 바울은 그의 이방 전도활동에 관하여 구체적인 진술을 하지 않았다. 다만, 갈라디아서 2장 2절에 간명하게 “내가 이방 가운데 전파하는 복음”이라고 언급하고,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에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그의 당한 고난과 핍박을 나열하였지만 이것도 여행의 세부적인 사항 (itinerary)을 제시하여 주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바울 생애 중 이방 전도 상세를 살피기 위해서 이차 자료인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을 대부분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방 소아시아 전도여행을 감당하게 됨은 성령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행전 13:2, 4).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마가)의 일차 전도 여행지는 소아시아 지방이었는데 주로 남 갈라디아 지방이었다. 그 경로를 살펴보면, 안디옥에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배타고 구브로(Cyprus) 섬에 도착한다. 그 섬의 살라미를 거쳐서 바보에 이른다. 바보에서 배타고 소아시아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렀는데 바나바의 생질 (요한이라고도 하는) 마가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울과 바나바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곳으로부터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다. 이어서 이고니온을 경유하여 루스드라와 더베까지 갔다가, 다시 거슬러 루스드라,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바빌리아의 버가를 지나 앗달리아로 내려가고, 그곳으로부터 출발하여 배 타고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일차 전도가 여러 가지 성과를 거두었지만, 표면화되어진 문제들도 있었다. 즉, 새로운 믿음과 유대교와의 관계, 이방 크리스천들과 유대인 크리스천들과의 관계, 이방 크리스천들의 율법, 할례 및 식사규례 문제(dietary law) 등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표면화되자 이의 해결 내지는 결의를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총회가 열리게 되었다. 7. 예루살렘 이차 방문 -- 예루살렘 회의 참석 (49년) (성경: 갈 2:1-10/행전 15:1-31) 예루살렘 이차 방문이라고 했지만, 이는 갈라디아서에 따른 구분이고, 사도행전에 의하면 9장 26-30절, 11장 27-30절(12장 25절을 11장 27-30절의 종결이라고 보면)에 이은 삼차 방문이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에 이어서 2장 1-10절에 언급된 바울의 예루살렘 이차 방문을 어떤 성경학자들은 사도행전 11장 27-30절, 12장 25절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과 바나바의 예루살렘 부조 방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조 방문은 첫째로 그 역사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사도행전 12장 1절 이하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주후 41-44년 유다와 갈릴리 분봉왕)가 예루살렘의 교회를 핍박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고(행전 12:2), 베드로가 옥에 갇혔다가 나와서는 형제들을 잠깐 보고 다른 곳으로 간 상황(행전 12:17)에서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였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좀 힘들다. 둘째로는, 이를 맞추기 위하여 갈라디아서 2장 1절의 “십사 년 후에”의 기산점을 첫 번째 방문으로 하지 않고 바울의 회심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부조 방문의 시기도 44년경(헤롯 아그립바 1세 말기)이 아니라 46년경(헤롯 아그립바 1세 사후 2년 뒤)으로 추정하는 것도 문제이다. 사도행전 11장 29-30절에 바나바와 바울의 예루살렘 부조 방문을 기록한 다음에 사도행전 기자 누가는 12장 1절을 시작함에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라고 함으로써 부조방문이 아직 헤롯이 살아있을 때임을 추정케 한다. 셋째로는, 주의 형제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권위가 여전하던) 이때만 하더라도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기 위해서(갈 2:9) 아직은 몇 년이 더 필요하였을 것이다. 넷째로, 바울은 삼차 전도여행 기간 중에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이를 그의 주요서신들에서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고린도후서에서는 8, 9장 두 장에 걸쳐서). 그런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의 방문이 부조 방문이었다면 이를 언급하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 2장 10절에서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썼노라.”고만 말하고 있다. 이는 다시 해석하면, 갈라디아서 2장의 방문에서 그러한 부조의 전달이 없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면, 한 가지 의문점은 왜 바울은 사도행전 11장 27-30절의 부조 방문을 갈라디아서를 위시한 그의 서신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부조 방문이 갈라디아서 2장의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에 앞선 역사적 방문이라면 가난한 예루살렘 형제를 돕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 전도 목적도 있기 때문) 바울이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사도행전 기자 누가의 착오일 수 있다. 바울이 그의 예루살렘 삼차 방문의 목적을 온갖 노력을 들여서 모금한 구제헌금의 전달이라고 그의 서신들에서 떠들썩하게 기록한 것에 비하여(고전 16:1-4; 고후 8-9장; 롬 15:25-28), 누가는 바울의 예루살렘 삼차 방문을 기술함에 연보 전달에 관해서는 간략하게 지나가는 말로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라고 표현한 것으로 그친다. 이런 근거 등으로 필자는 바울의 예루살렘 부조는 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 때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바울의 예루살렘 이차 방문, 즉 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은 주후 49년경에 이루어졌다. 그의 일차 방문 시기인 35년경으로부터 14년 뒤였던 것이다. 예루살렘 총회(Jerusalem Council)의 목적은 이방인 크리스천들의 할례와 모세의 율법 준행 문제, 식사규례 등에 대한 일부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반발을 해결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사도행전 15장에 따르면, 베드로는 이방 크리스천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강요하는 것은 유대인들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그들의 목에 두는 것이라고 이방 크리스천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것이었다(행전 15:10). 이어서 바나바와 바울이 이방인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증거하고(행전 15:12), 주의 형제 야고보는 이방인 크리스천들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사항 네 가지를 결의하는 선에서 회의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즉, 우상의 더러운 것,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권고이다(행전 15:20, 29, 21:25). 갈라디아서 2장 1-10절의 기록을 보면, 바울은 그의 예루살렘 방문의 이유와 목적과 성과를 다르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 15장 1-2절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인 크리스천들 몇 사이에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의 문제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 및 몇 사람을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여 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2장 2절에서 바울은 “계시를 인하여” 스스로 올라간 것이라고 그 이유를 기술하며, 방문의 목적도 다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바울이 이제까지 주의 계시와 가르치심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진행해온 복음사역이 과연 예루살렘 사도들의 것들과 부합되는가 확인하는 차원에서(“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밝히고 있다. 방문 성과에 대하여도,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 공회장인 야고보의 권고 결의의 편지를 안디옥 교회에 전달하는 수동적인 역할을 감당한 반면에, 갈라디아서에서는 게바와 요한과 야고보와 유대인의 사도로서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듯이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에게 복음 전함을 서로 인정하는 대등한 관계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아마 마음 속으로 ‘예루살렘의 어떤 사도들보다 자신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바울적인 해석일 수도 있을 것이다. 8. 안디옥 교회 사역(계속) 및 안디옥 사건 (49년 - 50년) (성경: 갈 2:11-14/행전 15:35) 예루살렘 총회를 마치고 바울과 바나바는 얼마 정도 더 안디옥에 머물렀을 것이다. 사도행전 15장 35절에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하니라.”고 기록되어 있고, 36절에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라고 함으로 예루살렘 총회에서 돌아온지 수 일 만에 이차 전도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묘사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는 더 오랜 기간동안 안디옥에 머물렀을 것이다. 바울이 게바를 면책한 안디옥 사건(Antioch event)은 예루살렘 총회(Jerusalem Council)에서 돌아온 후 얼마 안 있어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왜 안디옥 교회를 방문하였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갈라디아서 2장 8-9절의 바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베드로의 방문은 “교제의 악수”(the right hand of fellowship)를 나눈 후의 친선의 방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 19-20절과 28-29절의 예루살렘 총회 결의와 편지 전달에 무게를 더 두면 베드로의 방문은 친선의 방문이기보다는 상급 감독기관(예루살렘 공회)의 지방교회에 대한 시찰의 방문이라고 할 것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는 바울의 (아전인수적인) 주장보다는 사도행전 15장의 누가의 기술이 더 당시의 상황에 가깝다고 본다. 바울의 기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갖는 자부감을 다른 사도들과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시찰 목적의 방문이 필요했던 것은 할례와 모세 율법을 지키는 것은 양보하였을지라도 권고사항 네 가지(우상의 제물, 음란, 피와 목매어 죽인 것을 멀리 하는 것)는 잘 지켜 행하여져야 하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것 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시 공회장이었던 야고보가 베드로에게 한 번 가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을 것이고, 이에 베드로는 안디옥을 방문했을 것이다. 야고보가 권고한 네 가지 피할 것에 대한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은 어떠했나? 갈라디아서에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지만, 고린도전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위의 네 가지 중에 바울이 적극적으로 금하도록 권고한 것은 음란 밖에는 없다(고전 5:1-2, 9-11, 6:12-18). 우상의 제물에 관하여는 세상에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는 고로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먹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고전 8:4-6; 롬 14:2-3, 17). 그러나, 유보 조항으로서 ‘나의 우상의 제물 먹음이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실족할 위험이 있으므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했다(고전 8:12-13; 롬 14:15). 바울이 이방 크리스천들에게 유대인의 식사규례(Kosher)를 강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롬 14:17 참고), 이방인들이 피를 빼지 않고 고기를 요리하는 것이나 짐승을 잡기 위해 목매어 죽이는 것도 적극적으로 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는 마치 한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사슴 피 마시는 것이나, 선짓국을 끓이는 것이나, 목매어 개 잡는 것을 금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복음의 근본적인 메시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 때 바울도 이방인의 다양하고 상이한 음식문화를 금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고 그곳에서 머문 날이 여러 날이었다. 예루살렘의 야고보에게서 유대인들이 이르기 전에는 베드로가 여전히 마음의 제약이 있긴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조리법인 코셔(Kosher) 식으로 요리되지 않고 이방인의 방식대로 요리된 음식을 그들과 같은 식탁에서 함께 먹고 즐겼다. 이방식으로 요리되었기에 피가 다 제하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목매달아 잡은 짐승일 수도 있고, 유대인들이 금하였던 돼지고기가 놓여있을 수도 있고, 미꾸라지와 같이 비늘이 없는 물고기 요리가 식단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가 안디옥 교인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과 친숙하여지기 위하여 그들의 음식 중에 유대인으로서는 부정하다고 멀리하는 요리에 손을 대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만 그들과 식탁은 같이 하되 유대인으로서 먹을 수 있는 음식만 먹었을지도 모른다. 베드로가 안디옥 지방의 이방인과 “함께 먹었다”라는 말을 헬라어의 미완료동사(συνήσθιεν)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으로 보아 여러 차례 먹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영어성경들은 “he used to eat with the Gentiles"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 베드로였는데, 유대인 할례자들이 그곳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그들을 두려워하여 마치 자기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함께 식사는 더 더욱이 한 적이 없는 것처럼 황급하게 물러나는 모습이다. 이러한 베드로의 위선적인 행동이 바울을 섭섭하게 하고 참을 수 없게 했다. 예루살렘 공회에서 이방인들도 할례와 모세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거론되었을 때 이방인들을 두둔하여 변론해준 베드로였는데, 그러므로 그를 향한 바울의 고마움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던 터였는데, 야고보에게 흠 잡힐까바 식사 자리에서 물러난 그가 참으로 서운하다. 야고보가 보낸 형제들이 안디옥에 왔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당황한 사람은 베드로만이 아니었다. 베드로와 함께 그 자리에서 식사하고 있던 안디옥 지방에 사는 유대인 크리스천들도 상당히 당황하였다. 그래서, 베드로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예의주시했다. 그를 따라 행동하기 위함이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피하자 그들도 따라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바울로서는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들의 행동도 참기 어려운데, 게다가 한술 더떠서 그와 소아시아 지방의 일차 전도여행을 함께 하며 온갖 고생과 죽음 근처에도 같이 가본 바나바마저 바울의 편에 서지 않고 베드로의 외식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미혹됨이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바나바의 마음 가운데 바울보다는 베드로의 행동을 따름이 더 안전하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유대인들, 그리고 바나바가 모두 이방인 크리스천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그들이 옳은 행동을 한 것이 아님은 바울의 믿음의 눈에는 너무나 자명했다. 이들의 행동은 분명히 외식(外飾)이요 적어도 그 행동만 갖고 따진다면 복음의 진리가 그들 가운데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베드로를 모든 사람들 앞에서 면책(面責)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좇고”라고 함은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식사자리를 같이 한 것은 그들의 식사문화를 인정한 행위요 얼마동안이나마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 되었던 모습이다. 이로써, 베드로는 이미 유대인다운 삶을 잃어버렸었다. 그가 야고보에게서 온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 어울리는 식사자리를 떠난 것은 그가 일시적으로 포기했던 유대인다운 삶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나 그의 모습이 이미 온전히 유대인답지는 못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바라보고 존경해 마지않던 이방인들에게 잘못된 유대인다운(?) 모습을 보여줌은 불합당한 것이었다. 바울의 눈에 비친 베드로의 잘못이 무엇인가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이 유대인들 앞에선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린도전서 9장 20절에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라고 했다. 율법이 그를 속박할 수 없으나 유대인들을 얻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그러하듯이 율법을 지키는 행동을 할 것이다(행전 21:21-26). 그러면 바울의 행동은 이중적(二重的)이지 않는가? 유대인들 앞에서는 유대인 같이 되고(고전 9:20), 이방인들 앞에선 이방인 같이 되고자 함(고전 9:21)에 있어서 바울의 행동도 이중적이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혼합그룹 앞에서 바울은 초지일관 이방인의 사도답게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table fellowship)를 즐겼다. 차라리, 베드로가 유대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의 식사문화는 인정하면서 그들과는 별도로 식사를 하였다면 이는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나, 그렇지 않고 이방인들과의 동일한 식사자리에서 두 개의 다른 모습을 보여줌이 (적어도 바울의 생각으로는) 잘못이었다. 이방인과 어울려 식사함이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그 자리에 야고보가 오더라도 머물러 있어야 하며 복음의 진리로 자신을 변론할 수 있어야 했다. 9. 제이차 전도여행 (50-52년) (성경: 행전 15:36-18:22)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가 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사도행전 15장 36-39절의 기록은 그들의 갈라섬이 바나바의 생질 마가라고 하는 요한 때문인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 보듯이, 이 마가는 일차 전도여행 때에 어찌된 영문인지(육신의 피곤 때문에?) 밤빌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었다(행전 15:38 참고). 그러나, 마가의 문제가 심히 다툼의 유일한 이유가 되었다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 바나바가 누구인가? 바울에게는 참으로 커다란 은인이 아니었던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바울을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고, 고향 다소에 돌아가 있던 바울을 안디옥으로 초청하여 동역하는 길을 열어준 그가 아닌가? 또 일차 전도여행 기간 중에는 온갖 죽을 고비를 함께 넘었던 그인데, 조카를 데리고 가네 못가네의 일로만 갈라졌다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아마도, 안디옥 사건에서 보여준 바나바의 태도도 바울의 실망과 화를 부채질하였을 것이다. 처음 발단은 마가의 일로 시작된 말다툼이 속에 내재해 있던 더 큰 불만을 끄집어내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생을 안 볼 것처럼 크게 다투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해로(海路)로 일차 전도여행 경로를 따라 떠나자,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육로(陸路)로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경유하여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른다. 수리아와 길리기아는 바울이 첫 번째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후 다녔던 전도지였다. 그곳의 “교회들을 굳게 하니라”는 표현으로 보아(행전 15:41) 바울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들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디모데라고 하는 믿음의 청년을 얻게 되는데 후에 바울을 열심으로 돕는 동역자가 된다. 바울은 이고니온을 지나 브루기아와 (북) 갈라디아 땅을 거쳐서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지만 “예수의 영”(행전 16:7...성령, 신약성경에 유일한 표현)이 허락지 아니하므로 드로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전 16:9)고 청함을 듣고,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하고 그 다음날 네압볼리로 간다. 그후에 빌립보로 가고 이곳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 그와 그 가정에 세례를 준다.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전도한다. 그후 베뢰아에서 전도하고, 또 아덴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고린도에 이르러 장차의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고, 그곳에서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바울이 아직 고린도에 머물고 있을 때 유대인들이 그를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나오는 데 그 당시는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주후 52-53년)으로 있었다. 바울이 서원한 일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 에베소를 거쳐서 가이사랴에 상륙하고 안디옥에 도착하여 그곳에 머문다. 10. 제삼차 전도여행 (53-57년) (성경: 행전 18:23-21:14) 안디옥에 잠시 머물던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를 거쳐서 에베소에 이른다. 바울은 에베소에 삼 년간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을 개설하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고 많은 능력을 행했다. 에베소를 떠난 바울은 마게도냐로 가서 그 지경을 돌며 제자들을 권하고 헬라(아가야)에 이르러 그곳에 삼 개월을 머문다. 그곳을 떠난 바울은 다시 마게도냐로 다녀 돌다가 빌립보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에 도착하여 일주일을 머문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 육로로 간 바울은 먼저 배로 떠난 누가 일행과 앗소에서 만나 배를 타고 미둘레네, 기오 앞, 사모를 지나 밀레도에 도착한다.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고 그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갈 것과 그곳에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함에 그의 생명을 마칠 각오가 되어 있음, 그리고 에베소 교회를 위한 권면 등을 했다. 밀레도(Miletus)를 떠나 고스(Cos), 로도(Rhodes), 바다라(Patara)를 경유하여 두로(Tyre)에 도착한 후 그곳에 일주일을 머문다. 두로(Tyre)에서 육로로 행하여 돌레마이(Ptolemais)를 경유하여 가이사랴(Caesarea)에 이른다. 그곳에 있는 집사 빌립 집에 유할 때 아가보라 하는 유대로부터 온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게 될 것을 예언하여 동행하는 무리가 바울을 가지 말라고 만류하나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음을 말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사도행전의 기자 누가의 기록에서 한 가지 매우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바울의 삼차 전도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collection)이었는데, 삼차 전도여행을 기술하면서 이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삼차 여행을 하면서 쓴 바울의 전도서신들인 고린도전서(16:1-4), 고린도후서(8-9장), 그리고 모금이 완결되어 고린도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쓴 로마서(15:25-28)에는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는데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고 증언하는”(“우리”로 언급된 구절들) 누가는 어째서 함구(緘口)하고 있는 것일까? 이 일이 누가는 모르게 바울이 단독으로 하고 있는 일이 아닐진데 그의 침묵은 매우 의문스러운 사안이다. 로마서 15장 25-28절에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연보)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고 바울은 죽음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목적을 명백히 하고 있다. 물론,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의 명목적인 목적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모금을 전달함이지만, 그의 실질적인 목적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으리라. 그가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그의 마음에는 항상 동족에 대한 사랑과 복음 증거의 열정이 있었다(롬 9:1-3, 10:1, 11:13-14). “누가가 바울과 같이 여행한 사람이 확실하다”면, 바울의 적극적인 모금운동과 열정적으로 사모하는 예루살렘 방문 목적을 몰랐을 리 없었을 터인데, 누가는 이 두 가지 모두 침묵으로 일관한다. 바울이 마게도냐의 여러 지경을 돌아다닌 것과 아가야 지방에 삼 개월을 머문 것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헌금한 연보를 모으기 위한 것이었는데, 누가는 그곳을 순회하는 바울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모금운동과 예루살렘 방문 목적을 알았더라면, 사도행전 21장 12절의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만류는 ‘고난 당하고 죽으러 간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주여 그리 마옵소서’라고 만류하는 철없는 베드로를 연상시킨다(마태 16:22). 결론은 무엇인가? 누가의 바울 전도여행에 대한 기록이 직접 함께 경험한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전해들은 이야기를 기록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도 바울의 삼차 전도여행 목적과 심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11. 제삼차 예루살렘 방문 -- 체포 및 가이사랴 투옥 (58-60년) (성경: 롬 15:25[방문계획]; 또한 행전 21:15-26:32)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때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났는데, 바울은 이방 전도의 결과를 고한다. 이 일로 영광을 돌린 저희(야고보와 장로들)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이 염려하고 있는 일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울에 대한 잘못된(?) 소문(행전 21:21)으로 인하여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들고일어날까 봐 그로 결례(潔禮)를 행하게 한다. 그리고, 10년 전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보아(행전 21:25; 비교 행전 15:20, 29) 바울이 이방인에게 전도하고 가르칠 때에 이러한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들게 한다. 바울이 결례의 이레가 차서 성전에 있을 때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에게 붙잡힘을 당하는데 바울 한 사람을 붙잡는데 온 성이 소동한다든지(행전 21:30)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21:31) 표현은 지나친 과장으로 여겨진다. 이로 인해 천부장이 백부장들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달려온다(21:32). 바울은 천부장의 허락을 받아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태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천부장이 무슨 영문으로 소동하는지 몰라 바울을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명할 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사람인 것을 밝힌다(행전 22:25-29, 23:27). 앞서서 이차 전도여행 때 빌립보에서 옥에 갇혔을 때에도 로마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행전 16:37-38). 바울이 로마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도행전에만 나오지 그의 서신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로마 총독(식민지 행정장관) 벨릭스가 주재(駐在)하고 있는 가이사랴(Caesarea)로 보내진다. 벨릭스 앞에서 바울은 자신을 변론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으며 다만 ‘죽은 자의 부활’(사도행전의 누가가 본 바울의 중심 메시지)을 증거하다가 고소되었다고 주장한다. 바울의 삼차 전도여행의 중요 열매(롬 15:28 참고)인 구제헌금에 관해서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언급하고 있다. 즉, 벨릭스에게 변론하는 말 중에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행전 24:17-18a)라고 되어 있는데,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누가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이 구제헌금이 바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 필자는 사도행전이 바울의 생전에 기록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더더우기 누가는 사도행전 저서의 내용에 관하여 바울에게 확인(confirmation)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바울 사후에 바울에 관한 여러 전승들을 수집하여 바울의 전도 여행기를 기록하되 바울과 함께 여행을 다녔던 것으로 알려진 의사 누가를 ‘필명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벨릭스가 바울을 박대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는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행전 24:26)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는 자세히 지적하고 있지 않지만 (그 자신이 바울의 모금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에), 아마도 벨릭스는 소문을 통하여 바울이 거액의 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고 그 중에 얼마를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나눠주었는데, 아직도 어딘가에 남겨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바울의 피소(被訴)가 유대인들의 종교상의 확신(conviction)의 문제(죽은 자의 부활, 이단 종교의 전파[행전 24:5 참조] 등)로 로마 총독의 입장에서는 비교적 가벼운 성질의 것이었는데, 어떻게 재판의 확정 없이 2년이나 경과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가 아닌가? 이에 대하여 누가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다. 어째든, 2년이 지난 다음에 벨릭스 대신에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해 오고 바울에 대한 재판은 새로운 국면(局面)을 맞게 된다. 베스도는 바울을 심문함에 공정성을 기하기 위하여 유대인 종교와 관습을 잘 알고 있는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2세(주후 53-70년 통치)를 초청한다. 바울은 베스도, 아그립바 2세와 그의 누이동생-아내인 버니게 앞에서 그를 고소하던 유대인들 앞에서 행한 간증(행전 22:3-21)에 이어 두 번째로 다시 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에 관하여 간증한다(행전 26:2-23). 그러나, 바울의 변론과 간증은 그의 판결의 확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로마 황제 앞에 재판을 받기 위한 예비 자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행전 25:25-27 참고). 바울은 왜 가이사(=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 받기를 원하였는가(행전 25:10-12, 25)? 첫 번째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재판 받을 때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지게 될 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행전 25:9 참고).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사도행전 내에서의 진술이 엇갈린다. 26장 32절에서 아그립바 2세는 베스도에게 “이 사람(=바울)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고 언급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서(또는 예루살렘에서) 무죄 방면될 수 있는데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한 까닭에 석방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로마에 도착한 바울이 그곳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말하는 내용은 이와 다르다. 그는 28장 18-19절에서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다.”라고 말하고 있다. 상식적으로는, 28장 18-19절의 진술이 더 설득력이 있다. 둘째로는, 계시 중에 주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을 것이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다. 셋째로는, 바울 자신도 예루살렘에서 구제의 일을 마친 후에는 로마를 들러서 땅끝 서바나에까지 복음을 증거하고자 하는 소망이 있었다. 로마서 15장 28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로마로 가는 길이 험하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그곳으로 가서 황제 앞에 서기를 원한 것이다. 아마 바울의 염원 중에 ‘이곳에서 벨릭스와 베스도, 아그립바 2세와 버니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것 같이 황제에게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여 그의 마음이 움직이기만 한다면 복음의 세계 전파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을 것이다. 12. 로마로 이송 (60년) (성경: 행전 27:1-28:16) 바울과 그 일행은 아드라뭇데노 배를 타고 가이사랴(Caesarea)를 떠나 시돈(Sidon)을 경유, 소아시아 루기아(Lycia) 지방의 무라(Myra) 성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알렉산드리아 배(알렉산드리아와 로마 사이를 왕래하는 배)로 갈아타고, 니도(Cnidus) 맞은편, 살모네(Salmone) 앞을 지나서 그레데(Crete) 해안을 따라 항해하다가 그레데 섬의 미항(Fair Haven)에 정박한다. 바울은 강풍이 불고 일기 불순하여 더 이상 항해가 어려우니 머물렀다가 가자고 하나 선장과 선주는 좀더 항해한 후에 뵈닉스(Phoenix)에 가서 과동하자고 하니, 인솔 책임자인 백부장과 많은 사람들이 선주와 선장의 말을 따르기에 항해를 계속한다. 그러나, 항해를 계속한지 얼마 못 되어 광풍 유라굴로를 만나게 되고 배는 여러 날을 광풍과 풍랑에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어려운 항해를 하게 된다. 이때 바울이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하여, “...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라고 말하며 안심시킨다. 미항을 떠난 지 십여 일이 지나서 배는 손상을 조금 입기는 하였으나 배에 탔던 이백칠십육 인은 모두 안전하게 멜리데(Malta) 섬에 상륙하게 된다. 섬에서 바울이 독사에게 손이 물리는 일이 발생하나 아무런 해도 당하지 아니하매(마가 16:18 참조) 오히려 그가 귀히 여김을 받게 된다. 추장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과 이질을 기도와 안수로 고치고, 이러므로 섬의 다른 병자들도 찾아와서 고쳐준다. 석 달 후에 알렉산드아 배(먼저 알렉산드리아 배와는 다른 배인 것으로 보임. 배의 이름은 “디오스구로”로 ‘쌍동이 형제’라는 뜻임)를 타고 스라구사(Syracuse), 레기온(Rhegium), 보디올(Puteoli)을 경유하여 로마(Rome)로 가는데, 그곳 형제들이 압비오 저자(Forum of Appius)와 삼관(Three Taverns)이라고 하는 곳까지 죄수로 호송되는 바울 일행을 맞으러 나왔다. 13. 로마에서의 가택연금 (60-62년) (성경: 행전 28:17-31) 바울이 로마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 중에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나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은 없음을 해명한 것이었다(행전 28:17-20).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은 비교적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었던 것 같다. 바울을 선입견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그의 사상에 대하여 듣고 알기를 원하였다(행전 28:21-22). 바울의 전도의 방식이 이방인에게서와 다름은 유대인들에게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행전 28:23)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일”을 전했다. 이러한 바울의 대상에 따라 상이한 전도는 그의 소신(所信)과 일치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9-21절에서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했다. 바울의 전도 전략은 특정한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문화와 관습에 따라 비본질적인 것은 양보하며 본질적인 것(즉, 복음)의 핵심을 전하였다. 누가는 바울이 2년을 로마의 자기 셋집에 유하며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다는 기사로 사도행전을 마쳤다. 사도행전의 마침은 바울의 사역이 그 이후에도 로마가 아닌 다른 곳에서(로마에서 머문 기간을 ‘온 이태’라고 함으로써) 계속되었으리라고 기대하게 한다. 14. 그 이후, 그리고 죽음 (62년 ? - 67년 ?) 바울은 그가 송사한 대로 가이사(=로마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을까? 가이사 앞에 섰다면 과연 무엇이라고 변론하였을까? 유감스럽게도, 이에 관하여 바울의 서신들도, 사도행전도 침묵하고 있다. 그 당시의 황제가 네로(54-68년)였던 것과 네로의 성격과 말기 기독교에 대한 편견으로 미루어보아, 바울이 네로 앞에 섰다고 하더라도 공정한 재판을 받지는 못하였을 것이며 네로의 마음을 돌리지도 못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죽음의 시기에 관하여는 로마에 2년 간 머문 후에 처형되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이 경우, 바울은 주후 62년을 전후하여 그의 최후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로마체류 기간을 조금 더 길게 본다고 하더라도 64-65년을 넘기지 못하였을 것으로 본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그가 로마에 2년 간 가택연금의 상태에 있은 다음 놓임을 얻어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전도를 하다가(제4차 전도여행?) 66-67년경에 다시 잡히는 몸이 되고 네로의 말기인 67년쯤에 처형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62년 이후 죽음을 당하기 전에 바울은 디모데전서(2차 투옥 전에)와 디도서, 디모데후서(두 서신은 2차 투옥 이후)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본다. 목회서신이 바울이 쓴 편지들이라면 바울의 죽음이 62년이 아니라 잠시 놓인 후 다시 붙잡힌 것을 가능케 한다(딤후 1:17, 4:13 참고). 그러나, 목회서신의 진정성(authenticity)의 문제가 제기된다. 목회서신의 진정성을 인정하는 학자들 가운데도 이것이 반드시 로마에서의 바울의 놓임과 2차 투옥에 대한 증빙자료는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울은 과연 그가 계획하고 사모하던(롬 15:28) 서바나까지 갈 수 있었는가?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한테 보내는 편지에서 “그(=바울)는 온 세계에 의(義)를 가르쳤고, 서편 끝(the limits of the West)에 이르러서 통치자들 앞에서 증언(證言)했으며, 그는 세상을 떠나 거룩한 장소(Holy Place)로 들림 받았다--그는 가장 위대한 인내(忍耐)의 본이었다.”(1 Clement, 5:7)고 기술함으로써 서바나까지 갔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신약외경(New Testament Apocrypha) 「베드로 행전(Acts of Peter)」에 의하면, 바울은 “서바나인의 의사가 되라”는 주님의 계시를 받고 서바나로 간다(1장). 바울은 서바나에서의 전도를 마치고 다시 로마로 와서 베드로와 협력하여 마술사 시몬(사도행전 8장 참조)을 물리친다. 베드로의 십자가에서의 거꾸로 죽임 당함은 기록되어 있지만 바울의 죽음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베드로와 바울의 행전(Acts of Peter and Paul)」에는 네로의 말기에 바울과 베드로가 같은 날(6월 29일)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는 자청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서 죽임을 당하고, 바울은 오스테시안 거리(Ostesian Road)에서 목 베임을 당한다. 「바울행전(Acts of Paul」에도 바울의 목 베임 당함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가 목 베임을 당할 때 그의 목으로부터 우유가 튀기고 집행병사의 옷을 적셨는데 이 일로 그 병사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고 바울을 높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적고 있다(5장). 「무라토리아의 단편」(the Muratorian Fragment)에는 “바울이 이 도시(=로마)를 떠나 서바나로 갔다”(38-39행)고 기술하고 있다. 4세기 역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는 그의 교회사(The Ecclesiastical History)에서 누가의 사도행전 종결을 언급하면서 덧붙이기를, “재판 자리에 선 후에 사도는 다시 설교 사역을 위해 떠났으며, 동일한 도시(=로마)에 두 번째 와서 순교를 당하였다. 이 투옥 기간 중에 그는 디모데후서를 저술하였는데, 그 서신에서 그의 이전의 재판과 임박한 죽음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EH, 2.22)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미 전설화된 이 전승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제2부 바울의 서신들 (Pauline Epistles) 제 5 장 바울의 서신들 (Pauline Epistles) 1. 바울 서신들의 진정성(Authenticity) ‘바울 서신’이라고 분류된 책들 중 어느 것들이 바울의 진정한 서신이냐 하는 질문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론(異論)이 많다. 보수주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히브리서의 포함 여부에 따라 바울 서신을 열세 개 또는 열네 개로 인정해 왔다. 그러나 비평주의 성경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일곱 개의 서신만을 바울의 서신(the seven undisputed Paul's letters)으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립보서와 빌레몬서이다. 비평주의 성경학자들은 바울의 나머지 서신들은 비록 바울의 이름으로 서문이 시작되지만 2세기를 전후하여 그의 제자들이 저작한 것으로 간주한다. 2세기 중엽(140년경) 마르시온(Marcion)은 누가복음(Gospel) 1권과 바울 서신(Apostolikon) 10권으로 신약 정경(New Testament Canon)을 만들었는데, 그가 제외한 바울 서신은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이다. 그가 왜 목회서신을 그의 정경에서 제외시켰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추측컨데, 그가 목회서신이 있는지 몰랐거나 목회서신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도 ‘마르시온의 바울’이 목회서신을 썼다고 하기에는 목회서신은 너무나 유대주의 크리스천들과 중화된 제도(制度)와 유전(遺傳)을 중시하는 내용이므로 의도적으로 제외시켰던 것 같다. 그러나, 2세기 말(170-190년) 이레니우스(Irenaeus), 터툴리안(Tertullian) 등이 마르시온의 정경에 자극을 받아 카톨릭(Catholic) 정경을 만들 때는 목회서신이 포함되었다. 19세기 초, 소위 튀빙겐 학파(Tübingen School)의 창시자 훼르디난드 바우어(F. C. Baur, 1792-1860)는 바울의 4개 주요 서신--로마서,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만이 진정한 바울의 저작물이라고 주장했다. 후에 그는 한 걸음 양보하여 데살로니가전서, 빌립보서와 빌레몬서를 바울의 진정한 서신(authentic Paul's epistles)에 포함시켰다. 바우어의 이러한 주장은 그 당시 독일 비평주의 학자들에게도 너무 멀리 나간 것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헤겔학파에 속했던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 1809-1882)에게는 바우어(F.C. Baur)의 주장은 여전히 미흡한 것이었다. 그는 바울 서신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대부분이 2세기에 여러 저자들에 의하여 “크리스천의 자기 확신”(Christian self-confidence)의 산물들로 규정하였다. 바우어(B. Bauer)의 지나친 주장으로 그의 작업은 독일에서 곧 잊혀진 바 되었지만, 이미 그의 생애 중에 생성되기 시작한 “화란 급진주의 비평학자들”(Dutch Radicals)에게 혹은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바울 서신의 진정성을 모두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설은 비평주의 학자들 간에 전적으로 부인되고 있다. 히브리서에 관하여는 보수주의 학자들 간에서도 대부분 바울 저작설이 부인되고 있다. 히브리서가 정경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은, 초대 교부학자들은 이것이 바울이 쓴 편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의 저작이 의심시 되는 다른 서신들보다 히브리서의 바울 저작설이 쉽게 부인되어진 것은 서신 중에 바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의 목회서신은 비평주의 학자들 간에 바울 저작설이 대체적으로 부인되고 있고,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후서에 대해서는 바울 저작설이 의혹시 되고 있다. 비평주의 성경학자들은 어떤 구별이 바울의 진정한 서신들과 그의 제자들이 지은 제2차적인 서신들 사이에 나타난다고 보는가? 이것은 사용 어휘들(vocabulary), 구절들, 신학적인 면에서의 차이를 많이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그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여주는 성격상의 차이가 발견된다. 바울의 진정한 서신으로 구분되는 일곱 개의 서신들은 다른 여섯 개의 서신들보다 실제적인 상황이 더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즉, 바울이 그 교회와 갖는 실제상황이 그 서신들을 통해 더 자주 눈에 띤다는 것이다. 반면에 제2차적인 여섯 개의 서신들에도 어느 정도 실제 상황이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그 빈도가 상당히 약하다. 오히려 가르침을 주로 하는 교리적인 모습을 더욱 많이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2. 바울서신의 성격 바울서신은 그 신학적 성격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원에 관한 서신(Soteriology)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이고, 그리스도에 관한 서신(Christology)은 빌립보서, 빌레몬서, 그리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이고, 교회에 관한 서신(Ecclesiology)은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와 디도서이고, 종말에 관한 서신(Eschatology)은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이다. 3. 바울 서신의 작성 시기와 배경 (1) 로마서 로마서는 로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합집단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쓰여진 편지이다(롬 1:7, 13, 2:17). 아마 이방인이 이들 집단의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지중해 연안과 소아시아 여러 곳에서 로마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이 서신을 쓸 당시, 바울은 아직 로마의 교회를 방문하기 전이다. 바울은 그의 3차 전도여행 말기인 57년경에 고린도에서 이 서신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서신을 쓸 때,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그는 로마의 크리스천들을 방 문할 계획을 말하고, 그의 스페인 여정을 그들이 지원하여 주기를 원하였다(롬 15:23-25).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기에 앞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삶에 관한 기본적인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였다. 여러 모양으로 달리 해석되어온 복음을 정립하려는 이러한 바울의 의도가 로마서를 쓴 근본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 8장까지는 교리적인 부분이다. 이 8개 장(章)에서 바울은 복음의 위대한 진리들을 설명한다. 9장-11장은 괄호 안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이스라엘에 관한 사항이다. 12장에서 16장은 실천적인 부분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그가 앞에서 설명한 기독교의 교리가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가 설명한다. 로마서의 중심 주제는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 of God)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죄인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죄는 영원한 사망을 가져온다→구원에 이르는 단 한 가지 길이 있다→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동력이다) (2) 고린도전서 로마제국의 한 식민지이던 고린도는 인구 50만 명 내외의 도시로 로마인, 헬라인과 동양계 인종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고린도는 그 당시 상업, 무역의 중심지로 선원과 상인, 각종 직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곳에는 아프로디테(=비너스) 신전이 상당수 있었으며, 신전에는 창기들이 여사제로 일하면서 몸을 팔기도 하였다. 고린도의 도시명에서 파생된 ‘코린티아조마이’(Κορινθιάζομαι: 고린도인처럼 행하다)라는 단어가 ‘음란을 범하다’는 의미로 사용될 정도로, 이 도시는 성이 문란(紊亂)하고, 불륜의 문제가 많았다.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은 ‘교회의 가르침’과 그들이 버리기로 작정한 ‘음란(淫亂)’ 사이에서 방황하였다. 고린도 교회의 시작은 바울이 이 지방에 들렀을 때인 주후 50년경이다(행전 18장). 처음 시작할 때 적은 숫자의 믿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이방인이고 약간은 유대인이었다. 교인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자 혹은 중하층의 사람들이었다(고전 1:26).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들의 믿음과 행동의 성장은 더디었다(고전 3:1이하). 바울 다음에는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를 맡아 목회하였다(행전 18:24-19:1; 고전 1:12; 3:4-6, 22, 4:6, 16:12).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그의 3차 전도여행 기간 중인 55년경에 에베소에서(고전 16:8)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그가 전해 듣거나 문의하여 알게된 고린도교회의 기본문제들을 인지하고, 교리와 예들로서 문제들을 해결하려 하였고, 더 나아가 교리들로서 고린도 교인들을 가르치려고 하였으며, 자신의 사도권을 간명하게 변론하고 (고린도후서에서는 본격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 권면하려고 하였다. (3)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기간 중, 고린도전서를 보낸지 수 개월 혹은 1년쯤 뒤에 보낸 서신으로 보인다(주후 55-56년경). 저작 장소는 마게도냐의 빌립보 지방으로 추정된다. 고린도후서의 기록목적은, 첫째는 고린도전서 기록 후 여전히 존재하는 (혹은 심화된) 오해를 없애고 교리와 실천에 대해 교훈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구제금을 모금하는데(고전 16:1-4) 더 상세한 설명을 하기 위함이고(8-9장), 셋째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한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중상모략에 대해 변론하기 위함이었다. 고린도전서가 객관적이고 실천적이며, 신중한 지시, 이단의 영향에 대한 경고라고 한다면, 고린도후서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격렬한 증언, 유대주의의 영향에 대한 경고이다. (4) 갈라디아서 ‘갈라디아’라는 명칭은 소아시아 내륙의 남쪽(남갈라디아)과 북쪽(북갈라디아)을 다 포함하는데,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지는,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주로 남갈라디아 지방--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와 더베 등--이었고(행전 13-14장) 이차 전도여행 중 그가 방문한 소아시아의 갈라디아(행전 16:6)는 ‘북갈라디아’를 가리킨다. 따라서, 갈라디아서가 일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공회(행전 15장)를 전후하여 그 공회에 상정된 할례, 모세의 율법과 구원의 문제(행전 15:1-2)에 관하여 편지한 것이라고 한다면(주후 50년 전후) 그 대상은 바울의 일차 전도여행지였던 남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이었을 것이다. 예루살렘 총회(49년) 전에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은 2장 1절 이하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사도행전 11장 29-30절, 12장 25절의 부조(扶助)를 위한 방문(45-46년경)으로 본다. 이 주장에 따르면, 따라서 2장 1절의 십사 년의 기산은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으로부터인데 이는 문맥상 어색한 느낌을 준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가 일차 전도여행 후에 쓰여졌다 하더라도 예루살렘 총회의 논의와 결정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봄이 옳을 것이다. 그리하면, 갈라디아서의 기록 년대는 49년이나 50년이 될 것이다. 성경학자들 중에는 갈라디아서가 이차 전도여행 기간(50-51년경) 중에 또는 삼차 전도여행 기간 중(55-56년경)에 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러할 때는 주로 ‘북 갈라디아’(혹은 남·북 갈라디아 전역)의 교회들이 그 대상이며 2장 1절의 예루살렘 방문은 49년의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봄이 자연스럽다. 삼차 전도여행 중에 기록되었다고 하더라도 바울의 4대 서신--로마서,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중에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 것이 확실하다. 이방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에 유대주의 크리스천들이 방문하여 그들이 구원받는 것은 믿음으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과 같이 할례도 받아야 하고, 또한 모세의 율법도 잘 지켜야 한다고 선동하는데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바울에게 믿음을 통한 의로와짐과 구원받음의 도를 받은 것에서 흔들리며 유대주의 크리스천들의 말에 미혹되기 시작했다. 이에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치는 그의 복음이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강조하고 만일 그들이 이에서 떠나 율법을 좇는다면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인가를 경고한다.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하며, 율법의 역할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종결되었음을 설명한다. 따라서 복음에 속한 자는 자유자로서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 살며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을 살 것을 권고한다. (5) 에베소서 에베소서가 바울 자신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라면 그가 로마에 가택연금의 상태에 있으면서 61-62년경에 기록된 옥중서신일 것이다. 그러나, 비평주의 성경학자들은 바울 저작설에 의문을 제기하며, 아마도 바울 사후에(70-80년) 그의 제자에 의하여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로는 바울의 일곱 개 서신들에 나타나는 특정한 지방의 교회들의 특별한 상황(contingency)이 서신에 나타나 있지 않음을 지적한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에 관한 서신(Christology)으로 어떤 특정한 교회 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광범위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살리셨고, 자기의 우편에 앉히시며, 교회의 머리되게 하심을 밝히고 있다(1:20-23).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실 것을 말한다(2:5-6).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사람이 되고(2:15)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을 선언한다(2:16). (6) 빌립보서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연금의 옥중생활을 할 무렵(61-62년, 참고: 사도행전 28:16-31) 기록한 것으로서,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에 감사하고, 자신의 현재의 형편을 알리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권면하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感謝)할 것을 격려한다. 그러나, 비평주의 학자들 중에는 빌립보서와 빌레몬서--이 두 옥중서신(prison epistles, 그들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바울 저작설을 부인함)이 로마가 아니라 바울이 로마로 이송되기 전 가이사랴(Caesarea)의 감옥에 머물러 있을 때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 중부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지방에 위치한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 의해서 유럽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였다(사도행전 16:11-15). 바울이 후에 고린도 교인들중 일부와 문제가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빌립보 교인들과의 관계는 시종일관 긴밀하고 행복한 관계였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그에게 보내는 선물을 갖고 왔다가(4:18) 돌아가는(2:25-29) 에바브로디도의 편에 그의 최근의 형편을 빌립보의 형제들에게 알리고, 선물에 감사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요한 일에 교훈하고자 했다. 편지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옥중에서 처형의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들과의 교제로 인한 바울의 무한한 기쁨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한 행복을 표현하고 있다. (7) 골로새서 골로새서가 바울이 직접 기록한 편지라면 그가 로마에서 가택연금의 옥중생활을 할 무렵(61-62년) 골로새 교인들에게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에 보낸 편지(4:7-9)일 것이다. 비평주의 성경학자들은 본 서신을 바울의 서신으로 보지 않고, 바울 사후에 그의 제자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본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하고 사역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가 사역한 에베소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또한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그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를 도운 에바브라가 사역하는 곳이라 관심이 많았다. 로마를 방문한 에바브라 편에 골로새 교회에서 잘못된 가르침과 이단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1:7-8) 바울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편지를 쓴다. 이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으나, 2:8-23에서 이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지적하고 경고한다. 이를 살펴보면, 유대주의적 율법주의(2:11, 2:14, 2:16, 3:11), 철저한 금욕주의(2:16, 2:20-23), 천사 숭배(2:18), 세상 학문(철학)을 숭배함(2:8) 등이다. 바울은 이러한 이단 사상들을 반박하고 경고함에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사역의 우월성을 상대적 진리(counter- truths)로 제시하고 있다. 골로새서에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모두 강조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로서 신성이 충만하신 분이며, 또한 교회의 머리요, 사람과 하나님의 화해자요, 그의 인격 가운데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신 분입니다. 바울은 본서에서 철학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물을 설교하고 있다. 이단 사상들이 부인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십자가 상의 그의 죽음의 효력, 그의 절대 주권성, 그의 계속적인 중보 등이 바울의 교리적 메시지의 중심이다(1:15-22, 2:9, 3:11). 또한 골로새서는 만물을 자기 안에 포함하고 계시는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를 묘사하고 있는데, 그리스도론의 완성된 형태라고 할 것이다. (8)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산물(産物)이다(행전 17:1-9).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다 소요가 일어나자 베뢰아와 아덴을 거쳐 고린도에 이르는데, 후에 실라와 디모데가 그곳으로부터 내려오매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듣고 편지한 것이다. 바울서신중 갈라디아서가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바울의 1차 전도여행직후 48-49년경)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고, 데살로니가전서가 가장 먼저 기록되었다(바울의 2차 전도여행 기간중인 51-52년경)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후자는 갈라디아서의 후기 저작설을 지지하여 55-56년경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편지를 쓰게된 계기는 그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에 소요가 일어나 부득이 그곳을 떠나게 되고 이후에 가고자 하나 갈 수 없어(살전 2:17-18), 디모데를 보내어 형편을 알게 하는데(살전 3:1-5), 후에 디모데가 그곳의 소식을 가져오므로 데살로니가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기 위하여 편지를 쓴다(살전 3:6-13). 이 편지를 통하여 바울은 데살로니가 신자들의 믿음을 독려(督勵)하고(3:6, 10), 그들 가운데 있는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고(음란[4:3], 게으름[4:1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로 잡고(4:13-17), 새로 믿기 시작한 신자들의 영적 생활을 격려하고(4:1-12), 그에 대한 중상(中傷)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복음을 증거한다[2:3,9-10]; 아첨한다[2:4-6], 겁쟁이다[2:17-20]). 데살로니가전서의 주요한 주제는 1. 그리스도인들의 환난(affliction)과 박해(persecution), 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4:13-17), 3. 데살로니가 교인의 믿음과 인내에 대한 감사(3:6-13), 4. 환난에 처해 있는 교회에 대한 격려, 5. 거룩한 삶에 대한 독려(4:1-12)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종말론적 현상과 이해로서 그들에게 닥치는 환난(患難)과 박해(迫害) 가운데서 나태한 삶을 살아가며, 죽은 성도들은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하는 잘못된 이해로서 두려운 삶을 살아가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신실한 신자들의 거룩한 삶이 무엇이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성도들과 살아있는 모든 성도들이 어떻게 들림(Rapture)을 받는지 설명함으로서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바른 이해와 건전한 영적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9) 데살로니가후서 데살로니가후서가 바울이 쓴 편지라면, 이 서신은 데살로니가전서 이후 수 개월이 경과한 52년경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잘못된 종말관을 시정하고자 쓰여졌을 것이다. 비평주의 신학자들은 데살로니가후서가 데살로니가전서의 문체를 모방한 듯 하면서도 약간 상이한 종말관을 제시하고 있는 점 등에서 바울의 저작이라기 보다는 바울 사후 당시의 상황에 대응한 바울의 제자의 저작이라고 주장한다. 데살로니가전서가 보내진 이후 잘못된 종말관으로 인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 사이에 혼란이 일어났다. 바울은 그의 데살로니가전서를 오해하고(5:1-3) 종말의 도래를 빙자하여 일상생활을 등한시하고 광신적으로 날뛰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교회와 성도는 종말의 도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로 살아가되, 현실적인 생활과 사명도 충실하게 해나가야 할 것임을 역설한다. (10) 디모데전서 최초의 신약 정경을 편찬한 마르시온(Marcion)은 디모데전서를 비롯하여 디모데후서와 디도서, 세 권의 목회서신을 그의 (바울) 사도서(Apostolikon) 부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디모데전서가 바울이 직접 기록한 서신이라면,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가택연금의 상태에서 풀려나 잠깐 활동하던 시기인 62-63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 가택연금 다음의 활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자료가 없다. 사도행전에도, 바울의 서신들에도 그가 로마의 가택연금 상태에서 벗어났는지, 벗어났으면 그가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더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붙잡히고 어떤 감옥생활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기록이 없다. 다만 불확실한 전승과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비평주의 성경학자들뿐 아니라 중도적 성경학자들의 많은 사람들이 디모데전서를 포함한 세 목회서신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신의 스타일, 어휘뿐 아니라 신학도 다른 바울 서신과는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감독의 제도가 바울 당시의 것으로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디모데전서는 1세기 말기쯤에 바울의 정신을 이어받은 제자에 의하여 기록되어졌다고 한다 (진보적 신학자들 중에는 2세기 중엽까지 저작년도를 보는 사람도 있음).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개인서신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교회 내에서 회람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디모데전서는 교회 문제와 교회 내의 다양한 지도자들의 자격요건과 그들이 해야 할 의무 등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이 서신을 통하여 목회자로서의 디모데를 권면하고, 감독과 집사의 자격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11) 디모데후서 바울이 직접 쓴 서신이라고 한다면, 바울이 그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최후의 유언과도 같은 서신일 것이다. 그가 두 번째 체포된 이후 사형선고를 받고 옥중생활을 하던 중인 67년경에 썼을 것이다. 그러나, 비평주의 신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성경학자들이 바울 저작설을 부인한다. 디모데전서에서 설명하였듯이, 문체, 어휘, 신학사상 등에서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상이한(inconsistent) 것들이 많이 있다. 디모데후서는 죽음을 목전에 둔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영의 아버지로서 마지막 당부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육신의 무거운 짐을 벗게 될 때가 올 것을 예감하는 바울은(4:6) 박해 중에서도 에베소에서 신실한 목회를 감당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변론에 휘말리지 말고 확고한 진리의 말씀 위에 거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라고 권면한다. (12) 디도서 바울이 직접 쓴 서신이라고 한다면, 바울이 로마의 가택 연금의 상태에서 풀려나서 자유로운 몸으로 디모데전서와 비슷한 시기인 62-63년경에 그레데(Crete) 섬에서 목회하고 있던 디도에게 편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비평주의 신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 저작설을 부인한다. 디모데전서에서 설명하였듯이, 문체, 어휘, 신학사상 등에서 바울의 다른 서신들과는 상이한(inconsistent) 것들이 많이 있다. 디도서는 건전한 교리를 강조하는 한편 진리를 왜곡하는 자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선한 행실을 강조하고 교회 내의 여러 집단이 행할 적절한 행동 지침도 가르치고 있다. 디도서는 또한 직분을 맡을 자의 자격 요건을 언급하고, 직분자를 포함하여 모든 믿는 자는 일상생활에서 구원에 합당한 행실을 실제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3) 빌레몬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을 때인 62년경에 빌레몬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개인 서신의 형태로 작성되었다. 빌레몬서를 통하여 바울이 얼마나 개인적인 면에서도 자상한 사람인가 알 수 있다.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아들’이라 칭하고 그에 대하여 빌레몬에게 당부하기를 친아들같이 한다. 크리스천으로서 바울이 사람을 대함에는 노예나 주인이나 차별이 없음을 우리로 알 게 하며, 크리스천이 실천하고 나누어주어야 할 사랑이 어떤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제 6 장 바울 서신의 정경화 작업 (The Canonization of Pauline Epistles) 1. 서론 바울이 주후 62년 혹은 67년경에 죽은 후에 그의 서신들은 어찌 되었을까? 바울 사후에 기록되었을 것이 확실한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 기타 복음서 등에서는 왜 바울 서신들에 대한 언급이나 힌트가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일까? 바울 서신 이외에 정경에 포함된 신약성경의 책 중에 바울의 서신의 존재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곳은 오직 초대 교부(early Church Fathers) 때로부터 그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베드로후서 3장 15-16절(“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과연 바울의 편지들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누구에 의하여 수집되었고, 어떻게 정경 속에 포함되게 되었는가? 2. 바울 서신들의 수집(收集) 바울의 사후에 소아시아,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보내졌던 그의 편지들은 어떻게 수집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하여 크게 네 가지 주장이 있다. (1) “바울 성경” 이론 ("Pauline Testament" Theories) 이 이론들은 바울 사도와 그의 서신 수집 사이에 아무런 간격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속한 학자의 주장에 의하면, 바울 자신이 그의 서신들의 수집자였다는 것이다. 아처(R. L. Archer, 1951-52)는 바울 자신이 그가 보낸 편지들의 사본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의 사후에 이 편지들을 물려받은 어떤 사람이 이들을 출간하였다고 주장했다. 트로비쉬(David Trobisch, 1989, 1993)는 저자(이 경우는 바울)가 출판을 염두에 두고 그의 수집된 저서 중 선별적으로 순서를 정하여 모아 놓은 것을 그의 사후에 출판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가 선정해놓은 것 이외의 저자 저작물을 그의 사후에 추가할 때는 저자가 처음에 선정하고 배열한 것 다음에 ‘같은 주제의 저작물’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트로비쉬는, 원저자가 선정하고 배열한 저작물의 모음을 “공인 교정본”(authorized recension)이라고 하고, 사후에 추가된 것이 함께 출판될 때 이를 “확장판”(expanded edition)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 순서는 원칙적으로 저작물의 길이가 긴 것에서 짧은 순으로 나열하는데, 바울 서신의 경우, 에베소서가 갈라디아서보다 더 긴데 갈라디아서 다음에 에베소서가 놓인 것은 예외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분량감소 순(順)의 원칙은 목회서신에 오면 새롭게 시작되는데, 이는 새로운 범주인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들이기 때문이다. 즉, 교회에 보내는 서신들 다음에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들을 위치하게 하고, 그 다음에는 분량이 많은 것에서 적은 순서로 정리해 놓았다는 것이다. 분량이 많은 에베소서가 갈라디아서보다 뒤에 놓인 것에 대해서 트로비쉬는 에베소서가 바울 사후에 “확장판”(expanded edition)으로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에베소서뿐 아니라 다른 여덟 개 서신도 바울의 “공인 교정본”에는 없고 “확장판”에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즉, 트로비쉬는, 바울 자신에 의하여 처음 선정된 것은 로마서, 고린도전·후서와 갈라디아서의 네 개 서신뿐이고, 에베소서를 비롯하여 나머지 아홉 개 서신은 바울 사후에 추가된 것으로서 에베소서가 “확장판”의 서론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굳스피드(E. J. Goodspeed)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골로새 지방의 자유인 오네시모(Onesimus)가 에베소서를 기록하였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2) “바울 사후 즉시 수집” 이론 ("Paper Apostle" Theories) 하르낙(Adolf von Harnack, 1926)은 열정적인 독자가 바울의 서신들이 배달되는 대로 이를 잘 보관하였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가 읽은 편지뿐 아니라 다른 인근 교회들에 보내진 편지의 사본까지도 수집하기 시작하여 바울 사후(死後)에는 이미 전체 바울 서신들을 다 수집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첫째는, 바울 서신들이 현대 독자에게 수사학적으로 또한 신학적으로 강력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바울 당시의 독자들에게도 그랬으리라는 추측이다. 둘째로, 하르낙은 고린도후서 10장 10절,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라고 한 것을 예로 들어, 바울의 반대자까지도 ‘그의 편지들이 힘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았다. 셋째로, 하르낙은, 고린도전서 7장 17절,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 말한 것으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과 유사한 서신들을 그의 다른 교회들에게도 보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따라서 바울 서신들을 수집하기 위해 일부러 먼 곳을 여행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넷째로, 하르낙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2절,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라고 한 것과 3장 17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 생전에 이미 그의 편지들은 수적(數的)으로도 많았고 또한 권위 있는 것이어서 모방하기에 충분하였다고 지적한다. 거트리(Donald Guthrie)도 바울 생애와 바울 서신들의 수집 사이에는 시간적 간격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다. 거트리는, 바울의 사후 즉시, 그의 동역자들 중에 하나, 필경 디모데가 그의 선생 바울 서신들의 수집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결국, 디모데가 바울 서신들을 출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무울(C. F. D. Moule)에 의하면, 누가가 그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다음에 (바울의 대필자로서--생전이 아니라 사후에) 목회서신(Pastorals)을 쓰고 또한 순수한 바울 서신들을 수집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누가복음-사도행전과 목회서신의 동일 저자설을 믿는 학자들로는 윌슨 (Stephen G. Wilson), 퀸(Jerome D. Quinn) 등이 있다. 쉥케(Hans-Martin Schenke)는 바울 서신의 수집과 제2 바울 서신들(deutero-Pauline epistles)의 저작이 바울의 제자들인 바울 학파에 의하여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들 바울의 “진정한 아들들”은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하고 새로운 질문들에 대답함으로 바울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지게 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바울 사역의 과제와 그의 권위의 겉옷을 취하였다(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야의 겉옷을 엘리사가 취한 것같이). 갬블(Harry Gamble)도 ‘미심쩍은 한 사람(오네시모, 누가, 혹은 디모데 등)의 수집’ 이론보다는 쉥케의 주장에 동의한다. (3) “눈덩이” 이론 ("Snowball" Theories) “눈덩이” 이론이란 무울(C. F. D. Moule)에 의하여 명명된 것인데, 즉 바울 편지의 수신자들은 처음에는 그 교회에 보내진 편지만 갖고 있었는데, 다른 수신자들과 편지의 사본을 교환하는 과정을 통하여 결국에는 바울의 전 서신들을 다 수집하게 되었다는 이론이다. 래이크(Kirsopp Lake, 1911)도 비슷한 제안을 했는데, 몇몇 수신처에서 소수 부분적인 수집이 있었는데, 후에 완전한 전집(Corpus)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준츠(G. Zuntz, 1953)는 에베소 주변에서 이와 같은 소수의 수집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해리슨(P. N. Harrison, 1936)은 고린도에의 편지가 바울 수집의 최초 단편(fragments)이었을 것인데, 여기에 로마서가 추가되고, 또 그 후에 마게도냐의 수집인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가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이 “유럽편 전집”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뵈뵈를 위한 편지(롬 16장)와 빌레몬의 소아시아 수집이 형성되었다. 소아시아 수집이 “유럽편 전집”에 추가되고, 소아시아의 한 크리스천은 다른 서신들에 근거하여 에베소서를 기록했다. 모우리(Lucetta Mowry, 1944)도 동일하게 보았다. 그는 세 지역으로 구분하였는데, 즉 갈라디아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의 소아시아 후배지(後背地), 데살로니가전서와 빌립보서의 마게도냐 지방, 그리고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의 아가야 지방이다. “바울 사후 즉시 수집” 이론과 “눈덩이” 이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시간의 경과의 차이이다. “눈덩이” 이론가들은 하르낙이 주장한 것과 같은 그렇게 빠른 수집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바울 서신의 전체 수집은 상당히 기간이 걸렸을 것이지만, 그 동안에도 부분적인 수집은 계속되었다고 제안한다. (4) “재림” 이론 ("Second Coming" Theories) 굳스피드(E. J. Goodspeed), 바우어(Walter Bauer)와 캄펜하우젠(Hans von Campenhausen) 등은 2세기의 상당 기간이 경과하기까지 바울 서신들에 관하여 “놀랄만한 침묵”이 흘렀음을 지적했다. 2세기 중엽의 저스틴(Justin Martyr)은 그의 방대한 저서에서 바울에 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바울이 언급되어 있는 저작물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특별한 언급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열두 사도의 아류에 속하는 그저 그런 인물일 뿐이다. 바우어(W. Bauer)는, 이그나티우스(Ignatius), 폴리캎(Polycarp)과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가 그들의 저작에서 바울 서신을 언급하고 있지만, 그들은 그 내용을 모르면서 토론 중에 마치 아는 채하고 있는 그런 준비가 덜 된 학생들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로마의 클레멘트는 그의 ‘고린도 교인에게 보내는 편지’(47:2)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가 한 편밖에 없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이그나트우스는 그의 에베소서(12:2)에서 바울이 그의 모든 서신에서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한 것처럼 착각했고, 폴리캅은 그의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빌립보교인에게 보낸 편지가 여러 편인줄 생각했고(3:2) 또한 바울이 그의 모든 편지들에서 훌륭한 빌립보 교인들에 대하여 언급한 줄로 생각했다(11:2). 굳스피드 역시 바울 서신들에 관하여 잠잠했던 기간이 있었음을 인지했는데, 다만 굳스피드는 그 기간이 바울 사후부터 90년에 이르기까지라고 했다. 녹스는 바울이 그의 생애 동안 교회의 중심적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그의 서신들의 출간이 사후에 그를 교회 중심에 놓이게 했다고 언급한다. 바우어(W. Bauer), 굳스피드(E. J. Goodspeed), 녹스(J. Knox)와 미톤(C. L. Mitton) 등은 그의 서신들의 출간 영향으로 바울이 교회에 중심적 위치에 놓이기까지는 오랜 기간이 걸렸음에 동의하고 있다. 굳스피드의 제자인 바넷(A. E. Barnett)은, ‘바울 서신들의 첫 번째 수집자의 개인적인 수고로 말미암아 바울은 문필의 영향을 (교회에) 크게 끼쳤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우어(W. Bauer, 1934)는 굳스피드, 녹스와 미톤과 동의하여 바울과 그의 서신이 일정 기간 무시되었음을 인정하나, 그 침묵기간이 90년까지가 아니라 훨씬 그후까지 계속되었다고 행각했다. 그는 바울 서신의 “재림”(Secoming Coming)을 가져오게 한 인물인 다름아닌 본도 출신 마르시온(Marcion of Pontus)이라고 보았다. 그는 “나는 마르시온을 바울 전통(Pauline Heritage)의 첫 번째 체계적인 수집자라고 본다”고 언급하고 있다. 바우어에 앞서서, 버킷(F. C. Burkitt, 1906)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언급하기를, “마르시온은 바울이야말로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의 교리를 이해한 유일한 사도라고 생각하여 그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마르시온(배를 소유한 사람으로서)은 2세기에 어떤 크리스천들보다도 여행을 많이 하였으므로 그의 동시대인들보다도 바울 서신들을 수집할 많은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해볼 때, 마르시온이 바울 서신들의 첫 번째 조직적인 수집가가 아니었을까 사료된다.”라고 했다. 굳스피드의 제자인 녹스(J. Knox)는 바우어(W. Bauer)와 버킷(F. C. Burkitt)의 “마르시온이 바울 서신의 첫 번째 체계적인 수집자”라는 주장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첫째로, 녹스는 카톨릭의 바울 수집이 마르시온의 수집과는 다른 텍스트(text)를 반영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즉, 마르시온의 수집에 앞서서 존재한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어떤 다른 바울의 “전집”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둘째로, 바우어(W. Bauer)와는 달리, 녹스는 초대 교부들(위에 언급한 클레멘트,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 등)이 다양한 바울 서신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로, 녹스는 에베소서가 이미 다른 아홉 개 서신들을 전재로 하고 있음으로 미루어 보아, 바울 서신의 수집이 마르시온 때에 이르기까지 지연되었음을 상상할 수 없다고 반대한다. 3. 바울 서신의 정경화 작업(Canonization of Pauline Letters) 위에서 바울 서신 수집에 관한 네 가지 상이한 이론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바울 서신의 수집과 정경화는 시기적으로 일치할 필요는 없다. “바울 성경” 이론(“Pauline Testament” theories)에서와 같이 바울이 생전에 그의 모든 편지들의 사본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에는 그가 서신들이 그의 교회들에서 회람되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1세기 말까지 바울의 모든 서신들이 다 잘 준비되어 있었다고 할지라도 “정경”(Canon; criterion, standard)의 필요성을 교회와 교인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면 정경화 작업은 훨씬 뒤에 진행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마르시온이 첫 번째 정경화 작업을 이룬 사람임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가 이단(異端)의 판정을 받은 사람이기에 그의 업적에 대하여 그렇게 적극적이고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시인하기 거북하더라도, 마르시온의 누가복음(Gospel)과 바울의 열 서신(Apostolikon)에 대한 정경화(canonization) 공로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마르시온이 바울의 전집(Pauline Corpus)을 최초로 정경화한 사람인가?’라는 질문과 ‘마르시온의 열 편의 “바울 전집”(Pauline Corpus)이 최초의 바울 전집인가?’라는 질문은 별개의 사안(事案)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90%이상의 확률로 긍정적인 대답을 얻을 것이며,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50%-50%로 찬성과 반대가 갈릴 것이다. (1) "바울 전집"(Pauline Corpus)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우어(W. Bauer)와 버킷(F. C. Burkitt)은 마르시온이 완전한 바울 전집의 최초의 수집자일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반대 견해를 가진 녹스(J. Knox)의 이유도 제시하였다. 마르시온이 열 개의 바울 서신들을 다 수집한 것이 140년경이었는데, 이는 바울이 그의 마지막 편지들--골로새서, 빌레몬서와 에베소서--을 기록한 때로부터 80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바울이 과연 ‘그의 서신들의 모든 사본들을 갖고 있었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는데, 이는 복사기가 없던 당시의 사정을 고려할 때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당시 장장의 편지를 한 번 쓰는 것도 보통의 수고가 아닌데, 그것도 대필자(代筆者)에게 부탁하여 동일한 편지를 두 번 쓴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 아니다. 또한 바울의 입장으로 자신의 편지들의 보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그의 전 서신들을 보관했었다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서신들의 사본의 사본이라도 얻고자 힘썼을 것이다. 특별히 바울의 행적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도행전을 기술함에는 바울의 서신들이 필수불가결한 참고문헌이었을 터인데, 사도행전의 기록은 전혀 바울 서신들과 접촉한 흔적이 없다. 바울 서신들에 대한 신약성경 내의 증언이 없는(의혹이 있는 베드로후서 이외에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바울 서신들은 그의 사후 30-40년의 기간 동안은 서신들의 수신자였던 교회들의 문서철에 사장(死藏)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의 사후 십 년쯤 흘렀을 때에는 바울의 이름조차 이방 교회들에서까지 잊혀져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던 바울과 그의 서신들이었는데 1세기가 거의 지날 무렵 혹은 2세기가 시작될 즈음에 바울의 이름과 그의 서신들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굳스피드의 증언이 옳을 것이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한 연대가 언제인지 학자들 간에 이견이 있지만(60년 중반에서 2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굳스피드의 주장대로 90년을 전후하여 기록하였다고 한다면 누가의 바울에 대한 기록이 그의 서신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비록 누가는 바울 서신들을 보지 못하고, 바울에 관한 전승들을 수집하고 이를 근거로 기록하였을 것이지만--하기에 바울의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에 대한 세 군데(9장, 22장, 26장) 기록에 간과할 수 없는 차이를 드러내지만,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울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95년경), 이그나티우스(Ignatius, 115년경)와 폴리캎(Polycarp, 135-155년경)의 바울에 관한 언급 구절들은 그들이 바울의 이름과 그의 서신들에 관한 소문은 들었지만, 또 그 서신의 내용에 관해서도 얼핏 혹은 대충 들었지만 바울 서신들을 직접 본 사람들의 기록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아마도 90-100년을 전후하여 바울 서신들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 수집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로 인하여서 120년 전후부터는 바울 서신들이 어느 정도 관심 있는 사람들의 손에 부분적으로 쥐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한동안은 마르시온이 ‘바울 전집의 최초의 수집자’란 주장이 많은 학자들의 호응을 얻었지만, 현금(現今)에 와서는 이 주장이 반박되어 거의 물밑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녹스(J. Knox)는 ‘마르시온의 바울 서신 텍스트(text)와 카톨릭의 텍스트와의 상이(相異)는 마르시온이 그 당시에 이미 존재했던 여러 개의 바울 전집 본(本) 중에 하나를 선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이것으로 마르시온의 바울 전집이 최초의 것이 아니었다는 증거를 삼고자 했다. 그러나, 달(Nils Dahl, 1978)과 클라보(J. J. Clabeaux, 1989)는 각각 마르시온의 텍스트가 속했을 것으로 보이는 널리 통용되던 텍스트 전승(textual tradition)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비(非) 마르시온주의 텍스트(non-Marcionite text)에 대한 마르시온 텍스트(Marcion's text)의 유사성이 마르시온을 첫 번째 바울 전집의 최초 수집자 후보에서 제외시키게 했다는 것이다. 즉, 마르시온의 텍스트와 카톨릭의 텍스트가 함께 속하였던 그 이전의 텍스트 전승이 있다는 것은 마르시온의 전집이 최초의 전집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다. (2) 바울 서신의 정경화 (Canonization of Pauline Epistles) 마르시온의 “사도서”(Aoostolikon)가 최초의 바울 전집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제 기정 사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반면에, 마르시온의 정경이 최초의 정경이었다는 주장은 새로운 증거로 인하여도 흔들림이 없다. 필시, 마르시온 이전의 교회들에서는 정경의 필요성을 그렇게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마르시온은 베드로, 요한과 야고보 등 예수의 참 사도가 아니며, 오직 바울만이 “참”(true) 사도라고 생각했다. 마르시온은 열두 사도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복음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공격했다. 그는 열두 사도들이 거짓 가르침의 전통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였다고 믿었으며, 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바울의 복음을 주의 깊게 회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르시온은 또한 바울 서신들이 유대주의 크리스천들의 이해에 따라서 수정되고 가감되었다고 보았다. 그는 바울 서신들에서 발견되는 유대적 요소들은 이차적인 것들로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따라서, 마르시온에 의하면, 바울의 서신들 안에서도 삭제와 보충이 필요했다. 마르시온은 기존의 카톨릭 교회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그가 “참” 사도라고 주장하는 바울의 서신들과 그의 복음서라고 생각되는 누가복음을 가지고 정경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지 않고서는 참 복음과 바른 교리들을 지키고 가르치기가 어렵다고 믿었다. 마르시온의 정경은 종종 그 성격상 뚜렷하게 기독교적인 최초의 “닫힌 정경”(closed canon)이라고 불린다. 그의 정경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복음서”(Gospel) 부분과 “사도서”(Apostolikon) 부분이다. 그의 “복음서”는 누가복음을 그의 목적에 맞게 축소·편찬한 것이고, “사도서”는 목회서신(Pastorals)을 제외한 바울의 열 개 서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에 에베소서는 라오디게아서로 대체되어 있다. 호프만(R. J. Hoffmann)은 바울의 선교 사역 실패가 마르시온 개혁의 전제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마르시온은 예수의 원래 열두 사도들은 유대주의자들로 배격하고, 바울만이 참된 복음의 수호자라고 믿었다. 마르시온의 “사도서” 부분을 구성하는 바울 서신들은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라오디게아서(아마도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빌립보서의 순서로 배열되었다. 달(Nils Dahl)에 의하면, 갈라디아서, 고린도서, 로마서가 바울 전집(Pauline Corpus)의 처음에 위치하는 것은 전적으로 마르시온 정경에만 한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 시리아 본(本)”(Old Syriac version)도 동일한 순서로 되어 있다. 마르시온이 “고 시리아 본”을 알고 있었든지 모르고 있었든지, 그는 갈라디아서를 그의 사도서 부분의 맨 처음에 놓을 명백한 이유를 갖고 있었다. 그는 그의 (율법과 복음의) 이원론과 오직 “한 복음”의 변론을 위해 갈라디아서가 바울 서신들 중에 가장 중요한 서신이라고 생각했다. 마르시온은 그의 이원론적 두 하나님의 개념을 율법과 복음의 극단적인 구분으로부터 끌어내었다. 게다가, 그는 갈라디아서가 반 유대주의적 근거를 가장 잘 마련해주고 있는 서신이라고 생각했다. 녹스(J. Knox)에 의하면, 마르시온의 사도서에 포함된 바울 서신들은 열 개의 별도의 서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서로, 데살로니가전·후서는 데살로니가서로 나타나 있고, 게다가 골로새서와 빌레몬서도 단일한 제목으로 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따라서, 녹스는 마르시온의 사도서 부분이 (일곱 개 교회에 보내는) 일곱 개의 서신(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 개 교회처럼)를 담고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많아야 여덟 개 서신--골로새서와 빌레몬서가 단일 제목하에 있지 않았다면). 제 7 장 2세기 바울 논쟁 (The Second Century Debates on Paul and His Epistles) 1. 서론 기독교 교회사에 있어서 2세기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반이 지나기까지는 그렇게 큰 동요 없이 교회의 역사가 흘러가고 있었다. 1세기말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2세기 초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2세기 초·중반의 폴리캎(Polycarp)에 이르기까지 약간의 이단 종파들의 조짐이 보였지만 아직 교회는 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었다. 마술사 시몬(Simon Magus, 행전 8:9-24)의 뒤를 이어 기독교적 영지주의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던 소수의 영지주의자들이 나름대로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이레니우스(Irenaeus)는 ‘마술사 시몬을 모든 이단의 아버지’라고 불렀는데, 그의 추종자들은 주로 영지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 2세기 초반부터 기독교 내부에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한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들 중에 메난더(Menander, 주후 100-120년에 주로 활동), 사투르닐루스(Saturnilus, 117-138년에 주로 활동), 그리고 바실리데스(Basilides, 117-138년에 주로 활동)와 그의 아들 이시도레(Isidore)가 있었으나, 그들의 그룹에 속한 자들이 소수이고 아직 세력을 얻지 못하여 기존 교회들을 크게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140년이 넘어서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마르시온이 최초의 기독교 정경을 편찬하고, 그가 세운 교회들이 소아시아는 물론 로마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저스틴은 150년경에 저술한 그의 저서 「제일 변론서」(The First Apology)에서 “마르시온의 가르침이 온 세계에 퍼졌고” “그 유명한 이단(=마르시온)은 아직도 살아서 그의 제자들에게 창조자보다 더큰 어떤 다른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그의 놀라움을 기록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발렌티누스(Valeninus)와 그의 추종자들이 로마에까지 진출하였는데, 그는 기존의 영지주의자와는 달리 로마에서 많은 추종 세력을 얻고 활동기반을 공고히 해나갔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정통”(orthodox) 교회와 자신의 일파를 구분하지 않으므로 기존의 교회 내에서도 신임을 얻어 로마 교회의 감독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못 미쳤다고 한다. 마르시온주의자들의 그들 교세의 확장과 발렌티누스 영지주의자들의 교회 침투와 교인들의 미혹, 선동이 2세기 중엽의 교회 내부의 가장 고민스러운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2. “이단의 사도” 바울(?) 로마의 “정통” 교회가 아직 바울을 적극적으로 교회 내에서 연구하고 그의 서신들에 “성서적” 가치를 부여하기 전에, 마르시온은 바울을 그의 유일한 사도로 칭하고 바울 서신들을 본격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르쳤다. 그의 바울 서신들의 해석은 철저하게 이원론적 신관에 의한 것이었기에, 그는 바울 서신들에서 그의 기본 입장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그 내용을 가감하여 편집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아니,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여겼다. 마르시온은 그에 앞서서 유대주의 크리스천들이 잘못된 가르침들을 바울의 서신들 이곳 저곳에 심어두었다고 믿었기에 이 거짓 가르침들을 바울 서신들 중에서 찾아내어 척결하는 일이야말로 아직까지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참 하나님(unknown Foreign God, the Father of Jesus)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참 진리를 수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르시온주의자들(Marcionites)뿐 아니라 발렌티누스파 영지주의자들(Valentinian Gnostics)도 바울을 그들의 사도로 부르며 바울의 서신들을 중심으로 영지주의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지만, 성경은 가르치는 사람의 해석 여하에 따라서 전혀 율법적인 책이 될 수도 있고, 전혀 도덕적 자유주의자(libertine)의 책도 될 수 있고, 영지주의자(Gnostics)의 책(특히 바울 서신들과 요한복음)도 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의 위험은, 예를 들어 일래인 패이걸(Elaine Pagels)의 「영지주의자 바울」(The Gnostic Paul)에서 보여준 그녀의 바울서신의 영지주의적 해석 시도를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발렌티누스파 영지주의자들은 복음서와 바울 서신들을 영지주의적으로 해석하고, 그들의 영지주의적 가르침을 책으로 출간했다. 2세기 중반이후에서 후반으로 치달으면서 (주로 로마의) “정통” 교회들은 마르시온주의자들과 발렌티누스파 영지주의자들에 맞서서 바울을 ‘그들의 사도’로 주장할 것인지, 아니면 그를 ‘이단들의 사도’(터툴리안의 「반(反) 마르시온론」(Adversus Marcionem) 참고)로 물리칠 것인지 결정을 해야만 했다. 이제까지 바울 서신들을 신앙과 교회생활에 유익한 책으로는 여겼지만, “성서적” 가치는 생각해보지 않았던 (하긴, 아직까지 어떠한 복음서나 사도들의 서신도 “성서적 가치”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음) 교회로서는 갑자기 “이단들”(heretics)이 바울을 “자기들의 사도”라고 주장하니까 힘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2세기 초반 이후 그의 서신들로 인해서 바울이 교회 내에서 차지하게 된 비중에 비하여 그의 이름과 서신들의 거명은 이상하리마치 드물었다. 위에서도 언급하였지만, 2세기 중반 로마에서 활동하던 저스틴(Justin Martyr)은 바울과 그의 서신들에 관하여 전혀 인용한 바가 없다. 녹스(J. Knox)는 이러한 (의도적인 듯한) 침묵은 여러 교회들에 있어서 바울의 신학이 의문시되고 있었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세기 중반에 바울의 서신들이 교회들 간에 널리 퍼지고 회람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통” 교회들은 바울을 ‘그들의 사도’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당시, 로마의 신앙 공동체 내에서도 바울은 그들의 전승 속에서 그의이름이 베드로의 이름과 긴밀한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러한 바울을 이단들에게 내어 준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희생을 요하는 일이었다. 바울의 서신들을 “이단시(異端視)”하는 것은 기독교계(基督敎界)의 반 이상을 “이단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3. “정통” 교회의 정경화 작업 마르시온의 정경이 없었다면 “정통” 교회의 정경이 등장하였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물론,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더 지체되어서 결국에는 정경의 필요성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일부 학자들이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르시온이 크리스천 정경 편찬을 간접적으로 강요한 셈이라고 생각하고, 게다가, 마르시온의 “복음서”와 “사도서”의 기본적인 두 부분의 골격이 크리스천의 신약 정경(New Testament Canon)에서도 “복음서들”(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과 “사도서들”(사도행전, 바울 서신들과 다른 서신들)의 구조를 갖게 했다고 본다. 2세기 전반의 교부 신학자들은 바울 서신들에 대하여 미온한 반응을 보이든지 침묵을 지켰지만, 결국에 “정통” 교회는 그들의 크리스천 정경화 작업에 있어서 “사도적 권위”(apostolic authority)라고 하는 마르시온의 생각(마르시온의 경우에 있어서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을 따른 셈이 된다. 마르시온이 열 개의 바울 서신들을 그의 정경에 포함시킨 것에 반하여, “정통” 교회는 마르시온이 알지 못하여서 포함시키지 못하였거나 아니면 바울 서신들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여 일부러 제외시켰을지 모르는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와 디도서의 세 개 서신들을 기존의 열 개의 바울 서신에 추가하였다. 그 위에, 마태복음,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복음서 부분에 더하였고, 히브리서, 야고보,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1·2·3서와 요한계시록, 유다서 등을 덧붙였다. 여기에 더하여서, 구약성경도 포함시킴으로 “정통” 교회의 정경(Christian Canon)은 그 위용(偉容)을 온전히 갖춘 듯하게 되었다. 정경화 작업을 마친 “정통” 교회는 “이단들” 향하여, “우리는 너희들이 가진 성서를 모두 가졌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가졌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을 모두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녹스(J. Knox)는 “정통” 교회가 “이단”의 성서(聖書)를 배척하지 않고 더 큰 전체 속으로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단들”에 대답하는 이러한 방법은 “정통” 교회가 신약성경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줄 뿐만아니라 “보편적 정경”(catholic canon)의 “특수한 내용들”(particular contents)을 설명하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제3부 바울의 신학 (Pauline Theology) 제 8 장 바울 신학의 배경 (Background of Pauline Theology) 유대인으로서 헬라문화권에서 자란 바울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병존하고 있었다. 하나는 유대인의 세계요 다른 하나는 헬라인의 세계였다. 그 위에, 주변의 이방 신비종교(mystical religions)에 대해서 듣고 지식을 얻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바울이 그의 신학 형성에 이들의 영향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별도의 논의 사항이다. 그러나, 바울 신학의 기본 골격이 이들 유대주의 배경, 헬라 문화 영향, 이방 신비종교에 의해서 형성된 것일까? 이러한 것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그의 다메섹 경험일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 위에 바울이 이후에 전도하면서 반대자들과 부딛히고 그들로부터 받은 많은 어려운 질문들과의 씨름들이 그의 신학의 골격을 형성하였을 것이다. 1. 유대주의 배경 바울은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히브리어 성경에서 직접 인용한 것이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칠십인역(Septuagint)에서 주로 인용했다. 이 칠십인역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성경이다. 유대교의 철저한 교육을 받은 바울은 자기 스승들의 선한 교훈들을 계속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 서신들에 종종 나타나는 미드라쉬적 구약본문 해석은 그의 랍비 교육의 영향인 것으로 사료된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은 랍비 전승에 있는 것인데 바울은 이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his seed)”에게 약속들을 주셨는데, 그 “자손”이 단수인 것에 착안하여 “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 갈라디아서 4장 21-26절에서 시내산과 하갈과의 연결, 예루살렘과 사라와의 연결들도 그의 랍비적 교육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부활도 믿고 천사도 믿고 영도 믿었다(행전 23:8). 바리새인으로서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 내세를 받아들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 임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2. 헬라문화의 배경 바울은 헬라문명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문에서 다소는 특히 스토아 철학자들로 유명했다. 역사학자 스트라보(Strabo)는 다소 출신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 다섯을 꼽았는데, 그들은 안티파터(Antipater), 아르케데무스(Archedemus), 네스토르(Nestor), 아데노도루스 코르딜리온(Athenodorus Cordylion), 산돈(Sandon)의 아들 아데노도루스(Athenodorus)이다. 아마도 바울은 이들 스토아 철학자들의 가르침의 영향을 어릴 때부터 은연 중에 받았을지 모른다. 불트만(Rudolf Bultmann)은 바울의 논리 전개가 스토아 학파의 스타일과 흡사한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양편이 수사적 질의법과 단편적인 지론을 쓰고 문제 제기를 위해 가상적인 적수(敵手)를 설정하며 보통 운동경기, 건축 및 일상생활에서 예화를 끌어온다. 사실 바울의 가르침에 담긴 용어들이 스토아 철학의 교리를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가 스토아 철학의 사상들에 익숙하였고 그 사상에 동감하는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 있어서 스토아 철학의 영향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은 바울 신학과 스토아 철학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제시한다. 먼저, 스토아 철학은 세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철학적인 사색에 의존한다. 이 철학의 ‘신’은 실상 추상적인 인간의 이성(Reason, λόγος)이었다. 반면에 바울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역사적 사건들 위에 굳게 서있다(고전 15:3-11 참고). 둘째로, 스토아 철학의 ‘신’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불투명하다. 어떤 때는 신이 전 우주와 연관되어 있고 때로는 이성이나 불까지도 신으로 연관되어 있다. 반면에 바울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인격적인 존재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셨다(골 1:19). 셋째로, 스토아 철학은 ‘구원’을 자족에서 찾았다. 따라서, 자신을 완전히 제어하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살 수 있다고 가르쳤다. 반면에, 바울은 자기 의존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함으로써 구원을 찾았다(갈 2:20). 필자 역시 바울에게 스토아 철학의 영향은 다만 외관상인 것이지 그의 신학과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달리 표현하면, 바울은 그가 습득한 스토아 철학으로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얻고 그의 선교와 신앙 경험을 통하여 형성하게 된 그의 신학을 보완하거나 수정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바울에게 있어서, 스토아 철학의 영향은 그의 논리 전개나 변론의 방법, 그리고 단어나 문구들의 사용 정도에 국한된 것이지 그의 신학을 조명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화이틀리는 바울의 사상 체계가 당시의 헬라 문화와 공통된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그의 사상 가운데 순수하게 헬라적 근원만을 가진 것은 거의 없다고 진술한다. 그는 바울이 이방 세계와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이방적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이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는 신앙과 언어의 대부분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유대적인 바탕에서만 나올 수 있고 다른 곳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바울 사상의 요소는 매우 많다고 주장한다. 3. 기타 이방 신비종교 1세기의 로마 제국 전역에서는 신비종교로 알려진 사이비 종파들이 많았다. 신비종교는 조로아스터교나 유대교에다 이집트, 그리스, 로마의 종교적 전통에서 나온 사상들을 섞은 혼합종파였다. 바울 당시에 유행했던 신비종교는 미스라교(Mithraism)이었다. 신도들은 미스라(Mithra) 신이 충성된 자들을 구해주고 천국에 가도록 도와준다고 믿었다. 신비종교들과 기독교 사이에 몇 가지 피상적인 유사점들이 있다. 둘 다 동방에서 왔고 추종자들에게 ‘구원’을 제공한다고 전하였다. 둘 다 입교의식(기독교의 세례)과 성식(聖食, 기독교의 성찬)을 행하였고 그들의 구속의 신을 ‘주’(Lord)라고 불렀다. 신비종교로부터 개종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옴으로써 신비종교의 신앙이 함께 교회에 들어오기도 했다. 기독교와 신비종교 사이의 이와 같은 유사성 때문에 종교사학파(Religionsgeschichte)에 속한 학자들은 바울이 예수의 단순한 도덕교훈을 일종의 신비종교 속으로 끌어넣어 변화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을 지지할 뚜렷한 역사적 증거가 없다. 화이틀리는 바울이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되어진 신비종교에 관해 남아 있는 증거물들 대부분이 바울 시대 이후의 것들임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아풀레이우스(Apuleius)는 그의 ‘황금 당나귀’(Golden Ass)를 신비종교에 대한 자료의 하나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2세기 후반의 기록임이 확실하다. 마법의 파피루스나 헤르메스 문서 등도 바울에게 영향을 주기에는 너무 늦은 것들이다. 신비종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신비종교는 언제든지 타종교와 손잡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기독교는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진리가 모두 계시되었다고 믿고 타종교와의 타협을 항상 배격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께 사용한 ‘주’(Lord)는 신비종교가 아닌 구약성경에서 온 것이다. 바울이 신비종교와 기독교의 유사성을 알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바울은 신비종교에 대한 깊은 지식을 드러낸 적도 없고 그들의 의식(rituals)을 하나도 분명히 언급한 일이 없다. 상당수의 현대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신비종교라기보다는 초기 영지주의가 초대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본다. 바울의 배경에는 유대교, 헬라문화, 그리고 신비 사상이 있다. 이것들은 바울의 인물과 신학을 조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이 처했던 환경에서 무엇을 습득했든지 그는 새로 만난 그리스도께서 다른 어떤 출처의 능력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것들은 일체 배설물로 여겼다(빌 3:8). 4.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 바울 신학의 기본 큰 틀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의 체험과 그 체험에서 발전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의하여 기원하고 형성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은 많다. 특히 김세윤은 그의 책, 바울복음의 기원, 전체에서 바울복음의 주요 골격이 그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에서 이루어졌다고 설파한다. 그는 “바울의 복음과 사도권은 다메섹 도상에서 있었던 그리스도의 현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메섹 사건은 그의 신학과 사도로서의 그의 존재의 근거가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특히 갈라디아서에서 그의 복음과 사도권의 위임이 이 다메섹에서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음을 강조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1-12절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고, 16절에서는,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라고 진술하고 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주’로 고백하고 받아들인다(고전 15:8). 바울의 ‘부활의 주’ 체험은 다른 사도들과 제자들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체험과 적어도 1년 정도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 따라서,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은 지상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죽으시고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지상의 삶을 산 그리스도이기보다는 본래부터 하늘에 존재하신 ‘선재하신 그리스도’(Preexistent Christ)요 ‘천상의 그리스도’시요(Heavenly Christ), 또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이시다. 물론, 바울이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바울에게 임하신 그리스도는 대속적인 죽음을 감당하셨지만,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높임받으신 그리스도’(exalted Christ)이시다. 그의 높임받으신 근거는 자기 비움의 삶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하심으로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을 이루신 그의 사역에 근거한다(빌 2:6-11; 또한 엡 1:20-22).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인간 구원계획)을 알게 되었다(엡 1:9; 골 1:26-27) 이 비밀은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이르매 바울에게 계시되어진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실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그 구원 사역을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신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깨달아 알았을 때, 다메섹으로 그리스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던 바울이 변화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도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율법의 의를 좇아가다가 부딪힐 돌에 부딪힌 자이었는데(롬 9:31-32), 이제 그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길이 무엇인 줄 알게 된 것이다(롬 4:3; 갈 3:6; 창 15:6 참고).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허락하신 분은 다름 아닌 그가 이제까지 다른 어떤 연갑자보다 열심으로 믿고 있었다고 생각했던(갈 1:13-14; 빌 3:5-6)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분이신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그의 잘못된 열심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빛으로 임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바람에 그의 육신의 눈은 상함을 받았지만(갈 4:15 참고), 그의 영적인 눈은 밝아진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을 구하실 계획이 있으시다는 사실을 뚜렷이 깨달아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기로 작정하였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2절에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했고, 또한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도,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복음 증거의 내용은 세상의 철학이나 윤리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이며 그로 말미암는 “칭의와 구원”인 것이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그의 삶의 우선순위를 변경시켰다. 이제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이 되었다(빌 3:8). 이전까지 그의 자랑꺼리였던 모든 것들은 이제 잃어버리기로, 배설물로 여기기로 작정하였다. 이전까지는 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당함을 최고의 기쁨과 자랑으로 여기게 되었다. 5. 다른 사도와 제자들, 전승들 만일 바울의 복음 증거와 바른 신학의 형성을 위해서 오직 다메섹 도상의 그리스도 체험만이 전부라면, 다른 사도들과 제자들과의 만남, 기타 전승의 습득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바울은 한편으로는 그에게 다른 사도들과의 만남이 ‘아무 것도 더하여 준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갈 2:6),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과의 만남으로 ‘그의 (복음을 위한) 달음질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하고자 했다(갈 2:2).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이후 얼마간의 기간을 아라비아에서 보내고 또한 일정 기간을 다메섹에서 전도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다메섹 체험이후 삼년쯤 되었을 때에 “게바를 심방하려고”(갈 1:18) 예루살렘으로 갔는데, 거기서 ‘게바와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다’(갈 1:19)고 진술한다. 바울은 왜 게바를 만나기를 원하였을까? 그는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에게서 예수의 지상사역에 대한 모든 것을 듣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가 회심하기 전에도, 그가 핍박하고 심문하던 그리스도 믿는 자들을 통하여 그들이 간접 체험한 부분적으로 듣기는 하였어도, 그리스도의 전체 사역의 맥을 찾기 위해서는 보다 더 상세하고 체험적인 이야기 들음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예수의 삶의 모습이 어떠했으며, 설교의 내용은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고난당하셨으며, 십자가 상에서 어떻게 죽으시고, 그가 또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어떻게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지 이 모든 것들을 듣고, 알고, 느끼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예수의 지상 사역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바울에게 이 부분은 절실히 필요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예수의 십자가를 마음 속에 그려볼 수도 없으면서, 그의 구속사적인 복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어떻게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단 말인가? 다메섹 도상의 그리스도가 이미 감동이었지만, 바울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생생한 감격이 필요했을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의 체험담이 바울 신학의 직접적인 영향은 준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시키고, 멀게만 느껴졌던 그리스도의 사역과 고난과 죽음이 주는 의미가 한층 가깝게 다가왔음은 분명하다. 바울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참석한 예루살렘 총회(행전 15:1-29) 역시 바울에게 신학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의 만남, 또 유대인 크리스천 반대자들과의 상면 등이 이방인 사도로서의 바울의 입장과 신학을 더욱 견고하고 구체화시키게 했을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계시 이외에 또한 초대 교회의 사도적 전승에 의존한 것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피츠마이어는 고린도전서 11장 23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성만찬의 예식문이라든지, ‘아멘’ 기도들(갈 6:18; 고전 14:16; 고후 1:20), “마라나타”(고전 16:22), “아바 아버지”(롬 8:15; 갈 4:6), “영광송”(롬 11:36; 갈 1:5; 빌 4:20) 등등 많은 부분에 걸쳐서 바울이 초대 교회들의 전승들을 도입한 흔적이 있다고 지적한다. 6. 사도로서의 바울의 체험들, 반대자들과의 변론들 다메섹 도상에서의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그의 복음과 신학의 골격이 형성되었다고 한다면, 그의 신학은 그의 이방 전도여행들을 통하여, 그가 대면해야 했던 반대자들과의 변론을 통하여 점점 더 세부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바울의 서신들에 나타난 많은 반대자들에 대항하는 그의 변론들과 그가 교회 내에서 또한 밖에서 겪은 어려움이 없었다면, 과연 그의 서신들이 현대의 교회들에게까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었을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만일 바울이 유대주의화 크리스천의 문제가 없었다면(갈라디아서 참고), 칭의에 관하여, 그리고 복음과 율법, 믿음과 율법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설득력 있게 기록하였을 것인가? 각종의 이단적인 반대자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었던들, 바울의 서신들은 위로와 평안과 축복의 편지는 되었을지언정, 요즘까지도 존재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대처와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편지는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제 9 장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들 (Coherent Centers of Pauline Theology) 1. 서론 바울의 신학의 일관된 내용이 무엇이며 그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바울의 신학이 무엇인지 고찰함은 그의 사상을 하나님의 형태로 체계화하는 일이라고 할 것인데, 바울은 그의 사상을 체계화된 형태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바울의 글들은 조직신학자의 체계적인 논리의 전개가 아니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서신들은 조직적이라기 보다는 비조직적(非組織的)이요, 또 때로는 비논리적(非論理的)이기까지 하다. 바울의 서신들은 대부분 특정한 상황과 문제들에 놓여 있는 교회들에게 특별한 목적으로 특별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바울 신학을 살피기 위해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곱 개 서신(7 undisputed letters)--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이 우선으로 고려의 대상이 된다. 그 다음에는 에베소서,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후서의 내용을 살필 것이다. 목회서신의 바울 저작의 진정성은 상기 세 서신들보다도 더 논란의 대상이 되므로 바울 신학을 논의하는데 거의 고려의 대상에 집어넣기가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는 상당수의 비평주의 학자들이 지적하는 대로, 주요한 바울 서신들과 일관되는 중심 주제들을 이들 목회서신에서는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설교와 전도의 내용들은 바울의 생애를 고찰하는 데에서는 이차적 자료 그러나 때로는 유일한 자료로 고려의 대상이 되었지만, 바울 신학을 다루기 위하여서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바울 행적 부분을 집중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울의 사상과 신학이라고 제시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이러한 방법은 부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가 바울의 설교의 내용과 사상을 표현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표현은 더 이상 바울의 신학이라기 보다는 누가의 신학이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예수의 행적과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네 복음이 예수의 신학이 아니라, 마태, 마가, 누가와 요한의 신학인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2. 바울 신학의 중심주제 논의의 발전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coherent center)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중심주제는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일은 바울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논의의 대상이었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을 주도한 세대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이신칭의(以信稱義)가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라고 받아들여졌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각각 다른 시대적 상황과 신학적 배경에서 바울의 다른 중심 주제들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다음에서는 종교 개혁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 논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렇게 함이 바울의 비체계적, 비조직적 사상과 가르침들을 하나의 체계적, 조직적 신학의 형태를 제시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1) 종교개혁 시대(Reformation) 종교개혁 시대에는 바울 신학의 중심을 그의 반유대주의적(anti-Judaistic) 논의,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이라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의 교리에서 발견하였는데, 이 견해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지지를 받고 있다(E. Käsemann, W.G. Kümmel 등). 로마 카톨릭의 율법주의와 신비주의와의 심각한 갈등과 관련해서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나타나 있는 칭의에 대한 법정적 진술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바울 서신들에 대한 루터(M. Luther, 1483-1546)를 위시한 종교개혁자들의 견해는 주로 이 칭의교리(doctrine of justification)에 의해 좌우되기에 이르렀다. 후대의 루터주의 신학(Lutheran theology)은 바울의 칭의교리와 관련해서 이러한 출발점의 흔적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칼빈(J. Calvin, 1509-1564)에게 있어서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가 바울 서신을 정경되게 하는 주원리가 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교와의 싸움 때문에 바울의 칭의 교리는 칼빈주의 전통에서도 전 복음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2) 튜빙겐 학파(Tübingen School) 튜빙겐학파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바우어(F. C. Baur, 1792-1860)는 기독교 역사를 헤겔(G. W. F. Hegel, 1770-1831)의 철학적 도식에 의해 해석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해서, 바우어는 ‘육’(flesh, 인간적인 것)과 ‘영’(Spirit, 신적인 것) 사이의 반정립(antithesis)에 비추어 바울 신학의 핵심을 설명하려고 했다. 인간은 그 자신의 영(spirit) 안에서 하나님의 영(Spirit)에 참여한다.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유한하고 상대적인 것으로부터 자유하여 절대적인 자유에 도달한다. 이러한 이상주의적 도식을 통하여 기독교는 바우어에 있어서 절대적인 종교가 되고, 바울은 그의 자유와 화해의 교리를 통해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절대적인 합일에 도달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바우어에 따르면, 이러한 바울의 의식이 그 당시 여전히 율법과 배타적인 유대주의에 묶여 있었던 초대 기독교와 대립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갈등은 후에 증대하고 있던 영지주의(Gnosticism)의 압력 아래서 종합적인 보편주의(Synthetic Catholicism)를 통해 해소되게 되고, 이로써 바울은 율법으로부터 분리된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의 옹호자가 되었다. 바우어(Baur)는 바울을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의 추종자로 해석하지 않고--바울은 그의 서신 어느 곳에서도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말하지 않음--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바울에게 계시한 그 사실, 바울 개인의 기적적인 개종으로부터, 이른바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예수의 놀라운 죽음의 사실에 직면하도록 한 그 사실에서 바울을 해석하고 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해 일체의 민족적, 율법주의적 연결로부터 단절된 절대적 진리와 자유의 개념이 바울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되었고, 나아가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특수한 사상들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바우어에 의하면, 결국 바울 자신의 체험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그 자신의 모든 견해를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바울은 그 자신의 교리에 대한 여하한 역사적 논증을 배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 기원에 대한 이러한 재구축은 동시에 바울서신의 진정성에 대한 기준과 나아가서 신약문서들의 연대를 결정하는 기준으로도 작용하였다. 바우어는 바울의 4개의 주요 서신들(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만이 바울에 의하여 저작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서만 그 대조적 주제가 아주 날카롭게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서신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이미 통일성 있는 경향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고 보고, 그 때문에 바우어는 그것들을 후대의 것으로 간주하였다. 리더보스(H. Ridderbos)는, 바우어의 착상이 전적으로 헤겔의 역사관과 ‘성령 사상’(the idea of Spirit)에 지배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프뉴마 사상’(pneuma-idea)은 바울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리더보스는, 게다가 바우어는 바울의 교훈에 대한 배타적인 대조적 해석 때문에 사도행전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초대 기독교에 대한 올바른 길을 스스로 막았을 뿐만 아니라 신약 계시 역사 안에서의 바울의 중요성을 충분하게 이해하는데 도달하지 못하였고, 그의 착상은 전 바울 작품(Corpus Paulinum)에 대한 대폭적인 절단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기독교에 대한 바우어의 비평적이고, 이상주의적-보편주의적 착상이 엄청난 영향을 계속 발휘하고 있으며, 그가 제창한 바울의 교훈과 예수를 지지하고 있는 다른 학자들과의 격리 사상은 후대의 바울 연구의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로 남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3)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 자유주의 신학도 바우어와 마찬가지로 그 출발점을 바울의 성령론에서 취하긴 했지만, 헤겔 철학의 도식에 의해서가 아닌 희랍의 인간론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홀스텐(Holsten), 뤼데만(Lüdemann), 플라이데르(Pfleiderer)와 홀츠만(H. J. Holtzmann) 등이 그 대표적 학자들이다. 종교개혁 신학(Reformation theology)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를 바울 교리의 중심으로 보고, 성화(sanctification), 육과 영 사이의 갈등과 같은 것들을 그것과 밀접하게 연결시킨 반면에,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유대주의로부터 설명해온 재판 법정적 “계열”을 벗어나, 육과 영의 대조에서 그 표현을 발견한다고 하는, 유대주의가 아니라 희랍적-헬레니즘 사상에 기원하는 “윤리적” (또는 신비적-윤리적) 계열을 구별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영”(spirit)은 더 이상 유한 및 인간적인 것의 반정립(antithesis) 식으로 간주되지 않고 오히려 감각적인 것과 정반대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성령”(Spirit)과 “육”(flesh)은 인간 그 자신 안에 실재하는 대립이다. 즉, 인간 안에 내재하는 주요한 합리적인 원리로서 영은 마땅히 그보다 하등한 감각적 본성(사륵스: σάρξ)과 싸워 승리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자신에게 예속시켜야 한다. 그들에 의하면, 이 희랍사상이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화된 형식을 갖게 되었고, 여러 면에서 바울의 복음선포의 두드러지고 중심적인 요소를 이루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한편으로는 강조점이 “윤리적인” 것에 두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립하고 있는 “영과 육의 신비적인 의미”에 두어졌다. 따라서 바울이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with Christ) 또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있는 자로 묘사한 모든 것은 이와같은 의미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이 연합은 일종의 윤리적인 경향을 지닌 신비주의이다. 이것은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객관적인 연합이 아니라 영적이고도 신비적인 연결이다. 그로부터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의미로 이해되어지고 있는 사랑의 생명과 영적인 자유가 넘쳐나올 수 있다. 바울 안에서 다른 사상들--예를 들면, 그의 종말론, 마귀론 및 천사론--이 발견되어지는 것이 사실이나, 이들은 바울의 실제 가르침의 시대적인 틀로 간주되었다. 이 자유주의적 사상의 발달에 있어서 바울의 회심(conversion)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그의 회심으로 바울은 유대적 사상의 도식으로부터 완전히 떠나게 되었고 그 대신, 희랍 사상의 지대한 영향으로 생에 대한 전혀 새로운 자세의 가능성이 그에게 다가왔다. 자유주의 신학의 대가 홀츠만(H.J. Holtzmann)은 다메섹 사건이 바울의 신학적 입장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다메섹 사건을 곧 이어 바울이 그의 객관적인 구원 교리(doctrine of salvation)로 선포할 것의 첫 번째 주관적인 경험으로 해석하였다. 다메섹 사건 이전의 바울은 이미 “윤리적인 파산”(로마서 7장 참고)에 도달하였으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환상을 통하여 이 상태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얻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바울은 율법의 길과는 다른 새로운 구원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기 안에 있는 거만한 바리새인은 정복되었고, 그의 교만한 특권의식은 산산히 부서져 버렸으며, 그대신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붙잡게 되었으며 새로운 능력과 사명이 넘쳐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홀츠만은 많은 유대주의적 사상과 영향이 바울 안에 계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는 희랍적 사상과 유대적 사상의 주목할 만한 결합--바로 그 때문에 종종 이율배반이 일어나기도 하는--이 여러 면에서 바울 신학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여겼다. 즉, 법정적인 것이 윤리적인 것과 병존하고, 인간에 관한 실제적 개념이 이상적 개념과 병존하고, 또한 실제적인 유대주의 종말론이 ‘몸’(body)으로부터 분리하는 ‘혼’(soul)에 관한 희랍적 사상과 병존하고 있다. 홀츠만 이후 홀스텐(Holsten), 뤼데만(H. Lüdemann) 등으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개념은 오래 유지되지는 못하였다. 학자들은 연구를 통하여, 예를 들면, 소위 형이상학적 기독론, 구속적 사건들의 의미, 법정적 만족 교리와 종말론을 홀츠만의 방법으로 영성화시키거나, 혹은 그들을 바울의 참된 종교에 있어서 한낱 이질적인 “신화적인” 요소로 간주해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되었다. 홀츠만과 그 전임자들이 이원론적 희랍 사상의 관점에서 이해한 바울에 있어서의 영과 육의 대조 또한 궁켈(H, Gunkel) 등의 학자들에 의하여 심한 반론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바울의 프뉴마(pneuma) 개념이 희랍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대주의에 기원을 둔 것이라 생각하고, 따라서 육과 영 반정립(反定立)의 합리적-윤리적 성격을 부인했다. 카비쉬(R. Kabisch) 같은 학자는 일찌기(1893년) 바울 신학에 있어서 지배적인 요소로서 종말론(eschatology)에 주목하였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 신학, 특히 후기 유대 묵시문학을 바울 교리 체계의 기원으로 간주했다. 더욱이 홀츠만의 경우에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강조가 점차 바울의 성례전 교훈에 두어졌다. 홀츠만의 영성화 개념과는 대조적으로 실재적인 의미가 강조되었는데, 바울의 성례전을 동방의 신비종교들(mystery religions)로부터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점점 더 종교사학파의 해석방법이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학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의 윤리적-이상주의적 해석을 완전히 부적당한 것으로 거부하고, 대신에 현대인에게는 그대로 이해될 수 없는 바울 신학의 “외래적”(alien) 특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바울의 기독론을 하나의 신학적 구축으로 보고 그것을 바울의 “종교”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바울의 기독론이 당연히 그의 종교는 물론 그의 신학의 가장 중심적인 내용으로 해석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현대 신학의 치열한 논쟁점으로 등장했다. 브레데(W. Wrede)는 바울의 “종교”와 그의 “신학” 사이의 분리를 강하게 거부하였다. 바울의 “신학”은 그의 종교의 적당한 표현이다. 그리고 바울의 신학은 근본적으로 기독론이다. 그것이 바울 신학의 본질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독특하고 새로운 것은 그가 구속 사건들--그리스도의 성육, 죽음, 그리고 부활--을 종교의 근본 토대로 삼은 점이다. 구속사(redemptive history)가 바울 기독교의 골격이다. 브레데의 비평은 그가 바울의 설교에 대하여 자유주의 신학에서보다 훨씬 더 납득할 만한 설명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그는 구속사적 실재에 대한 바울의 기독론을 바울 신학의 본질로 선정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바울의 설교와 자유주의 신학의 예수상(像)의 결속을 깨뜨려 버렸다. 이러한 브레데의 비평이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그가 바울의 신학에 대하여, 말하자면 역사적-석의학적 면에서, 바울의 신학의 핵심을 위대한 그리스도 사건(Christ-event)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무시간적인 종교적-윤리적 진리로 간주한 학자들보다, 훨씬 더 정당한 평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로 말미암아 바울의 설교와 현대주의 신학의 예수 및 그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대한 개념 사이에 틈(gap)은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4) 종교사학적 해석(The Religionsgeschichtliche Interpretation)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바울 서신과 그에 담겨 있는 크리스천 케리그마에 대한 종교사학적 해석이 점점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바울의 신학에 나타난 여러 가지 주요 주제들을 헬라 문학과 헬라 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려는 종전의 입장과는 달리, 이제 학자들은 헬레니즘 시대의 대중적인 종교 개념과 현상, 특별히 그 당시의 종교적 혼합주의, 이른바 동방문화의 영향아래 서방 종교 안에서 일어났던, 곧 신비 종교와 제식을 통해 뚜렷이 드러난 혼합주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들 혼합주의적 종교현상들에 대한 지식은 쿠몬트(Cumont), 로데(Rohde), 디트리히(Dieterich), 라이첸스타인(R. Reitzenstein) 등과 같은 문헌학자와 역사학자들에 의해 크게 증가하였다. 얼마동안 “종교적 바울”(the religious Paul)이 “교리적 바울”(the doctrinal Paul)을 대신하였다. 라이첸스타인(R. Reitzenstein)은 바울을 “가장 위대한 영지주의자”로 규정하고, 하이트뮐러(W. Heitmüller)와 부셑(W. Boussett)은 “제식(祭式)의 바울”(cultic Paul)을 소개하고, 그들의 뒤를 이어 바이넬(H. Weinel)과 다이스만(G. A. Deissmann) 등은 “신비적인 바울”(mystic Paul)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교리적인 핵심이 새로운 방법으로 표면화되었고, 바울의 사상은 “신비적”이거나 “교리적”인 혹은 이 두 가지의 혼합에 중심이 두어졌다. 종교사학파 학자들은 신비종교와 “성례전” 행위, 특별히 기독교 초기 지역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신적인 인물에 대한 신비적 접근 등이 바울의 신학과 “종교” 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는 현상과 관련을 갖고 있다고 보고 부분적으로 그런 입장에서 바울을 해석하려고 하였다. 한동안 학자들은 우선 양자의 연관관계를 전자에서, 이른바 한편으로는 신비종교의 성례전 행위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이 그리스도의 죽음 및 부활과 연결을 시킨 세례와 성찬의 참예에서 찾았다. 또 어떤 학자들은 바울이 세례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시키고 있는 만큼(롬 6:3, 4; 골 2:11ff.), 최소한 세례에서만은 어떤 고정된 일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더욱이 이 “세례적 죽음”은 결례에 대한 유대적 상징으로부터 발전되어온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은 당연히 “헬라주의적 산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리더보스는, “그 어떤 신비종교 안에서도 (a) "세례적“ 의식 안에 그와 같은 죽음의 상징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b) 로마서 6장과 골로새서 2장에서 바울이 세례 그 자체를 죽음에 떨어졌다가 다시 소생하는 것에 대한 상징이나 혹은 성례전 재현 등으로 묘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성례전 분야에서 바울과 신비종교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제식적 행위와의 깊은 연결을 찾는 것은 모두 한갖 환상일 뿐이다. 바울 신학을 신비종교에서 평가하는 종교사학파의 절정점은 바울의 성례전 교리에 대한 호소에서가 아니라, 바울의 기독론에 대한 호소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특별히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초대교회의 “종말론적” 그리스도에 대한 일종의 신비주의적 재해석(mystical reinterpretation)으로 설명하려고 한 부셑(W. Boussett)의 시도를 언급할 만하다. 부셑은 헬라파 교회의 제식 교제(cultus communion)를 고찰함으로써 신비종교의 영향을 더듬어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사학파들은 헬라 제 종교들에 대한 거대한 지식과 용의주도한 사려로 헬라파 교회의 영적인 주(pneumatic Κύριος)의 특성, 특별히 바울의 영적인 주(主)에 대한 특성을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실제 헬라파 교회와 바울에게 있어서 예배를 통하여 신비적(神秘的)인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주(Κύριος)가 무엇보다 앞서 그리스도를 미래의 세계 심판주로 나타내는 팔레스틴 교회의 인자 기독론(the Son-of-Man Christology)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사실로 여겨졌다. 따라서, 종교사학파의 기독론은 종말론적 대신에 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이 그리스도-신비주의(Christ-mysticism)는 높임받으신 주(the exalted Κύριος)에 대한 개인의 강력한 소속감과 유대감으로 발전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높임받으신 주는 크리스천 생활과 윤리의 근본 토대를 형성한다. 종교사학파들은 바울 신학의 배경을 헬라주의 시대의 제 종교체험(Hellenistic religiocity)에서 찾는 일을 계속하였는데, 특별히 이 헬라주의적 종교성은 신비종교에서 그 두드러진 표현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떤 특수한 제식종교에서보다 오히려 바울과 헬레니즘과의 연관을 헬레니즘시대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 특성과 생에 대한 태도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더 영지주의(Gnosticism)가 헬레니즘사상 세기동안 그 주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바울 신학에 대한 이러한 방향 전환을 가져오게 하는데 특별히 책임이 있었던 사람은 고전학자 라이첸스타인(R. Reitzenstein)이다. 라이첸스타인은 우선적으로 헤르메틱 문헌(Hermetic literature), 이른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토스’(Hermes Trismegitos), 즉 이집트 신 토트(Thoth)의 계시로 알려지는 2-3세기경의 사변 종교적 비크리스천적 여러 혼합문헌들에 호소하였다. 여기에는 헬라와 이집트, 동방과 유대적 요소가 서로 혼합을 이루고 있다. 종종 포이만드레스(Poimandres) 혹은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라 불리워지는 헤르메스(Hermes)는 종교적 주제는 물론 점성학적이고 마술적 주제와도 관계가 있는 비밀계시를 준다. 물질에 예속되어 있던 영혼이 영지(gnosis, 지식)를 수단으로하여 하나님께 복귀한다. 라이첸스타인에 따르면, 바울에게서 이 헬라주의적 영지주의의 직접적인 강한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첸스타인은 이에 대한 증거를 바울의 서신 안에 나타나 있는 여러 종류의 영지주의적 용어와 사상들에서 찾는다. 라이첸스타인에 따르면, 바울은 술어상에서 뿐만 아니라 개념과 사상구조에 있어서도 헬레니즘적 신비주의와 영지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바울을 영지주의 사상의 창시자로서가 아닌 가장 위대한 영지주의자로 간주하였다. 그는 이에 대한 증거를 특별히 바울이 그의 지식을 위해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성령에 호소하는 고린도전서 2장에서 찾는다. 라이첸스타인에 의하면, 바울은 역사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생각하였다. 바울의 기독론의 근원이 되었던 것은 나사렛 예수에 관한 전승으로부터 그에게 도달되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한 사람의 영지주의자로서 그가 내적으로 보고 체험했던 바로 그것이다. 라이첸스타인의 과격한 결론들은 거부당하였지만, 바울의 사상 체계가 전(前) 크리스천적 영지주의(pre-Christian Gnosticism)에 영향을 받았다고 본 제안은 바울의 신학과 교리에 대한 종교사학파 해석의 실질적인 토대가 되었으며,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잔존하고 있다. 이 영향은, 바울의 기독론 역시 결정적으로 전(前) 크리스천적 영지주의(pre-Christian Gnosticism), 특히 구원받은 구원자(the redeemed Redeemer)에 대한 이란 신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으면 맺을수록 더욱 과격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5) 종말론적 해석(The Eschatological Interpretation) 홀츠만(H. Holtzmann), 플라이데르(O. Pfleiderer)와 브레데(W. Wrede) 등의 뒤를 이은 슈바이처(A. Schweitzer)는 종교사학파의 노력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철저한 반대 입장을 취하였다. 그는 그의 저서, 「바울 연구사」(Geschichte der Paulinischen Forschung, 1911년)에서 종교사학파의 바울 해석에 비판을 가하였다. 슈바이처는 그의 다른 저서,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Die Mystik des Apostels Paulus, 1930)에서 예수의 생애와 설교에 대한 그 자신의 철저한 종말론적 개념과 바울 신학 사이의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그는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종말론적 신비주의(eschatological mysticism)를 제시했다. 슈바이처는 종교개혁시대 이후로 지배적인 견해로 여겨져왔던 바울의 칭의 교리가 그의 신학의 중심 주제임을 부인했다. 대신에 그는, 종말론적 신비주의의 중심 틀이 바울이 단지 유대주의에 대항하는 논쟁의 무기로 사용했던 랍비적 재판 사상 형태(rabbinic-juridical thought forms)의 두 번째 틀과 대치관계에 놓여있는, 두 개의 틀 체계(two-crater scheme)를 주장했다. 따라서, 슈바이처에게 있어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righteousness of faith)는 종말론적 신비주의를 위한 “잔재”(survival)로 격하되었다. 이러한 방향으로 바울의 교리적 중심을 위한 추구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별적 방법을 위해, 바울의 “전체” 복음이 다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바울의 서신들에서 어떤 부분들은 잘리거나 적어도 “두 번째의(secondary)” 틀로 취급되어져야 했다. 슈바이처는 로마서 1-5장과 갈라디아서의 상당 부분이 바울 신학의 실질적인 본체에 대한 다만 주변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울 신학의 “핵심”(core)에 관한 “랍비적인(유대적인)”(rabbinc) 그리고 “헬레니즘적인” 선별들 사이에서 논의는 계속되어졌다. 슈바이처는 바울 신학의 중심이 그리스도-신비주의(Christ-mysticism)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곧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방도를 의미한다. 이 연합 관계는 헬라주의적 이원론의 의미가 아니라 유대적 종말론적 의미로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바울의 교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나라’(the Kingdom of God)의 임박에 관한 예수의 종말론적 설교에 근거하고 있다. 예수께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임박한) 미래의 문제였으나 바울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즉, 종말론적 상황에 대한 철저한 변경이 일어났다. 종말(ἔσχατον)이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현재 시간이 되었다. 바울은 지금 이 종말의 침투가 세상의 끝날에만 기대될 수 있는 죽은 자의 부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세상의 심판 등과 같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과 어떻게 관련되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슈바이처에 의하면, 바울은 (그리스도 부활의) “이미”(already)와 (최후의 완성으로부터의) “아직”(not yet) 사이에 있는 이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룩의 묵시」(the apocalypse of Baruch)와 「제4에스라서」에 나타나 있는 종말론적 도식과 결탁하고, 예수의 기대와는 다르게 메시아적 왕국이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계시 이전에 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택함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미 부활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존재 양식”(mode of being of the resurrection)에 참예한 자들이다. 이 “신비주의”는 가능한한 실재론적으로 취급되어져야 한다. 슈바이처의 “신비주의”는 감정적인, 내적인, 혹은 영적인 신비주의가 아니고 오히려 “사실에 대한 객관적 신비주의”(objective mysticism of facts)이다. 그리스도의 새로운 실체에 참예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세례에 의하여 일어난다. 택함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이 그 원천이 되는 “연대 인격”(joint- personality)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후로 행동하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뜻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주요한 사상은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에 놓여 있다. 바울의 신비주의는 그 성격상 헬라적인 것이 아니고 , 또는 실제에 대한 상징적으로 표현된 체험도 아니었고, 오히려 그것은 사실적인 것이고 실제론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작용에 있어서 그것은 새로운 영적인 유형(pneumatic corporeality)이다. 이것은 아주 은밀한 가운데서, 하나의 내적이고도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서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는 어떤 사람이 성례전 사건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누리게 되는 실제를 가리킨다. 슈바이처는 바울 서신들 중에 스스로 바울 저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몇몇 서신들을 그의 사상 체계를 위하여 제외시켰다. 즉, 그는 바울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곱 서신만으로 그의 논리를 주장했다. 슈바이처가 데살로니가후서를 부인한 이유는 거기에 예수의 재림이 아주 임박하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는 자들을 반대하는 다른 교훈들이 나타나 있으며 그의 사상 구조와는 맞지 않는 다른 종말론이 발전되어 있기 때문이다. 슈바이처는 또한 독특한 기독론적 선언을 하고 있는 골로새서와 에베소서도 제외시켰다. 그러나, 슈바이처에 대한 주요 비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being in Christ)와 성례전에 대한 그의 실재론적(naturhaft) 견해에 있다. 또한, 그가 사용하는 여러 유대적 종말론 도식들 역시 지나치게 인위적이며,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그가 만드는 예수와 바울 사이의 반정립 관계 역시 유지되어질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위에, 슈바이처가 특별히 그리스도의 신적 인격과 우주적 의미와 관련을 갖고 있는 바울의 기독론적 선언에 대하여 올바른 취급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 유래하는 바울의 선험적-기독론적 신비주의(transcendent-Christological mysticism)의 전부가 (그리스도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와 바울의 종말론적 기대를 한갖 환상으로 간주하는) 슈바이처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그가 그것의 본질적, 영적인 내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신비적 사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점이 슈바이처 사상 체계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성을 부인한 그의 신비주의적 종말론은 사상누각(砂上樓閣)밖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6) 새로운 발전 혹은 시각들(New Development or Perspectives)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리더보스에 의하면, 자유주의 해석이 바울 신학의 연구에 가장 작은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주의에 대한 브레데(Wrede)의 비판, 곧 “구속사적 사건에 대한 기독론”을 바울 신학의 골격으로 본 브레데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특히 신약의 전체 케리그마(kerygma)에 대한 종말론적 접근이 현재의 바울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바울이 선포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오심에서 시작되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잠정적인 절정(a provisional climax)에 도달한 종말론적 구속 사건에 대한 해명뿐이다. 바울 신학은, 사람들이 바울이 자신의 설교에 대하여 보여준 형식과 그 표현 방법에 관하여 아무리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종말론적 기원에서 그 출발점과 동기를 발견하게 된다. 종말론적 접근과 관련해서 볼 때 종교사학파의 해석은 신약학의 한 분파에서만 그 지배적 영향을 계속 미치고 있을 뿐이다. 이 영향은 불트만(R. Bultmann)과 그의 후학들에게 가장 뚜렷이 드러나 있다. 불트만은 바울에 대한 바우어(F.C. Baur)의 이상주의적 해석, 자유주의 학파의 윤리적 해석에 맞서서 바울의 설교와 기독론에 역사적-종말론적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의 사상세계가 영지주의(Gnosticism) 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면에서 불트만(R. Bultmann)과 종교사학파(School of History-Religions), 특히 라이첸스타인(Reitzenstein)과의 연결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영지주의사상이 바울의 어떤 사상 기원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바울과 영지주의 사상에 공통하는 인간 실존의 이해에도 특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본다. 불트만에게 “육”(flesh)은 인간이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성령”(Spirit)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인간이 처분할 수 있는 가시적이고 자명한 것이다. 불트만은 그가 바울 신학의 핵심으로 보고 있는, 이러한 육과 성령의 반정립(the flesh-Spirit antithesis)에 대한 해석의 면에서, 성령을 절대적이고 초월적으로 여기는 바우어(Baur)에게 근접한다. 그러나, 바우어에게는 헤겔의 이상주의(Hegelian idealism)가 자리잡고 있는 반면에, 불트만에게는 하이데거의 실존주의(Heideggerian existentialism)가 자리잡고 있다. 즉 불트만에게는 육과 성령 사이의 실제적인 결단의 문제가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불트만에게 있어서 바울의 기독론의 종교사적 배경은 더 이상 죽었다가 다시 소생하는 신적 인물에 대한 제식 신화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영지주의 신화론에서 한 구원자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는 절대자의 선재적 아들(the pre-existent Son of the Most High)로서 참된 지식인 노시스(γνώσις)를 전달하기 위해서 빛의 세계로부터 하강하여, 죽은 자에게 생명의 불꽃을 붙이고 그들을 죽음에서 소생시켜 자기에게로 인도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 하늘의 구원자는 친히 원수의 권세 아래로 내려가야 하며, 인간의 형체를 입어 인정받을 수 없는 자리로 내려가야만 한다. 그러나, 먼저 그 자신 그가 입은 지상적 존재의 궁핍과 곤고로부터 구원되어져야 한다. 불트만은 라이첸스타인에 의해 이란의 구속비밀(the Iranian mystery of redemption)이라고 불리워지는 이 “구원받은 구원자”(the redeemed Redeemer)에 대한 신화가 바울 기독론의 배경을 이루었다고 본다. 그는 이것이 특히 로마서 5장, 고린도전서 15장, 또한 빌립보서 2장 6-11절과 에베소서 4장 8-10절에서 바울이 인용한 “그리스도 찬송”(Christ-hymn), 그리고 고린도전서 2장 8절과 같은 구절에서 명백하게 보여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베커(J. Christiaan Beker)는 불트만이 바울 사상의 여러 “핵심들”(cores) 사이의 난국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평가한다. 불트만은 바울의 신학(theology)과 그의 인간론(anthropology)을 서로 관련시킴으로써 바울 사상의 상황성(contingency)을 지적했다. 케리그마(kerygma)와 그의 신학적 표현의 구분은 불트만으로 하여금 ‘케리그마가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케 했다. 왜냐하면, ‘바울의 신학적 생각은 믿음 자체에 내재해 있는 지식(knowledge)을 의식적인 앎(knowing)의 선명함으로 끌어올리는 것’이고, 바울의 ‘기본적 입장은 이론적 사상의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커는, 믿음이 새로운 자기 이해의 방법으로 반응하는 설교 행위로서의 케리그마에 대한 불트만의 강조는 케리그마의 내용을 무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바울이 전혀 의도한 적이 없는, 설교 행위와 내용 사이의 케리그마에 있어서 분열을 조장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불트만의 뒤를 이어 헨첸(E. Haenchen), 케제만(E. Käsemann), 슈미탈(W. Schmithals), 푸흐(E. Fuchs), 보른캄(G. Bornkamm), 빌하우어(P. Vielhauer)와 브란덴부르거(E. Brandenburger) 등이 바울 서신에 있어서 영지주의의 영향을 주장한다. 다드(C.H. Dodd)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역시 종말론적 구조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하며, 종말론적 구조로부터 이 사건은 바울의 설교 안에 나타난 그 특수한 의미를 갖게 된다. 다드는 바울의 설교가 미래에 대한 언급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영적 성장 가운데서,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구원의 현재가 점점 더 그의 설교의 종말론적 특성을 좌우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드는 바울의 종말론이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라고 보고 있다. 불트만(Bultmann)은 다드(Dodd)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바울의 종말론에 나타난 미래적 차원의 본질적인 의미를 인정한다. 그는 바울이 종말론을 그의 인간론(anthropology)에 기초하여 해석한다고 보고 있다. 즉, 바울에게 있어서 종말론적 현재와 미래는 인간 실존에 대한 특별한 이해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불트만에 따르면, 바울은 확실히 미래의 부활, 심판, 영광 등에 대한 묵시적 생각을 버리지 않으나, 참된 구원은 성령 안에 있는 의와 자유와 기쁨이다. 이리하여 구원의 이념은 개별적 인간에게로 지향되어진다. 한편으로 이 구원은 이미 현재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여전히 미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역사성”을 바탕으로 하여 실존적 결단의 방법을 통해서만 획득되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트만에게, 바울 신학의 참된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종말론적 개념들이 아니고 오히려 이 종말론적 개념 안에 나타난 인간학적 통찰이다. 세상의 마지막에 대한 사상이 아닌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와 말씀하심에 실존적으로 직면하게 되어지는 그 태도가 곧 바울의 종말론의 “비신화화된 본질”(the demythologized substance)이다. 이러한 불트만의 해석에 있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졌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앞으로 일어날 것으로 예기되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종말론적 구속사의 문제는 있을 수 없다. 그는 그와같은 사상은 역사적 사건들의 진로에 따라 이미 오래전에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으로 판명된 역사관, 즉 세계의 끝이 곧 도래한다는 그런 역사관(Naherwartung)을 전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불트만은, 바울의 위대한 점은 종말론을 그의 인간학으로부터 해석함으로써, 와야될 재림(parousia)의 실패로 야기되어진 역사와 종말론의 문제에 이미 실제적인 해결책을 주었다는 점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이러한 불트만의 비신화화된 해석이 바울 신학의 내용을 불완전하게 취급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불트만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인간의 범주 아래(sub specie homis) 두고 있다. 피츠마이어는, 불트만이 바울의 신학을 하나의 인간론으로 격하시킨 것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역할을 축소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즉, 불트만은 예수의 고난과 부활이 비역사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그리스도-사건(Christ-events)을 비신화화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존적인 믿음의 결단이 요구되는 각 개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역할도 구원사의 집합적이고 우주론적인 차원 안에서 그의 역할을 무시하는데 이르기까지 축소시켰다. 피츠마이어는, 불트만이 이렇게 그리스도의 역할을 축소시킨 것은 바울 신학의 “만족스러운 의미,” 인간 구속에 있어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국면”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며 또한 바울의 가르침을 현상학적인 용어로 개작하려는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리더보스는, 불트만에 대한 여러 가지 비평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석이 영향을 주고 있는 이유로 ‘불트만이 여전히 바울 신학의 핵심을 하나님에 대한 무시간적인 개념이나, 혹은 종교적 감정에 대한 새로운 자각 등에서 찾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신적인 구속사역의 결정적인 의미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비록 불트만이 그의 실존주의적 해석으로 복음의 내용을 축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적 노선을 따를 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바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제까지 여러 학파들의 주장들을 살펴보았는데, 그러면 이들에 일관적으로 흐르는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에 대한 맥이 있는가? 있으면 무엇인가? 바울 신학 연구의 역사에서 한 가지 특기할 일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바울 신학의 주제를 구속사적 종말론적 특성(redemptive-historical eschatological character)에서 찾으려고 해왔다는 것이다. 리더보스는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필자도 이에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바울의 종말론에 대한 정당하고 적절한 해석은 무엇인가? 쿨만(O. Cullmann)의 저서, 「그리스도와 시간」(Christ and Time)을 통해 이미 잘 알려진 구속사적 해석(redemptive-historical interpretation)은 “일관된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이 신약 성경에 나타나 있는 “임박한 미래에 대한 기대”(Naherwartung)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는 일방적인 미래 지향적 해석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제공해 준다. 이 해석은 초대교회가 이 성취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가 실현되지 않고 있을 때에도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지적해 준다. 이런 의미에서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의 진리가 이 해석에서 충분히 인정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이 해석은 바울의 설교에 나타나 있는 계속적인 미래 기대(continuing future expectation)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파악하여 바울의 종말론의 핵심적인 구성요소인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상호의존에 대하여 충분한 강조점을 할애하고 있다. 현금(現今)에는 바울의 사상이 조직적인 교리의 핵심 용어로 파악될 수 없음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최근의 학자들은 바울의 사상을 협소한 “개념”으로 정의하는 것에 반대하며, 잘못된 이분법들이 극복되어지는 보다 넓고 포괄적인 틀(framework)로 정의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종종 애매모호함을 조장하고 새롭고 창의적인 통찰은 거의 줄 수 없었다. 바울의 사상을 규정하고 명백히 하기 위하여 사용된 여러 가지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용어들을 일견해볼 때 이것이 잘 드러나 있다. 바울의 사상은 “케리그마”(kerygma) “핵심”(core) “필수”(essence), “바울주의”(Paulinism), “신비주의”(mysticism), "종말론적 참여“(eschatological participation), "믿음의 가르침”(Glaubenslehre), “가르침 계획”(Lehrplan), “주제와 시각”(motifs and perspective, L. Keck), “종교의 양식”(pattern of religion, E.P. Sanders), “공동으로 내재하는 양식들과 근본적인 교리들”(co-inherent patterns and fundamental doctrines, Whitley), “일관된 사상”(coherent thought, E.P. Sanders) 등으로 기술되고 있다. 바울 사상의 중심(center, Mitte)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H.-D. Wendland, W.G. Kümmel, E. Käsemann) 혹은 “성례전의 참예”(sacramental participation, A. Schweitzer, W.D. Davies) 혹은 이 양자 모두(E.P. Sanders)라고 주장된다. 다른 학자들은 “에베소서에 있는 진수”(quintessence in Ephesians, F.F. Bruce), “부활하신 주님과 못박히신 메시아, 예수와의 일치”(the identity of the risen Lord with the crucified Messiah, Jesus, N.A. Dahl)가 바울 사상의 중심이라고 제시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바울을 사상가로 보는 것 자체를 부인한다. 다이스만(G.A. Deissmann)은 바울을 “박학한 주석가요 면밀히 생각하는 학자라기보다는 기도의 사람”이라고 보았다. 베커(J. Christiaan Beker)는, 바울 신학에 일관된 중심(center)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으나 이 중심을 보다 분명하게 기술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완성된 사상 구조와 제한된 개념 단위로 조직적이고 외연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습관은, 학자들이 “합리적인” 바울을 싫어하여 “교리”(doctrine)를 반대하고 “신비주의”(mysticism)를 제안하듯이, 잘못된 대안들을 제시하여왔다. 베커는 바울의 설교에 특정한 상황(contingency)과 일관성 있는 중심(coherent center) 둘 다 있는 것을 인식하였다. 베커는 바울의 “일관성 있는 중심”(coherent center)을 ‘원초적 경험(바울의 소명)이 독특한 방법으로 언어에 가져다 준’ “상징적 구조”(symbolic structure)로 보았다. 그 상징적 구조는 바울이 “그리스도-사건”(Christ-event)을 표현한 언어를 의미하는데, 그 언어는, 바울에게는, 그가 살았고 생각했던 유대교의 묵시적 언어이다. 베커는 바울의 상황적 석의(釋義)의 성격이, 거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복음의 상황적 해석이 암시적으로 혹은 명시적으로 “하나님의 임박한 우주적 승리”(imminent cosmic triumph of God)를 가리키고 있는, 그의 “묵시적 핵심”(apocalyptic core)에 의하여 형상화된다고 주장한다. 베커에 의하면, 그리스도-사건(Christ-event) 이후, 임박한 하나님의 묵시적 승리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역사 안에서 이미 예상되는 현실로 드러나 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때”(고전 15:28 참고) 영광 중에 공적으로 나타나실 것을 예시하는 것이다. 필자는 베커가 지적한 대로, 바울 서신의 대부분이 특정한 상황 가운데 있는 교회에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또한 바울의 중심 주제를 너무나 좁게 규정하여 모든 서신에 일관된 중심으로 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도 받아들인다. 그러나 필자는, 베커가 주장하는 대로 그리스도의 사건(Christ-event)을 통한 하나님의 승리가 바울 서신 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지만, “하나님의 승리”라는 “묵시적 완성” 또는 “상징적 구조”가 바울의 중심 주제라고 하기에는 바울의 선호하는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면에서, 필자는 피츠마이어의 과도한 비난은 아니더라도, 그의 견해에 대체로 동조한다. 피츠마이어는 ‘바울 신학에 대한 열쇠(핵심)는 사도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무엇을 거듭 진술했는가에 비추어 구성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울이 거듭 선포하는 것이 “십자가의 도”로 대표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며,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원론의 중심에 놓이며, 이밖에 바울의 모든 가르침은 이 그리스도 중심적 구원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까지 바울 신학(사상 혹은 설교)의 중심 주제가 무엇인가 살펴보았지만, 아직까지 학자들 간에 일치된 결론은 없다. 그러나, 필자는 종교개혁이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주장되어온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를 바울 전 서신(전 서신은 고사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일곱 서신들만이라도)의 주제라고 하기에는 이 칭의의 교리는 너무 협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바우어(F.C. Baur)와 그의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육”과 “영”의 반정립 관계도 바울 신학의 주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한 구석에 있다고 본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다시 오심을 믿지 않던 슈바이처가 주장한 그리스도-신비주의(Christ-mysticism)나 종말론적 신비주의(eschatological mysticism)도 바울 서신의 한 단면은 될 수 있지만 중심 주제라고 하기는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바울 신학의 중심에는 분명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놓여 있다. 그러나, 바울이 외치고자 한 것은 단순히 죽음 당하시고 부활하시고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목적인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즉, 바울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에 관한 기독론(基督論)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론(救援論)과 그리스도를 기대하는 종말론(終末論)의 복합적인 조화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에 관한 고찰이 필요한 것은 이로써 바울의 서신과 그에 담겨 있는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 10 장 바울 신학(1): 하나님(Pauline Theology 1: God) 1. 서론 성부 하나님은 바울 서신의 중심 주제는 아니나, 바울 신학에 나타난 주제들의 고찰을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함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아들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바울의 하나님 이해에 있어서 특별한 강조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모든 믿는 자들의 아버지 되심을 강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르시온파(Marcionites)와 영지주의자들(Gnostics)은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은 부인하면서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심만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시는 신약의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는 구약의 하나님(데미우르고스)과 다르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2. 하나님은 누구신가? (1) 유일하신 하나님 (성경: 고전 8:4-6; 또한 엡 4:6) 고전 8:4, 6...“...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엡 4:6...“하나님은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바울의 유일신(唯一神) 사상(monotheism)은 그가 유대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의 다신(多神) 사상에 그가 물들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어떤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그가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사상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바울의 유일하신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기도 하시다. (2) 아버지 하나님 (성경: 롬 1:7, 8:15; 고전 1:3, 8:6; 고후 1:2-3; 갈 1:1, 3-4; 빌 1:2; 살전 1:1, 3; 몬 1:3; 또한 엡 1:2-3, 2:18, 4:6; 골 1:2-3, 19; 살후 1:1-2, 딤전 1:2; 딤후 1:2; 딛 1:4) 롬 1:7...“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롬 8: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칭함은 바울의 전 서신(7 undisputed letters and 6 disputed letters)에 걸쳐 예외 없이 인사말에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바울은 하나님과 성도들이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긴밀한 관계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Abba Father: αββα ὁ πατήρ, 롬 8:15)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롬 1:3-4...“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8: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엡 1:3...“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골 1:3 참조) 하나님은 성도들의 아버지이시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되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들 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이다(롬 8:29). (3) 창조의 하나님 (성경: 롬 9:20; 고전 8:6; 또한 엡 3:9; 골 1:15-16) 롬 9:20...“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엡 3: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9장 20절에 창조주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그 지음 받아진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하는 것은 이사야서 29장 16절과 45장 9절의 말씀과 예레미야서 18장 6절에서 그 예를 빌려온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부터 만드신 분(Molder, Maker)으로서 창세기 1장의 전승(‘말씀으로 창조하심’: ex nihilo creatio, 창 1:26-27 참고)보다는 창세기 2장의 전승(‘흙으로 지으심’, 창 2:7 참고)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바울은 예수의 아버지(골 1:14-15 참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언급함으로써 영지주의자들과는 구분됨을 나타내고 있다. (4) 구주 하나님 (성경: 딤전 1:1, 2:3, 4:10 참조; 딛 1:3, 2:10, 3:4, 2:13 참조) 딤전 1: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딛 1:3...“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딛 2: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우선, “우리 구주 하나님”(God our Savior)은 신약성경에서는 누가복음 1장 47절에 마리아가 복 중에 있는 예수로 인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 가운데 나오는 표현(God my Savior, 아직은 구약적인 의미)을 제외하고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만 나온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구원자(Savior)라고 표현한 곳은 여러 군데(삼하 22:3; 시편 106:21; 이사야 43:3, 45:15, 45:21; 호 13:4; “하나님은 구원”이라고 한 것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음)이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살 동안에 곤경이나 적의 손으로부터, 또는 가난으로부터의 건지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만 나오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란 표현은 바울의 것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디도서 2장 13절에서는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사실, 이 구절은 “크신 하나님과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라고도 번역할 수 있음)라고 함으로써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크신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예수를 일관되게 “하나님의 아들”로 증언하는 바울의 신학 사상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오히려 요한복음 20장 28절에서 도마의 입을 빌어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하고, 또한 요한계시록 1장 8절에서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고 진술한 요한의 그리스도관과 가깝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연결하여서도 “구주”(Savior) 혹은 “구원하는 자”라는 표현 자체를 목회서신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논란이 되지 않는 서신들 중에는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 유일하게 “구원하는 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그 외에 목회서신 밖에서 사용된 또 한 군데는 에베소서 5장 23절뿐이다. 목회서신 내에서는 디모데후서 1장 10절과 디도서 3장 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라고 칭하고 있다. 바울 서신 밖의 신약에서는 베드로후서(1:1, 11, 2:20, 3:2, 18)와 요한1서(4:14)에서 사용되었다. 3. 하나님의 계획 (1) 인간구원 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은 첫째로 하나님의 때가 이르매 인간에게 예수를 보내심이다. 엡 1:7-10...“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에게 보내시는 계획을 세우셨는가? 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인간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이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시고 인간을 높이심 (성경: 엡 1:20-23, 2:3-7) 엡 2:5-6...“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와 허물을 대신 감당하시고 죽으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오른 편에 앉히시고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케 하셨다 (엡 1:20-23).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된 인간 또한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와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실” 계획을 갖고 계신다(엡 2:6). (3) 예수 그리스도 재림의 계획 (성경: 살전 4:13-17; 골 3:3-4; 고전 15:51-52) 살전 4:16-17...“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골 3:3-4...“이는 너희가 이미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내심으로 인간이 영혼으로 뿐만 아니라 몸으로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을 계획하시고 약속하신다. 고전 15:51-52...“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바울의 신학에서 인간의 부활은 영혼만으로의 부활이 아니라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body)으로의 온전한 부활이다. (4) 심판의 계획 (성경: 살후 1:6-9) 살후 1:7-9...“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믿는 사람들에게는 온전한 구원과 몸과 영혼으로영원히 사는 것을 의미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 - 영원한 죽음(eternal dying)을 의미한다. 제 11 장 바울 신학(2): 인간 (Pauline Theology 2: Humankind) 1. 그리스도 이전의 인간 (1) 인간의 구성 요소 바울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인간을 묘사한 것 중의 하나는 인간의 구성이다. 인간이 모세 율법을 준수할 수 없었던 것은 부분적으로 육적인 인간의 상태에 기인한다. 1) 몸(body: σώμα) ‘몸’(body: σώμα)의 일차적 의미는 인간의 지체를 구성하는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생물학적인 부분이다(롬 12:4; 고전 12:14-26). 몸이 살, 피, 뼈를 의미할 때도 있지만(갈 1:16; 고전 13:3; 고후 4:10, 10:10; 롬 1:24), 인간 그 자체, 즉 자아(self)를 의미하기도 한다(빌 1:20; 롬 6:12-13; 고전 6:15, 12:27 참고). 이 단어는 전체적이고, 복합적이고,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인간, 특히 인간이 어떤 사건이 발생할 때의 주체이거나 혹은 자기 자신의 행동의 객체일 때의 인간을 지칭한다(고전 9:27; 롬 6:12-13, 8:13, 12:1). 바울이 소마(σώμα)를 몸의 ‘사욕’(롬 6:12, 8:13)으로, ‘죄의 몸’(롬 6:6)으로, ‘낮은 몸’(빌 3:21)으로, 혹은 ‘죄 있는 육신’(롬 8:3)으로 말하여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할 때, 그는 사실상 죄와 같은 어떤 세력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롬 7:14, 18, 23, 8:13). 이 경우에 ‘몸’은 ‘죄의 지배 하에 있는 자아’(롬 7:23)이며, 이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의 인간 상태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라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찬가지이다. 2) 육(flesh: σάρξ) ‘육’(flesh: σάρξ)은 육체적 몸을 의미한다. ‘혈과 육’(blood and flesh)은 인간을 지칭하며(갈 1:16; 고전 15:50), 또한 본성적인 나약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육’(σάρξ)만이 전체 인간, 인간 본성을 지칭한다(롬 6:19). 그러나, 바울은 이 ‘육’(σάρξ)을 자연적이고, 물질적이고, 보이는 인간 존재, 약하고, 지상에 얽매인, 그 자체로 내버려진 인간 피조물의 뜻으로 더욱 즐겨 사용한다(고전 1:29; 롬 8:5, 8). 바울은 자아와 ‘육’(σάρξ)을 동일시하고 있으며, 그들 안에서 어떤 선한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롬 7:18). 이 ‘육’의 개념은 ‘성령’과의 대조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바울은 지상적 경향들에 예속되어 있는 인간과 하나님의 성령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인간을 대조한다(롬 8:4-9, 13; 갈 3:3, 4:29). 3) 혼(soul: ψυχή) ‘혼’(soul: ψυχή)은 생물학적 활동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원리일 뿐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 ‘살아있는 사람’을 가리킨다(히브리어 네페쉬; 고전 15:45). ‘혼’은 생동력, 의식, 지성과 의지를 나타낸다(살전 2:8; 빌 2:30; 고후 12:15; 롬 11:3, 16:4). 혼이 ‘자아’ 이상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롬 2:9, 13:1; 고후 1:23) ‘자아의 의식적이고 목적이 있는 생동력’을 의미한다. 바울이 ‘혼’(soul: ψυχή)을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으나, 이는 육(flesh: σάρξ)의 생명이지 성령에 의해 지배되는 생명은 아니다. 따라서 바울은 하나님의 영이 없이 사는 사람을 ‘육에 속한’(ψυχικός) 사람이라고 부른다(고전 2:14). 4) 영(spirit: πνεύμα) ‘영’(spirit: πνεύμα)은 ‘몸’(σώμα)과 ‘혼’(soul: ψυχή)과 결합하여 전체 인간을 가리킨다(살전 5:23 참고). ‘영’(spirit: πνεύμα)은 인식력과 의지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 자체로 특히 하나님의 영을 받기에 적합한 측면을 가리킨다. 그러나, ‘영’(spirit: πνεύμα)은 단순히 인칭대명사의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롬 1:9; 고후 2:13, 7:13; 갈 6:18; 몬 25). 5) 정신/마음(thought, mind: νούς와 καρδία) 바울에게 ‘정신 혹은 마음’(νούς)은 인식하고 판단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을 묘사한다. 이 용어(νούς)는 지적인 이해를 하고, 계획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가리킨다(롬 14:5; 고전 1:10, 2:16). 이 단어(νούς)는 피조물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알려진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다(롬 1:20). 바울은 누스(νούς)와 카르디아(καρδία)를 아무 구별없이 사용한다. 미세한 차이를 말하자면, 카르디아(καρδία)는 지성적이고 계획하는 자아의 보다 반응적이고 감성적인 반응들을 가리킨다. 카르디아(καρδία)는 “사랑하고”(고후 7:3, 8:16), “근심하며”(롬 9:2), “계획하고”(고전 4:5), “방종하고”(롬 1:24), “괴로워한다”(고후 2:4). 카르디아(καρδία)는 “의심하고” 또한 “믿기도 하고”(롬 10:6-10), “완고해지고”(고후 3:14), “회개하지 않는다”(롬 2:5). (2) 죄란 무엇인가? (성경: 롬 3:9, 23) 바울은 죄를 나타내는 용어 가운데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라는 단어를 62회에 걸쳐 사용했는데, 그 중 48회는 로마서에서, 나머지 14회는 다른 서신들에서 사용하였다(빌립보서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음).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바울은 죄의 보편성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죄는 특정인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들이 죄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로마서 3장 9절에서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무론하고 다 죄 아래 있음을 선포한 바울은 3장 23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의 문제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3)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성경: 롬 5:12-21) 롬 5:12...“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므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대로(창 2:17) 아담과 그의 모든 후손들이 죄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죄를 죄로 깨닫게 하는 율법(롬 3:20)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롬 5:13). 바클레이는 로마서 5장 12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아담의 범죄함이 그 성향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서 그들이 죄인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연대 책임 논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실제로 첫 사람 안에서 죄를 지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5장 17-18절에 바울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왕노릇하였은즉 ...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고 말함에 있다. 바클레이의 논리대로라면, 한 사람 아담의 범죄 행위에 모든 사람이 연대하여 범죄한 것같이, 한 사람 예수의 의의 행위에 모든 사람이 연대하여 의의 행위를 하여 모든 사람이 의롭다 여김을 받아야 할 것인데 바울의 논지는 그렇지가 않다. 한 사람의 범죄 행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롬 5:12), 다른 한 사람의 의의 행위로 (그의 의의 행위를 믿고 바라보는)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이다(롬 8:18). 바울이 12절의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에서 19절의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라고 그 표현 상의 차이를 둔 것은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에 그리스도의 의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죄인의 범주에서 제외되어 의롭다 여김을 받으므로, 죄를 지은 사람은 “모든”인데 죄인으로 규정되어지는 사람은 “많은”이다. (4) 죄와 율법 (성경: 롬 3:20, 5:13, 20, 7:7-17; 갈 3:22) 롬 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7: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바울에게 있어서 율법의 긍정적인 면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롬 3:20). 그러나, 긍정적인 면과 대치되는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이는 율법이 오히려 죄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탐심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하며 생명에 이르게 할 율법이(롬 7:10) 오히려 죽음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되었다. 죄를 억제하고 금하기 위하여 마련된 율법이 죄를 유발시키는 것이 되는데, 이는 금지된 것이 치명적인 유혹이 되기 때문이다. 바클레이는 이를 ‘우주적인 딜렘마’라고 불렀다. 인간의 마음이 금지된 것을 해보고 싶어하는 것은 경험상 사실이다. 또 율법은 어떤 것을 금지함으로써 그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유발시킨다. 따라서 이중적인 의미에서 죄와 율법은 뒤엉켜 관련을 맺고 있다. 2. 그리스도 안의 인간 (1) 새 사람 (성경: 롬 6:4, 11; 고후 5:17; 갈 6:15; 또한 엡 2:15, 4:22-24; 골 3:9-10)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엡 4:22-24...“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동이 인간을 하나님과 새롭게 연합시켰다.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은 자연인 그대로인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갔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그는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 된다(고후 5:17). 그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습을 따라가는 옛 사람(old man)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new man)이 된다는 것이다(엡 4:22-24). (2) 성례전(Sacrament) 1) 세례(Baptism) (성경: 롬 6:3-11, 10:9; 고전 10:1-2, 12:3; 갈 3:26-27; 또한 엡 4:5; 골 2:11-12) 롬 6:3-4...“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3:26-27...“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골 2: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바울에게 있어서 세례의 의미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는 죽는 자요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되는 것이다(롬 6:11). 세례에서 우리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예하고, 세례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갈라져 살았던 옛 생활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의 새로움으로 부활한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 그리스도의 사람, 곧 새 사람이 되는 것이 세례를 통하여 되어진다고 했는데, 여기서 의미하는 세례는 물 세례라기 보다는 믿음과 주어지는 성령 세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갈 3:2, 5). 의식적(儀式的)으로 행하는 물세례가 주로 인간의 서원을 강조한 형식적인 행위라면,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 성도와의 내적 연합을 강조하는 실질적 세례이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신비적 연합’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이다(롬 6:3,4; 골 2:12).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례와 성찬을 통한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이 종교사학파들이 주장하는 대로 바울 신학의 중심은 아니라고 본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함으로써 세례(물론, 여기서의 의미는 ‘물 세례’임)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명백하게 했다. 세례를 받은 자는 구원의 인침을 받은 것이며(고후 1:22; 엡 4:30) 동시에 그리스도 교회의 지체가 된다(고전 12:26-27).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는 단 한 번으로 족하다(엡 4:5).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믿음은 변덕스러울지라도 세례에서 확인된 하나님의 신실성(信實性, faithfulness)은 불변하며 확실하기에 세례는 오직 한 번만 받으면 된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신실성은 계속 갱신이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신실성은 갱신이 필요 없다. 2) 성찬(Eucharist) (성경: 고전 10:3-4, 10:16-17, 20-21, 11:23-29) 고전 10:3-4...“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16-17...“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 11:23-26...“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모세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고전 10:2)을 (물) 세례에 비유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4절에서 모세의 광야 사건--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신--을 성찬의 모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때에도 “신령한 식물”(만나)과 “신령한 음료”(반석의 물)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성만찬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고전 10:16).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며 한 몸임을 확인하는 의식이다. 바울의 성만찬은 “주께 받은 것”이라고 했는데, 주께로부터 직접 전수받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크리스천 집단을 통하여 간접적으로--예를 들어, 안디옥 교회에서의 예식을 통하여--전해 받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바울은 이 성찬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는 문제에 관하여 말하는 중간에(고전 10:16-22) 그리고 고린도 교인들의 공동체 식사가 성만찬과 관련되면서 생겨 나게 된 남용에 대한 비판의 한 부분으로 언급하고 있다. 성만찬(Lord's Supper)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피와 살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연합하는 예식이다(고전 11:24-25).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고전 11:24-25) 선포하는(고전 11:26)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활력을 회복하여주고 사명을 생각나게 한다. 또한 성만찬은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행하되(“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Christ's second coming, parousia)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종말론적 성격을 갖고 있다. 제 12 장 바울 신학(3): 계시 (Pauline Theology 3: Apocalypse) 1. 서론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계시”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통한 인간 구원계획을 나타내심이다.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비밀의 계시”, “비밀”은 그리스도의 오시기 전에는 숨겨져 있었던 것인데,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차매(갈 4:4; 또한 엡 1:9), 즉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바울이 사도로서 선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계시”는 구원론적이요 또한 동시에 종말론적이라고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자기 계시 (성경: 롬 1:19-20) 롬 1:19...“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습을 만물에 두셔서 인간은 만물을 살펴봄으로써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행위이며, 따라서 사람이 볼 눈과 이해할 수 있는 마음만 갖고 있다면 그가 지으신 만물 중 어느 것에서나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3. 구원, 비밀의 계시 (성경: 롬 16:25-26; 고전 2:7; 또한 엡 1:9, 3:2-4; 골 1:26, 2:2, 3; 딛 1:2, 3; 딤후 1:9, 10) 롬 16:25-26...“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고전 2: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엡 1:9...“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바울의 서신에서 “비밀”(μυστήριον)은 고대 밀의종교(密儀宗敎)에서 핵심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알려지는” 어떤 비밀스러운 가르침의 의미를 갖는 그것과는 구별된다. 바울은 “비밀”을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계획(구속사역)과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이르기 전까지는 계시되지 않았던, 곧 “비밀”에 속하였던 것인데(골 1:26), 경륜의 때가 이르매(엡 1:9) 모든 사람들에게 계시되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여전히 (공개된) “비밀”로 남아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더 이상의 “비밀”이 아니라 “계시”인 것이다. 이 “비밀”은 창세 전부터 미리 마련하여 놓으신 것으로서(엡 1:4 참조) 이제 때가 차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 알기를 원하시는 바인데,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그의 자녀로 삼으시는 구원계획이다. “비밀”의 상대적인 단어인 “계시”(ἀποκάλυψις)도 단순히 어떤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나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감취어져왔던(롬 16:25; 고전 2:7; 골 1:26)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것’ 또는 ‘나타남’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비밀의 계시”(롬 16:26, 헬라어 성경 16:25)를 알리는 것--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바울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전파(롬 16:25-26)이며 그에게 맡겨진 사역의 목적이다(엡 3:2-4; 골 1:25-26). “비밀의 계시”에 대한 바울의 설교는 따라서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으로 완성되어질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관한 종말론적 선포이다. 4. 복음의 계시 (성경: 롬 16:25, 26; 갈 1:1, 1:11-12; 또한 엡 1:9; 골 1:26, 2:2, 3) 롬 16:25-26...“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갈 1:11-12...“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이 복음을 알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이다. 바울이 사도로서, 복음증거자로서 일생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이 빛 가운데 임하신 그리스도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음이었는데, 그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도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그가 받았다는 것이다. 제 13 장 바울 신학(4): 그리스도 (Pauline Theology 4: Christ) 1. 서론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논의는 구원론(救援論)을 전제로 하고 있다. 바울의 예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그리고 다시 오실 선재(先在)하신 아들이시요, 주시요, 그리스도(=메시아)되시는 분이다. 2. 바울의 그리스도(Paul's Christ) 피츠마이어는 ‘그리스도의 역할’(the role of Christ)이 바울의 신학에 중심을 차지한다고 본다. 바울은 예수에 대한 풍부한 호칭들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고유 이름인 “예수”만으로 부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이는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의미, 곧 기독론에 주요한 관심이 있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바울의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가 기독론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구원론, 교회론과 종말론 등과 상호 연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1) 선재하신 아들(Preexistent Son) (성경: 롬 8:3, 29, 32; 고후 8:9; 갈 4:4; 빌 2:6-8; 살전 1:10; 또한 엡 4:13; 골 1:15-17) 갈 4: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빌 2:6-8...“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골 1:17...“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그(=아버지)의 아들,” 또는 “자기(=아버지) 아들”로 부르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을까?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천사들에게 부여된 신화론적 칭호이다(창 6:2; 욥 1:6, 2:1, 38:7; 시 29:1; 단 3:25). 또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집단적으로 편애하시는 칭호이며(출 4:22; 신 14:1; 호 2:1, 11:1; 사 1:2, 30:1; 렘 3:22), 재판장들에 대해서(시 82:6), 의로운 개별적인 유대인에 대해(시락 4:10; 지혜서 2:18) 사용된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는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이 동일시되고 있다(막 14:61; 마 16:16). 유대세계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저변에 있는 지배적인 사상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임무를 위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러한 부르심에 상응하는 순종이라는 개념이다. 아들됨에 대한 히브리적 관념은 신약성경이 이 칭호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바울은 그의 서신 중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곳에서 ‘그리스도의 선재’(the preexistence of Christ)를 암시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전제하고 있다(롬 8:3, 32; 갈 4:4-5).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에 관한 교리는 요한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사상이라고 여겨왔지만, 바울의 서신들에서도 선재하신 그리스도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아들”(갈 4:4; 롬 8:3, 32 참조)은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보는 바대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고후 8:9 참조) 분이시다. 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시고(골 1:15), “만물이 그와 함께 서있는” 분이시며(골 1:17),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 바클레이는 ‘그리스도의 선재’ 교리의 의미가 ‘하나님은 언제든지 예수와 같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즉, 예수 안에서 보게 되는 하나님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언제나 같은 분이심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선재’는 하나님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비로소 인간을 구원하기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능력과 희생의 일은 모든 세대에 걸쳐서 계속되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선재’란 갈보리에 나타난 그 사랑이 인간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의 영원한 움직임이란 뜻이다. (2)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Incarnated Christ) (성경: 롬 1:3, 8:3; 고후 8:9; 빌 2:8) 롬 8: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빌 2: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바울에게 성육신(Incarnation)은 가장 문자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한 행동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모든 사람이 입고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롬 8:3). 그는 성육신을 예수 그리스도 편에서도 이해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그가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께 일어난 사건이라는 관점에서만 생각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희생은 시간과 세상이 있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 출발이 영원 전에 있었던 것이다. 빌립보서 2장 5-11절에 그리스도의 자기비움(kenosis)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되며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권한을 갖고 계셨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그래서 그것을 자신이 품지 않으시고, 종의 형체로 낮아져서 인간이 되셨다. (3) 그리스도의 죽음(Death of Christ) (성경: 롬 4:25, 5:6-10, 6:10; 고전 1:23, 2:2, 15:3; 갈 1:4, 6:14; 또한 엡 2:3, 5:2; 골 1:20) 고전 2: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은 그의 기독론(Christology)의 중심일 뿐 아니라 구원론(Soteriology)의 핵심이라고 할 것이다. 바울이 끊임없이 계속하는 주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본질적인 중심성에 관한 것이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주의 중심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람들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주목해 보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단순히 공의와 진노의 하나님만이 아니시고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도 되시는 분인 것을 알게 한다. 롬 6:10...“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고전 15: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죄를 위하여(고전 15:3)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었다(롬 6:10). 바울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말한다(롬 4:25, 5:8; 갈 1:4). 바클레이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죽으신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단순히 인간의 죄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초래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즉,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인간의 죄와 관련된 것과 또 인간의 죄를 위해서 필요한 어떤 일을 가져온 것이다. 고전 5:7b...“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희생의 관점에서 보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분이시다(갈 2:20). 에베소서 5장 2절에서도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롬 5: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를 바라보고 믿는 사람들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케 하며, 구원을 얻게 한다. 롬 5: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론적 의미에서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화목을 이루게 하셨다(롬 5:10). 에베소서 2장 13절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됨을 설명한다(골 1:20 참고).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화목을 이룬 것이며, 또 잃었던 친밀하고 사랑스런 관계를 회복한 것이다. (4) 그리스도의 부활(Resurrection of Christ) (성경: 롬 4:25, 6:4-11; 고전 15:1-8, 12-20; 고후 13:4) 고전 15: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의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 15: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바클레이는 바울의 강조점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대속과 희생적인 죽으심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나 그의 생의 마지막 무렵에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초대 교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랬듯이) 그의 기독론의 중심이 되었다고 피력한다. 그에 의하면, 바울은 빌레몬서와 데살로니가후서를 제외한 그의 전 서신에서 부활에 대하여 언급함으로 부활 사상이 그의 신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두 서신서에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는 않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상이 면면하게 흐르고 있다. 필자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 죽음과 함께 바울의 구원론의 중심에 놓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종말론적 기대감을 갖게 한다고 본다(고전 15:20-24 참고). 고전 15:8...“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바울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간접적으로 듣고 받아들여야 했던 다른 사람들의 증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는 사건이었으며, 따라서 목격자로서 증언할 수 있는 사건이었으며 그의 증거가 독립적이며 직접적인 것이 될 수 있었다. (5)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Exalted Christ) (성경: 엡 1:20-23) 엡 1:20-21...“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신 것으로 사역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높임을 받으시고,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세상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시며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6)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성경: 골 15-17) 골1:16-17...“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있기 전부터 영원히 계신 분으로 성부하나님과 함께 만물을 창조하시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우주적인 분이시다. 제 14 장 바울 신학(5): 구원 (Pauline Theology 5: Salvation) 1. 서론 바울의 구원론(Soteriology)은 그리스도 중심의 기독론적 구원론(Christological Soteriology)이다. 즉, 그리스도와 연관시키지 않고는 그의 구원론을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사건(Christ- event)--곧, 그리스도의 고난, 십자가 상의 피흘리심, 죽으심, 부활하심--이 바울의 구원론의 핵심이다. 또한 바울의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론은 종말에 대한 기대감과 소망을 준다(롬 8:18-30 참고). 2. 그리스도-사건의 결과들 (1)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성경: 롬 1:17, 3:28, 4:1-25, 5:1; 갈 2:16, 3:1-14; 빌 3:9) 바울의 구원론은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여김’이라는 유명한 숙어적인 말로 표현된다. 종교개혁이래 한동안, 또 요즘까지 일부학자들은 이신칭의가 바울신학의 중심적인 일관된 주제(center 혹은 coherent topic)라고 주장한다. 바울은 이신칭의의 근거를 창세기 15장 6절(롬 4:3, 9; 갈 3:6 참조; 또한 약 2:23)과 하박국 2장 4절(롬 1:17; 갈 3:11 참조; 또한 히 10:38)에서 발견한다. 롬 3: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갈 2:16...“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빌 3:9...“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여 갈대아-우르를 떠났지만 그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있기 전 사람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 하신 것은 그가 구십구 세에 할례를 받기 전의 일이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주신 후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기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의로 여기신 바 되는 것은 유대인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무할례자에게도 속한 것이다(롬 4:9). 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는가?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부연 설명하고 있는데(갈 2:16), 이는 어떤 사람도 온전히 선하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없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3장 10절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시 14:3, 53:3, 143:2; 전 7:20)라고 말한다. 빌 3:9...“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바울은 인간의 의가 자생적(自生的)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2) 구원(Salvation) (성경: 롬 1:16, 5:9-10, 8:24, 9:27, 10:1-13, 11:11-14, 11:26, 13:11; 고전 1:18, 21, 3:15, 5:5, 7:16, 10:33, 15:2; 고후 1:6, 2:15, 6:2; 빌 1:28, 2:12; 살전 2:16, 5:8-9; 살후 2:10, 13; 또한 엡 1:13, 2:5, 8; 딤전 1:15, 2:4, 15, 4:16; 딤후 1:9, 2:10, 13, 3:15, 4:18; 딛 3:5, 2:11) 롬 5:9...“그러면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고전 15:2...“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빌 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엡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는 구원의 매체(“그로 말미암아”, 롬 5:9)인 것이다. 드물게, 빌립보서 3장 20절의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에서와 같이 그리스도가 구원의 주체로 증거된다(엡 5:23 참조). 바울은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 사건(Christ-event)의 최종 결과가 여전히 미래에 속한 것이며, 따라서 종말론적 측면이 있음을 기술하고 있다(롬 5:9-10, 8:24, 10:9-10, 13; 고전 3:15, 5:5, 15:2; 살전 2:16). 로마서 8장 24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고 진술하지만, 이것도 구원을 “이미”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소망(또는 믿음)의 마음으로 인하여 구원의 약속(또는 보증)을 얻었다는 의미일 것이다(빌 2:13 참조).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함으로써, 구원을 과정적인 표현으로 기술하고 있다. (3) 화해(Reconciliation) (성경: 롬 5:10-11; 고후 5:18-20; 또한 엡 2:15-16) 롬 5:10-11...“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고후 5:18...“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화목케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중보(Mediator)로 하시어(고후 5:18; 또한 골 1:22 참조) 인간과 화목하시고 또한 인간들끼리 증오와 갈등의 상태에서 사랑과 화해의 상태로 변화되게 하신다(고후 5:18-19; 엡 2:15-16). 바울은 그리스도-사건으로 말미암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의 효과를 인간에게서 우주로 확대시킨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라고 했고, 또한 골로새서 1장 22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기술한다. (4) 속죄(Expiation: ἱλαστήριον) (성경: 롬 3:25) 롬 3: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바울은 로마서 3장 25절에서 “화목제물(=속죄물)” 되신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 피는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 되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미하는 피의 봉헌이 여호와 앞에서 범죄한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였으며 또한 이들을 다시 한 번 여호와 하나님과 결합시켰다.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흘린 그리스도의 피는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켰던 죄를 제거하였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피흘리심으로써 인간의 죄가 단번에 씻음 받았고 덮혀지게 되었다. (5) 구속(Redemption) (성경: 롬 3:24, 8:23; 고전 1:30, 6:20, 7:23; 갈 4:5; 또한 엡 1:7, 14, 4:30; 골 1:14) 롬 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전 6: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엡 1:7...“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본래 사람의 주인이셨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 사단이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대속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피값을 치르고(=속전) 사람을 사셨다. 그로 인하여 사람의 몸에 대한 소유가 하나님께로 넘어갔다. 바울이 사용하는 헬라어 ‘엑스아고라조’(ἐξαγοράζω)는 ‘사다’(purchase)는 뜻으로서, 이는 구약의 ‘기업(또는 토지) 무르다’의 뜻인 가알(לאג)과 그 의미와 이미지가 상통한다. 룻기 4장 1절(또한 4:3-6)에 나오는 “기업 무를 자”란 뜻의 고엘(ל■■)은 “구속자”(redeemer) 되신 그리스도의 표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룻기에서 결국 나오미의 토지를 보아스가 물러주었는데(=다시 사주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보아스는 인류의 기업을 무르시기 위하여 피값을 흘리시고 구속자 되신 그리스도의 표상(Type)인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구속함”(ἀπολύτρωσις, 자유를 줌, 해방시킴)이 되셨다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ἀπολύτρωσις)으로 말미암아”(롬 3:24) 사람들이 “자유함을 얻고”(set free, deliver)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 이 일이 “이미”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사건이지만, 성도들에게는 “아직” 미래적이며 종말론적인 국면이 남아 있다. “이 세상”(this age)에서의 성도의 삶은 여전히 ‘불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삶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8장 23절에서 바울은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ἀπολύτρωσιν)을 기다리느니라”고 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구속(ἀπολύτρωσις)이 “죄 사함”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했고, 골로새서 1장 14절에서는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6) 자유(Freedom) (성경: 롬 7:3, 8:21; 고전 8:9; 고후 3:17; 갈 2:4, 4:21-31, 5:1, 13; 빌 3:20) 롬 8: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고후 3: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갈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믿음으로 의로와진 성도는 성령이 그 안에 들어오시고(갈 3:2, 5) 거하시므로 자유함이 있다고 했다(고후 3:17). 이 자유는 “죄”(롬 6:16-23, 8:2), “사망”(롬 5:17, 6:23, 8:2), “율법”(롬 7:3; 갈 3:10-13, 23, 4:5)과 초등학문(갈 4:8-11) 등에 종노릇하던 상태에서의 해방을 뜻한다(갈 5:1). 그러나, 바울의 자유는 무절제한 방종(libertine)하고는 다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서는 자유의 한계를 규정해놓고 있는데, 즉 첫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닐 것, 둘째는, 다른 사람들의 제재를 받는 일이 아닐 것(또한 고전 10:23 참고) 등이다. 고린도전서 8장 9절에서는 성도의 자유함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7) 새 창조(New Creation) (성경: 롬 6:4, 11; 고후 5:17; 갈 6:15; 또한 엡 2:15, 4:22-24; 골 3:9-10) 롬 6: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골 3:9-10...“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그리스도 사건(Christ-event)이 인간을 하나님과 새롭게 연합시켰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성을 새롭게 창조하셔서 “새 생명”(newness of life)을 주신다고 했다. 그리스도 밖에 있던 사람은 자연인 그대로인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갔으나, 그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그는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 된다(고후 5:17). 그는 그리스도의 영--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습을 따라가는 옛 사람(old man)은 벗어버리고 새 사람(new man)이 된다는 것이다(엡 4:22-24; 골 3:9-10). (8) 성화(Sanctification) (성경: 롬 6:22, 12:1, 15:16; 고전 1:2, 1:30, 6:11; 살전 4:7) 롬 6:22...“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고전 6: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예수는 믿는 자들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다(고전 1:30). 믿는 자들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 안에서”(고전 6:11; 롬 15:16) 거룩함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진 자들은 “성도”(οἱ ἅγιοι, 거룩한 자들)라고 부르심을 입게 된다(고전 1:2; 또한 롬 1:7). (9) 변화(Transformation: μεταμορφόσις) (성경: 롬 12:2; 고후 3:18, 4:6; 빌 3:21) 롬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빌 3:21...“그(=그리스도)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사건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빛을 비추셔서 “변화하는”(transform) 역사를 일으키신다(고후 4:6; 빌 3:21). 성도의 변화는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영광에 이르게 된다(고후 3:18; 또한 롬 8:29 참고).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췸 받은 성도는(고후 4:6) 그 삶에도 변화의 역사가 나타난다. 따라서, 그는 이 세상 임금에게 이 세대 사람들의 삶을 본받는 대신에 주의 영으로 도우심으로 삶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드러내는 생활을 하게 된다(롬 12:2). (10) 영화(Glorification) (성경: 롬 8:18, 21, 30; 고전 2:7; 살전 2:12; 또한 엡 2:6; 골 1:13, 2:12, 3:1 참조) 롬 8:30...“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살전 2:12...“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성도들을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도들의 “영화”(glorification)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기업을 소유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이다. ‘성도가 영화롭게 되는 것’을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표현하고 있고, 골로새서 1장 13절에서는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기술하고 있다. 제 15 장 바울 신학(6): 성령 (Pauline Theology 6: Holy Spirit) 1. 성령의 이해 (성경: 롬 8:1-17, 26-27, 12:6-8; 고전 12:4-11; 고후 1:22, 5:5; 갈 3:2-5, 5:22-23; 또한 엡 3:3-5) 바울은 그의 초기 서신인 갈라디아서에는 단순히 “영”(Spirit, τὸ πνεύμα)이라고 칭하고 있으나(한글성경은 “성령”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다른 서신들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즉, “성령”, “그리스도의 영”(롬 8:9), “아들의 영”(갈 4:6; 또한 “양자의 영”, 롬 8:15), “하나님의 영”(또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 “하나님께로 온 영”, 롬 8:11, 14; 고전 2:11, 12, 14) 등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은 하나님께서 은혜(grace, χάρις)로 주시는 선물(gift, χάρισμα)이다. 이 은혜의 선물--은사에 관하여 바울은 잘 알려진 고린도전서 12장 4-11절과 28-30절에 나열하고 있고, 그밖에도 로마서 12장 6-8절, 에베소서 4장 11절 등에서 열거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 5절에서 바울은 듣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다고 말한다. 2. 보증이신 성령(Holy Spirit as ἀρραβών) (성경: 롬 8:16; 고후 1:22, 5:5; 또한 엡 1:13-14) 롬 8: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고후 1:22...“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된다. “아직” 구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도 믿는 사람의 안에 역사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의 시민인 것을 증거케 한다(롬 8:16; 빌 3:20 참고). 에베소서 1장 13절에는 “약속의 성령”이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 성령의 인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됨의 보증(“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엡 1:14)으로 삼으신다는 것이다. 3. 성령의 은사 롬 12:6-8...“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고전 12:4-11...“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들을 믿는 사람들에게 주심은 그것들을 활용함으로써 교회에 유익을 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려 하심이다. 4. 성령의 열매 (성경: 갈 5:22-23, 6:8; 롬 8:5-7) 갈 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급지할 법이 없느니라.”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과 육체의 소욕을 이루는 것을 대조한 후, 육체의 열매(5:19-21)와 성령의 열매(5:22-23)를 대조하고 있다. 또한 갈라디아서 6장 8절에서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둘 것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8장 6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5. 성령의 사역 (성경: 롬 8:9-10, 15, 26, 롬 15:13, 16, 18-19; 고전 2:10-16; 또한 살후 2:13) 롬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전 2:10-11...“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바울은 로마서 8장 9절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성령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갈라디아서 3장 2, 5절과 연관하여 생각할 때,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을 때 그는 의로와지고 동시에 성령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성령의 거하심으로 원래는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은 몸이던 사람이 살게 된다(롬 8:11). 성령은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고(롬 8:15; 갈 4:6), 그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롬 8:16). 그런가 하면, 성령은 마땅히 하나님께 어떻게 빌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신다(롬 8:26).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신 까닭에 하나님의 깊은 것, 그의 속 사정을 아시고 이를 믿는 사람에게 알게 하신다(고전 2:10-11).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은 또한 믿는 사람에게 소망이 넘치게 하신다(롬 15:13). 성령은 믿는 사람들로 거룩하게 되어지는 삶(=성화)을 살게 하신다(롬 15:16; 살후 2:13). 성령의 능력이 바울에게 지속적으로 임하실 때 그의 선교 사역을 온전히 감당케 하셨다(롬 15:18-19). 이밖에도 성령은 우리로 기뻐하게 하시고(살전 1:6), 봉사하게 하시고(빌 3:3), 기도하게 하시고(엡 6:18), 서로 사랑하게 하신다(골 1:8). 제 16 장 바울 신학(7): 교회 (Pauline Theology 7: Church) 1. 교회란 무엇인가? 바울은 교회, 에클레시아(ecclesia, ἐκκλησία)라는 말을 예배와 신앙교육을 위한 어떤 특정한 장소, 또는 그곳에 모인 지역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그리고 그리스도에 속한 크리스천들 전체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아마도 그 이전에 존재하던 회중(congregation)이란 뜻의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란 용어를 수용(收容)하고, 이를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유기적인 관계(organic relationship)를 표현하는 뜻으로까지 발전시켰을 것이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이라고 하며,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에베소서와 골로새서)라고 함은 바울 서신들에 나타난 특징적인 표현들이다. 2.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 (성경: 고전 1:2, 15:9; 고후 1:1; 갈 1:13; 빌 3:6; 살전 2:14; 또한 딤전 3:15) 고전 1: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살전 2:14...“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딤전 3: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라는 용어(특히 “하나님의 교회”[ἐκκλησία τού θεού]로서)는 “으로부터 불러내다”(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연상시킴)라는 말로서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론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단어는 “회중”(congregation)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케할”(ל■■־הוהי, 하나님의 회중)에서 나왔다고 본다. 바울에게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하여 세례받은 자들의 모임에 대한 통상적인 표현을 의미한다. 즉,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회중”(행전 7:38, “광야교회”[ἐκκλησία ἐν τῇ ἐρήμῳ])이었던 것의 연장적인 의미에서 신약 성도들의 “하나님의 백성”됨과 그 총체적 의미로서 “교회”를 이해할 수 있다. 세르포(L. Cerfaux)는 “하나님의 교회”(ἐκκλησία τού θεού)란 명칭이 원래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가리켰으며, 바울이 교회에 대한 그의 박해를 말할 때(고전 15:9; 갈 1:13; 빌 3:6) 그는 “총체적인 교회”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염두에 두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리더보스는 “하나님의 교회”가 처음에는 예루살렘 교회와 후일에는 유대에 설립된 교회들(살전 2:14)에 적용되었을지라도, 이 이름은 단순한 기술적 용어(terminus technicus)로서 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확장적으로 적용되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고전 1:2; 고후 1:1). 바울에게 교회(ἐκκλησία)는 지역(집 또는 가정) 교회(local church와 house church)와 교회 모임(church meeting), 그리고 총체적인 교회(church in totality)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주로 총체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서는 주로 지역(또는 집) 교회나 교회모임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바울의 교회에 대한 강조는 개교회들의 결합이나 연합을 의미할 뿐 아니라 총체적인 의미로서의 “하나님 백성(자녀)의 모임인 교회”에도 놓여 있다고 할 것인데, 이는 구속사적인 차원에서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놓여 있는 성도 전체를 가리킨다. 리더보스는 바울이 특정 지역에 있는 교회(또는 교회들)에 편지할 때에도 그들(교회와 성도들)이 총체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백성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3. 그리스도 몸으로서의 교회 (성경: 롬 12:3-5; 고전 12:12-27; 또한 엡 1:22-23, 4:15-16, 5:29-32; 골 1:18, 24) 롬 12:4-5...“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고전 12: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엡 5:29-30...“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골 1:24b...“그리스도의 이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한 것은 바울의 독특하고 전형적인 표현이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간에 존재하는 긴밀한 관계와 연합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몸”이라는 특징적인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함께 참여하고 있음으로 해서 그 안에서 상호간에 하나의 새로운 연합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각각 하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집합적인 연합이다. 특히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는,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함으로써, 남편과 아내가 합하여 한 육체가 됨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과 연결시키고 있다. 고전 12: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한 다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의식으로 세례가 있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라고 한 것 같이,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음으로(baptized into Christ, 고전 10:2 참조)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을 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지체가 된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표현함으로써 세례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속성이 나타남을 말한다. 고전 10:16-17...“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성만찬(Lord's Supper)을 통하여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지체임을 확인한다. 여기서 “몸”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피와 함께 “죽음에 내어 주신 몸”이고, 둘째로는 한 몸으로 묘사되어진 “교회”이다. 엡 1:22-23...“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골 1:18a...“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한 것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특징적인 표현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몸의 영적인 측면이 구속사적 측면과 함께 매우 현저하게 보인다. 리더보스는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를 “머리”라고 표현한 것이 승천하신 주로서의 그리스도의 권위가 특별히 강조되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일리가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게 하시고(엡 1:20),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며(엡 1:21),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엡 1:22). 4. 지역 교회 혹은 가정(집) 교회 (성경: 롬 1:7; 16:5; 고전 16:19; 고후 1:1-2; 갈 1:1-3; 몬 1:1-2; 또한 골 4:15-16) 롬 1:7...“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전 16: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골 4:15-16...“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1세기의 교회들은 회중(congregation)의 규모가 작았을 것이다. 교회 건물은 3세기나 되어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초대 교회는 따로 건물을 짓지 않고 그 지방의 유력한 사람의 집에서 예배를 드린 가정 교회(house church)의 형태였다(롬 16:5; 고전 16:19; 몬 1:2; 골 4:15). 바울은 지역 교회에 편지하는 그의 서신에서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에 “성도들”(ἁγίο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롬 1:7; 빌 1:1; 엡 1:1; 골 1:2), 이는 “유형 건물”보다는 “성도의 모임 또는 연합”이 더욱 더 중요한 교회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성도들의 모임인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영적 이스라엘”)이요 구속사적으로 중요한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5. 교회와 윤리 (성경: 고전 1:10-13, 11:17-22, 14:3-5, 12, 26) 고전 14:26...“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자유한 자들의 집단이라고 해서 교회가 모든 질서나 윤리에서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앙공동체로서 교회 안에서도 각자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를 “교회 윤리”라고 한다. 바울은 교회의 공중예배시, 성만찬 때, 기타 친교나 다른 모임의 때, 또한 성령의 은사의 활용에 있어서도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성도의 언행은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이어야 하며 덕을 세우는 것이어야 할 것임을 지적한다. 성도들과 그 모임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전 11:17).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자가 교회에 먼저 와서 주의 만찬을 위한 떡과 포도주를 과다하게 먹고 마셔서 나중에 온 사람이 먹고 마실 것이 없으면 이는 빈궁한 형제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견책한다(고전 11:20-22). 공중예배 시에 방언이나 기타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서는 안되고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전 14:3-5, 12, 26). 바울은 교인들 각자에게 어떤 윤리 지침서를 마련하여 주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성도들의 공동 신앙의 장소로서 교회에는 질서와 유익과 덕이 나타나져야 하는데, 이를 위한 공동체적인 윤리가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회 내에 분쟁과 다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든든히 세우기보다는 무너뜨려내리기 때문이다(고전 1:11-13). 믿는 사람의 음행(淫行)이 개인적인 윤리 문제 같지만 교회 윤리의 문제도 되는 것은 이로써 교회 안에 ‘음란하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들어와 퍼져서 ‘그리스도의 몸’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든든히 함께 세워가기 위한 기독론적인 교회 윤리를 권면하는 것이다. 제 17 장 바울 신학(8): 종말 (Pauline Theology 8: Eschaton) 1. 종말(Eschaton)이란? (성경: 살전 4:13-18; 또한 살후 1:3-12, 2:1-12; 또한 골 3:1-4) 살전 4: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후 1:7-9...“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골 3:3-4...“이는 너희가 이미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바울의 종말론은 미래에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인데,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모든 것이 현실적인 사실로 실현화됨(realized)으로써 종결될 것이다. 바울의 종말은 믿는 성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미 완성되었다(realized eschatology). 만일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죽었다면 그의 종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성도에게(롬 6:4-5; 또한 골 3:1) 종말은 “이미” 실현된 종말론(realized eschatology)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아직” 미래적 종말론(futuristic eschatology)으로 남아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을 기쁨으로 맞게 될 것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진노의 날,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2. 죽은 자의 부활(Resurrection of the Dead) (성경: 롬 8:11; 고전 15:12-34; 고후 4:14; 살전 4:14-17) 고전 15:12-13...“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후 4: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니” 살전 4: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불트만(R. Bultmann)은 부활의 사건은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부활의 케리그마와 신앙은 정당한 것으로 취급함으로써 신화화된 역사의 옷을 입힌 케리그마로 단정한다. 그의 부활 신학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성도의 현재적 신앙과 결단 속에서 실존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트만은 초대교회의 부활 케리그마를 사실로 믿으려 하기보다는 ‘부활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바울에게 부활은 그 영적 의미의 음미나 신앙적 결단을 위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목격된 역사적 사건이고(고전 15:3-8), 부활을 믿는 성도들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될 것임에 그 중요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김재홍에 의하면, 부활은 “불트만처럼 인간이 믿어줌으로써 유효한 인간학적 결단의 요소가 아니라 인간이 믿든 말든 간에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적 종말이며 불완전한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 창조하시는 창조론적 종말이라”고 했는데 바른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고전 15:13, 15, 16)--절대로 그럴리야 없지만,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역사적 실재로서 성도들에게 임하지 않는다면, 바울은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3),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 하셨으리라”(고전 15:15),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고전 15:16)라고 단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을 전제로 한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죽은 자의 부활’도 믿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고전 15:14, 17)--절대로 그렇지 않지만,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여전히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는데,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고전 15:14),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될 것이며”(고전 15:15), 뿐만 아니라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 15:17),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고 확언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복음 전파나 믿음이 모두 헛것이요 사람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모두가 망한 것이라는 논지이다. 따라서, 부활을 믿지 않는 또는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이나 전도는 헛것일 뿐이다. 성도의 부활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second coming, parousia) 일어날 종말론적 사건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다(살전 4:16). 그리스도의 재림이 시간적 요소라면, 성령은 성도를 부활시키는 능력적 요소이다. 성도들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의 시점에 부활의 능력을 극대화시킨다. 3. 부활의 몸(Body of Resurrection) (성경: 고전 15:35-58) 고전 15:42-44...“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초대 교부시대로부터 시작하여 흔히 “육체의 부활”(fleshly resurrection)과 “몸의 부활”(bodily resurrection)이 구별없이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바울의 글에는 “육체”(σάρξ)와 “몸”(σώμα)을 엄연히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바울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전제로 하기에 부활될 수 없다. 고린도전서 15장 50절에서 “혈과 육(blood and flesh)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 영혼만이 부활한다는 뜻인가? 그것은 아니다. 바울은 영혼과 함께 “몸”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바울이 말하는 “사륵스”(σάρξ, 육체)”는 썩을 것을 전제로 하는 반면에, “소마”(σώμα, 몸)는 “육신적인 몸”(σώμα ψυχικόν)과 “영적인 몸”(σώμα πνευματικόν)을 포함하는데(고전 15:44), 성도의 부활의 몸은 “영적인 몸”(σώμα πνευματικόν)이다. 물론 “영적인 몸”이 형체를 갖되 현재의 “육신적인 몸”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40절에서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다”고 했고, 44절에서는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창조 때에 여러 가지 다양한 형체를 주시되 사람, 새, 물고기, 짐승의 육체를 주신 것같이,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다고 했다. 해의 영광이 달의 영광도 다르고, 별의 영광도 다르듯이, 사람들의 영광도 각각 다르고, 이 세상을 살 때의 영광과 부활할 때의 영광도 각각 다를 것이다(고전 15:38-41). 땅에 속한 생물체가 여러 가지 형체-몸(σώμα)-를 갖고 살아가듯이 하늘에서도 그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땅에서 영광을 얻듯이 또 어떤 사람은 하늘에서 영광을 얻게 된다. 땅에서는 땅의 기준에 따라 영광이 주어지고 하늘에서는 하늘의 기준에 따라 영광이 주어진다. 바울은 “부활의 몸”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서 그것은 “썩지 아니할 몸”(42절)이요, “영광스러운 몸”(43절)이요, “강한 몸”(43절)이요, “신령한 몸”(44절)이라고 했다. 4. 그리스도의 재림(The Second Coming of Christ) (성경: 롬 13:11-12; 고전 7:25-31; 살전 1:10, 4:13-17, 5:1-6, 23; 또한 살후 2:1-8) 살전 4:15-17...“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5:1-3...“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후 2:3...“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이) 이르지 아니하나니”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을 고민하게 한 고민거리들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날 일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맞이하게 될 영광을 잃을 것인가? 바울의 대답은 “살아 있는 자들이 자는 자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그의 생애 동안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는가? 여기에는 학자들 간에 다툼이 있지만, 필자는 바울이 그의 생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했던 것으로 본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살전 4:17)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의 영과 혼과 몸이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전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13장 11-12절에서도 바울은 “자다가 깰 때가 되었으니”(11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 재림의 임박(臨迫)함을 피력하고 있다. 또한 고린도전서 7장 29절에서도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라고 함으로써 주의 재림이 아무 때라도 이를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설혹 바울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의 생애동안에 있을 것을 예견하지는 않았다고 양보하더라도, 소망 중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살전 5:6 참고). 데살로니가후서 2장 1절 이하의 그리스도 재림에 관한 기술은 데살로니가전서(와 로마서 13장 11-12절, 그리고 고린도전서 7장 29절)의 긴박성과 불예측성(“도적같이 임하리니”)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이 분명하다. 즉, 그리스도의 강림하시기까지는 아직 한 가지 징조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2장 3절에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이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이 있기까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이러한 외견상의 차이로 인하여서, 상당수의 비평주의 학자들은 데살로니가후서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지 못하고 죽은 바울의 사후에 바울의 제자 중에 누군가가 바울의 이름으로 재림(再臨)에 대한 입장을 재정립하여 저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5. 심판(Judgment) (성경: 롬 2:1-16; 살전 5:1-3; 또한 살후 1:5-10, 2:8; 딤후 4:1, 8) 롬 2:5...“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살전 5:1-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후 1:8-9...“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바울은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되 “진리대로”(according to truth, 롬 2:2), “그 행한 대로”(according to his 롬 2:6), 그리고 “공의로”(according to impartiality, 롬 2:11) 행하신다고 진술한다. 인간의 불신과 불순종의 잘못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는 즉각 즉각 임하지 않는다. 불신의 잘못을 범하고도 회개치 않는 사람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 쌓여 “진노의 날”(롬 2:5)에 진노의 대접(=심판)을 쏟아 부으실 것이다. 진노의 날이란 하나님의 의로운 최종적 판결이 현실화되는 날이다. 바울이 말하는 종말의 심판은 이론적이고 영적인 차원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한 자들, 곧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살후 1:9).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는 심판의 때와 시기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주의 날”은 도적같이 졸지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3절에서 주의 날의 임함을 멸망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영원한 파멸’로 하나님으로부터의 ‘영원한 격리’를 의미한다. 이는 창조주가 베푸셨던 은총과 생명의 의존적 환경들이 몰수되어지는 것이다. 6.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성경: 롬 14:17; 고전 4:20, 6:9-10, 15:50; 고후 12:1-4; 갈 5:19-21; 빌 3:20; 살전 2:12; 또한 엡 5:5; 골 4:11; 살후 1:4-5; 딤후 4:1, 18) 롬 14: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전 15:50...“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살후 1: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바울에게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영역을 말한다(살전 2:12). 바울의 하나님 나라는 물론 종말론적인 개념이지만(고전 15:50; 살전 2:12; 또한 딤후 4:1, 18), 성령에 이끌리어 생활하는 믿는 사람으로서 현재에도 속하여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롬 14:17; 고전 4:20). 믿는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시킬 때, 그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다. 또한 그곳은 자유자(=시민)의 삶이 보장된 곳이기도 하다(빌 3:20).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종이 아니라 자유 시민으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규정함에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고(롬 14:17),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는”(고전 4:20) 곳이라고 했다. 반면에,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그리고 “말”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항--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나 없나를 결정하는 요건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 누구인지 열거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는 “불의한 자, 음란하는 자, 우상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탐색하는 자, 남색하는 자, 도적, 탐람하는 자, 술 취하는 자, 후욕하는 자, 토색하는 자들”이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서는 “육체의 일을 행하는 자들--즉, 육체의 일은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와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이라고 했고, 또한 에베소서 5장 5절에서는 “음행하는 자, 더러운 자,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라고 했다. 이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또는 기업, inheritance)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반면에, 현재 이 세상에서 고난과 핍박과 환난 중에도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위로한다(살후 1:4-5).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과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qualification), 더 상세하게는 실격(disqualification) 사항들이 무엇인지는 열거하였으나, 하나님 나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인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불리우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21-22장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 이유에 관하여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낙원)를 사람의 말로는 가히 형언할 수 없기 때문이요, 또는 사람들에게 말로 알리는 것이 허락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또다른 이유는 그가 환상 중에 경험한 “낙원”과 세상 끝날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에는 실재로 현저한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환상 중에 체험한 셋째 하늘의 낙원은 장차 임할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모형일 뿐이다. 제 18 장 바울의 윤리관 (Paul's View on Ethics) 1. 서론 (Introduction) 바울의 신학과 사상을 오해하면, 이신칭의(以信稱義)의 교리와 크리스천의 자유(自由)가 윤리적인 삶과는 무관(無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서신들은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근본적인 진리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올바른 윤리적 행동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한편으로 크리스천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롬 6:15) 있도록 하기 위해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롬 3:24-25).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은 크리스천은 이제 더 이상 육신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성령(Holy Spirit)을 받음으로 신령한 자들이다(갈 3:2, 5). 2. 바울의 자유와 한계 (Christian Freedom and Its Boundary in Paul) (성경: 롬 7:3, 8:21; 고전 8:9; 고후 3:17; 갈 2:4, 4:21-31, 5:1, 13; 빌 3:20) 롬 8:21...“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 고후 3: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갈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바울 서신에 있어서 ‘자유(自由)’는 크리스천에게 중요한 단어이다. 바울의 기준으로 율법에 여전히 매여 있는 유대주의에서의 벗어나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라고 할 것이다. 믿음으로 의로와진 성도는 성령이 그 안에 들어오시고(갈 3:2, 5) 거하시므로 자유함이 있다고 했다(고후 3:17). 이 자유는 “죄”(롬 6:16-23, 8:2), “사망”(롬 5:17, 6:23, 8:2), “율법”(롬 7:3; 갈 3:10-13, 23, 4:5)과 초등학문(갈 4:8-11) 등에 종노릇하던 상태에서의 해방을 뜻한다(갈 5:1). 그것이 사실이나, 그 자유가 무절제하고 비윤리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의 자유는 무절제한 방종(libertine)하고는 다르다. 바울은 성도의 자유가 비윤리적인 “정과 욕심”에 의하여(갈 5:24 참조) 지배를 받는 “육체”(σάρξ)에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갈 5:13)고 경고한다. 고린도전서 6장 12절에서는 자유의 한계를 규정해놓고 있는데, 즉 첫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닐 것, 둘째는, 다른 사람들의 제재를 받는 일이 아닐 것(또한 고전 10:23 참고) 등이다. 고린도전서 8장 9절에서는 성도의 자유함이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한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은 그를 주(Lord)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율법의 매임에 있지 않게 하고 자유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는 삶을 살아간다. 3. 바울의 윤리 (Ethics in Paul) (1) 개인 윤리 1) 음행이 아닌 거룩함(not immorality, but holiness) (성경: 롬 12:1-2, 14:15-15; 고전 5-6장, 8:12-13; 갈 5:19-26; 또한 엡 5:3-9, 18; 골 3:5-10) 롬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4: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고전 5:11...“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하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고전 6:7...“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갈 5:25-26...“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믿음의 사람이 이 세상을 살 때 음행(淫行)이나, 불의(不義)나, 탐람(貪濫)이나, 후욕(詬辱)이나, 우상숭배(偶像崇拜)와 짝하여 살지 말고 거룩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은 음행이나 불의 등등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 없을뿐더러(고전 6:9-10; 갈 5:19-21; 또한 엡 5:5) 하나님을 도무지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살 때에 믿지 않는 사람과 동일한 모습으로 살 것이 아니라고 권면한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판관 앞에서 재판 받기 위해 송사하지만, 믿는 사람들이 세상 법정에서 서로 송사할 때 이는 자신들의 허물을 완연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했다(고전 6:7).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차라리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고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형제에게 같이 불의를 행하고, 같이 속이는 일을 행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바울의 이 권면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교회 간에 서로 송사하는 일이 가끔 있는 현실은 우리의 마음을 씁쓰름하게 한다. 바울은 한 개인의 행동강령(行動綱領)을 스스로 정하는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행동이어야 하고, 또한 본인의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제재를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 6:12).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단명(單明)하게 제시해준다. 첫째는 “(죄악된) 이 세대를 본받지 말 것이요”(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둘째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것이요”(Be transformed by the renewal of your mind), 셋째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Prove what is the will of God, what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는 것이다. 그러나 연약한 육신이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데(롬 7:18-20, 8:3), 이럴 때에 성령께 간구하고 의지함으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롬 8:4; 갈 5:25). 2) 결혼과 이혼(Marriage and Divorce) (성경: 고전 7장) 고전 7:1-2...“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 함이 좋으나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전 7:8-9...“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고전 7:10-11...“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고전 7:26...“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바울의 결혼관은 특수한 상황--주의 재림(parousia)이 임박하였다는 종말론적 믿음(고전 7:26-31; 또한 살전 5:1-3)을 전제로 하여 제시된 것이다. 결혼을 안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지만, 정욕이 불일 듯 일어나면 음란에 빠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전반에서 독신(獨身)이 혼인(婚姻)보다 나은 것처럼 기술하고 있지만, 사실 정상적인 상황하에서는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창세기 2장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같은 장 24절에서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도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마 19:4-5; 막 10:8), 결혼의 신성함과 적합성을 인정하셨다. 바울 서신에는 이 구절을 약간 다른 목적으로 두 번 사용되었는데, 첫 번째는, 음란과 거룩을 대비하기 위하여 고린도전서 6장 16-17절에서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했고, 두 번째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대비하기 위하여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결혼 안하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이왕에 혼인을 한 “둘 다 믿는 부부의 경우”에 될 수 있는 대로 갈라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고전 7:10-11). 바울은 이것이 자기의 명하는 것이 아닌 주의 명하심임을 보이고 있다(고전7:10). 이는 바울이 이혼에 대한 예수의 가르치심(마 5:32, 19:9; 막 10:11-12; 눅 16:18)을 알고 있었다는 힌트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5장 32절(또한 마 19:9)에서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아내가 (계속적으로) 음행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한 버리지(=이혼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마가복음 10장 11절(또한 눅 16:18)에서는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라고 하심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간음한 경우”) 본처를 버리고 다른 데 장사드는 것을 금하셨다. 바울이 주께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는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에게 전해 들은 가르치심(Jesus' saying)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의 진술에는 이혼을 금함의 강도가 많이 약화되어 있는 느낌이다. 그는 단순히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남편도 그 아내를 버리지 말라. 만일 갈리었으면 그냥 지내든지 다시 화합하든지 하라”고 특별한 강조점 없이 기술하고 있다. “믿는 사람(남편이나 아내)과 믿지 않는 사람(아내나 남편)이 혼인하여 같이 사는 경우”에는 그 이혼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의 경우”에서보다 훨씬 이혼을 용이한 것으로 다루고 있다.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고 함으로써, 이 경우에는 이혼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별로 가책꺼리가 되지 않음처럼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믿지 않는 한쪽이 계속 같이 살기를 원할 때는 “버리지 말라”고 권면한다(고전 7:12-13). 이렇게 할 것은 그리함으로 남편을 또는 아내를 구원할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고전 7:16). (2) 가정 윤리 1) 부모와 자녀 (성경: 엡 6:1-4; 골 3:20-21) 엡 6:1, 4...“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골 3:20-21...“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바울의 다툼이 없는 서신들(the seven undisputed letters)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다루어져 있지 않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거의 동일한 가르침이 나온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 주인과 종의 관계는 하나님과 성도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하여 설명되고 있다. 골로새서의 가르침에 에베소서에는 축복의 약속(엡 6:2-3)이 덧붙여져 있다. 갈라디아서나 로마서를 따르면, 율법적인 계명들을 일부러라도 언급하지 않으려는 바울답지 않게, 에베소와 골로새 지방의 ‘이방 교인들’에게 편지함에 있어서, 부모와 자녀의 문제에 관해서는 ‘유대인’의 십계명의 제5계명을 인용하고 있다. 출애굽기 20장 12절(또한 신명기 5:16 참고)에서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명하셨다(엡 6:2-3). 따라서,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자녀의 부모에 대한 윤리적 의무는 바울의 것이라기 보다는 십계명 제5장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바울은 “공경하다”(honor, τιμάω) 위에 순종하다(obey, ὑπακούω)를 더하고 있을 뿐이다. 에베소서 6장 3절에서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는데, “네가 잘 되고” 한 것은 하나님의 질적인 축복을 말함이며,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한 것은 양적인 축복이다. “땅”이란 ‘약속의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는 사람이 장차 거할 곳인 ‘하나님 나라’를 가리킬뿐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도 포함한다. 바울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윤리 의무’만 규정한 제5계명에 더하여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윤리 의무’도 규정하고 있다(엡 6:4; 골 3:21). 에베소서 6장 4절에서는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했는데, 골로새서는 그 이유를 “낙심할까 함이라”고 추가하고 있다. 부모들이 종종 자녀를 소유물 취급한다든가 가볍게 대하며 화풀이 대상으로 삼을 때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며 그들에게 낙심을 줄 수 있고 마음에 응어리를 남길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에베소서에서는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지침서가 더하여져 있다. 자녀를 격노케 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회초리와 훈계로 다스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모의 성냄 때문이다. ‘주 안에서’ 주의 교양과 훈계는 필요하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훈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남편과 아내 (성경: 고전 7:3-5; 또한 엡 5:22-33; 골 3:18-19; 딛 2:3-5) 고전 7:3-4...“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엡 5:22-23, 25...“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골 3:18-19...“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7장 3-4절에서 바울은 남편과 아내가 상대방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포괄적인 권고를 하고 있다. 각자의 몸을 상대방이 주장한다고 했다. 남편 혹은 아내가 자기의 의무를 지키지 않고 다른 쪽의 의무만을 강요할 때 이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않을 것이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아내들을 향하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복종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포타소’(ὑποτάσσω)는 ‘...의 권위 혹은 명령 아래 두다’라는 의미이다. 남편에게 복종한다는 뜻은 남편의 권위 아래 들어가 남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복종은 노예가 그 주인이 두려움의 대상이므로 사랑 없이 행하는 복종이 아니며, 사랑하기에 남편의 말에 청종하고 행하는 자발적이고 기쁜 복종이다.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관계를 설명할 때 머리와 몸으로 비유한다.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을 몸된 성도의 연합인 교회가 준행하듯이, 몸된 아내도 범사에 가정의 머리되는 남편의 뜻과 명령을 잘 받들 필요가 있다(엡 5:23-24). 골로새서는 이렇게 함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고 표현하고 있다(골 3:18).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듯이 남편이 아내를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것 역시 사랑으로 해야 한다.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되 흠과 티가 없이 영광스럽고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하여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 주신 것같이 남편도 아내를 사랑할 때 이와 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아내가 아름답고 거룩하게 되는 것은 남편이 그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아내를 사랑한 결과이므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남편과 아내의 아름답고 거룩한 연합에서 우리는 주님과 연합하는 비밀을 배울 수 있다. 거룩한 연합의 비밀을 배움으로써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하신다. (3) 교회 윤리 (성경: 롬 12:3-13; 고전 1:10-13, 11:17-22, 12:12-27) 롬 12:10, 13...“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고전 12:25-27...“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교회 윤리에 관해서는 앞에서(제16장 바울 신학 7: 교회론)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성도간에 존재하는 교회 윤리를 살펴보기로 한다. 성도 각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이신 교회의 각 지체라고 했다. 교회라는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체인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떤 교우를 비난하고 판단할 때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일이다. 몸의 지극히 미약한 지체가 병들었을 때에도 몸 전체가 아픈 것 같고 따라서 그 부분을 치료하기에 온 신경을 다 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미약한 듯이 보이는 작은 자의 아픔과 고통에도 동참해야 한다(고전 12:26). 바울은 로마서 12장 10절에서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권면한다. 성도간에 서로 사랑하되 형제사랑(brotherly love)으로 사랑하며, 다른 교우를 존경함으로 대하라고 당부한다. 그리할 때 그 교회는 아름다움과 화목이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13절에서는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권고한다. 어떤 성도의 어려움을 알기는 알지만 그의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에 더딘 것은, 듣기는 듣고 보기는 보아도 이야깃거리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나그네 대접하기에 힘쓰는 성도들일 때 그 교회는 교회 안에서 시작하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4) 사회 윤리 1) 이웃 (성경: 롬 12:14-21, 13:8-10) 롬 12:17-18...“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3:9...“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바울은 로마서 12장 14-21절에서 열 가지로 믿는 사람들의 사회 윤리에 대해서 열거하고 있다. 첫째는,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절)고 한다. 이는 바울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예수의 말씀(마태 5:44 참조)을 알고 있었다는 힌트이기도 하다. 둘째,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15절)고 권면한다. 여기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우는 자들’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형편에도 동참하여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갖는 일이 믿는 사람의 할 일이라는 뜻이다. 셋째, “서로 마음을 같이 하라.”(16절)고 한다.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동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기 때문에 실제 삶에 있어서도 그들과 조화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넷째,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라.”(16절)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삶의 본이다(빌 2:5-8). 다섯째, “스스로 지혜 있는 채 말라.”(16절)고 한다. 우리의 인간적인 지혜도 믿는 사람의 지헤도 그렇게 대단한 것이 없다. 여섯째,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라.”(17절)고 권면한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의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법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마땅히 행할 도리”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은 하나님의 형상에 역행하는것이요, 선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르고 닮아가는 삶이다. 일곱째,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8절)고 한다. 믿는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과 화목할 뿐 아니라 그들의 문제를 치료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여덟째,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19절)고 한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32장 35절에서 “보수(報讐)는 내 것이라”(vengeance is mine)고 말씀하신 대로(히 10:30 참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하나님께 내어맡김이 믿는 사람의 세상 삶의 지혜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게 될 것이다. 아홉째,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우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잠언 25장 21-22절에서 인용한 것인데, 이는 원수된 자까지 포용하는 사랑의 윤리이다. 이는 믿음이 있는 사람의 선한 행동이 악인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고, 후에 그의 마음을 열게 한다. 열째,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한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나타나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선으로 악을 이길 때”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확장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믿는 사람의 사랑이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들을 이루는(롬 8:4)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제시한다. 모세의 십계명 중 두 번째 부분의 계명들(제6계명-제10계명)--“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롬 13:9 참고)--은 “네 이웃을 네 자신(=몸)과 같이 사랑하라”(롬 13:9; 레 19:18; 마태 5:43, 22:39)고 한 말씀 가운데 다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은 굳이 십계명을 지키려고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그의 사랑이 율법(의 요구들)을 완성하는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이것이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믿는 사람이 가져야 할 사랑의 윤리인 것이다. 2) 남자와 여자 (성경: 고전 11:2-16, 14:34-35; 갈 3:28; 또한 딤전 2:8-15) 고전 14:34-35...“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딤전 2:11-14...“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가 구분이 없음을 역설하였다. 그러나 동일한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권고한다. 이것이 고린도전서 11장 2-16절에 나오는 공중예배시 여자가 머리를 덮개로 가리는 것과 같이 2,000년 전이라고 하는 시대상황과 고린도 지방의 문화와 관습을 염두에 두고 한 특별 명령인가, 아니면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보편적인 명령인가에 대해서는 성경학자들 간에 논란이 있다. 합법화된 여성의 지위와 목소리가 현재처럼 높지 않았던 2,000년 전의 사회였지만, 그 당시 고린도 교회 안에서는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이 많았었던 것같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분열되거나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현재에도 여성 신도들의 말들로 인하여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함을 보면 바울이 여자에게 특별히 “잠잠하라”고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여성비하적인 발언이라기 보다는 교회의 질서와 평안을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2장 11-15절에 나오는 바울의 여성관은 질서와 평안을 지나서 다분히 적의적(敵意的)이기까지 하다. 바울은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고”,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은 허락지 아니할 것”을 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필자는 이것이 바울답지 않은 지적이라고 보는데), 첫째는 ‘하와보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았고’(13절), 둘째는 ‘아담이 꾀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꾀임을 받아 죄에 빠졌기’(14절) 때문이라고 한다. 두 번째 주장을 글자 그대로 보면, 원죄의 책임이 아담에게는 없고 전적으로 하와에게만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다분히 임의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장이다. 이는 아담이 하나님께 창세기 3장 12절에서,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변명한 것을 생각나게 한다. 그때 아담은 속으로, “그러므로 나는 죄가 없나이다.”라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점이 있지만, 디모데전서가 바울이 보낸 편지가 확실하다면, 그의 의도는 가정과 교회의 질서와 평안을 위해서 여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3) 주인과 종 (성경: 갈 3:28; 또한 엡 6:5-9; 골 3:11, 3:22-4:1; 딛 2:9-10)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엡 6:5, 9...“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골 3:22, 4:1...“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임을 강조한다(골 3:11 참조). 그 안에서는 종족의 구분도, 신분의 구분도, 성별의 구분도 없이 한 새사람 그리스도인일 뿐이다(엡 2:15 참조). 그러나, 세상을 살아갈 때 거기에는 인종의 차이가 있고,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며, 또한 성별의 차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이를 다만 이 세상을 살 동안만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환경으로 여기되, 그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을 권면한다. 바울은 이 구절(엡 6:5-9/골 3:22-4:1)에서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전과 종의 관계를 당연시한 것이 아니라, 현 세상을 각각 다른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권고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세상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주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세상 상전에게 두려워하고 떨며(=극한적인 경외함으로 대하며) , 성실한 마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을 대함에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상전을 대할 때 겉과 속이 같게 대한 사람이 또한 하나님께도 이와 같이 할 수 있다. 상전이 종을 대할 때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하나님을 믿는 상전은 종을 의와 공평으로(골 4:1) 대할 것인데, 이는 그들도 후에 상전이신 하나님의 판단을 받는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국가 윤리 (성경: 롬 13:1-7) 롬 13: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권세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엑수시아”(ἐξουσία)인데 이는 ‘...로부터’란 뜻의 엑스(ἐξ)와 ‘본질, 본체, 소유’란 뜻의 우시아(οὐσία)의 합성어이다. 그러므로 “엑수시아”(ἐξουσία)는 ‘본질로부터,’ ‘본체로부터,’ 또는 ‘소유로부터’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곧, 권세란 것은 어떠한 권세이든 ‘본질 혹은 본체로부터 나와서 부여된 것’이란 뜻이다. 바울은 국가 권력의 권세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보고 있다(롬 12:1). 여기에 위정자의 책무도 있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한 정치를 베풀어야 할 것이다. 위정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한 정치를 베풀 때 그 나라의 백성은 위정자가 정한 법을 잘 준수하여 지킬 필요가 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선과 의의 정치를 하므로 이를 따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사람을 거스림이 아니요,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대행자를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롬 13:2). 세상의 관원은 하나님의 사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권한을 위임 받아서 악을 행하는 자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심판을 권세가 그에게 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의 권세에 굴복하고 선을 행해야 할 첫째 이유는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이렇게 할 때 양심에 거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은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한다(롬 13:7). 하나님께서 권한을 위임하신 세상 관원이 국가를 다스리기 위하여 제정한 국세와 공세를 바치는 것은 믿는 사람으로서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눈에 보이는 위정자가 정해 놓은 법규를 잘 지킬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도 잘 지켜 행할 수 있게 된다. 세상 위정자의 법령은 현세에서 구속하는 힘이 큰데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 현세에 구속하는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어기는 것은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6) 경제 윤리 (성경: 롬 15:25-27; 고후 8:1-15, 9:6; 빌 4:11-12) 롬 15:27...“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후 8:14...“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케 하려 함이라.” 빌 4:11-12...“내가 궁핍하므로 날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크리스천들도 이 세상에서 경제행위를 하며 살아간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능력과 시간을 최대한으로 경영하여 재물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자기만의 평안과 부를 축적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 것이 아니다. 예수는 부자 청년 관원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 나를 좇으라”(마 19:21; 막 10:21; 눅 18:22)고 말씀하셨지만, 바울은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나누어줄 것까지는 명하지 않고 ‘그의 유여한 몫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나누는’ “평균의 경제원리”를 당부하고 있다(롬 15:27; 고후 8:14). 바울의 이와 같은 경제 사상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걷게 하신 사건에서 유래하였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먹게 하셨는지에서 바울은 그의 경제 윤리적 사상을 배운 것이다. 출애굽기 16장 17-1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의 생각에, 하나님은 그의 자녀의 부족을 채워주시되 신앙공동체 안에서 서로 나누고 부족한 것을 보충함으로 그렇게 하신다고 믿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평균케 하시는 경제 원리에 따라 생활하는 삶이 크리스천의 경제 윤리의 삶이다.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의 예를 들어 “나눔의 미학(美學)”을 강조하였는데(고후 8:1-5), 이는 잠언 11장 24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한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후서 9장 6절에서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역설하고 있다. 경제인으로서 크리스천은 많이 거두기 위하여 신앙공동체 안에서 또한 밖에 이르기까지, 할 수만 있다면, 많은 것으로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크리스천이 이 생을 살아갈 때에 경제적인 여건에 따라 부할 수도 있고 가난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하여 그의 신앙이 너무나 크게 좌우되어서는 안될 것을 말한다. 풍부하거나 가난하거나 항상 자족할 수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빌 4:11-12). 바울이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해 하며 복음 증거에 힘쓴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등 삶의 기본적인 문제로 너무 크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즉, 크리스천은 그의 삶에서 기본적인 경제 여건으로 너무 염려할 것이 아니라 일용할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에 힘 쓸 것이다. 제 19 장 바울의 경제관 (Paul's View on Economy) 1. 성경에 나타난 경제(οἰκονομία)의 의미 (성경: 고전 9:16-17; 또한 엡 1:9, 3:2, 9; 골 1:25; 딤전 1:4; [비교] 눅 16:2-4) 고전 9:16-17...“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οἰκονομία)을 맡았노라.” 엡 3: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οἰκονομία)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골 1:25...“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οἰκονομία)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경제원론 교과서에 보면 ‘경제학은 인간의 경제행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정의하기도 한다. 자원의 희소성(scarcity)을 전제하고 있는 경제학은 ‘사람의 필요와 소용에 따라, 희소한 자원을 최적으로(optimal) 이용하기 위하여, 행하는 선택(choice)과 행동(action)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소비자(consumer)의 소비경제행위와 생산자(producer)의 생산경제행위,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는 시장에서의 시장경제행위를 다루는 분야를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 이라 하고, 국가차원에서 재정정책(fiscal policy)과 금융정책(monetary policy)을 적절히 운용하여 물가와 임금, 고용, 이자율 등의 조정을 다루는 분야를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이라고 부른다.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국제무역(international trade)도 이 거시경제학에 포함된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경제행위는 미시경제학이나 거시경제학에서와 같이 재화(財貨)와 직접·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행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광의(廣義)의 경제행위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고 하는 단어에서 보는 대로 한 나라를 움직이고 백성을 다스리고 구제(救濟)하는 전반적인 통치·행정행위를 의미한다.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도 말하자면 경제행위의 전반이라 할 수 있다. 수신(修身)은 개인의 경제원리(individual economic principle)요, 제가(齊家)는 가정의 경제원리(domestic economic principle)요, 치국(治國)은 국가의 경제원리(nation's economic principle)요, 평천하(平天下)는 세계의 경제원리(global economic principle)를 제시하여주는 것이다. 경제(economy)란 말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에서 유래되었다. 성경에서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의 일차적인 의미는 복음서(특히 누가복음)에 나타나 있는 대로, ‘가계 혹은 가사의 경영, 다른 사람의 소유에 대한 경영, 관리 및 감독, 혹은 경영자, 감독자, 청지기의 직무’를 의미한다. 누가복음 16:2-4에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의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청지기의 사무(16:4), 청지기의 직분(16:3, 4)이 경제란 말에 해당한다. 경제를 맡은 청지기(οἰκονόμος)는 현대적 표현으로 하면 전문(專門) 경제인(經濟人) 혹은 경영인(經營人)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경제(οἰκονομία)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복음증거의 사명(使命) 혹은 복음증거를 위한 청지기, 관리자(管理者)의 직분(職分)’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9장 17절에서 바울은 “내가 내 임의로 이것(=복음을 전함)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οἰκονομία)을 맡았노라”고 했는데, 여기서 직분은 성경적 경제인(=복음증거자)의 사명을 뜻한다(또한 고전 4:1 참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청지기). 셋째로, 경제(οἰκονομία)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예비된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경륜(經綸)’이란 뜻을 포함한다. 곧, 하나님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 할 것이다. 에베소서 1장 9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plan, RSV)을 위하여” (Greek 성경은 1:10...εἰς οἰκονομίαν τού πληρώματος); 3장 2절에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stewardship, RSV)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장 9절에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plan, RSV)이 어떠한 것을”에서 경륜(經綸)은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의 번역인데, ‘하나님의 경제’ 혹은 영어성경이 plan으로 번역했듯이 ‘하나님의 경제 (혹은 경세제민) 계획’을 뜻한다.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하나님의 경륜(office, RSV)을 따라”고 함과 디모데전서 1장 4절에서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training, RSV)을 이룸보다”라고 함도 하나님의 인간구원(人間救援)이란 경세제민 (혹은 경제) 계획 또는 정책을 뜻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대로 바울의 서신들에서는 경제(οἰκονομία)란 단어가 “복음 증거의 사명”(위의 두번째 의미)과 “하나님의 구원계획”(위의 세번째 의미)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두 의미가 무관(無關)한 것 같으나 사실은 상관이 크다.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인간) 구원계획”인데, 이는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의 경제계획”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전도자로서의 사명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경제계획”--“경제관”을 알리는 것이다. 2. 바울의 경제관(經濟觀): 평균의 경제원리 (성경: 롬 15:25-27; 고후 8:9-15, 9:6) 롬 15:27...“저희(=이방 교회 교인들)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후 8:13-14...“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平均)케 하려 함이니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補充)함은 후에 저희 유여(裕餘)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平均)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경제계획” 또는 “경제관”은 “인간 구원”인데, 영적인 의미로만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요, 물질적인 의미로서도 인간을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즉, 이 세상에서도 “부요한 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바울에게 있어서 “크리스천의 부요함”(고후 8:9 참고)이란 부의 편중으로 인한 안락한 생활이 아니라 크리스천 신앙의 공동체간에 유여(裕餘)한 것들을 나눔으로 평균적으로 향상(向上)된 경제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인간(소비자 혹은 생산자)의 경제원리는 극대화(maximization) 혹은 최적화(optimization)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은 효용(效用) 혹은 만족(滿足)을 극대화하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인에게 만족의 척도는 흔히 돈의 많고 적음이다. 직장을 선택할 때도 돈을 많이 준다고 하면 다른 조건들은 대충 받아들인다. 또, 기업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경영을 한다.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하여 때로는 경쟁사의 상품을 비방하고, 또 부정한 방법으로 판매이익을 늘이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제원리는 극대화(極大化)가 아닌 평균화(平均化=balanced out 혹은 averaged out)이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려 주시고 그들에게 이를 거두라고 명하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들판에서 만나를 거둘 때 어떤 이는 많이 거두고 또 어떤 이는 적게 거두었으나, 출애굽기 16장 18절에 보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다”(고후 8:15 참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고린도 교인들에게 모금하라고 할 때 고린도후서 8장 12-14절에서 하나님의 이 ‘평균(平均)의 경제원리’을 설명한다. 바울이 역사적 예수를 만난 적은 없었지만, 전해 들은 바,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공생애를 통하여 ‘평균(平均)의 경제원리’를 가르치시고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다. 첫째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그렇다. 다섯 개의 떡덩이와 두 마리의 물고기는 한 사람의 점심식사 분량이지만 이를 떼서 나눌 때 5,000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남기는 기적이 일어났다. 둘째는, 예수님의 생애(生涯) 자체가 평균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속한 모든 부요함을 가난한 자들, 병든 자들과 멸시받는 자들과 갇힌 자들을 위해서 나누어 주셨다. 나누어 주시되,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그의 전 소유와 생명을 희생하기까지 나누어 주셨다. 따라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라”고 진술함으로 그의 주장이 평균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모범”에 근거한 것임을 밝힌다. 즉, 그리스도의 오심은 사람들을 구원하시어 영적인 가나안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물질적으로도 구원함 받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성도의 물질적인 구원(救援)--하나님 인간 구원계획의 두 번째 목표--은 신앙 공동체 간의 나눔에서 가능하다는 것이 바울의 경제관(經濟觀)이다. 장로교의 창시자 칼빈(J. Calvin)도 평균의 경제원리에 대해서 말할 때, “부한 자는 그들의 물질적 부를 가난한 자와 나누어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고, 가난한 자는 영적 부를 부자와 나누어 갖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다. 따라서 부자는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나누어주는 일군(διάκονος: minister 혹은 servant)이요, 가난한 자는 영의 풍요로움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종(대리자=vicar)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될 때, 그 사회는 물질적, 영적인 부가 평균화되고 모두가 형편이 더 좋아지는(better off) 사회가 될 수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공유생활(common life: Commonism=공생주의)도 바울의 평균의 경제관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사도행전 2장 44절 이하에 보면, “믿는 사람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라는 한 몸의 지체로서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생활을 한 것이다. 초대교회의 공생주의(Commonism)는 평균화 경제원리에 따른 생활이다. 자본주의(Capitalism)는 각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벌어서 자기가 번 것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소비하는데, 한 가지 단점은 빈부의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공산주의(Communism)는 각자의 능력에 상관없이 똑같이 벌어 똑같이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상적인 것 같지만 능력이 많은 사람의 일할 의욕을 저하시켜 생산성(productivity)을 떨어뜨리고 따라서 사회 전체가 빈곤(貧困)하게 된다. 그러나, 평균화의 경제원리가 실현되는 사회는 개인의 능력이나 성취욕을 제한하거나 무시하는 공산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서 교회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취약점을 보완하게 한다. 평균화 경제원리의 실행은 정부나 기타 권력기관의 강제적 혹은 물리적인 법집행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후 8:1-5: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 공생주의(Commonism)는 자기 능력껏 일하여 일한 만큼 벌어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고 통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균화 경제원리에 따른 삶이라 할 것이다. 3. 크리스천의 경제윤리(經濟倫理) 하나님의 경제계획(=경륜)은 인간구원(人間救援)이라고 했다. 이 시대상황(時代狀況) 가운데 존재하는 교회의 경제계획도 인간구원이다. 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복음 증거자”로서 영혼의 구원이 물론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경제적 빈곤(貧困)으로 신음(呻吟)하고 자살(自殺)로까지 치닫는 이웃을 외면(外面)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즉, 이웃을 물질적으로 구원하는 것도, 바울에 따르면, 복음 증거자의 사명--물론 부차적(secondary)인 사명이긴 하지만--인 것이다. 이는 또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치심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양의 반열(班列)에 선 사람들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태 25:35-36)고 말씀하실 것이다. 크리스천의 경제윤리(經濟倫理)는, 칭의(稱義)를 얻은 자유자로서, 자유를 남용(濫用)하여 부정한 이익을 취함이 아니요, 지나친 낭비의 삶을 사는 것도 아니요, 근면하고 분수에 맞는 적절한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허례허식의 삶이 아니라, 이웃과 더불어 건전하고 모두의 형편이 좋아지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지혜롭고 선한 청지기(=경제인 혹은 경영인)의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나에게 주어진 재물이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므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웃을 위해 사용하고, 시간 역시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므로 부지런히 내게 맡기신 달란트를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이웃을 위해서 경영(經營)하는 삶을 살도록 교회가 앞장서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제 20 장 마치는 장 (Epilogue) 바울의 서신으로부터 그의 신학을 도출하고 그 중심 주제를 찾는 것이 용이한 일이 아님은 바울이 조직신학자가 아니며, 그의 서신들은 어떤 논제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전개되어 나간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울의 서신들은 사도가 교회 또는 개인을 수신인으로 하여 그들에게 문안하고 위로하고 권면하는 가운데, 그 교회나 개인의 특별한 상황(contingent situations) 가운데서 신앙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때로는 논리의 전개가 부드럽지 못하거나 때로는 한 논제의 마침 없이 다음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고린도후서가 특히 심한데, 해서 어떤 성경학자들은 고린도후서가 하나의 단일한 서신이 아니라 적어도 두 개이상 다섯 개 정도의 별개의 서신을 나중에 편집자가 모아서 함께 묶어 놓은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 위에 바울 서신들에서 어떤 통일적인 핵심 주제를 찾기가 힘든 이유는 바울이란 사람을 이해하기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그는 2,000년전 사람이고, 현재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종교적 환경 가운데서 자라고, 교육 받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가 혈통으로는 유대인이지만, 그가 태어난 곳은 소아시아 다소라고 하는 문명으로는 헬레니즘이요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영향권 하에 놓여 있는 곳이었다. 문화적, 정치적, 언어적, 종교적, 그리고 철학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환경 가운데 성장한 사람으로서 바울의 사고(思考) 체계와 언어적 표현도 결코 단순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유대적 영향인가 하면, 헬라적 요소가 있는 것 같으며, 이방 신비종교의 요소도 그의 표현 가운데 발견됨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이나 사고의 암시를 발견한다고 해서 그를 그러한 종교의 범주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다만 문화적, 환경적 소산이지 그의 신학 사상이라고 결론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의 신학을 연구하기가 힘든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신학의 형성이 그의 다메섹 체험을 비롯하여 그의 전도 여행들과 반대자들과의 변론 등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데, 그의 서신들에 나타난 기록만 가지고는 그 반대자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쟁점들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포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에 나오는 반대자들을 흔히 유대주의 크리스천들이라고 하지만, 세 서신에 등장하는 반대자들이 결코 단순하게 한 동일한 그룹의 사람들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떤 학자들은 고린도전서에 나타난 반대자들이 복수 그룹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영지주의에 속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종종 서신들에 나타난 반대자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기에, 바울의 변론의 핵심 또한 확실하게 포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바울의 신학 연구가 어려운 것은 또한 그의 삶의 체험들에 대한 자료가--특히 그의 서신들에 나타난 일차적 자료가 너무 단편적이어서 그의 삶의 경험에서 나온 사상의 흐름들을 바르게 연결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차 자료인 사도행전은 비교적 바울의 여행일정(itinerary)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건들이 때로는 바울 자신의 기록과 어긋나는 곳들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바울 자신의 기록들과 사도행전의 기록들에 차이가 있을 때 그 원인을 규명하려고 하기보다는 대충적으로 조화시키거나 절충방안을 모색하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더 역사성(歷史性)이 떨어지는 사실(?)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전승이나 외경적인 기록들을 경시하여 물리치는 학자들이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끌여들어 기정사실화하는 것도 사도의 삶의 역사를 왜곡하고 오히려 잘못된 주장을 일삼게 만든다. 바울의 서신들에서 그의 신학을 이끌어내고, 그뿐아니라 중심 출입구 혹은 핵심 주제를 얻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무리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바울의 서신들이 특정한 상황에 있는 교회(나 개인)에게 보낸 비조직적이고 비체계적인 편지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를 찾고자 하는 학자들의 노력은 무엇을 말하는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바울의 서신들 속에 나타난 그의 가르침들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신학에 중심 주제가 있는가?’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한 “이신칭의”가 바울 서신 전부를 대변할 수 있는 중심 주제인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을 놓고 본다면, 이 주장은 상당히 타당하며 설득력이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나 빌립보서, 또 빌레몬서 등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교리를 주장한 서신들인가? 여기에는 확실한 답을 못하게 된다. 그러면, 슈바이처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Christ-Mysticism)이 모든 서신에 공통된 중심 주제인가? 이 또한 서신들의 부분만을 고려할 때는 맞는 말이나, 전체 서신을 놓고 볼 때는 긍정적인 답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면,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는 없는가?’ 그리스도에 연관된 주제를 선택하되 한 면만을 고려할 때는 무엇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한 개 혹은 두세 개 서신의 중심 주제는 될지언정, 바울 서신 전체를 카버하는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가 될 수 없다. 바울은 그렇게 단순한 사고의 사람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그의 반대자들의 반대와 논쟁도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바울의 변론은 단순한 것같으면서도 복합적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변론의 중심에 단순하신 그리스도가 계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요 형상 되시며, 다른 어떠한 외적 첨가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그리스도께서 바울 신학의 중심에 위치하신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그리스도--“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바울 신학의 중심 주제라고 생각한다고전 2:2; 갈 6:14 참고). 이 바울의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서’ 구원론(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기독론(빌립보서와 빌레몬서; 또한 에베소서, 골로새서), 종말론(데살로니가전서; 또한 데살로니가후서), 교회론(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또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의 주체가 되셨다. 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강조한 것이 “이신칭의”의 교리요, 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 것이 “그리스도 신비주의”(Christ-Mysticism)이요, 이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을 강조한 것이 “기독론적 종말론”이지만, 이 어떠한 것도 부분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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