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모음!! 교회력!!

[스크랩] 교회력에 관한 고찰

하나님아들 2012. 11. 25. 23:39

교회력에 관한 고찰


1. 들어가는 말

교회력이라는 표현은 공식적으로는 1589년 루터교 목사인 요한 포마리우스(Johann Pomarius)의 한 설교집에서 발견되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교회력의 발전을 연구하여볼 때 그 기원을 초대교회서부터 살펴보아야만 한다. 또한 이러한 발전은 오늘날 이미 완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교회력에 대해 피우스 5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예전력(das liturgische Jahr) 단순히 오래 전에 지나간 일에 대한 무미건조하고 생명력 없는 표현이 아니며 또한 지난 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단순히 기억을 더듬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인 교회 안에 영존 함을 의미한다. 그는 그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길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은혜를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삶 속에 그의 선하심을 나타내심으로 생명력 넘치는 모습으로 인간들이 주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인식하도록, 또한 이러한 섭리는 현재에도 계속됨을 인식하도록 하셨다.”
교회는 마치 초기에 감독, 교회법, 신약성서 및 신조 등이 없었듯이 처음부터 교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교회는 4세기까지 로마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였다. 교회는 콘스탄틴에 의해 지하운동이라는 낙인을 지울 수 있었다. 비록 교회는 313년에 로마로부터 인정되었지만 교회력의 시작은 훨씬 이전에 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력은 중세기에는 일반력이 교회력에 종속되어서 일반 공휴일은 교회의 경축일이었다. 이러므로 재판도 중지되고, 전쟁도 그쳤고, 상점도 문을 닫고 모든 일이 다 중지되었다.
근년에 이르러 교회는 예배예전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종교개혁 당시 보수적인 교회들은 서방교회의 유산에 대해 한층 고맙게 여기게 되었고, 이와 반대로 16세기에 강한 개혁을 주장하였던 교회들은 잃어버린 전통과 예전들을 되찾는 노력을 하였다. 이중에 하나가 교회력이다.
이러한 교회력은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첫째는 주일 곧 일요일(Sonntag)을 주님의 날로서 예배드리고 있고, 둘째로는 주님께서 구속의 역사에 따라 그 시기와 사고들을 인식시키는 형태이다. 여기서 주일과 기타 교회력에 관하여 잠시 살펴보기로 한다.

2. 주일

유대교적인 유산으로부터 초대 기독교인들은 매일의 기도시간과 안식일을 통하여 성일을 지키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7일로 된 주제도(週制度)가 유대교에서 유래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주간은 고대에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로마시대에 1주일은 8일이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 전한 7일 주제도는 그 기원을 서아시아에 두고 있다. 이 주중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에 유대인들은 금식하였고,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다. 이에 비해 기독교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하였고, 주일을 성일로 지키고 있다.
주일을 성일로 지키고 있는 가장 오래된 증거로서 우리는 고전 16장 2절과 행 20장 7절을 들 수 있다. 1세기말에 비로소 처음으로 ‘주님의 날’이라는 이름이 나타난다(계 1장 10절). 이 ‘주님의 날’은 바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과 동일시되고 있다. 110년경에 편집되어 당시 교회생활을 알려주는 중요한 책인 ?디다케(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는 주일에 모여 성찬 성례전을 행했음을 전하여주고 있다: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리고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에게서 정확히 “일요일(Sonntag)”이라는 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로부터 초기 기독교인들은 점차 안식일인 토요일이 아닌 주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찬 성례전을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321년 로마황제 콘스탄틴(Konstantin)은 기독교의 일요일에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하였다. 그는 일요일을 휴일로 공인하였다. 이로써 이제 일요일은 예배의 날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일요일은 다른 기독교 기념일들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준수되는 유대교의 안식일과 연결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됨으로서 일요일 준수는 교회의 규정들에 의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4, 5, 6세기 동안에 많은 교회회의들과 제국의 법들이 일요일의 적절한 준수를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일은 기독교의 많은 축일 가운데 가장 오래 된 것으로서, 교회력의 기초와 핵심이 되는 날로서 그 위치와 중요성이 불변한 가운데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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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3. 주요 교회력

3.1 대강절

성탄절 절기는 일정한 기간을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기간이 포함되고 있다. 이 절기가 바로 대강절(Advent)이다. 이 대강절 기간은 12월 25일 성탄절 4주전에 시작된다.
초기에는 동방교회의 영향이 스페인과 고올(Gallien)지방에서 로마교회의 것보다 더 강하였다. 스페인에서는 4세기에 3주간의 준비가 12월 17일에 시작되어 1월 6일까지 지속되었고, 이 기간에 날마다 교회에 출석하도록 되었다. 이 관습은 스페인에서 고올로 전해졌으며 여기서 북 이탈리아로 전해졌다. 4세기에서 7세기까지는 이 대강절의 기간은 다양하게 지켜졌다. 즉 3주간에서 7주간까지 여러 가지로 지켰다. 고올 지방에서는 11월 11일에 시작되었다. 이 절기는 6세기 중엽까지도 로마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6세기 후반에야 성탄절 전 4주를 지키기 시작하였다. 그레고리 대제 하에 비로소 오늘날에 잘 알려진 대강절 예전이 확고하게 되어졌다. 처음에 대강절은 참회의 절기로는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또한 수난절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2세기에 어떤 곳에서는 흰색 제단색깔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할렐루야 찬양은 대림절 기간에 사용되었으나, ‘대영광송(Gloria in excelsis)’는 예전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제단색깔이 보라색으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강절이 점점 엄숙하게 되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결혼을 이기간에 삼가게 되었다. 또한 꽃 장식이나 오르간 연주가 제한을 받기도 하였다.
대강절 기간인 4주간 동안에 교회와 가정에서 ‘대강절 트리’나 ‘대강절 화환’을 만드는 관습이 유행하였으며, 오늘날 이 관습은 성행하고 있다. 대강절 트리는 화분에 심어 첫째 주일부터 매일 혹은 매주일 새 촛불을 하나씩 달아 장식하는 작은 전나무나 가문비나무이다. 새 촛불을 하나씩 더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읽고 기록하여 옆에 놓아두었다. 새 촛불을 하나씩 켤 때마다 이미 달아놓은 촛들도 다 같이 환하게 켠다. 이리하여 성탄절 이브에는 나무가 온통 촛불로 환하게 밝혀진다. 대강절 화환은 교회나 가정에서 매다는 가문비나무나 전나무로 만든 화환이다. 대강절 첫째 주일에 붉은 초 하나를 화환에 달고 불을 켠다. 대강절 주일마다 다른 초를 하나씩 더 켠다. 가정에서는 날마다 흰 초를 하나씩 더하며, 때로는 한편에는 구약예언을 기록하고, 다른 편에는 신약의 성취를 기록한 종이별을 첨가하기도 한다.
대강절은 주님께서 성탄절에 육으로 오시며, 또한 주님께서 말씀과 영으로 오시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대강절의 주제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단순히 ‘성탄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종말론적이었다. 즉 주님께서 마지막 때에 영광으로 오심을 온 성도들이 기대하며 준비하는 기간이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대강절에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과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3.2 성탄절

사도신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밖이시고, 3일만에 부활하여 승천하심에 대한 고백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와 더불어 짧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고백도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교회의 한 절기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성탄절과 그 절기는 부활보다 훨씬 늦게 형성되었다. 여기에는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였던 영지주의와의 싸움이 그 원인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정확한 연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학자들은 월력에 따라 그의 탄생의 해를 주전 4년으로 보고 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늦가을이나 겨울에 탄생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예수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은 아우구스투스 황제(Caesar Augustus)의 명령에 따라 실시된 인구 조사에 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였다(눅 2장 1-7절). 이러한 인구조사는 농업국에서는 모든 추수가 끝난 후 가을 파종이 완료된 후에 되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가지 그의 생애와 업적, 특히 그의 부활이 그의 자세한 초년에 대한 것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 세기 동안 아무도 주님의 탄생에 대하여 커다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해서 사람은 상징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정하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주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날이 1월 6일이었다. 4세기초에 로마에 의해 12월 25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기념하기에 이르렀다. 이 날은 당시의 동지였다. 이날은 연중 해가 제일 짧은 날이었고, 이후부터 해가 날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이 날이 태양과 관련되어 선택되었음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태양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탄생은 태양이 떠오름을 의미하였고, 그의 부활이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해돋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위해 해돋이였다. 그러므로 의의 태양이신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유추를 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는 안디옥에서는 375년경에 지켜지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5세기에 지켜졌다. 이것은 점차로 주현절에 촉매작용을 불러 일으켜 그리스도의 탄생을 옮기게 하였다.
주후 400년경에는 로마의 경기장에서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주현절에는 경기가 금지되었고, 점차로 교회력의 다른 주요 경축과 함께 고대 영어 명칭으로 ‘그리스도의 미사(Christ's Mass)’인 크리스마스는 오랜 동안 길게 연장되었다. 독일에서 크리스마스가 2-3일 동안 계속되었다. 영국에서는 일반 경축기간이 크리스마스에서 열두 번째 밤(Twelfth Night)로 널리 알려진 주현절까지 연장되었다. 이러한 관습에 대해 많은 이견이 나타났다. 청교도들은 크롬웰이 17세기에 영국을 다스리는 동안 크리스마스를 반대하였다. 1644년에서 1660년까지 이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교회의 예배가 금지되었고 급기야는 교회 문을 열지 못하였다. 곧 평상시대로 일을 계속하였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 절기는 어리석은 자들의 절기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또한 스코틀랜드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것이 로마 가톨릭 제도의 흔적으로 보았다.
이러한 크리스마스는 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민속적 관습과 풍물들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관습들과 풍물들 가운데는 기독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이러한 관습들이 이날의 의미를 흐리게 되어질 때 우리는 이것을 중단하여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 거룩한 절기의 메시지는 우선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야한다.

3.3 주현절

부활절부터 오순절 다음가는 절기로서 교회력의 절기 중에서 오래된 것이 주현절이다. 주현절의 의미는 ‘주님이 나타나심’이라는 뜻이다. 학자들은 이 절기의 근원을 2세기에 소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발견하였다. 여기서 1월 6일은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를 기념하는 날로 지켜졌다. 또한 후에 로마에서 발전한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이 주현절도 그 기원을 이교도의 축제일에서 근원을 발견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1월 6일은 동지로 지켜지고 있었다. 테베의 아메넴헷 1세(Amenemhet I of Thebes)가 통치하던 주전 1996년에 동지는 1월 6일이었다. 바로 전날부터 시작되는 밤의 축제는 동정녀인 코레(Kore)로부터 탄생한 에온(Aion)을 축하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자 계산의 과오로 인하여 지일(至日)은 1월 6일이 아니었으나 축제는 이에 상관없이 지속되었다.
‘주현(Epiphanie)’라는 단어는 동방에서 ‘주의 오심(das Kommen des Herrn)’을 이 축제로 기뻐하려 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헬라어 ?πι??νεια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는 ‘신적인 존재’가 인간 세상에 ‘나타남’과 또한 통치자가 한 도시에 방문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헬라 교부들 사이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 아들의 성육신을 말할 때에 사용되었다. 또한 동시에 빛을 상징하는 의미와 관련하여 이 단어는 사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나타나셨다.
주현절은 신의 출현제(Theophany), 시현 경축(Feast of the Manifestation), 빛의 경축, 그리스도의 시현의 경축 등으로 불리워졌다. 주현절에 기념된 최초의 것은 예수님의 탄생과 세례였다. 또한 고대 민간신앙에서 1월 5일은 포도주와 관련되어있다. 즉 이날에 물대신 포도주가 제공되었다. 이는 1월 5-6일에 많은 근동지방에서는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민간신앙은 교회에게 주현절에 가나에서 행하신 곧 최초의 기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과 또한 세례에 대한 생각들을 관련시켰다. 세례시 물은 놀라운 힘 곧 조명(照明)의 힘을 지닌다고 여겼다: 이러한 생각에서 세례는 조명(照明)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주님이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주현절은 4세기에 서방교회에서도 지키었다. 이 절기는 동방과 서방교회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절기가 동방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와 관련되어 경축되어 세례축하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에 반해 서방교회는 동방의 영향아래 있던 고올과 스페인 지방 외에 대체로 주현절을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와 결부시키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동방의 박사들의 베들레헴 방문과 관련시켜 이 날을 기념하였다. 곧 이 그리스도의 탄생은 더 이상 비밀스러운 사실이 아니라 온 세상에 이미 알려진 새로운 왕의 탄생과 관련시켰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확실하지는 않으나 4세기에 동방박사들의 유물들을 콘스탄티노풀에서 밀란으로 옮긴 데 기인하였을 것이다. 신학적으로 이 동·서방이 지켰던 주현절의 차이는 로마의 예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성육신의 신비는 두 번 나타난다. 즉 성탄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그것도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념하는 것이고, 이에 비해 주현절에서 이 인간 되신 하나님의 빛이 온 세상에 비추는 거룩하심과 관련된다. 또한 요단강의 세례와 가나잔치에서의 기적은 이와 관련하여 신비로운 축제에 포함된다: “예수께서 그 영광을 나타내시었다(요 2장 11절).”
주현절은 중세기 독일에서 매우 중요한 절기로 여기어졌다. 동방박사들의 유물이 밀란에서 콜른(Cologne)으로 옮겨졌고 이날은 중요한 날이 되었다. 루터는 1월 6일을 ‘세 동방박사의 날’로 또한 동시에 ‘주현의 날’로 명명하였고, 동시에 이 축제의 내용으로 주님의 세례에 그 강조점을 두었다. 이러한 루터의 관점에 따라 16세기 루터교 예배 의식은 이날을 큰 경축일로 지켰다.
동방교회에서는 주현절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있다. 주현절은 부활절 다음으로 세례를 주는 절기이다. 한때 완전히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물에 대한 축복예식은 동방교회가 있었던 곳에서는 어디서나 일종의 민속적 축제로 계속되어지고 있다. 성직자는 바다나 강으로 나아가 기도를 하고, 수영자들이 건져오는 십자가를 물 속으로 던지기도 한다. 어떤 동방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옛 교회력에 준하여 행하기 때문에 이 날이 1월 18일에 오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와 이 주현절 중간기간은 서 유럽에서는 휴일이었다. 주현절은 영국에서는 열두번째 날이었으며, 이 주현절 이브는 잘 알려진 섹스피어의 연극 중 한 제호가 되었다. 또한 크리스마스와 주현절 사이에 있는 금요일들은 금식에서 제외되었다. 중세기 영국에서는 주현절 다음 월요일이 ‘밭갈이 월요일(Plough Monday)’로 밭갈이가 시작되는 날이었고, 경작하고 파종하는 일에 창조주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현절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보게 되며 이 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음을 상기하는 귀한 기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 빛으로 자신을 태우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절에 다시 점화되는 역사를 조명하는 계절이 되어야한다.


3.4 사순절

사순절의 기원은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다. 즉 파스카(Pascha)절 앞에 오는 금식과 세례지망자들을 위해 마련된 준비기간이다. 성주간은 전자에서, 수난절의 다른 부분은 후자에서 발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파스카절은 원시교회에서 수난과 부활을 다 포함하는 구속의 기념이었다. 이 예배 중 초기 특징의 하나는 토요일 밤에 베풀어지는 세례이었다. 초기 4세기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절차는 쉽지 않았다. 하나의 지하 조직으로서 교회는 모든 후보자를 세심히 점검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검 기간은 보통 부활절 때 거행되는 세례로 교인으로 받아들임으로 끝이 났다. 후보자는 금식을 하여야 했었고, 정기적인 시험이나 검사를 받아야했었다. 4세기 중엽 세례지망자들은 예루살렘에서 40일간 금식하여 부활절에 끝이 났다. 주후 313년 신앙 자유령에 따라 기독교가 공인고어 세례준비기간이었던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반적인 기간으로 준비되었다. 수난절이 시작되는 참회 수요일은 부활절 40일전에 온다(주일은 제외됨). 수난절 첫째 주일 앞에 4일을 더 첨가한 것은 6세기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전체금식 일수를 주님께서 금식하신 40일로 만들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절기는 교회는 이 절기를 엄숙한 예배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생활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의 결혼도 이기간에는 금지하면서 육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금식을 하면서 참회하는 기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므로 주님께서 겪으신 수난 때문에 구원의 반열에 동참하게 된 사실을 상기하도록 하였다.

3.5 부활절

부활절은 초기 3세기를 통해 모든 교회가 지켰던 유일한 절기이다. 또한 이 부활절은 교회력의 모든 절기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교회력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다. 이 부활절(독: Ostern, 영: Easter) 명칭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부활절과 그 기쁨과 승리의 기분은 원시 교회의 정신을 지배하였다. 이 부활절은 초대 설교자들의 전도 활동의 원동력이었으며 동시에 설교의 핵심이 되었다.
2세기 후기에는 이 부활절을 언제 지키느냐가 논쟁이 되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의 구원이 유대의 절기인 유월절과 연결된 후에, 이것은 기독교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지켜지게 되었다. 즉 오늘날까지 이 부활절은 달력으로는 유대교의 유월절과 연결되어있다. 서아시아에서는 부활절을 유대교의 유월절인 Nisan월 14일에 시작하였다. 이에 반해 로마에서는 Nisan월 14일이 지난 후 주일을 부활절로 지켰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인들이 유월절 날을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 부활절이 음력으로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주중의 날에 관계없이 3일 후에 지켜졌다. 이들은 성금요일을 Nisan월 14일이라 믿었다. 이에 따르면 한 예로서 성금요일(Nisan월 14일)이 당해 화요일로 되면 부활절은 목요일에 지켜졌다.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은 “Quartodecimans(열 넷째 날장이)”라 불리었다. 이에 반해 서방에서는 부활절이 언제나 일요일 즉 부활일에 지켜져야 하며 십자가 처형은 언제나 금요일에 기념되어야 한다고 여기어졌다. 서방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중(週中)의 날이 중요하였고, 동방교회에는 달(月)이 중요시되었다. 이 분쟁은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해결되었다. 여기서는 달과 주중의 날이 다 인정되도록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부활절을 춘분 다음 첫 만월 후 첫째 주일에 지키기로 하였다. 부활절은 언제나 유월절 때에 온다는 것과 또 언제나 주일에 온다함을 양측에 확증시켜주었다. 그러나 춘분을 정하는 데에도 난점이 생김에 따라 3월 18일부터 25일 사이의 여러 날자가 사용되어 상이한 부활절을 지켜왔다. 5세기에 이르러 천문학과 수학 연구가 활발하였던 알렉산드리아 감독에게 해마다 부활절 일자를 정하는 책임이 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날짜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활절에 주님께서 고난 가운데서 역사 하시고 또한 부활하심으로 완성하신 그 주님의 구원하심을 감사하며 또한 기리고 있다. 그러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주님의 부활은 그들 생활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이 부활절은 토요일 저녁부터 주일까지 지켜졌다. 이와 함께 주님의 부활이 성도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도록 7주간 동안 부활 주간이 계속되었다. 부활절은 토요일저녁 예배로 시작하였다. 이 예배는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을 감사하며 밤새 진행되었고, 성서낭독이 있었으며, 세례식과 성찬 성례전이 거행되었고, 아마도 촛불예배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부활절에 대해 딕스(Dom Gregory Dix)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부활절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역사적인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고 기념하기보다는 구원에 관한 예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승천은 물론 이 구원의 역사를 완성하는 방법이었다. ‘그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시간과 죄,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고난, 부활, 그리고 승천의 사건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속에 분리되어 있지는 않았다.

4세기에 이르러 부활절이 성금요일과 연관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즉 고난과 무덤에 묻힘, 그리고 부활로 이어지는 3일(Triduum)의 연속성이 부각되었다. 이 시기에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다수의 시편들이 예배에 사용되었고, 목요일에는 시편 68-76편만이 사용되었다. 이는 목요일은 당시의 부활절 3일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부활절과 관련되어 많은 관습들이 생겨났다. 어떤 것은 기독교적인 것이고, 다른 어떤 것은 비기독교적인 것이다. 일부 동방교회에서는 사제들이 부활절 전날에 교인들의 각 가정들을 찾아가 부활절 음식에 축복하여 주는 관례가 남아 있다. 이는 원래 오랜 수난절 금식 기간 동안에 금지되었던 음식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일부 중세기 교회에서는 수난절 초에 강단에 묻어 놓았던 관에서 알렐루야를 다시 꺼내거나 혹은 성 금요일에 안치한 관에서 그리스도의 초상이나 십자가 등을 꺼내는 관습이 행하여졌다.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는 부활절에 달걀 염색과 달걀 굴리기가 행해졌다. 이 달걀 굴리기는 백악관에서 매디슨(Madison)대통령에 의해 다시 시작되었다.
유럽에서는 잘 준비된 부활절 연극이 부활절 이브에 상연되었다. 스위스 고올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14세기의 한 대본에 따르면 부활절 극이 9막 35장에 이르고 있다. 이 대본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서 부활까지 다루고 있다. 또한 홀란드에서는 여기에 창조, 루시퍼의 타락, 인간의 타락, 발람, 이사야 그리고 구세주를 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 주간의 첫날에 이루어진 부활의 역사는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큰 생명이다. 그러므로 매 주일은 주님의 날로서 기독교 교회력에서는 또한 이를 작은 부활절로 강조하고 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과 영광을 함께 하는 새로운 존재를 경험하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

4. 교회력 색깔

교회절기가 변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강단(Altar), 설교대(Pulpit), 교독대(Lectern), 예복과 드림천(Stole)의 구별된 색깔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특정한 날에 특정한 색깔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198년에 교황이 된 이노센트 3세가 처음으로 색깔의 순서를 말하여주고 있다. 그는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기념일과 오순절을 위하여 붉은 색을 지정하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수난절과 대강절은 검은색이었다. 흰색은 교회력 전반부에 어떤 색깔이 지정되어 있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보통 색깔로 사용되었다. 녹색은 오순절 이후 보통 날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색깔은 고정된어 있지 않고 옅은 색이나 대용색도 허용되었다. 즉 녹색 대신 노랑색, 검은색 대신 보라색, 빨간색 대신에 주홍색 등이 대체되어 사용되었다.
종교개혁 이전의 예식서에서 보면 영국에서 시골교회들은 흰색과 빨간색 두 가지만 사용되었음이 나타난다. 빨간색은 보통의 주일과 기념일들 그리고 순교자의 기념일에 사용되었다. 이를 제외한 특별한 날에는 흰색이 사용되었다. 여기에 또한 다른 색들이 선택되어 사용되었다. 예들 들면 대강절과 수난절에는 보라색이나 자색, 성 삼위일체 주일 이후 주중에는 녹색도 사용되었다.
이러한 색깔들은 그 색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의미를 색깔에 따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보라색: 위험과 존엄을 의미하고 있다. 즉 오시는 왕을 위한 임금을 나타내며 위엄과 존엄을 암시하고 있다. 엄숙성을 나타내며 청결과 영적 씻음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줌을 나타내고 있다.
흰색: 성결과 순결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는 절기에 사용하는 색으로 기쁨, 빛, 즐거움을 암시한다. 연중 최상의 거룩한 날로 지키는 풍요함을 나타낸다.
빨간색: 보혈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희생과 수난의 표이며 또한 성령의 불을 상징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희생적인 삶을 의미하며 교회의 순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초록색: 성장을 의미. 영원성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영원불변과 종교적인 소망의 신선함을 의미. 영적인 성장과 희망, 성결, 생명을 상징.

4. 나가는 말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 가운데 역사하고 있다. 베들레헴의 구유, 동정녀 마리아, 제자들, 십자가와 동산의 빈 무덤 등은 모두 시간 가운데 있었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변화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회력에 따라 주님의 생애를 통해 일어난 사건들과 이 사건들이 주는 의미를 인식하며 생활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생활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옷의 모습에서 우리는 계절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한 가정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커튼의 색상에 변화를 주기도하고 새롭게 집을 단장하기도 한다. 예배하는 공동체인 교회가 절기에 맞는 예배의 진행을 가져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일은 인간을 위함이 아니요, 하나님과 만남을 가져오는 방편이 바로 이 교회력이다. 이러한 교회력에 대한 이해를 통해 주님을 만나고 깊은 경험과 감명이 있는 예배가 되었으면 한다.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호두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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