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들

하나님아들 2023. 9. 15. 20:33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들     

 

 

기독교 종말론

 

역사적 전천년설/세대주의적 전천년설/무천년설/후천년설

 

기독교 종말론에는 네 가지 관점을 다룬다

네 개의 종말론은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지만 종말론의 복잡한 미로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야 한다

어떤 종말론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적인 방향성이 확연히 달라진다

종말론을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레니엄이다

밀레니엄(Millennium)은 라틴어로 "천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헬라어로는 킬리아즘(Chiliasm)으로 요한계시록 20장에서 여섯 번 사용되었다

1. 전천년설 :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있다는 형태다

2.후천년설 :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후에 있다는 형태다

두 가지 형태에는 각각 두 가지 관점이 있다

1-1. 역사적 전천년설

1-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2-1. 무천년설

2-2. 후천년설

사람마다 네 가지 종말론 중에서 선호하는 종말론이 있다

필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옹호하지만 다른 종말론도 학문적 입장에서는 존중한다

하지만 네 가지 중에 가라지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전천년설에도 두 갈래가 있다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구분하는 특징은 휴거의 위치다

환난전 휴거론을 세대적 전천년설이고 환난후 전천년설을 역사적 전천년설이라 한다

후천년설에도 두 갈래가 있다

무천년설은 문자적 천년 왕국과 7년 환난이 없다는 견해이며 재림은 교회시대의 끝에 일어난다

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후에 있다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에는 교회의 휴거가 없다는 것에서 큰 특징을 보인다

후천년설에서 주장하는 재림의 위치와 휴거의 부재는 두 가지 요소 모두 필자가 선호하지 않는 견해지만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후천년설을 지지한다

교회와 신학대학에서 휴거를 설교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말씀을 지나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신자의 삶과 종말의 미래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종말과 미래에 대한 약속과 소망을 차단하여 빛의 행실을 억제시킨다고 볼 수 있다

 

1. 역사적 전천년설

무천년주의자는 인정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전천년왕국설은 초기 교회사에서 지배적인 관점이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몬타누스주의자들에 의해 한번 쇠퇴를 가져왔고

이차적으로 근대의 신학자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경향에 영향을 받았다

신학자들은 성경 본문을 점점 영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했다

알레고리 성경해석은 풍유적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의미다

역사적 성경해석과 함께 양대 성경해석 방법론이다

성경은 다양한 수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문자적 의미와는 반대적으로 쓰이는 영적 의미, 그리고 신비적 의미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처럼 실제의 삶과의 연결성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문자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데 그렇게 되면 성경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자신들의 역할은 축소되기 때문이다

몬타누스파는 2세기 소아시아에 있었던 기독교의 일파이다

창시자인 몬타누스(AD 135~177년)의 이름을 따서 몬타주스주의라고도 하며, 주류파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초대교회처럼 방언을 하고 예언도 했다

예수께서 약속한 보혜사 성령이 그러한 은사들을 준다고 주장했다

여자 예언자 중에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부이자 신학자로 삼위일체 신학 용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터툴리안도 몬타누스파였다

그런데 몬타누스파는 어떻게 이단으로 낙인이 찍혔을까?

프리스킬라와 막시밀라 두 여자는 신사도의 부작용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성령 은사 과정에서 웃거나 울거나 낯선 광경을 보여 주었다

AD 397년 제2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서 몬타누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한 후 교회에서 예언이나 방언 같은 표적이 사라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의회를 믿는다고 암송하는 것은 부정적이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오용이 발견되었지만 바울의 지도로 올바른 모습을 찾아갔다

바울과 제자들도 자신의 세대에 주님이 올 것이라는 임박한 종말론을 언급했었다

그러나 공의회와 교단에서 교회의 부작용을 올바르게 지도하여 고치는 방식이 아니라 이단으로 정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성경적 방식까지 모두 제거하는 부작용을 가져오며 형제들을 잃게 한다

한국에서 일어난 다미 선교회의 휴거 해프닝도 같은 맥락이다

교회사에서 드러난 성령의 오용을 보고 성령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은사를 가르쳐야 했다

교회사에서 나타난 시한부 종말론을 보고 종말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종말론을 지도했어야 했다

공의회에 속한 자들은 이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기보다는 교회사의 부작용을 연구하여 이단으로 몰리지 않는 방법을 선호한다

공의회에서 사람들을 파견하여 진단한 후에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지도하는 방식을 채택했어야 했다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와 종말론이 사라지게 된 것은 공의회와 교단들의 역할이 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성령 훼방자들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이를 빗대는 것이 있다

"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구더기가 무서워 고추장이나 된장을 집에 두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의회원들이 장을 담그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것은 지리멸렬이나 다름없다

교단이 성경적 권고를 우선하기보다 이단으로 정죄하려는 유혹을 먼저 받는다

주님은 3단계에 걸쳐 권면하라 하셨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5~17)

1단계 : 개인 면담 및 권면

2단계 : 단체 면담 및 권면

3단계 : 교회 면담 및 권면

성령 사역자들도 품위와 질서, 겸손으로 행동해야 하고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교회사에서 일어난 부작용을 보고 반응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미련하고 이기적인 지도자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지 않기 위해 먼저 정죄하는 방식을 취한다

성령과 성경 안에서 행하는 지혜로운 신자들은 올바른 교훈을 받고 개선하는 방식을 취한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전천년설은 환난후 휴거라는 측면에서 선호하지 않는다

건강한 종말론은 교회사에 일어난 부작용 때문에 침해를 받았고 변질되는 과정을 거쳤다

 

 

2.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함>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는 종말론으로 가장 바람직하다

반면에 무천년설은 성경적 관점을 훼손한다는 가장 큰 증거가 있는데

무천년주의자는 실제로 재림과 휴거를 설교하지 않는 경향이 높으며 재림을 위한 긴장된 삶을 살아가도록 독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신자들의 종말론적 초점을 왜곡시키고 신자들의 삶에서 재림을 대망하지 않게 만든다

오고 가는 세대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을 빼앗는 것은 사실상 올바른 종말론이 아니다

반대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준비하게 만드는 것은 세대주의적 종말론이다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환난전 휴거를 지지한다

주님께서 도둑같이 돌발적으로 오신다는 방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

대비적인 종말론의 형태는 세대주의적 종말론과 무천년설과의 두 가지 쟁점으로도 볼 수 있다

무천년주의자는 천년왕국에 대한 소망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관심을 빼앗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현실적으로 너무 괴리가 있다

왜냐하면 세대주의자는 천년왕국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강림과 휴거를 통한 혼인잔치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세대주의 비판에 대한 변증>

세대주의적 종말론의 초점은 천년왕국에 집중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문자적으로 성취될 것을 지지한다

세대주의 종말론이 받는 비판중의 하나는 환난을 통과하지 않거나 환난을 피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의인들과 악인들은 함께 심판하지 않는 것은 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방식이다

노아 홍수 심판과 고돔과 고모라 심판에서도 이 사실을 내증한다

교회가 시대의 징조들을 살피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대환난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깨어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무천년설은 휴거도 없고 대환난에 대한 긴장감도 없고 심판도 없고 분리되는 일도 없다

노아 홍수와 소돔의 심판은 인류가 최종적으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교훈을 주고 있다

이것은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심판을 의미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심판의 형태를 보여 왔고 미래에도 그렇게 나타날 것이다

무천년설은 환난을 수용하라고 말하는데 이는 교회시대 전반에서 일어나는 환난을 의미한다

하지만 세대주의자라 해서 교회시대 전반에서 일어난 환난을 피한 적이 없다

대환난을 지지않는 그들이 환난을 피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자기 모순이다

세대주의를 비판하는 글 중 하나는

Back to Jerusalem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주장에 실소를 금지 못했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 선교를 비판하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가 아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재림하실 것이란 약속은 주님께서 하신 것이다

선교사들이 재림을 앞당기자는 미션으로 특정한 구호를 삼는 것을 문제로 삼을 수 없다

또다른 비판은 시한부종말론자라는 꼬리표를 잘 사용한다

그들은 이런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림 설교를 하지 않으며 교회를 미지근하게 만드는데 공헌했다

교회를 부패하게 만든 것은 세대주의가 아니라 무천년설이다

학문적 신학은 역사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교회의 부흥을 쇄퇴하게 만들어 왔다

개신교의 꽃을 피웠던 독일교회가 신앙을 버린 가장 좋은 사례 중 하나다

<부활의 순서>

세대주의 종말론은 두 번의 육체적인 부활을 문자적으로 지지한다

첫째 부활은 순교자들의 부활로 천년왕국 이전에 일어날 것이다

둘째 부활은 의인과 악인을 포함된 모든 사람의 부활로 천년왕국 이후에 일어날 것이다

첫째 부활에 참석하는 자들은 둘째 사망을 면제 받으며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할 것이다 (계 20:4~6)

무천년설은 첫째 부활을 영적인 부활로 해석한다

그들은 첫째 부활이 성도와 불신자들의 부활 사이에 시간적인 구별이 없다고 가르친다

그 증거로 "선한 일을 행하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하지만 이 구절이 부활에 대한 총론이라면 부활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계시록에 있다

계시록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목베임을 당한 자들로 한정한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계 20:5)

나머지 죽은 자들에는 일반 성도와 불신자가 포함되어 있다

바울도 부활의 순서를 기록했다 (고전 15:23~25)

첫째는 첫 열매 그리스도요

둘째는 그가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요 (순교자들의 첫째 부활)

셋째는 마지막이니 악을 멸하시고 하나님께 바칠 때다 (둘째 부활)

천년 동안 왕노룻 하는 사람들은 부활했거나 휴거자들로 변화된 몸을 입은 자들이다

나머지 신자들은 영체로 천 년 동안 있으므로 구별이 된다

무천년설은 결국 선교도 반대하고 문자적인 성경의 성취도 반대하고 재림도 기다리지 않는다

이들은 이것들이 신자들의 삶에서보다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그들의 책속에 가두려고 한다

우리가 읽는 수많은 책에서 만약 문자적으로 읽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하는가?

 

 

3. 무천년설

천년왕국

현실인가? 상징인가?

휴거, 대환난, 짐승의 표, 첫째 부활, 사탄의 천년의 결박, 사탄의 만국 미혹

현실인가? 상징인가?

무천년설은 이 모두를 상징으로 본다

그들은 계시록의 예언이 2000년 동안 성취되지 않은 사실에 주목한다

무천년설은 한마디로 현재가 바로 천년왕국이라는 주장이다

천년이라는 그리스도의 통치기간이 별도로 있는 것을 반대한다

천년왕국이 없다는 관점이지만 천년왕국이 현재적으로 현존하는 것으로 본다

예수께서 땅에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물리적으로 통치한다는 계시록 20장 해석에서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는 견해이다.

천년은 상징적 숫자이며 문자적 묘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성경의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는 적이 없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상황으로 무화과나무의 싹이 난 것을 보고서도 무화과나무도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문자로 기록되어 의미를 전달하는데 그들은 책을 문자적으로 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책을 읽을 때 비문자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가 상관없이 독자가 직접 단어에 의미를 자의적으로 부여한다

자신이 원하는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잃어버릴 위험이 높다

무천년설은 말씀을 지나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신자의 삶과 종말의 미래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오순절 성령강림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기간 전체를 천년 왕국으로 본다

천년왕국이 교회시대 전반에 걸쳐 현존하는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천년(밀레니엄)이 문자적으로 1000년의 기간을 뜻하지 않는다

오늘날 루터와 칼빈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교리를 이어받은 개혁주의 교회에서 가장 지배적인 것이 바로 무천년설이다

그들은 교회가 환난을 수용하고 십자가를 통과하야 한다면서 행위 신앙은 폄하하는 이중적 모순을 보인다

필자는 그들이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의 전통을 계승한 자들로 본다

신자들의 삶에서 실제적인 삶을 걷어냈는데 휴거도 재림도 대환난도 설교하지 않으면서 선교도 반대하고 결과적으로 교회를 타락시켜 왔다는 의심을 받는다

종종 논란이 되는 해석은 가정을 큰 상태로 만든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질서하거나 복잡한 상태로 기록되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요한계시록의 흐름을 뒤집어 놓는다

종말을 식별할 수 있는 여러 패턴들을 손상시키고 종말의 징조들에 대한 긴장감이 없다

무천년설에서 대환난은 과거 역사 속에 일어난 일이며

휴거는 유대인의 대다수를 구원하기로 뜻하신다는 신념과 관계하는 것으로 본다

이들은 성경 해석은 문자적인 성경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창세기가 시작의 책이라면 계시록은 종말의 책이다

창세기가 7일 동안에 실제 일어난 것처럼 계시록도 실제 일어날 7년의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록했다

계시록에서는 사탄과 악한 세력의 모습이나 최후의 상태가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에 온갖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해 올바르게 이해되고 가르치는 것을 방해한다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는 천년왕국에 대한 교리적인 입장이 없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현 시대의 교회와 똑같이 보기 때문에 개신교의 표현대로라면 무천년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무천년주의자는 계시록 20장에 기록된 천년의 실재를 믿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소위 점진적 병렬주의에 따라 계시록을 해석한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그 부분들은 서로 병행하며

각각 예수님의 초림하신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교회와 세계를 묘사한다는 견해다

요한계시록의 구조가 연속적인 사건들이 아니라 똑같은 것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술하고 재현된다며 옹호한다

만약 요한계시록을 이런 식으로 분해하여 교회시대에 일어나는 일로 배분하려면 얼마나 복잡한 해석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록의 배경을 선포하신 메시지와 정면 배치된다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계 1:19)

무천년주의 단점 중 하나는 인류 역사 칠천 년에서 안식일에 해당하는 천년의 부재다

현재의 종말의 징조들이 시대의 끝을 표시하지만 앞으로도 교회시대가 천년을 더 지속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천년의 안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천년 왕국에서 일어나는 성경의 기록을 모두 무효화 시켜야 한다

사자가 송아지나 함께 누울 것이고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다 (사 11:6~8)

우리는 현재의 추세를 고려해 볼 때 이 예언이 교회시대에 일어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열방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과(사 11:9) 모든 나라가 예루살렘에 올라와 초막절을 지킬 것이란)슥 14:16~19) 스가랴의 예언도 무효가 된다

첫째 부활한 순교자들이 천년 동안 왕노릇할 것이라는 계시록의 예언도(계 20:4)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사이의 간격도 제거되어야만 한다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사이에는 천년의 기간이 있는데 첫째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고 둘째 부활은 실제적인 부활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니엘과 예수께서도 내증한 짐승의 통치도 실제적인 기간과 사건이 아니게 된다

무천년주의자가 가장 배제하려는 방향성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반면에 세대주의자는 문자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사실상 무천년주의자는 세대주의를 공략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무천년설 해석은 영적인 것으로 변모시킴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필자가 보기에도 말씀을 훼손하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와 신자들의 종말론 삶에까지 해악을 끼친다

무천년설은 주로 학문적 차원에서 옹호되는데 서기관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거절한 것처럼 실제의 신앙과 괴리를 발생시킨다

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예수님을 고발했는데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들의 전통을 계승한 이들도 Back to Jerusalem이란 단어에 격분하여 선교를 방해한다

교회에서 재림신앙과 휴거의 소망을 몰아내었고 교회를 미지근한 상태로 전락시켰다

무천년설과 후천년설이란 용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는데 전통적으로 교회에 없었던 견해라는 증거다

슬그머니 기독교에 다른 종말론이 들어온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종말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소망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4. 후천년설 (post millennarism)

후천년설은 계시록 20장의 해석을 천년왕국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재림한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재림 이전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해석이다

전천년설과 반대의 입장이다

네 가지 종말론 중에 가장 인기가 없는 것이 후천년왕국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너무 늦은 탓에 긴장감을 느낄 수 없고 지나친 낙관론으로 성경에서 마지막 때에 지향하는 심판과 절망적인 종말의 시각과 차이가 난다

그러나 후천년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으니 WCC다

그들은 복음이나 주님의 기다리는 종말론 보다는 이땅에 사람의 힘으로 평화로운 황금시대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의 힘으로 인본주의와 사회복음화를 실현하며 지상낙원을 만든 다음에(비유적인 천년왕국) 주님이 오실 것이라 주장한다

사탄의 세력은 점진적으로 패배하고 쇠퇴할 것으로 본다

후천년설에서 주님은 재림하시지만 지상에 성취된 천년왕국에 어떤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반면에 올바른 종말론은 점점 세상이 타락하고 어둠에 잠길 것이라 진단한다

문자적 천년왕국의 부재를 주장하는 무천년설처럼 후천년설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중요성을 완화시킨다

천년왕국을 끝으로 인류역사는 사실상 종료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은 극적이지 않다

종말의 징조에 대한 절박함도 상쇄시킨다

후천년설의 특징 중 하나는 재림 이전에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 기독교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본다

천년왕국이 성립되려면 모든 민족과 인류가 회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은 점점 악해지고 있으며 이 상태가 지속되어도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바다처럼 덮을 것으로 예측하기 힘들다

재림 전에 그리스도의 관여없이 복음의 승리가 모든 인류에게 완성되기는 힘들 것이다

후천년설이 주는 또다른 맹점은

이미 교회시대가 2000년이 지나서 주님의 오심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때에

천년이 더 지나야 재림할 때가 된다

그러나 천년왕국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내 세대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재림은 잊고 살라는 주장과 같으니 종말에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가 이상태로 최소한 천년이 더 지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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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왕국

 

1. 본문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이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인봉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그이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계20:1-6)

 

<내용분해>

 

1) 하늘로서 내려온 천사(1절)

* 손에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의 결박

* 정체 → 용 = 옛 뱀, 마귀, 사단

* 기간 →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 장소 →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 방법 → 그 위에 인봉하고

* 이유 →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하려고

* 결과 → 천년이 차매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3) 천년왕국의 모습(4~5절)

*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보좌에 앉은 자들을 봄

* 부활한 성도들의 모습을 봄

* 이유 →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 대상 →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한 자들

* 내용 →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

* 첫째 부활 → 성도들은 부활하여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악인들은 그 천년이 차기가지 살지 못함

 

4) 첫째 부활의 축복(6절)

* 정의 →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 이유 →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기 때문

 

2. 천년왕국에 대한 일언

 

학자명 주장한 내용
래드 “천년왕국 교리는 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다. 성경연구가들은
계시 문제에 제한적이기 때문에 모든 의문들이 다 풀리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가까이 있는 재료를 가지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전천년설자로 남는다.”
찰스 “이 구절이 성경 해석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난해한 요소다.”
벌쿠워 “천년왕국은 종말론 문제들에서 가장 큰 논점이 되는 문제들 중의 하나이다”
호이트 “…기독교 여러 종파가 교회의 공중 휴거, 대 환난 그리고 영생의 문제들에 대하여 단호하게 의견을 달리하는 것처럼 천년왕국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뵈트너 “우리는 개별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재림시기에 대한 명백한 견해를 가질지는 모르나 우리의 모토는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하나로 일치하고 비본질적인 면에서는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근 “칼빈이 어거스틴의 견해를 따라 무천년주의였으나 그가 방대한 성경 주해 시리즈에서 계시록을 제외한 것은 천년왕국에 대한 난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광복 “우리의 소원은 천년왕국의 축복이다.”

 

 

3. 여러 견해

 

1) 국내 저자들

 

저자명 사단 감금 천년왕국 첫째 부활 둘째 부활
김재준 상당히 긴 기간 문자 ․ 상징의 중간 순교자의 부활 일반 부활
김응조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환난 전에 휴거된 성도와 대 환난 기간 중 순교한 성도 창세 이후로 불신자의 영혼
조용기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이상근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석원태 상징적 지상천국 상징적 천상천년 신약시대 전체의 영적부활 전 인류의 부활
이병규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부활한 성도 악인의 부활
박윤선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2) 외국 저자들

저자명 사단 감금 천년왕국 첫째 부활 둘째 부활
데이크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존슨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성도의 부활 나머지 부활
헨드릭슨 지상에서 상징적 신약의 전체 기간 천상에서 상징적 신약의 전체 기간 영적인 부활 전 인류(악인포함)의 부활
비더울프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렌스키 지상에서 상징적 신약의 전체 기간 천상에서 상징적 신약의 전체 기간 중생(거듭남) 전 인류 부활
왈부르드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래드 일정한(상징) 기간 일정(상징) 기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3) 본 저자의 견해

사단 감금 천년왕국 첫째 부활 둘째 부활
문자적 천년 문자적 천년 의인의 부활 악인의 부활

 

본 저자는 주님의 재림 후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역사적 전천년설을 취하며, 첫째 부활은 성도의 부활로, 둘째 부활은 악인의 부활로 본다. 그리고 두 부활의 사이에 천년의 기간이 있는 것으로 본다.

 

4. 네 가지 중요 견해

 

천년왕국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이론을 “전천년설”이라고 하는데, 여러 학설의 파생 경위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천국왕국론  
     
           


전 천 년 설
후 천년설
       
             
무천 년설   후천년설   역사 적 전천년설   세대주의 전천 년설
       
    보수주의   보수주 의  
 
 
 
자유주의   자유주의
 
 
 
 
 
   
 

 

1) 무천년설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문자적인 천년왕국의 통치가 있음을 부인하는 이론으로서, 계시록의 내용을 연속적인 구조로 보지 아니하고 점진적 병행법으로보아 계시록 20장 1~6절에 나타나고 있는 천년의 기간을 신약시대 전체의 상징적인 기간으로 보는 이론이다.

 

(1) 보수주의 무천년설

천년왕국은 신약시대 전체의 상징적인 기간으로 보는 이론으로서 천년왕국으로 이루어질 내용들을 동일하게 상징적으로 보는 견해이다.

 

사단 결박 천년왕국 첫째 부활 둘째 부활
지상에서 이루어질
전체의 상징 기간
천상에서 신약시대
전체의 상징기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중생(거듭남)
재림으로 이루어질 전 인류(악인 포함)의 부활

 

이들은 사단이 결박되는 천년의 기간은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작으로 말미암아 사단이 결박된 신약 전체의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지상에서 이루어질 일로 보는 반면, 천년왕국은 죽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상에서 왕 노릇하는 신약 전체의 상징적인 기간으로 본다.

 

<신약시대 전체>

 

초림            영적인 천년왕국시대                                   재림                               신천신지 영원세계

     

                                                                                 대배교                      부활

공생애 시작                                                                  대환난 심판

                                  천상 - 성도들의 왕 노릇

                                   지상 - 사단의 결박 

 

 

이 학설은 아브라함 카이퍼, 헤르만 바빙크, 피터스, 해밀턴, 머레이, 룻걸스, 와인갈든, 헨드릭슨, 매스링크, 그리어, 후크마 등 최근에는 화란과 미국의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졸업한 신학자들이 지지하는 이론이다.

 

(2) 자유주의 무천년설

문자 그대로 천년왕국을 완전히 부정하는 학설로서 자유주의 후천년설과 함께 배척 받아야 할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2) 후천년설

 

(1) 보수주의 후천년설

 

                                   <신약시대 전체>                                재림

      신천신지(새하늘과 새땅)

초림

                선의 증대                               천년왕국                   대배교                  부활

                악의 감소                                                               대환난                  심판

 

주님의 지상 최후의 대 명령(마28:18~20)에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교회에 의하여 전파되어 악은 점점 감고하는 반면에 선은 점점 증대되어 세계는 복음이 꽃피는 천년왕국의 축복을 누린 후에 임박한 재림을 앞두고 잠시 동안의 대 배교 ‧ 대 환난이 있고 곧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이 학설은 뵈트너, 스트롱, 찰스 하지, A.A. 하지, C. W. 하지, 쉐드, 댑네이, 워필드 등이 지지하는 이론이다.

 

(2) 자유주의 후천년설                                                              

<신약 시대> <천년왕국 시대> <지상낙원 시대>

초림                                          그리스도의 정신이 재림

사회복음 운동의 전파                       복지사회 건설                         충만한 시대(재림이 필요 없음)

 

자유주의 학자들에 의해서 주장되는 이론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서 성령의 역사로 충만해지는 것을 부정하고 진화의 완전한 자연적 과정의 결과로 믿는 견해이다.

이들의 기독교 복음의 사명은 사회복음 운동을 추구하는 것인 바, 사회가 그리스도의 정신이 활발해질 때를 가리켜 천년왕국이라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도덕적 사회복음의 운동을 외치는 자라면, “그리스도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고 주장한다.

 

 

3) 세대주의 전천년설

 

인류의 전 역사를 일곱 시대(구약 5시대, 신약 2시대)로 나누어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련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문자적인 해석을 취하는 이론이다. 그리하여 천년왕국 전에 두 번의 재림(7년 대 환난 시작 때에 일어날 공중 재림으로 성도들의 부활, 7년 대 환난 후 지상 재림)을 주장하며, 지상에서 7년 대 환난이 벌어지는 동안 공중에서는 7년 공중 혼인잔치를 주장한다. 그리고 대 환난 후에 그리스도께서 지상으로 재림하실 때 이 기간에 회개한 성도들이 휴거하고 유대인은 육체적으로 천년왕국의 백성으로 들어가서 곡과 마곡의 전쟁 후에 휴거(부활)될 것을 주장하는 이론이다.

 

무죄 시대 양심 시대 인류통치시대 약속 시대 율법 시대 은혜 시대 왕국 시대
창1:28~3:13 창3:22~7:23
8:20~11:9
창12:1~출19:8 출19:8~마27:35 요1:17;
히9:3~8
계 20:1~6

 

구약 시대 교회 시대 7년 대환난 천년왕국 영원세계
         

                                         공중재림 지상재림

                                        공중: 7년 혼인잔치

                                        지상: 7년 대 환난

                                        문제: 2중 재림(부활)

 

이 학설은 스코필드, 불링거, 블랙스톤, 다비, 그레이, 실버, 할데만, 호이트, 맥킨도시, 그랜트, 브룩스, 라저스, 맥클레인, 왈부르드, 펜티코스트, 라이리, 개벨레인, 앤더슨, 린세이 등이며 달라스, 그레이스, 웨스턴 보수 침례교 신학교들이 가르치고 있다.

 

 

4) 역사적 전천년설

 

요한계시록 20장1~6절의 “천년”이라는 의미를 如字的(한정된 의미의 연수)인 기간으로 보아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그 징조로서 대 배교와 대 환난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인격적(실재적)인 천년왕국이 있은 후 영원 세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이다.

 

<신 약 시 대> 재림 천년왕국 영원세계

초림          교회시대                  대 환난                환난 후

 

종교개혁 이전 주장자들 종교개혁 이후 주장자들
파피아스, 저스틴,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락탄티우스, 히포리터스, 메토디우스, 코모디아우스, 디오니시우스 루터, 뉴턴, 프리스톨리, 알스테드, 메데, 벵겔, 아우벨렌, 랑게, 스티어, 알포드, 앤드류스, 엘리콧, 잔, 트렌취, 래드 등

 

5) 본 저자(이광복)의 견해

본 저자는 역사적 전천년설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견해 중 역사적 전천년설의 이론이 성경의 내용을 가장 가깝게 증거 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0장1~6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천년왕국의 문제는 신학적인 문제로 인하여 그 의견들이 나뉘어 진다. 즉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전천년설과 후(무)천년설로 나뉘어 진다.

 

 

5. 각 학설의 역사적 배경

 

1) 제1기 전천년설

 

예수님 → 사도 요한 → 폴리갑 → 이레니우스

 

천년왕국론의 제1기는 초대교회부터 기독교 초창기에 해당하는 1~3세기 동안 지배적인 이론이었다. 주님의 사랑하는 수제자였던 사도 요한은 자신의 수제자이며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156년 순교)에게 전승시켰으며, 폴리갑은 그의 제자였던 이레니우스(주후202년)에게 전승시켜 초대 교회의 정통신학의 계열에 세워진 정설로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죽은 성도들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그 부활(휴거)한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며, 지상에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따라서 후천년설, 무천년설, 전천년설의 세 가지 이론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사도시대 이후로 초대교회 교부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아 왔었는데, 지지자들을 시대별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지지한 신학자들
주후 1세기의 지지자들 로마의 클레멘트(40~100년)
이그나디우스(50~115년)
폴리갑(70~167년)
주후 2세기의 지지자들 저스틴 마터(100~168년)
이레니우스(140~220년)
터툴리안(150~220년)
주후 3세기의 지지자들 시프리안(200~258년), 콤모디아누스(25d년)

 

 

2) 제2기 무천년설

 

초대교회부터 3세기까지 널리 유포되었던 전천년설의 신앙에 제동이 걸리고 제2기인 무천년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교회에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천년왕국론이 물질주의로 흐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단자 케린투스는 계시록의 내용을 왜곡시켜 부활 후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룩되면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은 육체적인 욕망과 쾌락, 즉 먹고 마시고 장가가는 것 등에 예속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이단자들의 천년왕국론은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의 문자적 지상천년왕국론을 반대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수장격인 오리겐(185~254)과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계시록의 영감을 반대하지 아니하고 천년왕국설을 부정할 수 있는 계기의 발판을 제공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제2기 무천년설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유명한 두 학자 제롬과 오리겐에 의하여 비판을 받으면서 무천년설이 태도하게 된 것이다. 또 주후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에서는 천년왕국을 주장하면 미신으로 정죄 받을 만큼 무천년설의 이론이 득세하였으며, 종교개혁기의 사도바울로 불리우는 칼빈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무천년설 이론에 힘을 더하게 되었다.

 

“천년왕국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무지하고 사악한 사람들이라고 낙인을 찍는 한편, 또한 그들의 조작은 너무도 유치해서 논박할 필요나 가치가 없다. 그들의 오류에 근거를 제공한 것이 계시록임이 분명하나, 그 계시록도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千이라는 수(계20:4)는 교회의 영원한 지복(至福)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지상에서 수고하는 동안에 당할 각종 환난에 적용되는 것이다. 도리어 성경전체는 선택된 자들의 지복이나 악한 자들의 형벌이 영원하리라고 선언한 것이다.”

 

예수님 → 요한 → 폴리갑 → 이레니우스 → 클레멘트 → 오리겐 → 어거스틴 → 칼빈

 

 

전천년설 신앙 무천년설로 전환

 

 

3) 제3기 후천년설

 

17세기 후반과 18세기에 이르러 아리안파의 한 사람이자 유니테리인 교회의 목사인 다니엘 휘트비(1638~1726)는 오리겐의 영적 및 우화적 해석법으로 천년왕국을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므로 후천년설이 출발하게 되었으니 그를 일컬어 근대 천년기 후 재림설의 아버지로 호칭되기도 한다.

이 세상은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고 유대인들은 고토로 돌아가며 교회와 회교도는 패배할 것이며 그 후에 지구는 천년 동안 우주적인 평화와 행복 그리고 의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 기간의 끝날 지점에 최후의 심판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리라는 후천년설은 18세기의 계몽사상과 같은 맥락을 이루어 당시의 주석가나 목사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다니엘 휘트비에 의해 체계가 세워진 후천년설은 위대한 부흥운동가인 조나단 에드워드(1703~1758)에 의해 꽃을 피우므로 입증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의심을 받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의 잔인한 만행으로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의 연기로 사라지므로 조용히 묻혀지는 학설이 되었다.

 

4) 제4기 전천년설

 

19세기 불란서 혁명으로 인하여 유럽의 정치적‧ 사회적 제도들이 갑자기 붕괴되는 등 사회적인 대변혁으로 전천년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질 때 스코틀랜드의 목사로 사역하던 어빙(1792~1834)의 주도 아래 프리머스 형제단운동의 강력한 지지에 힘입어 천년왕국론자들의 회합이 조성되어 전천년설 신앙이 부흥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운동단체의 지도자인 영국의 다비(1800~1882)에 의하여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태동하게 되었다.

이 학설도 1790년대에서 18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다니엘서의 사건이나 요한계시록의 사건들이 교회시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믿는 역사주의적 해석을 받아들였으나, 나이아가라 성경회의 시대(1878~1909년) 이후에는 다니엘서 9장 27절에 나타나고 있는 칠십 번째의 이레나 요한계시록 6장 이후의 사건이 기본적으로는 미래에 속한 것임을 취하는 경향이 늘어갔던 것이다.

 

 

6. 역사적 전천년설

 

1) 역사적 전천년설의 정의

역사적 전천년설이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이 부활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휴거(살전 4:16~17)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년 동안 왕 노릇하며 그 후에 크고 흰 보좌 심판이 있으며 그 후에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되는 것으로 보는 이론이다.

 

2) 역사적 전천년설의 근거

요한계시록 19장 11~21절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의 원수들(적그리스도, 거짓선지자들)을 멸하사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고, 그 후에 요한계시록 20장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천사에 의해 사단은 천년 동안 결박되어 감금 되고 부활(휴거)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이나 악인의 부활은 천년 왕국 후에 일어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천년왕국 후에 악의 우두머리인 사단을 멸하여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진다(계20:10). 그 후에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받는 것(계20:11~14)으로 본다.

 

3) 세대주의 전천년설로 오해받음의 문제

 

(1) 래드(G. E Ladd)

“천년왕국에 대한 교리에는 심각한 신학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설령 신학이 그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복음주의 신학은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전천년기설자로 남는다.”

 

(2) 안토니 A. 후크마

“세대주의 전천년기설을 구별하여 역사적 전천년기설을 취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사상 체계는 근본적인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세대주의 신학과 비세대주의 신학 사이의 기본적인 분수령이 세대주의는 구약성경을 여자적(如子的)으로 해석해서 그 자체 종말론을 조직하고 그 후에 신약성경을 그것에 맞추는 반면에 비세대주의 종말론은 신약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으로부터 그 자체의 신학을 조직함에 있음을 보여준다.”

 

“사도시대로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존재한 유일형의 천년 기 전론은 그 때에 천년 론이라 칭한 것이니 우리가 역사적 천년 기 전론으로 특징을 묘사한 것이었다.”(박형룡)

 

(4) 간하배(Harvie M. Con)

“그리스도 재림에 관한 세대주의적인 학설과 소위 전천년설과의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점이 있다. 사람들은 종종 세대주의와 전천년설을 오해하여 이들이 같은 것이라고 혼동하는 수가 많다……그러나 세대주의는 전천년설의 중요한 교리의 본질에 없는 다른 요소들을 첨가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천년설과 세대주의는 꼭 같은 것이 아니다. 모든 세대주의자들이 전천년주의자로 될 수는 있어도 모든 전천년주의자들이 결코 세대주의자가 될 수는 없다.”

 

(5) 에버렛 카버

“무천년주의가 후천년주의의 분화된 형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세대주의는 전천년주의가 분화된 형태이다……그렇다면 역사적 전천년주의란 세대주의가 전면에 나타나기 이전에 존재한 전천년주의인 것이다. 역사적전천년주의는, 내용에서 거의 세대주의와 다름이 없는 오늘날의 전천년주의와는 구분되어야만 한다.”

 

(6) 박윤선

“천년기전설이 반드시 세대주의와 통하는 것처럼 생각할 것은 없다. 물론 세대주의자들 중에, 천년기전설의 올바른 형태는 칼빈주의와 일치한다.”

 

(7) 박형룡

“천년기전론의 비평가들은 흔히 본래의 천년기전론과 근대의 변형된 그것과 혼동하여 구별 없이 혹평을 가 한다……그러나 상세히 고찰하면 역사적 천년기전론과 시대론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 시대론은 재림론의 제4견해요 결코 본래의 천년기론과 혼동될 것이 아니다.”

 

(8) 한정건

“무천년주의자들은 전천년주의자들을 문자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며, 또한 전천년주의자들은 무천년주의자들을 영해하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천년기설을 주장하는 필자는 무자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기설과 구별됨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상과 같이 역사적 전천년설은 사도시대로부터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존재한 유일형의 전천년설기임을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역사적 전천년설에서 변형된 또 다른 이론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적 전천년설과 세대주의 전천년설을 동일한 견해로 오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7. 해석상의 차이

 

각기 4가지 천년왕국에 관한 학설은 본문해석상의 차이 일뿐이지 결코 신앙적 차이는 아니라는 점을 서로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을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는 해석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두고 서로를 정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저 배도하는 세력들, 급진 자유주의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성경적 입장을 분명히 하되, 인격과 신앙의 조화를 이뤄야 하겠다.

 

이광복 목사/『성경종말론』


무천년설과 전천년설 비교

 

1. 천년왕국의 기간문제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 천년이 차도록…그 후에는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천년이 차매"(계20:2-7)

 

1) 무천년설 주장

 

학자명 학자의 주장
칼빈 문자적 천년으로 보는 것은 유치하다.
워필드 천은 절대적 안전과 완성을 상징
헨드릭슨 계시록 20장을 자세히 상고하는 자는 천년동안 심판하러 오시는 우리 주 님의 재림 전에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게 될 것이다.

 

천년의 숫자는 완전한 숫자를 세 번(10×10×10)이나 곱한 수로서 하나의 완전한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영원한 지복(至福)을 상징하는 기간으로 본다.

 

2) 무천년설에 대한 반론

 

학자명 학자의 주장
이상근 1000의 숫자를 계시록의 다른 경우와 동일시하며 상징적으로 돌리는 것은 과 오일 것이다.
박형룡 무천년기 재림론이 계시록 20장1~6절의 명백한 진술을 영해하고 지상 천년기의 실제성을 부정하려는 데는 견강부회(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도록 함)의 논법이 많이 포함되니 동의하기 곤란하다. 즉 명백한 년 수 천년 간을 완전한 시기로 보고 마는 것은 견강부회의 억설로 보인다.
박윤선 혹 如字적 천년은 아닐지라도 나는 천년기전설이 옳다고 생각 한다…천년기전설의 올바른 형태는 칼빈주의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천”이라는 숫자가 반드시 문자적인 천년은 아닐지라도 천년왕국을 재림 후에 있을 여자적인 기간으로 본다. 왜냐하면, “장차 될 일”이므로 과거기 될 수 없으며, “보고 기록한 사도 요한의 증거”이므로 상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2. 사단의 결박문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계20:2,3)

 

1) 무천년설 주장

사단의 결박은 우리가 살고 있는 복음시대 동안에는 사단의 영향력이 확실히 절면 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축소되어 복음이 세계적으로 전파되는 것을 방해할 수 없는 것(눅10:17~18, 요12:31~32 근거)으로 보는데 대표적 학자인 헨드릭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사단을 꼼짝 못하도록 만들고 튼튼하고 견고하게 결박한다. 이렇게 결박된 채 마귀는 일천년 동안 있게 된다. 천사는 마귀를 무저갱 속에 던져놓고 그 문을 잠근다. 그 위에 인봉한다. 이처럼 마귀는 일천년 동안 갇히게 된다.”

"마귀가 모든 의미에서 결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되풀이 한다. 그의 영향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단이 그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된 영역에서는 더욱 더 극심하게 날뛰고 있다. 한 마리의 개가 굵고 긴 쇠사슬에 묶여 있으면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감금된 행동변경 안에서는 매우 사납고 큰 해를 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개가 쇠사슬에 묶이어 있는 그 범위 밖에는 여하한 피해도 주지 못하며 어느 누구도 물지 못한다. 이 와같이 계시록 20:1~3절이 사단의 권세는 억제되었고 그의 영향력도 열방들을 다시 미혹하지 못하리라고 지적함으로서 행동범위가 한정되고 감소되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2) 무천년에 대한 반론

헨드릭슨은 “사단을 꼼짝 못하도록 만들고 튼튼하고 견고하게 결박된 것=활동범위가 한정되고 감소되었다”라고 하므로 스스로 모순을 보이고 있다.

 

성경 증거 무 천년설에 대한 반문
결박하여 하나님이 결박하였는데 어떻게 활동하는가?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하나님이 잠갔는데 어떻게 열 수 있을까?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나님의 막으셨는데 어떻게 미혹할 수 있나?
그 위에 인봉하여 하나님이 봉했거늘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라는 말씀은 사단이 이전에 행하던 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었음을 암시하는데 이를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더구나 “사단의 결박”을 그리스도의 초림 이후 사단의 활동범위가 약화된 것으로 보는 헨드릭슨의 주장은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신 사건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된다.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눅8:31,32)

 

천년왕국의 시작과 함께 “사단은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인봉”했거늘 하나님께서 인봉한 사단이 어떻게 돼지에게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께서 미혹하지 못하게 한 것을 부분적으로라도 인정한다면 하나님의 신적 권위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헨드릭슨의 개의 비유도 하나님의 본문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성경 그대로 사단은 결박된다고 믿으면 쉽게 해결된다.

 

3. 천년왕국의 장소 문제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 천년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그의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니"(계20:1-4)

 

1) 무천년설 주장

 

20:1~3 20:4~6
사단이 지상에서 상징적으로 결박당하는
천년
천상에서 성도들의 영혼이 왕 노릇하는
천년

 

무 천년설은 한 본문의 내용을 전반부(1~3절)는 지상에서, 후반부(4~6)는 천상에서 일어날 것으로 본다. 이에 대하여 헨드릭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두 모양의 천년왕국은 지상(1~3)과 천국(4~6), 사단의 결박과 성도의 통치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사단은 결박되고 이 땅에서의 사단의 영향력은 부분적으로 마비되었다. 앞서간 성도들이 하늘에서 다스리고 있다는 것은 예수께서 하늘과 또한 하늘로부터 친히 통치하신다는 것과 관련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다스리심은 계시록의 모든 환상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2) 무천년설에 대한 반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20:1)

 

천년왕국의 사건은 하늘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후에 일어날 것이므로 지상에서 일어날 것임을 보여준다. 이는 “땅에서 왕 노릇하리라”(계5:10, 1:5 참조)는 본서의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천년왕국은 “새 하늘과 새 땅”(계21:1)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3)는 말씀으로부터 지지받기 때문이다.

 

4.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의 간격 문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부활이라"(계20:5)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20:13-15)

 

1) 무천년설 주장

이에 대하여 헨드릭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첫째 부활이라 함은 영혼이 죄악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하늘로 옮겨지는 것을 말한다. 육체가 영화롭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일어날 둘째 부활이다.”

 

2) 무천년설에 대한 반론

 

알포드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만일 두 부활이 언급된 말씀에서…첫째 부활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적으로 부활한다는 뜻이고 둘째가 무덤에서부터 일어나는 문자적인 부활이라면, 언어의 모든 의미는 끝장이 날 것이며, 성경도 어떤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는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15:23~\-26)

 

재림 때 세상 끝날

 

 
 

첫째부활 천년의 간격을 증명 둘째부활

그에게 붙은 자 멸망 받을 원수(마귀)

생명의 부활 심판의 부활

 

 

5. 왕 노릇의 문제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잇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동안 왕 노릇하리라"(계20:6)

 

1) 무천년설 주장

"첫째 부활에 참예한 성도들의 왕 노릇”을 신약시대 전체의 기간에 걸쳐서 영적인 왕 노릇하는 기간으로 본다. 이에 대하여 헨드릭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왕 노릇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한다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구속 받은 영혼들이 그의 공의로운 심판 때문에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2) 무천년설에 대한 반론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일천년 동안 왕노릇하리라”는 말씀은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이루어질 일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동산을 다스리며 지켜야 했던 그 본분을 망각하고 사단의 유혹을 받아 범죄 함으로 실낙원이 된 것을 마지막 아담(고전15:45)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천년왕국의 목적이라고 본다.

 

첫 사람 아담 = 다스려라(창1:28) → 마지막 아담 안에서 왕 노릇

뱀의 유혹을 받아 실패하였음 천년왕국에서 회복(실제적)

천년왕국의 목적(반드시 필요함)

 

6. 19장과 20장의 연결 문제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19:11)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하니”(계20:5,6)

 

1) 무천년설 주장

무 천년설에서 천년왕국을 신약시대의 영적인 것으로 주장하는 이유는 19장은 분명히 재림을 말하지만 20장은 새로운 단원으로서 초림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헨드릭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계시록 19장 19절 이하는 역사의 최종점, 즉 최후의 심판의 날을 보여 준다. 계시록 20장을 자세히 상고하는 자는 ‘천년동안’이 심판하러 오시는 우리 주님의 재림 전에 있다는 것을 즉시 명백하게 알게 될 것

이다.”

 

2) 무천년에 대한 반론

"짐승이 잡히고 이적을 행하던 거짓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계19:2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0:10)

 

재림 때(계19장) 천년왕국 후(계20장)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움 마귀가 유황 못에 던지우니 이미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그 곳에 있었음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그의 군대들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어린 양과 그의 군대와 싸우나 패하므로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운다. 그리고 천년왕국의 끝에 곡과 마곡의 전쟁에 패한 마귀가 유황 못에 던지우니 그 곳에는 “이미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있었다.

이는 19장과 20장이 연속되는 사건임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 천년설은 20장을 다시 초림의 사건으로 주장하고 있으니 본서의 기록으로부터 거부당하는 이론이 된다. 그리고 천년왕국이 상징이라면, 짐승, 거짓선지자도 상징이 될 것이며, 나아가 재림도 상징으로 흘러 자유주의 신학이 태동하는 계기를 제공함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또한 이미 초림 때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났다는 논리로 종말론 구조가 흔들린다. 이처럼 계시록이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는 천년왕국을 상징으로 해석하는 무 천년설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스텐리 건드리의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대신할 수 있다.

"교회가 박해를 받거나 공민권이 박탈당하는 경우에는 전 천년설이 우세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교회가 물질적으로나 수적으로 부흥하고 정치적 핍박이 별로 없는 낙관적인 시대에는 후 천년설이 득세한다. 만약 교회가 더 풍요를 누리고 국가와 결탁하게 되는 경우에는 무 천년설이 가장 사랑을 받는다.”

 

그런즉 명백한 천년왕국을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신약시대의 영적 왕 노릇으로 보는 무 천년설의 이론은 우리의 세계관에 의해 영향이 받는 것이 아닌지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7. 성취되고 있는 시대의 징조에 답하지 못함

 

"용을 잡으니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여”(계20:2)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12:29)

 

1) 무천년설 주장

용(옛 뱀, 마귀, 사단)을 잡아 일천 년 동안 결박하는 사건은 초림 중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의 속죄로 사단의 권세를 이기시므로 성취된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초림부터 재림까지 신약시대 전체의 기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2) 무천년설에 대한 반론

무 천년설의 주장에 대하여 박형룡 박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무천년기론은 말세에 관한 많은 예언들을 설명되지 못한 채로 무의미한 언설로 버려두게 되는 약점을 가진다. 구약과 신약의 많은 왕국 예언들은 아무리 비유적인 언사를 많이 포함하더라도 확실히 어떤 종류의 장래 황금시대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가?……무천년기 재림론의 통상한 해석에 의하면 사단의 결박(계20:2)은 초림 중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 속죄로 사단 위에 승리하실 때에 수행되었다. 그리하여 천년기는 초림에서 시작하여 재림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마태복음 12장 29절이 인용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단의 결박의 의미라면 계20:3, 7절에 말한 사단의 ‘놓음’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전복(顚覆-뒤집혀 엎어짐)하여 비록 일시나마 무효화함일 것이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광복 목사/『성경종말론』


개혁주의에서 본 천년왕국(1)

 

천년왕국

 

천년왕국에 대한 견해로는 크게 4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천년왕국의 견해가 중요한 이유는 그 견해에 따라성경을 보는 관점과 성경 해석의 기초가 다르다는 점이다. 곧 천년왕국의 견해는 성경의 전반적인 해석과 깊게 연결된다. 특히 구약의 선지서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천년 왕국에 대한 견해는 성경 전반을 보는 조직신학의 구조와 깊게 밀착되어 있다.

 

천년왕국(Millennium) 이란 말은 요한 계시록 20:1-6에 나타나는 용어로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용(사단)을 잡아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천 년 동안 인봉하는 사건과 연결된다. 그 기간 동안에 첫째 부활에 참여한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리게 되며 왕 노릇을 한다. 견해에 따라서는 이사야 11:6-9절과 연관하여 이 기간을 지구상의 최고의 번영과 축복의 시기로 보기도 한다. 그 기간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문화의 최고봉을 이루고, 죄악이 극소인 상태에서 평안을 누리며 산다는 것이다.

 

천년 왕국이 소망을 잃고 살던 많은 성도들에게 일종의 강한 희망을 주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천년 왕국 이전에예수님이 재림하실지 아니면 이후에 재림하실 지에 대하여 학자간에 의견일치가 되지 않았다. 재림 이후의 천년왕국이라면 미래에 이루어 질 것이며, 재림 이전이라면 현재 교회 역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현재 교회에 이루어 진다면 정말로 실제적인 문자 그대로의 천년 동안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의미인지 거기서 의견이 나뉜다. 일반적으로, 재림 이후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는 견해는 대체로 천 년을 실제적 기간으로 보지만, 재림 이전의 천년왕국 견해는성경의 천년을 실제적인 천년으로 보는 견해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로 해석하는 견해로 나뉘게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 시기와 천년이라는 기간의 해석에 따라 천년의 통치 곧 천년 왕국은 네 가지의 견해로 나뉘어 진다.[1] 이 네 가지 견해들은 각각 후천년설,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그리고 무천년설이 있다.

 

후천년설 (Postmillennial Progress)

 

후천년설은 어거스틴과 칼빈의 영향을 받은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지지를 받았던 견해이다. 따라서 후천년설은 19세기에 미국과 영국을“주도하던 복음주의적 입장”[2]이었다. 후천년설은 청교도 신학의 유산 및 기독교가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 장래에 대한 낙관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다.[3] 후천년설의 자세한 내용은 아마 미국 내에서 표준이 되는 『조직 신학』(Systematic Theology)을 남긴 위대한 프린스턴 신학자, 찰스 핫지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20세기 교회에서 볼 때는 후천년설은 어거스틴과 칼빈 이후의 교회사에 있어서 가장 안정된 견해로 여겨져 왔었다.[4] 내부적으로는 진보 및 보수의 의견으로 나뉘는데 진보의 경우는 예수님의 가시적 재림을 믿지 않는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 논문에서는 논하지않기로 한다. 보수의 의견으로서 후천년설에 해당하는 학자들은 P. Fairbairn, Hodge, W. G. Shedd, B. B. Warfield, L. Boettner 및 H. Strong이 있다.[5] 특히 L. Boettner 는 현대에 잘 알려져 있는 후천년론자로서,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 복음의 전파와 각 개인들의 심령들 속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구속적 사역을 통하여 이 세상에 확장되고 있으며 이 세상은 점차적으로 기독교화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세계 복음화의 확장으로 유대인들의 대거 개종이 있을 것으로 본다. 이 지상에서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져 죄가 최저의 상태로 감소할 것이며 사회, 경제, 정치, 문화도 크게 개선되어 천년동안 풍요를 누릴 것이다. 전세계에 걸쳐 부요를 함께 나누게 되고 사막에서 꽃이 피는 시절이돌아오게 될 것이다. 전에는 서로 적대적이던 나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이러한 번영의 황금 시대가 문자적으로 천년 기간동안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천년기의 마지막 때에 잠시 사탄이 놓임을 받아 "제한적으로 악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하여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 그는 세상의 교회에 대한 공격을 하지만 교회에 어떠한 피해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6] 그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게 되는데, 결국은 "천년기"라고 불리우는 의와 평화의 긴 시대의 끝에서주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재림 후에는 곧 대부활, 대심판, 그리고 천국과 지옥으로 인도되어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난다고 본다.[7]

 

후천년설자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무천년설의 주장과 비슷하다. 하나님의 왕국이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이미이 땅에 영적으로 실제 한다고 믿으며 이는 구약의 예언의 성취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이미 교회에서 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탄은 결박을 당하였고 성도들이 이미 영적으로 주님과 통치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8] 이들은 무천년설자들과 아울러 천년 왕국 이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으로 믿는다.

 

후천년설이 무천년설과 다른 차이점은 교회 시대 중간에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무천년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사탄이 천년 동안 (초림과 재림사이) 결박되었다고 보는 반면, 후천년설은 교회 시대에 아직 사탄이 활동하고 있으나 이 세상의 역사 중 어느 시기에 이르면 실제적인 천년 동안 사탄이 결박을 당하여 그 때에 이 지구상에 거의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복음으로 돌아오며 유대인들이 대거 개종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후천년설에는 성경적으로 모순이 되고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의 문제가 있다. 후크마는 그의 책 The Bible and the Future에서 후천년설의 4가지 문제를 제시한다.[9] 첫째는 후천년설자들의 구약의 해석인데 곧 이사야 2장, 11장, 65장 및 단 2:44의 내용을 천년 왕국에 연결시키는 점이다. 이는 무천년설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세가지 설에 똑같이 해당하는 내용이다. 후크마는 주장하길 이 구약의 내용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상태이지 천년왕국의 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둘째는 후천년설자들의 마태복음 24장의 대환란과 데살로니가 후서 2장의 배도 사건을 과거의 일들로 처리하는 것에 대하여 틀리다고 본다. 후크마는 분명히 세상 끝이 가까와지면서 이 세상에 전무 후무했던 대환란과 배도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살후 2:3).

 

셋째로 후크마는 지적하길 계시록 20장 자체 내에서는 사실 미래적 천년기 황금시대를 기대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증거를 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하는 영혼들"을 이 땅에 살고 있는 실제 사람들로 볼 때이미 4절과 5절에서의 "목베임을 받은 자"와 "죽은 자들"로 불리울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수명이 70여년인데 조건도 바뀌지 않은 이 땅에서 일천년을 산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후크마는 이 땅에서의 인류의 역사의 앞날이 점점 선하여진다는 그들의 의견에 반박을 한다. 사실 마태복음 24장과 디모데 후서 3장을 보면 후크마의 의견처럼 세상은 오히려 더 악하여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13장의 가라지 비유는 끝날까지 가라지와 알곡이 함께 있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후천년설이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치명적인 단서가 된다. 성경적 말씀은 다음과 같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30)

 

[1] 사실은 과거주의(Preterism) 종말론이 최근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 과거주의 종말론은 완전 과거주의와 부분 과거주의로 나뉜다. 완전 과거주의는 계시록 전체가 과거 사건이라고 보는 반면, 부분 과거주의는 계시록 대부분이 이미 성취되었고 오직 주의 재림만이 미래에 남아있다고 본다. 이들은 예수님의 재림 사건에 대해 어떤 징조나 현상을 의지하는 것에 대해, 또는 시간적으로 미래의 사건을 정리하는 것에 대해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2] Kenneth A. Kantzer. "Our Future Hope: Eschatology and the Role of the Church." Christian Today 31:2 (February 1987), 5. An interview article with Gleason Archer, Jack Davis, Anthony Hoekema, Alan Johnson, and John Walvoord.

[3] Iain H. Murray. The Puritan Hope: Revival and the Interpretation of Prophecy. Carlisle, Pennsylvania: Banner of Truth Trust, 1971. 이 책에서 머레이는 청교도, 특히 영국 청교도을 중심으로 하던 후천년설의 역사를 탁월하게 다루고 있다.

[4] Williamson 1964, 263.

[5] "Millennium," The International Standard Bible Encyclopedia,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Eerdmans).

[6] Boettner 1958, 67-70.

[7] Boettner 1958, 14.

[8] Warfield 1929, 648-650.

[9] Hoekema 1979, 177-180.


역사적 전천년설 (Historic or Classical Premillenialism)

 

초대교회의 이레니우스는 이미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였다. 특히 19세기에 이 견해가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Bengel, Godet, Van Oosterzee, 그리고 Moorehead 같은 학자들이 역자적 전천년설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G. E. Ladd, Millard Erickson등이 이 견해를 지지하였다.[10] 역사적 전천년설에 의하면 베드로후서3:8절의 말씀, 곧 "주께는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말라"에 근거하여 세상역사를 6,000년으로 보고 각 천년마다 창조의 하루에 해당한다고 본다. 6,000년의 역사가 끝난 후 주님이 다시 재림할 것이며,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는 성도들의 고난과 학대가 점점 더 증가하여 적그리스도가 나타날때에 극치를 이른다.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가장 강할 때, 그리스도가 하늘의 영광 중에 나타나 성도들을 부활시키고, 그때 살아 남아 있는 신자들은 변화 받아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 두 그룹의 신자들은 하늘에 들어 올려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하게 될 것이며, 그 후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이 땅에 내려와 일천년 동안 지속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곧, 적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할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강포한 통치가 끝장날 것이다. 바로 이 시기에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믿게 되어 구원을 얻게 된다. 이 후에 바로 하나님의 7일 창조의 안식일에 해당하는 천년왕국이 7000년째에 천년동안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천년 기간 중에 예루살렘이 다시 재건되고 세상은 번영하며 세계적인 평화가 넘친다. 예수님은 전 세계를 가현적으로 통치하시며 그의 구속 받은 백성들도[11]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한다.

 

역사적 전천년설에 있어서 천년왕국의 상태는 새하늘과 새땅인 최종상태와는 다르다. 그 이유는 천년왕국 동안에는계속해서 죄와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신 악은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되어 의로움과 평화가 온 땅에 가득할 것이다. 이때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맞이한다. 특히 모든 자연 만물마저도 가장 큰 축복을 누리는 상태가 되어 사막에서도 장미가 피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천년기가 끝날 무렵에 사탄이 나타나지만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된다. 사탄은 잠깐 풀림을 받아 열방들을 다시 한번 더미혹한다. 사탄은 곡과 마곡의 전쟁을 치루기 위하여 반역하는 나라들을 모아들여 이들을 이끌고 "성도들의 진"을 향해 공격한다. 그러나 사탄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에 의해 소멸되어 다시 불못 속으로던져진다. 이후 죽었던 불신자들의 부활이 있고 백보좌 앞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다. 이때 모든 신자들과 불신자들이 다 심판을 받게 된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는 영원한 불못으로 가고, 그 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행한 대로 상급을 받는다. 그 직후에 새하늘과 새땅이 도래하고 모든 악들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12]

 

역사적 전천년설의 문제와 약점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 후의 세상을 다스리심에 대한 의식이 약하다는 것이다. 특히 바울 서신은 최종 상태에 천년 왕국이 있을 것을 전혀 암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사망의 세력을 이기는 부활로서 모든 원수를 발아래 끓게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설자들은 부활 이후에도 죄의 세력과 사망의 세력이 남아 있다고 하니 부활의 참된 의미에 어긋나며[13] 천년 왕국 끝에 마지막 원수 사탄이 또 전쟁을 한다고 하니 이는 바울의 가르침에서는 전혀 발견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성경이 뒤받침하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고전 15:24-26)

 

후크마는 역사적 전천년설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완전히 원수를 재거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에심한 반기를 든다. 영광 중에 임한 재림의 예수가 천년이 지난 후에 또 철장 권세로 원수를 쳐 부셔야 하는 것에 대하여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14] 사실, 위의 고린도전서 15:24-26을 자세히 살펴보면 후크마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위 구절에 의하면 예수님의 현재의 통치는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쉬지 않고 진행되며 모든 원수가 멸하게 될 때, 특히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이기는 성도들의 부활과 함께 역사의 끝이 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과 예수님 사이의 중간에 어떤 천년 왕국과 같은 휴전이 있을 수 없다. 곧 인류의 끝이 올 때까지는 예수님의 왕국에는 천년 왕국과 같은 쉼이 없는 것이다.

 

역사적 전천년설의 지상적 천년 통치는 신약의 종말론과 맞지 않는다. Vos는 그의 책 The Pauline Eschatology에서 주장하길 종말은 이미 예수 안에서 주님의 강림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강림은 종말적인 영원한 나라가 이미 이 땅에 침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15] 이 말은 오직 두개의 나라 (곧 아담으로 시작된 나라와 예수로 시작된 나라)가 있는 것이지 제 삼의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즉, 예수 재림으로 말미암아오는 나라는 새하늘과 새땅인 것이지 천년 왕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16] 예를 들어 마태복음 25:31을 보면 예수께서 재림을 하실 때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다. 여기서 말하는 보좌는 지상적 천년왕국의 보좌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46절에서 보면 악인은 영원한 심판에 의인은 영원한 생명으로 심판하는 심판의 보좌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주님의 재림은 마지막 심판과 바로 연결되고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또한 사도행전 3장의 베드로의 설교 중에도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하나님께서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 예수를 하늘에 받아 두시는 동안이라 하시며, 바로 예수가 재림하는 순간이 만유의 회복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천년왕국이 아니라 역사의 끝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10-13에서는 이 내용을 더욱 확실히 한다. 곧 예수의 재림 후에 옛 땅이 녹아지고 새 땅이 창조될 것을 말함으로 역사적 전천년설자들이 말하는 천년왕국의가능성은 살아지고 마는 것이다.

 

후크마는 비판하길 역사적 전천년설자들이 말하는 천년왕국은 현세대와도 같지 않고 장차 올 세대와도 같지 않은 모호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다.[17] 사실 이러한 천년왕국은 계시록 20장에 ‘해석’에 의한 것이지, 성경 전반에 걸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성경 그 어떤 곳에서도 천년 왕국을 가르치는 적이 없다. 또한 결과적으로 볼 때도 악인이 예수의 재림 이후에도 더욱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믿는 이에게는 예수 재림 이후에도 전쟁을 치뤄야 한다는불안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성경이 의도하는 바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0-13)

 

[11 House 1992, 133.

[11] 개종한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아무 구분이 없다.

[12] Williamson 1964, 260.

[13] 부활의 가장 큰 의미는 죄의 세력으로 인하여 온 죽음을 이기는 것이므로 이는 더 이상 죽음이 있을 수 없음을 이미 가정하는 것이다.부활 후에 또 사망의 세력이 있다면 이는 전혀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된다.

[14] Hoekema 1979, 184.

[15] Vos 1979, 160.

[16] Vos 1979, 258.

[17] Hoekema 1979, 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