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기원에 관한 개혁신학의 이해
윤종성 원장/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중부목회신학원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은 매우 신비스런 존재이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육체를 악하다 보고 영혼만을 존귀한 존재로 보았다. 또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육체적 탐닉에 빠져 인간의 일부인 영혼에 대한 관심을 멀리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이해를 단순히 육체적인 존재로 이해하거나 혹은 영혼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삶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에 대한 이해는 영혼과 육체를 구별하지 않는다. 만약 영혼만 귀하게 여겼다면 우리의 육체적 부활은 없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 또한 육체적 부활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처럼 바른 인간의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더구나 우리 영혼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본지에서는 개혁주의 입장에서 영혼기원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윤종성 목사의 ‘영혼기원에 관한 개혁신학의 이해’의 연재를 통해 인간창조의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편집자 주> 신학적 인간학이 인류학적 인간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방법론이다. 신학적 인간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방법론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목적론적으로 탁월하게 창조된 그러나 ‘죄로 오염된 인간’의 ‘하나님 앞에서의 실존’을 배경으로 한다. 이와 같이 영혼의 기원에 관한 바른 접근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는 창조 기사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기초되어야 한다. 영혼의 기원에 관한 현대적 이해는 이원론과 무관한 이분법적 개념에서 출발하지만 이로부터 추론되는 현실적인 결과는 이원론적인 양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논의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영혼을 몸, 신체와 구분해 표현한다고 해서 몸-영혼을 분리되는 각각의 요소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관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또한 죽음 이후 또는 중간상태의 양태를 죽음 이전의 상태와 평행하게 논의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곤란할 뿐만 아니라, 죄의 책임으로서 죽음의 의미를 간과하는 오류를 야기한다. 따라서 죽음 이후의 문제 때문에 ‘생명 있음’의 상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안 된다. 여기서는 개혁신학 입장에서의 영혼의 기원을 생각해 보기 위해 먼저 창조기사에 대한 성경신학적 이해를 도모한 후 어거스틴의 관점과 함께 신학적 관점에서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고찰한다. Ⅰ. 영혼의 기원에 관한 성경신학적 이해 이 장에서는 영혼의 기원에 관한 성경적인 이해를 위해서 창조기사 중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의 창조에 대한 기사를 살피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심과 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일반적인 독자들이 갖는 오해에 대하여 지적하고 문맥의 강조점을 중심으로 영혼의 기원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찾아볼 것이다. 또한 최초의 양친 이후, 생식에 의해 번성하게 되는 후손들에게 있어서의 ‘생명 있음’의 의미와 그들의 영혼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일반은총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해 볼 것이다. 1) 창세기 2장 7절에 나타난 생명의 시작 구약학자 에드먼드 제이콥(Edmond Jacod)은 그의 논문 <인간>에서 “구약성경이 사람에 대해서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이 창조이야기 속에 있다”고 했다. 신약성경 역시 우리에게 인간에 관한 성경적인 풍성한 내용을 깊이 있게 해주지만 근본적으로 에드먼드 제이콥의 말은 지지 받을 만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창세기 2장 7절에 대해서 에드먼드 제이콥은 “창세기 2장 7절이 이스라엘 인간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절이며, 여러 가지 본질적인 선언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여 이 구절의 중요성을 충분히 강조해주고 있다. 스키너(J. Skinner) 역시 이 구절이 구약 인간학의 고전적 위치(locus classicus)에 해당된다고 했고, 폰 라드(Gerhard Von Rad) 역시 이점을 지지하고 있다. 헬므트 틸리케(Helmut Thielicke)는 창세기 2장 7절을 근거로 “당신은 인간을 그 운명과 목적의 빛 속에서 정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창세기 2장 7절은 창세기 1장 26~27절을 다시 설명해주는 창조에 관한 두 번째 이야기로 첫 번째 이야기의 인간창조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창조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창 1:1~2:3)가 전 우주와 인간에 관한 파노라마적인 이야기라면, 두 번째 이야기(창 2:4~25)는 인간의 기원, 환경, 초기경험에 대한 세부적인 인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창조기사는 목적론적인 인간이라는 인간 이해의 근본적인 좌표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본문은 신체의 원재료로서의 흙과 생령이 되게 한, 생기를 불어넣으심에 관한 서로 다른 이해로 매우 큰 인식론의 차이를 가져온다. 견해차의 핵심은 몸과 영혼이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있다. 존 밀톤(John P. Milton)은 이 구절들이 사람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왜 여기에 존재하고 있느냐에 대한 설명이라고 했다. 그는 이 구절들이 첫째는 인간의 본질이 땅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둘째는 하나님과 인간의 독특한 관계를 설명해주며, 셋째는 인간의 전체성(wholeness of man)을 말해준다고 보았다. 창조의 방법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 외에는 제시하는 단서가 매우 소극적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특별계시와 무관하게 사람의 신체가 흙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성경의 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물질적인 것을 위해 땅을 의존하지만, 이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필요한 것을 제공받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의무를 갖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람의 창조에 관해서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고”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 구절이 말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독특한 관계는 이미 창조의 첫 번째 이야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견주어지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존 밀톤은 이로 인해 인간이 물질적인 성격과 영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여기에서 인간의 영원불멸의 가능성을 암시 받는다고 한다. 이와 함께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전 12:7)는 성경을 인용한다. 그러나 존 밀톤은 이런 묘사가 이분설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영혼과 육체로 구성되었다고 말하는 것과 신이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인간에게 본질상 육체적인 면과 동시에 심령적인 면이 있으며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 사람을 형성한다는 인간의 전체성(wholeness of man)이 두 번째 창조이야기가 갖는 관점이라고 존 밀톤은 말한다. 히브리 사고에서 영혼과 육체, 정신과 물질은 나누어지지 않으며, 에덴동산은 인간의 육체적인 면을 위한 풍성한 은혜의 상징이다. 창세기 2장 7절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는 과정의 독특성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창세기 2장 4~25절은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어떻게 실제로 나타나는지에 대한 충분한 암시를 준다. 즉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하나님의 원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세부적이고 보충적인 암시라고 할 수 있다. 이 본문이 속해 있는 구절에 대해 폰 라드는 4b~7절이 하나의 복합문이며 훼손되지 않은 전통적인 문장양식인데, 이 긴 복합문의 무게는 후문 7절에 있다고 했다. 즉 이 구절은 7절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입이다. 4~6절은 세계창조의 출발점이고 인간 창조에 대한 특별한 하나님의 배려를 잘 드러내주는 문장구조를 취하고 있다. 7절a를 직역하면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셨다 그 사람을 그 땅(흙)으로부터 [취한] 티끌[로] 그리고 그분께서 불어넣으셨다 그의 코 안에 생명의 호흡을 과 같은 구조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 흙 중에서 취한 티끌로 사람을’에서 ‘아담’, ‘아다마’는 히브리 기자들의 언어적 유희로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 사람을 창조하실 때 ‘아다마’가 사용되었지만 이 물질적 성격의 물체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선행하는 행위인 하나님의 창조행위에 복속 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동물들을 창조하실 때도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라’고 말씀하셨다(창1:24). 이것은 모든 살아 있는 영혼이다. (Omnem animan viventem) 창세기 1장 24절은 하나님께서 땅에 명령을 내리시고 땅이 동물들을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2절을 참고하여 전체로서의 묘사를 살피면 물의 생물과 궁창의 새들을 하나님께서 그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처럼 25절은 하나님이 모든 동물을 만드셨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땅은 다른 것을 산출해 낸다(24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친히 흙으로 만드셨다고 한다. 이 인간창조 기사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처음부터 월등한 위치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창세기 2장 7절의 묘사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의 번역이 어떤 흙으로 어떤 모양을 하나님께서 빚으셨다는 생각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원문은 그 땅(흙)으로부터 [취한] 티끌[로]이다. 아파르는 ‘티끌’, ‘먼지’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인데 그 기본 개념이 ‘더럽지 않은 아주 작은 미세한 알갱이’이다. 현대적 의미로서는 ‘원소’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존 머레이는 첫째, 사람과 땅의 친화력, 둘째, 사람과 땅위의 다른 생물과의 친화력 혹은 놀라운 유사성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빈 역시 모든 생물들은 그 삶의 터전과 긴밀한 관련성을 갖는데 인간 역시 이런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보았다. “너는 흙이니”(창 3:19)는 이런 관점을 보증해준다. ‘이차르’는 진흙을 빚는 토기장이의 개념이 사람의 창조에 관한 이러한 배후에 존재함을 암시한다. 또한 ‘이차르’는 솜씨와 계획을 요구하는 창조적 행위를 암시한다. ( Gordon J. Wenham, WBC Vol.1 (Genesis 1-15), 163.) 즉 흙으로 지으실 때뿐만 아니라 태 중에서 조성하실 때, 그리고 특별히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실 때를 묘사한다(사 44:2, 21, 24 ; 43:21). ‘이차르’를 이 문장의 주동사로 보아야 한다. 이 동사의 주어는 ‘야훼 엘로힘’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이사야 44장 2절에서 (너를 지으며…너를… 조성하고) ‘앗사’와 ‘이차르’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로 함께 쓰여졌다. 따라서 ‘이차르’를 하나님께서 진흙공작을 하셨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적인 전능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사람의 몸에 대한 무에서의 창조(creatio ex nihilo)의 견해는 보편적으로 모든 개혁신학자들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견해는 사실상 논의의 가치를 상실한다. 논쟁의 출발점은 ‘생기’(생명의 호흡을)이다. 다른 모든 생명체는 직접 ‘네페쉬 하야’가 되었는데 왜 사람은 흙으로 만드시고 다시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과정을 거치셨는가? 이에 대해 칼빈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간을 탁월한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 다른 생물과는 달리 점진적인 과정을 두셨다고 생각했다. 폰 라드는 신적 생명력이 질료적인 신체에 들어감으로써 비로소 인격화되고 개별화된다고 이해했다. 이것은 사람을 단순히 물질적인 유기화학적 조직체로 이해하려는 환원주의에 대한 거부이다. 즉 유물론이나 물심론이 하나님의 창조와는 전혀 다른 견해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생기’이 불어넣어진 과정 이전에는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은 아주 명백하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은 필연이 되기 때문에 생기를 불어넣는 과정 이전의 상태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생령’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다만 필연적으로 사람이 될 어떤 것이다. 모리스(Morris)는 인체의 모든 기관들이 완전히 갖추어진 형태에서 호흡기관의 활력이 없고, 심장이 박동하지 않는 상태로 보았다. 또한 생명은 오직 하나님에게로부터 나와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이 직접 인간에게 생명과 호흡을 부여하셨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창세기 1장 24절의 표현을 함께 고려해 볼 때 그는 아직 생명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흙으로 빚어진 즉 ‘그 땅(흙)으로부터 [취한] 티끌[로]’로 ‘이차르’된 상태, 다른 말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이전의 상태를 완전한 인간의 몸(신체)을 가진 상태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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