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 신학과 사상
감리교의 창시자 웨슬리의 신학과 사상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그는 구원 체험을 바탕으로 성령 충만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성화된 삶을 촉구했고, 이 시대에 많은 교훈을 줍니다.
그러나 현재 감리교회가 웨슬리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지게 부정부패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성경을 이성적으로 해석하는 자유주의에 물들고, 배교적인 에큐메니컬 운동을 주도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감리교 계열의 기독교 신문을 보면 그리스도의 심판과 재림이 없다고 하고, 사회적인 개혁을 통해 지상 천국을 만들자고 하며, 에큐메니컬 운동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부디 감리교회가 하루 속히 성경 중심의 건전한 근본적 신앙을 회복하고, 세속화를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 웨슬리의 신론
웨슬리 신론에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과 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작은 일도 성취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보다 하나님의 사랑에 더 관심을 가졌는데, 하나님을 하늘에만 계시는 하나님만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으로 돌보시고 구원과 성화로 이끄시는 하나님으로 보았습니다.
a) 하나님의 주권과 거룩성과 사랑
웨슬리안 신학자 오턴 윌리(H. Orton Wiley)는 "하나님은 영으로서, 본성과 속성상 거룩하고, 실재에 있어서 절대적이며, 능력이 무한하시며, 인격에 흠이 없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 분은 궁극적인 기반이고,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며, 모든 유한한 존재의 이유가 되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은 무한하고 영원한 영으로 참이시고 실제적인 존재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하나님의 통일성"(The Unity of the Divine Being)에서 하나님을 거룩하시고 사랑이신 분으로 간주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성과 사랑을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을 베푸셔서 타락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성(Holyness)은 하나님의 숭고함으로 그 분은 악과 무관하며,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이고, 어두움이 없고 빛으로 계신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그의 영원성은 물론 그의 전지성과 전능성 그리고 편재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완전성을 말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거룩성'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해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Loving God)이라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심지어는 악한 사람까지) 보편적으로 사랑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속죄 받을 수 있다는 '만인 속죄설'을 주장하였고, 이로 인해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만인 구원설'을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강제로 사랑을 베풀고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은 구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성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다면, 웨슬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b) 하나님의 삼위 일체성
감리교의 교리적 선언 제1조는 "우리는 만물의 창조자이시요, 섭리자이시며, 온 인류의 아버지시요, 모든 선과 미와 애와 진의의 근원이 되신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고백합니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39개조 신앙 강령 중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을 고치지 않고 감리교 신앙 강령 제1조에 그대로 수록하였습니다.
"영생하시고 참되신 오직 한 분 하나님이 계시니 그는 영원하시며 무형무상하시며, 무한한 권능과 지혜와 선을 가지고 계시며,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시다. 이 하나님의 통일성 안에 본질과 권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등한 세 위격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계신다."
웨슬리는 하나님에 대해 본질적으로 하나이신 유일신적인 신앙을 가졌습니다.
이 하나이신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나타나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웨슬리는 끊임 없이 삼위일체 용어에 대해 생각했고, 많은 예를 들어 삼위 일체 교리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삼위일체가 셩경을 통해서 계시된 진리로 보았고, 삼위일체론이 교리적으로 얽매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웨슬리는 삼위일체론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성령에 의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 하나님으로서 경외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세 번 다르게 경험하고 계시를 받는다는 체험론적 접근 방법을 취했습니다.
웨슬리는 또한 성경 창세기 1장 26절 '우리가 인간을 만들자'(Let us make man )와 요한일서 5장 7~8절(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은 하나이다.)를 근거로 삼위일체론을 이해했습니다.
웨슬리는 삼위일체 신에 대한 지식이 참된 기독교인의 필수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성령 체험을 통해 삼위일체의 신비(어떻게 셋이 하나이고, 하나가 셋이 되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각기 다른 고유의 인격성을 강조하면서도, 삼위의 상호 내재(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내재함)를 주장합니다.
이렇게 상호 내재함으로써 서로간의 일치를 이룹니다.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있는 것 같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렇게 삼위 일체 하나님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는 '단일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부는 계획하고, 성자는 성취하고, 성령은 완성하게 됩니다.
c) 성부 하나님의 속성
웨슬리는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였으며, 이 하나님은 우주적 하나님 아버지(universal fatherhood of God)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고, 아버지를 고백하는 사람은 서로 형제가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고, 그 분을 닮아 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에게 수직적으로 사랑을 공급하시고, 또한 인간끼리 수평적 사랑을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웨슬리는 '거룩하신 이의 통일'(The Unity of the Divine Being)이라는 설교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속성을 여섯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소유한 주(Lord)가 되시며, 우주를 통치하는 주권성(Sovereignty)을 가지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능령의 한계와 불가능이 없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전능성(Omnipotence)을 가지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존재의 시작과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하시는 영원성(Etern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 없는 계속성과 피조물에 대한 성실성을 가지신 불변성(Immutabil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5. 하나님은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서나 존재하시고 영향력을 가지신 편재성(Ommipresence)를 가지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은 오류 없이 모든 지식을 소유하고, 이 세상 모든 일을 감찰하는 전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d) 성부 하나님의 사역
하나님은 인간에게 있어서 '창조자', '지배자', ''구원자', 섭리자'입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이 그의 강한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무(無)에서 창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보존하고 통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피조물인 인간의 영생을 가져다 주는 구원자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신론(deism)은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이 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웨슬리는 하나님은 창조한 우주 만물을 끊임 없이 섭리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신의 섭리는 그가 만드신 모든 것에 관여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적힌 대로 참새 한 마리도 그 분의 뜻이 아니면 떨어질 수 없습니다.
e) 성자 하나님의 사역
웨슬리는 하나님을 성부, 성자, 셩령의 품격을 통해 분명히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분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발현이고, 하나님의 존재를 완전히 나타내기 때문에 신론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히 1/3)
웨슬리의 신앙 체험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었고, 예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을 성부와 동일한 실체이며,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셨고, 완전한 신인(神人) 양성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만인의 죄를 사하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고, 심판을 위해 재림하실 분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본질상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셨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성육신(incarnation) 하신 분으로 보았지만, 카톨릭에서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했다는 무후 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은 거부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칼케돈 신조와 일치하는 예수님의 완전한 신성과 인성을 믿어, 예수님의 인성을 경시하는 가현론(docetism)이나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arianism)을 경계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을 인간의 죄를 대속하셔서 인간을 더 이상 죄의 노예로 남겨두지 않고 죄에서 해방시킨 분이자, 성화의 삶의 모형을 보여주신 분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속자이자 구원자(Saviour)가 되십니다.
웨슬리의 완전론과 성결론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서, 성결의 삶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입니다.
f) 성령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
웨슬리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와서 그 실체와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똑 같은 영원한 신이라고 보았습니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입지만 성결의 성취는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웨슬리는 성령의 본질을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구원의 성취자', '성화를 이루는 영', '믿음을 주시는 분',
'인도하시는 분', '인격과 신격을 가지신 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성령 사역의 중심은 우리를 성화로 인도하는 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죄로부터 우리 영혼을 해방시키고, 사랑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내재를 나타내며,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웨슬리는 복음적 회심 체험을 근거로 성령에 의한 마음과 생활의 변화를 강조하였습니다.
성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성령은 교회에 내재해 교인들을 보살피고, 계시와 영감을 주며, 그들을 감동시킵니다.
웨슬리가 가장 강조하는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 화해와 구원을 이루어 주시고,
은혜 속에서 성숙시켜 성화로 이끄시는 사역입니다.
8. 웨슬리의 선행 은총론
선행 은총(先行 恩寵)은 구원론을 중심으로 하는 웨슬리의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은 인간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 요소입니다.
선행 은총 없이 인간의 원죄 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양심, 자유의지조차도 웨슬리에 의하면 선행은총에 의해 주어진 것입니다.
a) 은총의 개념
웨슬리는 은총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았습니다.
은총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또한 우리를 전적으로 성화시키기 위해 성령 안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게 됩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총이 우선적으로 요청됩니다.
은총은 죄인인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베푸시는 지배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뜻하기 때문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은총은 구원의 근원(Foundation)이요, 신앙은 구원의 조건(Condition)이 됩니다.
b) 선행은총의 의미
선행 은총에서 선행(先行)은 먼저 오는 은총(grace that goes before)을 뜻합니다.
즉,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은 우리가 구원 받기 전 죄인일 때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은총을 말합니다.(롬 5/8)
선행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값 없이 골고루 주시는 만인을 위한 은총(Universal Grace)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 후 원죄 아래 있는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지향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얻으려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 구원을 이루거나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c) 웨슬리 선행은총 사상의 기원
아우구스티누스는 은총이 모든 것에 선행한다는 선행은총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총이 선재하고
인간이 그 은총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한 결과 선을 행할 의지를 갖는다고 하였습니다.
칼빈의 이중 예정은 하나님의 자유로운 결정에 의해 구원 받을 인간과 멸망 받을 인간을 구분하지만, 아르미나안주의는 하나님은 인간이 멸망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웨슬리는 아르미나안주의에 입각해 성경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 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딤전 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멸망 받는다면 그것은 인간이 자유의지에 의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행은총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 것은 부패한 인간이 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 책임이라고 보았습니다.
d) 구원을 위한 예비 은총으로서의 선행은총
선행은총은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선행은총과 함께 시작됩니다.
웨슬리 신학에서 구원 순서는 ①선행 은총의 역사, ②칭의 전의 회개, ③칭의, ④중생, ⑤점진적 성화, ⑥완전 성화입니다.
선행은총은 구원의 첫 단계에 서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받아 들이고 구원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양심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양심으로 의와 불의를 구분할 수 있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웨슬리는 양심을 "세상의 모든 영혼에게 하나님이 주어 주신 마음으로 그들의 사상, 말과 행실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어 주신 양심을 따를 때 만족감을 얻고, 양심을 거부할 때 불안을 느끼게 됨으로써 옳은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양심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면 양심은 무뎌져 더 큰 죄를 아무 꺼림 없이 짓게 되고, 양심에 순종하면 그 양심을 더욱 깨끗하고 새로워집니다.
e) 선행은총과 신인 협력설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는 제한적이고 특수적인데 비해,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에 응답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칼빈주의에서는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주어지므로 인간에게는 구원의 책임이 없으나, 웨슬리 신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지로 선행은총에 대한 구원을 결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총과 자유의지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복음적 신인 협력설'(Evangelical Synergism)입니다.
웨슬리의 신인 협력설은 카톨릭처럼 신과 인간이 절반씩 나누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주도권은 하나님께 있으며 인간은 이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원의 단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수용하고 이에 부응해야합니다.
* 웨슬리는 칼빈의 절대 예정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습니다.
1. 설교에 상관 없이 선택 받은 자는 구원 받고, 선택 받지 못한 자는 구원 받지 못할 것이므로 모든 설교는 헛되다.
2. 예정 교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에 대한 지향성과 필요성을 삭감시킨다.
3. 선한 일을 위한 열심을 파괴해 성도의 선행과 사랑이 줄어든다.
4. 예정 교리는 우리에게 복 주시는 하나님을 위선자와 속이는 분으로 오해케 한다.
§ 웨슬리의 인간론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왜 사는 것이고, 어떤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는 역사 이래 가장 큰 의문입니다.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의 기원과 본성, 운명, 존재, 의의, 가치, 사명, 죄와 악 등에 대해 성경적으로 이해합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타락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고, 하나님의 선행은총 하에 다시 그 형상이 회복되는 구원론적 인간론을 전개합니다.
a)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된 본래의 인간
덴마크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을 심미적 존재, 윤리적 존재, 종교적 존재로 구분하였습니다.
* 웨슬리는 인간을 '자연적 인간의 상태',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 '은총 아래 있는 인간의 상태'로 구분합니다.
'자연적 상태'(natiral state)에 속한 인간은 죄의 종으로 하나님과 분리되 죽음에서 잠자고 있는 상태의 인간입니다.
이 상태의 인간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암흑상태의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알지도 못한 채 세상의 쾌락을 탐하며 살고, 날마다 죄를 짓기에 죄의 종이며, 법에 매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도 없습니다.
'율법적 상태'(legal state)의 인간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난 인간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고의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들은 죄와 싸우기는 하나 죄를 극복하지는 못합니다.
'복음적 상태'(evangelical state)의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이된 상태의 인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찬 빛을 보고, 평화와 자유를 누리며, 죄를 범하지 않고 죄와 싸워 이깁니다.
웨슬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자신의 영원성의 형상' 즉 부패하지 않는 영광의 하나님의 모습대로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과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하였습니다.(창 1/26)
* 웨슬리는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세가지로 설명합니다.
신의 자연적 형상(the natural image of God)으로 인간은 영원한 존재로서 불사(不死)의 존재이며, 이해력과 의지의 자유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지닌 영적 존재(spiritual being)로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없는 존재임을 말합니다.
신의 정치적 형상(the political image of God)은 인간이 다른 동식물 등 피조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신의 도덕적 형상(the moral image of God)은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의롭고 거룩한 품성을 지니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사랑 자비, 정의, 진리, 성결의 품성을 지니게 됩니다.
웨슬리는 인간 창조 목적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인간이 이 세상에 보내진 목적은 영원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b)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타락한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거룩하고 무죄한 존재였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나누었으나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로 악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인간의 원죄가 되어 모든 특원을 잃어버리게 하였고, 후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하와를 유혹한 타락한 천사인 사탄도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모든 죄의 뿌리는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려는 욕망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그 성품과 영혼이 완전히 부패하였으며, 그 생각과 계획이 악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거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없이는 하나님의 형상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인간이 죄를 자각할 때 구원이 시작된다고 보고, 복음을 전할 때 먼저 청중이 죄인이란 것을 자각시키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습니다.
아담의 의지적 범죄로 온 인류가 타락했고 고통, 슬픔, 온갖 불행을 상속했고, 죄성을 얻어 세상을 더럽히는 모든 죄와 악덕을 낳았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타락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 왔고, 죄로 말미암아 영과 육의 죽음이 들어 왔으며, 그 죽음은 온 인류에게 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죄로 죄성을 유전 받은 사람은 자기 의지로 자범죄(voluntary transgression)를 짓게 되는데, 자범죄는 하나님의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로 인간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자범죄 중 내적인 죄는 하나님 이외의 것을 사랑하고 피조물에서 행복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영혼을 어둡게 해
신앙을 져버리게 하고 외적인 죄로 노출됩니다.
웨슬리는 타락한 자연인을 하나님보다 자신과 세상을 더 사랑하는 우상 숭배자로 보았습니다.
이런 자연인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죄의 삯인 사망 선고를 받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복음의 출발점은 인간이 죄인으로서 자기의 구원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c)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새로운 인간
하나님은 타락해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사망에 거하는 인간을 내 버려 두지 않으시고 선행은총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누구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그의 구원 사역에 복종하게 될 때 아담으로 인해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거듭남과 성화로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원죄로 인한 죄책은 그리스도 대속의 무조건적인 공로로 값없이 해결된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은혜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공로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성화의 길을 가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간은 상실하였던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면서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는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도 사랑으로 회복됩니다.
웨슬리는 인간을 선행은총에 근거를 두고 아담 안에서 잃어 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회복함으로써 새로운 인간으로 이해하였습니다.
§ 웨슬리의 기독론
기독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으로 그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고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독교의 중심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초대 교회사에서는 주로 예수님의 삼위일체와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웨슬리의 기독론은 영국 교회의 '39개조 종교강령'과 기독교 정통주의의 기독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1738년 올더스게이트 집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을 체험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을 연관 짓게 되었습니다.
웨슬리 신학은 구원론이 중심인데 구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정확히 알고 믿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매 순간마다 주를 의지하고, 교류하며, 그리스도를 중심할 때만 가능합니다.
a) 신이며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웨슬리는 예수님을 신(神)이자 인간(人間)이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가 되기 위해선 신성과 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영국 교회 종교 강령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영원 전부터 계신 말씀으로, 아버지와 한 본질을 가진 하나님이며 나뉠 수 없는 신성과 인성을 소유해, 인간과 같이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희생했음을 명시합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은 아버지와 의지의 일치 뿐만이 아니라 본성에 있어서도 아버지와 일치하며(아리우스설 배격) 예수님과 아버지는 인격적으로 복수성을 띤다고 보았습니다.(시벨리우스 배격) 인간 구원 차원에서 예수님의 신성은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중보자로서 강조되고, 예수님의 인성은 예수님의 구속자와 성화모델로서 강조됩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육체적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예수님이 참 신이며 참 인간이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를 강조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중보의 역할을 담당하시는 대 제사장입니다.
b) 속죄와 화해의 제사장 역할을 완성한 그리스도
완전한 신이며 완전한 인간으로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켰습니다.
화해는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를 위한 어린 양이 되셔서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 저주를 받으시고 영원토록 효력 있는 속죄제사를 드리심으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죄씻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다면 어떠한 죄인도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웨슬리 속죄론의 중점은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을 치루시고 죄를 사하셨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속죄 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한 하나님의 행위로 이해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리스도의 속죄는 천하 만민에게 갚 없이 주어지는 순수한 은혜입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특정인에게만 작용한다는 칼빈주의의 '제한된 속죄' 사상을 반대하고, 속죄의 보편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구원 받거나 유기될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칼빈주의의 '이중 예정론'(double predestination)을
배격하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스스로 대리적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재해 주시고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의 의무는 희생제사와 중재인데 예수님은 속죄와 화해의 사역을 스스로 담당하심으로써 신약시대 유일한 하늘 대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골 1/14, 롬 8/34, 히 4/14)
c) 성화의 표준 모델로서의 그리스도
죄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새 생명을 덧입어 거듭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에 모범을 보여주시고 많은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지 제시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가 품었던 마음을 나도 품고, 예수님이 행하신대로 나도 행하는 것을 성결의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매 순간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성취됩니다.
웨슬리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문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성경의 삶입니다.
그는 인간은 거듭난 이 후에야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웨슬리의 기독론은 인간의 구속과 관계되고, 구속의 완성은 성결로 이루어집니다.
§ 웨슬리의 구원론 -1 (의인과 중생론)
웨슬리가 일생동안 가장 관심을 두고 추구한 것은 인간의 구원이었습니다.
그의 구원론은 믿음으로 의롭게되는 순간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성화되어 결국 모든 죄성이 사라져 사랑으로
충만해져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웨슬리의 구원에 대하 이해로부터 은총, 의인, 중생, 성화의 교리가 성립됩니다.
웨슬리는 구원의 단계를 ①선행 은총 ②의인 이전의 회개 ③의인 ④중생 ⑤의인 후의 회개와 점진적 성화
⑥성결(그리스도인의 완전) ⑦영화로 구분하여 구원론을 전개했습니다.
그의 구원론은 크게 '의인'과 '성화'의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 단원에서는 그 중 전반기의 '의인'과 '중생'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a) 구원과 은총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유전한 원죄와 자신이 범한 자범죄로 인해 죄인 신분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는 원죄를 인간의 교만과 자기 우상(self-idolaty)에서 기인하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보았습니다.
원죄 아래 있는 인간은 저주 아래 있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죄인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무 조건 없는 은혜인 하나님으로부터의 '선행 은총'이 요구됩니다.
웨슬리는 선행 은총에 의해 모든 사람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구원'을 주장합니다.(벧후 3/9)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구원 받기를 원하면서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요한 5/40)
인간은 하나님의 선행 은총을 거부할 자유의지가 있으며, 빛으로 나와 자기 행위가 들어날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입니다.
b) 구원과 의인
웨슬리에게 있어서 의인은 하나님이 나에게 무죄를 선고한 '죄의 용서'를 의미합니다.
죄사함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나의 죄가 전가되고 깨끗이 씻김을 받게 됩니다.
'의인'은 나의 의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의한 은혜에 의해 주어집니다.
이 과정 중에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과 그의 공로에 대한 믿음, 죄사함에 대한 확신이 요구됩니다.
인간은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뀌면서 흑암 주관권에서 하늘 주관권으로 옮겨 오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의인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경험하게 합니다.
이렇게 인간이 값 없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내 대신에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한 의를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인류에 죄와 사망이 들어왔고, 예수님 한 사람으로 인해 의와 생명이 들어왔습니다.(고전 15/22)
의인이 된 사람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 하나님께 순종하고 선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의인이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으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스도의 대속',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는 인간의 참된 믿음'이 있습니다.
웨슬리는 의인됨으로 완전히 죄성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며, 성화를 통한 내적인 죄의 근절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구원이 순간적이면서 점진적이어서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천국에 가는 '궁극적 구원'보다도 '현재적 구원'을 강조했는데, 현재적 구원 없이는 궁극적 구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종교 문 앞을 '회개'로, 종교의 문을 '신앙'으로, 종교 자체를 '경건'으로 보았습니다.
회개는 구원의 첫 단계로 의인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인간을 복음을 믿기 전에 회개해야 하며 그리스도를 신뢰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의와 신뢰를 포기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심으로 뉘우치며, 낮아진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비와 용서를 비는 마음입니다.
의인이 되고 난 후에도 죄를 짓는 순간마다 회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용서 받아야 합니다.(계 7/14)
루터는 예수님이 십자가 희생으로 이루어 놓으신 의를 믿음으로써 값 없이 의롭게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웨슬리 또한 선한 일을 통해 구원을 이루려고 하였지만 실패하고, 올더스게이트 집회의 신앙 체험을 통해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구원관을 갖게 됩니다.
인간이 의인이 되는 과정은 예수님이 이루신 의를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의가 내 안에서 성취됨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원 받기 이전의 웨슬리는 의식주의자(methodist)로서 영국 성공회적 전통에 따라 하나님의 법도를 자신의 힘으로 지킴으로써 신앙과 선행에 의한 의인화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구원에 대한 불 확실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 조지아주 선교 사업 실패, 모바리아 교도의 영향, 올더스게이트 체험 등을 계기로 심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웨슬리가 말하는 의인은 죄의 용서를 말하며, 회개와 믿음을 의인이 되기 위한 유일한 조건으로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의인관은 루터의 '오직 은혜만'(sola gratia)으로,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루터와 칼빈의 의인관이 믿음만 강조하고 선행을 경시해 신앙인으로 하여금 '도덕 불감증'에 빠질 수 있게 하는데 비해, 웨슬리는 선행을 성화의 조건으로 볾으로써 '신앙 지상주의'를 경계하고 믿음과 행실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c) 구원과 중생(거듭남)
의인과 중생은 거의 동시적으로 일어나지만 웨슬리는 의인이 중생에 앞선다고 생각했습니다.
죄인된 인간은 죄사함으로 의인이 되고, 성령을 받아 새 생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중생으로 의인은 자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타락된 본성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의인은 죄책을 제거하지만 중생은 죄성을 제거하며, 의인은 하나님 사랑을 복귀하지만 중생은 하나님 형상을 복귀합니다.
웨슬리에게 중생은 내적 변화로 하나님 형상을 회복하고, 죄의 능력을 제거하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적인 변화입니다.
사람은 중생으로 세상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교만과 혈기로부터 겸손과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즉 중생은 인간의 타락된 본성을 버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놀라운 변화입니다.
웨슬리는 설교에서 '중생'(regeneration)이란 단어보다 새로운 영적 출생이란 의미에서 '신생'(the new born)이나 '다시 태어남'(be born again)을 즐겨 사용하였습니다.
'신생'은 세속적이고 마귀적인 마음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변화되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의인'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적인 변화라면 '신생'은 인간의 실제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웨슬리는 중생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첫째 죄악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경건한 삶인 성결을 위해서는 먼저 거듭나야만 합니다.
둘째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과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진절한 구원을 위해 필요합니다.
셋째 중생은 천국에서는 물론 이 세상에서도 사랑과 기쁨이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중생의 표적을 보여 주어야 하는데 갈리디아서 5/22과 같이 성령의 9가지 열매(사랑, 기쁨, 화평, 오래 참음, 친절, 선함, 믿음, 온유, 절제)를 보여주게 됩니다.
웨슬리는 중생의 첫 번째 표적으로 '믿음'을 강조하였는데 이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확고한 의뢰와 믿음이며, 모든 죄를 이기는 힘과 그 결과로 오는 평안입니다.
중생의 두 번째 표적은 '소망'으로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신앙의 철저한 확신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중생한 자는 이 소망으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늘 기쁨과 희망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중생의 세 번째 표적은 '사랑'으로 변함 없이 주를 사랑하며, 주와 한 영혼으로 결합되어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게 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웨슬리는 중생한 자의 표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을 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으로, 중생한 자는 거룩하고 완전한 상태인 성화를 지향합니다.
중생이 '다시 태어남'(출생)에 중점이 주어졌다면 성화는 '성장함'과 '온전해짐'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웨슬리는 중생을 성결과 성화의 시작으로 보았지만, 성경에서 구원 받기 위한 중생은 성화를 포함합니다.
어린 아이가 출생해도 잘 먹고 성장하지 않으면 병들고 죽을 수도 있듯이 중생한 사람은 반드시 경건한 신앙생활을 해야 하며, 믿음 안에 머물러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웨슬리는 중생한 자에게 남아 있는 죄의 뿌리를 제거하고 사랑으로 충만케 하는 성결도 강조합니다.
의인과 중생은 성화의 입구에 해당하며, 중생한 자는 완전 성화까지 계속적인 성장이 필요합니다.
§ 웨슬리의 구원론 - 2 (성화와 완전론)
중생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에 의미가 있다면 성화는 성장함에 의미가 있습니다.
중생한 자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성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성화(Sanctification)의 교리는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가장 중요한 특색을 가집니다.
'완전 성화'는 구원의 완성이요 구원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a) 웨슬리 성화 사상의 신학적 배경
웨슬리의 성화 사상은 수 많은 경험과 연구를 통해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로 크리소스톰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과 그 은총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호적 협조가 필요하다는 사상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선행이 의로워진 그리스도인의 자동적 열매라는 루터주의자들의 주장이나, 신앙 지상주의, 도덕 무용론 등을 비판하고 선행은 인간의 의지가 동반된 신인 협력적인 일로 보았습니다.
율법의 역할에 대해 루터는 죄를 깨닫게 하는데 그치지만 칼빈은 선행과 성화의 선행 또는 채찍질과 자극을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의 입장은 칼빈과 비슷하나 칼빈이 성화가 성령으로부터만 나온다고 믿은 반면에 웨슬리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인간 의지의 책임적 응답에 의한 성화'를 강조했고, 칼빈과 달리 이 세상에서 완전 성화가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영향을 받아 성화가 믿음을 기초로 사랑의 실천이라는 선행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중세 수도원의 속세를 등지고, 금욕 생활을 하며,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고행적 수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려는 전통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웨슬리는 네덜란드 신학자 아르미니우스(Arminius, 1560~1645)에 의해 시작된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영향을 받아 신학적 골격을 아므미니안주의에 입각해 세웠고, '신인 협력설'(synergism)을 주장했습니다.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칼빈주의자들과는 달리 인간이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자유의지로 받아들여 믿어 구원 받거나 거부할 수 있다고 믿었고, 구원 받은 사람도 자유의지로 타락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b) 성화 사상의 본질과 특성
'성결'이란 말은 '거룩'과 관련이 있는데 거룩은 히브리어 '카도쉬'(kadosh)로 분리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이 말은 하나님이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인간이나 사물이나 장소가 하나님과 관련지어질 때에도 거룩하다고 불리며, 어떤 객체가 '거룩'하게 되는 것을
'성결'이라고 하고, '거룩하다'와 '성결하다'는 같은 의미로 쓰여집니다.
그러나 성결과 성화는 다른데 '성결'은 영어로 'holiness' 또는 'being holy'로 표시되는데 반해 '성화'는 영어로 'sanctification' 또는 'becoming holy'로 표기됩니다.
'성화'는 죄에서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체험적 의미가 강한데 비해, '성결'은 성화를 통해 거룩해진
결과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소극적으로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결'을 의미하지만 적극적으로는 세상에 사랑과 선행을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사랑'을 성령의 최고의 열매이고,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준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성화란 자기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고, 구원의 최종 조건으로 간주했습니다.
인간이 서로 욕하고 미워하며 자신도 사랑하지 않아 학대하는 이유는 내 마음 속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위 사람에게 넘치는 사랑을 전파하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교우를 친 형제 자매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늘 계명이자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마태 22/32~36)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웨슬리의 '성화'는 루터의 믿음에 의한 '신앙 의인'을 인정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 받아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성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았습니다.
웨슬리는 믿음과 행위를 대립시켜 신앙만을 찬양하고 선행을 경시하는 것을 사탄적인 일로 보면서 "신앙에 아무런 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가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행위가 믿음을 온전케하고 증명한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선행과 복음 사역을 할 때 믿음이 더 굳건해지는 것을 보면 믿음과 행함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화는 성결을 목표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화를 수행하는 주체가 '성령'이며, 성화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성화는 스스로 이룰 수 없으며 성령을 통해 끊임 없는 하나님의 교류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즉 성화는 온전한 진리와 믿음의 바탕 위에 성령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c) 성화의 단계
1. 초기의 성화 (initial sanctification)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사함으로 중생될 때 성화가 시작되는데 이를 '초기의 성화'라고 합니다.
칭의와 중생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에 '관계적 성화'라고도 합니다.
관계적 성화는 내적인 변화가 아니라 외적인 변화이며 내 과거의 죄를 용서 받은 상태입니다.
관계적 성화를 이룬 사람은 영적 성장을 거쳐 온전한 성화로 나아가야 합니다.
2. 점진적 성화 (gradual or progressive sanctification)
어린 아이가 태아나면 젖을 먹고 성장해야 하듯 내 영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혜로 성장해야 합니다.
점진적 성화 기간동안 주님을 믿고 의지해 육신의 본능과 사탄의 시험·유혹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인간은 죄사함을 받았어도 죄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의 유혹이 있는 순간마다 회개하며 나아갑니다.
또한 내 스스로 육신을 이길 수 없으므로 자아를 버리고 주님 뜻에 맡겨 성령이 작용하도록 해야 합니다.
3. 온전한 성화 (entire sanctification)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완전히 복종된 상태이고, 그리스도와 완전히 일치됨을 말하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의 아가페적인 사랑이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초기 성화는 불신자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는 순간적인 체험이라면, 온전한 성화는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일소하고 주님과 하나되 경건하고 깨끗해지는 체험입니다.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를 '제 2의 축복', '두 번째 변화', '온전한 구원', '그리스도의 완전',이라고 불렀고, 그 본질을 '온전한 사랑',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나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
웨슬리는 점진적 성화가 계속 되다 보면 죽기 전에도 어느 순간 완전한 성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4. 영화 (glorification)
영화는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천국의 시민으로 살 수 있는 흠 없이 완전하고 거룩한 영적 인격의 완성 내지는 성취입니다.
영화는 최종적인 완전(final stage of perfection)이며, 그는 죽음과 함께 영화에 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온전해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벽한 구원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는 것을 명심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d) 웨슬리 성화(완전) 사상의 성경적 근거
마태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마태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히브리서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데 나아갈찌니라
골로새서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고후 13/9 우리가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면, 그것으로 우리는 기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완전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골로새서 2/10 여러분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완전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어떤 권세나 세력보다 더 높은 분이십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요한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로마서 8/29-30 그분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을 자기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또한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를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첫 태생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웨슬리의 성령론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 받는 과정에서 모든 도움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제자들에게서 떠나시면서 성령을 주시기를 약속하셨고, 성령은 오순절 이 후 초대 교회에 강하게 작용해 방언, 예언, 말씀, 병 고침, 감동 감화 등으로 복음 전파에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중세 시대에 성령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으나 웨슬리를 비롯한 근대 부흥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 조지아 주의 선교에 실패한 웨슬리는 자신의 신학적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힘이 없이 형식적이고
경직된 자신이 신앙이 문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1738년 회심을 계기로 성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복음을 중심으로 한 대각성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영적인 무지로 죄악의 길로 가는 사회를 선도하고 잠자는 신앙을 일깨우기 위해 성령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a) 성령의 본질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구분되면서도 일체함이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자 내 안에 거하는 하나님입니다.
성령은 창세 전부터 계셨고, 신격과 인격을 갖추셨으며, 우리를 구원과 성화로 이끄십니다.
성령은 거듭남으로 우리 영을 탄생시키고, 양육시키며,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게 합니다.
웨슬리는 인간의 회개, 믿음, 거듭남 등 구원의 전 과정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웨슬리는 우리를 진리와 성결로 이끄는 것은 성령이라고 했으며, 성령의 역사를 철저히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결은 모든 죄가 씻김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영적으로 순결한 상태입니다.
살후 2/3에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디도서 3/5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볼 때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성결의 집행자라 볼 수 있습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성령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습니다.
끊임 없는 성령과의 교류를 통해 인간은 믿음, 사랑, 기쁨, 감사, 평화 등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성을 극복하고 새롭게 변화되 성화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도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또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생명력 있는 설교를 가능하게 합니다.
요한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살전 5/19~20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갈라디아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의 가장 큰 사역은 우리를 진리가운데 인도하셔서 옳은 길로 인도하시고 많은 깨달음을 주십니다.
또한 항상 성령의 불이 내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기도와 찬양에 힘써야 합니다.
예언과 같은 성령의 은사도 멸시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의 9가지 열매라는 다양한 성품을 주십니다.
일부 은사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를 중심하지 않고 은사에만 치우쳐 마귀의 주관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과 교리 공부를 등안시 하고 이교도적인 방언과 귀신 쫓음, 병고침, 이상한 입신 현상 등에 치중합니다.
그러나 은사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은사는 구원 받은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영 분별, 예언, 병고침. 방언 등의 은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령해지면 자신에게 미치는 나쁜 영의 파장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또한 귀신이나 마귀들린 자의 악을 영을 쫓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좌우(진리와 은혜)로 치우치지 않고 진리를 중심하면서 다양한 성령의 은사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b) 성령의 인격성과 신격성
1. 성령의 인격성
성령이 불, 바람, 물, 기름 비둘기 등의 상징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에 성령이 무생물이나 비인격적인 존재(힘, 능력, 에너지)로 오해되곤 했습니다.
성령을 의미하는 헬라어 '프뉴마'는 '호흡하는 기운'이라는 뜻으로 비 물질적인 강력한 실체를 가르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6/13,14절에 성령을 대명사 그(he)로 가르키는 것으로 보아 남성 인격성을 가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는 존엄성과 품위를 갖춘 인격체로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성령의 인격적인 속성으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지성'(고전 2/10),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진 '감성'(에베소서 4/30), '의지의 속성'(고전 12/11, 롬 15/30)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보혜사(Comforter(위로자), helper(조력자))로
성령님 자체가 경배의 대상이자 목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 성령의 신격성
초대 교회의 '아리안'(Arians)이나 '사벨리안'(Sabellian)과 같은 이단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만 간주해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격성과 신격성은 사도행전 5/3~4에서 아나니아가 성령을 속였다는 점에서 '인격성'이 증명되고, 성령을 속인 것이 하나님께 거짓말 한 것이란 점에서 '신격성'이 증명됩니다.
사도행전 5/3~4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웨슬리는 구원과 성화는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함으로써 성령의 신성을 명백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삼위일체론을 철저히 믿었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은 삼위일체론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주의자(Arianism)에 반대해 성령은 그 본질에 있어서 성부와 같고, 성부와 성자가 역사할 때 성령도 동참한다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도 성령의 신성이 성부와 성자의 신성과 동일하지 않다는 유니테리아니즘(unitarianism)에 반대해 성령의 신성과 동격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창조 사역에 관여했고, 구약 역사에도 참여했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구원 역사에 참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존맥커리에(Jhon Macquarrie)는 성부를 '근원적 존재'(primodial being), 성자를 '표현적 존재' (expressive being), 성령을 통합적 존재(unitive being)이라 하여 삼위일체론을 설명하였습니다.
요한 15/26의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란 구절을 통해 성령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신 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웨슬리는 벧전 1/11에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부른 점을 토대로 성령이 아버지부터로 뿐만 아니라
아들로부터로도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 사역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웨슬리의 교회론 - 1
웨슬리는 18세기 영국 국교회가 형식적이고 전통에 얽매어 살아 있는 신앙을 하지 못함을 개탄하고 교회를 개혁하고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는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보다 부요할 때 성직자와 교인이 타락하는 것을 간파하였고, 실제로 18세기 영국 교회는 타락하였습니다.
웨슬리는 먼저 개인적인 구원을 강조했는데 구원을 은총으로 죄사함 받는 '칭의'와 죄성으로부터 깨끗해지고
거룩해져 사랑으로 충만한 '성화'로 나누었습니다.
성화는 성령의 은총에 대한 신인협력적인 노력에 의해 주어지며, 날마다 말씀과 은혜로 변화를 받아 '영화'를 목표로 온전히 성장하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교회를 제도, 의식, 교권, 건물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되어 가는 자들의 '사랑의 교제', '사랑의 공동체'로 이해하였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본질은 성화이고, 그리스도의 피로 획득한 믿음과 사랑과 경건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초대 교회 역시 서로 말씀을 가르치고 물건을 통용한 성화와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웨슬리는 교회는 교회의 머리된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거룩하다고 생각했고, 교인 또한 거룩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자 지도자는 오직 예수님이므로 교회에서 성도 위에 군림하는 인간 지도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목사와 장로와 감독은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 자이고, 교회 실무는 집사가 담당합니다.)
웨슬리는 교인 생활에 있어서도 근면 검소하게 살면서 저축해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솔선수범하여 기본적인 생활비 외에 모든 수입을 선교와 구제를 위해 썼고, 그가 죽고 나서 남긴 재산은
동전 몇푼과 은수저뿐이었습니다.
그는 가재도구를 팔아 구제했고, 고아와 병자를 돌보는 학교와 진료소, 가난한 자를 위한 집 등을 설립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교회가 너무 형식적인데 치우쳐 성도를 돌보고 교제케하는데 부족했다고 보고, 교회가 교인들 간의 인격적 교제가 이루어지고 영육간의 어려운 점을 서로 살펴주는 곳이 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데 힘을 쓴 것을 상기하고, 성도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장한다고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성도의 교제를 위해 모라비아 교도들로부터 배운 소집단 제도를 채택하여 신도회(Society), 속회(Class Meeting), 조(Band)를 조직하여 신앙성장과 친교, 전도와 제자 훈련을 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습니다.
그는 또한 모라비안으로부터 조직, 경건생활, 전도의 열정과 헌신, 찬송 부르기. 노방 전도, 즉석 기도와 설교,
평신도 설교, 교육 등을 배웠습니다.
웨슬리는 로마 카톨릭의 교리와 관습과 교권체제를 그대로 이어 받은 영국 성공회를 문제점을 지적했만 되도록 교회의 일치를 위해 분리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목사 안수를 베풀고 설교자를 임명한 것이 성공회와 분열되게 만들었고, 성공회 감독들도 웨슬리를 비방해 점차 분리되게 되었습니다.
§ 웨슬리의 성례전론
성례전은 세례나 성찬 같은 구원과 관련된 기념 의식입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세례는 신앙과 중생의 표시이지 수단은 아니었습니다.
세례를 죄 씻음과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해 연합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웨슬리는 세례가 구원에 필수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전통에 따라 성만찬을 중시했습니다.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웨슬리는 성만찬을 '하나님의 선행적이고 의롭게 하며 성화시키는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는 성만찬을 은총 그 자체가 아니라 은총의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성만찬 시 예수님이 임재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 살과 피가 된다는 화체설은 반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재림하시기 전까지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성령을 통해 오실 수는 있어도 육체적으로 오시지는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성만찬을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회상하고 감사하는 기념적인 행위라고 보았습니다.
웨슬리는 성만찬 시 예수님의 육체적 물질적 임재를 거부하고, 츠빙글리의 기념설도 거부하고, 역동적(dynamic)으로 성도들의 마음 속에 신비하게 임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을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하나의 신비로 보았습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예하는데 이를 일으키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 웨슬리의 종말론
웨슬리는 연옥설이나 영혼 수면설을 부인하고 부활할 때까지 영혼은 일정한 장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죽은 자의 부활과 몸과 영혼의 온전한 부활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부활하는 몸은 썩지 않고 죽는 않는 완벽한 몸이고, 모든 질병 고통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운 온전한 몸이라고 믿었습니다.
웨슬리 신학은 구원론이 중점이기 때문에 종말론에 관해서는 체계적인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에 500회(신약 300회) 언급된 재림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교회사를 돌이켜 보면 초대교회 3세기까지 예수님이 천년왕국 이전에 재림한다는 전천년주의가 믿어졌는데,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가 천년왕국은 교회를 통해 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무천년주의를 주장해 믿어졌습니다.
종교 개혁 당시 루터가 다시 전 천년주의를 지지하였고, 1884년 이 후에야 사람들이 종말과 재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적 종말은 말세의 징조가 나타나고, 예수님이 공중 강림할 때 의로운 성도의 휴거가 일어나며, 7년 대환란동안 적 그리스도가 이 땅을 통치해 남은 교인을 핍박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사탄 마귀 악인을 진멸해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영혼은 신령한 몸을 입고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온갖 영화를 누리며 왕 노릇하고 천년이 지난 뒤 사탄을 심판해 불못에 던지고, 구원 받지 못해 지옥에 있던 영혼을 몸을 입혀(사망의 부활) 백 보좌 앞으로 불러내 하늘 책에 기록된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해 불못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 후에 지구와 우주는 불 타 없어지고 구원 받은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웨슬리는 그의 저서와 찬송가 가사를 통해 전천년주의자로 인정됩니다.
그러나 웨슬리가 이 땅에 복음 전파로 천년왕국에 이루어지고 이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후 천년주의'를 믿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회복음을 강조한데 기인하지만 이 세상이 점점 타락하고 악해지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의의를 영생을 상속 받을 의인과 영원한 형벌을 받을 악인을 갈라 놓는데 두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사탄을 물리치고 자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심판이 죽음 이 후에 일어나지 않고 주님의 재림 이 후에 일어난다고 믿었습니다.
웨슬리는 새로운 천국이 아담이 낙원에서 누렸던 것보다 더 나은 성결과 행복의 상태가 이루어 질 것으로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웨슬리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영광을 누리지 못 할 것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현세를 무시하고 천국과 종말만을 강조한 종말론자도 아니고, 내세와 종말을 무시하고 현세말을 중요시하는 현실 주의자도 아니였습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 우리를 심판할 때 '우리의 내적 성결', '우리의 업적에 따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은 정도에 따라' 보상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 분과 같이 될 것이며, 우리가 그 분과 같은 형상으로 변모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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