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
고전 10:1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 역사신학의 정의 1) 역사신학(歷史神學, Historical theology) ① 역사신학은 성경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등과 더불어 신학의 4부문 중 하나로 “역사학적 방법”을 써서 과거의 자료를 엄밀하게 관찰하고 규합하고 정리하고 해석함으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 신앙의 역사(=교회사)의 의미를 연구하는 기독교 신학의 한 분야이다. ② 이러한 역사신학의 과제는 교회사에서 일어난 해당 사건과 사실의 신학적 개념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진술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 사회적 · 문화적 메커니즘을 성경적으로 규명함으로 현대 교회가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바른 신앙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작업이다. 렘 7:1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2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거하게 하리라 4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2) 역사신학의 연구와 방법론 ① 역사신학 연구의 주된 초점은 교회의 역사 가운데 발생된 연구 대상으로서의 사건과 인물 혹은 이슈에 영향을 끼친 주요한 신학적 사항들을 역사적 관점에서 판정하고 설명하는데 있다. ② 뿐만 아니라 역사신학은 신학과 역사적 환경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를 해명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즉 교회사에서 이루어진 신학의 역사적 발달 과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방법을 성경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3) 성경계시(啓示)와 초(超)역사 ① 성경 계시(啓示)는 초(超)역사(=원역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성경의 예를 들어서 왕상 17장의 사르밧 과부의 사건과 왕하 5장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사건을 우리가 이해하는 “역사”라고 한다면, 이 사건들에 대한 눅 4장의 예수님의 해석을 “초역사”라고 할 수 있다. 눅 4:24또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28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분이 가득하여 29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30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② 성경 계시는 일반적인 역사주의나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역사학적 제(諸)방법들 만에 의해서는 해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된 진리를 학문적으로 파악하는 신학이 주장하는 기초적인 사실은, 계시란 어디까지나 역사 속에서 발생한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신학자가 보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시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뜻을 아는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4) 신앙과 신학의 역사적 성격 ① 기독교 신앙이나 기독교 신학 자체는 역사적(언약 성취사 또는 구속사)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 성격의 계시는 이미 신구약성경 66권으로 종결되었다. 때문에 오늘날 역사적 맥락이 없이 주장되는 개인적인 주관이나, 경험에서 얻어진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은 계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② 따라서 성경 계시를 연구하고 현대적으로 해명하는 신학의 한 분야로서, 악한 자가 임하는 종말의 시대에, 역사신학을 공부하는 신학도들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살후 2:7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8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2. 역사와 신학의 관계 1) 역사 속의 신학 개념 ① 신학(theolgy)은 글자 그대로 “신(theos)에 관한 말(logos)” 이다. 원래 신학(θεολογια)이라는 용어의 기원은 헬라철학과 이방 종교적 유래를 가지고 있다. 신학이라는 말을 최초로 쓴 플라톤 등의 철학자들은 그들의 형이상학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초기 교부시대에 기독교 신앙의 특정 측면을 언급하기 위해 종종 사용되었던 것이 현대신학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② 2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기독교도의 진리 청원”으로 정의했다. 이후로 신학자들은 기독교의 신학을 데올로기아(theologia)로 이방종교의 신학을 뮈톨로기아(mytholgia)로 구별하게 되었다. 신학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과 같은 관념으로 정립되기까지는 오랜 갈등의 역사를 겪은 후인 13세기경부터였다. ③ 이처럼 초기의 기독교 신학자(혹은 문학가)들의 과제 중 하나는 이방신들과 기독교의 신을 구별하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이 전 유럽으로 퍼진 중세 초기에는 신은 오직 하나인데, 이 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고 보편화 되었다(=Catholic).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기독교 신학이란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자기 계시로서의 그분의 존재와 속성과 사역을 조직적으로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는 학문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④ 중세의 신학은 대성당(Cathedral)과 수도원에 부설된 학교(scholar)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의 신학은 이론적 주제보다는 기도와 영성 등에 관한 실천적 주제들의 과제로 간주되었다. 이런 흐름 가운데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giae)은 신학이라는 용어를 일반화하는데 기여했다고 인정된다. 이후로 종교개혁 시대에 마틴 루터는 신학의 실천적인 측면을 재발견하려 했으며, 1559년 칼빈이 설립한 제네바 아카데미와 이 실천적 운동을 목회에 연관시키는 개신교의 전통은 수많은 신학교와 대학 안에서 지속되었다. ⑤ 18세기 계몽시대의 발흥으로 특히 독일에서는 대학 내의 신학의 위상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계몽주의자들은 학술적 논구는 그 어떤 “외부적 권위”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이 보편화 됨으로 신학은 점차 시대에 뒤떨어진 학문으로 간주되었으며, 실용적 세속주의(인본주의)를 강하게 채택한 국가들에서는 신학이 사실상 대학 정규과정에서 축출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최종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모든 단계의 공공교육에서 신학을 제거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다. ⑥ 그래도 신학은 전통적 교육의 일부로서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종교 연구의 한 측면 곧 종교학의 한 분야로서만 취급되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근현대의 신학교와 목회현장에서 신학을 다원주의적 과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 안에 성경적 신앙을 무너뜨리는 상대주의적 신앙의 유입을 가져왔고, 휴머니즘이라는 미명 아래 오직 예수라는 교리와 믿음이 교회 안에서도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신학을 공부하는 자는 역사가 제시하는 비 성경적이고 비 신앙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을 근거로 하여 신학적으로 응답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2) 역사는 신학의 소재 ① 신학의 절대적 소재는 성경이다. 성경은 역사적인 기록으로서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십자가와 부활) 안에 있는 기독교의 역사적 토대를 증거한다. 그러나 기독교의 신앙이란 경문(經文-성경)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며 그분의 역사를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성경(신약)에서 배우는 지식 이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주어진 역사(섭리역사)에 관한 전문적 지식은 전무(全無)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② 따라서 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섭리에 관한 신자의 지식적 요구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교회 안에서 일어난 학문이기에 역사는 신학의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사신학은 교회사의 사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③ 이러한 역사신학의 관찰과 연구에서 볼 때, 종교개혁 이전까지의 신학과 성경해석에는 일군(一群)의 오류들이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인간들이 오해한 신학을 성경과 바르게 일치시키기 위한 역사신학적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세까지의 신학이 성경의 진리와 주목할 만한 편차를 보였기에 이 오류를 성경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의 표현이 곧 종교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 역사신학과 교회사의 관계 1) 역사신학이 기독교회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하고 교리 형성에 영향을 끼쳤던 요인들을 확인하고 설명하려는 신학적 탐구의 한 부문이라고 할 때, 교회사는 역사신학에서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교회사는 기독교 신학의 발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교회 역사의 사건들의 전말(顚末)을 밝혀내고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 역사의 사건들이 기독교 교리의 역사적 발전임을 탐구하는 역사신학의 핵심적 과제는 현존하는 기독교의 교리들을 역사적 발견과 설명을 통하여 “성경적으로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한편 기독교 역사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 특히 그 교회 안의 “제도적 요소”를 이해하는 것은 신학이라는 학과의 필수적 부문이다. 따라서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사역하기를 원하거나, 자기가 속한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신학도는 교회사의 많은 과정에 역사신학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교회사가 역사신학의 요소와 그 관심사와 교차되는 지점에 있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할지라도 교회사는 자체로 독립된 과목으로 간주해야 한다. 3) 교회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건은 311년 4월에 내린 갈레리우스의 < 관용 칙령 >(Edict of Toleration) 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기독교에 대한 로마제국의 박해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개관적 기록을 교회사라고 할 때, 이 기록이 가지는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 역사신학의 과제인 것이다. 즉 관용 칙령은 기독교를 로마제국 내의 합법적인 종교 중 하나로 인정함으로 기독교가 양적 성장과 제도적 발전에 이르는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4) 따라서 교회사는 각 시대의 사건 및 제도(=교황권, 감독제도, 형제단 등)와 운동(=감리교운동, 오순절운동, 카타르파 운동 등)의 출현을 역사로 기록하고 역사신학은 그 의미들을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사는 역사의 흐름 안에 속해 있고, 역사신학은 교회사에 출현한 사상, 개인, 제도의 성경적 의미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탐구하는 것이다. 4. 역사신학과 성경의 관계 1) 성경과 역사적 자료 ① 성경의 기록 그 자체만으로는 불신의 이방세계에 복음이 전해진 역사곧 그 과정의 사건과 사실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복음이 성경시대에서 초대교회 시대로 계승되고 중세시대와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근대 이후의 세대로 전해지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성경(신약성경)의 자료만으로 설명하고 해석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② 따라서 문서를 포함한 각종 자료로 전해지는 역사의 자료를 통해서 교회사의 모습을 충실하게 보존하고 정리하여 계승시키며, 그것이 성경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해석하는 작업 또한 역사신학을 수학하고 연구하는 자들이 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2) 성경의 계시적 역사자료 ① 그러나 성경이 역사의 자료를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계시록에서 사도 요한의 편지를 받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초대교회 보다는 약간 늦은 2세대의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있어서 일곱 교회의 모습에는 이미 교회의 변질과 타락의 전조가 시작되고 있음을 계시록은 증거하고 있다. 즉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세상의 오염 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교회의 역사적 자료들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② 아시아의 일곱 교회 이후의 시대에는 교회가 세속에 오염되고 변질되는 사건들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기독교는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점차적으로 종교화 되어 세상의 다른 종교들과 다를 바 없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됨을 역사의 자료들이 보여준다. 그러나 또한 타락에서 회복하기도 한다. ③ 이런 단계들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볼 때 교회의 타락이 한꺼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듯이 교회의 회복 또한 한꺼번에 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타락도 한 단계 한 단계 진행되는 것이며 회복도 한 단계 한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사실을 교회 역사의 자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다. 3) 진리의 변증 ① 이런 사실적 자료들을 규합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결국 역사신학은 성경의 하부에서 성경 계시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역사적 교회의 타락과 회복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성경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미 타락과 회복의 원리를 분명하게 언약으로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따라서 역사신학은 계시 된 하나님의 언약이 교회사 속에서 역사적으로 성취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건의 자료들을 규합하고 분석하고 연구하여 그 의미를 해석함으로 기독교를 변증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5. 역사의 기록 1) 역사의 구분 역사란 “사건 자체로서의 역사(history as events itself)” 와 역사가(歷史家)에 의해 문자로 남겨진 “기록으로의 역사(history as record of events)”로 구분된다. ① 역사 – 역사의 일들은 모두 기록될 수 없다. ② 역사서 – 역사의 일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 문자로 기록된다. 우리가 취급하고 연구하는 역사란 역사 그 자체의 모든 것이 아니라 극히 제한적으로 일부만 기록된 역사서를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개인의 일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③ 어떤 역사가이든 일어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인간도 모든 사물을 절대 객관적 입장에서 고찰할 수 없으며 또 사물의 모든 측면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가는 객관적 정직과 성실을 경주하면서도 자신의 주관적 견해에 의하여 자신이 깨닫고 확보한 분량만큼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성경의 계시를 받기는 하지만 성령께서 조명하시는 분량만큼의 계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모습과도 비슷하다. 2) 역사해석의 측면 ① 객관적 측면(과학적, 철학적, 예술적) ⑴ 역사의 해석에 있어서는 사실이 중요하다. 역사가는 역사의 기록자일 뿐만 아니라 역사의 해석자 입장에도 서야 한다. 본래 역사의 기록과 연구 자체가 단순한 과거 사실의 기록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일어났던 사실의 의미를 파악, 비판하고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연속성과 아울러 미래를 향한 비전까지 제시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⑵ 역사가는 역사 기록의 전 과정에서, 사실 기록 이전의 자신의 방법론과 역사관, 사실 수집의 취사선택 과정, 그리고 결론적 의미 부여의 전 과정에서 그의 주관적 견해와 가치관을 반영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역사는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자 하는 자연과학적 측면과 아울러 그 의미를 해석하는 철학적, 예술적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② 주관적 측면 – 역사관(歷史觀) ⑴ 한편 여기서 이처럼 역사 기록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역사가의 역사 철학을 우리는 역사관 또는 줄여서 사관(史官)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역사 기록을 대하든지 간에 그 역사 기록의 사실성 여부와 함께 그 역사 기록자가 가지고 있던 역사관을 파악해야지만 보다 더 분명히 그 역사 기록과 나아가 그 기록이 보여 주고자 하는 역사의 진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⑵ 따라서 이제 우리는 역사신학을 개관함에 있어 기록된 성경 역사는 물론 그 이후의 교회 역사가 전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경 계시의 반영을 정리하고 설명해야 하는 과제가 요청되는 것이다. ③ 역사철학 역사철학이란 역사에 대한 관점 곧 역사관을 의미한다. 불가지론을 제외하고 역사관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⑴ 일반 역사관 - 순환론 역사는 돌고 돌면서 반복된다는 역사관으로서 진화론적이다. ⑵ 기독교 역사관 - 발전론(나선형) a. 역사는 끝을 향하여 일직선으로 간다는 관점의 역사관이다. 그러나 동시에 과거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진행된다. 왜냐하면 역사의 배후에 하나님과 사탄의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나타났던 사탄의 양식이 오늘 우리에게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성경의 열조들에게서 나타났던 하나님의 양식이 오늘 우리에게서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b. 역사는 일직선으로 진행되면서 나선형의 양식으로 반복되는 것을 성경을 증거하고 있다. 이 반복은 일반 역사가 말하는 순환식의 반복이 아니라 발전적인 반복 곧 유기적이고 점진적인 반복이라는 것이다. 이런 나선형의 양식에 의해서 보는 성경관이 곧 모형론이며 구속사관이라는 것이다. 6. 역사 연구의 목적 1) 하나님의 주권을 증거 시 78:1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2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3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4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5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6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7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8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① 세상의 역사이든 교회의 역사이든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령을 받은 신자는 그 역사가 우주적이든 개인적이든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② 특히 서양의 역사를 개관해 볼 때 서양사는 바벨론 – 가나안 – 아시아 – 마케도니아 – 로마 등의 지역으로 역사의 무대가 옮겨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외적인 기록으로는 전혀 다른 역사들로 보이지만 이것이 내적으로는 끊이지 않는 강물처럼 한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③ 즉 이 흐름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그분의 이야기(=History)”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을 교회 역사의 흐름에서 발견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증거하는 것이 역사신학의 연구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2) 인간의 죄성을 증거 ① 신앙을 지키고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며 숨어 살았던 신자들이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에 의해서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본격적으로 건물과 조직을 형성하게 되었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과거에 핍박을 받으며 거의 목숨을 연명하다시피 했던 지도자들에게 돈과 명예와 권력이 주어지게 됨으로 세속의 물결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② 이런 상황을 맞이한 교회는 점차로 횡행하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를 거부하지 못함으로 결국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역사 속에서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성경이 증거하는 인죄론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이로써 교회는 오히려 지하에 숨어있었을 때가 더 좋았다는 추억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③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인간의 죄성을 경전 안에서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 발견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 더욱 더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3) 신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 신학의 중심은 조직신학이다. 그런데 조직신학은 역사의 산물이다. 초대교회의 이슈는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있었다. 중세시대를 넘어가면서는 구원론, 정경론, 성령론 등이 이슈가 되었다. 이런 역사의 필요에 의해서 조직신학이 형성되고 교리가 발전된 것이기에 역사와 신학은 상호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를 공부하면 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4) 신자의 인생을 해석 ① 성경은 역사의 처음은 물론이고 마지막 모습까지를 기록해 놓았는데 이는 어떤 모습으로든 역사 속에서 종말까지 반드시 이루어질 모습들이다. 계 1: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② 따라서 성경은 신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하는 여정에 주어진 여행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지도를 보면 목적지를 향한 현재 나의 위치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역사 속에서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이 보이면 역사가 보이게 되고 그 속에서 나의 인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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