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와 성령론의 정립
성령이 신성을 가진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삼위일체론의 구조 안에서 성령의 정체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이단적인 신학이 활개 치는 21세기에 기독교의 정체성이 확립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존재가 세 위격으로 계신다는 삼위일체론은 신비일 수는 있어도 모순은 아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우리의 이성의 합리성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를 그대로 받아들인 우리의 고백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1) 그리스도의 신성의 확립과 삼위일체
예수가 누구냐? 즉 예수의 신성에 대한 논쟁이 등장하면서 교회는 여기에 대한 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기독교의 정체성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신명기 6장 4절을 토대로 한 유일신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종교였기에 유대교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아리우스 이단이 출현하였으며, 교회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신명기 6장 4절의 성부가 하나님이라는 두 고백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설명하느냐가 바로 삼위일체 교리의 확립 문제였다. 거기에 대한 교회 답은 성부와 성자는 동일 본질(호모우시우스)을 갖고 구별되는 위격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확증되었고, 기독론의 확립과 더불어 삼위일체론이 점차 형성되어 갔다.
(2) 성령론의 정립과 삼위일체
성부와 성자의 동등성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확립이 되었지만, 성령의 동등성과 신성은 381년에 다음과 같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성령을 믿는바, (그는)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성부로부터 나오시며, 성부와 성자와 함께 예배를 받으시고, 동등 경배받으시는 분이시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이로써 마침내 공교회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일본질이심을 확립하고 선포하였다. 그렇다면 세 위격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히브리서 1장 3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에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본체’는 헬라어 “휘포스타시스”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인격적 중심을 가진 위격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이 단어를 사용하여 갑바도기아 신학자들은 세 위격의 인격적 실존을 주장하였다. 가이사라의 대 바실(329-379)은 정통 삼위일체 교리와 성령론 확립에 최고중심에 있으며, 그의 가장 큰 공헌은 삼위일체론의 중심개념인 본질(우시아/서브스텐시아, substance)와 위격(휘포스타시스/페르소나)을 구분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체성과 삼위 성을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제시한 점이다.
나지안의 그레고리(329-390)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두 본성”에 관한 교리를 온전하게 체계화함으로써 칼케돈 회의(451)에서 정통 그리스도론이 확립되도록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닛사의 그레고리(335-394)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의 작성을 통해 정통 삼위일체 교리가 승리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초대교회 당시 사벨리우스의 양태론, 아리우스의 종속론 등 이단 사설과 거짓 교리가 난무하는 가운데, 초대교회가 해결해야 할 긴급한 문제는 삼위일체 개념의 확립과 성령의 신성의 절대적 옹호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페리코레시스적 관계성”에 근거한 삼위일체론을 전개함으로써 기독교 역사상 가장 정통신조로 꼽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381)가 작성 · 공포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이는 삼위일체론 역사에 위대한 금자탑을 세운 것이었다.
바실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우시아”와 “휘포스타시스”를 명확히 정의를 내렸는데, “우시아”는 실체를 “휘포스타시스”는 위격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위격이란 “실체의 공유 안에서의 개별적 특성”을 의미한 것으로 실체는 공통적 본질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위격은 실체의 구분적 표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이로써 “우시아”와 “휘포스타시스”는 하나님의 한 본질과 그의 존재 방식을 나타내는 용어로 확립되었다. 바실의 “세 위격 안의 한 실체”라는 삼위일체 공식이 확립되었고, 이는 삼위일체 관련 이단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자 정통신학의 표준이 되었다. 나지안의 그레고리는 성부의 비 기원성과 성자와 성령의 성부로부터의 기원에 근거하여 성부의 특성을 “비 출생”으로, 성자의 특성을 “출생”로, 성령의 특성을 “출래”로 정리하였다. 그래서 그는 성부 · 성자 · 성령을 관계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세 위격을 서로 구별하고 상호관계를 설정하여 삼위일체론 확립에 획기적으로 공헌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세 위격이 어떻게 하나의 실체를 이루는가? 이에 대해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요한복음의 가르침에서 세 위격이 상호 간에 내주 · 상통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특히, 닛사의 그레고리는 성부 안에는 성자와 성령이, 성자 안에는 성부와 성령이, 성령 안에는 성부와 성자가 온전하고도 총체적으로 내주ㆍ상통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초대교회 당시 성자의 신성을 부인한 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성령의 신성을 부인한 사람은 더욱 많았었다. 그래서 니케아 신조(325)는 성령에 대한 교리를 비워두었다. 성령 신학이 확립되어야 삼위일체가 온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으므로 성령 신학에 대한 정립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바실은 이에 호응하여 성령 조항의 교리 확정에 지대한 공헌을 함으로써 성령 신학의 창시자로 불리게 되었다. 바실은 논문 “성령에 관하여”를 통해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등한 분이심을 확실하게 논증하였다. 그는 성령을 “섬기는 이”이라고 함으로써 천사와 같은 피조물의 지위로 전락시킨 자들에 대항하여 성령은 태초에 창조 사역에 참여했던 하나님, 곧 신적 존재임을 밝혀 성령이 신성을 가졌고, 성부, 성자와 동일 실체성을 지녔음을 변증했다. 그는 또한 고린도전서 2장 11절 말씀을 통해 성령께서 하나님 자신 안에 계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깊은 속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위격과 연합되어 계시며, 또 다른 위격과 동등한 인격성을 지닌 영원한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사도행전 5장 3~4절 말씀과 고린도전서 6장 19절 말씀을 통해 성령이 하나님임을 논증하고,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신성을 가진 분임과 동시에 성부와 성자와 함께 삼위일체를 완성하는 분이심을 힘주어 말했다.
바실이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공적인 자리에서 표명하지 않은 것에 비해 나지안의 그레고리는 공적인 자리에서 성령의 신성을 분명하게 표명했고, 빛을 유비로 하여 성령의 신성 및 동일 실체성을 확증하였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 성령이 성자에 의해 보냄을 받는다는 말씀을 잘못 받아들여 성령이 성자에 종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요한복음 14장 16절의 ‘또 다른 보혜사’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성령은 그리스도 이후에 오신 ‘또 다른 보혜사’라는 사실이 성자와 성령의 동등함의 증거라고 주장하여 성령께서 성자와 동등한 주권을 가지신 동일 본질 임을 확증하였다.
닛사의 그레고리는 “성령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통해 성령의 열등성을 퍼뜨리는 유사 아리우스파 마케도니우스를 논박하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정확한 동일 정체성을 가지신다고 고백하면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 등등함을 강력히 선언하였다. 그는 성부께서는 죄를 사하시고, 성자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죄와 그 결과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성령과 관련해서 그는 성령은 본질적으로 ‘거룩’하신 위격으로 성화의 은혜를 통해 영혼을 정화시키신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성령의 정체성을 “생명의 부여자”이자 성화의 은혜를 분배하시는 이로 정의하였다. 그래서 생명의 은혜가 성령으로부터 솟아 나와 참 생명이신 독생자를 통해 성령의 활동으로 완성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성령에 의해 성부와 성자가 영화롭게 된다고 하였다. 그의 성령의 정체성, 곧 생명의 부여자로서의 성령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에 반영되었다.
갑바도기아의 세 신학자의 공헌으로 성령의 신성과 정체성 및 위격의 독특성과 개별성이 정립되고, 이는 삼위일체 이론의 완성으로 귀결되었다. 삼위일체 신학의 온전한 정립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로 구현되어 선포되었고, 381년의 이 신조는 일명 ‘삼위일체 신조’로 불리게 되어 삼위일체론의 커다란 이정표가 되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조이자 정통적 신조로 알려지게 되었고, 정통과 이단을 판별하는 결정적 표준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성령의 신성과 개별성이 확립되고, 이와 맞물려 삼위일체 교리가 신학적으로 확립되었다. “하나님은 본질상 하나이고, 위격 상 셋이다”라는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이 확립되었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은 유대교, 회교 및 다신론적 종교와 뚜렷히 구별되는 기독교 고유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3) 관계적 삼위일체론과 성령론의 정립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요한복음 14장 10~11절을 통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상호 내주 개념을 도출해냈고, 이는 “페리코레시스” 교리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페리코레시스” 개념을 통해 하나님의 일체성과 삼위의 개별성이 모순 없이 설명되게 되었다. 성부 · 성자 · 성령 가운데 어느 한 편의 우위나 종속으로 치우치지 않고 세 위격의 일치성과 각 위격의 개별성이 삼위일체론 교리에서 표현되게 되었다. 이러한 “페리코레시스”의 관계적 삼위일체 교리는 플로렌스 공회의(1438-1445)에서 “이 일치 때문에 성부는 온전히 성자 안에 거하시고, 온전히 성령 안에 거하신다. 또한, 성자는 온전히 성부 안에 거하시고, 온전히 성령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성령은 온전히 성부 안에 거하시고, 온전히 성자 안에 거하신다”라고 선언되었다. 이 “페리코레시스” 개념의 관계적 삼위일체론은 삼위일체 교리의 난해한 부분을 해소하고,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인 삼위일체 교리가 확립되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 관계적 삼위일체론의 삼위의 일체성은 성령의 신성을 성부와 성자와의 동등한 반열에 올려놓게 되었고, 삼위의 개별성은 성령의 위격이 성부와 성자의 위격에 종속되거나 매몰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결국, 성령의 신성과 인격성이 삼위일체론의 확립과정에서 신학적으로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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