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일체 교리의 정리
우시아(본질:οὐσία)와 휘포스타시스(위격:ὑπόστασις)
갑바도기아 교부들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하여서 세 위격과 한 본질에 대하여서 개념 정리를 잘 하였다. 그때에 세 위격을 three Hypostasis(ὑπόστασις)로 한 본질을 one ousia(οὐσία) 로 정리하였다.
우시아(οὐσία)는 무엇인가?
그것은 희랍어 동사 에이미(εἰμί)로 부터 파생된 것으로 그 사전적(Dictionary) 의미는 이러하다. "모든 회원에 의하여서 공유되는 본질적 속성"(a essential attribute shared by all members of a class)이다. 그래서 우시아(οὐσία)는 삼위일체 세 위격이 모두 한 본질적 속성으로 공유하고 있는 그 실체이다.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는 무엇인가?
그것의 사전적(Dictionary) 의미는 이러하다.
"어떤 대상에 대하여서 구체화된 의미이다"(the object with specific meaning). 그래서 그것은 위격의 실체적 질료(the real matter of person)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고유한 특성이다. 일종의 개별적인 독특한 고유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란 세 위격의 고유성으로서 세 휘포스타시스(ὑπόστασις)와 그 세 위격이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는 본질로서 하나의 우시아(οὐσία)이시다.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세 휘포스타시스와 하나의 우시아로 존재하신다. 그래서 그 세 위격은 고유성이 있으시기에 그 고유성은 서로 독립적이다. 그래서 서로 다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그 휘포스타시스에 있어서 다르시다.
그 교리를 거절하면 사벨리우스 이단의 교리에 빠진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실체의 통일성을 받아들이면서 세 위격의 고유성을 부정하였다. 그래서 세 위격이 서로 상황에 따라서 모양만 바꾸며 고유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정통 교회로부터 정죄되었다. 세 위격의 고유성은 보존되어야할 정통 교리이다.
그런데 세 위격의 고유성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본질로서의 속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실체로서의 동등성과 일체성을 거부하게 되면 아리우스 이단에 빠진다. 그들은 삼위일체론을 거부하고 아버지 하나님만이 홀로 하나님이시며 독생자와 성령의 신성을 거부하였다. 결국 일신론이 되었다. 삼위일체 교리는 보존되어야 할 정통 교리이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교리는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방식과 관련하여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것이 구속의 실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며 구속의 경륜에 있어서도 그 만큼 중요하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그것은 신구약 통일성의 교리이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께서 온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그것도 신구약 실체의 통일성의 교리이다.
구약의 교회와 신약의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서 하나이다. 그것도 신구약 실체의 통일성의 교리와 연결되어서 하나이다. 신구약 교회는 그 실체와 관련하여서 하나의 교회이다. 그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구약의 의미들이 더욱 분명한 자리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희미한 구약 교리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더욱 분명해졌다. 무엇보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로 자주 나타나셨던 그 하늘의 천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구약에서 일하셨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이 드러났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천사를 영접하였는데 그가 그리스도이심”(히 13:2)을 증거 하였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대화하신 기록 중에 아브라함을 그리스도께서 만나신 사건을 증거 하시는 담화를 그대로 기록하셨다.(요 8:56~58) 결국 그리스도의 신성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고 구약에 아브라함이 만났던 천사 중에 한 분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렇게 신약의 사도들의 기록은 구약에서 풍성하게 드러나 있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교리를 확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신약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분명하게 드러나있다. 무엇보다 요한 복음 1장 1~2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시다고 증거하였다. 그가 태초에 아버지와 함께 하셨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계시되셨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의 절정이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이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은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정관한다. 그것이 복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많은 구절들은 모두 사례로 들기에도 많이 있다.
실로 사도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가 얼마나 빛나는 광채로서 신자들 가운데 계셨는지를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세력들이 있었다. 주로 그 당대 분파주의자들이었던 노스틱주의자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였다. 그리스도를 단지 신비하게 이 세상에 임하신 가현적 존재로 주장하였다. 그래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께서도 실재 인간이 죽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것이 가현설이다. 이는 실로 잘못된 교리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현대 시대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한다. 그것은 계몽주의 이후에 모든 것을 수학으로 풀려고 하는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계시의 가능성을 차단시켰고 결국 그리스도를 단지 인간으로 전락시키려고 하였다. 자연을 수학화하고 그것을 자연과학이라고 하여서 절대시하는 풍조는 매우 위험하다. 그러한 수학적 사고방식의 절대적 사고 체계를 폐쇄 체계라고 부른다. 그것은 형이상학을 완전히 비학문으로 돌리며 진리의 명증성으로부터 부인하는 사고방식이다. 데카르트이후에 끊임없이 정통 교회를 괴롭혔던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불신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좋은 이론이라서 결코 허물어지지 않고 계속 정통 교회를 괴롭힌다.
진화론도 마찬가지이다. 불합리성이 합리성만큼이나 타당하게 드러났어도 여전히 비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을 믿는다. 그것은 그들의 불신앙이다. 불신앙도 신앙이다. 그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그렇게 합리성이 떨어지는 진화론을 지금도 붙잡고 있는 것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교리를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세력들이 기독교 내에서도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교리는 매우 중요하다. 그 교리는 교회가 보존해야할 정통 교리이다.
배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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