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영혼에 대한 예화

하나님아들 2023. 3. 18. 15:30
영혼에 대한 예화  




▣ 일회용 반창고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면서 종에게 자기 아들들을 잘 돌보고 옷관리를 잘하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주인에게 종이 보고했습니다. “주인님, 여기 아이들의 옷들은 깨끗하게 잘 세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을 잃어버린 하인은 주인에게 엄한 질책을 받고 그 주인의 집에서 영원히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인과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저는 저의 육체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육체를 위한 건강, 지식, 돈을 보십시오.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저는 영혼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영혼을 잊어버리고 살았습니다 .” 이 세상을 마칠 때 사람들이 후회할 일이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영혼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입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삶을 잘 살았어도, 영혼의 관리를 잘못했으면 실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혼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인간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만 먹고 마시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70년 정도 사용하고 마는 일회용 반창고가 아닙니다. 예수님께 속하지 않는 영혼은 이미 영혼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영혼의 구원이 없이는 내세에 대한 보장도 하나님의 자비도 없기 때문입니다.



▣ 영혼의 식량준비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데 갑자기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 온 집에서 식량 준비를 하는 대소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예정이라며 너도 나도 라면을 박스로 사들이고 중요한 생필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서 가게에 있는 라면박스는 모두 동이 났다는 것이다. 인간이 절박한 상황에 부딪히면 자기 몸만 생각한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보다.


그저 굶어 죽기는 싫어서....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어떠한가?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예고에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써가며 식량준비를 하면서 정작 주님 오신다는 확실한 예정에도 불구하고 영의 식량은 하나도 준비하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의 영혼은 아마도 굶어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영혼의 갈망

육적인 것은 그 무엇도 영혼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외적인 것은 그 무엇도 우리의 깊은 내면의 필요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영혼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실 수 있습니다 -찰스 스윈돌과 함께하는 365일 ‘지혜’ 중에서-


간절히 바라던 목표를 이뤄도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만족이 없는 것이 세상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은 늘 공허하고 순간의 기쁨을 지속시키기 위해 분주합니다. 깊은 상실감과 고독감 가운데 홀로 걷고 계십니까? 지금, 우리 영혼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로 발걸음을 돌려 그 분 안에 있는 참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은 우리 영혼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십니다



▣ 영혼의 흉년

요즘 우리 사회는 먹을 것이 넘쳐납니다. 보릿고개를 겪은 어른들 눈에는 요즘 세대들의 음식투정이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음식에 대한 경외감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먹게 됐습니다. 뚱뚱한 사람이 많아진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현대인들의 육체는 온갖 달콤하고 기름진 음식에 길들여졌고 이로 인해 육체는 풍년을 맞은 듯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어떨까요? 영혼은 더욱 곤고하고 황폐합니다. 흉년입니다. 몸을 강건케하는 음식의 소중함을 잊은 채 음식을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좀 적게 먹고 말씀과 기도로 영혼의 생명을 더욱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하나님 앞에 내놓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경건과 사랑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 영혼 보험

한 어린 소년이 그의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질문하기를 '아빠, 아빠의 영혼은 보험에 들어 있나요?'라고 묻자 '왜 그런 것을 묻니?'하고 그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소년은 '죠지 아저씨가 그러는데 아빠는 재산 보험, 생명 보험에는 들었으면서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으니 걱정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아빠, 지금 곧 영혼을 보험에 들지 않으시겠어요?'라고 간절하게 말했다고 한다. 이 질문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드디어 자기 영혼의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의 보증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 영혼의 추수꾼

나라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 소위 3D업종을 회피하는 우리 국민의 의식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일할 것은 산적해 있는데 사람들은 쉬우면서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일만 찾습니다. 그래서 유흥업소를 찾거나 복권을 사는 사람들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나라를 확장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들판에 추수할 것은 널려있는데 일꾼이 적은 것이 주인의 고민입니다. 구인광고를 냈지만 부르심에 응답하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그 길은 화려하거나 편하기보다는 오히려 힘들고 자기 희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성도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영혼의 추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밭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거창한 세계 선교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만나는 불신 영혼들이 바로 추수를 기다리는 곡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추수꾼으로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 응답하십시오.


* 성경 :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눅10:2)

* 기도 : 심판주가 되신 주님, 영혼을 추수하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 내 영혼의 파수꾼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으셨다. 백만분의 1초라도 하나님은 늘 가까이 계신다. 그분은 당신의 심장박동을 들으시며 당신의 기도를 듣고 흐뭇해하신다. 그분은 당신이 죄로 인해 죽도록 내버려 두느니 차라리 그분 스스로 죽는 편을 택하신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하셨다 -맥스 루케이도의 ‘은혜’ 중에서-


죄로 인한 부끄러움으로 주님을 피해 세상가운데 숨을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더 이상 상하지 않도록 죄 가운데 돌이키기를 권고하시며 변치 않는 사랑과 용서를 약속하십니다. 우리 영혼의 파수꾼 신실하신 주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새벽종소리



▣ 병든 영혼을 살리기 위한 고난

어느 목사님의 딸이 안 믿는 남자와 연애를 했습니다. 아버지 되는 목사님이 눈물로 극구 말리는 데도 그 딸은 듣지 않고 기어이 자신의 뜻대로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0여년 동안 그녀 자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물론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녀의 외아들이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 않고 끝끝내 불신앙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결국 아들이 죽자 그녀는 그제서야 교회를 찾아가서 너무나 괴롭고 답답한 마음을 목사에게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하나 뿐인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합니까?'


회개를 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을 합니다. 자기가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도 고백하면서 갖은 넋두리로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듣다 못한 목사가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그 정도 얻어 터져야 10년만에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을 어떡합니까?'


왠만하면 좋은 말로 위로하고 싶었는데 줄곧 못된말로 원망하는 것을 보고 신중하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고는 당신이 제발로 교회를 찾아오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을 취하신 것입니다. 당신을 부르시려고 이 사건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몸은 바이러스에 의해서 질병에 걸리듯이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는 '이기심'과 '변명'이다. 전형적인 '일요신자'가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주님이 제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면 기꺼이 지겠습니다. 그 대신 짐꾼을 사서 대신 지도록 해주십시오. 제게 정직하게 살라고 하셨지요. 단 장사할 때만은 예외로 해주세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대신 원수의 항복부터 받아내고 용서하겠습니다. 주님이 물질을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바칠것 입니다. 그러나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헌금을 드릴테니 주보에 꼭 이름을 넣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주세요.'


종은 울려야 종이다. 북은 쳐야 북이다. 신앙은 실천해야 빛이 난다.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을 '북치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신앙은 자신을 희생시켜 진리의 소리를 발한다. 건강한 양은 목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기쁘게 달려간다. 그러나 병든 양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다. '이기심'과 '변명'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다.



▣ 미움은 영혼의 속박

기둥에 묶인 줄을 목에 맨 채 줄의 길이를 넘는 먼 곳으로 가고자 몸부림치는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그 강아지가 줄의 길이 안에서 활동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제약이 있었고 막상 밖으로 뛰어나가고자 할 때는 어김없이 그 강아지를 붙들어 좌절시켰다. 사람에게 미움은 그 강아지를 묶고 있는 줄과도 같다. 특히 그리스도인에게 미움은 영혼을 옭아맨 줄과 같아서 은혜의 세계로 달음질하려 할 때마다 그를 낚아채 온전해지려는 그의 시도를 좌절시킨다.


죄와 벗하여 살 때는 미움이 자신의 영혼을 속박하는 사슬임을 느끼지 못하지만 일단 그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 즉각적으로 미움의 감정이 그의 영혼을 억압하는 것이다. 결국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용서받을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용서하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며 우리 영혼을 위하는 길이다.



▣ 영혼의 독

고대 그리스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몸이 빠른 한 육상선수가 2등으로 들어왔다. 그는 죽을 고생 끝에 결승선에 섰으나 군중은 그가 아닌 우승자에게 환호를 보냈다. 승자를 위해 축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다른 등외 선수들과 함께 서있어야 했다. 시내를 걸어 집에 돌아가는 그의 귀에는 승자의 이름밖에 들리지 않았다. 며칠 후 시내 한복판에 우승자를 기려 거대한 동상이 세워졌다. 2등 선수는 평생 하루하루 그 동상을 보며 자신이 패자임을 확인해야 했다.


시기와 질투가 그의 영혼을 점차 장악해 결국 그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밤마다 잠 못 들고 그는 몰래 어둠 속으로 나가 승자의 동상으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석상을 기초부터 조금씩 끌로 파냈다. 밤마다 거대한 대리석상은 조금씩 약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가 석상을 한 조각 더 파내자 육중한 선수 동상이 큰소리로 갈라지며 앞으로 쓰러진 것이다.


거대한 대리석 챔피언은 끌을 든 작은 사람을 덮쳤다. 그는 즉사했다. 그러나 끌을 든 남자는 동상이 무너진 순간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간 조금씩 서서히 죽어갔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하루하루 생각이 꼬리를 물 때마다 그를 죽인 것은 질투의 무게였다. 질투는 자랑스런 일급 선수의 영혼을 끌이나 들고 타인의 행복을 벗겨내는 옹졸한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질투의 치명적 독이란 그런 것이다.



▣ 영혼의 낚시꾼

어릴 때 바닷가에서 살았던 관계로 친구들과 가끔 낚시를 다녔던 적이 있었다. 낚시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미끼, 장소, 시간’이다. 낚시꾼은 물고기가 어디서 노는지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물고기는 물 속 어느 곳에나 있는 것 같지만, 다니는 길이 있고 노는 곳이 있다. 물고기가 노는 곳에 낚시줄을 드리워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시간도 장소 못지않게 중요하다. 물고기도 자는 시간이 있고 활동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주로 아침이나 저녁은 활동하는 시간이고 한낮은 잠자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낚시질은 물고기가 활동하는 시간에 해야 한다. 미끼가 싱싱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잡을 물고기의 대상에 따라서 미끼도 달라야 한다. 바다 낚시에서는 생선이나 갯지렁이로, 민물 낚시에서는 떡밥이나 실지렁이 같은 것을 써야 한다. 중요한 것은 유혹에 넘어갈 만한 미끼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마귀는 영혼의 낚시꾼이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할 때부터 마귀가 사용한 미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탐스러운 것”이었다. 누구든지 이 미끼에 걸렸다 하면 코를 꿰인 채 끌려다니다 인생을 망치게 된다. 마귀는 우리 자신보다도 우리를 더 잘 안다. 우리가 잘 가는 장소도,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도, 우리가 활동하는 시간도, 우리가 좋아하는 것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 맞는 것을 미끼로 사용하여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장소에서 유혹한다. 마귀의 유혹은 우리의 영혼을 죽이고 도둑질하고 멸망시키는 것이기에 거기에 넘어간 자는 파멸당하고 만다. 마귀가 유혹을 할 때는 항상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처럼 가장하여 미끼로 던진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건강한 영혼

나무가 병들면 식물학자는 뿌리부터 점검한다. 식물의 병의 원인은 대부분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영혼의 질병이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한 영혼,건강한 신앙관리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고 친교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활동장소요, 무대이다. 그런데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며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면서 살다보면 종종 영혼이 병들 때가 있다.


나무 뿌리에 병이 생기면 새로운 뿌리를 이식해야 되는 것처럼 영혼이 병든 성도들 역시 뿌리를 새롭게 이식하는 본성의 새판짜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앙의 뿌리를 다른 토양으로 옮긴다고 결코 그 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본성의 새판짜기란 무엇일까?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 아래에서 겸손하게 말씀부터 잘 받는 것이다. 먼저 은혜 받는데 치중하고 생명과 은혜를 선택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다. 그것이 날마다 우리를 새로워지게 하는 것이요, 건강한 영혼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 지금은 수술중

TV 속에서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의사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만히 선 채 손끝만 움직이고 있는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실수도 허락하지 않을 주의 깊은 그의 눈빛과 빠르고 섬세한 손놀림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TV를 끄자 씁쓸하고 서글픈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다루는 우리의 태도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수술실 의사처럼 자신의 영혼을 다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푸줏간의 점원처럼 부주의하게 자신의 영혼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 심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주고 사셔서 우리에게 선사하신 소중한 선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분께서는 우리가 그 선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보고 계십니다. 그 분의 마음을 뭉클하게 해 드리겠습니까,아니면 서글프고 씁쓸하게 해 드리겠습니까?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 영혼의 호흡

호흡을 뜻하는 프뉴마는 영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뒤 코에 불어넣은 생기가 바로 프뉴마인 것이다. 우리가 공기를 들이마셔야 사는 것처럼 영혼도 호흡을 해야 살 수 있다. 이 영혼의 호흡이 바로 기도인 것이다. 숨이 드나드는 기관지에 장애가 생기는 병을 천식이라 한다.


들이마실 때는 문제가 없는데 공기를 내뿜으려 하면 잘 나가지 않고 소리만 요란하게 된다. 영혼의 호흡인 기도에 장애가 생기면 우리의 죄를 고백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는 겉모습만 요란한 외식적인 삶에 빠지게 되고 만다. 중보기도를 통해 기도의 영역을 넓힌 분들의 삶을 보면 두려울 것이 없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든 새로운 뉴스를 접하면 먼저 기도의 무릎을 꿇는 것이다. 신문의 모든 이슈를 기도 제목으로 삼아 전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후배 의사가 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선교사이며 그의 영혼은 영의 호흡을 통해 늘 맑게 보존될 것이다./박상은 박사(샘안양병원장)



▣ 영혼의 고통과 몸부림

어두운 곳에 있다가 밝은 곳으로 나오면 눈이 부셔서 똑바로 뜰 수 없습니다. 어두운 곳에 오랫동안 있었다면 수건으로 눈을 감싸고 나온 다음에 조금씩 빛에 반응하면서 수건을 벗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명하거나 눈을 다치게 됩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산에서 내려오는데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냥 빛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 빛을 보면 즉사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한 빛입니다. 그 빛의 옆에 있기만 해도 빛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해집니다. 그래서 옛날 성인들의 그림을 보면 얼굴 주위에 둥그렇게 빛나는 후광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서서히 그 빛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해요. 그 기간은 영혼이 고통을 느끼며 내면이 깨지는 아픔을 맛보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왜냐하면 밝은 빛에 드러나는 나의 모습을 보면 그 추하고 더러움이 얼마나 심한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빛이신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글 : 지암 박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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