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 주일(悰櫚週日), Palm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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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주일(悰櫚週日), Palm 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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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종려나무(the Palm)는 의, 아름다움, 승리등을 상징했다. 그런데 고난 주간의 첫날이 종려 주일로 불리는 것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메시야로 개선하는 왕처럼 오시는 예수를 환영하는 뜻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데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이주일을 호산나 주일(Dominica Hosanna)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도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시 그의 입성을 환영하는 무리가 '호산나'라고 외친 데서 유래된 말이다.
종려 주일은 그 옛날 서로마 교회에서는 이날 그리스도의 수난사(受難史)를 낭독했기 때문에 '고난의 주일' (Dominica Passionis)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종려 주일은 이외에도 '꽃의 날' 이란 뜻에서 Floridum, Dominica Florum 등으로 불리워졌으며, 부활절날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세례 지원자들과 과련하여 '세례 지원자 주일'(Dominica Competentium)이라 불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 날을 맞을 때마다, 지금 당장은 당신께 환호하는 무리들이 곧 당신을 못박으라고 돌변할 자들임을 아시면서도, 즉 며칠 후 당신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다만 그들 죄인의 죄값을 대신 치루사 구원을 주시려는 뜨거운 사랑으로 백성들의 환호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주님의 심정을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바로 나를 위해 주가 당하신 노고와 고난이 그 얼마나 크고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새로이 깨달아야 하겠다. 더욱이 본래 제 2위 성자요 메시야이시면서도 초라하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속주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에 대해서 묵상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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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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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 주일은 십자가 수난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공식 입성(入城)을 축하하는 날로, 사순절의 6번째 주일이며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첫날이기도 하다. 그리이스의 일부 교회에서는 종려 주일을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신 날로 보아 고난 주간에서 제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만왕의 왕이신 성자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한 인간의 모습으로 입성하심으로 낮아지심을 보이셨으며, 이는 또한 마지막 주간에 당하실 시련의 시작이란 의미를 지니므로 일반적으로 동,서로마 교회는 종려 주일도 고난 주간에 포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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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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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주께서 자신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메사야로 오셨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며, 또한 일주일 후에 있을 부활의 승리를 예견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백성들이 이날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기 위해 종려 나뭇가지를 흔든 것은 종려 나무가 승리의 상징이었고 그리스도를 승리의 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종려주일과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자료는 385년경의 에게리아(Egeria)의 순례집이다. 이에 따르면 동로마 교회 중의 하나인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축하 행사로 종려 행렬 등이 행해졌다고 한다(3. 풍습 참조). 물론 서로마 교회들도 부활 주일 전에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의미를 되새기는 기간을 갖기는 했지만 종려 행렬과 같은 축하 행사는 없었고, 그 성격도 축하 분위기를 지닌 동로마 교회의 행사와는 달리 애도의 성격을 띠었다.
이 밖에도 6세기경 스페인의 의식서(儀式書)인 서고트 교회의 Liber ordinum에서도 종려 주일 행사에 대한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이 의식서에는 종려 행진과 더불어 동로마의 교회에서 행하던 풍습들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5세기 경 동로마 교회의 종려 주일 풍습이 서로마 교회에 유입되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내용이다. 따라서 고난 주간, 특히 종려 주일의 행사는 대부분 동로마 교회로부터 서로마 교회로 전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종려 주일에 사용하는 종려나무 가지의 축성의식(祝聖儀式)만은 그 기원을 서로마 교회에 두고 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에 행하는 축성의식은 초기에는 행해지지 않았으나, 후대에 와서는 종려나무 뿐 아니라 종려 행렬에 사용하는 꽃들에도 행해졌다(3. 풍습 참조).
중세 로마의 카톨릭 교회에서는 종려 주일에 종려나무의 축성의식, 종려 행렬, 그리고 완전한 애도의 성격을 띤 미사를 행하였다. 그러나 희랍 정교회에서는 이 주일을 고난 주간에서 독립된 주일로 정해 '환희의 날'로 기념하였다. 오늘날 희랍 정교회에서는 종려 행진을 하지는 않지만 종려나무 축성의식만은 계속해서 지키고 있다.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고난 주간 의식으로서의 종려 주일 행사들이 폐지 또는 간소화되어 오늘날에는 과거의 풍습과 행사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종려 주일의 의미는 잊지 않고 교회의 한 절기로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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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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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려 주일 행진
종려 주일의 행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이는 동로마 교회에서 보다 먼저 체계적으로 행해졌는데, 예루살렘 교회의 종려 행진은 이날 오후 감람산에 위치한 교회에서 찬송과 화답송을 부르고 교훈서를 낭독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때 주교(主敎)는 그리스도로 상징되어 나귀를 타고 맨 앞에서 행진하였고, 그 뒤를 종려나무 가지와 감람나무 가지를 든 아이들이 따랐다. 서로마 교회에서도 종려 주일 행진시에는 호산나 노래 등이 불리웠다. 이러한 찬양을 하는 가운데 종려나무 가지는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러한 종려 주일 행진은 중세 교회에서 흔히 행해졌던 것이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들은 이 축하 행렬은 행하지 않고 단지 인류를 위해 왕을로 오셨으나 고난당하신 예수의 정신만을 기리고 있다.
(2) 종려 나무의 축성 의식
축성(祝聖)이란 성례(聖禮)에 쓰이는 물건 등을 정해진 의식을 통해 성스러운 것으로 구별하는 것으로, 그 기원은 구약의 성별 의식에서(출 40:9-15) 찾을 수 있다. 중세 교회에서는 종려 주일에 사용하는 종려나무 가지에 축성 의식을 행했는데, 이렇게 축성된 종려나무 가지는 귀신을 추방하는 힘이 있다고 믿어졌다. 또한 이는 질병의 치유와 재앙을 막는데도 능력이 있다고 믿어졌다. 종려 행진, 세족식(洗足式)등 많은 고난 주간 행사들이 동로마 교회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종려나무의 축성 의식만은 서로마 교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종려가지의 축성 의식은 하나의 독립된 행사로 행해진 것인데, 동로마 교회의 영향으로 인해 종려 행진에 유입되면서부터 이러한 축성 의식은 종려 행진과 결합된 형태로 행해졌다. 이 의식은 보다 확대되어 나중에는 종려 행진에 사용하는 모든 꽃들에도 행해졌다. 이러한 축성 의식은 희랍 정교회와 카톨릭 교회에서는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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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성경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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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관련 기사
(2)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이 증거하는 것
(3) 종려나무의 상징적 의미
(4) 나귀 새끼의 상징적 의미
(5) 주를 환호하던 군중들의 교훈
(6)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 후의 사건
(7)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8) 그리스도의 겸손
(9) 그리스도의 평강
(10) 그리스도의 영광
(11)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주요 묘사
(12) 성도가 찬양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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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종려 주일 기념 예배 설교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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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막 11:1-10)
예수께서 인류의 구원이라는 대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백성들은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는 종려 나무 가지를 흔들며 그의 입성을 환영하였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는 어떤 분인지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① 평화의 왕이십니다(엡 2:4) - 하나님의 원수되었던 인류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신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생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심으로 죄인된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참 평화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② 희생의 왕이십니다(갈 1:4) - 나귀를 타신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고난의 사역을 완성하신 주님은 희생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끝까지 겸손한 자세로 사역을 감당하시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철저히 희생하심으로써 온 인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③ 만왕의 왕이십니다(9,10절) -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왜냐하면 그의 구속 대상에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버려졌던 모든 이방인들, 즉 신약 성도들인 현재의 우리까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구속 사역을 위해 고난의 발걸음을 내딛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진정 그분은 평황의 왕이요, 희생의 왕이요, 만왕의 왕이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백성된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주님께 전적으로 희생하고 충성하는 모습으로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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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행렬(마 21:1-11)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고난을 향한 첫 걸음인 동시에 고난 후의 승리를 위한 영광스런 걸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환호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기쁨으로 주님의 영과의 행렬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에도 예수의 이 행렬을 따라야 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① 이 행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5절) - 이 행렬 맨 앞에 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범죄한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생명의 수여자인 것입니다. 이분의 이러한 구주되심을 바로 알 때 진정 이 행렬의 동참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② 헌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8절) - 행렬에 참여한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영광의 왕께서 가시는 길에 폈습니다. 이는 왕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고백입니다. 오늘날 만왕의 왕되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충성과 헌신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③ 끝까지 참여해야 합니다(9절) - 무리들이 주님을 환영하는 데에는 여러 종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왕이 될 때 자신들의 이익을 얻고자하는 욕심으로 에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보좌가 아닌 죽음의 골고다를 향해 가시자 곧 주님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내가 아닌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행렬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이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이 축복의 구주가 되실 때에는 헌신과 충성을 다하지만, 고난과 시련이 있을 때에는 쉽게 그 분을 저 버리지 않습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끝까지 주님께 헌신하고 순종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는 영광스런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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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본 예수의 삶의 모습(마 21:4,5)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나귀 새끼 의 등에 올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그러한 영광의 환호 속에 맞이하는 백성들, 그러나 이러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대속 사역을 위한 고난의 관문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이라는 지상사명을 위한 그리스도의 옐루살렘 입성을 통해 이땅에서의 그의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① 고난을 통해 영광을 얻으셨습니다(히 2:9) - 주님의 길지 않은 이땅에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백성들로부터는 배신당하시고 또한 그들을 대속하기 위해 못박히신 십자가 상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난을 순종함으로 순순히 감당하셨고, 그 결과 지금은 영광을 입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② 겸손을 통해 존귀를 받으셨습니다(5절) -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분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피조물의 육신을 입으시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자발적으로 낮아지신 예수님을 하나님은 다시 높여 존귀케 하셨습니다(빌
③ 죽음을 통해 부활하셨습니다(막 8:31) - 주님은 잠시 사망의 권세 아래 놓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생명의 주관자이신 주님은 그 죽음이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친히 부활하셨을 뿐 아니라 그를 믿는 자들에게도 생명의 부활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삶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삶은 영광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인내하며,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존귀를 얻는 성도의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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