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영성이 미치는 교회의 치유사역
-목회자로서의 예수, 바울, 요한의 영성을 중심으로-
목 차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배경
제2절 연구목적
제3절 연구목표
제4절 연구과제 및 연구질문
제5절 연구방법 및 범위
제2장 목회자의 영성
제1절 왜 영성을 연구해야 되는가?
제2절 영성의 정의
제3절 영성과 목회와의 관계성
제3장 영성훈련의 모델
제1절 개인훈련
제2절 관계훈련
제3절 공동체훈련
제4장 구약에서의 영성: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제1절 에덴동산에서의 하나님의 임재
제2절 모리아산에서의 하나님의 임재
제3절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임재
제4절 회막시대의 하나님의 임재
제5절 성전시대의 하나님의 임재
제5장 신약에서의 영성
제1절 예수의 몸(교회시대의 영성)
제2절 예수님의 영성능력의 비결
1.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성
2.메시아로서의 영성
3.목자로서의 영성
제3절 바울의 영성훈련과 치유
제4절 요한의 영성신학과 치유
제6장 영성목회에서의 리더쉽
제7장 교회에서의 치유목회의 중요성
제1절 치유목회의 중요성
제2절 치유의 방법
제8장 요약 및 결론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배경
선교 1세기를 넘긴지 얼마되지 아니하는 한국교회가 그동안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이미 세계교회가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성장은 성령운동과 기도운동이 그 원동력이었다고 진단된다. 특히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에 교회가 잘 대처하였고, 이러한 변혁기에 소외된 민중들에게 교회가 복음적인 소망을 심어준 것은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교회의 성장은 90년대에 들어와서 침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1) 그 동안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교회의 역기능들이 교회의 성장을 가로 막았다. 소위 왜곡된 성령관에 의한 은사운동들은 교회와 성도들을 상처받게 했고, 90년대에 들어와서는 교회의 성장이 침체되는 위기를 만나게 했다. 성장은 교회의 대형화와 교인수 증가에 치우쳤으므로 교회의 본질을 상실하고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진정한 교회성장은 양적 성장 이전에 건전한 인격을 갖게 하고 사회 공동체 속에서 모범이 되며 경건하게 살아가도록 양육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면을 중요한 문제로 제기하여 전인치유목회를 통해 구원받고 성화된 인격적인 성도를 양육과 건전한 교회성장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최근에 "치유목회" 또는 "치유하는 교회"에 대한 관심은 많이 있으나 치유사역을 행하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과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치유사역"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비인격이고 비신앙적인 수단에 의한 치유로 생각하게 되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적인 믿음을 긴장시키기 때문이다.
본 연구자는 먼저 치유에 대한 논의를 하기전에 한국교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영성에 대한 이해와 정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질적성장에는 많은 제고가 있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이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배경을 제시하는 것이 이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본다.
제2절 연구목적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지음을 받았다. 성경은 영육의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이 온전하게 지음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영혼이 범죄함으로 인간에게는 질병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인간은 질병으로 인하여 시달려야 했다. 그러므로 성경이 구속과 관련되어 이야기 할 때는 하나님을 질병가운데 있는 인간을 "치료하시는 여호와"로 계시하고 있다. 현대의 과정 철학자 화이트 헤드(A. N. Whitehead)는 "현대는 하나님을 잃어버렸으며, 그래서 하나님을 다시 찾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영국의 현대 영성 신학자 케네스 리치(Kenneth Leech)는 "현대 서양인들의 영적 고갈의 근본 원인은 그들의 하나님을 상실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하였다.3) 그 이유로 쮜리히의 분석학자 C. G. 융은 현대인들이 하나님 없는 사회에서 무료하고, 불안하게 사는 이유는 현대종교가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상"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4)이라고 하였다. 즉 그들이 요구하는 영적인 욕구를 제시해줄 만한 영성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심각한 영적 소용돌이 속에서 성도들에게 새로운 영성적 비전(Spiritual Vision)을 제공하여야 할 목회자로서 영적 자질을 개발해야 함을 물론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 나가야 할 현대목회자들에게 새로운 영성훈련과 미래적 목회로서 치유사역의 방법을 제시할 필요에 도움이 되고자 함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제3절 연구목표
질병의 치유과정은 죄, 질병, 회개, 치유라는 신학적 도식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산업화, 도시화, 기계화의 다원화 사회로 접어 들면서 신체적인 편리함 이면에 영적 갈등과 정신적인 번민에 고민하고 있으며 의학만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영적질병에 빠져 있다. 현대인들이 과거에 없던 질병과 영적 고갈 속에 허덕이는 이때에 신학은 한 걸음 앞서 나가 전인 치유목회(Titak Healing Ministry)를 정립하고 건전한 신앙교육을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의 목표는 기독교적 인간관에 입각한 성경적 치유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영성에 대한 이해를 먼저 다루어 이를 근거로 치유사역의 가능성을 찾아 보고자 한다. 그러므로 연구자는 영성에 대한 이해와 치유사역에 대한 분야를 연구하려고 본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제4절 연구과제 및 연구질문
지금은 새로운 영성운동이 일어나야 할 시점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 중엽이후 기독교에서 영성신학을 탐구하며, 신학대학 교과과정에서 영성신학이나 영성수련에 관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기독교에 새로운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읽게 해주는 징표가 된다.5) 사실 기독교회사에서 영성에 대한 추구가 치열하게 나타났던 시기
는 모두 새로운 시기가 도래하려는 시기들이었다. 3, 4세기 경 게르만의 침입으로 헬레니즘 사회가 혼돈에 빠지고 그 다음 게르만의 프랑크 제국 등이 새워져 유럽 사회에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무렵에 성 안토니우스나 성 파코미우스, 성 바질등은 사막에 들어가서 치열하게 영성을 탐구하여 나중에 베네딕또 수도원의 기초를 닦았으며, 11, 12세기 경 유럽 사회 전체가 십자군 전쟁으로 아노미 상태에 빠진 다음 교황권에 기초한 중세제국이 세워지는 무렵에 씨토수도원이 건립되고 성 프란치스코나 성 도미니꼬등의 탁발승단이 생겨나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의미를 새롭게 해 주었다. 그리고 마틴 루터나 존 칼빈등 종교개혁자나 성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십자가의 성 요한 등 가톨릭의 개혁자들이 나타나 영성의 깊이를 더한 것도 16세기 종교개혁으로 기독교 제국이 로마 카톨릭세계와 개신교 세계로 재편되는 무렵이었다. 그러면 20세기 후반에 새롭게 시작되는 영성 탐구열은 현대인의 어떤 고민을 반영하고 있으며 어떤 세계로 나아가려고 하는가?6)
(연구질문)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본 논문을 진행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 해본다.
첫째, 목회자의 영성은 목회에서 어떤 비중이 있을까?
둘째, 목회자의 영성적 추구 목회는 치유사역에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셋째, 현대의 목회는 복합적이고 다양한 삶의 형태에 직면하여 갖가지 방법론과 실천을 요구하는데, 영성적 치유사역은 현대교회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가? 그런데 이에 대한 논의가 본교단에서는 활발하지 못하다. 그리하여 목회자의 품성 혹은 인격의 형성이 비인격적인 혹은 제도적인 장치에 의해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목회자의 인격과 삶이 교회의 중심적인 부분임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바른 인격의 형성과 영성 생활을 기본으로 하지 않는 어떤 목회 양식도 진실한 하나님의 집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7)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이끌어야 할 목회자가 영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한다면 스스로 도태되고 말 것
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풀어가면서 연구를 해 나가려고 한다.
제5절 연구 방법 및 범위
먼저 서론에 이어 2장에서는 치유사역을 근본으로 하는 성경적 치유의 의미를 재정립하기에 앞서 목회자의 영성문제를 다루도록 한다. 제3장에서는 영성훈련의 모델을 찾기 위해 개인훈련, 관계훈련, 공동체 훈련을 살펴본다. 제4장에서는 구약에서의 영성을 하나님의 임재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신약에서는 치유목회의 기초가 되는 영성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요한, 그리고 바울의 영성을 살펴보고 제5장에서는 영성목회에서의 목회자의 리더쉽을 찾아 보고자 한다. 제6장에서는 전인 치유의 영역이 목회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인지 살펴보고 치유회복의 실제적인 방법의 올바른 진단과 실제적인 치유의 매개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찾아서 치유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치유목회와 교회성장을 진단하여 보고, 7장에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관련문헌 개관)
본 연구를 진행해 가면서 문헌적 연구를 중심으로 진행해 나갈 것인데 번역서로는 Aumann, Jordann의 영성신학 (이홍근역. 왜관 : 분도출판사, 1987) 그리고 Calvin, John의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 (이형기역. 서울 : 크리스챤 다이제스트사, 1986). Chafer, Lewis Sperry의 신령한 사람. (최지남역.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85), Clinebell, Haward의 현대목회상담 (박근원역. 서울 : 전망사, 1979)이 주로 참고 될 것이며 한서(韓書)로는 먼저 논문으로서 문갑배의 "목회자의 영성생활에 관한 연구".(한신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5). 방영식의 "영성과 현대목회". (서울감리교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6). 이선교의 "영성의 신학적 이해와 영성개발에 관한 연구". (서울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이 우선 참고 될 것이며 박재만의 "교회생활안에서 영성사의 역할". 이기춘의 "기독교영성의 역사". 주재용의 "성령과 경건운동의 사적고찰"이 참
고 될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다른 참고문헌들을 계속해서 찾아 나갈 것이다.
제2장 목회자의 영성
제1절 왜 영성을 연구해야 되는가?
현대 기독교 용어중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용어중의 하나가 '영성'(spirituality) 혹은 '기독교 영성'이란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에 대한 개념은 사람에 따라 다르며, 또한 그 용어의 사용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영성이 정말 어떤 것인지 혼동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또한 영성이란 말이 너무 흔하게 사용되므로써 영성의 본래적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8) 영성(spirituality)이라고 부르는 용어는 기독교회 안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신학사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되고 사용되어 왔다. 어떤 이는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영성생활(spiritual life), 신심생활(deveat life), 내적 생활(interior life), 신비적 수련(Mystical evo- lution) 및 기독교적 완덕신학(Theology of Christian Perfection)등의 이름으로 불려져 왔다.9)
그러나 성서에서는 영성이라는 명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형용사로 영적(spiritual)이란 용어가 있으며 이는 하나님나라에 들어간 자의 특성을 서술하는데 자주 사용되었다. 영적이란 말은 신약에서 교인들의 독특한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였다.10)
그러므로 영성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에 신학과 영성을 학문과 경건, 연구와 생활이라는 이분법으로 신학적 논의에서 제외했던 것을 지양(止揚)해야 한다. 신학분야에서 영성만큼 신학과 교회현장, 개인과 사회, 과거와 미래, 인간과 우주를 다리 놓아주는 분야도 흔치 않을 것이다.11) 또한 영성신학이 어떠한 차원으로 정립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본다. 역사상 이 두 분야-개인의 성결(personal holiness)과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는 항상 분리내지 대립되어 왔
다. 분리될 때 전자는 신비주의(mysticism)에 빠지고, 후자는 행동주의(activism)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영성신학은 단순히 경건주의로의 복고운동이 아니라 신학함(doing theology)이요, 영성함(doing spirituality)이 되어야 한다.12) 올바른 영성신학의 정립은 올바른 신앙가치관을 낳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때보다도 영성을 올바른 개념과 실천적 측면을 조화시킨 신학적 작업이 선행되어져야 하겠다. 한국기독교의 영성은 전통적 기독교의 영성의 흐름에서 차이가 많음을 알 수가 있다. 그것은 개신교적 말씀중심의 영성의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하겠다. 이제 좀더 거시안목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겠다. 그러므로 영성이란 의미의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독교 영성의 개념적 정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2절 영성의 정의
영성(Spirituality)을 다룰 때에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그 개념의 모호성과 혼돈이다. 어떤 이들은 영성과 경건을 동일시 하거나, 심지어 영성을 성령운동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려한다.13) 사실 영성이라는 용어가 분명하기도 하고 동시에 애매하기도 하여 우리에게 많은 혼란을 가져다 준다. 왜냐하면 그 용어가 인간과 그룹의 존재방식이나 양상으로 언급되는 광범위한 인간영역의 용어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모든 종교에서 본질적인 인간존재의 실재를 지적하고 있게 때문에 동시대(Contemparary)의 목회자들이나 제사장들이 이 개념을 가능한 명백히 할려고 애썼다. 14) 동방종교에서는 영적인 사람은 인간의 정상적인 모든 욕망을 거부해 버리고 엄격한 수도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주체성을 상실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영성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에 기독교의 영성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있었던 영성들은 불교, 유교로 볼 수 있으며 한국사람의 영적풍토는 샤머니즘적이고 무속적15) 이라는 것으로 영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종교뿐만이 아니고 특정인물이나 윤리적 가치관에 대한 인식방식과 그에 따른 행동양식을 영성으로 보고 영성은 어떠한 정신으로 살아간다든지, 또는 누구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16) 하는 한 개인이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정신성(Geistlichkeit)17) 이라고도 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불교의 영성을 가지고 있고, 유교는 유교의 영성을 가지고 있으며 유대교의 영성, 희랍의 영성, 로마의 영성, 심지어는 히틀러의 영성, 맑스의 영성, 자본주의나 민주주의의 영성까지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은 전인격적의미에서의 인격과 그 소산, 학문, 문화, 시대정신, 주의(主義)등을 망라한 인간행위를 유발하는 그 어떤 태도나 정신으로서, 구체화된 종교적 또는 윤리적 가치를 총칭하는 것이다. 나아가 영성이란 어떤 특정한 종교헤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것은 신적(神的)또는 초월적인 것들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며 각자의 확신에 따른 생활양식이나 가치관을 말한다. 18) 이를 일반적의미 혹은 넓은의미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일반적의미의 영성과 비교하여 기독교 영성은 좁은 의미의 영성이라 할 것이다. 이 기독교 영성은 좁은 의미의 영성이라 할 것이다. 이 기독교 영성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성서의 영( ) 개념과 인간의 영개념을 간단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영(Spirit)에 대한 이해 없이 영성(Spirituality)에 대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19) 그후에 영성신학의 이해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목회에
서의 영성적 접근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영성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신학적 기반을 다져놓을까 한다.
디모데 웨어(Timothy Ware)는 이러한 영의 개념을 종합하면서 "영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속에 심어놓은 것으로, 이 영이 있으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성령을 알 수 있게 된다" 20)고 했다.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은 말하기를 영(the heart)은... 인간성속의 가장깊은 심리학적 차원이고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심연(Abyss)과 대항하는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분석적 반성들과 개방성들을 능가하는 내적 성소로서 우리의 존재보다 더 심오한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21)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영의 개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초월하신 하나님의 성령을 갈망하며, 경험하며 관계를 맺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인간 생명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독교의 영성은 이러한 역사성을 띠고 있으나 또한 시간적이며 지리적인 편협성(provincialism)을 초월한다. 그리스도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은 단순히 제1세기의 유대인은 아니다. 역사적 예수안에는 최고 극치의 순간, 즉 우주적 사건이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것은 역사이다. 인간존재란 역사속에서 자기의 영성을 실현해 나가는 영성적 존재이다. 확장된 상위의 의식을 불가피하게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진정한 영성(anthentic Spiritulity)은 사회적 행동으로 부터의 도피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어떤 사람의 영성의 성취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 사람의 행위에 의해서 측정된다.22)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영성은 하나님과의 관계성이고 그 관계성이 어떻게 주어졌느냐와 그 관계성을 통한 상호작용에 대해 서로다른 많은 설명이
있다는 것을 알게해 준다. 필자는 영성이해의 관점에서 그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와 관계성에 관한 것이라면 자신의 삶속에서 경험한 신앙고백적인 차원의 영성이해를 갖기 바란다. 그것은 보다 구체적인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정립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권장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오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겠고 영성이해란 그런 모든 문제들을 망라하는 점에서 광범위한 것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발로와 그 실존, 또 실현까지에 이르는 모든 이해를 말한다고 하겠다.23)
기독교 영성에 대한 정의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칼 라너(K. Rahner)는 "영성이란 인간이 창조때부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초자연적인 생명이며, 세례로 말미암아 죽었던 속사람의 생명이 다시 소생하여 살아난 은총의 생명으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끊임없이 성장, 성숙하는 실체적인 초자연적 불멸적 생명"이다 라고 정의하였다.24)
현대 카톨릭의 영성신학자인 오먼(J. Aumann)은 "'영성'이란 개념은 '영'(spiritus)이나 '정신'(pneuma)"이라는 말과 깊은 관계가 있는 말로서 '신성한 능력, 초자연적 능력'을 뜻하는 말이며, '성서적 영적 능력'과 일치하는 말이 된다. 그러나 진정한 '참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성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고25) 하였다.
훔즈(Urban, T. Holmes)는 영성을 인간의 의식속에 그리스도의 진리를 실체적으로 유효하고 적절하게 파악하는 하나의 방법적인 시도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영성이란 하나님을 흡족하고 영화롭게 해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안에 있는 생명의 특질로서 이해될 수도 있다26)고 하였다.
한정애 교수는 기독교의 영성이해는 기독교의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삶 전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동태적 현상으로서 자기초월의 능력을 지닌 인간이 하나님, 인간, 자연과의 제반관계들 속에서 창출해내는 인
간성의 생동하는 삶의 체험현상과 그 창조적 힘으로 정의될 수 있으며, 성령의 은사체험과 같은 특수체험에 국한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성, 스타일, 지향성에 관계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와 그가 지으신 세계 한 가운데서의 실존적 삶 그 자체, 즉 하나님 안에서 기도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분, 그 분의 아들, 그 분의 영을 통하여 변형되어 가는 인간 정신일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27)고 정의하였다.
박재만 교수는 영성이란 인간이 실천하는 신심 곧 하나님 섬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에의 참여이다. 곧 성령의 은총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일치하며 성부께로 향해 나아가는 삶이다28)라고 성령에 의한 삶을 강조하였다. 또한 영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고 그리스도 안에서 보존되고 확증되었으며, 복음안에서 열매맺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열려있는 참 인간적 삶의 능력"이라고 영성이 은혜로 주어졌고 은혜로 이어져야 함을 주장하였다29).
오성춘 교수는 영성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영성은 우리속에 이루어지는 어떤 성품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의 과정이요,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고쳐나가는 과정이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받는 형제 자매들 속에 나아가 그들의 삶에 참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하는 것이다"30)고 하였다.
이상의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영성이란 인간속에 하나님을 섬기는 생명의 특질로, 참 영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가는 삶이며, 구체적이면서 공동체속에서 실천되어지는 삶 전반을 가리킨다. 즉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정신일체를 포괄한 삶 전체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로부터 비롯되는 성서의 열매(산물)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 영성의 모든 주제와 내용이 성서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기독교 영성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과의 바른 관계성 회복(형성)과 증진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성서의 모든 말씀들이 바로 이 주제에 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31) 컬리(Iris V. Cully)는 말하기를, 영성의 성서적인 근거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왔는가 하는 성경말씀의 설명 가운데서 발견되어진다32)고 하였다.
성서에 언급된 '영'이란 Spirit(히: , 루아흐, 헬: )로 그 의미는 바람, 생명, 정신, 성령, 입김, 호홉(숨), 공기의 움직임을 말한다.33) 이 말의 기원은 창세기 1:26-27과 창세기 2:7절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영을 육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파악하여, 이를 비물질적 존재자, 생명의 능력 담지자로 이해하였는데, 이는 희랍적인 이분법적 인간이해에 기초한 영( )이해에 기인한다. 구약성서의 히브리적 영 이해는 보다 포괄적인 것으로 생명의 원리로서 하나님이 모든 만물에 부여한 것으로 인식됐고, 야훼종교의 구성적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34)
구약에 영을 의미하는 낱말 는 약 389회 나오고, 그중 113회 가량은 바람과 같은 자연세력을 의미하는 입장이고, 129회의 경우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거짓 신들에 적용하여 사용되었고, 138회의 경우 하나님과 연관되는 방향으로 의미를 담고 사용되었다.
첫째 부류에 속하는 어의는 바람이다. 공기가 아니라 움직이는 공기중에도 미풍을 가리킨다. 바람의 움직임과 유사한 신비한 힘의 움직임,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강한 세력을 지니고 불어대는 폭풍도 그 의미권에 속할 수 있다. 죽은 땅에 구름과 비를 운반하여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바람(왕상18:45), 날아다니는 독수리같이 이리저리 흐르는 공기의 이동(신 32: 11), 바닷물을 말리고(출14:21), 메추라기 떼를 몰고 오는(민11:31) 변화를 가져오는 힘을 말하며, 예언자를 잡아나꾸어 들어올려 다른 장소에 심는(겔
3:12,14,11:1) 바람을 의미한다.35)
둘째 의미는 인간의 호홉작용이다. 하나님이 모든 생물에 보내어 일으키는 호홉운동 기식작용이다. 구약은 이 기식운동을 하나님이 인간내에 "호홉을 빚으셨다"(슥12:1)하고, 하나님의 창조력의 결과로 나타냈다. 그 호홉은 하나님만이 주입하시는 활력생산 요소요, 기운 공급원으로 그것이 뼈에 근육과 살과 가죽이 붙게 하고, 그 속에 들어가 생명이 된다고 하였다(겔37:6-8,10,14). 그러므로 는 섬세하고 진동하는 사람 목과 코의 숨이요, 호홉이요, 기식이다.36)
셋째는 총괄적으로 분류해 사람의 영을 지칭하는 의미이다. 구약에 나오는 가 인간의 영으로 의미할 때가 적지 않다. 앞서 고찰한 "바람"이라는 의미, 그리고 "호홉"이라는 의미를 인간의 정신, 인간의 영, 인간의 혼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호홉, 기식, 호홉, 숨을 "영(정신, 감정, 마음)"과 구별해 설명할 수 없는 분위기의 구약의 사고 세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영이 인간의 지식, 이해, 판단기관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람의 호홉작용의 기복이, 즉 인간 숨소리가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37)
① 고로 "영"이 인간의 영을 의미할 때 첫째는 인간의 감(感 :感慨, 感激, 感動, 感情, 感化)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마음자세, 마음보, 심사와 유관한 기류를 생각할 수 있다. 욥을 공격하는 엘리바스의 말에 너는 "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역한다"(욥15:13)했는데, 이때의 "영"은 인간의 흥분상태, 불쾌한 상태를 의미하며 설득으로 풀릴 수 있는(삿8:3), 사그러질 수 있는 격노, 흥분상태를 의미한다.
② "영"이 인간의 영을 의미하는 둘째 영역은 인간의 의지(意志, 뜻)이다. "영"이란 대체로 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 "마음의 태도", "느낌의 움직임"을 묘사함과 동시에, "인간 의지의 힘있는 활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램51:11에서 하나님이 메데왕들의 "영"을 휘저으셔(개역:마음을 격발하여...) 자멸을 초래케 하였다 한 것은 "영"이 인간내재의
동력(윤리적으로 중립적인)을 의미한다. 특히 겔36:26, 11:19에는 장래에 새 영을 설치하여 새 마음을 준다 하여,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마음을 동일선상에 병행시켜 인간의 의지(마음)가 하나님의 영과 연결되어 순순한 양심의 안내로 그린 것은 시18:31의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 것을 다짐하는 생각과 같은 맥락이다. 인간의지의 힘과 인간의지의 자유가 하나님의 유효한 세력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고로 여기의 "영"은 인간의 확고부동한 의지력을 말하며, "영"이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의지 혹은 뜻으로 번역함이 낫다.
넷째로, 하나님의 영 : "영"의 의미는 하나님의 영이다. 시33:6에 "말씀이 하늘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입의 호홉(영)이 만물을 만들었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생명 창조력, 생명 공급력, 활명소성(活命素性) 동력을 의미한다.38)
요엘선지는 종말에는 하나님의 영이 모든 이스라엘에게 주입되는 보편적인 현상을 그렸다(욜2:28). 엘리사의 소원은 자기 스승인 엘리야 선지가 받은 영의 갑절을 하사받는 것이었고(왕하2:9f, 15),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하신 하나님을 "모든 육체의 생령의 신"이라 하였은즉(민27:16, 참조16:22), 이런 경우에서 "영"은 하나님이 임의로 모든 육체에게 할애, 분배하시는 활력소와 생명력이 되는 비상한 선물, 특출한 권위를 의미한다 하겠다.39)
결국 계시의 방편으로서의 하나님의 영은 그 작용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고정집단이란 없다고 보아야 한다. 어느 정도는 분리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전혀 독특한 세력이다. 종합해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은 구약에 규범지어 정의되지 아니한 미지수 영역으로 접을 수 있다.40)
제3절 영성과 목회와의 관계성
영성생활이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인간이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고자 함이다(요 10:10). 사실상 만물의 궁극목적은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에서 태어난 만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께로 나아가 성삼위의 풍요한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41) 영성생활은 세가지 뚜렷한 목표가 있다. 그것은 하나의 궁극목표와 두 개의 상대적 혹은 근목표(Proximate goal)가 있다. 영성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근목표는 인간의 성화와 구원이다.42) 모든 피조물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동일한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성서에서도, "그대들은 먹거나 마시거나 또 무엇을 하거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시오"43)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완덕의 길을 따라 진보할 때 그들의 개인적 성화와 하늘에서 누릴 완전한 행복까지도 영성생활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다. 개인의 성화와 구원은 성삼께 영광을 드리는 가장 탁월하고 유효한 방법일 뿐이다. 창조된 전 우주는 하나님의 선성(善性), 진리 및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존재하고 이는 바로 창조자의 본 외적 영광이다. 그러나 피조물 편에서 본 하나님의 영광이란 더욱 더 큰 완덕을 향해 노력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노력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동일한 궁극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란 개념보다는 이차적 목표(구원과 성화)가 영성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원이란 용어는 "인간의 궁극적 행복", "영생" 및 "영광 속의 삶"이란 표현과 동의어이다.44)
신학자들은 축복받은 영혼이 하나님과의 친밀하고 즐거운 일치-영광중의 일치-를 '지복지관'(至福直觀, beatific vision)이라 하였다. 지복직관을 완성된 영혼의 삶으로 이해한다. 45) 영성생활의 또다른 목표는 자신의 성화이다. 성화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영성생활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하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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