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의 예배의 개혁:
신명기 12 장을 중심으로
한동구
<평택대학교 신학과>
( I ) 서 론
사회가 어떤 변화 ( 차별 )이 생겨나게 될 때 - 이 변화가 지나치게 급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진화적, 즉 점진적으로 수행된 한에 있어서는 - 법과 이론에 대한 전문가들이 생겨나게 된다. 다루고 있는 대상 또한 확대되며, 항상 도달된 사유의 높이 만큼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예배의 중앙 통일화 ( Kultzentralisation )는 이제까지의 전통 속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변화이며 일체의 연속적 성장을 거부한다.
예배의 중앙 통일화는 역사적으로 혁명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산물로써 이를 올바르고 또 정당하며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 특히 사회사적 배경을 고려하여 연구해야 한다. 이 때 종교적인 동기 ( Motiv )는 물론 정치적, 사회적 동기들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유의해야 한다. 정치적, 사회적 및 종교적 등 많은 원인들이 함께 얽혀, 이것이 예배의 중앙 통일화라는 결정적인 개혁에로 이끌었다. 종교적 운동은 동시에 사회적이며, 민족적인 운동이다. 최소한 이점은 신명기 개혁 운동에서는 유효하다.
신 12, 1 - 13, 1의 본문은 문헌적으로 결코 통일된 ( einheitlich ) 본문은 아니다. 제의상의 개별 규정들이 여러 번 다양한 표현 양식으로 반복되어 나온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학계에서 받아들여져 온 것은 이 본문은 4개의 판 ( Fassung )이 함께 묶어져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 V. 2 - 7절, 8 - 12절, 13 - 19절, 20 - 29절. 이 가운데 3 번째 판 ( 13 - 19절 )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겼다.1)
( II ) 신 12, 13 - 19의 문헌 비평적 분석과 신학 적 해석
( II - 1 ) 문헌 비평적 분석과 내용의 구조
신 12, 13 - 19의 단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신 12장의 서술 중 핵심 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이 단락은 단 한번에 형성된 것은 아니다. 이 단락은 다음의 경고 문으로 시작한다: "유의하라, 너는 ...을 하지 않도록 ... = "2) 이 단락에 계속되는 부분에는 각기 개별적인 규정들이 함께 묶여져 있다. 이 수집록은 그럼에도 아주 분명하게 하나의 통일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전의 언어 형태는 더 이상 보존되어져 있지 않다.3)
내용상으로 3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
1 神學과 文化/舊約學
1)예배 개혁의 중심 규정 = 예배의 중앙 통일화 : 13 - 14절
2)부속 조치들 : 15 - 16절
3)부가적 규정들 : 17 - 19절4)
몇 몇 학자들은 이 단락이 잘 짜여진 상호 대칭적 구조 ( eine chiastische Gestaltung )로 이루어져 있으며, 앞 뒤에 경고 양식 ( Warnungsformel ) - "유의하라 너는 ...하지 않도록 ..." - 으로 싸여 틀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5) 그러나 18a 절과 19절의 레위인에 대한 규정은 결코 신명기 편집과 동일한 차원에 놓일 수 없다. 오히려 신명기 이후의 삽입구 ( der nachdeuteronomische Zusatz )로 보아야 한다.6) 따라서 19절의 경고의 양식은 외적 틀이 아니라, 후기의 삽입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재수용 ( die Wiederaufnahme )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7)
( II - 2 ) 예배 개혁을 위한 핵심 규정 ( 13 -14 절 )
13 - 14절에 신명기 예배 개혁의 핵심 부분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성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 너는 너의 번제를 너의 눈에 드는 아무 곳에서 드리지 말고, 야웨께서 선택한 장소에서 드려라 ( 13b -14a 절 ).
13b절 ( 너의 눈에 드는 아무 곳 )의 부정확한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치는 않다. 이 곳은 아마도 이전의 성소들일 수 있다. 선조들은 여기 저기에, 그들이 살고 있거나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에 제단이나 돌석상을 세우고, 또 나무를 심고, 우물을 팠다. 이러한 일은 아무 곳에서나 또 우연한 어떤 장소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미 널리 알려진 이전의 성소들에서 일어났다 : 세검, 벧엘 ( 에브라임 ), 헤브론, 브엘세바 ( 유다 ), 미스바, 마하나임, 브누엘 ( 길갈 ).8) 이전 전승에서 놀라운 점은 야웨께서 그의 사랑하는 이들 ( 선조들 )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자 원하셨던 곳을 지시했다는 점이다 : 이삭은 브엘세바에서 잠을 자다가 그 곳의 신9)의 방문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우물을 팠다. ( 창 26, 23 - 25 )
출 20장 24절의 신명기 이전의 한 규정에 따르면 야웨께서는 그의 이름을 기려 예배케 한 모든 곳에서 그에게 예배하는 자에게 찾아와 축복하시겠다고 했다. 이 표현에서는 어떠한 논쟁도 찾아 볼 수 없다.10) 즉, 출 20, 24에서 말하는 장소는 후에 상스러운 것으로 여겼으며 또 토착 민족들에게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곳들, 신 12, 2f. 절에 언급한 바 산당이나 무성한 푸른 나무들이 아니라; 바로 이곳은 토착 민족들에게서 성소로 물려받았으며, 그들의 방식대로 야웨를 섬겼던
2 神學과 文化/舊約學
곳들이다.11) 분명한 것은 출 20, 24은 반 가나안적 동기에서 언급된 구절이 아니다.12)
다음으로 논의할 점은 핵심적 견해가 담겨 있는 부분이다 : 야웨 제사를 야웨께서 선택한 한 성소에 통일시킨 요구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민족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서 결합되고 또 포함되지 못했기에, 신명기 운동의 초기 예배 규명에서는 예배 장소에 하나의 새로운 중심을 투고자 했다.13)
벨하우젠 ( J. Wellhausen )은 예배의 중앙 통일화와 같은 법은 어떤 역사적인 계기로 말미암아 형성되어졌다고 주장했다.14) 이 계기에 대한 상황에 맞는 판단만이 이 법의 역사적 자리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즉 예배의 장소를 야웨께서 선택하신 곳에 통일시켜 공동체 성과 연대성을 얻고자 했던 개혁 운동에서이다.
남왕국 유다는 주전 8. - 7. C.에 앗시리아의 봉신국이었다. 대개 고대 사회에서는 군사적 성공은 종교적 억압을 가져왔고, 이러한 억압은 정복된 나라의 경우 총체적인 위기들 초대케 했다.
유다의 경우에도 전통적인 야웨 신앙을 해체시켰다. 따라서 민족적 해방은 물론 세대에 맞는 신학과 예배의 개혁은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15)
유다왕 히스키야와 요시아의 개혁은 야웨 제사를 정화하여 이교적 요소와 이교적 영향을 배제시켰고, 또 예배를 중앙에 통일시켜 야웨 예배를 새롭게 조직했다, 즉 이 새로운 변화를 통하여 유다의 민족 의식을 고취시켜 앗시리아로 부터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 예배의 중앙 통일화는 정치적으로 소속성과 동일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많은 지방 성소들과 그 곳의 사제들은 예배의 중앙 통일화를 이룩하는데 방해 요소가 되었다. 왜냐하면 지방 성소를 포기해야만 이 예배의 단일화 ( Kulteinheit )를 이루어지며, 동시에 통일된 공동체가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16)
예배의 단일화를 통해 새 국가를 세우고, 이를 통해 민족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을 때 지방 성소의 포기는 필연적이다. 이 길만이 전 민족이 국가 성소를 향해 순례의 길에 오르게 되면, 이것은 곧 국가적인 일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14a절에서 지파들에 대한 언급을 후기의 보충물 ( Zusatz )로 보는 이들이 있었다.17) 이들은 지파를 민족을 조직화한 행정 체계로 잘못 이해했다. 그러나 지파에 대한 언급은 소속의식을 전제한다. 따라서 신명기 편집자는 과거 지파들 사이의 연대감을 가졌던 관습을 상기시켰고, 이를 통하여 현재를 위한 공동체성과 연대감을 얻고자 했다.
한편 주전 8. C.의 예언자들을 지파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신명기 저자에 의해 비로소 다시금 받아 드렸다 : 최고의 정치적 권위 ( 권력 )가 중앙 정부에 부여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총회에 주어졌다. 중앙 정부가 없었던 지파 공동체에 대한 회상을 통해 아마도 신명기 저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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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존했던 정치적 경제적 격차에 반해 평등 의식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따라서 14a절에서 지파에 대한 언급은 결코 후기의 보충물 ( Zusatz )로 볼 수 없다.
문체적인 이유에서 14b절, 특히 관계절 ( 그리고 그 곳에서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을 모두 행하라 )을 이차적 ( sekundar )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18)
14b절은 17f.절의 규정들을 선행하여 요약적으로 언급한다. 그러므로 17f.절은 14b의 상세한 서술로 보여진다. 그 사이에 놓여져 있는 구절들 ( 15a, 15b, 16절 )로 인하여 14b절이 편집구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14b절은 신명기 편집자의 산물이다.
( II - 3 ) 부속 조치들 ( 15 - 16 )
위에서 언급한 바 매우 중요한 규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어떤 제한과 부대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고대 사회에 있어서 모든 도살은 제의적이었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다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는 결고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축제의 기쁨을 나누는 표징이다.19)
이 단락에서는 여러 곳에서 드리는 예배의 처소를 한 장소로 제한함으로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제의적 도살을 폐지하고, 그 대신 세속적 도살을 허용하는 것이다.20) 이점에서 이 단락은 예배의 중앙 통일화의 조치를 전제한다, 왜냐하면 실제 이 규정을 실행함에 있어서 예상되는 어려운 점을 해소하려는 점들을 담고 있기 대문이다. 그러나 제의적 도살의 포기가 공동체 제사를 완전히 포기한 것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개인적 제사의 자리에 전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가적인 제사를 도입한 것이다.21)
신명기는 이제 모든 도살에서 성례전적인 의미를 폐지시킨 것이다. 이제 고기는 제사에 드릴 수 없는 짐승과 동일하게 되었으며 또 한 제의적인 정결의식 없이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피는 더 이상 제단에 드리지는 것이 아니라, 물과 같이 다른 세속적 물질과 같이 땅에 솔아 버려졌다.22) 만약 육식을 위한 도살과 제사를 드릴 목적의 도살을 구분하고자 한다면, 그 차이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전통적 관습의 합리화외에도 세속화 ( Entsakralisierung )의 경향이다.23)
15a절의 "야웨 너희 하나님이 너에게 축복한 바 대로"라는 표현은 원래적 본문 형태에 속할 수 없다.24) 신명기 법전 ( 신 12 - 26 )에서 야웨 축복에 대한 사상은 제물을 드리는 문맥25)이나 사회적 요구를 하는 문맥26)에 주로 나온다. 이 점은 고려할 때 이 표현은 중앙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는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나 15b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중앙 성전이 없는 다른 도시에서 세속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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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이 허용됨을 다루고 있다. 15a의 요구는 20f.절 ( 부대적 조건이 덧붙여졌으며 ) 과 27b에서는 21a ( 내가 너에게 명령한 바와 같이 )에와 같이 어떤 제의상의 지시로 해석되여졌다. 20f절에서는 세속적 목적의 고기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이해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족복이라는 명시적 표현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들을 미루어 15a절에 삽입된 부분 ( Zusatz ) 는 20f.절이 형성이 후에 15f.절의 문맥에 삽입되었다.
( II - 4 ) 2개의 제의적 규정 :
정결과 불결의 양분 ( 15b ), 피를 먹는 것의 금지 ( 16 )
이스라엘 - 개인이든 집단이든 -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과 불결, 거룩과 세속, 축복과 저주라는 양분화된 세계에 자신들이 놓여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은 양극성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주어져 있는 기본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은 세계관의 뿌리는 태고적인 타부 신앙에 놓여져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에서부터 이미 있었던 것으로 여겼다.27)
이에 대한 성서의 언급은 시간상으로 볼 때 매우 광범위하게 펴져 나온다. 15b절에 담고 있는 정결과 불결 사이의 양극성은 신명기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온다 : 12장 22절 15장 22절.
삼상 20장 26절에 따르면 정결한 사람과 불결한 사람 사이를 구분했던 것이 하나의 오래된 관행으로 보여진다. 신명기 편집자도 세속적 도살의 허용과 함께 불합리한 타부를 폐기시켰다. 세속적 타부가 허용되는 시점에 이제까지 지켜 왔던 제의상의 타부에 대해서는 당연히 어떤 조치나 규정이 나와야 한다. 여기에서는 제의상의 타부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음을 강조한다. 즉, 원시적 타부 신앙은 합리화되어졌다.28) 이러한 상황에 맞는 조치를 15b절에 담고 있다.
죽은 짐승의 피를 함께 먹지 말라는 금지는 원시적이며, 미신적인 세계관과 연결된다 : 피는 생명을 지니고 있다.29) "흘려진 피" ( das vergossene Blut )라는 표현은 원래 상해나 살해와 관련된 표현이다. 이 제의적 규정은 필자의 견해로는 원래 법적 영역의 규정이었으나 제의적 영역으로 옮겨온 것이다. 창 9, 4ff.에서는 인간의 영역에서 동물의 피에까지 더 확대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왕권 제도가 이스라엘에 들어오면서 공권력에 의한 폭력의 가능성은 문이 열렸고, 왕조 후기에 와서는 더욱 심해 졌으며, 포로기에는 절정에 달했다. 이 제의적 규정은 이러한 무죄한 자에게 흘린 피30)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16절을 신명기 편집자의 산물로 돌릴 수 있다. 그러나 15b절과 16절의 두 제의적 규정은 후에 이 문맥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아마도 예배의 중앙 통일화 ( 13 - 15a절 )과 예배의 개혁 ( 17 - 18절 )이 더 이상 종교적 - 정치적 행위로 이해되지 않고, 개인이나 공동체를 위한 제의상의 규정으로만 통용된 때에 들어오게 되었다.
( II - 5 ) 부가적 규정들 : 17 - 19절
17f.절에서는 예배의 중앙 통일화의 규정에 예배의 개혁에 관한 사항이 연결되었다. 신명기 예배 개혁의 두 번째 핵심 부분은 예배 참석자의 확대이다.
5 神學과 文化/舊約學
예배 참석자의 목록:
신 12장 18절에서는 단수 표현의 연설 형태로 예배 참석자의 범주를 상술하고 있다 "너, 너의 아들들과 딸들, 너의 노예들과 여자 노예들". 이 목록은 전 가족을 망라한 표현이다. 즉 가장과 자녀들 외에도 남여노예들 포함한다. 신명기에서는 예배를 위해 참석자를 하나 하나 개별적으로 언급했지만, 이 열거는 정치적으로 구성된 어떤 전체31)를 의미한다.
특별한 강조와 함께 레위인들 ( 18ab절과 19절 ), 떠돌이, 고아와 과부 ( 신 16장 11, 14절 )들은 예배의 참석자로 포함시킬 것을 명한다. 종래의 축제의 칼렌다에서 와는 달리 예배 참석자가 엄청나게 확대되었음을 여기에서 볼 수가 있다32) ( 참조 출 23, 16; 34, 22 ). 이러한 확대는 후에 사제 문헌들에서 더이상 유지되지 않았다.33)
신명기에 따르면 예배에 참석하는 구성원은 "전체 이스라엘" 이다. 모두가 개개의 가족 계층, 신분이 민족으로 통합된다.34) 예배는 신명기의 법에 따르면 하나로 통합된다.
예배나 축제는 항상 사회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민족 축제나 민족 전체가 참가하는 예배에서는 사회적 계층간의 제한은 철페 된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차이는 포기되어 진다.35) 모든 신분 계층은 한 성소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따라서 민족 전체의 공동체가 실현되어 진다. 신명기는 민족의 내적 통일성을 힘 주어 강조하고 있다. 민족 내부에 있는 다양한 신분들과 계층이 차별 없이 형제들의 대가족으로 함께 되는 곳에서36), 균열이 없이 하나같이 통일되는 진정한 소속성의 의지를 잊을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예배의 개혁과 공동체의 개혁은 하나이다. 예배의 단일화라는 제도는 대대적인 혹은 각 부분 부분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신명기의 이론에 따른 예배는 계층간의 격차를 철폐하며 모두들 하나님 앞에서의 기쁨으로 이끄는 것이다.
기쁨의 공유:
신명기 예배의 또다른 특징은 기쁨이다.37)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기쁘게 누리고 무엇보다도 다함께 누리는 것은 신명기 관심사의 전면에 서 있다. 예배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흔적은 신명기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기쁨은 - 특히 제의에 있어서 - 일반적인 종교적 현상이다 :
당신 ( 야웨 ) 은 환호의 소리를 발하게 하셨으며, 당신은 기쁨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추수할 때에 또 전리품을 나눌 때에 사람들이 기쁘게 하는 것같이 당신 앞에서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 사 9, 2 )
제사의 식사에서 갖는 즐거운 공동체의 모티브는 다음의 사실을 강조한다 : 이스라엘은 그들
6 神學과 文化/舊約學
의 제사가 중앙 통일화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전부터 가져왔던 온갖 유의 축제의 기쁨을 조금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전 공동체가 야웨 앞에서 완전히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예배에서의 기쁨은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관련되며, 이방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한 야훼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관련된다. 신명기에서 야웨 앞에서의 기쁨은 성전의 영역 내에서 일어나는 어떤 행동 양식이나 어떤 예배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다.38) 여기에서 추구하는 기쁨은 겉으로 드러난 열기와 외적인 즐거움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추구하는 것은 그 근거가 야웨에 의해 부여된 성공과 그에 의해 선물된 물질적 충만과 생의 의미 충족에 대한 감사에 있는 질적으로 최고의 기쁨인 것이다.
이것과 함께 이것은 더 넘어, 신명기에서 요구된 기쁨은 그 근거가 민족 전체가 차별 없이 예배에 참석하여, 야웨의 축복을 다함께 누리는 것에 있다.
이 기쁨은 그러나 창고에 곡식이 넉넉한 때, 부족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형제도 요구할 수 있게 허용했다 ( 신 15, 7 - 11 ).39)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 3년마다 십일조를 가난한 자들에게 넘겨주어야 한다 : 신 14, 28f.; 26, 12ff.
신명기는 거룩한 헌물을 사회 구제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본질적으로 "야웨 앞에서의 기쁨"이란 사회적으로 예속되어 있거나 빈궁에 처한 자들에게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신명기 이론에 따른 예배는 - 예배의 단일화의 전제하에서 - 이방 권력으로부터의 해방과 또 우리에 사회적 차등을 극복하여 야웨 함에서의 기쁨의 공유를 오게 한다.
( II - 6 ) 이차적 부가 규정들
이제 필자는 이차적으로 부가된 몇 몇 구절과 제의적 규정들을 다루고자 한다. 만약 다양한 형태의 제사와 제물 ( 헌물 )들이 열거되는 순서에 따라 그 중요성이 부여된다면 ( 즉 중요한 제사가 먼저 언급되고 그 다음의 것들이 계속되며 연결된다 ), 7절에 언급된 손을 높이 들어 바치는 제물 ( )은 열거된 목록을 완성하기 위하여 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추적된다. 왜냐하면 이 제물은 6절과 11절에서는 십일조 다음에 언급되며40), 십일조나 맏배 제물과 같이 성물에 속하기 때문이다.41)
19절의 저자는 18a 절의 예배 참석의 목록에 언급된 레위인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 강조된 특별한 배려는 왕하 23장 9절의 보도를 전제하는 것 같다; 지방 사제들, 즉 레위인들은 더 이상 생계 수단을 가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산당의 사제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도는 중앙의 사제들과 지방 출신 사제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으며, 또 그 결과 성자가 패자인 레위인들을 위한 절충 제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42) 레위인들이 하층민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하층민으로 언급되었던 떠돌이, 고아와 과부와 쉽게
7 神學과 文化/舊約學
함께 묶여 언급되어질 수 있었다 ( 참조 신 14, 29; 16, 11 - 14; 24, 22; 26, 12 ).
이제 다른 단락들을 다루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3번째 단락과 같이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다. 다만 몇 가지 제한된 점에서 다루고자 한다 : 예배의 중앙 통일화가 이후에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어떻게 이해되었나?43)
( III ) 신 12, 20 - 28의 문헌 비평적 분석과 신학적 해석
이 단락의 성격은 분명치 않다; 이 단락을 3번째 단락 ( 13 - 19절)의 해석적 확대44)인지 아니면 예배의 중앙 통일화의 4번째 판인지45) 분명치 않다. 이 단락에서는 3번째 단락의 구절들이 다시 수용된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차이점을 보여주며, 이것을 물론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V. 13 - 19절의 단락이 신명기 학파 ( die deuteronomische Schule )46)에 의해 개정된 것으로 ( uberarbeitet ) 보여진다. 전통적인 부문들이 부분적으로는 글자 그대로 재 수용되었고, 여기에 자신의 새로운 해석과 뉴앙스를 부과하여 변형시켰다.47)
스토이어나겔 ( C. Steuernagel )은 세속적 도살의 허용이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바로 이 점은 이 규정이 발전되었음을 말해 준다고 보았다.48) 15a절에서 세속적 도살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20f.절에서는 다시금 조건과 결부되었으며, 그래서 제의상의 규정으로 변형되었다.49) 15b 절은 22a절에서 구체적으로 해석되어 졌으며 여기에 새로운 요소 ( 22b절 )가 덧붙여졌다.
16절에서 피를 먹지 말라는 규정은 23 - 25절에서 다시금 강조되어 언급되었으며, 여기에 근거를 덧붙여 변형시켰다 ( 23a b, 25b절 ).50)
신명기 편집자가 길게 열거한 제사들아 제물들의 목록 ( 17절 )은 여기에서는 성물 ( die heiligen Abgaben - 의무적으로 바치는 것 )과 헌물 ( die freiwilligen Abgaben - 자의로 바치는 것 )으로 체계화시켜 요약했다.
예배 참석자의 열거 목록 ( 18절 )은 여기에서 완전히 포기했다.51)
13 - 19절에서는 제의적 도살이 예배의 중앙 통일화로 인해 포기된 것에 반하여 여기에서는 다시금 제의적 행위로 나타났다.52)
8 神學과 文化/舊約學
( IV ) 신 12, 8 - 12의 문헌 비평적 분석과 신학적 해석
두 번째 단락은 8절에서 시작된다. 이 단락에서 특이한 점은 1인칭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인칭 복수는 주로 이동이나 전투 장소를 묘사하는 메모 형식의 반복적 기록 ( Itinerarennotizen )에 나온다.53) 이러한 점을 미루어 신 1 - 3장의 역사서들의 윤곽을 형성시킨 편집자와 신 12, 8ff.의 저자는 동일하거나, 아니면 회고적으로 서술했다고 볼 수 있다.
8b절에서는 "각자의 눈에 드는 데로 행동했다"라는 표현을 담고 있다. 이 표현은 사사기 끝 부분에 몇 차례 나온다.54) 이 표현은 왕이 없던 끔찍스런 시절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중심 모티브로 나타난다. 이 배후에는 왕권을 높이 평가하는 입장이 서 있다.55) 이 단락의 저자는 옛 전승을 넘겨받아 8a ( 우리가 오늘날 여기에서 행하는 것과 같이 )절을 묘사하기 위한 대표적인 예로 서술했다.
계속되는 부분에서는 땅 획득이라는 가상되는 상황과 율법이 연결되어 있다. 9f.절은 변형된 계명의 서론으로 볼 수 있다.56)
9절에서는 두개의 목표를 제시했다 : 안식 ( )과 기업 ( ). 대개 획득하고자 하는 땅은 기업 ( ) 아니라, 땅 ( 57) )으로 지칭되었다. 땅 ( )은 땅 - 선물 양식이나 역사화된 계명의 서론에서 여러 차례 기업 ( )과 동의되고 확대되어 표현되었다.58) 이러한 문체적 근거에서 9절은 후기의 변형된 양식으로 보아야 한다.
신명기 사가의 역사서나 4경의 역사서의 윤곽이 형성된 후에 "요단강을 건넌다" ( 10절 )의 표현도 땅양식의 한 변형된 양식으로 형성될 수 있다. 땅선물 양식에서는 대개 '주다' 동사의 분사형 ( )이 양식의 확고한 구성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59) 여기에서는 '기업으로 주다' 동사의 Hip.형 ( Hi. )이 사용되었다. 이 동사는 주로 사제 문헌이나60) 신명기 사가의 문헌61)에 나온다. 이 동사는 신학적 입장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 땅 분배 서술에 사용되었고, 이로서 신학적 의미를 얻게 되었다 : 1) 사람의 숫자에 따라, 2) 제비로 땅을 분배되어야 한다.
이러한 신학적 규정은 이스라엘 사회의 땅 소유 관계가 매우 불균형하게 되어 따라서 땅 소유에 대한 개혁의 소리가 높아졌던 시대에 형성되어 질 수 있다. 또한 이 동사의 사용 ( Belege ) 분포를 근거로 볼 때 이 신학적 규정은 포로 후기의 상황을 암시한다. '주다 ( )' 동사에서 '기업으로 주다' ( Hi. ) 동사로 바뀐 것은 땅 소유에 대한 포로 후기의 반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역사화된 계명의 서론에서 목표물의 표현으로 안식이 나타난 것은 여기 단 한군데뿐이다. 이 변형된 양식에서는 땅 획득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 참조
9 神學과 文化/舊約學
신 12, 10 ).62) 땅 획득 이후의 새로운 문제를 다루기 위하여 역사화원 계명의 서론의 전통적인 양식은 변형되었다 : 평화와 안전한 삶.
9b절과 동일한 관심사가 10b절에서도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더이상 정착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적으로부터의 평화와 정착 이후의 안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브라우릭 ( G. Braulik )은 '안식에 이르다'라는 표현을 문맥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보았다.63)
예루살렘에는 주전 515년부터 다시금 성전을 가졌다. 성전이 다시 섰으나,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는 오랫동안 확고하지 못했다. 유대 공동체는 외적인 불안을 극복하고 동시에 안정을 이루어야 했다.
이 단락의 저자는 예배의 중앙 통일화를 통하여 공동체성과 연대성을 추구했던 옛 전능을 다시 받아들여 새시대의 새로운 과제, 평화와 안전을 얻으려는 일에 적용했다.
이 단락에서는 예배의 중앙 통일화는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사항이다 : 한편으로 기업으로 얻은 땅 ( 9, 10a )을 소유하는 것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평화와 안정 ( 9, 10b; 10 )을 얻는 것이다.
( V ) 신 12, 1 - 7과 12, 29, - 13, 1의 문헌 비평적 분석과 신학적 해석
신 12, 1 - 7 ( 특히 2 - 3절 )과 신 12, 29 -13, 1에서는 제의의 중앙 통일화에 대한 가장 나중의 이해를 보여 주고 있다.
1a 절 ( 이것은 규례와 법도이다. 이것들은 너희들이 지켜 행해야 한다 )는 신명기 12장과 신명기 법전 ( 신 12 - 26장 )을 위한 표제이며, 동시에 신 12장 1 - 7절의 표제이다. 여기에 변형된 땅 선물 양식이 이어졌다. 땅 선물 양식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다' 동사의 분사형 ( ) 대신에 이 동사의 완료형 ( )가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사용된 신명은 '너희 선조들의 하나님 야웨' ( )으로 이 표현은 땅 선물 양식보다는 땅 맹세의 양식64)에 더 많이 나온다. 또 이 양식의 끝에 부가된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 )라는 표현65)은 국내 정치적 상황보다는 국제 정치적 상황과 더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볼 때, 이 단락은 이방 민족과 강하게 대립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땅 선물 양식도 일종의 역사화된 계명의 서론으로 볼 수 있다. 이 양식은 여기에 이어지는 2 - 7절의 규정이 통일될 공간을 서술해 주고 있다. 동시에 2a절의 관계대명사절의 서술도 일치한다 : " ... 그들은 너희들이 몰아내게 될 ... "
이 단락의 저자는 2 - 4절에서 이방 민족들의 제의물을 철저히 파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2a절에서는 이방 민족의 예배처럼 파괴를 말하며, 2b절에서는 2a절에서 포괄적으로 언급한 것을 구체화시켜 언급하고 있다 : 높은 산 위, 언덕 위, 푸른 나무 아래. 이 예비 처소들은 원주민들의 예배 처소이며, 야웨 신앙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의 지방 성소이기도 하다. 여기에 열거된 성소의 하나 하나는 신명기 사가의 역사서와 예레미아서에 주로 나온다.66) 이 둘 구절
10 神學과 文化/舊約學
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를 다루고 있거나, 과거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다루고 있다. 즉, 신명기 사가의 역사서와 예레미아서에 담고 있는 개별 요소들의 목록은 과거사와 현재를 해석하는 기준이다.
이 목록은 총체적으로 서술되었다. 즉 이 목록의 저자는 완전성을 추구하였다. 왜냐하면 법적 근거를 만들고자 했으며, 이를 넘어서 동시에 자신의 상황에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점에 직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에루살렘의 유일한 성소 외에 다른 예배 처소는 어떤 것이든 - 이것이 야웨 하나님을 위한 것이든, 다른 신들을 위한 것이든 - 이방 민족에게서 유래된 것으로 여겼으며, 이 점은 이 단락의 저자의 의도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규정들은 중앙 통일화의 요구에 충실하고 있다 : 실제 예루살렘에 합법화된 중앙 성소 외에는 다른 신들을 위한 성소란 존재하지 않았다. 합법화된 중앙 성소 외에 다른 성소가 있다면, 그것은 야웨 숭배를 위한 다양한 성소일 것이다. 이러한 것을 모두 다른 신들을 위한 장소로 보았으며, 따라서 무조건적으로 파괴되어져야 할 장소로 알았다. 이 단락의 저자로 예배의 단일화에 근거하여 예배의 정화를 이루고자 했다.
성소의 목록에 이어서 3절에서도 파괴시켜야 할 4개의 전형적인 제의물이 열거되었다 : 제단, 석상, 아세라 ( 목상 )과 조각 신상. 처음 두개는 야웨 숭배를 위한 제의물이다. 특히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성행했던 것들이다.67) 그러나 이것들이 신명기 4가의 역사서에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합법적인 성소와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방 민족들에 제의물 즉 바알이나 아세라의 숭배에서 사용되어진 제물로 여겨졌다.68) 어쨌든 이것들은 제의 장소가 아니라 제의 대상물들이다. 특히 마지막 세개. 그럼에도 이것들이 예루살렘이 있는 합법적인 성소에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것들은 다른 민족들의 예배 장소로 해석되었고, 그래서 이 문맥에 들어 올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29 - 31절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 즉, 예배의 중앙 통일화의 규정에 속한다 ), 물론 이 단락에서는 명시적으로 예배의 중앙 통일화를 암시하는 구절은 담고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는 포로기와 포로 후기의 시간대에 새로운 예배 장소나 예배 대상물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29 - 30절은 예배의 단일화나 예배의 정화의 규정을 넘어서 다른 목적 즉 논쟁적 목적을 갖고 있다. 정치적 - 종교적 목적이 3b절에 역사적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 다른 신들의 이름의 제거와 함께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이들의 숭배자들도 함께 제거하고자 했다.
2 - 3절은 배후에는 일종의 정치적 - 종교적 관심사가 배후에 서 있다. 포로 후기의 유다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그 의도가 분명해 진다.69)
역사화된 계명의 서론의 저자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이 교화를 말하고자 했다. 이를 넘어서 비야웨적 예배 장소, 예배 대상물과 예배 행위에 속했던 자들이 정치적으로는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하려 했다 ( 29 - 31절 ). 아마도 이웃 민족들, 특히 사마리아를 주목한 것 같다. 이들의
11 神學과 文化/舊約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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