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일인격성(一人格性)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가지고 계시지만, 한 인격, 즉 한 분이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1문답,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구별된 본질(성, nature)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인격이셨고, 영원히 계속 그러하십니다.” 인격(person)은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행동 주체를 가리킨다. 그러나 지정의(知情意)의 특질 자체는 인격에 속한다기보다 성(nature)에 속한다고 본다.
일인격성(一人格性)의 증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몇 가지 점에서 증거된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항상 단수 인칭대명사가 사용된다. 즉 성경에서 그를 위하여 ‘나는, 나의, 나를, 당신은, 당신의, 당신을, 그는, 그의, 그를’ 등의 단수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지, ‘우리는, 우리의, 우리를, 당신들은, 당신들의, 당신들을, 그들은, 그들의, 그들을’ 등의 복수 인칭대명사가 사용되지 않는다.108)
둘째로,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사이에 어떤 인격적 구별이나 교제의 증거가 없다.
셋째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다 한 분 예수께 돌려진다. 로마서 1:3, 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인성]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신성]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넷째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속성과 사역이 인적 명칭에 돌려지는 경우가 있고, 또 반대로 그의 인적 속성과 사역이 신적 명칭에 돌려지는 경우도 있다. 마가복음 2:10, “인자(人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요한복음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전통본문) 인자 외에는.” 고린도전서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한 인격' 안에서의 2성 연합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신적 인격이셨고, 신적 인격이신 그가 인성(人性) 혹은 인적 본질을 취하신 것이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로고스 λόgος)이 계시니라.”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격이신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나의 독립적 인격이 아니시고, 신적 인격이신 말씀과 결합함으로 그 인격 안에서 인격이 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비인격’109)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고, 신적 인격과 결합하자마자 인격이 되셨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초대 교회의 레온티우스와 다메섹의 요한 같은 이들은 ‘내(內)인격’110)이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적 인격 내에서 인격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정의(知情意)는 성(性, nature; 본질)에 속한 특질이라고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신적 의지뿐 아니라 인적 의지도 가지고 계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신적 의지와 그의 인적 의지는 조화를 이루셨고 그의 인적 의지는 그의 신적 의지에 항상 복종하신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후 680년, 제3 콘스탄티노플 회의는 이러한 내용을 진술하였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신인적(神人的, theanthropic) 인격, 즉 신인(神人, God-man)이시며 영원히 그러하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1문답]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고, 그래서 두 구별된 본질(성)들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인격이셨고, 영원히 계속 그러하십니다. 히브리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2성 연합의 결과--삼중적(三重的) 전달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연합된 결과, 삼중적 전달이 있다.
첫째는 속성의 전달이다. 예수께서는 신적 속성과 인적 속성을 함께 갖고 계시지만, 그것들은 한 인격에게 전달된다. 마가복음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요한복음 2: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요한복음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하늘에 있는(전통본문) 인자 외에는.” 로마서 1:3, 4,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둘째는 사역의 전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사역들과 인적 사역들은 다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진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신인적(神人的) 성격을 가진다. 마가복음 2:10,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요한복음 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고린도전서 2:8,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셋째는 은혜의 전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은혜와 영광은 한 인격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진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존귀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찬송과 경배를 받으신다.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사도행전 7:59,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요한계시록 5:12,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여러 가지의 오해들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 여러 가지의 오해들이 있었다.
에비온파(Ebionites)와 알로기파(Alogi)
에비온파와 알로기파는,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단순히 사람이었고, 그가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내려오셔서 그에게 메시야 의식을 주셨으나, 그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떠나셨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으로써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요 1:14)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 1:14는 분명히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고 증거한다.
도케테파(Docetism)
도케테파 혹은 가현설(假現說)은 그노시스주의자들(Gnostics), 게린더스(100년경), 말시온, 사벨리우스파 등의 생각으로서, 위의 견해와 비슷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입장에서,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단순히 사람이었고 신적 그리스도께서 그의 세례 받을 때 내려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그를 떠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인성은 하나의 환영(幻影, phantasm)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도 역시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참사람이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이심도 부정하는 것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음을 분명히 증거하고(요 1:14)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고백하지 않는 영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했다(요일 4:2, 3; 요이 7).
아리우스파(Arianism)
아리우스(250-336년경)는 육신이 되신 ‘말씀’(요 1:14)이 하나님이 아니시며 사람보다 나은 첫 피조물, 즉 하나님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주장하였다. 초대 교부 오리겐은,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하나님이 아니시며 영원 전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그의 본질이 하나님 아버지께 종속되어 있다고 보았는데, 아리우스는 오리겐의 이런 견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결국,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신성(神性)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하나님’(요일 5:20)이시요 ‘크신 하나님’(딛 2:13)이라고 증거했다.
아리우스는 아다나시우스의 반박을 받았다. 아다나시우스는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심을 주장했다. 주후 321년 니케야에서의 세계 종교회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이시라(호모우시오스)는 사상을 바른 견해로 선언하였다. 성경이 풍성히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은 그 외의 혹은 그 이하의 어떤 말로 표현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중도적 입장을 취했던 반(半)아리우스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비슷한 본질이시라(호모이우시오스)고 주장했다. 비록 호모이우시오스라는 말이 호모우시오스와 이 ι자 하나만 다른 말이지만, 그러나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표현하지 못한다. 즉 반(半)아리우스파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신성을 부정하기는 마찬가지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은 성경이 명백히 증거하는 기본적 진리이다.
아폴리내리우스파(Apollinarianism)
아폴리내리우스(310-390년경)는, 사람이 영과 혼과 몸의 3실체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실 때 신적인 ‘말씀’이 사람의 영의 자리에 들어오셨고 단지 사람의 본질 중 혼과 몸만을 취하셨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사람이심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성경은 예수께서 참사람이심을 밝히 증거한다.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
네스토리우스(451년경 사망)는, 신적 ‘말씀’이 인성과 한 인격체로 유기적 결합을 하신 것이 아니고 단지 사람 속에 거하셨다고 주장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이, 비록 정도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그리스도인들 속에 성령께서 내주(內住)하심과 비슷하였다는 말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두 인격 곧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이심을 부정하는 것이요 또 참된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인격이심을 밝히 증거한다.
유티커스파(Eutychianism)
유티커스(378-454년경)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심으로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혼합된 제3의 본질 혹은 성(性)이 되셨으며, 이 때 인성이 신성에 압도되지만 동시에 신성도 이전과 같지 않았다고 보았다. 이 견해는 ‘일성설’(一性說, monophysitism)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구별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신성과 인성의 구별은 성경의 기본 진리이다.
일의설(一意說, Monothelitism)
일의설(一意說)은, 일성설(一性說)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의지(意志)만 가지고 계신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주후 680년 제3 콘스탄티노플회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별된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시며, 의지는 성(性, nature)에 속하므로 그가 또 신적 의지와 인적 의지를 가지고 계시다고 선언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질(신성과 인성)과 두 의지를 고백한 것이었다.
양자설(養子說)
비잔티움의 데오도터스(주후 2세기)는, 예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난 사람이며 세례 받을 때 성령의 초자연적 능력을 받으셨고, 그의 훌륭한 인품과 업적들에 대한 상급으로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성육신을 부정한 것이었다.
그 후, 스페인의 감독 펠릭스(818년 사망)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에 있어서는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그의 인성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入養)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도 참된 성육신을 부정한 것이요, 두 아들을 말함으로써 두 인격을 말할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속성 전달설
다메섹의 요한(675-745년경)이나 루터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말미암아 신성의 속성들(전지, 전능, 편재 등)이 인성에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혼합을 가져오는 일성론적 오류이다. 복음서들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는 신성과 인성의 구별이 있다.
인성 중심의 기독론
칸트(1724-1804)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상적인 윤리적 완전을 실현하셨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예수님의 인격에 대한 신앙은 무의미하고, 그의 도덕적 교훈을 따르는 것이 구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사상이다.
헤겔(1770-1831)은, 인류 역사가 절대자의 자기 전개의 과정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과정의 절정이며, 그의 성육신은 하나님과 사람의 하나됨을 나타내는 것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범신론적 사상에 불과하다.
슐라이엘마허(1768-1834)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의 끊임 없는, 완전한 연합 의식을 가지고 계셨고, 하나님께서 그 안에 완전히 거하셨고,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하나님이셨다고 주장하였다. 또 그는 예수께서 무죄 완전한 인격으로 이상적 인간성을 충분히 실현하셨다고 보았고, 예수님의 처녀 탄생, 부활, 승천, 재림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성육신을 부정하는 것이다.
릿츨(1822-89)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순히 사람이셨으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나타내시고 그것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셨고, 예수님의 선재(先在), 성육신, 신성과 인성의 연합 등의 교리들은 종교적으로 무가치하며 신앙에 방해거리가 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도덕주의에 불과하다.
게노시스설(Kenoticism)
19세기 어떤 루터파 학자들이 주장한 게노시스설은 빌립보서 2:7의 “자기를 비어(에케노세)”라는 말씀의 잘못된 해석에서 나왔다. 이 견해의 주장자들은, 이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신적 속성들의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하셨으나,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그 모든 속성들을 회복하셨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의 불변성에 충돌된다(말 3:6; 약 1:17). 또한 이 세상에서 생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빌립보서의 ‘자기를 비어’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을 때 그의 신성의 영광을 감추시고 신적 속성들의 사용을 포기하심으로써 마치 신성이 없으신 자처럼 행동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점진적 성육신설
I. A. 도르너(1885)는, 게노시스설에 반대하여 성육신을 순간적 사건이 아니고 점진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는, ‘말씀’(로고스)께서 인성의 수용성의 성장에 따라 점점 더 많이 인성과 연합되셨고, 그 연합이 부활 때에 완성되었고, 그 이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의식과 한 의지를 가지신 신인(神人)이 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성육신을 부정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성경적인 바른 개념 혹은 사상은 역사적 신조들에 잘 진술되어 있다.
니케야-콘스탄티노플 신조(주후 381년), “. . . 또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 빛에서 나신 빛, 참하나님에게서 나신 참하나님이시고, 창조되지 않으시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고, 그를 통해 만물이 있게 되었고, 우리 인간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구원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오셨고 성령과 처녀 마리아에 의해 성육신하셨고 사람이 되셨다.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고난을 당하셨고 장사되셨고 제3일에 성경대로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계시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 위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것이다.”
칼케톤 신조(주후 451년),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한 선조들을 따라 모든 한 마음으로 사람들이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도록 가르치니, 그는 신성(神性)에 있어서 완전하시며 인성(人性)에 있어서도 완전하시고;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참으로 이성적 영혼과 몸을 가진 사람이시고; 신성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이시며(호모우시온), 인성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한 본질이시고(호모우시온);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비슷하시되 죄는 없으시고; 신성에 의하면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인성에 의하면 이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해서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2성에 있어서 혼동 없이(아슁퀴토스 άσυgcύτως), 변화 없이(아트렙토스 άτρέπτως), 분할 없이(아디아이레토스 άδiaiρέτως), 분리 없이(아코리스토스 άcωρίστως) 인정되실 유일한 그리스도, 아들, 주, 독생자이시고; 성들의 구별은 그 연합에 의해 결코 제거되지 않고 오히려 각 성의 특성이 보존되고 한 인격과 한 실존(위, 位) 안에서 동시에 발생하므로 두 인격들로 나누이거나 분리되지 않고 유일하신 아들이시요, 독생자, 말씀이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니, 처음부터 선지자들이 그에 대해 선언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고 거룩한 선조들의 신경이 우리에게 전달해준 대로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8:2,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영원하신 참하나님이시요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며 그와 동등하신데 때가 차서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의 태에서 그의 본질을 받아 잉태되심으로 그 모든 근본적 특성들과 공통적 연약성들을 가진, 그러나 죄는 없는, 인성을 취하셨다. 그래서 두 개의 전체적, 완전한, 구별된 본질들 즉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변화나 혼합이나 혼동 없이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었다. 그 분은 참하나님이시요 참사람이시며 그러나 한 그리스도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21문답,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의 유일한 구속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로서 사람이 되셨고, 두 구별된 본질들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이시며, 한 인격이셨고, 영원히 계속 그러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이상의 신조적 진술들의 요지는 ① 그의 참된 신성, ② 그의 참된 인성, ③ 그의 일인격성(一人格性)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놀라운 구주이시다. 그는 참하나님이시며 또한 참사람이시다. 그러나 그는 한 인격이시다. 이것은 놀라운 신비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주와 중보자는 이와 같이 놀라운 신인적(神人的) 인격이시다. 그는 놀라운 구주이시며 능력의 주이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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