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니즘(Montanism)
영지주의와는 달리, 몬타니즘은 분명히 기독교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그리스도의 조속한 재림을 기대하는 초대의 희망이 대부분의 교회 안에서 점차 희미해지던 2세기에 일어났다. 사도시대 교회의 특색이었던, 선령의 끊임없는 감화에 대한 의식(意識)도 이즈음 크게 약화되었다. 2세기 초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성령은 그리스도와 구별되기는 했으나 그리스도 및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를 가진 존재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사상은 삼위일체적 세례 예식문에 보여지는 것으로서 이전까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던 세례를 이로써 대치했던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장차 오실 성령을 약속하신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므로 2세기 신자들은 성령이 성부, 성자와 특별한 관계를 가졌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약속에 의해, 장래에 보다 풍요한 모습으로 오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롭게 폭발한 예언자적 열정과 결합되어 형성된 성령의 특별한 섭리에 대한 사상과, 임박한 종말에 대한 확신 등이 몬타니즘 속에 나타나고 있다. 이 운동도 어느 정도까지는 교회에 작용하는 세속적인 영향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운동의 원조(元祖)는 몬타누스(Montanus)다. 그는 일찍이 열광 종교로 그 이름이 유명한 소아시아 프리기아(Phrygia) 지방에 인접한 아르다보(Ardabau)에서 출생했다. 기록된 한 전승(傳乘)은 그가 회심 전에 시벨레(Cybele)교의 승려였음을 전해 주고 있다. 몬타누스는, 156년경, 그 자신을 가리켜 성령이 말씀하실 때 사용하는 수동적인 도구라고 선포했다. 이 같은 새로운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약속이 이미 실현되었으며, 성령의 섭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 명의 여선지, 프리스카(Prisca)와 막시밀라(Maximilla)가 곧 그에게 가담했다. 그들은, 성령의 대변인으로 자처하여 세계 종말이 임박을 경고하고 프리기아에 곧 설립될 하늘의 예루살렘에 신도들이 집결할 것을 촉구하였다. 임박한 종말을 대비하기 위해서 독심, 금식, 일체의 육신으로부터의 절제 등을 내용으로 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의 실행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엄격한 태도는 대부분 교회에서 증대되고 있던 세속주의에 대한 반항이라는 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특징이 되었던 것이다. 이 운동은 단시일 내에 상당한 세력을 확보했다. 이로 인해 그들의 군위에 위협을 느낀 소아시아의 감독들은, 서기 160년 직후에 일차( 一次), 또는 그 이상의 회의를 열었다. 이것이 교회 역사상 최초의 공회Carthage) 몬타누스는 정죄되었다. 카르타고(Carthage)에서는 200년경 터툴리안(Tertullian)이 이 운동에 가담했다. 그는 곧 가장 뛰어난 몬타누스주의자가 되었다. 카르타고의 터툴리안 추종자들은 어거스틴 시대까지도 그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몬타니즘이 제시한 금욕적 요구는, 금욕주의의 보편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서, 이 운동이 가르친 것과 같은 엄격한 금욕주의를 후세의 수도원주의에서 발견하게 된다. _두란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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